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6 야곱을 쳐서 울게 만든 여호와 기념칭호 (호 12, 1- 6)
2024.11.10.
너희 가운데 거하는 사람 아닌 거룩한 자와 다시는 심판치 않으심 (호 11, 8-12)
호세아 2023 2024. 10. 19. 07:16
23-25 너희 가운데 거하는 거룩한 자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니 멸망치 아니하리라 (호 11, 8-12)
〈호세아 12, 1- 6, 개역한글 구약성경 1267쪽, 찬송가 483장 새 539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찬송가 364장 새 364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가스펠; 야곱의 축복〉
너는 담장 넘어로 뻗은 나무 가지에 푸른열매처럼
하나님의 귀한 축복이 삶에 가득히 넘쳐날꺼야
너는 어떤 시련이 와도 능히 이겨낼 강한 팔이있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너와 언제나 함께하시니
너는 하나님의 사람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
나는 널 위해 기도하며 네길을 축복할꺼야
너는 하나님의 선물 사랑스런 하나님의 열매
주의 품에 꽃피운 나무가 되어줘
가사 중에 - 능히 이겨낼 강한 팔이있어 땡 탈락 (그 반대 너 야곱을 꺽는 애굽의 팔을 꺽는 팔 되신 주의 오른팔 여호와 너의 기념 이름의 팔 쩔뚝 쩔뚝 지팡이를 의지함 그 아무것도 아닌 지팡이 모욕의 구원 두려움과 떨림의 구원 어찌할꼬 울게 만드시는 팔
그 오른 팔에 팔짱끼고 결혼하는 야곱의 우물가의 여인 헵시바 쁄라야 내 너에게 반드시 장가 들고야 말겠다 이 노래 반드시 따라붙는 아주 먼 옛날 이것이 헵시바 쁄라를 향한 노래 비록 가스펠은 그 반대로 음녀의 노래로 부르지만 정작 당신을 향한이 예수님이 아니라 그 반대인 고멜과 같은 이스라엘을 향한 노래임 내 너에게 반드시 장가 들겠다 너 남편 바알을 죽이고 내가 본래의 남편이니까)
〈찬송가 483장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새찬송가 539장〉
1.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네 모든 짐 내려놓고 / 주 십자가 사랑을 믿어 죄사함을 너 받으라
주 예수께 조용히 나가 네 마음을 쏟아노라 / 늘 은밀히 보시는 주님 큰 은혜를 베푸시리
2. 주 예수의 은혜를 입어 네 슬픔이 없어지리 / 네 이웃을 늘 사랑하여 너 받은 것 거져주라
주 예수께 조용히 나가 네 마음을 쏟아노라 / 늘 은밀히 보시는 주님 큰 은혜를 베푸시리
3. 주 예수를 친구로 삼아 늘 네 옆에 모시어라 / 그 영원한 생명샘물에 네 마른 목 축이어라
주 예수께 조용히 나가 네 마음을 쏟아노라 / 늘 은밀히 보시는 주님 큰 은혜를 베푸시리
4. 너 주님과 사귀어 살면 새 생명이 넘치리라 / 주 예수를 찾는 이 앞에 참 밝은빛 비추어라
주 예수께 조용히 나가 네 마음을 쏟아노라 / 늘 은밀히 보시는 주님 큰 은혜를 베푸시리
〈찬송가 364장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새찬송가 338장〉
1.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2. 내 고생하는 것 옛 야곱이 돌 베개 베고 잠 같습니다
꿈에도 소원이 늘 찬송하면서 /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3. 천성에 가는 길 험하여도 생명 길 되나니 은혜로다
천사 날 부르니 늘 찬송하면서 /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4. 야곱이 잠깨어 일어난 후 돌단을 쌓은 것 본 받아서
숨질 때 되도록 늘 찬송하면서 /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호세아 12, 1- 6, 개역한글 구약성경 1267쪽〉
(호 12:1, 개역) 에브라임은 바람을 먹으며 동풍을 따라가서 날마다 거짓과 포학을 더하며 앗수르와 계약을 맺고 기름을 애굽에 보내도다
(호 12:2, 개역) 여호와께서 유다와 쟁변하시고 야곱의 소행대로 벌주시며 그 소위대로 보응하시리라
(호 12:3, 개역) 야곱은 태에서 그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장년에 하나님과 힘을 겨루되
(호 12:4, 개역) 천사와 힘을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저를 만나셨고 거기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
(호 12:5, 개역) 저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여호와는 그의 기념 칭호니라
(호 12:6, 개역) 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공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라볼지니라
(호 12:1, 현대어) [거짓된 종교와 정치는 소멸된다] 에브라임은 바람을 친구로 삼고 하루종일 뜨거운 동풍을 잡으려고 달려간다. 그들은 거짓과 폭력만을 일삼고 있다. 앗수르와 계약을 맺고 애굽에 제일 좋은 올리브 기름을 선물로 보내면서 도움을 호소하지만 그 대가로 받는 것은 쓸모 없는 약속들뿐이다.
(호 12:2, 현대어)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유다를 심판하시고 야곱을 그 행실에 따라 벌하실 것이다.
(호 12:3, 현대어) 그의 조상 야곱은 태 안에서 이미 자기 형을 속였고 장성한 뒤에는 하나님과도 싸움을 겨루었다.
(호 12:4, 현대어) 그렇다! 그는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이 벌어지게 되자 울며 간청하여 축복을 얻어 내고 하나님께서는 벧엘로 그를 찾아와 말씀하셨다.
(호 12:5, 현대어) '여호와, 온 세계의 주인, 나의 이름은 여호와이다.
(호 12:6, 현대어) 너는 이제 네 하나님께로 돌아와 늘 사랑과 정의를 지키며 살고, 네 하나님께만 희망을 두고 지내라.
(호 12:1, 현대어) [거짓된 종교와 정치는 소멸된다] 에브라임은 바람을 친구로 삼고 하루종일 뜨거운 동풍을 잡으려고 달려간다. 그들은 거짓과 폭력만을 일삼고 있다. 앗수르와 계약을 맺고 애굽에 제일 좋은 올리브 기름을 선물로 보내면서 도움을 호소하지만 그 대가로 받는 것은 쓸모 없는 약속들뿐이다.
(호 12:7, 현대어) [가나안에서 장사꾼 정신을 배웠다] 내 백성이 가나안의 베니게 상인들처럼 저마다 손에 거짓 저울을 들고 다니며, 남의 눈을 속이기를 좋아하고 있다.
(호 12:9, 현대어) [광야 시대로 되돌아가라] 내가 애굽 땅에서 종살이하던 너희를 구해 준 바로 그날부터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다. 이제 나는 너희를 다시 천막에서 살게 하되, 우리가 광야시대에 만나서 축제를 벌이던 것처럼 살게 하겠다.
(호 12:11, 현대어) [농경 문화가 타락하였기 때문이다] 길르앗에서는 끔찍한 죄악이 저질러지고 있다. 어찌 그 백성들이 멸절되지 않으랴! 길갈에서는 농경신들에게 수송아지를 제물로 바치고 있다. 어찌 그 제단들이 밭고랑의 돌더미들처럼 무너지지 않으랴!
(호 12:12, 현대어) [죄는 해방자에 대한 반역이다] 야곱은 아람 들녘으로 도망가 여자 한 사람 때문에 머슴을 살았고, 아내 한 사람을 얻으려고 양 떼를 지켜 주었으나
어 쉬운성경은 왜 소제목이 없지 라고 했는데
11장 마지막 절에 달려 있더군요 12장 전체의 소제목 으로써 말이죠
(호 11:1, 쉬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이스라엘이 어린아이였을 때에 내가 그를 내 아들처럼 사랑하여 이집트에서 불러 냈다.
(호 11:12, 쉬운)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꾸짖으시다> 이스라엘은 거짓말과 속임수로 나를 둘러쌌다.
그럼 소제목이 달린 두 번역 중 현대어도 11장 소제목을 다시 올려볼께요
(호 11:1, 현대어) [인정받지 못한 사랑] 이스라엘이 어렸을 적에 나는 그를 좋아하였다. 그래서 그를 애굽에서 데려다가 내 아들로 삼았다.
(호 11:7, 현대어) [하나님의 사랑이 더 강해진다] 내 백성이 골수에 병이 들어 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우상을 섬기고 있구나. 바알을 향하여 도움을 호소하고 있구나. 그런데도 바알은 그들을 부축하여 일으켜 세우지 못하였다.
(호 11:10, 현대어) [추방당한 곳에서 돌아온다] 이제 내 백성이 나를 뒤따라 올 것이다. 내 백성이 사자처럼 포효하는 나의 소리를 듣고 서쪽에서 달려올 것이다.
(호 11:12, 현대어) [예언자의 말씀을 듣지 않은 죄] 에브라임은 온갖 거짓말로 내게 벽을 쌓고, 이스라엘 족속은 속임수로 내가 전한 말을 가로막는다. 그러나 유다 백성은 여전히 나를 믿고 그들의 거룩한 하나님으로 섬기며 충성을 바치고 있다.‘
(호 11:12, 쉬운)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꾸짖으시다> 이스라엘은 거짓말과 속임수로 나를 둘러쌌다.
자 이렇게 누가봐도 아무리 다시 읽어도 이거 사랑아니다 라고 다들 말하는데
주님 혼자만 아주 신이나셨는냥 반드시 이 사랑을 이루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과연 사랑 맞는지 안 맞는지 함 해 볼까
그 당사자 에게 함 물어보자 라고 말이죠
자 인터뷰 손님으로 에브라임을 모셨습니다
에브라임 당신은 지금 여호와께서 사랑하신다 라고 하시는데
과연 에브라임 씨는 이 말이 맞다 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게도 때리시고 매로 작살을 내는 것 우리가 다 봤고요
그 증거 영상까지 다 찍어서 취재를 했거든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에브라임씨
저는 사랑 맞다고 생각합니다
엥~~~~~~~~~ 군중들이 다 야유를 보내면서
어떤 관중은 당신은 지금 당신 부모에게 하나님에게 가스라이팅 당하고 있어요 라고 고함을 칩니다
그러다보니 다른 군중들도 맞아 맞아 라고 고함을 칩니다 저런 하나님일 리가 없어 라고화살촉의 집단광기처럼 말이죠 지옥 시즌 2가 나왔던데
갑자기 베놈으로 변하다 보니 영 재미가 없어지더군요
서양의 선악 개념이 없는 무작위 무조건 무이유로 지옥개념 이었 었었었었섰는데
다시 회귀로 해서 지금 이 땅이 지옥이라는 결론과 동시에
인간이 살아있다 라고 우긴다는 그 자체가 지옥
아무리 자식 놓고 아무리 부활을 해 본들 역시나 지옥이라는 것
지금 현재의 상황 곧 환경을 대변하는 증상물로써 다시 선악으로 다시 되돌아오는 회귀로 마무리 되더라 말이죠
선악에서 탈출하나 싶었는데 역시나 ~~~ 오징어게임도 이 땅이 지옥 그 자체이다 라고 했는데 투 는 어떻게 될지 뭐 기대해 본들 소용 없겠지만 말이죠
그것이 바로 인간의 자기 한계에 부딪혀서 나오는 주변환경에서 벗어날 수 없다 라는 의미에서
오늘 본문에 장소와 그리고 인간이름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이 나옵니다
기념 이름 기념 칭호 말이지요
장소 뭐 벧엘 이나 브니엘이나 또는 에브라임 즉 북이스라엘이 지금 딛고 있는 땅
약속의 땅 아닙니까 백날 그렇게 좋은 의미 다 갖다 붙이고 도배를 해도그 우상의 속성은 못 버리기에 출애굽을 단 한번도 한 적이 없음 취급 당하는 겁니다약속의 땅 자체도 원래는 우상의 땅이였다 말이죠 아브라함도 원래 우상조각가 였듯이 말이죠
그 우상성은 모든 인간의 실패성을 거쳐서 주님이 손수 직접 해결할 문제이지
인간의 숙제를 하면 할수록 더 골치아픈 완악한 수건을 안 벗는 역시나 도로 우상 자아숭배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이름도 나오는데요 그것도 기념이래요 글쎄
우리가 이 기념 이름에 대해서 한번 몇 년 전에 살펴본 적이 있었지요
(겔 36:21, 개역)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
(겔 36:22, 개역)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겔 36:23, 개역) 열국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은 이름 곧 너희가 그들 중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로 인하여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열국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사 26:8, 개역) 『여호와여 주의 심판하시는 길에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며 주의 이름 곧 주의 기념 이름을 우리 영혼이 사모하나이다』
기념(새겨버리는) 이름 (사 26, 1-21)
18-36 도저히 지울려고 해도 지울수 없고,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마음 판에 새겨져 버린 이름
https://crosslamb.tistory.com/2149
19-97 여호와의 땅과 이름을 더럽힌 이스라엘심판과 주의 이름을 아낀 여호와 (겔 36,16-21)
https://crosslamb.tistory.com/2463
지금 에스겔이 30장 까지 올라갔으니까 아마 몇 달 후 늦어도 10개월에서 1년 안애
다시 살펴보고 나누어야 할 말씀이니까요 여섯장 하는데 6개월 걸리니까 말이죠
미리 기념이름에 대해서 잠깐 먼저 언급하자면
이 기념 이름은 회개 또는 돌아온다 라는 말씀이 성취될 때
결국 거봐 약속대로 언약대로 돌아오게 되잖아 라고
그냥 안 돌아오죠 회개 라는 빵구멍이 뚫힘에 의한 눈물
오늘 제목인 이 눈물을 흘리게 만드시는 이름이다 라는 겁니다
그냥 이름도 아닌 기념 이름
왜? 너를 다시는 야곱이라 하지 않고 이스라엘이라 라고 부르시겠다 라고 한 그 당사자가 바로 여호와 본인이니까
그런데 그 이름 교체 때문에 정작 여호와의 이름이 더럽혀져야 한다 라는 사실
그 카이 동사무소에 가서 이름 고쳐서 새롭게 수정하는 그런 서류 떼고 하는 그런 개명신청이 아니다 라는 겁니다
본인이 이름 수정해 놓고서는 본인의 이름이 더렵혀지는 그 과정을 거쳐서 수정하시겠다 라는 식이다 라는 거죠 아니 왜? 그 이유는 우리가 야곱의 눈물에 대해서 살펴 봐야 하기 때문에
그 과정을 거쳐서 다시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곧 아들로 만드심은 주님 자신의 몫이다 라는 것을 정작 야곱은 이 이스라엘 됨의 실패를 거쳐서 알게 되듯이 말이죠
주님 본인이 야곱을 창세전에 태어나기도 전에
이유 없이 사랑하기로 작정을 하셨다 라고 해 놓고서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 라)
그 어떤 인간의 개입도 없이 홀로 그 약속을 성취함에 있어서
누가 방해자로 나서는지 그것을 극복하시면서 이루시는지를 말이죠
물론 미리 다 예상 하시겠지만
정작 우리는 다 안다 라고 하면서 늘 빠뜨리는 그 누락의 속성
아니 도대체 왜 우리는 알면서도 늘 빠뜨릴까? 건망증인가?
그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자구요
먼저 오늘 말씀의 배경이 되는 장소는 당연히 호세아서는 북이스라엘입니다
그러나 이 이스라엘의 이름을 정통성을 따라 나라 이름을 아무리 인간이 국명을 그렇게 지어도
지금 현재 이스라엘도 마찬가지 이지요
정작 이 이스라엘의 의미를 존재로 끌어올 뿐이지 기능의 의미는 전혀 모른다 라는 겁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원래 가나안 민족의 땅으로써 우상숭배의 터 이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왜 허허벌판 안 쓰는 땅 인간들이 없어서 들어갈 땅이 많고도 많은데
왜 하필이면 지금까지도 사람들이 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을
남의 나라 땅을 빼앗아서 왜 생고생을 서로 서로가 하느냐 라고 비꼬듯이
왜 깨끗한 땅 다 내버려 두고 저 우상숭배의 땅을 차지하느냐 라는 점입니다
물론 노아 언약에서 함과 그의 아들 가나안에 대한 저주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우상숭배의 원천이 되는 곳으로 삼은
음부의 권세가 되는 터 이기 때문입니다
지옥의 문이요 바벨탑처럼 말이죠
소돔과 고모라요
큰성바벨론이요 그 원조는 애굽이요 예루살렘이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곳
바로 세상의 중심 시온이기 때문이다 라는 겁니다
그 지옥에 이스라엘을 세우셨다 라는 겁니다
그러나 잔칫집 애굽이 아니라 애굽이 낳은 함이 낳은 함의 자식의 땅인 거죠
그러니 인간이 생각하는 자기 존재로부터 출발하는 천국 개념이 다 깨어지는 겁니다
어떻게 음부의 권세 곧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지 않고서
세워지는 그런 상상의 망상 천국에 들어가고 하느냐 라는 거죠
이것이 유대교죠 그 유대교를 따라 천주교 구교 카톨릭 말이죠
그리고 신교 개신교 또한 그런 천국을 원한다 라는 사실이
제가 10대 끝 무렵 19살에 예수님을 만나
20대부터 지금까지 개신교의 모습이 바로 가짜 천국 종교놓이에 다들 빠져있음을
저 뿐만 아니라 다들 인정을 하면서 뭐 미래는 희망이 없다 라는 식으로 보더라 말이죠
그건 단순히 교회가 문을 닫는 교회가 많아서가 아니라
또는 자본주의 시대에 다들 돈에 빠져서가 아니라
그 반대죠 아직도 교회가 너무 많기 때문이요
아직도 돈이 너무 너무 적어서 라는 겁니다
아니 무슨 소리냐 돈이 많아서 타락하지 돈이 적어서 라니
돈이란 가장 좋은 노예인데 그래서 불의한 돈에 충성하지 않는데
어떻게 정결한 돈에 충성하겠느냐 말이죠
그 좋은 노예가 너무 너무 적으니까
거꾸로 그 노예를 반대로 주인으로 삼아버리니까 문제이다 말이죠
심지어 억수로 어마 어마한 돈에 의해 주인 자리 빼앗겨서 노예가 되는게 아니라
너무 너무 적은 돈에도 불구하고 노예가 되어버리니 말이죠
그 좋던 수 많은 노예를 바보 같은 거꾸로 주인으로 삼아서 거꾸로 노예가 되어버리니
몇푼 안되는 돈에 의해 다 주인 자리 빼앗기고 노예로 전락하더라 말이죠
지금 한국 청년들이 겨우 3-4백 하는 돈 빌리다가 대학공납금이겠지요 대출받다 보니
저절로 원금의 4배나 불어서 졸지에 신용불량자가 되더라 말이죠
은행은 어렵고 사채 시장에서 받다보니 말이죠
평균치가 1000 만원 빚이 된다는 거예요 그카이 뭐 이래 저래 또 사건에 역이고 하다 보니
그래서 자살을 제일 많이 하는 나라가 된 거죠
그럼 돈이라는 노예를 부릴수 있는 주인은 아무나 되나요? 다들 돈의 노예로써 활동하는 돈 먹고 돈 먹는 노예들 속에서 주인의 위치가 될려면
돈을 노예처럼 잘 부릴려며는 돈에 대해서 잘 알아야 돈을 부려먹을 수 있잖아요
심지어 지금은 돈이 신의 자리에 앉아버려서 다들 돈의 노예로 지금 살아가고 있는 판국에 말이죠
금융 지식을 잘 알아야 돈을 부릴수 도 있겠지만 그게 뭐 말처럼 쉬운것도 아니고요
돈 앞에서는 윤리 도덕 그리고 교육(교훈) 조차도 먹혀 들지 않으니 말이죠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불의한 청지기 비유 아닙니까?
그 불의한 돈에 충성하니까 주인행세 했다고 비방받는 가운데서도 정작 칭찬받더라 말이죠
결국 종말이 이와 같다 라는 겁니다
자기의 끝을 땡겨서 끝을 대비하는 자
노후생활 자금을 미리 계획하라 라는 말이 아니라 미래를 대비하라가 아니라
죽음을
종말을 빈터 공백을 땡기라 라는 종말에 나타날 그 인물을 맞이할 준비됐나 라는 겁니다
미래를 대비하라와 종말이나 죽음 또는 심판을 대비하라 라는 말이 미래와는 다릅니다
오히려 미래를 대비하고자 자기 자식의 선생으로 가정교사로 멘토로
노아 다니엘 욥을 신앙선생으로 세우겠다 라고 했는데
하나님은 역정을 내시면서 그래? 그럼 너는 구원얻는다 치자 내 너의 아들 만큼은 반드시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반드시 지옥에 보내겠다 라고 하시더라 말이죠
뭐 지옥 보낸다 라는 말 보다
하나님 본인이 목숨을 걸겠다 라는 말에 다들 기겁을 할 정도이다 말이죠
노아도 다니엘도 욥도 다 심판의 주 여호와를 증거했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아무리 봐도 구원을 증거하는 자 로 밖에만 안 보이는 겁니다
그카이 미래를 대비하는 마음으로 자식에게 노아 다니엘 욥을 신앙선생님으로 맞이하겠다 라는 거다 말이죠
(겔 14:14, 개역)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 14:20, 개역)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거기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오니 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아니 노아 다니엘 욥 조차도 사자 앞에 비둘기마냥 두려움과 떨림으로 벌벌벌 떨면서
겨우
아주 아주 겨우 겨우 구원받았는데
뭐 저들을 신앙의 모범으로? 구원받은 자의 선배로?
그럴정도로 배부른 구원이 아닌데
능욕과 모욕의 무시 무시한 심판인데? 그 노아 다니엘 욥 의 세가지 성경말씀 속에 어디 인간 구원이 있더냐 말이죠
오히려 너희가 더럽힌 이 여호와의 이름만 겨우 겨우 구원할 뿐인데 말이죠
뭐라구요? 겨우 겨우요 하나님 본인도 겨우 겨우 라고 하셨어요
네 겨우 겨우
아주 아주 겨우 겨우 말이지요
신약에도 있지요 사실 구약 신약 다 그렇지만
신약은 마치 율법 강화인 산상수훈처럼 구약 보다 몇배나 더 강화된
더더더더 더 아주 아주 겨우 겨우입니다
예수님에게 다가오면서 선생님이시여 라고 하던 그 니고데모 생각나시지요
사람이 거듭나야 천국에 들어간다 라고 말이죠
(요 3:1, 개역)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요 3:2, 개역)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요 3:3,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 3:4, 개역)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요 3:5,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그러고 보니
[더더더더 더 아주 아주 겨우 겨우입니다]도 안 먹혀드네요
아예 불가능 한 단절 그 자체
절대단절 절대차단인 진짜 거룩의 구별성이 등장해 버렸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물은 노아 홍수 심판이고요
욥기와 다니엘서는 다윗언약에 해당되는 새언약인 성령으로 성령의 놀라운 탄식인
주님의 눈물로 욥은 하루 아침에 10명의 자식들 다 죽고요 온 몸이 아토피 저주를 받은
마귀로부터 시체로 취급당하는 시험을 겪었다 말이죠
다니엘은 사자 굴 속에 들어갔구요 금식은 뭐 기본이구요
이게 사람이 살아있다 라고 할 수 있는 모습입니까?
이런 종말을 누가 미리 앞당겨서 땡길수 있겠습니까? 미래표절이라고 누가 카던데 미래 배끼기
종말 표절을 누가 할 수 있겠냐 말이죠
네 맞아요 걱정 마세요 물과 성령이 하십니다
찢고 싸매고 찢고 싸매고
마치 국악의 장단처럼
그럼 노아 다니엘 욥은 뭐라고 하겠습니까?
정년이처럼 살려 주시오 ~~~~~~~~~~~~~~ 살려 주 시 오
네 으악 이것만이 종말의 인물을 만난 자들의 모습이다 말이죠
그것이 바로 야곱의 눈물입니다
지금 북이스라엘 땅은 물론 약속의 땅에 속한 남유다와 같이 말이죠 약속의 땅 안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래 그 가나안 땅은 우상숭배의 민족의 우상숭배의 땅입니다
그 약속의 땅이 들어간 이스라엘 자손은
다시는 야곱이라 칭하지 않겠다
반드시 이스라엘로 칭하겠다
왜? 나 여호와가 내 이름을 걸고 너를 이스라엘로 만들테니까
그래서 이 요한복음 3장 1절부터 나오는 니고데모 이야기를 거쳐서
말씀처럼 그리고 어린아이 찬양처럼
요한 복음 3장 16절 이라고 나오는 겁니다
야곱은 이제 새 이름 이스라엘로 살수 있느냐?
자기가 자기 이름 개명한 것도 아닌데
남이 붙여줬는데
그 분 여호와 기념칭호가 자기 이름 걸고 했지
나 당사자 새이름인 이스라엘 이름을 부여받은 나 당사자는
이스라엘이 뭐 어떤 이름인지 무슨 의미인지
뭘 알아야 바꾸던가 거기에 맞추는 조건을 성취하던가 하지
아무것도 모른채 이름만 달랑 바뀌었을 뿐이지
야곱의 속성은 죽을때까지도 안 바뀌어지더라 말이죠
뭐 야곱만 그렇겠습니까 다들 마찬가지 이다 말이죠
아무리 약속의 땅에 들어가고
들어가니까 온 갖 거룩의 의미를 아무리 때려붓고 해도
그 어떤 이유로도 우상숭배만 하던 인간이 무슨 수로 바뀔수가 있겠습니까
실천의 대가 라고 하는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밤에 몰래 찾아갈 정도로 존경하고
다른 바리새인과 달리 아무리 우호적인 태도로써
선생님 이라고 칭호를 해도
여호와를 부르는 사자 앞의 비둘기는 역시 아닌채로
어떻게 해서든 실천할 자세로 맞이해도
예수님은 살살 맞게 그 마음자세 태도를 봐 주시는 것이 아니라
너는 니 마음에 정직한 영이 없는데
왜 날 찾니? 라고
더더욱 그의 대접에 걸맞게 아무리 완벽하고 모든 것을 갖춘 자세로 임해도
예수님은 예수님 쪽에서 순수 집적 마련하신 이 화목제가 아니면 다 소용없다 라는 식으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천국 없다 라고 하시는
이 단절의 갭 간극을 더더더더더
더유 더유 더 부세유 어허 더유 세게 더더더더더
어떻게든 좁힐려는 그 속임수에 더유 더유 더 간극을 더 벌리시더라 말이죠
물과 성령 이라는 의미가 바로 그런 단절 이다 말이죠
마시는 물이 아니라
노아 홍수 라는 물심판이자 불심판이다 말이죠
그래야 찌끼 혼합물이 다 빠지는 (인간이 나서봤자 결국 혼합물 찌끼 썩는 일 밖에 더하겄냐 말이쥬)
찢겨져야 하고 밭갈아 엎어버라는 기경 전복시켜야 하고
노아 홍수는 노아만 당했나요 뭐?
주님의 은혜로 두 손으로 싸매어 주시는
소금쟁이처럼 아쿠아룸처럼 그 물이 뭍지 않도록 하시는 자와 (이게 은혜죠 딸랑 공짜 은혜만 있는게 아니라 상대적인 애굽의 바로왕의 팔을 꺽으심과 함께 한 세트로써 그 심판 속에서의 건짐이지 이것이 두려움과 떨림이지 한 세트가 없이 딸랑 공짜 혼자만으로 펼쳐지지 않죠잉)
물에 빠져 죽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함께 있는 와 중에 둘로 갈라지는
하나는 천한 진노의 그릇 하나는 귀한 긍휼의 그릇으로 삼았으니 말이죠
니고데모가 바리새인이지만 유대인 아닙니까
그 카이 에발산 그리심산으로 나누어진 그 사건을 모를 리가 없고
제물이 둘로 가르는 그 의미를 모를 리가 없지만
정작 몰랐다 말이죠
알아도 모른다? 모른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들 껍데기만 도사요 박사요 달인들 실천까정 하면서 말이죠
(왜냐하면 속 알맹이를 몰라서가 아니라 그거 속 알맹이 했다가는 자기가 그 동안 쌓아 놓은 공든탑도 같이 아무것도 아니였음을 외쳐야 하기에 그렇게 되면 남 앞에 내세울 자랑꺼리가 없게 되니 이게 걸림돌 거리끼는 걸림돌이 되는 겁니다 내세울꺼리가 있어야 남을 이겨먹고 꺽을 수 있는디 말이지라우 결국 자기가 중요하지 여호와 하나님은 하나두 중요치 않응께잉
그래서 아간의 범죄로 아이성을 못 이기는 겁니다 아간은 그들의 증상물잉께 ~~~)
그럼에도 단 한번도 창조주가 누군지 모른다 여호와가 누군지 모른다 라는 겁니다
희힌하지요
그카이 천국이라는 장소에 들어가냐 못가냐 만 생각하지
그 천국에 있는 그분과의 사귐은 후차적인 것으로 본다 라는 겁니다
일단 들어간 뒤에 그 분과의 사귐을 생각하지
들어갈지도 못들어갈지도 모르는 판국에?????
먼저 사귄다 ? 에이 말도 안돼 라는 그 생각 자체가 육의 생각 하나님과 원수된 생각인 거죠
보이는 것만 소망하겠다 라는 겁니다 그 너머의 것인 보이지 않는 것을 소망한다는 자체가 불가능하기에 자기 꾀에 자기 한계로 걸려 넘어지는 누워서 침뱉기 하는 거죠
율법이 저들의 올무가 되듯이 말이죠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주를 삼키듯 자기를 삼키는 겁니다
자기가 자기를 잡아먹는 거죠
그런데 그렇게 묻는 그 니고데모 옆에
그 천국의 주인이 되시는 분이 옆에 있어도
안다 모른다?
그렇다면 창조주가 여호와가 누군지 단 한번도 믿은적도 없을 뿐만 아니라
안 적도 없다 라는 겁니다
그래놓고 입에 침이 마르지 않도록 주의 이름을 붙이고 다녔다 라는
이 역설의 모순 의 간극을 무슨 수로 좁힐수 있겠냐 말이죠
남도 아닌 내가 그 간극을 벌려놓고서는 내가 좁히겠다 라고 내가 나를 매일 매일 속이고 있는데 그 속이는 자의 속성인 야곱의 자리에서 때려죽어도 벗어날려고 하지 않는데
벗어 날수도 없는 거지요뭐뭐뭐 아니할 뿐만 아니라 할수도 없다 라고 우리가 로마서 8장에서 살펴봤지요
(롬 8:7, 개역)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천국이란 바로 예수님으로써 그 자체로써
천국 되시는 예수님이
곧 천국이 나를 제대로 죽이시는 물에 빠뜨려 죽이는 천국이요
(이 야곱을 죽여야 이스라엘과 연합 세례 한다 말이죠 물과 성령 이 물이 나를 제대로 죽이는 절대심판 곧 노아홍수이다 말이죠 물가지고 날 씻든지 불 가지고 날 태우든지
그래서 야곱 언약 언약이라는 말은 나를 비언약으로 만드는 언약이다 말이죠 그래야 본래의 자리인 이스라엘 자리로 본래 본향의 이름으로 만드시는 기념칭호이니까 말이죠)
나를 죽여놓고서 성령으로 곧 은혜로 노아도 은혜를 받았다 욥도 은혜를 받았다
다니엘도 은혜를 받았다 라고 했기에
그 죽음 속에서도 은혜를 성령을 받았기에
(은혜란 애곱왕 바로왕의 팔을 꺽었듯이 야곱의 팔도 꺽어서주님의 팔도 꺽어서 야곱의 팔에 기브스 주의 팔을 대신 붙여서 싸매어주시는 거죠애굽팔이나 야곱팔도 둘다 양발차기로 꺽지만
야곱에게서는 주의 팔을 먼저 꺽으심이 먼저 떳기에 주의 팡을 대신 붙여서다시 싸매어 주신다는 사실 이 다시 싸매어주심이 없어서 애굽은 미움밭기로 작정이고이 다시 싸매어 주심 때문에 사랑하시기로 작정 결국 먼저 떳다는 그 약속은주의 팔을 꺽으셨다 라는 사실 우리에게 붙야주실려고 이 둘이 된 원수관계를 하나 되게 하시는 이 화목제물 되심이라는 섬기시는 왕으로[원수 사망권세 이기심] 양을 위해 오심 대신 죽는 목자[끝까지 섬기심]로 오심 이 두 막대기를 하나로 붙이심으로 오셨다 말이죠)
다시 싸매어 주시는
베드로를 물에 빠뜨려 죽이고 다시 물 속에서 건져 살리실 싸매어 주실때에
어 주님 당신 도대체 누구시길래 저 풍랑도 저 사망 권세도 저 죽음도 잠잠케 됩니까
방금 죽은 나를
죽음이 덮쳐진 나를 물이 덮쳐진 나를 살리시는 도대체 주님 당신 누구시오 ~~~~~~
정년이가 누구시오 당신 누구 시요 ~~~~~~~~~~ 라고 우는 겁니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예수님 이겨먹었다는 냥 씨름해서 축복 따내고
장자권 따 내고
물 위를 걷는 남들이 얻지 못한 축복을 왕창 받았을때에는 언제고
이제는 살려 주시오 ~~~~~~~~~~~~~~~~~~ 살려 주시오 ~~~~~~~~~
라고 울면서
비로소 사자 앞에 비둘기처럼 두렵고 떨림으로 부들 부들 바리바리 온 몸에 몸살 감기 걸린
땀범벅이 된 채로 떨면서 그 이름을 비로소 맞이하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기념칭호입니다
즉 내 이름을 높일려는 개 수작이 들통을 당함과 동시에
그 수작을 들통내신 당신의 이름이 높여질 때
정작 나는 그 이름을 짖밟고 올라갈 생각만 한다 라고
내 아픔만 알았지
주님의 찢겨짐 자체를 몰랐다 라는 거죠
나 한테 매 맞는 주님
나 한테 버림받는 주님
졸지에 잃어버린 동전은 내가 아니라 당신을 잃어버린 동전으로써 찾으신
하나님 아버지의 외침인 이는 내 기뻐하는 자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라는
당신 만이 장자 맏아들이요 당신만이 충복받을 자 인데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서
하나님에게 저주 받은 자 이다 라고 뒤짚어 씌웠으니
40일이 지나서야 그 단절 속에서
비로소 물과 성령을 받게 되니
비로소 비로소 가슴을 치면서
어찌할꼬 라고 우는 이스라엘로 만드시더라 말이죠
약속하신 성령 곧 정직한 영이 없어서 우는 자 하나 없는 가운데
주님이 우리 손에 달려 죽으셨으니
이제 그 약속도 소용이 없을 정도로
내가 우리가 그 약속을 무용지물로 만들 정도로 죽여
짖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약속을 이루시고자 다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약속한 대로 성령을 주시니까
비로소 기념 이름 답게
원수도 사랑하는 그 이름 맞군요 맞닿께롱
그 이름만 높여지고 그 이름만 기념이 되시더라 말이죠
그카이 모세가 어서 죽어주세요 라고 기념이름이 되어달라고 말이지요
그 카이 비싼향유를 부은 여인이 예수님을 미리 어서 죽어주세요처럼 미리 장사를 치릉께
복음이 증거되는 곳 마다 이 사건이 기념이 되도록 하신당께
결국 화목제물 너희가 날 사랑한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사랑해서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아끼지 않았다 라는 거지요잉
그 카이 니고데모 이야기 하고서는
거봐 내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해서 독생자를 주셨다 화목제를 주셨다 라고
호세아 11장에 불만 있는 자들의 입을 잠잠케 만드시는
허걱 으악
살려 주시오 살려 ~~~~~~~~ 이 려는 길게 길게 뿜어야 한당께롱
지팡이를 의지하는 야곱이 지팡이가 뿌라지면서
자빠져 실족해 웅성 우성 거리면서 비웃는 가운데서 말이지요
살려 주이소 ~~~~~~~~~~~~~~~~~~~~~~~~~~ 이것이 야곱의 눈물이라 지라우
그래서 니 이름이 뭐 당냐? 아니 이 판국에 왜 이름을 물었샀수
야곱 이지라우
다시는 야곱이라 허지 않구 이스라엘이라 할랑께?
너가 하나님과 싸워 이겼뿌응께 그렇게 알당가 ~~~~~~~
그카면서 허리 뿌쌋뿌고 남자는 허리가 생명인디 그 생명을 친 거지요
물에 빠져 죽이는 고자로 만든 셈이다는 겁니다
지팡이 만을 의지하면서 걸어야만 하는
이것이 할례의 정신 연기의 정신 표정을 진지하게 하면서 목을 꺽어가면서 말이죠
이것이 세례의 정신
곧 성령의 정신입니다
곧 성령이란 우리 마음판을 도려내어서 이 중심을
예수님의 중심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의 영으로 채우시는
이 다 이루었다 라는 십자가의 영을 성령의 놀라운 탄식을
여호와의 뿔로 빵구멍 내어서 주틀로 만들어서 예수님의 마음을 부어버리시는 겁니다
얼마나 정직한 영이 없으면 중심도 없고 마음도 없는
그저 육신의 생각 뿐이였으면
예수님을 죽여도 40일 동안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았다 라고 자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약속한 성령이 부어지니까
40일 만에 그 긴 시간동안 그 동안 뭐하고서
40일이 지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손으로 예수님을 찢어죽인 것을 비로소
어찌할꼬 어찌할꼬 라고
마음도 없고 중심도 없는 그 한 복판 한 가운데에
성령이 오니까 비로소 살인자요 원수요 지옥의 몸임을 알고
우는 겁니다
비로소 주의 주 되심을 비로소 보고서
벌벌벌 말이지요
40일 동안은 지가 사자라꼬
사자 로써 예수라는 그 악질 중의 악질 범죄자를
그 사상범 어린이 해방군 총사령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 라는
그 방구뽕을
똥물에 7번 담겨짐을 당하고서야 비로소 6번도 안돼
39일 째도 안돼
절대심판의 자리에 놓여지는 그 우는 자리에서
그 심판의 자리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구아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는
마귀 느부갓네살 왕을 주의 종으로 삼아서 그 모욕적인 바벨론 강가에서
기생이나 부르는 노래로 취급받는 그 예루살렘 중심의 노래를 울면서 부르면서
비로소 그 기념 이름을 부르는 겁니다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그 단절의 자리에서
비싼 향유를 부은 창녀 마리아는 창녀의 자리에서
기생라합은 기생의 자리 심판받아 마땅한 가나안 원수의 자리에서
40년 동안 간담이 녹아서 부들 부들 떨면서 말이지요
비로소 가슴을 치면서 어찌할꼬 어찌할꼬
이것은 단순히 사람의 감정을 끌어올리고자
머리가 쭈삣쭈삣 희열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인 숭고?
이 숭고 라는 단어로도 부족하기 짝이 없는
너무 너무 아름다운데 그 아름다움에 다가갔다가는 타 죽고 마는
그 무시 무시한 아름다운 영광 앞에 머리를 바짝 엎드려 부들 부들 두려워 떨리는 그 속에서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때 말이지요 감히 얼굴도 못들고 바짝 엎드려서
그 영광의 광채에 안 타죽을려면 말이지요
왜 안 타죽지? 나는 사망의 몸이자 지옥의 몸일 뿐인데
최고의 영광을 최고의 지혜를 바로 직통으로 맞딱뜨렸으니
얼마나 다리가 부들 부들 떨리지 않겠냐 말이죠
저절로 모든 무릎을 꿇게끔
안그러면 저절로 그 무릎이 녹아져서 저절로 빵구멍나는 돌파 돌격 충돌로 인해
즉사했던 웃사처럼 말이지요
얼마나 우리가 모욕을 했잖았습니까?
더럽다고 침을 뱉었고 발길질 했고
뺨을 때리면서 어느 손으로 때렸게!!!
그 앞에서 아파트 아파트 중독게임 술게임을 했고
가시 면류관을 씌웠고 요즘 애들이 아이들 괴롭힐때에 똥먹이고 하듯이 말이죠
왕따 시킬때에 가장 모욕을 주고자 함이지
가장 명예로움과 자랑할 꺼리를 주지 않잖아요
평생을 얼굴 못 들고 다니겠끔 모욕과 능욕을 심어버려서 스스로 자살하도록 몰아가는
평생 트라우마를 심어버릴 정도로 말이지요
그냥 이유 없는 미움을 퍼부어야 하는 겁니다
왜 그랬니 라고 물으면 아무 이유 없어요 그냥 심심하니까
주유소 습격사건의 대사 이거든요
자기들도 그 결핍을 맥꿀방법이 없으니까
자기 보다 더 약한 자를 찾아내어 화풀이 원한을 풀고자
그 결핍을 채울려고 하는데 채우기는커녕
더 그 결핍에 밤새도록 하이에나처럼 우는 겁니다
배고프다 라고 배 채워 달라고 그 배가 지옥이니 바닥이 없으니까
아무리 밑빠진 장독대에 물을 채우고 채워도 채워지지가 않는 거지요
그냥 이유 없이 미우니 그냥 죽어라 자살하라 라고 하면 자살 할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그 마귀를 미리 격는 것이 주님의 심판인데
이 주님의 징계의 매가
이 단절의 성령을 미리 받으니
뒷북치듯이 죽이는 마귀의 살기는 시시할 뿐인 겁니다
아이고 그것도 괴롭히는 것이가?
절대심판 절대저주 절대죽음 근처도 못가는 주제에
예수님의 이 정녕 죽으리라 근처도 못 오는
십자가의 죽음 앞에
어딜 사망아 누굴 쏘며 어딜 머리를 쳐 들고 있느냐 말이죠
이 은혜가 이 십자가의 죽음
진짜 죽음인 이 십자가의 피 흘리심의 용서가 왕 노릇 하고 있는데 말이지요
그래서 야곱은 우는 겁니다
그 우는 자리에서
이스라엘이 나오는 겁니다
허리 뿌싸진 그 자리에서
그 빵구멍 난 빈공백의 중심이자 한 가운데 이며
마음이 없는 야곱에게 비로소 마음이 생겨서 말이지요
비로소 우는 겁니다 어찌할꼬 어찌할꼬 내 죄 때문에 갈기 갈기 찢겨지신 예수님을 보고 말이죠
그게 바로 여호와 기념 이름으로써 나를 지독하게 괴롭히는 전능자 라는 이름이다 라는 거지요
그 여호와가 이제는 신약에서는 예수 라는 이름으로써
더더욱 괴롭힘에 있어서 모든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겠다 안 허요
이제 죽었다 복창 할 판국 뿐인 겁니다
그 죽은 자리에서 새로 태어나니께엥
(고후 6:8, 개역)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고후 6:9, 개역)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고후 6:10, 개역)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죽은자 같으나 산 자요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다 가진 부요한 자요
속이는 자 같으나 참 되니
여기서 왜 속이는자가 왜 나오는거여 라고 했는데
아 바로 야곱을 말하는 구나
이 야곱을 이스라엘을 맹그는 것은 오로지 여호와의 이름 기념으로만 이루신당께요
보라 지금은 은혜의 날 이요 뿌뿌뿌 나팔절 해방되었네 해방되었네 죄와 사망의 법에서 ~~
이는 구원의 날이로다
(롬 8:2, 개역)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1, 개역)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 8:2, 개역)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7, 개역)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롬 8:8, 개역)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사 49:8, 개역)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로 백성의 언약을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로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케 하리라
(고후 6:2, 개역)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 6:2, 새번역)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은혜의 때에, 나는 네 말을 들어주었다. 구원의 날에, 나는 너를 도와주었다" 하셨습니다. 보십시오, 지금이야말로 은혜의 때요, 지금이야말로 구원의 날입니다. / ㉡사 49:8(칠십인역)
(고후 6:2, 현대어)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ㄱ) `너희를 불쌍히 여기는 때가 오면 너희가 부르짖는 소리를 내가 들어 내가 너희를 구원하겠다.' 지금이 바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환영하고 계시는 때이며 오늘이 바로 여러분을 구원하시려는 날입니다. (ㄱ. 사49:8)
그 비밀을 이제서야 알아 부려 먹었당께
어화 둥둥 내 사랑 야곱아 아니 이스라엘아
어화 둥두둥 내 사랑
이리 보아도 내 이스라엘
저리 보아도 내 이스라엘
나의 사랑 헵시바~~~야
나의 기쁨이 쁄라~~~야
그카이 이스라엘 아들에서 도저히 이스라엘이 아들 곧 출애굽을 못 항께
예수님이 반칙으로 참이스라엘이 되셔서 출애굽을 하시공
이 이스라엘은 졸지에 철학자들이 말했듯이 성기가 없는 육의 단절 할례 차단
육으로 나지 않고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않음 오직 하나님의 뜻으로 난
물론 의학계에서는 말도 안 되기에 생식기가 있어서 존재하기에 고치지만
무의식에서는 없는 존재라는 비존재가 진리이다 라고 여성이 진리이다 왜? 성기가 없응께 라고 없는 자 취급하는데 이 비존재를 진리라고 하는데
이 이스라엘을 꼬추를 뿌셔버려서 짤라내어서 여자로 예루살렘 딸로 만들어서
아이고 내 낭군이 당신 이셨구려 라고
해품달 해를 품은 달처럼
여자가 남자를 뒤에서 안으리라
나를 위해 죽으신 내 남편 내 낭군이 당신이였구려 하고 울면서 울면서
뒤에서 껴 앉으면서
이 뒤에서 껴 앉는 모습은 마치 그 뭐였더나 마리아가 예수를 안은 모습
에비타 였던가? 에뭐타 였는데 에이 또 검색해 보죠 뭐
아 피에타 이탈리아어로 비탄 슬픔 이라는 뜻이네요
야곱이 그렇게 비탄에 쩔어서 우는 겁니다
이 성령의 놀라운 탄식을 말이지요
베드로가 예수님을 끝까지 지켜내지 못해서?
끝까지 따라가겠다고 장담한 그 장담을 못 이루어서? 이루어 본들 어차피 의문의 반복일텐데 여전히 결핍이다 말이죠
까짓꺼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지 못해 너무 너무 억울해서? 그것도 아니지라우
마리아가 아들을 끝까지 지켜내지 못한 엄마라서?
이것은 다 육의 생각입니다
하나님과 원수된 가짜 하나님인 우상의 생각이다 말이죠 다 탐심이다 남의 눈을 의식한 말이죠
그 반대입니다
나의 눈물을 씻겨주시는 주의 눈물을 봤기에 말이죠
드디어 어서 죽어주소서를 다 이룬 이 완료를 봤기에
언제든지 나는 지옥의 몸으로 들통나든 말든
드디어 다 이루셨음을 봤기에 말이지요
그카이 우는 자가 곧 바로 기뻐서 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더 잘 아십니다 라고
여자가 남자를 뒤에서 껴 안는 겁니다
(렘 31:22, 개역) 패역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
어 그리고 보니 이사야의 흐름과 비슷하네요 우리가 살펴본 주님 혼자 보라 내가 새 일을 다 이루어 놓았다처럼
혹시 표시해 놔라 다시 돌아올당께 그 내용이 앞의 장 뒤의 장 바로 근처에 있지 않을까요잉?
(렘 31:1, 개역)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때에 내가 이스라엘 모든 가족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렘 31:2, 개역)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칼에서 벗어난 백성이 광야에서 은혜를 얻었나니 곧 내가 이스라엘로 안식을 얻게 하러 갈 때에라
(렘 31:3, 개역) 나 여호와가 옛적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기를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 고로 인자함으로 너를 인도하였다 하였노라
(렘 31:4, 개역) 처녀 이스라엘아 내가 다시 너를 세우리니 네가 세움을 입을 것이요 네가 다시 소고로 너를 장식하고 즐거운 무리처럼 춤추며 나올 것이며
(렘 31:5, 개역) 네가 다시 사마리아 산들에 포도원을 심되 심는 자가 심고 그 과실을 먹으리라
(렘 31:6, 개역) 에브라임 산 위에서 파수꾼이 외치는 날이 이를 것이라 이르기를 너희는 일어나라 우리가 시온에 올라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나아가자 하리라
(렘 31:7, 개역)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야곱을 위하여 기뻐 노래하며 만국의 머리 된 자를 위하여 외쳐 전파하며 찬양하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구원하소서 하라
(렘 31:8, 개역) 보라 내가 그들을 북편 땅에서 인도하며 땅 끝에서부터 모으리니 그들 중에는 소경과 절뚝발이와 잉태한 여인과 해산하는 여인이 함께 하여 큰 무리를 이루어 이곳으로 돌아오되
(렘 31:9, 개역) 울며 올 것이며 그들이 나의 인도함을 입고 간구할 때에 내가 그들로 넘어지지 아니하고 하숫가의 바른 길로 행하게 하리라 나는 이스라엘의 아비요 에브라임은 나의 장자니라
(렘 31:10, 개역) 열방이여 너희는 나 여호와의 말을 듣고 먼 섬에 전파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을 흩으신 자가 그를 모으시고 목자가 그 양무리에게 행함 같이 그를 지키시리로다
(렘 31:11, 개역) 여호와께서 야곱을 속량하시되 그들보다 강한 자의 손에서 구속하셨으니
(렘 31:12, 개역) 그들이 와서 시온의 높은 곳에서 찬송하며 여호와의 은사 곧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어린 양의 떼와 소의 떼에 모일 것이라 그 심령은 물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 할지어다
(렘 31:13, 개역) 그 때에 처녀는 춤추며 즐거워하겠고 청년과 노인이 함께 즐거워하리니 내가 그들의 슬픔을 돌이켜 즐겁게 하며 그들을 위로하여 근심한 후에 기쁨을 얻게 할 것임이니라
(렘 31:14, 개역) 내가 기름으로 제사장들의 심령에 흡족케 하며 내 은혜로 내 백성에게 만족케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 31:15, 개역)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도다
(렘 31:16, 개역)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네 소리를 금하여 울지 말며 네 눈을 금하여 눈물을 흘리지 말라 네 일에 갚음을 받을 것인즉 그들이 그 대적의 땅에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 31:17, 개역)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의 최후에 소망이 있을 것이라 너의 자녀가 자기들의 경내로 돌아오리라
(렘 31:18, 개역) 에브라임이 스스로 탄식함을 내가 정녕히 들었노니 이르기를 주께서 나를 징벌하시매 멍에에 익숙지 못한 송아지 같은 내가 징벌을 받았나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시니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돌아오겠나이다
(렘 31:19, 개역) 내가 돌이킴을 받은 후에 뉘우쳤고 내가 교훈을 받은 후에 내 볼기를 쳤사오니 이는 어렸을 때의 치욕을 진고로 부끄럽고 욕됨이니이다 하도다
(렘 31:20, 개역) 에브라임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이 아니냐 내가 그를 책망하여 말할 때마다 깊이 생각하노라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내 마음이 측은한즉 내가 반드시 그를 긍휼히 여기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 31:21, 개역) 처녀 이스라엘아 너를 위하여 길표를 세우며 너를 위하여 표목을 만들고 대로 곧 네가 전에 가던 길에 착념하라 돌아오라 네 성읍들로 돌아오라
(렘 31:22, 개역) 패역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
(렘 31:23, 개역) 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그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때에 그들이 유다 땅과 그 성읍들에서 다시 이 말을 쓰리니 곧 의로운 처소여, 거룩한 산이여,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 것이며
(렘 31:24, 개역) 유다와 그 모든 성읍의 농부와 양떼를 인도하는 자가 거기 함께 거하리니
(렘 31:25, 개역) 이는 내가 그 피곤한 심령을 만족케 하며 무릇 슬픈 심령을 상쾌케 하였음이니라 하시기로
(렘 31:26, 개역) 내가 깨어보니 내 잠이 달았더라
음메 바로 위네 그려브려 바로 윗 구절이네요잉
(렘 31:21, 개역) 처녀 이스라엘아 너를 위하여 길표를 세우며 너를 위하여 표목을 만들고 대로 곧 네가 전에 가던 길에 착념하라 돌아오라 네 성읍들로 돌아오라
(렘 31:22, 개역) 패역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
꼭 호세아 지난 번의 11장처럼
어이구야 니가 내 한테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 겸심했따믄서
야 이놈 패역한 딸아 내가 너를 놓아주것 같으냐
내 너에게 반드시 장가 들어야 쓰것는디
아따 전라도 사투리 은근히 재밋소
경상도는 딱딱한디
왜 그리심산이 아니라 에발산에 올라갔나
언약궤의 언약의 정신은 잔칫집이 아닌
광야 초상집에서 너를 애굽 에덴동산 같았더라에서 개유 꼬셔서
너와 결혼하시고자 하셨듯이
그제서야 어찌할꼬 우는 자리 40만에 성령 받으니까 말이죠
여리고성을 이겼을때에는 언제고
가나안성 중에 가장 큰 성 견고한 난공불락의 성 무너뜨렸다면
가나안은 이미 끝났는 것인데
오히려 역전 현상으로 가장 작은 성 아이성 하나 못 이기는 이유는
자기 힘으로 할려고 자기 의로움으로 할려고 하니
아니 언제 주님이 배 고팠고 언제 목말랐고 언제 헐벗었습니까
소자 한테 안한 것이 내 한테 안한 것이다
이 가장 작은 아이성 하나 못 무너뜨린 것이 나 한테 안한
저들 이방백성은 우상으로부터 건져내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아이성 대 패배후
모든 인간의 방법 다 해도 소용이 없어서
전쟁 중에서도
다시 에발산에 올라가는 겁니다
즉 여리고성처럼 바짝 엎드려서 뺑뺑이 돌면서
나는 광야에서 하나님을 세 번 원망한 죄인이며 그 증거가 이 증거궤에 있습니다 라고
뺑뺑이 도는 그 정신을 그 십자가의 정신을 다시 광야에서
다시 에발산에서
다시 성령의 놀라운 탄식으로
왜? 중심이 없기에 중심 달라고
마음이 없기에 마음 달라고
정직한 영이 없기에 정직한 영 달라고
빵구멍 뻥 뚫혀서 아이성으로부터 수치를 당했기에
그 빵구멍 난 수치를 굵은 베옷으로 가려 달라고
굵은 베옷은 누가 대신 우는 자 였는가 라는 그 화목제물의 눈물을 보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에발산에 올라가 단을 드렸더니 그제서야 아이성을 그 가장 작은 성을 이길수 있었던 겁니다
이것은 나중에 다윗이 마지막 남은 가나안 족속 여부스 족속을 이길수 있었던 그 이유가 미리 깔려진 의미입니다
이 작은 부정한 돈에 충성하지 않는데
누가 큰 돈 누가 정결한 돈에 충성하겠느냐 말이죠
그렇게 정결한 돈에 충성하는 자칭 빛의 아들들이
부정한 돈에 충성치 않는 불의한 청지기의 지혜에 의해 다 무너지는 이유이듯이
유대인에게서는 이 부정한 십자가가 거리끼는 걸림돌일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네 맞아요 손흥민이가 그렇게 세계적으로 유명한 축구선수로써
만약에 세계 강국을 다 이겻다고 칩시다
그런데 일부러 봐 주는게 아니라
동네 축구인 아이성 전투 축구에서는 아무리 해도 안 되는 맨날 지는 겁니다
여리고성에 이겼던 자가 말이죠 그런 식으로 이해 한다면
유대인은 이 십자가를 목에 걸린 까시처럼 걸림돌 로 여길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렇게 율법의 달인이고 말씀 지키는데 도사들이
이 십자가 하나에 다 걸려 넘어져서
단 하나도 지킨 적이 없었다 하나님을 창조주를 믿은적이 없었다
여호와가 누군지 알 전이 없었음이 들통나 버리는 사건으로써
십자가를 맞이해야 할 입장에 놓여졌다 라는 겁니다
이것이 아이성과 에발산이 갖는 의미 입니다
우리가 지금 에스겔 호세아 로마서를 하면서 느끼고 있는 것은
주님은 그 촐애굽때의 그 첫맹세를 그 첫사랑을 여전히 반복하시면서
우상과의 전쟁을 하시고 있다 라는 겁니다
아니 그 과거의 캐캐묵은 그 수천년전의 일을 아니 왜? 말이죠
그것은 출애굽 한 인간들이 단 한놈도 없기 때문입니다
바벨론 포로 이전에 북이스라엘이 망하기 직전인 이 호세아서에서부터
주님은 주님의 말씀을 그 언약을
북이스라엘로부터 출애굽 출이스라엘 하시듯이
지금 고멜 창녀와 같은 이스라엘과 출애굽 전쟁을 하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에스겔을 하면서 어 에스겔에서도 하던데요???
어 그건 구약인데
신약인 로마서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로마서에서도 여전히 출애굽 첫맹세의 전쟁을
첫사랑의 전쟁을 하고 있던데요?
하루의 첫 때가 언제 입니까? 바로 새벽이지요
해뜨는 때
새아침이 밝았네 라는 노래도 있잖아요 마을도 새롭게 한다고 해서 새마을
뉴마을 뉴 빌리지 뉴스 새로운 소식 굿 뉴스 복된 새소식
그런데 인간이 그 새벽을 차지해서 새벽별 되신 예수님 보다 더 높아질 거야 라고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계명성 교만한 자가
소위 재벌 부자는 새벽부터 활동하거든요
소위 그들의 신념이나 믿음은 일반인과 다르게
사람과의 경쟁을 하는 자들이 아님을 자부하고 있는 겁니다
괜히 교만한게 아니거든요
그들은 신과의 경쟁에 나선 자들입니다 생각 자체가 틀려요
하나님의 뭇 별 보다 더 높은 별이 되겠다 라는 의식 자체는
스스로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귀신 씌이지 않는 이상
그야말로 호모 데우스 나는 신이다 라는 식입니다
일반인이 나는 이 분야의 최고가 될 거야 하고 하면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 아무도 동의를 안 합니다
아 그냥 큰 꿈을 꾸는 구나 라고 뭐 나도 그랬었었어 라고 하고 넘기면 그만인데
이들은 왜 내가 이 분야의 최고가 되어야 하는 지에 대한
또렷한 목표와 거기에 대한 자기만의 개성으로써의 실천계획이 또렷하게 나옴에 있어서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다들 공감하는 식으로 우와 라는 탄성이 나올 정도로
또렷함을 느끼게 될 정도로 아 당신은 도전할 수 밖에 없고
실패하더라도 계속 도전할 사람이 맞군요 라고 응원하고픈 생각까지 들게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에 괜히 새벽을 깨우는 자가 아님을 보게 되는 겁니다
우리가 소위 성경학자들이 밝혀낸 다니엘서의 네 짐승이나
다니엘서처럼 짐승의 수 666이나 등등에 해당 되는 그런 인물들이
금신상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은신상 메데 파사 왕 고레스왕
동신상 그리스 알렉산더 대왕
철 신상 로마제국
철과 진흙은 열국시대 이방의 시대
이렇게 나열되면서 나폴레옹도 나오고 히틀러도 계시록에 나오는 숫자에 해당된다고 라고 학자들이 해석을 하지만
그들 특정 인물들이 왜 그렇게 나오는고 하니
다들 새벽별이 되고픈 것이다 말이죠 그러니 느부갓네살 왕의 색각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오늘날 모든 현대인들은 아무리 가난하고 아무리 배운 것이 없어도
만인을 위한 만인의 투쟁으로 인한
인정받기 위한 투쟁 때문에 니체의 후예들은 이제 자기가 적극적으로
선악을 아는 하나님이 되지 않으면 그저 남의 먹잇감 밖에 안되는 시대가 된
죄악의 관영 [관영(fullness)?? '가득 차 미치지 않은 데가 없음'을 뜻한다]
모든 인간이 계명성 새벽별이 된 겁니다
결국 니체의 주장처럼 미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자기가 예수다 라고 예수와의 경쟁 구도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 이것은 말도 안되는 겁니다
예수님과 경쟁하는 현대인들이 예수님을 믿거나 좋아하거나
안 믿어도 존경 존중 하거나 또는 미워한다 라고 하는 것은
그 정도로 의식을 하는데 있어서
우리가 아무도 관심 두지 않는 그 당사자 예수님 본인은
아예 대 놓고서 너와 충돌 하러 왔다 라고
어서 예수에 대한 적개심 살인의지를 드러내라 라고 하시듯이
이 성경말씀을 펼치신다 라는 점입니다
거기에 뱃구멍 뚫혀버린 자가 바로 다윗이듯이
이 다윗언약대로 호세아서가 다윗언약이니까 말이죠
내 반드시 너를 여호와의 뿔로 충돌하여 뚫어버리시겠다 라고 찾아오시는 겁니다
(삼하 6:8, 개역) 여호와께서 웃사를 충돌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곳을 베레스웃사라 칭하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
(대상 13:11, 개역) 여호와께서 웃사를 충돌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곳을 베레스 웃사라 칭하니 그 이름이 오늘날까지 이르니라
(대상 15:13, 개역)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충돌하셨나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저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출 19:21, 개역)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려가서 백성을 신칙하라 백성이 돌파하고 나 여호와께로 와서 보려고 하다가 많이 죽을까 하노라
(출 19:24, 개역)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가라 너는 내려가서 아론과 함께 올라오고 제사장들과 백성에게는 돌파하고 나 여호와에게로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 내가 그들을 돌격할까 하노라
(출 19:21, 새번역)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려가서 백성에게, 나 주를 보려고 경계선을 넘어 들어오다가 많은 사람이 죽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단단히 일러 두어라.
(출 19:21, 공동) 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내려가서 이 백성에게, 야훼를 보려고 마구 넘어 들어오다가 많은 사람이 죽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단단히 일러두어라.
신칙, 申飭
명사
단단히 타일러 경계하는 것.
개유랑 비슷하네요 광야에서 개유하여서 꼬셔서 속여서 결혼 하시겠다처럼 말이죠
(호 2:14, 개역) 그러므로 내가 저를 개유하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개유, 開諭
명사
사리(事理)를 알아듣도록 잘 타이르는 것.
성경사전 - 개유하다(allure)
알아듣도록 깨우쳐 타이르는 것을 의미하며, 히브리어 원어는 '설득하다'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 말은 호세아가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는 문맥에서 언급되었다. 즉, 호세아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배반하고 떠난 이스라엘 백성을 설득하여 돌아오도록 타이르신다는 사실을 이 말로 설명하였다(호 2:14, 공동-새번역 '꾀어 내다').
쟁변하자 서로 변론하자 싸우자 이스라엘아 ~~~~~~~~
(사 1:18, 개역)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사 1:18, 공동)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오라, 와서 나와 시비를 가리자. 너희 죄가 진홍같이 붉어도 눈과 같이 희어지며 너희 죄가 다홍같이 붉어도 양털같이 되리라.
(렘 12:1, 개역) 여호와여 내가 주와 쟁변할 때에는 주는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패역한 자가 다 안락함은 무슨 연고니이까
(호 4:1, 개역)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거민과 쟁변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호 12:2, 개역) 여호와께서 유다와 쟁변하시고 야곱의 소행대로 벌주시며 그 소위대로 보응하시리라
(사 3:13, 개역) 여호와께서 변론하러 일어나시며 백성들을 심판하려고 서시도다
(사 41:1, 개역) 섬들아 내 앞에 잠잠하라 민족들아 힘을 새롭게 하라 가까이 나아오라 그리하고 말하라 우리가 가까이하여 서로 변론하자
(사 43:26, 개역) 너는 나로 기억이 나게 하고 서로 변론하자 너는 네 일을 말하여 의를 나타내라
(미 6:2, 개역) 너희 산들과 땅의 견고한 지대들아 너희는 여호와의 쟁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과 쟁변하시며 이스라엘과 변론하실 것이라
물론 내어버려 둔 사생아에게는 해당이 안되고
이들 사생아는 자녀를 때리는 회초리 앗수르로 활용하시듯 주변에 배치시키신 것이지요
(창 35:18, 개역) 그가 죽기에 임하여 그 혼이 떠나려할 때에 아들의 이름은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 아비가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창 35:18, 새번역) 그러나 산모는 숨을 거두고 있었다. 산모는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자기가 낳은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 아이의 아버지는 아들의 이름을 ㉤베냐민이라고 하였다. / ㉣'내 슬픔의 아들' ㉤'오른손의 아들' 또는 '남쪽의 아들'
(창 35:18, 공동) 마침내 라헬은 죽게 되어 숨을 거두면서 아기 이름을 벤오니라고 불렀다. 그러나 아기 아버지는 베냐민이라 불렀다.㉠ / ㉠벤오니는 '가엾은 내 자식(?), 괴롭게 낳은 아들(?)'이라는 뜻이요, 베냐민은 '내 오른손 같은 아들(?), 남방인(?)'이라는 뜻이다.
(창 35:18, 현대어) 그러나 라헬은 죽어 가고 있었다. 그녀는 숨을 거두면서 그 아이의 이름을 베노니라 불렀다. `내 슬픔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 아이의 아버지인 야곱은 `운이 좋은 아들'이라는 뜻으로 베냐민이라 고쳐 불렀다.
또 못 이겨먹었다 라고 끝까지 억울해 곧 죽어도 위로를 못 받는
그러나 이미 베냐민 인데 말이죠
슬픔 대신 찬송인데 말이죠
그렇게 죽은 자 같으나 사실은 산 자로 만들어 줘도 그 승리를 못 먹어요 못 누리는 겁니다
이스라엘만이 누리지 야곱은 끝까지 싸울려고 해요 글쎄 속이다 속이다 못해
자기 꾀에 자기가 계속 속이는 그 의문의 반복 속에 있으니 못 누리는 거죠
다 이미 이겨서 끝나서 누리고 있는데 말이죠
그것이 야곱의 눈물입니다 야곱은 원래 지도록 되어 있고요
그런데 반대로 야곱은 자꾸 이겨먹을려고 하니 이스라엘이 못 되는 거죠
지금의 저 유대인처럼 말이죠
반대로 이스라엘은 원래 본래 이미 승리한 자로 태어났습니다
비록 다들 이미 졌다 라고 다들 지근 지근 밟지만 오히려 미끼를 물어버린 것이지요
괜히 짖 밟다가 하나님한테 짖 밟히는 올무에 걸려든 겁니다
죽은자 같으나 산 자요 결국 이스라엘을 말하는 겁니다
누구와 동행하기에?
참이스라엘로 오신 이유도 야곱의 이스라엘 되기의 실패를 염두했기에
지고 싶어도 질 수가 없는 겁니다
호세아서는 지금 주님의 사랑이 곧 기념이름을 세우기 위해서
이 흑암들의 속성 곧 우상의 속성 야곱의 속성과 싸워서
이스라엘 이라는 자기 신부 만들기를
고멜과 같은 창녀 이스라엘을 통해서
기념이름 아무리 더립히고 더럽혀도
더럽혀지지 않는 아껴둔 이 기념이름을 창조하기 위해서
주변의 것들이 다 동원이 되고 있는 입장입니다
이미 다 세워졌기에 다 이룬 완료이기에
그 증상물로써 천한 그릇 꺽이운 애굽의 팔을 지옥에서 부르고
야곱의 팔도 같이 꺽어서
니 팔 뿌라진 것 보다 주의 팡을 꺽어서 대신 붙야서 싸매어주심으로 인해서만
창과 같의 무기 전쟁이 아닌
이 기념 이름의 전쟁으로
이 사랑 때문에 비로소 새창조 새이름을 곧 본래 본향의 원래 이름인 이스라엘로
세 창조 받는 겁니다
처음부터 있었던 이름이요 나중 되신 이 종말의 이름인
이 새 영 새 마음
새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주틀을 다 이룬
그 기념이름으로 새겨져서 마음판에 새긴
나를 제대로 심판하시고 나를 제대로 싸매어 주신 이름이
주신 이름입니다
주의 이름에 걸맞는 신부이름인 거죠
(요 17:26, 개역)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 20:31, 개역)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행 2:21, 개역)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행 3:16, 개역)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행 4:12, 개역)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요 1:27, 개역)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하더라
(요 1:28, 개역) 이 일은 요한의 세례 주던 곳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된 일이니라
(요 1:29, 개역)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 1:30, 개역)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요 1:31, 개역)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요 1:32, 개역) 요한이 또 증거하여 가로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요 1:33, 개역)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줄 알라 하셨기에
(요 1:34, 개역)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 하니라
(요 1:35, 개역)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요 1:36, 개역) 예수의 다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 1:37, 개역)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거늘
(요 1:40, 개역)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는 두 사람 중에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요 1:41, 개역)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요 1:42, 개역)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이름을 장차 게바라 즉 반석이다 미쁘다 든든하다 왜?
음부의 권세가 아기지 못하는 교회가 되니까 말이죠
베드로 스스로 이룬다? 자기 숙제로? 아니지요
미쁘신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으로써 말이죠
대신 팔이 꺽여주심으로 베드로의 꺽여진 팔을 대신 붙이시고 기브스 대신 싸매어주셨기에 말이죠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심 떄문이다는 겁니다
그것을 보고 야곱은 비로소 딱딱한 마음이 눈 놋듯이 부들 부들 녹아져서
비둘기 같이 온유한
주님의 마음인 새 영 새 마음인 성령의 놀라운 탄식으로 우는 자가 되는 겁니다
비로소 본래 본향의 이름으로 본래의 자리인 원수의 자리에서
그 공백의 빵구멍난 자리에서
주님의 이름이 차자하실 자리로
자기 이름을 삭제 당하면서 내어주게 되는 겁니다
이 이스라엘로 만드신 부르신 불러내신 그 기념칭호가 붙이신 본향의 이름으로
주님이 손수 직접 자기 숙제로 만드시는
이 새창조주 앞에 무릎 꿇어 경배케 만드심으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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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9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 (롬 8,28-30)
2024.11.17.
(골 1:15, 개역)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마땅히 빌바를 아시는 분의 죽음) (롬 8,26-27)
로마서 2022 2024. 10. 25. 19:33
22-048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마땅히 빌바를 아시는 분의 죽음) (롬 8,26-27)
〈롬 8,28-30, 개역한글, 신약성경 250쪽, 찬송가 177장 새 190장 성령이여 강림하사, 찬송가 171장 새 187장 비둘기같이 온유한〉
찬미예수 2000 - No.1739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엠마오 마을로)
찬미예수 2000 - No.1696 어지신 목자
찬미예수 2000 - No.1659 주만 바라볼찌라
새찬송가 214장(통349)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새찬송가 320장통350) 나의 죄를 정케 하사
새찬송가 321장(통351) 날 대속하신 예수께
찬미예수 2000 - No.1327 흙으로 사람을
찬미예수 2000 - No.781 기적이라네 (십자가라네)
〈찬송가 177장 성령이여 강림하사, 새찬송가 190장〉
〈가스펠;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 No.1588 찬미예수 2000〉
(사 2:3, 개역)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미 4:2, 개역) 곧 많은 이방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주님의 도를 배우고 주님의 길로 행하리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 나오고
주의 말씀은 예루살렘에서
〈가스펠; 기적이라네 (십자가라네) No.781 찬미예수 2000〉
1. 수많은 별들은 누가 움직이나 / 어떻게 부딪히지 않고 돌까 /
어떻게 난 바로 설수 있을까 / 바로 기적이라네 /
바다와 육지 갈라 놓으셔서 / 육지를 뒤덮지 않게 했네 /
어떻게 이 모든 것 정해졌나 / 바로 기적이라네 /
기적이라네 주께서 나와 동행해 주시는 것 /
기적이라네 날 지으신 것 정말로 묘한 기적이라네 /
봄이면 개울물 졸졸 흐르고 / 개울물 모여 강물 만든다네 /
바다에 소금 누가 뿌렸을까 / 바로 기적이라네 /
도시엔 사람 정말 많고 많아 / 세상은 빈틈없이 꽉꽉찼네 /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아네 / 바로 기적이라네
2. 허다한 죄악을 누가 덮으셨나 / 어떻게 흰눈같이 희게 될까 /
어떻게 날 용서하셨을까 / 바로 십자가라네 /
이른비 늦은비 때 따라 내리시고 / 자비를 비 오듯 부으셨네 /
어떻게 이 모든 것 베푸시나 / 바로 십자가라네 /
십자가라네 주께서 나와 동행해 주시는 것 /
십자가라네 날 지으신 것 정말로 묘한 기적이라네 /
주께만 범죄하여 주 앞에 죄 뿐이오니 / 주께서 꺾으신 뼈로 고쳐 주옵소서 /
어떻게 날 복음듣게 하시나 / 바로 십자가라네 /
내 속에 정한 마음 창조해 주시고 / 내 안에 정직한 영 새롭게 하셨다네 /
어떻게 날 돌아오게 하셨나? / 바로 십자가 라네 ~~~~~~~
〈어린이찬송가; 오라 오라 내게 오라〉
1. 오라오라 내게 오라 내게 오라 내게 오라
오라오라 내게 오라 쉬게하리라
쉬게하리라 쉬게하리라
오라오라 내게 오라 쉬게하리라
2. 만일 나를 따라 오면 따라 오면 따라 오면
많은 사람 낚는 어부되게 하리라
나를 따르면 나를 따르면
많은 사람 낚는 어부되게 하리라
찬미예수 2000 - No.1327 흙으로 사람을
흙으로 사람을 지으사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신 주 하나님
우리 위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사랑의 주 하나님을 사랑해
나는 하나님형상 따라 지음받은 몸이니 이 몸을 주께 바치리
항상 내생활중에 주를 부인하지 않으며 내 주를 섬기렵니다
갈보리 십자가 흘리신 그 피로 영생을 얻게 하신 주 예수님
나이제 주위해 한평생 살아 갈동안 주님만 사랑하리라
나는 하나님형상 따라 지음받은 몸이니 이 몸을 주께 바치리
항상 내생활중에 주를 부인하지 않으며 내 주를 섬기렵니다
〈찬송가 349장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새찬송가 214장〉
1.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주 예수님께 빕니다 / 그 구원 허락 하시사 날 받으옵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으옵소서
2. 큰 죄에 빠져 영죽을 날 위해 피흘렸으니 / 주 형상대로 빚으사 날 받으옵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으옵소서
3. 내힘과 결심 약하여 늘때어지기 쉬우니 / 주 이름으로 구원해 날 받으옵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으옵소서
4. 내 주님 서신 발앞에 나 꿇어 엎드렸으니 / 그 크신 역사 이루게 날 받으옵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으옵소서
〈찬송가 350장 나의 죄를 정케 하사, 새찬송가 320장〉
1. 나의 죄를 정케하사 주의 일꾼삼으신 / 구세주의 넓은 사랑 항상 찬송합니다
나를 일꾼 삼으신 주 크신 능력 주시어 / 언제든지 주뜻대로 사용하여 줍소서
2. 내게 부어 주시려고 은혜 예비하신주 / 그 은혜로 채워주시사 능력있게 합소서
나를 일꾼 삼으신 주 크신 능력 주시어 / 언제든지 주뜻대로 사용하여 줍소서
3. 죄의 짐을 풀어주신 주의 능력 크도다 / 나를 피로사신 예수 내맘속에 옵소서
나를 일꾼 삼으신 주 크신 능력 주시어 / 언제든지 주뜻대로 사용하여 줍소서
4. 주여 내게 성령으로 충만하게채우사 / 생명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옵소서
나를 일꾼 삼으신 주 크신 능력 주시어 / 언제든지 주뜻대로 사용하여 줍소서
〈찬송가 351장 날 대속하신 예수께, 새찬송가 321장〉
1. 날 대속하신 예수께 내생명 모두 드리니 / 늘 진실게 하소서 내 구주 예수여
나 구주위해 살리라 내기쁨 한량 없으리 / 내 갈길 인도하소서 내 구주 예수여
2. 날 구원하신 예수를 일평생 의지하오니 / 날 영접하여 주소서 내 구주 예수여
나 구주위해 살리라 내기쁨 한량 없으리 / 내 갈길 인도하소서 내 구주 예수여
3. 주 십자가에 달리사 날 자유하게 했으니 / 내몸과 맘을 주위해 다 쓰게 하소서
나 구주위해 살리라 내기쁨 한량 없으리 / 내 갈길 인도하소서 내 구주 예수여
찬미예수 2000 - No.1739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엠마오 마을로)
1. 엠마오 마을로 가는 두 제자 / 절망과 공포에 잠겨 있을 때
주 예수 그들에게 나타나시사 / 참되신 소망을 보여 주셨네
2. 이세상 사는길 엠마오의 길 / 끝없는 근심이 앞길 막으나
주 예수 우리에게 나타나시사 / 새 소망 주심을 믿사옵니다
찬미예수 2000 - No.1696 어지신 목자
어지신 목자 양 먹이시는 곳 그늘 진 바위 옆 시원한데
나 어찌 떠나서 양떼를 버리고
위태한 곳 위태한 곳 위태한 곳으로 나갔던고
어지신 목자 길 잃어버린 양
어지신 목자 날 가르치시고 주 따라가는 법 가르치사
다시 죄가운데 빠지지 않도록
나를 보호 나를 보호 나를 보호하사 지키소서
어지신 목자 택하신 모든 양
찬미예수 2000 - No.1659 주만 바라볼찌라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 자 하나님의 평안을 바라보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하는 자 하나님의 선하심을 닮아가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너를 자녀 삼으셨네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찌라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찌라
주만 바라 볼찌라
〈롬 8,28-30, 개역한글, 신약성경 250쪽〉
(롬 8:28, 개역)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9, 개역)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8:30, 개역)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롬 8:28, 새번역)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롬 8:29, 새번역)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신 사람들을 택하셔서, 자기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으니, 이것은 그 아들이 많은 형제 가운데서 맏아들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롬 8:30, 새번역)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이미 정하신 사람들을 부르시고, 또한 부르신 사람들을 의롭게 하시고, 의롭게 하신 사람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먼저 [보이지 않는] [보이지 아니] 이라는 단어로 검색하니까 100개 이상 검색이 되어서
다 생략하고 주로 새번역만 보태어서 중요한 것만 올려봅니다
(눅 24:31, 개역)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고후 4:18, 개역)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골 1:15, 개역)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골 1:16, 개역)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히 11:1, 개역)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히 11:1, 현대어) [믿음] 믿음은 무엇입니까?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갖는 게 아니겠습니까? 또한 아직 눈앞에 보이지 않는 미래의 일일지라도 우리가 기대하는 것이 반드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 게 아닙니까?
(롬 1:20, 새번역) 이 세상 창조 때로부터,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속성, 곧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은, 사람이 그 지으신 만물을 보고서 깨닫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핑계를 댈 수가 없습니다.
(롬 8:25, 새번역) 그러나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면, 참으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고후 4:18, 새번역) 우리는 보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골 1:15, 새번역) 그 아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이십니다.
(골 1:16, 새번역)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왕권이나 주권이나 권력이나 권세나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 ㉨또는 '말미암아'
(히 11:1, 새번역)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 ㉠'실상, 실체, 보증'으로 번역할 수도 있음
(히 11:7, 새번역) 믿음으로 노아는, 하나님께서 아직 보이지 않는 일들에 대하여 경고하셨을 때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방주를 마련하여 자기 가족을 구원하였습니다. 이 믿음을 통하여 그는 세상을 단죄하고, 믿음을 따라 얻는 의를 물려받는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히 11:27, 새번역) 믿음으로 그는 왕의 분노를 두려워하지 않고 이집트를 떠났습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분을 마치 보는 듯이 바라보면서 견디어냈습니다.
(요일 4:20, 새번역) 누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자매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보이는 자기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 ㉡그, '형제'
(계 16:15, 새번역) ("보아라, 내가 도둑처럼 올 것이다. 깨어 있어서, ㉠자기 옷을 갖추어 입고, 벌거벗은 몸으로 돌아다니지 않으며, 자기의 부끄러운 데를 남에게 보이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 / ㉠그, '자기 옷을 지키다’
(눅 24:31, 현대어) 그때에야 그들은 눈이 열려 예수를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 순간에 예수는 그들 앞에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눅 24:22, 새번역) 우리 가운데서 몇몇 여자가 우리를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눅 24:23, 새번역) 그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 천사들의 환상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천사들이 예수가 살아 계신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눅 24:24, 새번역) 그래서 우리와 함께 있던 몇 사람이 무덤으로 가서 보니, 그 여자들이 말한 대로였고, 그분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눅 24:25, 새번역)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마음이 그렇게도 무디니 말입니다.
(눅 24:26, 새번역) ㉥그리스도가 마땅히 이런 고난을 겪고서, 자기 영광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 ㉥또는 '메시아'. 그리스도는 그리스어이고, 메시아는 히브리어임. 둘다 '기름부음 받은 이'를 뜻함
(눅 24:27, 새번역) 그리고 예수께서는 모세와 모든 예언자에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서 자기에 관하여 써 놓은 일을 그들에게 설명하여 주셨다.
(눅 24:28, 새번역) 그 두 길손은 자기들이 가려고 하는 마을에 가까이 이르렀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더 멀리 가는 척하셨다.
(눅 24:29, 새번역) 그러자 그들은 예수를 만류하여 말하였다. "저녁때가 되고, 날이 이미 저물었으니, 우리 집에 묵으십시오." 예수께서 그들의 집에 묵으려고 들어가셨다.
(눅 24:30, 새번역) 그리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려고 앉으셨을 때에, 예수께서 빵을 들어서 축복하시고, 떼어서 그들에게 주셨다.
(눅 24:31, 새번역) 그제서야 그들의 눈이 열려서, 예수를 알아보았다. 그러나 한순간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눅 24:32, 새번역)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이하여 주실 때에, 우리의 마음이 [우리 속에서] 뜨거워지지 않았습니까?"
(눅 24:33, 새번역) 그들이 곧바로 일어나서,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보니, 열한 제자와 또 그들과 함께 있던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고전 2:9, 개역)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고전 2:1, 현대어) [인간의 지혜와 하나님의 능력]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내가 처음으로 여러분에게 갔을 때 나는 어려운 말이나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는 않았습니다.
(고전 2:6, 현대어) [하나님의 지혜] 그러나 우리는 믿음이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뛰어난 지혜의 말을 합니다. 그렇다 해서 그것이 이 세상의 지혜나 또 이 세상에서 곧 망해 버릴 집권자들의 지혜를 두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
(고전 2:1, 개역)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고전 2:2, 개역)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전 2:3, 개역)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고전 2:4, 개역)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고전 2:5, 개역)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고전 2:6, 개역)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고전 2:7, 개역)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고전 2:8, 개역)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고전 2:9, 개역)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고전 2:10, 개역)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고전 2:11, 개역)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고전 2:12, 개역)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2:13, 개역)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고전 2:14, 개역)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고전 2:15, 개역)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고전 2:16, 개역)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누가복음을 올린 이유는
예수님이 곁에 있었다가 다시 보이지 않게 샤라지는
소위 육과 혼의 차이로써의 보이지 않는 혼으로써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와 함께 먹고 잡수신 내용입니다
자 이렇게 먼저 운을 떼는 이유는
이 아들의 형상은 보이지 않는다 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 아들 이라는 의미는
인간의 아들 곧 장자 즉 맏아들을 소위 공백 빈터로 만든다는 의미에서
두 언약을 한 세트로
하나는 육에 속한 맏아들 장자이고
또 하나는 하늘에 속한 맏아들 장자 이다 말이죠
새로운 아들로 인해서 새로 태어나는
본받아 라고 물론 주틀의 의미가 아니지만
닮는다 라고 했을때에
결국 아브라함 아버지는 아들 이삭에 의해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거죠
왜? 아들의 주틀로 인해 육의 차단을 당했응께 말이죠
그러니 이스라엘은 애굽의 장자의 죽음으로 인해서
이스라엘은 장자 없는 가족을 구성한 겁니다
그런 개개인의 장자 없는 가정이 졸지에
하늘에 속한 장자 곧 아들로 인해서 이미 하늘에 있기에
이 땅에서는 빈터 공백 간극 빵구멍 뻥 뚫힌 장자 없는 가정이기에
개개인이 될 수가 없고 집단화 될 수밖에 없는
사적인 개인 구원도 없는 셈이 되는 거죠
예수 안 이라는 아들의 형상의 주틀에 찍혀 나온 자들 곧 그리스도의 몸 뿐이다는 겁니다
개인 개념 자체가 있을 수가 없는 겁니다
바로 그런 개인이 되어버린 한 몸이 될 수 없는
이 원수가 된
둘로 나누어진 관계를 육의 소욕이라고 합니다
그 육이 아무리 집단화 되어도
그것이 장자로 아들을 낳아도 역시나 육일 뿐이지
보이지 않는 형상이 될 수가 없지요
인간들이 하는 하나님 형상 회복 운동은 결붑 역시나 육이 육을 낳는
육의 이어짐 되물림 밖에 않되는 겁니다
마침 가스펠이나 찬송가를 살펴 봐도
아들의 형상으로 본받는 주틀에 새로 찍혀 나오는 그런 의미 보다
기존의 하나님 형상 회복 운동의 차원의 가사들이 많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니고데모가 어떻게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 나오냐 라는
여전히 육적인 방법만 생각한 거죠
이것이 플라톤 사상에도 나옵니다
영 또는 혼 과
육으로 나누어서 육을 아주 천한 것으로 보고
영을 좋게 해석을 합니다
문제는 새로 거듭나야 한다 라는 겁니다
육은 죽이고 영으로 새로 태어나야 한다 자체도
육을 죽이는 방법 조차도 육적으로 생각하고
영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조차도 육적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서양의 철학인 플라톤철학의 재해석인 거지요
더군다나 기독교랑 만나서
더더욱 육은 가치 없는 것으로
영적인 것은 고귀한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것은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대변해줄 뿐
누구든지 선과 악을 알기에
그 선과 악을 나누는 기준은 아무리 신을 업급하고 해도
역시나 자기자신을 배제할수 없다는 점에서
여전히 육적이다 라는 겁니다
우리가 호세아서나 에스겔서를 살펴보면서
이것이 다윗언약을 기준으로 삼았다 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두 언약의 한세트가 되는 것이 바로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더 이상 다윗언약은 필요가 없다 라는 사상이
이미 유대인들 속에 깔려 있었고
그것이 예수님을 죽이는 상황까지 가며
오늘날 성화론 사상 개혁주의 사상에 까지 갈 정도로
여전히 육적이다 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원수된 생각인 육의 생각이다는 거죠
그래서 율법 외에 한 의가
외부에서 나와야 하는데
무슨 수로 나옵니까
그 결핍을 채울 방법은 여전히 자기 숙제 뿐이다 라는 겁니다
율법의 행함으로는 의에 도달 할수 없다 라고 아무리 말해도 말이죠
이해가 안 되는 겁니다
(갈 2:16, 개역)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물론 여기에 반박하는 자들은 야고보서의 행함을 주장합니다만
그 야보고서의 행함이란 보이지 않는 행함이기에 반드시 보이는 행함을 주장하는 자들에게서
부정한 행함으로 취급받는 그런 행함입니다 그 예로 3가지인 이유가
단절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바친 것 이것은 어떤 목사 말 마따나 교인들이 따라할까봐 목사로써 그 성경내용을 의도적으로 뺄려고 하고 부정할려고 하듯이 말이죠
이게 플라톤사상과 기독교가 혼합된 서양철학이듯이 한국의 기독교는 유교와 기독교의 짬뽕인 혼합종교인 거죠 또 하나는 기생라합의 거짓말입니다 뭐 하얀 거짓말이라고 사기를 쳐도 역시나 보이는 행함으로부터 부정당하는 하얀거짓말 행함입니다
그리고 엘리야가 비오지 않기를 3년 반 동안 말이죠 기도하는 행함입니다 이런 행함이 있는 믿음을 하라고 가르치는 목사는 없습니다 그랬다가는 교회 망하게 되는데 장사 망칠일 있겠냐 말이죠 철저한 단절인데 누가 그런 행함이 있는 믿음을 하라고 가르치겠습니까? 그저 남들이 보기에도 누구든지 다 따라할 수 잇는 보이는 행함을 가르칠려고 하겠지요 그래야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모범사례로 삼을수 있거든요)
그런데 아주 아주 쉽게 이해하는 방법이 있어요
어린아이에게는 자아가 없기에 아주 쉽지만
어른에게는 불가능 합니다
물론 요즘 어린아이는 아이가 아닐 정도로 어른 뺨 칠 정도로
부처처럼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니까
신 위에 있는 신 보다 하나님 보다 더 높은 건물주가 되겠다 라고 할 정도이지요
뭐 우리 때도 마찬가지로 뭐 높은 사람인 대통령이 되겠다는 둥
장군 인기 연예인 등등 꿈을 말하곤 했지만
그때는 그것이 뭘 의미하는 지 자체를 모르고 그저 선한 이미지로 본 거죠
그런데 요즘은 진짜로 벌써 아이가 돈의 가치 기능을 아는냥
단순히 어른들이 아이에게 가스라이팅 해서
그 증상물로 나오는 차원이 아닐 정도로 너무 너무 세세하게 말하다가
또 갑자기 어린애 같이 자기 자리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면
그것은 천재 아이들 모습에서 가끔 보이는
대학수학문제를 막 그렇게 잘 풀다가
정작 1 더하기 1이 왜 2 인지 몰라서 갑자기 울어버리는
그런데 강제로 억지로 천재 영재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천재도 아니면서 말이죠
그들 부모들을 보면 물론 알겠지만 말이죠 증상물이기에 그 아비에 그 자식이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으로 놀 때 보면 소름이 끼친다 말이죠
이것이 성경에도 나옵니다 어린아이들을 암놈 곰을 보내서 갈기 갈기 찢어죽은 사건 말이죠
엘리사를 대머리 라고 놀리는 아이들 뭐 청소년이라고 볼 수 있는데
철없는 애들인데 너무 하잖아 촉법소년인데 말이죠
그런데 애들이 그렇게 엘리사의 가치를 알 정도가 아니다 말이죠
어른들이 시켜서 어린아이들은 방패막으로 삼았다 라는 어떤 인터넷글도 본 적이 있는데
결국 어른들의 증상물이다 라는 거죠
아무튼 그렇게 하신 이유는
엘리야는 인정하지만 엘리사는 인정 못하겠다 라는 그 시대의 사고방식을 대변해 줌에 있어서
선지자란 그 시대에 예수님을 증거하는 자로써 하늘의 것을 외쳐야 하는데
인간들은 땅의 사정을 받아달라고 함에 있어서
어제까지 믿던 하나님 그리고 어제까지의 엘리야 선지자를 고집함에 있어서
뭐 정통성이 없다 라는 둥 이렇쿵 저렇쿵 궁시렁 거리면서
오늘의 하나님을 거부한다 라는 점에서 이들을 죽여버리는 겁니다
비록 촉법소년 이라 할 지라도 말이죠
어제까지의 엘리야의 하나님은 믿겠는데 사실은 땅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주님은 선지자를 보냈던 거죠 그런 의미에서 메시아 기능을 한 겁니다
앞으로 오실 예수님을 말이지요 예수님의 노선입니다 그렇게 죄 문제를 해결했거든요
땅의 문제는 죄 문제 말고는 없으니까요
그것도 약속의 땅에서만 벌어지는 죄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제 엘리야가 하늘로 승천해서 없다 말이죠
그래서 엘리사가 대신 하는데 있어서
문제는 엘리사를 주님께서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다수결의 민주주의 방식으로 뽑지 않았다 라는 점입니다 토기장이 마음대로 뽑았다 말이죠 그것은 약속의 민족 또한 다른 민족들에게 다 물어보고 뽑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약성경은 전체적으로 인간과 하나님 사이가 이렇게 막혀 있다 라는 단절성을 보여주는데 있어서 이스라엘을 활용하시는 겁니다
우상을 믿는 이방민족은 뭐 당연히 다를바 없고요
심지어 이 가나안 땅 곧 약속의 땅 조차도 과거는 우상의 민족의 땅이였으니까 말이죠
그런 자들을 어떻게 거룩으로 옮기는 제사장 기능 곧 성전의 기능을 함에 있어서
선지자는 이 약속의 땅에서 벌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자로써 등장하는 겁니다
땅의 문제는 곧 죄의 문제이고 그 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땅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보낸 선지자로 인해서 해결되기에
선지자 존재 자체가 중간의 막힌 담을 허는
둘로 나누어진 원수된 관계를 한 몸으로 만드는 기능을 하는 겁니다
곧 은혜죠
선지자가 있다 라는 것은 저 우상숭배자들과 다를바 없이 저주받아도 마땅한 자인데도 불구하고
왠 은헤인지 하늘에서 보낸 선지자로 인해서 이 죽은 자들을 살려주심을 받는 은혜를
심판 속에서 단절 속에서 누리는 겁니다
그런 선지자를 모독했다? 대머리 라고 엘리사를 저주했다 말이죠
이것은 주님의 용서를 스스로 거부하는
마치 일만달란트의 용서 탕감을 모욕하는 7에 70번의 용서를 거부하는
자기 의로 쌓은 남 7번 용서를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빚진 백 데나리온 안 갚는 자를 때리고 감옥에 쳐 넣는 모습처럼 말이지요
일만달란트의 용서의 가치를 역설적이게도
절대로 용서 못하는 용서 없음으로써 증거하시는 겁니다
이것이 은총 은혜의 의미를 제대로 보여주는 족히 비교 못하는
단절성이요 흉내내지 못하는 보이지 않는 소망이다입니다
1급 살인자 마저도 용서하는 그 용서 속에서는
절대로 도저히 못 받아들이겠다 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 없는 맏아들의 선악사상이 담겨지 있는 겁니다
은혜를 모독하는 선악법 말이지요
정작 본인들은 이 율법과 선지자 덕분에 그 동안 살았는데
정통성 정통성 우기면서
엘리사의 모습이 외모가 저주 받은 흠모할 모양이 없다 라고
멋들어진 신사 나오신다 길을 비켜라 라고
남들이 부러워 하는 모세의 홍해 가르는 기적
남들이 누리면 뭐하노 내가 누려야지 라고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데 있어서 어서 기적을 보여달라 라는 식으로
사람들이 흠모할 모양
아름다운 모양이어야 하는데
어라 대머리이네 레위기에서는 저주 받은자와 같은 흠이 많은 자가
어떻게 거룩한 일을 할수 있는가? 날 때부터 소경이 어떻게 예수님을 증거할 수 있는가? 라는 식으로
다들 보이는 방식인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바라더라 말이죠
정작 사람들이 싫어하는 모습으로 다들 고개를 돌리는
저주 받은 새까만 태양빛에 그을린 검은 얼굴로 오시니까
다들 저주를 퍼붓는 겁니다
그런 모습을 엘리사는 예수님 또한 이런식으로 은혜를 모독한다 라는 것을 미리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아니 이스라엘의 어린아이만 생각하신다면 그건 이미 반칙이다 말이죠
그럼 출애굽 때의 그 수많은 애굽인들의 더 몇십배나 되는 어린아이의 죽음
특히 장자가의 죽음은 왜 반발하는 자가 없을까요?
그건은 매우 분명한 심판성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대 놓고 반발하는 애굽왕 바로와의 강퍅함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거죠
그러나 이스라엘이 설마 하나님을 반발할까??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설마?
자 그런 점에서 갭 간극이 생기는 겁니다
우리는 평상시 간극을 좁히고 좁히고 아주 가깝게 좁혔다 라고 생각하지만
특히 성화론자들을 보면 기가막혀요
그런 악마짓 마저도 자기들 모습을 배우라고 막 가르치고 막 자랑질을 하는데
속이 다 울렁 거리더라 말이죠 똥을 온 몸에 쳐바르고서는 그것을 자랑까지 하고 있으니 말이죠
성령의 단절성 곧 하늘에서 출발한 은혜가 없이
땅에서의 연합성을 추구하다 보니
선 줄 로 알더라 말이죠
이미 다 넘어졌는데 넘어진 줄도 모르고 말이지요
그런 자들에게 엘리사가 대머리로 와야 한다 라는 것은
거울로 비춰주는데
율법과 선지자는 거울로 비춰주는데 자기 망상의 가치에
자신들의 저질스러운 모습을 할 줄도 모르고 저질스럽다 라고 모독을 하니
갈기 갈기 찢겨 죽는 겁니다
반대로 높이 우대를 해도 자신의 가치가 높아지고자 하는 것을 염두해 두고서 높여주는 그런 여전히 하늘에서 내려온 은혜가 아닌
땅에서 출발하고 땅에서 만들어는 그런 우대는 언제든지 이 새로 교체되는 새선지자 앞에서
그 한계점이 드러나는 겁니다 어제 먹혀들던 엘리야에 높이 대우한 것이
지금 새로 보내신 엘리사의 대머리 모습 앞에
탁 걸려서 걸림돌에 넘어지는 겁니다
여전히 오늘 새롭게 하늘에서 내려오는 은헤가 아니면
매일 매일 새롭게 주어지는 용서가 아니면
암논과 다말의 사건에서처럼
자기 한계에 부딧히게 되고
엘리야처럼 내 열심히 특심이오니 나만 남았다 라고 왜 배신 때리냐 라고 나오게 되는
우리는 언제든지 각기 제 갈길로 가는 자들이라는 것을 아시고
늘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지 않으면 안되는 자 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이 땅에 아직까지 하늘에 가지 못하고 남아있는 이상
내가 알아서 살아가는게 아니라 말이죠
오직 하늘에서 시작한 이 은혜의 십자가의 피 용서가 아니면
하루도 살 수 없는 땅의 사람 곧 첫아담의 형상이기 때문에
하늘에서 시작한 아들의 형상이 매일 매일 진흙을 빗듯이 빚어주지 않으면 안되는 겁니다
빚다 라는 표기가 맞나요? 빚다 라고 하니까 바로 생각나는 것이
어린 여자아이가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달라고 아니면 엄마가 매일 매일 해 준다 말이죠
그런데 홀로 살게 된 아빠가
뭐 이혼이라든가 아니면 아내가 죽게 되었다든가 그렇게 혼자가 되면
세상에서 갑자기 제일 어려워지는 것이 바로
초등학생 여자 아이의 머리 빗겨줘서 단정하게 모습을 갖추는 것이 제일 어렵더라 라고 하더라 말이죠
초반에 너무 어렵다 보니 몇십번 아예 따로 시간을 내어서 반복 학습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라는 거지요
마치 우영우 변호사처럼 아빠가 언제 제일 어려웠나요?
아이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맨발로 발아 아파서 뗴굴 떼굴 구를때에
아빠가 왜 저러지 라고 봐줄십상 한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으니 그 어떤 공감
연합 터치 만지고 얼굴과 얼굴을 마주 봄이 없을 때 가장 서럽더라 라고 하잖아요
각자 따로 놀 때 말이지요 외 롭 습 니 다
라고
자 그래서 주님은 철저한 단절을 통해서 이 둘로 나누어진 것을 하나로 만들고자
하늘에서 율법과 선지자를 보내신 겁니다
제발 개인 구원 따위를 바라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하지 말고
둘이 하나가 되는 이 동행을 하늘에서 이루시고자 말이죠
그렇다면 땅에서 시작한 동생을 차단 철저하게 차단해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화목제가 되는 겁니다
화목이 뭡니까?
화해 하는 것 아닙니까
즉 둘이 떨어지는 이혼을
이 원수된 둘로 나누어진 관계를 하나가 되는 결혼 아닙니까
그런데 땅에서 출발하는 모든 구원은 음녀처럼
자기 쪽에서 신랑을 찾고 자기 쪽에서 결혼을 할려고 하니
그 가짜 구원 가짜 결혼의 결과는
결국은 혼자가 되고픈 겁니다
남의 눈을 의식해서 결혼하는 척 했지만
자기 자아는 여전히 남아 있으니 결혼 해도 외로운 겁니다
서로가 서로 상대방에게 녹아져 없어져 버리면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는 열매가 되고 선물이 되는데
혼자가 될려고 하니
그저 상대방을 이용해 먹을려고
예수님을 임금 삼고자 죽기 살기로 따라잡는 겁니다
예수님은 계속 도망치시구여
너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본 것이 아니라
먹고 배불러서 자기 배를 위하여 날 임금 삼는다 라고 나는 너의 임금이 되기 싫다 라고 도망치시는 겁니다
자 그래서 엘리사를 선지자를 곧 율법과 선지자인 이 은혜를 모독함에 있어서
주님께서 암곰을 보내어 갈기 갈기 찢어죽이시는 겁니다
네 너무 너무 충격적인 사건 맞습니다 도저히 못 받아들일 정도 맞습니다
그 정도로 우리는 이 사건을 이해 못한다 라는 것은
선악적이거나 윤리 도덕 유교를 따지는 이게 다
행함과 은혜의 차이 이다는 거죠
얼마나 울가 행함으로 살고 있지 곧 우상 육신의 생각
육의 소욕대로 하나님의 원수가 된 육신의 생각 말이죠
절대로 은혜로 살고픈 마음이 추호도 없다 라는 것의 반증입니다
행함은 과거에 좋은 기억으로 남은 마치 통장에 임급한 돈으로 은행창고 있다 라는
땅의 사고방식의 시간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은혜는 바로 그런 부자의 창고 늘린 것에
오늘밤 이라는 새로운 시간 앞에서
니 영혼 취하면 그 은행에 저금한 돈으로 희죽 희죽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는
내 영혼아 오늘밤 편히 쉬자 라는 그거 한 순간에 다 날려버린다 라는 겁니다
내 시간 내 행함 내 통장 내 창고를 따로 챙겼다 라는 자체가
구약의 약속의 땅에서는 허용이 되지 않거든요
약속의 땅 만큼은 늘 매일 매일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처럼
오늘 새롭게 내려오는 그 은혜로만 살도록 되어 있지
무슨 수로 땅에서 올라오는 그 지옥
그 죄악
그 배고픔 그 목마름을 늘 매일 매일 올라오는 그 지옥을 무슨 수로 삼시세끼
늘 억누리고자 올라오지 못하도록 막고자 무슨 수로 버티냐 말이죠
삼시세끼 10여년 만에 다시 하던데 ㅋㅋㅋ
세상은 평화 원하지만 전쟁의 소문 더 늘어난다
전쟁을 아무리 억누를려고 막고 막아도
오히려 남의 전쟁에 끼어들어서 총알받이가 되겟다고 하는
우리 오빠 무식해서 아무것도 몰라요 ㅋㅋㅋ
참 무당들끼리 참 잘 논다 말이죠
이런 지옥인 세상에 이런 지옥이 늘 수시로 시도 때도 없이
스멀 스멀 올라오는 이 지옥에서
다들 선지자 필요없다 새하늘과 새땅 필요 없다
우리가 알아서 할께 약이나 다오
약 주면 뱀이 인간으로 변합니까? 장대 높이 달린 구리놋뱀이 바로 우리 모습이어야 하는데 말이죠
더더군다나 뭐 장자제단 장자민족 말만 번드르 할게 아니라
장자 답게 맏이된 민족이 저 맏아들 되신 아들의 형상을 따라
함께 죽고 함께 다시 사는 것 보여주던가 아니라
다들 예수 이용해 먹고 누가 누가 더 자랑꺼리 많은가 그것을 자랑하는 자들이 되어버렸다 말이죠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 라고 하면 뭐 합니까?
그 정도로 우리는 각기 제 길로 가는 양 같기 때문에
매일 매일 성령의 놀라운 탄식이 없으면
그저 보이는 소망을 따라 혼자 되는 것이 편하거든요
내가 사라지는 신랑안에 나를 녹여들어 내가 사라지는 그런 사랑은 없는 겁니다
사랑만이 나를 그 속에 녹여 오로지 상대방에게 다 줄수 있거든요
이런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허구인데
우리는 나 혼자 라는 허구만을 위해 사는 겁니다
그것 역시나 사라지고 없어질 옛것일 뿐인데 말이죠
내 목숨 바칠 데가 없다 라는 것이 가장 불행한 자입니다
다윗의 행복은
뭐 행복하십니까 요즘 사람들은 모든 관심사는 행복이다 말이죠
행복의 빈부 격차이지 돈과는 상관없더라 말이죠
좀 머리 굴릴줄 아는 놈들은 행복하십니까 라고 접근해서 사기를 치는 거지요
다윗이 말하는 유일한 행복은 나 다윗을 위해
이 아무것도 아닌 죄인 중의 괴수를 위해
온전히 자기 목숨을 다 녹이신 이 사랑 앞에서
비로소 무릎 꿇었다 라는 것
이제 드디어 내가 사라질 내 목숨을 버릴 바칠 가치를 드디어 발견했다 라고
드디어 씹고 뜯고 먹고 마시는 겁니다
삯꾼 목자는 양을 등쳐먹을려고 회개해라 눈물 흘려라 기도해라 금식해라 하고
자꾸 법 법 법 행함을 강조하지만
정작 나의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내어준 그 사랑 앞에서
드디어 해방 되었다 라고 죄인의 노예의 자리에서
나팔을 불며 자유를 외치는 다시는 노예짓 하지 않는거다 말이죠
도라어 저 놈들은 나 다시 애굽으로 돌아갈래 라고
여전히 땅에서 시작하는 에덴동산 만드는 애굽나라
잔칫집 만드는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우리는 도리어 광야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겁니다
무화과 나뭇잎이 마르고 포도 열매 없어도 난 여호와로 즐거워 하리
아니 다시 배고프면 다시 먹어야 하는 그래서 그 가짜 천국을 잔칫짖을 유지하기 위해서
여전히 남의 것을 빼앗아 등쳐먹는 그것도 힘 있는 자는 못 하고 아부하고
가난한 자의 것을 빼앗는 그 의문의 반복을 언제까지 할렵니까?
사람은 떡으로 사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 라는 아예 배고픔이 없는 뱃구멍 빵구멍 내는
여호와의 뿔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할 것 아니냐 말이죠
그 빵구멍 내는 것이 율법과 선지자 이다 말이죠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은 여인을 율법을 쥔 남정네들이 정죄하면서 돌삐를 들었다 말이죠
그런데 정작 진짜 율법의 완성이 되신 예수님은 사랑이 없는
경건의 능력이 없는
경건의 껍데기 모양만 갖춘 그들에게 도리어 거울로써 비추시니까
돌을 던진 것이 도로 자기들 눈에 던지는 눈티 반티 되는
자기가 누워서 침 뱉기를 하더라 말이죠
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차원입니까? 아니면
정죄로써만 끝날 문제입니까?
도로 돌삐를 던질려는 율법을 쥔 남정네들을 쫓아내는 것이
죄 문제를 해결하는 의미이지
언제까지 돌삐 던지면서 그 의문의 반복을 하냐 말이죠
지도 해결 할 마음이 없고 남도 해결하지 못하도록
중간에 가로막아서 삥이나 뜯어내는
그카이 어떤 사모가 뻘건 글씨러 여고괴담처럼 귀신처럼
내가 거룩하니 너도 거룩하라고 하지 않았냐
다시는 죄 짓지 말라고 하지 않았냐 라고
선악의 법의 언어로 따지더라 말이죠
아니 남편에게 얼마나 사랑을 못 받았으면 그것을 사랑의 언어가 아니라
법의 언어로써 조건과 원인을 갖추는 선악의 언어로 보고 있으니
더더욱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을려는 사탄의 회가 되더라 말이죠
오늘 나오는 아들의 형상 본받자를 법의 언어로
하라 하지 말라 언어로 보게 되면
땅에서 출발한 육들이 이거 행할려고 얼마나 바르게 살자 운동 할꺼 아니겠습니까?
또 이카이 나는 반대를 위한 반대의 운동을 하겠다 라고 또 막살자 운동을 하겠다 라고 나서요
둘다 운동이기는 맹 마찬가지인 땅의 일인데 말이죠
하늘에서 시작한 은혜는 그런 운동들의 한계를 이미 다 알기에
아예 원천 차단하시고
주님이 손수 직접 마련하신 화목제물 되심으로만
다 이루시는 완료를 이루시지
미완료로만 남게 되는 그 의문의 반복을 왜 하냐 말이죠
어차피 바르게 살자 운동 하는 놈들은 막살기 운동을 하는 놈들이고
막살기 운동을 하는 놈들은 바로 또 자세를 바꿔서 바르게 살자 운동을 할 놈이거든요
막살자 라는 자유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율법 외에
행함 행위라는 내 내부에서 출발이 아닌
내 외부
땅의 바깥
하늘에서 출발한
외부에서 덮쳐지는 자유입니다
자기가 운동을 해 버리면 그것은 또 법에 갇혀서 심심하면 햇냐 안했냐 그것만 따져요
성경은 하라 하지 말라가 없어요
모든 것은 다 사랑의 언어 뿐입니다
그래서 아까 말한 대로 구약은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막혀있다 라는 단절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 단절을 거쳐서 자유이니까 처음부터 은혜가 먼저 떳기에 사랑하는 자에게 매를 먼저 대신
저 우상숭배자들과의 차이와
또 우리가 시편을 통해서 살펴봤듯이
다윗언약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다 라고
물론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맞아요 맞는데
졸지에 지금 이스라엘 혈통 육정 사람의 뜻처럼
유대인만 구원받을려고 하는 사적 개인적은 그 따위 가짜 구원을 노리는 놈들이더라 말이죠
그 빈자리 티오 남은 자리 마저도 주님이 손수 직접 채우셔야 한다 말이죠
지금 이스라엘이 할려고 하겠냐 말이죠
그렇다고 내가 가겠습니다 보내주소서 라고 한다 라고 되느냐 말이죠
철저한 단절성을 모르면서 내가 죽겠습니다?
아니 그것이 다윗이 말한 행복이라메 ~~~
네 맞습니다 그런 순교 조차도 개인의 죽음이지
예수님의 죽음으로 출발한게 아니잖아요
좋다 싶으면 자꾸 자기 쪽으로 끌어당길려고 하지 말아라 말이죠
매일 매일 새로 주어지는 용서나 본인 먼저 받으라 말이죠
주님이 알아서 시키면 다 하게 될 것을 왜 나대냐 말이죠
아까 올란 구절에도 있었는데
(롬 8:25, 새번역) 그러나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면, 참으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롬 8:25, 공동)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기에 참고 기다릴 따름입니다.
(히 11:1, 현대어) [믿음] 믿음은 무엇입니까?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갖는 게 아니겠습니까? 또한 아직 눈앞에 보이지 않는 미래의 일일지라도 우리가 기대하는 것이 반드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 게 아닙니까?
어 히브리서 11장 1절에 왜 기다림 이라는 의미가 있지
(히 11:1, 개역)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히 11:1, 새번역)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 ㉠'실상, 실체, 보증'으로 번역할 수도 있음
아 또렷하기에 기다리지 않고서는 못 배긴다 라는 말이구나 말이죠
즉 내가 기다리는게 아니라 기다림이 나를 대상물로 삼았기에 안 기다리고는 못 배긴다
즉 이미 다 이루어 졌다 라는 완료의 뜻인데
성질 급한 나 같은 사람은 간따나 난독증에 앞면 인식장애 이다 보니
더더군다나 이제는 오래전에 귀가 한 쪽은 가졌다 말이죠 그 카이 더더욱 문해력이 없는데다가 성질급하게 후딱 한번 읽어버리고 치워버리니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 어중이 떠중이 아니냐 말이죠
가제트 형사는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잖아여 그 멍멍이 개와 조카가 사건을 다 해결한다 말이죠
도리어 가제트는 대상물이 될 뿐입니다 매일 매일 7에 70번의 용서를 퍼부어야만 하는
손이 많이 가는 은헤 받은 자로 말이죠
그런데 법을 손에 쥐어버리고 돌삐를 잡고자 완악함을 잡고자
원인 조건을 갖추게 되면
또 바로 자기 한계에 부딪혀서 엘리야처럼 하나님에게 따지게 되는
내 열심히 특심이오니 나만 남았다 라고 목숨 바쳤잖아요 왜 안 데리고 가십니까?
이 보세요 벌써 언어가 법의 언어이지 사랑의 언어
은혜의 언어
감사의 언어가 아니잖아요
주님의 눈믈로 나온 언어가 아니다 말이죠
그 정도로 우라는 늘 결핍을 채우고자 미완료인 그 의문의 반복인
선악의 언어
법의 언어를 쥘려고 그래야 무시 안 받는다 라고
꼴에 판사도 아니면서 하나님과 같이 된 티를 팍팍 낼려고 선악을 쥐어야만
내가 먹음직 보암지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하나님을 잡아먹는 하나님이 될 테니까 말이죠
그래서 내 살과 피를 먹지 않으면 나와 상관 없다 라고 묵으라 묵어
무라카이 라고 떠먹여줘도
그때는 또 남의 눈을 의식해서 선악의 법 따라 안 묵을려고 해요 글쎄
주님은 너가 내 살과 피를 먹어봐야 그 선악이 너에게는 헛됨을 아는 우상이라는
사탄의 깊이를 알게 되는데
그래야 하나님의 깊이인 십자가의 사랑을 아는데
자꾸 나는 아간이 아닙니다 나는 구리놋뱀이 아닙니다
나는 주와 함께 못 박힐 자가 아닙니다 주님혼자 정 박히시던가요 라고 말하고픈데
또 남들의 시선 때문에 같이 죽겠습니다 십자가에 끝꺼지 따라 가겠습니다
에라이 사탄아 썩 물러가라
사탄의 깊이도 모르면서 선을 알겠다 라고 선을 행하겠다 라고?
불의한 돈에 충성도 안하면서 정결한 돈에 충성하겠다 라고?
(눅 16:9, 개역)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눅 16:10, 개역)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눅 16:11, 개역)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롬 3:5, 개역)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우리의 죄악을 사하시고자 목숨을 거는 하나님의 의가 아니였다면
누가 제대로 살 자가 어디있느냐 말이죠
의사가 기껏 돈만 벌려고 의사가 되었냐 말이죠
그렇다고 건강한 자만 오너라 의인만 오너라 라고 하면 말라고 의사가 되느냐 말이죠
의사는 오로지 환자를 위해서 의사가 되었고
구원자는 오로지 죄인을 부르로 온 것이지 의인이 말라꼬 필요하냐 말이죠
만약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의사가 되었다면 언제든지 더 많은 돈을 주는 기술직으로 옮겨갈꺼다 말이죠
갑자기 시골의사 라는 유튜버가 생각나네요
자기는 솔로몬의 잠언 뭐 전도서 그거 못 믿겠다는 둥 글쎄요 라고 하더라 말이죠
솔로몬이 그렇게 더러운 짓을 많이 했는데 과연 지혜자 맡기는 맞은지
이렇게 솔직하게 말해야 목사들이 공부를 할 껀데
돈만 밝히는 놈들이라서 할 리가 있겠습니까?
그 시골 의사는 자기를 제대로 인도해줄 목사를 못 만나니까 아직도 헤매는 거죠
마치 본인이 의사라서 공감할 것이
환자가 돌파리 의사를 만나게 되면 헤메게 되듯이 말이죠
그러니 환자 내부의 숙제가 아닌
하늘에서 출발한 땅 바깥 외부에서 벌리시는 은혜사건이 아니면
우리는 엘리사를 놀려먹는 외모지적이나 하는
철딱서니 없는 어린아이들처럼 이미 죽은 상태에서 찢겨죽는 겁니다
새삼스럽게 찢어죽인게 아니라
이미 약속이 없으면 이미 죽은 상태이기에
원래 죽은 모습을 보여주는 이 단절성을 보여주는 겁니다
어딜 인간의 생각을
사람의 일을 하늘의 일에 자꾸 섰을려고 하느냐 라고 말이죠
자 그래서 보이지 않는 아들의 형상에 의해
우리는 새로 찍혀 나오는 붕어빵처럼
아들의 형상에 찍혀 나와야 합니다
이것이 이삭의 죽음으로 새로 태어나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입니다
믿음은 이렇게 보이고 포작이 되고 이해하는 식이 아니라
그 반대인 보이지 않고 포착불가이고 이해되지 않기에 기다림의 대상물이 되는
이것을 다 합쳐서 그리스도의 능욕 고난이라고 합니다
고난이라고 하니까 고생
집나가면 개고생 뭐 그런 것을 말하는데 아닙니다
그런거 없어도 엘리사선지자처럼 거울로 비춰줘야 하는 것과
그카면 누가 좋아라 하겠습니까 다들 미워하지
가는 곳 마다 환영을 받지 못하는 거죠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야 또 너냐
무슨 말인지 알아먹지도 못하는 비유로 말하는 자야 또 너냐 라고 가는 곳 마다 박대를 당하는 거죠
요즘으로 치면 교회를 괴롭히는 자야 또 너냐 라고 비웃음꺼리 무시꺼리가 되는 거죠
그럼 저들은 무엇을 주장하기에 박대 하느냐
무시하고 거부하느냐
우리는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즉 내가 행한 것 내가 믿은 것 내가 실천한 것
이거 무너뜨리지 말라 라는 겁니다
이것을 무엇이라고 보면 되느냐
바로 보이는 형상 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플라톤이 육이라는 더러움을 버리고 영(영혼)이라는 고귀하고 영원한 것을 추구하는
이것이 서양철학을 지배해온 이데올로기 이다 말이죠 초등학문이다 말이죠
결국 뭐냐 선악이다 라는 겁니다
영혼을 추구하는 것이 육을 버리고 말이죠 악을 버리고
선윽 추구하는 것이 바로 먹음직 보암직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
자기 쪽에서 신랑을 찾아서 결혼하는 것이다 말이죠 이에 음녀죠
이런 사상이 깔려서 국가 라는 짐승을 추구하는 겁니다
음녀는 신랑을 자기 쪽에서 찾아 헤메이듯이
어떻게 하면 짐승 등 위에 올라타서 짐승을 부려먹을수 있느냐만 꿈꾸는 겁니다
종교 라는 음녀는 늘 국가라는 짐승 등 위에 올라타야만 비로소 복수를 달성한다 말이죠
여자의 한 풀이는 그 결핍은 내가 더 많이 희생했다 이거 알아달라는 복수심이다 말이죠
그래서 과거에 하나의 종교가 국가를 다 장악하는 국교가 되었을때에
왕은 졸지에 허수아비가 되는 거죠
그때 단물을 쪽쪽 다 빨아먹는 겁니다
차라리 분리가 되면 종교는 음녀 짓이 티가 팍팍 나고
국가는 짐승 짓이 티가 팍팍 나는 거죠
그런데 서로의 유익을 추구해야만 하는 어쩔수 없는 상황이 생기다 보니
저 예지력이 있는 무당 보살을 찾는 거죠
미륵 보살에서 미륵 이라는 뜻이 뭡니까? 메시아 라는 뜻 아니냐 말이죠
메시아란 구원자 라는 뜻이고요
그러니 이 메시아의 뜻도 모르고 무식한 오빠가 지가 뭘 안다고 말이죠
음녀는 이렇게 국가 라는 메시아의 등 위에 올라타서
통일대박통령이 되어야 하니까요
자 이렇게 선지자는 바로 그런 돈 곧 에덴동산 같았더라를 계속 유지하고파 하는
그 애굽을 단절 시키는 광야를 싫어버린바를 추구하는 겁니다
물론 두 언약이 한 세트가 되어야 하니까 거짓선지자도 투입시켜서
그 반대인 성령론을 개방으로 증거게 만들어서참선지자의 소욕을 반대로 추구하도록 하는 거죠
그래야 육의 소욕을 대변하는 철학자들과 선각자들 그리고 거짓선지자들과
성령의 소욕인 참선지자의 단절성
이렇게 이 간극을 벌리시는 겁니다
종교라는 음녀는 국가를 장악해서 짐승 등 위에 올라타서 그 동안의 설움을 돈으로 권력을 누리는 것이고
반대로 국가 라는 짐승은 종교의 힘 하늘의 힘을 이용해서 어떻게 해서든
자기의 가치를 높이는 하늘의 뭇 별 보다 더 높은 먹음직 보암직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그 하나님의 자리를 빨리 잡아먹어야 온 천하 만국을 다스려야 하나님 보다 더 높게 된다 말이죠
하나님이 뭡니까 유일하다 보니 더 이상 오를데가 없는 최상의 위치요 자리 아닙니까
그 높은 자리를 늘 마귀가 호시탐탐 노렷듯이 말이죠
이것이 보암직 하거든요 보이는 형상 이다는 겁니다
이것을 글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사기를 치면서 하나님 형상 회복 운동 하자 라고 해요
또 운동을 해요 운동
구호를 외치고 개인들을 모아서 집단화 하지만 역시나 개개인들 밖에 안되요
그리스도의 몸 만이 집단이요 그 집단만 구원해요
외부에서 구원이 안되는 것들은 아무리 집단화 해도
내부의 숙제 밖에 안되고 내부의 숙제로 내부 분열로 스스로 망하는
누워서 침뱉는 의문의 반복일 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오늘 본문도 자기의 시간으로 해석하지
주님의 시간으오 못 보는 겁니다
시간이란 결국 영원하지 않으면 의미 없는
영원을 말하는 보이지 않는 소망이 담긴 예수님의 몸을
그리고 십자가의 피 흘리심으로 이눈 사랑을 영원한 사랑을 말하는 것인데
시계가 발명이 되고서 더더욱 결집할수 있다고 착각하니까
인간이 드디어 시간을 의식하는 근대가 되니까
창새전 창세후 라고 전과 후 라고 언어를 붙이더라 말이죠
아무리 붙여도 창세전 자체가 시간이 없기에 전이라고 못 붙이고
창세후의 시간의 의식으로 둘로 나누고자 시간 개념을 끌어온 것이지
정작 창세전과 창세후 라고 붙일수 있는 인간은 사실상 아무도 없어요
창세와 무관한 창세 바깥에서 그것을 붙이고 나누고 의미를 두면 또 몰라
창세 속에 들어간 이상 이것은 내가 명명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니라
창세자 에게만 해당 되는 언어가 되는 거죠
결국 선악의 판단 조차도 주님을 말하기 위한 것인데
다들 자기를 말하고자 선악의 언어로 다루다 보니
육은 악으로
영혼은 선으로
창세 전후 라고 명명하고 말하고 의식하는 나는 고 순간만큼은 선이고
이것 조차도 의식하지 않는 자는 무지한 자이다 라고
그 순간 순간의 것을 모아 모아 영원으로 영혼으로 나아가는
육을 버리면서
자 이런 생각들이 이미 사회적으로 공간 시간 역사에 다 깔려서 그것을 답습하는 이 환경애소 못 벗어나다 보니
(롬 8:30, 개역)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미리 정하시고
그 미리 정한 자를 부르시고
부르신 자를 또 의롭다 하시고
그 의롭다 하신 자를 영화롭게 하신다 라고
마치 시간 순으로 나열하는 듯이 보이지만
그래서 나타나는 것이 성화론자들과 같은 성숙도 성화도의 계급 카스트 제도 이다 말이죠
이런 성숙도가 도리어 주님에게서 걸려 넘어지는 꼴이 뭔고 하니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그 천한 계집의 신분인 그 계급이
자극히 높은 왕비의 자리에 앉혀지게 되는 이 지혜 앞에
졸지에 걸려 넘어져서 세상이 격동하며 견디지 못하게 되더라 말이죠
그래서 베드로를 탈탈 털어서 아무것도 없는 죽은 자의 자리에서
원수들이 서로 고소를 할 때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는 신부의 자리에 높여버리니까
배아파 죽는 겁니다
주님의 시간은 10달 동안 배아파서 낳은 고행 고통 수행 숙련이 아닌
단 하루 만에 단 번에
자 이렇게 되면 인간의 숫자 개념이 다 뒤틀려 지는 거죠
공간 곧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목사사모 말 마따나 신부가 될려면 신부수업을 미리 가급적 어릴 때부터 해서
조신 조신 하계 귀족문화의 예의 범절을 배워서 차근 차근 쌓아가야 하는데
갑자기 천한 잡것이 생선 팔다가 불쑥 나타나서 생선 비린내를 온데 다 풍기면서 새노래를 부른다 고라 고라 고라고잉 ~~~~~~
잉여의 세계 곧 선물의 세계에서는 양자역학처럼
뒤죽박죽이다 말이죠
전기가 플러스에서 마이너스로 흐르는 그 법칙을 다 깨고
지멋대로 뒤죽박죽 흘러버린다 말이죠
모든 법칙을 다 깬다 라는 법칙 하나만 있을 뿐이다 말이죠
즉 잉여 라는 선물 곧 은혜 공짜 사랑 하나만 남길 뿐이고 다 사라지는
이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울리는 꽹과리
육의 자랑하자마자 쭐꾸덕 쪼르르르르르르르 내려갔뿌서야 ~~~~~~~ 했다께롱
선 줄로 아는 자 넘어질까 두려워 하라
결국 이스라엘 유대인이 그렇다 라는 겁니다
그카이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는
사자 앞에 비둘기처럼 온 사지가 떨리는
머리 쳐박고 고개를 못 들고 연탄잿더미를 뒤짚어 씌면서
생일을 저주하면서 가슴을 치며 통회하고 상한 마음으로
모든 무릎을 다 꿇어서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도다
이 사망의 지옥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울면서 구원이 되는 거지
기생라합처럼 40년 동안 기다림으로 간담이 녹으면서 말이지요
그 천한신분이 높여져야 더더욱 견디지 못하고 격동하지
높은 신분이 구원받으면 하나도 두려움도 없고 떨림도 없이
비둘기가 아닌
사자로써 구원받으면 아무도 격동치 않고 견디지 못해서 발악하지 않는다 말이죠
도리어 박수를 칠 뿐이다 말이죠
너는 타고 났응께 ~~~~~
출생의 비밀잉께
진짜 비밀이라면 말도 안되어야 하는데
다들 말 되는 출생의 비밀이 되니
기생라합이 예수님의 족보에
쫄딱 망했다 하나님이 나를 괴롭혔다 라고 우는 나오미가 예수님의 족보에
무태한 여자가 예수님의 족보에
처녀가 감히 임신을 해서 예수님의 족보에
정작 자기 남편을 죽인 자의 아내가 되어서 예수님의 족보에
이것은 세상의 선악 개념을 뛰어넘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도덕으로도 윤리적으로도 선악으로도 안 통하는
오히려 뛰어넘는다 라고 하니까 높아진 것이 아니라
도저히 그 낮은 곳으로 더 이상 내려 갈려고 아무도 하지 않는
그 불의한 자에게 하나님의 의
세상에서 출발한 가장 높은 의가 아닌
땅 바깥의 하늘에서 출발한 하나님의 의가 은혜가
바로 이런 불의한 자에게 덮쳐졌다 라고
에이 그럼 우리가 불의하면 하나님이 선해지겠넹
그 카이 이미 너거들은 저주 받았다 라고
이미 보이는 소망 보이는 형상만을 쫏았다고 정죄하더라 마리죠
하나님의 선하심이 의로움이 바로 그리스도의 능욕 곧 대신 저주 받는 몽둥이 심판이다 말이죠
즉 대신 매 맞으심이 저들 여자 5명의 불의함에 대신 죄값을 치르고자
대신 심판받았기에
의사는 환자에게 딱 맞기에
건강한 자에게는 필요가 없기에
결국 선악의 판단은 주님의 몫인데
주님의 선하심이 원래 정직원 아침 6시에서 오후 6시까지 일하는 농부의 주인으로써
놀고 있는 자 12시부터 투입시켜서 오후 두시 세시 네시 심지어 마지막 딸랑 30분 일한 자에게
동일한 허루 품삯은 주심에 있어서
만땅을 다 채운 정직원이 왜 우리는 더 많이 더 많은 시간
여기서 시간이 나오지요 공간 몸도 나옵니다 더 수고 더 고생했다 라고
그런데 딸랑 30분 일한 비정규직이나 12시간 다 채운 정규직원이나 왜 똑같이 줍니까
형편성이 없잖아요 보편적 윤리가 안 맞잖아요 라고 선악을 주장할때에
예수님의 선하심은 과연 의인이 있기는 있냐?
오히려 주님이 긍휼을 베푸는 탕자의 용서 앞에서 그 사랑 앞에서
옳았습니다 라고 나와야 하는데
뭐 우리의 불의함이 하나님의 의를 나타낸다 라고?
이게 내 놓고 선악을 유발하고 있지
행함 곧 시간을 때려부은 나의 몸 공간을 의식하게 되지
누가 주님의 시간으로써의 주님의 선하심으로 보겠느냐 말이죠
사실은 정작 벌써 심판 받아 죽어 사라졌어야 하는 우리인데 ~~~~~~
주님의 시간을 보는 자 곧 보이지 않는 소망
보이지 않는 형상을 소망하는 자는
내 시간이 따로 필요가 없응께
주님의 선하심으로 만 밖에 안보이는
긍휼을 바라는데
비둘기처럼 벌벌벌 두려움과 떨림으로 긍휼을 바라는
매국노 세리인데
이것이 하나님의 집 만민이 기도하는 하나님의 집의 기능인데
먼저 심판 받았기에 장자 이기에 먼저 된 자이기에 빵구멍이 먼저 뚫힌 자들인데
자기 가정에 장자가 없이 빈공백으로 하나님께 바쳐진 상태인
하늘에 장자가 있는데
정작 자기의 장자가 자기 개인의 집에 꽉꽉 차 있고
그 장자가 있으니 재산을 유업을 물려 줄수가 있고
그렇게 역사를 이루어서 족보 육의 혈통을 계속 이어 갈수가 있는
가문 공간 집을 형성할 수가 있는데
이것이 다윗이 바랬던 보이는 형상이요 보이는 소망의 성전인데
그거 홀라당 다 불타버리고
보이지 않는 형상에 도리어 다윗 본인이 찍혀나와야 하는
본은 다윗의 자손으로 두셨으니
그 뽄에 그 주틀에 그 아들 장자 맏아들 되신 예수님의 형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말이죠
하나님의 형상 이라고 우기는 보이는 형상들이 첫아담의 형상들이
마지막 아담으로부터 다시 살려줌을 당해야 하는 겁니다
아 우리는 하나님 형상으로 충분하다 아들의 형상 필요 없다 라는 자들일수록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고 사라질 영광에 목 매는 겁니다
그카이 저 시간순으로 성숙도를 높일려고 해요 그렇게 되면 출발 자체가 틀린
왕족이나 부자나 경제적으로 나은 사람이 유리한 출발이겠지요
그런데 주님은 뒤집어 엎어 밭갈아버립니다
밭 갈때에 가까운 흙이 제일 많이 뒤집어 지고 제일 끝에 있는 흙이 제일 적게 뒤집어지나요? 그런거 없지요 무조건 양쪽다 아예 지근 지근 밟아서 보들 보들 부들 부들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지 딱딱한 놈이든 덜 딱딱한 흙이든 다 뒤죽박죽 갈아엎어서
그냥 불도져로 평평하게 만들어서 새생명 새싹
남겨둔 한 씨를 뿌린후에 의의 비를 늦은비 이른비를 뿌려서
그 공백이라는 장자의 본을 본받아서
이 땅에서 오로지 은혜로만 용서로만 사는 자로 만드시는 것이다 말이죠
그카이 철저하게 단절 곧 용서가 아닌
내 돈 띠 먹은 백데나리온 자 용서치 않는 자는
은혜를 무시했다 라고 채로 걸러내시는 겁니다
엘리사 대머리 사건으로 약속을 무시하는 자는 걸러내시듯이
또 그렇다고 맨날 사기당하기만 하며 살아라가 아닙니다
그 사기친 놈을 철저하게 응징할때에는 그 동안 주님께서 공짜로 살려준 것도 모르고
남의 것을 빼앗았냐 라고 자기 죄로 울도록 하는 징계의 매를 아들에게 사랑하기 때문에 대듯이
철저하게 세상과의 단절성으로써의 은혜를 보여주는
이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 빚도지지 않도록 알려주시면 된다 말이죠
복수심이 아니라 너 세상 따라 가면 지옥가 라는 애타는 마음으로 매를 대듯 말이죠
사생아 같으면 내버려 두시고요
자 그렇기 때문에 내 쪽에서 시간을 억수로 들여서 사람을 개조 시키겠다는 둥 그런 헛짓 그런 배불러 터진 소리 하지 마시고
본인이나 더더더 용서 받아야 할 죄인으로서 매일 매일 퍼부어주시는 은혜를 누리시면
고소해도 은혜요 사기 당해도 은혜요 사기친자 감옥소에 보내는 것도 은혜요
왜? 은혜를 되게 만들자 라는 저런 위선적인 성화론자가 아니라
이미 다 받았기에 다 이루어진 완료에서 벌어진 사건이기에
이미
(롬 8:30, 개역)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미리 정하신 것도 이미 다 이룬 상태이고
미리 정하신 자를 부르신 것도 이미 다 부르림을 완료로써 누리는 것이고
내 시간에 안 맞다고 주님의 시간을 거부할 이유가 없지요 도리어 누릴 판국에 놓여지는
주님의 시간이 덮쳐지니까 말이죠 매일 매일
그 부르심이 덮쳐지는 것이지 내가 나를 부르는 연기를 왜 하냐 말이죠
성화론은 결국 연기자들 양성소 일 뿐입니다
또 그 부르신 자를 의롭다 하신 그 이미 의로움을 누리는 겁니다
어라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왜 내가 나를 보기에도 말도 안되는 의가 왜 나오지?
나만의 착각인가? 어 남들도 이건 의로움이다 라고 하네
어 말도 안돼
분명 나는 누가 발로 차는 바람에 화가 나서 씩씩 거리고 있는데
살려고 몸부림 만부림 쳤을 뿐인데 누가 내 발을 붙잡고 나오다 보니
졸지에 내가 물에 빠진 사람 건져낸 자가 되었뿐네
저 아니예요 누가 나를 등 떠밀었어요 저는 지금 화가 난다니깐요
이런 사건들을 이미 누리겠끔 되어 있는 겁니다
그 의롭게 하신 자를 영화 롭게 하시고
카 여기서 마귀가 격분하지요 사실 모든 부분이 마귀가 격분하겠지만요
이제 천한 계집을 왕비의 자리에 앉히는 겁니다
창녀 마리아가 비싼 향유를 부은 것에 다들 화를 내는데
주님은 도리어 가장 기념하는 왕비의 자리에 앉히듯이 하니까
세상이 격동하면서 견디지 못해 발악을 하는 겁니다
바로 이런 아들의 형상을 찍어내시겠다 새창조 하시겠다 라고 하십니다
아니 말라꼬 왜? 가만히 보니 골치 아프게 될텐데
엘리사 대머리 트집 사건처럼 암곰이 나타나서 갈기 갈기 사건이 수시로 벌어진다면
얼마나 세상에서 이질적인 존재로 취급받아야 한다는 말인가?
네 바로 그겁니다
그게 보이지 않는 형상입니다
아무도 볼려고도 하지 않는
안 볼란다 하는 형상 이다 말이죠
왜냐? 이미 믿는 구석이 있는
보이는 형상이 있거든요
이미 마음에 우상이
중심에 우상이
삶의 가운데 우상이 빼곡이 꽉꽉 차 있는데
아들의 형상을 따로 또 채우라고요?
아니 아들의 형상이 알아서 재개발 재건축 아파트 재건축 하니까
너는 가만히 서서 재건축 아파트 누리기만 해
내가 이미 다 이루었거든 내가 십자가에 달려 죽었거든
자 이제 아파트 입주하고 누리기만 해
너는 가만히 서서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보라
바라 보기만 하라 말이죠
땅을 쳐다 보지 맣고
하늘에서 시작해 벌어진 사건을 누려라 말이죠
우리는 믿음의 선배들이 구름같이 허다한 주남의 증인들이 모세가 든 구리놋뱀을 쳐다본 것처럼 우리 또한 그 실상인 예수님의 죽음을 보고
오직 은혜만을 용서만을 바라보는 두려움과 떨림으로 주의 도움을 바라보는
하늘에서 시작한 사건을 보시면 됩니다
땅의 문제들은 늘 의문의 반복일 뿐입니다
해결해 봤자 또 반복할 뿐입니다
그러나 약속의 땅에서 벌어진 사건은 하늘에서 시작한 도움을 은혜를 긍휼을 바라보라고 벌리신 사건입니다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는 것은
더 이상 의문인 나의 형상을 쳐다보지 않는 겁니다
어차피 속을 뿐일테니 말이죠
무엇이 또렷하고 밝히 보이는 것입니까?
나 같은 죄인 살리고자 십자가에 달려 죽은 그 용서 그 사랑
이 보다 더 또렷한 사랑은 없습니다
나머지는 다 흐릿한 보이는 것들은 다 사라질 것들 뿐입니다
보이지 않는 아들의 형상은
땅에서 만들어 낼수 없는
하늘에서 손수 직접 만들어낸 화목제물 사건 이 하나 뿐입니다
다른 또렷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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