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0 수치를 가려주심 받는 (원수의 목전에서의) 내 백성 (겔 34,29-31)
2025. 10. 5.
눈물 대신 희락을, 잿더미 대신 화관을, 근심대신 찬송을, 심판 속에서의 남은자 구원
모든 수치, 모든 모욕, 모든 허물을 다 덮어주는 대신 모욕당하는 구원 ( 그 부끄러운 십자가 날 위해 지셨네, 날 위해 지셨네 ~~~ )
화평의 언약을 세워 이방의 노략거리가 안되게 하리라 (겔 34,25-28)
에스겔 2019 2025. 9. 13. 14:34
21-099 화평의 언약을 세워 다시는 이방의 노략거리가 되지 않게 하리라 (겔 34,25-28)
〈에스겔 34,29-31, 개역한글, 구약성경 1206쪽, 찬송가 305장 새 559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 찬송가 307장 새 588 공중 나는 새를 보라〉
〈찬송가 305장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 새찬송가 559장〉
1. 사철의 봄바람 불어잇고 하나님 아버지 모셨으니
믿음의 반석도 든든하다 우리 집 즐거운 동산이라
고마와라 임마누엘 예수만 섬기는 우리집
고마워라 임마누엘 복되고 즐거운 하루 하루
2. 어버이 우리를 고이시고 동기들 사랑에 뭉쳐있고
기쁨과 설움도 같이하니 한간의 초가도 천국이라
고마와라 임마누엘 예수만 섬기는 우리집
고마워라 임마누엘 복되고 즐거운 하루 하루
3. 아침과 저녁에 수고하여 다같이 일하는 온 식구가
한 상에 둘러서 먹고 마셔 여기가 우리의 낙원이라
고마와라 임마누엘 예수만 섬기는 우리집
고마워라 임마누엘 복되고 즐거운 하루 하루
〈찬송가 307장 공중 나는 새를 보라, 새찬송가 588장〉
1. 공중나는 새를 보라 농사하지 않으며
곡식 모아 곳간안에 들인 것이 없어도
세상 주관하는 주님 새를 먹여주시니
너희 먹을 것을 위해 근심할 것 무어냐
2. 들의 백합화를 보라 길쌈수고 안해도
솔로몬의 입은 옷도 이 꽃만 못하였네
아궁속에 던질 풀도 귀히 입히시거든
사랑하는 자녀들을 입히시지 않으랴
3. 너희들은 세상에서 무엇 먹고 마시며
무슨 옷을 입고 살까 염려하지 말아라
이는 이방 사람들이 간구하는 것이요
너희 하늘 아버지는 너희 쓸 것 아신다
4. 너는 먼저 주의 나라 그의 의를 구하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주시리
내일 일을 위하여 미리 염려말지니
내일 염려 내일하라 오늘 고생 족하다
〈에스겔 34,29-31, 개역한글, 구약성경 1206쪽〉
(겔 34:29, 개역) 내가 그들을 위하여 유명한 종식할 땅을 일으키리니 그들이 다시는 그 땅에서 기근으로 멸망하지 아니할지며 다시는 열국의 수치를 받지 아니할지라
(겔 34:30, 개역) 그들이 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있는 줄을 알며 그들 곧 이스라엘 족속이 내 백성인 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라
(겔 34:31, 개역) 내 양 곧 내 초장의 양 너희는 사람이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 34:29, 새번역) 내가 그들에게 기름진 옥토를 마련하여 줄 것이니, 그들이 다시는 그 땅에서 흉년으로 몰살을 당하지도 않고, 다른 나라에게 다시 수모를 당하지도 않을 것이다.
(겔 34:30, 새번역) 그 때에야 비로소 그들이 나 주 그들의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있다는 것과, 그들이 내 백성 이스라엘 족속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겔 34:31, 새번역) 너희는 내 양 떼요, 내 목장의 양 떼다. ㉠너희는 사람이요,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 ㉠칠십인역과 고대 라틴어역에는 '너희는 사람이요'가 없음
먼저 제가 시간이 생기기만 하면 바로 예배를 드리다 보니
글을 나중에 적게 되어서 먼저 녹음을 한 후에 지금 글을 적는데
시간이 생기자 마자 급하게 준비를 해 1시간에서 2시간 정도에서 끝내야 하기에
상세하게 못 보다보니 오독을 해서 설교를 했는데
다행히도 전체적인 맥락에서는 그렇게 벗어난 것은 없으니
오독한 내용은 이 글로 수정, 고침으로 인해서 잘못 알아갈까봐 미리 알려드립니다
(겔 34:29, 개역) 내가 그들을 위하여 유명한 종식할 땅
이 [유명한 종식]을 지난 번의 내용과 연관 시키다 보니
전쟁의 종식으로 오독 했습니다 그렇게 계속 잘못 설교를 했는데
전제적인 의미는 다행히도 옆길로 벗어난 것은 아닙니다
유명한 이름있는 유명해진 주변에 알려질 정도로 말이죠 그런 전쟁 끝나면
소식이 전세계 방방곡곡에 바로 퍼지니까
해방 광복처럼 유명한 날이 어디있겠습니까? 그야말로 기쁜날이지요
그래서 종식을 전쟁의 끝으로 봒는데
한문이 있었으면 혹 다시 봤을 것인데 급하다 보니
한문도 없는 번역을 보다보니
이 종식이 종자 종 이고 식이 식물 식이라서 식물종자 였습니다
제 이름도 심을식 식물식이였기에 눈에 띄였을 것인데 말이죠
그카이 성경에서 이스라엘을 가리켜 자주 쓰는 표현으로 들자면 특급상품 포도 종자인 거죠
이 용어가 입에 붙었을때에 이사야 했을 때였고
공무원시험합격은 권성똥 이라고 체리따봉이 한참 유행했을때에
예능프로에서 아이였던가 개그프로였던가 내 남편은 특급남편 내 아빠는 최고아빠 뭐 그런 표현이 유행하길래 그렇게 특급포도 라고 붙였엇던 거죠 마침 그 때에 과일상자에 눈에 띄였는데 왜 모든 과일상자 채소상자는 다 특등급이라고만 되어 있지 1등급에 동그라미 쳐 져 있는 것을 못 봤다 말이죠 그래야 돈을 올려 받을테니까 말이죠
안 그러면 들포도처럼 땔깜도 안되니 아무도 안 사가니까
유명하지 않으니까 말이죠
(사 5:2, 개역)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틀을 팠었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 포도를 맺혔도다
(사 5:3, 개역) 예루살렘 거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 판단하라
(사 5:4, 개역)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 포도를 맺힘은 어찜인고
(사 5:2, 새번역) 땅을 일구고 돌을 골라 내고, 아주 좋은 포도나무를 심었네. 그 한가운데 망대를 세우고, 거기에 포도주 짜는 곳도 파 놓고, 좋은 포도가 맺기를 기다렸는데, 열린 것이라고는 들포도뿐이었다네.
(사 5:3, 새번역) 예루살렘 주민아, 유다 사람들아, 이제 너희는 나와 나의 포도원 사이에서 한 번 판단하여 보아라.
(사 5:4, 새번역) 내가 나의 포도원을 가꾸면서 빠뜨린 것이 무엇이냐? 내가 하지 않은 일이라도 있느냐? 나는 좋은 포도가 맺기를 기다렸는데 어찌하여 들포도가 열렸느냐?
(렘 2:21, 새번역) 나는 너를 종자가 아주 좋은, 제일 좋은 포도나무로 심었는데, 어떻게 하여 네가 엉뚱하게 들포도나무로 바뀌었느냐?
그런데 들포도 가 되었다 땔감으로도 사용못할 정도로 무가치 하게 되었다 라는 것인데
바로 그런 의미로 했다면 더더욱 풍성 해졌을 설교였는데 전쟁종식으로 인해
얼떨결에 모욕적인 구원을 땅끝에서 받다 보니
바로 한 목자. 한 왕. 한 선지자를 세우심으로 말이죠
(겔 33:33, 개역) 그 말이 응하리니 응할 때에는 그들이 한 선지자가 자기 가운데 있었던 줄을 알리라
(겔 34:23, 개역) 내가 한 목자를 그들의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
(겔 37:24, 개역) 내 조상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니 그들에게 다 한 목자가 있을 것이라 그들이 내 규례를 준행하고 내 율례를 지켜 행하며
(겔 37:25, 새번역) 그 때에는 내가 내 종 야곱에게 준 땅 곧 그들의 조상이 살던 땅에서 그들이 살게 될 것이다. 그 땅에서 그들과, 그 자자손손이 영원히 거기에서 살 것이며, 내 종 다윗이 그들의 영원한 왕이 될 것이다.
맹 같은 의미로도 충분히 그 의미라 전달 되었기에
이 부분만 바로 아시라고 알려드립니다 유명한 종자식물입니다
자 이렇게 양해를 구하고서 글을 시작하겠습니다
가끔 글과 녹음된 내용이 전혀 다르게 나올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말하는 바의 결과는 똑같은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지난번의 내용에 이어서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너는 나의 백성이 된다 라는 것을
좀 더 더 깊게 살펴볼 중요한 의미가 있어서
이 세 구절을 통해서 나누고자 합니다
그것은 바로 수치 라는 단어가 오늘 나옴으로 인해서
반드시 내 백성 아닌 자와 내 백성 맞는 자와의 차이와 구분 간극 구별이
이 바로 수치 라는 의미를 통해서 가려내시겠다 라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아니 더 어려울지 모르지만 앞에서 다룬 남은자의 의미로 나누시겠다 라는 겁니다
그 카이 앞에서 다룬 남은자 의미를 모르시면 오늘도 무슨 소리인줄 모르시게 되는 거죠
기존의 남은자 운동이 하도 엉터리 라서 말이죠
그 엉터리 들이 소위 요즘 말이 많은 미국 복음주의자들의 극우운동 인 겁니다
미국 갈리도 없겟지만 이제 미국에 출입 못하게 되었네요 검열당할테니 말이죠 ㅋㅋㅋ
중국 욕도 많이 했었고 일본도 가끔 출입 금지를 펼칠때도 있던데 ㅋㅋㅋ
그들 극우들의 복음주의가 한국의 극우 곧 한마디로 잡교인거죠 한국기독교는 잡교 혼합종교 무당들입니다 바알을 숭배하는 마귀들이다 말이죠 겉으로 동성애반대운동 하면 뭐합니까
자기들이 소돔과 고모라 라는 그 결핍을 채울려고 그런 남은자운동을 하고 있는데 말이죠
오늘 본문의 남은자란 심판 속에서 나오는 땅끝 포로 속에서 눈물 속에서 수치 속에서
잿더미 다 타버린 그 그루터기 속에서 나오는 자기 죄로 우는 자들이
왜 우는고 보니 남겨둔 한 씨 덕분에
이러다 다 죽어 라고 외치는 그 한 선지자의 눈물 덕분에
소돔과 고모라 아니게 되었지
남겨둔 한 씨의 믿음 떨어지지 말라고 기도하지 않았더면
이미 벌써 소돔 고모라 지옥백성이엿다 말이죠
동성애 반대운동 하면 할수록 그 놈은 더더욱 소돔백성이요 고모라 백성이지
주님의 백성이 아니다는 겁니다 즉 버림받는 들포도 이다는 겁니다
가버나움이 지극히 평벙한 도시인데 소돔과 고모라 보더 더한 심판을 하시겠다 하신 이유이니까 말이죠
(마 11:19, 개역)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마 11:20, 개역)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마 11:21, 개역) 화가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마 11:22, 개역)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마 11:23, 개역)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마 11:24, 개역)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마 11:25, 개역)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마 11:26, 개역)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마 11:27, 개역)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마 11:28, 개역)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9, 개역)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 11:30, 개역)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즉 주님이 말씀하신 내 백성이란 주님의 백성이기에 주님과 마음이 맞기 때문에 주님이 가신 길을 따라 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죽어도 이 땅에서 떠날 마음이 없다 말이죠
주님의 노선으로도 갈아탈 마음이 없다 라는 겁니다
그카이 오늘 본문 그 수치 그대로 가지고서 살고자 한다 라는 겁니다
개인적인 수치 제거하는 개인적인 노력 즉 신앙생활 하면 된다고 우기지만
가는 길 자체가 수치의 길을 가는 시대의 흐름 곧 세상 구조에서 빠져나올 마음이 없다 라는 거죠
그래서 다음주에 할 것이지만 이 수치와 같은 의미로
아니 반댓말을 먼저 살펴보면 수치와 반대는 바로 가려주심입니다
그런데 방금 올렸던 가버나움의 소돔심판처럼
인간은 이 수치도 가려줌도 자기 숙제로 해결할려고 하니
즉 외부에서 주어지는 선물 곧 은혜가 없이 행함으로 할려고 하니
이 성경본문에 나온 구절 단어 문자 조차도 자꾸 적응할려고 합니다
처세술을 부려요 속임수로 자기가 자기를 꾈려고 누워서 침 뱉기를 하는 겁니다
그게 바로 적응력인데 수치를 자기가 가리우는 적응력
가려주는 적응력
버로 이런 사고방식인 종교의 음녀가 하는 방식이 응집이 된 것이 바로 게시물 하단에 있는
니체의 사고방식과 Z세대입니다
M세대는 돌파할려고 하는 것 조차도 포기할 정도로 무기력 하지만
Z세대는 시도라도 할려고 하니 대견하다 싶지만 오히려 더 절망적으로 그 간극의 갭을 크다는 것을 알고 더 암울해 낙담하고 있다는 거죠
인간 말고 다른 몸으로 갈아타야 하는데 다른 몸이 나타나주지 않으니까 갈아탈수도 없고
자신의 사망의 몸으로 인해 울부짖어서 도와달라고 울지도 못할 지경이니
찾아주는 자도 없는 겁니다
병은 어서 빨리 외부에 알리면 알릴수록 빨리 고치는데
다들 속으로 끙끙 앓고 참으려고만 하닌 더더욱 곪아 가는 것이지요
탈북자 아니 이탈민 들의 말이 탈북은 아니 이탈은 지능순으로 한다고 하던데
우리가 이렇게 어두운 눈이니 누가 도와줄줄 알고 외치겠냐 말이죠
더한 강도가 될지?
의사가 될지? 말이죠
주님은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에스겔서에서 모두다 강도짓하는 지도자들 뿐이다 라고 하셨을 정도인데 말이죠
자 이렇게 내 백성 이라는 의미는 그냥 혼자 단독적으로 나오는게 아닙니다
반드시 진노의 그릇과 대조를 이루면서 나온다는 거죠
우리가 성경에 나오는 기적과 축복을 자꾸 단독적으로 추구할수 있는냥
대부분 교회에서 가르치고 설교를 하는데
그래서 그런 교회 그런 목사놈들을 마귀라고 보는 겁니다
바리새인을 독사의 자식이라고 했던 분은 예수님 뿐입니다
아무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라는 말은
다들 지옥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라는 증거죠
성경이랑 안 맞아요 문자주의를 지독스럽게 이단이라고 공격해놓고서는
지들이 더 심한 문자주의로 해석을 하더라 말이죠
자기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으로 모는 거죠
아직도 그놈 댓글 단놈 생각나네
내로남불이라고 공격하던데 무식한 놈 내불남로로 받아치더니
사랑이 없으니까 깡통 굴리다 가는 겁니다
끝까지 복음을 위해서 싸우겠다 라고 해 놓고서는 말이죠
그 깡통굴리는 헛짓하는 자들이 오늘날 목사들이다 말이죠
그야말로 우상숭배를 가르치고 있더라 말이죠
그들은 수치를 가려주는자들이 아니라
약한 양의 상처를 고치는게 아니라 대충 대충 평강이다 라고 해 놓고서는
오히려 등쳐먹고 도리어 사다리를 걷어차는 놈들이다 라고 앞의 구절을 통해서 살펴봤습니다
(겔 34:17, 개역)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양떼 너희여 내가 양과 양의 사이와 수양과 수염소의 사이에 심판하노라
(겔 34:18, 개역) 너희가 좋은 꼴 먹은 것을 작은 일로 여기느냐 어찌하여 남은 꼴을 발로 밟았느냐 너희가 맑은 물 마신 것을 작은 일로 여기느냐 어찌하여 남은 물을 발로 더럽혔느냐
(겔 34:19, 개역) 나의 양은 너희 발로 밟은 것을 먹으며 너희 발로 더럽힌 것을 마시는도다 하셨느니라
(겔 34:20, 개역)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나 곧 내가 살진 양과 파리한 양 사이에 심판하리라
(겔 34:21, 개역) 너희가 옆구리와 어깨로 밀뜨리고 모든 병든 자를 뿔로 받아 무리로 밖으로 흩어지게 하는도다
(겔 34:22, 개역) 그러므로 내가 내 양떼를 구원하여 그들로 다시는 노략거리가 되지 않게 하고 양과 양 사이에 심판하리라
반드시 내 백성에 반대되는 진노의 그릇과 대조를 하면서 성경은 증거를 하는데
이게 놀랍게도 비유 비밀 수수께끼 라서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그 진노의 그릇에 해당 된다고 여겨지는 자들이 안 보인다 라는 것이
문제이다는 겁니다
그카이 기존에 쭈욱 판단 되어오던 방식에 습관적으로 장로의 유전을 따라서
진노의 그릇으로 취급받는 사람들을 숟가락 하나 얹져서 그 차이로써 행동을 하고
주변도 다 그렇게 부정한 사마리아인 곧 이방인을 공격하고 있듯이 그렇게 따라 하면
별 문제 없다고 여기니까
별문제 의식이 없는데 문제는 그 진노의 그릇이 기존의 판단에서 나오는게 아니라
새로운 시선인 새언약에서 새롭게 형성 되어서
새로운 진노의 그릇이 새롭게 등장함으로써
대조를 그 차이를 당해야 하는데
문제는 우리가 그 새로운 시선에서 새로운 진노의 그릇을 새롭게 만들어 낼수가 없다 라는 점 이다는 거죠
기존의 판단을 이어와서 판단하게 되니까 늘 예수님 앞에서 뒤짚어 져서 전복되어 나타나는 새로운 진노의 그릇 독사의 자식을 썰마 바리새인으로 볼 수가 없는 겁니다
아니 그 동안 존경했으면 존경했지 어떻게 하루 아침에 독사의 새끼라고 하겠냐 말이죠
오늘날 목사에게 그것도 본인이 다니는 교회의 담인목사를 독사릐 새끼 라고 감히 볼 수가 있겠습니까?
복음을 증거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죠
그 카이 유대인에게서는 거리끼는 걸림돌이 되는 거죠
기적을 쫓아야 하는데 구원을 쫓아야 하는데
어라 오늘 본문처럼 수치를 쫓아야 하고 모욕을 쫓아야 하고 심판을 쫓아야 하는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땅 끝이라는 그 끝 그 종말의 시선예수님의 죽음의 이선에서 그 수치를 볼때에
오히려 의인이 하루 아침에 범죄하고 악인이 하루 아침에 돌이키는 그 피의 능력
피 곧 화목제의 능력인 사다리의 능력을 우리는 단 한번도 갈아타본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 시선을 가질 수가 없는 소경이였다 라는 거죠
율법사 사제 제사장 소위 카톨릭 식으로 하면 파더 아부지 아닙니까
너거 아부지는 마귀다 라는 말이 딱 맞잖아요
너거 아부지 뭐하시노? 마귄 데예
그 마귀를 그 독사를 아버지로 그 동안 섬겼던 거죠
이사야는 제사장이자 선지자로써 하나님의 진짜 거룩 앞에서
온갖 수치가 다 드러납니다
천사들도 타 죽을까봐 싶어서 여섯날개로 다 가릴정도로 절대거룩 앞에서 타 죽어야 할 판국입니다
약속에 선택받은 백성이라고 우기는 이스라엘 백성 중에 거하는 한 사람으로써
더럽기가 짝이 없는 심판 받아 마땅한 자 임을 비로소 이제 알았구나 라고
울어야 하는 판국이다는 겁니다
다윗이라는 왕이 오지 않는 이상
백날 내 하나
나 하나 딸랑 한명 아무리 깨끗해도
다윗 왕 안오면 말짱 도로묵이다는 겁니다
거기에 엎친데 덮친격으로 왕들도 이제 다 죽고
이제 거짓선지자들도 다 죽었고
이제 그들이 그렇게 국가라를 짐승 등 위에 올라탈려고
종교세력을 구축한 그 음녀짓 또한
국가 멸망 앞에서 이제 이미 지나가 버린 다 이전 것이 되어버렸다 말이죠
그 절망 속에 무슨 수로 다윗 왕아 오겠으며
이 특급상품이였던 포도가 수치가 가려우짐을 받아서 다시 최상급의 포도가 되겠느냐 말이죠
강릉에 비가 오고 싶어도 저 놈의 딴나라당 놈들의 배불러 터진 소리 때문에
물 주면 뭐합니까 또 우상숭배 할낀데
또 파리한 양 등쳐먹고 사다리 걷어찰텐데
물 주겠다는데 안 받겠다 라는 저 목이 곧은 백성과 지도자 말이죠
그렇다고 진보 이놈들은 자기들의 남 7번 용서 라는 그 성화론
그거 멈출까요? 뼛속까지 음녀 짓을 끝까지 하도록 되어 있다 말이죠
우리가 다 이런 사망의 몸이다는 겁니다
왜? 이것 또한 적응력 이지 외부에서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니깐요
그카이 의문의 반복인 속임수 일 뿐입니다
유일한 외부에서 주어진 선물은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이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그 의문의 반복 따위의 속임수로 누가 꾀냐 말이죠
다들 배불러 터진 소리를 하는 겁니다
자주국방 외치듯이 주체돌립 자아성립이라는 그 강요로 인해서
한 참 사랑받고 자랄 나이에 선악의 법을 알아서
남을 꺽지 않고서는 자기가 올라가지 못하는 강요된 선택으로 인해
다들 가인의 후예로만 좀비로 살지
그 육의 노선에서 갈아타는 사랑의 노선을 바라는 자는 아무도 없는 겁니다
구카이 자기 수치를 자기가 늘 가려야 하는 수고뿐인 거죠
그 무거운 짐을 바리새인들이 백성들에게 머리 위에 얹혀 놓고서
지도 천국 안가고 남도 천국 못 가겠끔 중간에서 삥 뜯는 짓을 오늘날까지도
목사놈들이 하고 있는 겁니다
괜히 목사 되는 바람에 말이죠
지들이 삥 뜯고 가스라이킹 해 놓고서는
매국노 세리에게 뒤짚어 씌우니까
즉 씌운다 라는 말은
자기 수치를 자기 스스로 가리운다 라는 증거로써
그렇게 적응 처세술 자기방어기제만을 펼쳤지
사랑으로 하지 않은 것은 모든게 죄였다 라는 겁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은게
은혜로만 하지 않은게 말이죠
뭐든지 행함으로 뭐든지 선악의 법 법 법으로 행했던 겁니다
그것은 육의 자랑 밖에 안 나오니까 누가 크냐 라는 싸움 밖에 안되는
그래서 그 육의 자랑 때문에 누가 크냐 때문에
남을 7번 용서하는
그러나 7에 70번의 용서는 육의 자랑으로 땡길수가 없으니
그렇게 되면 아무도 안 믿는 거짓말 취급 받기에
초과잉적 제스쳐에서 진리가 오는 나 말고 저 분을 자연스럽게 자원하면서 보게 되는 거죠
말이 자원이 아니라 자원하는 영
말이 참 요상하죠 내가 한 듯 내가 안 한 내가 한 것 같은 너 ~~~~~~~~~
그 정도로 주님의 모든 일 하심은 사랑이 담겨있는 사다리 높아주기 곧 능력인데
인간은 껍데기만을 추구하니까 능력이 없어요 모양만 갖춰놓고서
대충 대충 해 놓고서는 또 또 또 육의 자랑합니다 그 껍데기만을 자랑하지
능력 7에 70번을 자랑 못해요 거짓말 쟁이로 허풍쟁이로 오바 액션한다 라고 아무도 안 믿는
즉 결과적으로 인간의 믿음은 그 간극의 갭이 작은것만 깨작 깨작 장난하듯이
믿고픈 것만 믿지 남 7번 용서만 믿지
7에 70번 이라는 많이 탕감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는 그 갭이 절대적인 단절로써는 못 믿는 겁니다
성령론도 깨작 깨작 장난을 쳐요 그카이 지나개나 신사도운동으로 순복음도 어느새 정통교단이 되니
신흥 이단들도 돈만 내면 된다고 삐집고 들어오고
정통들은 돈만 받으면 된다 장자교단인 것은 변함 없으니까 이따위 짓이나 하고 있으니
모조리 다 멸망 시키시는 겁니다
바리새인이 오늘날 개혁주의에서 어떻게 성령론 아닌 신학교리가 아닌
성령을 어떻게 가르치겠습니까? 자기 용서 받은 것을 말해야 하는데
그래되면 수치가 드러나고 평생 약점 잡힐 일이 되는 거죠
그래서 거꾸로 남을 용서한 가능성을 가르칩니다
이게 바로 정치입니다
적응이요 처세술로 교회를 다닐 뿐이다는 거죠
정치가 아니면 누가 크냐 라는 싸움이 교회에서 안 일어나죠
자기가 높아 질줄로 알고 있기에 남 7번 용서를 가르치는 겁니다
다른 종교에서 다른 우상숭배의 신 교리에서 다 하는 것을 말이죠
또 이래 이야기 하면 심심하면 그카면 방종하라는 말이가?
남 용서 하지 말라는 말 아니가 라고
그것도 행함입니다 방종 하겠다도 행함이요 적응할려고 하는 것이고
남의 눈을 의식하는 것이고
자유를 강요하는 강요된 선택 자유의지인 거죠
인공지능은 0.5초 이미 먼저 감각이 반응한다 라고 했지만
최근엔 8초 까지 먼저 인지한다 라고 나왔죠
이것이 그림자 구약에도 나옵니다
며느리 다말이 화장을 하고 시아버지 유다를 꼬실때에 말이죠
못 벗어납니다
아무리 안 볼려고 얼굴을 돌려도 돌리는 족족 동산 중앙에 선악나무가 있는 겁니다
뭘해도 정중앙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할때에 여러 계파로 나누어진게 교회의 본모습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주님이 어떻게 고치느냐 그것을 보는 것이 외부의 선물이지
자기들이 알아서 나누어진 당파를 좁히겠다? 안 됩니다 시도조차 하덜덜 마세요
방법은 간단합니다 교회 부수면 됩니다
매일 매일 밭갈이 기경해서 부수고
매일 매일 새로 모이면 됩니다
그래서 부정의 부정으로써 오히려 더더더 나누면 됩니다
나누고 나누어서 바닥을 치면 지 혼자 남아요
두 세명이 모여야 정치가 되는게
더더더 잘게 잘게 부수어서 더 이상 나누어질수 없는 바닥을 쳤을때에
그때에 땅 끝에서 나오는 겁니다
ㅋㅋㅋ
지난 주 남은자 땅끝에서 심판 속에서 용광로 속에서 정금같이 나오는자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은 자가 남은자라고 했지요
인간들은 웃끼게도 남은자 운동을 유대교도 했듯이 자기들이 알아서 또 남은자 운동을 해요 글쎄
그것은 적응 이라고 처세술이라고 했지
능력이 아니다 라고 했지요
하도 성화론자들의 경건의 모양 갖추기에 질려버리는 바람에 지긋지긋한데
또 그 꼴을 봐야 하느냐 말이죠
경건의 능력은 내가 내 수치를 가리우는게 아니라
주님이 가려주시는 겁니다
당파로 교회가 나누어진 그 수치도 지들끼리 알아서 나누어지지 않게 한다고 해서
다른 파로 안 옮길까요?
바울이 언제 십자가 졌더냐? 라고 바울파 없애버리면
다른 파로 안 움직일까요?
제발 움직입시다 그리고 이것도 아님을 알고 쪼개어 달라고 하시면
결국 혼자 파당이 됩니다
혼자 외치면 아무도 안 들어요
저들도 혼자가 되면 아무도 안 들어도 나도 안 듣고요
그렇게 잘개 잘개 깨뜨리는 사건이 있어야 할 정도로
부들 부들 하면 또 몰라
군대의 딱딱한 무기처럼 딱딱하니까
사랑이 없으니까
사건 조차도 지들이 지들끼리 알아서 만들어 재끼니까
수치 없앤 척
파당 없는 척
척척척 만 하고 있지
능력은 아무도 안 바라는 겁니다
능력 앞에서는 울도록 되어 있는데 말이죠
상하고 통회하도록 화목제를 쳐다보도록 되어 있는데
또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으로 부자가 옷을 입으니
불 붙이면 금방 타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은 오바 라서
값없이 돈 주고 불에 타지 않는 옷 사래요 글쎄
말이 벌써 안 되죠 값없이 산다 그런데 돈 주고 사래
값 없다는 말은 돈 없이 인데
바로 돈 주고 사라는 말은 돈으로 사래요 이게 믄 말이냐 말이죠
앞 뒤 모순된 표현 아니냐 말이죠
그래서 인공지능에게 물어봤죠 우에 답하나 보니
잘못 알고 있다고 수정해 주더군요 또 잘못 알았어요 글쎄
어디서 본 글을 계속 강력한 각인으로 계속 알아와서 써먹었던 거죠
(계 3:18, 개역)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불 타지 않는 옷이 아니라 이미 불 속에서 나온 금을 사고
썩지 않는 재물이지요
그 금으로 부요케 하고
아니 부자인데 더 부요하라굽쇼?
네 맞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라는 죽음 속에서의 시선은
부자야 말라 제일 가난하고 헐 벗고 못 먹었고 삐짝 말라버린 병자였다 말이죠
그 위에 나옵니다
(계 3:17, 개역)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난 제일 부자이다 라고 하는데
주님은 에구구구 뭐 이런 상거지가 어디있노 아이고 불쌍혀라 라고 보신다 말이죠
반대로 봐야 한다는 거죠
목사가 복음을 제일 잘 전하는 자가 아니라 그 반대로 목사가 제일 복음을 제일 모르는 놈이기 때문에 목사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겁니다
실제로 주님이 그 놈을 목사로 세운 이유는 복음을 제일 모르기 때문에 복음 공부하라고 남들은 다 바삐 돈 벌기 바쁘지만 제일 복음 모르는 놈 붙잡아서 복음을 가리키는 겁니다
그런데 뭐 그리 목사가 벼슬이라고 깡패짓만 하고 있는지
제발 교인들이 반대로 깡패짓을 해서 목사를 복음 외칠수 있도록 공부를 시켜야 합니다
같이 정치놀이 그들만의 리그 게임을 펼칠 때가 아니다 말이죠
이런 글도 일반 교인 뭐 시간 나겠습니까 한가한 목사놈들이 볼꺼 아닙니까
이 내용을 그대로 설교 시간에 교인들에게 말해 보세요
자기 목 짤릴 일을 목사 스스로가 할 리가 없겠지만
더 이상 눈에 보이는 교회가 아닌 움직이는 새성전을 누리게 될 것 아닙니까
교회 하기 바쁜 놈들이 복음을 누릴 수 있겠냐 말이죠
그래서 아무튼
(계 3:17, 개역)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그런 표현은 없고
(계 3:14, 개역)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계 3:15, 개역)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계 3:16, 개역)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라이디게아 교회가 그 주변의 환경의 혜택을 입어서 방직 섬유로 돈 벌었고
또 안약으로 돈 벌었다 말이죠
옷: 이 도시는 양모 산업과 검은 모직 의류로 유명했습니다.
눈: 유명한 안약 제조로도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상주 잠외 농삿꾼이 참외를 한번 못 먹는다고 하더라 말이죠
자식들 대학 공부 시킬려고 하니 뭐 한 개라도 더 팔아야 하니까
못 먹는 거죠
그런것처럼 옷으로 유명한 도시요 안약으로 유명한 도시인데 정작 본인들은 그것을 한 번도 못 누리는 겁니다
마치 교회에서 진리를 단 한번도 못 누리고 우상숭배 짓만 하는 것처럼 말이죠
줘도 못 먹는 겁니다
그래서 그 상주 참외 농삿꾼에게 우리 어머니가 아는 분이 있어서 참외를 사 드렸더니만
그렇게 좋아라 하시면서 울면서 먹으시더라 라고 그런 이야기 자주 하시곤 했거든요
괜히 그런 지역을 준게 아니였다 라는 거죠
다 복음과 연관 되어서 주었지만
그 가장 풍요로운 곳에서 빈곤을 느끼는 겁니다
오늘날 청소년들 보세요 한참 사랑을 받아먹고 무럭 무럭 자라는 나이 아닙니까
그런데 자주국방 하겠다고 자아독립을 외치더라 말이죠
결국 사랑 안해주니까 사랑 받는 곳 딴데 가겠다 아니면
자기가 그런 사랑의 체제를 만들겠다 라고 독립하는 겁니다
그래놓고 사랑은커녕 빼빼말라 다 죽어가더라 라는 거죠
부자가 그래요
얼마나 사랑 받고파 하는지 징징 거려요
그런데 모든 것을 스쿠루지 영감처럼 돈으로 계산을 하니까
제일 가난한 겁니다
마음도 병들었죠 제일 좋은 옷 입어도
가장 더러운 옷을 입은거나 마찬가지인 벌거벗은 모습이다는 겁니다
아무도 그의 수치를 가려주고자 가까이 하지 않으니까 말이죠
주변인들을 노예로 가정부로 대하고 있지
본인도 그러니까 가정부 마인드이니까 말이죠
사랑 받는 아내가 안되니까 사랑을 주고 받을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주변인들을 다 속이는데 성공한
적응력의 달인이 된 이유는
껍데기만 추구했기에
울리는 꽹과리 징징 거리는 겁니다
제발 자기를 알아달라고 징징 거려요
교회 목사들 놈들 중에 이런 놈들이 하도 많아서
얼마나 징징 거리는지
징그러워 죽겠어요
제발 믿어달라고 제발
아무리 완벽하게 갖추어도 딱 하나 빠졌어요
다 빼 먹어도 이것 하나만 있으면 되는데
반대로 해요 글쎄
화목제가 없어요 화목제
그카이 자꾸 자기를 알아달라고 징징거리는 거죠
더 큰 문제는 주변을 아무리 들따 봐도
그 목사를 땅끝 이라는 용광로 속에서 집어넣었다 꺼내는 그 사건이 전혀 없다 라는 겁니다
젖먹이의 찬양으로 소동이 벌어지는 사건처럼 약자들의 찬양도 없고요
그저 맹숭 맹숭 강자들끼리 모여서 조용히 왔다가 조용히 가는
이미 약자를 다 잡아먹어서인지 몰라도
벌떼 같이 달려드는 약자의 찬양을 입틀막하는
도리도리의 행패 조차도 이제 없는
그카이 가장 곤고하게 병들었고
가장 헐벗었는 발가벗음이요
가장 가난한
그것을 아무도 지적해 주는 자 없는
이미 끝난 교회죠
껍데기만 주구장창
성령이 없어도 이래 잘 굴러가는데 그것으로 만족해 버리는데
누가 몽둥이 들고 깨부수겠느냐 말이죠
부자의 이런 수치를 가려주는 유일한 길은
용광로 속에 집어넣었다가 나오는 길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는 길
욥이 딱 그런 모습이지요
자식도 갈아치우고 아내도 갈아치울 정도로 말이지요
사탄의 가시를 푹 찌르는 길 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약할때에 강함 되시는
(고후 12:10, 개역)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고후 12:9, 개역)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어 같은 장 아래 위 이였넹 ㅋㅋㅋ
어쩐 지 ~~~~~~~~~~ 네 쌍둥이 아빠 ~~~~~ 어쩐 지 ~~~~~~~
(고후 12:7, 개역)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바울의 사도됨 조차도 바울 자신의 숙제로 달린 문제가 아님을 잘 보여주는 사단의 가시 사건입니다
그렇기에 바울의 믿음 바울의 신앙생활 조차도 주님은 안 믿으시고
매일 매일 주시는 믿음의 선물
매일 매인 인도하시는 은혜로만 안도하시지
자기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둠이 없습니다
자기 하기 나름이라는 신앙은 저 바리새인이나 성화론자들과 같은 울리는 꽹과리마 육의 자랑만 쫓는 자들입니다 막상 그들과 대화 해 보세요 육의 자랑 따위 하나 없는 얼마나 겸손한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무조건 마귀 자식이라고 몰아세우시는 이유는
본인의 숙제로만 나온 자를 찾으시니까 당연한 겁니다
미리 아셨다 가 뭡니까 창세전에 사랑하기로 작정 하셨다 아입니까
그리고 미리 정하셨다
이게 뭡니까 용광로에서 정금같이 나온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새로 지었다 라는 겁니다
이제 이전 것을 지나갔다 말이죠
그리고 그 미리 정하신 자를 부르시고
그 부르신 자를 의롭게 하시고
그 의롭게 하신 자를 영화 롭게 하셨다 라고
도대체 몇 겹겹으로 선물을 주시는 겁니까
미리 아심
미리 정하심
부르심
의롭게하심
영화롭게하심
미리 정하심과 부르심 사이에 미리 정하심을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지으심으로 정하셨다고
주를 그 그리스도의 사랑을 자랑하시고자 부르시고 의롭게 하시고 영화롭게
천한 계집을 원수들의 목전에서 왕비로 삼으시는
내가 주님의 백성 되겠다 라고 수치 문제를 해결해서 되는 방식이 아닌
주님께서 본인이 자기 백성 맞다 라고 원수들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는
자신의 의사 기술 의술
자신의 구원의 능력 너희들은 안식일날 죽이지만 나는 안식일날만 골라서
너희들이 죽이는 날만 골라서 도리어 살려내는 능력
이 능력을 생명의 밪줄을 의문의 반복과 대조시켜서 보여주시겠다 라고
영화 영광 스럽게
그 카이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걸림돌이요
헬라인에게는 어리석고 미련한
이 십자가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이요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 였다 라고
용광로 속에서 나온 정금이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이 특급 상품 포도
유명한 종식
가장 우수한 종자를
그 내 백성은
인간의 손에 맡기지 않으시고
주님이 손 수 직접
십자가의 피로
자기 백성 새롭게 창조하시고 지으시고 태어나게
이전 것은 지나가도록
이전 것들이 아무리 사방에 둘러 싸서 우겨삼을 펼쳐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자 없도록
주님이 붙잡고 놓으시지 않는 다는 사실에
우리는 이 주님이 우리를 자신의 백성 삼으시고자 하시는 그 주님의 숙제를
누리고 믿을 판국에 놓여진 증상물로써 너끈히 다 이루심을 즐기는 겁니다
이 십자가의 피 흘리심의 증상물이기 때문에 말이죠
사랑이기 때문에 ~~~~~~~~~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 가 갑자기 땡기네 ㅋㅋㅋ
얼마나 부들 부들 보들 보들 한 노래인지 ~~~
두로왕이 한 대 얻어터지고 창녀의 노래를 부르잖아요 ~~~~~ 밭 갈이 당해서 말이죠
이 화목제 되신 그 요나의 표적인 [대신 매 맞으심]인 사랑이 아니면 눈물 근심 잿더미 라는 그 수치를 그 죄악을 가려줄 자 아무도 없습니다
(사 25:8, 개역)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고전 15:54, 새번역) 썩을 이 몸이 썩지 않을 것을 입고, 죽을 이 몸이 죽지 않을 것을 입을 그 때에, 이렇게 기록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죽음을 삼키고서, 승리를 얻었다." / ㉤사 25:8
(계 7:17, 새번역) 보좌 한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셔서, 생명의 샘물로 그들을 인도하실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실 것입니다." / ㉡시 23:2; 사 49:10 ㉢사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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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9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미련한 복음과 요나의 표적) (고전 1;25)
2025. 10. 12. ( 9월 25일, 녹음 )
젖먹이 보다 강한 자 없다
(시 8:2, 개역) 주의 대적을 인하여 어린 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와 보수자로 잠잠케 하려 하심이니이다
(마 21:16, 새번역) 예수께 말하였다. "당신은 아이들이 무어라 하는지 듣고 있소?"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주님께서는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에서 찬양이 나오게 하셨다' 하신 말씀을, 너희는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 ㉨시 8:2(칠십인역)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고전 1;22-24)
고린도 전서 2025 2025. 9. 20. 14:46
25-008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고전 1;22-24)
〈고린도전서 1;25, 개역한글 신약성경 264쪽, 가스펠; 기적이라네, 찬송가 433장 새 383 눈을 들어 산을 보니〉
찬미예수 2000 - No.462 약할 때 강함되시네 (주 나의 모든 것)
〈찬송가 433장 눈을 들어 산을 보니, 새찬송가 383장〉
〈가스펠; 약할 때 강함 되시네 No.462 찬미예수 2000〉
약할 때 강함 되시네 나의 보배가 되신 주 주 나의 모든 것
주안에 있는 보물을 나는 포기할 수 없네 주 나의 모든 것
예수 어린 양 존귀한 이름 예수 어린양 존귀한 이름
십자가 죄사하셨네 주님의 이름 찬양해 주 나의 모든 것
쓰러진 나를 세우고 나의 빈 잔을 채우네 주 나의 모든 것
예수 어린 양 존귀한 이름 예수 어린양 존귀한 이름
(고전 1:25, 개역)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고전 1:25, 현대어) 비록 사람의 눈에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그것은 인간의 어떤 지혜로운 계획보다 훨씬 더 지혜롭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써 하나님이 매우 약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분은 어떤 인간보다도 훨씬 더 강하십니다.
약한 자리 미련한 복음의 자리가 아니면
강한 자의 악을 들추어낼수 없음
미끼 만이 완벽한 범죄의 약점이 드러남
미끼를 물 수밖에
왜? 완전범죄를 더더욱 완전하게 만들 수 있는 믿음이 있기에
솔로몬의 지혜는 바로 이런 점을 파고드는 겁니다
아 그럼 완전범죄 측은 아 교만하면 안되겠구나 겸손해야겠다
바로 그 겸손하겠다 교만하지 안겠다 라는 그것이
더더욱 겸손의 위선을 갖추고 더더욱 교만을 갖추는 이 양면성을 갖추게 되니까
이 사탄의 깊이를 거쳐서 하나님의 미련한 복음인 십자가의 지혜를 나타내기에
이 모순이 생명의 사다리 곧 생명의 밧줄을 던지는 모순이 되고
반대로 모순이면서도 모순을 감출려고 하니
더더욱 겸손 위선 더더욱 교만하지 말아야 겠다 라는 것이
간극을 좁힐수 없는 더더욱 간극이 벌어져서
스스로 자신의 범죄를 자기가 자기 스스로 실언할 수 밖에 없도록 나오게 하심
그카이 나는 내 죄를 내 스스로 말했다 라고 또 자기 의로움을 자랑하게 되니
바로 이런 육의 자랑 곧 강함만을 드러내는
나는 하나님 보다 더 겸손하다 더 솔직하다 라고 뭇별보다 더 높아지겠다 라고
정치 종교 경제적으로 장악된 자신을 다 드러내도록 하신다 말이죠
그러니 정직한 영이 없음에 성령이 아니고서는 절대로 상한심령이 될 수가 없다 라는 겁니다
그 자기 죄로 우는 남은자는 바로 이 땅끝이라는 심판의 자리
약한 자리라는 이스라엘의 처음자리에서만 나오지
자기 범죄를 스스로 자수 한 것 조차도 자기가 의롭다 자기 가치를 높이는데 활용되는 지독한 자기애 자기중독을 나타내도록 되어 있다 라는 겁니다
(시 8:2, 개역) 주의 대적을 인하여 어린 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와 보수자로 잠잠케 하려 하심이니이다
(마 21:16, 새번역) 예수께 말하였다. "당신은 아이들이 무어라 하는지 듣고 있소?"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주님께서는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에서 찬양이 나오게 하셨다' 하신 말씀을, 너희는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 ㉨시 8:2(칠십인역)
젖먹이라는 가장 약자가 바로 원수와 복수자를 들추어낼수 있는 가장 미약한 미끼입니다
이스라엘을 택한 이유가 바로 모든 민족 중에 가장 미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의식은 헬라인에게는 어리석고 미련힌 짓이다 말이죠
그리고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라는 유대인에게서는 곧 표적을 구하는 아하스 왕에게서는
이 임마누엘 젖먹이를 구한다 라는 것은 기적의 반대가 되는
가장 약한 모습이 되기에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에는 안 맞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 젖먹이를 최전방에 보내는 그런 악한 짓을 안하겠다 라고
마치 순하디 순한 어머니가 먹을 것이 없어서
오늘은 내 자식을 식량으로 낼테니 그 다음 날에는 당신들이 자식을 내시오 라고
서로 약속을 해 놓고서는 막상 그 다음날 내어놓지 않으니까 고소를 하게 되는 겁니다
또 처참한 이야기 하나가 남편과 아내가 그것도 순하디 순한 아내가 먹을 것 없어서 자식을 잡아먹자 라고 부부끼리 결정해 놓고서는 막상 남편이 반 이상 조금 더 먹으니까 삐져서 화를 내더라 말이죠 결국 인간은 극한 상황에 아무리 순하디 순한 자 라고 해도 그런 인간이 먼저 있엇던 것이 아니라 죄가 먼저 있었기에 그 올라오는 지옥을 인간은 감당할 수가 없고
결국은 사망의 왕 노릇에 죽기를 무서워 종노릇 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저런 최빈국의 상태가 되지 않도록
메시아 곧 왕을 경제 문제 해결해 주는 왕을 먼저 뽑도록 되어 있다 말이죠
트럼프 뽑는 이유도 미국을 미워하든 말든 인간 살고 보자 라고
그게 바로 적응 아닙니까 그 적응을 누가 누가 잘하나 라는 것이 처세술이요 정치술이듯이
종교는 그 등 위에 올라타는 음녀가 되어야 하고요
이 몸 뚱아리는 인간 존재 보다 죄가 먼저 있었다 라는 것을 드러내도록 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죄 짓고 안 짓는 자유 의지에 달린게 아니라
죄가 인간을 다루는 겁니다
그렇기에 의인은 없다 죄인 뿐이다 라고 하는데
그 죄가 나는 죄인입니다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해 버리면
더 이상 죄를 감출수 없게 되니
계속 감출려는 죄를 지어야 하니까
죽기를 무서워서 종 노릇 뿐만 아니라
심판 징벌이 무서워서도 죄인임을 감추어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바래야 그런 인간들끼리 모여서
적응을 하게 되니
누구 하나 딱 나타나서 아닙니다 이거 죄입니다 라고 해 버리면
그 질서 그 적응력 누가 다시 세울수 있겠습니까
그 누구 하나가 바로 다윗왕으로 오시는 예수님 어린양으로써
모든 사회 시스템을 허물어 뜨릴려고 오신 겁니다
그것이 바로 가장 미약한 젖먹이로써
선악의 체제를 무너뜨리고 심판하시고
죄 보다 먼저 있었던 은혜로써 사랑을 완성 하시는 겁니다
천지창조는 선악으로 하지 않았고 사랑으로 창조 했거든요
선악이 뭡니까 곧 행함의 법칙입니다 선을 행했으니 칭찬 인정해 주고
악을 행했으면 벌을 달라는 겁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선악의 법칙을 도리어 더 극대화 시킨 것이 바로 율법이요
이 율법은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라는 북이스라엘의 멸망의 핑계거리가 되는 겁니다
선악을 아는 인간 곧 원수 마귀를 물리치는데 있어서
정작 가나안 땅을 정복하지 못하는 겁니다
악을 안 물리치고 도리어 율법을 지킴으로써 악을 이스라엘 전체로 퍼트리고 있다 라는 거죠
그들 원수에게서의 실상은 남을 실제로 7번 용서하는 행함실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것을 그림자 취급해 버리면서 동시에 실상이 아닌 말도 안되는 허풍으로
7의 70번의 용서를 말하더라 말이죠
말도 안되죠 베드로에게 30년 반평생에 겨우 7번 용서가 최대치인데
나이들면 더더욱 하기 힘드니 아무리 30년 더 살아서 해 본들 20번 목숨걸고 겨우 그 정도린데
뭐 7에 70번은 한도 최과잉이다 말이죠
실제로 490번 하라는 말이 아니라 그리고 숫자 개념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숫자를 세고 있는 그 인간들의 상대적인 모습을 깨뜨리는 입장에서
그 정도의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울리는 꽹과리 인데
인간은 손가락 세면서 7번 8번 490번 수를 센다 라는 자체가
행함이 우선시로 깔린 결국 자기 존재를 먼저 우선시 한다 라는 겁니다
그런 자기 있다 라는 존재는 행함을 따지는 것이 실상이지
사랑을 먼저 따진다면 그것은 붕 뜨는 추상적 개념이니 피부에 와 닷지 않게 되는 거죠
그카이 실상에 적응할려고 행할려고 하지
실상이 붕뜨는 소리 일 것으면 적응할려고 해도 적응 불가의 행함이 끼어들 수 없는 일이면
더 이상 자기의 일이 아닌데 말라꼬 신경을 쓰겠냐 말이죠
자기 일 사람의 일만 중요한데 말이죠
그 사람의 일도 하나님의 일과 겹치는 부분만 할려고 하지
즉 믿고픈 것만 믿고 보고픈 것만 보고 행하고픈 것만 행하지
못 행하는 것들은 미루면 그만 이다 말이죠
그래놓고 무슨 놈의 선악을 주장할 수가 있겠냐 말이죠
선악을 안다는 자체가 죄 인데
그래서 그 선악 보다 더더더 선악적인 율법이라는 시이소를 가입 시켜서
죄를 더더욱 죄 되게 만들 뿐이지
선은 내 속에 없다를 알려주신다 말이죠
그것이 율법과 선지자로써
선은 내 속에 없음을 알려주는데도 불구하고
내 속에 선이 있다
나는 선을 행한다 거 봐라 행한 증거 있잖아 라고 자부했는데
7에 70이 떡 하니 가로 막고 있으니 그 사랑이 있는 이상
자신은 그 7에 70을 넘어설수가 없기에
가인이 아벨을 더 나은 제사 때문에 안 죽이고는 못 배기는
죄의 소원에 탁 걸려
문지방을 넘어설수가 없는 겁니다
즉 유대인은 율법의 행함을 쫓았기 때문에 의에 이르지 못하고
탁 걸려서 넘어졌다 라는 겁니다
심지어 어린양 얘수님이 임마누엘 구하라 라고 해도
선악의 의식에서는
임마누엘 젖먹이 구했다 가는 하나님을 시험한 결과이기 때문에
더더욱 왕으로써 백성의 대표자 왕이면 왕일수록 더더욱 안 구할려고 하기에
이 젖먹이가 거리끼는 걸림돌로써
모든 왕들을 실족케 다리 걸어 넘어뜨리는 결과로써
건축자들이 버린 돌로 작용하는 겁니다
이 젖먹이는 멋들어진 표적 기적 구원에 안 맞아요
그래서 건축자들이 쓸모없다 라고 버립니다
아무리 끼어맞출려고 해도
그 건물에 안 맞는 용도요 볼품없는 미적인 모습에 아름다움이 없다 말이죠
즉 선악에서 안 맞고요 인간이 지키는 행함의 율법에도 안 맞아요
그래서 버리는 겁니다 괜히 사용했다가는 사람들에게 싫어버린 바 되는 겁니다 그 버린돌처럼 말이죠
사람들이 싫어하지 않게 할려면
즉 적응 할려면
처세술로 정치술로 건축물의 가치를 높이지 않으면
공실률 높은 폐업 상태의 성전이 되기에
아무도 오지 않는 성전을 지을 이유가 없어요
그래서 성전 곧 오늘날 교회를 지을려면
우상숭배라는 사람들이 찾는 점쟁이 찾듯이 하나님을 찾도록 하는 장치를 많이 많이 깔아놓아요
마치 실버레크레이션 교실
행복웃음 전도사 레크레이션으로 어두운 사회에 밝은 웃음꽃 잃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겁니다
아무도 찾지 않는 바람 부는 언덕에 이름 모를 잡초 같은 성전을 지으면
줄줄이 그 옆동네까지 줄폐업이 속출한다 말이죠
조지아주 제지공장 줄폐업으로 실직자들이 생기게 되니
그카이 경제를 살리는 메시아를 뽑지 않으면
젖먹이를 임마누엘 아기를 구했다면은 줄줄이 폐업이 되는 겁니다
도저히 메시아 자격을 줄수 없을 것이고
절대로 믿음이 가질수도 없게 되는 겁니다
아하스 왕의 솔직한 모습이 바로 우리 모습입니다
젖먹이 구했다가는 나라 망하는데요?
젖먹이를 구해서 나라 망하는게 아니라
그 이전에 이미 망할 수 밖에 없었는데
젖먹이 등장으로 인해 모조리 다 핑계거리로 삼을 수가 있는 겁니다
교회가 저 놈 때문에 망하게 되었다 라고 뒤짚어 씌울수가 있는 거죠
바로 그겁니다 우리가 젖먹이를 구해야 하는 이유는
모조리 우리의 죄악을 그 젖먹이에게 다 뒤짚어 씌우는 죄악을 들추어 내고자 함입니다
약한 것이 안 나타나고
강한 것 나타나 보세요 등이 굽어 지라고 아부하기 바쁘지
자신의 꽁꽁 감추어둔 죄악을 들추어낼수가 있겠습니까?
항상 상대적입니다 유대인이 표적을 구한다 라는 말은
악한 자들로써 강한 것을 추구한다 라는 것이죠
그들의 선택된 민족이라는 선민의 의식은 출애굽 당시의
홍해 바다를 건넌 사건 그거 하나 만으로도 충분히 선민이라고 자부하면서
2천년 이상 내려왔고 이제 구약을 지나 신약을 거쳐서 지금 현재 4년 이상을 자부하면서 내려왔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우짜죠 그거 그림자 인데
진짜 실상은 십자가에 달린 인자
모세가 장대 위에 구리 놋뱀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 라는 이 실상이 왔는데
아직도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다윗언약 필요없다 새언약 필요없다 라고
이사야 53장을 찢어 버리면서 까지
겨우 겨우 이제 구약성경 그림자에 적응했는데?
행했는데?
뭐 그린자 라꼬?
실상은 예수님이 바로 유월절 어린양 이라고?
그 임마누엘 아기를 구하라꼬
나 하나님 시험하지 않을래
겨우 겨우 하나님을 버리지 않는 삶을 실천하는데 겨우 적응했는데
버스 갈아타라고
하나님 갈아타라고
나(예수) 로 말이 암지 않고서는 하나님께로 갈자가 없다 라고
모세 보다 더 큰 이가 나타났다 라고?
모조리 다 땅에서 난 자 이지만
하늘에서 난 자가 직접 내려 왔다 라고?
다 믿음 곧 사랑이 없으면 다 추상적은 헛소리일 뿐이다 말이죠
누가 믿었으리요
즉 반드시 안 믿겨지는 일로만 비유로만 오셔야지
홍해 기적 겨우 겨우 믿는데 적응 했는데?
그래서 겨우 겨우 강력한 믿음 강믿 으로 만들어 놨는데
이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표적을 버리고
뭐? 요나의 표적을 믿으라고?
요나 삐지고
요나 배신때리고
니느웨 백성 회개 시키는
많이 탕감 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는
땅끝에서 나온 니느웨 백성이 이스라엘을 심판한다를 믿으라꼬?
예슈 너나 잘 믿으세요
구약과 어떤 접촉점이 없어요
우리는 유대인이 아니라서 구약 전부가 예수님으로 도배가 되었다 라고 하지만
유대인 입장에 서 보세요 어떤 랍비도 율법사도
구약에 예수님이 나온 적이 없다니깐요
임마누엘이면 임마누엘이지 예수 가 아니잖아요
설사 예수 라고 발음도 똑같고 뜻도 똑같고 이름도 백 프로 똑같다 하더라도
유대인에게서는 예수는 메시아가 될 수가 없어요
왜?
네 맞습니다 약하거든요
그것을 그들은 증명했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는 한 이 있더라고
확인을 끝까지 했던 겁니다
신이면 죽을 리가 없고
신이면 인간 보다 강하지
인간 보다 약하디 약한
그 처참한 죽음으로 오실 리가 없다 라고
그것을 살인자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은 끝까지 시험을 다 해 봤던 겁니다
그카이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에게서는 예수님은 강한자가 아닌 약한 육체로 그저 남아 있을 뿐이다는 겁니다
그러니 약속한 성령이 부어진 부활 이후의 사건은
행함을 쫓는 유대인들에게서는 모조리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믿음에 이르는 소리들은
다 헛소리가 되는 겁니다
안 죽어야 하는데 자신들의 손으로 죽인 그 증거가 이미 명백한데
믿음 자들에게만 나타나는 그 성령으로 인한 부활을 무슨 수로 믿을수 있겠냐 말이죠
믿음 하면 유대인들 보다 더 잘 믿는 믿음의 달인이 없는데
유대인만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믿음으로만
즉 행함을 제거한 것으로만 이루어진 믿음으로는
유대인은 접근 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렇다고 지지난 주처럼 로마서에서 그럼 유대인들을 버리셨느뇨??
(롬 11:1, 개역)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어나다 라고 했습니다
버렸다면 사도바울이 모순된 증거가 되는 거죠
그럼 바울은 어떻게 믿었느뇨?
바로 이겁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게 되는
그 증거물 로써 증상물로써 바울은
핍박자 임에도 불구하고 성령을 부음 받게 되니
어라 비로소 눈에 비늘이 벗겨져서 다르게 보이는 겁니다
제가 정결한 짐승 부정한 짐승 나누는 부분을 이야기 할 때
제가 들어도 비늘 이라고 하지 않고 비닐 비닐 봉다리처럼 자꾸 말하던데
사투리인 듯 사투리 아닌 사투리 같은 하도 센발음이라서 비늘로 수정해야 한다 라고 생각했는데 마침 나오네요 비늘~~~~~~
물고기처럼 비늘 벗겨졌다 라는 것이 아니라
그 동안 육적으로만
행함으로만 봤던 그 구약이
사실은 그 동안 단 한번도 보이지 않던 예수님으로 다 보이더라 라는 겁니다
비로서 성령으로 보이는 겁니다
눈에 안약을 발라서 비로소 제대로 보였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실상이 보이니까
그 동안 그림자를 그림자로 안 보고 그림자를 실상으로 보고
자신들의 행함으로 예수님을 나사렛 이단으로 규정을 했으니
그 나사렛 이단 예수를 척결하는 그 당사자가 꼴까닥 넘어졌으니
아까 말한 끝까지 다 실험해봤기에 파고 파고 또 파고 결론을 내렸거든요
모세언약으로는 예수는 아니다 라고 말이죠
네 맞아요 모세언약으로는 안 됩니다 메시아 아닙니다
오로지 다윗언약처럼 바울이 다윗의 자리에서 왕이 아닌
죄인의 자리라는 그 처음자리에서
젖먹이 이름 없는 솔로몬 태어나기 전의 솔로몬 형 이라는
그 젖먹이로 인해서 다윗은 육의 눈에 비늘에 벗겨진 겁니다
아뿔사 율법 네 배나 갚으라 라는 것으로는
의에 생명에 이를 수 없음을
아니 본인이 다윗 본인이 그 가나안 땅 여부스 땅을 정복해 놓고서도
그 이유를 모르니
자기가 한게 아니였고 주님이 창세전에 꺽으신 뼈로 인해
즉 은혜로 인해
번제와 제사가 아닌 인애와 자비로 인해
계획하신 바를 이루신 것에 자신은 그저 도구였을 뿐인데
도구인 지팡이 주제에 마치 자기자신이 행했다는 냥
내 열심히 특심이오니 나만 남았다는 둥
율법 네 배나 갚으라 라는 둥
겨우 율법으로 자신의 범죄를 가리우는데 사용하는
이 완악한 마음을 무슨 수로 가리우냐 말이죠
그 딴 무화과 나뭇잎으로 가릴게 아니라
이 꺽으신 뼈
젖먹이의 부르짖음으로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아버지여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바로 이 버림
대신 매맞지 않으면 나음을 입을자
고침을 받은자 아무도 없는
그 정도로 인간은 자기 행함만 우기고 우기는
내 열심히 특심이다 라는 이 완악함을 꺽지 아니하면
아무도 소돔과 고모라에서 벗어날 자 없다 라는 겁니다
이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겁니다
그 내 열심히 특심이다 라는 것이 결국은 복수심이다는 거죠
예수님을 죽이는 불순물 마음인 겁니다 살인의지
율법은 그래서 올무를 친 겁니다
남이 아닌 내가 예수님을 죽이는 원수였음을 까발리는 겁니다
그 원수에게만 나타내시는 사랑임을
그카이 이것은 원인에 따라는 결과의 조건에 충분조건에 맞는 행함에서는
나올수가 없는 것이 사랑입니다
어떻게 원수를 사랑 할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원수를 용서하는 것은 사랑 말고는 없습니다
그 사랑으로 창조한 것을
마귀는 선악으로 그것도 하나님의 무기인 선악을 가지고 마치 마귀도 선악을 자유롭게 다룰수 있는냥 사용하더라 말이죠 마귀 잡을려고 올무 친 선악을
인간이 괜히 안 겁니다
그래서 율법도 마귀 잡을려고 친 것인데
안 걸려든 인간이 없을 정도로 다 걸리는 겁니다
사랑이 없이 율법 지키면 된다 라는 그 완악한 수건을 도저히 벗을 수 없도록
더더욱 강퍅케 만든 것이죠
마귀 잡을려고 친 율법이라는 올무를 인간이 괜히 지켜서
지키면 지킬수록 예숭님을 죽일 수 밖에 없는 그 완악함의 증거로 인해
그 간극을 좁힐 수가 없는 겁니다
그렇게 강한 것을 표적을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더더욱 바라는 결핍으로 인해
그 결핍을 강요하는 사회로 인해 자식을 정신병으로 몰아넣는
우물에 빠뜨려 죽이는 꼴이였다 말이죠
카프카 라는 소설가가 유명한데 이들 유대인들은 유교 보다 천배 만배나 강한 율법으로 인해
자식들을 자살로 막 몰아가요 유교의 엄격함은 율법에 들이밀 대상이 못 됩니다 쨉도 안 되요 뻔데기 앞에 주름 입니다
저도 목사들 심심하면 저보고 자살하라 라고
지도 못 지키는 율법을 저에게 막 요구를 해요
하여튼 웃끼는 소시오 패쓰들이다 말이죠
그래서 목사를 전도하게 되면 이것을 반대로 느끼는 겁니다
제발 생명의 밧줄을 잡으라 라고 해도 죽을 듯이 싫어해요
왜냐하면 그 목사라는 권력을 그 강함을 손 못 놓겠다 라는 겁니다
끝까지 자기는 목사 라는 겁니다
그거 놓으면 구원 받는데 지옥을 지 발로 가겠다 라고
지도 천국 안가고 남도 천국 못 가는 그저 자기를 인정해 달라고 징징 거리기만 해요
마치 악귀가 십자가 그만 들이대라 라고 괴로워 하듯이 말이죠 그런 영화 장면 요즘은 잘 몰라 과거에 많았다 말이죠
젖먹이는 살아 있는 자로 취급 못 받습니다
죽은 자로 취급 받아야 즉 무시꺼리입니다 무능해요
무능한 젖먹이가 어떻게 강합니까
아이가 자기의 약함을 알기에
외부에서 살려는 젖을 외부에서 물려 주지 않으면 나 죽어요 라고
시끄럽게 울기만 할 뿐이지
어떻게 그런 무시꺼리 죽은자 취급받고 무능한 젖먹이를
어떻게 최전방의 전쟁터에 내 보내느냐 말이죠
말이 맞잖아요 그래서 아하스 왕이 아무리 이사야 선지자가 우겨도
나는 그런 짓 안하겠다 라고 하나님 시험 하지 않겠다 라고 하는 겁니다
결국 하나님 걱정 하는게 아니라
자기가 그 가짜 하나님을 믿고 있으니 자기가 하나님인 거죠
나를 시험하지 말라 라는 겁니다
나는 강한 자의 하나님이지
산 자의 하나님이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다 라는 겁니다
바로 그게 죽은 자의 하나님이다는 증거죠
마치 이 장면이 오버랩되면서 겹쳐지면서
바리새인 랍비 니고데모처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라느 것을
다시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야 한다 라고 해석을 하니
믿음 보다 행함으로 어떻게 그것을 행하는게 가능한가 라고만 보는 겁니다
우리가 다 이렇습니다
행함으로 밖에 안 보이니까 실상 보다 그림자로만 보다 보니
자꾸 행할려고 해요 못 행하는 것 주니가 내 열심히 특심이라고 땐깡 부리고
믿음은 받대로 내 쪽에서 행할수 있는 것 아니면 이미 행했던 것
감사하게도 모조리 지워주고 삭제캐 해 주십니다
아 그러면 공든 탑이 무너지는데 그 적응령 처세술 정치술 다 무너지는데
장로가 되어 다시 초신자로 다시 시작하라고?
얼마니 기쁩니까 내가 하는 것 없으니 그때 처음사랑을 다시 느끼니
첫사랑에 얼마나 설레겠습니까? 상대방과의 만남 보다
자기가 자신을 높은 가치에 둔 것을 다시 시작할려고 하니 엄두가 안 나겠지요
맞아요 엄두 내지 마세요 그게 믿음이고 엄두 낼려고 한다면 그거 행함입니다 복수심
눈에 안 약 발라서 비늘 벗기는게 아니라 더더우 비늘을 덧 씌워서
완악한 수건을 겹겹이 가려서 무시 안 받는 길로만 가겠다 라는 겁니다
우짭니까 율법을 죽이는 셈입니다
율법을 지키는게 율법을 죽이더라 말이죠
선지자를 죽이고 거짓선지자만 쫓더라
대충 대충 평강이요 평강이요 외치는 거짓인도자 소경이 소경의 길로 인도하는 자 말이죠
신앙도 믿음도 교회도 성전중심 사회도
행함으로 적응 실컷 해놨는데
열심히 특심인데
율법 네 배나 그 놈에게 벌헤라 인데
뭐?
젖먹이를 구하라 굽쇼?
하나님 점쟁이 찾듯이 안 찾겠습니다 시험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하면서
시험하고 점쟁이 찾듯이 하더라 말이죠
이 간극을 인간 쪽에서 좁힐 방법이 없어요
그래서 땅 끝 이라는 용광로 속에 집어넣지 않으면
사도바울처럼 예수쟁이 죽이더 다니는 것을 멈출수가 없고
나사렛 이단 예수로 몰아가는 것을 멈출 수가 없아요
율법의 달인 인데 가말리엘 문하생으로써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인데
율법달인 중에 율법달인이다 말이죠
그것을 한 순간에 똥떵어리 배설물로 만드는 것은
장대 높이 달린 인자
이 요나의 표적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겁니다
이 젖먹이 어린양 만이 실상을 보여주심으로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신다 말이죠
그 미약한 것이 인간의 모든 행동의 근원인 복수심 곧 선악을 들추어낼수 있으니까 말이죠
솔로몬의 재판은 참어머니를 죽음이라는 용광로 속으로 집어넣습니다
아이도 두 동강이 나야하는 죽음 속에 놓여지게 되고
그 어미도 그 아이의 죽음 속에 놓여져서 아이를 구출하는 마음이 죽음 밖에서가 아닌
그 죽음 속에 뛰어드는 마음으로 놓게 됩니다
왜? 어머니 자기 쪽에서 아이를 살릴 방법이 없거든요
그저 함께 죽는 것 외에는 없어요
이것이 바로 진짜 어미의 마음
곧 잃어버림을 아는 겁니다
누가 자기자식 버림받는데 박수치고 왕의 권력에 옳았습니다 아멘 아멘 할 자 할 부모 어디있습니까?
그 무능한 젖먹이처럼 부모도 그 아기의 죽음 앞에서 무너지고 죽을 수 밖에 없는 무능함 뿐입니다
사다리 걷어찼다 라고 좋아라 죽는 그런 부모 그런 배 아파 낳은 자식의 부모 없잖아요
바로 그렇게 가장 미약한 처음자리에 놓을때에 비로소
원수가 드러납니다
그냥 단독적으로 나는 약함을 추구할래 이것은 다 연기요 처세술이요 정치인 그게 바로 적응력이지요
상대적인 약함입니다 즉 상대방은 반드시 강한 쪽으로 가는 겁니다
약한 자가 상대방을 강한 것을 추구하도록 맹글어 낼수가 없어요
결국 주님의 손에 달린 문제로써 당하기만 할 뿐인 입장입니다
(이런 장면이 신약에 나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다 넘어지니까
아낙네들이 따라가다가 그 모습을 보고 웁니다
여성들의 심리가 공감능력이 뛰어나다 보니 그렇게 울면서 따르다 멈췄는데
예숭님은 못때빠지게 싹 뒤돌아 서서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와 너 자식을 위해 울어라 라고 하십니다
즉 솔로만 재판의 진짜 엄마의 아이 두 동강 나는 입장이 된다 라는 겁니다
오히려 구약의 솔로만 재판의 지혜를 그림자 이고
이게 실상이다 라는 겁니다
나는 지금 너희들 살릴려고
너와 너 자식이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을 막을려고 가는
낵가 진짜 너희 엄마다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어야 한다
누가 물에 빠졋고 누가 죄 속에 불타고 있느냐?
내가 아니라 너희다
내가 그 죄 값을 치르지 아니하면 너거들 불 속에서 건짐받을 수 없다 라는 겁니다
물론 아무도 귀에 안 들어옵니다 약속하신 성령이 와야 비로소 그 말씀이 그런 의미 였다고 보게 나는 그래도 약한 길 가겠다 라고 하면
또 니고데모처럼 어머니 뱃속에서 들어갔다 나와야 하는데 어똑하지? 어떡하지가 아닌 오똑하지 라고 손가락 빨아야 한다 말이죠 어차피 약속한 성령 와야 알 것 같으면
못 알아 먹는 말 말라꼬 하시노 가 아니라
그 만큼 우리는 눈에 비늘이 끼여서 적응할려고 처세술로 남의 눈을 의식해서
정치술을 눈물로 정치술을 할 뿐인 그때 그때 아니 고때 고때 상황만 넘기기만 하면 그만일 뿐이다 라는 식으로 눈속임 눈가림으로만 우리는 습관화 된 지옥의 몸이다는 거죠
이런 지적을 받는다 라는 자체가 용서 아닙니까 행하라가 아니라 양탈늑대 사모처럼 거룩을 지키라가 아니라 거룩을 지킬수 없는 지옥의 몸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울게 만드시는
그 지적이 오히려 감사하지 지키면 또 안 지킨자 옆에 붙이자 마자 교만해져서 또 쭐꾸덕 미끄러지는 우리는 어쩔수 없다 말이죠 안지키면 가만히 있는데 지키기만 하면 입이 건지러워서 몸이 건지러워서 정죄하기 바쁘다 말이죠 그런 완악함의 심각성을 우리는 그 정도로 모르는 겁니다 왜 쓸데 없니 나를 위해 울지 말라 라고 너와 너 자식을 위해 울어라 라고
주님은 심각한데 우리는 심각하지도 않는 것만 골라 골라 찾아서 울고나 자빠져 적응할려고 하니
그 정도로 실상이 와도 그림자만 쫓는 소경의 눈이다 라는 거죠
마침 다음주 내용이
22-065 완악한 선민 이스라엘과 은혜로 용서받은 죄인(남은자, 불의한 청지기) (롬 11, 6-10)
22-065 완악한 기적을 구한 이스라엘과 은혜받은 용서를 구한 택함을 받은자 (롬 11, 6-10)
2025. 10. 19. ( 10 월 3 일, 녹음 )
이 완악함을 남은자랑 대조해서 항상 그렇거든요
괜히 사랑이 아닙니다
미움을 가지고 와서 대조입니다
아무리 봐도 미움 받아 마땅한데 왠 사랑이냐 말이죠
그러니 사랑 받을 조건을 내 쪽에거 갖출수가 없어요
그렇게 실컷 갖추었던 맏아들을 미움으로 가득차고 탕자를 향한 아머지의 사랑을 거부하는
지 스스로가 미움의 길로 가고
그 불의한 자는 하루 아침에 돌이키는 이 외부의 간섭
이 외부의 간섭이 바로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경건의 능력
오히려 경건의 모양만 대따 완벽하게 갖춘 맏아들은 자빠져 실족케 되는 겁니다 )
그래야 주님 자신의 솜씨 구원자의 솜씨로
지혜자는 원수까지 들추어내시는 암덩어리를 도려내시는 그 의술을 자랑하시지
환자 지가 지 암덩어리를 끄집어 낼수가 없어요
그저 외부에서 건져주시는 의사의 짜르는 칼에서만 건짐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풀려며는 죄인의 자리 환자의 자리 죽음의 자리에 놓을때에
원수들은 못 참고 자신의 숨겨진 마음을 실소하듯이 내 뱉도록 합니다
저도 가지지 말고 이도 가지지 말라 라는 왕의 판결에 아멘 아멘 한다 라고 그만 실수 합니다
너무 기쁘니까 그 함정을 파 놓은 것에 빠지니까
자신도 자신이 판 함점에 결국은 자기가 빠지게 되니 말이죠
결국 약한 아기 젖먹이는 힘을 먹고 사는게 아닌 창조주의 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짜 엄마는 평상시에도 힘으로 돈으로 아이를 살릴수 있다 라는 징징 거림 속에 살았던 것이고 그갓이 가짜 신 우상과도 연관된 겁니다
그러나 참된 어미는 떡으로 사는게 아니라 사랑으로 살기에
약하디 약한 젖먹이는 선악으로 사는게 아니라 오로지 사랑으로 창조되었고 태어난 것처럼
사랑을 먹고 살기에
이 솔로몬 재판은 왕의 권력을 보여주는 번제와 제사 누가 크냐 라는 것이 아니라
학교교육은 그것 외에는 할 줄 아는게 없어요
남을 7번 용서 까지만 가르칩니다 더 이상 할 수 없습니다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르치는 선생도 배우는 학생도 다 능력을 거부합니다
오로지 모양만 껍데기만 대따 완벽하게 가르치고 완벽하게 배워서 갖출려고 할 뿐이다 말이죠
그것이 바로 사다리 걷어차는 완악한 유대인 나쁜 유대인 이다 말이죠
지는 좋은 꼴 먹었다 라는 선민 유대인이고 나머지 남들은 못 먹도로 발로 밟아 버려 못 먹도록 만들어 놓고도 저들은 부정한 음식 먹는다 라고 정죄하는
다윗이 바로 그것을 알아버렸어요
내 속에 정직한 영이 있기는커녕
사다리 걷어찰려고 율법 네 배나 갚으라 라고 했다 라는 사식을 말이죠
그래서 새 마음을 달라고 비로소 죄인의 자리에 놓여지는 처음자리에서 첫사랑을 보게 되지
왕이라는 권력의 강한 자리에서는 나올수 없는 새마음이라는 것을 안 겁니다
학교에서도 가르칠 수 없는 새 마음은 유대교도 아니요 기독교도 아닌 기독교도 돈에 미쳤을 뿐이기에 주변인들 그저 돈 벌기 위한 수단으로 도구로 삼을 뿐입니다
목사는 교인을 이용해서 돈 벌기 바빠요 교인도 마찬가지 이기에
서로가 문제시 삼지 않을 뿐입니다
지금 보세요 빌라도 트럼프 손을 빌려서 미국 기독교와 한국 기독교가 예수님을 또 죽이는 짓만 골라서 하고 있잖아요 무당들이 따로 없어요 언제까지 이 의문의 반복을 멈출 수가 있을 까요? 마이다스 왕처럼 자기 딸들 공주들 백성들 다 죽을때까지 절대로 못 멈추는 거죠
이 새 마음은 이 새노래는 가르치는 자도 없고
배우는 자도 없는 미련한 복음 외에는 가르쳐주지 않습니다왕들? 대통령? 등쳐먹기 바쁜 무당목사들과 똑같습니다 등에 빨대 꼿은
흡혈귀요 강도의 소굴일 뿐입니다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수 없도록 하신 비유 비밀 수수께끼이니까
행함으로는 안되는 이 단절로 인해 화로다 화로다 라는 이 절망감
이 잃어버린 첫사랑을 다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는 겁니다
그것이 유대교 기독교에게는 거리끼는 걸림돌이지 멋들어진 기적, 표적이 되지 못하니까
이 미련한 복음만이 젖먹이를 살리는 유일한 길입니다
생명의 길입니다
그 외에 다른 길은 그저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죽음의 길로 정해졌기에 멸망 뿐입니다
아무리 자기 자식을 구원하고자
신앙 과오 선생으로 아이에게 노아 욥 다니엘을 선생으로 완벽하게 붙여도
내 너 자식 반드시 지옥 보내고야 말겠다 라고 주님 목숨 걸고 맹세 하십니다
이런 대목 성경에 없다 라고 들어본적 없다 라고 우깁니다
아마 학생회에서 이런 이야기 했다 가는 바로 짤립니다
아니 목사가 예배 시간에 설교를 해도 바로 짤립니다
교회가 가짜다 싶으면 빨리 벗어나는 방법은 이런 설교를 하면 됩니다
(겔 14:14, 개역)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 14:20, 개역)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거기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오니 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겔 14:14, 새번역) 비록 그 나라 가운데 노아와 ㉠다니엘과 욥, 이 세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 세 사람은 자신의 의로 말미암아 자신의 목숨만 겨우 건질 것이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 ㉠히, '다넬'. 히브리어의 자음 표기가 예언자 다니엘과는 다르므로, 서로 다른 인물일 수도 있음
(겔 14:20, 새번역) 비록 노아와 ㉡다니엘과 욥이 그 가운데 있을지라도,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건대, 그들은 아들이나 딸도 건지지 못할 것이다. 그들마저도 자신의 의로 말미암아 그들의 목숨만 겨우 건질 것이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 ㉡히, '다넬'. 히브리어의 자음 표기가 예언자 다니엘과는 다르므로, 서로 다른 인물일 수도 있음
아 또 이 구절과 연관되는 내용이 신약 실상에 있지요
거지 나사로와 지옥간 부자
지옥간 부자의 말이 기가 막힙니다
비록 자신은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는 큰 구덩이를 건널수 없는 단절된 몸이 되었지만
내 가족 내 동생 형 친족들 제발 지옥 가지 말라고 선지자를 보내 달라고 하는 장면 말이죠
그 정도로 지옥간 부자가 아직도 배불러 터진 소리를 하고 있는 겁니다
아브라함 품에 있는 거지 나사로를 여전히 부려먹을려고 물 한 방울 달라고 나사로를 시키라고 하듯이
여전히 선지자를 보내면 될 줄로 알고 있어요
이 부분에서 천주교의 연옥이 얼마나 엉터리인줄 마치 공든탑을 세우면 되는 줄 알아요
아니 거지 나사로가 바로 그 선지자입니다
다 알마먹을 수 있는 선지자 이면 그거 거짓선지자죠
요즘 목사 못 알아보는 사람 어디 있습니까 목사 지가 나 백수 아니다 라고 나발을 불며 떠들어대는데 듣기 싫어도 알기 싫어도 다 알게 되는 판국이니 그런 놈들은 거짓선지자 인 거죠
거지 나사로 보세요 개가 상처난 부위를 햩을 정도로 개와 동변상련이다는 무시받는 자입니다
아니 요즘
왜 이런 소리를 하는고 하니
우리가 육체로 지금 볼수 있는 상황이 과거가 아닌 지금 현재만을 볼뿐 있잖아요 그래서
요즘도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우리가 보고 있으니까 하는 소리입니다
아니 요즘 보세요
개가 핥을 정도로 무시 받는 목사 보셨나요?
(눅 16:19, 개역)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눅 16:20, 개역)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눅 16:21, 개역)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눅 16:22, 개역)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눅 16:23, 개역)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눅 16:24, 개역)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눅 16:25, 개역)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눅 16:26, 개역)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눅 16:27, 개역) 가로되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눅 16:28, 개역)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눅 16:29, 개역)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눅 16:30, 개역)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눅 16:31, 개역)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과거에 각설이예수가 유행했듯이 깡통목사 거지목사로 유명한 목사가 있었는데
지금은 천하의 강도의 소굴을 만들어서 미국에 있는 팬 박사들로 인해서 생명연장의 과학으로 주사 맞는 것을 자랑하던데
과거에 그렇게 약한 척척척 하더니
바로 그게 적응 아닙니까 처세술이요 정치술
난 정치 안할래 카지도 마세요
저는 몰라서 안했던 거지 오히려 정치 배우고 싶어서 그 동안 안 보던 뉴스
안 외워지는 역사 사건들 보게 되니
이것은 어떤 인간도 예외가 될 수 없는 어쩔수 없다 박찬욱판 영화 기생충
어쩔수 없는 몸이다 라는 겁니다
지옥의 몸이 지옥의 몸으로 드러나야지 자꾸 안 그런척 약한 척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라고 거룩한 척 하면 할수록
정죄의 완악함만 더할 뿐인 이 지옥의 몸을
누가 그 수치를 가려주겠느냐 말이죠
불쌍히 여가 달라고 해야 할 판국에
또 또 또 완악함으로 행함으로 의에 이를려고 하니
유대인이 예수님을 죽인 그 일을 반복하더라 말이죠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언제까지 내가 보낸 선지자들을 죽일꺼냐
내가 암탉이 자기 병아리를 품에 모으듯이 품고자 한 것을
언제까지 방해 할려고 하니
교회야 교회야 언제까지 살인을 저지를꺼니?????
이 의문의 반복을 그 끝도 없는 결핍 채우기 라는 번제와 제사를
단번에 어린양의 피 흘리심으로 다 이루셨기에
더 이상 이 의문 것으로 왈가왈부 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답도 없는 선악에서 찾이 마시고
원인 없는 결과로써의 사람의 강함보다 강한 하나님의 약하심 덕분에
그 사랑에 모든 허물 다 덮어진 그 완료
미래완료를 부족함이 없이 누리기 바쁨으로 인해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 빚도지지 않는
주님의 용서만을 바라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시면 됩니다
나를 쳐다 보면 볼수록 실망뿐이요 절말이요 낙심 뿐이지만
주님이 다 이루신 값없이 베푸신 자기 목숨 아끼지 않고 내어주신
그 사랑이 아니였다면
이 병든 다리에 새 힘이 없습니다
비록 못 일어나는 날이 와도
그 동안 주님이 매일 매일 일으켜줬던 그 수 없었던 나날들을 기억하면서
감사함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면 됩니다
우리는 낙심할 자격 조차 없는
주님이 눈물 씻겨 주심 앞에
주님이 수치를 가려주시고자 자신의 피 흘리신 몸으로 양가죽으로 모든 허물을 다 덮어주심 앞에
주님이 잿더미처럼 다 타버린 이 지옥의 몸에 뛰어드셔서 화관으로 신부를 삼고자
광야에서 부르시는 그 음성 앞에
네 만 있고 예 저 부르셨습니까 저 갑니다 라고 예 뿐이지
아니오 안 갈랍니다 함이 없음을 우리를 누릴 수 밖에 없는
부르심이라는 것을
매일 매일 기억
마음 속에 고이 고이 간직
아름 다운 것을 마음 속에 잊지 않도록
마음판에 새겨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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