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5 너희 가운데 거하시는 두렵고 떨림으로 심판을 이루시는 거룩한 자 (호 11, 8-12).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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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5 너희 가운데 거하는 거룩한 자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니 멸망치 아니하리라 (호 11, 8-12)
2024.10.20. 

천국은 여기 있다 저기있다 가 아닌 너희 가운데 (심령천국을 말하는게 아님 너희 배를 빵구멍 냄 우상제거)


(요 3:16, 개역)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15:5, 개역)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눅 17:20, 개역)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눅 17:21, 개역)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 17:22, 개역)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
(눅 17:23, 개역)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좇지도 말라
(눅 17:24, 개역) 번개가 하늘 아래 이 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 편까지 비췸 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눅 17:25, 개역)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눅 17:26, 개역)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돌아오기를 싫어하니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호 11, 5- 8)
호세아 2023 2024. 9. 28. 00:17
23-24 돌아오기를 싫어하니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호 11, 5- 8)

〈호세아 11, 8-12, 개역한글 구약성경 1266쪽, 어린이 찬양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찬송가 440장 새 387 멀리 멀리 갔더니〉 

〈어린이 찬양 ; 사랑으로 우리를 길러주시는〉 

1. 사랑으로 우리를 길러주시는 / 고마우신 하나님 우리 하나님
   예배하는 한 시간 기쁜 맘으로 / 작은 입술 벌려서 찬송합니다

2. 참되고도 재미난 하나님 말씀 / 언니같이 바르게 읽지 못하나
   한 자 한 자 손으로 짚어가면서 / 반짝이는 눈으로 성경 봅니다

3. 밝은 햇빛 주시는 우리 하나님 / 내 마음도 환하게 비춰 주시사
   착한 마음 가지고 살아가도록 / 작은 두 손 모아서 기도합니다


〈어린이 찬양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수정, 사도행전 16 31)〉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요한복음 3장 16절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구원을 얻으리라 사도행전 16 31 


〈어린이 찬양 ; 사랑은 더 가지지 않는 것 No.1763 찬미예수 2000〉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 버리는 것 버리는 것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 더 가지지 않는 것
이상하다 동전 한닢 움켜잡으면 없어지고
쓰고 빌려주면 풍성해져 땅위에 가득하네

오!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 버리는 것 버리는 것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 더 가지지 않는 것
자 내일 걱정일랑 버리고 모든 염려 주님께 맡기세
오!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 더 가지지 않는 것 

2. 섬기는 것 3. 베푸는 것 4. 다 주는 것


〈찬송가 440장 멀리 멀리 갔더니, 새찬송가 387장〉 

1. 멀리 멀리 갔더니 처량하고 곤하며 슬프고 또 외로와 정처 없이 다니니
   예수 예수 내 주여 지금 내게 오셔서 떠나가지 마시고 길이 함께 하소서

2. 예수 예수 내 주여 섭섭하여 울 때에 눈물 씻어 주시고 나를 위로하소서
   예수 예수 내 주여 지금 내게 오셔서 떠나가지 마시고 길이 함께 하소서

3. 다니다가 쉴 때에 쓸쓸한 곳 만나도 홀로 있게 마시고 주여 보호하소서
   예수 예수 내 주여 지금 내게 오셔서 떠나가지 마시고 길이 함께 하소서 아멘


〈찬송가 439장 만세 반석 열린 곳에, 새찬송가 386장〉 

1. 만세반석 열린곳에 내가 숨어 있으니 
   원수마귀 손 못대고 환난풍파 없도다
   만세반석 열린곳에 내가 편히 쉬리니 
   나의 반석 구주예수 나를 숨겨 주소서

2. 죄에 매여 죽을 인생 편히 쉬기 바라니 
   주의 가슴 넓은 품에 내가 찾아 안기네
   만세반석 열린곳에 내가 편히 쉬리니 
   나의 반석 구주예수 나를 숨겨 주소서

3. 이 땅위에 평안없고 기쁜일을 몰라도 
   주 예수의 참사랑을 내가 이제 알았네
   만세반석 열린곳에 내가 편히 쉬리니 
   나의 반석 구주예수 나를 숨겨 주소서

4. 험한 풍파 자나도록 순풍으로 도우사 
   평화로운 피난처에 길이 살게하소서
   만세반석 열린곳에 내가 편히 쉬리니 
   나의 반석 구주예수 나를 숨겨 주소서


〈가스펠; 예수님 맞을 준비됐나 No.2005 찬미예수 2000〉 

(눅 17:35, 개역) 두 여자가 함께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예수님 맞을 준비 됐나 진정 거듭 났나요 예수님 피로
네 옷은 흰눈보다 깨끗해졌나요 예수님 맞을 준비 됐나

두사람이 함께 맷돌 갈다가 두 사람이 함께 잠을 자다가
한 사람은 가고 한 사람은 남겠네 예수님 맞을 준비 됐나

난 주님 맞을 준비 됐네 진정 거듭 났어요 예수님 피로
내 옷은 흰눈보다 깨끗해졌어요 예수님 맞을 준비 됐네


찬미예수 2000 - No.738 스바냐 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습 3:17, 개역)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습 3:15, 개역) 여호와가 너의 형벌을 제하였고 너의 원수를 쫓아내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너의 중에 있으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습 3:16, 개역)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습 3:17, 개역)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습 3:18, 개역) 내가 대회로 인하여 근심하는 자를 모으리니 그들은 네게 속한 자라 너의 치욕이 그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느니라
(습 3:19, 개역)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로 칭잔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습 3:20, 개역)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로 천하 만민 중에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 하시며 즐거이 부르며
기뻐 기뻐 하시리라 
2 나의, 3 우리


〈호세아 11, 8-12, 개역한글 구약성경 1266쪽〉 

(호 11:8, 개역)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호 11:9, 개역)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발하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임이라 나는 네 가운데 거하는 거룩한 자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호 11:10, 개역) 저희가 사자처럼 소리를 발하시는 여호와를 좇을 것이라 여호와께서 소리를 발하시면 자손들이 서편에서부터 떨며 오되
(호 11:11, 개역) 저희가 애굽에서부터 새 같이 앗수르에서부터 비둘기 같이 떨며 오리니 내가 저희로 각 집에 머물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호 11:12, 개역) 에브라임은 거짓으로, 이스라엘 족속은 궤휼로 나를 에워쌌고 유다는 하나님 곧 신실하시고 거룩하신 자에게 대하여 정함이 없도다

(호 11:8, 현대어) 오, 에브라임아, 그러나 내가 어떻게 너를 내어 버릴 수가 있겠느냐? 오, 이스라엘아, 내가 어떻게 너를 포기할 수가 있겠느냐? 내가 어떻게 너를 ㄱ) 아드마처럼 파멸시킬 수 있으며, 내가 어떻게 너를 스보임처럼 멸망의 길로 빠지게 할 수 있겠느냐? 내 마음이 다시 돌아섰다. 너를 돕고 싶은 마음이 불붙듯 타오르고 있다. (ㄱ. 소돔, 고모라와 함께 멸망한 도시들(신29:23))
(호 11:9, 현대어) 다시는 끊어오르는 분노가 시키는 대로 너희에게 벌을 내리지 않겠다. 에브라임을 다시는 멸망시키지 않겠다. 나는 사람이 아니라 신이다. 나는 너희 가운데에 살아 있는 거룩한 신이지 멸망이나 시키러 온 자가 아니다.
(호 11:10, 현대어) [추방당한 곳에서 돌아온다] 이제 내 백성이 나를 뒤따라 올 것이다. 내 백성이 사자처럼 포효하는 나의 소리를 듣고 서쪽에서 달려올 것이다.
(호 11:11, 현대어) 그들이 이렇게 애굽 땅에서 새 떼처럼, 앗수르 땅에서 비둘기 떼처럼 떨면서 날아올 것이다. 내가 이렇게 그들을 다시 고향집으로 데려다 주어 살게 하겠다. 나 여호와가 하는 말이다.
(호 11:12, 현대어) [예언자의 말씀을 듣지 않은 죄] 에브라임은 온갖 거짓말로 내게 벽을 쌓고, 이스라엘 족속은 속임수로 내가 전한 말을 가로막는다. 그러나 유다 백성은 여전히 나를 믿고 그들의 거룩한 하나님으로 섬기며 충성을 바치고 있다.

(요 3:1, 개역)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요 3:2, 개역)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요 3:3,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 3:4, 개역)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요 3:5,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 3:6, 개역)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요 3:7, 개역)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요 3:8, 개역)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요 3:9, 개역)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요 3:10,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요 3:11, 개역)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
(요 3:12, 개역)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요 3:13, 개역)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요 3:14, 개역)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요 3:15, 개역)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개역)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7, 개역)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8, 개역)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요 3:19, 개역)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요 3:20, 개역)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요 3:21, 개역) 진리를 쫓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눅 17:20, 개역)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눅 17:21, 개역)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 17:22, 개역)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
(눅 17:23, 개역)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좇지도 말라
(눅 17:24, 개역) 번개가 하늘 아래 이 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 편까지 비췸 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눅 17:25, 개역)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눅 17:26, 개역)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눅 17:27, 개역)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눅 17:28, 개역)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눅 17:29, 개역)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눅 17:30, 개역)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눅 17:31, 개역)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 세간이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 오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이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눅 17:32, 개역) 롯의 처를 생각하라
(눅 17:33, 개역)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눅 17:34, 개역)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눅 17:35, 개역) 두 여자가 함께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먼저 거룩이라는 의미를 성화론자들이 말하는 의미와 달리
중심 곧 가운데 또는 정직한 영으로 보게 되면
인간에게는 중심 곧 정직한 영 그리고 거룩이 없다 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중심을 주실때에
그나마 거룩해질 가능성이 억수로 많은 자에게 주신다 라는
그런 성화롬자들의 주장과 달리 (예수님 당시로 치면 바리새인이 아닌 도리어 더러운 개같은 이방인에게 주시는 거죠)
오히려 전혀 거룩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자에게 주심으로써
거룩이 뭔가 라는 것을 나타내시는 겁니다

다윗은 이 거룩한 것이 내게 없?? 라고 우는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정직한 영
중심
성령의 놀라운 틴식을 주십니다

자 이렇게 되면 성령 곧 정직한 영을 다윗 또는 내가 소유 하는 겁니까?
아니면 정직한 영에 내가 소유 당하는 겁니까?

소유 당하기 때문에 성령이 들락 날락 부지런히 왔다 갔다 하는 전이 되는 겁니다

그럴때에
하나님은 성전에 계시니 즉 중심에 계시니
시온이 세상의 중심 아닙니까

하나님은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잠잠할 지어다 그 입 다물라 가 되는 거지요

즉 이 말은 얼마나 불공평했으면 입을 다물지 못하고 힐문한다 라는 것을 전제로 하는 거지요

그래서 기록된 겁니다
토기장이에게 천한 그릇 귀한 그릇 만들 권한이 없냐 라고
그래서 힐문 할자 즉 따질자가 없도록 하신 것이

이 중심 곧 너희 가운데 중심에 들어가 버렸다 라는 겁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뿔로 빵구멍을 뻥 내었다 라는 의미와도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중심이, 거룩이, 정직한 영이 들어오게 되면
비로소 그 사람은 뱃구멍이 빵구멍 뚫혀서
빈공백이 됨으로써 하나님의 원수 됨을 알고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써 우는 자가 되는 겁니다
비로소 그 입 다물게 되는 거지요
주님의 처분에 맡겨버리는 지옥의 몸을 알고 망해야 마땅함을 아는 자가 되는 겁니다

만약 내 중심에 주님 곧 오늘 본문에 거룩한 하나님이 들어오지 않으면
여전히 내 중심으로써
끝까지 따라가겠다는둥
장 지지겠다는 둥
십자가에 따라 함께 죽겠다 는 둥 할 겁니다

회개 눈물 금식 기도로 꺽으신 뼈를 살리겠다 라고 말이죠
이게 여전히 불순물 가득한 혼합물 찌기로
자기 의를 자기 중심을 고집하는

사탄아 썩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 곧 중심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구나 라고
이 중심을 거룩을 거부하는 자로 취급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아예 탈탈탈 털어서 빈손 빈터 만드셔서
오늘 본문처럼
주님 혼자 신나서 내가 너희 가운데 들어가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내가 주님과 동행하는게 아니라
베드로처럼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겠다 라는 뻥치는 모습이 아니라
너희가 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사랑해서 화목제로
넌 아직 십자가의 의미를 몰라
정직한 영도 없으면서
성령도 아직 주지도 않았는데
뭐? 거룩하다고? 동행하고 있다고? 아닌데 너와 나의 마음이 중심이 정반대 방향인데? 라고
오히려 연합은커녕 철저한 단절 구분 구별 차이를 느낌으로써
화로다 나는 주님과 동행 할 수 없는 지옥의 몸이다 라고
비로소 우는 자가 되는 거지요

결국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그 빈공백의 원수의 자리에서
내가 둘로 나누어진 것을 하나 되게 한 몸 동행케 하는게 아니라

주님 쪽에서 둘로 나누어진 원수된 나를 원수도 사랑하시는 이 율법의 완성 완료로써
둘로 나누어진 원수관계를 한 몸으로 만드시고자
성령의 놀라운 탄식을 곧 정직한 영을 내 중심에 박아버리시고
그 중심 곧 피죠 그 피를 발라버리시고는 그 거룩을 발라버리시고는
그 피 찾겠다 라고 주님이 손수 직접 나서시는 겁니다

내 잃어버린 피 어디 갔냐 라고
피 약속 중심
너희가 더럽히다 더럽히다 혼합시키고 찌끼를 썩어버리다
이젠 도저히 썩을수 없는 더럽히지 못하는 내 기념 이름 내 기념 피 내 기념 중심
내 정직한 영
그 잃어버린 정직한 영 발린자 피 발린자 약속 발린자를 도로 찾으시는
회수하시고자

가장 거룩에 가까운 자가 아니라
도리어 가장 거룩에 가장 먼자

기쁜소식은 오히려 가장 절망속에 있는 고아 과부 나그네
포로 된자가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갇힌 자가 무슨 놈의 희망이 있겠습니까?
억눌린 자가 무슨 놈의 기쁨이 있겠습니까?

성전즉량 거룩측량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창녀 세리 강도가 먼저 천국에 가는 이유는

천국이 바로 그들을 침략하기 때문입니다

그 시온이 바로 여부스 땅 마지막 가나안 족속의 땅이니까 말이죠
그 음부의 권세를 장악해 버렸는데
무슨 수로 음부의 권세가 이길수 있겠습니까
이미 정복해 다 이루었는데 말이죠
완료이다 말이죠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이미 떳기에 그 증상
이미 다 이루어졌기에 그 증상으로써의 결과물을 주님이 외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의 인간의 반응이나
본문을 보는 사람들의 반은은 전혀 딴판입니다

아니 북이스라엘 쫄딱 망한다면서요?

저번에 사이트에 주소 올린 그 사람처럼

애굽에서 불러냈다 내 아들을 그것도 사랑하는 내 아들을
어디 어디?
마태복음 2장에 기록된 말씀은 호세아 11장과 안 맞다 라고

그 사람의 주장이 오늘 본문을 봐도 여전히 더더더더 그 사람 말 마따나
의문만 더해 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내가 너거들처럼 그깟일로 심판하는 줄 아느냐
그건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지
나는 거룩한 하나님 곧 신이란다

그러니 내가 너거들 멸망치 않으니까 걱정하지 말아라 라는 식으로 말씀하십니다

(호 11:9, 개역)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발하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임이라 나는 네 가운데 거하는 거룩한 자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다시는] 말씀과
내가 [사람이 아니요] 라는 말씀을 주목해 보시면

[다시는] 에서 아 그럼 이전에는 심판해서 멸망 시켰다 라는 의미이거든요
그카이 사람들이 아 멸망 안 하시겠다 라는 말씀이 맞겠구나 라고
덮썩 물겠습니까? 오히려 더 의심을 하겠습니까?

지금 사람들이 호세아 당시 이 말씀을 듣는 자들이나
사실상 듣는 사람 없어요 다들 멀리 멀리 하나님에서 멀리 떠나가겠다 라고 결심했는데
들을턱이 없지요

그들뿐만이 아닙니다 그 사이트의 사람들처럼 솔직하게 말하면 그런 마음인데
다들 교회에서 서로 서로간의 눈치를 본다고 본색을 드러내지 않을 뿐이지
다들 오늘 말씀을 보고 
아이고 주님 이제 안 속습니다 내가 주님한테 한 두 번 속아습니까 라고 나온다 말이죠

그리고 사람이 아니다 라는 말씀은
주님이 당연히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 맞지요
그런데 인간 치고 하나님이 누구신지 창조주가 누군지 모르다 보니
사람의 생각 방식 외에는 할 수가 없다 말이죠
내가 생각해 버린 이상 인간의 생각 안이지
인간이 인간 밖의 생각 자체가 불가능 하다 말이죠

그런데 저 말씀 자체가 
사람이 아니니 라는 말씀 자체가 인간의 머리에서 납득이 되고 수용이 될 턱이 있겠냐 말이죠
딸랑 호세아 혼자 외치면서 호세아 혼자 듣고 있는데 말이죠

그러니 성경 어떤 말씀 치고 앞뒤가 맞는게 하나도 없어요
순 말도 안되는 말만 하시는 겁니다
말이 앞뒤가 맞고 말 되는 말이 되어버리면
그건 사람의 손에서 만들어진
종교교리요
누구 말 마따나 책제목처럼 [만들어진 신]이 되는 거지요

또 어준이 생각을 이야기 할까 하는데
인간들이 AI 인공지능을 만들어 놓고서
언제 인간을 뛰어넘어설까봐 늘 전전긍긍하더라 말이죠

결국 인간들이 하나님이 보다 더 높아지겠다 라고 배교 배신자로 지들은 나서놓고서는
정작 자기들이 만들 물건 기계들이 자기들 인간을 넘어설까봐 불안해 하더라 말이죠

결국 애초부터 사랑이 없었다 라는 거지요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멀리 떠나가기로 결심했다 라는 말 속에서는
넘어서겠다 라는 의미도 포함이 되어 있는 겁니다

그것이 모든 인간이 선악을 알게 되어서 하나님과 같이 된 모습인거지요

왜 인간을 선으로 보고 있고 그 선을 넘어서는 특이점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그 인공 지능은 왜 악으로 볼까요?
알고보면 거울인데

인간들이 하나님한테 했던 짓 그대로 누워서 침뱉기 하듯이
거룩을 비춰짐을 당하게 되는 것인데 말이죠

정작 주님은 오늘 본문에서

나는 하나님을 싫어할꺼예요
멀리 멀리 떠날꺼예요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결심을 할 겁니다 라고

온갖 협박 공갈 사기를 쳐도

주님은 우리 놀려먹듯이
아이고 아이고 귀여운 것 그래 니가 나를 떠나서 도망 칠수 있을 것 같으냐?
그런 생각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사람의 생각으로 해서 그런 것이다

자 그럼 반대로 베드로처럼 멀리 멀리 떠나기는커녕

절대로 세 번 부인하지 않고 가차이 가까이 딱 붙어다닐 겁니다
장지지겠습니다 이 놈의 장 오늘 몇 번 지질까요? 퀴즈 ㅋㅋㅋ
끝까지 따라갈 것을 결심 하겠습니다 라고 해서

역시나 사람의 생각이 아니게 될까요?
맹 사람의 일이기에 사탄아 썩 물러가라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곧 거룩한 자 이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결국 우리는 단절해야 될 것은 거꾸로 가차이 찰싹 붙이고 있고
성화론자들이 이래서 욕먹는 겁니다 모든 종교꾼들 다 이래요

또 정작 우리가 주님 앞에 내어놓아야 할 것은 자기가 알아서 버려야 한다는 식으로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사람의 일입니다

하나님 곧 거룩한 자 이다 라는 말은

말씀 곧 언약을 근거로만 해서 일하신다 라는 겁니다

그카이 인간들은 이 말씀을 모르고
취사선택해서 골라 골라 잡기 해서
자기가 믿을 수 있는 것만 고르고
어 이거는 나도 해 봤는데 라고 행할 수 있는 것 따로 뽑고
아 이거는 듣기 불편하고 행할수도 없고 나랑 상관 없을 거야 라고
발로 밀어놓어 멀리 떨어뜨리는 식으로 골라 골라
따로 국밥처럼 놀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명기 율법 출애굽기 율법이 아닌 신명기에서
부모 잡아먹고 자식 잡아 먹는 일이
설마 나랑 상관 없을 거야 했던 것이 실제로 닥쳤을때에
우리는 비로소 실감하게 되는 겁니다

가룟유다의 배신은 나의 성격이랑 안 맞을 거야 라고 나오지만
언제 닥칠지 모른다 말이죠
베드로의 예수님 세 번 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성격 내 스타일 전혀 꿈에도 생각해 본적도 없던 일이 설마 ~~~~
바로 이것이 사람의 일 사람의 생각이다 말이죠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일 곧 거룩한 자는
언제든지 그런 일을 닥치게 되어도

걱정마라 내가 너를 놓치지 싶으냐 라고 하시는

바로 인간의 믿음이 아니라
주님의 믿음을 오늘 이야기 하신다는 점입니다

다행이 우리가 지지난주에 천만다행으로 맞춤맞게 나누었던 말씀입니다
네 맞아요 로마서에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니 라는 내용입니다

네 인간의 소망이 아니다 라는 겁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소망입니다

인간의 소망은 마귀의 소망이 아니다 라고 하고서는
마귀의 소망과 딱 맞아 떨어지는 겁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에브라임 곧 북이스라엘의 모습인 거지요
더했으면 더햇지 남유다는 더 합니다 맹 똑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처럼 주님은 베드로야 걱정하지 말아라 라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시고
베드로 소망 박살났다고
베드로의 소망이 마귀의 소망으로 넘어갔다고 해서

주님이 내 너 베드로를 놓치고 내버려 둘 것 같으냐 라고
내 너를 위해 믿을 떨어지지 말라고 기도 
곧 소망했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내 소망만 이루어지기만을 바랬지
주님의 소망이 바로 이때
때려죽어도 안 보였던 예수님의 소원이
예수님의 기도가
바로 이 때 비일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바로 이것이 예수님의 소망인
베드로야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물으시는
이 예수님의 소망 앞에

뭐 내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해서 부끄러워서 못 간다는 둥 대답을 못한다는 둥
마귀가 이 놈 배신했응께 내놓으세요 라는 둥
이 딴 것들이

이 사랑의 거룩 불도져 앞에 그 막힌 담이 다 허물어 지는 겁니다

빵꾸멍 뻥뻥 뚫히는 거지요

오늘 본문도 그러합니다

가장 부요할 때 가장 범죄가 가득하여서
주님이 사랑의 매로 멸망 시키겠다 라고 하시니까

아직 멸망 아니잖아요 BC 722년 에 망하게 되고 (722년 이거 겨우 외웠으니까 언제 써먹겠습니까 이때 써먹어야지요 다들 알고 있는 것 ㅋㅋㅋ )

망하기 2-30년? 3-40년? 전부터 호세아가 활동했고

그 뒤 20년 뒤가 이사야가 활동 개시인가? 하여튼 그렇구
저는 역사 잘 못 외워서리 ㅋㅋㅋ

아무튼
가장 부요할 때 가장 범죄가 가득하여서
주님이 사랑의 매로 멸망 시키겠다 라고 하시니까

하나님 미워 라고
인간의 믿음에서는 부요함이 가장 최고의 믿음이거든요
그럼 이거 아니면 뭐 어짜라는 것이냐 라는 반응이나
멀리 떠나가겠다 라고 결심한다 말이죠

인간의 행함에서 나올수 있는 것 전부 다 나왔으니까 말이죠
그래도 불합격 땡 탈락 이렇게 되는데 
부자청년처럼 근심하고 등돌리고 다시는 만날 일 없다고 멀리 떠나는 겁니다

이건 뭐 그때 호세아 때나
부자청년의 예수님 당시나
오늘도 부자 되는 것이 믿음의 척도가 된 오늘날도 똑같습니다

이런 사람의 생각에 놀아나야 되겠습니까?

그래서 하루 아침에 가장 사람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물 위를 세 번 걸었던 그 정점을 찍었을때에 바로 하루 아침에 망하도록
물에 깊이 깊이 빠뜨려서 죽이시는 겁니다

거봐 안 멸망시킬께 라는 말 거짓말이다 아 또 사기치시넹

아니 그럼 자식이 독 달라 뱀 달라 전갈 달라 라고 해서
독 주는 부모 뱀 주는 부모 전갈 주는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냐 말이죠

그래서 중심 너희 가운데 예수님 본인을 주시겠다
거룩한 유일한 분
출애굽한 유일한 이스라엘 아들
내 사랑하는 자를 주시겠다 라고

이 새언약이 떳기에 주님은 혼자 싱글벙글 하시는 겁니다

왜 얼마전에 나온 영화 군부대 군인이 로또에 당첨되니까
혼자 실성한 사람처럼 계속 웃는 겁니다
그러다가 복권이 북으로 날라가버리는 실수를 하는 바람에
혼자 웁니다 혼자 웃고 혼자 울 듯이

주님은 혼자 웃고
드디어 다 이루었다 당첨 이거든요

그리고 에브라임 북이스라엘은 혼자 우는 겁니다 로또 북으로 날라가버렸으니까 말이죠
하나님이랑 안 놀래 라고 멀리 떠날 거야 라고 결심 결심 하더라 말이죠

아이고 그래 내가 너를 놓아줄까 싶으냐
나는 로또 당첨 되었는데
다 이루었는데
이미 새 언약이 떳는데

보라 내가 새 일을 다 이루어 놓았는데

그럼 이 다 이룬 십자가의 완료로 밀어붙이시는
이 거룩을 실행하시는 겁니다

인간의 거룩은 그 반대죠

나 만의 로또 당첨을 따로 추구하고픈 겁니다
그것이 자기 의입니다
자기 의로움이 박살 나니까 나 멀리 갈래 라고 하는 거지요

그렇게 가 버리면 주님이 다 이루신 것이 뭐가 되느냐 말이죠
주님 자신의 영광
예수님의 보이지 소망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예수님의 다 이루심을 말하기 위해서
나 소망 단 하나도 안 이루어진

도리어 포로 잡혀가고
갇힌자 되고
억눌린 자가 되었는데

베드로가 마귀에게 대제사장 여호수아처럼 붙잡혔는데
정작 주님은 오히려 신나게 박수를 치면서
표시해 놔라 반드시 돌아올테니까
베드로 너는 내가 가만히 둘줄 아느냐 라고

주님은 지금 마귀만을 상대로 하신 다 이루심을 이루었듯이

지금 호세아서에서 마귀에게 포로 잡혀가는 북이스라엘을 염두해 두시고서
이 맹세를 하시는 겁니다

이것이 거룩입니다
결국 사람의 헛된 맹세 따위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소망은 베드로야 내 너를 위해
믿음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 했단다
소망했단다 라고 하시듯이

주님은 지금 약속 하시는 겁니다

이것은 곧 동행 곧 둘이 원수 된 것을 하나 되게 한 몸 되게 하시는 이 약속의 원리는

창조주의 창조 때와 같은 원리입니다
곧 창조주가 누구인지 내 너에게 반드시 알려주마 라고 말이죠

에덴동산에 선악과와 생명나무 그리고 인간 이 세가지가 하나의 조합을 이루어져서
여호와가 누구신가를 알려주시는 식입니다

즉 모든 말씀에는 창세기부터 계시록 끝까지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고 해서
선악나무 생명나무 그리고 인간 이라는 이 창조를 말하는 창조 조합 한 세트 팀이 취소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성전 곧 중심에서 여전히 함께 동행하고 있는 겁니다

곧 오늘날도 교회 라는 성전이 아니라
예수님 이라는 걸어다니는 성전에서 말이죠

그럼 선악나무는 계시록에서 천국에는 없던데
왜 지금은 동행하는가?

바로 생명과 선악이 한 세트를 이루는
두 언약이 한 세드를 구성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오늘 본문도 보세요 누가 봐도 심판 하시겠다 라는 우회적인 주님의 결심이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고 멀리 떠나겠다 라고 하는 인간의 결심과 대조를 이루잖아요

그카이 누가 봐도 심판인데

주님 혼자 아니야 이건 심판이 아니라 멸망이 아니라 사랑이야 라고 하시는 겁니다

우리가 베드로 입장에서 주님 절대로 주님을 세 번 부인도 안할 꺼구요
절대도 버리지 않고 끝까지 따라갈 것이며
십자가에 함께 죽겠다니깐요
왜 그런데 마귀도 아닌 주님께서 먼저
왜 먼저 초를 치시면서 왜 먼저 너는 나를 세 번 부인한다 라고 말씀하십니까
그건 마귀들이 할 소리 아닙니까

왜 그러십니까?

저한데 왜 그러시는 거예요 ~~~~~~ 케보이 그럼 도대체 원하시는게 뭔데요 뭐
부자 청년처럼 말씀만 하이소 부족하면 언제든지 채우겠다니깐요 라고 여전히 미완료 뿐이다 말이죠

원하는 것 없다니깐요
이미 다 이루어졌는데 뭘 원해
로또 당첨된 주님 혼자 싱글벙글
빈털터리 된 베드로 혼자 밥먹다가 울상이 되는 겁니다
주변의 군인들이 정신병동에 보내자고들 한다 말이죠

다윗이 그래서 웃는 겁니다
신하가 아이고 왕이시여 조금 전 까지만 해도 우시더니
왜 지금은 웃으십니까?

창조주의 거룩이 내 중심에 왔거든
게임 오바 다 말이죠
게임 끝난 겁니다
이 원인 없는 결과를 누리는 것 뿐입니다
십자가의 다 이루심을
꺽으신 뼈로만 기뻐하는 겁니다

그래서 사라질 선악나무와 도 동행하고 생명나무도 동행하는 인간을 창조하신
그 창조주가 누구신가를 볼려면
이 두 언약
선악나무 언약 생명나무 언약
하나는 악한 무화과 나무로써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이고
또 하나는 좋은 무화과 나무로써 포로 잡혀갔음에도 불구하고 용서함을 받는 여고냐처럼

바로 생명나루로 가는게 아니라
어차피 선악 나무 없어진다면서요? 그럼 말라꼬 알아야 합니까

개같은 이방인 곧 율법 없는 이방인이 양심으로도 충분히 율법을 대신하니까
알 필요가 없을텐데

왜 바울 마저도 율법의 행위로는 절대로 의를 이룰수 없다 라고
율법 외에 한 의를 강조했던 바울 마저도

율법을 행하라는 말이 아니라 알아야 한다 라고 하는 이유는
그 율법이 없으면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는
하나님의 저주를 대신 받는지에 대해서 모르도록 되어 있다 말이죠

율법이 아니면 물론 율법이 선악과는 아닙니다
그러나 선악과로 정녕 죽으리라 라는 의미를 빼먹은채
선악으로 먹음직 보암직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하나님과 같이 된 것을

율법을 선악으로 이용해서(더군다가 법이다 말이죠) 
다들 모세의 자리(법의 자리)에 앉아버리고 있으니
재판 곧 심판 받아야 할 자가 도리어 심판을 퍼붓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발생한 십자가의 사건이니 걸림돌 함정에 걸려든거죠 올무에 말이죠
정작 율법은 나를 높여주는 하나님의 자리가 아닌
정반대인 정녕 죽으리라 속으로 집어넣는다 말이죠
심판 속으로 말이죠

아니 이런 심판을 누가 받고자 합니까
누가 이런 심판주를 영접하고자 하겠습니까? 선악을 제대로 아시는 예수님 뿐이시고
그 선악을 제대로 재판 하실 분은 예수님만이 심판주 이신데
누가 예수님을 단 한 사람이라도 영접할 수 있겠습니까?
이 정녕 죽으리라 라는 이루시는 심판이 없는데
어떻게 긍휼이 있겠습니까?
이 긍휼을 쳐다보기 위해서 나는 제대로 심판 하시는 예수님을
매국노 세리는 영접했고
반대로 바리새인 곧 거룩을 지키는 자는 예수님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의 되신 심판 주 되신 예수님께 복종치 않고
자기 의를 세우고자 십일조 이레에 두 번 금식 토색치 않은 육의 자랑만 나열하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스보임 이드마 라는 소돔과 고모라와 함께 멸망한 도시가 나온다 말이죠
저들의 멸망이 역시나 북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남유다도 같이 당함으로써

정작 베드로에게 잔뜩 묻어있는 가짜 거룩인 찌기 혼합물을
사랑하지 않는 자 곧 미워하기로 작정된 자는 가룍유다죠 
이 심판을 심판 그래도 활용하시고

그러나 베드로 곧 사랑하는 자기 아들 에게는 (요한의 아들 이라고 아들 곧 인자라고
내 심판 속에 들어간 자야 라고 물으시는 겁니다 예수님이 육시이 되셨듯이 인자야)
출애굽도 못했죠
마귀도 못 이기지요
그러나 주님께서 사랑하시기로 작정이 되어서
믿음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신 소망하신
예수님의 소망이 덮쳐진 자에게는
이 심판이 그런 불순물 혼합물 찌기를 용광로 속에 집어넣어서 정금같이 나오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능욕
그리스도의 고난
그리스도의 모욕 곧 그 부끄러운 십자가 만이

이 심판 하나님의 저주 정녕죽으리라 만이
그리스도의 긍휼을

족히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을
현재의 고난을 통해서 비로소 소망하게 되는 겁니다

두 사람이 성전 곧 만민이 기도하는 하나님의 집 즉 세상의 중심에서 기도합니다
인간의 중심이 다 드러납니다

한 쪽 바리새인은 나 중심 답지요 저 거룩잔뜩 지켰습니다 라고 나오고

다른 한 쪽 매국노 세리는 내 속에 중심 곧 정직한 영이 없어서 우는 겁니다

그래서 주여 이 절망 속에서 생명이시오 길이시오 진리를 보여달라고 울고 있는 겁니다

누가 만민이 기도하는 하나님의 집 곧 세상의 중심인
하나님은 성전에 계시니 중심이 되시니
온 천하는 잠잠하라
그 입 다물라
궁시렁 궁시렁 하지 말아라 라고

누가 이 성전과 중심과 동행하는 자 입니까?

떠는 자입니다

구원은 두려움과 떨림으로 이루라 라고 하듯이
우리는 늘 반대죠 
심판을 안정감과 신남으로 받는자 없지요 누가 아버지의 징계의 매를 사랑으로 보는자 어디 있겠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때리시는 겁니다 사생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말이죠
아버지가 있기에 말이죠

(빌 2:12, 개역)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단 6:26, 쉬운) 내가 새 법을 세운다. 내 나라에서 사는 백성은 모두 다니엘의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겨야 한다. 다니엘의 하나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며, 영원히 사시는 분이시다. 그의 나라는 결코 망하지 않으며, 그의 다스리심은 영원할 것이다.
(습 3:7, 쉬운) 내가 말하기를 ‘이제 예루살렘은 오직 나를 두렵고 떨림으로 경외하여라. 이제는 내 가르침을 받아들여라. 그러면 너희들이 살던 곳이 망하지 않을 것이며 나도 너희들을 심판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일찍 일어나 못된 짓을 했다. 하는 짓마다 모두 악했다.
(고후 7:1, 개역)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고후 7:15, 개역) 저가 너희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떪으로 자기를 영접하여 순종한 것을 생각하고 너희를 향하여 그의 심정이 더욱 깊었으니
(시 2:11, 개역)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엡 6:5, 개역)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그래서 두 언약으로 나누는 거룩한 자 곧 창조주다 말이죠
긍휼은 이 심판이 아니면 바리지를 않고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고
또 자기가 선악을 구분 짓는 하나님이 되어서
자기가 극복 할려고 하지

이것은 사자 앞에 떠는 비둘기가 아닌 거지요
어린아이와 같이 무능한 자가 아닌 겁니다
여고냐를 의도적으로 어린아이 때 포로 잡혀가도록 해서
좋은 무화과 나무 라는 기능을 존재가 아닌 기능을 보여주고

반대로 시드기야는 어른 답게 바보같이 안 굴고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고 가룟유다처럼 독립운동을 하는 겁니다
이것이 슬기록고 똑똑하다 라고 하는 자에게는 숨기시는

보이지 않는 예수님의 소망
곧 아들의 소원입니다

(마 11:25, 개역)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마 11:26, 개역)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마 11:27, 개역)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마 11:19, 개역)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마 11:20, 개역)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마 11:21, 개역) 화가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마 11:22, 개역)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마 11:23, 개역)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마 11:24, 개역)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마 11:25, 개역)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마 11:26, 개역)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마 11:27, 개역)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마 11:28, 개역)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9, 개역)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 11:30, 개역)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사자 앞에 비둘기처럼 떠는 자 만이 긍휼을 바라는 자 이지
곧 심판 속에서 말이죠

긍휼을 바라지 않는 자는 비둘기처럼 떨 필요가 없는 겁니다
사자 앞에 자기도 사자처럼 되면 사자가 사자 보고 떨 이유가 무엇있겠습니까

그 카이 독립운동을 하는 겁니다
내가 이미 선악을 아는 하나님과 같이 되었는데 말라꼬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긍휼을 바라느냐

어서 이 악한 조건에서 선한 조건으로 나아가고자 독립을 달성하면 된다 라고 말이죠

정녕 죽으리라를 해결 하는 방식이 인간들은 자기 자식을 낳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장자입니다

아들을 낳음으로써 육의 단절이 아닌 육의 부활을 계속 이어져 내려 오니까
단 한번도 정녕 죽으리라가 된 적이 없게 된 것이고
그 카이 두려움과 떨림 따위는 없는 거지요

오히려 청개구리처럼 자기가 자기를 보고 두려워 떠는 겁니다
저런 두려움과 떨림 따위는 없는 자가 되지 못한 자신을 보고 거꾸로 두려워 떠는 겁니다
이것이 마귀의 속임수 아닙니까 
다 이루었다 라는 완료를 못 쳐다보겠끔 미완료 라는 의문의 반복 속에서 못 빠져나오겠끔 말이죠

그래서 미리 예방 주사로 시온에서 나온 율법으로 우리를 미리 죽이시고 찢으시고
마귀로만 상대로 하신 예수님이 마귀가 베드로를 다 장악하기 전에
미리 예방 주사를 놓아서 미리 죽여놓으시니까

마귀가 아무리 에스겔을 입막아 벙어리 만들고 밧줄로 꽁꽁 묶에 다시를 비유 비밀을 말 못하게 하고 몽둥이로 패서 못 나오겠끔 할려고 하니까
이미 누가 미리 작살내었다 말이죠

이것이 바로 심판 속에서의 긍휼이다 말이죠
이 찢으심이 아니면 다시 싸매어 주심을 모르는 거죠
잃어버림이 아니면 다시 찾으시는 주님의 공로를 모르고
자기 공로만을 우기게 되겠지요

그래서 사생아는 이 징계의 매 자체를 이해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아버지가 있어 본적이 없고
아버지가 아닌 딴 사람들이 패는 그 매만 맞아봤길래
그게 무슨 긍휼이고 사랑이냐 라고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그러니 정녕 죽으리라를 누가 이루시는 가를 모르는 거죠
예수님만 알면 되는 선악을 괜히 알아서
내가 내 구원을 이룰려고 내가 싸워야 하는 겁니다
그 카이 두려움과 떨림은커녕
강한 자기를 훈련 시킨다 말이죠

아니 누가 약한 어린아이와 같이 될려고 훈련 하겠습니까?
제자훈련 은 예수님도 실패 했는데
그런 제자 훈련 한다고 해서 더더욱 약하게 되겠냐 말이죠
어린아이는커녕 도리어 결핍을 보강하고자 하는 부자청년처럼 변한다 말이죠

누가 2만 대군을 몰고온 장군한테 일만 군사 있는 자가 화친을 청하겠습니까?
모욕적이고 굴욕적인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얻고자 하겠습니까?

1%의 가능성만 있어도 맞짱 뜰려고 하겠지요
그것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 아닙니까
모든 인간들 전쟁 곧 혈과 육의 싸움은 다 이렇습니다

이길 생각 마시고 잡혀 오시면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얻는 어린아이와 같은 자가 되는 겁니다
물론 없지요 불가능 하고요

그런데 성공하신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님 이십니다

너희 가운데 있다 라고 바리새인이 삥 둘러 싸인 가운데 계신 예수님 본인이 천국이라고 하십니다

장소요 공간이요 영원이라는 시간인줄 알았는데
그런 시공간이 아닌 바로 인물과의 사귐이였습니다

그 거룩한 자가 그 천국이 너희 가운데
누구 가운데 둘러 쌓여 있습니까?

네 바로 바리새인 독사의 자식들입니다
천국에 대한 호기심으로 천국 마저도 정복해서 더럽힐려는 자들 말이죠

결국 예수님은 저들 가운데서 죽임을 당하심으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나옵니다

(호 11:12, 개역) 에브라임은 거짓으로, 이스라엘 족속은 궤휼로 나를 에워쌌고 유다는 하나님 곧 신실하시고 거룩하신 자에게 대하여 정함이 없도다
(호 11:12, 새번역) 에브라임은 거짓말로 나를 에워싸며, 이스라엘 가문은 온갖 음모로 나를 옥죄고 있다. 유다 족속도 신실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거역하고 있다.
(호 11:12, 공동) 에브라임은 거짓말로 나를 에워쌌고 이스라엘 가문은 속임수로 나를 둘러쌌다. 그러나 유다는 사뭇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고 거룩한 하느님에게 충성을 바친다.
(호 11:12, 쉬운)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꾸짖으시다> 이스라엘은 거짓말과 속임수로 나를 둘러쌌다.
(호 11:12, 킹흠정) 에브라임은 거짓으로, 이스라엘의 집은 속임수로 나를 에워싸되 유다는 여전히 하나님과 함께 다스리며 성도들과 함께 신실하도다.
(호 11:12, 한글킹) 에프라임은 거짓말로, 이스라엘 집은 기만으로 나를 에워싸나, 유다는 여전히 하나님과 함께 다스리며 그 성도들과 더불어 신실하도다.
(호 11:12, 현대인) 이스라엘 백성은 거짓말과 속임수로 나를 둘러싸고 유다 백성은 신실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여전히 거역하고 있다.
(호 11:12, 현대어) [예언자의 말씀을 듣지 않은 죄] 에브라임은 온갖 거짓말로 내게 벽을 쌓고, 이스라엘 족속은 속임수로 내가 전한 말을 가로막는다. 그러나 유다 백성은 여전히 나를 믿고 그들의 거룩한 하나님으로 섬기며 충성을 바치고 있다.‘

(물론 번역이 둘로 나누어 집니다 안그래도 한국어가 제일 어려운 저에게서도 믄말인가 싶어서 다른 번역을 보니 한국인으로 태어난 저도 더 헷갈리더군요
남유다는 그렇지 않았다와 아니다 남유다 이놈들도 똑같이 거짓과 속임수로 삥 둘러쌓다 라고 말이죠 저는 남유다도 똑같다 라고 늘 언급했듯이 더 했으면 더 했다 라고 했습니다 오홀라 언니 보다 예루살렘 딸 곧 오홀리바가 더 더 더 말이죠 오늘날 교회가 곧 저와 여러분들이 세상 안 믿는 자들보다 창녀짓을 우상숭배를 더 했으면 더 했지 더더더 더 한다 라고 말이죠 지금 나치로 변한 이스라엘 욕할 입장이 못 되는 거지요 이렇게 모든 인간을 애굽화 시키시는 겁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도록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도록 그렇게 걸러내시는 겁니다 주님 쪽에서만 사랑하셔서 피 발라 지옥 가는 놈을 건지실 뿐이지 지옥 안 가고 있는 자가 없도록 만드셔서 요나의 표적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레바논 사림인지 이란 사람인지 하여튼 수장 하나 이스라엘 비행기 폭격으로 사망하니까 순교자의 보복을 다짐하는 어떤 여인 아줌마 부대를 보고 저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똑같기에 아 주님의 심판이 천번 만벙 마땅 할정도로 당연함을 보게 됩니다 참으로 주님의 심판이 옳았음을 말이지요 그카이 저 창조의 원리인 선악나무 생명나무 그리고 인간을 창조한 원리가 지금까지도 작동해야만 하는 겁니다 이것이 창조주가 누구신가를 보여주시는 겁니다 안 그러면 말라꼬 사자 앞에서 두려워 떨겠으며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도 하지 않는 말씀이요 거룩한 자요 창조주 하나님이라면 누가 굴복 곧 보이지 않는 소망을 소망하겠습니까? 누가 믿었으리요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증거를
이 믿음이 떨어지지 말라고 누가 기도해주고 누가 탄식하며 울어주겠습니까?
다들 미쳐서 독립운동을 서로가 서로에게 하고들 있는 판국에 다들 하나님이 되어버린
이 악마의 세계에서 누가 건져주겠습니까? 오호라 나는 망했구나 이 지옥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주랴 ~~~~~ 그래서 오늘 본문이 내 너를 버리두지 않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믿음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 하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바로 호세아 11장 12절인데요
거룩하고 그리고 하나님이신 신이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이 생각한 신이 안 되어 준다고 삥 둘러 쌓여서
거룩이 뭔가를 보여주시고 계시는 겁니다
거룩이 누군가를 말이지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바로 사람에게 둘려쌓여서 죽는 하나님이 바로 
에브라임 손에 죽고 이스라엘 남유다 손에 죽는
바로 너희가 날 사랑할려고 삥 둘러 쌓아서 사랑한 것이 아니라
독립운동 안 도와준다 라고 내 나라 내가 지킨다를 안 도와준다 라고
바로 그런 것을 탈탈 털어서 바로 너희가 다윗처럼 하나님의 원수된 모습임을
대신 매 맞고 대신 심판받는 모습으로써

삥 둘러 쌓여 죽임을 당하는 분이 바로 거룩이다 라는 겁니다

뭐 성화론자들 그리고 개혁주의자들이 말하는 거룩과는 생판 딴판의 거룩입니다

진짜 거룩은 나를 제대로 하나님의 원수임을 들통내는
여호와의 구원의 뿔로서 뱃구멍을 뻥 빵구멍 내시는 분이
거룩이지

내 몸에 거룩을 칭칭 감도록 내 버려 둘줄 아느냐 말이죠
절대로 평생토록 거룩을 지킬려는 저 바리새인 독사의 자식 안 만드실려고
내버려 두시지 않겠다 라고 몽둥이로 패셔서

사생아 같이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따위의 소리를 못하도록 어린아이와 같이
매국노 세리와 같이 비둘기처럼 두렵고 떨게 하시지
사자처럼 독자적인 존재가 되지 못하도록 하시는 겁니다

사자는 주님이 심판주로써 사자이어야 하는데
거꾸로 예수님을 비둘기처럼 애워싸서 죽이려 드는 하이에나처럼 되고

주님은 반대로 어린아이와 같이 두려움과 떨림으로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갈기 갈기 찢기셨습니다

이 본문 12절을 보니
다윗의 시편이 자동적으로 떠오릅니다

(시 23:5, 개역)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시 23:1, 개역) [다윗의 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 23:2, 개역)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시 23:3, 개역)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시 23:4, 개역)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 23:5, 개역)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시 23:6, 개역)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시편에서 아직까지도 하나님의 원수가 누구냐 라는 해석을 못하고 있는데
다윗은 도대체 누구를 하나님의 원수로 보고서 그 원수로부터 건져달라고 하는지
아니 사울왕이 죽어도 또 여전히 원수에게서 건져 달라고 하니 말이죠
압살롬도 이미 지나갔고
심지어 죽기전에 요압장군도 솔로몬을 통해서 죽였고

다 해걀해도 여전히 그 원수 문제가 해결이 안되니 말이죠

평생을 원수들의 목전 삥 둘러 쌓인 곳에서 두려움과 떨림의
비둘기처럼 벌벌벌 떨다 갔다 말이죠

도대체 원수가 하나님의 원수가 누구냐 말이죠

바로 육입니다
결국 다윗이 평생 동안 시달린 그 원수들은
다윗 본인이 낳았던 자식들이요 자신의 육신에서 나왔던 산물들입니다(암논 다말 사건에서 압살롬이 다윗의 미온적인 대처에 엇나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인 거죠
그래서 압살롬 반란에 의해 쫓겨나듯이 도망쳐 다니는 겁니다 당장 죽이자 라는 장군들을 진정 시키는 이유이기도 하고요이것은 야곱의 12 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디나 겁탈사건으로 모조리 다 죽여버린 것을 보고
야곱은 걱정했던 겁니다 자기가 뿌린 씨앗들이 자기를 겨냥해서 날라오는 부메랑이 되었으니 말이죠 뿌린대로 거두는 겁니다)

자신이 낳은 증상물에서 자기가 시달려 평생을 뻥구멍 삥 둘러 쌓여 벌벌벌 떨었던 겁니다
그런식으로 자기 죄로 우는 자에게 굵은베옷으로 가려주시는 이 그리스도의 모욕에 그 부끄러운 십자가 날 위해 지셨음을 어서 죽어주세요 별세해 주세요 라고 심판주를 주께서 내 주께를 부르짖는 겁니다

자 그러니 그렇게 따지면 예수님 곧 창조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을 창조했는데 인간의 손에 죽임을 당하셨으니 말이죠
(인간의 머리에서 만들어진 신에게서는 없는 나올수 없는 신 이지요
어디까지나 신은 선하니까 선이 지는 꼴이 없으니깐요예수님 이후로는 또 역사속에서 베끼는 표절된 신이 나타나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라고 속지말라고 하셨듯이 말이죠)

그러나 걱정 마세요 오늘 본문처럼 야들아 내 너를 내버려 두지 않으니 걱정 말아라 라고 여호와의 뿔을 들고 말씀 하시듯이

인간을 창조하셨는데 그 인간의 손에
더더욱 자기 백성 손에 죽으시러 오셨다 라는 이 언약을 이루시고자 오셨으니까 말이죠

이것은 선악이 아닌 다시 싸매어 주시는 생명
곧 사랑이 아니면 저들 인간처럼 피할려고만 하고자 멀리떠나겠다고 결심 할 겁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아바 아버지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라고 대신 매 맞는
이 다시 싸매어 주시는 사랑 
이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 말이죠
율법 껍데기인 선악이 아니라
율법 알맹이인 이 율법의 완성인 사랑이 아니면
미완료의 반복이요 껍데기의 반복 선악의 법의 반복일 뿐이다 말이죠

한번은 소크라테스는 겁먹지 않고 당당하게 죽었고
예수님은 어찌하여 버리냐 라고 원망하면서 죽었다 라고
마치 철학자들은 자기가 소크라테스인냥 당당한 소크라테스 가 예수 보다 더 낫다 라고
그 얼굴에 웃음끼를 가득 품은 것을 보고 우와 살기가 넘침을 보게 되었습니다
유땡민 이 놈이 아주 당당하게 티비화면에 보여주더라 말이죠
완전 무당이 따로없죠 거짓선지자들의 평강없는 평강이다 평강이다 라는 의문의 반복
미완료의 반복 뿐이더라 말이죠
너는 겨우 겁쟁이 원망쟁이 먹보에 술꾼 세리와 강도와 죄인의 친구인 겨우 3년 짜리 제자이지
나는 1300년 묵음 모세의 제자야 라는 그 자부심을 실로암 소경에게 안 질려고 하는 모습이더라 말이죠 유땡민 뿐만 아니라 모든 철학자들이 실천가들 아닙니까 다 그래요
이미 다 완료가 되었는데 뭘 또 결핍을 채울려고 실천할려고 하느냐 말이죠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백날 해 보세요 정의가 이루어지는지???

중심이 없이 중심을 외치니까
주님이 너희 가운데 거룩으로 오시면 비로소 본색이 드러납니다
정직한 영이 없는 육신이라는 하나님의 원수 됨이 들통나서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는 이 본심만이 인간의 중심 속에 박혀 있었음을
그런 하나님의 원수로 들통내시는 이 심판 주를 사랑치 않는 자는 저주를 이미 받은 겁니다

이렇게 미움받기로 작정이 된자
사랑 받기로 작정이 된 자
이 두 나무 두 언약을 창조한 창조주가 누구신가를 말하고자 하는
이 창조의 조합을 미래완료로써 밀어붙이심으로써
그 결과물로
그 증상물로 다 이루심의 결과물로 우리가 이렇게 말씀 앞에 놓여진 겁니다
심판대는 죽어서 서는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서는 겁니다
이 심판 대가 바로 첫사랑이요 우리는 그 첫사랑의 증상물인 처음자리
고아 과부 나그네로써 불의한 자로써 하나님의 의를
첫사랑인 이 기쁜소식을 누리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이런 완료 곧 내 너를 가만히 내버려 둘 것 같으냐 라는 징계의 사랑의 매를 거부하고
부자청년처럼 어릴적부터 율법 다 실천했습니다 부족한 것 있으면 말씀만 하소서 당장 실천해서 그 미완료를 채우겠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다시는 주님의 심판대에 못 서도록 
등돌리고 근심하고 다시는 주 앞에 나타나지 않도록 만들어 버리시는 겁니다

부자청년은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환경에서 실천만이 살길이요 구원받을 길이다 라고 하니
주님이 하시는 일은 전혀 볼 생각이 없습니다

그저 내 구원은 내가 따 낸다 라는 식입니다
이것이 사람들이 만들어낸 종교의 구원론이요 거짓맹세요 거짓선지자입니다

그게 사람의 생각이고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기에 그 거룩(중심이 된 정직한 영인 단절)을 이룻시고자
우리 마음 중심 한 복판에
빵구멍 내셔서(단절의 3일 간극 도저히 부자가 지옥의 세 구덩이를 못 넘어서도록 단절 차단 구별 차이로써) 천국을 침노하시듯이
음부의 권세를 정복하시고자
가나안 정복 
아모리가 숙정될때까지 기다렸다가 그 지옥을 정복 사망권세를 이기시듯이

사랑의 매로 대서라고 아들 만들테니
사생아로 안 내버려 둘테니 걱정 말아라 라고 빵구멍 내시는
암덩어리 지옥덩어리를 도려 내시는 겁니다 우리 뱃구멍 우상숭배를 도려내시는 겁니다
꼬추 할례에서 허리 힘줄 뿌랐뿌고 다시 뱃구멍 곧 마음판의 할례
중심도 없으면서 중심 있는 척 그러나 그 가운데 중심 한 복판은 우상숭배 밖에 없는
그 지옥을 멸하시러 모든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러 오신
이 사랑이 아니면 누가 저 소돔과 고모라에서 벗어나겠습니까
이 한 씨 덕분이다는 겁니다 뭐 부자청년의 실천력? 뭐 철학자들의 실천력?
모조리 다 속임수일 뿐입니다 대충 대충 고치는 미완료일 뿐이다 말이죠

이 구원의 뿔인 수술 칼 아니였으면 우리는 벌써 저 소돔과 고모라
이드마와 스보임처럼
유황불이 떨어져 그 어떤 생명의 새싹도 자랄수 없는
그야말로 생명나무 생명 따위는 전혀 없는 지옥일 뿐입니다

전쟁만 매일 매일 벌어지는

우리는 아무 잘못도 한 것이 없어요 라고 울고 있는 어린아이를 보고서도
그 거울을 보고서도 어떻게 해서든 독립을 할려고 하는
그 의문의 반복만을 할 겁니다

지옥의 왕 노릇을 더 해먹겠다 라고 말이죠 말만 독립 외치지 순 거짓 뿐입니다
탐심이라는 우상숭배 뿐인 거죠 하나님과 우상을 썩은 혼합물 말이죠

그 결핍의 자기 배를 위한 우상숭배
백날 채워도 채워도 여전히 만족함도 배부름도 없는
그래도 못 먹어도 고 라고 배부를 수만 있다면 이라는 보이는 소망을 채울려고
허공을 먹고 또 배고프다고 하이에나처럼 밤새도록 우는 짐승의 모습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어서 이 짐승의 몸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나 보다 더 상하고 통회하는 모습으로 오신

이 그리스도의 능욕에 고난에
주틀 본을 다 이루셨으니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를 이 붕어빵 주틀에 찍어주고자
새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새창조하고자 왔고 다 이루었다 라고

이 주틀 그리스도의 모욕인 십자가에 걸맞는 죄인을 부르러 왔음을
잃어버린자를 찾으러 오셨음을

그래서 포로 속에서 긍휼을 바라는 자로 만드시기로 작정한
사랑하기로 작정된 자임을 오늘 본문에서 누누이 외치고 있습니다

물론 아무도 안듣고
이 본문을 보고 있는 그 사이트의 그 누구처럼
우와 이 말도 안되는 상황을 계속 밀어붙이시는 주님이 도통 이해가 안 될 정도로

내 너에게 반드시 장가 들고야 말겠다 라는 이 첫맹세를 기여이 다 이미 이루셨다 라고 선포하시면서 외치신다는 사실에

이 보이지 않는 소망이
어떻에 보이는 소망 곧 인간들의 믿음 인간의 소망 인간의 사랑과

단 한 개라도 맞는 구석이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 오히려 더 기쁜 소식임을

이 희년을 즐겨 누리시길 바랍니다 

(마치 오늘 본문처럼 주님이 놀리는 듯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마무리를 왠지 놀리는 것처럼 들리시겠지만 
저도 얻어터져서 저절로 나오는 실소입니다
하도 기가차고 말이 안되어서 
그런데 이것 보다 더 또렷한 것이 없어서 말이죠 말도 안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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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8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마땅히 빌바를 아시는 분의 죽음) (롬 8,26-27)
2024.10.27

어서 죽어주소서

(눅 9:28, 현대어) [형상이 변화하시다;마17:1-8,막9:2-8] 이 말씀을 하신지 여드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가셨다.
(눅 9:31, 개역)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할새
(눅 9:31, 현대어) 영광스런 빛에 감싸인 그들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죽으실 일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니 (롬 8,22-26)
로마서 2022 2024. 10. 5. 07:54
22-047 보이는 소망(미완료)은 산(참)소망(완료)이 아니니 (탄식의 집단 곧 고난 받는 그리스도의 한 몸 완료) (롬 8,22-26)

〈롬 8,26-27, 개역한글, 신약성경 250쪽, 찬송가 177장 새 190장 성령이여 강림하사, 찬송가 539장 새 488장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성령이여 강림하사 새찬송가 190장(통177) 
멀리 멀리 갔더니 (찬 440) 새찬송가 387장(통440) 
내 주여 뜻대로 (찬 431)
너 근심걱정 말아라 (찬 432)
찬미예수 2000 - No.1868 누군가 널 위해 (누군가 널 위하여)
찬미예수 2000 - No.513 내손을 주께 높이
찬미예수 2000 - No.355 재대신 화관을
새찬송가 184장(통173) 불길 같은 주 셩령
새찬송가 187장(통171) 비둘기같이 온유한
찬미예수 2000 - No.1000 잡아주시네
찬미예수 2000 - No.1588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

〈찬송가 173장 불길 같은 성신여, 새찬송가 184장〉

1. 불길같은 성신여 간구하는 우리게 / 지금 강림하셔서 영광 보여줍소서
   성신이여 임하사 내영혼의 소원을 / 만족하게 합소서 기다리는 우리게
   불로 불로 충만하게 합소서

2. 주의 제단불위에 우리 몸과 영혼과 / 우리 가진 모든것 지금 바치옵니다
   성신이여 임하사 내영혼의 소원을 / 만족하게 합소서 기다리는 우리게
   불로 불로 충만하게 합소서

3. 모든것 다바치고 비고 비인 마음에 / 주의 이름 위하여 성신 충만합니다
   성신이여 임하사 내영혼의 소원을 / 만족하게 합소서 기다리는 우리게
   불로 불로 충만하게 합소서

4. 구속하신 주께서 허락하신 성신을 / 믿고 간구 하오니 지금 내려줍소서
   성신이여 임하사 내영혼의 소원을 / 만족하게 합소서 기다리는 우리게
   불로 불로 충만하게 합소서


〈찬송가 177장 성령이여 강림하사, 새찬송가 190장〉

1. 성령이여 강림하사 나를 감화하시고
   애통하며 회개할 맘 충만하게 합소서
   예수여 비오니 나의 기도 들으사
   애통하며 회개할 맘 충만하게 합소서

2. 성령이여 강림하사 크신 권능 줍소서
   원하옵고 원하오니 충만하게 합소서
   예수여 비오니 나의 기도 들으사
   애통하며 회개할 맘 충만하게 합소서

3. 힘이 없고 연약하나 엎드려서 비오니
   성령강림 하옵소서 충만하게 합소서
   예수여 비오니 나의 기도 들으사
   애통하며 회개할 맘 충만하게 합소서

4. 정케하고 위로하사 복을 받게 합소서
   충만하게 하시오니 무한 감사합니다
   예수여 비오니 나의 기도 들으사
   애통하며 회개할 맘 충만하게 합소서


새찬송가 187장(통171) 비둘기같이 온유한

1. 비둘기 같이 온유한 은혜의 성령 오셔서
   거친맘 어루만지사 위로와 평화주소서

2. 진리의 빛을 비추사 주의 길 바로 걸으며
   주님을 옆에 모시고 경건히 살게 하소서

3. 주님과 동행하면서 거룩한 길로 행하며
   진리의 예수 붙잡고 길잃지 않게 하소서

4. 연약한 나를 도우사 하늘의 먼길 다가서
   주님의 픔에 안기는 영원한 안식 주소서 아-멘


찬미예수 2000 - No.1868 누군가 널 위해 (누군가 널 위하여)

1. 당신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고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 내릴 때
주님은 아시네 당신의 약함을
사랑으로 돌봐 주시네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2. 당신이 외로이 홀로 남았을 때
당신은 누구에게 위로를 얻나
주님은 아시네 당신의 마음을
그대 홀로 있지 못함을

조용히 그대 위해 누군가 기도하네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위해 기도하네


찬미예수 2000 - No.246 우리 모두 주를 찬양해

우리 모두 주를 찬양해 그의 거룩하신 성령 안에서
다 마음 합하여 다 주를 찬양해 우리 주의 영광 가득하리라
주찬양(주찬양) 주찬양(주찬양)
이 찬양중에 거하시는 주 주를 부르는 자 기뻐하시네
다 마음 합하여 다 주를 찬양해 우리 주의 영광 가득하리라
주찬양(주찬양) 주찬양(주찬양) 주찬양


찬미예수 2000 - No.513 내손을 주께 높이

(사 61:1, 개역)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사 61:2, 개역)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사 61:3, 개역)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내손을 주께 높이 듭니다 내 찬양 받으실 주님
내맘을 주께 활짝 엽니다 내 찬양 받으실 주님
슬픔 대신 희락을 재대신 화관을
근심 대신 찬송을 찬송의 옷을 주셨네
내손을 주께 높이 듭니다 내 찬양 받으실 주님
내맘을 주께 활짝 엽니다 내 찬양 받으실 주님


찬미예수 2000 - No.355 재대신 화관을

재대신 화관을 내게 슬픔대신 희락을
근심대신 찬송의 옷을 입히사
우리로 여호와의 지으신 의의 나무되어
주께 영광 돌리라


찬미예수 2000 - No.1000 잡아주시네

어린 아이처럼 그저 오라 하시네
나를 잡아주시네 주의 강한 손으로 
잡아주시네 할렐루야 거룩한 주님
잡아주시네 할렐루야 거룩한 주님
나 가난한 맘으로 주께 가기만하면
도우리라 주가 말씀하셨네
내가 죽어야만 많은 열매 맺히리
주와 함께 못박혀 다시 살리라
다시 살리라 할렐루야 거룩한 주님  
다시 살리라 할렐루야 거룩한 주님  
하늘 보좌위에 앉아계신 예수님
천사들도 모두 모여 경배해
거룩하신 이여 흠이 없는 구주여
찬양받으소서 나 소리높여서
찬양하리라 할렐루야 거룩한 주님
찬양하리라 할렐루야 거룩한 주님


찬미예수 2000 - No.63 정결한 마음 주소서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오 주님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오 주님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님앞에서 멀리 하지 마시고
주의 성령을 거두지 마옵소서
그 구원의 기쁨 다시 회복시키시며
변치않는 맘 내 안에 주소서


찬미예수 2000 - No.515 주님의 영광 나타나셨네

주님의 영광 나타나셨네
권능으로 임하셨네
죽음에서 날 살리신 주 성령
놀라우신 주 하나님 
할렐루야 주의 나라가
       (눈먼 자는 눈을 뜨며)
할렐루야 임하소서
       (저는 자는 걷게 되리)
나는 선포하리 만왕의 왕 예수
주의 나라 임하시네


찬미예수 2000 - No.79 주의 산에 오를 자

(시 24:1, 개역) [다윗의 시]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시 24:2, 개역)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시 24:3, 개역)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시 24:4, 개역)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시 24:5, 개역) 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시 24:6, 개역)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셀라)

주의 산에 오를 자 누구랴? 손 깨끗한자
거룩한 곳에 설자는? 맘청결한자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주께 향하는 자 찾아 - 오!
주의 산에 오를 자 누구랴? 손 깨끗한자
거룩한 곳에 설자는? 맘청결한자


찬미예수 2000 - No.1588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

(미 4:2, 개역) 곧 많은 이방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주님의 도를 배우고 주님의 길로 행하리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 나오고
주의 말씀은 예루살렘에서



〈롬 8,26-27, 개역한글, 신약성경 250쪽〉

(롬 8:26, 개역)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롬 8:27, 개역)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롬 8:26, 새번역)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알지 못하지만, 성령께서 친히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여 주십니다.
(롬 8:27, 새번역)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생각이 어떠한지를 아십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도를 대신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 ㉣그, '분께서는



먼저 27절의 번역서를 살펴 보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두 하나님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있고 [성령의 생각]에서 성령이 있으니 말이죠

(롬 8:27, 개역)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롬 8:27, 새번역)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생각이 어떠한지를 아십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도를 대신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 ㉣그, '분께서는'
(롬 8:27, 공동) 이렇게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 성도들을 대신해서 간구해 주십니다. 그리고 마음속까지도 꿰뚫어 보시는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성령의 생각을 잘 아십니다.
(롬 8:27, 쉬운)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아십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성도들을 위해 중보 기도를 하시기 때문입니다.
(롬 8:27, 킹흠정) 마음을 살피시는 분께서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시나니 이는 그분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들을 위해 중보하시기 때문이니라.
(롬 8:27, 한글킹) 마음을 살피시는 분이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시나니, 이는 그 분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들을 위하여 중보하시기 때문이라.
(롬 8:27, 현대인) 사람의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은 성령님의 생각을 아십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시기 때문입니다.
(롬 8:27, 현대어) 그리고 모든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아시는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뜻에 맞게 간구하시는 성령의 뜻을 다 알고 계십니다.


즉 주께서 내 주께처럼
하나님이 둘로 분절이 되어서 나타납니다

(마 22:44, 개역)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막 12:36, 개역)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눅 20:42, 개역) 시편에 다윗이 친히 말하였으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행 2:34, 개역)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시 110:1, 개역) [다윗의 시]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이것은 개신교의 삼위일체 사상과도 무관합니다 그것은 삼신론과 같은 플라톤 철학사상의 영향일 뿐이고
그렇다고 다큐영화 회복에서 나오는 유대인들이 왜 유일신을 안 믿느냐 라고 자살폭탄 터트리는 테러를 벌리는 그런 유일신 사상도 아닙니다

주께서 내 주께 라고 다윗이 외친 즉 구약 아닙니까
이것을 저들 유대인들은 두 개의 하나님을 무슨 수로 해석할 줄 알겠습니까?
유일신 사상이라는 이단사상을 자기들이 이율배반적으로 믿고 있는 판국인데 말이죠

그래놓고 이단 예수의 사상을 배격하겠데요 글쎄
지들이 이단이면서 말이죠 구약이랑 안 맞아요 유대교는 말이죠

자 그럼 개신교처럼 삼위일체냐 라고 지들(기독교)도 이해 못하고 남도 이해못아는
신비교리로 만들어서 속이고 있으니
안 믿겨지면서도 믿는척 해야 하는
왜냐하면 저 삼위일체로 이단을 결정짓는 짓을 억수로 많이 했거든요
자기들이 이단이면서 말이죠

주께서 내 주께를 다윗이 외친 이유는
하나님 본인이 심판을 날려놓고
하나님 본인이 그 심판을 대신 맞는 당하는 그 두 주님을 본 겁니다
그 좁힐수 없는 앞뒤 모순된 간극 단절 이 공백의 간극 자체가
하나님의 의요 거룩이다 말이죠 성화론자들이 말하는 거룩과는 완전정반대의 거룩입니다
인간의 거룩은 오히려 두 언약의 하나님의 원수됨을 드러낼 줄 모르는 도리어 숨겨놓는 완악한 수건을 안 벗는 거룩이고 유대교랑 똑같죠
이 간극의 공백이야 말로 거룩으로써 하나님의 원수를 드러내는 겁니다
바로 다윗입니다
이 다윗을 제대로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으로 들추어내지 못하는 거룩이면
그게 무슨 거룩이겠습니까?
비로소 다윗은 왕의 자리에서 죄인의 자리 라는 처음자리
사자 앞에서 벌벌벌 떠는 비둘기 라는 본래의 자리에서
비로소 꺽으신 뼈로 화목제로 인애와 자비를 보게 되지
안그러면 또 번제와 제사를 추구하는 아세라와 바알 선지자 850명의 악령이 들어간
그 의문의 반복인 번제와 제사를 반복하면서 지도 천국 안가고 남도 천국 못가게 가로막아서
삥이나 뜯는 종교마약오락놀이만을 할 뿐입니다
46년 동안 성전을 완료도 못하고요
반대로 엘리야의 번제단은 바로 이스라엘의 처음자리에 마중나오시는 탕자에 마중나오시는
예수님의 죽음 유월절 어린양의 죽음으로써 성전 곧 중심을 완료하시는 겁니다
다 이루었다
이것이 바로 주께서 내 주께 주님 본인이 화목제물이 되시는 겁니다
심판을 취소하시는게 아니라 그 심판에 대신 죄 값을 치르시는 주께서 내 주께 말이죠

바로 이 중싱 이 거룩에
복종하는 마음이 바로 성령의 생각이고
이 성령의 생각이 아니면 모조리 육신의 생각 곧 하나님과 원수된 생각일 뿐이다는 겁니다

웃끼게도 성화론자들른 사람들이 행할 수 있는 거룩을 거룩이라고 사기를 치면서
자기 존재로 귀결되는 거룩 곧 보이는 소망만을 추구할 뿐입니다
주께로 가지 못하는 찌끼가 혼합된 혼합물일 뿐입니다

이런 성화론자나 개혁주의자들은
오늘까지도 교인들을 사기치면서
지도 못 지키고 남도 못 지켜서 삥이나 뜯으면서 지옥에 가고 있더라 말이죠

성화론보다 한 수 떨어진 자들은 심령천국이라고 또 사기를 치고 말이죠

결국 하나님의 의에 복종 못하는 이유는
저런 자기 의를 쌓기에 미쳐 있는 거죠 하나님께 대한 열심을 쌓는 겁니다
그게 뭐가 나쁘냐

그 하나님이 과연 진짜 하나님이냐 라는 거지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데
바로 이 둘로 분절이 되는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망하는 겁니다

(롬 10:1, 개역)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롬 10:2, 개역)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롬 10:3, 개역)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롬 10:4, 개역)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롬 10:5, 개역)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롬 10:6, 개역)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롬 10:7, 개역) 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롬 10:8, 개역)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롬 10:9, 개역)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롬 10:10, 개역)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 10:11, 개역)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롬 10:12, 개역)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롬 10:13, 개역)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롬 10:14, 개역)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롬 10:15, 개역)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롬 10:15, 개역)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롬 10:8, 개역)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즉 말씀 되시는 예수님이 가까이 오지 않았다면
말씀이 네 입이 있지 않았을 것이고
네 마음에 있지도 않았을 것이고
보내심을 받지 않았다면 그것도 누가복음에 딸랑 한명 사렙다 과부에게만 엘리야가 보내심을 받았고 나아만 장군 문둥병자에게만 딱 한 사람에게만 보내심을 받았다 말이죠
왜? 저들이 바로 처음자리 벌벌벌 두려워 떠는 사자 앞의 비둘기 이거든요
나머지는 선민이니 뭐니 다들 구원받을 자격 조건 갖출려는 자들이나
성령의 생각과 상관이 없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육신의 생각 뿐이다 라는 겁니다
그런 자들을 만들어낼려고 교육시키는 것이 바리새인이였듯이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말이죠
바로 저런 자들과의 차이성으로써 단절 구분 구별 차이를 내시는
두 언약으로 가르시는 분이

중심이 없어서 마음이 없어서 우는 자에게
정직한 영을 주시는
주께서 내 주께 라는 하나님의 의에 복종케 만드시는
하나님의 거룩입니다
즉 인간이 지킬수 있는 거룩이 아니다 라는 겁니다
거룩 차원이 달라요 사고방식 자체도 말이죠
그런데 자꾸 인간이 행할수 있는 거룩을 조작해내고 조건으로 갖출려고 하니
하나님의 의 스스로가 찾으시는 잃어버린 한 마리 양과 다른
99마리의 양인 거죠

두려움과 떨림이 없는 조건 갖추기 이듯이
주님 쪽에서도 잃어버린 자를 찾고자 헤메이시는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수 없는
듣고 깨달아 고침을 받을까봐 전전긍긍 하시는 이 주님의 보이지 않는 소망 소원 곧 인애와 자비의 비밀입니다
비유로 말하는 자야 또 너냐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야 또 너냐
정작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는 너와 너 아비 이면서 말이죠 아합왕 말이죠
가뭄 핑계를 비유로 말하는 자야 또 너냐 라고 꼬투리 잡아서 핑곗꺼리로 삼는 겁니다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 이라고 
하나님은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잠잠할 지어다
왜? 입 다물지요

허걱 으악
저 처참하기 짝이 없는 절대심판을 보고
화로다 화로다 나여 내가 당하는 저주 심판은 심판 축에도 못 드는
정녕 죽으리라 라를 절대저주를 봐 버렸거든요

이것을 보는 자가 바로 비둘기처럼 벌벌벌 두려워 떠는 자리
처음자리입니다 그러니 첫사랑은 허걱 거리면서
말도 다 할수 없는 도리어 그 입 다물라 경빈처럼
숭고한 거룩앞에서 그저 심판받아 마땅한 죄인으로만 드러날 뿐이게 만드시는
첫사랑이다는 거죠 그정도로 갈기 갈기 찢기시는
하나님의 절대 저주의 심판을 봐 버렸거든요
내가 당해야 하는 심판인데 말이죠

바로 이 의를 담은 것이 
이 중심을 담고
이 마음 곧 인애와 자비
인간에게는 없는 정직한 영을 받은 것이
세상의 중심인 시온에 세워진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처럼 입을 다물었습니다

인간의 죄악이 너무 허다 해서 혀를 내두를 정도로 말을 다 할수 없어서
입을 다물 수밖에 없고

그래서 심판은 아주 아주 당연하다 라는 겁니다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을 찾고 부르시러 오신 사랑이다는 거죠

이 사랑 (인애와 자비) 와 죄인 환자 와의 한 세트를 구성해서
그는 흥하고 나는 망해야 함을 아는 자가 중심 곧 마음이 있는 자입니다

인간들이 말하는 거룩이라는 둥 마음이라는 둥 다 거짓입니다
인간은 마음이 없어요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기 때문에
오로지 허구인 우상만을 까까득 차 있기 때문에
썩은 마음은 마음 축에도 쳐 주지를 않는 겁니다

마음이 새 술을 담는 새 부대가 아닌 이상
없는 자기 없는 자아
우상인 자기만이 꽉차 있는 그 중심 그 마음 빵구멍 뻥 뚫혀서
뱃구멍이 없어져야 비로소 새 마음을 받을꺼 아니겠습니까

허구 우상으로 까까득 차 있는데 무슨 수로 새 마음이 새 중심이 들어가겠느냐 말이죠
아까전의 구절 
말씀이 가까이 올 수가 있겠습니까?

성전은 중심에만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세운 교회들 각 지역 지방 도시에 있다 고 해본들
중심이 없으면 뭐 그런 교회 다 가짜입니다
진짜 교회는 중심에 세워집니다
그카이 또 지금 저 예루살렘 땅을 말하는 장소 개념이냐 아니요
마음판의 할례처럼
인간의 중심에 세워지는 성전입니다

바로 그 중심이 없어서 망하는 겁니다
그럼 중심 곧 너희 가운데에 있는 예수님을 세울려며는
인간의 중심인 배가 마음판인척 하면서
마음을 다 장악한 탐심을 채우고자 하는 그 배가 빵구멍 무너지듯이
기경 밭갈이 전복을 당해야 합니다

아니 저 이스라엘땅 예루살렘이 중심이면 뭐합니까 마귀들이 지금 다 장악하고 있는데
그 마귀들이 저 장소 차지했다고 해서 유대교랑 이슬람이지요
그럼 다른 종교 라는 짐승은 상관없느냐
다른 종교는 예루살렘 땅 장소를 안 차지하고 멀리 떨어져 있잖아
아니지요 그 마귀가 모든 인간의 배를 곧 중심을 다 장악했다 말이죠

그렇다면 성령의 소욕은 바로 이 인간의 중심을
자기 배를 천국으로 삼고 잔칫집 만들려고 탐심을 채우고자
예수님을 임금 삼고자 쫓아올때에 예수님은 도망치시는 거죠
그런 우상숭배에 놀아나지 않겠다 라고 말이죠

그러니 모든 인간의 중심인 배를 빵구멍 뚫어버리지 않으면 그거 가짜 하나님이다 라는 겁니다

그 의의 병기인 이스라엘에게서 난 한 뿔
여기서 이스라엘이란 저 지금의 이스라엘이 아니라 그건 가짜이고요
출애굽에 성공한 유일한 딱 한 분 만이 아들 곧 이스라엘이다 말이죠

아들도 아닌 사생아 들이 지금 아들이라고 선민이라고 우기는 식이
오늘날 한국 교회와도 똑같죠 특히 저 성화론자들의 결백증은
바리새인들의 거룩집착증과도 똑같습니다
얼마전에 어떤 사모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라고 성경구절을 인용해 계속 사기를 치듯이
짜증을 내면서 뻘건 글씨로 여고괴담 귀신처럼 점점점 크게 적는 것을 보고
귀신 씌였구나 라고 지들이 스스로 드러내듯이 말이지요

아무튼 믿는 하나님이 서로 다르다 보니
자꾸 인간들이 지킬수 있는 거룩을 가짜라고 무시하니까
자쯩을 내던데

정작 본인들이 이 진짜 하나님 곧 둘로 나누어지는 하나님을 모르니까
자꾸 거룩을 인간 쪽에서 지킬수 있다고 보고 그 열매로
자기들이 받는 수업료를 열매라고 우기는 식이니까
그 카이 목숨 걸고 달려드는 겁니다 순교랍시고

아니 그런 종교오락 마약게임에 누가 속습니까?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냐 말이죠
입은 삐둘어져도 말을 똑바로 하자 말이죠

십자가를 그따위 가짜 하나님이 진 적이 있느냐 말이죠

이 말은 그 어떤 인간의 기도가 다 가짜 이다 라는 겁니다
곧 신앙 즉 믿음은 가짜 이다 라는 거지요

오로지 마땅히 빌 바를 아시는 단 한 분 만이 제대로 기도하시는데
그 분만이 바로 중심 곧 마음이 있어요

마음도 없는 것들이 자꾸 마음 있다고 사기를 치면 안됩니다
정직한 영 곧 중심이 없다 라고 다윗이 시인해 버렸고

우리가 앞서서 의의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한다 라고 

이미 선언해 버렸다 라고 했다 말이죠 모든 인간이 말이죠

그런데 이제 와서 왜 자꾸 사기를 치냐 말이죠

하나님 본인이 둘로 쪼개어지는 화목제물이 되지 않는 그 마음 백날
인간이 간직했다고 우겨도 안 속습니다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만이 마음이 있고요
그 앞에서 다윗은 마음이 없다
중심이 없다

백날 예수님이 바리새인들 삥둘러 쌓인 그 한 가운데에 있어도
저들에게서는 하나님고 없고 중심 곧 마음도 없고 천국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천국에 대한 탐심은 또 있어가지고
성경구절 문자해독을 해서 거룩을 지키겠다 라고 나오니
그게 무슨 비밀입니까? 그게 뭐 사랑의 관계이냐 말이죠
껍데기 조건을 갖추는 것이지

마음을 감찰 하시는 분이 다윗을 통해서 모든 인간은 마음이 없음 이라고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감찰하신다 라는 말은 인간이 아닌 딴 분을 보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인데 삼위일체에서 말하는 성령 아닙니다

바로 삼위일체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성령인 바로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그것도 십자가의 영으로써의 성령이기에
이 분만이 제대로 된 출애굽하신 아들이요
그 아들만이 제대로 빌 바를 아시는 분으로써
왜? 인간들에게 율법을 주니까 자기들 멋대로 거룩을 지키는 식으로
모세의 자리만 앉아서 완악한 수건만을 쓸줄 알았지
도리어 그 완악한 수건을 못 벗는 겁니다
나는 율법 지킬줄 아는데 왜 너는 율법 못 지키느냐를
심지어 예수님에게 그 돌삐를 들이대어서 돌로 쳐 죽이는 사건이 바로 십자가로써
그 십자가의 사건을 담은 제대로 된 마음판의 할례 빵구멍을 내시는 사건을
영원히 반복하시겠다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곧 제대로 빌 바를 아시는 분의 마음의 기도입니다

즉 제대로 빌 바를 아신 분의 죽음 만이
제대로 빌 바를 모르는 자를 건지시는 유일하신 분의 기도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마음이신 성령의 놀라운 탄식입니다

이 마땅히 빌 바를 모르는 우리를 위해
마땅히 빌 바를 아시는 분의 죽음으로, 대신 심판받으심으로,
성령의 놀라운 탄식이라는 주틀 붕어빵 주틀을 만드시는데 완료했기에
이 주틀에 넣어서 붕어빵 찍어내듯이 찍어내시는 겁니다
빵구멍 뻥 뚫혀서 비로소 마땅히 빌 바를 알게 된다가 아니라
제대로 기도한다가 아니라
제대로 기도 할 줄 모른다를 알게 하심으로써
이제는 내 기조 치워버리고
성령의 놀라운 탄식을 듣기 위해서 기도하는 겁니다
도대체 뭐라고 날 위해 기도하시는 지를 듣고자
왜 나의 기도는 순 엉터리인가를 말이죠

그래야 하나님이 누구신가 라를 창조주를 알게 될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 그래 도대체 알아서 뭐하게?
내 가치가 낮아져서 기도로써 내 가치를 높여달라고 기도하는 것 안 받을꺼면
말라꼬 기도하고 말라꼬 성령의 탄식을 듣는 것인데
내 가치가 낮아지면 하나님에게도 영광이 되지 않게 되니까

너 바울 말 마따나 우리의 불의함으로 하나님의 의를 나타낸다는
그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질텐데

내가 잘 돠어야 하나님께도 영광이 되지
우리가 망하면 하나님에게 의가 될수 없고 영광을 돌릴수가 없잖아

바로 이것이 사람이 생각하는 하나님입니다
지난 주 호세아서에서
인간 쪽에서 찾아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를 아낌없이 다 내어주셨다 말이죠
마침 새찬송가 387장(통440) 멀리 멀리 갔더니를 부르면서 모자란 잠을 깨우면서
예배를 드릴수 있는 짬이 생기는 바람에 비몽사망으로 부르면서 잠 깨우는데
어머니께서 이거 가사 잘못 되었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어머니도 잠결에 부르시면서도 말이지요

그 다음곡 439장 만세반석 열린 곳에 2절 가사에서 말이죠
1. 만세반석 열린 곳에 내가 숨어있으니
   원수 마귀 손못대고 환난풍파 없도다

2. 죄에 매여 죽을 인생 편히쉬기 바라니
   주의 가슴 넓은 품에 내가 찾아 안기네


내가 찾는게 아니라 주님이 찾으셔야지 라고 말이죠
그래서 막 가사를 고쳐서 부르시기도 했는데

맞습니다 우리가 사랑한 것이 아니다 말이죠
음녀가 오하려 신랑을 찾아서 취사선택하는 식이고
복음은 그 반대로 신랑이 자기 신부를 찾는 식인데
바로 죄인 환자
두렵고 떨림으로써 성령의 탄식인 예수님의 죽음
곧 마땅히 빌 바를 아시는 분의 죽음으로 인해서 태어난 신부를
한 마리 잃어버린 양을 찾으시는 목자 이십니다
신랑이시다 말이죠 자기 죄로 우는 주께만 범죄한 자를 찾으신다 말이죠

그러니 이 잃어버림의 자리에서 
피조물의 본래 자리인 고아 과부 나그네의 자리에서
되찾는 분
싸매어 주시는 분
빵구멍 난 배를 수치를 주의 눈물로 씻겨주시고
주님의 뿔로 싸매어 주시고
성령의 놀란 탄식으로 수치를 가려주시는

이 하나님의 거룩
너희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모욕과 그 부끄러운 수치스러운 십자가 라는 하나님의 저주를
대신 심판 받으시는 그 심판 주 만이 나 보다 옳았기에 말이지요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이 대화를 하시는데
그 내용이 누가복음 9장 31절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죽으셔야 한다 라는 별세애 대해서 대화를 나누셨다 말이죠
(마침 신명기 11장과 27장 에서의 모세의 마지막 고별설교가 바로 예수님의 죽음을 말하는 그리심산 에발산에서의 저주와 축복 선포입니다 열왕기상 18장의 엘리야의 갈멜산 기도 또한 그렇구요)

즉 예수님 본인이 갈기 갈기 찢겨 죽는 화목제물이 되셔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마땅히 빌바를 아시는 분이
마땅히 빌바를 모르는 이스라엘에게 믿음떨어지지 말라고 기도 떨어지지 말라고 기도하시는

바로 사람이 아닌 거룩이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거룩으로 변형되시는 거죠
비로소 하나님은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잠잠케 하시는
그 입 다물게 하시는 거룩이 뭔가를 보여준다는 거죠

이에 반해 대조가 되는 인간의 기도는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는 자의 기도는
바로 엘리야의 갈멜산 기도와 반대되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의 기도 이다는 겁니다
자기를 학대해서 그 고통 속에 들어가면
신은 스스로 돕는 자에게 돕는다를 이루시게 해 준다는 식입니다

이것을 진짜 기도 라고 믿는 자들에게


아니야 그게 바로 진짜 가짜 기도야 하고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는 자들의 기도야 라고
한 세트를 이루는 두 언약이다 말이죠

너희 가운데 중심에 거룩한 하나님이 없고
사람이 있는 자들은 사람의 일 사람의 생각 곧 하나님과 원수가 된 생각을 하는 자들은

이 거룩을 자꾸 신과의 접촉 연결 개방 연합으로 생각하니까
바알과 아세라의 기도가 자기들의 수고와 의로움 고통을 참는 것으로 보상받고자 하는 식의 기도이다는 겁니다

이것은 성전에 두 사람의 기도 중 한 사람의 기도 곧 바리세인의 기도와 같습니다
저 십일조 했구여 이레에 두 번 금식 했구요 저 매국노 세리와 같이 토색치 않게 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라고 말이죠 늘 이런 선악을 갖추는 자들에게는 그 뒤에 생략이 된
육신의 생각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니까 저를 축복해 주세요 라고 말이죠

그러나 매국노 세리를 얼굴도 못 들고 바짝 엎드려서 두려움과 떨림으로 주여 제발 긍휼히 여겨주소서 라고 기도 합니다

이것이 실제로 엘리야에게도 나타납니다 아합왕은 봐라 이 큰 비를 먹고 마셔보라 진짜인지 가짜인지
그래놓고 엘리야는 머리를 바짝 땅에 쳐박듯이 낮춥니다
그리고 무릎과 무릎 사이에 얼굴을 댑니다

이것은 매국노 세리처럼 바짝 엎드린 심판받아 마땅한 죄인에게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인애와 자비를 원하시는 심판 주 앞에서의 모습입니다
비둘기처럼 떠는 거죠

조혜련이가 이건 무슨 의미인지 신학자들마다 다 달라서 모르겠다 라고
짐작을 하는데https://youtu.be/_jMvXEifir8
(일반인에게 인기있다고들 하던데 우리 어머니는 순 엉터리이다 라고 하시더라 말이죠박진영 보다 나은 정통에서 인정해 준다고 하던데 오히려 오늘날 목사들이 얼마나 공부를 안하면 조혜련 한테까지 밀리느냐 말이죠 관심사가 딴데 가 있다는 거죠)

다들 짐작하는 것이 대부분 겸손 겸허 공손 그런 도덕이나 양심이 깔린 그런 차원인데
아닙니다 그건 다 미완료 이지 완료가 아니다 말이죠 의문의 반복이지
또렷한 밝히 보이는게 아닙니다
그런 마음이면 차라리 바리새인의 기도가 더 옳았다 말이죠
모든 사람이 겸손하다고 인정한 바리새인의 기도 유독 예수님만 놉 nope 독사의 자식이라고 했다 말이죠

엘라야의 기도는 행동은 비 오지 않기를 그것도 3년 반 동안 1260일
한때 두때 반때 이거 다 뒤에 반복되는 언약의 비밀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엘리야는 예수님의 죽음을 말하는 언약을 말하는 묵시요 계시이지
인간의 겸손을 갖추자 라는 의문의 반복과는 전혀 반대인 
원인 없는 결과 라는 종말 곧 성령의 마음을 증거하는 성령의 소욕이지
엘리야 개인의 소견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말이죠

반대로 인간은 이 두 언약에 한 세트가 되기 위해서
미움 받기로 작정이 된 행동들을 반드시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무관한 사람들의 눈치를 의식해서 나온 겸손처럼 말이죠

그카이 엘리야의 그런 비유적인 행동
비유로 말하는 자야 또 너냐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여 또 너냐
라는 아합왕에게

자 비 내린 것 너 마셨지 먹었지 나중에 딴 소리 말기다 라고 해 놓고서는

정작 엘리야 본인은 바짝 엎드려서 심판받아 마땅한 죄인의 자리에서
첫사랑을 인애와 자비를 바라보는 매국노 세리의 기도를 하더라 말이죠

산 갈멜산이든 변화산이든 그 높은 산에 인간들이 하늘에 뭘 바치겠다 라고
제사를 드릴려고 하는데 문제는 누구의 제사를 받느냐 라는 거지요
정성 가득한 가인의 제사냐
아니면 예수님의 죽음을 바친 아벨의 제사냐 말이죠

(히 11:4, 개역)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요일 3:12, 개역) 가인 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

가인이 아벨 보다 더 나은 제사 안 드릴려고 했겠나요? 더 나은 제사 드릴려고 했을거다 말이죠
그러나 그것이 미움 받기도 작정이 된 자 이고 그래서 죽였고요
반대로 아벨은 편파 해석으로 더 나은 제사 였다 라고
주님 본인의 죽음을 아벨을 통해서 나타냈지 아벨은 더 나은 제사 드릴꼬야 해서 한게 아닌
원인 없는 결과
곧 종말에서 덮쳐진 겁니다 그 카이 무조건 죽임을 당할 수 밖에 없고요
왜? 원인 없는 결과이기에
가인은 무조건 아우를 죽일 수 밖에 없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행함의 차원의 해석이 아닌
믿음의 차원의 해석이 일방적으로 편파 해석을 하게 되니
모든 육의 소욕들은 반발 하도록 되어 있는 해석만을 성경 스스로가 히브리서가 하는 겁니다
그 어떤 접촉도 안 먹혀 들도록 말이죠

그래서 아합은 그것 조차도 행함으로 보는 육신의 생각으로 빠지겠금
때려죽어도 이것은 번제와 제사이지 인애와 자비로 안 보이니까
절대로 마땅히 죽어 마땅한 죄인의 자세를 취할 수가 없도록
오히려 바리새인 기도처럼 당연히 누리는 것으로 보는 겁니다

엘리야 뿐만 아니라 참선지자의 이런 기이한 행동 기도 말씀선포는 비유 비밀입니다
해석 할려고 달려든다는 그 자체가 자기 꾀에 올무로 걸려서 누워서 침뱉기하도록 만들어 버리는 쭐꾸덕 미끄러지는 이 공백의 간극을 좁힐 방법이 없도록 하시는 겁니다
그야말로 너가 동 하면 나는 서 너가 서 하면 나는 동 한다 라는 반대를 위한 반대의 모습이다는 거죠
이것이 성령의 소욕인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하는 믿음의 세계입니다

아 비오네 그 동안 3년 반 동안 비오지 않기를 기도한
저 재수 없는 엘리야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저 놈 때문에 안 오던 비가
이제 오게 되었으니
이젠 가뭄 문제 해결 되었고 라고 그냥 넘겨버리는
그것도 북이스라엘 왕이니까 왕 다움을 갖출려고 하지
누가 바짝 엎드려서 가장 부정적이고 가장 비천한 모습으로 심판받아 마땅한 죄인의 자리에 설려고 하겠습니까?

어떤 이는 엘리야의 평상시 기도의 자세 라고 하는데 그 당시에 이런 기도 자세였다고 하던데
아닙니다 요가 강사 수준의 어려운 자세입니다
기도로 훈련이 되어 있었다 라고 그 유명한 제자훈련식의 표현 성화론자들의 표현을 하던데
아니라니깐요 무지 무지 어려운 요가 자세입니다

무조건 반대의 소욕을 표현해야 하는 겁니다
즉 단절 의 모습인 거죠
단절의 단절
부정의 부정

한번도 아닌 두 번으로 그 두 꼭지점이 중요한게 아니라
간극을 벌리는 겁니다
광야 라는 죽음의 공백을 사이 간극을 만드는 겁니다

이 단절을 인간 쪽에서는 소망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할수도 없습니다 단절 자체는 성령만이 하시는
공백 빵구멍 뻥 뚫는 것이거든요
그래야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고 우는
긍휼 곧 인애와 자비를 바라는
이것이 종말의 기도
곧 매국노 세리가 했던 기도입니다

그럼 우리도 하면 되겠네? 가 아니다 라고 분명히 강조 했습니다
흉내 조차도 못 내는 겁니다
그가 하시도록 그럼 마음이라도 비우기라도 하자 라는 마음을 또 꽉꽉 채워요
하지마세요 뭘 해도 죄 밖에 안됨을 아시고 주님이 하시길 바라시면
알아서 단절 시켜주시는 겁니다 그때 화가 나지 감사합니다가 안 나옵니다
그게 내 본 모습이다는 거져 죄인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 말이죠

바리새인의 기도처럼 그 연결 곧 신과의 연결을 시도하는 것과 한세트로써
차단하고 단절 시키는 것이 바로 엘리야의 기도 이다 말이죠

(왕상 18:42, 개역)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왕상 18:43, 개역) 그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 편을 바라보라 저가 올라가 바라보고 고하되 아무 것도 없나이다 가로되 일곱번까지 다시 가라

나아만 장군 문둥병자에게 똥물에 일곱 번 담구라 와 같은 의미입니다
즉 고침 받을 자격 없음을 아는 자에게 고쳐주고

(왕하 5:14, 개역)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더라

(물론 똥물 없습니다 그 정도로 자기가 부정함을 아는 자가 바로 처음자리 본래의 자리이다는 거죠 그래서 어린아이 라는 처음자리 곧 죽은 자와 같은 자로 표현하시는 겁니다)

나 눈 멀쩡하다 나 소경 아니다 라고
본다고 하니 고쳐달라고 말할 필요가 없기에 이미 소경이고
눈이 백날 있어도 예수님만 안 보이거든요
다른 인간 다 해석할 줄 알아도 그 놈이나 내나 다 똑같으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때려죽어도 안 보이는 겁니다 심판 주로
구원의 주로 이용해 먹을려고 다가갈려고 많은 사람이 시도했지만 말이죠)
주여 고쳐주소서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보기를 원하나이다 라는 심판 주를 영접하는 자에게는
예수님이 누구심을 알게 하시는 겁니다

마치 웃사와 오벧에돔의 차이에서도 나타났듯이 말이죠

그 단절에 즉 반대로 기도하는 거죠
야고보서의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고
저는 별명을 앞에 더 붙였습니다
부정한 행함
불의한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고

접촉이 아닌 연결이 아닌 연합이 아닌 단절이니까

불을 붙이고자 함이 아니라 오히려 물을 뿌리는 식입니다
12지파 이스라엘은 홍해 라는 물 심판을 통과 한
출애굽이다 말이죠

애굽 탈출 안한 자들은 이스라엘이 아니고
이스라엘이 아니면 이스라엘에서 난 한 뿔과의 관계를 모르는 식이고

이 관계를 연합 연결이 아닌
단절로써 맺어진 관계이다는 겁니다

관계 자체가 연합 연결인데
단절로써의 연결이라????

그래서 물을 뿌림으로써 이스라엘의 본래의 자리는
이 물심판 이라는 죽음을 통과 함과 동시에

불심판 까지

그카이 하나만 아니라
두 개의 단절입니다
단절의 단절
부정의 부정으로써

이 절대 저주 라는 심판의 자리가 두렵고 떨림으로
그냥 떨림으로 하나만이 아니라
그냥 두려움으로 구원을 이루라가 아니라

관계성이기에
두려움과 떨림이라는

이 두 개의 간극 사이에서 태어난 자가 이스라엘이니까 말이죠
그 단절의 단절이라는
절대저주 속에 세상에 심판의 주 까지도 그 죽음의 자리에 뛰어드셨다는 사실

그래서 그 죽음 속에서 사망을 심판하시는 심판주를 보게 되고

이 죽음을 해결 못하는 자는 사랑이 아니다 라는 거죠

결국 사랑이란 이 죽음만을 상대로 한다 라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사망의 권세에 사로잡힌
마귀에게 포로잡힌 그 자리에서
그 원수의 목전에서

구원을 이루시는
상을 베푸시는

그 심판 속에 뛰어드시는
음부의 권세 속에 뛰어드시는
이 예수님의 죽음이 뱌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다 라는 겁니다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너희 가운데 너희 중심에 있는 거룩
모든 입을 잠잠케 만드시는

허걱 거리면서 외 마디 밖에 안나오는 그 숭고한 거룩


무시 무시하게 두렵고 떨리는 거룩이다는 겁니다

오죽하면 계시록에 사도요한이 머리를 바짝 엎드려야 할 판국으로
머리를 들 수 조차도 없는 머리 날라갈 정도로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됨을 직시하는

화로다 화로다 라는 의미는 내가 죄인이라서 심판 받아 마땅하다 라는 의미도 있지만
동시에 정반대의 의미임에도 불구하고 동시성으로써 느끼는 것이
그 거룩 앞에서 왜 안 타 죽지 아무리 봐도 타 죽어 마땅한데 라고
나의 거룩의 유무와 상관없이 거룩의 부족함 함량미달이든 함량 만땅이든 상관없이

저 분의 거룩 앞에서는 그저 그저 바짝 엎드려서
마치 2만 군사를 몰고 오는 장수 앞에
1만 군사로써 대적하는게 아니??
아예 그 압도적인 숭고한 거룩 앞에 어서 화친을 청하지 않으면 나는 그 광채에 그저 이유없이 무조건 타 죽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초라하고 무능한
그야 말로 사자 왕 앞에 비둘기 천한 비둘기로써 벌벌벌 떨 수밖에 없는

이 사랑으로만 오시겠다 라는 겁니다
그 사랑 앞에 엎드려 모든 무릎이 저절로 꿇어서 경배 아니하고서는 못 배기는

바로 이 사랑 이 숭고한 사랑 이 신랑의 사랑 앞에
신랑에게만 범죄한 죄인으로써 왜? 그 신랑의 거룩과는 족히 비교도 안되니까
부들 부들 떨 수밖에 없도록 만드시는 그 사랑의 숭고함에 압도당해버리니까 말이죠

그카이 도대체 당신 누구시길래 저 풍랑도 잠잠케 하시느냐 라고
아니 베드로가 자기가 죽는 마당에도
그 죽음 보다 더 큰 것을 만나버리니까
자기 죽음도 잊어버리고
어 도대체 당신 누구시길래 저 사망의 권세도 잠잠케 하십니까 라고
아니 묻고는 못 배길 정도로

압도 당해 버리는 겁니다

이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아는 것이 거룩이다 말이죠
또 이래 말하니까 자꾸 지식이라고 여기는데 지식이 아니라

예수님과의 만남은
얼굴과 얼굴을 마주 봄은

마치 여호와라는 맹렬히 타는 불 앞에
가시떨기 나무처럼 안 타죽도록 배려하시는 인애와 자비인 긍휼이다 라는 겁니다

그카이 번제와 제사 라는 가능한 것를 도전 할게 아니라
저 바알과 아세라처럼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는 자들이 아니라

마땅히 빌바를 아시는 유일한 예수님이
마땅히 빌 바를 아시기 때문에 죽음으로 오신
그 죽음으로써 만나게 된 이 한 몸

바로 이 긍휼
이 불가능한 사랑
이 불가능한 보이지 않는 소망을 소망하자 말이죠
불가능한 말도 안되는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룬 사랑을 소망하자 말이죠

이 십자가가 아니면 모조리 다 바알과 아세라의 기도인
번제와 제사이고 가능하고 그 가능한 눈에 보이는 소망은
결국 종교오락에서는 돈이 되니까
그 돈을 노리고자 서로 속고 속일 뿐이다 말이죠

속이는 것은 가능하거든요

그러나 참된 것은 불가능 합니다
그 불가능은 너희는 못하나 주님은 하신다 말이죠

이 완료를 저들 미완료와 대조를 이루면서 한 세트로 두 언약을 이루면서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는 자들과
곧 우리죠

마땅히 빌 바를 아시기 때문에
별세를 말씀하시면서
화목제물로 오심으로써
막힌 담을 허물어서 둘로 나누어진 이 원수를
하나 되게 하시는

이 불가능한 참사랑을 너끈히 단번에 이루신 그 사랑에게만 무릎 꿇자 말이죠
이것이 심판의 자리인 두렵고 떨림으로써 내구원의 탐심인 우상이 아닌
주님의 주님 본인의 약속을 구원하심을 보게 해 주심입니다

사람의 구원은 헛 되나
이 약속을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는 자들이 죽여버린
마땅히 빌 바를 제대로 아시는 죽음만이

나를 용서하는
나 같은 죄인도 원수도 사랑하시는 그 불가능한 참사랑이라는 것을

이 지옥의 자리에서 
예수님이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심을
이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다 라고
사람들이 소망하는 것과 반대로
보이지 않는 소망을 밀어붙이시는 겁니다

그 첫맹세 첫사랑의 불도져에 밀림당해
함께 죽는 자만이 함께 다시사는

첫사랑이 찾아내시는 잃어버린 자 곧 처음자리인 이스라엘입니다

이 이스라엘만이 출애굽 하신 예수님 때문에 출애굽 당하는 자입니다
기뻐하심을 입음 당하는 자 이고
하늘의 영광을 입음 당하는 자입니다

(눅 2:14, 개역)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눅 2:8, 개역)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눅 2:9, 개역)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눅 2:10, 개역)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눅 2:11, 개역)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눅 2:12, 개역)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눅 2:13, 개역)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눅 2:14, 개역)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눅 2:15, 개역)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까지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눅 2:16, 개역)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눅 2:17, 개역)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고하니
(눅 2:18, 개역) 듣는 자가 다 목자의 말하는 일을 기이히 여기되
(눅 2:19, 개역)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지키어 생각하니라
(눅 2:20, 개역) 목자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왜? 두려움과 떨림의 이스라엘에게서 난 한 뿔 구원의 뿔이 나타났기에

그 뿔에 빵구멍 뻥 뚫혀서 

바짝 엎드려서 심판 주에게 불쌍히 여겨 달라고 성령의 탄식을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 그 정직한 영이 없어서 정직한 영을 달라고 했기에 ~~~~

이 우는 자가 복된 자 입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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