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63 땅 끝에서만 벌어지는 상황 (종말의 현상) (롬 10,19-21).mp3
8.60MB

22-063 땅 끝에서만 벌어지는 상황 (종말의 현상) (롬 10,19-21)
2025. 9. 7.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들음과 들음에서 난 믿음 (롬 10,16-18)
로마서 2022 2025. 8. 16. 14:47
22-062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땅끝,사망권세 멸밍까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6-18)

〈로마서 10,19-21, 개역한글, 신약성경 254쪽, 찬송가 185장 새 311 내 너를 위하여, 찬송가 262장 새 523 어둔 죄악 길에서〉

〈찬송가 185장 내 너를 위하여, 새찬송가 311장〉 (수정해서 다시 올렸습니다)

찬송가 185장 내 너를 위하여, 새찬송가 311장.mp3
4.47MB

1.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 길을 주었다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날 무엇 주느냐,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날 무엇 주느냐

2. 아버지 보좌와 그 영광 떠나서, 밤 같은 세상에 만 백성 구하려
   내 몸을 희생했건만 너 무엇 하느냐, 내 몸을 희생했건만 너 무엇 하느냐

3. 죄 중에 빠져서 영 죽을 인생을, 구하여 주려고 나 피를 흘렸다
   네 죄를 대속했건만 너 무엇 하느냐, 네 죄를 대속했건만 너 무엇 하느냐

4. 한없는 용서와 참사랑 가지고, 세상에 내려와 값없이 주었다
   이것이 귀중하건만 날 무엇 주느냐, 이것이 귀중하건만 날 무엇 주느냐


〈찬송가 262장 어둔 죄악 길에서, 새찬송가 523장〉

1. 어둔 죄악 길에서 목자 없는 양 같이 모든 사람 길 찾아 헤맨다 
   자비하신 하나님 독생자를 보내사 너를 지금 부르니 오시오
   이 때라 이 때라 주의 긍휼 받을 떄가 이 때라 
   지금 주께 나아와 겸손하게 절하라 구원함을 얻으리 얻으리

2. 험한 십자가위에 달려 돌아 가신 주 다시 살아나셨네 기쁘다 
   죄인 구원하실 때 어서 주께 나아와 크신 은혜 구하라 구하라
   이 때라 이 때라 주의 긍휼 받을 떄가 이 때라 
   지금 주께 나아와 겸손하게 절하라 구원함을 얻으리 얻으리

3. 주의 귀한 말씀에 영원 생명 있나니 주님 너를 용서해 주신다 
   주가 부르실 때에 힘과 정성 다하여 주의 은혜 받으라 받으라
   이 때라 이 때라 주의 긍휼 받을 떄가 이 때라 
   지금 주께 나아와 겸손하게 절하라 구원함을 얻으리 얻으리

4. 세월 빨리 흐르고 세상 친구 가는데 너의 영혼 오늘 밤 떠나도 
   주의 구원받으면 천국에서 영원히 주와 함께 살리라 살리라
   이 때라 이 때라 주의 긍휼 받을 떄가 이 때라 
   지금 주께 나아와 겸손하게 절하라 구원함을 얻으리 얻으리


〈로마서 10,19-21, 개역한글, 신약성경 254쪽〉

(롬 10:19, 개역)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뇨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
(롬 10:20, 개역) 또한 이사야가 매우 담대하여 이르되 내가 구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내게 문의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하였고
(롬 10:21, 개역) 이스라엘을 대하여 가라사대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셨느니라

(롬 10:19, 새번역) 내가 다시 묻습니다.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습니까?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먼저 모세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내 백성이 아닌 사람들로 너희의 질투심을 일으키고, 미련한 백성들로 너희의 분노를 자아내겠다." / ㉭신 32:21
(롬 10:20, 새번역) 또한 이사야는 매우 담대하게 이렇게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나를 찾지 않는 사람들을 내가 만나 주고, 나를 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내가 나타났다." / ㉠사 65:1(칠십인역)
(롬 10:21, 새번역) 또한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보고 ㉡"복종하지 않고 거역하는 백성에게, 나는 온종일 내 손을 내밀었다" 하신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 ㉡사 65:2(칠십인역)


(롬 10:13, 새번역)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 ㉧욜 2:32
(욜 2:32, 개역)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롬 10:15, 새번역) 보내심을 받지 않았는데,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 기록한 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걸음이 얼마나 아름다우냐!" 한 것과 같습니다. / ㉨사 52:7

(사 52:7, 새번역) 놀랍고도 반가워라! 희소식을 전하려고 산을 넘어 달려오는 저 발이여! 평화가 왔다고 외치며, 복된 희소식을 전하는구나. 구원이 이르렀다고 선포하면서, 시온을 보고 이르기를 "너의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 하는구나.
(엡 6:15, 새번역)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전할 차비를 하십시오. / ㉣사 52:7; 나 1:15

(롬 10:16, 새번역)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복음에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이사야는 ㉪"주님, 우리가 전하는 소식을 누가 믿었습니까?" 하고 말하였습니다. / ㉩또는 '기쁜 소식' ㉪사 53:1(칠십인역)
(사 53:1, 개역)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롬 10:18, 새번역) 그러면 내가 묻습니다. 그들은 들은 일이 없습니까?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 말씀에 ㉬"그들의 목소리가 온 땅에 퍼지고, 그들의 말이 땅 끝까지 퍼졌다" 하였습니다. / ㉬시 19:4(칠십인역)
(시 19:4, 개역)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시 19:1, 개역)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시 19:2, 개역)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시 19:3, 개역)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시 19:4, 개역)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시 19:5, 개역) 해는 그 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시 19:6, 개역)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 온기에서 피하여 숨은 자 없도다
(시 19:7, 개역)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시 19:8, 개역)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시 19:9, 개역)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시 19:10, 개역)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시 19:11, 개역) 또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시 19:12, 개역)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시 19:13, 개역) 또 주의 종으로 고범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시 19:14, 개역)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롬 10:19, 새번역) 내가 다시 묻습니다.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습니까?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먼저 모세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내 백성이 아닌 사람들로 너희의 질투심을 일으키고, 미련한 백성들로 너희의 분노를 자아내겠다." / ㉭신 32:21

(신 32:21, 개역)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자로 나의 질투를 일으키며 그들의 허무한 것으로 나의 진노를 격발하였으니 나도 백성이 되지 아니한 자로 그들의 시기가 나게 하며 우준한 민족으로 그들의 분노를 격발하리로다
(잠 30:21, 개역) 세상을 진동시키며 세상으로 견딜 수 없게 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잠 30:23, 개역) 꺼림을 받는 계집이 시집간 것과 계집 종이 주모를 이은 것이니라

(롬 10:20, 새번역) 또한 이사야는 매우 담대하게 이렇게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나를 찾지 않는 사람들을 내가 만나 주고, 나를 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내가 나타났다." / ㉠사 65:1(칠십인역)
(사 65:1, 개역)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게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

(롬 10:21, 새번역) 또한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보고 ㉡"복종하지 않고 거역하는 백성에게, 나는 온종일 내 손을 내밀었다" 하신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 ㉡사 65:2(칠십인역)
(사 65:2, 개역)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좇아 불선한 길을 행하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
(사 65:3, 개역) 곧 동산에서 제사하며 벽돌 위에서 분향하여 내 앞에서 항상 내 노를 일으키는 백성이라
(사 65:4, 개역) 그들이 무덤 사이에 앉으며 은밀한 처소에서 지내며 돼지 고기를 먹으며 가증한 물건의 국을 그릇에 담으면서
(사 65:5, 개역) 사람에게 이르기를 너는 네 자리에 섰고 내게 가까이 하지 말라 나는 너보다 거룩함이니라 하나니 이런 자들은 내 코의 연기요 종일 타는 불이로다
(사 65:6, 개역) 보라 이것이 내 앞에 기록되었으니 내가 잠잠치 아니하고 반드시 보응하되 그들의 품에 보응할지라
(사 65:7, 개역) 너희의 죄악과 너희 열조의 죄악을 함께 하리니 그들이 산 위에서 분향하며 작은 산 위에서 나를 능욕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먼저 그 행위를 헤아리고 그 품에 보응하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로마서 10장에서 특히 구약의 인용된 구절이 많아서 옮겨봤습니다

오늘 본문은 마지막때에 나타나는 현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을 인용한 구절을 옮긴 이유는
바로 그 그림자가 가리키는 실상이 오늘 본문이다 로마서 이다는 거죠
우리가 고린도전서를 하면서 우와 호세아서가 바로 그림자이고
그 그림자의 출처가 바로 고린도전서 라는 신약이다
신약이 먼저 있었고 구약이 뒤에 있었다 말이죠

인간의 신체가 감지하는 시간관에서는 도저히 포착될 수가 없도록 하신 겁니다
오로지 주님의 시간
시간 조차도 주님을 찬양하고자
공간 조차도 주님을 찬양하고자 인간 보다 먼저 있었다는 거죠

그러나 인간은 항상 지가가 먼저 있었다 라고 자기 기준에서 봅니다
그렇게 되면 시간이 주를 찬양한다? 이게 믄 소리인줄 모르는 겁니다
시간은 주를 위해서 흐르거든요
공간 곧 장소가 주를 찬양한다? 노래 안 부르던데요???? ㅋㅋㅋㅋ
낮은 밤에게 밤은 달에게 달은 해에게 이게 시편이라서 시적인 언어가 아닙니다
실상입니다 비밀언어 방언입니다
영어를 못하면 영어를 새로 배워야 하듯이
가르쳐 주는 자도 없고 배우는 자도 없는 새노래를 하는 겁니다
오히려 말귀 못 알아먹는 그림자인 우리가 폐기처분 이전 것은 지나가야 할 판국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바로 땅끜에서 다시 거꾸로 쳐들어 오는 시선으로 다시 재조명합니다
끝에서 보는 시선
종말에서 보는 시선
곧 다 이루었다 라는 미래완료라는 성령의 시선에서 보는 것과

결핍을 채울려고 하는 인간의 시선과의 충돌을 통해서

왜 이 간극을 좁힐 수 없는가를 보게 됩니다
물론 종교는 이렇게 우깁니다 아니다 좁힐수 있다 라고 그래야 장사가 됩니다
그게 오늘날 개신교의 성화론 아닙니까
한국 교회는 성화론입니다 인도로 치면 카스트제도입니다
누가 크냐 라는 심심하면 장자교단이라고 하는 이유가
누가 크냐 그것이 바로 유교와 기독교가 혼재된 혼합종교인 성화론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속을 박박 긁어보면 결국은 사디리 걷어차는 사탄교일 뿐입니다
바리새인을 보고 저들의 아비는 마귀이다 라고 하셨듯이 말이죠


우리가 땅을 발 딛고 산다고 해서 그 땅의 주인인냥 주인공인줄 아는데
정작 왜 내가 땅 위에서 살아야하지 라는 그 이유 조차도 모르면서 살고 있다는 겁니다
즉 땅의 시작도 모르고 땅의 끝도 모르면서
내가 있다 존재한다 라는 그 이유 만으로 그 땅의 주인행세를 하고 있다는 거죠

그런 판국에 더더욱 땅 끝이라는 의미를 제시했을때에
누가 나 보다 땅이 내 보다 먼저 있었다 라고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자는 미친놈 취급받아서 그 사회 곧 땅에서 쫓아내어야 하는 겁니다
비유로 말하는 자야 또 너냐 라고 괜히 이 말이 나온게 아니거든요
얼마나 쫓아내고 싶었으면 자기가 왕인데 이 놈 하나 못 쫓아낸다는게 얼마나 자괴감이 들까요
아합왕은 엘리야의 그 예언 땜에 이스라엘의 기근이 왔다 라고
잘할려고 하면 할수록 너 땜에 다 망친다 라고 하는 겁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여 또 너냐

(왕상 18:16, 개역) 오바댜가 가서 아합을 만나 고하매 아합이 엘리야를 만나려 하여 가다가
(왕상 18:17, 개역) 엘리야를 볼 때에 저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네냐
(왕상 18:18, 개역) 저가 대답하되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비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좇았음이라

이제는 왕 시대가 다 가고 포로 속에 잡혀 있게 되어도 비유로 말하는 자야 또 너냐 라고
포로 당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스겔에게 외치는 겁니다

즉 왕이 없으니까 이제는 개개인이 왕이 되어서 하나님을 점쟁이 찾듯이 하지만
결국 우상을 찾는 겁니다 내게 복 주는 자를 말이지요

그래놓고 결국은 죽이고 쫓아내고서는 땅이 그들을 뱉어냈다 라고 뒤짚어 씌우는 식으로
참선지자를 죽이고 거짓선지자는 마음에 두는 겁니다
아무리 나라 망함과 동시에 거짓선지자를 죽여도 역시나 마음에는 늘 품는 겁니다
백성들 자체가 무당이 된 거죠 케이 팝 데몬 헌터스처럼 복을 안 주는 저주를 물리치는
각각 개개인이 무당이 헌터 사냥꾼이 된 거죠

거기에다가 이 땅의 의미 조차도 모르는 판국에
더더욱 복음이라는 것이 땅과 결합이 되어서 땅끝 까지 복음이 이미 다 완료 되었다 라고 선언을 해 버린 상태에서 이스라엘 까지 운운해 버리니

땅 모르죠
복음 모르죠 하나님 말씀 안다고 우기지만 그리스도의 말씀을 모르는 것 보니 하나님 말씀을 자기 배를 위한 우상으로 혼합시킨 것이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들통나 버렸죠
거가에다가 세 번째 이스라엘의 의미까지 모르는 겁니다
혈통적 이스라엘만 우길지 알았지
이 이스라엘의 의미가 땅 끝과 복음과 무슨 상관이냐 말이죠
지금 현재 육적 이스라엘 보세요 복음 모르잖아요
그래놓고 이스라엘 백날 우겨본들 소용이 없는 겁니다

바로 이 세가지 단절을 무슨 수로 좁혀서 알수 있겠습니까
그야말로 비유로 말하는 자야 또 너냐 라고 비웃을 수밖에 없는 거죠
더더욱 그 땅 그 약속의 땅 그 이스라엘의 땅을 밟고 있는 그 당사자 이면 일수록 더더욱 그렇겠죠

그냥 다른 나라 땅도 아닌 이스라엘 땅이자 약속의 땅 임에도 불구하고
약속 한 번 안 적도 알려고도 시도 조차도 해 본 적 자체가 없는 겁니다

그냥 남들 따라 그냥 이 땅에서 제발 복이나 받고 살다 복스럽게 죽고 자손들 복받으면 그걸로 족하다 이지

왜 이 땅이 복음과 연관이 되었으면 이스라엘은 왜 그 일에 동원이 되는지를 알지 못하는 겁니다

띠리사 땅 끝까지 복음이 전달 되었다 라는 이 완료성은
주님의 약속 성취 다 이루었다 라는 완료를 이스라엘은 누리는 목격자 증인으로써 세워지는 겁니다

맞네 다 이루어졌는거 맞네 라고 확인하면서 그 땅들을 발 딛고서
어떻게 이루었는지를 목격하는 증인으로써 세워지는 거죠
그것이 성령행전이라는 별명이 붙여진 사도행전입니다
네 그 목격자가 바로 사도들이고요

사도들은 장기알로써 그 땅끝까지 복음이 증거된 그 현장 하나 하나를 누리고 목격하고
증인으로써 세워지니까 말이죠

뭔가 부족한 것이 있거나 결핍이 생겨서 그 부분을 채우고자 전도나 선교한 것이 단 하나도 없는 겁니다 전도 선교는 아직 땅끝까지 증거가 안 되었다는 뜻이겠죠
그렇다면 증인이 아니라 목격자가 아니라
도리어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성령행전이 아닌거죠
인간이 주인공이 되고 성령은 주인공이 되지 못하게 되니까
사람의 손으로 세워지는 또 미완공의 상태가 계속되는 셈이 되는 겁니다

빤스와 그 패거리 한국교회 그리고 사이비당 딴나라당 보세요 
뭔가 부족해서 계속 채워야 하니까
뒤로 빼돌린 재산들이 생기는 겁니다 결국 사다리 걷어찼다는 증거죠
정통교단들이 했던 그런 나쁜짓을 그대로 답습하는 겁니다
늘 함정과 올무를 치는 북이스라엘이 사냥하면서 산당에 제사를 바치듯이 하는 겁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서 우시는 겁니다 얼마나 많은 참선지자를 죽인
강도의 소굴이였으면 말이죠

교회가 세상을 위해서 우는게 아니라
세상이 거꾸로 교회를 위해서 울어야 하는 겁니다

반대로 전도 해야 합니다 제발 좀 예수 믿어라 라고 세상 사람들이 교회사람들에게 말이지요

자 땅끝과 복음 그리고 이스라엘은

어떻게 작동이 되는가
땅이라고 해서 그냥 땅이 아닌 가나안 땅 곧 약속의 땅입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음 음부의 권세가 있는 땅입니다

애굽 땅의 확장이며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통해서 즉 구약을 통해서
애굽의 확장으로써 가나안 땅이 작동이 됩니다

그 함 땅인 애굽 땅에서 즉 이 말음 모든 땅이 애굽 땅이다는 거죠
그렇다면 모든 인간은 애굽 왕과 똑같은 강퍅한 자들 뿐이다는 겁니다
잔칫집을 유지하지 위해서 남의 것을 빼앗는
다 애굽인이기에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만인을 위한 만인의 투쟁으로 유지되는
지옥 땅 밖에 없고 그 지옥의 백성 밖에 없습니다

그카이 이스라엘이라는 증인은 애초부터 없었던 거죠

그런데 졸지에 그 애굽 땅에서 이스라엘이 어린양의 피 어린양의 죽음으로 인해서
세롭게 형성되어서 나옵니다 없었던 민족이 태어납니다
그리고 구분 구별 거룩이 되어버립니다

자 그렇게 두 패거리가 되니 드디어 혈과 육의 같은 편끼리의 경쟁으로써의 전쟁이 아닌
영적인 전쟁이 벌어지는 겁니다 사망권세와의 전쟁
곧 하나님의 원수와의 전쟁 말입니다

그렇게 유월절 어린양의 죽음으로 인해 이스라엘이 없는데서 태어나게 되니까
이들 이스라엘은 이 땅 끝 죽음 끝에서 사망권세가 먼저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망 보다 예수님의 죽음이라는 어린양의 피가 또 먼저 있었다 라는 증인으로써
하나님의 군대로써 이 천국 곧 가나안 땅을 침략하는 겁니다
은혜가 먼저 있었다 사망 보다 먼저 있었다 라는 그 약속이라는 믿음오로
믿음의 전쟁에 동원이 되는 겁니다
믿음은 완료를 외치고
행함은 미완료로 결핍을 채우는 식입니다 모든 종교 모든 이방인은 자기 배를 채우는 겁니다
그런데 자기 배가 지옥이라서 채워도 채워도 또 배고프다 라고 합니다
그러나 완료를 외치기에 채울 배가 없습니다 빵구멍 내 버린 구원의 뽈로 인해서
도리어 굵은 배 옷을 입고 외치는 겁니다 결국 행함으로는 되는 것이 없다는 증거죠

결국 자기를 위한 나라는 없고 그런 천국은 그런 구원은 없었다
고로 모든 종교는 음녀죠 그 중에 국가라는 짐승 등 위에 올라타는 것을 집착하는 것은
유대교이고 구약까지 말이죠 오늘날에는 모든 기독교가 되는 거죠

진정한 나라는 어린양의 나라 밖에 없고 모든 국가는 다 사라지는 겁니다
정작 천국에는 성전도 없고 해도 달도 없어요
해 보다 더 밝은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니까 말이죠
알고보니 성전이 없는데 그 성전이 바로 어린양 자체가 하나님의 성전 곧 중심이였다 라는 겁니다

우리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이 아닌
성령의 전으로써 바로 이 어린양의 죽음을 담는 그릇이다는 겁니다
모든 피조물이 다 그렇게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이유입니다
이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다 이루을 누리기 때문에 허무한 인간의 입 속으로 들어가면서
여호와의 전쟁의 승리를 누리는 겁니다 막 죽어가면서
하나님의 원수 갚아달라고 외치면서 말이죠 이것이 증인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증인이 되는 것도 제일 끝트러미 제일 꼴지로 증인이 된 겁니다
선배들이 먼저 증인 된 것을 보고 우리도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누리는 겁니다

안영미 선배가 영광인줄 알아라 이것들아 라고 했던 것처럼
멸치 선배가 영광인줄 알아라 이것들 인간들아 라고 선배를 보고 따라가는 겁니다

이 영광인줄 알아라 이것들아 라는 이 영광이라는 복음
바로 어린양의 죽음으로 곧 어린양의 보좌로 인해서
복과 저주를 비로소 전복 뒤 바꾸어서 보게 됩니다

나를 위해 좋은 것들 선한 것들 잔뜩 모으면 그래서 그런 천국에 가는 것이 복된 것이다 본 것이 바로 저주 였고

나를 위한 것이 단 하나도 없는 오히려 다들 다수가 저주이다 라고 비웃는
그 미련한 길 어리석은 그 십자가의 저주가 오히려 진정한 축복이였다 라는 것을
누가 믿었으리료

즉 단 한 놈도 축복 맞다 라고 할 수 없는 분명한 저주이다
유대교 유대인에게서는 하나님의 저주 이다 라고 하나님까지 끌고와서 하나님의 저주 라고 교리로 법으로 만들 정도였다 말이죠

모든 신학 모든 철학 모든 학문 다 동원해서 분명하고 확고하게 규정했는데
보란 듯이 그 저주를 깨고 하나님의 지혜요 영광이라고 높이시는 겁니다

그런 것들은 행함으로 의에 이를려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그 반대입니다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의에 이르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를 위한 나라 천국 구원 개념 자체가 먹혀 들 리가 없습니다
저런 행함으로 인한 실천으로 인한 법칙들이 먹혀들지가 않는 겁니다
도리어 그런 불순물을 용광로에서 쏙 빼는 것이
믿음이요 그 용과로 라는 절대죽음 절대심판 속에서 나오눈 자가 땅끜에서 나오는 이스라엘이요

이 이스라엘은 오로지 진정한 구원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어린양의 피로써 말미암는 증인으로써 증상물로 태어난 자가 되는 겁니다

축복과 저주가 나로 인해 내 하기 나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어린양의 죽음으로 인해 나타나는 겁니다

고로 먼저 이스라엘은 저주가 뭔지 알기 위해서
자기를 위한 모든 짓을 함으로써 그런 인간들끼리 모여 모여 축복의 나라가 될 줄 알았는데
어라 아예 이스라엘 국가 자체가 다 날라가 버리니

자기를 위한 나라
그리고 그 개인 개인이 모여서 더 많은 자기를 위한 나라가 애초부터 없었던 망상이였습니다
도리도리 보세요 쥴리 김거니 보세요 자기를 위한 나라 없는 그 망상에 빠진 것
이제 또 딴나라당이 망상에 빠져서 여전히 자기를 위한 나라를
기독교까지 합세해서 미국 보금주이까지 합쳐서 그 망상을 퍼트리고 있습니다
그 우상을 깨뜨리는 진짜 현실은 오로지 예수님의 죽음
곧 하나님의 저주인 십자가 라는 용광로 뿐입니다

그 용광로 속에서 하나님의 절대 심판인 십자가를 거쳐서 분순물이 빠져서 나오게 되니
그 고멜이 전남편 바알이 죽게 되니
이제야 본남편을 보게 되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본인이 그 지옥 자체인 탐욕의 지옥 바닥
바닥 없는 그 바닥을 거쳐서 예수님이 그 바닥 없는 구멍에 바닥으로써 밑바닥 찍게 되니
드리어 빠져나오게 되는 70년 만에 돌아오는 겁니다

그렇게 뒤에서 여자가 남자를 껴안는 겁니다 당신이 내 낭군 본남편 이시군요 라고 말이ㅛ
땅끝애서 나오니까 말이죠
그 예루살렘 가나안 땅에서 음부의 권세 사망의 권세에서 나와서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 다시 살려주심 덕분에
지옥에서 나와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은혜가 왕 노릇하는 영원한 나라 어린양의 나라에서 말이죠

이 왕 이 주가 되는 주인이 되는 것이 바로 축복과 저주의 개념이 바뀌어진 주 종 으로써
모든 나라가 무릎 꿇고 경배하는 주의 나라인 왕 같은 제사장 나라 이스라엘입니다

이런 의미를 육적 이스라엘은 사적인 탐욕이자 우상개념으로 자기 배를 위한 주인 개념으로 바꾸어 버리니까 섬기기는커녕 사다리 걷어차기에 목숨 걸죠
왜 주인이 되는 약속을 행함으로 지킬려고 하니까 말이죠

그카이 하나님의 원수를 거치지 않게 되니 자기들이 하나님의 원수 노릇으로써
약자를 괴롭히는 마귀 자식이 되는 겁니다
오늘날 모든 교회가 다 이런 식이 되는 것과 똑같습니다
올무를 친 것이 도리어 자기들이 친 올무에 자기가 걸려넘어지는 누워서 침뱉는 겁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벗어납니까 그게 다윗 언약 아닙니까
정직한 영이 없어서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인 회개의 영을 받는 거죠

그런데 얼마나 교만하면 회게의 영을 받는게 아니라
도리어 회개의 달인까지 되니까 왜 날 안 알아주노 라고
목사들 심심하면 제발 날 좀 믿어달라고 징징거리는 것과 똑같습니다
안 알아주면 끝날까요 뒤끝이 장난 아니죠 괜히 지도자가 된게 아니고
괜히 권력을 쥔게 아닙니다 모든 복수는 다 있는대로 다 퍼붓습니다

섬기는 분의 하나님의 능력 곧 생명구하기에 놓여지는 물에 빠진 자가 아니라
도리어 생명구하기를 훼방하는 사다리 걷어차면서 생명죽이기에 목숨 걸어버렸다 말이죠
악마들이 얼마나 부지런한지 말이죠

바로 이런 죽음 보다 강한 것이 사랑이라는 시기입니다

주님의 구원은 바로 이 시기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겁니다
즉 인간과 인간 끼리의 시기가 아닌

마귀만 상대하신다는 이유가 
죽음만 상대 사망권세만 상대하신다는 이유가
사랑은 바로 이 죽음에 대한 시기와 질투로 인해서 구원을 성사시키시는 겁니다

마치 시이소와 같이 한 쪽이 이기면 한 쪽은 지는 거죠 장기알이 하나 먹히면 하나는 남게 되는 거죠
두 사람이 밭을 갈다가 두 사람이 맷돌을 갈다가 한 사람은 남고 한 사람은 가는 겁니다

누가 축복을 받았다 라는 말은 누구는 저주를 받았다 라는 거죠
이것이 천국과 지옥의 원리로써

마귀는 열심히 하나님을 상대로 열심히 열심히 장기게임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 기능을 하라고 마귀를 세우신 겁니다

바로 이런 사탄의 깊이를 거쳐서 하나님의 깊이를 나타내시기에

인간의 사적인 구원 개인 구원 곧 자기를 위한 나라 축복 잘못하면 저주 그런 것 아예 없다 라는 거죠

그래서 죽음 보다 강한 사랑으로써 시기와 질투로 구원을 이루시는데 있어서

탕자를 원수들의 목전에서 상을 살진소 금가락지 새옷 새신발이라는 잔치를 벌릴때에
죽은 아들이 돌아왔다 라는 땅끝에서 돌아올때에

이 천한 계집을 왕비의 자리에 높이니까 맏아들이 견디지 못하고 격동하는
바로 이 시기심
이 질투심을 유발케 해서

원수들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는 겁니다

즉 마귀만 상대하신다 죽음만을 사망의 권세를 상대하시는 것이
은혜의 왕 노릇이다는 겁니다

이 시기심 이 질투심이 아니면 이 세상과의 분리 구별 구분 구별이 벌어지지 않는 겁니다

마귀 저들이 인식하는 구별 구분 분리가 거룩인데

인간들 자기들 끼리 거룩한 짓 깨끗이 손 씻기 남을 7번 용서하기 이런 것들은 마귀가 가장 잘 하는 주종목입니다
금식하기의 달인들인에 왜 당신은 금식은 커녕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며 세리와 강도와 죄인의 친구랄 별명에 딱 맞는 짓만 합니까

인자는 그 행한 일로 옳다함을 얻는다 라고

저들이 하지 못하는 것으로 구분 짖기를 하시는 겁니다

분리 저들과의 분리작업이 바로 죽음 보다 강한 사랑이라는 질투 시기로 벌어지니까요

저들은 마귀를 거치지 않으니까
다윗 언약 필요 없고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라고 법 법 법을 외치는 겁니다

그 카이 예수님니 마귀에게 세가지 시험을 받듯이
이미 유대 사회 오늘날로 치면 오늘날 한국 교회는 이미 마귀에게 장악당한
그 세가지 시험을 받는 것이지요
마귀는 한국 교회를 이미 다 장악했습니다

경제 돈 돌을 떡 덩이 되라 이미 안 믿는 자도 재벌교회를 보고 혀를 찹니다
종교 종교는 자기 배를 위한 구원에 이미 미친지 오래 되었죠

그 다음 정치
이거는 제가 20대 때부터 잘 안 보였고 정치에 관심이 없었는데
뒤로 몰래 몰래 하는 것이 보편화 될 시점 이었는데

이제는 아예 대 놓고 정치화 되었죠

내가 신이 되겠다는데 건방지게 동의 안하는 놈들은 다 죽이겠다 라는 복수심 결국 모든 인간의 행함은 이 정치가 되는 복수라는 원수성으로 종결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복수심과 상대적인 땅 끝에서 나온 불순물 빠진 이스라엘이어야 하는 거죠
육적 이스라엘 혈통 이스라엘 조차도 마귀에게 장악되어서 이 복수심 밖에 펼친 것이 없으니까 말이죠

바로 이런 마귀가 장악한 유대인 유대교가 이기지 못해 점령당한 그 세가지 시험을
예수님은 이기신 겁니다

그렇게 이 세가지 시험을 이기시는 그 시기심 그 질투심의 사랑으로
새이스라엘을 다시 빼앗아 옴으로써
다시 잃어버렸다가 다시 땅 끝에서 되 찾아 오심으로써
지옥에 갈 자를 지옥에서 빼내시는 이 섬기는 왕

덕분에 그 남겨둔 한 씨 덕분에

이러다 다 죽어 라는 우시는 한 목자 한 선지자 덕분에
우리는 소돔과 고모라에서 빠져나온 겁니다

바로 이런 역동적인 전쟁상황이 벌어지는 현장이 바로 땅 끝에서
종말에서 벌어지는 상황으로써
그 속에서 이스라엘이 나오는 겁니다

괜히 그냥 나오는게 아닙니다

이 시기심으로 이 질투심으로 건짐 받고 섬김 받은 주님의 자녀인 이스라엘
곧 땅 끝에서 나온 자는
이미 용광로 속에서 불순물 혼합물 찌기의 기능들을 다 격어 봤기에

세상의 부귀 영화
곧 소유의 넉넉함으로 생명이 유지되는게 아니였고

(마 6:25, 개역)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눅 12:23, 개역)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눅 12:15, 개역)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먹는 것이 목숨 보다 중요한게 아니였고
의복 곧 옷 입는 옷이 몸 보다 중요한 것이 아니였음을 알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산 소망 참소망으로써 본향을 본남편을 비로소 사모하게 되는 겁니다

즉 주객 주종이 뒤 바뀐 것을 다시 전복 시킨 새마음 새영 곧 그리스도의 마음 덕분에

우리는 비로소 어린양의 나라를 사모하게 됩니다

아무도 안 믿는
아무도 구하지 않는

아무도 찾지도 부르지도 않는 그 나라를

비로소 부르고 찾는
새 마음 성령을 약속하신대로 부어주심으로써

49일 까지도 예수님 죽여도 그 딱딱한 마음 단 하나도 움직이지도 않던 우상이
50일째에 약속하신 성령을 부어주시니까

비로소 어찌할꼬 어찌할꼬 우리가 진짜 참된 주님을 죽인 죄인이구나 라고 가슴을 치면서 우는 겁니다
얼마나 우리가 화 인침 받은 자였으면 그 시기심으로 질투심으로
죽음에 있는 자를 건지시고자
예수님을 죽인 살인자를 모든 허물 다 덮어서
부드러운 마음으로써 어린양을 사모하라고

대신 매 맞으심으로 우리가 비로소 바이러스 감염에서 치료 받아서
비로소 부드러운 마음 부어주심 덕분에 우는 자로써
나음을 고침을 받아서 참소망을 가지게 되는 겁니다

이 땅끝에서 부르시지 않으셨다면
이 땅 끝 곧 부를수 없는 곳 찾을 수 없는 곳에서 찾아오시지 않으셨다면

유리는 이 사망의 권세에 속아서 죽기를 무서워 종노릇에서 벗어날 수 없었는데

이 사망의 권세라는 죽음을 시기하시고 질투하셔서
죽음 보다 강한 사랑으로

땅끝에서 불러 모으셔서

나는 너의 한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게 하고자
한 목자 다윗왕을 세워 반드시
시기심으로 질투심으로 땅끝 가나안 ???을 그 원스들을
그 사망의 권세 음부의 권세를 반드시 이겨서

그 승리를 평화를 다 이루어서 땅 끝에서 나누어 주리라를 이루시는 겁니다

이 다 이루심을 우리는 증인으로써 목격자로써
내가 발 딛는 그 곳에 땅끝으로써 죽음이 발악하는 그 가운데서

왜 아직 때가 되지도 않았는데 왜 왔느냐 라는 마귀의 발악을
다 이루었다 라는 주님의 시기심인 사랑으로 이 세상을 멸하는 겁니다

(마 12:42, 개역)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눅 11:31, 개역)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남방 여왕이 증인일줄 누가 알았습니까 도리어 유대인은 가나안 족속으로써 멸망 당해야 하는
다윗의 여부스 심판처럼 유대인들은 당하게 되는 겁니다

남방 여왕 뿐이겠습니까 요나가 시기했던 니느웨 백성이 심판받던 자리에서
도리어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기능을 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그 기능을 못하니까 반대로 심판 받을 자가 도리어 심판하게 되고
심판해야 할 이스라엘이 도리어 심판받아야 할 니느웨로부터 심판 받게 되닌
이 시이소의 원리처럼 축복과 저주가 어린양의 피로 뒤 바뀌게 되는 겁니다

(마 12:41, 개역)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눅 11:32, 개역)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아니 왜요?

(마 12:42, 개역)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눅 11:31, 개역)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이들이 바로 땅 끝에서 나왔기 떄문입니다 진짜 이스라엘이고 기존의 이스러엘이 가짜였단ㄴ 거죠

부른적 없었던 곳에서 부르신 바 되시고
찾은 적 없던 곳에서 찾으신바 되신 그 땅 끝에서 말이죠
죽음과 사랑을 동시에 만난 그 사이 간극에서 나온 겁니다

불의한 청지기가 바로 땅 끝 종말에서 나온 성령의 구분짖기에 거룩이 임한 자 이고
기존의 빛의 아들들은 땅끝에서 나오지 않았기에 이 종말이라는 비유 비일을 외쳐야 할 자들이
도리어 자기들이 친 올무애 도리어 걸려 넘어지는 겁니다

이 미련한 복음으로 인해 벌어지는 땅 끝에서 벌어지는 상황
종말의 현장에 지금도 새이스라엘이라는 어린양의 피의 증인으로 인해서 세상심판이 그 미완료들이 다 이루심이라는 완료로 인해 전복되고 무너지고 심판받는 것이
다 이루심이라는 완료로 인해 벌어지는 겁니다

주님 주님 자녀의 남은 시간들은 바로 이 십자가가 벌리신 사건을 목격하는
종말의 상황 그 현장을 매일 매일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먼저 그의 나라와 어린양의 의를 구하게 하옵소서
세상 영광은 어린양의 생명구하기라는 하나님의 능력에 비래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1-099 화평의 언약을 세워 다시는 이방의 노략거리가 되지 않게 하리라 (겔 34,25-28)
2025. 9. 14. ( 8월 31일, 녹음 )

한 목자를 세워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다윗은 그들 중에 왕이 되리라 (겔 34,22-24)
에스겔 2019 2025. 8. 23. 22:03
21-098 그들 위에 한 목자를 세워 나 여호와는 하나님이 되고 다윗은 그들 중에 왕이 되리라 (겔 34,22-24)

〈에스겔 34,25-28, 개역한글, 구약성경 1206쪽, 찬송가 404장 새 304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찬송가 014장 새 026 구세주를 아는 이들〉

〈찬송가 4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새찬송가 304장〉

1.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하네,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위에
   죄범한 영혼 구하려 그 아들 보내사, 화목제로 삼으시고 죄 용서하셨네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2. 괴로운 시절 지나가고 땅위의 영화 쇠할 때, 주 믿지 않던 영혼들은 큰소리 외쳐 울어도
   주 믿는 성도들에게 큰사랑 베푸사, 우리의 죄사했으니 그 은혜 잊을까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3.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하나님의 크신 사랑 그 어찌 다 쓸까, 저 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하리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찬송가 014장 구세주를 아는 이들, 새찬송가 026장〉

1. 구세주를 아는 이들 찬송하고 찬송하세 맘과 뜻과 힘 다하여 경배드리세

2. 주를 알지 못한 이들 주가 친히 인도하사 그의 피로 구속하니 찬송할찌라

3. 약한 사람 도움받아 시험 중에 참게 되니 모든 죄를 이길 힘은 믿음 뿐이라

4. 진리되신 우리 주는 영원토록 변함 없네 성도들아 주를 믿어 길이 섬기세.


〈에스겔 34,25-28, 개역한글, 구약성경 1206쪽〉

(겔 34:25, 개역) 내가 또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우고 악한 짐승을 그 땅에서 그치게 하리니 그들이 빈 들에 평안히 거하며 수풀 가운데서 잘지라
(겔 34:26, 개역)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내 산 사면 모든 곳도 복되게 하여 때를 따라 비를 내리되 복된 장마비를 내리리라
(겔 34:27, 개역) 그리한즉 밭에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땅이 그 소산을 내리니 그들이 그 땅에서 평안할지라 내가 그들의 멍엣목을 꺾고 그들로 종을 삼은 자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낸 후에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겠고
(겔 34:28, 개역) 그들이 다시는 이방의 노략거리가 되지 아니하며 땅의 짐승의 삼킨바 되지 아니하고 평안히 거하리니 놀랠 사람이 없으리라

(겔 34:25, 새번역) 내가 그들과 평화의 언약을 세우고, 그 땅에서 해로운 짐승들을 없애 버리겠다. 그래야 그들이 광야에서도 평안히 살고, 숲 속에서도 안심하고 잠들 수 있을 것이다.
(겔 34:26, 새번역) 내가 그들과 내 산 사방에 복을 내려 주겠다. 내가 때를 따라 비를 내릴 것이니, 복된 소나기가 내릴 것이다.
(겔 34:27, 새번역) 들의 나무가 열매를 맺고, 땅은 그 소산을 내어 줄 것이다. 그들이 자기들의 땅에서 평안히 살 것이다. 그들이 멘 멍에의 나무를 내가 부러뜨리고, 그들을 노예로 삼은 사람들의 손에서 그들을 구하여 주면, 그 때에야 비로소 그들이, 내가 주인 줄 알게 될 것이다.
(겔 34:28, 새번역) 그들이 다시는 다른 나라에게 약탈을 당하지 않으며, 그 땅의 짐승들에게 잡혀 먹히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이 평안히 살고, 놀랄 일이 전혀 없을 것이다.


화평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일단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더군다나 복을 내린다 복되게 한다 복된 장마비를 내린다 라고 하면 기우제라는 우상숭배는 다 사라질 것입니다

(겔 34:26, 개역)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내 산 사면 모든 곳도 복되게 하여 때를 따라 비를 내리되 복된 장마비를 내리리라

장맛비가 뭐가 복 되냐 라고 하지만 지금 수돗물 마실 물 조차도 없는 강릉에서는 그야말로 복된 소식이 아닐수 없겠지요

화평 그리고 복 
자 또 반복되는 단어가 평안이라는 단어도 나옵니다 마치 종합선물 3종 세트처럼 말이죠

25절 평안히 거하며
27절 평안할지라
28절 평안히 거하리니

이런 화평은 절대성입니다 즉 주님의 숙제로서 반드시 이루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이런 주님은 지금 설레시는 마음으로 복을 퍼부어주겠다 라고 하시는 반면에
이스라엘은 지금 전혀 받아들일 마음이 추호도 없는 상태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포로 바벨론 포로 속에 있는데 이런 소리가 먹혀 들겠냐 말이죠

즉 복 주신다는 그 복도 주님의 입장에서의 복이지
우리 입장에서는 전혀 복 된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을 이미 이스라엘은 수천번 확인했고
어디 한 두 번 속느냐 라는 식으로 다들 콧 방귀를 끼면서
이방민족 곧 우상숭배자들이 바라는 그런 복을 주기를 바라지

주님이 말하시는 복은 전혀 반가운 마움이 추호도 없는 입장이다는 겁니다
포로 속에서 복은 무슨 놈의 복이냐 라는 식이지요

그런데 그런 사고방식은 오늘날도 마친가지입니다
남들이 의식하는 그런 복을 바라지
주님이 말하시는 복은 전혀 달갑지 않다 라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달리심이라는 예수님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심이라는 이 은혜를

전혀 복이라고 여기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카이 이 은혜를 무시한 자를 노아는 원수로 규정하고
아브라함은 이 원수를 향한 믿음의 조상이 되고
이스라엘은 이 원수를 향한 하나님의 군대가 되는 식인데

이스라엘 역시나 원수랑 똑같은 사고방식이 되다 보니
도리어 원수 취급 당하는 하나님의 공격 대상이 되는 겁니다

다행히도 주님께서 지난번 말씀처럼 한 목자를 세우면
그때서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이 다윗이라는 왕을 주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자 보세요 이것을 주님은 복이라고 하시고 화평케 하시는 화평의 언약
곧 화목제를 주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이것을 저 개같은 이방인은 전혀 복이 아니요 지혜도 아니다 라고
어리석고 미련한 것이다 라고 발악하는 가운데
이스라엘 또한 같은 생각으로 가스라이팅 당해서 그게 무슨 복이냐 라고 외치는 겁니다

즉 인간이 생각하는 복은 자기 개인 적인 자기를 위한 자기 배를 위한 복을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말씀은 그건 저주 인데 라고 하시면서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이라고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복은 딱 하나 요나의 표적이다 라고
바로 그런 자기 배를 위한 임금 삼기 그런 자기를 위한 복 받기 자체를
빵구멍 내시는 것이 복이라고 하신다 말이죠
이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주실 표적이 없다 라고 하십니다

결국 인간은 오로지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자기만을 위한 복인 반면에
주님이 주시는 복은 너와 내가 상관이 없지 않는
반드시 상관이 있는 상관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한 몸이 되는 결혼에 이르지 못한다면 복이 아니다
그카이 복이라면 결혼 까지 가는 것이 복이다 라고 하신다 라는 겁니다

그카이 혼자가 되고픈 인간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영웅이 되고픈 인간에게
결혼은 그야말로 저주인 거지요
슈퍼맨이 지 혼자 영웅이 되어야지
아내까지 영웅이 되어버리면 온갖 잔소리에 질려 버릴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일까요 그 유명한 알튀세르 라는 철학자는 아내를 살해했는데
그 이유가 자기 보다 더 잘나가니까 말이죠
일종의 우울증으로 판단되어 무죄처럼 판결이 된 줄로 아는데
지젝은 아내에 대한 시기심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어떤 신문 사설에서는 남편은 아내의 극도의 잔소리를 넘어설 때 남편이 된다 라고 하던데
그런 사람 없습니다 그런 남자 없습니다
그래서 라캉이였던가 지젝이였던가 평상시 여자가 기를 쓰지 못하도록
잡은 고기에는 더 이상 미끼를 던져주지 않는다 라는 식으로 살살 잘 타일러서 개유해서 길들여야 한다 라고 하더군요
안그러면 여자는 남자가 되어버리고 만다 라고 말이죠

음녀가 그렇잖아요 국가 라는 짐승의 등 위에 늘 올라탈려는 그 결핍에 빠진다 라고
우울증은 여성이 1년에 한 번 정도 걸릴정도로 감기와 같은 흔한 증세인데
이것이 심해져 버리면 그 결핍을 채우고자 하는 복수심이 가득하게 되는 겁니다
여자가 아기를 낳을때에 자기 남편에 대해서 무의식 중에 온 갖 욕을 다 하잖아요
너 때문에 이런 고통을 격는다 라는 식으로 말이죠
사랑받지 못하는 관계임이 드러나는 거죠


자 오늘 본문이 바로 그런식입니다 인간이 원하는 복은
마치 우을증 환자가 바라는 결핍 채워 달라고 징징 거리면서
남편 욕하는 식과 같습니다
즉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이요 복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복은 자기 목숨을 내어주심 그거 하나 밖에 없습니다
곧 요나의 표적입니다 십자가의 피 용서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그야말로 내가 너에게 반드시 장가 들고야 말겠다 라고
너의 전남편 바알을 반드시 죽이겠다 라고 하시는
시기심의 사랑입니다 질투의 사랑
죽음 보다 강한 사랑입니다

놀랍게도 오늘 본문을 보니
마치 우리가 시편을 할 때 시편 후반부 마지막으로 향해 갈때에

지나친 과잉적인 용서와 사랑을 이스라엘에게 퍼붓고
바로 이어서 그 다음 시편은 지독한 미움으로써 주를 믿지 않는 자는 저주를 퍼붓는 식으로

진노의 그릇과 긍휼의 그릇을 극과 극으로 대조하면서 간극을 벌리시더라 말이죠

바로 그런 시편 다윗언약을 따르는냥 에스겔 조차도
지독한 사랑을 퍼붓는 반면에
상대적인 지독한 미움을 퍼붓는 식으로
다다음 본문의 내용에 나옵니다

오늘 본문은 99번째 내용인데
다다음 21-101번째 내용에 세일산의 저주를 다룰려고 합니다
이 세일산을 치시는 이유를 아는 것 까지 포함해야
여호와를 알지라 여호와가 누구신가를 아는 거죠
그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바로 축복이고
아는 지식이 없는 것이 저주입니다

이 복과 저주를 분명히 알지 못한다면
오늘날 교회에서 말하는 그런 복과 저주에 속아서 주가 누구신지 모르고 멸망하는 것과 같습니다

(겔 35:1, 개역)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겔 35:2, 개역) 인자야 네 얼굴을 세일 산으로 향하고 그를 쳐서 예언하여
(겔 35:3, 개역)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세일 산아 내가 너를 대적하여 내 손을 네 위에 펴서 너로 황무지와 놀라움이 되게 할지라
(겔 35:4, 개역) 내가 네 성읍들을 무너뜨리며 너로 황무케 하리니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겔 34:27, 개역) 그리한즉 밭에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땅이 그 소산을 내리니 그들이 그 땅에서 평안할지라 내가 그들의 멍엣목을 꺾고 그들로 종을 삼은 자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낸 후에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겠고

결국 왜 저주를 퍼붓는 여호와인줄 모르면 저주이고요
왜 축복을 퍼붓는 여호와인줄 모르면 긍휼의 그릇이 아니다는 겁니다
단순한 지식이 아니다는 거죠 알다 관계성입니다
시기심으로 곧 사랑으로 이룬 관계인데

인간이 바라는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 그런 축복은 사랑이 아닌
시기심 질투심이 없는 사랑 곧 아는 것이 아닌 거죠
그렇다면 죽음이 뭔지도 알아야겠지요 인긴 존재가 무가치하게 되는 것이 죽음이 아닌 거죠
그 반대죠 자기의 가치가 생기는게 오히려 여호와를 모르게 되는 무관계가 죽음인 겁니다
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는 자는 나와 상관이 없다 라고 하셨잖아요

그 카이 다윗을 왕을 세우시는 그 이유를 모르는 겁니다
모르고서 축복 달라는 말은 나는 우상숭배만 하겠다
하나님을 점쟁이 찾듯이 하겠다 라는 식입니다
저주만 없앨려고 점쟁이 찾는게 아니지요
축복 받게 해 달라고 점쟁이를 찾거든요

자 이렇게 인간이 만들 수 없는 또 인간이 생각한 반대의 진노의 그릇 긍휼의 그릇을 구체화 하심으로써 여호와가 누구신가를 알려주시는 겁니다

이렇게 시편 한 편은 긍휼의 그릇에게 아무런 조건없이 퍼붓는 편파적인 사랑인 반면에
그 다음 장 그 다음 장 한 편은 일방적으로 퍼붓는 이유 없는 저주입니다
저주 퍼붓고 난 뒤에 알리바이를 퍼부어서 자 이러니까 저주 받는게 당연하지 라고
이런 여호와가 누구신가를 모른다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망하는 자 이다는 겁니다

인간의 선악이 개입 할 수 없습니다
지난 주였던가요 뻐꾸기 이야기 했잖아요 탁란의 달인이다 라고
이것을 선악으로 판단하니까 어떤 불교신자의 블로그에서 저런 악마를 하나님이 창조할 리가 없다 라고 하잖아요 아니 그러면 독수리는 하나가 남을 때 까지 형제들을 떨어뜨려 죽이잖아요 본능적으로 말이죠
그리고 얼마전에 여왕 벌도 자기 동생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가서 죽여버리는 너튜브를 봤거든요 오 바로 검색이 되네요

https://youtu.be/qdHiPBvw4_Q

이런 사례가 얼마나 많냐 말이죠
인간의 선악으로 따져서 뻐꾸기를 악마라 라고 할 수 있겠냐 말이죠
이스라엘이 왜 거주민 가나안 족속을 왜 쫓아내고자 하느냐 라고 따질수 있느냐 말이죠

이미 주님만 혼자 아셔야 하는 선악을 괜히 알게 되니까
반대로 일하시는 주님을 알길이 없으니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 겁니다
이스라엘 역시나 마찬가지입니다
안그러면 주변의 이방나라의 우상숭배를 할 리가 없으니까 말이죠

지금은 안 그런다고요? 이미 애굽화 된 그 마음을 계속 장로의 유전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못 이깁니다

그래서 바벨론 포로 속에 잡혀 온거 아닙니까

그런데 이제야 축복 주시겠데요 글쎄

베드로가 마귀의 유혹을 이기게 되었다면
축복을 모르게 됩니다
마귀에게 넘어가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포로 속에서 그 땅 끝에서 땅끝이라는 죽음 보다 강한 사랑을 만날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만약 예수님을 따라 물 위를 걷는 것이 성공 했다면
그는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그 가짜 기적에서 못 벗어났을 겁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풍랑 곧 사망의 권세에 폭삭 주저 앉은 앉은뱅이가 되는

포로된 자 갇힌 자 억눌린자 소경 앉은뱅이 귀머거리가 되니까
기쁜소식이라는 복음을 듣게 되는 겁니다

시림의 총명과 지혜를 폐하는 그 미련한 복음이 나의 진정한 복음 복된 소식이였다 라는 거죠

바로 환자의 자리 처음자리에서 만나는 의사요 구원자요 생명의 사다리입니다
물에 빠진 자가 아니면
잃어버린 경험이 없다면
땅 끝이라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속에 아니였다면
우리는 이 요나의 표적인 화목제물 되신 십자가의 예수님을 만날수가 없었습니다

이 장대 높이 달린 인자의 죽음이 나 보다 옳았다 라는 그 진리 그 길 그 셍먕의 다리

바로 하나님의 능력을 비로소 보게 되는 겁니다

사망 권세에 대한 절대미움으로써 나타난 그 시기심의 사랑 그 질투의 사랑이 아니였다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였다 말이져

바로 이런 예수님의 숙제인 화목제물 되심 대신 죽으심 대신 심판 받으심이라는 주님의 숙제를 안 보고

마귀에게 속아 사람의 목자들 그 거짓 목자들에게 속아서 자꾸 인간 숙제이 빠지게 되니까
자기만 알지 여호와가 누구신지 모르는 겁니다

여호와가 누구신지를 알려면 환자의 자리에서 의사되시는 그 기능을 만나야 하고
죄인의 자리에서 구원자의 기능을 만나야 하는데

다들 그런 고난의 길 그런 저주의 길 아무도 가지 않는데 어찌 여호와가 누구신가를 보겠습니까
지혜로운 자는 잔칫집에 가지 않고 초상집에 간다 라고 왜 자기의 끝
그 땅 끝에서 그 종말 그 역사의 끝 이라는 자기의 죽음 끝에서 만나는 자가 바로 지혜자 이거든요

지혜자는 자기 여인을 잔칫집 애굽이 아닌 에덴 동산 같았더라 라는 그 애굽이 아닌
그 반대인 사막이라는 광야 그 죽음 속에서 그 땅끝에서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신다
죽음을 시기하는 질투하는 사랑을 말이지요

오늘 본문 보세요 이스라엘 나라 해체 되고 포로 속인
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속에서
주님 혼자 드디어 너는 축복 받은 여인이 되었구나 라고 외치는 겁니다

마치 처녀 마리아가 축복 받았다고 좋아라 하는 반면
정작 인간들은 다들 이 마리아를 종용히 끊어버릴려고 합니다 관계망을 다 차단하고자 합니다
율법자들에게 걸리면 처녀가 아이를 가지게 되었으니 돌삐 쳐 죽일 일을 당하게 될 판국이니
눈에 띄게 돌아다닐수가 없습니다
그야 말로 저주 받은 여자가 되었은데

오히려 천사까지 동원이 되면 축복 받은 여자야 라고 오늘 본문처럼
아주 아주 축복을 퍼붓는 식입니다
복된 여자 라고 말이죠

자신의 처지와 똑같은 엘리사벳 만이 축복합니다 그녀의 남편을 이 비밀을 발설할까봐 주님이 벙어리로 잠시 만들어 버리시고요 말이죠

자 이런식이니 인간의 역사에서는 그야말로 저주 3종 세트인데
오늘본문처럼 포로 속에서 아니다 이 포로 속에서 받는 것이
진짜 축복 3종 세트이다
화평이요 복이 내리고 평안을 누린다 라고 말이죠

그리고 보니 마태복음 24장의 종말의 비유 3종 세트도 똑같습니다

누가 봐도 축복이 저주가 되고
누가 봐도 저주가 도리어 축복이 되는 팔을 어긋맞게 하시더라 말이죠

악한 종과 충성된 종 소위 달린트비유
그리고 슬기로운 다섯처녀와 미련한 다섯처녀 소위 열처녀 비유
그리고 양과 염소의 비유

이 종말의 세가지 3종 세트 비유의 특징이
누가 봐도 인간들의 선악의식에서 선이 악이 되고 악이 선이 되는 식입니다

마치 불의한 청지기가 슬기로운 청지기가 도고
소위 불의한 청지기를 주인에게 고자질 하는 자칭 빛의 아들들은 종말의 대비하지 않는 어리석은 자로써 누워서 침뱉는 미끼를 물어버린 식으로 드러나는 겁니다

누가 봐도 염소이고 자신도 염소라고 여기는데 주님께서 팔을 어긋맞게 해 버리시는 겁니다
누가 봐도 양 같은 짓만 골라서 했는데 그 양을 저주해 버리시는 겁니다
심지어 증거까지 확보해서 말이죠

마치 에스겔 얼마전에 나누었던
하루 아침에 의인이 범죄하고 하루 아침에 악인이 뉘우쳐 의의 행하는 식으로 말이죠

그러니 이런 의미를 성화론이라는 교리가 담을 수 있겠습니까?
자신들의 위선만 더더욱 가득 채우는데 이용하는 
이런 말씀 특히 종말의 비유
땅끝의 비유 죽음 보다 강한 시기와 질투의 사랑 비유 마저도
자기들의 의를 세우고자 사기를 칠테니까요

자 이렇게
진노의 그릇 긍휼의 그릇
바로 토기장이의 비유대로 밀어붙이는 식입니다

있는 자는 더 받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는
진노의 그릇과 긍휼의 그릇은 바로 그런 기능으로써 작동 될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의 증상물이니까요
토기장이의 증상물이니까 말이죠

바로 토기장이의 언약인 오늘 본문의 화평의 언약에 의해서 복이 나옵니다
다른 길로는 복이 안 나옵니다
그렇다면 반드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짐승의 의미가 나오듯이
멍엣목 도 나와야 하겠지요

(겔 34:27, 개역) 그리한즉 밭에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땅이 그 소산을 내리니 그들이 그 땅에서 평안할지라 내가 그들의 멍엣목을 꺾고 그들로 종을 삼은 자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낸 후에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겠고



(겔 34:28, 개역) 그들이 다시는 이방의 노략거리가 되지 아니하며 땅의 짐승의 삼킨바 되지 아니하고 평안히 거하리니 놀랠 사람이 없으리라 

이방나라도 등장해야 합니다 그리고 짐승 땅의 짐승까지도 말이죠

아따 복이 뭔가를 말하기 위해서 동원이 되는 것이 많지요? 우리가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것들만 바짝 가차이 붙이시는 겁니다 붙이시는 전쟁처럼 말이죠

멍멧목이 뭡니까 소에 멍에를 목 주위에 씌워서 땅을 갈아엎도록 끌어당기잖아요
인간으로 치면 쇠사슬 수갑입니다 포로된 입장이고 노예 취급 당하는 전쟁 포로이다는 겁니다

그런 자들에게 희년 희소식 기쁜소식을 전하겠다 라고 주님 혼자 신났어요
표시해 놔라 70년 만에 다시 돌아온다 라고
70년 이라든지 70이레라든지 이 7은 절대단절을 말합니다 3도 같은 의미 이겠지요

용광로 속에서 들어갔다 나오니 불순물이 쪼옥 빠진 상태이다는 겁니다

자 이런 죽음 석에 있어보니
시선이 달라지는 겁니다
내 죽음 내 심판 내 저주는 저주도 죽음도 심판도 아니군요

여호와의 사랑을 그 죽음 보다 강한 사랑을 보라고
죽음 속에서 땅 끝에서

예수님의 죽음을 보는 이 영광
그 다 이루심을 누리는 이 영광인줄 알아라를 보게 된다는 것

그래서 다윗을 왕을 주겠다
왜 다윗이 원수 곧 가나안 족속을 다 물리친 유일한 왕이거든요

사망의 권세를 땅 끝에서 죽음 속에서 다 이룬

이 화평의 언약을 통해서 오는 비로소 복을 누리게 하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마로 이 새언약인 화목제물의 언약 십자가의 언약이 먼저 떳기에

다윗 왕이 먼저 떳기에

너희들은 반드시 포로가 되어야 하고
쫄딱 망해야 하고
물 위가 아닌 물 속에 빠져야 하고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는 죄인의 자리에서

그 쇠사슬 그 죄 값을 찢는 멍엣목을 꺽는
자유케 하시는 이 복음이 아니면

다윅이 아니면
사망 권세릉 이기시는 분이 아니면
여호와가 누군지 모른다는 겁니다

혈통 이스라엘은 여호와가 창조주가 누군지 지금 현재도 그들은 모릅니다
그래서
도리어 땅 끝에서 온 남방 여왕 솔로몬의 지혜를 알고자 했던 그 남방 여왕으로부터 멸망을 당해야 할 입장에 놓여졌습니다

(눅 11:31, 개역)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눅 11:31, 현대인)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던 남방여왕도 심판 때에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죄인으로 단정할 것이다. 자, 보아라. 솔로몬보다 더 위대한 사람이 여기 있다.

이스라엘이 니느웨 백성을 도로 심판을 해야 하는데
거꾸로 이스라엘은 우상숭배를 하고 니느웨 백성이 회개를 하고 돌아오게 되니
심판 받은 니느웨가 도리어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자들이 되는 겁니다

이런 여호와를 알려고 과연 할 까요?


(마 12:41, 개역)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눅 11:30, 개역)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
(눅 11:32, 개역)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마 12:37, 개역) 네 말로 의롭다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마 12:38, 개역)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마 12:39,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마 12:40, 개역)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
(마 12:41, 개역)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마 12:42, 개역)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자 이렇게 화평언약은 화목제물이라는 예수님의 피 흘려 죽으심으로부터 오는 복입니다
누가 이것을 복이라고 여가겠습니까

오죽하면 아무도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 보면 낫는다 라고 해도
치 피 흥 아이고 그거 보고 나을꺼 같으면

벌써 나샀을 것이다 장난치지 말고 약이다 다오 약

즉 약을 바르는 고상한 자가 되어야 자신의 구원이 가치가 있지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고 낫게 되면 부끄러운 쪽팔리는 구원이다
모욕적인 구원이다

아니 내가 그럼 장대 높이 달린 구리 놋뱀
뱀 사탄이라는 말이냐?

그래 너는 죄인 마귀 자식 맞아

에라이 도저히 받아들일수 없다 라고 멋들어진 구원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라고 떼쓰는 거죠

너가 달려 죽어야 하는 저주인데
대신 매 맞으심으로 우리가 안 달린 것이다 라는 겁니다

바로 이런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 라고

주님을 사랑한다를 말은
자기를 저주하고 사랑치 않는다는 겁니다

자 그렇다고 심리학에서 말하는 그 처방이 잘못된거냐 라고 또 공격을 하는데
그것은 그들 의사들의 기능이니까 따라하면 될 것을

괜히 시비를 걸려고 말이죠

인간은 아무도 자기를 사랑해 주지 않기 때문에
자기 마저도 자기를 사랑안해 주면 무너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일이고

하나님의 일은 누구든지 주를 사랑치 않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 라고
이미 저주 받았다 라고

자기를 미워하는 자는 주님의 사랑을 충분히 받기 때문에
결핍을 채울려는 애정결핍으로 구걸을 하는 방식이 아니다 라는 겁니다

이미 완료됨을 넉넉히 누리기 때문에 자기를 더 이상 사랑할 필요가 없지
괜히 따라햇다가는 목수심만 가득합니다 왜 안 낫느냐 라고

개인 문제가 아닙니다 사회구조가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발생하는 증상물이다
그 정도로 사회는 예수님을 죽은 세계이기 때문에 당연한 겁니다

그러나 주님이 따로 세우신 믿음의 나라가 있습니다
산소망으로써 보이지 않는 믿음으로써만 넘치기 때문에
그 완료를 누리기 때문에
앵벌이처럼 사랑을 애정을 구걸할 필요가 없이
넉넉히 완료를 누리기 때문에
자기를 더 이상 사랑할 필요 조차 없을 정도로 넉넉하기 때문입니다
미완료도 없습니다
다 이루심입니다

그 카이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나 보다 나를 더 사랑 하시는 그 시기와 질투의 사랑 때문에

포로 속에서 쇠사슬을 끊는 이 희년이 먼저 떳기에

질병이든 정신병이든 가난이든 종교로부터 미움 받는 핍박이든
아무리 사방에 우겨삼을 당해도 넉넉히 이기신 이 화평의 언약이 먼저 떳기에

우리는 그 증상물로써 세상에
에수님을 죽은 세상에 내 던져진 겁니다

더 이상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자로써 더 이상 자기라는 우상을 따르지 않는 자로써
주를 사랑하는 자로써

당신이 땅끜에서 나를 건져내신 내 낭군 이시군요 라고

패역한 예루살렘 딸이 뒤에서 이 다윗왕 되신 예수님을 껴 앉는 겁니다

땅 끝이라는 이 죽음이 아니면

왜 다윗 왕을 주시는지도 모르고
왜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시겠다 도 모르고
왜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조차도 모르는

그저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나는 나만 챙기겠다 라는 그 저주라는 의문의 반복만
생명 없이 떠도는 겁니다

그 의문의 마침이 되시고자 뫼비우스의 띠를 칼로 짤라서
생명의 사다리로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지혜인 이 십자가의 도인
화평의 언약으로 화목제로써

원수의 자리에서 하나 되게 하시는 이 화목제를 보게 하시는 겁니다

땅끝 낭떠러지 홍해 바다 앞에서
인생의 끝자락 종말의 자리 죽음의 자리에서 만난 예수님만이

나를 죄에서 구원할 환자를 고치실 의사요 왕 이십니다








Posted by 김 대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