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59 믿음(실상)의 말씀이냐 VS 행함(그림자)의 율법이냐 (롬 10, 4-10).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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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9 믿음의 말씀이냐 라는 실상 ( VS 행함의 율법이냐 라는 그림자) (롬 10, 4-10)
2025. 6. 15.

율법의 마침으로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심 (롬 10, 1- 4)
로마서 2022 2025. 5. 24. 18:38
22-058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고자 율법의 마침 되심 (롬 10, 1- 4)

〈로마서 10, 4-10, 개역한글, 신약성경 253쪽, 찬송가 410장 새 310 아 하나님의 은혜로, 찬송가 463장 새 400 험한 시험 물 속에서〉

〈찬송가 4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새찬송가 310장〉

1.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 지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잘아는 주님, 늘 돌보아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2. 왜 내게 굳센 믿음과 또 복음 주셔서, 내맘이 항상 편한지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잘아는 주님, 늘 돌보아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3. 왜 내게 성령 주셔서 내 맘을 감동해, 주 예수 믿게 하는지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잘아는 주님, 늘 돌보아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4. 주 언제 강림 하실지 혹 밤에 혹 낮에, 또 주님 만날 그곳도 난 알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잘아는 주님, 늘 돌보아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찬송가 463장 험한 시험 물 속에서,  새찬송가 400장〉

1. 험한 시험 물속에서 나를 건져주시고, 노한 풍랑지나도록 나를 숨겨주소서
   주여 나를 돌아보사 고이 품어주시고, 험한 풍파지나도록 나를 숨겨주소서

2. 권세 능력 무한하사 모든 시험이기고, 풍랑조차 복종하는 내 주앞에 비오니
   주여 나를 돌아보사 고이 품어주시고, 험한 풍파지나도록 나를 숨겨주소서

3. 사망 길에 빠진 이 몸 캄캄한 데 헤매며, 부르짖는 나의 애원 들으소서 내 주여
   주여 나를 돌아보사 고이 품어주시고, 험한 풍파지나도록 나를 숨겨주소서  아멘


〈로마서 10, 4-10, 개역한글, 신약성경 253쪽〉

(롬 10:4, 개역)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롬 10:5, 개역)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롬 10:6, 개역)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롬 10:7, 개역) 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롬 10:8, 개역)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롬 10:9, 개역)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롬 10:10, 개역)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 10:4, 새번역)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율법의 끝마침이 되셔서, 모든 믿는 사람에게 의가 되어 주셨습니다.
(롬 10:5, 새번역) 모세는 율법에 근거한 의를 두고 기록하기를 ㉡"율법을 행한 사람은 그것으로 살 것이다" 하였습니다. / ㉡레 18:5
(롬 10:6, 새번역) 그러나 믿음에 근거한 의를 두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마음 속으로 '누가 하늘에 올라갈 것이냐' 하고 말하지 말아라. (그것은 그리스도를 끌어내리는 것입니다.) / ㉢신 30:12
(롬 10:7, 새번역) 또 ㉣'누가 ㉤지옥에 내려갈 것이냐' 하고 말하지도 말아라. (그것은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 ㉣신 30:13 ㉤또는 '깊은 곳'
(롬 10:8, 새번역) 그러면 그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네게 가까이 있다. 네 입에 있고, 네 마음에 있다"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입니다. / ㉥신 30:14
(롬 10:9, 새번역) 당신이 만일 예수는 주님이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롬 10:10, 새번역) 사람은 마음으로 믿어서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해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구약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말씀을 지켜서 의에 이르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간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 복을 타내고자 의를 쌓고 그 의를 쌓는 고생을 함으로써 그 보상으로 천국에 간다 라는 원칙으로 꽉꽉 차 있다 보니
예수님이 오셔도 예수님의 새언약이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촘촘하게 빽빽하게 꽉 채워버렸습니다
그런 모습을 대표적으로 잘 보여주는 자가 바로 부자청년입니다
그 당시에 모든 사람들이 복 받은자 맞다 라고 본으로 삼을 정도입니다
심지어 예수님 앞에서도 겸손하게 무엇을 하면 구원을 받느냐 라고
백성의 관원 지도자 답게 요즘으로 치면 국회의원입니다 어린나이에 국회의원이 될 정도로
사람들이 뭘 좋아라 하는지 그 가려운 부분을 잘 긁어주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데 정치꾼 보다 달인들이 어디있겠습니까?

그렇게 겸손하게 무엇을 하면 구원을 얻는지
지금 당장 말씀만 하시면 부족한 부분 당장 채우듯이
지금 당장 그 의로운 말씀을 지키고 의를 행해서 사람들의 기대치에 맞게
구원받은 자의 삶을 신앙의 모범을 보여주겠습니다 라고 겸손하게 예수님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부자란 교만한 자이다 라는 것을 먼저 들추어내시는데 있어서
부자가 천국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 보다 어렵다 라고
부자가 천국가겠다는 그 열심에 그 열성에 동조해 줄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저런 부자가 천국 가겠다는 것에

천국을 어떻게 하면 저 부자랑 단절 시키느냐 라는 것에만 관심을 두시고
부자가 바로 그런 겸손 떠는 것이 얼마나 교만한 모습인지를
고생도 마다 하겠습니다 라고 고난 속에 들어가겠다 라는 다짐
베드로가 생각나지요 십자가에 죽기까지 같이 따라 죽겠다 라고
이 사탕아 썩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뜨리는 자 이구나
어이구 배불러 터지셨셨셨 었었었어요
사람의 일로는 배가 빽빽하게 배불둑 빵빵하게 배터질 듯이 만삭의 임신부처럼 배불러 있지만
하나님의 일은 단 하나도 없어서 빵구멍 뻥뚫린 것처럼 텅텅 비어 있구나

에라이 더 단절 더 간극 더 공백 더 빵구멍이나 나 버려라 라고
천국을 보호할려고
너희가 더럽히지 못한 아껴둔 기념 이름을 보호하실려고
도저히 인간으로써는 할 수 없는 전 재산을 다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라고 합니다

(겔 36:21, 개역)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

(겔 36:16, 개역)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겔 36:17, 개역)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그 고토에 거할 때에 그 행위로 그 땅을 더럽혔나니 나 보기에 그 소위가 월경 중에 있는 여인의 부정함과 같았느니라
(겔 36:18, 개역) 그들이 땅 위에 피를 쏟았으며 그 우상들로 더럽혔으므로 내가 분노를 그들의 위에 쏟아
(겔 36:19, 개역) 그들을 그 행위대로 심판하여 각국에 흩으며 열방에 헤쳤더니
(겔 36:20, 개역) 그들의 이른바 그 열국에서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인하여 더러워졌나니 곧 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 이르기를 이들은 여호와의 백성이라도 여호와의 땅에서 떠난 자라 하였음이니라
(겔 36:21, 개역)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
(겔 36:22, 개역)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겔 36:23, 개역) 열국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은 이름 곧 너희가 그들 중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로 인하여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열국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 가난한 자에게서 나온 돈이다는 거죠
원주인에게 주어라 라는 겁니다
소자 하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다 라고

작은 자 딱 한 사람
너희 가운데 있었던 한 선지자
그 소자에게 한 것이
이게 비유 비밀이라서 행함으로 지킴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싫어버린 바 된 비유 비밀인 한 선지자 이기 때문에
같이 싫어버린 바 될까봐
같이 흠모할 모양이 없고 고운 모양도 없고
도리어 타인의 허물을 대신 짊어지다 보니
남의 병듬을 짊어지니 병든 얼굴 태양 빛에 새까맣게 된 질고를 아는자
병든 자 취급 받는다 라는 겁니다
코로나때 미국에서 마스크 쓰면 병든자 취급받고 왕따 받을까봐
발가벗고 3년 반? 3년? 절대단절 절대저주의 모습을 받은 자 취급당할까봐

아니 다들 아름다운 모양 흠모할 모양 이게 부자 아닙니까
이게 구원받은 자 모습 아닙니까
병든 모습 되어 보세요
다들 떨어져 나가서 고립이 되어서 물이 흐르지 않고 고이게 되면 썩게 된다 말이죠

그 썩은 물이 누구 때문에 된 거냐 말이죠
썩어버린 우상의 모습이 누구 때문에 그렇게 되어서 발가벗고 다니느냐 말이죠
이게 비밀 비유 거울이다 말이죠

남의 허물을 거울로 비추고자 누가 발가벗고 3년 동안 돌아다니냐 말이죠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미친놈이다 너는 발가벗었다 라고 정죄하게 바쁘다 말이죠
아니 발가벗고 싸돌아다닌다는 것이 말이 되냐 말이죠

바로 이것이 초과잉적 비정상행동인 바로 진리이다 말이죠
초과잉적 제스처 보편적 진리를 전복시키는 구체적 보편적진리
묻고 떠불러 가 이것이 진리이다는 겁니다
즉 발가벗은 이 십자가의 저주가
사실은 너희들이 발가벗었고
너희들이 하나님이 저주 받았구나 라고 했듯이 도로 거울로 반사 시켜서
그 다음 차례 니 차례이다 라는 겁니다

그카이 부자청년이 개인 부자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염원하는 부자요 그 복된 복받은 자로써의 구원을 염두한 그 벡성들의 염원이 들어간 입장에서의 대표성으로써의 부자이기 때문에
가장 천국에 가장 접근한 자 로써의 부자가 도리어 가장 멀리 단절된
입장에 놓여지도록

부자의 겸손이 부자의 교만한 자로써의 대표로써 주님은 복음증거에 활용을 하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비로소 사람들의 제대로 된 반응이 나타나는 겁니다

아니 부자가 구원 못 받으면 도대체 누가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쫓여난 경험 잃어버림의 경험을 가진 심판 속에서 자기 죄로 우는 
남은자가 구원받는다 라는 의식은 유대인 아니 그 당시 사람이나
오늘날 사람들에게 있다 없다?
없다 라는 겁니다

그저 아니 부자가 천국 못 가면 누가 천국 갈수 있겠노 그것만 심각할 뿐이다는 거죠

요즘식으로 하면 그저 눈에 보이는 목사 하나 기대 걸고 교회 다녔는데
목사가 천국 들어가는 것이 바능구멍 통과하는 것 보다 어려우면
다들 교회사람들 반응이 아니 그럼 누가 천국 갈수 있다는 말인가?

바로 이것이 성령이 하시는 단절 입니다

충격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면 우린느 또 부자청년처럼 예수님 이용할려고 다가가 접근하지
그 접근하는 겸손을 가장 경멸하면서 떨어뜨리시고자 차단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본다면
격는다는 우리는 그것보다 충격 멘탈이 아닌게 없을 겁니다

이것을 뭐라고 하더라? 책 제목이 생각이 안나 쳇GPT 에게 물어봤는데 한참을 돌아서 알았다 말이죠

그때 4월 초에 물어봤는데 기억이 안나 한참을 돌아 돌아서 제목만 알아냈는데
각인의 이론 이라고
즉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면 내가 주체인데
반대로 내 주체성을 오히려 빗금쳐버림 당한 삭제 배제 제외 당해버리는
빵구멍 난 홈패임 흔적 스티그마가 되어버리면

아무리 머리 좋고 나쁘고 상관없이
홈패임 시키는 외부의 대상물로써 작동하게 됨어서
내부로 끌어당기는 세계가 아닌
그 반대인 홈패어버리는 그 외부의 세계를 비로소 경험케 되는

그 카이 철학책 하나 읽을려면 몇 년을 끙끙대는게 내가 책을 읽는게 아니라
이놈의 책들이 나를 난도질 해 버리니까 몸이 안아프겠냐 말이죠
간따나 난독증 문해력 제로인데 좀 알기 쉽게 해주기는커녕
일부러 억수로 어렵게 적다 보니 믄말인가 싶어 자료 찾다 볼일 다 보는

어니 이런 사탄의 깊이도 이런 판국인데
내가 말씀을 보는게 아니라
부자청년이 예수님을 상대로 구원 어떻게 받냐 라고 보세요 지가 뭔데 자꾸 상대할려고 해요

그런데 정작 말씀이 나를 보게 되니
예수님이 부자를 상대하게 되니

부자가 완전 난도질을 당해서 완전히 발가벗겨 지는 겁니다

다시는 주님 앞에 얼씬 거리지 못하도록 말이지요

이것이 대표성으로써의 부자이니까
모든 인간들은 예수님 앞에서 십자가에 낱낱이 못 박히는 난도질 당해야 한다는 겁니다

아무도 잃어버림 당한 자 로써 다가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저 예수님 앞에서 누가 크냐 누가 높냐 누가 더 구원 받을 가치가 있느냐 라는
그런 육의 것을 가지고와서 자랑할려고
하나님과 원수 된 육의 생각만 가지고 올 뿐이지

믿음의 말씀을 가지고 오는 자는 없습니다
도리어 믿음의 말씀이 난도질 해서 잃어버림 당하도록 만들어서
말씀이 우리를 짏질질 끌고 예수 앞에 나오게 하는 겁니다

어 주여 당신 도대체 누구십니까
누구시길래 저 풍랑을 일으켜서 저는 난도질 해서
이 죽음의 바다
그 깊은 요나의 큰 물고기 뱃속에 집어넣었다가 빼내시는 당신 도대체 누구시오

욥은 그 애매한 고난 속에서 그 괴롭히는 하나님 속에서 비로소 믿음의 말씀을 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이 제물이 된 그 상한마음 속에서
자기 죄로 우는 그 남은자의 자리에서 남겨둔 한 씨
이러다 다 죽어 라고 외치시는 정직한 영을 비로소 보고
기뻐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내 때를 보고 기뻐하셨다처럼 말이죠
부자청년은 이 언약의 코스를 밟지 않고
바로 하나님을 대할려고 하다가
타 죽어야 할 판국에 놓여진 겁니다

주의 산에 오를자 누구냐 손 깨끗한 자
바로 봤다가는 다 죽는데 말이죠
온 몸에 피를 발라야 한다 말이죠
그 정도로 더럽기 짝이 없기에
누가 외부에서 피 흘려주지 않는 새것이 오지 않으면
세 언약 새 마음 새 영이 주어지지 않으면

기존의 것
옛 언약
모세 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라는 그 부자청년의 사고방식으로 갔다가는 타 죽는다 말이죠

그 정도로 심각한 죄를 우리는

내가 죄 보다 먼저 있다
나 있음 이라는 이 절대우상성이 파괴 되지 않는 이상
거기에다가 덧 떼우기하듯이 말씀 지켰다
이럴적부터 다 지켰다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 없다
이딴 것들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겁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너 보다 먼저 있었던 죄륵 향한 대신 매 맞으심인데
죄의 소원을 겨냥한 사망 권세를 향한 것인데

이런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 따위로
이게 성화론 아닙니까
이게 개혁주의 아니고 뭐냐 말이죠
하나님 나라 운동하겠다는 가룟유다나
독립운동 하겠다 라는 남은자 운동하는 놈들이니

그런데 다들 왜 잃어버림 양 되기는 아무도 안하는 것일까요?
저 위의 것들은 사람들이 인정해 줘요
멋들어져 보여요 가치가 있어요 보상도 있어 보여요
그런데 잃어버린 양 싫어버림 자 되는 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무익할 뿐이니
이건 뭐 진짜로 외부에게 불쌍히 여겨주지 않으면
그야말로 고도리의 쓰리박 피박 광박 고박 절대심판 절대저주 절대단절이다 말이죠

그 속에서라야 비로소 원수가 등장합니다 자기가 이겼다고
그 원수 보란 듯이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는
마귀만 상대하시는 반칙 스캔들 불륜 이 십자가의 다 이루심이
그때서야 어찌할꼬 어찌할꼬 가슴을 치면서
저 원수 마귀가 나와 똑같은 사고방식이였음을
이 지옥의 몸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비로소 잃어버림 속에서
남은자 자기 죄로 우는자

비로소 장대 높이 달린 인자에게 딱 맞는 죄인 환자가 되는 겁니다

즉 내가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장대 높이 달린 인자가 나를 상대하실려고
장대 높이 달린 인자에게 걸맞는 환자 죄인 잃어버린 자 만들어야 하는데

아무도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자가 될려고 하는 자가 없으니

(마 15:24,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마 15:21, 현대어) [가나안 여자의 믿음;막7:24-30] 예수께서는 그 지방을 떠나 두로와 시돈으로 가셨다.
(막 7:24, 현대어) [수로보니게 여자의 믿음;마15:21-28] 예수께서는 갈릴리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셨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거기 계시다는 것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으려 하셨으나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예수께서 오셨다는 소문이 금방 퍼져 나갔기 때문이다.

(요 6:39, 개역)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눅 19:10, 개역)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눅 19:8, 현대어) 삭개오는 주님 앞에 일어서서 말하였다. `선생님, 제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만일 제가 세금을 누구에게 더 부과한 것이 발견되면 제 돈으로 네 배를 갚겠습니다.'
(눅 19:9, 현대어)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오늘 이 집이 구원을 얻었다. 이 사람도 잃어버렸던 아브라함의 자손중의 하나이다. 나, 인자는 이와 같은 이들을 찾아서 구원하러 왔다.'
(눅 19:10, 현대어) (9절과 같음)
(눅 19:11, 현대어) [금화의 비유;마25:14-30]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시자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가르쳐 주려고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잘대 높이 달린 인자 쳐다보는 것 뭐가 어렵겠습니까? 고개만 돌려 높은 위치를 시선 높여 쳐다보기만 하면 낫는데 그게 뭐가 어렵냐 말이죠

그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게 되는
고개 못 돌리도록 누가 고개 안 돌아가도록 담걸어버리는 식입니다

반대로 나는 안되고
반대로 그 장대 높이 달린 인자가 나를 억지로 억지로 잃어버린 자 만들어서
저 보새요 매국노 세라장 삭개오 만들었지요
귀신들린 딸의 어미로 그것도 개같은 이방여자
예수님도 개에게 거룩한 것을 주는 것이 마땅치 않다 라고 하시잖아요
그 정도로 단절 외부에서 주지 않으면 새것으로 살 자는 없다는 겁니다

(막 7:25, 개역)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 엎드리니
(막 7:26, 개역)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막 7:27, 개역)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막 7:28, 개역)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막 7:29,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막 7:30, 개역)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막 7:31, 개역)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경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경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막 7:32, 개역) 사람들이 귀먹고 어눌한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막 7:33, 개역)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뱉아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막 7:34, 개역)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막 7:35, 개역) 그의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더라
(막 7:36, 개역) 예수께서 저희에게 경계하사 아무에게라도 이르지 말라 하시되 경계하실수록 저희가 더욱 널리 전파하니
(막 7:37, 개역) 사람들이 심히 놀라 가로되 그가 다 잘 하였도다 귀머거리도 듣게 하고 벙어리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

(단절 막힘 차단을 거쳐서 막인 담 둘로 나누어진 경계선 담을 허무시는 둘이 하나가 되는 뚫어 뻥 잔탁 십이지장충 회충 요충 단 번에 탁 ~~~ 뚫어버리시는 겁니다 여기에 상대적인 자기 의가 아닌 하나님의 의가 대조되는 두 언약으로써 나오니까 나는 뭘 해도 가짜인 거죠)

그럼 유대인은 과연 새것으로 사는 자일까요? 헌 것으로 사는 자일까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외부에서 살려주시는 그 섬김으로 사는게 아니라

부자청년처럼 자기 숙제로 말씀 지켜 의를 행해서 살려고 하는 그 교만
그 우상 숭배 빵구멍 내시겠다 라는 겁니다

아이고 주님 그런다고 바리새인이 아 잘못 생각했구나 라고 거침이 되는 줄 아십니까?
괜히 건드려서 우리까지 위태롭게 되었잖아요
(마침 마태복음 15장 24절 잃어버린 양 외에는 보내심을 받지 않았다 그 윗구절에

(마 15:12, 개역)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저들에게 안 가고, 보내심을 받지 않고, 임금 삼을려고 아무리 쫓아와도 도망치고 반대로 거룩측량 성전측량 보내심을 받음은 반대로 저 제일 끄트머리 제일 끝에 있는 자를 찾으러 오셨다 말이죠 부자랑 정반대
모든 사람들의 시선에 집중된 그 꼭지점의 정 반대의 지점에 주님은 보내심을 받았다 말이죠
매국노 세리장 삭개오 에게 말이죠
)

바로 이겁니다 오늘날 교회 교인 교역자 건드리면 지구 끝까지 따라와서 복수하겠다는 놈들 뿐이다 말이죠 다들 걸림이 되는 줄 아느냐? 괜히 건드리면 목사 건드리면 7대가 망한다 라고

자기 숙제의 달인들이 되다 보니 지구 끝까지 따라와 죽이겠다 라고
사도바울을 목 죽이면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겠다 라고 하잖아요

주님은 주님 자신의 숙제 속에 놓으실려고 계속해서 잃어버림 속에 놓는 겁니다
그래야 다윗이 울고 그 눈물을 주의 눈물로 주의 병에 담는다 라고 하잖아요
비로소 주님의 눈물을 보게 되니까 마링죠 그것이 바로 의사가 찾아내시고야 마는 환자 아닙니까

이 하나님의 의에 복종케 만들려고
하나님의 의의 숙제 곧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의 숙제에 걸맞는 환자 죄인 만드시고자

자기 의에 열심인 자기 숙제에 미쳐있는 죄 아래 갇힌 자를 손 털게 빈손 만드시는 겁니다

빵구멍 뻥 뚫혀야 잃어버림 당해 바벨론 포로 당해야

어 주님 당신 도대체 누구십니까 라고 죄지
안그러면 자꾸 점쟁이 찾듯이 하니까 말이죠
우리나라 치고로 성화되었다 라는 그 자들과 함께 어울려 봣다 말이죠
자기들따나는 저 수준낮은 성화 박영선 목사들 보다 더 수준 높은 성화론자들이라고 우겨도
맹 점쟁이 찾듯이 하는 모습은 맹 같은 소돔과 고모라 였지
아무도 자신을 잃어버림 당한자 라는 남은자로 여기지 않아요
남은자 맞다면 남겨둔 한 씨가 이러다 다 죽습니다 라고 우는 그 울음에 비로소
49일째까지 안 울어도 50일 째야 비로소 칠칠이 49 철저한 단절 버림 버림 잃어버림 속에서
그 심판 그 저주 속에서 비로소 울게 되지
그 안백성 안자녀 안긍휼의 자리에서
백성 맞다 자녀 맞다 긍휼 오냐 불쌓이 여겨주마 라는 피흘리심만이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자기 의 조금 이라고 쌓았다고 여겨 보세요
피 흘리심이 보이는가?
하나님의 의에 복종 하겠는가 말이죠

자기 숙제한 것만 자기 공로만 언젠가는 앞장 세울려고 하는
바로 이 버릇
사탄아 썩 물러가라 이 사람의 일 버릇
이 계집종 하갈의 가정부 버릇 행한 것에 대한 보상을 바라는 버릇 뿐이지

누가 자유하는 하늘의 예루살렘의 그 자유
얼마나 자유로우면 불임여성인데 하늘의 자녀가 많테요 글쎄
이 비밀의 간극을 무슨 수로 매꾸냐 말이죠 앞뒤 모순 되는 비밀인데
아무것도 없는 자 인데 모든 것을 다 가진자래요 글쎄
죽은 자 같으나 산 자레요 글쎄

이것이 풍요래요 글쎄 눈에 보이는 것 하나 없는데 풍요이고
오히려 자식이 눈에 그렇게 많은 실제로 보이는데
하늘에 자식이 단 하나도 없는 다 지옥
하나도 없게 되더라 말이죠

이 얼마나 무시 무시 하냐 말이죠


자 그래서 본문으로 돌아와서 오늘 본문


(롬 10:6, 새번역) 그러나 믿음에 근거한 의를 두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마음 속으로 '누가 하늘에 올라갈 것이냐' 하고 말하지 말아라. (그것은 그리스도를 끌어내리는 것입니다.) / ㉢신 30:12
(롬 10:7, 새번역) 또 ㉣'누가 ㉤지옥에 내려갈 것이냐' 하고 말하지도 말아라. (그것은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 ㉣신 30:13 ㉤또는 '깊은 곳'
(롬 10:8, 새번역) 그러면 그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네게 가까이 있다. 네 입에 있고, 네 마음에 있다"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입니다. / ㉥신 30:14

6절 7절 8절에 구약에 인용된 말씀이 나오네요 신명기 30장 이라고

(신 30:12, 개역)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이 아니요
(신 30:13, 개역)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도 아니라
(신 30:14, 개역)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똑같은 유대인이면서도 불구하고 사도바울는 같은 구약을 봐도
유대인과 다르게 보인다는 겁니다 아니 보여주셨다 라는 겁니다

말씀을 지키는 주체가 행하는 자를 염두한 것이 유대인의 시선인 반면에
사도바울은 말씀을 지키는 주체가 그리스도 임을 증거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나는 겁니다

그런데 구약을 아무리 때려죽어도 봐도 예수님이 주체가 될수 있는 그 어떤 의미의 단어나 해석의 여지를 주는 것들이 있는가 말이죠
없어요
네 맞습니다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사도바울은 본인도 과거에 그렇게 해석해 왔기 때문에
그런 유대인의 속성을 잘 알기에 
해석의 여지가 없다는 거을 알면서도 왜 역설적으로 주장하느냐 라는 겁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리스도를 쫓아 새언약의 사도로써
새롭게 말씀을 받아서 증거합니다

그래서 성경이 달라졌어요가 되어버립니다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는다 라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마 5:18, 개역)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어떻게 달라졌는가?

(신 30:12, 개역)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이 아니요
(신 30:13, 개역)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도 아니라
(신 30:14, 개역)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롬 10:6, 개역)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롬 10:7, 개역) 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롬 10:8, 개역)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말씀을 지키고 행하는 자를 나로 규정하시는게 아니라
그리스도로 바꿔 버립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8절은 그 믿음의 주 되신 예수님이 곧 믿음의 말씀이 이 말씀을 이룬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그 위의 구절

(롬 10:5, 새번역) 모세는 율법에 근거한 의를 두고 기록하기를 ㉡"율법을 행한 사람은 그것으로 살 것이다" 하였습니다. / ㉡레 18:5

(레 18:5, 개역)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 나는 여호와니라

이 부분만 보먼 주님이 비밀로써 개인경험이나 마찬가지인 경험을 해 주신 것이 생각납니다
양탈무리의 사모가 뻘건 글씨로 내기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라 그 시뻘건 글씨를 점점점 여고괴담의 클로즈업 같은 귀신장면처럼

(레 11:44, 개역)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바 기어다니는 것으로 인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레 11:45, 개역)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벧전 1:16, 개역)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얼마나 복수심에 쩔어 있는지
우리가 다 그런 복수심에 가득차 있는 가짜임을 보게 된 거죠

믿음이 졸지에 행함이 되니 인간의 믿음은 예수님 제자들처럼 허구헌날 누가 크냐 라는 복수심 밖에 없어요 그 싸움뿐이다 말이죠 부자청년 등돌리고 가는 이유는 복수심 이게 보상을 바라는 이유인 것이거든요
가정부의 마인드 계집종 하갈의 마음입니다
날 건드리면 벌이 77배 이다 라는 라멕의 찬양 아닙니까 이것이 인간이라는 바벨탑이라는 몸뚱아리 이다 말이죠 지옥이 늘 스멀 스멀 올라오고 있지

주님의 불쌍히 여겨주심이 올라오지 않아요


(신 30:14, 개역)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자 보세요 핵심입니다

(롬 10:8, 개역)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신명기 14절 끝이
로마서 10장 8절 끝이 잘 나가다가 끝이 달라요 뭐 이단 입니까 끝이 달라졌어요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이 부분으로 바뀌었어요

자 사도바울이 왜 이렇게 기록하라고 성령부음 받은 겁니까?

이거 중요합니다

로마서가 먼저 있었습니까?
신명기가 먼저 있었습니까?

실체가 먼저 입니까 그림자가 먼저 입니까

실체가 있는데 빛이 비춰져서 그림자가 길게 늘여져 있는데 
우리 인간의 공간과 시간에서는 그 그림자를 먼저 접하게 된 겁니다
그렇다면 그 몽학선생 그림자는 실체에게서 나왔기에
화살표로 실상을 가리키는 손가락 인데
달 실체를 안 쳐다보고 손가락만을 쳐다보면 되겠냐 말이죠
바울이 본인이 과거에 그랬다 라는 것을 알기에

이제 미래완료라는 원인 없는 결과가 나타남으로써
과거를 삭제 해 버리는 겁니다

원인이 생겨버리면 실상은 없어요 그림자 뿐입니다 실상 보이지 않는 소망은 없고
그저 보이는 의문의 반복만 그 그림자만 따라갈 뿐이다 말이다 썩은 동앗줄이다 말이죠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생긴다 이게 과학이지요
과학은 이제 종교가 되어버렸다 말이죠
(알쓸잡 최근꺼? 지난주? 지지난주? 아무튼 대학이 처음나오는 그 사회적 배경을 듣고 보니
이 안다 라는 지식 이 진리를 사랑하겠다 목숨 걸겠다 라는 실천력들이 왠지 허무하게 보이고 느려터져 보입니다 어미 뱃 속에서 느릿 느릿 나오듯 말이죠 주님의 나라는 단 하루만에 세워지는데 이 놈의 나라는 인간들 손에서 지어진 것들은 느려 터져요 그래서 기초만 세우고 완공은 46년이 지나도 미완공인 그래서 다 치시겠다 죽이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왕들을 말이죠 결국은 학문자들도 마찬가지 남 등쳐먹는데 빠르지 정작 공의 정의는 세월아 네월아 이다는 겁니다)

행해야 천국 간다 구원 받는다 이게 종교이고 과학이다 말이죠
과학이 종교가 되었다 라는 주장은 철학자들이 자주 주장합니다
저는 지젝의 주장을 들었는데
인공지능 검색하니 많이 나오네요

행해야 구원된다 이게 유대인의 구약을 보는 시선인데
바울이 그 반대인 믿음으로만 구원 된다 라고
믿음의 주로 
주체를 믿음 되신 주님을 (인간의 믿음 아닙니다 결국 행함이기에 복수심 일 뿐입니다 누가 크냐 싸움 뿐이다 말이죠)

[우리가 행하는] 그 자리 그 문구를 뒤 바꿔 치기 한다 말이죠

말이 뒤 바꿔 치기이지
모세 오경 신명기 기록자 모세 보다 먼저 계신 이가 누굽니까?

누굽 니까  안 철수  철수를 다 했는데 혼자 철수 안하더라 말이죠

누굽 ~~~~ 뉘 까 ~~~~~~ 그 표정이 왠지 히틀러처럼 보이던데 ㅋㅋㅋ

모세 보다 먼저 계신 이
바로 예수님을 집어 넗으면

의도 죄도 심판도 다 달라집니다

우리가 의라고 여겼던 것이 죄고
우리가 죄 라고 여겼던 것이 의로 뒤 바꿔지고
우리가 생각한 심판이 긍휼이 되고
정작 현장에서 간음한 여자 심판할려고 하니까 주님은 뒤 바꿔치기 긍휼로 바꿔 버리고
‘우리가 남을 7번 용서한 그 긍휼은 뒤바꿔치기로 진노로 어딜 7에 70번 용서
번데기 앞에서 되도않는 주름 일곱가닥을 용서라고 긍휼이라고 여기느냐
후 라고 부니까 바람에 나는 겨 쭉정이처럼 날라가버리는 어라 진짜로 심판이네 가 되더라 말이죠

주의 날에 인자의 날에 악인은 돌이키고 의인은 범죄케 되는
악인과 의인의 본인의 의지와 상관 없이 주의 날을 말하고자
인간의 몸 공간 그리고 시간 역사를 모조리 밭갈이 해 버리시는
이 반칙 앞에서
이 반칙이 아니면 이 불륜 부조리 이 불의가 아니면

십자가의 강도가 무슨 수로 주여 당신의 나라에 저를 기억해 달라고 용서를 비는 겁니까

의가
죄가 
심판이

심판 받는 밭이 갈아엎어지는
의가 심판받고 보자 진짜 의인이 용광로 주님의 의의 영광 십자가 속에 집어넣었다 빼 보자
어라 순금이 단 하나도 안 나와요 100 % 백프로 혼합물 찌기 불순물 주제에

이래 이야기 해도 이미 몸에 편하게 자리 잡은 것이 성화론이라서
절대로 이거 못 버립니다
육의 자랑을 할 데가 없으니까 말이죠
거 보세요 부자청년의 그 사고방식 질문하는 내용들 모조리 다
성화론자들 주장과 틀린거 하나 있던가요 딱딱 맞아요

죄 보다 자기가 먼저 있엇거든요
죄는 언제든지 자기가 그것도 먼저 있는 자기가 다스리니까
어라 죄도 다스리니까 다스려지네?
라고 죄가 속이니까 그 속에서
그 죄의 소원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거지요

주님이 그럼 말라꼬 십자가에 달려 죽는 화목제를 왜 굳이 왜 굳이 보여주져야만 했나요
뭐 그리 할 짓이 없어서 그것도 하늘 영광 다 버리고
하나님의 자리 버리고 말이죠
죄인 그것도 제일 비천한 자리
인간 취급도 못 받는 죄인 중의 괴수의 자리 말이죠
이게 비밀 비유 아닙니까

비밀 속으로 못 들어오겠끔
아버지와 아들의 소원 대로만
즉 여기에 인간의 소망 소원 그건 뭘 해도 보이는 소망이기에
보이지 않는 이 아버지와 아들의 소망은 안 보인다는 이유로 아예 소망 자체를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선물로 주어진 성령으로 인해 믿음을 받아야만 비로소 믿음의 산 소망이지
인간들의 소망은 기껏 해 봐야 성화 많이 되게 해 달라는 역시나 죽은 소망
누가 크냐 그것 뿐이다 말이죠 어떻게 하면 자기자신을 더더욱 가치 있는 존재로 만드는

비종재인데 왜 자꾸 존재가 될려고 하는지

미말에 둔 찌기 인데

역사 한참 중간에 가장 왕성한 찬란찬 시기 그 중간 중앙에 종말과는 멀리 떨어진 기간에
찌기 구경꺼리 웃싸꺼리가 아닌 핫플레이스(번화가,유행) 한

관종이 되기를 바라는
인플루언서가 구독자가 많다 보니 광고판이다 말이죠 결국
관종 부끄러워도 관종이 안되면 돈이 안되거든요

그야말로 누가 크냐 라는 결정판 나만 바라봐 ~~~~~~~~~~ 애정결핍의 관종
구독과 좋아요 아람서쩡 감사합니다 박가네 일본 아내의 그 멘트가 정말 딱 귀에 박히죠
캄 사합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왜 같이 섬기는 겁니까?
결국 누가 크냐 라는 이 없는 자아에 대한 자아 의식이다는 거죠
자아가 있는 이상 우리는 이 복수심에서 못 벗어나는 겁니다
오죽하면 니체가 예수님을 흉내내면서 예수님을 끝까지 복수하고자 하는 경쟁자로 삼았을까요
그런 무신ㄹㄴ자 니체를 욕하는 놈들 특히 성화론자 특히 신학자들 이 놈들 예수님을 경쟁자로 삼은 복수심에 들 끓는 놈들 대부분입니다 니체를 욕하면서도 니체의 길을 가고 있어요

아니 철학책을 보면은 그렇게 중독 안되는게 도리어 신기해

그 깐족깐족 유땡민 마치 자신은 안그런냥 높은 자리 앉으면 변한다 라고
이 놈이 글쎄 기독교가 아닌 예수님에 대한 적개심을 아예 공인으로써 대 놓고 해 댔거든요
아는 사람 다 알지만 그게 철학하는 놈들 다 그래요
지가 죄 깃고 안 짓고가 아니라 설난땡이 변하고 안 변하고가 아니라
철학사상이 그렇게 만들어요
인간이 책을 읽는게 아니라 책이 인간을 읽어버리니까 말이죠

이것이 예수님의 시선이다고 했지요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가 있다
독수리가 있는 곳에 주검 시체가 있다
주님은 그 독수리 시선처럼 모든 인간을 마귀가 시체로 밥으로 보듯이
그래서 사자는 양을 미워하는게 아니라 사랑하지요
목사들이 지도자들이 얼마나 백성들을 사랑합니까
자기 밥이니까
빨때만 꽃아서 피 빨아먹는 찰거머리처럼 말이죠
어차피 개 돼지들은 금방 다 잊어버리니까 말이죠
설난땡만 거짓 되냐? 유땡밍도 거직이기는 맹 마찬가지인데
너거들은 둘 외에는 선택이 없겠으나
우리는 바로 그런 느릿 느릿 민주주의 건설하겠다
아직도 기초만 짓고 완공은 46년 동안 지어도 미완공
에라이 성정을 헐라 3일 마에 짖겠다

왜? 처음부터 있었던 성전 곧 단 하루 만에 짖는 성전이니까

인간은 10달 배 아파하면서 그것도 느릿 느릿 태어나지만

주님은 아들로써 아픔도 없이 단 하루만에 해산하는 고통도 없이 태어나셨시에
단 하루 만에 나라가 세워지는 겁니다

이게요 제가 직접 체험 한 건데요
수년째 믿어오던 애들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이런데
아니 제가 고3 들어갈려는 그 순간에 갑자기 믿게 되니까
기독교 애들 천주교 애들 갑자기 다 덤벼들 듯이 미워하더라 말이죠
그 이전에는 개들의 종교도 몰랐고 아무런 시비도 없었는데 갑자기 말이죠

그게 어떤 교회를 가도 마찬가지이더라 말이죠
목사놈들은 더더욱 어떤 성경 구절의 의미를 알아서 기쁘게 여기면
이 놈의 목사들은 그것을 막 시기해요 글쎄
남 잘 되는 꼴을 못 보는 모양이라 ㅋㅋㅋ

지들은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공부해서 그 긴 시간을 투자해서 겨우 겨우 알아냈는데
머리도 나쁜 놈이 아주 쉽게 낼름 남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언 듯이 낼림 알아버리니

실제로 그래요 지금 얼마나 목사들 공부해도 공부해도 엉터리 공부에 빠져서 바른길 가고 싶어도
이 놈의 신학들이 얼마나 느릿 느릿 합니까
죄악은 더 깊어가는데 마지막 때에 믿음을 보겟냐 말이죠
그런데 교히나 신학이 이런 죄악의 깊이에 못 따라가니

이건 뭐 탕자 새끼 하나 와서 그냥 딸랑 30분 일하고 품삯 하루 일당치 다 받아가버리면
이건 뭐 때려죽이고 싶지 않냐 말이죠
그 카이 교회야 말로 행함이 집합체 복수심의 집합체 누가 크냐 싸움 밖에 없는 정치판
벌써 쫓겨나고도 남았는데 다 누리게 해 주시니 부족함이 없으니
죽일 듯이 미워해요 글쎄

아 더 빨리 주님 품에 가게 되면 저들은 아마 미쳐버릴겁니다 ㅋㅋㅋㅋ
어머니 말 마따나 빨리 데려가 주이소

아무튼 주님이 먼저 인데
주님이 먼저 있음을 말하는 교회를 목사를 본적이 없어요
막상 격어 보면
자기를 자꾸 알아달라고 징징 거려요
제발 자기를 믿어 달라고 얼마나 징징 거리는지
무시하면 바로 보복 미사일 핵탄두 레이져 눈 빔이 막 날라오죠
얼른 도망쳐야죠
다들 목사 눈치 보며 사는 놈들 뿐이지
그렇게 성화되었다고 하는 놈들도 말이죠
하늘의 자유하는 예루살렘 아내로써의 교회는 없고
다들 서로 서로가 계집종 하갈 땅의 계집종 하녀 가정부로써
그냥 서로 서로 월글 주고 받고 돈으로만 맺어지자
딴거로 맺어지면 안돼 라고 다짐의 다짐의 다집을 하는
반드시 보험 꼭 챙겨주고 ㅋㅋㅋㅋㅋ
내 죽으면 내 가족 누가 챙겨주냐고
여기도 징징 저기도 징징

신명기 보다 로마서 곧 예수님이 먼저 있었고
교회 보다
율법 보다
선지자 보다

그래서 먼저 예수님의 나라 그냥 나라가 아닌 단 하루 만에
인간들이 예수님 나라 세우겠다 라는 꼬라지는 느릿 느릿 46년 동안 해도 미완공인

그래서 아예 인간의 손에 짓지 않은 성전으로써 성령의 전인 교회를
바로 우리를 세우니까

이 가짜들이 이 참된 주의 피로 세운 교회를 가짜교회가 무너뜨릴려고 발악을 해요
유땡민 같은 저런 가짜 정의 가짜 공의를 세우는 자들이 말이죠
아니 그런 자들이 무슨 정의나 공의가 단 하나라도 있더냐 말이죠

다들 허사를 경영하는 보이는 것과 보이는 것을 대조하니까 남의 눈의 대들보 떼낸다고 자기 눈의 기둥을 못 빼는 겁니다
보이지 않는 먼저 나신 이를 대조하면
그래야 미친 놈 소리 듣는
발가벗고 3년 동안 돌아다니는 비유 비밀을 외칠 것 아닙니까
그들은 비밀 안에 못 들어옵니다
거짓 인도자 이니까 들을 필요가 없다 말이죠
둘다 똑같은 놈들끼리 서로 누가 크냐 라는 싸움 뿐이다 말이죠

이렇게 어렵게 어렵게 느릿 느릿 겨우 민주주의 한 번 해 보겠다 라고 당선 되어서 할라 칼라 칼라 칼라 하는 순간

주님께서 행성 보내 지구를 종말 때리면 ㅋㅋㅋㅋ

아직도 기억 납니다
어릴적 일요일 아침에 느긋하고 나른한 12시 가까워지면 외화 외국 영화를 하는데 제가 뭘 알겠습니까 그런데 하도 특이해서 각인이 된게 뭔고 하니
천주교 사제 신부가 골프를 좋아라 하다 보니
골프를 칠려고 하니까 마침 비가 와서
비 그칠 때 까지 기다리는데
마침 기다린 보람이 있게 비가 그쳐서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기도하고
드디어 칠려고 하는데 또 비가 오더라 말이죠 지나가는 비라서 또 기다렸지요
그렇게 몇 번을 그렇게 하다가 시간도 되고 해서 말이죠
아직은 남았는지 몇 번을 반복하다가 드디어 이제 다 지나갔겠지 라고 드디어 마지막이다 싶어서
감사하다고 기도하고 막 칠려는 순간 또 비가 오니까
그 신부 사제가 그것도 나이 많은 늙은 신부다 말이죠

도자히 못 참아서 참다 참다 못 참아서 골프채를 듣고 하늘에 삿대질을 하는데

어라 갑자기 번개가 쳐 버리니까 그 신부를 날려 버리니
그 자리에서 없어져 버렸다 말이죠
방금 내려 꽂은 번재로 인해 금방 타다 꺼져버린 연기만 조금 날리고 바닥만 작은 동그라미로 검게 타버린 것 외에는 아무 일도 없었는냥 말이죠

그것을 아마 초등학교 4학년 쯤 이사 오기 전이니까 3 학년 4학년 때 봤으니까

뭐 저런 지겨운 영화가 다 있나 싶어서 아마 가족 중 누가 보고 있는 것
들락 날락 하다가 저 혼자 그 장면을 보게 되었지 싶은

그 마지막 장면에 갑자기 머리가 쭈뼛 쭈뼛 소름이 쫘악 올라오더라 말이죠

번개가 쳐서 사람이 날라가버린 그 장면은 금방 지나가서 그때도 안면인식 장애라 전자기기는 좀 나았지만 작은 티비 때라 잘 안느껴졌는데

뭐가 무서웠느냐 하면
그 신부가 그렇게 천사처럼 참고 참고 또 감사하고 감사하고 부드러운 모습과 인자한 모습 온갖 광명한 천사 모습을 해 놓고서는
갑자기 화를 낼 때 그 모습
그야말로 화가 끝까지 나서 왜 살인자가 사람을 죽일때에 온 얼굴을 다 있는대로 다 펴서 얼려서 살인하는 장면처럼 하늘에 골프채를 삿대질 하면서

하나님 까불면 죽어 라고 외치는냥 거의 대사도 없어욧
그 화내는 모습으로 팔을 올렸다 내렸다 삿대질 하는

그런데 제가 만나본 목사들 놈들 안 그러는 놈이 없을 정도로
참다 참다 결국 폭발하더라 말이죠

아니 처음부터 참지를 말던가

아니 저거들이 잘못한 것을 내 한테 뒤집워 씌우면서

아니 그래 율법 네 배나 갚으세요 라고 부들 부들 천사처럼 이이갸 하겠습니까?
화를 내면서 골프채 들고 하늘에 삿대질 처음에는 골프복처럼 온통 하얀 옷 하얀 바지라서 신부 사체인줄 몰랐는데
목에 로만 칼라 그것만 달라서 신부인줄 그것도 로만 칼라 이게 뭔지 모를때인데도 그게 기억이 난 것 보니 얼마나 각인이 되었는지
그 천사가 한 순간에 악마로 ㅋㅋㅋㅋ

결국 그 동안 목회 한 것 뭐냐 말이죠 사제도 목회 라고 표현 하나요? 봉헌 이라고 하남~~~~

결국 인간들이 하는 모든 예배 찬양 기도 이거 딱 하나로 결론 지어집니다

하나님 까불면 너 죽을줄 알아

우와 이거 명언입니다

다른 메시지가 인간들 교역자에게서 나온 적이 없어요


그래서 신명기가 율법이 모세 언약이 먼저 되면 큰일 납니다
그림자가 먼저 있으면 큰일 나요

결국 그림자만 섬긴 자들은 실체 되신 예수님을 죽일 수 박에 없어요
그림자만 섬겨왔기에
실상이 오면 미워 죽어요

야들아 내가 이 그림자의 실상이란다 라고 하니까
자꾸 인간들이 유대인들이 오늘날 교회사람들이 꺼져 라고 하는 겁니다

그것은 예수의 영을 받은 자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꺼져

바로 너희들이 꺼져 라고 외친 그 분은
사도바울은 신명기 끝 부분은 

반대로 인간 꺼져 라고 하고
인간들이 꺼져 라고 했던 그 버림받은 분을 반대로 집어넣고

행함이라고 하지 않고

믿음이라고 표현합니다

즉 말씀은 행함이라는 인간과 붙이는게 아니라 그건 그림자 이고

반대로 그림자로 꺼져 라고 취급받았던

너희가 죽인 예수를 하나님은 주의 자리에

이 믿음을 앉히시고 행해서 이룬게 아니라 믿음 자체가 이룬채로 내려오셨기에
10달 배아파서 낳은게 아니라
하루 만에 아픔 없이 다 이룬채로 믿음이 먼저 있었기에

보라 이 새일을 다 이루었다 라고

이게 성경 구절 있어요
이사야 마지막 부분 66절 이전 65잘 이지 싶은데

즉 하나님이 손 수 직접 마련하신 화목제가 아니면

그 어떤 인간의 완벽하게 갖춘 제물 제사 라 하여도
주님은 돼지 부정한 우상숭배의 제사상으로 취급하겠다 라고
두 언약으로 대조해 한 세트로 보시는 겁니다

(사 65:4, 개역) 그들이 무덤 사이에 앉으며 은밀한 처소에서 지내며 돼지 고기를 먹으며 가증한 물건의 국을 그릇에 담으면서
(사 66:3, 개역)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으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사 66:17, 개역) 스스로 거룩히 구별하며 스스로 정결케 하고 동산에 들어가서 그 가운데 있는 자를 따라 돼지 고기와 가증한 물건과 쥐를 먹는 자가 다 함께 망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즉 십자가라는 화목제 아니면
남은자 아니면 모조리 다 소돔과 고모라 이듯이
화목제 아니면 모조리 다 우상숭배의 제사로 보신다
미완료만 반복하고 결피을 채울려는 버밸론 여자들의 바알숭배와 같이 보시겠다 라는 겁니다

그렇게 돼지로 검색하니까 저렇게 나오고

단 하루 만에 로 검색하면


(사 66:8, 개역) 이러한 일을 들은 자가 누구이며 이러한 일을 본 자가 누구이뇨 나라가 어찌 하루에 생기겠으며 민족이 어찌 순식간에 나겠느냐 그러나 시온은 구로하는 즉시에 그 자민을 순산하였도다


캬 드디어 다시 봅니다 이 말씀

아 구로치 못한 자여
잉태치 못한 자여 라고 저는 불임여성으로만 봤는데

그게 아니라 상대적이니까 대조되는 저쪽이 순픙임신여인이라면 그런데
그것 뿐만 아니라

구로 하기도 전에 하루 만에 퍼뜩 나와버렸다 라는 겁니다
그 정도로 급하다 말이죠

그렇게 낳은 자식이 이스라엘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애굽으로부터 10달 만에 아니 10가지 재앙 만에 나왔는데
어라 이스라엘 본인들이 애굽이 되어버렸네
그래서 갈아엎어버리고 이스라엘 의미를 그대로 가지고 와서 새로 갱신하고 인간들은 모조리 탈락 시키고 새이스라엘 개념으로써
이제는 10가지 재앙도 필요없이 예수님이 먼저 본을 보이키는 주틀이 되고 그 붕어빵 주틀에 하루 만에 새로운 민족이 생기는

그카이 개같은 이방인이 애굽이 된 이스라엘 앞에서 하루만에 막 태어나니까
우물가의 여인처럼
불의한 청지가처럼
탕자처럼
귀신들린 딸의 어미처럼
매국노 세리처럼
한쪽 강도처럼
마구 마구 하루 만에 예수님 만나자 마자 막 태어나는
예수님 따라 부활의 첫열매 뒤로 줄줄이 소세지처럼
단 하루 만에 말이죠

과거의 이스라엘 민족처럼 규격화 되고 그런거 없어요 주님이 규격 그 자체가 돈 채로 다 이루셨기에
333 333 333 333  동서남북 열 맞추어서 사열대 의식 훈련
이것을 제식 훈련이라고 허지요 오래 지났지만 동원예비군 훈련 4박 5일 동안 아니
제식 훈련만 하다가 끝났다 말이죠 그것도 앞에 눈에 띄이는 자들만 고생이고 뒤에 보이지도 않는 자들은 썰렁 썰렁
아니 왜 이것만 하지? 내가 동원예비군 맞이할때에는 이 놈들 기여이 보금창고 문 따서 총검을 훔치는 바람에 생고생 했는데 행정병이라서 말이죠
후방이라서 그런가 아무튼 열 맞추고 뭐 그런거 없어요
주님이 이미 다 이룬채로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그런 눈도창 하나 필요 없이
관종될 필요가 없이

완벽한 사랑의 시스템
오죽하면 7에 70번의 용서이겠습니까?
이게 333 333 333 333 14만 4천 이라는 동서남북 온 우주에까지 

부족함 없이 다 완료된 채로 뻗어있는 화목제의 왼성의 완료의 영광성인 반면에

상대적인 짐슴은 사람의 수가 6이 아무리 꽉꽉 그 빈칸을 세 번 채우고 채우고 채워도
모잘라 모잘하 함량 미달 무게가 안 차는 겁니다

의가 모자르다 라는 거지요
정의로 의 곧 거룩도
즉 애초부터 없었다 라는 겁니다

저들은 애초부터 없었던 자리에서 주님 홀로 꽉꽉 채운 그 주님의 보혈의 피로 거룩을 채우심에

아무거소 한 것이 없이 이 십자가의 화목제에 복종했을 뿐이고
복종했으니까 행한거 아니냐가 아니라
주님이 일방적으로 편파편애 무시험 합격
시험 친적도 없는데 합격
일방적으로 퍼 부어버렸고

반대로 함량미달은 그 밑빠진 독에 아무리 넣고 넣고 넣다가 다 소진이 되니까
하늘의 여신에게 바치지 않아서 망했다 라고
계속래서 이젠 가난한 자의 것을 빼앗아서 잔칫집 유지하겠노라고 등쳐 먹는
결국 풍요했다가 가난해져서 망한게 아니라
애초부터 없는 나를 채워버렸기에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리가 없었던 처음부터 쭉정이 바람에 나는 겨 였다 말이죠

그러나 의인 되신 예수님이 이 심판을 이 죽음을 통과하심으로써

홍해를 건넌 그 그림자 그 이스라엘의 실상
아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셨구나 이 실상으로
이제 우리가 실패하던 성공하던 상관 없이
이미 다 이룬채로 주님 가신 길에 동참하고 동행할 뿐
누가 성공했니 누가 실패했니는 아무런 의미 없고

이미 주님이 넉넉히 이겨버린 이 사랑 안에서
뭐든지 누리는 겁니다 실패든 성공이든
바로 이것이 믿음의 말씀이 먼저 떳기에
그 완료를 우리는 증상으로써 누리는 겁니다

인간의 행함에서 나오는 믿음인 복수심이 아니라
누가 더 많이 용서했냐 너는 6번? 나는 7번 이런 복수심이 아니라

믿음의 주 되신 예수님께서 나 보다 먼저 있었던 죄를
나 보다 먼저 계신 주님이
또 그런 죄 보다 먼저 게신 주님의 약속이 사랑이

먼저 있었기에
넉넉히 이김이요 부족함 없음이지
그 주님의 숙제를 주서 먹기도 바쁜데

줘도 못 먹는
내 숙제에 이제 미련 떨쳐버리고
이 다 이룬 완료의 믿음나

나 보다 먼저 되신 믿음만 외치시면 됩니다

저들이 아무리 부요해봤자 다 약탈한 것이요 후 불면 다 날라가지만

주님은 미쁘시사 든든한 바위라고 견고함 흔들리지 않습니다
송명희 작사로 제가 작곡한 노래
다들 비웃었지만
또 어떤 교회에서는 또 너무 지나치게 좋아라 해서  양가적인 반응에 아주 아주 낯설으을 느낀 적이 있었는데
얼마든지 나는 변할 수 있어도 하나님은 변치 않으시나니
하나님의 변치 않으심 힘입어 나도 변치 않으리라

얼마든지 나는 변할수 있어도 얼마든지 나는 거짓 될 수 있어도
하나님은 거짓 모르시 나니 하나님의 진실하힘을 덧 입어 나도 진실 원하리라

우와 30년 만에 1절 가사 겨우 그것도 생각이 나넹 ㅋㅋㅋ

딱 두 곡 지었지요 왕이신 하나님 송축하라 시편 145편과
얼마든지 송명희 시를 허락도 안 받고 그 20대 때에 뭘알겠습니까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저 좋아서 막 한 것 뿐이지요

그냥 신나게 주님의 용서를 누리기 바빴을 뿐인데 말이죠
그걸 또 시기하는 놈들은 늘 눈에서 레이져를 쏘기 바빳고요 ㅋㅋㅋㅋㅋ

바로 이 완료

다 이루심
부족한 없으신

이 믿음의 말씀을 바울은 신명기 보다 로마서가 먼저 있었다 라고


저 미완료 그림자 보다
(그렇다고 구약 그림자 버리자가 아니라
율법을 몰라도 되는 이방인을 율법을 알게 하시는 이유는 율법 지키라고 하고자 함이 아니라
저들의 넘어짐으로 빈자리가 생겼을 뿐 잘나서가 아님을 오히러 주님의 그 사랑의 높이 깊이 넓이 길이는 심판의 자리에서 더 누릴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말이죠

(롬 11:12, 개역)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

(롬 14:4, 킹흠정) 다른 사람의 종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냐? 그의 서거나 넘어짐이 그의 주인에게 달려 있은즉 참으로 그가 세워지리니 하나님은 능히 그를 서게 하실 수 있느니라.

악인 의인 언제든지 팔을 어긋맞게 하실수 있다 그러니 토기장이 비유는 그 누구도 예외가 될수 없는 반발성을 품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비유 비밀이지 오늘 내가 비일 속에 들어갔다고 내일 비밀 속에 들어갈 보장이 없다 말이죠 내 위주는 애초부터 없었다니깐 유대인처럼 선줄로 알면 언제든지 넘어질까 조심 그러니 원가지도 안 아끼는 판국에 죽은가지 접붙인 가지 언제든지 버릴수도 있다 말이죠 그러니 내 좋으라고 주어지는 것 하나도 없다는 거죠 모든게 주님 좋으라고 그 주님과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겁니다)

(롬 8:28, 개역)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완료인 실체가 먼저 있었음을 유대인들에게 맞아 죽어도 상관 없을 정도로
넉넉히 누리면서 외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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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그 양을 찾을 것이라 그 양을 찾을 것이라

21-095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 양을 찾는 자가 없도다 (겔 34, 1- 6)
2025. 6. 22. (5월 30일 금요일 녹음)


21-094 그들이 한 선지자가 있었던 줄을 알리라(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겔 33,28-33)
2025. 6. 1. (5월 8 9  녹음)

한 선지자가 먼저 떳기에 벌어진 상황 (한 선지자의 날; 의인이 범죄한 날, 악인이 돌이킨 날)

21-093 착각 ;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주실 것이라는 착각 (겔 33,24-27)
2025. 5.11 (4월 18,19 녹음)

인자의 날 (의인이 범죄한 날, 악인이 돌이킨 날) (겔 33,12-16)
에스겔 2019 2025. 4. 19. 14:01
21-092 인자의 날에 저는 계몽 되었습니다 당신의 나라에 저를 기억하소서 (의인이 범죄한 날, 악인이 돌이킨 날) (겔 33,12-16)

〈에스겔 33,28-33, 개역한글, 구약성경 1204쪽, 찬송가 186장 새 254 내 주의 보혈은, 찬송가 287장 새 605 오늘 모여 찬송함은〉

〈찬송가 442장 선한 목자 되신 우리 주, 새찬송가 569장〉

새찬송가 569장(통442) 선한 목자 되신 우리 주
새찬송기 277장(통335) 양떼를 떠나서
새찬송가 354장(통394) 주를 앙모하는 자
새찬송가 297장(통191) 양 아흔아홉 마리는
통합찬송가 (성자:예수 그리스도) 100장 죄인 괴수 날 위해


〈찬송가 335장 양떼를 떠나서, 새찬송가 277장〉


(겔 34:1, 개역)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겔 34:2, 개역)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을 쳐서 예언하라 그들 곧 목자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자기만 먹이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 목자들이 양의 무리를 먹이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냐
(겔 34:3, 개역)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의 무리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겔 34:4, 개역)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어 주지 아니하며 쫓긴 자를 돌아오게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강포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겔 34:5, 개역) 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며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도다
(겔 34:6, 개역) 내 양의 무리가 모든 산과 높은 멧부리에마다 유리되었고 내 양의 무리가 온 지면에 흩어졌으되 찾고 찾는 자가 없었도다

(겔 34:1, 새번역)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겔 34:2, 새번역) "사람아, 너는 이스라엘의 목자들을 쳐서 예언하여라. 너는 그 목자들을 쳐서 예언하여라. '나 주 하나님이 이렇게 말한다. 자기 자신만을 돌보는 이스라엘의 목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목자들이란 양 떼를 먹이는 사람들이 아니냐?
(겔 34:3, 새번역) 그런데 너희는 살진 양을 잡아 기름진 것을 먹고, 양털로 옷을 해 입기는 하면서도, 양 떼를 먹이지는 않았다.
(겔 34:4, 새번역) 너희는 약한 양들을 튼튼하게 키워 주지 않았으며, 병든 것을 고쳐 주지 않았으며, 다리가 부러지고 상한 것을 싸매어 주지 않았으며, 흩어진 것을 모으지 않았으며, 잃어버린 것을 찾지 않았다. 오히려 너희는 양 떼를 강압과 폭력으로 다스렸다.
(겔 34:5, 새번역) 목자가 없기 때문에, 양 떼가 흩어져서 온갖 들짐승의 먹이가 되었다.
(겔 34:6, 새번역) 내 양 떼가 모든 산과 모든 높은 언덕에서 헤매고, 세계 각처에까지 흩어지게 되었는데도, 그 양 떼를 찾으려고 물어 보는 목자가 하나도 없었다.



목자라는 의미는 양과 관계된 기능적인 의미입니다
만약 목자 단독적인 의미로 보게 된다면 존재만을 따지게 되지
양과의 관계성은 없게 되지요

그래서 우리는 목자 라는 존재 보다 목자가 해야할 기능을 통해서 비로소 양의 의미도 기능도 보게 되는 겁니다 양도 독자적인 존재로 파악할 수가 없게 되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어머니 말 마따나 창조주를 모를턱이 있나? 그런데 성경말씀은 모른다 라고 단언해 버리는 겁니다 즉 이스라엘은 창조주의 기능을 전혀 모르고
창조주 존재를 믿는 유일한 민족이라고 자부했으니까 말이죠
즉 이 말은 결국 자신들의 유일한 선민 의식을 투영한 거지요
지 혼자 존재론적으로 따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 본인이 쪼개져서 분절이 되었기에
나는 너거들이 믿는 존재적 하나님이 안 될란다 라고
임금 삼고자 할 때 도망치셨듯이
인간이 다가오는 일치성 합일성 동일성 연합성 이게 오늘날 성령론 신학이지요
개방적이다 즉 성령 핑계대고 개장이다고 우기지만 자신이 그 정도로 하나님에게 열려있는 자 있다 라고 자기의 존재성을 부각할 때
정작 성경에서의 성령은 단절성이다는 겁니다
즉 그 따위 속임수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어딜 속이고 꾀냐 라고
단절 시켜버립니다
인간은 자꾸 연합하자고 찌기를 혼합시킬려고 할때에
주님은 너희들이 더럽히지 못한 기념이름을 아껴뒀다 라고
인간의 존재 곧 나 먼저 있엇다에서 출발한 믿음에서
결고 나올수 없는 예수님의 존재 아닌 기능 곧 십자가에서 달려 죽는
그 존재 아닌 예수님의 죽음에서(십자가) 출발한 믿음인 이 단절을 통해서

비로소 양 그것도 잃어버린 양입니다 기능이지요 존재가 아닌
그러니 존재를 주장하는 이스라엘은 이 잃어버린 양 개념 자체를 알수가 없습니다
비유 비밀이니까 말이지요
욥이 이 중간에 낑긴 자로써 비유에 비밀에 스스로 들어갈수가 없으니
중간에 낑겨 애매한 고난을 받는 겁니다
이것이 비유 비사 라고 했지요
괴롭히는 하나님을 욥의 세친구에서는 믿을 수 없거든요
자기존재를 투영한 하나님을 따르니까
괴롭히는 하나님이 되어버리면 자기 존재 또한 자기자신도 괴롭히고 남도 괴롭히는
이건 인간의 머리에서 나올수가 없다 말이죠
인간을 괴롭힐려다가 이러다 다 죽습니다 라는 이 비밀 비유에
하나님 본인이 칼 날려 놓고 하나님이 본인이 그 칼에 맞아 죽는
죽는 하나님 이것이 의로움 거룩인데
이런 거룩은 인간의 숙제에서는 날라가버린 거죠
주님 본인의 숙제로써만 나오니까 말이죠
그런 앞뒤 모순된 하나님의 의를 인간이 흉내낸다? 숙제한다? 독사의 자식이지요
그 의 속에 낑겨버린 빵구멍 난자 그 구원의 의의 뿔에 빵구멍 난 자가 바로 잃어버린 양으로써

진짜 목자와의 관계성에 놓여지는 겁니다 즉 잃어버린 양을 새로 창조해야 하니

나는 창조주 믿는데 다른 새피조물을 창조한다고? 그럼 난 그 창조주 죽여버릴래
하나님 까불면 죽어 라고 나오는 거죠

자 그래서 이 목자와 양의 관계성을 말하고자
즉 이미 먼저 떳기에

그 반대되는 두 언약이 한 세트가 되어야 하듯이

가짜 목자와 가짜 양들의 기능 즉 존재를 우기는 놈들
비유가 없는 비밀이 없는 비밀 밖의 존재들
예수 밖의 존재들이 나열이 되는 겁니다
증상물로써 튀어나와야 한다는 거죠
이것이 토기장이 비유라고 했잖아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거짓 목자들이 등장하는데
지도자 급 곧 예수님 당시에서 있엇던 선생님 급
마을 이장 급 조차도 이런 목자들에 해당되는 자로써 언급이 되는 겁니다

부자청년이 유대인의 관원이었다고 하잖아요
즉 공무원 신분으로써 나랏일 하는 관직에 있었다
요즘 9급 공무원 제일 낮은 신분은 나랏일 하는 자로 안 보잖아요
그저 시다바리로 보겠지만
국회의원이면 나랏일 하는 자로써 추켜 세워준다 말이죠

아무튼 백성을 인도하는 자로써 9급 공무원 조차도 이 관원에 해당되는 자 이다 말이죠

그런 나랏일을 하는 자 모두를 지도자급으로써 목자로 표현했고
그 반대인 자들 곧 도움을 받는 자들은 양에 해당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 목자들이 오늘 에스겔 본문에서 양을 찾지 않는다 라는 이유로
나쁜 목자로 표현이 되고 있습니다

보통 주님이 이스라엘의 범죄를 지적하실때에 이스라엘 전체를 향한 지적이었는데
굳이 오늘 본문에서는 목자들 부류만 따로 떼어내서 지적을 하신다 라는 것은

장차 오실 메시아 라는 목자를 염두하시고 즉 먼저 떳다 라는 거죠
존재론에서는 말이 안되지만 기능적 즉 비유로써는
인자의 날이 먼저 떳기에 악인과 의인이 비로소 그것도 기능이 반대로 나타나죠
악인은 돌이키는 날이고 의인은 범죄하는 날로써 말이죠
그러니 다들 의인이라고 자부했던 그 목자들이 악인으로써 드러나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원수로 드러나야 하는 이유는
인자의 날이 먼저 떳기에 나타나는 비유 이다는 겁니다 인자의 날 비유의 날이다 말이죠
이것이 신약에서는 은혜의 날이다 라는 구원의 날이지요
구원의 날은 나 좋아라고 주어지는 날이 아니다 라는 겁니다
도리어 단절을 느끼는 잃어버림을 느끼게 되는 거죠
화로다 화로다 가슴을 치며 어찌할꼬 어찌할꼬 나는 지옥의 몸이 맞았구나 라고
십자가에 모든 육체가 못 박힘을 통해서 비로소
이러다 다 죽어 라는 인자 덕분에 아껴둔 남겨둔 한 씨 덕분에 비로소 아는 겁니다
이것이 목자의 기능인데

부자청년 유대인의 관원은 전혀 다른 목자 곧
사람들이 바랬전 모습을 갖추었던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선에서는 악하다 라는 거죠
독자적인 존재로 사람들이 원하는 지도자상을 갖추어 본들

잃어버린 양 곧 이 비밀 이 비유성인 특급이스라엘 개념과 안 맞는 목자상이다는 거죠
잃어버린 양은 신약에서의 새이스라엘 기능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과 안 맞아요 비유 비밀 예수안 개념이 없으니까요

의사의 기능에 딱 맞는 주께만 범죄한 환자의 기능 비유 비밀이 없으니까
그저 존재 존재 존재만 우려먹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만 도배가 되어있는 겁니다

그렇다고 인간의 숙제로 성화론자들처럼(수구꼴통) 개혁주의자들처럼(좌빨빨갱이) 그 비밀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느냐? 중간 중도지역? 없어요
자기들끼리 들어갓다고 우겨도 맹 존재일 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가 아닌 겁니다
며느리 다말의 시어머니 나오미를 보세요 자기 숙제로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갈 숙제가 있었는지?

결국 주님의 시선에서 목자를 언급하시는 이유는
앞으로 오실 메시아를 기준으로써 볼때에

지금 유대인에게 목자가 있는데 존재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목자가 없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아 그럼 양만 불쌍하겠군요??????
아닙니다 문제는 목자가 없어서 양이 흩어진 상태로 보시는데

양이 흩어져 있기는커녕 오히려 더 생생하게 더 잘 단결되어서
집단 공동체 의식으로 저런 목자들로부터 잘 인도를 받고 있다 라고 한다 말이죠

그러니 졸지에 제가 건방지게 이런 표현을 쓰겠습니다
졸지에 하나님의 이런 도발적인 시선으로 인해서
잘 연합이 되었고 잘 단결이 되어 있던 집단들이 졸지에
영구 없다 유대인집단 없다 라고 해체 아닌 해체로 취급받고 있는 겁니다

아니 그렇다 손 치더라고 아직도 여전히 눈에는 잘 연합 잘 단결이 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저런 씨알도 안 먹히는 도발을 왜 주님은 계속해서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시느냐 라는 거죠

말 만 장차 오실 메시아의 기준이라고 하지 말고요

그런데 정작 진짜 예수님 당시에
그렇게 존경받는 뷰자청년 유대인 관원 지도자가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받음에도 불구하고

전재산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다 라는 이유로
목자 없음으로 판명하신 그 비밀이 그 비유가 맞았다 로 드러나더라 말이죠

비록 그렇게 자그마한 부자청년 개인에게 벌어진 사건이지만
그런다고 유대인 전체 사회가 금이가고 질서가 파괴가 되며
유대인집단이 해체되는 수준까지 가지 않아요

눈으로 보는 그 집단사회는 여전히 견재하고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는 겁니다
물론 하루 딱 하루에 그 동안 예수님이 언급한 말들을 묵혀두었다가
딱 하루 만에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림으로써
오히려 유대사회는 더더욱 결집이 되어버렸지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말이죠

물론 나중에 70년에 예수님 30년 빼면 40년 뒤에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김없이 가루가 되어 남지 않게 되었지만
그런 예언 같으면 그 예언을 들은 그 당사자가 들었어야 했을 말들을
그들은 이미 나이 들어 다 죽은 뒤에
이루어 지면 이건 뭐 깨달으란 말이 되냐 말이죠
바로 그겁니다 한 참 뒤에 이루어지면
당사자 본인들이 다 죽고 난 뒤에 이루어지면
그게 무슨 예언이냐 라고 하겠지만

바로 기록된 말씀의 시선에서는 일부러 듣고 깨달아 고침을 받을까봐
못 듣게 하시고자 하는 것이 비유 비밀의 기능이다는 거죠

그러니 단절을 느껴야 하는데
성령을 모조리 개방 연합으로 해석을 하게 되니
신사도운동의 뷰류인 순복음 이단들이 계속해서 나오는 겁니다
이들이 활동을 해 줘야 지옥을 꽉꽉 채우겠지요

자 이렇게 장차 오실 메시아 라는 참 목자 입장에서는
뭐든지 거짓 목자로써 들통나는 입장이고

거짓 양으로 들통나는 입장인데

누가 자기자신을 잃어버린 양으로써
장차오실 메시아 곧 참목자의 시선 그 기준에러 여길수 있겟냐 말이죠

남겨둔 한 씨의 기능 곧 이러다 다 죽어 라는 그 온유가 아니였으면
남은자 곧 자기 죄로 우는자가 나올수가 없기에

이미 선민의식이 깔린 입장에서 누가 남은자로써 자신을 저 기준에 의해
심판받아 마땅한 자로 인식하겠느냐 라는 겁니다

그저 시간순으로 내려우는 혈통을 따라 사람의 뜻으로 따라
자신을 선민으로 여겨버리면 끝나는 이렇게 간단하고 쉬운 의미를

말라꼬 거짓목자를 거쳐서 장차오실 메시아와 그의 잃어버린 양의 의미 그 비밀 그 비유를
그 말귀 못 알아 먹는 그 복잡하고 어렵고 말도 안되는 그 의미를
말라꼬 살펴봐서 목자의 바른 의미를 알아야 하느냐 라는 겁니다

섬기는 인자의 이러다 다 죽어 라는 인애와 자비를 구할빠에
임마누엘 스알야숩 마헬살랄 하스바스 구할 빠에

이미 익숙하게 내려오는 전통법 장로의 유전을 따라서
번제와 제사만으로 충분히 이룰수 있다 말이죠
그 정도로 목자 시스템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사회가 바로 유대사회이다 말이죠

그것을 흉내낸 것이 바로 교황시스템 아닙니까 천주교 말이죠
개신교는 그런 대기업을 따라하는 개인 자영업자로써
목자 시스템을 갖추었고 말이죠

그들 속에 있는 양 시스템을 목자들이 잘 관리해 주고 있는데

말라꼬 또 따로 잃어버린 양의 기능을 왜 따로 구비해야 하느냐 말이죠

구비하라는 말이 아니라 주님이 일방적으로 이렇게 밀어붙이시겠다 라고 하신다 말이죠
그카이 막 짜증을 내는 겁니다
아니 니가 뭔데 이 잘 짜여진 시스템을 니가 뭔데 허물어버리느냐 라고
그래서 나가 라고 하는 겁니다
어이구 잘 됐다 그 동안 숨막혔는데
학부모들이 그저 자기 자식 먼저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목자를 찾고 있지
꼭 바알 우상 섬기는 여자들 모습과 같아요
자기자식 고아 안 만들겠다 내 남편 백수 안 만들겠다 나는 반드시 과부가 안되리라처럼 말이죠

잃어버린 자 안 되겠다 라고 완악한 모습으로 까까득해요

안 그런 교회가 없어요 전부다 짤라버리겠다 라고 다들 덤벼요
왜? 잘 짜여진 목자 시스템이 있거든요

그렇게 잘 짜여진 시스템에
잃어버린 양을 찾는 목자를 소개하게 되면
과연 들어갈 틈이 있기는 할까요?
빽빽한 그 시스템이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뽑는다 라고 다들 덤벼들까요

참 지금 생각해도 아찔합니다
에스겔이 이런 하나님을 저렇게 빽빽하게 잘 짜여진 시스템에 증거한다는 것 자체가
비유 비밀이기도 하지만
이미 목숨을 내 놓고서 증거하는 것이다 말이죠
왜 자꾸 죽는 길로만 갈까요

그냥 다른 곳 사막에서 유대인 버리고
새로운 민족 새로 만들어서 새롭게 시작하면 될 것을 꼭 구지
저들 틈 속에 비집고 들어가서
그것도 딸랑 1명을 통해서 목자와 양의 관계 그것도
악한 목자를 거쳐서 나온 선한 목자와 그냥 양도 아닌 잃어버린 양과의 관계
곧 기능을 꼭 저 원수의 목전에서 구지 굳이 꼭 원수 목전 보란 듯이
펼치시는 이유는 뭘까요?
죽는거 뻔한데
아니 죽을려고만 하는 이유는

바로 그 죽음을 건드리는 것이 사랑

죽음이라는 폭력 보다 더한 폭력이
죽음 보다 강한 사랑이기에

이 죽음이라는 가면을 벗기는 일만 골라서 하신다는 겁니다

그러니 거짓 목자란 결국 이 죽음을 피하는 길로만 간다는 거죠

우리가 다 이렇거든요 죽음을 피하는 길로만 가는


요즘 젊은 청년들 보세요 전세계적으로 젊은이들이 보수에 빠져든다 라고
사실은 보수에 빠지는게 아니라 죽기 싫은 길로만 가는 겁니다
그렇다고 젊은 여성들은 진보에 빠진다 라고 죽는길로 가는 것인가?
역시나 살길로 가잖아요
여성 혐오를 펼치는 젊은 남성을 피해서 역시나 살길로 간다 말이죠

즉 이래나 저래나 맹 살길로 가는 입장에서

성령을 부음 받은 청년은 막 죽으러 가요
목숨 걸때가 있으니 행복한 청년인 거죠
반대로 곧 죽어야 한다고 빨리 가야 한다고 하는 늙은이는
오히려 순풍 순풍 아이를 막 낳아요
그것도 그냥 아이가 아니라 약속의 자녀를
죽은 태에서 막 낳아요
이거 비유 비밀 성령의 일입니다

육체가 할 수 없는 반대의 일을 한다는 겁니다

(욜 2:25, 개역)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늣과 황충과 팟종이의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주리니
(욜 2:26, 개역)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를 기이히 대접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영히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욜 2:27, 개역)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영히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욜 2:28, 개역)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욜 2:29, 개역)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욜 2:30, 개역)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욜 2:31, 개역)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욜 2:32, 개역)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행 2:17, 새번역)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마지막 날에 나는 내 영을 모든 사람에게 부어 주겠다. 너희의 아들들과 너희의 딸들은 예언을 하고,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꿀 것이다. / ㉣욜 2:28-32(칠십인역)
(롬 10:13, 새번역)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 ㉧욜 2:32


국가라는 짐승이 젊은이에게 꿈을 꾸라고 합니다
즉 착한아이 콤플렉스로 가스라이팅 시켜야 젊은이들을 이용해 먹을 수 있다 말이죠
그래야 군사로 노예로 이용하는 이것이 바로 왕을 달라 라는 인간의 세계인데

성령이 임하면 그 반대가 되는 겁니다 진리의 세계를 말하게 되면
이 눈에 보이는 세계가 허구임을 알게 되어버리면
무슨 수로 세뇌를 시키겠습니다
이제는 세뇌는커녕 도리어 군사로 부려먹고 노예로 부려먹어야 할 젊은이들이
도리어 이 눈에 보이는 세계를 허물어버리는 우상파괴하는 하나님의 군사가 되어버리니
이 땅의 시선에서 볼 때 성령이 임한 젊은이는 그야말로 죽을려고 환장한 자 로 밖에 안보이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젊은이는 이 땅에 왕이 없어서 각기 제길로 가는 자처럼
오늘 본문에 목자가 없어서 양들이 흩어져 잃어버림 곧 포로 속에 놀여지게 되는 것이 바로
환상을 보고 즉 다른 세계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소망한다 라는 거죠
세기말에 묵시문학이 발전한다고 하잖아요
이 땅에 소망이 없으니까 말이죠
그러나 성령을 받은 젊은이는 그 반대로 이 땅에 소망이 없다 라는 원인으로 묵시를 볼려고 하는게 아니라
이미 환상 성령 이상이 임했기에 발가벗고 3년 반동안 이스라엘의 거울로써 비추는
그야 말로 죽을려고 환장한 이 땅의 세계를 불도져 밀 듯이 국가파괴 우상파괴에 던져지는 물맷돌로써 거리끼는 걸림돌로써 작용한다는 거죠
성전을 헐라 이땅을 헐라 국가를 헐라 우상을 허물라처럼 말이죠
맨정신으로 하겠습니까?
환상이 임해 본 것이 있기에 완료를 봤기에
미완료는 물러가라 라고 덤비는 것이겠지요

어떤 독일에서 유학한 교수가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6. 8 학생운동에 영향을 받지 않은 나라가 한국이다 라고 하던데
유럽은 이 6. 8 학생 운동을 무슨 진리운동인냥 자유해방 민주주의 운동으로 보고 있는데
성령이 임한 젊은이와는 완전 정반대 운동인 셈입니다
그것 6.8 학생운동을 흉내낸 것이 요즘 MZ 세대의 우익화 운동인데
곧 새나라 운동인거죠 낡고 늙은 의식은 버리자 라고 하지만
정작 성령이 임한 늙은이가 도리어 새나라의 사고방식으로 꿈을 꾸는 겁니다
완료를 누리는 것이지요
젊은이는 안료를 봤기에
미완료를 불도져로 밀어버리는 허물어버리고자 잃어버림 속에 들어가고 말이죠

이것을 요엘서 2장과 사도행전 2장과 로마서 10쟝에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로써 성령부음과 구원을 얻는 남은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결국 주의 이름을 부른다 라고 했을때에 그 주가 과연 누구인가 라는 겁니다
창조주가 누군지 모르는 유대인들이 부르는 주 또는 여호와 하나님이
과연 주의 이름인가 라는 점입니다

(욜 2:32, 개역)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행 2:39, 개역)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행 2:34, 개역)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행 2:35, 개역)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행 2:36, 개역)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행 2:37, 개역)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행 2:38, 개역)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행 2:39, 개역)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행 2:40, 개역)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행 2:21, 개역)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롬 10:13, 개역)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롬 10:2, 개역)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롬 10:3, 개역)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롬 10:4, 개역)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롬 10:5, 개역)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롬 10:6, 개역)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롬 10:7, 개역) 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롬 10:8, 개역)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롬 10:9, 개역)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롬 10:10, 개역)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 10:11, 개역)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롬 10:12, 개역)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롬 10:13, 개역)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롬 10:14, 개역)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롬 10:15, 개역)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롬 10:16, 개역) 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가로되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롬 10:17, 개역)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8, 개역)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뇨 그렇지 아니하다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롬 10:19, 개역)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뇨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
(롬 10:20, 개역) 또한 이사야가 매우 담대하여 이르되 내가 구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내게 문의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하였고
(롬 10:21, 개역) 이스라엘을 대하여 가라사대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셨느니라


여호와나 하나님 등등의 이름은 존재적 이름이 아니라
기능적이다는 거죠
즉 이 말은 오늘 본문처럼 목자 라는 것이 이름이 아니잖아요
기능이지요 

그럼 그 기능은 목자 라는 딸랑 하나의 의미로는 기능이 뭔지 모르지요
거짓 목자나 아니면 관계가 되는 양떼가 있어야 목자라는 의미가 제대로 차이나는 이해가 되지요

결국 주 라고 구원자 라는 그 이름은
이 주를 구원자를 의사 라고 했을때에

건강한 자에게서는 이 이름이 그 기능이 의미가 없어요
환자에게만 그 기능이 의사의 기능에 딱 맞다 말이죠
그러니 잃어버린 양 만이 목자의 기능에 딱 맞다 말이죠
주께만 범죄했다 라고 했을때에

주의 이름에 걸맞는 자는 주께 범죄한 자 가 되는 겁니다

이것이 요엘 서 2장 그 유명한 성령의 부으심 약속하신 성령을 선물로 주실때에
이 성령에 걸마는 자는 남은자이고
남은자 만이 제대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이다 라는 겁니다
그것도 주의 이름을 부른적도 없던 자였던 자가 말이죠
주를 찾지도 않았던 자가 말이죠
부른적도 없는데 부르신바 되고
찾은적도 없던 자에게 찾으신 바 되는
그 남은자에가만 부르심바 되는 그 주의 이름이
누구든지 성령을 부음 받은 자는 주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구원을 얻는다

우리는 모조리 다 빼버리고 결과적인 구원을 얻는다 만 챙길려고 하지
주의 이름이 뭔지? 결국 창조주가 누군지 안다 라고 했덩 유대인들 조차도
주의 이름을 부른 적 없음으로써 선민이 구원은커녕 버림을 받더라 말이죠
원가지도 버리는 판국에 죽었던 가지도 언제든지 버리신다 말이죠
왜? 주의 이름에 걸맞지 않으니까 말이죠

또 남은자는 도대체 어떤 기능인지 누구인지
결국은 주가 도대체 누구인지
아들에 입맞추라 진노가 급하리라 마헬살랄 하스바스 노략이 급하다 말이죠


심판 속에서 심판 받아 마땅함을 알고 자기 죄로 우는 자가
주의 이름에 걸맞는 주께만 범죄한 자이다 라는 거죠
그게 다윗이고
그 다윗이 주께서 내 주께 

즉 주가 누군가? 두 개의 주로써
주님이 둘로 쪼개지는 분절이 된 겁니다
그러니 이 둘로 나누어 분절이 되는 하나님은 인간의 머리에서 나올수 없어요
즉 안 믿겨지는 하나님으로만 자신을 나타내시는 겁니다
둘로 쪼개지는 죽는 하나님 말이죠
이것이 하나님의 거룩 곧 의이다 라고 했자요
이 의로만 수치를 눈물을 가려주신다 라고 했습니다
즉 인간의 거룩 지키기는 남의 눈물을 씻겨줌이 아니라
도리어 정죄하기 위한 계급 모세의 자리 앉아서 완악한 수건을 행패부리는 것이다 말이죠
왜 강도만난 자를 제사장과 레위인이 그냥 지나쳐 버리는 것입니까
부정한 시체를 만지면 율법을 어기는 것이니까 말이죠
즉 지키는 것이 곧 어기는 것이 될 줄 누가 알았겠냐 말이죠
자기가 지킨 것을 그 마일리지를 온전히 남에게 주고자 지키는 자가 없잖아요
그 얿음에 뛰어드시는 분이 진짜 주요 그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겁니다
그러면 나는 없어지고 그 주의 이름만이 남는 거죠

이것이 구약에서 화로다 화로다 어찌할꼬 가슴을 치는 49일쩨에도 울지 않던 자가
50일쩨야 비로소 갑자기 그 전날에도 때려죽어도 마음에 찔림이 없이 도리어 더 당당했던 자가
갑자기 50일쩨에 약속하신 성령이 부어짐을 당했을때에
즉 약속하신 성령 이라고 했을때에
그 약속 우리가 기억하거니 꼭꼭 마음에 간직한 적이 있거나
그런거 아예 없었다 말이죠
약속하신 본인 당사자 예수님만 신경 썻다 말이죠
그러니 주께서 내 주께 란
내가 그 속에 끼여들 수 없다는 겁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소원대로만 밀어붙이신다 라는 겁니다

그 의에 하나님 본인이 쪼개지고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이 마음이 되는
빵구망 뻥 뚫히심으로써
성령의 놀라운 탄식으로써
정직한 영이 없어서 우는 그 다윗
죄인
환자
자기 죄로 우는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난
주의 목전에 항상 범죄한 자로써
정직한 영을 달라고
아들 아닌 자리
긍휼 아닌 자리
배성 나릴 자리에서
성령을 부어주심으로써
많이 탕감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는
주의 이름의 세계를 증거케 하시는 겁니다
그러니 젊은이는 이 눈에 보이는 세계를 불도져로 밀어붙이는
발가벗은 선지자처럼 너희들 다 발가벗었다 라고 죽을려고만 하는 자처럼 행동하게 되고
늙은이는 소망이 없어서 그저 빨리 죽기만을 바라는 것이 이 땅의 원리인데도 불구하고
도리어 100세 넘어서 아이를 낳아서 이 아이 키우는 맛에 푹 빠져서
새소망이 넘치는 겁니다
마치 미리암이 문둥병으로 이스라엘 진영 밖으로 내어 쫒음 당했다가
다시 피부병 전염병 나음으로써 아기피부처럼 새살이 돋아나니까
그 할머니가 갑자기 뷰티 채널을 개설해서 화장품 판매 1위가 되는 톱모델이 되는 것처럼
도리어 젊은처녀처럼 살게 되더라 라는 겁니다

즉 성령이 부음 받으니까 세상 원리의 반대로 향하더라 라는 겁니다
여종 남종이 도리어 주인 노릇을 하더라 라는 겁니다
요셉 보세요 바로의 주가 되엇다 라고 하잖아요

(창 45:8, 개역)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아니 종인데 종 다운 표현을 하는게 아니라
믿음의 표현으로 원인 없는 결과의 표현으로 바로의 아비
바로 그 온 집의 주
애굽 온 땅의 치리자가 되었다 라고 하는 겁니다

또 종 주제에 주인의 지혜를 가진자가 바로 불의한 청지기 였죠

세상의 시선에서 역행하는 겁니다
가치 전도 
전도 즉 뒤집어 진 시선이다는 겁니다

자 이렇게 오늘 본문에 목자란 그 아비에 그 자식
그 어미에 그 딸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안다처럼

너희 아비는 마귀다를 거쳐서 나온 주의 이름이기 때문에
즉 안 부르면 지옥이다 구원이 아니다 이기에

주님 본인이 찾으시는 양이기에
잃어버림 곧 주의 이름에 걸맞는 주께만 범죄한 자로써의 남은자가 이다는 거죠
그러니 남은자 운동 하는 저 바리새인의 남은자 개념과는 반대죠

말이 남은자 이지 인간에게서는 남은자 즉 주의 부름이 있을수 없어요
주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어찌 부를수 있겠냐 말이죠
말이 부른다 이지
그 부르심 조차도 반칙으로써의 부르심이다는 겁니다
부르지 않던 자에게 부른신바 되었다 라고
안 불렀는데 너가 날 불렀구나 라고 일방적으로 편파 해석을 해 버리시는 겁니다

정작 제대로 불렀다 라고 자부하는 자에게는
아무리 또박 또박 이름을 바른 발음과 발성으로 성우들 같이 불렀어도
너는 나를 부르지 않는구나 라고 일방적으로 편파해석을 해서
아무리 불러도 소용이 없도록 하신다 말이죠

결구 주님이 주님 본인을 불러놓고서 두 주죠
그래놓고 너가 날 불렀구나 라고 일방적으로 뒤집어 씌우는 겁니다

방금 어지신 목자 라는 가스펠송? 성가곡이 생각나서 불러보는 연십을 하는 중에
가사가 길 잃어버린 양 찾도록 부르소서 제발 날 불러주소서
제발 저를 살려주세요 저를 고쳐주세요 제발 용서해 주세요 라고
부르심도 전적으로 주님의 손에 달렸다
이것이 환자가 의사를 보는 시선이지
건강한 자 같으면 배불러 터져 있는데 안 불러주면 뭐 어쩔수 없지 라고
갈급함 따위는 없겠지요 뭐가 아쉬워서 애타게 찾겠습니까?

주님도 잃어버린 양 찾는 그 마음이 애타는 마음인 인애와 자비가 아니다면
그 온유가 아니다면 주여 이러다 다 죽습니다 라는 그 상한 마음이 아니다면
말라꼬 잃어버린 동전 찾겠습니까?
아미 손에 든 많은 동전으로 대체하면 그만인데 말이죠

부자라면 그렇겠지요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님이 바로 그런 하나님이니까
부자 하나님을 자기 투사 하여서 믿고픈 것 만 믿는
사실은 육의 행함이지요
하나님과 원수된 생각인 겁니다

정작 진짜 하나님은 하늘 영광 다 버렸기에
거지도 이런 상거지가 따로 없을 정도이어서
아무도 귀히 여기지 않으니까
제대로 쪼개졌고
제대로 분절이 되었기에 오죽하면 아무도 귀히 안 여기는 겁니다

아니 인간들이 임금 삼아줄 때 임금이 되면 아무도 귀히만 여기게 되지
누가 거지로 취급하겠냐 말이죠
인간의 손에 죽을 일이 뭐가 있겠냐 말이죠

그런데 진짜 하나님 진짜 목자는 반드시 인간의 손에 죽고자 왔다 라는 겁니다
인간의 손에 그것도 자기 백성의 손에 죽는 하나님이 되어야
비로소 양의 의미가 새로 참된 목자에게서 나오는 겁니다
이제 참된 목자는 잃어버린 양을 찾음으로써 목자 되심의 기능을 나타내는 겁니다

인간은 자기가 기준이기에 자기를 구원해 주냐로 목자냐 아니냐로 판단하지

누가 자신을 잃어버린 양으로 간주가 되는
싫어버린 목자
아무도 귀히 여기지 않는 목자
다들 고개를 돌려 버리는 목자의 기준에
잃어버린 양으로써 보는 자가 없기에

목자도 지 눈에 안경이라고 지가 취사선택한 목자를 삼더라 말이죠
이게 음녀 라고 계시록에서 언급했지요 짐승 등 위에 올라 타고자 하는 음녀

뭐 많은 신학자들이 미국이라는 짐승 등 위에 올라탄 유대인을 음녀 라고
사탄의 얕은 것만 보는데 그것은 얼라들도 다 아는 식인데요
정작 모든 인간이 다 그렇다 라는 겁니다
안 그런 인간의 역사
곧 국가의 역사가 아닌게 어디 있냐 말이죠
다 그런데

모든 인간이 다 음녀 라고 학대 해 버리면 구체적인 것이 없는거 아니냐 너무 추상적이다 라고
그런데 비밀 비유에서 벌어진 사건 곧 나 만이 격은 사건 내만 격은 경험으로써의 십자가 사건이 되어버리면 비로소 남겨둔 한 씨 
너희가 더럽히지 못한 내 이름 아껴둔 내 이름 얼마나 그 동안 더럽혔으면 말이죠
그 이름을 내가 부르는게 아니라
안 부르고는 못 배기도록 잃어버림의 경험인
빵구멍 내 버리니까
포로 잡혀가게 하고
쫓겨나게 하고
갇혀서 요셉처럼 창살 감옥에 갇히고
쇠사슬에 억눌리게 착고에 채이고
그러니 안 부르고는 못 배기도록 만드시는
광야에서 10번 원망 안하고는 못 배기도록 하시는 것과 똑같이 말이죠
이제는 은혜가 왕 노릇 하겠끔 불의한 자로 만들어서 그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도록
하나님의 의가 안 부르고는 못배기도록 부르짖겠끔 반칙을 하시는 겁니다
바로왕을 강퍅케 하니까 부르짖지 않고서는 못 배기듯이 말이죠
그러니 악한 무화과 나무와 좋른 무화과 나무는
팔이 어긋맞게 된냔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는 독립군운동하는 놈들은 악한 무화과 나무가 되고
포로 잡혀간 자 만이 안 부르짖고는 못 배기는 그 여고냐 악한 왕이 도리어 돌이켜 되돌아 오는
잃어버린 양 곧 남은자로써
이러다 다 죽어 라고 하시는 부르짖는 놀라운 탄식의 남겨둔 한 씨가
베드로 너 믿음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했다 부르짖었다 덕분에
여고냐가 예숙님을 세 번 씩이나 부인한 배신자 베드로가
돌이켜 좋은 무화과 나무가 되듯이

이 일을 벌리신 분이 바로 주님 당신이 주께서 내 주께 하심으로써 벌어진 의로움인 반칙이군요 라고 다윗이 외치는 곱니다

자신은 그저 원수 짓만 했음 뿐이고 라고 말하면서 말이죠
(결국 가제트 형사는 어지럽히기만 하지 정작 사건 해결은 그 강아지와 조카가 다 해결하더라 말이죠 그것이 성령 부으심이다는 겁니다

누가 물에 빠졌는데 발로 빵 차니 물에 빠져 허우적 거리다가 올라왔는데
그 물에 빠진자가 바지자락 붙잡고 나오게 되니 다들 박수치는데
혼자 씩식 거리면서 누가 날 등 떠밀었어 라고 내가 안 했다 라는 겁니다)

난 ~~~~~~ 뿐이고 라는 개콘이 생각나네요 무슨 코너 였더라

개콘 난 ~~~~~~ 뿐이고 이라고 검색하니 바로 나오네요
맞아 맞아 안상태가 나오는 뜬금뉴스

https://youtu.be/pzJsBsHPKlo

종이 되었을 뿐이고
예언하는 주인이 되어버렸다 말이죠
젊었을 뿐인데 환상 보고
늙었을 뿐인데 꿈을 꾸고
부모가 홍해를 건넌 죽음을 건넌 선지자로써 예언하는게 아니라
도리어 자녀가 완료를 외쳐버리는 완료룰 누리게 되니
더 이상 미완료가 없는 세계 곧 완료의 세계
정직한 영 새 영의 세계를 누리는 겁니다 세상과 정반대죠
미완료의 의문의 반복의 세계와 반대인 겁니다 결핍 채우기 밖에 없으니까 말이죠

(행 2:16, 개역)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행 2:17, 개역)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행 2:18, 개역)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행 2:19, 개역)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행 2:20, 개역)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행 2:21, 개역)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롬 10:13, 개역)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롬 10:14, 개역)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롬 10:15, 개역)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롬 10:16, 개역) 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가로되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아참 하고픈 말 하나 더 있는 것이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면 어찌 전파하리요 부르심과 연관 된 의미인데
누가 생각나는고 하니 딸랑 한 멸 사렙다 과부 딱 한 사람에게 보내심 바 된 엘리야

그것도 많은 이스라엘도 아니요 이스라엘 과부도 아니요
많은 이방인도 아니요 오로지 이방인 과부 딱 한 사람에게만 보내심을 받았다 라고 했듯이

또 많은 이스라엘도 아니요
많은 이스라엘 문둥병자도 아니요
많은 이방인도 아니요
오로지 딱 한 사람 나아만 장군 뿐이다 라고 말이죠

(마 15:24,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눅 4:26, 개역)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눅 4:27, 개역)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니라

(눅 4:16, 개역)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눅 4:17, 개역)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눅 4:18, 개역)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눅 4:19, 개역)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눅 4:20, 개역)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눅 4:21, 개역)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눅 4:22, 개역) 저희가 다 그를 증거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눅 4:23, 개역)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반드시 의원아 너를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증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의 들은 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
(눅 4:24, 개역) 또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눅 4:25, 개역)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세 해 여섯 달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눅 4:26, 개역)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눅 4:27, 개역)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니라
(눅 4:28, 개역)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분이 가득하여
(눅 4:29, 개역)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내리치고자 하되
(눅 4:30, 개역) 예수께서 저희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


즉 더러운 피부병 환자입니다 라고 우는 자에게만 예수님은 보내심을 받았다 라는 겁니다
더 정확하게 더러운 죄인이야 라고 울게임 당한자
울어버림 당한 자 에게만 보내심을 받았다
결국 자작극인 거죠 주님 본인이 의사임을 말하고자
주의 이름을 부르심을 받고자
나아만 만큼은 더더더 더러운 중증 피부병 급성 급급급한 환자로 만들었다 라는 겁니다
보통 상채 초기 상태도 많은데
나아만 만큼은 극단으로 몰았음을 당했다? 왜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말하고자
즉 주의 이름을 안 부르짖고는 못 배기도록 만들었다 라는 거죠

그러니 이 잃어버림 이라는 비유 비밀은 흉내낼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
따라하지 마세요 어차피 인간의 숙제가 개입하면 그 혼합물 찌기 걸러내야 하니까 안 통하는 겁니다

왜 굳이 이 잃어버림이라는 간극의 공백인 빵구멍을 굳이 내시는 겁니까

거짓목자와의 차이를 내시거자 함입니다
이 간극이 벌어졌을때에
마귀는 솔로몬 재판에 동의하는냥 박수 물개 박수를 치는 겁니다
해병대 박수 칠 정도면 우와 나 이겼구나 라는 확신을 주는 거죠
그래야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는
지혜라는 인물을 우리는 보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마귀를 동원해서라도 빵구멍 내시는데 천사처럼 도구로 활용을 하시기도 합니다
앗수르를 몽둥이로 삼았듯이 말이죠

그러나 그렇게 참여한 마귀가 도저히 할 줄 모르는 것 하나 있습니다
다시 살리는 다시 싸매어 주는 그 인애와 자비는 할 줄 모르는 겁니다

결국 주님의 관심사는 오로지 마귀만 상대하심으로써 나오는 차이입니다
결국 마귀는 어떻게 하면 자신을 주님으로 포장하느냐에 달린 거죠
그러니까 바리새인은 모세의 자리에서 모세 흉내를 얼마나 진심으로 할 것 아니겠느냐 말이죠
이스라엘을 바른 길로 인도하겠다고 얼마나 진심으로 말이죠

그러나 참 목자 곧 실상이 떠 버린 이상 우리는 뭘 해도 그림자요
그림자는 뒤로 누락되고 무대뒤로 빠져야 한다 말이죠
목자만 그런가요? 그림자 목자만 원하고 실상인 목자를 원치 않는 양들 또한 빠져아 하는 겁니다
도리어 잃어버린 양 곧 남은자도 뒤로 누락 되는 판국에
원가지도 아닌 주제에 죽은 가지 접붙임 당한 가지가 왜 참된 실상 되신 목자 보다

거짓된 그림자 목자를 찾느냐 말이죠 같은 마음 한 통속인 거죠
결국 남의 것 빼앗아서 잔칫집을 사수하는 겁니다

그러니 결혼을 왜 굳이 광야 사막에서 하시느냐
곧 주님이 누구신가? 결혼 곧 사랑은 죽은 사막도 샘이 넘치는 동산으로 만드시는데

인간의 동산 곧 천국 꾸미기 는
남의 것 빼앗아서 만드는 방법 외에는 없는 거죠
결국 생명 있는 자는 주님의 자녀 뿐이니
주님의 자녀를 안 죽이고는 못 배기는 운명인 겁니다 그것이 가인의 족보
살았더라 낳고 살았더라 족보이고

주님의 자녀는 죽었더라 족보인 거죠
이 죽었더라 라는 그 부정적인 죽음이 예수님의 죽음까지 이어지니
도리어 그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는 겁니다

반대로 가인의 족보는 죽음을 감추고 잔칫집만을 유지할려고 하니
죽음과 맞짱 뜨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죽이고 돌아다니더라 말이죠


아벨은 사랑하고 자기는 사랑 안 해주고 미워하니까
그 복수심으로 야다와 씰라여 날 건드리는 놈은
가인의 벌 7 배 보다 77배나 당할 것이다 라고
인간의 처음 노래가 성경에서 말이죠
복수의 노래이더라 말이죠

(창 4:23, 개역)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창 4:24, 개역)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결국 찬송가든 뭐든 가스펠이든 복음성가이든 CCM 이든지 뭐든지 간에
모든 인간의 노래는 복수심이다 말이죠
날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라는 저주죠
사랑노래도 결국 다 저주의 노래 뿐입니다
인간 자체가 지옥의 몸이니 말이죠
정년이가 아무리 딴 나라 딴 세계의 노래를 기~~~~~~~~~~~~~~~~똥차케 tKTEO도
모조리 다 저주의 노래 이당께~~

그런데 아벨의 족보 곧 아벨의 찬양은 뭐 까짓꺼 그렇게 복수심으로 죽이고 싶었더냐?????
그래 죽어주마 라고 그 죽음의 권세 조차도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는 헛깨비 이지롱 이라고 죽었더라 족보를 형성하면서
누구의 죽음으로 자꾸 몰아가 보여줄려고 방향을 제시하는 죽었더라 족보를 형성하더라 말이죠
죽음을 보지 않고 올라간 에녹을 보여주듯이

(창 5:24, 개역)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결국 찬 4장 가인의 족보인 낳고 살았더라 족보는 사실상 라멕의 살인 죽음으로 향하고
산 자 같으나 죽은자요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창 5장의 아벨의 족보는 죽은 아벵 대신 셋의 족보 곧 죽었더라 족보는
죽은 자 같으나 산 자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것이요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으 가진 자요
무태한 죽은태 같으나 하늘의 자식이 억수로 많음을 보여주는 주님이 반칙으로 이루시는
예스님의 족보는 미리 맛배기로 보여주더라 말이죠)

(고후 6:9, 개역)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고후 6:10, 개역)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예수님의 죽음을 향하는 겁니다
죽었는 것 분명한데 죽지 않고 다시 되 살아난
다시 되 찾은

분명 생명을 잃어버림 당했는데 말이죠

죽음인 듯 죽음 아닌 죽음 같은 너 어어어 ~~~~~~~~


아니 왜 이런 일을 격어야 하는가?
내 죽음이 아닌 예수님의 죽음을 보여주고자
내 생명 내 살아있음이 아닌 주님의 살아계심을 말하고자 말이죠
사나 죽으나 주의 것으로써 말이죠

이 관계성을
장차 오실 메시아 목자가 이미 떳기에
장차 오신다메? 그 시간 자체도 우리 시간이 아닌 비밀 비유이기에
이미 완료를 누리지 못하는 자는
결국 안 오는 겁니다 지금 현재의 유대인처럼
그러니 말만 기다린다 이지 사실상 안 기다리는 겁니다
그게 열처녀 비유에서도 나오는 거죠
지금 신랑과 함께 동행을 누리지 않는 자는
그때 와도 어차피 신랑을 맞이할 수 없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지금 완료를 누리지 못하는 이상 말이죠
천국도 지금 누리는 의미이지
그때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다 라는 겁니다
걸어다니는 참성전을 누리지 못하는 자는
계속해서 사람들의 손으로 지은 강도의 소굴에 사기만을 당할 뿐입니다

결국 잃어버린 양을 찾는 목자와의 한 마음이 되기 싫다 라는 것은
이미 양들 조차도 거짓 목자를 원허기 때문에
잃어버린 양을 찾는 목자와 안 맞는 겁니다

가인의 족보 세계처럼 살았더라 족보를 추구하는 셈인거지요

그걱이 오늘 본문

(겔 34:3, 개역)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의 무리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백성들의 죄악을 지적하지 않는 목자와
또 양들은 목자들에게 고기를 먹여서 잔칫집을 유지하도록 돕는
그카이 망할 때 마저도 여전히 계속해서 제물을 바쳤다면 하늘의 여신에게 말이죠
남의 것을 빼앗아 라도 바쳤다면 안 망했을 것인데
다 떨어지는 바람에 중단해서 고기를 바치든 털을 바치든 말이죠
멈추니까 재앙이 왔다 라고 보는 겁니다

그래야 풍년이 잔칫집이 계속 유지가 되니까 말이죠

(렘 7:18, 현대어) 어린아이들은 땔 나무를 줍고 남편들은 불을 피우고 여인네들은 가루로 반죽을 해서 떡을 굽고 있다. 그것이 바로 여인네들이 하늘의 여신이라고 섬기는 바벨론의 샛별 여신 ㄱ) 이쉬타르에게 제물로 바칠 떡이 아니냐? 또 그들은 온갖 다른 신들에게도 포도주를 따라 전제로 바치고 있다. 그들은 내 마음을 상하게 하려고 그토록 온갖 짓들을 다하고 있다. (ㄱ. 가나안의 풍년신 아스다롯과 같다)
(렘 44:17, 현대어) 우리는 여전히 하늘의 여신을 섬기며 이미 그 여신에게 서약한 대로 행동하겠소. 우리와 우리의 조상들, 우리의 임금과 지도층에 있던 사람들이 대대로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성읍에서 바로 그 하늘의 여신을 섬겨 왔소. 그러므로 우리들도 이제 여기서 계속 그 여신에게 제물도 살라 바치고 전제도 따라 바치겠소. 우리가 그 여신을 잘 섬기던 때에는 언제나 우리의 모든 일이 잘되었으며 배고픈 적도 없고 전쟁이나 전염병에 시달린 일도 없었소.
(렘 44:18, 현대어) 그러나 우리가 하늘의 여신에게 제물 바치는 일을 중단하고부터는 우리에게 모든 것이 부족하고, 마침내 안팎으로 전쟁과 굶주림을 당하여 우리 민족 전체가 몰살을 당하게 되었소'
(렘 44:19, 현대어) 그 곁에서 있던 여인들도 똑같이 빈정거렸다. '우리가 언제 남편들도 모르게 하늘의 여신을 섬겼소? 우리가 그 여신에게 제물을 살라바치고 전제도 따라바치며 그 여신의 모습대로 떡을 만들어 바쳤을 때에 우리의 남편들은 완전히 우리와 한마음이 되어 있었소’


그래서 목자들 곧 제사장이나 지도자들에게
살진 고기와 털을 바쳤거든요
목자가 잘 살아야 우리가 잘 산다 라고

이런 말 어디서 많이 들어봤죠
안 그러는 목사가 없을 정도이니 말이죠

심지어 자칭 최고의 성화론자 라고 주장하는 목사에게서 듣다 보니
어서 그 강도의 소굴에서 탈출케 해 달라고 부르짖었거든요

결국 아무리 여호와의 말씀만 추구하면서 살겠다 라고 다짐한다고 해서
막상 주변의 상황에 의해서 부도나고 생계가 위협을 당하게 되는 생존 문제게 부딧히게 되면
사람은 언제든지 변할 수가 있으니 장담을 할 수가 없는 거죠
베드로 보세요 장담 장담 장담 세 번씩이나 해도 안되잖아요

또 그렇게 하루 아침에 욥처럼 폭삭 속았수다 망했수다가 되었다 라고 해서
거짓목자로 거짓 양으로 돌변해서 생존만을 우선시하고 사수하는 모습으로 변질 되었다고 해서
돌을 마음껏 던질수 있는가? 물론 아니지요 죄가 없으면 또 몰라
죄 없는 자 만이 마음껏 던질수 있으나 과연 죄 없는 자가 던질까요?

죄 없는 자는 여저니 자기 죄로 울 것인데? 죄가 없다 캐도 말이죠

이 세상 자체가 죄 아래 갇혀버렸으니 말이죠

(롬 7:21, 개역)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롬 7:22, 개역)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롬 7:23, 개역)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롬 7:24, 개역)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 7:25, 개역)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합니다 비록 속 사람이 약해 육신을 이기지 못해도 그런 나의 숙제와는 상관 없이 예수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는 이 새언약의 취지인
십자가의 영광을 자랑치 않는다 라는 것은
즉 다른 것을 자랑하는 유대인인 기적 돈벼락 맞는 기적을 바라고 이방인 같은 우상숭배죠
그리고 이방인은 돈도 헛됨을 알아요 그래서 그 빈 허무한 공터를 어라 지혜로 채우고 싶어 한다 말이죠 그런데 아무리 봐도 십자가는 어리석고 미련함 뿐임을 각 시대의 천재들이 다 주장하고 있어요 안그렇다면 자신의 철학과 지혜를 도리어 어리섬으로 취급하고도 남았을 테니까요

그러나 그런 기적을 바라는 유대인 지혜를 구하는 이방인에게서 걸림돌이요 어리석고 미련함이지만

우리 그리스도인 에게는 이 십자가 보다 더 또렷하고 뛰어난 하나님의 지혜가 없고
이 십자가 보다 하나님의 영광이 없을 정도로
모든 지헤를 멸하고 모든 총명을 폐하는 총명이었음을 말이죠

그러니 자기의 믿음 곧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바라는 그런 믿음이 페 함을 당하고
자기의 총명 지혜를 폐함을 당함으로써

그 잃어버림을 당한 자리
그것이 도리어 하나님의 약한 것이 도리어 강함이라 능력이라 라고 하셨듯이
그래야 이 십자가를 자랑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죠

(고전 1:18, 개역)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9, 개역)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고전 1:20, 개역)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고전 1:21, 개역)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전 1:22, 개역)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고전 1:23, 개역)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고전 1:24, 개역)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 1:25, 개역)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고전 1:26, 개역)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고전 1:27, 개역)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전 1:28, 개역)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전 1:29, 개역)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1:30, 개역)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고전 1:31, 개역)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이 곧 하나님의 약한 것 곧 사랑만이 사람의 강함 보다 더 강한
죽음 보다 더 강한 사랑이 아니엿다면
또 다른 것을 자랑하기 마련이기에
이 목자들을 페하고 이 돈다발 떨어진 것 사수할려는 표적을 구한 것을 자랑하게 된다면
더 이상 십자가를 자랑 할 수 없을 것이기에
그들은 이미 소돔과 고모라입니다

십자가가 뭡니까?
주여 이러다 다 죽습니다 라고 모세의 온유처럼
대신 매 맞는 그것도 단순한 매 아닙니다
하나님의 진노 아닙니까
살아날 인간이 없다는 겁니다
그 카이 모세가 목숨 걸어서 나섰던 겁니다

바로 이러다 다 죽습니다 라고 우신
주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신
이 남겨둔 한 씨의 대신 매맞고 대신 우신 그 눈물이 아니엿다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였다는 겁니다
남은자가 아닌 이상 소돔과 고모라일수 박에 없음을

바로 오늘 본문 달차 오실 참된 목자와 잃어버린 양 곧 남은자를 통해서
곧 종말 때에만 세상의 끝 육체의 끝
보이는 섹계의 끝
이전 것은 지나간 보라 새것이 도래했을 때에만 나타나는 참된 목자와 잃어버린 양을
손수 직접 만들지 않는 이상
오늘 본문의 말씀을 우리는 이해 할 수가 없는 겁니다

뭐 이런 문제로 에스겔이 왜 목숨까지 걸고 저렇게 외치지? 라고 할 것이다 말이죠

이것이 바로 십자가를 자랑하는 자의
아무것도 믿지 않는 모습입니다
자기 죄를 위해 대신 화목제물 되신 분은 예수님 뿐이니
예수님만 자랑하지
장 먹고 잘 사는 무화과 나뭇잎이 풍성함은 그 앞에서 그저 그림자일 뿐

실상만 우리는 자랑하고 룰루랄라 따라가면서 그 7에 70번의 용서만을 누릴 뿐입니다
이것이 늑대가 후 하고 불어도 흔들리지 않고 든든하고 믿음직스럽게 미쁘신
우리의 피난처 되신 견고한 주님의 죽음 보다 강한 십자가의 피 흘리심입니다

괜히 사도바울이 십자가만 알기로 했다 라고 한게 아닙니다

개척교회 수십년 동안 어렵게 하던 목사가 혼자 속으로
아이고 사도바울이여 그런 배 부른 소리 하지 마소
목회 막상 해 보세요
십자가만으로 교회가 유지 되는지
택도 없는 소리입니다
그거 양들 교인들에게 먹혀들지 않습니다
그저 복달라 잘 먹고 잘 살게 해 달라 라는 결국은 하늘의 여신에게 바쳐야
교회도 생존할수 있고 목자도 교인도 다 살수 있다니깐요
그카이 배부른 소리 하지 마시쇼 라고

결국은 교인들의 요구에 넘어가게 되면
결국은 그 목자는 교인들이 원하는 종교를 주장하게 되지
혼합물 온갖 찌끼들 다 썩은 것 말이죠
과연 십자가 라는 순수 정금이 나오겠냐 말이죠
이 십자가 라는 용광로 덕분에 저런 불순물 혼합물이 걸려졌는데 말이죠

그래서 주님은 받는 분이 아니라 바쳐애 복받는다가 아니라
도리어 주시는 분입니다 목숨을 내어주신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심 이거면 다 받은 거 아닙니까
그리고 이것 말고 자랑할꺼 뭐 잇습니까?
교회 조차도 자랑꺼리가 될수 있겠습니까?

틈만 나면 강도의 소굴로 강도 짓만 할려할텐데 말이죠

큰 교회 보세요 다 강도의 소굴입니다
아 그럼 중혀교회나 소교회는 괜찮겠네여?
아니지요 개척교회 목사들 늘 꿈꾸는 것이 십자가만 자랑케 해 달라가 아니라
언젠가는 반드시 큰 교회 담임목사가 되고야 말테야를 꿈꾼다 말이죠
일반 교인 보다 못해요 젊은이는 환상을 보고서는 모조리 다 불도져로 밀어붙이는 죽고자 하는데
미리 어릴적부터 큰 교회 목사로 부목사를 부려먹는 재벌을 꿈꾸고 있으니 말이죠

아무리 작은 교회도 그저 강도의 소굴 언제 되나! 만 바라는 겁니다
가난한 자가 늘 교만한 부자가 되기를 바라듯이
아무리 부자가 천국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 구멍 들어가는 것 보다 더 어렵다 라고 해도 말이죠
너 그러다 지옥간다 라고 해도 그 충고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겁니다
그 정도로 인간은 약한 지옥의 몸이요 수에 칠 가치가 없는 허무 덩어리 허상 덩어리 그림자입니다

그런 그림자 인생에 실상이 나타났다 라는 그것만으로도
더 이상 자랑 꺼리가 어디 더 있겠습니까?

나를 제대로 허구임을 들추어내는 실상
또렷한 십자가로 모든 지혜 모든 총명을 폐하는 참지혜 참된 총명(성령 정직한 영)
그리고 참된 목자가 아니면 종말에만 나타나는 신부된 교회
곧 잃어버린 양이 한 세트로써 나타날 수가 없는 겁니다
친히 자기의 피 흘리심 그 위에
피로 사신 교회
피 위에 세운 교회는
그 잃어버린 양은

자기 목슴 걸어서 찾아낸 잃어버린 양을 절대로 놓치 않을 것을
원수의 목전에서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거짓 목자는 잃어버린 양을 찾지 않고 흩어버리지만
하루 살리 단물 빨아먹고 뱉어버리지만

참된 목자는 그 잃어버린 양을 찾을 것이라 끝까지 그 양을 찾을 것 었 ~~~~~~~~ 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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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4 분쟁 당하기 쪼개짐 당하기 나누어짐 당하기 해체당하기 잃어버림 당하기 바닥치기, 왜?  완료가 덮쳐젔기에 환자 죄인 되기 (더 이상 나누어지지 않는 원인 없는 완료이기에) (고전 1;10-15)
2025. 6. 29. (6월 13일 금요일 녹음)

25-003 책망할 것 없게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미쁘심; 믿음직스럽고 흔들림 없이 든든함) (고전 1; 6- 9)
2025. 6. 8.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의 나타나심을 기다리는 교회 (고전 1; 4- 7)
고린도 전서 2025 2025. 5. 17. 22:21
25-002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의 나타나심을 기다리는 교회 (고전 1; 4- 7)

〈고린도전서 1; 6- 9, 개역한글 신약성경 263쪽, 찬송가 247장 새 209 이 세상 풍파 심하고, 찬송가 274장 새 497 주 예수 넓은 사랑〉 

〈찬송가 247장 이 세상 풍파 심하고, 새찬송가 209장〉

(고전 1:10, 개역)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고전 1:11, 개역)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서 너희에게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고전 1:12, 개역) 이는 다름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고전 1:13, 개역)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
(고전 1:14, 개역)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주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고전 1:15, 개역)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함이라

(고전 1:10, 현대어) [고린도 교회의 분열]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호소합니다. 제발 싸우지 마십시오. 교회 안에 분열이 없도록 참마음으로 하나가 되십시오. 같은 생각과 목적으로 한마음이 되십시오.
(고전 1:11, 현대어)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나는 여러분이 논쟁을 하고 다툼을 벌이고 있다는 말을 글로에의 집안 사람들 편에 들었습니다.
(고전 1:12, 현대어) 여러분 가운데는 `나는 바울을 따른다', `나는 아볼로를 따른다', `나는 베드로를 따른다'고 하면서 제각기 편을 가르고, 또 다른 사람은 `우리들만이 참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다'라고 떠들고 다닌다고 하니
(고전 1:13, 현대어) 그게 바로 여러분 스스로 그리스도를 산산조각이 나게 한 것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나 바울이 여러분의 죄를 위해서 죽었습니까? 여러분 가운데 어느 누가 내 이름으로 침례를 받은 사람이 있습니까?
(고전 1:14, 현대어) 지금 나는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아무에게도 침례를 주지 않은 것을 얼마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고전 1:15, 현대어) 혹시 누구라도 내가 `바울의 교회'라는 것을 시작해서 어떤 새로운 것을 일으키려 한다는 오해라도 있을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고전 1:1, 쉬운) <인사>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나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고전 1:4, 쉬운) <바울의 감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나는 늘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고전 1:10, 쉬운) <교회 안에 일고 있는 파벌> 성도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호소합니다. 모두 의견을 합하고 여러분 사이에 편을 나누지 마십시오. 같은 마음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하나가 되십시오.
(고전 1:18, 쉬운)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이신 그리스도>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멸망할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에 불과하지만, 구원 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고전 1:10, 현대어) [고린도 교회의 분열]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호소합니다. 제발 싸우지 마십시오. 교회 안에 분열이 없도록 참마음으로 하나가 되십시오. 같은 생각과 목적으로 한마음이 되십시오.
(고전 1:18, 현대어) [능력과 지혜이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할 사람들에게 얼마나 어리석게 들리는가를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우리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개역개정한글

고전1:1 <인사와 감사>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고전1:10 <고린도 교회의 분쟁>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고전1:18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이신 그리스도>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새번역

인사
1:1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오로와 소스테네스 형제가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
1:4 나는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에게 베푸신 은총을 생각하며, 여러분을 두고 늘 나의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코린토 교회의 분열
1:10 형제 여러분,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모두 합심하여 여러분 가운데에 분열이 일어나지 않게 하십시오. 오히려 같은 생각과 같은 뜻으로 하나가 되십시오.

십자가의 복음
1:18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공동번역

고전 1:1 [인사] 하느님의 뜻으로 부르심을 받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된 나 바울로가 우리 교우 소스테네와 함께 
고전 1:10 [고린토 교회의 분열] 형제 여러분,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호소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의견을 통일시켜 갈라지지 말고 같은 생각과 같은 뜻으로 굳게 단합하십시오.
고전 1:18 [능력과 지혜이신 그리스도] 멸망할 사람들에게는 십자가의 이치가 한낱 어리석은 생각에 불과하지만 구원받을 우리에게는 곧 하느님의 힘입니다. 


다른 번역의 소제목도 있는데 다 비슷해서 여기까지만 하고요
오랜만에 인터넷텍스트 자료에서 소제목 달린 번역들을 올려 봤습니다
베들레헴은 두 번역 쉬운과 현대어만 소제목이 달렸는데요
아무튼 강조하고픈 것이 고린도 교회가 분열을 했데요입니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처럼

왜 이단들이나 다른종교나 무신론자 특히 이놈들 무신론자들과
마귀들이 공격하게 딱 좋겠끔
이 치부, 수치스러운 이 분쟁 분열의 사건을 왜 이렇게 기록하셨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런 식의 사건들이 많으니까 이 놈들이 공격을 하다가 갑자기 멈추는 겁니다
이상하다 왜 멈추지??? 알고보니 자기들도 마찬가지 이거든요
결국 계속 공격했다가는 자기 얼굴에 누워서 침뱉기가 되는 겁니다
실제로 그런 사건도 있습니다
사도바울을 죽이지 않고서는 밥도 안 먹고 잠도 안자겠다 라는 유대인들이
정작 그렇게 이방인이라고 저주했던 로마시민권이 있다 보니
괜히 건드렸다가는 자기들 눈을 찌리는 결과가 뻔해서 갑자기 멈추고 무대뒤로 사라지더라 말이죠
그 놈의 결단 작심이 바로 꼬리를 내리더라 말이죠

아무튼 왜 이렇게 공격하기 좋도록 안 공격하고는 못 배기도록 하셨는가 말이죠
저들 보다 오히려 교회들이 이해가 안 되는 식이다 말이죠

아니 구약에서 그렇게도 수많은 사건들 곧 분열 분쟁 뿐만 아니라 
심지어 나라가 6.25전쟁처럼 두 나라로 분단이 되잖아요
그리고 원망 우상숭배 음란 그것도 모잘라서 이제 나라가 공중해체까지 되었잖아요

그럼 신약에서는 이제 더 이상 이런 일들이 없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있다 라는 겁니다
있다에서 머무는게 아니라 반드시 있어야 한다 라는 겁니다

이니 신약은 실상이고 구약은 그림자 라메요?
그런데 왜 구약에 있었던 그 그림자를 왜 또 반복해야 한다는 겁니까
완료 라메 ~~~~~~~~~

바로 그 완료가 덮쳐졌기 때문에 반드시 벌어져야 한다는 겁나다
완료의 증상물이기 때문이요
실상이 떳기에 그 그림자가 명확하게 드러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게 된다면 또 의문의 반복이요
신약 곧 실체가 없이 구약만 반복하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는 다들 모세의 자리에 앉아서 대접받기만을 바라겠지요

왜그런고 하니 그 대표적인 것이
최근 10년 전까지만 해도 계속해서 있었던 제자훈련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말이죠
우리 때 30년 전 쯤에 대 유행을 했다가 
이제 2025년 전세계 무신론자 1위 국가가 된 입장에서
최근 10년 전까지만 해도 이것도 큰교회와 신흥 교회나 개척교회는 여전히 한번 일어서보겠다고 아직까지 하겠지만 대체적으로 항물간 입장에서 이젠 더 이상 하지 않는 
그 제자훈련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알수가 있습니다

그 제자훈련 프로그램처럼 했다면 고린도교회에서 저런 분쟁사건은 벌어질 리가 없었을 것이다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훈련은 사라졌고요
그 고린도교회에서 벌어졌던 그 분쟁사건은 여전히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이단 소리 들어가면서 까지 말이죠
손가락질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벌어지면서 말이죠
마치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때에 모든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켜고서 
어서 십자가에 못 박으라 라고 외쳤던 그 모습이
바로 제자훈련을 했던 자들의 모습으로써 나타났던 것이니까 말이죠

말이 제자훈련이지 사실은 성화훈령인 거지요 
예수님의 제자들이 심심하면 틈만 났다하면 서로 누가 크냐 라는 싸움을 했던 것처럼
누가 누가 잘 하나 라는 싸움 말이지요

그 사건이 바로 오늘 본문에도 여지없이 나올때에
우리는 당혹감이 아 일어날수가 없는 겁니다
왜냐하면 이유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유를 알면 우리가 거기에 맞는 대처법으로 수습을 하면 그만이거든요
아니면 답 없다 하면 손자병법처럼 도망가는 것이 최고의 지혜입니다
최고의 지략은 삼십육계 줄행랑 일단 피하고 나서
이유를 알고 나면 그때는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로움이 없다
지피지기 백저 불태

백전백승은 잘못된 표현이라고 하네요

공포와 불안은 이유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유를 알고 원인을 알면 대처를 할 수가 잇는데
뭘 알아야 대처를 하던가 말던가 하지요

맞습니다 그래서 이 완료의 세계 실상의 세계는
비밀입니다 알수가 없어요

그 완료의 세계가 덮쳐져 버렸기에
이 분쟁을 우리는 격도록 되어 있기에
불안해 하기 보다 아 나는 분쟁할 수밖에 없는 죄인 맞구나 라고
이것이 주께만 범죄한 자에 걸맞도록 하시는
의사 곧 완료가 찾아내시는 분쟁자 환자
정답이 찾아내시는 문제아 탕자 라는 사실을 알고

우리는 이 의사의 진단에 청지기 대시고 또 엑스레이 사진 찍고
그 진단 결과 당신은 분쟁자입니다 환자입니다 라는 판결에 감사를 누리시면 된다 라는 겁니다

자 그럼 오늘 본문의 분열 파당 분파 파열 균열 
나누어짐 즉 둘로 갈라짐의 내용들이 나옵니다
과연 둘로 나누어지는 원수지간까지 가야 하겠느냐 라는 거지요

분열의 내용을 보니 
알고보면 서로 잘해 볼려고 하다 보니 그렇다 라는 겁니다
묹제는 잘해 볼려고 하는 그 의로움이 과연 바른 의로움이냐 라는 것인가 하??? 점이지요

다윗이 뭐 악하 의도로 율법 네배나 갚으라 했겠습니까
자기 따나 잘해볼려고 하는 거지요
문제는 그 자기 따나가 과연 옳냐 라는 거지요

바로 그 선한 의도
좋은 의도가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로 갈리워진다 라는 겁니다

베드로가 예수님 끝까지 따라가겠다 라는 그 열심들이
사탄아 썩 물러가 라는 욕바가지 먹는 줄 알았다면 안했겠지요

다윗이 회개 눈물 금식 기도가 안 먹혀 들꺼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안했겠지요
처음부터 씹고 뜯고 먹고 마셨겠지요

그러나 그 완료를 그 실상을 바로 갈수가 없는 육체이기에
회개 눈물 금식 기도 라는 그 그림자를 거쳐서
실상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즉 달음박질 하는 자가 실상을 보는게 아니라
실상을 보여주시는 자가 완료를 실상을 다윗이 가지고온 그 그림자와 비교 대조해서
그 차이를 알려주신다는 겁니다

네 맞습니다 빵구멍 뚫기입니다 완료란 몽둥이입니다 징계입니다 그것이 살랑입니다
그런데 완벽하개 다 갖추어 보세요 그림자가 아무리 완벽하게 옷 입어본들 그림자는 그림자입니다 실상이 준비해 주신 옷을 그들은 거부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그 피옷 그 새 옷 곧 성령이라는 새영 새마음인 그리스도의 옷은
오히려 벌거벗은 죄인 환자에게만 딱 맞습니다 병원에서 사복 입고 돌아다녀 보세요
환자로 안 보고 의사도 필요없는 그냥 보호자인가? 외핀원인가? 이겠지요
의사랑은 상관이 없는 자입니다 건강한 자는 요
그러나 환자복을 입혀놓으면 의사의 숙제 대상물이 됩니다 치료하고자 무슨 명 걸린 것인지
진찰 대상이 되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그 엉터리 그림자들을 가지고와서 예수님이 이룬 완료와 대조를 당해야하는 그 섬김을 누리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분쟁이 우리 속에서 늘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지
안 그렇게 되면 마치 성화론자들 그 결백증 환자들처럼 마치 완벽주의자처럼 행동하게 되는
위선 속에 그 회칠한 무덤 속은 죽은 시체 인데 겉은 화려하게 회칠 흰 백색의 천사 광명한 천사 노릇을 하게 된다 라는 것이지요

까마귀 검다 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겉 희고 속 검은 이는 너뿐인가 하노라

이거 비슷한게 예수님과 충돌한 바리새인에게 왜 당신네 제자들은 손 씻지 않고 먹느냐
거룩 지키는자 맞냐 율법 대 놓고 어기는 것 아니냐 라고 할때에
입으로 들어가는게 더러운게 아니라 속에서 나오는 것이 더 더럽다 라고 하셨다 말이죠

이것을 오늘 본문 식으로 하면 우리 유대인 그 중에서 바리새인인 우리들은
손 씻고 먹는 거룩을 지키는 자 이듯이
분쟁을 하지 않는데

왜 당신네 제자들은 손 씻지 않고 먹는 율법의 거룩을 어기듯이
당신네 제자들은 만났다 하면 서로 싸우면서 누가 크냐 라는 논쟁을 왜 멈추지 않는 것이냐?
리고 묻는 식이 되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하나로 합해지기는커녕 늘 쪼개어져서 나누어지는 모습 밖에 안 남게 되니
누가 그것을 교회 라고 할 수 있겠는가 라고 하면

예수님은 어떻게 답변하실까요

이런 사건이 수시로 나왔었죠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자 이제 빼도박도 못한 빼박의 범죄를
과연 예수 당신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땅에 쓱쓱 쓰면서 죄 없는 자가 돌로 쳐라 하셨듯이

분쟁한적 나눈적 쪼갠적 잃어버린 경험 그렇게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라고 말이죠

심지어 바리새인들은 이제 제자들이 아닌 예수님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도전을 합니다
오늘 본문처럼 우리들은 분쟁하지 않는데
하나로 단합되고자 금식을 하는데

당신네들은 술로 단합대회 회식하듯이 술꾼에 먹보에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써
저들 단 하나도 하나로 단합할수 없는 무리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친구가 되는 것이요?????

(마 11:15, 개역)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마 11:16, 개역)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마 11:17, 개역)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마 11:18, 개역)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저희가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마 11:19, 개역)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즉 인자의 편파적인 이 행동이 옳다 라는 것은
반대로 인간 곧 특히 유대인들 그것도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이 전제를 깔고서 나오는 모든 행동들이 선을 옳다함에 끼워맞춰갈때에
주님의 옳으심은 바로 그런 인간의 옳다함을 깨부수시는 옳으심으로써
저들의 선택된 백성이라는 유대교 교리에 정반대가 되는

매국노 세리 그리고 죄인을 선택하고 하나가 되는 친구가 됨으로써

(마 11:11, 개역)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마 11:12, 개역)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마 11:13, 개역)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마 11:14, 개역)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유대인이라는 선민의식 천국백성이거 한번 무너뜨려 박살내어보면
진짜 천국이면 다시 오뚜기처럼 다시 살 것인데
어라 천국을 침노 침략해서 노략질 해 보니
다시는 일어나지 않네? 그렇다면 잃어버림 경험이 없는 남은자 곧 자기 죄로 우는 자들이 아니넹

이러다 다 죽어 라고 외친 남겨둔 한 씨가 우심으로써 남겨둔 남은자가 아니네
그저 행함으로 세운 그림자 허상 허깨비 천국백성이요 그림자천국 헛깨비 천국이네
라고

차라리 너희 독사의 자식들이 (너거 아비는 마귀임을 밝히고 난 뒤에) 부정하는
더러운 자라고 부정하는 그런 매국노 세리와 죄인의 친구가 되는 이 인자의 행함

아무리 봐도 옳지 않는데 그것을 옳았다 라는 행동으로써

내불남노 하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래 너거들이 예수님 공격할때에 내로남불이라고 공격했지
아닌데 나는 세리와 죄인의 친구인데
이 불륜이 너희들의 의로운 거룩 지키기 보다 더 옳았단다 라고 말이죠

아니 보세요 오늘 고린도 본문이 실상이고
출애굽부터 신명기까지 이스라엘의 14번 원망(마침 쳇GPT에 그 14번 나열해 달라고 하니 15번이 된다고 하더라 말이죠)이 나오는데 그 모세오경이 바로 그림자 이다 말이죠

이 실상 때문에 신약 때문에 나온 원망들이다는 겁니다


나의 말:

14번 이상의 원망 사건인 줄 알고 있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나열하시오
 

ChatGPT의 말:

맞습니다! 성경을 면밀히 살펴보면, 이스라엘 백성의 공식적인 원망 사건은 모세오경 내에서 14회 이상 기록되어 있으며, 단순 반복이 아니라 매번 새로운 형태의 불신, 불순종, 도전으로 나타납니다. 다음은 가능한 한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분류한 '원망 사건 리스트(15회)'**입니다.


📘 모세오경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원망 사건 15가지

번호성경 위치사건 내용장소/시기요점
출애굽기 5:20–21 바로가 더 심하게 굴자 모세를 원망 애굽 (출애굽 전) 고통 심해지자 모세 원망
출 14:10–12 홍해 앞에서 두려워하며 "애굽에 매장지가 없냐"며 원망 홍해 앞 애굽 회귀 망상
출 15:22–24 마라의 쓴 물 때문에 원망 마라 물을 달게 하심
출 16:1–3 먹을 것이 없다고 하며 애굽 음식 그리워함 신 광야 만나, 메추라기 공급
출 17:1–7 르비딤에서 물 없다고 모세 원망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르비딤 반석에서 물 나옴 (1차)
출 32장 금송아지 우상숭배와 함께 불신 시내산 모세 지연 → 금송아지
민수기 11:1–3 다베라에서 막연한 불평 (“악한 말”) 다베라 여호와의 불로 징계
민 11:4–35 만나 싫다고 원망하며 고기 요구 기브롯 핫다아와 메추라기 후 심판
민 12장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 지도력에 도전 하세롯 미리암 문둥병 징계
민 13–14장 가나안 정탐 후 불신, “돌로 치자”, “애굽으로 돌아가자” 바란 광야 40년 방황 선언
민 16장 고라, 다단, 아비람 반역 + 족장들 원망   땅이 삼킴, 불이 삼킴
민 16:41 고라 사건 직후, 백성들이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다"며 원망 다음 날 심판: 연병 시작
민 20:2–13 므리바 사건 – 물 없다고 원망 → 모세 반석 침 가데스 모세 가나안 입성 금지
민 21:4–9 길이 험하고 만나 싫다고 원망 (“양식도 없다, 마음이 싫증”) 호르산 → 에돔 길 불뱀, 놋뱀 사건
신 1:26–46 (회고) 가나안 입구에서 믿음 없이 뒤로 물러나려 한 사건 회상 과거 회상 실패 교훈 강조
 

✅ 추가 설명

  • 반복된 주제:
    • 물 없음 → 출 15, 17, 민 20
    • 먹을 것 없음 → 출 16, 민 11
    • 모세/아론에 대한 지도력 도전 → 민 12, 16
    • 애굽 회귀 바람 → 출 14, 16, 민 14
  • 하나님 반응:
    • 불, 뱀, 질병, 연병 등 즉각적 심판
    • 동시에 중보자(모세)의 간구로 긍휼도 반복
  • 신명기에서는 대부분 회고적 성격으로 등장하며, 새로운 원망보다는 과거 실패를 교훈 삼아 반복하지 말라는 목적을 가짐.

📌 마무리 요약

유형사건 수예시
먹고 마시는 문제 원망 6회 이상 출 15, 16, 17, 민 11, 20, 21
지도자·권위 도전 4회 이상 민 12, 14, 16, 17
하나님에 대한 불신 및 회의 다수 출 32, 민 14, 21
애굽으로 돌아가자 주장 3회 출 14, 16, 민 14
 



나의 말:
14번 이상의 원망 사건인 줄 알고 있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나열하시오
ChatGPT의 말:
맞습니다! 성경을 면밀히 살펴보면, 이스라엘 백성의 공식적인 원망 사건은 모세오경 내에서 14회 이상기록되어 있으며, 단순 반복이 아니라 매번 새로운 형태의 불신, 불순종, 도전으로 나타납니다. 다음은 가능한 한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분류한 '원망 사건 리스트(15회)'**입니다.


?? 모세오경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원망 사건 15가지

번호
성경 위치
사건 내용
장소/시기
요점

출애굽기 5:20?21
바로가 더 심하게 굴자 모세를 원망
애굽 (출애굽 전)
고통 심해지자 모세 원망

출 14:10?12
홍해 앞에서 두려워하며 "애굽에 매장지가 없냐"며 원망
홍해 앞
애굽 회귀 망상

출 15:22?24
마라의 쓴 물 때문에 원망
마라
물을 달게 하심

출 16:1?3
먹을 것이 없다고 하며 애굽 음식 그리워함
신 광야
만나, 메추라기 공급

출 17:1?7
르비딤에서 물 없다고 모세 원망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르비딤
반석에서 물 나옴 (1차)

출 32장
금송아지 우상숭배와 함께 불신
시내산
모세 지연 → 금송아지

민수기 11:1?3
다베라에서 막연한 불평 (“악한 말”)
다베라
여호와의 불로 징계

민 11:4?35
만나 싫다고 원망하며 고기 요구
기브롯 핫다아와
메추라기 후 심판

민 12장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 지도력에 도전
하세롯
미리암 문둥병 징계

민 13?14장
가나안 정탐 후 불신, “돌로 치자”, “애굽으로 돌아가자”
바란 광야
40년 방황 선언

민 16장
고라, 다단, 아비람 반역 + 족장들 원망

땅이 삼킴, 불이 삼킴

민 16:41
고라 사건 직후, 백성들이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다"며 원망
다음 날
심판: 연병 시작

민 20:2?13
므리바 사건 ? 물 없다고 원망 → 모세 반석 침
가데스
모세 가나안 입성 금지

민 21:4?9
길이 험하고 만나 싫다고 원망 (“양식도 없다, 마음이 싫증”)
호르산 → 에돔 길
불뱀, 놋뱀 사건

신 1:26?46 (회고)
가나안 입구에서 믿음 없이 뒤로 물러나려 한 사건 회상
과거 회상
실패 교훈 강조



? 추가 설명
? 반복된 주제:
? 물 없음 → 출 15, 17, 민 20
? 먹을 것 없음 → 출 16, 민 11
? 모세/아론에 대한 지도력 도전 → 민 12, 16
? 애굽 회귀 바람 → 출 14, 16, 민 14
하나님 반응:
? 불, 뱀, 질병, 연병 등 즉각적 심판
? 동시에 중보자(모세)의 간구로 긍휼도 반복
신명기에서는대부분 회고적 성격으로 등장하며, 새로운 원망보다는 과거 실패를 교훈 삼아 반복하지 말라는 목적을 가짐.


?? 마무리 요약

유형
사건 수
예시
먹고 마시는 문제 원망
6회 이상
출 15, 16, 17, 민 11, 20, 21
지도자·권위 도전
4회 이상
민 12, 14, 16, 17
하나님에 대한 불신 및 회의
다수
출 32, 민 14, 21
애굽으로 돌아가자 주장
3회
출 14, 16, 민 14







즉 인자의 등장으로 죄인 세리로 드러내는
원망 할 수밖에 없도록 물 없는 곳 양식 없는 곳 원망 안하고는 못 배기는 곳(평등 따위는 없는 민주주의와 무관한 독재의 편파 지도자 세움)

그래서 왜 원망 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무시하고 원망 하도록 만들어서
불뱀에게 물려 죽게 하느냐

이것이 바리새인의 주장과 같고

불뱀에게 물려서 지옥 가는게 아니라
장대 높이 달린 인자와 친구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원망 안하는 인간을 원핫는게 아니라

아무 행동 없이 구원이 되는 오히려 심판받아 마땅한 죄인
분쟁자 일 뿐인데 친구가 되시고자 오신
그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는 믿음으로 구원되게 하시고자 말이죠

그카이 원망 안하는 인간 만드는게 목적이 아니라
분쟁 안하는 인간 또는 교회 만드는게 목적이 아니라

누가 이 인자의 피에 걸맞는 죄인 만들기
원망한 자 만들기
분쟁한 자 만들기
그래서 몽둥이라는 징계 얻어맞는 자 되느냐 라는
자기 쪽애서의 숙제로 구원 그런 멋들어진 구원 그런 자기 가치 높이는 구원 일체 없도록 말이지요
정작 예수님의 제자들의 심심하면 누가 크냐 라는 싸움을 비판할 줄 알았지
그것을 싫어하고 비판 할 줄 아는 나는 자기 자치 높이고자 하는 구원 안할꺼다?
분쟁 안 할 꺼다? 원망 안 할 꺼다?

그런데 그러면 그럴수록 오히려 더 하도록 되어 있는데?
그게 너희들에게 심이놓은 첩자노릇하는 율법이걸랑

율법 네 배나 갚으라 라고 외치는 그 놈이 범인이다 라는 겁니다

도적질 하지 말라 가르치는 그 선생이 그 부모 그 백성의 부모인 왕이
그 놈이 니다 그 놈이 도둑이다 라는 겁니다
이것이 율법의 기능이다 말이죠
자신의 가치를 낮추는데 율법을 사용하는게 아니라
거룩이기 때문에 나의 거룩을 위해 더더욱 이용해 먹는 자기유익 쪽으로 가도록 되어 있다 라는 겁니다
그것이 율법의 올무 기능에 자기 꾀에 자기가 속는 겁니다

그카이 십자가가 모든 인간을 다리 걸어 넘어뜨리는
누워서 침뱉기 할 수 밖에 없는 인간임을
자기 가치를 높이는데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인간임을 그 속임수에
누가 꾀냐 라고 십자가 라는 반드시 부정한
불의한
세리와 죄인의 친구 라는 하필이면 더러운
어리석고 미련한
그 부정한 모습으로 와야

장대 높이 달린 인자로써 와야
비로소 자기 보다 죄가 먼저 있었고 의가 먼저 있었음을 알게 하시는 

그 빵구멍 뻥 뚫힘

아뿔사 그가 나 보다 옳았구나
어찌할꼬 어찌할꼬 가슴을 치면 우리가 주를 죽였구나 라고 비로소 우는 겁니다

그러니 구약에서 그 그림자에서 원망 안하고픈 자 되겠다를 마음 먹으면 먹을수록
더더욱 원망 할 수 밖에 없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유월절 어린양의 피 곧 장대 높이 달인 이 인자

곧 예수님의 죽음이 너의 가치 보다
너의 원망 보다
너의 분쟁 보다
너의 죽음 보다
너늬 저주 보다 먼저 있었다 어딜 꾀냐 라는

이 완료를 밀어붙이심에 있어서
고린도전서라는 신약이 실상으로써
왜 그때 출애굽때 민수기때 왜 원망 안하고는 못 배기도록 인도하셨는줄 아니
이 유월절 어린양의 피 만 남길려고

그 어떤 인간의 좋은 믿음 좋은 행동 마음가짐 그거 일체 안 받고
그런 의문의 반복이나 미완료의 그림자가 아닌

오로지 실상인 인자의 죽음 여기에 합한 자 만들려고
일부러 원망하는자 만들엇단다 와 우짤래
일부러 오늘 본문 분쟁함으로 나누어지는 자로 만들었단다 왜

마침 지난 본문으로 제목이 보이길래

그냥 견고함이 아닌
책망 없는 자로 만드시는 견고함 이다는 겁니다

책망 없는 자가 되어야 견고함 곧 미쁘심 속에 들어간다는 말입니까? 이게 사탄의 자식 바리새인과 오늘날 성화론자들의 주장 아닙니까

아닙니다 반대입니다

견고함이 떳기에 책망 없는 자로 부르신다 라는 겁니다

결국 견고함 마쁘신 믿음이 먼저 떳기에
책망 없는 자로 부르셨음으로 책망을 억수로 받을 수밖에 없는
원망한 자로 당한 자 분쟁한 자로 당한 자 잃어버림 당한자
나누어 짐 당한자 쪼개짐을 당한자
왜 항상 인간은 자기 자신 만큼은 절대로 부인 못하고 자신을 선택하기에
그 선택 주님의 선택으로 쪼개시고자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나누어지지 않는 바닥까지 낮추시고자
빵구멍 뻥 뚫는 굵은 배 옷
육체라는 옷이 빵구멍 난 자로 너덜 너덜 하게 말이죠
그 구원의 뿔이라는 완료가 떳기에
그 빵구멍 내는 뿔
의사의 수술 칼에 맞는 찔림 당한자로 만드심이
책망 할게 너무 너무 많은 자로 당하도록 하심으로써
더 이사 책망할게 없는 자가 되는

즉 책망할게 많은 자는
책망이 할게 있어서 옛사람이 아니라
그것은 어디까지나 또 자기 숙제를 기준으로 한 것이고

예수밈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인한 기준에서는
무조건 십자가 죽음 이전에는 아무리 선하게 올바르게 살아도
원망을 15번 이나 했든 단 하나도 안 했든
무조건 옛사람으로써 책망 할 것이 많은 자 인 자를

실상이 떳기에
이제 더 이상 이전 것은 지나 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다
완료가 덮쳐졌다 라는 이유로

아무리 분쟁하는 자가 되어도
책망 할 것이 아무리 7에 70번이 있어도

예수 안에는 책망 할 것이 없는 정죄 함이 없는 자 새 사람이다는 겁니다

그래놓고 몽둥이로 징계의 사랑으로
우리 몸에 십자가 폭탄을 수셔놓고 심심하면 터트리시는 겁니다
이미 해체의 수순을 밟는 거지요

구약의 그림자로써의 15번 원망은 해체 작업이다는 겁니다
자기 가치 해체 폭발 다이나마이드 폭발 이다는 거죠

그러면 우리는 죽는다 라고 또 징징 거립니다

그러나 막상 안죽는다 라는 것을 신약 실상인 고린도서에서는
믿음으로 다시 산다 라고
내 개인의 죽음과 다시 삶이 아닌
예수 안에서의 죽음과 다시 삶을 말하고자 동원되는 그릇이다 라고
완료로써의 토기장이 비유 비밀처럼
이 그리스도의 몸 만이 경험하는 그 경험을 하라고
오늘 본문이 비유 비밀처럼 고린도 교회에 주어지는 겁니다

그러니 이런 분쟁함으로써 책망 받는 것 자체가
책망이 없도록 하시는 견고함이 징계하시는 사랑이다는 거죠

견고함이 그 완료가 의인화로 표현해서
나를 완료라는 그 이유로 몽둥이 책망 징계를 하시는 겁니다

아니 책망 없다메? 그건 주님의 마음이고
우리 입장은 이 몽둥이 자체가 책망 자체가 책망 없음이 되는 거죠

그래서 견고함 이야기 방금 위에 해 놓고서는
그 견고함이 뭔줄 아니????
바로 분쟁이야 해체작업이야
어떤 해체
나는 절대로 원망 안 할 거야 라는 내 숙제 해체 작업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는 절대로 분쟁 하지 않고
정치하지 않고 
미움 다툼 시기 질투 버릴 거야 라는 그 마음을 해체시키겟다 라는 겁니다

도리어 나는 뭘 해도 가짜 맞군요 라고
원망 안 하고는 못 배기는 자
분쟁 안하고는 못 배기는 자
나누는 짓 안하고는 못 배기는 자
정치짓 안 하고는 못 배기는 자
세 번 부인 안 하고는 못 배기는 자
쫓겨나는 짓 안 하고는 못 배기는 자로 만들어서

그 잃어버린 자 그 포로 잡혀간 자를 다시 되찾는

더 이상 내 숙제에 미련이 없도록 만들어서
오로지 주님의 숙제로써 하나가 되게 하는

이 섬김을 이 다 이루심의 완료를 보여주시는 견고함이지

내가 내 숙제로써 결핍을 채우고자 견고케 하는 짓은
도리어 자기 자신에게 실망하여
나 이렇게 가치 없는 놈 아닌데? 왜 그러지
이런 나를 내가 용서 못하겠다 라고
자살한 그 가룟유다의 분쟁안하기 나누지 않겠다는 그 다짐이

오히려 주님의 완료 앞에서 배불러 터진
끝까지 그림자를 사수하겟다는 고집이다는 겁니다

실상 앞에서 그냥 손 놓고 자수하면 광명 찾는데
자기가 자기를 책임지겠다 라고 하니
자기가 도저히 용납 못하는 자기의 모습에
자기 자신을 지가 심판주도 아닌데 심판해 버리는

그러니 성화론자들이 얼마나 위험한 놈들인지 자살을 행해서 가고 있어요
자기 안 죽으면 꼭 자기 자녀 자기 가족 자기 교회를 막 괴롭히고요

왜 나는 바울파인데 바울 보다 더 옳은자 없는데 왜 나는 안 알아주는 거야 라고

거 보세요 바울이 더 낫다 라고 파당을 만들었거나 그 속에 들어갔다면
바울이 옳아서가 아니라 그런 선택을 한 자기가 옳다 라는
역시나 자기 가치를 높이고자 한 것이다 말이죠

그래 그거 못 고칩니다 그래서 완료를 실체를 증거하는 진짜 바울이라면
주님이 대신 피 흘려 살려낸 죄인 바울이라면

아이고 고맙구나 내 편 들고자 바울파에 들어와 줘서 고맙구나 라고 해야 합니까
아니면 너가 그렇게 옳다 라고 하는 그 바울? 가짜 인데????

인간이 임금을 선택하는 이유는 대통령 말이지요
자기가 먼저 있었기 때문이고 그래서 임금을 이용해 자기에게 도움 받고자 임금 삼는다 말이죠
그런데 예수님 도망 치 잖아요

왜 내 그림자를 임금 삭고 나의 실체는 그림자 밟듯이 헌신짝처럼 버리지 라고 도망치시는 겁니다

바울도 그냥 바울이 아닌 그리스도의 피로 세움 받은 바울도
아니 내가 언제 너를 위해서 십자가 진적 있더냐 라고 하는 겁니다

오히려 자기의 가치를 높이고자 도움된다 싶어서 선택한 바울파
그리스도파 아볼로파 등등등

마치 출애굽 하기를 더디하는 자처럼
어미 뱃속에서 나오기는 더디하는 자처럼
그런 임금들
반드시 다 죽이시겠다 하셨듯이

아니 나 바울도 다 어치피 죽는 그림자 인데

왜 실상 곧 새사람 새마음 새영을 안 따르고
왜 또 그림자를 쫓을꺼니

뭐 분쟁 안하고파서
뭐 원망 안하는 길로만 가고파서

그것이 도리어 더 원망하고
그것이 도리어 더 분쟁하는
그래서 바울파를 너가 만들고 있잖아 자나 자나 그러고 있자나 ~~~~~~~~~~~


자 그래서 분쟁해서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
원망해서 불뱀에게 물려 지옥에 가는게 아니라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안 쳐다 봐서 지옥가는

천국을 완료를 실상을 반대로 그림자와 대조를 해서 알려주시는 겁니다

분쟁 안하는 완벽한 자가 되어서 천국가는게 아니라

천국이 먼저 떳기에 이런 분쟁 했음에도 불구하고
완료 앞에서 되도 않는 결핍채우기 그거 빵구멍 더더더 내심으로써
그 몽둥이 완료로 그 몽둥이 천국으로 인해서

수술칼로 팍팍 째서 찢어지고 쪼개지고 나누어지고 해체 됨으로써

원래 없었던 나 라는 자아의 해체 작업을 시키는
새 사람이 내 속에 이미 떡 하니 주인으로 자리 잡음으로써

그의 죽으심으로 그 피 위에 세워진 교회이기에
이 해체 작업이 바로 예수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는
책망할 것이 없는 견고함으로 인해서 벌어지는 분쟁사건이 되는 겁니다

보자 이 분쟁 사건으로 인해 누가 댓글로 한번 시비를 건 적이 있었는데
제 답변이 뭐라고 했는지 다시 찾아 볼려고 하니 많은 글 땜에 찾기가 힘드네요
아무튼 그 사람은 아주 정상적으로 묻는 반면
저는 아주 비상식적인 답변으로 인해 그 사람이 아주 화를 내었던 기억이 나는데

이 헤체 작업이 없으면
인간들은 항상 남들의 눈을 의식해서 만드는 공동체를 만들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결론은 결과적으로 이 아름다운 공동체 형성에 제일 방해되는
멋있어 보이는 것들을 다 망치는 것 바로 십자가가 이토록 거리끼는 걸림돌이 될 줄 모르기에

이 놈의 십자가만 있으면 분쟝이 일어나고 나누어지고 쪼개어지니
이거을 저 부활절 앞 고난 주간에만 언급하고 저 멀리 밀쳐 두거나
아예 빼 버리자 죄죄죄 고먼 캐라 마이 무따 이아가

라는 결론을 보여주더라 말이죠

결국 분쟁하지 마라 나누어지지 말아라 오히려 하나로 합쳐라 라는
또 구약의 그림자처럼 하라 하지 말라가 되어버리면
또 의문의 반복으로 또 속임수가 되는 겁니다
미완료를 채우기 급급한 결핍채우기
그거 제대로 못하는 놈 또 정죄하는 그 카이 더 분쟁하는 셈이 되는 거지요

오히려 완료로써 덮쳐졌기에

더 이상 하라 하지 말라처럼
분쟁하지 말라 나누어지지 말라 하나가 되어라 로 듣기는게 아니라
오히려 행함의 언어가 아닌 언약의 언어 완료의 언어 곧 사랑의 언더이기에
번제와 제사의 언어가 아닌 인애와 자비의 언어이기에

아 책망할 것이 없는 견고함이 덮쳐졌기에
왜 덮쳐 졌는가를 보니
아 책망할 것이 너무 많은 죄인을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용서한

이 예수님의 죽음을 보라꼬
이 피 위에 고린도 교회가 새워졌구나

구약의 그 모세오경은 쉽게 모세교회 라고 합시다
율법의 유대교는 무조건 이유 없이 그림자 교회이고

고인도 교회는 아무리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며 이것 때문에 서울에는 아예 술 쳐먹는 것을 당연시 하더군요 웃끼는 놈들 결국은 또 자기 가치를 놓이고자 이용하는 셈이지요 또 세리와 죄인이라고 하더라도 부족함 없는
책망할 것이 없는 인자의 피 흘리심 덕분에 완료를 누리는 겁니다
그 증상물이다 말이죠

방종하라는 말이냐 라고 또 하라 하지말로 빠지는 놈들은 이 완로의 의미
다 이루었가를 모륵기에
또 결핍 채우기라는 것 밖에 모르도록 되어 있습니다
남 7번 용서냐 아니냐 만 잴줄 알았지

그 숫자 세고 있는 손가락 무용지물 만들어 버리는
7에 70번 용서 손가락으로 세다가 에이 포기 할래로 만드는
그 완료를 못 누리기에 포기를 못하는 겁니다
제발 신앙 포기 하세요 믿음 포기 하세요
예수님의 숙제에 맡기세요
못 합니다

뭘 믿고 맡기냐 말이죠

사랑이 없으면
용서를 받은게 없으면

많이 탕감 받은 것이 없으면 사랑할 수가 없으니

울리는 꽹과리
베설술 똥떵어리만 잔뜩 모으는 겁니다
그 그림자 모아서 뭐 하게요?????

주님의 숙제는 예수님의 죽음 위에 세우시는 겁니다
모잘라 모잘라 함량 미달이면 그거 사람의 일이요 짐승의 일입니다

그러나 충만한 다 완료를 누리는 것은 오로지 예수님의 피 흘리심의 공로로만 다 이루심이라는
완료를 누리는 겁니다

그래서 분쟁하라 하지 말라 라는 그림자가 아닌
완료의 차원에서 누리는 증상이기에

분쟁 할 수 밖에 없는 죄인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완료 이런 예수님의 죽음을 바로 이 분쟁 속에서 꽃 피우셨구나

민수기 16장에 고라 자손의 반벽이라는 그 유명한 사건이 나옵니다

(민 16:1, 개역) 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와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이 당을 짓고
(민 16:2, 개역)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에 유명한 어떤 족장 이백오십 인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리니라
(민 16:3, 개역) 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스려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뇨

1절에 당을 짓고 나오지요

고라의 반역은

(민 16:9, 개역)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회중에서 너희를 구별하여 자기에게 가까이 하게 하사 여호와의 성막에서 봉사하게 하시며 회중 앞에 서서 그들을 대신하여 섬기게 하심이 너희에게 작은 일이겠느냐
(민 16:10, 개역) 하나님이 너와 네 모든 형제 레위 자손으로 너와 함께 가까이 오게 하신 것이 작은 일이 아니어늘 너희가 오히려 제사장의 직분을 구하느냐

왜 우리는 보조 역할이고 왜 너희는 제ㅏ장 직분이냐 라는 겁니다
평등하지 못하다 라고 민주주의 주장하더라 말이죠

그런데 이들은 예수님의 제자처럼 누가 더 크냐 라는 더 큰일로 자기 자신의 가치를 평가한 겁니다

그러나 정작 그 반대입니다 아무리 거룩이라고 해도
정작 그 속에는 더러움을 거룩으로 옮기는
그 처참하게 갈기 갈기 찢겨 죽는 그 죽음 다루는데 있어서
제사장 본인들도 날마다 죽노라처럼 그 죽음 속에 같이 놓이는 셈인데

우리는 그저 남의 시선 곧 타인의 욕망처럼 남들이 좋게 보이는 것을 취하고픈 마음에
니만 그 더러움을 똥푸는 일 하지 말고 나도 할란다 라고 반란을 일으켰던 거죠

그런데 이 반란을 통하지 않고서는 이 거룩한 죽음을 설명할 길이 없겠지요
인간이 순순히 맹목적으로 따른다 라고 해서 그 불만을 그대로 삭이고 넘어가느냐?
아니지요 언젠가는 그 억눌렀던 터져 나오니까 바로 바로 터트리시는 겁니다

원망해서 죽이는게 아닙니다
분열해사 분당을 지어서 지옥 보내는게 아닙니다
원망을 했던 분당을 했던 원망을 아니했던 파당을 아니했던 상관없이

이 언약의 취지가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 앞당겨 보여주는 죽음을 다루는 입장인데
그것이 실상인데 
실상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 그림자 때문에 그러는 것 넘어갈수 있는데
정작 언약의 취지를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율법의 취지는 결국 요나의 표적인
인간의 더러움 속에 뛰어든 예수님의 죽음
유월절 어린양의 피 흘림 갈기 갈기 찢겨죽는 처참한 죽음을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실상이 떳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림자를 따지면서 운운할때에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안 쳐다본다는 그 이유로 즉결심판으로 죽이시더라 말이죠

그런데 이것이 그것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백성 전체의 불만으로 이어집니다 아니 고라 자손의 말이 맞는데 왜 그러지 라고 말이죠

아니 외부에서 새롭게 주어지는 생명 그래서 대신 죽은 그 피흘리심은 아무도 관심 없고

즉 여호와의 불 그 무시무시한 심판의 불은 관심없고
그저 내 가치를 무너뜨린 어라 고라 자손이 죽으면 우리도 저래 되는거 아니냐 라고

아무도 여호와의 불이 어떤 불인가 라는 것은 전혀 의식을 못하는 겁니다
마치 웃사가 떨어지는 법궤를 잡다가 즉사한 것처럼 말이죠


아니 어릴적부터 자기 집 앞 마당에 있었던 그 법궤를 아무리 지금 이동 시키는 그 무리의 선두에 섰다고 해도
역시나 사람의 눈을 의식하고 있지
누가 산 자 인지 누가 죽은 자 인지
살아 있는 자는 결국 거룩한 자 인데
그것을 법궤를 앞장 세우는 그 직무를 맡아본들 자신은 죽은자 라는 의식이 있겠냐 말이죠
아무리 봐도 법궤는 그저 물건 삼자 생명체처럼 움직이지도 않는 상자 박스일 뿐인데 말이죠

즉은자 라는 의식이 전혀 없는 겁니다
반대로 오벧에돔은 바짝 엎드리는 모습이더라 말이죠

마찬가지입니다 백성들 전체가 아무리 금송아지 우상숭배를 한 정작 그것은 살아있는냥 우상숭배를 했고 동시에 자신들도 살아있어서 숭배받는 가치를 높였는데

이 제사장 직분이 뭐 그리 대단하길래 고라 자손을 바로 죽이는 죽은자 취급하느냐 라고
우리 인간을 살려야지
왜 자꾸 생명체도 아닌 제사장 직분 살릴려고 생사람 잡느냐 말이죠
이 어린양을 잡는 그 죽음을 다루는 이 율법을 왜 그렇게 중요시 하느냐 라고 따지다가 또 다 죽는

지금 그림자 시대에도 사라질 영광이 이렇게 영광스러운데
더 이상 신약 시대에는 이 예수님의 죽음으로 다 모여야 하는데
파당질 함으로써 또 그림자를 쫓는다?

그럼 예수님의 죽음이 헛된거 아니냐 라고

그러니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말하기 위한 죽음으로써
죽을 자가 다시 사는
더러움을 거룩으로 옮기는

이 언약의 정신 율법의 정신은 아무도 안 보고
잘대 높이 달린 인자는 안 쳐다 보고

자기 가치의 성과
아니 불뱀에게 물렷으면 약을 줘야지
왜 죽이내 왜 인자를 왜 죽이냐
왜 예수님을 왜 죽이냐 라고

쳐다 보면 낫는다 결국 낫게 하는게 목적 아니냐
그런데 왜 죽이냐 말이죠
죽어야만 하는 자를 살리는 기능은 희생 죽음인데
아누모 안 쳐다보고 내가 알아서 내 살길을 내가 찾을께
어 그런데 그런 고라 자손을 죽이면
내가 살길을 막는거나 마찬가지 이니냐 라고

제사장 직분 그 껍데기만 볼 줄 알았지
그 속 말맹이인 사랑 곧 예수님이 대신 매 맞으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는
그 사랑은 때려 죽어도 안 볼라 카는 겁니다

(눅 11:42, 개역)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아니하여야 할지니라

남을 사랑해서 제사장 직분 니만 하냐 나도 하자 그래서 사랑을 추구하느냐? 아니잖아요
인간은 자기 밖에 몰라요
사랑했다면 사랑을 햇다
사랑을 했다 우리가 만나 지우지 못할 추억이 됐다 볼만한 멜로드라마 괜찮은 결말 그거면 됐다 널 사랑했다

진짜 사랑을 했다면 율법을 어릴적부터 다 지켰다면 전재산을 나누어 주어도 아깝지 않은데
아니잖아요
결국 율법을 역이용 해서 자신의 가치를 높였지
누가 자신을 없애는 사랑을 하겠냐 말이죠
분쟁이 벌어지는 이유 또한 결국 자기 가치 높이기 이다는 겁니다
그래서 구약과 다르게 신약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먼저 떳기에 너희들은 분쟁해서
바울파 아볼로파 그리스도파 파파파 도레미파를 만들 수 밖에 없다 라고 지적 받는 관계를 아예 십자가의 죽음이 그 완료가 그 실체가 드러내시는 겁니다
그러니 원망 안하고 싶어도 분쟁 안하고 싶어도
이런 죄인 마저도 용서하심 앞에서 아 난 뭘해도 분쟁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군요
엣사람에서 새사람으로 옮기는 작업을 내 손에서 할수 없군요
그런데 주님이 이미 다 이루셨군요 라고

미리 지적받는 식이다는 겁니다

분쟁하라 하지말라 라는 방종 비판하는 자들의 그런 의식이 아니라
너는 뭘 해도 마귀에게 잡혀 올 수밖에 없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할 자 맞거든

그러나 내가 이미 믿음 떨어지지 말라꼬 기도 했단다
십자가에 달려 죽음으로써 화목제를 다 이루어 놓았단다
예수 안에서는 결고 정죄함이 없단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카이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라고 뻔뻔스럽게 이야기 하지
분쟁했제? 너 책임 져야지 이것은 또 마귀의 꾀임에 빠지는 것이다 말이죠
모든 허물을 다 덮어서 예수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말이죠

결코 시간을 멈출수 없다 요 
결코 책망할 것이 없는 견고함을 주셧다 말이죠
그래서 미리 마귀에게 잡혀 오라 말이죠
과연 예수님이 사랑이 변하는지
분쟁한다고 변하는지
나누이고 하나가 되지 못한다고 사랑이 변하는지
견고함이 변하는지
미쁘심이 변하는지
완료가 실상이 실체가 변하는지
아니면 또 그림자 때로 다시 돌아가는지

안 변한다 라면
그 분당
그 파벌
그 나누어짐
그거 심각한 것이 아니기에 시시해 져서

바울파 게바파 아볼로파 이렇게 나눈 것 
성령이 새마음이 새사람이 임하게 되면
괜히 머리에 숯불 얹은 것처럼 부끄 부끄
왜 또 쓰잘떼기 없는 짓을 했는고 라고
행동을 고치든 안고치든 상관없이
또 주님의 용서에 그 피흘리심에 감격하여서
또 탕감해 주심에 또 사랑하는

사랑을 누리게 되지
뭐 또 내 행동 하라 하지 말라를 더 이상 의식하지 않게 되는 겁니다

그래샤 바울파 파당 지은자에게
바울은 나 바울 핑계 못 되도록
날 쳐다보지 말아라
내 핑계 대지마 난 널 위헤 죽은 적 없어
즉 나는 가랑 아니다
그림자가 그림자를 왜 보냐 말이죠
너가 실상인 완료로 인해 새사람 되었다면
예수님의 죽음을 봐야지 
난 너를 위해 죽은 적도 없고 십자가 진 적도 없어
즉 나 또한 용서함을 받는 자 이지
하라 하지 말라 지키는 자가 더 이상 아니다
더 이상 그림자 놀이에 안 놀아날란다 라고 하는 겁니다

캬 맞습니다 모든 것이 그림자였다 말이죠
실상을 앞에 두고도 여전히 그림자 놀이를 찾는 우리

실상이 멀리 떨어져 있는 자는 오죽 더 하겠느냐 말이죠

주님 찾아오심 앞에
나의 완벽함
나의 가치에 도움 되는자 찾아 편먹고 정치 파당 짓 그거 의미 없습니다
의미 없어도 우리는 여전히 하도록 되어 있지만

이 완료 덕분에 그거 심각하게 목숨 걸 가치가 없음을 아시고
도리어 목숨 걸어서 죽은 나를 살린
더러운 죄인을 분파질하는 나를 살리시고자
대신 매 맞은 주님의 죽음 덕분에

아 그건 사랑이 아니다 라는 것을 알게 하심 앞에
뭘 해도 나는 엣사람이지만 그 엣사람임을 지적해 주심 앞에 새사람으로 오신 주님을 영접할수 있는
바짝 엎드린 오벧에돔처럼 
자기 죄를 알고
죽어 마땅한 자에게
왜 주님의 거룩이 찾아오셔서
더러운 자를 거룩으로 옮겨주시는지
죽어 마땅한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
화로다 나는 망해야 할 자입니다 그런 지옥의 몸을
왜 용서하시는지

그 사랑 알수가 없는 비밀임을 누리게 하시고자
이미 완료로써 덮어버렸다는 사실에
매일 매알 이 지적받는 관계에 놓여진 사랑이라는 것을 누리시면 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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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최근 댓글이 달린 글이 계시록에 성전이 없다 였다

바울 참성전인 예수님의 피 위에 세워진 예수님 몸과의 연결을 주장하는 반면에
인간은 인간의 몸(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이나 공동체 동아리 모임)
누가 크냐 라는 자기 가치로 회귀하는 그 성전에 집착할때에

이미 다 세워져 완료된 성전을 통해서 허물어져야할 가짜 몸을 대조하며

왜 허물어져야 하는지
왜 누락 되어야하는지(교회는 누락의 총화이듯)
왜 모든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실상 앞에서 그림자는 뭘 해도 거짓이기 때문에
참됨이 나타났기에 거짓됨을 고백하는 새몸 곧 그리스도의 몸을 누리는 것이다

주님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그림자는 실상을 가두어 둘수 없다

성전 없다 영구 없다

받는 분이 아니기에 화목제 자기 목숨을 주셨다

(행 17:24, 개역)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행 17:25, 개역)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계 21:22, 개역)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계 21:23, 개역)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계 21:24, 개역)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계 21:25, 개역)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계 21:26, 개역)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계 21:27, 개역)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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