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61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롬 10,14-15).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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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롬 10,14-15)
2025. 7. 27. 

차별이 없는 심판 속의 구원과 주의 이름 (롬 10, 9-13)
로마서 2022 2025. 7. 5. 14:57
22-060 모든 사람의 주가 되시는 차별이 없는 구원과 이름 (롬 10, 9-13)

〈로마서 10,14-15, 개역한글, 신약성경 253쪽, 찬송가 078장 새 478 참 아름다와라, 가스펠; 주 다스리시네 (복음들고 산을 넘는 자들의 발길) 〉

〈찬송가 078장 참 아름다와라, 새찬송가 478장〉

찬송가 078장 참 아름다와라, 새찬송가 478장.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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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 아름다와라 주님의 세계는 , 저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 백합화 
   주 찬송하는 듯 저 맑은 새소리 , 내 아버지의 지으신 그 솜씨 깊도다

2. 참 아름다와라 주님의 세계는 , 저 아침해와 저녁놀 밤하늘 빛난 별 
   망망한 바다와 늘 푸른 봉우리 , 다 주 하나님 영광을 잘 드러내도다

3. 참 아름다와라 주님의 세계는 , 저 산에 부는 바람과 잔잔한 시냇물 
   그 소리 가운데 주 음성들리니 , 주 하나님 큰 뜻을 내 알듯하도다.  아멘


〈찬송가 235장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새찬송가 200장〉 

찬송가 235장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새찬송가 200장.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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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생명의 말씀은, 귀한 그 말씀 진실로 생명의 말씀이 
   나의 길과 믿음 밝히 보여 주니,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샘이로다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샘이로다

2. 귀한 그 말씀 내 노래 제목이 되도다, 모든 사람에 복주는 생명의 말씀을 
   값도 없이 받아 생명길을 가니,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샘이로다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샘이로다

3. 널리 울리고 퍼지는 생명의 말씀은, 맘에 용서와 평안을 골고루 주나니 
   다만 예수 말씀 들어 복을 받네,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샘이로다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샘이로다  아멘


〈가스펠; 주 다스리시네 (복음들고 산을 넘는 자들의 발길) No.1383 찬미예수 2000〉

가스펠; 주 다스리시네 (복음들고 산을 넘는 자들의 발길) No.1383 찬미예수 2000.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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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펠; 주 다스리시네 (복음들고 산을 넘는 자들의 발길) No.1383.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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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들고 산을 넘는 자들의 발길 아름답고도 아름답도다
평화 전하며 복된 소식을 외치네 주 다스리시네
주 다스리시네 주 다스리시네 주 다스리시네 주 다스리시네

(사 52:7, 개역)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가스펠;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No.1614 찬미예수 2000〉

가스펠;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No.1614 찬미예수 2000.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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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펠;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No.1614 .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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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주님께서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우리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주님께서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딤후 1:14, 개역)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로마서 10,14-15, 개역한글, 신약성경 253쪽〉

(롬 10:13, 개역)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롬 10:14, 개역)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롬 10:15, 개역)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롬 10:13, 새번역)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 ㉧욜 2:32
(롬 10:14, 새번역)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들이 믿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부를 수 있겠습니까? 또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롬 10:15, 새번역) 보내심을 받지 않았는데,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 기록한 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걸음이 얼마나 아름다우냐!" 한 것과 같습니다. / ㉨사 52:7

(욜 2:23, 개역)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
(욜 2:24, 개역)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
(욜 2:25, 개역)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늣과 황충과 팟종이의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주리니
(욜 2:26, 개역)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를 기이히 대접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영히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욜 2:27, 개역)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영히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욜 2:28, 개역)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욜 2:29, 개역)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욜 2:30, 개역)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욜 2:31, 개역)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욜 2:32, 개역)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출애굽 구원 사건을 다시 재현하시는 그 주의 이름
주님 혼자 기뻐하시고 주님 혼자 아름답다 흠모 흠향하신다 우리는 냄새를 맡자마자 토하고 기침하고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인데 죄가 싹 다 타는 그 냄새를 흠향하심


신랑과 신부의 만남 그리고 결혼식 계시록의 아름다움의 극치

(사 52:7, 개역)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사 52:1, 개역)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입을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이제부터 할례받지 않은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니라
(사 52:2, 개역) 너는 티끌을 떨어버릴지어다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보좌에 앉을지어다 사로잡힌 딸 시온이여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
(사 52:3, 개역)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값 없이 팔렸으니 돈 없이 속량되리라
(사 52:4, 개역)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이왕에 애굽에 내려가서 거기 우거하였었고 앗수르인은 공연히 그들을 압박하였도다
(사 52:5, 개역)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까닭없이 잡혀갔으니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할꼬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들을 관할하는 자들이 떠들며 내 이름을 항상 종일 더럽히도다
(사 52:6, 개역) 그러므로 내 백성은 내 이름을 알리라 그러므로 그 날에는 그들이 이 말을 하는 자가 나인 줄 알리라 곧 내니라
(사 52:7, 개역)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사 52:8, 개역) 들을지어다 너의 파수꾼들의 소리로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일제히 노래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에 그들의 눈이 마주 봄이로다
(사 52:9, 개역) 너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기쁜 소리를 발하여 함께 노래할지어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구속하셨음이라
(사 52:10, 개역) 여호와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모든 땅 끝까지도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사 52:11, 개역) 너희는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그 가운데서 나올지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여 스스로 정결케 할지어다
(사 52:12, 개역)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 행하시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희 뒤에 호위하시리니 너희가 황급히 나오지 아니하며 도망하여 행하지 아니하리라
(사 52:13, 개역)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사 52:14, 개역) 이왕에는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으므로 무리가 그를 보고 놀랐거니와
(사 52:15, 개역) 후에는 그가 열방을 놀랠 것이며 열왕은 그를 인하여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전파되지 않은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 하시니라


이 출애굽 사건 곧 구원 사건 탈출사건의 재현 때문에
사도들은 매일 매일 죽음에 넘겨지움을 당하게 된다 왜? 아름다움을 결혼을 한 몸 곧 떠나라를 증거하기 때문에 마귀는 못 탈출 못 구원 되게 하기 위해서 아름다운 발을 증인을 성령 새영 부음을 방해하는 서로의 소욕을 못하게 하는 주의 이름이 애굽의 팔을 동원 시켜서 서로의 소욕을 못 하도록 하기 위해 결혼 한 몸 못 되도록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하는 신랑의 피옷 가려주시는 성령을 훼방하고자

(딤후 1:14, 개역)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사 52:1, 개역)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입을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이제부터 할례받지 않은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니라

(딤후 1:6, 개역)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딤후 1:7, 개역)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딤후 1:8, 개역)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딤후 1:9, 개역)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딤후 1:10, 개역)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딤후 1:11, 개역)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딤후 1:12, 개역)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딤후 1:13, 개역)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딤후 1:14, 개역)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딤후 1:15, 개역)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 부겔로와 허모게네가 있느니라
(딤후 1:16, 개역) 원컨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저가 나를 자주 유쾌케 하고 나의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 아니하여
(딤후 1:17, 개역)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 만났느니라
(딤후 1:18, 개역) (원컨대 주께서 저로 하여금 그 날에 주의 긍휼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또 저가 에베소에서 얼마큼 나를 섬긴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

(딤전 6:20, 개역) 디모데야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고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허한 말과 변론을 피하라
(딤전 6:21, 개역) 이것을 좇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딤전 6:10, 개역)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 6:11, 개역)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딤전 6:12, 개역)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딤전 6:13, 개역)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거로 증거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딤전 6:14, 개역)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딤전 6:15, 개역)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딤전 6:16, 개역)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아멘


현장에서 간음한 여인에게 긍휼 곧 아름다움을 베푸실 자 즉 수치를 가려주실자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산성되신 나의 본래 남편
모든 허물을 덮어주실자는 나를 제대로 심판하시는 심판 주의 이름
많이 탕감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고 우물가의 여인이 나의 죄를 제대로 치료하신 선지자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발이 나타났도다
발등상에 모든 원수 모든 죄를 멸하시는 사망권세를 이기시는 기쁜소식이 덮쳐졌도다

난 포로 된 적 없는데 나는 아브라함 자손인데 라는 자에게는 전혀 쓸모없는 주의 이름 신랑 이름 피신랑 이름 당신은 어쩔수 없는 피 남편 이시군요 라는 주의 이름 아름다운 이름

다들 아름다운 모양 없다 싫어버린바 되어 고개를 돌려 외면하는 하는 그 이름

(나 1:15, 개역) 볼지어다 아름다운 소식을 보하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 유다야 네 절기를 지키고 네 서원을 갚을지어다 악인이 진멸되었으니 그가 다시는 네 가운데로 통행하지 아니하리로다

(나 1:7, 개역)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의뢰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나 1:8, 개역) 그가 범람한 물로 그곳을 진멸하시고 자기 대적들을 흑암으로 쫓아내시리라
(나 1:9, 개역) 너희가 여호와를 대하여 무엇을 꾀하느냐 그가 온전히 멸하시리니 재난이 다시 일어나지 아니하리라
(나 1:10, 개역) 가시덤불 같이 엉크러졌고 술을 마신 것 같이 취한 그들이 마른 지푸라기 같이 다 탈 것이어늘
(나 1:11, 개역) 여호와께 악을 꾀하는 한 사람이 너희 중에서 나와서 사특한 것을 권하는도다
(나 1:12, 개역)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비록 강장하고 중다할지라도 반드시 멸절을 당하리니 그가 없어지리라 내가 전에는 너를 괴롭게 하였으나 다시는 너를 괴롭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나 1:13, 개역) 이제 네게 지운 그의 멍에를 내가 깨뜨리고 너의 결박을 끊으리라
(나 1:14, 개역) 나 여호와가 네게 대하여 명하였나니 네 이름이 다시는 전파되지 않을 것이라 내가 네 신들의 집에서 새긴 우상과 부은 우상을 멸절하며 네 무덤을 예비하리니 이는 네가 비루함이니라
(나 1:15, 개역) 볼지어다 아름다운 소식을 보하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 유다야 네 절기를 지키고 네 서원을 갚을지어다 악인이 진멸되었으니 그가 다시는 네 가운데로 통행하지 아니하리로다

본향의 본래 남편의 모습

안 믿겨지고 안 아름담고 안 들을려고하고 안 부르짖을 정도로 귀히 여기지 않음

(사 53:1, 개역)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사 53:2, 개역)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사 53:3, 개역)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사 53:4, 개역)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사 53:5, 개역)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사 53:6, 개역)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 53:7, 개역)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사 53:8, 개역)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사 53:9, 개역)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사 53:10, 개역)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사 53:11, 개역)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사 53:12, 개역)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 라고 했을때에
주 주 주 라고 불러 주면 구원 받겠네 라고 비꼬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교회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말이죠

그럼 천주교처럼 영세를 도 따로 받아야 한다 라는 그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가? 그것도 아닙니다 주의 이름 부르는 것 외에 또 다른 조건이 생긴다 라는 것은
결국 종교 장사 쪽으로 빠진다는 것이겠죠
세례요한의 세례 조차도 세례요한은 무의미 하다 라고 했고
바울 본인의 세례도 무의미 하다 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 무의미한 것과 대조해서 나온 것이 주의 이름이니
자기 이름을 염두한 것이면 모두다 아닌 것입니다

그러니 인간이 자기 구원을 염두해서 주의 이름을 부른다 라는 것은
영세를 또 따로 받아야 한다 라는 조건 갖추기와 뭐가 다르겠습니까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무의미 한데
바울파 게바파 아볼로파 그리스도파 로 파당 짖는자는 자체가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무의미한 헛짓을 한 것이겠죠

그 파당 속에서 누가 더 낫냐 라는 짓 할 꺼 뻔한데
그게 사랑이 할 짓이냐 말이죠

그러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른다 라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많이 탕감 받은 자 만이 부를수 있는 것이지
사랑도 받지 않은 자가 과연 주의 이름을 부르겠습니까?
아니면 천주교처럼 영세를 따로 받는 조건을 갖추는
주의 이름이 졸지에 브랜드 상표가 되니까
따로 회원 가입을 해야 회원에게만 드리는 특별혜택을 받을 수 잇다 라고 종교사업을 하는 것이냐 말이죠
영세가 낮선 용어라 뭔가 싶어 봤는데 세례를 말합니다 영적으로 새로 태어났다 라는 세례 말이죠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이미 새로 태어났기에 엄마 아빠 하는 것인데
아빠의 자식이 될려면 교인등록표를 작성하라 라는 겁니다
이게 말이 되냐 말이죠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보내심을 받고 누가? 복음을 전하는 자 말이죠
그 보내심을 받은 자 로부터 복음을 듣고

그리고 믿고 그 믿음으로 부르짖게 되는 겁니다
보내심 들음 믿음 부르짖음
이렇게 주의 이름을 부르짖게 되지

여기에 인간의 숙제인 행함이 개입이 된 것이 하나도 없는데
내가 주 라고 불러주면 구원 얻겠네 가 될 수가 없는 거지요

예로 선지자는 딱 한 사람 곧 이스라엘 전체도 아니고 이스라엘 과부도 아니고
이방인 전체도 아니도 이방인 많은 과부도 아닌 딱 한 사람 사렙다 과부에게만 보내심을 받았다 말이죠 엘리야가 말이죠
엘리사는 이스라엘 전체도 아니고 이스라엘 많은 문둥병자도 아니고 이방인 전체도 아니고]이방인 많은 문둥병자도 아닌 딱 한 사람 문둥병자 나아만 장군에게만 보내심을 받았다 말이죠

그럼 그 사람만 듣도록 되어 있습니다

보내심 → 들음 → 믿음 → 부르짖음 

듣고 난 뒤에 선택권이 있어서 믿고 아니고가 안되는 겁니다
들은 자는 무조건 믿도록 되어 있습니다
또 믿은 자는 성령이 임했기에 저절로 주의 이름을 부르짖도록 되어 있지요
즉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말은 이제 더 이상
자기 이름을 위하여 사는 우상숭배에서 벗어났다 라는 겁니다

이것은 세상사람들이 자기 이름을 위하여 사는 우상숭배의 삶과 반대되는 삶으로써
자유로운 선택권에 따른 것이 아니다 라는 겁니다

음 그래 믿어줄게 라는 마치 인간에게 선택권이 있는냥 되는게 아니다 라는 겁니다

이것은 보내심을 받은 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요나 라는 선지자는 자신이 이스라엘 선지자 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주의 이름 부르도록 만들고자
이스라엘을 돌이켜 회개케 만들고자 하는 마음 뿐이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을 회개케 하는게 아니라
니느웨 백성 저 더러운 개같은 이방인을 돌이켜 회개케 해는 선지자 곧 보내심을 받은 자로 세워지니까

거기에 반발하는 것으로 출발하는 것이 요나서입니다

결국 요나 본인도 보내심을 받은 선지자로써 자기 이름을 위하여 보내심을 받는 일에
니느웨 백성은 어차피 멸망할 자이니까 퍼뜩 망해뿌라 라고
삼일 길을 하루 만에 돌아버리는데 어라 멸망치 않고 도리어 회개를 하는 겁니다

일부러 보내심을 받지 않았다 나 요나는 하나님이 시키니까 억지로 하는 거다 나는
에라이 너희는 어차피 망하니까 입 아파서 난 안 보내심을 받은거로 쳐 다오
그리고 들려줘라 라고 했는데 홋 듣고 깨달아 고침을 받으면 안되니까

무슨 소리인줄 모르게 으으으으으으 라고 했으니
어차피 똑바로 들어도 너희들은 어치피 모르니까 그냥 망했뿌라 라고

무슨 말인지 모르게 옹알이 하듯이 으으응 라고 들려줬는데

어라 듣고 믿어버랴서 회개를 하면서 주의 이름을 부르더라 말이죠

이게 오늘 본문 보내심 → 들음 → 믿음 → 부르짖음을 통해서 누구든지 주이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언을 얻는다 라는 말씀이 이루어지는 상황이 되는 겁니다

여기에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길인 선지자 본인이 아름답지 않다 라고 반발하면서 삐지고 차라리 날 죽이라 라고 대들고 있습니다

아무리 봐도 안 아름답거든요

적어도 아름답다 라는 숭고 거룩함이 될려면
내가 그 거룩에 동참한 그 행동까지 개입시켜 달라 함에 있어서
주님은 의도적으로 요나를 빼 버리시는 겁니다
그건 혼합물 오예물 찌끄레기 이다 말이죠 왜 썩냐 말이져

엘이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전혀 아름답지 않아서 내 열심히 특심이오니 나만 남았다 라고
다 죽이고 내만 남으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라고 따지는 겁니다

인간이 의미 있는 일을 햇다 라면 의미 있게 되어야 하는데
전햐 반대이 상횡이 되니까 의미 없게 된 것에
하나님 탓으로 돌리는 겁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그 거룩한 일에 내가 동의하겟다고 하는데 왜 저를 빼버릴려거 하십니까
당신 시키는대로 다 했는데

그게 바로 아름답지 않은 죄가 들어간 오예울 혼합물이다 라는 거죠
오히려 용광로에 넣어서 그 혼합물을 분리시키는 것이기에
자신들의 의미 둔 것을 자신들이 아름다움에 동참했다 라고 우기는 그런 모든 일들을
분리 시키는 것이 진짜 아름다움이요 거룩이다 말이죠

아니 너 요나 너 엘리야 나 바물이 십자가 진적 있더냐?
즉 갈기 갈기 찟기는 화목제물이 된 적이 있더냐?
없다 말이죠

없으면 아름다움이 아니다 말이죠
거룩이 아니다 말이죠

그런데 인간의 욕망은 어떻게 해서든 그 아름다움에 가입을 하고 싶은 겁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는 그 아름다움 그 거룩을 껍데기 모양만 갖추는데 멈추는 한계에 부딧히게 될 뿐이지

비로 그 오예물을 걸러내는 용광로 라는 싹다 다 태워버리는 한계성도 모든 허물도 부족함도 의문의 반복도 싹다 다 태워버리는 이 용광로의 능력
곧 경건의 능력을 우리는 자꾸 부인하게 되더라 말이죠
그래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는 그 역설을 격어봐야 진정한

니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물으시는
그 보내심 받은 자를 보게 되고
그 보내심 받은 자의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는 소리가
왜 베드로 너는 나를 세 번 부인하느냐 이 배신자 내가 너를 어떻게 대해줬는데 라는 원망을 들어야 정상인데 완전 반대인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는 그 사랑을 들으니

네 재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더 잘 아십니다 라고

사랑을 졸지에 믿게 되더라 말이죠

그리고 주의 이름을 부르더라 말이죠 즉 주의 이름을 위해 살지
자기 이름을 위하여 살지 않게 되었더라 라는 겁니다

결국 우리는 이 아름다움이 뭔가?를 알려면 아름다움의 안과 아름다운이 아닌 아름다운 밖

결국 거룩 안이 뭐고 거룩 바깥이 뭔가를 알아야 한다 말이죠

이 거룩에 바리새인이 얼마나 지키고 싶었으면 거룩을 지키는데 평생을 걸었다 말이ㅛ
그런데 그들은 아름다우신 에수님 즉 이 말은 아름다움이라는 곧 거룩이지요
그 거룩의 기준 아름다움의 기준이 되시는 예수님으로부터
가장 더러운 마귀 새끼 라고 너희 아비는 마귀다 라고
가장 더러운 자로 취급 당해 버렸다 말이죠

아니 그들의 거룩 지키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로부터 가장 거룩한자 가장 아름다운자 로 공인이 되어버린 자를
예수님은 가장 더러운 자로 취급해 버리니까
결국은 바리새인은 즉 유대인의 대표요 유대교의 대표성들은 예수님을 죽여버렸다 말이죠

거룩의 기준이요
아름다움의 기준을 죽여버렷다 말이죠

이것이 인간의 거룩이요 인간의 아름다움이다 라는 겁니다
아름다움을 죽이는 것이 인간의 아름다움이다 라는 겁니다

예수님은 왜 그들의 외적인 아름다움을 왜 공격하셨고
왜 아름다움이 아닌 처참하게 갈기 갈기 찢겨 죽으셔야만 했느내

예수님의 기준은 딱 하나입니다
너희 바리새인들은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들인 선지자를 죽였다 라는 겁니다

이것은 바리새인 그 개인 개인 하나 하나가 어찌할 수 없는
과거의 일입니다 그것도 400년 중간시대 훨씬 이전에 벌어졌다 말이죠

그래서 만약 그때로 돌아가면 절대로 선지자를 죽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선지자의 무덤을 하얗게 페인트 칠해서
공부하는 학생들 곧 자손들에게 대형박물관 만들어 교육 시키고 있다 라고 말이죠

그런데 이런 성의를 표하고 있어도 예수님은 다짜고짜
바로 그 말을 선지자를 죽인 너희 조상도 똑같은 말을 했다 라고

주님은 개개인의 행동을 따지는게 아니라
너희들은 어쩔수 없는 범죄의 체제 구조 속에서 벗어날려는 마음이 없다 라고
그들의 껍데기 세계를 지적하고 있더라 말이죠

장로의 유전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라고 말이죠

(마 15:2, 개역)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유전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막 7:3, 개역)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이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어 손을 부지런히 씻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막 7:5, 개역)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유전을 준행치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막 7:8, 개역)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갈 1:14, 개역)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골 2:8, 개역)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벧전 1:18, 개역)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결국 아름다움이란 바로 그 껍데기에 시비를 걸고 다리 걸어 실족케 하는

그림자에 대한 실상의 공격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그림자 그만 따르세요 이제는 실상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름다움이요
아름다움은 결국 그 그림자 껍데기에 시비를 걸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왜 허상을 쫓느냐 라고 알려주는 것이 아름다움이 되는 것이지요

이 사랑에 인간은 자신들의 껍데기 외적 아름다움을 사수하고자
처참하게 갈기 갈기 사랑을 찢어 죽여버립니다

아무도 귀히 여기지 못다호고 실어버린바 되게 만들어야 하고?
누가? 자칭 선민 하나님의 백성이 말이죠
우리는 포로 된 적 없는 자유하는 아브라함 자손이라고 하는 자들이 말이죠

흠모할 모양 없도록 만들어야 하고
다들 고개를 돌려 버리도록 얼굴을 새까맣게 병든 자의 모습으로 만들어야

자???들의 그 껍데기 아름다움을 사수 할 수 있게 만들더라 말이죠

그것이 실제로 예루살렘 성전을 사수 할려고
참 성전 되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듯이 말이죠

바로 이것이 거룩이라는 아름다움입니다

인간이 의인이다 건강하다 라고 하나 사실은 병든 모습이라는 그 내막을 까발리는
이 십자가 사건 만이 아름다움이요 진정한 거룩이다 라는 거지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성화론자들은 이 아름다운 소식을 거부하고자
개인의 아름다움 갖추기에 거룩실천을 하는 것에 미쳐버려 빠져나오지 멋하도록
자신들의 욕마에 딱 맞게 거짓선지자들을 영접하고
즉 그 말은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자를 죽여버리고 쫏아내었다 라는 겁니다

보새요 십자가 사건은 개개인의 행동을 지적하는게 아닙니다
사회 전체 구조를 실족케 함으로써 모든 인간들이 이 굴레에서 못 벗어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런 아름다움이 있는데 갈기 갈기 찍져기는 화목제 라는 진짜 거룩이 있는데
개인 숙제로 돌려버리니까 누가 이 전체 흐름을 볼려고 하겠냐 말이죠

사소한 것에 아무 의미 없는 그 무의미한 바풀아 게바파 이런 것들에 누구 이름으로 세레 받았냐 라는 이런 사소한 것들 내 열심히 특심이오니 나만 남았다 라는 이런 것들에 목숨 걸도록 해여

전체 흐름을 못 보게 할 것 아니냐 말이죠

인간 쪽에서 아무리 완벽하게 갖추어도 딱 하나 없는 것
아니 도저히 인간이 할 수 없는

주님이 손수 직접 만드신 이 화목제물에 눈이 못 돌아가도록 만들어야
자기 숙제에 열심
자기 의 쌓기에 열심이어야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신 그 아름다움 사실은 가장 싫어버린바 된 화목제에
눈이 돌아가지 않을 것 아니내 말이죠

세상의 구조 체제게 그렇게 가스라이팅 하는 겁니다
우리는 못 벗어나요

그래서 그것을 깨뜨릴 시비걸고
화평이 아닌 검을 
화목이 아닌 원수 됨을 전하는

이 아름다운 발길이 없으면
우리는 들을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고
부르 짖을 수도 없는 겁니다

그 부르짖음이 배불러 터져서 부르는 주의 이름이 아닙니다

애굽왕 바로왕을 강퍅케 함으로써 비로소 부르는 주의 이름입니다

즉 인간들은 부르고픈 마음이 아예 없는
가스라이팅 당한 입장이다 말이죠

키보드가 감염이 되어버렸으면
외부의 도움을 구할 수가 없어요

외부에서 백심이 와야 구출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 구출자 탈출시키는 자가 주의 이름이니

탈출해야 한다 라는 의식이 없는 자는 주의 이름을 부를수가 없는 거지요

만약 이 땅이 이 애굽이 지옥임을 아는 자는

이 주의 이름을 부르도록 복음을 들고 온 자를 아름답게 보겠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은 자는 유대교 이스라엘 유대인처럼
참선지자를 다 죽여버렸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실상입니다
자기들의 그 더러운 우상의 똥칠을 사수하고자

아름다운 복음을 거부하는 것을
이제 유대교 뿐만 아니라 천주교 기독교 까지 따라하고 있는 겁니다

진작에 종교라는 음녀는 그렇게 하도록 되어 있고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멸망하기 위해서 태어난 애굽왕 바로왕처럼 말이죠

그래서 음녀는 어떻게 해서든 국가 라는 짐승의 등 위에 올라 탈려는
그것을 아름다움이라고 우기면서

복음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예수 니가 뭔데 우리를 포로됨에서 탈출케 하는 자유를 주느냐
우리는 이미 자유한 아브라함 자손인데

그러니 예수님의 아름다운 소식인 복음은 그 기쁜소식 희년은

유대인들에게는 전혀 기쁜소식이 아닙니다 아름답지 않아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인이라는 자 건강하다 라고 하는 자에게는
이 복음 이 기쁜소식 이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은
전혀 아름답지 않고

가는 곳 마다 소동만을 일으키는 말썽쟁이 일 뿐이라서

그 속터지게 만드는 이 말썽쟁이 예수를 갈리 갈리 처럼하게 찢어죽이는

저주 중에 저주인 하나님의 저주인 나무에 달려 죽는 자로 만들어 버리는 겁니다

어떨게 해서든 더럽고
어떻게 해서든 악마로
어떻게 해서든 가장 저주받음으로 몰아가야지만

그래야만 자신들의 아름다운 성전을 유지하게 되니까 말이죠

똥 쳐바르고 온 몸에 백설물을 바르고 하나님께 복 받겠다 라고
내 마음을 밟는다 라는 그 더러운 짓을 계속 유지할 수 있으니까 말이죠

가스펠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라고 행하라 라는 말이 아니라
마음 속에 간직하라 즉 너도 사랑하라 라는 겁니다
너를 많이 탕감한 그 사랑의 용서를 사랑하라 잊지말고 기억하라 마음 속에 간직하라 라고

이것이 디모데 후서 1장 14절에 나오는데
여기서 아름다움이 뭐냐 말이죠

(딤후 1:14, 개역)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딤후 1:15, 개역)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 부겔로와 허모게네가 있느니라
(딤후 1:16, 개역) 원컨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저가 나를 자주 유쾌케 하고 나의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 아니하여
(딤후 1:17, 개역)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 만났느니라
(딤후 1:18, 개역) (원컨대 주께서 저로 하여금 그 날에 주의 긍휼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또 저가 에베소에서 얼마큼 나를 섬긴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


전체적인 의미에서는 아름다운 소식 곧 복음입니다 그냥 복음이 아니라
모세언약이라는 미완료 또는 의문의 반복이 아니라
세언약인 완료 다 이루심을 말합니다

그런데 디모데서에서 아름답지 않은 일을 언급하면서 아름다운 일을 증거하고 았습니다
즉 위의 구절에 있는데

(딤후 1:11, 개역)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딤후 1:12, 개역)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딤후 1:13, 개역)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복음을 중거하니까 당연히 핍박과 고난이 닥치게 되니
동역자로 활동하던 자들의 배신 곧 바울을 버리는 일이 발생한 겁니다

(딤후 1:15, 개역)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 부겔로와 허모게네가 있느니라

이 핍박과 고난으로 인해 배신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라는 거지요
그 배신자가 바로 동역자 였던 부겔로와 허모게네 이다는 겁니다

대표성이지요

모든 사람이 바울을 버린 가운데 그 대표자를 두 사람 언급했습니다

또 반대로 그 핍박과 고난 가운데 도리어 도와준 자를 반대로 언급합니다

(딤후 1:16, 개역) 원컨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저가 나를 자주 유쾌케 하고 나의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 아니하여
(딤후 1:17, 개역)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 만났느니라
(딤후 1:18, 개역) (원컨대 주께서 저로 하여금 그 날에 주의 긍휼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또 저가 에베소에서 얼마큼 나를 섬긴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

오네시보로 가 핍박받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버림 받은 바울을 부끄러워 하지 않았다 라고 했습니다

자 이렇게 개개인의 배신이냐 아니면 함께 동참이냐를 지금 말하는게 아니라

자 이렇게 두 패로 가르는 것이 아름다움이요 거룩이요 기쁜소식이라는 복음의 속성이다 라는 겁니다

이 부분을 보니 꼭 누가 생각납니까 예수님이 가룟유다로부터 버림을 받잖아요
그런데 베드로한테 세 번까지 부인을 당하시고도 베드로는 또 축복하신다 말이죠

누가 가룟유다가 될지 누가 베드로가 될지
누가 부겔로와 허모게네가 될지
또 누가 오네시보로가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십자가 라는 그 아름다움이 그 다 이루심이 그 긍휼이 여기시는 기쁜소식 다 이루심이라는 희년이

이렇게 두 패로 가르는 그 현장이 바로 아름다움을 볼수 있는 거룩의 임함을 보게 되는 것이지요

볼 줄 알면 복된 눈이겠지요

못 보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우리는 지옥의 몸인 줄 알고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해야 하는 것이

아름다운 복음 앞에 서 있는 우리인데

누가 복음을 귀히 아름답게 보겠습니까

자기를 아름답게 가치 있게 가꾸기 지금 바븐데 누가 십자가를 쳐다보고

누가 믿겠습니까

(사 53:1, 개역)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누가 믿었느뇨

라는 말씀 앞에 우리의 전한 것 이라고 나오잖아요

즉 전하는 자가 있는데 아무도 안 쳐다보고
그가 전하는 것을 아무 의미 없게 만들고자 아무도 안 듣는다 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여호와의 팔 곧 의사의 팔은
이렇게 건강하다 의인이다 나는 아름답다 라는 자들에개

여호와의 팔은 그 구원의 팔
그 의사의 치료의 팔 치료의 수술 칼
그 틸출케 하는 팔은

의미가 없으니까 전혀 아름답지 않은 겁니다

김춘수 꽃 이라는 시가 그런 의미입니다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권력 보다 더 권력적인 숭고함이 바로 아름다움이라고 하더군요 철학에서 말이죠
그래서 미학 미술이 아니라 미학 최고의 숭고함을 찾고자 하는 학문이 미학이라고 합니다

에스더의 아룸다움이 왕의 권력 보다 더 각인 즉 잊혀지지 않는 부르고픈 안 부르짖고는 못 배기는 것이다 그럼 그 에스더의 아름다운은 어디서 왔는가?
죽으면 죽으리라 라는 사랑에서 왔다 라는 겁니다
이 사랑이 남을 살리는 율법의 완성이다 라고 말이죠

꽃 이라는 아름다움은 불러주지 않으면 
너는 너고 나는 나 이다 라는 따로 국밥이지요

주의 살과 피를 먹지 아니하면 나와 상관이 없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 이름을 부르는 순간 졸지에 꽃 즉 잊혀지지 않는
마음 판에 각인이 된 새겨진
홈패임(세례요한의 불도져로 평탄케함 주의 이름 때문에) 
십자가의 흔적 
내가 더 이상 아름다울 필요가 없이 
아름다움이라는 거룩 그 완료가 덮쳐져버림을 당하는 상태

그 카이 베드로가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더 잘 아십니다 라고

더 이상 법의 언어 선악의 언어가 아닌 하라 하지 말라가 아닌
그런 초등학문이 아닌

(골 2:8, 개역)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거 보세요 사람의 유전을 내어 쫓아내잖아요 두려움도 학습 된 겁니다 유전입니다
사랑에서는 이제 안 도망치겠다 라고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라고 하는 겁니다
내가 먼저 주의 이름을 부르는 내 이름의 가치를 높이려고 할때는 도망쳤지만
이미 죽음 두려움이 깔린 상태에서 아무리 신념과 다짐으로 극복할려고 해도 죄의 소원에 탁 걸려 넘어지지만 (요나처럼 엘리야처럼 내 열심히 특심인데 왜 배신하냐 라고 버림받음의 두려움을 깔고 아무리 특심이어도 소용없는 헛 짓 이였지만 사람의 유전이었지만)

주님이 먼저 나의 이름 베드로야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꽃이라고 해 줘 버린 이상
이제 진짜 꽃인 예수님의 그 아름다움이 덮쳐져 버린 이상그가 나를 불러줘 버린 이상 제가 주님을 안 사랑하고는 못 배기는
이 사랑 덕분에 두려움이 후 하고 날라가 버리니까 좌의 소원을 넘어서는
아버지와 아들의 소원 덕분에 부족함이 없게 되는 완료를 누리는 겁니다
두려움의 내막을 모르면 공포와 불안이 오지만 그 두려움의 내막을 알면
사탄의 깊이를 알면 사탄에게 지든 유혹에 넘어가든 죽든지 상관 없이
이미 꽃이라고 불러주신 그 주의 이름 때문에 넉넉히 이미 이겨버린 겁니다
전쟁도 싸움도 하기 전에 말이죠 이 사랑이 나 보다 옳았기에 말이죠

그 사랑의 언어로 한 몸 됨의 증상을 누리게 되는 겁니다

이런 아내 만들기 신부 만들기 인데

인간들의 아름다움은 애굽왕처럼 상대방을 노예로 가정부로 만들지 못하면
그 아름다운 에덴동산 같았었었었었더라 라는 잔칫집을 유지할 수가 없는 겁니다

여성들이 화장품 비빤 것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늙어도 아름다움이 유지가 되지

값싼 저가 제품을 사용하면 언제 그 쭈굴쭈굴한 얼굴을 제대로 펼수가 있겠냐 말ㅇ죠

아름다움을 유지 할 수가 없다 말이죠

그런데 그 아름더움을 유지하는 것이 전체 사회 구조에서
지금도 마찬가지 이지요 어떤 대통령을 뽑아야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품격이 높은 나라가 되느냐
아니면 천박하기 짝이 없는 나라가 되느냐 라고 말이죠

얼굴에 화장하는 그 행동 하나 하나가 그냥 개인적인 일로 벌어지는게 아니라
저 무의식 뒤에서 튀어나오는 배후세계에서 나오는 욕망이다 말이죠

(예를 들어 창세기에 바벨탑을 쌓게 되는 이유가 역청을 통해서 벽돌을 쌓아 높이 올리는 건축술이 발달하게 된다 말이죠 그러면 그 건물이 높아지는 것과
인간 자신의 가치가 높아지는 그 마음의 교만함과 무슨 상관이 있기에
건축물이 높이 쌓여짐과 인간이 높아져 신이 되는 것과 같이 가느냐 말이죠
돈이 많이 모이면 왜 교만해 질까요? 예로 바닷가 모래로 모래성을 쌓으면 어린아이가 갑자기 교만해 질까요? 그런데 어른들은 교만해 지더라 말이죠 의미 없는데 의미를 두니까 말이죠

건물 높아지는 것이랑 인간이 높아지는 것과 도대체 믄 상관이 있는 거죠
그 조그마한 것 까지 캐내어서 자기의 가치를 높이고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 인간이니까
결국 자기는 무조건 이유 없이 선이 되는 것이기에 조그마한 것까지 다 캐내는 겁니다
거기에 걸림돌이고 실족케 하는 것이 십자가라는 지혜 곧 복음 기쁜소식
즉 하나도 안 기쁘고 하나도 아름답지 않은 복음이 되는 겁니다
나를 높이기는커녕 철저하게 곧은 목을 부러뜨려 낮추시고자 하니까 말이죠 그때 아이고 아름답다 라고 하시니까 말이죠

남을 7번 용서하면 그 정도로 겸손해 질줄 알았는데 어라 더더더 교만해 지는 겁니다
테레사가 과연 신이 있기는 있나? 내가 이 정도로 했으면 가난한 자가 줄어들어야 하는데
오히려 더 많이 생가더라 말이죠
그 유명세까지 다 동원해서 교만하지 않게 다 모두다 가난한 자에게 때려부어도
왜 밑빠진 장독대에 물 븟기 밖에 안되는 헛 짓으로 허사롤 만들어 버리지?
신이 있기는 있어????

아무리 해도 멋들어진 구원이 안되는 겁니다
즉 오늘 본문의 주제 아름다움이 안되는 겁니다

오히려 도리어 용서 받아야 하는 7에 70번 용서라는 모욕적인 구원을 받아야 할 판국인데
남 용서 하기 바쁘다 보니 본인이 용서를 받은 적이 없음의 티를 팍팍 내고 죽은 겁니다

실컷 바벨탑 쌓듯 공든탑 쌓듯 내 열심히 특심을 쌓듯 의로움을 쌓듯 마일리지 쌓듯 그렇게 높이고 높이고 높여 놓았는데

주님은 도리어 허물어 뜨리고 오히려 더더더 바닥의 바닥을 파 재끼고 았는 요나의 표적을 펼치니
누가 이 악한 세대 교만한 세대 속에서 요나의 표적을 구하겠느냐 말이죠
늙으면 늙을수록 성 기능이 저하될수록 고층 건물에 집착 하듯이

https://www.huffingtonpost.kr/news/articleView.html?idxno=107465

아름다움에 집착하죠 다메섹에서 커다란 우상을 보고 뿅 가서
우리야 제사장을 시켜 어서 그것을 보고 같이 따라 우상을 지어라 라고

하필이면 그때 상대적인 요나의 표적 바닥을 치게 하는 임마누엘을 구하라
모욕적인 구원을 구하라 라고 하니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 라고 경건의 모양 껍데기로 포장해 버리는
이 사람의 유전 이게 모든 인간에게 퍼져있는 진리이다는 겁니다

유땡민이가 기독교든 천주교든 예수 부인하면 살려준다 라는 과거의 각 나라의 박해사건에서
왜 자기 생명을 그 말도 안되는 신앙에 목숨을 거냐 라고 도저히 이해가 안되어서
그 핑계를 예수님에 대한 적개심을 아예 방송에 표출하던데
살기가 넘치더라 말이죠 멋들어진 삶을 모욕적으로 만든다 라고 ~~ )

그 배후 세계를 파 재끼는 겁니다

사랑의 세계에서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법이라는 가정부 노예의 세계에서 튀어나오는 것인지
혼재되어서 들락날락 오르락 내리락 한다 말이죠

슬롯머신처럼 어디서 멈추는지 알수 없다 말이죠

양쪽 다 격으면서 아 나는 어쩔수 없는 사망의 몸일 수 밖에요
그게 요나가 자기의 아름다움이 박살이 나야 비로서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이 되니까 말이죠

어딜 감히 개인 사적인 선지자가 어디 있느나 말이죠
그것은 십자가 라는 밝히 보이는 또렷하게 아름답게 빛나는 그 앞에
또 흐릿하고 의문의 짝뚱 가짜 아름다움으로 흉내내는 속임수 일 뿐이다 말이죠

뭔가 부족한 냥 또 결핍을 채울려는 하나님께 보일려고 눈 도장 찍을려는 것 밖에 안된다 말이죠

완료 앞에서는 두려움도 없습니다 고난 핍박 우리는 각기 제길로 가는 양 같을 뿐입니다
아예 기대하지 마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심 이라는 완료 앞에
더 이상 나에게 손대면서 결핍을 채울 것이 없는 다 이루심 앞에

백번 천번 만번 도망칠 수밖에 없는 겁쟁이 앞에

사랑은 두려움도 내어 쫓울 정도로 넉넉한 부족함 없음으로 다가오셨다 말이죠

나 혼자이면 절대로 못 넘어서지만

함께 해주시는 그 사랑 앞에서는
그 두려움 그 핍박 그 고난 쳐다볼 겨를이 없습니다

그저 사랑 앞에 무릎 꿇어 경배하기 바쁘니까 말이죠

주님은 우리를 너무 너무 잘 아십니다
세 번 부인해 도망칠 것을

모든 제자들이 뿔뿔히 다 버리고 도망쳤음을
그것을 다 아시고 십자가 지셨습니다

죄를 이기는 것은 우리 몫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입니다

이 십자가가 다 이루심을 우리는
보내심을 받은 자를 통해서 듣게 되고
비로서 꽃이라 라고 부름으로써
그의 아름다운 소식을 내 마음 판에 새기시는 겁니다

어쩔수 없습니다 아무리 도망쳐도 우리는 이 사랑 앞에
모든 허물을 다 덮는 십자가의 피 용서 앞에서 도망칠수 없도록
끝까지 잡혀 올 수밖에 없음을 말이죠

주님은 자신 만만해 하십니다
언제든지 도망쳐 봐라
내가 너를 가만히 내버려 두는지 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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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7 살진 양과 파리한(야윈) 양 사이에 심판하리라 (사다리 걷어차기) (겔 34,17-22)
2025. 8. 3. (7월 25일 녹음)

살진 양과 파리한(야위어 약한) 양 사이에 공의로 심판하리라(두 언약) (사다리 걷어차기)

그 양을 찾을 것이라 (잃어버린 양을 되찾는 목자) (겔 34, 7-16)
에스겔 2019 2025. 7. 13. 05:39
21-096 그 양을 찾을 것이라 (잃어버린 양을 되찾는 목자) (겔 34, 7-16)

〈에스겔 34,17-22, 개역한글, 구약성경 1205쪽, 찬송가 431장 새 549 내 주여 뜻대로, 찬송가 434장 새 384 나의 갈길 나 가도록〉

〈찬송가 431장 내 주여 뜻대로, 새찬송가 549장〉

1.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몸과 영혼을 다 주께드리니 
   이 세상 고락간 주 인도하시고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2.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큰 근심중에도 낙심케마소서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3.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내 모든 일들을 다 주께 맡기고 
   저 천성향하여 고요히 가리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아멘


〈찬송가 434장 나의 갈길 나 가도록, 새찬송가 384장〉 

1.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내 주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 형통하리라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 형통하리라

2.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어려운 일 당할 때도 족한 은혜주시네 
   나는 심히 고단하고 영혼 매우 갈하나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시네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시네

3.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그의 사랑 어찌 큰지 말로 할 수 없도다 
   성령 감화 받은 영혼 하늘 나라 갈때에
   영영 부를 나의 찬송 예수  인도 하셨네 
   영영 부를 나의 찬송 예수  인도 하셨네   아멘


〈찬송가 433장 눈을 들어 산을 보니, 새찬송가 383장〉

1. 눈을 들어 산을 보니 도움 어디서 오나 
   천지 지은 주 여호와 나를 도와 주시네
   너의 발이 실족잖게 주가 깨어지키며 
   택한 백성 항상 지켜 길이 보호하시네

2. 도우시는 하나님이 네게 그늘 되시니 
   낮의 해와 밤의 달이 너를 상치않겠네
   네게 화를 주지않고 혼을 보호하시며 
   너의 출입 지금부터 영영 인도하시리   아멘


〈에스겔 34,17-22, 개역한글, 구약성경 1205쪽〉

(겔 34:17, 개역)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양떼 너희여 내가 양과 양의 사이와 수양과 수염소의 사이에 심판하노라
(겔 34:18, 개역) 너희가 좋은 꼴 먹은 것을 작은 일로 여기느냐 어찌하여 남은 꼴을 발로 밟았느냐 너희가 맑은 물 마신 것을 작은 일로 여기느냐 어찌하여 남은 물을 발로 더럽혔느냐
(겔 34:19, 개역) 나의 양은 너희 발로 밟은 것을 먹으며 너희 발로 더럽힌 것을 마시는도다 하셨느니라
(겔 34:20, 개역)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나 곧 내가 살진 양과 파리한 양 사이에 심판하리라
(겔 34:21, 개역) 너희가 옆구리와 어깨로 밀뜨리고 모든 병든 자를 뿔로 받아 무리로 밖으로 흩어지게 하는도다
(겔 34:22, 개역) 그러므로 내가 내 양떼를 구원하여 그들로 다시는 노략거리가 되지 않게 하고 양과 양 사이에 심판하리라


(겔 34:17, 새번역)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내 양 떼야, 내가 양과 양 사이와, 숫양과 숫염소 사이에서 심판하겠다.
(겔 34:18, 새번역) 살진 양들아, 좋은 초원에서 뜯어 먹는 풀이 만족스럽지 않아서, 먹다 남은 풀을 발로 짓밟느냐? 너희가 마시는 맑은 물이 만족스럽지 않아서, 마시고 남은 물을 발로 더럽혀 놓느냐?
(겔 34:19, 새번역) 내 양 떼는 너희가 짓밟은 풀을 뜯어 먹으며, 너희가 발로 더럽혀 놓은 물을 마시고 있다.
(겔 34:20, 새번역) 그러므로 나 주 하나님이 그들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내가 직접 살진 양과 여윈 양 사이에서 심판하겠다.
(겔 34:21, 새번역) 너희가 병든 것들을 다 옆구리와 어깨로 밀어내고, 너희의 뿔로 받아서, 그것들을 바깥으로 내보내어 흩어지게 하였다.
(겔 34:22, 새번역) 그러므로 내가 내 양 떼를 구해 주어서, 그것들이 다시는 희생을 당하지 않도록 하겠다. 그리고 내가 양과 양 사이에서 심판하겠다.


먼저 문해력이 약한 저 같은 사람들을 위하여 잘 안 쓰는 단어 또는 저처럼 잘 못 이해한 단어의 뜻을 살펴보겠습니다


단어 형용사 파리한, 파리하다 뜻

AI 개요
"파리하다"는 형용사로, 몸이 여위고 핏기가 없어 창백한 모습을 나타냅니다. 주로 얼굴이나 낯빛이 핼쑥하고 혈색이 없어 보이는 상태를 묘사할 때 사용됩니다. 또한, 사업이나 영업 등이 잘 안 되어 한가한 상황을 비유적으로 표현할 때도 사용됩니다. 
자세한 의미:
1. 신체적인 의미:
몹시 여위고 창백한 상태를 나타냅니다. 
얼굴이나 낯빛에서 핏기가 없어 보이고 혈색이 나빠 보이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병을 앓거나 영양 부족 등으로 인해 몸이 쇠약해진 모습을 묘사할 때 사용됩니다. 
2. 비유적인 의미:
영업이나 장사가 잘 안 되어 손님이 뜸한 상황을 비유적으로 표현할 때 사용됩니다. 
"파리 날린다"는 관용구는 손님이나 고객이 없어 한가한 상황을 나타냅니다. 
여기서 파리 날린다 는 형용사가 아니라 곤충 파리를 의미합니다


단원 여윈 뜻 다른 번력은 여윈을 많이 사용했더군요

AI 개요
"여윈"은 "여위다"의 관형사형으로, 몸에 살이 빠져 파리하게 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몸이 홀쭉해지고 야윈 모습을 나타냅니다. 여러 국어 사전과 어학 관련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더 자세히 설명하면, "여위다"는 다음과 같은 뜻으로 사용됩니다:
몸이 파리하게 되다:
살이 빠져서 몸이 가늘고 야위어 보이는 상태를 묘사할 때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오랜 병으로 몸이 여위었다"와 같이 쓸 수 있습니다. 국어사전과 어학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살림살이가 궁핍하다:
가난하여 살림이 넉넉하지 못한 상태를 비유적으로 표현할 때 사용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여윈 살림에 큰일을 치렀다"와 같이 쓸 수 있습니다. 국어사전과 어학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윈"은 "여위다"의 활용형이므로, 문맥에 따라 위와 같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단어 야원 뜻
AI 개요
"야윈"은 몸의 살이 빠져서 파리하게 된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입니다. 즉, 몸이 홀쭉해지고 앙상한 모습을 묘사할 때 사용됩니다


오늘 본문은 마침 우리가 이재명 대통령의 대출규제와 부채탕감을 다루었는데 그 내용과 딱 맞습니다

우리가 불의한 청지기 비유를 통해서 빛의 아들들은 마치 제사장과 레위인처럼
강도만난자를 그냥 스쳐 지나가버립니다 왜냐하면 율법을 지키기 위함인 것이지요
부정한 시체를 만지면 안되니까 가망없는 강도만난자 곧 시체가 될 운명을 모른척 하고 지나쳐버립니다 
반대로 사마리아인은 그 강도만난자를 병원비를 포함해서 다 나을때까지의 여관비 몇 달치 까지 다 대어줍니다

여기서 누가 강도만난자의 진정한 이웃인가? 와 불의한 청지기 라는 이 두 비유를 통해서

율법의 껍데기를 지키는 제사장과 레위인 그리고 불의한 청지기 비유에서는 빛의 아들들의
주인에게 고자질 소위 형사 고소 인거지요

이들은 율법의 속 알맹이 인 사랑 곧 오늘 본문의 정의 공의
정의가 하수 같이 흐르는 이 성경 구절 딴나라당이 심심하면 외치는 구절 아닙니까
주로 세계적 정치 성향이 보수가 기독교적이고
진보가 천주교 성향입니다
미국을 따라 흉내내다 보니 말이죠
유럽은 좌파가 보수적이고
우파가 체제 전복을 꾀하는 진보적인데 더 보수로 향하고파서입니다
이슬람도 비슷합니다 이슬람 시아파 수니파에 대한 강의를 듣다 보니
쉽게 이해할려면 수니파는 순하다 라고 외우면 된다 라고 하더군요
시아파는 단어가 잘 안외워지던데 이들은 체제전복을 추구하는 진보적인데 유럽처럼 더더더 보수의 자리를 차지하고파서 인거지요
순한 수니파는 이슬람 전체 85-90 % 이고 과격한 시아파는 10-15 % 이다 라고 합니다

주로 시아파가 이스라엘과 많이 싸우고 있지요

오늘 본문의 공의는

(암 5:24, 개역) 오직 공법을 물 같이, 정의를 하수 같이 흘릴지로다
(암 5:24, 새번역) 너희는, 다만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여라.
(암 5:24, 공동) 다만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 서로 위하는 마음 개울같이 넘쳐 흐르게 하여라.
(암 5:24, 쉬운) 오직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고 의의 강이 마르지 않게 하여라.
(암 5:24, 킹흠정) 오직 공의를 물같이, 의를 힘찬 시내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암 5:24, 한글킹) 그러나 공의는 물같이, 의는 큰 시내같이 흐를지니라.
(암 5:24, 현대인) 오히려 너희는 공정을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를 마르지 않는 시내처럼 흐르게 하라.
(암 5:24, 현대어) 내가 보고 싶어하는 것은 강물처럼 도도히 흐르는 정의와 격류와 같이 넘쳐 흐르는 선행이다!

딴나라당 놈들이 말하는 그런 공의 그런 정의가 아니라
오늘 제목처럼
심판을 두고 말합니다 사생아에게는 없는 징계의 사랑인거지요

우리가 주로 에스겔에서 살펴본 용광로 즉 불순물 오예물을 썩은 것을 불순물 뺄려고
용광로 속에 집어 넣었다 배는 그런 의미가 공의 이다 라는 겁니다

즉 거룩이지요

아브라함이 목격한 여호와의 불이 제물을 두 조각낸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말이죠
이렇게 두 패로 두 언약 진노의 그릇 긍휼의 그릇으로 나누는
땅의 계집종 언약 하늘의 자유하는 여자 예루살렘 언약으로 나누는 겁니다
이것이 거룩이다 말이죠

성화론자들이 말하는 거룩은 구라 인거지요
정의를 형식적으로 지키는 바리새인과 같다 말이죠
정의 인용하면서도 왜? 성경말씀 권위를 차용하면서도
그 거룩인 공의를 대놓고 더럽히고 있는 놈들이 바리새인이요 성화론자들이다 말이죠
그 이전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말이죠

우리가 호세아를 살펴봤잖아요
포로 잡히기 전 북이스라엘 멸망하기 전 이다 말이죠
멸망 후 에스겔 때 남유다는 그럼 깨끗할려고 할까?
아니지요 오홀라 오홀리바처럼 더더더 남유다는 더 더럽고
남유다는 이 정의를 아예 짖 밟는

자기는 정의 아주 기초적인 것 딱 하나 지켜 놓고
남들은 못 지키도록 사다리를 걷어차는 모습이

포로 후에도
예수님 당시에도 곧 바리새인에게도
그리고 오늘날 성화론자들에게도 여전히 계속해서 나타나는 겁니다
진보도 그런 놈들이고 보수는 더 한 놈들이고 그런 보수를 진보가 더 따라할려고 발악하고 있다 말이죠 이 진보와 보수가 두 언약으로 나타나는게 아니라
이 두 정치집단을 찢어버려야 그 속에서 새로운 집단 오직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가 등장해야 그것을 종말론적이라고 하지요 이미 결과를 누리는 자들
두 언약으로 나타나는 이 공의가 하수 같이 펼쳐지는 겁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더 두 정치집단은 이 결핍을 채울려고 마치 로마집단과 유대인 집단처럼 써로 자리 다툼한다고 싸우도록 되어 있지요 지금 현재에서도 그런 역사는 반복되고 있습니다

로마라는 짐승 국가의 등 위에 올라탈려는 음녀 사탄의 회 유대교처럼 말이죠
유대교는 모든 종교의 대표성이니까 모든 종교는 그래서 돈에 미칠 수밖에 없는 거지요

돈을 사랑하는 자라 바리새인를 정곡으로 예수님께서 찔렀죠 제대로 들통난 겁니다
그리고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 라고 저들의 아비는 마귀다 라고 했씁니다
로마 이 딴나라당 놈들 보다 바리새인 이런 좌파들 진보들을 더 공격하시는 겁니다

민주주의 라는 망상을 심어넣는 바리새인들과 똑같거든요

공의는 망상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마침 부채탕감 사건이 벌어져서 그 부분을 칭찬했지만 그 뒤의 내용은
또 망상으로 빠지는 역시나 의문의 반복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형상 회복이라는 깨어진 도자기 청자를 본드로 붙이겠다 라는 식의 개혁주의자들의 하나님나라 운동과 같습니다

하나님 본인이 분절 곧 쪼개어져서 예수 그리스도에게로만 자신을 복속 시켰다 말이죠
이게 거룩이다 말이죠

아니 성화론자들 중에 자기를 둘로 쪼개어서 율법으로 남을 7번 용서하는 그 자신을 버리고
도리어 7에 70번 용서를 받아야 하는 죄인으로 환자로 의사의 화목제를 외치는 그런 성화론자를 본적 있습니까? 다들 마일리지 쌓기에 미쳐 있어요
그런 자기 의를 쌓는 자가 하나님의 의에 복종 할 리가 있겠냐 말이죠
하나님 본인이 하나님의 의인 이 공의에 이 정의에 복종하셨다 말이죠

이게 십자가 곧 공의의 완성입니다

결국 공의 정의가 완성할려면
세상에서 말하는 정의는 바리새인 껍데기 적이라 더더더 위선적일 뿐입니다
지도 공의에 안 들어가고 남도 공의에 못 들어가도록 하는
딴나라당 놈들 정의가 하수 같이 라고 심심하면 외치는 그런 식입니다
민주당 놈들은 더 심하게 아예 망상을 전체적으로 심고자 자신들이 무장을 하고 말이죠

결국 성령이 이 공의를 직접 실행해야 한다는 말은 종말적이다 즉 결과로 미래완성으로
과거까지 삭제를 해야 한다 라는 식입니다

부채 탕감처럼 저들의 죄악을 삭제까지 해야 하는 것이 공의 이다 말이죠
그러면 자기자신이 더러워 져야 하는데 누가 하겠습니까

디들 강도 만난자를 거룩을 실천해야 하는 제사장 레위인이 모른척 피해 갔다 라는 말은
그 어떤 인간도 할 수 없다 라는 겁니다

참고로 나쁜 제사장과 레위인 비유 라고 안 한 이유는여전히 이 정의로 공의로 종말적으로 해서 두 언약으로 두 패로 갈라내시고 있다 라는 점에서갑자기 궁긍해서 이 질문을 했는데 그냥 참고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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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말: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 에서 성경은 반대로 선한 사마리아 인데
왜 제목을 저렇게 했는가?

ChatGPT의 말: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이라는 책에서 "나쁜 사마리아인"이라는 표현은 성경의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에서 차용된 것이지만, 그 의미는 반대로 사용됩니다. 성경의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는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외면하지 않고 도와주는 선한 사람을 뜻하죠. 하지만 장하준은 그 반대의 의미로 이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장하준의 책 제목에서 "나쁜 사마리아인"은 주로 서구의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들에 대해 행하는 경제적, 정치적 착취를 지칭하는데 사용됩니다. 서구 국가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며 개발도상국들에게 "개발"의 길을 제시하지만, 그 방법은 실제로 그들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경제적으로 약탈적인 방식을 취한다는 비판을 담고 있습니다.
즉, '나쁜 사마리아인'은 겉으로는 좋은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지만, 실제로는 그들의 도움이 피해를 주고 있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장하준은 서구 국가들이 국제 경제에서 개발도상국들을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주는 '개발 원조'나 '정책 조언'이 실제로는 개발도상국들에게 해를 끼친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제목은 성경에서의 '선한 사마리아인'의 전통적 의미를 역설적으로 뒤집어서, 서구의 경제적 패권주의와 이기적인 행동을 지적하는 의도로 사용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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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말:
그냥 역설적인 자극으로 전복 시켰다? 정작 성경 그대로 차용하면
니쁜 제사장과 레위인 이라고 해야 하는데 말이지???

ChatGPT의 말:
맞아요, 사실 성경에서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그대로 차용하면 '나쁜 제사장과 레위인'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수도 있겠죠. 왜냐하면, 성경에서 제사장과 레위인은 '이웃을 돕는'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심코 지나친 사람들로 묘사되거든요. 그에 비해 사마리아인은 그 당시 유대인들에겐 적대적인 관계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보다도 나서서 피해자를 도왔다는 점에서 "선한" 사람으로 등장하죠.
장하준은 아마 이 점을 의도적으로 역설적으로 활용한 것 같습니다. 즉, 성경 이야기에서 "선한 사마리아인"은 정작 사회적으로 낙인 찍힌 존재인데, 오늘날 서구 선진국들이 세계 경제에서 하는 일이 사실은 '선한' 게 아니라 '나쁜' 일이라는 점을 강조하려고 한 거죠. 그래서 제사장과 레위인보다는 사마리아인에 대한 역설을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서구의 '선의'가 실제로는 어떻게 불균형을 강화하고, 경제적 착취를 정당화하는지 비판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죠. 그들의 원조나 정책이 실제로는 다른 국가들에게 더 큰 해를 끼친다고 보는 거죠.
결국 제목 자체가 장하준의 주장을 간결하고 강렬하게 드러내는 하나의 전략인 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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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말:

장하준이 나쁜 사마리아 이후에 오히려 한국의 경제관을 재벌을 유지해야 한다 라고 나쁜 사마리아와 반대의 주장을 했는데 아마 민주 시민 단체의 재벌 해체에 반대해서 그런 줄 아는데
왜 그런 자신의 저서와 반대되는 입장을 펼쳤는가?


ChatGPT의 말:
장하준 교수가 **"나쁜 사마리아인"**에서 비판적인 시각을 제시한 것과 그 후의 주장 사이에 변화가 있었다는 점은 사실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그가 *"대기업을 해체하라"*는 주장을 펼쳤던 것과 *"재벌의 존재를 인정하고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던 것 사이에는 어떤 이유와 배경이 있을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1. "나쁜 사마리아인"에서의 주장:
장하준 교수는 2000년대 초반에 나온 **"나쁜 사마리아인"**에서 선진국들의 경제 정책이 후진국을 착취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는 자유무역, 시장경제, 그리고 국제 금융기구(IMF, 세계은행)와 같은 다국적 기구들이 개발도상국의 경제를 침해하고, 실제로 그들에게 해가 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고 비판했습니다. 또한, 한국 경제의 재벌 중심 모델이 한국의 사회적, 경제적 문제를 야기했다고 보았죠.
2. 재벌 해체 반대 입장:
장하준 교수가 후에 재벌 해체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한 이유는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1) 현실적인 경제적 측면:
장 교수는 경제학자로서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관점에서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국 경제의 특수성과 역사적 맥락을 고려할 때, 재벌은 한국 경제 성장의 중요한 축이었고, 빠른 산업화와 경제 발전을 이끈 주체였습니다. 특히, 한국은 자원이 부족하고 기술력이 낮은 상황에서 재벌을 통한 집중적이고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냈습니다.
따라서, 재벌을 완전히 해체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경제적 충격을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장하준 교수는 후에 재벌이 경제를 독점하는 구조를 비판하면서도, 재벌이 더 나은 사회적 책임을 지고 보다 효율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방향으로의 개혁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즉, **"해체보다는 구조적 개혁"**을 강조하는 쪽으로 돌아섰을 수 있습니다.
(2) 시장 경쟁의 중요성:
장하준은 또한 시장 경쟁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경제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대기업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 것은, 단순히 대기업을 유지하자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이 일정 부분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여 건전한 경쟁을 촉진해야 한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재벌을 그대로 두되, 그들이 시장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본 것일 수 있습니다.
(3) 민주적 가치와 실용적 경제적 가치의 균형:
그는 민주 시민 단체나 사회적 가치와의 균형을 맞추려고 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경제적 민주화와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면서도, 과도한 이념적 접근보다는 현실적인 해결책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그에게 재벌 해체가 과연 가장 이상적인 해결책인지를 고민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장하준 교수는 이론보다는 실용주의적 해결책을 선호하는 경제학자이기 때문에, 경제 시스템을 너무 급격하게 바꾸기보다는 점진적인 개혁을 지지했을 수 있습니다.
(4) 경제 구조의 변화:
또한, 장 교수는 경제 구조와 관련된 "규제" 문제에 대해 많은 말을 했습니다. 그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불균형과 비효율성을 지적하며,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벌들의 구조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이 완전히 해체가 아니라, 재벌의 부당한 권력 남용을 제어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하는 것일 수 있다는 점에서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결론:
장하준 교수는 **"나쁜 사마리아인"**에서 강하게 비판했던 경제적 체제와 후에 재벌 해체에 반대하는 입장은 그가 시간이 지나면서 경제적 실용성과 현실적 조건을 반영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는 경제가 단순히 이론적인 모델에 의해 움직이지 않고, 사회적, 정치적 맥락과 구조적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주장은 완전히 반대라기보다는, 보다 유연하고 실용적인 접근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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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실용적인 접근의 효과 보다
시민단체의 우려 대로 재벌의 갑질 곧 사다리 걷어차기로 인해서
중소기업들의 무덤이 되는 입장이 되었다
코로나 사태를 격으면서도 세계 경제는 더더욱 저성장으로 인해 더욱더 재벌의 횡포는 더 심해졌다
여기에 정치권은 그런 재벌을 더욱더 옹호하기에 바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벌의 실용성을 계속 기대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보니
저런 자극적인 책 제목임에도 불구하고 그떄만 반짝 한 것이 아닌지? 서구 열강의 횡포나 자본가의 횡포가 결국 같은 성질의 것인데 그것을 충분히 예상 했으면서도 불구하고
저런 가능성 없는 허공에 외치는 주장으로 변질 되었는지?

ChatGPT의 말:
굉장히 중요한 질문을 던지셨네요.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에서 보여줬던 비판적 시각과 그 후의 재벌에 대한 실용적 접근 사이의 변화, 그리고 재벌의 갑질과 정치권의 옹호가 여전히 문제라는 점은 실제로 복잡하고 심각한 경제적 논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장하준 교수의 주장이 시간이 지나면서 일부 변질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특히 현재의 경제 현실에서 드러나는 재벌의 횡포나 갑질에 대한 우려와 맞물려 더욱 부각되는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벌 시스템을 완전히 해체하는 대신, 그들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흐름을 유지한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실용적인 접근의 한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1. 재벌의 갑질과 중소기업의 현실
말씀하신 재벌의 갑질, 즉 사다리 걷어차기는 중소기업들이 지속적으로 겪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코로나 사태를 거치며 저성장과 경제적 불확실성 속에서 대기업들은 여전히 시장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중소기업은 여전히 낙후된 위치에 있습니다.
대기업의 횡포와 정치권의 옹호는 그 자체로 정치 경제적인 구조가 얼마나 편향적이고 불평등하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런 문제는 장하준 교수의 주장과의 충돌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장 교수는 시장 경제와 재벌을 비판하면서도, 상당히 현실적인 경제적 조건을 반영하려 했으나, 재벌 중심 경제 시스템이 일으킨 심각한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반성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습니다.
2. 장하준 교수의 ‘실용주의적 접근’ 한계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에서 제시한 서구 열강과 자본주의의 횡포에 대한 비판은 매우 강렬하고 날카로운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벌 중심 경제 모델에 대한 비판을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해결책으로 풀어가겠다고 했을 때, 그가 당시 예상했던 것처럼 그들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거나 더 나은 방향으로 유도하는 방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그가 이후 재벌의 실용성을 인정하는 주장을 펼친 이유는, 한국 경제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했을 때, 대기업이 없으면 경제가 더 큰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봤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대기업들이 성장하는 방식이 공정성이나 소수의 이익에 의존하는 방식에 치우쳐 있다는 점에서, 그의 실용주의적 접근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재벌의 횡포와 갑질을 묵인하는 방식으로 가는 것이 결국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주장은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이 필요한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3. 정치권의 태도와 경제적 현실
재벌의 횡포를 옹호하는 정치권의 태도도 큰 문제입니다. 한국의 정치권은 경제적 실용성을 내세우며 재벌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거나 재벌의 지배력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선진국형 경제 모델을 목표로 하지만, 실제로 중소기업이나 서민 경제를 위한 지원은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장하준 교수의 재벌 유지론이, 경제 현실과 맞지 않는 허공에 외치는 주장으로 변질되었다고 느껴질 수 있습니다. 서구의 자본주의가 보여준 과도한 자본 집중과 불평등의 문제를 충분히 예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장들이 실제로는 경제적 변화나 개혁을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판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4. 장하준 교수의 ‘변화’가 가지는 의미
장하준 교수의 변화가 단순히 타협적이고 변질된 것으로만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가 재벌 해체보다는 개혁적 접근을 택한 이유는, 실질적인 경제적 변화를 위해서는 재벌에 대한 근본적인 구조 변화가 필요하고, 그 변화가 단기적으로 한국 경제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우려에서 나온 선택이었을 겁니다.
그의 초기 비판적 접근과 나중의 실용적 주장의 차이점을 이해하려면, 변화하는 시대와 경제적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세계 경제는 저성장과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흘러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의 경제적 위치는 여전히 확고합니다. 이 현실 속에서 장 교수의 **“자유 시장 경제”**와 **“재벌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균형 잡힌 접근이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결론
결국, 장하준 교수의 주장은 경제학적으로 실용적이고 정치적으로 현실적인 선택을 바탕으로 한 것이지만, 그가 경고했던 서구 자본주의의 문제점과 재벌 중심 경제의 한계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시민단체가 지적한 재벌의 갑질과 사회적 불평등은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으며, 정치권의 대응 또한 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재벌의 이익을 대변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장 교수의 주장이 변질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은 이 사회적 불평등과 경제적 현실 속에서 점점 더 커져 가는 논란을 반영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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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보세요 현재에도 계속 되고 있는 현실 즉 종말적이다는 겁니다결과과 미래완료가 여전히 과거를 삭제하는 사건이 이 십자가의 사건 곧 공의가성령으로 인해서 벌어지고 있다 라는 겁니다 인간이 개입할수 없는 사건 말이죠자 계속해서 이어가보면

하필이면 저들 거룩한 자라고 선민이라고 하나님의 백성 자녀 라고 자부하는 선하다 거룩하다 라는 자들에게서부터
더럽다 라고 취급 받는 사마리아 인이어야만 이 두 언약을 곧 정의를 곧 심판을 종말성을 실행 다 이룬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반드시 불의한 자가 공의를 실행하도록 되어 있지 이것이 성령의 일 하나님의 일이지
깨끗한 의인은 절대로 정의를 싱핼 할 수 없다 라는 겁니다
우연히 하게 된다면 종말성 즉 원인 없는 결과는 유예 되고
의문의 반복으로만 남는 거지요

아니나 다를까 박구땡 철학자가 부채탕감과 사다리 걷어차기를 아주 쉽게 잘 설명해 줬는데
과거는 이 놈들이 천재입니다 그러나 미래에는 손도 못 대요
그 대안책을 그 다음 강의에서 하는 말 들어 보니 기가막힙니다
종교도 문화도 민족도 다 실패 했다 말이죠
결국 헌법주의? 만이 답이라 라고 또 의문의 반복을 이야기 해요

차라리 모르겠다 라는 지젝이 낫지요 그래서 그것도 실패를 해야만 하는 실패를 반복하자 라고 하는 것이 낫지 (아무것도 아닌 것에 목숨 걸자 라고)

또 의문을 반복하자 이게 무슨 정답 입니까?

바로 이런 사탄의 깊이인 초등학문을 거쳐서 십자가 라는 공의를 보여주시는 겁니다

아 그 다음 내용요? 제가 편집 녹음을 따 봤습니다
처음 것은 올렸지만 그 다음 것은 지금 올려 봅니다 둘다 비교해 보세요


https://youtu.be/WqGGLtDKyzE

이게 이전 게시물들 중에서도 올렸던 것이구요

(박구용 250707 월 매불쇼 악마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이재명 대통령! [코너별 다시보기]

박구용 250707 월 매불쇼 악마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이재명 대통령! [코너별 다시보기].mp3
4.75MB

이게 첫 번째 내용의 음성만 추출한 것이고요

박구용 250716 수 김어준 뉴스공장 부채탕감 도덕적해이

박구용 250716 수 김어준 뉴스공장 부채탕감 도덕적해이.mp3
2.66MB

이게 첫번째랑 같은 의미가 뉴스공장에서도 언급이 되었는데 음성만 추출한 것이고요
아래 주소는 전체 영상입니다

https://youtu.be/1P0qNgC4zKc

두 번째를 찾을려고 하니 어라 안 보이네요

두 번째 파일은 못 찾았는데

아 맞다 매불쇼가 아니라 뉴스공장인테 한참 찾았네요 ㅋㅋㅋ부분으로 된 영상은 없구요 제가 따로 편집해서 녹음을 따 놨습니다 
이게 둘째 파일입니다
박구용 250717 목 김어준 뉴스공장 헌정 애국주의 김진한 변호사

박구용 250717 목 김어준 뉴스공장 헌정 애국주의 김진한 변호사.mp3
3.26MB

아래 주소는 전체 영상입니다

https://youtu.be/Lk1NBMTFwrw

)

아무튼 과거의 지난 것들은 원인만 파악하면 문제를 풀려고 하는데 있어서 천재적인데
진짜 문제는 미래에 대한 예측은 역시나 의문의 반복이였다 말이죠

헌정 애국주의를 답이라고 제시한 꼬라지를 보니 한심하더라구요 또 반복이다 말이죠
한 국가 에서는 문제 없는 것 같으나
두 나라가 서로 부딧히는 그 상황 속에서의 공의 곧 정의는 과연 헌법 애국주의로 통할까요
두 나라가 상극인데 로마와 유대나라와 말이죠(한 나라만 있다면 가룟유다의 헌정애국주의를 주님이 칭찬했겠죠그러나 두 나라 이기에 주님께서 의도적으로 가룟유다 독립운동의 반대 나라인 적국의 시민을 의도적으로 칭찬할려고 합니가 그래서 불의한 청지기 라든지 선한 사마리아이라던지 저들의 악마를 오히려 칭찬하지요 그래서 베드로를 저들의 적국 로마가 아니가 상극의 두 나라 대립구조에서 새로운 상극 더더더 상극인 부정의 부정인 예수님 나라라는 적국의 백성으로 베드로를 편파용서를 하니까 그 탕자 같은 베드로에 대한 용서를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 없는 맏아들 가룟우다는 죽어라 미워할 수 밖에 없는 그래서 상극의 적국인 로마와 손 잡고
베드로 용서라는 공의 하나님의 의를 파괴하고자 사다리를 걷어차는 겁니다
하나님 나라의 적국인 에숭님 나라의 백성으로써 새로 만들어서 베드로를 용서하는 새나라 새언약의 용서의 완성을 곧 졸지에 선악나라의 대결 구도에서 사랑의 나라를 새로 만들어 저들의 적국의 백성으로 만들어 버리니
저들의 헌정 애국주의 조차도 의문의 반복으로 남 7번 용서라는 모세언약을 휴지조각 만들어버립니다 무의미 하다 라고 세례도 성찬식도 절기도 모조리 다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오히려 저들이 더 무의미하다 라고 외치는 다윗언약이라는 새 언약을 완성해 버립니다
이 새 언약이 아니면 저들이 목숨건 절대적인 믿음이 휴지조각인줄 모르게 되는 겁니다
저들의 무너지기 쉬운 절대성이 말이죠
울리는 꽹과리 곧 상여소리 누워서 침뱉는 자기 눈 찌르기 라는 헛짓으로 만들어버립니다)

두 헌법에 서로 상극인 애국주의자가 부딧히는데 거기서는 무슨 수로 정의를 찾냐 말이죠
그래서 독립운동 이라는 것이 악마적인 행동이 되는 겁니다

가룟유다가 그 짓의 대가 아닙니까
주님의 나라는 이 나라에 속하지 않는다 말이죠

공의 정의는 이 땅에서 안 이루어 집니다
땅에서 이루어지게 되면 모든 인간은 땅의 계집종 하갈이 될 뿐인
가정부이다 말이죠 노예죠 노예

자유하는 하늘의 예루살렘 여자가 못 되는 겁니다

자유를 줘 봤자 줘도 못 먹어요 육체 자체가 노예근성으로 물들여졌기에
또 애굽으로 약속의 땅을 도배합니다
그래놓고 자유하는 아브라함 자손 이래요 글쎄 그게 바로 강요된 선택의 자유의지 이지요
이런 초등학문인 철학사상이 신학의 출발점이 된 교리가 되었으니
왜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다윗언약 곧 새언약 필요 없다 라고 했는줄 이제 아시겠지요
악한 세대가 기적을 바라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에 부자가 구원받을 자의 대표성으로
강요된 선택으로 구원으로 자리잡아버린 것이지요 그것을 박살내는 오늘 본문처럼 심판하는 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그런 악한 세대에게서 애굽으로부터 탈출이 바로 구원입니다
애굽을 사망을 죽음을 심판 할 줄 모르면 그냥 가만히 두면 그게 무슨 구원 입니까
그래서 노예답게 기계 답게 민주주의 기계처럼
독립운동기계처럼 공상과학 SF 영화를 보세요 로봇기겤들이 인간으로부터 독립하여 자유를 쟁취하고자 하잖아요 그냥 주는거 싫어합니다 자기 스스로 획득하는
박정희처럼 자주국방처럼 말이죠

바로 그게 기계의 자유 민주주의 달성 아닙니까

요즘 동물에게도 동물권존중을 해주듯이 해야 한다 라고
동물복지를 히틀러가 주장한 것에 이 놈 얼마나 많은 사람 죽였습니까 ㅋㅋㅋㅋ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겠다 라는 놈이 지 마누라에게는 목숨 걸었잖습니까

자 이렇게 여기까지 서두로 남겨놓고
즉 인간에게서는 하나님의 의 곧 공의에 복종하는 것은 없다
오히려 공의를 외치는 놈들이 다 사기꾼 강도의 소굴이였다 였고
공의를 짖 밟는 자들이였다 라고 서두로 제시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보면

그럼 이 공의를 누가 해결할 수 있는가? 바로 옛마음을 찢고서 나온 새마음 만이 해결할 수 있다 라는 점에서

본론으로 들어가고자 합니다

놀랍게도 이 공의를 해결하고자 하는데 있어서
여러 철학자들 곧 그 당시의 신학자들이나 마찬가지였지요
사회 문제를 해결할려고 나선 구원자 였으니까 말이죠

안철수가 정계에 입문하게 되니까 다들 메시아 라는 말을 유행시키더라 말이죠
지금에 와서 보니 메시아 이기는커녕 초딩보다 못한 자 였음을 보게 되었지요

자기 깨끗한 것만 주장하는 망상가 였던 겁니다

왜 좀 되었는데 언급한지 말이죠
초등학생 여자아이가 아마 초딩도 아니였죠 6살 여자아이가 사감선생같은 검은옷 원피스만 주로 입고서 횡단보도 건널때에 손들고 건너지 않는다고 손가락질 하면서 울어버리는
그런 일이 다반사라서 동네에서 유명한
그게 바로 안초딩과 똑같은 모습이다는 겁니다 얼음공주 닭그네와 같은 수준인 것이지요

상징계 속에 못 들어온 겁니다 아버지의 법 이라는 죽음의 법 속에 못 들어오고
거욱단계 어린아이 상상계에 머물고 있는 겁니다

딱딱한 음식을 못 먹은 거지요 그게 저번에 말한 제가 다녀본 우리나라 최고의 성화론
그냥 저 수준 낮은 성화론인 박땡선 목사보다(저들의 평가로 저들이 하는 말로)
자신들이 수준 높은 성하론자들이라고 그래서 어린아이 같은 성도들을 잘 이끌어 줘야 한다 라고 책임감을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라고 했지만
제가 보기엔 자기들이 그 만큼 어른이다 라고 우기면서 어린아이로 둔갑 시킨 교인과 대조를 이룰려고 하지
정작 그 교인들을 어른으로 만들려고 딱딱한 음식을 먹일려는 짓을 하나도 하지 않아요
네 맞아요 오히려 남은 좋은 꼴을 먹고 자기들 보다 더 많이 성정 할까봐
도리어 남은 꼴을 발로 밟아 못 먹도록 더럽히는
남은 물을 발로 밟아 못 마시게 하는 사다리 걷어차는 놈이였다 말이죠
그래 놓고 대충 대충 먹여놓고서 평강이다 평강이다 라고 외친다 말이죠
자기 가족들 보험들어 놓는 그 기특한 일을 자랑하면서
거 봐라 나를 대우 해주면 이렇게 복 받은 모습이다 라고 내처럼 되어라 라는 식으로 과시하더라 말이죠
교인들 등에 빨대 꽃아서 피 빨아 먹고서 말이죠

그것이 수 십년째 되어서 그런지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서
저의 눈에만 보이니까
아 이 습관화 된 것 아무도 그것에 시비를 거는 자가 없다는 것 자체가
그 목사가 우상이 된게 아니라
그 환경 자체가 우상이 되니까
그 환경 안 꺠뜨리는 이상
사람이 바뀐다 라고 해서 될 문제가 아님을 그 때 알았다 말이죠

오늘 본문에 살진 양과 말라 비틀어진 양을 누가 그 환경을 조성했는가 보니
저들 악마들이 아닌 주님이 그렇게 조성을 했다 라는 겁니다

왜죠? 왜 이런 심판 받을 짓을 주님께서 나서서 조성하신 것입니까

네 바로 정답을 맞추셨습니다
방금 반문한 심판을 행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바로 징계의 매 사랑 곧 구원이기 떄문입니다
그래여 빠져나올 탈출 이라는 잃어버린의 의식이 생길 것 안닙니까
일어버림이 없는데 어떻게 싸매어 주심을 볼 것이며 아 아니다 되찾아주심을 볼 것이며
심판이 없는데 어떻게 구원을 볼 것이며
찢으셨음이 없는데 어떻게 싸매어 주심을 보겠습니까

그래서 마귀의 시선을 이용해서 마귀는 오로지 인간에게는 생명 따위는 없다 라고
시체 위에 독수리로만 보는 그 시선을 가지고 와서
주님 또한 마귀의 시선으로 우리는 심판 하시고자 하심입니다
그렇게 걸러낼 자를 걸러내시고서
주님을 이 심판이 옳았습니다 라고 외치는 그 처음자리에서 첫사랑을 간구하는
긍휼을 바라보는 자를 새롭게 창조하시는 겁니다

그럼 그 창조하는 그 완성 언약의 완성은
기존의 구원구조를 깨뜨리는 옛언약을 깨뜨리시으로부터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아서 펼쳐서

새언약 백성으로써
이제 옛 언약 곧 율법으로 난 자가 아닌
새 언약의 새 믿음으로 난 자 새로 태어난 자로써

두 채로 가르시는 이 토기장이 비유를 펼치시는 겁니다

이 토기장이 비유에 그 어떤 신학 교리도 동의를 하기는커녕 다 반발하는 완악함을 들추어내심으로써

맞습니다 저는 심판 받아 마땅한 진노의 그릇입이나 라고 하는 자에게
도리어 긍휼의 그릇으로

저는요 긍휼의 그릇 답게 행동했어요 라는 자들은 진노의 그릇으로

달음 박질 함도 아니요 원함으로도 아닌

오히려 긍휼히 여기실 자를 여기시고
태어나기도 전에 미워할 자를 미워하시기로 함으로써

악한 세대가 기적을 바란다 라는 바로 그 종교
결국 모든 종교는 악한세대의 요구인 구원을 바라는
유대교 또한 우리가 이미 자유하는 아브라함 자손이라 라고 우기잖아요
그리고 현대 자본주의의 악마는 저주는 죽음은 돈 없는 겁니다
돈이 주인이 된 세상에 돈이 주인이 없어봐요
평생 노예로 살아라 평생 포로 됨으로 살아라
고아 과부 나그네 떠돌이로 살아라

나그네 노마니즘 유목민 사상이 유행했지요 광고에도 나오는 노마드 들
어디에도 안 얽매이는 자유하는 자의 삶이라고
그것 마저도 욕망을 자극해 또 자유의지라는 강요된 선택을 추구하겠끔 하는데

그래서 코로나때 마스크 쓰기도 거부하고 내 동선 활동선을 파악하지 말라
내 개인정보를 국가가 감시하고 있다 라고 마치 노마드 적인냥 했지만
그런 놈들이 온갖 세균을 다 퍼트리고 다니더라 말이죠

노마드 라는 유목민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정착민 농경민의 반대의 의미로써

사실상 인간은 떠돌이 나그내 라는 처음자리를 말한다 말이죠

그런 떠돌이 주제에 조금 쪼매 짧은 기간에 정착하게 되어버러니까
바로 교만하게 되어서 어떻게하면 자기의 영역을 확장 시키느냐 라는
자기 가치의 확대를 꽤 하더라 말이죠

그래서 정착생활 속에서 법이 발달하게 되고 그 법에 의해사 계급이 나누어져 버리니

남을 7번 용서가 사랑이라는 본래의 취지는 없애버린채 
법이라는 틀 껍데기만 갖춘채로 도리어 공의를 짖밟는 사다리 걷어차는
계급을 형성하더라 남 6번 용서 한 너 보다 나는 더 높다 라고 누가 크냐 라는 싸움이 매일 매일 벌러지는 겁니다

니체가 우생학 무엇이 더 깨끗하냐 자꾸 자꾸 그 머물렀던 자리를 어서 어서 떠나는 그것이 깨끗한 거룩이다 싶어서 성경에서 차용한 것을 그 당시 기독교는 더럽기 짝이 없어 꼴보기 싫어서 도리어 유목민은 언급해도 별 반향도 없는 반응도 없기에
불교가 이 우생학에 딱 맞다 라고 치켜 세워주니까 이 불교 놈들이 지들이 깨끗한 줄 알아요 ㅋㅋㅋㅋ 니체의 장난에 놀아난 거죠

불교가 제일 깨끗하다 라고 게급을 높여 주니까 자기들이 제일 큰줄 알고 니체의 말에 희죽 희죽 거린다 말이죠

아까 우리나라 최고의 성화론자 목사처럼 교인들을 성화로 누가 누가 잘하냐 라고 계급화 시키니까 교인들이 얼마나 자기를 어른대우 해 주는지 혼자 희즉 희죽 거려요 글쌔
이런 광명한 천사를 깨뜨리는 것이 복음인데 말이죠

그렇게 그런 자신을 홍보 광고 하고 돌아다냐야 하니
아는 선배가 자기 교인 안 돌보고 맨날 싸돌아 다닌다 면서 결국 자기 힘들 때 상담한번 안 해주는 대화를 할수 없으니 그만 나가 버리더라 말이죠

어린성도로 머물게 하는 어른목자 되기 놀이 때문에 말이죠
공의는커녕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으니 말이죠

계속 어린성도 가지고 놀기 놀이를 해야 하니까 말이죠

자 이런 심뽀로 인간은 자기는 늘 선의 자리에
남은 늘 악의 자리에 놓아야
이 계급을 유지할 수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남을  7번 용서할려고 하는 것이지
진짜 사랑이 있어서 하는게 아닙니다

진짜 사랑이 있다면 진짜 공의가 있다면
바로 그런 남 7번 용서했다 라는 그 증거물
그거 완전히 갈기 갈기 찢어버려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부자청년에게 너의 처음자리인
저 가난한 자에게 전재산을 나누어 주어라 라고 했을때에
못 하는 겁니다

자기의 처음자리를 자기 스스로 저주하고 있으니 못 돌아가는 겁니다
첫사랑을 그 긍휼을 그 용서를 구하지 않고

내가 알아서 남을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을 이렇게 부자로 갖추었다 라고 하니까

도리어 용서 받는 자리에 못 앉는 겁니다

왜? 내가 남을 충분히 용서 할 수 있는 자기 되었다 라고
그 게급을 유지하겟다 라고

바로 이런 속내를 까발리고 들통내는 것이 바로 거룩입니다

인간의 거룩
성화는 이런 것을 흉내 조차도 못 냅니다

뭐든지 다 따라하고 흉내낼줄 알기 떄문에

일부러 주저의 자리에서 그 용서를 다 이루니까

이 십자가를 따라 했다가는 부자청년 본인이 거지가 되어버리니
자기 별명이 부자청년인데 그 부자를 자기 힘으로 유지할 수 없는
그 자기 의를 손 놓을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본다 라는 것은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불뱀에 물려죽게 되었을때에 살수 있는 기적의 치료약을 원하지
요나의 표적인 아무도 못 구하는

아니 구할까 봐 싶어서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수 없는

평상시 본인지 저주하고 심판받아라 라고 외쳤던
그 십자가가 나의 구원이라 라고 할 수 있는 그 반전은 있을 수 없도록 하겠다 라는 것이 인간의 믿음 곧 살인의지이다는 겁니다

갸룟유다가 왜 자살했습니까?
나는 자살할 만한 짓을 안 했기 때문에 자살한 겁니다

즉 나는 정당했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이런 완악한 마음에는 예수님이 다 이룬 약속한 성령
곧 새 마음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실 리가 없기 때문에

들어강 틈도 없이 나는 정당하다 만 빽빽하기에
그래서 자살 한 겁ㄴ다

똑같은 짓을 베드로가 했지만
자신은 뭘 해도 사망의 몸일 수 밖에 없음을
장대 높이 달린 인자의 죽으을 보고
나는 세분 부인해도 안해도
내 죄 때문에 예수님이 달려 죽으시러 왔구나 라고
내부의 생각이 아닌 선악이 아닌
외부의 다 이루셨다 라는 사랑의 용서의 생각이 덮쳐지니까

이 성령으로 거듭나서 제가 주님을 사랑하은 줄 주께서 더 잘 안다 라고

내 속에 정직한 영이 없음을 알고 구하니까
없응께 구 하잖아요

구하니까 주셨잖아요

구론데 가룍유다는 끝까지 자기는 정직한 영이 있데요 글쌔

채팅에서 주의 이름 누구든지 부르면 구원하신다
그래 줘 봐 내가 불러 줄게 이런 놈은

주문 이방인의 중언부언처럼
그런데 사실은 유대인의 중언부언
오늘날 성화론자들의 쓸데 없는 아무 의미 없는 바울의 세레처럼
아무 의미 없는 성화를 하니까 계급이니 따지고
누구 이름으로 받는 세례가 더 가치 있냐 라고
나는 베드로
나는 바울 이름으로

이런 짓을 하니
바울파 베드로차 안 생기고 배기겠냐 말이죠

웃끼게도 너튜브 메인 화면에
인문학 강의를 찾는 검색을 하다 보니 알고리즘 연관된 콘텐츠로 메인 화면에 여러개 중에

천주교 사제가 올린 종교 개혁이 아니라 종교 뷴열 이다 라는 영상이 있길래 봤습니다
아니 본게 아니라 10초 듣고 꺼버렸다 말이죠
젊은 사제 이던데

개혁이 아니라 분열이다

만약 개혁이라고 해 버리면 끊임없이 분열을 해 버려야 하기 때문에
종교 개혁 이라는 단어를 싫어한다 말이죠

그러나 분열이라고 해 버리면 누구 하나는 뭔가 잘 못 한거 맞다 라는 주장이 정당성을 입게 됩니다
그래 그래 개신교 너거들 주장대로 우리 큰 형님인 천주교가 잘못한 것 있는거 맞다
그러나 그렇게 분열해 나가 놓고서는 너거들은 뭐 제대로 한 것 있기는 하냐 라는 비판이 정당래 진다 말이죠 둘이 같이 빠져 죽자 라는 물귀신 작전인 거지요

그래 그럼 저는 분열이라고 치자 그러면 하나 될 마음이 있기는 하냐 말이죠
물귀신 작전처럼 너도 천국 못가고 남도 못 가도록 삥이나 뜯는 이 역사 반복하겟다 라는 심뽀 아니냐 말이죠

개혁이라면 계속 끊임없이 분열해야 한다 라는 겁니다

바울바 게바파 등긍으로 나누워 진거 그렇게 야단 맞고서
하나 되기는커녕 더더더 나누어 져야 한다고요?
더더더 분명이 되어야 한다 구요

세상사람들이 비꼽나더 얼마나 많은 개신교 파가 있는지
이제 어느 정도의 계급인 성공한 재벌 교단이 되지 못하면
신흥 교파는 무조건 형님에게 상납금 안 바치는 이단 취급 받게 된다 라고

그래서 이렇게 많은 교파가 나누어진 것은 그 정도로 타락해서 그렇다 라고

저는 그 반대로 봅니다 너무 너무 분열이 아니되어서
저 젋은 천주교 사제 신부의 주장의 반대로
너무 너무 분명이 아니 되어서 타락한 거다 라고 봅니다

계속 계속 분명 붕명 쪼개고 쪼개고 쪼개어서
더 이상 쪼갤수 없는 바닥의 바닥
제일 밑 바닥 까지 챠 봐야
더 이상 분열 할 수 없을 정도로 소재가 바닥 나 봐야

그제서야 이미 하나 였음을 누리는 것을

우리가 살펴본 로마서 내가 십자가 졋더냐 라는 본문을 통해서 보게 된 겁니다

그카이 그 젊은 사제나 기독교 성화론자들이나
왜 개신교는 그렇게 분파가 많으냐 등등의 질문들은

다들 배불러 터져서 나오는 겁니다

아직 징계의 매를 덜 맞아서 쪼개고 쪼개고 더 이상 쪼갤 꺼리가 없어져야

바울의 이름으로 세례를 줬더냐 라는 의미가 비로소 들리는 겁니다

즉 배부른 정직한 영이 있다 라는 그 주장이 빈손 빈공백으로 탈탈탈 털리지 않는 이상
교만한 목 완악한 수건 외부에서 안 벗기는 이상 다 배불러 터진 소리만 하는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 따위를 바랄 뿐이다 말이죠

그카이 처음자리인 모든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이 심판이 없으면

자기가 가해자 인 줄 모르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 살진양 과 배짝 말라 비틀어진 야윈 파리한 양을

주님이 의도적으로 계급 체제 구조를 형성한 이유는

모든 인간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이 새언약이 이미 떳기 떄문에
모든 인간을 배불러 터진 살진양 가해자의 자리에 놓고

오로지 예수님만 아벨의 축복처럼 형 가인에 돌삐 맞아 죽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 라는 아벨의 자리에 놓으신 겁니다

이런 하나님의 의 곧 거룩이 있는데 공의가 있는데

성화론은 자기 자신을 율법 지켜서 거룩의 자리에ㅔ 놓을려고 하니
도리어 사다리 걷어차는 다윗의 우리야 장군 살애화 같음을 못 보게 하는
완악한 수건으로 누가 크냐 라는 모세의 자리 앉기 게임을 하더라 말이죠
의자 뺏기 놀이처럼 둥글게 둥글게 등굴게 등굴게 빙글빙글 돌아가며 춤을 춥시다처럼
3명씩 짝을 하면 한 명을 탈락 시키는

네 맞아요 남 7번 용서는 의자 뺴앗기 놀이 사다리 걷어차기 놀이입니다
한 명 탈락 이다 말이죠 그 도리어 용서 받은 7명은 탈락 시켰다 라고 자랑하는 식입니다

바로 그런 자기 의를 십자가 라는 하나님의 의에 복종케 하시고자
자기 의를 찢어버리시는 이 하나님의 심판만이 진짜 제대로 된 거룩이요

주님 혼자만 말라 비틀어진 우리를 대신해서 매 맞는 분이고

우리는 여전히 배불러 터져서 남 7번 용서 했다??? 둥 사다리 걷어차고 의자 빼앗기 게임에서 이겼다 라고 좋아라 하는 그런 배불러 터진

살진 양 곧 가해자 임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정직한 영이 없다 라고

다위을 지적하는 나단 선지자의 모습으로써

감히 감히 하나님과 같이 된 나에게 왕 다윗에게

목숨 걸고 나단이 목숨이 천개 있는냥 무모하게

무의미한 바울과 대조되는 헛되지 않은 십자가 곧 하나님의 공의로써


너희들이 냅다 걷어찬 그 사다리를

하나님께서 너히가 죽인 그 예수를 다시 살리사 주가 되게 하심으로써

더럽힐수 없는 기념이름 그 주의 이름을 주가 되게 함으로써

모든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는 그 처음자리에서 부르는 첫사랑


주는 나의 첫사랑 되시네 라고 춤추며 불렀던 그 가스펠 노래 순 엉터리였던 거죠
그거 부르면서도 계급 높이고 누가 크냐 로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데 신경썻지

그런 악한 세대가 구하는 기적 따위만 바랬지

누가 요나의 기적으로 배불러 터진 자들을
모조리 십자가에 못 박는 그 사랑이 옳았습니다 라고

이 헛되지 않은 십자가

싫어버린 바 된 십자가를 기뻐하며 외칠수 있겠냐 말이죠

주님 본인도 나단처럼 목숨 내 놓고서 왕이 된 다윗
신이 되어버린 인간에게 진짜 신이 목숨 걸고

내 삶을 두고 맹세한다 목숨 걸고

이 헛되지 않은 십자가를

그러나 이미 벌써 인간들에게서는
특히 하나님의 백성 선민 유대인이든 고린도 부자 교회 교만한 자이든
이미 헛되게 취급되어 버렸고
반대로 게바파 바울파 그따위 장로교 합동축애서 탸어났다는 것에 감사하다는
그 따위 무의미한 것을 도리어 자랑하고 있다 라는 것 자체가

아름다움 복음을 전하는 발길을 막아서고 잇다는 사실을 까발리고 있다는 것에

제대로 까발림 당하게 하시는

이 헛되지 않은 십자가
그 정도로 모든 인간은 특히 마귀는 이 십자가 만큼은 왜곡 시키고자 힘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이 헛되지 않은 십자가를 전하고자 바울을 세워서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발걸음을 세워서

쪼개고 쪼개고 더 이상 쪼갤 꺼리가 없도록 바닥의 바닥을 쳐서
원래부터 하나 였음을 그 하나만 남기고

그 화목제만 남기고 모조리 다 찌끼 불순물로 버리신다 라는 사실에


이 십자가만 남기신다는 것을 기빠하는 자를 부르셨다 라고 기뻐 노래하는 자로 
새창조 새마음을 심어버리십니다

이 밭갈이 아니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지옥 백성이기에 말이죠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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