23-29 나 여호와 외에 다른 신이 없는 십자가룰렛 (오징어전쟁) (호 13, 4- 8).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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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9 나 여호와 외에 다른 신이 없는 게임 (오징어전쟁, 십자가게임) (호 13, 4- 8)
2025. 1.12.

자기를 위하여 자기의 공교함을 따라 만든 우상 (호 13, 1- 3)
호세아 2023 2024. 12. 20. 11:28
23-28 자기를 위하여 자기의 공교함을 따라 만든 우상 (호 13, 1- 3)

〈호세아 13, 4- 8, 개역한글 구약성경 1268쪽, 찬송가 539장 새 488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찬송가 415장 새 292 주 없이 살 수 없네〉 

〈찬송가 539장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새찬송가 488장〉 

1. 이 몸에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뿐일세 
   우리 주 예수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2. 무섭게 바람 부는 밤 물결이 높이 설렐 때 
   우리 주 크신 은혜에 소망의 닻을 주리라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3. 세상에 믿던 모든 것 끊어질 그 날 되어도 
   구주의 언약 믿사와 내 소망 더욱 크리라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4. 바라던 천국 올라가 하나님 전에 뵈올 때 
   구주의 의를 힘입어 어엿이 앞에 서리라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찬송가 415장 주 없이 살 수 없네, 새찬송가 292장〉 

1. 주 없이 살 수 없네 죄인의 구주여 그 귀한 보배 피로 날 구속하시니 
   구주의 사랑으로 흘리신 보혈이 내 소망 나의 위로 내 영광됩니다

2. 주 없이 살 수 없네 나 혼자 못 서리 힘없고 부족하며 지혜도 없으니 
   내 주는 나의 생명 또 나의 힘이라 주님을 의지하여 지혜를 얻으리

3. 주 없이 살 수 없네 내 주는 아신다. 내 영의 깊은 간구 마음의 소원을 
   주밖에 나의 맘을 뉘알아 주리요 내 맘을 위로하사 평온케하시네

4. 주 없이 살 수 없네 세월이 흐르고 이 깊은 고독 속에 내 생명 끝나도 
   사나운 풍랑일 때 날 지켜주시고 내 곁에 계신 주님 늘 힘이 되시네 아멘


〈호세아 13, 4- 8, 개역한글 구약성경 1268쪽〉 


(호 13:4, 개역) 그러나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옴으로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나 밖에 네가 다른 신을 알지 말 것이라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호 13:5, 개역) 내가 광야 마른 땅에서 너를 권고하였거늘
(호 13:6, 개역) 저희가 먹이운 대로 배부르며 배부름으로 마음이 교만하며 이로 인하여 나를 잊었느니라
(호 13:7, 개역)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사자같고 길 가에서 기다리는 표범 같으니라
(호 13:8, 개역) 내가 새끼 잃은 곰 같이 저희를 만나 그 염통 꺼풀을 찢고 거기서 암사자 같이 저희를 삼키리라 들짐승이 저희를 찢으리라

(호 13:4, 현대어) [죄인에게는 하나님이 맹수와 같다]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데리고 나온 뒤부터 나는 언제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다. 너희에게는 나밖에 다른 하나님이 없고 나밖에 다른 해방자가 없다.
(호 13:5, 현대어) 나는 그 메마르고 목타는 광야에서 너희를 보살펴 주었다.
(호 13:6, 현대어) 그런데도 너희는 배가 차츰 불러 갈수록 나를 잊어버렸다.
(호 13:7, 현대어) 그러므로 나는 너희에게 사자같이 덤벼들고, 표범처럼 길가에 숨어서 덮칠 기회를 노리겠다.
(호 13:8, 현대어) 새끼들을 빼앗긴 암콤같이 달려들어 가슴통을 찢고 심장을 꺼내 놓겠다. 그러면 그 자리에서 개들이 그것을 뜯어먹고, 들짐승들이 갈기갈기 찢을 것이다.


먼저 오늘 본문과 연관된
다른 이라는 단어와 외에는 그리고 예외 라는 단어로 신약의 구절들이 생각나서
몇 개를 오늘 내용과 연관된 의미에서 신약에서만 한번 찾아봤습니다

(롬 13:8, 개역)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고전 2:2, 개역)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갈 6:14, 개역)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롬 3:21, 개역)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행 4:12, 개역)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고후 11:4, 개역)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갈 1:6, 개역)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갈 1:7, 개역)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갈 1:8, 개역)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 1:9, 개역)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그리고 소제목을 보니 왠일인가 싶어서 또 올려봅니다

(호 13:1, 현대어) [우상숭배로 나라가 망한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에브라임 지파가 하는 말은 온 이스라엘을 벌벌 떨게 만들었다. 그만큼 에브라임 지파는 이스라엘에서 지도적인 위치에 있었다. 그런 지파가 바알신을 섬기어 스스로 멸망을 불러들였다.
(호 13:4, 현대어) [죄인에게는 하나님이 맹수와 같다]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데리고 나온 뒤부터 나는 언제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다. 너희에게는 나밖에 다른 하나님이 없고 나밖에 다른 해방자가 없다.
(호 13:9, 현대어) [왕국의 종말] 오,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를 파멸시키겠다. 그러나 누가 너를 구해 줄 수 있느냐?
(호 13:12, 현대어) [피할 수 없는 멸망] 에브라임의 모든 죄악이 이제 벌을 받기 위해 추수되어 단으로 묶였고 저장이 끝났다.

(호 13:1, 쉬운) <이스라엘을 향한 마지막 말씀> 에브라임이 경건하게 말할 때 그는 이스라엘 가운데서 높임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이 바알을 섬겨 죄를 지었으니, 그들은 죽어야 한다.

표준새번역
호 13:1 [이스라엘에 대한 최후의 심판] 에브라임이 말만 하면 모두 떨었다. 온 이스라엘이 그렇게 에브라임을 우러러 보았는데, 바알 신을 섬겨 죄를 짓고 말았으므로, 이제 망하고 말았다.

개역개정한글
호13:1 <바알로 말미암아 범죄한 에브라임> 에브라임이 말을 하면 사람들이 떨었도다 그가 이스라엘 중에서 자기를 높이더니 바알로 말미암아 범죄하므로 망하였거늘

자 이렇게 올라와 있던데
아마 마지막 장인 호세아 14장은 호세아 선지자의 마지막 최후 변론으로 마무리가 되는 것으로 예상해 봅니다 앞으로 한달 후에 살펴보겠지만 말이지요

자 그런 의미에서 호세아 13장은
바로 이 새언약이 떳기에
두 언약의 한세트를 구성하기 위해서

마치 예수님의 등장 때문에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은 모두다 마귀의 세 가지 시험에 이미 넘어간 상태로 놓여지듯이
오늘 본문은 북이스라엘 뿐민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가
망해야만 하는 순으로 가야하는 죄 아래에 갇혀져야만 한다는 의미로써
그 죄 속에서 심판 속에서 

그 심판의 멸망 속에 뛰어드시는 예수님을 증거함에 있어서

나 외에는 다른 하나님이 없다를 이루시는 겁니다

율법의 완선이다는 거지요
이 사랑 외에는 다른 빚지지 말라고 말이죠

자 그런 의미에서 요나의 표적 외에는 다른 것을 보여줄게 없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마 12:39,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마 16:4, 개역)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시다
(눅 11:29, 개역)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그래서 오늘 본문 제목을 이런 의미가 담긴

나 외에 다른 하나님 없다 게임
요나의 표적 밖에 보일 표적 없는 게임
즉 십자가 게임 또는 인자 게임 또는 새언약 게임
천국게임 피용서 게임 또는 사랑의 빚 게임 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왜 게임이냐? 
하하하 오징어 게임을 봤거든요

주인공 이정재 곧 성기훈이가 왜 다시 참가했는가 라는 의문점으로 시작히는데
이병헌 곧 오영일이가 바로 그 의문점으로 참가하게 됩니다
그 반대로 오영수 배유가 했던 오일남은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어서 어릴적 게임의 그 재미를 위해 참가했지만 말이죠

아무튼 게임이란 곧 전투요 전쟁입니다
천국전쟁이라고 제목 붙일만 하지요
목숨 건 전쟁인 셈이지요

아무튼 이정재 성기훈이가 다시 참가한 모습은 마치 모세가 구원자로써 나서는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물론 허술하기 짝이 없는 모세인데
바로 그 점이 이병헌 오영일이가 이유를 몰라서 참가하는 거지요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통해서 맑스 본인이 유대인이기에
이 자본주의의 이 쓸데없는 의문의 반복 게임을 전쟁을 죽음을 멈출 방법은
부자 곧 자본가 부르조아
즉 이집트 왕자 모세 뿐인거지요
그 왕자리를 벗은 자 만이

다른 신으로부터 벗어나는 참된 신이다 라는 겁니다

자 그래서 자본주의 아래에 다 집어넣는 겁니다

부자 되세요 라고 경제사회 종교사회 정치사회 라는 마귀의 손에 다 장악당하도록 만드시는 겁니다

부자 아닌 자가 없는 거지요 즉 신이 된 겁니다 우상 말이지요
그 다른 신으로부터 게임을 벌리는 이름이
전쟁의 이름 나 여호와이다 라는 겁니다
그 전쟁을 벌리시는 자 만이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 일번 타자로 매 맞는 자가 바로 하나님의 집 이스라엘이였듯이 말이죠

이긴줄 알고 좋아라 하다가 그게 부자 아닙니까
알고보니 내가 이긴게 아니라 야곱이 이겼다 라고 좋아죽었는데
알고보니 야곱이 이겼는게 아니라 그 반대로
죽였었었었었었야 하는데 에라이 대신 죽지 뭐 라고 그 심판을 날려놓고도
대신 그 심판의 칼에 대신 맞음을 보고

비로소 우는 겁니다

이겼으나 울더라 라는 이 앞뒤 모순된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에 복종한 자
예수님의 영을 받은 총명한 자 이다는 겁니다

어찌할꼬 어찌할꼬 가슴을 치면서
비로소 자신이 지옥의 몸임을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라고
우는자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이 이스라엘이라는 본향의 이름을 대신 이루어서

저 다른 신
곧 부자
곧 우상
곧 애굽에사 빼내신 나 여호와 이다 라고

이스라엘 이라는 아들은 애굽에서 빠져나온자 이니까 말이죠
출애굽 한 자
그러나 이스라엘은 다 실패했지요
예수님만 성공 하셨습니다 그 분만이 이스라엘이고
아들 곧 이는 내 기뻐하는 자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라고 말이죠

(마 3:17, 개역)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마 17:5, 개역)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이제 이스라엘이라는 출애굽한 자로써의 구원은 물건너갔다 말이죠
여기에 마귀가 미쳐 날뛰는 반칙 부조리가 뭔고 하니 바로
이스라엘 아들이 아닌
이미 죽은태인 음녀 오홀리바 로써 여자가 남자를 뒤에서 안으리라를 이루시는 식으로
음녀인데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신부된 교회로써
광야에서 개유 당해서 섬김당해서 기뻐하심을 입음 당해서
이는 내 기뻐하는 자 곧 사랑하는 아들과의 결혼을 광야에서 펼치시겠디 라는
이 새언약을 이루시고자 하시는 겁니다
그러니 성경은 모조리 반칙 뿐입니다

(호 2:14, 개역) 그러므로 내가 저를 개유하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호 2:14, 새번역) "그러므로 이제 내가 그를 꾀어서, 빈 들로 데리고 가겠다. 거기에서 내가 그를 다정한 말로 달래 주겠다.
(호 2:14, 공동) 그러나 이제 나는 그를 꾀어내어 빈들로 나가 사랑을 속삭여주리라.
(호 2:14, 쉬운) 그러므로 이제 내가 그녀를 꾀어서 광야로 데려가 다정하게 말해 주겠다.
(호 2:14, 킹흠정)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녀를 끌어당겨 광야로 데리고 가서 그녀에게 위로하는 말로 이르고
(호 2:14, 한글킹)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녀를 꾀어 광야로 데려가서 그녀에게 위로하여 말하리라.
(호 2:14, 현대인) 그러므로 내가 그녀를 꾀어내어 광야로 데리고 가서 부드러운 말로 잘타이르고

(호 2:14, 현대어) [사막에서의 종교 개혁] 그러나 나는 다시 그녀에게 구애하여 사막으로 데리고 나가 다정한 말로 위로하리라.
(호 2:14, 가톨릭) 그러나 이제 나는 그 여자를 달래어 광야로 데리고 가서 다정히 말하리라.


억수로 깨끗하다 라고 자부했던 자들 마저도 그 근본 뿌리를 다 흔들어 버리는
이 십자가의 걸림돌로 인해서 다 넘어지도록 만드심은

이스라엘이 실패로 더 이상 아들의 기능을 못할때에
주님이 아들이 되셔서 다 이루시고

그 인자가 이제 누구 누구의 아들이라는 비밀로써
아부지를 살리는 화목제가 됨으로써 두 언약을 이루신다 말이죠
그러니 나의 나 된 것은 주님의 은혜로써

이 은혜가 뭔가? 바로 성령의 소욕인데
육의 소욕의 반대로써 하늘의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난 자식이

아부지를 살리는 방식으로써의 화목제
이것이 아들의 나라 전쟁 게임이다 말이죠

그 반대로 육의 소욕의 부활 곧 아들은
이스마엘을 낳은 땅의 계집종 종의 어미 하갈은
자신의 숙제로 이룬 것을 보상해 달라는 그 복수심
이 인간의 신념이 바로 인정받기 위해서 행한 그 일에 대한 복수심으로써

도리어 아들 자유하는 하늘의 예루살렘 여자가 낳은 인자를
죽일려고 하는 오로지 그거 하나의 신념 곧 살인의지로써의
땅에서의 자기 살아있음 나 존재한다에서 출발한 믿음이라는 살기로 인해

두 소욕 두 언약 두 게임 두 전쟁이 벌어지는 겁니다

오징어 게임의 이정재와 이병헌의 전쟁처럼 말이죠

이 두 이름의 전쟁입니다

애굽 신 재물이냐? 나 여호와냐?

이것이 신약에서는 돈 이지요 자본입니다
돈 때문에 살고 죽는 자본주의 속에서

주님은 이 무모한 전쟁을 벌리시는 겁니다
인자의 나라 전쟁 게임
곧 십자가의 전쟁 요나의 표적 전쟁 사랑의 빚 전쟁 말이지요

주께만 범죄한 자 전쟁입니다
사라의 빚 외에는 아무 빚도지지 않는 전쟁 말이지요

우리는 이미 호세아 13장 시작 구절을 몇주전에 살펴봄으로써

우리 자체가 이미 우상이 된 겁니다
나 자체가 이미 마음이 부자 되기로 가득차 있기 때문에
앗수르의 영광을 사모함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바로 그 우상이라는 다른 신과 전쟁을 펼치시러
출애굽사건을 곧 전쟁을 구원전쟁 천국전쟁 아들의 나라 전쟁을 벌리신다 라는 자체가
바로 기쁜소식이다는 거죠

이미 죄 아래 갇혀있던 기생 라합이 이 전쟁을 벌리신다 라는 자체가
기생 라합에게서 만큼은 구원이기에
여호와의 이름만 듣고도 간담이 녹아서 40년 동안 벌벌벌 떨었다 라는 겁니다
이게 기쁜소식 기쁜전쟁 복음 전쟁인 겁니다

나를 우일하게 우상으로부터
나 라는 허구 허상 지옥의 몸 사망의 몸 화로다 망하게 된 몸으로써부터 빼내시는
나 라는 다른 신으로부터 빼내시는 유일한 분이시다 라고 말이죠

(신 8:16, 개역)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신 8:14, 개역)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신 8:15, 개역)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물을 굳은 반석에서 내셨으며
(신 8:16, 개역)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신 8:17, 개역)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신 8:18, 개역)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신 8:19, 개역)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좇아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정녕히 멸망할 것이라
(신 8:20, 개역) 여호와께서 너희의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 같이 너희도 멸망하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치 아니함이니라


종 되었던 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니까 출애굽기와 신명기에서 아래와 같이 나옵니다

(출 20:2, 개역)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신 5:6, 개역)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라
(신 6:12, 개역)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
(신 7:8, 개역)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신명기 8장과 비슷한 내용으로 우리가 잘 아는 출애굽기 20장 십계명이 나오지요

(출 20:1, 개역)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출 20:2, 개역)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출 20:3, 개역)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출 20:4, 개역)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출 20:5, 개역)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자 신명기 계명을 먼저 올리고 출애굽기 20장의 십계명 첫부분을 올렸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물론 성경에서는 출애굽기가 당연히 먼저고요
제가 이 글에서 신명기를 먼저 올린 이유는
네 맞아요 출애굽기 계명과 신명기 계명은 차이가 난다 라는 겁니다

출애굽기 계명은 계명을 지켜라 약속대로 하면 복 준다 이고
신명기 계명은 성경 전체에서도 언급되듯이 애굽 탈출에 실패 한 뒤에 주어지는 겁니다
즉 인간 쪽에서는 그 어떤 수단과 방법을 다 사용해도 이 간극을 좁힐수 없는
이미 실패한 몸이 되어버렸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 쪽에서 라는 표현보다 이제는 죄인으로써 라는 표현이 신명기에서는 더 적합한 거지요 그러니 율법은 죄 아래 가두기 위해서 가입이 된 결과를 보여주는 겁니다
원인을 백날 따져도 소용이 없어요 결과가 과거를 삭제 시켜버리니까 말이지요
원인이 없어져 버린 겁니다

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인간이 아닌 죄인
곧 애굽 탈출에 실패헸음에도 불구하고 신명기 새로운 계명이 주어졌다 라는 것은
아 패자부활전이구나 가 아니라

기회를 다시 한 번 주는게 아니라
아예 이제는 기회 따위는 없는 겁니다 끝났응께

오징어 게임 투에서 참가자 455명 그 중에 넘버 1번 오일영 욥기로 따지면 마귀죠
이 전체 참가자는 죽은 겁니다 
이미 다 죽여놓고서 산 사람 모세와 같은이 구원자를 보내는 겁니다 그게 성기훈 역을 맡은 이정재인 거지요 자본주의 하면 마르크스를 생각하고 그 수렁텅이를 벗어나는 길은
모세 라는 애굽 왕자가 애굽의 영광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능욕을 받고자 믿음으로 광야에 갔듯이
예수님 또한 하늘 영광 버리고 죄인으로 오셔서 죽기까지 섬기시는
이 화목제물 되심이 아니면 자본주의에서 빠져나갈 방법이 없는 거지요
우상 곧 앗수르의 영광 
에덴동산 같았더라 라는 애굽의 종 됨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사망의 종노릇에서 은혜가 왕노릇함을 증거해야 할 기능을
이스라엘로써 본향으로써 증거하도록 되어 있는 중간에 낑긴 욥처럼 미끼로 작용이 되는 겁니다

아무튼 신명기는 이미 애굽 탈출에 실패한 죄인 만들어서
새언약으로써 계명을 말씀하시는 이유는
분명 실패했기 때문에 게임 오바 인
이미 죽은 목숨인 455명 화로다 화로다 이미 망한 자 로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건지랴 그래서 애굽의 종 되었던 너희를 끄집어 낸 여호와를

그 여호와가 누군지 창조주가 누군지 이미 다 잊어버린
자기를 위한 따로 자기 손으로 만든 여호와 우상을 깨뜨리면서
오늘 본문 호세아 때에 등장하시는 겁니다
첫맹세를 첫언약 첫사랑을 가지고서 말이죠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은 이미 언약 다 잊어버리고
우상과 하나님을 썩어버린 그 혼합종교에 빠진
오늘날 2025년 새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돈과 하나님을 썩어버란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한 예수 하나님 성령으로 만들어버렸가에
다 무당종교인 겁니다 거 보세요 무당 통령이 나라 말아먹잖아요 그 뒤에
한국기독교가 꼭두각시처럼 뒤에서 조종했구요
완전히 한국 기독교는 무당일 뿐입니다
사라졌던 타로 무당 점집이 같은 직종군으로써 우후죽순으로 퍼진 이유도
한국기독교가 돈에 미친 무당종교가 되었기 때문이거든요
원래 다 실패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상기시키시는 겁니다 출애굽기 계명 실패를 거쳐서
신명기 계명을 그 첫맹세를 다시 외치십니다
분명히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도 말이지요
결국 이스라엘이 두 패로 갈라지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처럼
정확하게 개인 적으로는 아니지만 집단적으로 그렇게 둘로 나누어 지듯이

남은자와 혈통적 이스라엘로 갈라지는 겁니다
이건 정확한 개인적은 구분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집단으로써의 남은자는 형성 되지를 않으니까 말이죠
딱 한 사람만 남은자가 되어도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써 눈에 보이지 않는 소망인 그리스도의 몸이니까요
개인구원 따위는 애초부터 없었던 겁니다

결국 축복이라는 개념 조차도 개인 축복이 없다 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구원도 축복도 다 그렇게 개인화 곧 우상화 시키면서 받아들입니다
자기를 위한 축복이 아니면 축복으로 쳐 줄수가 없는
오로지 자신의 가치를 가치있게 만드는 것만을 축복이라는 둥 구원이라는 둥 으로 보는 거지요

남이야 죽든 말든 지 혼자 잘 살면 된다 라는 겁니다 그게 딴나라당 빨갱이들 아닙니까
잔칫집 유지할려고 늘 남의 목숨을 빼앗는 것만 생각하는 겁니다
맨날 누워서 침뱉고 자기 눈을 자기 스스로 맨날 찔러요
그래놓고 남 탓 하지요

왜? 축복 못 받을까봐 불안하거든요
그 불안이 이미 영혼을 잠식한 겁니다

아무튼 출애굽기에서 주신 계명에 대한 실패는
신명기에서 아예 미래까지 단정 시켜서 주신 계명이기에
디시 기회를 주는게 아니라
아무리 광야라는 척박한 환경에서 주어진 계명이라 실패할 수 밖에 없지만
이제 약송의 땅에서는 실패치 않도록 하기 위한 신명기 계명이 아니라
그 반대로 더 더 더 깊게 더 더더 그 실패를 더더더 구체화 더 확대 생산 재생산 하도록
아예 규정해 버리시는 미래적인 요소까지 다 포함해서 계명을 주시는 겁니다
뭐 약속의 땅을 더럽히는 것은 아예 당연하고요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드는 것처럼 아예 당연하고요
하나님의 이름 마저도 더립히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결국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잖아요
그 내용까지 다 포함한 신명기 계명인 겁니다
부모 잡아먹고 자식 잡아먹고 하나님도 잡아먹는
내 살과 피를 먹어라
나는 그런 식인종 아닙니다 아냐 너는 식인종 맞아
죄인 맞고 환자 맞기 때문에
내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나와 상관이 없어 라고 하시는 것도
이 신명기 율법을 완성하시고자 하시는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의 폭력 따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뻔데기 앞에 주름입니다
사랑은 그 지옥의 권세보다 더 질투와 시기로 강렬하게 타 올라서
모든 죽음을 모든 사망권세를 다 불태워버리는

이 저주를 새해 2025년에는 많이 받으시는
새해 심판 많이 받으세요 ㅋㅋㅋㅋ

그것이 바로 광야입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봤자
아아 아름다운 우리강산 대한민죽 백날 수라가 노래 불러봤자
심심하면 계엄 걸어서 지옥의 땅으로 만들기는 맹 마찬가지입니다
줘도 못 먹는다 말이지요

이 광야의 속성을 약속의 땅에서도 못 버리는 이 사망의 몸을 더더욱 구체화 시키는 것이
바로 여호와의 이름 이다 라는 겁니다
그렇게 우는 자를 찾는 겁니다
정직한 영이 없어서 우는
다윗이 백날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본들
그것도 약속의 땅 안에 있는 이스라엘나라의 왕 말이지요
광야 아무것도 없는 광야의 왕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젖과 꿀이 흘러넘쳐도 말이지요
축복은커녕 저주로 가득한 지옥으로 만들어버리는 그 재주를 버릴수가 없는
도리어 더더더 구체화 시키는 것이 율법이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심판 받아 마땅한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전으로 왜 축복하시는 것일까요
왜 살려주시는 것일까요?
그래서 이것을 한번 그 경과 격었던 일들을 한번 순차적으로 정리해 보자 말이죠

그래서 1 첫번째로 우리는 인간으로써 피조물 답게 하느님이 보우하사 인도하심으로 우리나라 만세가 아니라
그래서 2 인간으로써 피조물 답게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3 그 언약대로 살면 축복 받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4 그 축복을 받다 보니 받자 마자 마음이 높아지더라 가 아니라가 아니라 이건 맞고
그래서 5 그 마음이 높아지다 보니 축복은커녕 저주를 받게 되더라가 맞습니다 맞고요로

결과가 나타나더라 말이죠

이것이 이미 언약대로 제대로 된 코스를 밟은 결과이다 라는 겁니다

백날 아니야 우리가 인간으로써 실수한 것 우리가 수정하고 보완하고 잘못을 고치면 될 것이야 라고 여기는 집단이 바로 성화혼자들 아닙니까 개혁주의자들 진보나 민주단 이 놈들도 어마치 무당놈들인데 천주교 가면을 써 본들 천주교가 바로 우상숭배집단 아니냐 말이죠
비행기 날라가 떨어져 죽어라 라고 기도하던 놈들 아닙니까 엉뚱한 자들 잡아죽이잖아요
살자를 죽이고 죽어야 할 자는 못 죽이면서 말이죠 이게 무당들의 특징 아니냐 말이죠
사제 라는 놈들이 얼마나 할짓이 없는 목사놈들이랑 다를바 없이 무당 짓만 하고 있으니 원

언약대로 제대로 코스를 밟게 하신 것인데 자꾸 받아들이지 못하고
반발하는 이유는
자꾸 자신을 인간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대로 다시 수정을 하면 이해가 되는지 아니면 더더더 갈라지는 간극이 벌어져
그 갭을 좁히기는커녕 더 벌려지는 식으로 인정 못하겠다 라고 나오든지 할 겁니다

자꾸 위에서 인간으로써 라고 일부러 집어넣었는데
인간으로써 라고 집어넣어도 그 의문의 반복은 마침이 되지 않습니다
결과가 없어요
원인을 인간으로써의 나를 의식하니까 말이죠 그게 바로 나 여호와 외에 다른 신 아라고 주장하시는 언약아 훅 수술칼을 들이내밀면서 암덩어리 찾아나서는 수술칼이 나를 찢고 침범하는
천국말씀게임 곧 전쟁입니다 천국의 침략 침노인 거지요

자 저 노선을 인간으로써가 아닌 우상이 아닌
모세가 찾아내고자 했던 죄인
구원자는 죄인에게만 딱 맞는
예수님은 환자 에게만 딱 맞는 이름으로써의 의사기능이기에
건강한 자 
의인
포로된 적이 없거늘 니가 뭔데 아브라함 자손인 자유하는 자를 구출 시켜준다는 등 헛소리를 하느냐 라고 하는 자들에게는
쓸모 없는 자로써

저 코스노선을 신명기 율법은 이렇게 바꿔버립니다

그래서 1 첫 번째 죄인으로써 창녀인 어미와 포주인 아비에게서 버려진 핏덩어리 버려진 자로써 핏덩어리야 제발 살라 라고 언약이 찾아와 주었고 우연히 길 가다가 버려진 핏덩어리 시체를 보고 지나쳐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불쌍히 여겨서 말이지요
그게 애굽의 종 되었던 너희 죄인들이다 라는 겁니다

2 두 번째 그 핏덩어리 죄인에게 죽은자에게 언약의 말씀
생명의 말씀으로 약속을 하시고 말이죠 언약을 맺었다 말이죠 첫 맹세
너거들은 다 잊어버렸지만 생각도 안 나지겠지만

(겔 16:60, 개역) 그러나 내가 너의 어렸을 때에 너와 세운 언약을 기억하고 너와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라

(겔 16:1, 개역)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겔 16:2, 개역) 인자야 예루살렘으로 그 가증한 일을 알게 하여
(겔 16:3, 개역)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네 근본과 난 땅은 가나안이요 네 아비는 아모리 사람이요 네 어미는 헷사람이라
(겔 16:4, 개역) 너의 난 것을 말하건대 네가 날 때에 네 배꼽줄을 자르지 아니하였고 너를 물로 씻어 정결케 하지 아니하였고 네게 소금을 뿌리지 아니하였고 너를 강보에 싸지도 아니하였나니
(겔 16:5, 개역) 너를 돌아 보아 이 중에 한 가지라도 네게 행하여 너를 긍휼히 여긴 자가 없었으므로 네가 나던 날에 네 몸이 꺼린바 되어 네가 들에 버리웠었느니라
(겔 16:6, 개역) 내가 네 곁으로 지나 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하고
(겔 16:7, 개역) 내가 너로 들의 풀 같이 많게 하였더니 네가 크게 자라고 심히 아름다우며 유방이 뚜렷하고 네 머리털이 자랐으나 네가 오히려 벌거벗은 적신이더라
(겔 16:8, 개역) 내가 네 곁으로 지나며 보니 네 때가 사랑스러운 때라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우고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로 내게 속하게 하였었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 16:9, 개역) 내가 물로 너를 씻겨서 네 피를 없이 하며 네게 기름을 바르고
(겔 16:10, 개역) 수 놓은 옷을 입히고 물돼지 가죽신을 신기고 가는 베로 띠우고 명주로 덧입히고
(겔 16:11, 개역) 패물을 채우고 팔고리를 손목에 끼우고 사슬을 목에 드리우고
(겔 16:12, 개역) 코고리를 코에 달고 귀고리를 귀에 달고 화려한 면류관을 머리에 씌웠나니
(겔 16:13, 개역) 이와 같이 네가 금, 은으로 장식하고 가는 베와 명주와 수놓은 것을 입으며 또 고운 밀가루와 꿀과 기름을 먹음으로 극히 곱고 형통하여 왕후의 지위에 나아갔느니라
(겔 16:14, 개역) 네 화려함을 인하여 네 명성이 이방인 중에 퍼졌음은 내가 네게 입힌 영화로 네 화려함이 온전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 16:15, 개역) 그러나 네가 네 화려함을 믿고 네 명성을 인하여 행음하되 무릇 지나가는 자면 더불어 음란을 많이 행하므로 네 몸이 그들의 것이 되도다
(겔 16:16, 개역) 네가 네 의복을 취하여 색스러운 산당을 너를 위하여 만들고 거기서 행음하였나니 이런 일은 전무후무하니라

(겔 16:59, 개역)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가 맹세를 멸시하여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내가 네 행한 대로 네게 행하리라
(겔 16:60, 개역) 그러나 내가 너의 어렸을 때에 너와 세운 언약을 기억하고 너와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라

이스라엘 전체 역사를 한 마디로 표현한 것이 바로 에스겔 16장이다 말이죠
인간의 역사는 이렇다 라는 겁니다
아니 반드시 인간의 역사는 반드시 이렇게 되도록 만드시겠다 라는 것이 언약이다 라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약을 하시는 이유가 뭐냐 말이죠
니 어릴적 핏덩어리 였을 때 맺은 언약 기억도 안나는 다 잊어버린 언약 말이죠

그래서 3 세 번째로 핏덩어리야 죄인아 제발 살라 라고 해서
축복 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복의 근원 되신 약속 덕분에
맹세 덕분에 어릴적에 맺은 기억도 안나고 다 잊어버린 그 약속 덕분에
복의 근원이 주저이게 되고

그래서 4 네 번째 그 축복이 주어줘도 받아먹지도 못하는
죄인이 죄 값을 할 수 벆애 없도록 바로 축복 받자 마자 마음이 교만하게 되고

그래서 5 다섯 번째로 마음이 교만해진 죄인으로써 죄 값을 치르게 되는 저주를 반드시 받도록 되어 있다 이것이 언약대로 진행되는 코스이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위의 다섯 코스는 인간적으로 받아들여서 수정하면 된다
아 그 부분 잘못되었다 이거지요 그래 고 부분만 정신바짝 차려서 반드시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나오는 놈들이 바로 마귀들 그것도 율법을 쥐고서 말이죠
그게 오늘날 교회를 강도의 소굴로 만드는 바리새인 독사의 자식들과 같은
광명한 천사 노릇하는 오늘날 목사들이다 말이죠
성하론자 개혁주의자 다 그래요

수정하면 된다 라고 가능성을 제시하잖아요
단절성 그 간극을 좁힐 방법이 없다 라고
다윗언약 새언약을 외쳐야 하는데

모세 언약만으로 충분하다 우리가 알아서 수정할 수 있다 라고 우기는 겁니다

아래의 다섯코스인 죄인으로써 다루신다 라는 것을 모르는 겁니다
이해가 될 수가 없어요
이게 비밀이요 비밀이니까 납득이 안되고 일단 말이 안된다 말이죠
아무리 역사가 그것을 증명해 본들 역사는 까짓꺼 수정하면 되지

수정은커녕 그 의문의 반복을 멈출 방법이 없음을 몰라요
역사 속에 산다 라고 자기만의 수정 시간
자기만의 수정 공간 그리고 자기 몸이 있다 라고 우겨요
그렇게 자꾸 인간이라고 우기는 겁니다
정작 언약은 너는 인간이 아니라 다른 신 곧 우상이라고
그 수정 시도 자체가 우상이기 때문에 하겠다 라고 보는 겁니다

죄 아래 가두었다니깐요

주님과 마귀의 전쟁인데
왜 자기의 전쟁으로 게임으로 오징어 게임 하느냐 말이죠
성기훈이가 하는 말 마다 대적하고 송사하고 정죄 밖에 하는 것 뿐이더라 말이죠
누가 감사합니까 돈이 우수수 떨어지는데 다 잊어버리지
아무도 살려줘서 고맙다는 소라를 못 해요
성기훈의 살과 피를 뜯어먹어야만 살아나도
여전히 반복 되는 겁니다

자본이라는 돈
우상
다른 신과 싸우거든요
이해 해 달라 제발 믿어달라 납득 시키고 설득 시키는 것
모세는 애초부터 포기했습니다
그래서 완악한 수건 그 광채나는 수건을 더더욱 못 벗는 겁니다
그것이 저들 마귀의 작전이다 라고 성기훈이가 저꾸 외치잖아요
저들과 다를바 없다 라고

네 모세도 애굽왕과 다를바 없이 
때려죽어도 완악한 수건 못 벗는 겁니다
그 완악한 수건 못 벗는 저주
주님이 벗겨주시는

어서 죽어주소서를 못 이루면
모세도 지옥이요 그 돈이라는 우수수수수 떨어지는
커다란 돈의 압력에 깔려서 벗어날수가 없는 겁니다
평생 만져볼 가능성이 있는 돈이면 쳐다도 안 봅니다
20억? 콧 방귀 낍니다 465억 이면 빚진자에게 엄청난 축복으로 여길 겁니다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커다란 우상을 보고 압도 당해서 뿅가서
제사장 우리야에게 어서 예루살렘에 저 우상을 보고 그대로 따라 지으라 라고 했겠냐 말이죠
못 벗어나는 겁니다

그러나 언약은 그 465억도 돈이냐 라고 일만달란트 곧 465조도 아닌 경도 아닌
우리나라 최고의 단위는 뭐죠 네 맞습니다 무한대입니다
숫자를 세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단위로써의 16만년을 살아도 못 갚는 빚진자 만드시겠다 라는 겁니다

네 마이너스 통장입니다 이게 누가 축복으로 보이겠습니까?
그 동안 내 살과 피를 뜯어먹고 마셔서 절대수치를 가려준 그 대신 갚은 값이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좌인을 부르러 오셨다 라고
부자 안될 거야 라는 겸손한 자 찾으시러 온게 아니라
교만하기 짝이 없는 자 찾으시러 왔다 라는 겁니다
세 번 넉넉히 부인한 자
그게 바로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

이것을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어서 죄인 죄인 괴수 괴수 라고 표현한게 아닌데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어서 예의바르게 표현했다 라고 우기지만
그것도 한 두 번 이어야지
목사 본인들 부터가 짜증을 내면서 더 이상 죄 죄 죄 라고 하지 마라 라고 합니다
본색이 드러나는 거지요 약속의 말씀이 속을 박박 긁어대니까 말이죠
그래서 죄 죄 죄 고만 캐라 마이 무따 아이가
이제 막살기 고만 카고
제대로 바르게 살기 라고 하자 라고 바로 바로 교만해 지는 겁니다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새언약 다윗언약 필요 없다
다윗 그 더러운 언약 남싸스러운 수치스러운 부끄러운 언약
남의 아내 강간 하고
우리야 장군 죽이고
아이까지 병들어 죽게 만드는 그 부끄러운 언약
말라꼬 따르냐
거리끼는 걸람돌 밖에 없는데
뭐 하나 제대로 된 거 하나 없는데


바로 그겁니다 새언약은 바로 그 절대저주 절대수치를 대신 당함으로써
너거들 끊어짐은 끊어짐 축에도 못 든다 라고
절대죽음으로 가려주신

그가 매 맞음으로 징계를 당함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도록 하신다 라는
이 십자가게임을 그 사랑의 전쟁을 다 이루시고자 하심이다 말이죠
화목제 주께서 친히 손수 직접 마련하신 게임
화목제 화목제 화목제 어 아하 아하

오징어 게임은 게임 축에도 못 듭니다
전쟁 축에도 못 들어요
죽음 축에도 못 드는 겁니다

진정한 절대저주의 죽음 그 절대심판은
십자가 게임 뿐입니다

십자가 십자가 십자가 십자가 어 아하 아하 라고
술게임 아파트 하지 마시고
십자가 게임 하세요
십자가 지뢰를 밟으면서 어차피 터질 내 육체가 내 우상됨을 날려버리시는
그 통쾌함을 누리시는 것이
십자가 피용서의 증상입니다
머리 위로 돈 다발이 아닌 456억도 아닌 456조도 아닌 456경도 아닌
매초 마다 7에 70번의 용서의 피가 마구 마귀 떨어지니까
아무리 나의 죄를 찾고자 아무리 뒤져도 
휴지통에 넣은 것 다시 복구 시켜도
찾을 수가 없게
흰 눈과 같이 희게 아무리 퍼내고 퍼내고 퍼내어도
카파르 덮어버린 그 카페트를 아무리 들추어 내어도
그 먹 보다 더 검은 죄를 찾을 수가 없어요
오히려 지금 마구 마구 쏟아져 나오는 검은 죄악이 감당이 안 될 정도로

간음죄 살인죄 인구조사죄 악령까지 인구조사죄가 감당이 안 되게 터져나와도
이 언약은 그것 마저도 말도 안되게 말도 안되게
나오는 족족 스멀 스멀 올라오는 그 지옥의 냄새 마저도
나오는 족족 흰 눈과 같이 희게
붉은 피로 죄 씻음 받게

그래야 천한 계집이 왕비가 되게 하시는
음부의 권세가 아기지 못하는 신부된 교회를 보고

세상이 견디지 못하고 격동하고 진동하게 만드는
마귀 보란 듯이 펼치시는

이 사랑이 이 화목제 게임이 나 보다 옳았다 라고

나의 오징어 게임 중독은 충독 축에도 못 든다 라고

예수님의 이 십자가 중독 게임 앞에서 명함도 못 꺼낸다 라는 사실에

죄인만이
환자만이

의사가 고맙고 이 십자가 전쟁이
십자가의 피 흘리심의 게임이 고맙지

의인은 전혀 고맙지 않아서
도리어 거리끼는 걸림돌이 되어서 다 넘어지게 만드는
이 십자가 게임에 다 넘어지는 겁니다

불뱀에게 물려서 원망해서 부자가 되어서 마음이 높아져 교만해져서 지옥가는게 아니라

십자가를 쳐다보겠끔 만드시고자 일부러 원망할 수 밖에 없는 길로 가게 만드시고
불뱀에게 물려 죽게 하심으로써

비로소 환자
비로소 원망한 자
비로소 부자처럼 교만하여서 마음이 높아지자 마자 쭐꾸덕 미끄러져서 쫄딱 망하는 자 만들이서

이제야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게 함으로써

네 맞아요 부자 욥이지요 하루 아침에 다 죽여버리잖아요
마누라 까지 에라이 하나님 욕하고 디졌뿌라 라고 할 정도로
얼마나 처참한지

그 처참함 조차도 명함 못 내미는
은혜의 왕 노릇 십자가 앞에
화목제 앞에

항복 하고 생일 저주
잿더마 뒤짚어 머리에 씌우고
화로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구나

이 부정한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면서

십자가 영광을 쳐다봤으니
내 눈은 타 죽어 마땅하구나

내 태는 죽은 태가 되었구나

그런데 그 죽은 태가 십자가의 태를 살려주심을 받는 불쌍히 여겨주심을 당하게 되니까

그 저주의 몸이 죽음 태가
복의 태가 되는 말도 안되는

잉태치 못한 자여 기뻐하라
하늘에서 자식이 많음이라 
젖을 물려본적도 없는 자여

(사 54:1, 개역) 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구로치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갈 4:27, 개역) 기록된 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어찌 혼자 인데 남자가 없는데
무슨 수로?

오하려 남자 있는 부자가 된 여인은 하나도 없게 되더라 라는 이 말도 안되는 일을

언약은
이 십자가게임은
화목제전쟁은
반드시 이 코스대로 밀어붙이신다 라는 겁니다

우리는 내 좋으라고 하는 그저 저 위의 코스인 삼분의 일만 그 긍정적인 것만 챙길려고 하는데

언약의 정신인 십자가는 우리를 그 발로 멀찍이 밀어내는 그 삼분의 2 그 부정적인 것 조차도
다 먹도록 하고 그 코스대로 다 밟도록 해서

이 늘 부자를 꿈꾸는 
내 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그 마음이 높아진 그 교만을 통해서
바로 축복을 받자 마자 바로 저주를 당하는 그 저주 속에서

내가 당하는 저주는 저주 축에도 못 든다 라고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바라봄으로써
이 땅이 내 본향이 아니요
본향이 나에게 제대로 된 절대저주를 보여주심으로써
그 십자가가 낳은 자로써
새롭게 태어난 주께만 범죄한 자로써

십자가 작살을 꽂아서
세상 미말 끝 종말에까지 구경꺼리로 만들어서
이 십자가만 바라보도록 낮추시고 목이 곧은 백성 목 뿌라시면서 까지

끝까지 사랑하신다 라고
이 언약대로만 밀어붙이신다 라는 사실에
우리는 이 죽음 보다 강한 사랑을 누리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사랑 보다 더 강한 것이 없기에 ~~~~~~~~~~

이 사랑이 아니면 죽음도 못 넘는 것들에게 다 넘어가기에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그저 꽹과리에게 다 넘어갈 뿐입니다

울리는 오징어게임 뚜뚜뚜 뚜뚜뚜 뚜뚜 뚜뚜 뚜 뚜 뚜 피리 소리에 다 넘어가는 겁니다
이미 넘어간 상태인 좀비이지만

주님은 그런 죄인 그 잃어버린 자를 지금도 찾아 헤메이시는 겁니다
우리도 그 성령의 은사로 나 같은 죄인
나 처럼 용서 받은 자를 찾는 겁니다
남을 7번 용서한 자는 대적하고 송사하고 정죄하는 자 일뿐이고

성령의 은사 아니면
의롭게 하심 아니면
믿음 떨어지지 말라고 친히 간구하신 자 아니면

즉 죄인 중의 괴수가 아니면
이 7에 70번의 용서를 오히려 대적 송사 정죄할 겁니다

이 화목제 게임 참가자 수집요원 공유의 기능이 바로 우리가 받은 사명입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가 아니라 말이죠

뿌뿌뿌 가 피리 소리가 아니라

피피피 피피피 피피피피 피 피 피

아파트 가 아니라
피흘림 피흘림 피흘림 피흘림 억 으악 으악

이 십자가의 전쟁을 밀어붙이시는 겁니다

그래야 문둥병자 9명의 유대인처럼 예루살렘 성전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는

단 한명의 남은자 이방인 문둥병자가 단 삼일만에 절대저주 절대죽음을 당하시고 다시 사신
진짜 참성전 걸어다니는 성전인 예수 안에 들어가도록 하신 그 섬기심을 당하는 겁니다

이렇게 유대인들은 율법의 행함을 쫓았지만 의에 이르지 못했고
이방인은 예수님의 믿음으로 인해서 456억도 아닌 조도 아닌 456경
제가 들어본 단위는 그저 경이 그대로 체감으로 느껴지듯이
너무 높아도 아예 감이 안오니까 말이지요
그것도 매일 매초 순간 마다 하늘에서 우수수수수 십자가의 피 용서가 떨어지는 겁니다

이건 오징어게임 기준의 돈이고
지금 현재 세상에서 통용되고 있는 돈을 다 모으면 100조 달라가 된다고 합니다
사 딸라 김영철 이랑 비교도 안되지요 아마 미국 달러 기준인 것 같습니다
지금 검색하니 나오네요 잠바브웨는 지폐 한 장이 100조 달러 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가치를 미국 달러로 하면 50달러 밖에 안된다고 하네요
그 다음 유명한 지폐 한 장이 일천억 달러 인데 달걀 3개 밖에 못 산다고 하네요

100조 달러 곱하기 1470원 (오늘 12월 31일 기준) 하면 147000조 14경 7천조
여기에다가 곱하기 70 ㅋㅋㅋㅋ  10290000 1 해가 되네요
우와 해 까지 뜨네 해아래 새것이 없넹 ㅋㅋㅋ
적어도 나 살아있다 생명있다 라고 우길려며는 1 해가 있어야 생명이 있다 라고 우길수 있지
백날 나 살아있다 라고 우겨도 이미 벌써 죽은 시체 좀비일 뿐이다는 겁니다
뭘 해도 죄요 뭘 해도 죽음이요 뭘 해도 저주일 뿐입니다

결국 세상의 돈 다 모으면 그거 심판 죽음 저주인 일곱이 됩니다
그 일곱에 칠십을 곱하면 절대저주인 십자가의 죽음인 거지요
어딜 뻔데기 앞에 주름 세 네 가닥 내미느냐 라고 말이죠
족히 비교도 안되는 겁니다
손가락으로 일곱을 셀 자격 조차도 애초부터 없었던 겁니다

이런 죄 값을 무슨 수로 치를수 있겠습니까?
오징어게임 7에 70번 매번 1등을 해서 살아남아도 소용없는 이미 죽은 사망의 몸입니다

그렇게 오징어게임 보다 더한 십자가의 죽음이 매일 매일 새롭게
날마다 퍼부어 지는 겁니다

이 얼마나 기쁜소식 입니까

아나 기쁘고는 못 배기는 빚진자가 된 겁니다
죄인 중의 괴수가 된 겁니다

이 십자가의 새언약으로 밀어붙이심 덕분에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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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 저주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바울의 큰 근심과 끝없는 고통) (롬 9, 1- 5)
2025. 1.19.

누가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롬 8,35-39)
로마서 2022 2024. 12. 27. 18:31
22-051 누가 그리스도의 사랑(화목제)에서 끊으리요 (롬 8,35-39)

〈롬 9, 1- 5, 개역한글, 신약성경 251쪽, 찬송가 420장 새 372 그 누가 나의 괴롬 알며, 찬송가 431장 새 549 내 주여 뜻대로〉

새찬송가 382장(통432)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새찬송가 372장(통420) 그 누가 나의 괴롬 알며
새찬송가 549장(통431) 내 주여 뜻대로
새찬송가 283장(통183) 나 속죄함을 받은 후
새찬송가 337장(통363)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새찬송가 330장(통370) 어둔 밤 쉬 되리니
새찬송가 365장(통484) 마음속에 근심 있는 사람
귀하신 주의 이름은 (찬 81)
샤론의 꽃 예수 (찬 89)
예수는 나의 힘이요 (찬 93)
구주를 생각만 해도 (찬 85)
새찬송가 134장(통84) 나 어느 날 꿈속을 헤매며


〈찬송가 115장 기쁘다 구주 오셨네〉 

(롬 9:1, 개역)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롬 9:2, 개역) [1절과 같음]
(롬 9:3, 개역)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롬 9:4, 개역) 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롬 9:5, 개역)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롬 9:1, 새번역)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내 양심이 성령을 힘입어서 이것을 증언하여 줍니다.
(롬 9:2, 새번역) 나에게는 큰 슬픔이 있고, 내 마음에는 끊임없는 고통이 있습니다.
(롬 9:3, 새번역) 나는, 육신으로 ㉠내 동족인 내 겨레를 위하는 일이면, 내가 저주를 받아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 ㉠그, '내 형제들'
(롬 9:4, 새번역) ㉡내 동족은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이 있고, 하나님을 모시는 영광이 있고, 하나님과 맺은 언약들이 있고, 율법이 있고, 예배가 있고, 하나님의 약속들이 있습니다. / ㉡그, '내 형제들' ㉢그, '아들의 신분' 또는 '아들 됨'
(롬 9:5, 새번역) 족장들은 그들의 조상이요, ㉣그리스도도 육신으로는 그들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는 만물 위에 계시며 영원토록 찬송을 받으실 하나님이십니다. 아멘. / ㉣또는 '메시아'


로마서 9장 3절이 문해력이 떨어지는 저로써는 무슨 말인가 싶어서
다른 번역을 살펴봤습니다

(롬 9:3, 개역)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롬 9:3, 새번역) 나는, 육신으로 ㉠내 동족인 내 겨레를 위하는 일이면, 내가 저주를 받아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 ㉠그, '내 형제들'
(롬 9:3, 공동) 나는 혈육을 같이하는 내 동족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갈지라도 조금도 한이 없겠습니다.
(롬 9:3, 쉬운) 나는 내 동포, 내 동족들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로부터 끊어져도 좋다는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롬 9:3, 킹흠정) 육체에 따른 내 형제, 내 친족을 위해서라면 차라리 내 자신이 그리스도로부터 저주받기를 바랄 수도 있으리니
(롬 9:3, 한글킹) 육신에 따른 내 형제들, 내 동족을 위해서라면 차라리 내 자신이 그리스도로부터 저주받기를 바랐노라.
(롬 9:3, 현대인) 만일 내 동족이 구원만 얻는다면 내가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롬 9:3, 현대어) (1절과 같음)

어 현대어는 2절에 나오겠네요 그래서 2절을 검색했는데
실수로 앞의 3을 못 지우고 오타를 쳐서 32절을 검색결과로 보게 되었는데

(롬 9:32, 개역)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롬 9:32, 현대어) 왜 그렇습니까? 믿음으로 매달리지 않고, 단지 율법을 지키는 선량한 인간만 되면 다 구원을 얻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라는 큰 걸림돌에 걸려 넘어진 것입니다.

그럼 2절의 현대어번역은? 2절도 1절과 같음 그래서 1절을 보니

(롬 9:1, 현대어)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 나의 겨레 이스라엘 사람들이여! 나의 동족 유대인들이여!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나아가기를 내가 얼마나 원하고 있는지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들 때문에 밤낮 마음이 무겁고 슬픔으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습니다. 만일 나의 영원한 파멸이 여러분에게 구원을 가져올 수 있다면 나는 차라리 그 편을 택할 것입니다. 이것이 단순히 겉치레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은 그리스도께서도 아시고 성령께서도 아십니다.
(롬 9:2, 현대어) (1절과 같음)
(롬 9:3, 현대어) (1절과 같음)


아니 앞에서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원수가 된다 라고 해놓고서는
왜 육신을 위한 유대인을 위해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기를 바란다? 문자적으로 보면 저만그런가요?
오해 할 수가 있는데
맥락을 보니, 더군다나 실수로 보게된 32절을 보니
행함의 언어가 아닌
믿음의 언어로 곧 사랑의 언어로 십자가의 언어로 보니
이게 바로 사랑인 화목제물을 아는 지식이 있는 자의 표현이다 라는 거지요
그런데 행함의 언어인 선악의 언어는 오히려 이런 표현이 더 오해하기 쉬운
뭐 우상적인 육신이 구원이 되기를 바라고 정작 본인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져 저주를 받겠다 라고? 이건 선악의 언어에서는 우상적인 육신의 생각인 유대인인 나를 선하게 만들고자
자기를 악마의 길로 가겠다 라고 오해하기 쉬운데
오히려 이것이 거리끼는 걸림돌식의 표현이 되는 겁니다

나를 선하게 만들려고 사도바울 자기는 악의 길로 가겠다 라고?
마치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나타낸다 라는 식처럼
가만히 듣자하니까 내가 선하지 않다 선함을 목표로 사는 자가 아니다 라고
속된 요즘 말로 은근히 까는 말로 들리는 겁니다
얼마나 나를 악마로 봤으면 날 선하게 개선시킬려고 본인이 대신 악마의 길로 가겠다 라고 듣끼니까 이건 뭐 은근히 맥이는 맥이다? 먹이다? 한방의 주먹 오 함마 망치를 먹이는 소리가 아니고 뭐냐 말이지요

이게 바로 성령을 부음 받은 
부정적인 행함이 있는 믿음의 사고방식에서 나온 행동과 말투가 되는 겁니다
그렇다고 모든 말투가 다 그런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반대를 위한 반대로써의 육의 소욕에 반대하는 식이다는 거죠

성령을 부으니까
종이 주인을 먹여살리고 (주인이 종을 살리는게 아니라)
남자가 아닌 여자가 남자를 구원하는 반대의 기능이 되고
반대는 남자는 자기가 남자임을 우기는 여자는 땅 남자는 하늘이라고만 
존재만을 주구장창 주장하고
늙은이는 젊은이처럼 꿈을 꾸고
반대로 젊은이는 늙은이처럼 환상을 보고 
환상을 본다 라는 말은 눈에 보이는 세상을 더 이상 의지하지 않는다 라는 종말을 추구한다 라는 겁니다
늙은이가 환상을 봐야 정상인데 그러면 이해가 되는데 
젊은이가 발가벗고 3년 동안 맨발로 돌아다녀보세요
미친놈이라고 취급할 것 아니겠습니까?
앞길 창창한 젊은이가 그렇게 되면 인생 쫑난 것인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오늘닐 목사들 보세요 인생 쫑난 길을 가는 종말의 사람이 아니라
세상 사람 보다 더한 돈에 미친 자가 되고파 안달이 나있더라 말이죠
마치 돈에 한을 품은 자 같아요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고 말이죠

(행 2:17, 개역)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행 2:18, 개역)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행 2:19, 개역)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행 2:20, 개역)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행 2:21, 개역)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행 2:17, 새번역)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마지막 날에 나는 내 영을 모든 사람에게 부어 주겠다. 너희의 아들들과 너희의 딸들은 예언을 하고,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꿀 것이다. / ㉣욜 2:28-32(칠십인역)
(행 2:18, 새번역) 그 날에 나는 내 영을 내 남종들과 내 여종들에게도 부어 주겠으니, 그들도 예언을 할 것이다.
(행 2:19, 새번역) 또 나는 위로 하늘에 놀라운 일을 나타내고, 아래로 땅에 징조를 나타낼 것이니, 곧 피와 불과 자욱한 연기이다.
(행 2:20, 새번역) 주님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오기 전에, 해는 변해서 어두움이 되고, 달은 변해서 피가 될 것이다.
(행 2:21, 새번역) 그러나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행 2:17, 공동)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마지막 날에 ㉠나는 모든 사람에게 나의 성령을 부어주리니 너희 아들 딸들은 예언을 하고 젊은이들은 계시의 영상을 보며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 ㉠요엘 3:1-5.
(행 2:18, 공동) 그 때에는 나의 남종에게도 여종에게도 나의 성령을 부어주리니 그들도 예언을 하리라.
(행 2:19, 공동) 나는 하늘 높은 곳에서 표징을 보이며 땅에서 기적을 행하리니 피와 불과 짙은 연기가 일고
(행 2:20, 공동) 해는 빛을 잃어 어두워지고 달은 피와 같이 붉어져 마침내 크고 영광스러운 주의 날이 오리라.
(행 2:21, 공동) 그 때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행 2:16, 현대어) 오늘 아침에 여러분이 보신 이 일은 이미 오래 전에 예언자 요엘이 예언한 것입니다.
(행 2:17, 현대어) ㄱ)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마지막 날에 내가 다시 너희에게 나의 비를 부어 준 다음에, 너희 모두에게 나의 영을 부어 주겠다. 너희의 아들딸들은 예언을 할 것이다. 너희의 늙은이들은 여러 가지 꿈을 꿀 것이고 너희의 젊은이들은 온갖 환상을 볼 것이다. (ㄱ. 70인역 욜3:1-5)
(행 2:18, 현대어) 또 그날이 오면 너희의 남녀 노예들에게도 똑같이 나의 영을 부어 주고
(행 2:19, 현대어) 땅과 하늘에서 이상한 상징들, 곧 피와 불과 버섯 연기들을 보여주겠다.
(행 2:20, 현대어) 여호와의 그 위대하고 무서운 날이 오기 전에 해는 캄캄해지고 달은 피같이 붉어질 것이다.
(행 2:21, 현대어) 그날에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받을 것이다. 주께서 약속하신 것과 똑같이 시온산과 예루살렘 도성에서 구원을 받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불러내시는 자들은 살아 남을 것이다.‘

(행 2:21, 개역)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행 2:21, 새번역) 그러나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행 2:21, 쉬운) 그러나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행 2:21, 한글킹) 그러나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였느니라.
(행 2:21, 현대인) 그러나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오늘 본문의 사도바울의 행동 곧 부정적인 행함이 있는 믿음
곧 부정적인 저주를 굳이 썩어가면서 하는 표현이 있는 성령의 소욕으로써의 믿음의 언어를 보니

누가 갑자기 생각이 나는고 하니
요셉이 생각이 나는 겁니다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 파서 파 묻었잖아요
그때 나이가 17살 정도였고 베냐민은 태어난지 얼마 안된
나이차이가 15살 정도였다고 하니
요셉이 비슷한 연년생에서는 제일 막내인 거지요
이 막내 하나 죽일려고 다 달려드는 겁니다

그런데 정작 요셉은 형들을 살릴려고
제발 지옥가지 말라고 볼모작전으로 뺑뺑이 세 번 돌리지요
그렇게 거리끼는 걸림돌로써의 간극을 벌리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사도바울이 유대인 살릴려고
자기는 저주 받아 지옥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뺑뺑이 돌리는 베냐민을 볼모로 잡은 사건으로 반드시
때려죽어도 안 데리고 올 아버지 야곱을
지팡이를 의지하는 그 야곱을 이주 이동 광야로 이주 시켰듯이
말이 애굽이지 요셉에게서는 광야입니다

그 광야에서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꾸시는 성령의 소욕을
에덴동산 같았던 그 애굽 보란 듯이 육의 소욕이 보란 듯이
이스라엘의 기능인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를 이루시는 겁니다

결국 에덴동산 같았던 그 애굽 잔칫집은 교만한 부자처럼
남의 것을 뺴앗아서 된 우상이였던 겁니다

그 우상을 거쳐서 여호와가 누구신가를 보여주시는 겁니다

나의 우상됨 곧 자기를 위한 신 이라는 우상을 거치지 않고서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 리가 없는 겁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 겁니다
유대인일지라도 하나님을 대따 많이 아는 유대인 말이죠
알고보니 하나님을 몰라서 망하는게 아니라
자기가 누구인지를 모른채로 하나님을 아니까 그게 가짜 하나님이였던 거죠

바로 이 과정을 사도바울 본인이 너무 너무 자기자신을 잘 알게 된 겁니다
주님이 알려주신 나 바울과
내가 나 바울을 아는 바울과

완전 정반대였던 겁니다

내가 나 바울을 아는 바물은
죄인 중의 괴수가 아니였습니다
그런 목적으로 산 적이 없는
오히려 의인 중의 의인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 이였다 말이죠

바로 이것이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
주님이 아는 바울 그때는 사울이였죠
마귀 중의 마귀 였다 라는 겁니다

그런 마귀 중의 마귀인
죄인 중의 괴수 요즘 자주 나오는 수괴!!! 우두머리 내란죄 우두머리 수괴
이 용어를 아예 대 놓고서 설명을 하더군요
우두머리라는 용어가 있는데 왜 저런 듣기 거북한 용어를 쓰는지 말이죠
수괴라는 용어가 법에도 나와있고 그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라고
법정에도 자주 쓴다 라고 설명을 굳이 하더군요

그 죄인 중의 괴수 수괴인 그 바울을 살릴려고
나 예수 너 바울 수괴 살릴려고 내 죽을께 너 살아라 라고 했듯이

이 화목제인 십자가 곧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결국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 거죠
모든 사람들은 유대교든 기독교든 다들 지옥으로 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이용하든 십자가를 이용하든 다들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식으로 십자가를 기적으로 이용하는데 있어서
주님은 그 반대인 내 죽으마 너 살라 라고
말도 안되는 그것도 죄인 중의 수괴 만들어서
십자가에 걸맞는 수괴
화목제에 걸맞는 주께만 범죄한 자로 만드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이건 뭐 한 방 맥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나를 죄인 중의 수괴로 만드시는 거죠
다윗이 왕이 되면 뭐합니까
한 나라의 대통령 되면 뭐합니까? 똥이나 쳐 바르고 있는데
아사리 그냥 똥덩어리 배설물 수괴로 만들어 버리시는 겁니다
즉각 사형깜이다 라는 거죠
주께만 범죄한 자 이다는 겁니다

바로 이런 의식(원수 중의 원수인 사망의 몸 지옥의 몸 심판 받아 마땅한 몸)을 가지고서 
예수님을 바라 볼 때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볼때에

바로 그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저주 받고 끊어지는 방식인
십자가 곧 화목제 라는 사랑으로 인해서
바울에게 청년 사울에게 접근하였듯이
바울 너가 핍박하는 나사렛 이단 예수이다 라고 말이죠

바울 또한 그런 식으로 저주받고 끊어질지라도
이 십자가를 그런 사고방식인 사랑으로 접근하는 겁니다
(그 당시 유대인 유대교나 오늘날 기독교나 모든 종교의 믿음이나
무신론자의 자본주의에 대한 믿음 곧 행함의 실천이나 모조리 다 복수심에서 움직인다 라는 겁니다 인간의 모든 믿음 모든 행동은 곧 복수심인 겁니다 인정투쟁도 마찬가지이고 말이죠
그 복수심에 반대를 위한 반대로써의 사랑이니까 유대인들이 그렇게 죽이고자 했던
나사렛 이단 예수를 믿는 바울이 이단의 자리에서 유대인을 위하여
이단 예수로부터 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라고 표현하면 유대인들이 고마워 할까요?
더 약올리는 표현으로만 들낄까요 자 이러니 더더욱 간극이 벌려지는 겁니다
복음은 그 어떤 이유로도 간극을 좁히고자 하는 인간의 시도가 먹혀들지를 않는 겁니다
오죽 하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아니 예수님요 바리새인들이 그 말듣고 저들이 얼마나 격분한지 아십니까? 이제 우리까지 다 죽게 되었습니다 라고 원망하잖아요
간극을 좁히는 전도 따위는 없어요 더 더 더 벌어진 그 간극에서만 태어나지 않으면 안되는‘말도 안되는 불가능한 그 간극에서 성령으로 태어나는 겁니다)

(마 15:12, 새번역) 그 때에 제자들이 다가와서 예수께 말하였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분개하고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마 15:12, 공동) 그 때에 제자들이 와서 예수께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지금 하신 말씀을 듣고 비위가 상한 것을 아십니까?" 하고 물었다.

(마 15:1, 개역) 그 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마 15:2, 개역)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유전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마 15:3, 개역)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
(마 15:4, 개역)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거늘
(마 15:5, 개역) 너희는 가로되 누구든지 아비에게나 어미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마 15:6, 개역)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마 15:7, 개역)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게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마 15:8, 개역)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마 15:9, 개역)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마 15:10, 개역) 무리를 불러 이르시되 듣고 깨달으라
(마 15:11, 개역)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마 15:12, 개역)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마 15:13,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심은 것마다 내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마 15:14, 개역) 그냥 두어라 저희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신대
(마 15:15, 개역)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옵소서
(마 15:16,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도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
(마 15:17, 개역)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어버려지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마 15:18, 개역)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 15:19, 개역)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마 15:20, 개역)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율법의 행함의 방식이 아닌 32절? 
믿음의 사랑의 방식인 화목제물 되심으로 말이지요
말도 안되는 절대저주인 삼일의 간극인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것도 인간의 살아있음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닌
예수님의 죽음으로 출발한 절대죽음인 그 삼일의 간극에서 나온 믿음으로 말이암아 말이죠
그것이 새마음 새영 곧 성령인 십자가의 영 곧 정직한 영 즉 중심입니다

(롬 9:27, 개역)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롬 9:28, 개역)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 하셨느니라
(롬 9:29, 개역)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시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롬 9:30, 개역)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롬 9:31, 개역)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롬 9:32, 개역)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롬 9:33, 개역)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 중심(시온)이 없어서 지옥가는 겁니다
그래서 제발 지옥가지 말고 제발 저주의 길 가지 말고
생명의 길을 가라고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는 겁니다
구약 전체가 하라 하지말라가 목적이 아닌
그런 선악이 목적이 아닌
그런 선악 때문에 예수님을 멀리 멀리 떨어뜨리고자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고 버리고자
반드시 끊어내고자 했던 그 장대 높이 달린 인자가 바로 이분이시다 라고
모든 구약이 증거하는 분인 바로 이분이란다
이분만이 생명의 길이란다
안그러면 이러다 다 지옥간다니깐 이라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오징어게임 다시 참가해서 이정재가 단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볼려고
이러다 다 죽습니다 여러분 이라고 외치는 그 심정이다 라는 거지요
물론 그건 쉽들러 리스트처럼 이정재가 인간의 연민 때문에 제발 죽지 말라고 하지만
정작 본인이 죽어서 단 한명을 대신 살릴수가 없어요
하는데 까지 해 보는 식인 그 역시나 의문의 반복이지만
사도바울은 개인의 행동이 아닌
성령이 부어져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사도라는 기능 곧 은사는
죽이시기로 작정이 된 자로써
이런 사고방식에서 사도의 피 위애 교회가 세워지는 겁니다

율법의 행함으로써는 원수를 사랑하는게 아니라
율법의 행함은 막힌 담을 더더욱 견고하게 높이 세워 트럼프처럼 담벼락을 더더욱 세워서
너 와 나를 제대로 구분하는 경계선을 더더욱 선명하게 하기 위함이다 말이죠

너는 너고 나는 나 이다 라는 둘 로 나누어짐이 더더욱 또렷하다 말이지요
그렇게 유대인들은 속된 것과 거룩한 것을 구분짓기를 실천함으로써
율법의 행함으로써 저 원수 같은 사마리아 더러운 자들과 자신들들 구분짓기를 했다 말이져
더더욱 부자청년처럼 어릴적부터 율법 다 지키기를 소망하면서 부자가 되기를 바랬다 말이죠
이게 바로 저주 이다 라는 겁니다

반대로 율법의 행함이 아닌
오로지 주님이 손수 직접 마련하신 화목제
장대 높이 달린 인자만을 쳐다봄으로써 낫게 되는
다들 비웃은 그 믿음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말이지요
이 예수님의 죽음으로 출발한 믿음을 선물 받으니까
저절로 둘로 나누어진 것을 하나로 만들 수 없는 그 불가능함이
나 같은 죄인도 용서하시고도 남으시니 말이지요
환자와 의사가 어떻게 하나가 됩니까? 상극도 너무 너무 상극인 그 간극의 벌어짐인데
어떻게 지옥의 몸 사망의 몸이 하늘의 영광과 한 몸을 이루겠습니까?
그저 화로자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된 그 간극의 더 벌어짐민 또렷함일 뿐인데도 불구하고
한 몸이 되다니요? 그건 주님의 작업이지
내가 한게 없어요 도리어 지옥의 몸 사망의 몸으로 드러날 뿐이지요
그런 죄인을 섬기시는 구원자
그런 환자를 병을 대신 짊어지는 의사
이건 행함이 아닌 율법의 행함으로 의에 이르지 못한 것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는 사랑 뿐이다 라는 겁니다

우상적인 유대인에게서까지 한 몸이 되시고자 저들의 죄악을 짊어졌잖아요
그 당사자가 유대인 바울 본인 아닙니까 우상숭배자 바울 말이죠

우상조각가 아브람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으로 만드시는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 이방인의 사도가 된다는 것은 유대인 사고방식에서는 도저히 용납이 될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방인의 사도로써

더럽고 우상숭배적이고 개같은 이방인에게 까지 예수님은 이방인의 빛으로 구원자로
한 몸을 이루었듯이 말이지요
유대인의 하나님에게서는 말도 안되죠
솔로몬처럼 그저 이방인 이용해먹듯이 (성전 건립을 위해)
오늘날 유대인도 마찬가지 검은 유대인 에디오피아인을 이용해먹을려고 수용해줄 뿐이지
여전히 경계선은 막힌 담을 못 허무는 겁니다

요셉 본인을 죽일려고 땅에 파묻은 그 형들을 그냥 무조건 용서하는게 아니라
그랬다면 배려가 자주되면 당연한 권리
그 유명한 영화 부당거래의 대사
호의가 계속되면은,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호의가 계속되면 당연히 누리는 권리인줄 안다는 뜻의 대사가 나오듯이

당연한게 아니기 떄문에
의도적으로 뺑뺑이 세 번을 돌리는 겁니다
절대단절 절대저주 절대심판 말이지요

요셉이 그 깊이 파 묻힌 구덩이에 3일동안 단절 되었듯이 말이지요
이 간극으로써의 십자가가 아니면
그 마음에 찔림이 없으면
도저히 간극을 좁히고자 하는 행함이 먹혀들지 않아서
입이 열 개라고 할 말이 없도록 하시지
안그러면 당연한 권리인줄 알 듯이 말이죠

그러니 호의가 계속 되면 권리인줄 알기 때문에
그런 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에 이미 망한자 이기 때문에
괜히 천국에 들여보냈다가는 심심하면 데모하는 운동 시위하는
데모크라시 democracy 민주주의를 운운할 놈이니 미리 걸러내서 지옥으로 보내는 겁니다
(데모 곧 민중 그리고 크라시 곧 권력, 지배, 통치죠
여기에 무슨 놈의 두려움과 떨림이 있겠습니까?
오로지 절대저주 절대죽음 절대심판 앞에서는 두려움과 떨림이 있어요
오토크라시 Autocracy 데모크라시의 반대말이지요 절대왕권입니다 독재죠 독재
정녕죽으리라를 홀로 다 이루셨다 말이죠 그 외에는 죽음도 아닙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데 말이죠 이게 망상입니다
허구 허상이다 말이죠
이 안 보이는 의문의 반복인 미완료를 자본이라는 눈에 보이는 것이 받쳐주는 겁니다
악마 라는 돈과 곧 우상과 허무한 안개인 인간이 만난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다고 반드시 멀리 떨어지겠다 라고 결심하고 결심하는 겁니다 믿는 구석이 있는 거죠 손도 없는 돈이라는 우상에게 자기를 일으켜 달라고 말이죠
요즘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종교인 과학에서 자아 라는 것도 없다 라고 주장하잖아요
자기들도 알아요 자아 또 뭐 영혼 영 이런 것들은 없다 라고 모든 것이 시뮬라시옹 시뮬라크르이다 라고 ~~~)

구원을 두렵고 떨림으로가 아닌
당연한 권리로 알테니 말이죠 그것도 없는 자아가 그렇게 권리를 주장하고 있으니까 말이죠
그래서 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 사랑을 알도록 하기 위해서
니 저주는 저주도 아니다 라고
절대저주 절대죽음 절대심판 속으로 집어넣어서 구원하시는 겁니다
사랑의 반대말이 미움이니까 절대 미움 속에 절대버림받은
절대 싫어버린 바 됨‘속에
절대 흠모할 모양 없음 속에 집어넣어서 흠모 사모 소망하는
보이지 않는 소망을 선물로 믿음을 주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선물이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지 내부에서 만들어낼수가 없습니다
곧 인간에게서는 믿음이 애초부터 없었던 겁니다 정직한 영이 없어서 울었듯이 말이죠)

그 죽음의 자리 라는 처음 자리
첫사랑을 만난 조우한 그 자리에 놓이고자 하기 위해서
삼일 동안 죽음 속이라는 그 단절 속에 그 간극 속에 놓여졌듯이
잃어버린 동전처럼
잃어버린 한 마리 양처럼 말이지요 그 나머지 아흔 아홉 마리는 당연한 권리이니까
사랑이 없어서 망하는 겁니다
그래서 세 번 씩이나 뺑뺑이 돌리는 겁니다
그 단절의 죽음의 자리에서 출발하도록 말이지요
(유다가 며느리 다말 덕분에
이 요셉의 세 번 간첩몰아가기 시험에서 벗어납니다
아니 벗어남이 아니라 그 삼일의 간극인 십자가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영광인 겁니다
하나님의 저주인 그 십자가가 말이지요
죽음이라는 절대저주 속에 죽으면 죽으리라 라고 자식을 이 죽음에 놓겠다 라고 함으로써 말이지요 유다가 불에 태워 죽이고자 했던 그 며느리가 나 보다 옳았다 라고
비로소 그 죽음에 죽음으로써 단절을 당해야 할 지옥의 몸임을 알고서 회개하는 마음으로써
정직한 영이 없어서 우는 모습으로써 이 단절의 단절로써 간극을 더더더 벌림으로써
그 죽음 속에 들어감으로써 초과잉현실인 화목제 십자가인 예수님의 죽음을 만남으로써 말이죠)

거기서만이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는 겁니다
그 공백의 자리에서 십자가라는 태에서 태어난 겁니다
그러니 십자가만 알기로 했다
즉 사랑만 아는 겁니다

그런 사도바울이 오늘 본문의 표현이 누가 봐도 부정적으로 보이는데
오히려 이 또렷한 십자가의 사랑의 언어로 표현하고 있고요
마치 7에 70번 도리어 용서받는 그 사랑이 또렷하게 말이지요
(그러나 그 반대인 남을 7번 용서한 자들에게서는
이 7에 70번의 도로 남으로부터 용서받는 것은 그야말로 모욕 중의 모욕입니다
수치를 자기가 알아서 가리우는 것이 아니라
남이 가러주는 모욕적인 구원을 받으면 안된다 라고 말이조
그 부끄러운 십자가 나를 대신 해서 지면 안된다
자기의 죄는 자기가 알아서 벌받자 라는 의식에서는
이 십자가는 그야말로 거리끼는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자꾸 모욕의 길로만 인도할테니 누가 감사함이 나오겠습니까?
그러나 감사한 자가 나옴으로써 더더욱 그 간극이 벌어짐에 있어서
간극을 좁혔다 라고 자부하는 남을 7번 용서는 희미한 의문의 반복이 되고
또렷한 7에 70번 용서 앞에서 뻔데기 앞에서 네 가닥? 일곱가닥 주름 밖에 안되는 겁니다
베드로 평생 70년 동안 겨우 남 7번 정도 밖에 안되는
그 공든 탑의 시 공간의 세월이 하루 아침에 무너지는 일장춘몽의 모래성일 뿐입니다
미쁘신 믿음직스러운 바위가 아닌 후 하고 불면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표현 자체가
이미 유대사회에 만연해 있는 거짓선지자의 표현 곧 평강이다 평강이다
부정적인 표현 하나도 없어요
뭐 저주 라는 표현이라든지
끊어질지라도 라는 표현이라든지
근심 그냥 근심도 아닌 큰 근심 크다큰 근심
고통 이거 다 부정적인 표현 아닙니까 그것도 부정의 부정입니다
그냥 고통이 아닌 그치지 않는 고통
곧 끝도 없이 이어지는 고통이다는 겁니다
십자가만 알기로 한 자 답게
이 십자가가 제대로 된 하나님의 저주이니까 말이죠
매일 매일 죽음에 그리스도의 죽음에 넘기움을 당하는 겁니다
내일 아궁이에 던지시는 풀과 같다는 겁니다
이것이 솔로몬의 영광 보다 더 영광이다 라고 말이죠

(고후 4:11, 개역)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마 6:30, 개역)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마 6:24, 개역)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 6:25, 개역)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마 6:26, 개역)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마 6:27, 개역)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마 6:28, 개역)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마 6:29, 개역)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마 6:30, 개역)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마 6:31, 개역)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마 6:32, 개역)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마 6:33, 개역)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카이 이 거리끼는 걸림돌의 언어로 어떻게 사랑이 나오겠냐 말이죠 곧 선이 나오냐 말이죠

그저 율법 안에서만 선을 추구할려고 하지
법 바깥에서는 선을 추구 안합니다 말라꼬 법 바깥에서 선을 행하냐 말이죠
아무도 안 알아주는데

(롬 3:8, 개역)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저희가 정죄 받는 것이 옳으니라
(롬 3:9, 개역)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롬 3:12, 개역)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롬 3:5, 개역)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거짓선지자와 같은 바리새인에게서는 나올수 없는 단어들입니다
오늘날 종교꾼들의 표현에서는 안 나오겠지요 평강이다 평강이다 라는 긍정적인 표현만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바울 본인이 그런 거짓선지자의 거짓영 거짓복음의 가짜 하나님이 퍼져 있다 라는 것을 알기 떄문에
심지어 본인이 바로 그런 과거의 제일 압장선 선봉자 였기에
그런 환경이라는 것을 알기에
마귀의 세가지 시험이 곧 돌 떡, 성전 두손 기적, 온천하 정치가
유대인을 다 장악했기에 그 포로됨 속에서
구원의 빛이 떳기에

거짓선지자와의 반대인 메시지를 담고서
자신도 예수님을 곡해 했듯이
이해를 아예 바라는 마음 추호도 없이
사람을 기쁘게 할 마음이 없이
그야말로 성령으로서 이런 표현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 오히려 더 단절적인 표현으로 듣기는데도 불구하고
아이고 저래 증거하면 누가 듣겠노
요즘 교회처럼 어린아이 다루듯이
초코파이 주고 연필 공책 주고 살살 달래가면서 해아지 라고 안쓰럽다 라고
혀를 쯧쯧 차도록 만들지만

바로 이것이 오히려 살살 달래고 타이르는 개유
권고입니다
(광야의 언어와 잔칫집 궁궐의 언어 차이입니다 진칫집에서 부정적이고 삐딱한 소리를 할 이유가 없을테니까요
선지자는 궁궐에 없습니다 아무리 궁궐 바깥에서 찾는?? 해도 줄리는 무당만 찾을 뿐입니다
광야에 왜 갔더냐? 선지자를 보러 함이더냐? 옳도다 좋은 옷을 입은 자는 궁궐에 있다 말이죠)

(호 2:13, 개역) 저가 귀고리와 패물로 장식하고 그 연애하는 자를 따라가서 나를 잊어버리고 향을 살라 바알들을 섬긴 시일을 따라 내가 저에게 벌을 주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호 2:14, 개역) 그러므로 내가 저를 개유하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호 2:15, 개역) 거기서 비로소 저의 포도원을 저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저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호 2:16, 개역)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호 2:19, 개역)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호 2:20, 개역)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마 11:7, 개역) 저희가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마 11:8, 개역)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마 11:9, 개역)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려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
(마 11:10, 개역)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네 앞에 예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마 11:11, 개역)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마 11:12, 개역)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광야에서 사랑을 비로소 알고 광야에서 개유 권고 하고
광야에서 그 잃어버린 자리 그 처음자리 그 첫사랑의 자리가
바로 결혼할 자리 한 몸 되는 자리이니까 말이죠

안그러면 여전히 두 몸으로써 살려고
남편이용해 머고
아내 이용해 먹기위한
그것을 노리는 것이 마귀가 베드로 잡아서 잘 보일려고 음녀가 자기가 사랑하는 방식인
나 외에 다른 신을 믿지 말라를 어기는 방식입니다
나 외에 다른 신이라고 다른 신을 의식한다 라고 과학하고 앉아있네가 비꼬았지만
그 다른 신이 바로 그 둘로 나누어진 그 막힌 담을 그대로 두는
각자의 몸인 둘로 나누어진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자 라는
그 우상이 바로
다른 신 곧 나를 그대로 유지하겠다 라는 사고방식입니다
그게 선악이다 말이지요
무조건 자기가 선이고요
그 선을 방해하는 남의 몸이 악이 되는 거지요
인간의 악은 유일하게 딱 하나 뿐입니다 예수님입니다
그것을 가룟유다가 몸소 보여주고 있습니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말이죠

자기가 신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바울이 과거의 그런 모습이 바로 저주였었기에
지금의 자신이 저주 속에 아무리 들어가본들
그 거주는 저주 축에도
자신의 근심은
고통은
끊어짐은
주님의 끊어짐인 이 십자가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미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껏 외칠수가 있는데

오히려 그 반대인 유대인은 오히려 더더더 거부감과 거리끼는 걸림돌이 되는 겁니다

자기가 했던 짓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아니다 한 적 없다 라고 밀어낼려고 
아무리 건축자들이 버려도
또 그 다음날 떡 머릿돌로 떼굴 떼굴 뗴굴 뜨인돌로써 머릿돌로 서는 겁니다

아무리 버려도 안되는 겁니다 그 사실은
먼저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집은 이스라엘이 먼저 심판을 받으면서도
마치 나는 심판 받지 않았다
저주 받지 않았다 라고 아무리 우겨도
거봐 거봐 심판 받았네

아니 난 안 받았다니깐
어쭈 오냐 남방 여봥이 외서 심판하고
니느웨백성이 와서 심판해도

다들 심판 받았네 말 안 듣다가 심판 당했구만 이라고 해도
자기들은 아니다 심판 안 받았다 라고 우기는 겁니다

바로 그런 우기고 뻐티고 하는 모습이 바로
나는 율법이 있기 때문에 너거들처럼 망할 자가 아니다 라는 모습 자체가
바로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은 모습으로써 버텼던

이게 바로 사도바울 본인이였었기 때문에
그 저주에서 벗어나라 라고
본인이 잘 알지오 귓귀멍으로도 안 들을꺼라고

그래도 듣기는 들어도 꺠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도록 하는 이 비유 비밀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는

비유로 말하는 자야 또 너냐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여 또 너냐
유대인을 괴롭히는 자여 바울 또 너냐 라는 그 비아냥을 아예 듣고파 하는 식으로

부정적으로 증거하는 이유는
이것이 비유이지
맹탕의 듣기 좋으라 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 본인이 이사야처럼 성령을 받아서 외치기 때문에
3년 동안 발가벗고 맨발로 거울 비추듯이 외쳤던 것처럼
오늘 이렇게 증거하지 않으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때를 얻든지 아니 얻든지
외쳐라
파수꾼 너가 안 외치면 그 죄가를 너에게 묻겠다 라고 에스겔에게 하셨듯이

바울은 지금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근심과 고통으로
그냥 근심이 아닙니다
큰 근심
그리고 그치지 않는 고통입니다
이거 오바 아닙니까
오바 오버 초과잉은
무의식 속에서 지금 초과적으로 넘치기 때문에
아니 증거하고는 못 배기는 당위이기 때문에
기능이기 때문에
은사 이기 떄문에 성령의 소욕이기 때문에

존재가 못 따라오는 겁니다
육의 소욕일 것 같으면 사람의 기쁨을 구하기 떄문에
사람 없는 광야에서는 때려죽어도 안 외치고 포기할 겁니다
존재는 늘 사람의 눈을 의식하기 떄문입니다

그러나 존재가 아닌 기능은 초과잉이기에
초과잉만이 진리입니다
(존재한 적이 없는 초과잉실재인 자아 보다
그 그림자 허상인 자아를 더더더 없애버리는 십자가에 모든 육체를 못 박는
이 참실상인 더더더 초초초과잉 실재인 또렷한 십자가만이 진리이다는 겁니다
십자가 나무 짝대기가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만이 말이죠
함께 죽고 함께 사는 이 또렷한 실상인 사랑만이 말이지요
철학자들이 말하는 사랑 아닙니다 그거 거짓선지들 초등학문입니다
죽음 보다 강한 사랑인 십자가사건 말이지요)

광야 아무도 없는 곳에
듣는자도 없고
깨닫는 자도 없는데도 외치는 겁니다

아 듣는자 없어도 깨닫는자 없어도 열심히 하는 그 열성 열정 패션을 보여주고자 함이겠군요?
아닙니다 그것 또한 존재입니다
기능은 그 반대입니다
듣기는 들어도 꺠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도록
혹시나 듣고 꺠달아 고침을 받을까봐 싶어서
아무도 없는 광야에서 외치는 겁니다

(사 6:9, 개역)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사 6:10, 개역)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마 13:13, 개역)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마 13:14, 개역)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마 13:15, 개역)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 함이라 하였느니라

(막 4:12, 개역)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시고
(행 28:26, 개역)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겔 2:5, 개역)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 선지자 있은 줄은 알지니라
(겔 2:7, 개역)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
(겔 3:11, 개역) 사로잡힌 네 민족에게로 가서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하시더라

(딤후 4:2, 개역)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즉 들으면 안될텐데 라고 외치는 거죠
깨달으면 안될텐데 라고 외치는 겁니다
그래서 못 듣도록
못 보도록
아무도 없는 광야에서
잃어버린 자리에서
그 처음자리에서 외치는 겁니다
또렷한 첫사랑을 말이지요

(행 28:25, 개역)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일러 가로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로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행 28:26, 개역)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행 28:27, 개역)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
(행 28:28, 개역)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신 줄 알라 저희는 또한 들으리라 하더라

정작 유대인은 안 듣고요
반대로 이방인은 들으리라 라고 되어 있으니 이게 말이 됩니까
들어야 할 유대인은 귀머거리가 되고
정작 못 듣도록 되어 있는 이방인 귀머거리들인 이방인이 도리어 듣더라 말이죠
역전현상입니다

그래서 유대인에게서는 거리끼는 걸림돌이고
동시에 정반대인 지혜를 추구하는 헬라인 곧 이방인에게서는 어리석고 미련한 겁니다
오직 미련하고 어리석은 죄인임을 아는 그리스도인에게는
(그리스도인 부르심을 보라 약한 것 지혜없고 능한 자 없고 문벌없고 미련하고 약하고 천하고 멸시받고 없는 것으로써 부르심을 받았다 왜? 상대적인 자들과 대조를 이루고자)
이 하나님의 저주인 십자가가 하나님의 지혜요 영광입니다

(고전 1:22, 개역)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고전 1:23, 개역)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고전 1:24, 개역)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 1:25, 개역)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고전 1:26, 개역)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고전 1:27, 개역)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전 1:28, 개역)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전 1:29, 개역)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많이 있는 잔칫집 또는 궁궐에서 외치는게 아니라
아무도 없는 광야에서 외는 겁니다

에이 그러면 아예 말을 안하고 안 외치면 되잖아 라고

아니요 말 안하고 안 외치면
증인이 아닌게 되는 거지요
증인이기 때문에 외치긴 외치는 겁니다
듣든지 아니 듣든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이 복음은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주님을 기쁘게 하기 위함이다 말이지요

그러니 주님의 뜻에 충족 시키기 위함이지
사람들을 많이 끌어모으는 식이 아닌 거지요
어차피 그래 되면 어차피 걸러내면 다 떨어져 나가기 때문에
애초부터 떨어져 나갈놈을 미리 내치는 식으로 걸러내면서 증거하는 겁니다

이것이 굳이 구약처럼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받은 자는 적은
광야를 거쳐서 들어가는 약속의 땅이 아니라
그래서 이 놈들이 선지서를 증거하지 않는 겁니다
요한계시록처럼 너무 어렵거든요
어렵다? 그럼 양자컴퓨터 집어 넣어서 계산해서 천년 걸릴 수학 난제 문제를
몇초 만에 풀면 되겠네

라는 그런 어려움이 아니라
비유 비밀 자체가 풀리지 않기 때문이기에
접근 자체가 안되는 단절이기 떄문입니다
오로지 죽은 자 만이 접근가능하다 말이지요
에이 죽으면 이미 끝났는데 죽은 자가 산자처럼 접근 자체가 우찌 되노?
바로 그겁니다

죽은 자가 안된 자가 저주 받은 자 이다 라는 식으로

본인은 그런 죽음도 죽음 축에도 못 드는 더더더 더한 절대 죽음
절대 저주
절대 단절인 절대 끊어짐인 이것만이 절대용서인 사랑이다 라고 증거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은 언제든지 얼마든지 끊어져도 저주 받아도 상관 없다 라는 식으로
유대인에게 외치는 겁니다

유대인은 오히려 그것이 더더더 기분 나쁜
그야말로 목에 탁 걸린 까시처럼 되는 겁니다
사도바울의 말은 다 그런 식입니다
바울 뿐만 아니지요

사도들의 외침이 다 그래요
뭐 성격마다 다 틀릴끼다? 아닙니다
기능은 똑같습니다

다 삐딱해요

사람을 좋게
사람을 기쁘게 하는 구석이 하나도 없어요

주도 하나요 성령도 하나요 다 똑같은 한 몸입니다
모든 기능이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는 겁니다

(엡 4:5, 개역)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엡 4:1, 개역)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엡 4:2, 개역)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엡 4:3, 개역)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엡 4:4, 개역)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엡 4:5, 개역)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엡 4:6, 개역)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엡 4:7, 개역)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엡 4:8, 개역)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엡 4:9, 개역)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랫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엡 4:10, 개역)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
(엡 4:11, 개역)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엡 4:12, 개역)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엡 4:13, 개역)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엡 4:14, 개역)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엡 4:15, 개역)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엡 4:16, 개역)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그카이 구약처럼 광야에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게 아니라
이미 약속의 땅에서 광야처럼 목이 곧은 백성임을 들추어내시는
이 거울
발가벗은 몸
바로 사도바울의 큰 근심
그치지 않는 고통으로써

내 친족 골육에게 외친다 라는 겁니다
즉 이 말은 육의 혈통을 쫓고있네 라고 왜 욕 먹는 짓을 하지가 아니라
에이 바울이 미련을 가지고 있네
저 유대인들 사탄의 회 인데 아직도 옛날 지나간 것 이전 것이 안 지나가고
새롭게 된게 아니네 라가 아니라

한 몸으로써 그리스도 곧 머리를 향했다 라는 겁니다
그럼 유대인은 오늘날도 마찬가지 이지만
완악한 수건을 안 벗고 우기지만
원래 구약 전체 조차도 예수님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야 이 놈의 유대인아 머리 되신 예수님과 한 몸
한 친족 한 골육이 못 되면 너거 진짜 이러다 다 죽어
그러다 다 저주 받아
그러다 다 끊어진다 이 놈들아 라고 외치는 겁니다

오징어 게임 이러다 다 죽는다 말이죠

그카이 발가벗겨진들 3년 동안 맨 몸 알몸 맨발로 다닌다 라고 손가락질 받아본들
미말에 둔 구경꺼리 웃싸꺼리 조롱꺼리
예수님의 죽음에 매일 매일 넘겨져 본들

오히려 그것이 나 바울에게는 더 영광이란다
그거 땜에 사도라는 기능
곧 은사는 그 기능을 하라고 너희에게 주어진 거야
이방인의 사도 라메? 듣기 싫으니까
더러운 이방놈에게나 전해라
나 못 간다고 전해라 ~~~~

이게 이방에게 증거하는 거야
너희들 유대인들도 처음자리는 이방이였거든

아이 시끄럽고 더 이상 이스라엘을 괴롭히지 말아라 라고 내침을 받는 겁니다

내침을 받지 않는 말을 충분히 할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목사들이 그렇게 밥 빌어먹고 살잖아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구지 구지 굳이
반드시 내 침을 받는 단절된 말
발가벗겨진 알 몸으로 거울 비춰주듯이 꼭 비밀로 꼭 해야 겠냐 ~~~~~~ 라는 소리를 꼭 들는
이 단절성으로써

저주 받고
끊어짐을 받고
큰 근심 속에 놓이고
그치지 않는 멈추지 않는 고통을 꼭 받드시 입음으로써 외치는 바는

내가 예수님의 그런 모습 덕분에 내 살아났단다
그래서 너거들 살아나라고 이래 외친다 라고 하더라 말이죠
사람 좋게가 아니라
복음의 기능이다 라는 겁니다
존재 좋으라고 하는게 아니라

기능은 오히려 원수 웬수 만들어서 말이죠

아 그럼 지금 그 소리는 너 바울이 우리 손에 죽는 소리만 해야 한다는 소리네

바로 그겁니다
그래야 우리는 나도 몰랐던 내 속의 저주
내 속의 끊어짐
내 속의 우상
바로 이 사탄의 깊이를 거쳐서
하나님의 깊이인 이 죄악을 건드리시는 그 섬김과 만나는 겁니다

그러니 바울은 유대인이 하나님 잘 알 거야
왜 먼저 되었으니까 라는
먼저 됨을 선행학습처럼 무슨 특권으로 구약처럼 그렇게 보는게 아니라
그래봤자 존재로 빠지면 말짤 도루묵이니까
기능은 아예 유대인이면 유대인 일수록
더더욱 예수님을 죽일 수 밖에 없는
이 저주를 거쳐서 보자 라는 겁니다

왜 나는 하나님이 누군지 모르겠는데
황비홍 누구라꼬 ~~~~~~~ 라고 비웃는
애굽왕 바로왕을 떠나서

광야라는 저주 속에서 
광야
광야 3일 길
유월절 어린양의 죽음을 왜 만나야 했느냐 말이지요

왜 화로다 화로다 나느 망하게 된 지옥의 몸이구나 라고
지옥의 몸으로써 주님을 만나야 하느냐 말이지요

의인의 몸
건강한 몸
약속의 땅에서
잔칫집에서 만나는게 아니라

왜 광야에서 만나느냐 말이죠

그래서 큰 근심 그치지 않는 고통
저주
끊어진 자로써 예수님을 만나게 해 줄려고 하느냐 말이죠

우리가 지옥가는 이유는
하나님을 원망해서 불뱀에게 물려 광야에서 죽는게 아니라
비록 광야 일 지라도

무화과 나뭇 잎이 마르고
포도 나무 열매 없고
감람나무 열매 그치고
논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떼가 없으며
외양간 송아지 없어도

난 여호와로 즐거워 하리
난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리라

세상에 이 보다 더 부정적인 노래가 없어요

모조리 없데 글쎄
아무것도 없는데

기쁘데

세상에 이런 기쁜 노래도 없어요

아니 학부모들 도끼가 나무에 이런 노래는 못 부르도록 만들면서
더 부정적인 이 노래는 또 마지막에는 기쁘네 이것 때문에
못 부르게는 하지 않네
왠일이니 왠일이니 ~~~~~

자기자식 왕의 유전자라서 온갖 부정적인 것 말릴적에는 언제고
이것은 부정적인지 아닌지 모르니까 말이지요

하여튼 아무것도 없데요
그리고 감람나무 소출 그쳤데요
끊어졌데요
단절 되었데요
그래도 기쁘데요
왜?
머리를 향했기에
머리가 있으니까

이것이 은사 이다 라는 겁니다

각자 팔 다리 손가락 발가락 따로 노는 둘이 된 분리된 몸이 아니라
머리 되신 그리스도를 향한 한 몸 말이지요

다른 신 이 된 인간 그 자체가 우상이 되었기에
머리 되신 그리스도를 향한 은사 곧 성령의 소욕은

육의 소욕에서는 있을 수 없는 사고방식이다 말이지요
원수된 생각인 육의 소욕이
존재는 오로지 자기 존재 밖에 모릅니다
자기한데 이롭다 여겨지는
자기 존재 가치를 높여주는 자를 옆에 둘려고 하는 정치나 하고 있지
그게 바로 태극기 부대이고 역시나 촛불부대 아닙니까
둘다 마귀들이다 말이죠
다 양쪽 다 자기 유익을 구하고 있지
누가 머리를 향하고 있겠냐 말이죠
은사가 아니면 안되는 겁니다
자기 밖에 모르는 나 라는 존재에서는 나올수가 없어요

그래서 바울은 반대로 저주 속으로
끊어짐 속으로
큰 근심 속으로
그치지 않는 고통 속으로

아에 일상으로 매일 매일 당하면서도 그 속에서 외치고 있더라 말이죠

우리 같으면 어떻게 해서든 벗어날려고 할 텐데
더더욱 그 속으로 들어가고 있으니 말이지요

무화과 나무 잎이 마르는 속으로
그 광야 속으로 말이지요

저희의 부요 함에 되고자 말이죠

(롬 11:12, 개역)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

(계 2:9, 개역)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고후 6:10, 개역)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고린도 후서 6장은 오늘 본문과 같죠 8장도 마찬가지

(고후 8:9, 개역)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오히려 이 반대의 육의 소욕의 대표자 부자청년처럼
항상 구원받은자 또는 선민 선택된 자의 기준으로 제시되는 부자를
오히려 정반대로 언급하시고 있습니다

(계 3:17, 개역)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아무것도 없는 자 라고

그카이 사도의 기능은 거울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그 놈이 니 놈이다 라고 말이지요

그리고 우리는 자꾸 머리 되신 예수님으로 향하도록 방향 키를 돌리는 겁니다

그가 찔림으로 우라가 나음을 입었듯이
자꾸 주님의 찔리심 속으로 화목제 속으로 방향을 잡도록
사도 자신의 몸에 큰 근심
그치지 않는 고통
저주
끊어짐을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누가봐도 큰 근심이 없었던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떤 때
배부르고 근심의 반대말이 뭡니까 기쁨이 넘치고
저 예수 하나 때문에 이단 사상 막고자 쓸데 없이 스데반과 같은 예수쟁이 다 죽이고 돌아다녔던 그래서 이단 하나 제거 한 것에 기쁨을 누렸던 그 만족감이 오히러 저주 였다고
그러니 그 저주 속에 놓여진 유대인과 친족들 골육들 보면
바울은 안타깝기 그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끊어지지 않는 그리스도의 사랑 덕분에
마음껏 끊어져도 상관이 없는 저주 속으로
끊어임 속으로
큰 근심이 있는 곳으로
그지치 않고 계속해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고통 속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마치 며느리 다말 같아요

유대인 곧 유다 시아버지 유다가 약속을 자기의 유익대로 우상 믿듯이 믿는
손해 보는 것 하나 없이 말이지요
그카이 요셉을 죽였던 것 아닙니까 나머지 형제들과 함께 막내 요셉을 죽이고자 안달이 났었다 말이죠
그런데 또 그런 상황이 벌어지는 겁니다
며느리 다말 하나 못 죽여서 안달이 나는 모습이 되어야 하는 ~~~~

남들의 시선에서 얼마나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이 못된 며느리를 반드시 죽여야 한다 말이죠

그렇게 불 속으로 집어넣고자 했는데 즉 마음을 이미 먹었기에
불 속에 집어넣은 것이나 마찬가지 이지요
며느리 다말은 여자로써 큰 근심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고통을 시아버지로부터
얼마나 괴롭힘을 당했겠냐 말이죠
시아버지 유다는 도리어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야 또 너냐 라는 식으로
나를 괴롭히는 여자라고 뒤짚어 씌우는 거죠
그래서 불 속에 집어넣고자 끝없이 그치지 않는 고통 불이 온 살갓을 태우고자 
그 뜨거운 불이 붙으면 최고의 고통 아닙니까
그야말로 저주가 따로 없지요
불 속에 집어넣는 길 만이 제대로 끊어지도록 만드는
저 지긋지긋한 이방여자 며느리 드디어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구나 라고 말이죠

그런데 그것은 제대로 된 단절이 아닙니다 제대로 된 끊어짐이 아니예요

진짜 큰 근심 그치지 않는 고통 그리고 저주 그리고 제대로 된 끊어짐인 절대단절은

바로 며느리 다말이 내미는 세가지 물건입니다

이것만이 제대로 된 간극입니다
십자가만이 제대로 된 죽음이다 말이죠

도장 도장끈 지팡이 말이지요

이것만이 시아버지 다말을 제대로 구원하는 수술칼입니다
비로소 그 수술칼 곧 의사의 칼 앞에서
나는 환??입니다 라고
그가 나 보다 옳았다 나를 제대로 고치는 자 이다 라는 겁니다

이 예수님의 영이 부어졌던 며느리 다말처럼
시아버지 유다 곧 유대인을 향한
사도바울의 외침은
성령을 부음 받은 며느리 다말의 외침과 같습니다

무엇이 진짜 저주요 진짜 끊어짐 입니까?

예수님의 절대저주인 이 십자가를 알지 못하는 것이 진짜 저주입니다
이것을 모르면

온통 나의 가치를 꾸미는데 평생 헛 짓 하는 저주 속에서
지옥이 끌어당기는 대로 살다가 지옥에 가는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을 이스라엘 답게 만들고자
자기 숙제 속에 살다가 예수님의 숙제인
다 이루셨다를 못 보고
미완료인 의문의 반복만 하다가 지옥갈 뿐입니다

바울의 눈에는 그것이 선명하게 보이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대산 저주 받고
대신 끊어진 한이 있더라도
예수님을 외치고 싶은 겁니다

참됨은 오로지 예수님 뿐이기에
자신은 언제든지 저주의 거짓됨 속에 놓여지든 말든 말이지요

다말이 더러운 창녀 짓을 하는 일이 있더라도
저 약속의 가문을 살리고자 죽음 속으로 들어감을 당하든지 말든지처럼 말이죠

참된 이스라엘은 곧 신약으로 치면 교회입니다
교회는 이미 예수 안에서 다 이루어졌습니다
교회를 교회 답게 만들고자 하는 그 의도 속에는
자신의 개인 구원을 추구하고자 하는 탐심이라는 우상숭배가 늘 내재되어 있기에
이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 됨을 누리지 못하도록 하는
자기 숙제로 이스라엘을 이스라엘 답게
교회를 교회 답게 하고자 할 것입니다

이게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사람에게 먹혀드는 가짜복음입니다
그래서 부정적인 삼 분의 2 인 저주와 삼판은 은근쓸적 발로 밀쳐낼려고 합니다

그것이 이미 저주의 길을 가고 있는 겁니다

아니 누가 복의 길을 마다하고 저주의 길로 가고자 하겠습니까?
누가 사람들이 많이 찾는 대박난 인기있는 핫 프레이스 hot place 넓은 길 잔칫집에 가기를 원하지
누가 초상집 저주의 길 좁은 길로 가고자 하겠느냐 말이죠

그러나 다들 인식하는 그 솔로몬이 입은 영광의 옷은 사실은 저주의 길이다 라는 겁니다

솔로몬이 입은 옷을 추구하는 것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복인데
이 타인을 의식함으로써 서로가 서로를 모방하고 흉내내고 따르면서 결집을 하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저주 이다는 겁니다

우상이 우상을 따라하는 식이니까요
그 예가 바로 사회적 두뇌로싸의 왕이

그것도 유대인 남유다의 왕이 둘로 나누어 집니다

하나는 왕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왕 구실을 할 수 없는 입장인
어린아이 여고냐입니다
네 맞아요 어린나이에 어떤 곳은 8살에 어떤 곳은 18살에 왕이 되었는데
아무튼 아동입니다 그런데 왕이 된지 100일만에 포로 잡혀 갑니다 바벨론으로 말이죠

누가 봐도 저주 받았죠
사회적인 두뇌 구실을 못하는 겁니다 즉 결집 단결을 못하는 겁니다
혼자 못하는 인간은 결집을 해야 하는데 말이죠
왕 되자 마자 포로 잡혀 가니
이 수뇌부가 수갑에 채워져서 포로 잡혀가야 한다니 누가 그것을 보고 축복이라고 보겠습니까

인간이란 본능상 그것을 보고 저주로 여기는 겁니다

그래서 남유다 왕 자리가 빈자리가 되니까 여고냐의 삼촌인 시드기야가 바로 왕이 됩니다
그리고 왕 이 왕 답게 처신하고
이스라엘을 이스라엘 답게
남유다를 남 유다 답게 만들고자 결집을 시도합니다 결집이 되어야
전쟁을 할 수 있고 전쟁에서 이기고자 해야 생존이 가능합니다
바로 이 모습을 성경은 저주 받은 무화과 나무 비유로써 표현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여고냐는 좋은 무화과 나무로 증거하고 있고요

이것을 흉내내고자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흉내 내고 싶어도 그것으로는 결집 단결이 안되고
수뇌부가 될 수가 없어요

그 흉내 조차도 못 내는 것이 도리어 축복의 나무라고 하니
기가찰 노릇입니다

아니 내일 아궁이에 던질 풀도 귀히 입히신다 라고
들에 핀 백합화가 솔로몬이 입은 영광 보다 더 낫다 라고 하시니

인간의 선악 곧 축복과 저주의 인시이 예수님의 앞에서는 판단불가 포착불가가 되는 겁니다
흉내 자체를 낼수 없는 가능성 제로의 불가능성만 제시하니까 말이지요

이것이 이미 다 이룬 요나의 표적인 십자가에 딱 부합된다 라고 하시니 말이죠
더 이상 결핍을 채우고자 나를 나 답게 만들고자하는
이스라엘을 이스라엘 답게 만들고자 하는 저런 사회적 두뇌인 시드기야 왕의 행동이
누가 봐도 독립운동을 칭찬하고 복된 일이다 라고 하는게 아니라
정반대로 저주의 길로 간 자이다 라고 하고
누가 봐도 포로 잡혀가는 여고냐는 좋은 무화과 나무이다 라고
주께만 범죄한 자로써의 포로 됨 갇혀있음 억눌린 자
바로 이런 고아 과부 나그네에게만 기쁜소식이 딱 맞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포로 된 적도 없는 우리 아브라함 자손을 예수 니가 뭔데 자유케 만드냐 라고
아쉬울 것이 없는 건강하다고 하는 자
의인이다고 하는 자에게는 예수님 곧 의사 구원자가 없다 라는 이유로 저주 받은 자 이고

정작 포로된 여고냐처럼 고아 과부 나그네에만 필요한 예수님이
환자에게만 필요한 의사처럼
죄인에게만 필요한 구원자 곧 변호사처럼
이 예수님이 있다 라는 이유로 좋은 무화과 나무이다 라고 하는 겁니다

오히려 소유의 넉넉함이

(마 6:25, 개역)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눅 12:23, 개역)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눅 12:15, 개역)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마 6:24, 개역)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 6:25, 개역)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마 6:26, 개역)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마 6:27, 개역)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마 6:28, 개역)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마 6:29, 개역)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마 6:30, 개역)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마 6:31, 개역)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마 6:32, 개역)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마 6:33, 개역)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4, 개역)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눅 12:19, 개역)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눅 12:20, 개역)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눅 12:21, 개역)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눅 12:22, 개역)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눅 12:23, 개역)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눅 12:24, 개역)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렘 24:1, 개역)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냐와 유다 방백들과 목공들과 철공들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옮긴 후에 여호와께서 여호와의 전 앞에 놓인 무화과 두 광주리로 내게 보이셨는데
(렘 24:2, 개역) 한 광주리에는 처음 익은 듯한 극히 좋은 무화과가 있고 한 광주리에는 악하여 먹을 수 없는 극히 악한 무화과가 있더라
(렘 24:3, 개역)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무화과이온데 그 좋은 무화과는 극히 좋고 그 악한 것은 극히 악하여 먹을 수 없게 악하니라
(렘 24:4, 개역)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렘 24:5, 개역)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이곳에서 옮겨 갈대아인의 땅에 이르게 한 유다 포로를 이 좋은 무화과 같이 보아 좋게 할 것이라
(렘 24:6, 개역) 내가 그들을 돌아보아 좋게 하여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하고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심고 뽑지 아니하겠고
(렘 24:7, 개역)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로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렘 24:8, 개역)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유다 왕 시드기야와 그 방백들과 예루살렘의 남은 자로서 이 땅에 남아 있는 자와 애굽 땅에 거하는 자들을 이 악하여 먹을 수 없는 악한 무화과 같이 버리되
(렘 24:9, 개역) 세상 모든 나라 중에 흩어서 그들로 환난을 당하게 할 것이며 또 그들로 내가 쫓아보낼 모든 곳에서 치욕을 당케 하며 말거리가 되게 하며 조롱과 저주를 받게 할 것이며
(렘 24:10, 개역) 내가 칼과 기근과 염병을 그들 중에 보내어 그들로 내가 그들과 그 열조에게 준 땅에서 멸절하기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시니라
(렘 22:24, 새번역) "나 주의 말이다. 내가 내 삶을 두고 맹세한다. 여호야김의 아들 유다 왕 ㉢고니야야, 네가 내 오른손에 낀 옥새 가락지라고 하더라도, 내가 너를 거기에서 빼버리겠다. / ㉢일명 '여호야긴'(왕하 24:6;8에서도) 또는 '여고냐'(대상 3:16; 렘 24:1에서도)
(렘 22:28, 새번역) 이 사람 ㉣고니야는 깨져서 버려진 항아리인가? 아무도 거들떠보려고 하지 않는 질그릇인가? 어찌하여 그는 자신도 모르는 낯선 땅으로 가족과 함께 쫓겨나서, 멀리 끌려가게 되었는가? / ㉣일명 '여호야긴'(왕하 24:6;8에서도) 또는 '여고냐'(대상 3:16; 렘 24:1에서도)

가룟유다도 독립운동하고 있지만
베드로는 다 이루신 십자가 덕분에 손 탈탈탈 털리는 빈손으로써 고아의 자리
죄인의 자리에서 용서를 보게 되는 겁니다 다 이루셨는데
자기 숙제 곧 절대로 부인하지 않겟다는 둥 끝까지 따라가겠다는 둥
장지지겠다는 둥 십자가에 같이 죽겠다는 둥
그 전갈 독으로 자신을 똥으로 포장할떄에 사탕아 라는 욕 먹고
다 손 털고 다 이루신 완료를 누리게 하시는 겁니다
그 결핍채은 그 미완료를 언제까지 의문의 반복 할꺼냐 말이죠
그것이 가룟유다가 간 길 아닌니까 저주의 길
언제까지 서울의 봄을 바랄꺼냐 말이죠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안옵니다 그 의문의 반복 손뗴시고요
이미 다 이룬 7천명 남겨놨다 라는 세상을 이미 전복시킨
다 뒤집어 버린 십자가의 다 이루심을 보라 말이죠
그카이 사도바울이 저 미완료의 의문의 반복의 길로 가고 있는 자들을 보고

저주의 길로 가고 있는 자들을 보고 얼마나 안탑깝겠습니까?

이런 사도처럼 오늘날 교회 목사가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과 저주 그리고 끊어짐을 당함의 속에 놓여지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면

그저 직업으로써의 자영업자로싸 돈 외에는 재물 외에는 관심이 없는 거죠
실제로 제가 느끼고 경험해 본 모든 목사는
무엇을 근심하는 가를 보고 알수 있었습니다

다들 돈 때문에 근심한 모습을 보였지
다 이루심을 못 누리는 것을 보고 근심하는 목사를 본 적이 없어요
그 카이 저주 고통 끊어짐 큰근심을 하는 자를 못 봤어요
그저 축복 축복 거리면서 희죽 희죽 평강이다 평강이다 외치면서
얄팍한 근심인 돈 때문에 징징 거릴뿐

그런 교회는 다른 목사를 섬기는 자로 세워야 할 것입니다
이미 다 완료된 것을 누리는 목사이기에
오히려 기뻐해야 하는데
그것이 없는 목사는 딴데 신경쓰는 자 곧 보이는 것만 쫓는 자 일 것입니다
당장 쫓아내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뭔가 부족하다 라고 채워달라고 하는 자들은
복음에 관심이 없고 눈에 보이는 교회를 우상화 할 뿐이기에
늘 징징거리면서 결핍을 채워달라고 거릴 뿐입니다

아무것도 없어도 난 여호와로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여줄 턱이 없으니까 말이죠
악한 무화과 나무 일 뿐입니다

매일 매일 죽음에 넘겨졌던 바울처럼
마치 희생제물이 된 이삭처럼 말이지요

아니 그럼 목사가 죽으면 우두머리가 없으면 안되니까 또 세워야 할 것 아닙니까

바로 그겁니다

목사를 죽도록 만들지 못하면 도리어 목사가 교인들 피 빨아먹는 흡혈귀에게 등쳐먹힘 당하는 겁니다

우두머리가 없어도
마치 우두머리가 있는냥 예수님의 뒤를 졸졸졸 따라가는 
이미 다 완료된 교회를 
악마들은 이 지혜가 다 이룬 교회를 대적 송사 정죄하는 겁니다

(잠 30:27, 개역) 임군이 없으되 다 떼를 지어 나아가는 메뚜기와

(잠 30:21, 개역) 세상을 진동시키며 세상으로 견딜 수 없게 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잠 30:22, 개역) 곧 종이 임금된 것과 미련한 자가 배부른 것과
(잠 30:23, 개역) 꺼림을 받는 계집이 시집간 것과 계집 종이 주모를 이은 것이니라
(잠 30:24, 개역) 땅에 작고도 가장 지혜로운 것 넷이 있나니
(잠 30:25, 개역) 곧 힘이 없는 종류로되 먹을 것을 여름에 예비하는 개미와
(잠 30:26, 개역) 약한 종류로되 집을 바위 사이에 짓는 사반과
(잠 30:27, 개역) 임군이 없으되 다 떼를 지어 나아가는 메뚜기와
(잠 30:28, 개역) 손에 잡힐만하여도 왕궁에 있는 도마뱀이니라

(잠 6:7, 새번역) 개미는 우두머리도 없고 지휘관도 없고 통치자도 없지만,

(잠 6:7, 개역)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고 주권자도 없으되
(잠 6:8, 개역)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잠 6:9, 개역)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나


언제든지 해체 되고 다시 모였다가 또 해체되는
다이나믹한 역동적인 종말의 교회를 다 이루신 예수님을 증거치 않는 자는
빨리 내쳐 버리도록 함으로써
(네 맞습니다 잠언 6장의 개미와 30장의 네 가지 피조물은 종말이라는 심판 속의 구원을 보여주는 겁니다 마치 좋은 무화과 나무인 여고냐처럼
마치 마태복음 25장의 종말의 비유 3종 세트처럼

슬기로운 다섯처녀와 미련한 다섯처녀 비유, 일명 열처녀 비유 두 부류로 나누어야지 한데 다 묶어버리면 잘 모르죠 심판을 본 자는 완료를 다 봤기 때문에 손 놓습니다 자신은 뭘 해도 저주 받아 마땅한 자 라고 안 그러면 또 자기의 가능을 보고 자기 숙제를 해 대는 겁니다
그리고 일명 열달란트 비유인데 한데 묶지 말고 악한 종과 충성된 좋은 종 비유 
예레미야 24장 두 무화과 나무 비유와 같죠

마찬가지로 마태복음 25장 종말의 비유 3종 세트 마지막 비유인
양과 염소의 비유 누가 봐도 양처럼 보였던 시드기야 가룟유다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독립운동하는 촛불시위자 민주주의 사수하는 자
성전 사수하는 자들인 양이 오히려 염소였고
누가 봐도 염소같이 보였던 자들인 세 번 부인한 베드로 포로 잡혀간 여고냐가
도리어 양이였다 라는 팔을 어긋맞게 한 역전현상

결국 있는 자는 더 받고 즉 다 이루심을 누리게 하시고자 십자가의 피에 걸맞는
죄인 중의 괴수인 주께만 범죄한 자가 좋은 무화과였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는
결핍을 채우고자 협심하고 단결하고
성전을 사수하고 독랍운동 해방 운동하고
난 절대로 포로 된 적 없어 라고 하는 자들이 오히려
다 이룬 것을 거부하기에 없는 그 결핍 속에서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 있는 것도 빼앗기는
그 의문의 반복 다람쥐 챗바퀴 돌 듯이 하는 그 저주의 길로 가도록 내버려 두시는
방치가 저주이다는 겁니다
사생아는 매를 대실 아버지가 없어서 이미 망한 자이고
사랑하는 자에게는 매가 있기 때문에 그 징계라는 사랑으로 이 완료를 누리는 겁니다)

(마 25:28, 개역)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를 가진 자에게 주어라
(마 25:29, 개역)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마 25:30, 개역)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오로지 눈에 보이는 사람은 하나도 안 중요하고
보이지 않는 예수님만 산 소망으로 두는 증인으로써

그 큰 근심 위에 교회를 세우셨음을 누리는 겁니다
그 그치지 않는 고통 위에 교회를 세우셨음을 누리는 겁니다
이미 다 이룬

그 사도바울의 저주 받음 위에 교회를 세우셨고
그 사도바울의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짐 위에 교회를 새우셨음을 누리는 겁니다
바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짐 위에 세워진 교회야 말로 끊어지지 않는 실상인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 곧 예수님의 피 흘리힘
곧 저주 받으심이요
대신 매 맞고 미움받고 죽임을 당하심 이라는

중심 곧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이 아니면 다 울리는 꽹과리 똥덩어리 배설물
헛 짓인 지옥 행 뿐입니다

제발 지옥 가지 말라고 대신 매 맞으심인 절대저주 속에 들어가심입니다

그 마음 그 새 영 새 마음을 받은 사도바울이기에

다 내어주겠다 라고 하는 겁니다

얼마나 충만 했으면 말이지요

그 간절함이
오죽 하겠습니까 ~~~~~~~~~~~~~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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