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2 이스라엘 산을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 (비방받는 표적과 한 몸된 동헹) (겔 36, 1- 7).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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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2 이스라엘 산을 향한 무조건적인 징계의 사랑 (솔로몬 영광 아닌 비방받는 요나의 표적) (겔 36, 1- 7)
2025. 11. 16. 

예수님의 고난에 참예 당한 동행하는 이스라엘의 무조건적인 징계의 사랑인 축복
잔칫집 에돔 애굽이 아닌 광야에서 결혼 하시는 지혜자 (천한 계집을 왕비의 자리에)이런 지혜만이 새상이 견디지 목하고 격동케 하심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심)

세일 산으로 향한 저주 예언 (무조건 에돔을 에서를 미워하심) (겔 35, 1-15)
에스겔 2019 2025. 10. 25. 10:00
21-101 세일 산으로 향한 저주 예언 (무조건 에돔을 에서를 미워하심) (겔 35, 1-15)

〈에스겔 36, 1- 7, 개역한글, 구약성경 1207쪽, 찬송가 027장 새 027 빛나고 높은 보좌와, 찬송가 410장 새 310 아 하나님의 은혜로〉

〈찬송가 027장 빛나고 높은 보좌와,  새찬송가 027장〉

찬송가 027장 빛나고 높은 보좌와, 새찬송가 027장.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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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빛나고 높은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주 예수 얼굴 영광이 해같이 빛나네 해 같이 빛나네
2. 지극히 높은 위엄과 한없는 자비를    뭇 천사 소리 모아서 늘 찬송 드리네 늘 찬송 드리네
3. 영죽을 나를 살리려 그 영광 버리고    그 부끄러운 십자가 날 위해 지셨네 날 위해 지셨네
4. 나 이제 생명 있음은 주님의 은사요    저 사망 권세 십자가 날 위해 지셨네 날 위해 지셨네
5. 주님의 보좌 있는데 천한 몸 이르러    그 영광 몸소 뵈올 때 내 기쁨 넘치리 내 기쁨 넘치리.  아멘


〈찬송가 4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새찬송가 027장〉

찬송가 4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새찬송가 027장.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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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 지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잘아는 주님, 
   늘 돌보아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2. 왜 내게 굳센 믿음과 또 복음 주셔서, 내맘이 항상 편한지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잘아는 주님, 
   늘 돌보아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3. 왜 내게 성령 주셔서 내 맘을 감동해, 주 예수 믿게 하는지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잘아는 주님, 
   늘 돌보아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4. 주 언제 강림 하실지 혹 밤에 혹 낮에, 또 주님 만날 그곳도 난 알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잘아는 주님, 
   늘 돌보아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에스겔 36, 1- 7, 개역한글, 구약성경 1207쪽〉

(겔 36:1, 개역)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산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 산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겔 36:2, 개역) 주 여호와의 말씀에 대적이 네게 대하여 말하기를 하하 옛적 높은 곳이 우리의 기업이 되었도다 하였느니라
(겔 36:3, 개역) 그러므로 너는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그들이 너희를 황무케 하고 너희 사방을 삼켜서 너희로 남은 이방인의 기업이 되게 하여 사람의 말거리와 백성의 비방거리가 되게 하였도다
(겔 36:4, 개역) 그러므로 이스라엘 산들아 주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산들과 멧부리들과 시내들과 골짜기들과 황무한 사막들과 사면에 남아 있는 이방인의 노략거리와 조롱거리가 된 버린 성읍들에게 말씀하셨느니라
(겔 36:5, 개역)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진실로 내 맹렬한 투기로 남아 있는 이방인과 에돔 온 땅을 쳐서 말하였노니 이는 그들이 심히 즐거워 하는 마음과 멸시하는 심령으로 내 땅을 빼앗아 노략하여 자기 소유를 삼았음이니라
(겔 36:6, 개역)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땅을 대하여 예언하되 그 산들과 멧부리들과 시내들과 골짜기들을 대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내 투기와 내 분노로 말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이방의 수욕을 당하였음이라
(겔 36:7, 개역) 그러므로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맹세하였은즉 너희 사면에 있는 이방인이 자기 수욕을 정녕 당하리라

(겔 36:1, 새번역) "너 사람아, 너는 이스라엘의 산들에게 이렇게 예언하여 일러라. '이스라엘의 산들아, 너희는 나 주의 말을 들어라.
(겔 36:2, 새번역)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너희의 원수가 너희를 차지할 생각을 하면서 옛적부터 있던 고지대가 이제 자기들의 소유가 되었다고 좋아한다.'
(겔 36:3, 새번역) 너는 이스라엘의 산들에게 이렇게 예언하여 일러라. '나 주 하나님이 이렇게 말한다. 그 원수들이 너희를 황폐하게 만들었고, 사방에서 너희를 삼켜 버려서, 너희가 다른 민족의 소유가 되었으므로, 너희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조롱거리가 되었다.
(겔 36:4, 새번역) 그러므로 너희 이스라엘의 산들아, 너희는 나 주 하나님의 말을 들어라.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산과 언덕에게, 시냇물과 골짜기에게, 황폐해진 황무지에게, 그리고 사방에 남아 있는 성읍들, 곧 다른 민족들이 약탈하여 조롱거리가 된 버림받은 성읍들에게 말한다.
(겔 36:5, 새번역) 나 주 하나님이 이렇게 말한다. 진실로 내가 나의 맹렬한 질투를 그대로 쏟아서, 남아 있는 이방 민족들과 에돔 온 땅을 쳐서 말한다. 그들은 내 땅을 자기들의 소유로 만들면서 기뻐하였고, 내 땅의 주민을 멸시하면서 내쫓고, 내 땅의 목초지를 약탈하고 차지하였다.'
(겔 36:6, 새번역)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땅을 두고 예언하고, 산과 언덕에게, 시냇물과 골짜기에게 전하여라. '나 주 하나님이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뭇 민족에게 수치를 당하였기 때문에, 내가 질투와 분노를 그대로 쏟으면서 말한다.
(겔 36:7, 새번역) 그러므로 나 주 하나님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직접 내 손을 들고 맹세하였다. 진실로 너희의 사방에 있는 이방 민족들이 스스로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다.


언약이란 두 언약이 한 세트가 되어야 약속이요 계시말씀이요 예언입니다
예정은 인간 구원이 예정 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주 되심과 마귀의 심판받음이 바로 약속성취가 되는 겁니다

한 쪽만 되며는 안되는 겁니다

그래서 지난 번 구절의 에돔의 무조건적인 미움이 반드시 있어야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설명이 되는 겁니다

토기장이 곧 창조주란 이 두 그릇
진노의 그릇과 긍휼의 그릇에 주도권을 마음대로 가질 권한이 있음을 말하는 겁니다
즉 이 말은 창조주를 거부하는 자들은
반드시 이 문제 두 그릇 설정에 대한 반발과 미온적인 태도가

주님의 주 되심을 반발하듯이 창조주의 창조주 되심을 거부하는 모습을 반드시 취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지요역설적이게도 창조주의 주 되심에 가장 적극적인 태도를 취했던 이스라엘 조차도
긍휼의 그릇이 아니었다 라는 점에서
토기장이의 고유권한은 그런 누가 꾀냐 라는 꾀임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는다는 점 이다는 거죠
마치 제가 이런 글들을 적고
소위 하나님의 주권? 절대주권 아따 교리 용어 무지 오랜만에 쓰네
이런 사상을 옹호하고 변호하고 주장한다고 해서
긍휼의 그릇이 된다 라는 보장을 확보할 수가 없다 라는 겁니다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성경은 바로 그런 가장 적극적인 옹호자들이 가장 예숭님을 죽이는
하나님 살해를 보여줬다 라는 점에서
인간은 자아라는 신 외에는 안 믿는다 라는 것이 밝혀 졌습니다

그 증거가 십자가요
십자가가 그 증거를 밝히 보여줬는데
어딜 사기를 치냐 라고 인간들 저거들 끼리 속여도

하나님 의 뜻 이라는 둥 으로 하나님 이름을 아무데다 붙이지 말아라 망령되이 일컷지 말고
하나님 이름으로 맹세치 말하고 합니다

즉 이 말은 인간은 신을 붙이는, 신의 이름을 붙이는 행동 아닌 행동이 없다 라는 겁니다

그 카이 율법은 우리를 죄 아래로 가두기 위함이지
행함을 추구 할수 있는 것이 아예 없다 라는 것이지요
율법에 따른 행함을 의지한 자들인 이스라엘이 왜 의에 이르지 못하는지를 보여주시는 것이지요

자 그럼 오늘 본문은 지난 번에 형 에서 그리고 그들의 자손 에돔 후손에 대한
무조건적인 미움인 진노의 그릇을 말함에 있어서
오늘 이스라엘 산을 향한 예언은 당연히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여주실줄 알았는데

어라 이스라엘 역시나 에돔과 같은 심판을 받다니????
이게 무슨 사랑받기로 작정이 된 거냐 라는 겁니다

그러나 생각만 조금 더 해 보면 간단합니다 모순 된게 아니라 보세요
에돔이 왜 저주 받습니다
미움 받기로 작정이 되고
그 원인을 뒤에 붙인다 라고 했고
결과를 이미 활정 시켜 놓고
원인을 뒤에 붙이는데

그 원인이 이스라엘이 망할때에 하하 좋아라 비웃었다 라는 것이다 말이죠

자 그럼 이스라엘은 망해야 합니까 안 망해야 합니까

여기서 다들 답을 안해요 글쎄

답을 미리 다 말해 줬고 성경에도 기록이 되엇는데도 불구하고
입을 함구해 버립니다

심지어 목사들도 말을 안해요
말했다가는 지금까지 해 오던 설교내용을 다 부정해야 할 판국이니까 말이죠

자 그럼 도대체 누가 사랑받기로 작정이 된 거냐 가 되는 것이지요

여러분 보다 제가 성질이 급하고 제가 더 답답해서 미리 답을 말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은 사랑받기로 작정이 되었다 라는 의미를 우리는 내 쪽으로 확 끌어당긴다 라는 점에서
그런 사랑받기란 없다 라는 겁니다

오히려 그 이스라엘의 망함을 보고 에돔이 하하하 비웃음으로 인해 저주를 더 구체화 시키기 위해서

즉 반대를 위한 반대인 셈이지요 상대방을 그렇게 만들고자 미끼를 덮썩 물도록 말이지요

그 이스라엘의 망함이 있지 않으면 저들의 무조건적인 미움은 그 언약은 그 계집종 하갈의 언약은
두 언약 두 아들 언약 중 이스마엘의 언약은 형성 되지 않습니다

재미있게도 주님이 직접 만들어낸 언약이 있다면 인간이 만들어내는 언약도 있겠지요
그게 유대교 이고 그게 이슬람인데

왜 이슬람 이야기를 하는 고 하니 박도현? 박현도 교수가 이슬람 이야기 한 것을 들어보니

그들은 이삭을 아브라함이 바친게 아니라 이스마엘을 바쳤다 라고 하더라 말이죠

유대교랑 반대로 이삭이 아닌 이스마엘이라고 결정적인 표현을 들었다 말이죠

그 동안 그냥 이스마엘로 타내려왔다 막연하게 들었는데
중동 전문가가 그렇게 구체적으로 말하니까 아하 그렇구나 라고 무릎을 쳤다 말이죠

그런데 웃끼게도 그런 개인 이삭
개인 이스마엘을 각각 다르게 바쳤다 라고 해도

그런 개인을 언급한다 라는 자체가 종교 일 뿐이다는 겁니다
개인 구원을 추구시켜 줄려고 얼마나 발악을 하는지
유대교나 이슬람이나 마귀인 거죠

정작 아브라함 자손은 누구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그런 개인이 중요한게 아니라

아브라함은 예수님의 때를 보고 기뻐했다 라는 점입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집단 구원 곧 그리스도의 몸, 예수 안이 되지
그 외에는 예수 밖이다 라는 겁니다

즉 그들만의 시간과 공간 곧 다른 몸 다른 역사를 가지는 거죠
유대교는 유대교 따로 그들만의 리그로써의 그들만의 시간과 공간이 있는 거죠
이슬람도 이슬람 따로 그들만의 시공간이 있는 거죠

바로 그런 종교에서 지키는 행하는 번제와 제사는 다 속임수 이다는 겁니다

진짜 참 제사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리는 것은
예수님의 몸이라는 집단 몸 그런 시공간이 아니면
인애와 자비는 없고

그저 유대인의 완악함처럼 행함만 주구장창 외치는 겁니다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고 오히려 겹겹이 덧끼워서 더 두텁게 덧씌워 씌우는 겁니다

꼭 이런 놈들 이런 종교들이 지도 안 지키고 남도 못 지키도록 무거운 짐을 지워서
지도 천국 안가고 남고 못 가게 삥이나 뜯어내는 겁니다
이게 종교 라는 장사꾼들 곧 음녀들의 특징이다 말이죠
계시록에서 사탄의 회 라고 하잖아요
모든 종교는 다 이래요
기독교 라고 예외가 아니다 라는 거죠 기독교 라는 종교 자체가 방패막이 안되어 준다는 겁니다

오히려 오늘 본문처럼

멸망 속으로 이스라엘은 들어간다는 겁니다
그래야 저들 미움 받기로 작정이 된 자들이 자기들이 이겼다 라고 하하하 비웃을 것이며
미끼를 덮썩 물게 되는 것 아닙니까

바로 이런 점에 반발성 때문에 아무리 물어도 답을 안하는 겁니다
심지어 대답할 의무를 가진 목사들 조차도 말을 안해요
했다가는 망하거든요

아 아 그래 그랬다 치고 그래 그래 미움받기로 작정이 된 에돔은 그렇다 치고

아주 짜증내면서 몰아붙이듯이 그 다음을 말해보라 라고 너는 어디 잘 답하나 보자 라는 식으로 따지더라 말이죠 ㅋㅋㅋ


문제는 그럼 도대체 사랑 받기로 작정이 된 자는 누구며 어떤 조건과 어떤 이유로 형성이 되느냐 라는 것을 얼른 말하라 라고 다구치는 겁니다

말이 되면 믿어주고 말이 안되면 죽여버리겠다 라고 합니다 ㅋㅋㅋ

이런 협박을 늘 받고 있습니다 물론 그런 다고 구원 되는게 맞다 아니다? 아니다는 거죠

여러분 사랑 받기로 작정이 된 자는 없다 라는 점입니다
제가 방금 인공지능 제미나이와 이 문제를 놓고 질문을 했습니다 맨 아래 글 마치고 붙여넣기 하겠습니다 그 내용은

그 사랑받기로 작정이 된 자에 내가 들어가느냐 안 들어가느냐 만 관심 둔다 라는 점이다는 거죠

그런데 이유없이 사랑 받기로 작정이 되었다 라는 그 약속 그 예언 자체가
바로 사랑받기로 작정이 되기를 바라는 나를 깨뜨린 다는 겁니다

즉 제미나이 대화의 요점은 딱 하나입니다

선민 사상을 깨뜨리는 선민이다는 겁니다
구원을 깨뜨리는 구원이다는 겁니다
깨뜨려도 다시 산다면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라고 햇듯이
믿음이라면 다시 살고
믿음 아닌 행함이라면 자기에게로 회귀 
자아라는 없는 우상에게로 회귀한다면 구원도 선민도 그리스도의 몸도 아니다는 거죠
오뚜기에게 피 발린 피 그 자석이 없었다는 거죠

이것이 이미 답으로 말한 것이 뭔고 하니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든 이스마엘을 바쳤든 그들 이삭 개인 이스마엘 개인은 오뚜기에 발린 자석이 아니다는 겁니다 피가 아니다는 겁니다

아브라함은 예수님의 때를 보았다 이게 믿음입니다 시공간을 뛰어 넘어요
즉 인간의 역사와 몸이 아닌 주의 시간과 몸을 봤다 라는 겁니다

이 예수님만 예정되었고 믿음이다 라며는 인간의 믿음은 행함일 뿐이기에
의에 이르지 못한다 라는 겁니다

의에 이를려고 하면 할수록 더더욱 간극과 공백이 벌어져서
결핍을 채울려고 하다 보니
예수님을 하나님을 선민이라고 자부하는 자이면 자일수록
율법을 행했다고 지켰다고 자부하면 할수록
더더욱 죽이게 되는 이 간극 이 공백을 좁힐 방법이 없는

선민의 몸이기는커녕 지옥의 몸 사망의 몸 원수의 몸으로 명확하게 밝혀지는 겁니다

십자가의 죽음이 그렇게 밝혀 버렸습니다

오호라 오호라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예수님의 죽음을 맞이하지 아니하면
지옥의 몸임을 알길이 없다 라는 겁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이 아니면
에돔 자손들의 비웃음으로 인해 
미움받기로 작정이 된 자 임을 모른다는 겁니다

물론 그들은 모릅니다 이스라엘이 본다는 거죠

어머니 말 마따나 그리심산 에발산에서 서로 상대방을 향하여 축복이요 저주요를 외치는데
저주요를 외치는 자가 축복을 받는 겁니다
두 패거리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어느 산에 올라갔느냐 라는 것이지요

저주산에 올라갔습니다

수평적 그리심산 에발산이 수직적 소돔과 고모라요 큰성바벨론이요 예루살렘이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 바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한 몸이 된 장소 하늘의 예루살렘이 되는 겁니다
천한 계집 패역한 예루살렘 딸이 하늘의 자유하는 여자 신부 예루살렘이 되는 겁니다

누가 그리심산 누가 에발산 올라가냐 라는 개개인이
집단화 되니까
애굽을 멸망시키고 광야를 거쳐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 땅이라는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자가 천국을 침노하는 겁니다
유사 천국 애굽(에덴 동산 같았더라)을 넘어서서 광야에서 결혼한 이스라엘의 남편이 왕으로써 사망권세와 이김으로써 세상의 중심을 세울때에 말이죠
때와 장소가 예수님이 추구하지 않는 이상

딴 시간 다른 역사 다른 공간 딴 몸 다른 몸이 된다는 겁니다곧 성령의 때입니다 즉 인간이라는 육의 소욕과 충돌되는 서로의 소욕을 거스리는
시공간입니다 철저한 절대단절이요 절대심판이라는 땅 끝에서 나온 시공간입니다
인간의 시공간이 방해할수 없고 개입할수 없는 땅끝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한 몸이듯이

지금 이스라엘 개인 단독의 사랑받기 위해 작정이 됨이 아니라
예수님만이 사랑받기로 작정이 되었고 우리 이스라엘은 패하여아 합니다
그는 흥하고 나는 쇠하여야 합니다를 외치는 이스라엘로써

저 미움받는 자와 대비를 이루는 한 세트로써의 예언성취
곧 예언의 예언 되심을 위해 동원되는 도구이다는 겁니다

그 카이 사랑받기로가 아니라
아니 이스라엘의 산 내용이 온통 매 맞음 뿐이네????
바로 그것이 사생아가 아니다는 증거로써의 징계의 매
자녀 이다 라는 이유로 말이지요

이것이 이스라엘의 특이성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보여주도록 되어 있지
개인 인생 살라고 던져진 게 아니다는 겁니다

더군다가 그 하나님이 보통 이방나라 사람들이 인식하는 그런 신이 아닙니다
그런 인간 자기 투시로써의 이방신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신들을 질투하신다 라는 겁니다

질투의 하나님 그래서 우리를 괴롭히시는 하나님 이다는 겁니다
사탄의 가시를 뽑아달라고 해도 안 빼주고 도리어 더 푹 깊게 찔러버리심으로써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라고 하십니다

(고후 12:7, 개역)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후 12:8, 개역)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고후 12:9, 개역)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후 12:10, 개역)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바울을 교만에게 빼앗길까봐 교만을 질투하셔서 넌 약해야 해 라고 약하게 만들려고
사단의 가시를 깊숙이 도리어 더 깊게 푹 찔러 버리십니다

이 질투의 사랑이 먼저 있기에 사단의 가시가 심각한게 아니게 되어버린 겁니다
오히려 이 질투의 사랑이 더 심각한 번데기 주름 7에 70번 용서 이니까 말이지요

남을 7번 용서하는 것은 행함이요 율법의 행함으로는 의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러나 도리어 7에 70번의 용서는
자기아들 독생자를 아끼지 않고 내어주신 사랑이기에 
이 사랑을 부어주심에 믿으니까 의에 이르는 겁니다
이 믿음은 개인 믿음이 아니라 독자적인 개인 숙제가 아니다는 거죠
집단 몸 한 몸 막힌 담 경계선이 허물어진 너와 나가 없는 너 나 중간에 친 장막 휘장이 없이 
휘장이 찢어진 한 몸이 된 몸에게만 있는 믿음이요 사랑이요 소망의 몸
그가 내안에 내가 그 안에 있는 몸이다는 거죠

그러나 존재가 되어버리면 남을 7번 용서하기 라는 자기 의 쌓기 외에는 할게 없어요
그것 아니면 승부를 걸게 없어요
그카이 완료는 없고 의문의 반복으로 결핍을 채우기 밖에 없는 거죠

더 나은 제사인 인애와 자비는
내가 아닌 나와 한 몸 되시고자 하늘 영광 버린 몸이 이룬 남을 사랑 그것도 원수를 사랑한 율법의 완성 완료를 이룬 자의 인애와 자비의 마음 때문에 한 몸으로써 저절로 그의 믿음이 내 믿음이 되고 그의 인애와 자비가 나의 인애와 자비가 되는 겁니다
그가 찔림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게 되듯이 말이지요
어떻게 남이 죽었는데 내가 고침 받죠?

어떻게 그가 살과 피를 내어주지 않으면 내가 못 사는 거죠

그의 살과 피를 먹어야만 비로소 살게 되는 것일까요?

말이 되냐 말이죠
과학적으로
의학적으로 설명해 보세요

누구는 사랑도 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하던데
목숨 내어주는 사랑을 백날 과학공식이론으로 해석이 되는지
해석 된다면 인공지능으로 풀릴수 있다 라는 말은
결국 공장 생산이 가능하다는 말인데
과연 공장 생산이 가능할까요?
마치 어떤 스프레이 가스처럼 기체화 해서 스프레이 뿌리면
막 사랑하게 되어서 자기를 죽여서 남을 그것도 원수를 고치는 그것이 가능하느냐 말이지요

단절의 죽음을 그 간극을 그 공백을 좁힐 방법이 없다 말이죠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완성하는 자 이다 라고

(롬 13:8, 개역)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여기서 남 이란 단절된 자이다는 겁니다
어떤 연결 고리가 없다 라는 겁니다

그런 남에게 무조건 적으로 사랑을 한다?
어떤 조건이 없는데도 말이지요

아는 사이가 아니다는 겁니다
그런 생판 모르는데 사랑을 한다? 말이 되냐 말이죠
즉 인간의 사랑은 항상 조건적이다는 겁니다
조건이 맞아야 사랑이다는 겁니다
걸국 사랑이 아니라
이용꺼리이다는 거죠 연기죠 처세술 정치술 인 것이지요
사랑해서 결혼하는 자는 없다 라는 겁니다
오래 같이 살다 보니 서로의 필요성 때문에 서로를 아껴주는 것임을 알게 되지
조건이 우연히 맞아 떨어져서 말이져 아주 소수로 아주 우연히
그저 다 적응 일 뿐인 겁니다

결국 창세 이후에 조건적으로 사랑하기로 한 것이지

창세 전에 무조건 사랑하기로가 아니다면 
살과 피를 목숨을 
아무연고 없이 목숨을 내어주지 
사랑하지 않는 겁니다

인간으로써 흉내낼 생각 하지 맙시다
본인이 소위 슈퍼맨이요 인간을 뛰어넘는 신이다 라고 여긴다면 하세요
니체가 그런 놈인데 하다가 미쳐버렸다 말이죠
미친 놈 이라고 욕해도 상관 없다면 하세요
니체 주의자 니체 전공자 치고
뭐 현대인을 니체의 후예라고 하던데
니체 후예이면 일수록 조건 더 따집니다 ㅋㅋㅋㅋ
더 안 따지는 놈 본 적 없어요
니체를 욕하는 종교꾼들도 더더더 못합니다
니체 보다 더 조건 따집니다

무조건적일수가 없다는 거죠 존재 자체가 조건을 따지게 되니까
창세전 즉 존재하기 전 자체를 논할 수 가 없다 라는 겁니다

소위 구원 그 이후 라는 표현으로 시간적 의미를 부여해서
자기 행동을 콘트롤 하고 싶어 한다는 자체가 말이 안 되는게
구원 자체가 자기의 의지 자체가 개입할 수 없는 배제성
단절성이거든요 그래서 하도 말귀 못 알아먹어서
심판 속에서의 구원이라고 해도 여전히 개입 할려고 한다는 겁니다

그 심판 속에서의 구원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말로는 창세전에서 태어나기도 전에 무조건 사랑 받기로 작정이 되었다 라고 해 놓고서는
오히려 더더더 더한 절대심판이라는 이방인도 안 당하는 절대심판 속에 넣는다 라고 하고
그 절대심판이라는 땅끝에서 나온다 라고 하니
이것은 인간 존재 자체를 무효화 시키는 겁니다
나 존재성을 무효화 시키면 인간은 거부하도록 되어 있지 동의를 못 하죠
그카이 행함 즉 존재에서 나오는 행함으로는 안된다 라는 겁니다
그럼 이스라엘은 뭐냐?

믿음에서 나온 겁니다
내 존재성에서 나온게 아니라 존재를 초월한 존재 바깥에서 나온 것이지요
그 존재 바깥이 바로 비존재로써의 존재 보다 더한 존재가 바로

십자가의 죽음에서 나온 믿음이다는 거죠
그럼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믿음을 행함에서 보는게 아니라
유대교처럼 이삭이나 이슬람의 이스마엘이나 존재에서 보는게 아니라

이삭의 희생제물됨 조차도 그림자로 만들어 버리는 믿음
곧 예수님이라는 실상 그것도 희생제물 곧 화목제물 되심
그래서 한 몸이 되는
내 몸 바깥 내 존재 바깥의 비존재로써의 눈에 안 보이는
실상을 보고 기뻐했다 라는 겁니다

내 눈의 시선이 닿지 않는 미래의 수천년 뒤의 예수님을 본다?
말이 되냐 말이죠
그것이 예수님의 믿음으로 실상으로 드러난다는 겁니다
그럼 아브라함은 졸지에 그림자로 들통나는 거죠
그 아브라함의 종말 끝에서 믿음의 주 되신 예수님이 부으신 믿음으로
믿음의 조상이 되지
유대교처럼 물론 이삭 개인을 추켜세워도 어차피 그림자 라서 어차피 엉터리로 해석하는데
자기 존재감에서 출발하다 보니 자기 존재로 회귀하는 해석 외에는 할 줄 모르기에
결국은 믿음이 아니라 즉 예수님을 보는게 아니라 믿음으로 말이죠
자기 눈으로 자기 존재의 눈으로 보는 그림자로 해석하기에
그 의문의 반복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 라는 겁니다

그카이 새영 새 마음 새 정직한 영이 오지 않으면 그 연결 고리를 단절 시켜주는 자가 없는 거지요

결국은 모든 신학 모든 종교 모든 교리 모든 신들
심지어 국가에서 추구하는 구원인 바벨탑에서 나온 영생복락 복지국가 민주주의 등등의 윤리 도덕 법의식 공동체 의식 등등은 모조리 다 그림자의 반복일 뿐이다는 겁니다

그 예가 그 그림자를 제대로 교육 받은 마르다와 마리아가
죽은 오빠 나사로의 죽음을 교리대로 신학대로 해석한 교육을 받고서
예수님에게 따지는 겁니다
조금만 일찍 왔다면 살 수 있었을 것을

이것이 오늘 본문으로 따지만 이스라엘 멸망입니다
나사로의 죽음입니다

유대교의 그림자 반복이다는 겁니다

그리고 왜 조금만 일찍 왔다면 살수 있었을 텐데
왜 일부러 3일 동안 늦게 왔느냐 라고 비웃습니다 그 공동체들이 말이지요 유대교죠뭐 

다들 그림자를 가지고서 예수님이라는 실상에게 따지는 겁니다

그때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을 가지고서 예수님 자신이 누구인가를 보여주고자
일부러 3일 뒤에 늦게 도착했음을
그것을 실상을 보여주고 그림자를 찢는 약속임을 보여주게 됨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요 11:1, 개역) 어떤 병든 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형제 마르다의 촌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요 11:2, 개역)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씻기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비러라
(요 11:3, 개역)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요 11:4, 개역)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요 11:5, 개역)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요 11:6, 개역)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이틀을 더 유하셨다 라고 일부러 늦게 가신 겁니다
즉 제대로 다 죽도록 기다리신 거죠

차단이요 단절입니다 이것이 구분 구별 차단인 거룩의 의미입니다
성화론자들이 말하는 거룩과 정반대입니다
단절인데 그들은 일단 접촉을 시도하자는 식입니다 
단절을 모르고서 어떻게 거룩을 논하는지 말이지요

잃어버림이 없는데 어떻게 되찾음을 말하는지
심판이 없는데 어떻게 구원을 논하냐 말이죠 이 앞뒤 모순된 간극이 거룩인데
두 언약이 한 세트가 되는 것이 약속인데
확증 편향의 언약 자기 골라먹고픈 보고픈 믿고픈 것만 골라먹겠다 라는 심뽀죠
그게 육의 소욕이기에 그 소욕을 성령의 소욕은 단절로써 일하시는 겁니다

사탄아 라고 그 어떤 접촉시도들을 다 사람의 일로
사탄의 일로 간주하시는 거죠

자 그렇게 동네사람들이 다 예수님을 비웃었을 때 즉 확신이 있는거죠
제대로 죽었기에 살아날 길이 없다 라는 것
다 꽉꽉 막힌 담이 되어버린 거죠ㅕ

죽음을 누가 뚫을 수 있겠냐 말이죠

그것이 그림자 신학 그림자 교리에 교육 당한 가스라이팅 당한 자들의 모습이다는 겁니다
사탄의 회인 유대교를 그 그림자를 께뜨리시고자 말이죠

막힌 담을 어떻게 하나가 되는 죽음이라는 벽을 뚫고 허물고 그 경계선을 허무는 한 몸을 이루겠느냐

뭐 사랑했다면서 한 몸이다 라고 했다면서 라고 비웃으면서 또
나사로 죽음에 애도를 하는 울음꾼으로 나서는 겁니다

아이고 아이고 라고 울음꾼이 되어줌으로써 장례비용을 아껴주는 상부상조의 정신인
두레박 정신으로 도와주는 이 마음이야 말로
예수의 저 허풍 뭐 사랑했다메???? 보다 훨씬 나은 보편적 진리를 표출하면서 구현시키더라 말이죠

예수 너 꺼져 이 허풍쟁이야 라고 너튜프 숓츠 영상 올랴서
500만 조회수를 달성했으니 보편적 진리이다고 우기는 겁니다

그러나 그런 그림자 세상에서 실상은 조회수가 아예 없습니다 빵 명입니다
그림자의 실체가 밝혀지면 너튜브 망하거든요

미디어가 종교가 된 세상인데 미디어 망하면
인간은 급 우을증 걸리는 거죠
배출 할 곳이 없는 겁니다

전세계 청년들이 K 컬쳐 한류에 미치는 이유는
자신들의 에너지를 방출하는데 있어서 딱 맞기 때문이거든요
그 인정욕구 투쟁에 그 욕망에 딱 맞다 말이죠
일본 여성들이 한국 남자에 매료되어서
지금 한국 여자들이 다 남자들 일본여성에게 빼앗길 판국이다 라고 하지만
그 젊은 남자들 극우들이라서 한국여성들도 외국으로 시선을 돌리는 판국인 겁니다
절대 질 리가 없는 한국여성이거든요
그 거센 여성을 그래서 감당하기 힘들어서 일본 여자들이 인기 높다 라고
그럼 일본 남자는? ㅋㅋㅋ 혐오로 빠지는 거죠

이것이 다 경제 종교 정치에 장악당한 마귀의 세가지 시험을 못 벗어나는
그래서 유대인을 장악한 마귀가 유대인 뒤에 유대교 뒤 배후세력으로써
그런 그림자 수호로써

이 실상 되신 예수님의 하시는 일 모조리 다 조목 조목 다리걸어 시비를 걸고
꼬투리를 잡는 겁니다

나사로를 사랑했다면서 일부러 죽을때까지도 안 왔냐 라고 비웃죠
그리고 그들은 진심으로 우리 봐라 이렇게 정성으로 애도하고 있다 라고 우는 겁니다

그 울음을 보시고 주님이 쪽팔려서 민망해서 우시는 겁니다

인간의 울음 조차도 그림자로 사기치는 속임수 라고 말이죠
그 배후가 마귀 라는 죽음의 권세 이다는 거죠

즉 나사로의 죽음을 통해서 마귀라는 죄악의 권세 사망의 권세까지 다 끌어오는 겁니다

즉 인간 존재 이전의 세력을 말이죠

나사로 라는 개인의 죽음 관심 없습니다
나사로가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던 죽음과
그 죽음 이전의 은혜라는 생명을 주님을 끌어오시는 겁니다

이 두 언약이 한 세트로써 말이죠

그리고 민망히 여기셔서

본인이 실상이다 야들아 지금 그림자 보고 울고있니
그 울음도 그림자야

실상을 보여줄깨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부활이란다

마르다 마리아 왈 알죠 알죠 예수님이 생명이시다는 것 모르는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죽은 오빠 우짭니까 살려내이소 살려내이소 조금만 일찍 왔더라면 안 죽었을텐데

그런 기적 우리가 다 봤고 그것을 믿었다 아닙니까 그러나 완전히 죽었고
3일 이 지나버렸기에 그 동안 어제까지 봤던 그런 기적으로는 살릴수 없지 않습니까
조금만 일찍 오시지 오시지 라고 멱살 잡고 가슴을 치면서 우는 겁니다

아이고 민망스러버라
다들 그림자를 볼 뿐이지
실상을 볼 눈이 없는 겁니다

동시에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이라는 것들이 다 소용이 없다 라는 그 한계를 보게 되고
자신들의 눈으로 포착된 예수님의 행동을 자신들의 포착능력으로 본
같은 행함으로 취급했지 이제는 어떻게 행할 수도 없는 행함 너머의 죽음에서는
기존에 봤던 병고치는 자 눈고치심 앉은뱅이를 일으키심은

이제 이 죽음 그것도 절대죽음인 단절된 죽음 앞에서는 소용 없다 라고
어제까지 믿었던 것 오늘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는 소용 없다 라는 것을 아는 겁니다

바로 이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에서 출발하는 믿음의 한계요 사실은 행함이지요
가짜 믿음이요 그림자 믿음이지요
그리고 죄가 인간 보다 먼저 있었다 죽음 사망의 권세가 먼저 있었음을 알아도 모르는척
그동안 자신들의 행함으로 믿음으로 그 스멀 스멀 올라오는 죽음을 억누르고 있었다 라는 겁니다

그 무거운 짐 그 수고가 헛됨이 드러나는 겁니다

그카이 시간을 자기존재를 기준으로 해서 3일 뒤가 아니라
그 이전에 왔어야 했고
아슬 아슬하게 도착해서라도 일찍 왔으면 살 수 있었을 거다 라고
예측인데도 불구하고 그림자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진리로 보는 겁니다

그 진리 깨뜨리지 않는다면 그 보편적 진리를 깨뜨리지 않는 믿음이라면 가짜인 거죠
죽음도 못 이기는 진리가 무슨 진리이겠습니까

그래서 일부러 인간 기준의 시간과 공간 즉 몸을 깨뜨리고자
3일 뒤에 오는 겁니다
그리고 보편적인 인간의 몸이 아닌
그 그림자 몸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의 몸
다들 비웃는 몸
참이스라엘의 기능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우상 파괴란 사망권세 파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라고

인간의 천국인 그 가나안 땅 마지막 여부스 땅을
다윗 왕 딱 한 사람만 나타나면
약속은 다 이루어지니까 말이죠

그 딱 한 명의 왕이 드디어 나타났다 라고
사망 권세를 깨뜨림으로써
사망의 포로된 자들에게 자유케 됨을 보여주시고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라고
나사로야 무덤에서 나온다

믿음의 세계에는 무덤이 없단다
인간의 몸 기준의 시간과 공간은 결과적으로 무덤이지만

믿음은 무덤이 없는 빈 무덤이란다 이것이 실상이란다 라고

나사로야 나온나 라고 합니다

아니 이렇게 쉽게 끝나니까
마르다 마리아 아까전에 원망하는 그 원망들이 입이 쑥 들어가는 거죠

머리에 숯불 얹은 것처럼 부끄 부끄 가 되는 겁니다

이것이 예루살렘의 모습이다는 겁니다
고로 예루살렘은 망해야 합니다

하늘의 이미 다 완료된 예루살렘을 말하고자
땅의 예루살렘은 멸망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죽음으로 새로 만들어진 자리 곧
예루살렘 곧 이스라엘이 되는 겁니다

땅끝에서 나온 이스라엘 곧 남은자 말이죠
바로 무덤에서 나오는 나사로처럼 말이죠

자 그렇다면 다들 외쳐야 합니다
예수님 예수님 마르다와 마리아가
예수님 저도 죽여주소서 그리고 삼일 만에 다시 살려내소서
이 땅 예루살렘에 가 아닌 저 하늘 위의 예루살렘 그 실상의 자리에 다시 살려내소서 라고 말이죠

서로 죽여주소서 라고 해야 하는데

인간은 지금 자신들의 과거의 쌓고 쌓고 쌓은 자기 의로움으로 빚은 공든탑 무너짐에 황담함 때문에
그저 멍할 뿐입니다

도대체 누구지?

딴 몸이다는 그 괴리감에 빵구멍 뚫히는 중이다 말이죠
그 동안 헛 살았다 라는 거죠

베드로가 물 위를 걷다가 풍랑에 빠져 주님이 건져내시니
아니 도대체 당신 누구죠 라고
물위를 걷는데 이용해 먹을려는 모든 인간의 신앙이 박살이 나고
자기 물에 빠져 죽는 자기 몸 보다 그 공간 보다
새로운 공간 새로운 자리 새로운 몸으로써

아니 인간 존재 이전의 사망의 권세도 잠잠케 하시는 당신 도대체 누군냐 라고

모든 법칙의 규율들을 다 깨뜨리는 실상을 독대하게 되더라 말이죠

사탄이 우수수 떨어지는 실존 보다
너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는
주님이 누구신가 라는 기능 도대체 무슨 일 할려고 내게 왔지???

그 동안 모든 일들을 사람의 일로써 그것에 적응하기 바쁘고
그 연기력이 뛰어나면 날수록
탈북은 지능 순이다 라는 말처럼
연기력 모방술 따라하기로 적응하기 바쁘고 처세술 정치술로 생존하기 바쁜데

그 생존을 넘어서는 창세전의 실상을 몰고와서 우리 속에 때려박을려고 하고 있으니
감당이 불감당이다는 겁니다

아까 말한 사단의 가시는 유도 아닌 아무것도 아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라고

나 라는 존재 이전의 사단의 가시에 대비된
은혜의 왕 노룻 온 몸에 때려 박으니까

사단의 가시 몇 안되는 것들이 시시한 겁니다

주님에게 먼저 매 맞으니까 뒷북 치는 마귀의 가시들이 시시해져 버리는 겁니다
마귀는 항상 뒷 북입니다
주님 보다 먼저 앞설 수가 없는 거죠

그 마귀의 뒷북이 바로 에돔 후손들이 할 짓이다는 거죠

그러나 이스라엘은 예수님의 죽음에 동참하는 그 고난
그 절대죽음이라는 땅끝에서 나오는 자들이다는 겁니다
용광로 속에서 말이죠

이것이 이스라엘을 이스라엘 답게 만드시는 
무조건 사랑하기로 작정이 된 이스라엘입니다

이 징계의 매가 아니면
아들이 아닌

저 에돔

사생아들인 거지요

아버지의 매를 대시는 그 아픈 마음을 알 리가 없지요

우리는 이 주님의 상처에 접붙임 받아서 태어난 자들이거든요

나사로처럼 3일이라는 간극 이라는 십자가의 죽음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저 유대교 저 이슬람교 저 모든 종교 심지어 기독교라는 그림자에

그 사망의 권세에 질질질 끌려 다닐 뿐입니다

주님이 마련하신 자리는 즉 행함의 반대인 그 자리는
예수님의 죽음으로 마련하신 새마음의 자리입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성령의 점의 자리입니다
이 새성전의 기능인 갈기 갈기 찢겨 죽지 않으면

이 제대로 된 죽음 절대죽음을 못 보면
그 자리가 아니면
우리는 마귀가 겁주는 그 가짜 죽음에 질질 끌려 다녀서

죽기는 무서워 사망의 종 노릇만 할 뿐입니다

그게 유대교요 그게 이슬람교 그게 모든 종교 심지어 기독교입니다

주님은 종교를 세우려고 온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려고 온게 아니라

그 가짜 죽음 그 가짜 몸 그 가짜 그림자를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인간 구원을 깨뜨리는 구원를
선민 사상을 깨뜨리는 남은자를
인간 육체를 꺠뜨리는 그리스도의 몸은 다 이루셨습니다

이 부족함이 없는 믿음의 세계가 아니면
이 그리스도의 세계라는 마태복음 1장의 예수님의 족보가 아니면

우리는 그림자에 질질 끌려가는
유대인들의 절차만을 무한반복 리부트로 의문의 반복만 할 뿐입니다

그 의문의 반복에 마침이 되는
실상이신 예수님의 죽음 곧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울리는 꽹과리 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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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11 말재주와 탁월한 지혜가 아닌 십자가만 증거함과 알기로 작정한 자들 (고전 2; 1- 2)
2025. 11. 23.   ( 10 월  30 일, 녹음 )

어떤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심 (고전 1;25-31)
고린도 전서 2025 2025. 11. 1. 22:01
25-010 어떤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심 (단절, 누락, 차단의 거룩한 성령) (고전 1;25-31)

〈고린도전서 2; 1- 2, 개역한글 신약성경 264쪽, 찬송가 446장 새 391 오 놀라운 구세주, 찬송가 505장 새 452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찬송가 446장 오 놀라운 구세주, 새찬송가 391장〉

(고전 2:1, 개역)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고전 2:2, 개역)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전 2:1, 현대어) [인간의 지혜와 하나님의 능력]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내가 처음으로 여러분에게 갔을 때 나는 어려운 말이나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는 않았습니다.
(고전 2:2, 현대어)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위에서 맞은 그분의 죽음 외에는 말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있었습니다.


십자가만 알기로 작정함과 십자가만 증거한다 라고 하니까
얼마나 멋져 보입니까

그러나 막상 이 십자가를 현재에 적용하게 되면
온 주변으로부터 밉상을 당하게 됩니다

더 놀라운 것은 교회 다니는 사람들한테 서로의 위로는커녕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교회 사람들이 핍박을 더 심하게 하는 것을 격게 됩니다

아 일반인인 교인들이라서 자기 유익을 쫓다 보니 그런가 보다 싶었는데
목회자나 교역자들 뭐 전도사 부목사 또는
일반 교인들의 대표자들인 원로들 곧 장로 권사들은 나이가 있으니 좀 다를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이들이 더 정치적으로 몰아서 더 적극적으로 핍받을 하더라 말이죠

그것이 눈에 확 띄이니까 청년들이 발길을 끊어버리지요
아무 간섭도 없는 레크레이션이나 발달이 된
심심하면 돈 모잘란다 라고 징징거리지 않고
부담도 주지 않는 대형 교회 재벌 교회에 가야 여자 아이들과 놀수 있는
그런 환경과 그런 상황을

교회 처음 다니기 시작 하면서 2-30년을 보면서
그런 무한반복된 의미없는 것들을 격게 되어 보니
강도의 소굴이 아닌 교회가 없더라 말이죠

큰 교회는 큰 교회대로 
중소기업에 해당되는 중간 교회는 중간교회대로
아주 작은 개척교회는 개척교회 대로
그 탐욕의 우상숭배가 아주 말로 못할 정도로 가관을 이루더라 말이죠

목사에게 기대 걸다가 나락 갈 판국일 정도로
더 했으면 더 했지
도대체 말씀과 맞는 구석이 단 한 군데도 있는게 없더라 말이죠

즉 십자가 자랑은 오늘날 교회에서 있을 수 없다 라는 것이
제가 격었던 교회 이다 라는 겁니다

그럼 도대체 교회는 뭘로 장사를 하는 것일까요?
네 말씀 그대로입니다

말재주 그리고 탁월한 지혜 소위 종교성과 철학들이지요

웃음 치료 전도사 레크레이션 강사
이런 처세술이 판을 치더라 말이죠

오죽 하면 제가 직접 들었는데
주변의 환경이 어두 칙칙하지 않고 밝게 하면 마음도 밝아진다 라고

이게 소위 경산의 극우들의 본부인 교회가 이런 것들로 사람들을 현혹 하고 있더라 말이죠
동성애 반대 운동이나 하는 정치집단이 글쎄 교회이더라 말이죠

이게 무슨 십자가만 알기로 한 것일까요?


사도바울이 괜히 이런 말을 한게 아니다 라는 겁니다

즉 사도바울은 십자가에서 태어난 자 라고 뻔뻔스럽게 이야기 하면서

왜 뻔뻔하냐 하면 삼초 전 까지만 해도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듯이

십자가가 주인공이 되어서 꽝 하고 두 자동차가 꽝 부딧히는 돌에 부딧혀
꽝 박아 충돌로 박살이 나버려 기경 밭갈이 당했듯이
방금 충돌 직전 까지만 해도

사도바울 본인이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요
가말리엘 문하로써
즉 최고의 대학 대학원 최고의 점수 수석 졸업한
엘리트 중의 엘리트
마치 철학자 중의 철학자처럼

바로 말의 재주와 탁월한 지혜 지식의 달인으로써
그 동안 말씀을 증거해 왔는데

십자가와 조우 즉 직접대면하고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됨을 격게 되어 보니

즉 실상이신 예수님의 죽음과 만나 보니

저런 것들이 다 헛짓이요 육의 자랑이요 우상의 탐욕인 인간 개인 구원을 위한
종교오락 놀이 얼라 빵깨이 소꿉놀이 어린아이의 일인 그림자놀이 장난이였다 라는 것을
알았다 라는 겁니다

그야말로 종말이라는 세상 끝 시공간의 역사 끝인 종말에서 땅끝에서
용광로 속에서 그 절대심판이라는 십자가의 저주 속에서
불순물 오예물 찌끄래기가 다 타버리고
그림자가 아닌 실상인 예수님의 죽음이라는 화목제로 인해 다시 싸매어 주심을 격게 되니
용광로 속에 들어 갔다 나와보니 불순물이 제거가 되니

그야말로 얼마나 헛짓을 해 왔었었었던 것인지
그카이 바울의 눈에는 십자가의 용광로 속에 들어갔다 나온 자의 눈에는

교회야 말로 유대교야 말로 사탄의 회가 아닌게 아니다 말이죠

비록 본인이 방금 전까지도 몸 담아서
그것도 그냥 아니지요 최전방의 전사로써
예수쟁이들 다 죽이겠다 라고
가장 앞장을 섰던 그 당사자가 이런 말을 하고 있으니

다들 어리둥절 할꺼 아닙니까
방금 전 까지도 그런 말재주 탁월한 지혜에 안 맞는
예수쟁이 스데반을 본인 당사자가 죽여놓고서
이제는 그런 사상 이데올리고 그런 신앙을 우상시 하다니

이제 도로 스데반의 운명처럼 본인이 죽어야 할 판국에 놓여지게 되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을줄 뻔히 알면서도
이 십자가만 알기로 자랑하기로 작정했다?

이 모순의 간극을 이 빵구멍 난 배를
더더더 벌리라 라고 대 놓고
핍박받는 자리
심지어 교회로부터 그 당시로 치면 유대인으로부터
돌삐 맞아 죽을 그런 소리를 한다?

이게 말이 되냐 말이죠

오늘날 이런 사람 교회에 나타나면 당장 교회사람들은
이런 자를 죽일려고 떼거지로 달려 들게 뻔하다 말이죠

장사 못하게 방해하는 자를
자본 주의에서는 있을 수가 없으니까 말이지요

심지어 그것이 법에도 되어 있다 라고
국민 무슨 권이라 했더라? 아 국민저항권
즉 법을 들고 나왔다 라는 말은
법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라는 그 의식 자체가
그것이 바로 법과 법 사이의 약점 아닙니가
검사들이 저항하는 것도 그런 이유죠
조폭들이 강도들이 따로 업쇼
그 만화 그림이 생각나네요 검사들이 칼을 쥐고 석렬이 기차 타고
막 휘두르는 그림
그 그림 내리게 할려고 얼마나 발악하던지
칠레에서 뉴스 기사 내릴려고 압력을 가하던지
그런 정치가
촌구석 개척교회에서까지도 벌어진다는 겁니다

괜히 그런 사태를 만연하게 세상 구석 구석으로 퍼트리신게 아니다 라는 겁니다

두 언약이 한 세트가 되도록 하신거다 말이죠
거기에 미리 매 맞은 사도바울은 그야말로 운이 좋은 거죠
운이라고 하면 안되지만
그것이 또 말 재주 탁월한 지혜이 사고방식이지만
오죽 하면 이런 소리를 하겠습니까

즉 국민저항권
십자가저항권을 펼치는 자는 운도 지지리도 없는
눈 앞의 이익만 당장 누릴뿐
지옥에 가도록 주님이 조치한 사건에
올무에 걸려 들었고
미끼를 덮썩 물어버렸다 라는 겁니다

아니 자신이 진급을 하고 성공을 하고
누가 더 크냐 라는 싸움에서 이길려고 한다면
그 미끼 먹음직 보암직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것
안 물어버리고는 못 배기는 거죠

말에 있지 않다 라는 것은 모든 종교는 속임수 말빨이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행함을 실천을 하라는 말이냐
그것도 아닙니다
이게 유대인입니다 유대인 유대교란 하나님의 능력을 거부하는 집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표적을 구하는 겁니다

(고전 4:20, 개역)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하나님 나라 운동을 한 독립운동가가 바로 가룟유다 아닙니까
가장 열심인 자가 배신자 일 수밖에 없는 이 간극을 인간 쪽에서 좁힐 방법이 업습니다
그것을 알아라고 준 것이 율법인데
율법 마저도 껍데기만 지키지 율법의 능력을 거부
은혜를 무시하고 모독하더라 말이죠
율법을 지키면 지킬수록 살인하지 말라가 살인을 하는
그것도 하나님을 죽이는 율법을 주신 주님을 말이지요

즉 유대인들은 아무리 완벽하게 지켜도 껍데기 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땅끝 용광로 종말의 영인 성령을 새마음 새영 정직한 영을 거치지 않고 나오니
찌기 오예물 혼합물이 잔뜩 끼어 있는 겁니다
정금 순수물이 아니다는 거죠

(고전 1:18, 개역)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24, 개역)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 2:5, 개역)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고후 13:4, 개역)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
(딤후 1:8, 개역)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벧전 1:5, 개역)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우리가 고린도전서 앞선 1장에서 배웠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능력을 사다리를 놓아주심이라 라고 말이죠

즉 상대적인 유대인들의 경건의 모양 껍데기는 사다리를 걷어차는 모습이다 라고
에스겔 말씀과 마침 딱 맞닿아서 그렇게 대조적으로 이야기 했습니다

지들은 좋은 꼴 풀 뜯어먹고도 주님의 긍휼로 말이죠
남들은 풀 못 뜯어먹도록 발로 밟아 버렷다
지들는 주님의 음료를 마셔놓고도
남들이 못 마시도록 목마른 목을 못 축이도록 발로 밟아 버렸다

이것이 신약에 그대로 나옵니다
아니 언제 주님이 목 말랐고 언제 주님이 헐 벗었고
언제 주님이 배고픔으로 주리셨습니까
진작 카지 우리 이웃돕기 달인들 아닙니다
신땡지 신흥 이단들이 여신도들을 그렇게 꼬시면
남 돕는 재미에 빠진 여성들이 거기에 올인 올빵합니다
전형적인 우을증 환자 만들기입니다

가스라이팅 시키는 방법이지요 남 돕기의 달인 만들기
그것이 인정욕구 투쟁입니다 누가 누가 잘하나
목사새끼들이 이 싸움 이 경쟁 붙여 놓으면 저절로 돈을 챙기게 됩니다

다단계 판매가 그런식 아닙니까
암땡웨이 판매가 교회 중심 아니 종교 천주교 절간 중심으로 한참 유행할때에 그것도 벌써 30년 전 일이다 ㅋㅋㅋ
그들의 책자를 보게 되었는데 천주교의 계급 구도를 그림 그려서 설명하더라 말이죠
그거 하나만 봐도 이미 세뇌 당할 수 밖에 없겠구나 싶더라 말이죠

이제는 모든 판매방식이 이래도 저런 구조시스템 캄보디아 보이싱 피싱 조직구도와 같죠
암땡웨이가 저런 식으로 하더니 그 다음에는 정수기 판매 조직 구도도 저런 식이고
다단계 말이죠 이런 방식이 다락방이단이 그렇게 하더니 그 다음 신땡지가 저렇구
요즘 신땡지는 아예 대학가에 각각 동아리 속에 잡입해서 한다 라고
이름 걸고 했다가는 다 쫓겨나니까 말이죠
점조직 스펨조직처럼 말이죠

이제 모든 기독교가 다 이런식의 구조를 편성하더라 말이죠

그카이 국민저항권 외치면서 뒤로는 통신판매를 하는 거죠

그냥 장사집단 돈장사 사업입니다 트럼프 장사꾼처럼 돈 빼앗는 깡패인거죠
자기가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합니다
가룟유다에게 너가 맡을 일을 어서 하라 라고
그래야 두 언약이 한 세트가 되니까 말이죠
트럼프가 곧 죽을 나이에 왜 저렇게까지 자기 의를 쌓는 그 헛짓에 목숨 걸까요
진노의 그릇이기에 진노의 그릇 답게 죽으라고 합니다
아무 의미 없는 죽으면 그만인 것을 왜 의미있는냥 미친 듯이 말이죠
대 놓고 보이는 트럼트도 저러는데
국민저항권 외치는 내란세력들
지가 하고 싶어서 하는 놈 없어요
트럼프처럼 불안하기에 죽기를 무서워 종노릇하고 있음을 티 낼 수밖에 없습니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했기에
육체의 소욕 대로 할 수 밖에 없어요
존재 보다 당위가 먼저 앞서거든요
존재 이전의 기능이니까 말이죠

반드시 성령의 소욕과 한 세트가 되고자
서로의 소욕을 못하도록 한 언약 때문에 계시 예언 약속 때문에

반드시 에돔은 미움 받기로 작정이 된 그 티를 지옥 백성 다운 티를
하기 싫어도 할 수 밖에 없도록 티를 팍팍 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가룟유다가 맡은 바 그들의 일이기 기능이기 때문입니다
당위 곧 마땅히 할 수 밖에 없다
아니하고는 못 배기는 존재 이전의 기능이다는 겁니다

그러니 유대인들은 말에 속임수에 그 종교성에 목숨 거는 겁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대조를 이루기 위해
말에 있지 않는 십자가라는 하나님의 능력 곧 고난이지요
그카이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는 겁니다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 말이죠 요구하는 그 요청에 부흥하는 부합하는
그카이 마귀의 세가지 시험이 유대인들을 장악한 그 실체가 드러나는 겁니다
즉 오늘날 교회 기독교도 마귀의 세가지 시험에 다 장악 당했다는 증거죠

또 헬라인들은 지혜를 구한다 라고 했을때에
지혜와 대조되는 하나님의 능력인 십자가는
미련하거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겁니다

천재와 사도바울의 차이
소크라테스와 예수님의 차이는

바로 아무것도 아닌 것에 충성한
아무 상관이 없는 생판 남인 타인을 위하여 죽는 겁니다

아니 생판 모르는 자요 상관도 없는데
그 타인을 위해 죽는다고?
내 죽을께 너 살아라 라고

이것처럼 미련하고 어리석은게 어디 있습니다
그래야 지혜 그것도 탁월한 철학자 중의 철학자
철학자들의 아부지 라고 최고의 경지에 오른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처럼 말이죠
그런 지혜를 추구하기 바쁜데 어라 정반대의 길인
남을 위해 죽고자 오셨다 라고?
그것이 사다리를 놓아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인 십자가의 죽음이요 고난이다 라고
그게 무슨 능력이고 능욕이지
남을 위해 능욕 대신 침뱉은 당한다 라고?
이 사랑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울리는 꽹과리 라꼬?

그 무시 당하는 길 그 능욕당하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인 십자가 이다 라고

인간 쪽에서 십자가로 다가갈려면 천로역정이나 천국의 계단을 무릎으로 오르겠다 라는 
중세의 인기 있는 유행 종교성은 모조리 다 자기자리를 고정시키기 위한
자기 의 쌓기이지

하나님의 의에 복종 한 것이 아니지요
경건의 모양 껍데기이지
경건의 능력인 십자가의 고난이 아닙니다

즉 인간 쪽에서 하늘로 걸어사 하늘 끝까지 올라가는게 아니라
그 반대로 십자가에서 태어나버렸기 때문에
십자가를 자랑 아니하고는 못 배기는 겁니다

꼭 태어나지 않은 자들이 자기 쪽에서 십자가를 증거하겠노라
십자가를 지고 가겠노라 라고
사학재단 사수 하겠다고 목사 새끼들이 큰 나무 십자가를 제작해서 제일 밑에 바퀴를 달아야
끌고가는 퍼포멘스가 되는데
바퀴를 달지 않으면 끌고 나아갈수가 없다 말이죠
자꾸 퍼트리고자 운동력을 보여야 하는데
바퀴 안 달면 퍼지지 않고 신문에 나지 않는 이슈화가 되지 않아요
무슨 무슨 운동이 될려면 바퀴를 달아야 해
그따위 흉내가 바로 말에 있는 껍데기 이다는 거죠
그카이 인간의 모든 말씀실천이나 믿음들은
다 껍데기입니다 말에 있습니다 말재주입니다
즉 속임수 꾀임이다는 거죠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냐
십자가는 능력입니다
능력을 나타내보이겠다 라고 나서는 놈 다 사기꾼입니다
십자가에 태어난 게 아니라
십자가를 향하고 걸어가 하늘 끝까지 세상 가요를 부르는 무당 짓만 하겠다 라는 겁니다
데몬 헌터스 게데몬이 되겠다 라는 놈들이다 말이죠

십자가에서 태어난 자는 십자가를 증거해야지 해서 증거하는게 아니라
증거하기 싫어도 태생 자체가 십자가에서 태어났기에
툭툭 건드리기만 해도 십자가가 튀어나오는 겁니다

기도를 해서 기도의 사람이 되는게 아니라
기도의 사람으로 태어나버렸기에
아무리 기도하기 싫어서 안해도
주변 사람들이 당신은 기도의 사람 맞군요 라고 귀찮게 만들어 버리는 겁니다

그게 아브라함이 자기 죽을까봐 아내 사라를 누이동생으로 속여서
인신매매범처럼 팔아버렸는데
열국의 어머니로 태어난 사라가
인신매매범 오빠 아브라함으로부터 팔림 당한다 라고 해서
팔려질까요? 오히려 애굽 족장이
너의 아내 감당이 불감당이다 라고 도로 내어주잖아요

즉 열국의 어머니가 될려고 해서 나오는 것은
말 재주와 같은 속임수입니다
그런 속임수는 하갈과 같은 그림자만 나오며
이스마엘와 같은 울리는 꽹과리만 나오는 겁니다

이슬람은 이스마엘을 제물로 바쳤다 라고 하던데
서로 옳게 만들려는 말제주 곧 속임수 인 거죠
제가 이래 말했으니 이슬람으로부터 이제 사형깜
명예살인에 해당되는 살생부
노상원수첩에 1순위가 되는 거죠 뭐 ㅋㅋ

쥴리 오빠의 수첩에 말이죠

그런다고 생명책에 지워질까요?

하나님의 능력인 십자가에서 태어나버렸는데

감사하기 싫어도 감사로부터 태어나버리니까
다들 어 너 감사의 아들이네
십자가의 아들이네
기도의 아들이네
기쁨의 아들이네

범사에 감사하면 그때 감사가 아니라 그렇게 디면 감사의 조건에 맞으면 감사하겠다는 거죠
그러니 모든 종교 유대교든 기독교는 말로 사기를 치는 겁니다
감사하면 감사가 돠어진다 라고
주변을 밝게 하면 마음도 밝아진다 라고 이런 처세술을 교회에서 가르치고 앉았으니
그 목사놈의 목을 따 버려야 한다 말이죠
여럿 사람을 지옥으로 인도하는 소경이니까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성경에 무당들의 특징이 죽어야 할 자기는 안 죽고 살리고자
살아야 한 주의 선지자를 죽일려고 염불을 외운다 라고
그게 그들의 기도인 겁니다

곡식을 하늘의 여신에게 버치는 것을 멈추지만 않았더라면
뚝 떨어져서 그만 멈춰 버렸는데
멈추다 보니 북이스라엘이 쫄딱 망했구나 라고
이게 북이스라엘의 고백이다 말이죠
오늘날 교회의 고백기도와 같죠
아니 망하면서도 망하는 이유도 모를 정도로
그들의 귀와 눈을 가리신 겁니다

(렘 7:18, 현대어) 어린아이들은 땔 나무를 줍고 남편들은 불을 피우고 여인네들은 가루로 반죽을 해서 떡을 굽고 있다. 그것이 바로 여인네들이 하늘의 여신이라고 섬기는 바벨론의 샛별 여신 ㄱ) 이쉬타르에게 제물로 바칠 떡이 아니냐? 또 그들은 온갖 다른 신들에게도 포도주를 따라 전제로 바치고 있다. 그들은 내 마음을 상하게 하려고 그토록 온갖 짓들을 다하고 있다. (ㄱ. 가나안의 풍년신 아스다롯과 같다)
(렘 44:17, 현대어) 우리는 여전히 하늘의 여신을 섬기며 이미 그 여신에게 서약한 대로 행동하겠소. 우리와 우리의 조상들, 우리의 임금과 지도층에 있던 사람들이 대대로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성읍에서 바로 그 하늘의 여신을 섬겨 왔소. 그러므로 우리들도 이제 여기서 계속 그 여신에게 제물도 살라 바치고 전제도 따라 바치겠소. 우리가 그 여신을 잘 섬기던 때에는 언제나 우리의 모든 일이 잘되었으며 배고픈 적도 없고 전쟁이나 전염병에 시달린 일도 없었소.
(렘 44:18, 현대어) 그러나 우리가 하늘의 여신에게 제물 바치는 일을 중단하고부터는 우리에게 모든 것이 부족하고, 마침내 안팎으로 전쟁과 굶주림을 당하여 우리 민족 전체가 몰살을 당하게 되었소'
(렘 44:19, 현대어) 그 곁에서 있던 여인들도 똑같이 빈정거렸다. '우리가 언제 남편들도 모르게 하늘의 여신을 섬겼소? 우리가 그 여신에게 제물을 살라바치고 전제도 따라바치며 그 여신의 모습대로 떡을 만들어 바쳤을 때에 우리의 남편들은 완전히 우리와 한마음이 되어 있었소'
(렘 44:21, 현대어) '여러분은 모든 것을 뒤집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유다의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의 모든 거리에서 하늘의 여신에게 제물을 바쳤습니다. 이러한 행동때문에 바로 여러분이 재난을 당한 것입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조상들, 여러분의 왕들과 지도층에 있던 사람들, 이렇게 온 백성이 우상을 섬겨 재앙을 불러들였습니다. 온 백성이 주님을 떠나서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주께서 여러분에게 형벌을 내리신 것입니다.


이게 오늘날 모든 교회의 반성문이다 말이죠
제물 바치는 것을 멈추는 바람에 망했다 라고

성화론의 성화를 멈추는 바람에 망했다 라고

이것이 말 재주를 끝까지 말의 속임수를 끝까지 붙잡고 손 놓지 않는 겁니다

헬라인의 지혜를 추구함과 같지요

하나님의 능력인 원수를 7에 70번 사랑한 십자가의 피 용서가 아니면

어리석고 미련하다 라고 뒤짚어 씌운 그 어리석음과 미련함인
누워서 침뱉기 라는 속임수에 그 울리는 꽹과리에 못 벗어나는 겁니다

사도바울은 십자가만 알기로 했다 라는 다짐과 말로 자신을 수십번 주문 외우듯이 외워서
옴마니반메훔 종교마다 그런 주문들
심지어 주기도문 10번 외우면 두려움이 사라진다 라는 그거 역시나 중언부언의 주술 주문 마술 수리수리 마수리 라는 말재주인 것이지요

그렇게 주문 외우듯이 해서 십자가만 알기로 한게 아니라

십자가에서 태어나버렸기에
그런 천재와 다른 공무원으로 태어나버렸기에
국가 공무원 시험을 쳐서 자격증 따서 공무원이 된게 아니라 그건 천재이고

그 반대인 예수님 나라 십자가의 나라가 공무원으로 삼아버려서
십자가에서 태어나버렸기 때믄에
십자가를 아니 외치고는 못 배기는 겁니다
그 카이 저 따위 속임수를 다 거쳐봤기 때문에
그 속임수를 타파 하면서 그 내막까지도 속 속 다 까발려주는 겁니다

우리는 줘도 못 먹을 정도로
십자가 나라의 언어를 번역해야 하지만 말이죠
그 십자가늬 나라에서 태어나 버리면
바울처럼 아 그 소리가 그 소리임을 배우지 않아도 아는 겁니다

말이나 지혜가 아니니까 말이지요

벙어리도 귀머거리도 다 아는데
본다고 소경 아니다 라고 하는 자가 모르고
들을 중 안다 라고 하는 자들이 듣고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겁니ㅏ
백날 언어학 기호학 정신분석학 백날 해서 최고봉의 학문 최고의 권위자가 되어도 말이죠

일자 무식만이어도 아는 겁니다

그 카이 십자가를 자랑해야지 다짐하고 실천해서 십자가를 자랑하는게 아니라
그것 역시나 말과 지헤로 하는 속임수 껍데기 이고

저절로 십자가에서 태어난 증상물이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감기이지만
감기에 걸리다 보나 콧물 두통 다 나오잖아요 눈에 보이잖아요
그게 증상물이듯이
그렇게 저절로 십자가가 내 속에서 감기처럼 작용하다 보니
십자가가 잉태한 자가 맞구나 라고 주변에서 말 할 정도로
그 능욕을 그 고난을 당하는 겁니다
네 바로 이겁니다 행하는게 아니라 하는게 아니라
당하는 겁니다
기도 하는게 아니라 기도 당하는 겁니다
이거시 기도 하는 자 즉 기도 지키는 자와
기도의 사람으로 태어난 기도의 증상물 기도 당하는 자의 차이입니다

십자가를 증거 십자가를 자랑하는게 내가 아니라
십자가 스스로 함에 있어서 나는 스피커
광야의 소리로 당하는 겁니다

기존의 속임수들과 차이가 나는 능욕을 당하면서
불과 함게 동행하면서 말이지요

말재주는 반드시 인기를 끌고 사람들이 주렁 주렁 따르지만
능력은 그림자가 아닌 실상이라서
도로 그 이전부터 친한 친구도 다 짐싸들고 다 도망칠 정도입니다

채로 걸러냅니다 두 며느리 중 첫째 며느리는 벌써 짐싸고 도망 갔다 말이죠
둘쩨 며누리가 어머니를 괴롭히는 하나님이 내 하나님입니다 라고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사다리를 놓아주심에 올라탄 겁니다
그 보이지 않는 감기라는 원본 뿌리는 그 근원지 고정자리는
십자가 속보인 예숭님의 족보였다 말이죠

이 전능자 라는 괴롭히는 하나님이 분명히 있는데
인간들은 유대교는 말 재주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외쳐서
북이스라엘처럼 하늘의 여신에게 망했어도 대출 받아 계속 드렸더라면 안 망했다 라고
여전히 망하는 이유도 모르듯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외치면서
금을 성전에 바쳐서 빨리 이우러지지 금을 바치지 않으면 더디 아주 느리게 느리게 이루어진다 라고 이것이 그들의 신앙 트릭법칙으로 보편화 될 정도로
속임수의 본부 강도의 본부가 그들의 성전이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거 깨뜨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능력인 십자가의 피 용서는 없지요
양다리 걸치려는 자들이 어디 한 둘이겠습니까

괜히 여리고성과 아이성이 한 세트로써의 두언약을 이루는게 아니거든요

괜히 아간의 범죄가 주님의 일과 한세트로써의 사람의 일로 대비를 이루는게 아니거든요

괜히 이스라엘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는게 아니거든요
반드시 두언약의 한 세트가 약속성취 말씀완성이다는 겁니다
우리는 그렇게 이 십자가에서 태어난 자로써

환자의 자리에서 의사를 외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십자가는 건강한 자 의인들이 자랑치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태어난 자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십자가는
주께만 범죄한 죄인 만이
환자만이 의사를 외치도록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아예 고정 시켜버렸습니다
그리고 저들 반대되는 자들 또한 고정이 되어버렸습니다

의인과 건강한 자는 십자가를 자랑하는게 아니라 말재주로 결국 자기 인기를 끌어
자신을 고정하는 말재주만 펼치도록 되어 있기에

원수를 사랑한 용서한 7에 70번 용서 보다
남을 7번 용서한 고정된 자신의 의를 높이도록 되어 있음을

그 속임수의 달인이였던 바울이

죄인 중의 괴수로써 증거 합니다

죄인 중의 괴수의 말을 누가 듣겠습니까 아무도 안 듣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놀랍게도
사기꾼 목사들이 듣고 따라하면서

죄인 중의 괴수가 되는게 아니라
또 의인이 되는
미끼를 물어서 자신의 자리를 고정시키는 짓을 하고 있습니다

안 그러는 자가 없음을 보여주심을 통해서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뭘 해도 가짜요 뭘 해도 거짓이며
뭘 해도 죄인 중의 괴수며
뭘 해도 화로다 화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지옥의 몸임을 앎으로써

긍휼이 없음을 유일한 긍휼의 그릇되신 예수님을 보고서
주여 불쌍히 여겨 주소서 제발 긍휼히 여겨 주소서
제발 이 죽은 자를 살려주소서 제발 생명이 없는 자에게 생명을 부어주소서 라고


이것이 십자가를 자랑하는
십자가에서 태어난 자 임을

아무리 봐도 십자가에서 태어난 자 이다 선민이다 라고 하는 자는
말 재주 뿐이였고

십자가에서 태어나지 않은 지옥의 몸임을 아는 자는
이 심판 속에서 다시 사신 예수님을 보고
주여 정직한 영이 생명이 없음을 불쌓히 여겨 주소거 라고 외치는 자는

너가 십자가에서 태어난 자가 맞구나 라고
팔을 어긋맞게 하시는 겁니다

숨만 붙어 있기만 하고 좀비 짓만 하는게 무슨 생명입니다

그 모든 그림자 어두움을 물리치신 나 같은 어두운 소경된 자를 고치신 주의 이름을

아무리 말려도 말려도 막을 수 없는 그 이름을 부르짖도록 하시는

여리고의 소경처럼

다윗의 자손이여 저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보기를 원하나이다 라고 고래 고래 고함치니까

제자들이 시끄럽다 라고 말리듯이 막아셔려 했지만

십자가에서 태어난 자를 말릴수가 없었던 겁니다

사망 권세를 깨뜨리는 한 왕
다윗을 주시겠다 라는 말씀을 믿은 자는
도리어 여리고의 소경이였다는 겁니다

한 눈 먼 사람이 소리 쳤네

한 눈 먼 사람이 소리 쳤네

이 소경이 바로 십자가에서 태어난 자였기에

십자가만 자랑 하는 자였다는 거죠

바울이 이 십자가와 꽝 하고 박아서
교통사고로 입원해 결국은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와의 충돌 덕분에 다시 태어났습니다
오로지 십자가만 자랑 할 수 밖에 없는 자로써

남들에게도 십자가에 꽝 하고 박아서 교통사고로 죽으라 라고
그와 함께 죽고 그와 함게 다시 살라꼬 말이지요 zzzz

그것도 아주 진지하게
우리가 정작 심각하게 여기는 말재주로 돈 벌고 종교장사하고
탁월한 지혜로 생존을 이어가고자 하는

그 그림자 놓이에 손 떼고 실상은 십자가 이다 라고
십자가라는 대형트럭으로 급발진으로 다 죽게해서 다시 십자가로 태어나게 함으로써

이 십자가만 알기로 작정했다 라고 목숨 걸어 심각하게 외치는 겁니다
여기에 우리 개인의 생존 먹고사는 개인 구원이라는 그 따위 그림자
그런 종교오락
아이들의 장난감놀이 얼라 짓들은

이 사망 권세만을 마귀만을 상대하시는 하나님의 일에
허구로만 그림자의 속임수로만 취급 당할 뿐입니다

이 십자가가 떳기에
그 푯대만이 있을 뿐입니다
목숨 걸때가 있다는 것처럼
행복한 것이 없습니다
행함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태어났기에 저절로 돌아가고픈 본향이 있기 때문에 말이죠

철저하게 나그네 라는 머리 둘곳 없는
하나님의 능력인 십자가의 고난 덕분에 산 소망이 있는 겁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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