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98 그들 위에 한 목자를 세워 나 여호와는 하나님이 되고 다윗은 그들 중에 왕이 되리라 (겔 34,22-24)
2025. 8. 24.
힌 목자의 자작극 (십자가의 숙제가 펼치는 자작극)
(겔 33:33, 개역) 그 말이 응하리니 응할 때에는 그들이 한 선지자가 자기 가운데 있었던 줄을 알리라
살진 양과 마른 양 사이에 심판하리라 (사다리 걷어차기) (겔 34,17-22)
에스겔 2019 2025. 8. 2. 20:19
21-097 살진 양과 파리한(야윈) 양 사이에 심판하리라 (사다리 걷어차기) (겔 34,17-22)
〈에스겔 34,22-24, 개역한글, 구약성경 1205쪽, 찬송가 431장 새 549 내 주여 뜻대로, 가스펠; 금과 은 나 없어도〉
〈찬송가 429장 내 갈 길 멀고 밤은 깊은데, 새찬송가 379장〉
1. 내 갈길 멀고 밤은 깊은데 빛되신 주, 저 본향 집을 향해 가는 길 비추소서
내 가는 길 다 알지못하나 한걸음씩 늘 인도하소서
2. 이전에 방탕하게 지낼 때 교만하여, 맘대로 고집하던 이 죄인 사하소서
내 지은 죄 다 기억마시고 주 뜻대로 늘 주장하소서
3. 이전에 나를 인도하신 주 장래에도, 내 앞에 험산 준령 당할 때 도우소서
밤 지나고 저 밝은 아침에 기쁨으로 내 주를 만나리 아멘
〈가스펠; 금과 은 나 없어도 내게 있는 것 네게 주니, 어린이 찬송가 238장〉
금과 은 나 없어도 내게 있는 것 네게 주니
곧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그는 걸었네 뛰었네 찬양했네
그는 걸었네 뛰었네 찬양했네
곧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에스겔 34,22-24, 개역한글, 구약성경 1205쪽〉
(겔 34:22, 개역) 그러므로 내가 내 양떼를 구원하여 그들로 다시는 노략거리가 되지 않게 하고 양과 양 사이에 심판하리라
(겔 34:23, 개역) 내가 한 목자를 그들의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
(겔 34:24, 개역) 나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 그들 중에 왕이 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 34:22, 새번역) 그러므로 내가 내 양 떼를 구해 주어서, 그것들이 다시는 희생을 당하지 않도록 하겠다. 그리고 내가 양과 양 사이에서 심판하겠다.
(겔 34:23, 새번역) 내가 그들 위에 목자를 세워 그들을 먹이도록 하겠다. 그 목자는 내 종 다윗이다. 그가 친히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 것이다.
(겔 34:24, 새번역) 그 때에는 나 주가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 그들의 왕이 될 것이다. 나 주가 말하였다.
죽은 다윗이 갑자기 소환이 됩니다 그리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다윗은 너희의 왕이 될 것이다 라고 하십니다
즉 여전히 너희의 하나님이 되지 못하고 있었다 라는 겁니다 누구에게? 이스라엘에게 말이죠
이것은 지금 현재 2025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현재 이스라엘은 다윗을 추종하면서도 껍데기만 알고 있지
그 속의 내용인 비유 비밀에는 전혀 접근조차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니라 가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호칭인 이스라엘도 아닌 가짜 이스라엘이다는 겁니다
그럼 누가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 곧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 라는 그 너희가 누구에게 해당 되고
그들의 왕은 왜 다윗이 되어야 하는가 라는 그 다윗은 어떤 자가 믿느냐?
누가 믿었으리요 우리 로마서 지금 하고 있는 부분처럼
누가 과연 믿는 자로써 다윗 왕의 백성이 되느냐 라는 겁니다
물론 정답은 새이스라엘입니다 새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옛 이스라엘은 아니다 라는 거지요
마치 북이스라엘이 아무리 용어를 이스라엘 이라는 용어를 따와서 정통성을 가졌다 라고 우겨도
어차피 껍데기 이지 이들 북이스라엘은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지 다윗언약 필요 없다 라고 대놓고서 주장했고
그들이 추구한다는 모세언약을 오히려 껍데기로만 보고 있어서
율법이라는 몽학선생이 가리키는 그 화살표 방향의 다윗이라는 왕은 그들이 거부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사울왕의 확장인 셈이지요 사울이 꿈꾸던 나라를 추구한 겁ㄴ다
오늘날 교회들이 하는 짓과 똑같습니다 정통 정통 우려먹고 율법지키기라는 것을 우려먹을 뿐이지 사실상 그들은 야윈 양을 병든 것을 보고도 고치기는커녕 잡아먹기 바쁜 모습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결국 모세언약이라는 법 법 법을 그들이 강조하는 이유는 네 맞습니다 사다리 걷어차기로써
그들을 등쳐먹지 못하면 자기들의 존재감을 정체성을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네 맞아요 그러니까 바리새인 그 당시 최고의 윤리실천가와 마찬가지인 가장 존경받는 바리새인을 독사의 자식이라고
도적질 하지 말라 가르치는 선생이 배우는 학생의 목숨을 빼앗는 도둑놈이라고 하시는 겁니다
이 간극을 그들은 또 어떤 누구든 좁힐 방법이 없습니다
그럼 다윗을 왕으로 삼은 남유다는 그럼 깨끗한가?
오히려 더 했으면 더 했지 그들의 죄악은 북이스라엘 저리가라 할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딱 한 사람 다윗이 있다는 그 이유 만으로
죄사함이라는 새언약의 혜택을 누리게 되고
그 혜택을 말하기 위해서 자신의 범죄의 깊이를 알게 되는 정직한 영이 없어서 우는 자로 삼아버리십니다
그럼 왜 여기서 왜 다윗이냐 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 다윗 때문에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겠다 그 한 목자가 아니면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안되겠다 라는 식이 되느냐 라는 겁니다
왜 다윗이냐
이것은
성전의 완성과 같은 의미입니다
사울왕은 마치 46년 동안 지어도 못 짓는 것과 같습니다
기초를 딱고도 완공을 못하는 식입니다
(눅 14:28, 개역)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
(눅 14:29, 개역)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눅 14:30, 개역) 가로되 이 사람이 역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그래 놓고 모세언약이라는 율법을 붙잡고 행함으로 의에 이를려고 하니
도리어 범죄케 되는 사다리걷어차는 그 기술 그 트릭만 펼칠 뿐입니다
성전완성은 반드시 사망권세를 다 제거한 전쟁의 마침 종식을 이룬 자만이
성전을 완성하게 되는 것이고 그 자 만이 왕이고 이스라엘 왕 말이죠
그가 세운 성전은 거룩이라는 하나님의 의를 이룬 증표로써 성전을 세우는 자입니다
거룩완성이요 정의 공의 완성인 거지요
인간의 국가 건설 바벨탑 건설과는 질적으로 차이나는 대조성을 보여줍니다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 또한 대조를 보여주죠 강도의 소굴이니까 말이죠
그래서 노아언약에서 적으로 원수로 규정한 그 가나안 족속을 사울왕은 끝까지 몰아내지 못하고 방치하면서 사람들의 눈만을 의식해서 이스라엘을 이스라엘 답게 만드는 이스라엘 왕 답게 되기에 집착합니다 그러나 완공 못하는 식처럼 가나안 마지막 족속 여부스족속을 몰아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가나안 족속을 멸망시킴으로써 가나안 정탐꾼에게 주어진 약속이(곧 모세죠) 약 400년 만에 비로소 이루어집니다
노아가 원수로 규정한 가나안을 (노아는 기원전 3000년 쯤에 태어났고 600살에 홍수심판으로 인해 방주가 이미 떳고 함과 가나안을 저주했으니 BC 2300년 에 원수를 규정함
은혜 받은 노아로 인해 홍수심판 속에서 구원 받았지만 노아를 무시 곧 무지개 언약으로 오신 하나님을 무시 그래서 원수가 됨, 은혜 곧 마음에 합한 다윗을 무시, 이것은 다윗 본인도 다윗언약을 무시한 과정을 거차개 하심 참선지자들이 그래서 이 과정을 다 거침 그렇게 탈탈탈 털리는 것임, 율법 대로 4배나 갚으라 가 탈탈 빵구멍 나버림, 땅 끝에서만 다시 되돌아 오게 하심 내 낭군이 당신이시군요 라고 뒤에서 껴 앉는 것은 땅끝에서 용광로 속에서 되돌아 왔다 임)
(렘 31:22, 개역) 패역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
(행 13:22, 개역)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행 13:22, 새번역)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물리치시고서, 다윗을 그들의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찾아냈으니,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다. 그가 내 뜻을 다 행할 것이다' 하셨습니다. / ㉣삼상 13:14; 시 89:20그리고 행함이 아닌 믿음 즉 예수님의 언약으로 출발하는 믿음의 군사가 아브라함이니까
다윗이 이 약속을 성취하는 여부스 족속 쫓아내고 예루살렘을 정복해서 수도로 옮기는
1300년 만에 이루어집니다 (다윗은 무조건 1000년 으로 기억하고 모세는 1300년 엘리야는 900년 이렇게 머리 나쁜 저도 외우면 다른 것은 간접적으로 접급하면 됩니다)
그러니 가나안 족속 물리친게 2300년 빼기 1000년 이면 1300년 만에 정탐꾼 기준으로는 400년 만에 이루어진 것이지요 그 원수를 물리친 왕이 다윗이기에
다윗이 바로 성전을 지을자가 되고 이스라엘 왕은 사울왕 가짜왕과 대조해서 진찌로써
가나안 족 물리침을 통해서 그들의 왕이 된다 다윗이 말이지요
이 성전만 세워지면 그 어떤 허물도 다 덮어버린다
그 당사자가 바로 다윗이 되는 거지요
한 사람 잘하면 다 잘하게 되는 식이다는 겁니다
그러나 모세 언약은 그 반대로 모조리 다 잘해도 딱 한 사람 잘못하면 다 잘못한 것으로 쳐 버리니까 말이죠
자 그래서 다윗 왕이 와야 비로소 여호와가 하나님인지를 알게 되고 그때서야 하나님의 아들 곧 다윗이 왕이 되고 그의 백성이 된다 라는 겁니다
문제는 다윗이 지금 에스겔 당시에 이미 죽은 상태인데 이런 예언을 한다?
더 심각한 것은 엎친데 덮친격으로 이미 나라가 공중 분해 해페가 되어버렸다 라는 겁니다
나라 망하기 전에 하시던지 이미 나라 다 망하고 난 뒤에 이런 뒷북을 치시면 어떻하냐 라는 겁니다
이 포로 속에서 과연 기쁨의 복음을 전하는 한 목자
이미 양식은 다 빼앗긴 상태에서 과연 한 목자가 생명의 양식을 먹일수 있느냐 라는 겁니다
안식일날만 골라서 우물에 빠진 양을 아들을 구하는 생명구하기를 하는 자가 되느냐
그렇다고 나라 망하기 전에 이스라엘 목자들 곧 선생들 지도자들 각종 목자들이라고 하는 자들은 오히려 등쳐먹기 바빳지 사다리 걷어차기 바빳지
나라 안 빼앗겨 봐라 말이죠 그거 멈추겠냐 말이죠
어치피 가난한 자도 그런 살진양의 횡포에 같이 동조하지 않으면 먹고 살길이 있겠냐 말이죠
그러니 오히려 악한 세대 곧 살진양 세대가 바라는 기적이 아닌
모조리 다 빼앗긴 야윈 앵 상태에서 라야 요나의 표적만 주실 것 아니겠냐 말이죠
나라 안 빼앗기나 나라 빼앗기나 파리한 양 입장에서는 도진개진이다는 겁니다
어차피 섬기는 왕 곧 목자가 없기는 맹 마찬가지 이니까 말이죠
보세여 쌍 무지개가 뜨다 보니 왕이 둘이나 되어서 살진 멧돼지가 백성들 다 잡아먹잖아요
그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인 목자들은 첩경을 평평하게 깍는게 아니라
오히려 시온에 산당을 절간을 무당집을 지어서 오히려 신비롭게 높게 크게 길게 넓게 더 높이 높이 산당을 세우잖아요 깍는게 아니라 허무는게 아니라 강도의 소굴을 더 크게 확장한다 말이죠 거니 보세요 자식도 없는데 그 많은 재산 어디에 다 쓸려고 무작정 다 쓸어담는 것일까요 만족함이 없어요 그냥 복수심이기에 등쳐먹기 위해 태어난 겁니다
사다리 걷어차기 위해 태어난 겁니다
자기도 천국 안 가고 남들도 천국 못가게 하기 위해서 태어났기 때문에
이유 없이 돈을 끌어모아야 하는 겁니다 권력을 맛 본 뇌는 이미 달라진 뇌이니까 말이죠
이유 없어요 무조건 하나님 백성 못 되게 할려고 깽판 짓고자 태어난 함과 가나안과 같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그 산을 그 첩경을 그 울통불퉁의 빈부의 차이를 깍지 아니하면
평지로 평화의 터로 만들지 않으면 평화란 없는거지요
희년은 없는 겁니다 빚탕감 없으면 희년 기쁜 은혜의 날은 없는 거지요
네 맞습니다 이 은혜를 무조건 그들은 없애버리기 위해서 태어난 겁니다
그렇다고 지금의 이스라엘처럼 늦게와서 뒷북치듯이 몰아낸다고 되는게 아니라
자기 눈 찌르기 인 누워서 침뱉기 이지요
자기들도 혈통적인 이스라엘이라고 우겨도 새 이스라엘이 아니긴 맹 마찬가지인 가짜인데
가짜 주제에 더 가짜인 팔레스타인을 쫓아낸다고 해서 이제와서 뒷북친다고 해서 될 문제가 아닌
행함에서는 이미 끝나버린 믿음으로 다 되었는데 뒷북치듯이 행함으로 실생한다고 해 본들
행함의 책에서는 이미 땡 탈락자로 등록이 이미 된 겁니다
생명의 책에 기록 안되기는 마찬가지인 믿음이 없는데 행함을 백날 채워 본들 소용 없지요
믿음의 일인자들이 포기 할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믿음의 책은 오로지
다윗왕 되신 예수님이 와야 한 목자가 와야 생명의 떡을 먹여주셔야 그 생명구하기로 인해서 살지
이런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고 자기 의를 쌓는 자는 백날 해도 역시나 생명구하기가 아닌 생명 빼앗는 살진양과 같은 사다리 걷어차는자들입니다
제가 교회라는 곳을 예수님을 만나고 난 뒤 한 석 달 뒤 쯤에 가게 되었는데
다들 강도들 뿐이더라 말이죠 강도 양성소
그들의 증상물이 바로 쌍무지개 도리도리와 거니 아닙니까
무당 양성소인 거지요
첩경을 허물고 매꾸는게 아니라 더 높이 세우고 있으니 그들의 성전을 헐라 하시는
이 한 목자의 섬기심이 아니였다면 우리는 벌써 강도의 소굴 소돔과 고모라 였다 말이죠
웃껴요 동성애 반대운동 하는 교회를 보면요 그들이 바로 소돔과 고모라인데
누가 누구를 챔뱉고 있는지 웃낀다 말이죠 미국 침례교 복음주의자 따라하면 되는 줄 알아요
그들은 사탄의 회 인데 말이죠
인간의 근원적인 악을 제거하는 참성전의 기능을 그들은 껍데기로만 행해왔고
사람의 손으로 이룰려고 하니 아직도 미완공인 겁니다
그러니 지 멋대로 해석한 것이 드러난 거지요
예수님이 와서 해결한 것을 못 보이니까 아직도 여전히 미완공 상태로 그 결핍 그 공백을 채울려고하는 강박증에 사로잡혀 있고 이란 등등 주변국인 이슬람교가 제 3의 성전 짖는 꼴을 못 보기에 만약 세운다 그럼 세계전쟁인 벌어지는 거지요
남의 눈을 의식하는 이스라엘이 지을 리가 없지요 자살행위이니까 그저 남 눈만 의식하는 제스쳐만 고때 고때 하고 치울뿐입니다 누가 성경대로 이루어지길 바랍니까 미국 눈치 본다고 예루살렘 수도로 바꾸어도 트럼프라서 다들 덤비는 척하지 그게 무슨 성경대로 이루는 것과 무슨 상관입니까 미국 복음주의자들의 탐욕을 그저 채워줄려는 점쟁이 찾듯이 할 뿐이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는게 아니니까요
이미 다 이루어졌는데 뭘 뒷 북치듯이 자꾸 성경의 내용을 의도적으로 이룰려고
앞으로는 이루었다 한 개 이루고 뒤로는 천배 만배나 범죄라는 돈 숭배는 더 노골적으로 할테니까 그 노골적인 속임수를 대 놓고 하고 있으니
인간들은 트럼프에게 덤빌수 없어서 그렇지만
인간들 다 쭈그려뜨린다고 해서 주님이 속겠냐 말이죠 그 카이 독립운동하듯 하나님 나라 운동 회복운동한다는 가룟유다처럼 할게 아니라 그냥 이미 다 이룬 나라를 사모하면 되지
뭘 또 새삼스럽게 무슨 무슨 운동 하는 놈들 그런 놈들도 다 같은 패거리 인 겁니다
(요 2:17, 개역)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요 2:18, 개역)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
(요 2:19,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요 2:20, 개역)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우와 이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나를 삼킨다 와 대조되는 성전을 헐라 3일만에 세우겠다 와 이거 하나만 놓고서 살펴봐야 할 정도로 중요합니다
(요 2:13, 개역)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요 2:14, 개역)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요 2:15, 개역)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요 2:16, 개역)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요 2:17, 개역)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요 2:18, 개역)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
(요 2:19,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요 2:20, 개역)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요 2:21, 개역)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 2:22, 개역)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요 2:23, 개역)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
(요 2:24, 개역) 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요 2:25, 개역)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니라
(슥 4:1, 개역) 내게 말하던 천사가 다시 와서 나를 깨우니 마치 자는 사람이 깨우임 같더라
(슥 4:2, 개역)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가 보니 순금 등대가 있는데 그 꼭대기에 주발 같은 것이 있고 또 그 등대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 그 등대 꼭대기 등잔에는 일곱 관이 있고
(슥 4:3, 개역) 그 등대 곁에 두 감람나무가 있는데 하나는 그 주발 우편에 있고 하나는 그 좌편에 있나이다 하고
(슥 4:4, 개역)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가로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슥 4:5, 개역) 내게 말하는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이것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슥 4:6, 개역)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슥 4:7, 개역)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어 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슥 4:8, 개역)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슥 4:9, 개역) 스룹바벨의 손이 이 전의 지대를 놓았은즉 그 손이 또한 그것을 마치리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네가 알리라 하셨느니라
(슥 4:10, 개역)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슥 4:11, 개역) 내가 그에게 물어 가로되 등대 좌우의 두 감람나무는 무슨 뜻이니이까 하고
(슥 4:12, 개역) 다시 그에게 물어 가로되 금 기름을 흘려내는 두 금관 옆에 있는 이 감람나무 두 가지는 무슨 뜻이니이까
(슥 4:13, 개역) 그가 내게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이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대답하되 내 주여 알지 못하나이다
(슥 4:14, 개역) 가로되 이는 기름 발리운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셔 섰는 자니라 하더라
(눅 14:25, 개역) 허다한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눅 14:26, 개역)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눅 14:27, 개역)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눅 14:28, 개역)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
(눅 14:29, 개역)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눅 14:30, 개역) 가로되 이 사람이 역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눅 14:31, 개역) 또 어느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으로서 저 이만을 가지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눅 14:32, 개역) 만일 못할 터이면 저가 아직 멀리 있을 동안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눅 14:33, 개역)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눅 14:34, 개역)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었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눅 14:35, 개역) 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 없어 내어 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
요한복음 2장 스가랴 4장 누가복음 14장을 성전안공과 연관된 의미에서 올렸는데
인간의 미완료의 반복 의문의 반복을 따를래?
아니면 완성 미래완료인 다 이루었다를 누릴래? 라는 의미에서 올렸다 말이죠
나 예수의 제자 라는 의미는 완료 속에 들어가는 것이지
마치 미완료를 채우기 위한 결핍 채우기를 계속한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다 라는 것이죠
그러니 이미 다 가졌는데 따로 따로 따로 국밥의 자기 소유성이 있다?
그럼 빵구멍 뚫힌 그 뱃구멍을 또 채우겠다 라는 식이다 말이죠
불교의 무소유가 아닙니다 그들은 해탈을 해야 하기에 역시나 결핍 채우기입니다
진리의 잔을 채울려고 말이죠
그러나 이미 다 이루었고 그 다 이룬 나라를 증거하는 자가
자기 소요의 영역이 따로 생긴다 그렇게 되면 경계선 긋기로 니 소유 내 소유 이렇게 된다 말이죠
그카이 맨날 제자들은 누가 크냐 라는 씨움이 그치지 않는 이유가
누가 더 7번 8번 용서하느냐 라는 싸움 그 의미 없는 싸움을 계속하게 되는 겁니다
7에 70번 용서 받았다 라는 이 완료를 누리게 되면
그딴 미완료라는 의문의 반복을 괜히 쓸데없이 하게 된 거죠
어떤 너튜브 보다가 재미있는 현상을 말하는 사람이 있던데
결혼 정보회사 사람인 것 같아요 그 여성이 상담을 하다 보니
요즘 MZ 세대에서 이런 현상이 퍼진다 라고 하더라 말이죠
어떤 현상
아무런 다툼도 그 어떤 충돌도 없었는데 갑자기 이혼하겠다 라고 하더라 말이죠
왜 그런고 보니 주식 투자를 남자가 하다가 갑자기 200억을 벌게 되니까
갑자기 이혼을 하겠다 하고 나서더라 라는 겁니다
아이가 둘이나 있는데 말이죠 그 동안 그 어떤 다툼도 없었고 갈등 조차도 없엇는데
왜 이혼을 하지?????
알고보니 자기가 200억을 벌었기 때문에 그 200억에 걸맞는 결혼 생활을 해야 하니까
그 수준에 맞지 않은 지금의 여성은 안 맞다 라는 겁니다
200억의 가치에 맞는 여성과 새로 결혼을 해야 한다 라는 겁니다
아직 그런 여성을 만나 바람을 피운 상태도 아닌데 말이죠
90년대 드라마에서 가난한 남자와 가난한 여성이 작은 사랑으로 출발해서 결혼까지 약속했는데
어라 남자가 갑자기 일을 잘하다 보니 기업 회장의 마음에 들어서 딸을 주겠다 라고 하니까
재벌의 사위가 되니 그동안 사귀던 여성은 헌신짝처럼 버려지고 거기에 대한 복수와 용서 뭐 이런 내용의 드라마가 많았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뭐 다를게 없기는 맹 마찬가지 이더라 말이죠
마침 판관 포청천이 메인 화면에 나오다 보니 맹 같은 의미로 나오더라 말이죠
공주의 남편이 되니 그 착하던 남편이 아내를 버리고 어떻게든 죽일려고 하는 그런 내용인데
아무튼 이 근원적인 악 근원적인 죄를 해결하는 한 목자 한 선지자 한 왕이 오지 아니하면
인간 곧 백성 쪽에서는 그 의문의 반복을 할 수밖에 없는
그 의문의 쇠사슬을 끊을 자가 없다 라는 겁니다
즉 완료를 누리는 자는 하늘의 예루살렘 자유하는 여자이고 사랑 곧 완료를 용서를 누리는 자 이고반대로 미완료 때문에 결핍을 채우고자 소유할게 생기는 자는 땅의 계집종 하갈처럼노동에 대한 보상으로써 가정부의 삶을 계속 추구하게 되는 그 의문의 반복을 끊어줄 섬기는 한 목자가 없게 되는 겁니다
한 목자를 줘도 자기 소유로 삼는 결핍을 채우기 바쁘지
그 한 목자의 소유물인 백성이 되고픈 마음은 추호도 없는 겁니다
백성도 소유로 결핍채우기로만 볼테니 뭘 줘도 자유로 안 보고
뭘 줘도 행함으로 보상을 바라는 결핍 빈칸채우는 자기 숙제로 밖에 안보이는 겁니다
빈칸을 채우는게 아니라 도리어 없던 빈칸으로 만드시는
공백 만들고 간극 만들기를 하시는 주님의 숙제 자체를 이해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 이유 없이 무조건 채울려고 하지
그 텅 비어 있는 발가벗음과 같은 빈칸을 견디지 못하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처음자리인데 말이죠
그 처음자리에서만 첫사랑을 볼수 있는데 말이죠
처음자리 조차도 자기 숙제로 이룰려고 하니 말 자체가 안 통하는 겁니다
자 이런 율법과 선지자는 바로 빵구멍 내기 위해서 온 겁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꽉꽉 차 있는 자들에게 예수님의 말씀 곧
모세 언약으로 꽉꽉 차 있는 자들에게 다윗언약이라는 한 목자의 말씀은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너무 꽉꽉 차 있어서 들어갈 틈이 없도록 만들었다고 저들은 자부하고 있으니까
그 완악한 수건을 벗길 방법이 없습니다
율법이라는 모세언약은 도리어 처음자리 곧 뭘 해도 죄 밖에 안나오는
날 때부터 살인죄 간음죄 인구조사죄 할 수 밖에 없는
죄 아래 갇혀버린 자 이다 라고
정직한 영이 없어서 울 수밖에 없는 자 라고
그 처음자리로 그 잃어버린 자리로
인애와 자비를 바라는 상한 마음인 죄인의 자리에서 고쳐달라고 우는 자리인데
그 반대로 껍데기만 지키다 보니 가장 교만한 사탄의 회가 되어서
파리한 양을 등쳐먹고 잡아먹고 사디리 걷어차는 자리가 되어버린 겁니다
그래서 율법과 선지자 이제 선지자는 그런 교만을 빵구멍 내고자
처음자리에서 약속하시는 첫사랑을 보도록 첫맹세대로 밀어붙이시는 겁니다
주변의 이방나라 그 교만한 나라를 먼저 치시는게 아니라
그 반대로 이스라엘 교만을 먼저 치심으로써
이제 나라도 없고 나라가 없다는 말은 왕도 다 죽고 없지요
있어봤자 등쳐먹는 늑대와 다를바 없는 거짓목자들이다는 거죠
비러 이런 절망 요나의 큰 물고기 뱃속
그 깊고 어두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속에서
한 목자가 뛰어드셨다는 사실 그 하나 만으로
백성을 먹이는 그 한 목자를 세웠다는 그 이유만으로
우리는 그 지옥에서 살 자격이 졸지에 없어져 버리고
그 의사의 기능에 맞게 환자로써 건짐을 고침을 받게 되는 겁니다
주를 부르지 못하는 그 지옥의 자리에서 부르신바 되고
우리가 안 불렀어요 결국 주님 혼자 자작극으로 펼치신 겁니다
바로 그겁니다 오늘 본문의 제목을 설교제목을 자작극이라고 보시면 다 이해사 됩니다
한 목자의 자작극 이라고 부제를 붙이면 되겠네요
빙금 붙였습니다 ㅋㅋㅋㅋ
너희가 찾을수 없는 그 자리 그 지옥 그 절망 속에서
찾으신 바 되는 이 주님의 숙제로 펼쳐지는 자작극으로써
부르지 않던 곳에서 부르신 바 되시고
찾지도 않던 곳에서 찾으신 바 되시는
오히려 나 불렀습니다 나는 분명히 찾았습니다 라는 그 인간 쪽의 개입이나 숙제 일체 차단한
새언약 새영 새 마음 바로 이 정직한 영이 없어서 우는
그 다윗언약 다윗이 믿었던 알았던 그 하나님만 되시겠다 라고
왜? 다윗만이 아들이니까 말이죠
이 아들 개념을 위에서 말해야 했었는데 타이밍 놓친 것을 마침 딱 맞게 되니까
아들에 대해서 살펴보면
(요 7:42, 새번역) ㉬성경은 ㉭그리스도가 다윗의 후손 가운데서 날 것이요, 또 다윗이 살던 마을 베들레헴에서 날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 ㉬삼하 7:12; 미 5:2 ㉭또는 '메시아'. 그리스어 그리스도와 히브리어 메시아는 둘 다 '기름 부음 받은 이'를 뜻함
(고후 6:18, 새번역) ㉧"그리하여 나는 너희의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 자녀가 될 것이다. 나 전능한 주가 말한다." / ㉧삼하 7:14(칠십인역); 렘 31:9; 사 43:6; 삼하 7:8
(히 1:5, 새번역) 하나님께서 천사들 가운데서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또,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 ㉠시 2:7(칠십인역) ㉡삼하 7:14
(삼하 7:11, 개역) 전에 내가 사사를 명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않게 하고 너를 모든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케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고
(삼하 7:12, 개역)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삼하 7:13, 개역)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삼하 7:14, 개역)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삼하 7:15, 개역) 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 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삼하 7:16, 개역)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단순히 살 집이 아닙니다 건축물이 아니라 함께 동행하는 나라요 영원한 집입니다
그리고 세상 임금 왕을 다 멸하고 세워진 나라 이기에
그 세상임금을 멸할자가 바로 아들이다는 것이지요 그 아들을 왕으로 삼은 그 나라를 주시겠다입니다
이것은 붙이시는 전쟁으로 말미암은 승리요 주님 혼자만의 다 이루심입니다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닙니다 세상 권세와의 전쟁입니다
그카이 다윗 가문이 고정이 된 영원한 집이 되는 겁니다
여부스를 쫓아내었으니까 말이죠
가장 교만한 그 가나안 땅의 교만한 산을 비로소 깍아서 정복한
천국은 침노한 자의 것이다 라고 그들의 천국을 박살낸 자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가장 교만한 예루살렘 성을 무너뜨리심으로써
그들의 왕이 되셨습니다
(삼하 7:13, 개역)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삼하 7:14, 개역)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삼하 7:15, 개역) 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 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삼하 7:16, 개역)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남유다 만큼은 이 째찍질과 막대기가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징계하시는 그 섬기심이 떠나지 않고 영원히 함께 하시겠다 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고린도전서 살펴보는 가운데 견고케 하심을 살펴봤잖아요
흔들리지 않게 하셨다 라고 해 놓고서는 막 흔들어 댑니다
바로 그것이 견고케 하심입니다
이제 나라가 다 망해서 없고
왕들도 이제 다 죽고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견고케 하시는 약속은 그대로 실행됨에 있어서
오히려 아무것도 없는 쫄딱 망한 상태에서
인간이 더 이상 개입할 수 없는 상태에서 오히려 더 또렷히 보이는 겁니다
아니 바벨론 포로 잡혀 가고 난 뒤에
다디 되돌아 올때에
이게 말이 되냐 말이죠
나라가 없어졌는데
갑자기 하루 만에 다시 세워집니다
(렘 31:9, 개역) 울며 올 것이며 그들이 나의 인도함을 입고 간구할 때에 내가 그들로 넘어지지 아니하고 하숫가의 바른 길로 행하게 하리라 나는 이스라엘의 아비요 에브라임은 나의 장자니라
나라 하나 세울려며는 무수한 전쟁을 거치지 않으면 안되는데
독립운동할 의지가 하나도 없는 백성인
그 야위어 빠진 백성 그것도 포로 속에서
살진 양들을 다 죽여 없애버린 상황에서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나라를 받고 왕을 주시고
영원히 섬기는 한 목자를 세워주신다?
그야 말로 부르지 않던 곳에서 부르신바 되시고
찾지도 않던 곳에서 찾으신 바 되신다는 말씀이 말씀 스스로가 이루시는 방식입니다
누가 믿겠습니까 나라 멸망이요 왕도 없는데 갑자기 뿅하고 하루 만에 생기다니
그야말로 정금같이 나온 영원한 집이요 나라입니다
즉 오예물 불순물이 다 빠진 용광로 속에서 나온 한 목자이니까 말이죠
(사 43:6, 개역) 내가 북방에게 이르기를 놓으라 남방에게 이르기를 구류하지 말라 내 아들들을 원방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라
인간 왕 목자들 지도자들 그 수 많은 불순물 다 용광로 속에서 다 제거하고 나왔으니까자기 유익을 위한 하나님 믿기가 이젠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어서
나라 없는데 나라가 생기고
왕이 없는 가운데 왕이 졸지에 생긴이제 보이지 않는 참 소망의 나라 그 본향을 미리 누리면서
이게 지난 주에 땅끝 죽음끝 나의 끝 내가 있는 곳이 바로 지옥의 몸 그 속에서
영원한 나라를 외치고 영원한 왕 그 섬기는 한 목자를 외치고 자랑하고 기뻐하면서
왕의 섬김을 즐기는 것이 바로 땅 끝에서만 종말 끝에서만 펼쳐지는 새이스라엘의 삶이라고
용광로 곧 우는 자 만이 다시 돌아오는 남은자 이다는 거죠
자기 죄로 우는자
바리새인터럼 회개의 달인 우는 자의 달인 금식의 달인이 아니라
정직한 영이 없어서 우는 자 다윗언약 새언약이 임한 자 말이죠
결국 그 잃어버림의 경험이란 용광로 속에 들어갔다가 불순물이 빠진 상태에서 돌아오는
땅 끝에서 나온 자 이다는 겁니다
자 이것보다 더 한 복음 은혜의 해 희년이 더 이상 어디 있겠냐 말이죠
다들 왕이 없어서 망해가고 있는 지옥으로 가고 있는 그 세상 나라들 속에서
참된 한 목자를 주신다 라는 이 말 자체가 말이 안되는 복음입니다 기쁜소식이다 말이죠
이 관계를 주님 홀로 밀어붙이심으로써 다 이루신 겁니다
인간은 이미 벌써 싹 다 잊어버린
그 첫사랑을
이 아름다운 소식을 깊이 깊이 마음 판에 간직하라꼬 마음 판에 새기시면서 말이죠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너는 내 아들이 될 것이라 라고 말이죠
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라는 땅끝 그 용광로 속에서 나온 자가 다윗이니까 말이죠
다윗은 그 땅 끝 이라는 용광로 속에서 곧 예수님의 죽으심 속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다이넹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불 속에서 예수님과 함께 춤추는 천국이라는 영원한 나라를 누렸듯이그러니 이런 천국은 인간에게서는 나올수 없는 천국입니다 불속 심판 속
그렇다고 불 난 빕에 일부러 들어가는 놈 또 있겠죠 얼마나 구원이라는 탐심으로 자기 숭배에 빠져 있으니 말이죠
그 말이 아니라 그건 불속 심판속 그리고 죽음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죽음만이 진짜 죽음이기에 그 땅끝은 결국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이것 마져도 슝내내는 저 필리핀 십자가 못 박기 이벤트 그거 또 해야 할까요? 요즘은 안하지만 그 정도로 악하다는 증거입니다
오로자 예수님의 죽음이라는 그 재대로 된 심판 절대심판인 용광로 속에서 나온 자가 다윗이듯이
주님의 자녀는 그리고 그의 나라는 바로 예수님의 죽음이라는 화목제
w대로 된 이 사랑이 아니면 울리는 꽹과리 헛소리일 뿐입니다
이 악한 세대에 수 많는 헛소리와 대조 되면서 나타나는 한 목자를 세웠기에
성령을 받지 않고서는 그 아들에게 입 맞출수가 없습니다
오로지 예수님의 죽음, 아들의 죽음으로만 세워진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시 2:12, 개역)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
(렘 23:3, 개역) 내가 내 양무리의 남은 자를 그 몰려갔던 모든 지방에서 모아 내어 다시 그 우리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의 생육이 번성할 것이며
(렘 23:4, 개역) 내가 그들을 기르는 목자들을 그들 위에 세우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려워하거나 놀라거나 축이 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 23:5, 개역)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렘 23:6, 개역)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즉 아들이라는 주의 오른손은 상대적인 사다리 걷어차는 애굽의 팔이 나타남에 있어서 대조를 이루는 식으로 등장합니다 그들의 기능은 용광로 불순물 확 빼는 작업을 하겠지요 그 포로 속에서 남은 자만 돌아오도록 땅 끝 그들의 사망 권세 속에서 불러내시는 겁니다)
(시 2:7, 개역)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행 13:33, 개역)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행 13:34, 개역)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가라사대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행 13:35, 개역) 그러므로 또 다른 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히 1:5, 개역)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네가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뇨
(히 1:1, 개역)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히 1:2, 개역)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히 1:3, 개역)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 1:4, 개역) 저가 천사보다 얼마큼 뛰어남은 저희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
(히 1:5, 개역)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네가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뇨
(히 1:6, 개역) 또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가 저에게 경배할지어다 말씀하시며
(히 1:7, 개역) 또 천사들에 관하여는 그는 그의 천사들을 바람으로, 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 하셨으되
(히 1:8, 개역)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홀은 공평한 홀이니이다
(히 1:9, 개역) 네가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였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너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네게 부어 네 동류들보다 승하게 하셨도다 하였고
(히 1:10, 개역) 또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
(히 1:11, 개역)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그것들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지리니
(히 1:12, 개역) 의복처럼 갈아 입을 것이요 그것들이 옷과 같이 변할 것이나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 하였으나
(히 1:13, 개역)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느뇨
(히 1:14, 개역)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히 5:5, 개역)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저더러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고
(고후 6:18, 새번역) ㉧"그리하여 나는 너희의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 자녀가 될 것이다. 나 전능한 주가 말한다." / ㉧삼하 7:14(칠십인역); 렘 31:9; 사 43:6; 삼하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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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7 십자가의 도는 미련함으로만 증거 (고전 1;18-21)
2025. 8. 31. ( 8월 22일, 녹음 )
헛되지 않은 십자가의 도와 멸망하는 자들 (고전 1;17-18)
고린도 전서 2025 2025. 8. 9. 16:04
25-006 헛되지 않은 십자가의 도와 멸망하는 자들 (고전 1;17-18)
〈고린도전서 1;18-21, 개역한글 신약성경 263쪽, 찬송가 27장 새 27 빛나고 높은 보좌와, 찬송가 498장 새 441 은혜구한 내게 은혜의 주님〉
〈찬송가 27장 빛나고 높은 보좌와, 새찬송가 27장〉
(고전 1:18, 개역)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9, 개역)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고전 1:20, 개역)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고전 1:21, 개역)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전 1:18, 현대어) [능력과 지혜이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할 사람들에게 얼마나 어리석게 들리는가를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우리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고전 1:19, 현대어) 그래서 성경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ㄱ) `내가 앞으로 계속 이 백성에게 이상하고도 알 수 없는 일들을 하겠다. 그러면 이 백성 중에서 가장 슬기로운 이도 그 일을 깨닫지 못하며 총명한 이도 전혀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ㄱ. 70인역 사29:14)
(고전 1:20, 현대어) 그러니 현명하다는 사람들, 학자, 이 세상의 어려운 문제들을 풀어 간다는 이론가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모두 어리석은 자로 보시고 그들의 지혜를 아무 쓸모 없는 것으로 간주하시지 않았습니까?
(고전 1:21, 현대어) 이 세상이 인간의 지혜를 가지고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는 것도 하나님께서 지혜로운 경륜으로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어리석고 바보 같다고 말하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며 사는 사람들을 구원하기로 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진리는 오로지 어리석고 미련함으로만 증거 됩니다
왜냐하면 두 패로 나누기 때문입니다 즉 멸망하는 자와 하나님의 능력을 입은 자로 말이죠
바로 이 자체가 미련하다 라고 하는 겁니다
무식하게 계속 두 패로 나누니까 말이죠
우리가 살펴본 토기장이 비유에 반발하는 모든 인간의 반응에서 살펴봤잖아요
그러니 이 비유에 모두다 다리 걸려 넘어지는 실족케 됨을 당하게 되는 거죠
이게 바로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자와 그의 발 이라고 했습니다
즉 심판을 증거하는 거지요 율법과 선지자는 심판 곧 끝을 증거합니다
용광로 속에서 비로소 불순물 혼합물 오예물을 다 걸러내고서
그 끝 그 원인 없는 결과에서 나오는 자가 바로 땅 끝에서 나오는
패역한 딸 예루살렘 여자 인 거지요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 여기서 땅 끝이 바로 예루살렘이다 말이죠
여부스 땅 아닙니까 그래서 다윗이 왕이 되는 이유는 바로 가나안 족속을 몰아냔 유일한 자
곧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다 바로 그 의미에 해당 되는 유일한 자 이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죽은 다윗을 다시 에스겔리 언급하는 이유는
이 기준으로 그 교만한 땅을 평평하게 첩경 울퉁불퉁 높은자 낮추고 낮은자 높이시는
첩경을 평탄케 해서 그 다리미질 된 땅에 그 심판을 깔아버린 그 땅에
바로 아들 되신 예수님이 오신다 라는 겁니다
바로 이 예수님만이 너희의 왕이 될 자
왕이란 죽음의 권세에서 사망을 멸하고
그 음부의 권세와 싸워 이긴 승리자를 말하고 비로소 평화를 이루는 자입니다
그런 기능을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이 하나님의 능력을 무시하는 자가 오늘 나오는 멸망하는 자 라는 겁니다
즉 우리가 안식일날만 골라서 병든자를 고친다 라고 했을때에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능략인
생맹 구하기 라고 했씁니다
그러나 여기에 상대적으로 안식일날 어긴다 라고 안식일 지키는 자는
율법을 지키면 지킬수록 살인하도록 되어 있는 사다리 걷어차는 생명 구하기라는 하나님의 능력을 어떻게 해서든 방해하는 자들이다 그것이 율법을 지키면 지킬수록 더한 자 곧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고 모세의 자리에 앉은 결구 자기의 가치를 높이는 목적이 있는
자기 의를 쌓는 자가 바로 멸망항는 자요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는 곧 하나님의 의인 공이 곧 십자가의 도를
못 믿도록 사다리 걷어차는 유대인들이 바로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는 자 이다
그 멸망하는 자가 다음에 할 내용이지만 미리 말하면
두 부류가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유대인
그 유대인들에게서는 미련한 하나님의 공의가 거리끼는 걸림돌이고
개같은 이방인 곧 헬라인에게서는 이 십자가의 도인 미련한 하나님의 공의 곶 지혜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지혜로 취급 받는
이 둘다 합치면
헛되다 쥐급 받는다 라는 겁니다
결국 헛되다 라는 말은 나의 가치를 높여주지 않는다 라는 겁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심심하면 누가 크냐 라는 싸움과 경쟁 뿐일때에
누가 헛되게 취급받는 십자가의 도 곧 하나님의 의에 복종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받지 아니하면
그 서슬 퍼런 안식일날에
병자를 고치로 귀신을 쫓아내고 물에 빠진 자를 또는 가축들을 구하는 그 생명 구하기를
안식일날 감히 감히 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받은 자만
즉 이 말은 멸망하는 자들이 미리 깔려 있어서
안식일날 일하면 돌삐 쳐 죽이는 그 법이 깔린 상황에서
그 지옥 속에 그 심판 속에 뛰어들 자가 누가 있겠냐
누가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받은 생명 구하는 자 인가
아니면 반대로 사다리 걷어차는 자 인가 라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멸망하는 자 인가 라는 겁니다
오늘날 교회 보세요 탐욕의 소굴이다 보니 모조리 사다리 걷어차는 자들 곧 멸망하는 자들 뿐입니다
녹슨 가마 솥에 들어가는
교회에 가면 다른 곳은 다 멸망해도 이 보호 이 노아의 방주 이 피난처에만 가면
뜨뜻한 목욕탕 물에 몸 담그듯이 양고기가 뜨거운 스프 뜨거운 국물 속에 몸을 녹이듯이 담겨져 있는
그런 보호를 받을 것이다 라고 착각하는 것이 바로
오히려 더 잘 되었다 한 꺼번에 심판 할 수 있게 알아서 기어들어오니 말이죠
녹슨 가마솥 비유처럼 말이죠 비유 비밀이다는 말은 인간은 반드시 보상을 염두한 노동
곧 행함을 추구하기에(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믿음은 더더더 복수심을 깔고 있거든요 살인의지입니다)그 행함이 반대의 의미를 채우는데 작용하는 하나님의 공의에 복종치 않고
자기 의를 세우는데에만 활용이 되어 있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 자기 의가 바로 살인의지입니다 자기를 안 알아주면 끝까지 복수하니까 말이죠
그래서 인간의 믿음 안 받습니다 이미 불순물이 까까득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 보다 경건의 껍데기만 갖추겠다 라는 식이다는 거죠
그 행함 그 실천이 집결이 된 것이 바로 철학이요 그 철학의 집대성이 바로 신학입니다
제가 자주 거론하는 지젝이라는 정신분석가가 신학자 라고 불리는 이유입니다
신학자들은 신학의 시녀 하녀인 철학 그 철학자가 신학자 라고 불리우면 기분나빠 하지만 말이죠
그 신학의 주장 곧 교리의 핵심은 바로 삼위일체론입니다
인간의 지혜의 결집이 철학이고 철학의 요약이 신학이요 신학의 핵심은 바로 삼위일체
인간의 지혜가 만들어낸 것이 바로 삼위일체라는 겁니다
바로 이 삼위일체가 멸망하는 자들의 주장이다는 겁니다 교회는 바로 이 강도의 소굴 답게
이 삼위일체를 퍼트리고 삼위일체로 가스라이팅 시키는 집단인 거지요
누가 교회에 전화를 해서 목사를 찾던데 사택으로 전화 하라고 했는데 기여이 저한테 굳이 삼위일체에 대해서 묻길래 그거 철학사상이다 라고 답했지요
신플라톤 주의 라고 그거 베낀 것이 삼위일체 라고
인간 지혜를 다 끌어모으면 결국 같은 답입니다 철학에서도 삼신론이고 신학도 삼위일체라고
이것이 멸망하는 자들이고
이런 멸망하는 자들의 지혜와 총명을 폐하고자 등장시킨 것이 바로 미련한 복음 곧 십자가의 도입니다
결국 미련란 복음인 십자가로 인해서 미련한 자가 등장하는데 있어서
그 어떤 인간도 천국에 갈 자가 없음을 분명히 해 두시는 겁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바로 이 미련한 처녀와 슬기로운 처녀의 대립처럼 항상 두 패
곧 멸망하는 자와 미련한 자의 대립으로써 증거 됩니다
천국 갈 자가 없음을 아는 자와 그래도 천국 갈 자격 저는 있습니다 라는 자의 대립구조로
예수님의 비유는 증거 됩니다
알고보니 무식하고 어리석고 미련했던 다섯처녀가 슬기로운 처녀 였고
실용적으로 신랑이 그때 오면 그때가서 기름을 준비하면 된다 라고
똑똑하고 총명하고 지혜롭고 슬기로왔던 다섯 처녀가 오히려 미련한 다섯 처녀 였다 라고
마태복음 25장의 종말의 비유 3종 세트에서 나옵니다
열 처녀의 비유(1-13절),
달란트 비유(14-30절),
양과 염소의 비유(31-46절)
곧 종말에서 나온 자가 바로 미련한 복음인 십자가에서 태어난 자 이고 곧 땅 끝에서 나온 자 이고
반대로 멸망하기로 작정된 자는 그야말로 선민이라고 우기는 모습 뿐이기에
굳이 종말이라는 심판을 왜 미리 준비하느냐 라는 식입니다
준비 라고 하니까 마치 인간 쪽에서 할 수 있는 종말보험 천국보험 식으로 생각하는
바로 그런 선민의식이 저 삼위일체처럼
마귀에게 장악당한 자 인줄 모르는 인간의 지혜와 총명인
심판 받을 대상에 놓여지게 되는 겁니다
계시록에서 총명이 있는 자는 짐승의 수를 셀수 있다고 했습니다
즉 성령을 받은 자 만이 총명이 있는 자 인데
그 총명은 그럼 뭐냐 바로 자기가 짐승에게 포로된 자 임을 알고
정직한 영이 없음을 알고 새로 창조 해 달라고 우는 자가 총명이 있는 자입니다
우리가 에스겔에서 이러다 다 죽어 라는 한 선지자의 심판 속에 뛰어듬을 보고 우는 자 만이
남은 자 로서 돌아오는 자 라고
그 한 선지자 곧 심판을 본인이 날려 놓고 그 심판을 대신 맞는 그 심판 속에서 나오는 자 만이 남은자 이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자기가 짐승 나라에서 빠져나올 자가 없음을 알고 울부짖는 자가 바로 총명한 자가 아닌 총명함을 받은 자로써 자기가 짐승임을 알고 지옥의 몸임을 알고 우는 자로써
능력 곧 생명구하는 자의 기능에 딱 맞는 환자로써 의사를 부르는 자입니다
이 생명 구하기를 펼쳐 달라고 불쌍히 여겨 달라고 우는 자 말이죠
이것이 미련한 복음이 낳은 자입니다
반대로 멸망하기로 된 자는
바로 이런 심판이 안 보이는 겁니다
이 하나님의 공의는 안 보이고
하나님의 공의를 나만 혜택 보고 남들은 못 누리도록 사다리를 걷어차는
하나님의 공의를 버리는 자입니다
그 자기들의 쓸모 없다 라고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되니까 여기에 다 걸려 넘어지는 겁니다
바로 이런 멸망하는 자들은 오히려 선민의식에 가득차 있고 그 선민의식이
더더욱 말씀 지키기로 인해 자기 의를 쌓는데 있어서 사다리를 걷어찰 뿐이지
그 쌓은 공든탑을 남을 위해서 무조건적으로 온전히 나누어 줄수 있는 능력
생명 구하기는 없고 그저 껍데기로만 경건의 모양만 갖추지
오히려 경건의 능력을 가장 거부하고 훼방하는데 작동 된다는 것에
다윗처럼 정직한 영이 없어서 울지 못한다 라는 겁니다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이 될 수가 없어요
그카이 인애와 자비 보다
자기 의를 쌓는 번제와 제사에 목숨 걸죠
왜? 이것이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나온 모두가 납득이 되는 인간의 지혜요 총명인
철학이요 신학이다는 겁니다
그 철학 곧 헬라인 즉 개같은 이방인에게서는 어리석고 미련한 것이 십자가의 도요
그 신학 곧 선민이라고 우리는 교리 하는 인간의 지혜를 결집한 자기 의를 쌓은 자들에게서는
이 십자가의 도는 거리끼는 걸림돌 이다는 겁니다
남 7번 용서하기로 사다리 걷어차고 있었는데
커트라인이 7에 70번이 되어버리니까 뻔데기 앞에 주름 으로 장난 짓 밖에 안되었기에
에이 이제는 자기들 멋대로 커트라인을 확 내리는 겁니다 왜? 자기 의를 옳게 합격 시킬려고
이것이 선민이라는 자들의 하는 짓의 한계점이다는 겁니다
교리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야지
불가능성으로만 채워지면 동떨어진 붕 뜬 소리 밖에 안되면
납득이 안된다 납득 안 되면 교회 못 짖고 교회 운영 못하면 이단세력에서 부동산 넘어간다
그런데 우짭니까 우리가 에스겔에서 봤듯이
부동산이 국가 토지 전체가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버렸어요
그런데 나는 너희 하나님 되고 너는 나의 백성이 된다 라고
오히려 더 구체화 됩니다
그 나라의 왕은 다윗이다 라고
그냥 다윗이 아닌 죽은 다윗
곧 너희가 죽인 다윗을 왕으로
너희가 죽인 예수님을 주가 되게 하셨다 라고 말이죠
바로 이런 국가 토지라는 공간 그리고 시간 즉 자유시간 초코렛이 오히려 없게 되었는데
그런 거추장꺼리가 된 것들이 다 날라가 버린
종말의 상황
땅 끝의 상황이 되니까
오히려 이 말씀이 오히려 더 또렷하게 보이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다윗언약 곧 새언약이다 말이죠
그카이 이 미련한 복음을 누가 믿었으리요????
아니 게바파 바울파 그리스도파 아볼로파
이 유명인을 멘토로 삼아서 자기발전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지혜요 총명 아닙니까
그런데 이 각 파를 해체 시켜버립니다
백날 해 봐라 어차피 해체되어야 할 이전 것들의 그림자 놀이 밖에 안된다 라는 겁니다
그럼 진정한
이전 것은 지나가고 보라 새것이 되었다 라는 새것은
오히려 모든 것이 해체가 된 그 자리에서
이미 다 이룬 십자가에서 나온 것이 새것이 됨을 누리게 하는 것이다 라고 하신다 말이죠
이런 종말의 의식이 아까 말한 종말의 3종 세트 중 양과 염소 비유에서
누가 봐도 딱 봐도
평생을 염소 짓만 하고 살았다 말이죠
그런데 종말의 영이 오니까 이것이 뒤지어 집니다
사람들이 납득이 되는 신학에서는 포착이 안돠는
해석 불가인 반대가 됩니다
염소가 양이 되고
양이라고 자부헸던 선민들이 오히려 염소가 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모든 인간의 지혜와 총명을 거부하면서
뒤집어 엎어버렸기 떄문입니다
나 소자에게 해 준 것 하나 때문에
악한 불의한 자가 의에 이루고
의인이 단 한번의 실수인 범죄로 지옥에 가는 식입니다
이것이 율법과 선지자의 기능인 아름다운 소식
곧 심판을 증거하는 자 이다는 겁ㄴ다
심판의 불 속에서 보는 시선과
심판 바깥의 신학이라는 인간의 지헤와 총명을 총 결집한 시선에서와의 차이입니다
마귀가 유대인 선민을 장악한 시점에서 예수님이 처음으로 복음을 시작함에 있어서
마귀에게 세가지 시험을 받는 이유는
바로 그 선민의식이 마귀사상이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가 그런 식입니다
자기들 따나 무당처럼 인간들을 신과 연결시켜주고자 하는 매개자로써의 기능이다는 거죠
오히려 예수님은 아무도 천국 못 간다 라고 천국가는 길을 차단 시켜버렸습니다
거기서 우는 자는 찾고
잃어버린 양을 찾는데
아무도 자신이 병들었고 환자이고 죄인이고
귀신들린 지옥믜 몸이다 라고 우는 자가 아무도 없으니
이것이 국가 전체가 교회인 유대인의 실상이다는 겁니다
그래놓고 무슨 놈의 선민이니 구원택정자니 뭐니 하느냐 말이죠
오늘날 보세요 한국 기독교 천주교 포함해서
무당과 손잡고 신땡지 통일교 에게 돈 받아 쳐먹고 그 돈 어디서 왔겠습니까? 자본주의는 결국 사람이 돈이거든요 젊은 아이들 피 빨아먹고 그 한참 종교성 강한 애들 노예로 삼아서 나온 것 아닙니까
이게 인간의 지혜와 총명이 집대성이 된 의문의 반복이다 말이죠 성화론자들도 똑같은 놈이다 말이죠 자기들의 의만 쌓기 바빳지 저들이 물에 빠지는 것을 방관했으니 말이죠
그저 주일성수를 지키기 위해 국가 자격시험을 일요일에 못하도록 하자 라는 그런 운동 그런 캠페인을 하면 그게 물에 빠진 자 건져주는 생명 구하기 입니까?
주일에 예배에 빠지면 헌금을 못 내고 헌금 안내면 교회 안 돌아간다 라고 역시나 똑같은 저 도리 도리 무당이다 다를바 없는 거죠
뭐 한국에서 가장 수준높은 성화론자다 라고 우겨도 가장 수준 높은 성화론이라는 놈들의 수준이 이것 밖에 안되니 이미 결판 난 거죠
자 그런 의미에서 인간들이 구분짖기 라는 두 패 나누기와
주님이 직접 두패 나누기는 정반대의 양상으로 나타납니다
인간은 그저 멋들어진 사람들이 남득이 되는 총명과 지혜를 갖추는 식이고
반대로 주님은 어리석고 미련함으로써 두 패 나누기를 하시는 겁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항상 미련한 자를 들어서 자기 의를 제대로 갖추었다 라고 자부하는 자들의 총명과 지혜를 깨뜨리시는 미련한 복음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즉 아무도 선택하지 않는 길에서 말이죠
누가 창기와 세리가 먼저 천국에 가는 그런 천국을 만들겠습니까
그런 천국은 인간의 총명과 지혜에 전혀 안 맞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비유는 항상 이런 식입니다
그렇게 미련한 자와 멸망하는 자로 나누는 겁니다
인간은 그 반대죠 의로운 자와 미련한 자로 나누는데 있어서
미련한 자가 절대로 되면 안되는 그래서 의로움을 갖추었는데 그것이
인간들 끼리 납득이 되고 상호위선 상호기대 상호기만으로 작동하는
자기들끼리의 속임수인 믿음으로 완벽하게 건설했는데
여기에 이제 머릿돌만 오면 되거든요
그런데 그 머릿돌이 오히려 그 건축물을 다 허물어 뜨릴려고 하니
건축자들이 쓸모 없다 라는 것을 미리 알고 버리는 식입니다
그 버림받는 미련한 모습이 바로 십자가의 도로써
미련한 자와 멸망하는 자로 나누시는 토기장이로 오시는 겁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사람의 지혜가 아닌 주님의 지혜를 받은 솔로몬의 재판에서 나옵니다
인간의 지혜와 총명은 속임수요 살인의지 라고 했습니다
인정받기 위한 인정투쟁인데 인정 안해 주면 죽여버리겠다 란느 공갈이요 협박입니다
저 보세요 댓글을 아무리 지워도 또 계속 반복해서 적잖아요
아마 클릭 자체가 돈이 되고 광고를 누르면 더 많이 받으니까
내가 너 광고 눌렀으니 공감 꾹 클릭햇으니 너도 내 광고 봐서 내가 돈을 벌수 있게 해 달라 라고 해다오 라고 하면서 공갈 협박을 하는 식 아닙니까
계속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고
지워도 소용 없어요 무슨 프로그램이 있는지 해킹하는지 차단하고 삭제해도 ai를 이용해서 자동으로 댓글 달기를 하는지 거의 협박 공갈 수준입니다
바로 이런 속임수에 주님 또한 더더더 더한 속임수로써 나온 것으 솔로몬 재판입니다
가짜 엄마의 속임수를 들통내기 위해서 주님의 속임수는 그 가짜의 속임수에 맞게
두 패로 나누어라 라고 합니다
그럼 주님의 속임수는 여기서 끝나면 가짜 속임수와 똑같기 때문에 구분이 안 되겠지요
인간의 구분짓기 곧 거룩 분리 개념을 주님의 구분짖기를 해 버리니까
인간은 누가 봐도 깨끗한 길로 총명과 지혜를 펼치지만 그래서 항상 경건의 모양을 갖추는
껍데기 하나는 완벽하게 갖춥니다 그것이 남의 눈을 의식해서 나온 남을 속이기 위한 것이니까 말이죠
그런데 주님의 속임수 곧 미련함은 그 반대를 위한 반대로써
그 반대의 길로 가 버리니니 더럽고 미련하고 어리석게 말이죠
그래서 솔로몬은 그래 가짜의 속임수 뜻대로 둘로 나누어서 저도 주고 이도 주고 해라 라고
악마의 편에 드는 겁니다
여기서 끝나면 속임수가 아니지요
진짜 속임수는 바로 그랬을때에
우는 자가 땅 끝에서 나옵니다
죽음 속에서 죽음을 뚫고 나옵니가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부모 자식간은 유익, 이익의 관계가 아니라
사랑의 관계이기에
그 사랑을 죽음 속에서 뽑아냅니다
속임수 속에서 뽑아 냅니다
그래서 우는 자가 바로 번제와 제사 라는 법 법 법 법대로 두 동간 내어서 저도 가지지 못하게 하고 나도 가지지 못하게 하라 라고
저도 이도 가지게 하라 인데
이놈의 가짜 속임수가 너무 좋아라 한 나머지 실수로 저도 가지지 말고 나도 가지지 말라 라고
지 입으로 실토케 만들어 버립니다
아니 분명 이도 저도 똑같이 나누어 가지게 하라 라고 했는데 말이죠
가지게 하라
그런데 지가 지 꾀에 걸려서 가지지 말게 하라 라소 동의하고 찬성해서
그래 동의하고 찬성 했기에 너가 스스로 자뱍하는 구나 로 나오도록 하는 것이
주님의 속임수입니다 곧 진짜 속임수는 동시에 생명구하기를 동시에 펼치는데 있어서
가짜엄마의 속임수는 그것을 볼 턱이 보일 턱이 없이 자기 편 들어준다고 좋아라 할 뿐인 것이지요
이것이 가짜 속임수를 펼치는 자들에게 되도 않는 죽음
저도 가지지 말고 나도 가자지 말게 하여 이미 죽였지만 저 엄마 마저도 마저 죽이십시오 라는
그 죽음 그 되도 않는 죽음 속에
그 가짜 속임수에
진짜 속임수 진짜 죽음 속으로 뛰어드는 이 미련한 십자가의 도가 아니면
동시적으로 생명구하기는 없다 라는 겁니다
즉 불뱀에게 물려 죽는게 죽음이 아니라 지옥이 아니라 장대 높이 달린 인자
진짜 죽음을 못 봐서 지옥 가는 겁니다
그 진짜 심판 그 진짜 절대죽음을 못 보니까
가짜 죽음으로 저 엄마 까지 죽여버려라 라고 그 의문의 죽음 백날 죽여 본들 소용이 없고
그 가짜 엄마를 죽여서 심판해 본들 또 그런 엄마 계속 끊임없이 나옵니다
그것으 끝맺는 단절을 마침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미련한 복음
곧 예수님의 죽음입니다
이 죽음에 뛰어드는 것이 솔로몬의 지혜이다는 거죠
가짜엄마의 속임수에 제대로 되 속임수 아이고 그것도 속임수냐 우리 연변에서는 그깟 속임수는 속임수 축에도 안 쳐준다 라고 부정의 부정으로
악마가 예수는 바알세물 걸린 대 마왕이라고 악마가 악마로 취급하는 그 악마야 말로
제대로 된 속임수 이다는 거죠
그와 동시에 앞 뒤 모순된 생명구하기를 동시성으로 펼칠때에 말도 안되고
논리적이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고 지해와 총명 스러운것도 없고
그저 인간의 머리애 납득이 이해가 안된다 라는 그 이유 하나 만으로 그냥 미련하다 취급받는
비밀 비유 수수께끼로써의 지혜이기 때문에
그래서 반드시 찢고
그리고 동시에 다시 싸매어 주는
이 미련한 복음
이렇게 미련한 자와 멸망하는 자로 나누시는 토기장이 비유
그 어떤 누구도 동의 할 수가 없는
그래서 모조리 다 지옥에 보내놓고 심판해 놓고서
그 찢은 자리에서
다시 싸매어주시는
땅 끝에서 용광로 속에서 나온 자 만이 남은자로써 새로 창조된 자만이
긍휼의 그릇으로써 삼으시는 두 패 나누기입니다
그 기준이 흥함과 패함의 기준이 바로 예수님의 죽음인 십자가의 도 이기 때문에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신학
그리고 그의 시녀 하녀인 철학 초등학문은
그저 무당만을 양성할 뿐인 거지요
한번은 조카 대학진학때에 조언을 구하길래
이름 있는 대학 이름 있는 교수에게 가라 라고 했다 말이죠
그 이름 있음이 예수님의 이름과 대조 하기 딱 좋잖아요
물론 어떤 누구도 인간 끼리 비교할려고 하지
예수님과 비교 한다는 것은 거부감이 들게 되겟죠
그러나 그게 공부 이거든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아는
내 자신을 예수님과 비교하는 것도 엄두가 안나서 아예 시도조차 안하는데
어떻게 남을
그런 위선 떨으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주님이 붙여준 공부이기 때문에
괜히 이름이 났겠냐 말이죠
그 유명한 자와 예수님을 비교해 보면
예수님이 전혀 유명한 분이 아니다 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겁니다
그런 영웅? 그런 노벨상 깜이 안된다 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마 노벨상 줄려고 한다면 그 상을 박살내고 그 노벨상 시상 무대를 회초리 들고 부수시면서
강도의 소굴이라고 외치실 겁니다
왜? 유명하지 않고 너무 너무 무명하시니까 말이죠
그 무명한 이름을 누구든지 부르면 구원을 얻는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왜? 아무도 찾지 않는 분이시기에
그 반대로
아무도 부르지 않던 곳에서 부르신 바 되고
아무도 찾지 않던 곳에서 찾으신 바 되시겠다 라고
인간 쪽에서 자발적으로 유명한 이름이니까 부르는 그 부름을 차단하시는
절대로 부르기 싫은 이름으로 오시겠다 라는 겁니다
왜 멸망하는 자 이기 때문에
임금 삼고자 할 때 임금 되시기 싫다 라고 도망치시니까 말이죠
이 예수 라는 이름을 브랜드 상표로 이용해 돈 벌레로 기생하는 기생충들이 오늘날 강도의 소굴 교회이니까 말이죠
그들 조차도 멸망하는 자로써 주님이 만드신 겁니다
그 속에서 찢고 빼내신 다시 쌔매어 준 땅 끝에서 나온 자가
이 미련한 복음이 나의 낭군 이시군요 라고 뒤에서 껴 안는 겁니다
왜 미련한 복음은 미련한 자를 찾으실까요
똑똑하고 총명하고 지혜롭고 건강하고 의로운 자 쌔고 샜는데
그 허다한 다수를 마다하고
아무 쓸모 짝도 없는 자를 그 죽은자와 방불한 자
그 무태한 자
그 아무것도 없는 자를 가지고서
왜 산자를 페하시고
복태를 유산케 만들고
부자들을 다리 걸어 넘어뜨리는 실족케 하시는 겁니까
이 땅 위의 인간들은 예수님을 죽인 세상을 갖추었다 라고
그 죄가 인간 보다 먼저 있었기에
그 죄를 상대하러 왔다 라고
이미 십자가의 도가 먼저 떳가에
그 증상물로써
미련한 자와 멸망하는 자로써 두 페로 나누어 지기 떄문입니다
이쪽에 나 할래 하고 잡아본들 쭐꾸덕 미끄러집니다
주체는 기능이지 비존재 이지
인간은 그 주체의 대상물일 뿐입니다
절대로 인간은 주인공이 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선악을 아는 나무의 실과를 먹어서 하나님과 같이 되었어도 말이죠
아무나 느부갓네살이 되거나 애굽왕 바로왕이 될 수 없어요
악령을 받은 자만이 멸망하는 자가 되듯이성령을 받은 자 만이 미련한 복음을 믿는 미련한 자가 되는 겁니다
이것이 성령이라는 총명함을 받은 자 만이 짐승의 수를 셀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기에 생명구하기의 대상물이 되고
그렇지 않은 자는 사다리 걷어차는 자가 되겠지요
진노 멸망함이 주체가 되지
그릇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른 것 곧 긍휼을 담을래 라고 그릇 주제에 토기장이처럼 행세 할 수 없습니다
어리석고 미련한 자를 택하심이지
나 어리석음 벗고 미련한 벗어서 나 같은 것은 진노의 그릇이 돠어야 해 라고
진노를 아무리 담는다 라고 해서 주체는 그릇이 될 수 없습니다
선택할 권한이 없다 말이죠십자가의 도가 먼저 있었고이 미련한 복음이 먼저 떠 버린 이상
그 증상물로써만 두 그릇이 나타나야만 하기에
우리는 오히려 이 앞뒤 모순된 찢으셨음과 다시 싸매어 주시는
이 간극 이 공백 이 십자가의 태에서 새롭게 테어나고지
심판 속에서의 구원을
용광로 속에서 불순물을 다 빼버린 거룩 곧 공의를
이게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하나님의 능력을
그것도 생명구하기 하시는 그 섬기심 덕분에
대신 매 맞으심 덕분에
우리는 용광로 속에서 그 대신 매 맞으심을 비로소 봄으로써
이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들려 주셨고 그 들음으로 믿음을 선물 받아서 미련한 복음을 듣게 된 것이지
들음은 믿음에서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지지난 주 로마서처럼 말이죠
22-062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땅끝,사망권세 멸밍까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6-18)
2025. 8. 17.
(롬 10:17, 개역)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인해서 멸망해야 될 것이 무엇인지를 거쳐서 생명구하기라는 하나님의 능력 곧 구원을 보는 겁니다
의도적으로 물에 빠뜨려서 죽음 심판 곧 용광로 속에 집어넣으니
멸망받아 마땅한 자임을 알고 우는 자로
새롭게 남은자를 만드셔서
이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안식일날만 골라서 병고쳐주심을 통해서
오히려 안식일 지키는 자들이 바로 멸망할 자 임을 가르시고자
의도적으로 안식일날만 골라서 우물에 빠진 자를 건지신
이 하나님의 능력이 먼저 떳고 생명구하기가 먼저 떳음에
이에 반발하는 멸망하는 자를 구분짓기 하시는 겁니다
멸망하는 자들은 안식일 지키는 짓으로 구분짖기의 달인으로 살았는데
정작 본인들이 하나님의 능력인 생명구하기 그것도 자신들과 반대로 안식일만 생명구하기를 통해서
이 껍데기 모양과 경건의 능력 하나님의 능력 죽은자를 살리는 능력과 대립구도를 펼치심으로써
자신의 토기장이 되심을 나타내시듯이
인간이 죄 보다 먼저 있지 않았고
그 죄가 은혜 곧 미련한 복음 죽은자를 살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은혜 보다 먼저 있지 않았기에
처음과 나중 되신 예수님의 죽음으로 출발한 믿음 덕분에 우리가 나음을 고침을
즉 하나님의 능력을 비로소 보는 겁니다
비로소 즐기고 누리는 겁니다
이 찢으심 속에서 다시 싸애머 주심을 누리는 거죠
잃어버린 적이 없는데 되찾음이 없듯이
심판 속에서 구원을 펼치시는 이 하나님의 능력 곧 생명구하기가 아니였다 라면
(고전 1:19, 개역)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고전 1:20, 개역)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고전 1:21, 개역)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우리는 평강이다 평강이다 라고 외치는 그 거짓선지자의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날수가 없습니다
???쓰가 교회는 세뇌하는 곳이다 대 놓고 말했잖습니까
바로 그런 경건의 껍데기 대충 대충 고치는 그것을 깨뜨리시는 상대적인 미련한 복음인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서 우리는 이 십자가의 도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그냥 우리 그리스도인이 아니지요 용광로 속에서 잃어버림 속에서
우리가 에스겔처럼 포로 됨 속에서 70년 만에 되돌아 옴 속에서
비로소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너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그의 백성을 다스리는 다윗을 왕으로 주겠다 라고
아니 이미 죽은 다윗을 왜 소환할까요
다윗 자체가 약속 덩어리로써 묘사 됨으로써
죽음에서 나왔고 죽음을 이긴 자 라는 겁니다
여부스 땅 마지막 가나안 땅을 점령한 자는 그것도 400년 만에 말이죠
비로 평화가 오는 겁니다
아니 죄가 그대로 썩여진 혼합물 상태이면 그게 무슨 화평이요 평화 입니까
그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그 장소가 바로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지는
시온이라는 세상의 중심입니다
그 교만한 땅을 깍고 깍아서 평평하게 거룩으로 불도져 밀어 다리미질 한
사망 권세를 이긴 그 터 위에
주님 자신이 친히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참성전 걸어다니는 성전으로써 세워짐으로써
비로소 전쟁의 마침인 평화가 오는 겁니다
이 죄 해결 하지 않는 자는 왕이 될 자격이 없고
성전을 지을 자격이 없지요
그런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은
어차피 기초만 딱고 완공을 하지 못하는 그것도 46년이 지나도 말이지요
그 의문의 반복인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 헐라
삼일 만에 짖겠다 그 삼일이 바로 죽음의 간극 아닙니까
절대 심판 절대 죽음 절대 지옥이라는 그 지옥의 세 구덩이를 거쳐서 나온
완벽한 찢으심에서 나온 완벽한 다시 싸매어 주심
그 죄악을 그 가나안 족속을 그 사망 권세를 다 이긴 자가 다윗이었듯이
이 다윗언약을 새언약으로써 다윗을 왕으로 주시겠다 라고 했을때에
그 어떤 신학이나 교리로 로써는 이 다윗이 해석이 안 됩니다
다윗의 자손이라고 신학적으로 이론화 했는데
어라 다윗의 조상으로 와 버렸네요
누구에게 멸망하는 자들에게
안 맞게
교리랑 신학이랑 틀리게 와 버렸고요
반대로 미련한 자들 다윗을 들어본적도 없는 이방인에게서는
다윗 자체도 모르는데 있어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십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저 소경입니다 고쳐주세요 라고 고래 고래 고함을 칩니다
(마 9:27, 개역)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가실새 두 소경이 따라오며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왜 이런 미련한 방식을 주님은 오히려 택하실까요
인간들은 멋들어진 바리새인의 방식만을 추구하고파 하는데 말이죠
그카이 제자들 곧 유대인들이지요 저런 저런 무례한 예의 없는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는 이들 두 소경을 쫓아내기 바쁘다 말이죠
마치 어린아이들이 호산나 호산나 찬양하면서 예루살렘을 나귀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찬양할때에
제사장들과 종교지도자들이 시끄럽다 라고 채통을 지키라고 하듯이
왜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 소동을 일으키느냐
왜 떠들썩 떠들썩 시장 마당터 같은 지마음대로 뛰노는 아이들 놀이터로 만드느냐 미련하고 어리석구나 좀 조용히 해 줄수가 없느냐?
그러나 주님은 이 미련한 어린아이의 찬양을 멈추실 마음이 추호도 없고 오히려 더더더 이 미련한 어린아이의 찬양을 맨 앞에 압장 세우시는 것을 고집하십니다
(마 21:15, 개역)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의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아이들을 보고 분하여
(마 21:9, 개역)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질러 가로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마 21:10, 개역)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가로되 이는 누구뇨 하거늘
(마 21:11, 개역) 무리가 가로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마 21:12, 개역)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마 21:13, 개역)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마 21:14, 개역) 소경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 주시니
(마 21:15, 개역)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의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아이들을 보고 분하여
(마 21:16, 개역) 예수께 말하되 저희의 하는 말을 듣느뇨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마 21:17, 개역) 그들을 떠나 성 밖으로 베다니에 가서 거기서 유하시니라
미련한 아이들의 찬양이면 찬양일수록 더더욱 분노케 화나게
속을 빡빡 긁어대기에
분하게 안 여기고는 못 배기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저들이 멸망하는 자 들 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들이 소리 지르지 않는다면 돌들을 통해서라도 소리 지르게 만드시겠다 라고 하십니다
(눅 19:40, 개역)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 하시니라
(눅 19:28, 개역)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
(눅 19:29, 개역) 감람원이라는 산의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왔을 때에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눅 19:30, 개역)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 사람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의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너라
(눅 19:31, 개역) 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이렇게 말하되 주가 쓰시겠다 하라 하시매
(눅 19:32, 개역)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가서 그 말씀하신 대로 만난지라
(눅 19:33, 개역) 나귀 새끼를 풀 때에 그 임자들이 이르되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
(눅 19:34, 개역) 대답하되 주께서 쓰시겠다 하고
(눅 19:35, 개역)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눅 19:36, 개역) 가실 때에 저희가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
(눅 19:37, 개역) 이미 감람 산에서 내려가는 편까지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의 본 바 모든 능한 일을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눅 19:38, 개역) 가로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눅 19:39, 개역)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눅 19:40, 개역)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 하시니라
(눅 19:41, 개역)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눅 19:42, 개역)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눅 19:43, 개역)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눅 19:44, 개역)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눅 19:45, 개역)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시며
아니 다윗이 드디어 가나안 족속을 다 물리치는 드디어 사망권세를 다 이기고
죄에서 자유케 하는 희년을 선포하는데
누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돌들 까지도 다 신나서 춤추는데? 누가 잠잠하겠느냐 말이죠
이 하나님의 능력인 생명구하심을 누리게 되는데 말이죠
그런데 그들은 채통 채통 그놈의 윤리 예절 도덕 등등을 따지는 겁니다
이런 미련하고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겠다 라고 하는 겁니다
섹계 자체가 다릅니다
멸망하는 자 곧 지옥에서 땡기는 자는 사울왕처럼 가나안 족속 몰아내기에 관심 없습니다
지금의 이스라엘 보세요 이제 와서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다 몰아내겠다 해 본들
예수님의 사망 권세 다 이기심은 여전히 무시하는 지옥에서 땡기는
멸망하는 자로써 그 놈의 채면 그리고 그 놈의 선민의식 그 딴거나 따지고 있지
예수님의 생명 구하기 다윗의 왕 됨을 아예 관심이 없어요
그러니까 그들은 혈통적 이스라엘만 주장하고 있지
진짜 이스라엘의 기능은 아예 모르는 자들이요
말씀에도 관심없습니다
신학자들이 생명구하기 라는 하나님의 능력에 관심 없고
그저 경건의 모양 껍데가 대충 대충 고치고
평강이다 평강이다 주문을 외어서 세뇌 가스라이팅만 할 줄 알아지
정작 그것이 멸망하는 자들인 본색인 사다리 걷어차기입니다
자기들은 좋은 꼴 좋은 물 마셔 놓고
사다리 타고 올라오는 자들이 못 먹고 못 마시도록 발로 밟아버리고 사다리를 걷어차는
한국 기독교를 보면 꼭 멸망하는 자들 다운 지옥의 사람들 답지
누가 미련한 복음인 십자가의 도를 믿는 하나님의 능력 곧 생명구하기를 바라는 자 봤습니까?
이미 자기들은 생명 건짐 받았으면 사다리 타고 올라오도록 해야지
이 놈의 교회들이 오히려 더 했으면 더 했지
아예 못 올라오도록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더라 말이죠
마귀집단입니다 강도의 소굴입니다
부자 약대(낙타, 벤츠)는 삼키고 이용해 먹을 꺼리가 있으니까 말이죠
단물 다 빠진 하루살이가 되면 걸러내는 겁니다
흡혈귀들이 따로 없어요 피 빨아먹고 버립니다
그들에게 생명구하기 라는 사다리타고 올라올수 있도록 하는 그 섬김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막고 막는 어떻게해서든 막아야만 하는 겁니다
그거 올라오면 경건의 껍데기는 다 무너지거든요
주님의 능력인 십자가만 남게 되면
자기들이 그 동안 쌓았던 자기 의로움이 하루 아침에 공든탑 다 무너지는 겁니다
그래서 성전을 헐라 라는 예수님을 반드시 교회는 죽여야 하는 겁니다
자기 교회가 있는데 따로 교회를 세워 버리면
손님 다 빼앗기면 장사 접고 교회 다 텅텅 비게 되는 것이지요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이 바로 옆 구역에서 세례를 주면
이제 세례요한 스승님의 세례는 장사 접게 됩니다 이거 큰 일입니다
생명구하는 사다리 올라오도록 하는 일이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인데
있으면 있을수록 더 좋지
왜 장사 접게 된다 라는 위기의식을 느낄까요
나의 존재가 예수님의 죽음 보다 먼저 있다 라고 우기고
바로 이런 멸망의 죄성이 나의 존재 보다 늦게 있다 라고 여기는 겁니다
다윗은 가나안 족속을 몰아내는데 있어서 400년 전 아니 노아언약때 까지 올라가면
다윗이 BC 1000년 천년이고 노아때는 BC 2300년 이거는 노아홍수때 이고
노아자체가 언약으로 동원이 된 탄생이면 600 살 때 이니까 더하면 BC 3100년
즉 다윗은 천을 다시 빼기 하면 2100년 전의 약속을 기억했고 그 약속만을 따랐다 라는 겁니다
그런 오래 전의 자기 존재 보다 먼저 앞서 있었던 언약을 기억해서
함과 가나안을 저주한 그 노아언약을 성취한다 라는 것은
기억도 못하는 판국에 누가 그 케케 묵을 과거의 구닥다리 약속을 믿고 실현하고자 하느냐 말이죠
지금 현재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암 ???과 가나안 땅이라는 지옥에서 건져 주소서 라고
하나님의 능력인 샘명구하기를 바라보면
누가 생명의 밧줄을 내려 달라고 구하는 자 있겠습니까
오히려 남을 따라 잡을려며는 다만 악에서 구해 달라가 아니라
그 악을 잘 활용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것이 바로 음녀 라는 종교입니다
그러나 이 종교는 정치를 늘 이기고 파서
국가라는 짐승에게 돈을 갇다바치지 아니하면
짐승의 등 위에 올라 탈수가 없어요
하나님의 보좌가 비어 있기만 해도 침을 저절로 질질 흘리는 그 음녀가
국가라는 짐승의 등 위에 올라타는 가스라이팅 짓을 멈출 리가 있겠습니까
바로 이런 멸망하는 자들의 손에서 미련하게 죽는
목베인 영혼으로 만들어서
저들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실때에
분명 모세와 엘리야를 큰성 바벨론이 죽여서
덤비면 까불면 이렇게 된다 라고 공포정치로 공공 장소에 시체를 매달아 놓았는데
어라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서 없더라 말이죠
이미 그들은 배에 빵구멍이 난 자 인데
아무리 배를 찔러도 빵구멍에 칼 찌르기
칼로 물 베기 라는 헛짓 꺼리 밖에 안되는 겁니다
이미 굵은 베옷을 입었는데 말이죠
이것은 마치 굽이 이미 갈라져 있다 라는 거죠
아무리 죽여도 피 안난다는 겁니다
이미 죽은 자에서 살아난 이미 굽이 갈라진 정결한 짐승처럼 거룩하기에 말이죠
이것이 이 십자가의 도가 먼저 떳기에 벌어지는 현상으로써
두 세계를 갈라버리시는 두 패 나누기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한 멸망하는 자와 미련한 자를 두 그릇으로 만드시는 토기장이 되심을 나타내시는 겁니다
이런 하나님이 되시겠다 고로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너는 나의 백성이 된다 라고
이미 보라 내가 새 일을 다 이루어 놓았다 미래완료를 선포하시고
들어가시는 겁니다
인간의 믿음이 아닌 주님의 믿음 곧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믿음의 선물을 통해서 우리는
그 결과 그 원인 없는 결과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좌 용서하시는 그 행복
그 희년을 땅끝에서 즐기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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