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65 완악한 선민 이스라엘과 은혜로 용서받은 이방인 (롬 11, 6-10)
2025. 10. 19.
기적을 구하는 완악한 선민 이스라엘 (의인 맏아들) VS 은혜로 용서받은 죄인 이방인 (탕자, 남은자, 불의한 청지기)
남은자 7000명 (롬 11, 1- 5)
로마서 2022 2025. 9. 27. 15:13
22-064 남은자 7000명;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자 (롬 11, 1- 5)
〈로마서 11, 6-10, 개역한글, 신약성경 254쪽, 가스펠; 내가 천사의 말 한다해도, 찬송가 318장 새 528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가스펠; 내가 천사의 말 한다해도〉
내가 천사의 말한다해도 내 맘에 사랑 없으면
내가 참 지식과 믿음 있어도 아무 소용 없으니
산을 옮길 믿음이 있어도 나 있는 모든 것 줄지라도
나 자신 다 주어도 아무 소용없네 소용없네
사랑은 영원하네
사랑은 온유하며 사랑은 자랑치 않으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불의 기뻐하지 아니하네
내가 천사의 말 한다해도 내 맘에 사랑없으면
내가 참 지식과 믿음 있어도 아무 소용없으니
산을 옮길 믿음이 있어도 나있는 모든 것 줄지라도
나 자신 다 주어도 아무 소용없네 소용없네
사랑은(사랑은 사랑은) 영원하네(영원하네)
영원하네(영원하네) 영원 영원히
〈찬송가 318장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소리 , 새찬송가 528장〉
1.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그 음성 부드러워
문 앞에 나와서 사면을 보며 우리를 기다리네
오라 오라 방황치 말고 오라
죄있는 자들아 이리로 오라 주예수 앞에 오라
2. 간절히 오라고 부르실 때에 우리는 지체하랴
주님의 은혜를 왜 아니 받고 못들은 체 하려나
오라 오라 방황치 말고 오라
죄있는 자들아 이리로 오라 주예수 앞에 오라
3. 세월이 살같이 빠르게 지나 쾌락이 끝이 나고
사망의 그늘이 너와 내 앞에 둘리며 가리우네
오라 오라 방황치 말고 오라
죄있는 자들아 이리로 오라 주예수 앞에 오라
4. 우리를 위하여 예비해 두신 영원한 집이 있어
죄 많은 세상을 떠나게될 때 영접해 주시겠네
오라 오라 방황치 말고 오라
죄있는 자들아 이리로 오라 주예수 앞에 오라
〈로마서 11, 6-10, 개역한글, 신약성경 254쪽〉
(롬 11:6, 개역)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롬 11:7, 개역) 그런즉 어떠하뇨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완악하여졌느니라
(롬 11:8, 개역)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롬 11:9, 개역) 또 다윗이 가로되 저희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옵시고
(롬 11:10, 개역) 저희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저희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롬 11:6, 새번역)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에 근거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은혜는 이미 은혜가 아닙니다.㉢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다음 내용이 더 첨가되어 있음. '그러나 행위로 된 것이면, 은혜에 근거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행위는 이미 행위가 아닙니다'
(롬 11:7, 새번역) 그러면 무슨 결과가 생겼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찾던 것을 얻지 못하였지만,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은 그것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머지 사람들은 완고해졌습니다.
(롬 11:8, 새번역) 성경에 이렇게 기록한 바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는 혼미한 영을 주셨으니, 오늘까지 그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 / ㉣신 29:4; 사 29:10
(롬 11:9, 새번역) 다윗도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그들의 밥상이 그들에게 올무가 되고 덫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그들이 걸려 넘어지고, 보복을 받게 하여 주십시오. / ㉤시 69:22; 23
(롬 11:10, 새번역) 그들의 눈이 어두워져서 보지 못하게 되도록 하여 주십시오. 그들의 등이 언제나 굽어 있게 하여 주십시오.“
(신 29:4, 개역)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날까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사 29:10, 개역)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눈은 선지자요 너희를 덮으셨음이니 머리는 선견자라
(시 69:22, 개역) 저희 앞에 밥상이 올무가 되게 하시며 저희 평안이 덫이 되게 하소서
(시 69:23, 개역) 저희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게 하시며 그 허리가 항상 떨리게 하소서
구원은 행함이 아닌 은혜로 된다 라고 전제로 깔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롬 11:6, 개역)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그러나 우리는 은혜와 행함의 차이를 모르고 있습니다
은혜는 행함이 아니고 행함은 은혜가 아니다 거기까지는 알지만
이 둘의 명백한 차이를 우리는 4복음서를 통해서 보고 있으면서도
막상 체험이 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행함은 도리어 내가 살아있음을 보여주고 있고
은혜는 나는 죽었음을 보여주고 있기에
행함만 알지 은혜를 모르니 이 행함만 가지고서는 이 둘의 차이를 못 느끼는 겁니다
그럼 이 행함만으로는 왜 행함이 되지는 조차도 모르는 셈입니다
남자를 남자 하나만으로는 모르고 여자라는 상대적인 의미가 있어야 남자를 아는 것이지요
남자 하나만 있다는 굳이 인간이나 사람이라고 하지 남자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남자 하나만으로는 그 기능을 모르는 셈입니다
그냥 인간의 기능 사람의 기능을 동물들과의 차이에서만 발견하는 꼴입니다
행함 조차도 행함의 의미는 행함 단독적으로 존재하면 모르듯이
그 반대 급부 즉 행한의 반대가 안행함이 아니라
행하지 않는 것도 결국 행함의 범주에 해당되기에
완전한 반대 급부를 모르는 겁니다
결국 은혜 라는 기존의 의미에서의 은혜도 아닌 그렇게 되면 배은망덕이 반대말이겠지요
아니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완악함 말이지요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은혜는 세상이 격어보지 못한 겁니다
왜냐하면 죽음 속에서의 은혜이니까
죽었뿌면 끝나는데 무슨 놈의 은혜이겠냐 말이죠
완악함도 반대의미가 유순하고 겸손함이 되니 이것은 역시나 행함의 범주이지
은혜를 모르는 입장에서 은혜의 범주라고 생각 할 수가 없습니다
겸손 유순함 이 모든 것이 인간의 행함의 범주가 되지
외부 바깥에서 심지어 살아있는 행함 바깥에서의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 개념에서는 행함 안의 개념을 알수가 없겠지요
아무튼 은혜 라는 것 자체가 이해할수 포착할수 없도록
인간 바깥에 있는 인간 존재에서 벗어난 개념입니다
이 은혜란 결국 예수님의 죽음으로 오니까
내가 죽지 않는 이상 모르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죽었다가 여전히 모르게 되면 괜히 죽은 것이니
이건 뭐 그 어떤 접근도 허용되지 않는
마치 천사가 불검을 들고 생명나무를 지키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미 생명나무 곧 은혜에서 쫓겨난 은혜 밖의 존재가 되었기 떄문입니다
결국 나의 죽음에 예수님의 죽음이 뛰어들지 않는 이상
이 외부의 숙제가 펼쳐지지 않는 이상
그래서 믿음은 선물이다 라고 이 선물이 주어지지 않는 이상
우리는 은혜를 모르도록 되어 있습니다
다행히도 우리는 이스라엘 이라는 아주 독특한 민족을 통해서
그나마 그 실마리를 찾게 되는데
그렇다고 이스라엘이 이 은혜를 알았느냐 아닙니다 모릅니다
그런데 말라고 이스라엘을 통해서 알 수 있는가?
이 이스라엘이 은혜를 받아 놓고도
그 은혜를 놓치는 것을 통해서
그들의 실패 땡 탈락을 통해서
그 나마 그 차이를 생각할 수 있다 라는 겁니다
물론 생각한다 라고 다 아는게 아니라
사실은 은혜를 받은 자 만이 왜 이런 은혜의 선물을 주시지 라고
행함을 할 줄 모르는 율법이 없었던 이방인에게
율법의 기능을 하는 양심도 주어졌지만 그 양심도 못 지킨 자들이
왠 은혜인지 용서를 받아서
왜 이 용서가 주어졌는지를
율법을 알 필요가 없지만
율법을 거쳐서 온 즉 이스라엘의 버림받음 실패함을 거쳐서
그 은혜의 또렷함을 더욱 더 부어주는
많이 탕감 받은 자가 곧 많이 은혜 받은자 용서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는
그 관계성을 더 깊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우리 개같은 심판받아 마땅한 죄인에게
그 은혜를 더하시고자
오늘 이 본문을 통해서
이 용서의 은혜를 누리게 하시는 겁니다
먼저 이 은혜를 모른다는 점에서
이 은혜와 반대 급부인 그 차이가 바로 완악함 이라는 것을 본문에 제시하고 있습나다
더 놀라운 점은 개같은 이방인 곧 우상숭배자들인 이방인의 완악함이 아니라
그것은 우리가 늘 아는 입장입니다
그 반대인 이스라엘의 완악함을 거쳐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이스라엘의 완악함을 거쳐서 그 완악함이 깨진 자가 나오는데 바로 오늘 본문에 제시된 다윗이라는 인물입니다
결국 은혜를 알려면 이방인의 완악함이 아닌 이스라엘의 완악함
그카면 구약을 다 알아야 겠네요
굳이 양적인 의미로만 생각할게 아니라
신약의 4 복음서를 통해서
은혜 되신 은혜를 마치 의인화 해서 은혜의 인물 대표자로 예수님만을 보시면 되고
완악함 그 자체로 유대인들을 특히 바리새인을 보시면
이 은혜와 완악함의 충돌
즉 다른 말로 하면 은혜와 행함의 달인들 간의 대 충돌을 보시면 이해가 되는 겁니다
그 행함의 내면에는 그들 이스라엘의 역사인 구약이라는 그림자가 깔려 있고 말이죠
그 속에서 주님은 은혜로 구약 속에서 그리스도를 지속적으로 비유 비밀 수수께끼로 남겨놨지만
들을 귀 볼 눈이 없는 완악한 자들에서는 감추어진 비밀로써 자리잡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 구약은 예수님만 증거하는데 있어서
자기 살아있음 즉 행할 줄 안다 라는 그 완악함 속에서는 전혀 안 보인다는 것
도리어 그 완악함의 대조를 이루면서 증거되고 있다는 점을
4 복음서에서 나타난
정통 역사를 전수하는 바리새인과
구약의 그림자의 실체로써 그 비유의 진짜 진면목을 보여주시는
경건의 껍데기 모양과 경건의 능력의 대 충돌을 통해서
우리는 이 은혜가 뭔지를 알게 되는 겁니다
결국 나 또한 은혜의 자리에 앉아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인 완악할 수 밖에 없는 죄인의 자리에서
이 의사를 고쳐주시는 의술을 그 구원의 능력을
사다리 걷어차는 완악한 이스라엘이 아닌
사다리를 이어주시는 생명의 동앗줄을 내려주신 그 은혜를
요나의 큰 물고기 뱃속 그 캄캄한 어두은 사망의 몸에서 비로소 보게 되는 겁니다
이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는데
유대인들은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나 살아 있음에 더 덧붙일려는
그래서 예수님을 임금 삼고자 하는
그 우상숭배를 여전히 장로의 유전의 따라 하고 있음을
지금 현대 2025년 도에서 여전하다는 겁니다
빤스 그 놈만 그런게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가 다 그러고 있고
그것을 또 수출까지 해서 이제서야 따라하는 미국 기독교까지
그 완악함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인 7의 70번의 용서의 능력이 아니면
예수님의 죽음이 아니면
저 남을 7번 용서한 자들의 완악함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남겨둔 한 씨 가 아니였다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였을 겁니다
진작에 죽어 마땅한 죄인의 자리에서만
이 요나의 표적을 그 하나님의 능력인 십자가를
그 은혜를 보게 되는 겁니다
저들의 완악함 때문에 처음자리를 발로 차는 바람에
잃어버린 첫사랑을 저들 이스라엘은 기억치 못하는 겁니다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즉 이 죽음이라는 처음자리에서
더 이상 우리는 살 자격이 없는 그 땅끝 이라는 죽음의 자리에서
죽음 이후 심판 이후 땅끝 이후의 상황에서 우리는 관여할 수 없는 입장인
손을 떼어야 할 입장 뿐이다는 겁니다
오로지 망하는 것 외에는 없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이사야가 주님의 얼굴 곧 거룩 앞에서 선 모습이다는 겁니다
은혜 앞에 서는 자의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입니다
그 예수님의 거룩한 죽음 앞에서는 입도 뻥긋 못할 정도로
머리를 땅에 쳐 박고 시커먼 잿더미를 머리에 뿌리고 바짝 엎드려서 생일을 저주하면서
능지처참을 당해야 할 입장이다는 거죠
마치 개인 지옥도 아닌 집단 지옥에 가야 할 모습을 오히려 은혜 앞에 선 자가 미리 앞당겨 보여주고 있고 즉 집단지옥은 개개인의 잘잘못 유무와 상관 없이
딱 한 놈 잘못 해도 무조건 전체가 다 지옥 가야 하는 그 원인 없는 결과로써의 지옥 말이지요
마찬가지로 집단 구원은 개인의 율법실천 유무와 상관없이
오로지 다윗 왕 하나가 용서 받음으로 은혜 받음으로 무조건 백성들 다 용서 받는
이 원인 없는 결과로써의 집단 구원 즉 그리스도의 몸으로써의 구원을
은혜가 펼친다는 겁니다 은혜가 말이죠
즉 예수님의 죽음이 그 화목제물 되심이 펼치신다 라는 겁니다
여기서 무슨 놈의 교리니 삼위일체니 하는 그 따윗 완악한 자들이 만들어 놓은 지침서 규율이
과연 은혜 앞에서 용광로 속에서 정금같이 나올수 있겠습니까
자금 화로다 화로다 나여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이 심판의 지옥의 몸으로써 하나님의 거룩을 봐 버렸으니
타 죽어야 마땅치 않는가 라고 하는 상황에서
지금 저 따위 종교 교라를 운운하면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장난질에 놀이나야 하겠느냐 말이지요
성화론이 어떻둥 삼위일체가 어떻둥 극우 극좌 이런 놈들 이미 버리운자들입니다
우상숭배 하는 자들과는 상종 하지 말아야 겠지요
도리도리와 한 패거리인 지옥갈 자들이다는 겁니다
자 그래서 완악함을 볼려면 이스라엘의 완악함을 은혜와 대조를 시켰고
그 완악함 마저도 너끈히 이기시는 예수님의 죽음이 덮친자
곧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즉 행함이 아닌 외부의 숙제인 죄용서를 펼치신
꺽으신 뼈로 용서함을 받은 자
바로 다윗을 언급하면서
이 은혜가 뭔지를 증거하시는 겁니다
이 다윗을 거치지 않고서는 은혜를 모르게 하셨다 라는 겁니다
(롬 11:8, 개역)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한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기에
때려죽어도 이 은혜를 모르도록
와부에서 주어지는 선물은 모르고
반대로 내부에서 행하는 자기 숙제에만 빠져 살도록
즉 이 완악함에서 못 벗어나도록 했다 라는 겁니다
(신 29:4, 개역)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날까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사 29:10, 개역)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눈은 선지자요 너희를 덮으셨음이니 머리는 선견자라
즉 은혜 받은 자는 성령을 부음 받아서 천국 가야만 하듯이
지옥 갈 자는 자기 개인의 죄악으로 지옥 가는게 아니라
은혜받지 못하도록 악령을 부어버람으로써 지옥 간다는 겁니다
이것이 저들 지옥 가는 자들에게 더더더더 이를 갊이 되는 것이니까요
심심하면 너튜브에 나오는 썸네일 제목 엄지손톱 이라는 축약제목이 마중그림이 뭔고 하니
우리는 그 동안 지옥가는 자를 오해 했었다 라는 식으로
그 동안 지옥갈 자 천국 갈자를 다들 엉터리로 정의를 내렸다는 겁니다
그들 자신에게서는 없어요 다 외부의 숙제로
지옥 가야만 하고
천국 가야만 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더 기분이 나빠서 왜 토기장이에게 다 진노의 그릇 만들던다
다 긍휼의 그릇 만들던가
기분 나쁘게 누구는 긍휼 누구는 진노 이렇게 각각 다르게 만드느냐 라고
그릇이 토기장이에게 따진다는 겁니다
아니 지금 불가마 용광로 속에 들어갈 자들이 뭐가 말이 많은지 말이죠
니가 토기장이 하지 왜??
토기장이 기능 자체가 그렇다 라는 겁니다
그 카이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고 다들 토기장이가 되었기에
진짜 토기장이가 하는 일에 완악함을 드러내는 겁니다
율법을 지키니까 더더욱 그러하더라 말이죠
예수님을 죽이면 죽였지
율법 지키면 예수님 안 죽이는 인간이 없다 라는 겁니다
즉 모조리 다 토기장이가 되었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진노의 그릇을 걸러내야지요
너 같으면 긍휼의 그릇이랑 함께 살고 싶지
부모에게 달려드는 사생아 들과 살고 싶겠냐 말이죠
그건 행함의 나라 곧 누가 크냐 늘 따지는 나라
은혜의 나라는 사랑 외에는 섬김 외에는 없다 말이지요
그래서 이 완악한 이스라엘을 다윗처럼 용광로 속에 집어넣어서
불순물 쫘악 빼서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는 밭갈이 기경 심판을 거쳐서 나오는 이 은혜 곧 징계의 매
사랑의 매를 통해서 죽은 놈 다시 살리는 은혜를 통해서 보니
그래서 다윗을 언급하는 겁니다 다윗 지가 지를 심판해 달라고 했응께 말이지요
(롬 11:9, 개역) 또 다윗이 가로되 저희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옵시고
(롬 11:10, 개역) 저희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저희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간음죄 살인죄 인구조사죄 이 인구조사죄가 남의 눈치를 보면서
남들의 시선에 등이 굽신 굽신 아부하느라 바쁜
이 원수로부터 건져 달라는 겁니다
의인이라는 다윗으로부터 다윗은 죄인의 자리로 옮겨 달라고 원수 다윗으로부터 건져달라고 다윗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회개 입이다 회개의 달인인 바리새인이 아니라 말이죠
정직한 영이 없어서 우는 자 땅끝 용광로 속에
새영 새마음 성령 속에서 나온 자로써 말이죠
완악 안 한자가 아니라
완악해 질 수밖에 없는 이 사망의 몸에서
즉 율법은 넌 사망의 몸이냐 뭘 해도 죄 밖에 없는 지옥의 몸이야를
율법과 선지자는 알려주거든요
그래서 그 완악한 다윗 자신에게서 건져 달라고
번제와 제사를 드렸다고 완악한 수건을 안 벗었다고 자랑하는
누가 크냐 라는 그 큰 자리에서 안 내려올려는 완악한 자를
어서 무너뜨려 밭갈이 기경해 달라고
이 3일의 간극이
주의 길을 예비하고자 거룩한 분이 지려 밟도록
밭을 평평이 첩경을 평탄게 만들어서
지려 밟고 가시도록
나의 길은 없습니다 주의 길 밖에 없습니다 라고 불도죠로 밀어버리도록 말이지요
그 정직한 영이 없고 부들 부들한 길은 없고
온갖 쓰레기 더미 큰 바위 돌 자갈 그 어떤 누구도
날 건드리면 가만히 안 둘 거야 라는 라멕의 노래처럼
지 속의 있는 것들이 튀어나오는 것이 기도요 고백이요 노래이듯이
주님이 사뿐 사뿐 걸어갈 길 조차도 단 하나도 없는 겁니다
지나 갈려면 못 지나가도록 삥이나 뜯고
지도 천국 안가고 남도 못 가도록 중간에서 돈이나 약탈하는 강도의 소굴이 바로 오늘날 기독교이다 말이죠 그렇게 천주교를 욕해놓고서는 지도 맹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안 되는 겁니다
그 안되는 불가능 속에서 주님만이 하십니다
곧 은혜 즉 예수님의 죽으심이라는 생명 내어주심으로써 말이지요
그 속에서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행함 없이 완악함이 없었던게 아니라 박살이 나서 부들부들해진 밬갈이 용광로 속에서 불순물 오예물 걸러낸 땅끝 죽음 속에서 나오게 하신
잃어버린 경험을 통해서 말이죠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죄 사함을 받은 자의 행복 곧 은혜로
이 완악한 수건을 벗을 수 있었다 라는 겁니다
(사 29:10, 새번역) 주님께서는 너희에게 잠드는 영을 보내셔서, 너희를 깊은 잠에 빠지게 하셨다. 너희의 예언자로 너희의 눈 구실을 못하게 하셨으니, 너희의 눈을 멀게 하신 것이요, 너희의 선견자로 앞을 내다보지 못하게 하셨으니, 너희의 얼굴을 가려서 눈을 못 보게 하신 것이다.
다윗 본인이 자기 눈의 대들보를 못 보고 남의 눈의 티를 보고 율법 네 배나 갚으라 라고
선견자 예언자 기능을 했다 라고 자부하고 있으니
내 열심히 특심이다 라고 엘리야처럼
요나처럼 당신 시키는대로 했는데 왜 배신 때리냐 라고
진노의 그릇을 왜 긍휼의 그릇으로 만들고
긍휼의 그릇을 왜 진노의 그릇으로 만드냐 라고 삐지는
이 선견자의 눈을 못 보게 하시는
이 은혜
선지자 조차도 이 은혜라는 십자가의 비밀을
하나님 편에 서면 될 것이라는 자기 편 만들기 조차도
먹혀 들지 않도록 하신
이 손수 직접 만드신 그 화목제로만이
밭갈이 다 갈아 엎어버리시는 겁니다
새로 새로 새 판을 짜신 겁니다
이 은혜의 판이 아니면
용서 받을 자 없도록 말이지요
은혜가 은혜 되겠끔 하시고자 말입니다
이 인간 보다 먼저 있었던 완악함의 왕노릇
사망의 왕 노릇
죽기를 무서워 율법 네 배나 갚으라 라는 그 완악의 죽음의 왕 노릇만을 상대로 하는
은혜의 왕 노릇이다는 겁니다
이 마귀만을 상대로 하신 일이기에
나 있음 나 존재하고요 나 살아 있다니깐요 라고
나 행할 줄 안다 라는 것 아예 상대하지 않으시고
오로지 사망의 권세만을 상대로 하신
은혜의 왕 노릇이 아니면
우리는 이 완악함을 벗어날 수가 없는 겁니다
이 은혜만이 들추어내시는 완악함
이 진정한 완악함을 들통 당하지 않으면
진정한 은혜의 왕 노릇을 못 보고
또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고
죽기를 무서워 광채나는 얼굴로 사람들을 겁주고
사랑이 아닌
자기 능력 과시로 남 7번 용서로 남을 정죄하는 그 완악함에서 무슨 수로 벗어납니까
정직한 영도 없으면서
율법 네 배나 갚으라 라고 선견자 노릇
소경이 소경의 길로 인도하면 뭐 합니까
같이 다 빠져 죽자는 것이지
사다리 걷어차기만 할 뿐
생명의 밧줄을 자기도 안 붙 잡고
남도 못 붙잡도록
오늘날 목사들이 다 이런 놈들 밖에 없더라 말이죠
그저 유순하고 착한 목사 이미지로만 남길려는
빤스 보다 더 나쁜 놈들이다 말이죠
남의 삐 빨아먹는 흡혈귀입니다
자기의 좋은 이미지를 위해 남들을 등쳐먹고 사다리 걷어차는 놈들이다는 거죠
그러니까 그 완악한 수건을 안 벗을려는 것 자체가 완악함 덩어리 그 자체
악 그 자체
독사의 자식 아닙니까 그 당시에 가장 존경받는 그 정도로
남들에게 꼬투리 잡을 것 하나 없었던 자가 바리새인인데
대 놓고 마귀 자식이라고 들통내 버렸으니
얼마나 죽이고 싶어 할까요
결국은 죽이는데 성공 했다 말이죠
이 죽음이 아니면 인간은 완악함을 들통 당할 일이 없으니
지옥 행인 거죠
누구 하나 우리의 완악함을 지적해 줄 수 없다 라는 그 자체가
우리는 악의 소굴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라는 겁니다
아무도 증거하지 않는 미련한 복음만이
유일하게 우리의 완악함을 들통내시는 겁니다
그리고 다윗을 언급하십니다
아주 아주 박살이 나도 이렇게 박살이 난 자가 없습니다
젖먹이의 죽음이 아니면 살수 없는 그 모욕적인 구원이 아니였으면
그의 완악함을 벗겨질수가 없는 겁니다
완악함 율법 네 배나 갚으라 라는 그 가장 큰 권력
모세의 자리
왕의 자리가 아닌
젖먹이의 죽음으로만 살도록 되어 있는 모욕적인 이런 치욕이
이런 수치
이런 새까만 잿더미를
흰눈 같이 희게 하는 이 젖먹이 어린양의 죽음이 아니였다면
완악한 권력의 힘과 아주 아주 극과 극인 정반대의 아주 아주 힘없는 그 아기가
다윗을 건지는 하나님의 능력 이다는 겁니다
권력 힘 백날 있어봐도
죄인 하나 못 건지고
약자 하나 못 입힐 정도로
소자 하나 마시게 입히고 먹을 주지 않을 정도로
그 멋들어진 잔칫집 애굽을 추구함에 있어서
정반대의 극의 자리인 아무 능력 없는 무능한 어린아이 자리에서
우리의 완악함 하나 벗길려고 죽기까지 복종 하신
이 하나님의 능력 (공의)
(롬 10:2, 개역)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롬 10:3, 개역)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이 잃어버린 하나님의 공의에 복종하신 십자가의 죽음이 아니였다면
우리는 저 완악한 수건 선악을 아는 자기 의를 세움 때믄에
하나님의 의를 못 보고 무시하고 거부하는 이 완악함으로만 일관 할 것입니다
(시 109:1, 개역)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나의 찬송하는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옵소서
(시 109:7, 개역) 저가 판단을 받을 때에 죄를 지고 나오게 하시며 그 기도가 죄로 변케 하시며
(시 109:8, 개역) 그 년수를 단촉케 하시며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시며
(시 109:9, 개역) 그 자녀는 고아가 되고 그 아내는 과부가 되며
(시 109:10, 개역) 그 자녀가 유리 구걸하며 그 황폐한 집을 떠나 빌어먹게 하소서
(시 109:11, 개역) 고리대금하는 자로 저의 소유를 다 취하게 하시며 저의 수고한 것을 외인이 탈취하게 하시며
(시 109:12, 개역) 저에게 은혜를 계속할 자가 없게 하시며 그 고아를 연휼할 자도 없게 하시며
(시 109:13, 개역) 그 후사가 끊어지게 하시며 후대에 저희 이름이 도말되게 하소서
(시 109:14, 개역) 여호와는 그 열조의 죄악을 기억하시며 그 어미의 죄를 도말하지 마시고
(시 109:15, 개역) 그 죄악을 항상 여호와 앞에 있게 하사 저희 기념을 땅에서 끊으소서
아니 다윗 지는 은혜 받아 놓고 용서 받아 놓고서
왜 이런 저주의 기도를 퍼 붓는 겁니까
베드로 자신은 예숭님을 세 번 부인 한 것을 용서 받아 놓고서는
아나리아 삽비라 부부를 왜 저주 하실까요
그 개인의 죄악을 저주하는게 아니라
은혜를 은혜 되게 하시고자
행함의 법칙을 따르는 자들에 대한 저주의 기도입니다
누구든지 주를 사랑치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 지어다 라고
사도바울이 아주 격렬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바울 또한 자신이 주를 사랑치 않았을때에 저주 속에 있었다 라는 겁니다
그럼 이 저주의 기도는 선포는 바로 은혜에서 나온
완악함에 대한 제대로 된 공격입니다
바울이 주를 사랑치 않았을 때 가만히 있었느냐 아니지요
은혜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맞습니다 이 두 소욕의 충돌을 제대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다윗 본인에게 공격했듯이 공격합니다
이전의 것 모세언약 대로 정죄하는게 아닙니다
다윗언약대로 정죄를 해야 하는 겁니다
이것이 그 사람을 건지는 유일한 길입니다
엉터리 율법 껍데기를 가지고 하는게 아닙니다
율법의 알맹이 사랑이 여기 있는데 어딜 딴데 쳐다보느냐 라고 공격하는 겁니다
늘 자기자신에게 하듯이 말이지요
이갓이 은혜를 은혜 되게 하고자
이전 것이 지나간 새 것이 되었도다를 외치는
완악한 세계를 향한 미련한 복음이자 생명의 밧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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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1 세일 산으로 향한 저주 예언 (무조건 에돔을 에서를 미워하심) (겔 35, 1-15)
2025. 10. 26. ( 10 월 10 일, 녹음 )
수치를 가려주심 받는 내 백성 (겔 34,29-31)
에스겔 2019 2025. 10. 4. 21:51
21-100 수치를 가려주심 받는 (원수의 목전에서의) 내 백성 (겔 34,29-31)
〈에스겔 35, 1-15, 개역한글, 구약성경 1206쪽, 찬송가 349장 새 214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찬송가 506장 새 453 예수 더 알기 원함은〉
〈찬송가 349장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새찬송가 214장〉
1.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주 예수님께 빕니다
그 구원 허락 하시사 날 받으옵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으옵소서
2. 큰 죄에 빠져 영 죽을 날 위해 피 흘렸으니
주 형상대로 빚으사 날 받으옵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으옵소서
3. 내 힘과 결심 약하여 늘 깨어지기 쉬우니
주 이름으로 구원해 날 받으옵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으옵소서
4. 내 주님 서신 발 앞에 나 꿇어 엎드렸으니
그 크신 역사 이루게 날 받으옵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으옵소서
〈찬송가 506장 예수 더 알기 원함은, 새찬송가 453장〉
1. 예수 더 알기 원함은 크고도 넓은 은혜와
대속해 주신 사랑을 간절히 알기 원하네
내 평생의 소원 내 평생의 소원
대속해 주신 사랑을 간절히 알기 원하네
2. 성령이 스승 되셔서 진리를 가르치시고
거룩한 뜻을 깨달아 예수를 알게 하소서
내 평생의 소원 내 평생의 소원
대속해 주신 사랑을 간절히 알기 원하네
3. 성령의 감화 받아서 하나님 말씀 배우니
그 말씀 한 절 한 절이 내 맘에 교훈되도다
내 평생의 소원 내 평생의 소원
대속해 주신 사랑을 간절히 알기 원하네
4. 예수가 계신 보좌는 영광에 둘려 있도다
평화의 왕이 오시니 그 나라 왕성하도다
내 평생의 소원 내 평생의 소원
대속해 주신 사랑을 간절히 알기 원하네
〈에스겔 35, 1-15, 개역한글, 구약성경 1206쪽〉
(겔 35:1, 개역)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겔 35:2, 개역) 인자야 네 얼굴을 세일 산으로 향하고 그를 쳐서 예언하여
(겔 35:3, 개역)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세일 산아 내가 너를 대적하여 내 손을 네 위에 펴서 너로 황무지와 놀라움이 되게 할지라
(겔 35:4, 개역) 내가 네 성읍들을 무너뜨리며 너로 황무케 하리니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겔 35:5, 개역) 네가 옛날부터 한을 품고 이스라엘 족속의 환난 때 곧 죄악의 끝 때에 칼의 권능에 그들을 붙였도다
(겔 35:6, 개역)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너로 피를 만나게 한즉 피가 너를 따르리라 네가 피를 미워하지 아니하였은즉 피가 너를 따르리라
(겔 35:7, 개역) 내가 세일 산으로 놀라움과 황무지가 되게 하여 그 위에 왕래하는 자를 다 끊을지라
(겔 35:8, 개역) 내가 그 살륙 당한 자로 그 여러 산에 채우되 칼에 살륙 당한 자로 네 여러 멧부리에, 골짜기에, 모든 시내에 엎드러지게 하고
(겔 35:9, 개역) 너로 영원히 황무케 하여 네 성읍들에 다시는 거하는 자가 없게 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겔 35:10, 개역) 네가 말하기를 이 두 민족과 이 두 땅은 다 내게로 돌아와서 내 기업이 되리라 하였도다 그러나 나 여호와가 거기 있었느니라
(겔 35:11, 개역)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그들을 미워하여 노하며 질투한 대로 내가 네게 행하여 너를 국문할 때에 그들로 나를 알게 하리라
(겔 35:12, 개역) 네가 이스라엘 산들을 가리켜 말하기를 저 산들이 황무하였으니 우리에게 붙이워서 삼키게 되었다 하여 욕하는 모든 말을 나 여호와가 들은 줄을 네가 알리로다
(겔 35:13, 개역) 너희가 나를 대적하여 입으로 자랑하며 나를 대적하여 여러가지로 말한 것을 내가 들었노라
(겔 35:14, 개역)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온 땅이 즐거워할 때에 내가 너를 황무케 하되
(겔 35:15, 개역) 이스라엘 족속의 기업이 황무함을 인하여 네가 즐거워한 것 같이 내가 너로 황무케 하리라 세일 산아 너와 에돔 온 땅이 황무하리니 무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겔 35:1, 새번역)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겔 35:2, 새번역) "사람아, 너의 얼굴을 세일 산 쪽으로 돌리고, 그 곳을 규탄하여 예언하여라.
(겔 35:3, 새번역) 너는 그 곳을 규탄하여 말하여라. '나 주 하나님이 이렇게 말한다. 세일 산아! 내가 너를 대적한다. 내가 내 손을 펴서 너를 치고, 너를 황무지와 폐허로 만들겠다.
(겔 35:4, 새번역) 내가 네 성읍들을 폐허로 만들면 너는 황무지가 될 것이다. 그 때에야 비로소 너는, 내가 주인 줄 알게 될 것이다.
(겔 35:5, 새번역) 네가 옛날부터 이스라엘에 한을 품고 있더니, 이스라엘 백성이 재난을 당할 때에, 그들이 그 지은 죄로 심판을 받을 때에, 너는 그들 위에 칼을 휘둘렀다.
(겔 35:6, 새번역)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그러므로 내가 내 삶을 두고 맹세한다. 내가 너를 피투성이가 되게 하며, 피 비린내 나는 일이 너를 뒤쫓아 다니게 하겠다. 네가 남 죽이기를 좋아하니, 피 비린내 나는 일이 너를 뒤쫓아 다닐 것이다.
(겔 35:7, 새번역) 내가 세일 산지를 황무지와 폐허로 바꾸어 놓고, 그 곳을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게 하겠다.
(겔 35:8, 새번역) 내가 세일의 모든 산을, 칼에 찔려 죽은 자들로 가득 채워 놓겠다. 네 언덕과 골짜기와 모든 시냇물에는, 칼에 찔려 죽은 자들이 널려 있을 것이다.
(겔 35:9, 새번역) 내가 너를 영영 황무지로 만들어 버리고, 네 성읍들에서 다시는 사람이 살 수 없게 하겠다. 그 때에야 비로소 너희는, 내가 주인 줄 알 것이다.
(겔 35:10, 새번역) 너는, 나 주가 유다와 이스라엘을 돌보는데도 감히 말하기를, 그 두 민족과 그 두 나라가 네 것이 되고 네 소유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
(겔 35:11, 새번역)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그러므로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한다. 네가 그들을 미워하여 분노를 터뜨리고 질투를 한 것과 똑같이, 나도 네게 보복하겠다. 내가 너를 심판할 때에야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 모두 알게 될 것이다.
(겔 35:12, 새번역) 그 때에야 비로소 너는, 내가 주인 줄 알게 될 것이다. 네가 또 이스라엘의 산을 가리켜 말하기를, 저 산들이 황폐해졌으니 너희의 것이 되었다고 말하며 조롱하였지만, 내가 너에게 보복하는 날, 너는 네가 조롱하는 소리를 내가 다 들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겔 35:13, 새번역) 너희가 입을 벌려 나를 거슬러 허풍을 떨고, 나를 거슬러 빈정대는 말을 내가 직접 들었다.
(겔 35:14, 새번역) 그러므로 나 주 하나님이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너를 황폐하게 만들 때에, 온 땅이 기뻐할 것이다.
(겔 35:15, 새번역) 이스라엘 족속의 소유가 황폐하게 되었다고 네가 기뻐했던 것과 똑같이, 나도 너를 그렇게 만들어 놓겠다. 세일 산과 에돔 온 땅아, 네가 황폐하게 될 것이다. 그 때에야 비로소 그들이, 내가 주인 줄 알 것이다.'"
성경말씀에 에서는 태어나기도 전에 미움 받기로 작정이 되었고
야곱은 사랑받기로 작정이 되었다 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믿는 자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는 점입니다
이것을 오늘 본문에 나오는 표현으로 예언 곧 언약이자 약속입니다
안 믿는다는 것은 무시한다는 거죠
그러면 또 이렇게 우기지요 앞으로 무시 안하겠다 라고
안됩니다 계속 무시하면서 살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예언이란 흔히 종교에서 말하는 예언자의 예언으로 보는데 그것은 점쟁이들의 점과 같은 겁니다
그것을 인간들은 찾습니다 찾는다는 말은 자기 유익이 될까봐 그 기대치로 찾는다는 거죠
즉 이 기대치란 결국 돈이 됩니다
돈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자기를 가치있게 만들어주는 정보가 되는 거죠
그 마당의 점 토정비결 이것들이 오늘날 데이터 정보입니다
이 빅데이타를 손에 쥐는 자가 바로 권력을 쥔 자 인거지요
흔히 하나님은 인권을 무시하지 않는다 라고 우기는 자들 특히 교회 다니는 자들 대부분이 뭐라고 우기느냐 하며는
성경은 십자가만 있는게 아니라 부활도 있으니가 너무 한 쪽으로만 파고들면 안된다 라고 합니다
그렇게되면 십자가만 알기로 했다 라는 바울의 복음은 뭐가 되느냐 말이지요
그래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물에 물 탄 듯이 하는 중용을 지키니까
답답한 자들은 또 이단에 빠지기 쉬운데
그것을 또 내 몰라라 하는 식의 물에 물 탄 듯 하는 놈들이 대부분이다 말이죠
뭐 할 짓이 없어서 중용 그 딴거 몰라서 바울이 증거했겠냐 말이죠
자신이 바로 가말리엘 문하로써 물에 물 탄 것 주장하는 그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인데 말이죠
지도 천국 안가고 남도 천국 못 가도록 딴 것에 정신 팔리도록 하도록 말이지요
그거 도사요 그것에 달인이엿던 바울인데 말이지요
아무튼 그런 종교의 달인이였던 예언된 약속의 말씀의 달인이였던 바울 조차도
점쟁이 찾듯이 예언을 지켜왔지
약속의 말씀을 단 한번도 안 적이 없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을 몰라서입니다
왜 에돔 곧 에서의 후손들은 왜 무조건 이유 없이 지옥에 가야하고
그 이유를 뒤에서 덧 붙이기를
왜 형 에서는 이유 없이 동생 야곱을 미워 죽이고픈 마음으로 평생을 살도록 되어 있느냐 라는 겁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가룟유다에게 너가 맡을 일을 해야지 하듯이 말이지요
아 그러면 가룟유다는 어떤 가능성도 주어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것을 안 놈이 바로 어준이입니다
그래서 자기도 가룟유다처럼 살기로 했다 라는 겁니다
그카면서 선각자 행동처럼 예수 따라하기 했던 니체처럼 구원자 따라하기를 하고 있더라 말이죠
그런 구원자로부터 구원을 구원하시는 줄도 모르고 말이죠
오늘 본문처럼 말하면
그런 예언자들로부터 예언을 구출하는 줄도 모르고 말이죠
그 놈이 마치 대표 인냥 주장하지만
그 놈 이전에 다들 했던 인간의 공동적인 욕망입니다
즉 욕망이란 말은 결핍을 뭔가 대신 자꾸 채워넣을려고 한다는 거죠
그 대신 채운 것이 바로 니체가 따라하기한 예수 따라 하기입니다 흉내내기 말이죠
그것을 마귀들이 도와주고 있습니다 이미 장악했어도 말이죠
그래서 살생부 명단에 최 우선 순위로 넣는 거죠
그 사탄의 깊이를 모르는 놈들은 오늘 본문처럼 하나님의 길이를 모르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모르는 저 어중이 패거리들과 같은 겁니다
누구신지도 모르니까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신 분 또한 누구인지 모르는 겁니다
보편적 지식으로 대충 대충 얕게 하나님을 아는 거지요
오늘 본문은 왜 하나님이 에돔 족속을 미워하시는지
그들의 땅인 세일산을 왜 저주하시는지에 대한 이유를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 조차도 비유 비밀 예언이기에
대부분 모르도록 하시는 이유입니다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 수 없도록 하셨다 말이죠
아니 알려주고 있는데도 우리응 모른다?
오늘 본문 그대로 일반인이 즉 교인들이 보기에 또는 가르치는 목사가 보기에도
아 이래서 에돔은 저주를 받는구나 라는 식으로
우리가 예상하는 그런 식의 해석이면 다 틀렸다 라는 거죠
이유가 없고 무조건 미움인데
오늘 본문은
이유가 있고
유 조건으로써 미움한다는 선악의 해석으로 빠져 버린다 라는 겁니다
그런 해석이 일반화 습관화 즉 습관화 되었다 라는 말은
자기 신체화 되었다 라는 겁니다
그런 해석은 내 몸이 적응을 합니다
거부 반응이 전혀 없습니다
만약 내 몸이 적응치 못하고 격렬하게 거부반응으로 거세게 반대한다면
그것은 제대로 된 해석이다는 거죠
아니 그런 해석이 나올 리가 있겠습니까
내가 보는 내 눈으로 보는 성경책인데 그럴 리가 있겠냐 말이죠
있습니다
만약 성경 자체가 눈으로써 나를 뚫어지게 본다면
그 앞에서 두려움과 공포로 바짝 엎드려서
오늘 본문 말씀이 나를 거꾸로 읽어대기 시작한다면
그 알려주신 해석이 옳았다 라는 겁니다
왜 그런고 하니
그런 식의 시선의 해석은
우리 몸은 기존의 적응된 해석을 붙잡고 있기에
반드시 거부하니까 말이죠
예로 우리는 남을 7번 용서하는 것으로 해석을 종결시켰습니다
해석종결이다 말이죠
7번이 인생의 최대치로 하자 라고 마치 예언처럼 약속이라고 한 듯이 말이죠
그런데 해석 종결이 아니라 꽉 묶어버린 매듭을 아예 풀어버려서
무한대의 용서가 아니면 그거 가짜 용서라고 해 버리는 식의 해석이
나를 뚫어지라고 보는 눈이 새로운 해석으로 다가와서
나의 기존의 해석을 박살날 때
그때 이 해석이 옳았습니다 라고
오늘 본문이 그렇게 알려주시는 방식으로써
이 에돔에 대한 무조건적이고 이유 없는 저주와 미움을
우리 또한 에돔에 속한 자리에서 받도록 하신다는 겁니다
이것을 순순히 반아들이지 못하는 자는
순순히를 이미 기존의 해석만을 순순히 받아들였지
이런 해석은 분명 격력히 반항하도록 되어 있는데
누가 순순히 받아들이겠냐 말이죠
그렇게 되면
내가 에돔의 자리에서 에돔이 받는 저주를 모른채로
그냥 딸랑 야곱의 축복만을 바라는 그 엉터리 약속
약속이란 두 언약으로써
왜 에서는 저주 받고
왜 야곱은 사랑받는지
그 이유 없는 두 언약을 아는 것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인데
오로지 선악의 지식으로만 자신의 하나님이 된 것을 투사한
그런 성경의 보고픈 것만 보고서
사실상 보고픈 것 단 하나도 없어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비밀인데
모조리 그 비유를 제거해 버린 채로 믿을려고 하니
자기 꾀에 자기가 속는 올무가 된 줄로 모르고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자기 꾀 자기 속임수를 믿어서
사실은 개인의 욕망 속임수가 아닌
공동 분모로써의 속임수인 마귀 장난에 말이지요
지 눈을 지가 찌르는 식으로 내버려둔 해석만
그 썩은 동앗줄로만 지옥가더라 말이죠
바로 그런 진노의 그릇을 분명히 해 놓고서
긍휼의 그릇을 새로 창조하시는
이 토기장이의 비밀 비유를
성경 전체로 깔았는데
유대교 아무리 정통이라고 재탕 삼탕 우려먹어도
근처에도 못 간 그 헛된 그림자를 거쳐서
또렷한 개같은 이방인도 너끈히 용서하시는 이 7에 70번의 용서 덕분에
우리는 이유 없이 용서 받는 겁니다
오히려 그 이유를 붙이는 식은
바로 그 행함에서 못 빠져나오도록
그 이유를 뒤에 붙이시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비웃어서 망하도록 하신다 라고 붙이시는 것이지요
오늘 본문을 그것 밖에 못 보도록 말이지요
그래 따지면 안 그러는 인간 없거든요
반드시 비웃도록만 만드시는 겁니다
실제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때에
안 그런 인간들이 없도록
하하하
하하하
성전을 헐고 삼일만이 짓는 자여
왜 너 자신을 구원해 보시지 라고
비웃었거든요
(시 35:21, 개역) 또 저희가 나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고 하하 우리가 목도하였다 하나이다
(시 40:15, 개역) 나를 향하여 하하 하는 자로 자기 수치를 인하여 놀라게 하소서
(겔 36:2, 개역) 주 여호와의 말씀에 대적이 네게 대하여 말하기를 하하 옛적 높은 곳이 우리의 기업이 되었도다 하였느니라
(막 15:29, 공동) 지나가던 사람들이 머리를 흔들며 "하하, 너는 성전을 헐고 사흘 안에 다시 짓는다더니
왜 그렇게 비웃었던 놈들이
교회에서 어떻게 자기 자랑을 할 수가 있는지 원
마치 매력을 발산하는 곳이 교회 무대 스테이지가 되어버렸어요 그래
스타 납시었네 스타 납시었어 스타탄생
천군 천사들이 다 싫어하는 스타 탄생인 육의 자랑거리가 되어버렸어요
죄인 하나 돌아와서 천군천사들이 잔치 벌리는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을 사랑하는 교회는 없더라 말이죠
그저 부자 하나 오면 삼키고
하루살이 거러지 와서 점심식사 축 낼까봐 전전긍긍
실제로 끙끙 앓던을 봤는데 우와 라고 기막혀 했다 말이죠
하나님의 일을 지가 뭐 다 했다는 냥 끙끙 거리는 것 보면 기가찬다 말이죠
지 자랑할때는 좋아라 죽고
무슨 놈의 강도의 소굴이 따로 없더라 말이죠
자 이렇게 진노의 그릇이나 긍휼의 그릇이나
안그러는 인간 없도록
모조리 다 에돔 짓
하하하 성전을 헐고 삼일만이 짖는자여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시지 라고
그 구원의 도성을 빼앗았다고 좋아라 죽는
그 모든 인간의 육체를 십자가에 도로 십자가에 못 박는 그 자리를 보여준다는 것 자체가
오늘 본문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되는 겁니다
성경 박사들인 유대교 지도자들이
오늘 본문을 몰라서 그 짓을 반복할까요?
인간의 시간과 공간은 반복 합니다
흐리는 시간이자 공간은 없다 말이죠
사건의 반복 곧 이동 밖에 없습니다
그 날 때부터 간음죄 살인죄 인구조사죄 반복할 뿐입니다
(가인의 족보인 낳았더라 족보와 죽은 아벨의 족보인 죽었더라 족보의 사건 반복 뿐이다는 겁니다)
그 뫼비우스의 띠처럼 말이지요
잠시 여담으로 뫼비우스 띠와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염언히 다른데도 불구하고 혼용되게 사용됩니다 제가 그래서 늘 헷갈렸습니다
뫼비우스 라는 수학자 19세 근현대 수학자의 이론이고
고르디우스는 고대 왕 프리기아의 왕이다 BC 8세기
그 유명한 그리스 북쪽 마케도니야 왕국의 옆 나라입니다
이 고르디우스가 자신을 왕좌에 앉혀준 소달구지를 신에게 바치면서
신전 기둥과 소달구치 바퀴를 한테 묶어서 도저히 풀지 못하도록 매듭으로 만들었는데
이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를 지배할 왕이 될 것이다 라고 예언했다 라고 합니다
여기도 예언이 나오고
신전기둥이라고 신전이 된 인간의 육체가 나오네요 ㅋㅋㅋ
한마디로 자기를 넘어서는 자만이 신이 선택한 왕인 자기처럼 왕이 된다 뭐 이런 소리인 것이지요
그래서 400년 뒤에 알렉산더 대왕이 칼로 이 매듭을 끊었다 라고 그래서 유명해 졌다 말이죠
이 알렉산더 대왕이 누굽니까
그냥 괜히 나온자가 아니지요 다니엘서 네 신상에 나오는
금신상 바벨론 느부갓네살왕
은신상 메대 파사 고레스
동신상 헬라 제국 알렉산더
철신상 로마 아우구스투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 에게 즉 황제(가이사) 중의 한 명)
자 이렇게 에돔 뿐만 아니라
지옥 가기로 작정이 된 자를
주님께서 토기장이로 정성껏 그들의 역사 곧 시 공간을 차곡 차곡 마련하셨다 라는 겁니다
괜히 썩은 동앗줄을 차곡 차곡 만드신 창조주가 아닌 겁니다
그런 창조주의 일 곧 하나님의 일을 모르게 되면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자가 되는 것이겠지요
십자가켜고 좌회전 하는 그런 좌파도
마귀의 일을 모르니까
철학이랑 신학 특히 십자가를 막 썩어버리는 겁니다
땅끝에서 나오지 못하는 겁니다 어준이 노선을 따르는 자들이다는 거죠
좌파나 우파나 한 패거리입니다
예수님을 죽이는데 있어서
두 원수지간인 유대인과 로마가 함께 손 잡고 예수님을 죽였거든요
괜히 손 잡은게 아니거든요
아무리 원수 지간이어도 말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여전히 그림자를 보고 있기에
실상이 와 버린 입장에서
십자가의 죽음으로 오늘 본문을 재해석 해야 하는 겁니다
예수님의 죽음이라는 실상을 거쳐서
오늘 본문을 보게 되면
어떻게 그림자를 보고서 나온 해석들을 보고서
오히려 그들과의 충돌을 봐야 할 판국이다는 거죠
마치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바울 곧 사울과의 충돌을 격어야 하듯이 말이지요
스데반 집사의 죽음이 되는 것까지도 봐야 한다는 겁니다
오늘 나오는 미움 받기로 작정이 된 에돔의 모습처럼
우리는 남의 불행을 기뻐해서는 안됩니다 그런 해석을 하면 안된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그런 해석 외에는 나올 해석이 없다 말이죠
오히려 그 반대의 해석을 해야 합니다
미움 받을 이유가 없게 만들어도 미움 받을 수 없도록 만드심 말이지요
괜히 이스라엘의 멸망을 그들의 코 앞에서 펼치시는게 아니거든요
그게 미움 받기로 작정이 된 자들이다는 겁니다
자 그렇다면 안 그러는 자가 없기에
우리도 역시나 에돔 맞네요 라고 나와야지요
바로 그겁니다
기존의 것으로는 갈 수가 없다 라는 겁니다
새로 창조함 받지 않으면 안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새로 창조 받을려면 기존의 것이 왜 심판 받아야 마땅한 지를 알아야 하는 거죠
그리고 기존의 것은 아무리 회개 한다 라고 해도
안된다 라는 겁니다
회개 조차도 인간 쪽에서 마련할 수가 없는 것인데
기여이 다윗은 회개 눈물 금식 기도로 접촉을 시도하다가 탈탈탈 털리거든요
창조주에게 맡기지 못한 다는 것 전적으로 못한 다는 그 자체가
기존의 것에 해당되는 심판 받아 마땅한 모습이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이유 없이 사랑하심 조차도
이스라엘은 못 받아들이고
자신들이 어떻게 해서든 접촉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주님은 알짤 없이 다 탈탈탈 털어버리신다는 점에서
약속을 약속 되게
예언을 예언 되게
말씀을 말씀 되게
언약을 언약 되게 하시는 겁니다
인간이 손 못대도록 말이지요
그의 공로로만
반드시 지옥가는 이유 없이 말이죠
그리고 반드시 천국 가는 자 이유 없이 말이죠
이것이 바로 죄가 먼저 인간 보다 먼저 있었던 그 죄가 사망이 왕 노릇 하는 가운데서
은혜가 왕 노릇 하심을 보여주시는 은혜의 세계입니다
그러니 오늘 에돔의 무조건 적인 저주 약속 조차도
은혜를 은혜 답게 하기 위한 조치임을 못 보는 자는
또 행함을 가지고 오지 않으면
그 빵구멍 난 결핍을 채울 길이 없는 겁니다
공백 그대로
찢겨짐 그대로 오는 죄인을 환자를 부르러 오셨지
그 공백을 말끔히 꽉꽉 채운
부자청년
어릴적부터 율법 다 지켰다 라는 그 부자는
천국 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 구멍 통과하는 것 보다 불가능하다 라고
또 용민이가 생각나는데 원문에는 안 그렇다 라고 그런거 따질게 아니라
말하고자 하는 취지나 제대로 파악하라 말이지요
낙타나 선박용 닻 내릴때의 굵은 밧줄이나
그게 그거이지 불가능하다는 뜻인데
성령으로 거듭나라 라는 말을 어머니 뱃속이나 용광로 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기나 그게 그거인
불가능하다는 뜻인데 뭘 원문 따지고 말이지요
원문 따져서 의미가 활 달라지는 그런 거면 또 몰라
그게 그거인 것으로 누가 더 옳냐 라고 따진다는 자체가
좌파들의 한심한 짓거리 아닙니까
누가 더 깨끗한가 그것 때문에 좌파는 망하도록 되어 있거든요
문빠 개딸 왜 나누냐 말이죠 그카이 극우들이랑 한 패거리 맞지 뭐냐 말이죠
도올을 아주 문재앙이를 못 죽여서 안달이더라 말이죠
이 놈은 왜 남의 민족의 신을 왜 믿냐 라고 지랄 지랄 그런 지랄도 없을 정도로 지랄해놓고서
자기는 예수 믿는데 ㅋㅋㅋㅋㅋ
또 주기자를 자기들끼리 서로 죽여요 글쎄 ㅋㅋㅋㅋ
하여튼 좌빠들 보면 극우보다 더 한심한 놈들이다 말이죠
다양성을 허용하면 마치 더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다 라고
그런 것이 극우와의 차별점이다 라고 백날 우겨도
도긴개긴
둘 다 땅끝에서 예수님의 죽음인 절대저주 속에서 안 나온 자들이기에
새 것이 아닌
이미 지난 간
삭제될 자들이다는 겁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을 보고 좋아라 비웃는
그 비웃음 때문에 지옥가는게 아니라
그것이 바로 지옥 갈 자들의 해석이고요
지옥 가기로 작정이 되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멸망을 아무리 봐도 사생아가 아닌 아버지가 있는 징계의 매로 볼 줄 모르도록 태어났기에
그런 해석으로 비웃게끔 되어 있다 라는 겁니다
주객이 반대입니다
이스라엘도 주객을 반대로 해석하다가
주님에게 주도권이 넘어 감을 당하니까 나음을 입게 되었지
주도권이 넘어감을 당하지 않는 이스라엘은 에돔과 맹 똑같이 버린 사새아 인거지요
이런 이스라엘은 에돔 보다 더 억울하겠지요
이스라엘 속에 태어났어도 에돔의 생각으로만 평생 살았으니 말이지요
이유 없이 사랑한 이스라엘의 특이성을 단 한번도 못 느끼고 지옥가듯이
그런 유대인들이 어디 한 둘입니까
99. 9999999999999999999999999999 프로가 되니
이런 원가지도 아끼지 않고 내버려 두시는데
접붙인 당한 이방인 죽은 가지는 오죽 하시겠습니까
더더더 구구 점 구구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더 심하지요
그 정도로 불가능한 구원을
너무 남발하다 보니
종교 장사가 된 거죠
그카이 에돔처럼 지옥 가는 이유도 모르고 지옥 가는 자들만이
교회가 양산해 내는 거지요
교회 다니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강도의 소굴이 구구점 ㅋㅋㅋㅋ
그 만큼 낙타가 바늘 구멍 통과하는 것 보다 어려운 불가능한 것이 구원이다는 겁니다
사람의 구원은 헛됨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봐야 한다 말이죠
단순히 남의 아픔을 보고 좋아 죽어서 기뻐하다가 저주 받는 그런 예언
그런 점쟁이의 예언 아니다는 겁니다
미움 받기로 작정이 되었기에
그런 비웃음으로 살도록 되어 있다는
이게 더 심한 저주이다는 거지요
자 그렇다면 그 반대인 사랑 받기로 작정이 된자
소위 축복 받은 자는 다음 시간에 할 것인데
우리가 아는 그런 축복 아니다는 겁니다
그것은 이유 있는 축복이요
결핍의 공백을 채우는 식의 축복이니
오히려 그게 저주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했던 가짜 이스라엘 혈통 육으로 난 자들의 모습이였습니다
부자청년이 그 대표성이다 말이죠
이유 없는 사랑 때문에
이스라엘은 징계의 매를 맞는
주님의 고난에 참예된 자로 태어난 겁니다
기도하는 자가 아닌
기도의 사람으러 태어난 것처럼
행함이라는 이전 것으로 태어난 자가 아닌
은혜라는 새로움으로 새걱으로 태어난 자 이다는 것이지요
그카이 눈에 때려죽어도 기도하는 모습 단 한 번도 보인적이 없어도
누가 끊임없이 그 그녀에게 말을 걸어온다면
그 사람은 기도의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지
기도하기 위해서 태어난 자가 아니다 라는 겁니다
완료형 이지
미완료가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회개 눈물 금식 기도로
새언약에 들어올수 없습니다
외부의 꺽으신 뼈의 숙제로만
이 언약의 세계에
약속의 세계에
예언의 세계에 들아오는 겁니다
기록된 말씀의 세계
곧
(히 4:12, 개역)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그 날선 검 앞에
도리어 찔러 쭈개어짐을 당하는 자가
바로 이스라엘의 특이성이고
그것을 보고 비웃는 자들이
미움 받기로 작정이 된
비유를 못 알아보는 자들인
에돔 족속입니다
이 두언약을 완성하러 오신 분이
천국과 지옥을 채우시는 분 이신
나 여호와를 알지라 라고 선언하신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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