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욕망을 즐겨라 (당신의 증상을 즐겨라) : 막살아라
막사신 예수님
이스라엘의 구약 역사를 한마디로 요약해 보면
이스라엘의 수 많은 사람을 하나의 인간으로 집약해(보편적 단독자)
즉 한 아담으로 집약해서 졸지에 그 인생을 규정하듯이
구약에, 구약 역사의 틀에, 가두어버리는 것이다.
단순히 인간의 삶이 축적되어서 가두는 식이 아니라
묵시와 하늘의 영적인 세계 천상회의에 등장하는 여호와 하나님, 천사, 그리고 악마
곧 미혹하는 영까지 다 동원이 되어서 인간의 삶을 인간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인간을 배제하면서 그렇게 규정해 버리는 운명의 길로만 인간의 길을 미리 깔아버렸고
그 길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으로 단정 지어버렸다.
바로 그런 인간을 하나의 카페트로 깔로서 예수님은 등장하신다.
곧 사랑이다.
결국 그 어떤 인간도 예수님을 안 죽이고는 못 배기도록 하셨지
단 한명도 십자가의 사건에 예외적인 인물이 없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비이스라엘, 언약백성과 비언약백성으로 분류시킨 그 말씀 스스로가
다윗 이후에는 이스라엘 속에서 이스라엘을 분절시켜 남은자 곧 잃어버린 이스라엘을
또 갈라놓는다.
그 남은자는 최후의 1 인으로만 남기고자 누락을 목적으로써
최종적으로 마지막 이스라엘에게서 비로소 참이스라엘이 됨으로써
그 동안의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이 아니였음을 드러내고
동시에 그 참이스라엘 예수님으로부터 새이스라엘이 도출되는 식이다.
이것이 주로부터 와서 주께로 말미암아 주께로 돌아가는
인간의 창조개념을 누락시키는 새창조의 의미이다. 즉 주가 주를 창조하심이다.
십자가란 이스라엘 유대인에게의 증상으로는 걸림돌로써의 십자가의 예수요헬라인 이방인에게는 어리석고 미련함의 증상으로써의 십자가의 예수다.
그리고 이런 주 되심으로 인해 이 참이스라엘 되신 단 한 명의 남은자 예수님의 증상으로써
죄인인 그리스도인이 나타나는 것이다. 피의 증상으로 죄인 중의 괴수의 창조 말이다.
예수님은 이 그리스도의 몸의 머리되심으로써
이 그리스도의 몸들인 신부된 교회를 욕망하셨다.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이다.
내 뼈 중의 뼈요 (뼈의 증상이요 곧 뼈의 차이성이요, 뼈의 이중성)
내 살 중의 살인 것이다. (살의 증상이다. 곧 살의 차이성이요 살의 이중성이다.) 나(유대인,이방인)의 증상으로써 십자가였듯이이제 십자가의 증상으로써 [나]라는 죄인이라는 새로운 족속이다.
즉 이 말은 십자가 자신만이 옳다는 뜻이지
신부 없으면 난 안된다는 뜻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신부라는 여성성에 올인해버린다. 예수님 자신이 말이다.)
기여이 신부는 누가 되었던 되도록 만드는
자신만의 뜻만이 옳도록 하신다는 것이다.(즉 신부는 자신 뿐임을 자신의 살이요 뼈로만 구성하신다.)
그래서 증상이 뼈요, 증상이 살 이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체는 나 라는 주체 곧 예수님 자신이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예수님 자신을 증상 속에서 펼쳐버린다는 것이다.
곧 십자가다.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더냐?
(갈 3:1, 개역)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이 십자가만을 마음껏 누리는 것 뿐이다.
새창조를 누린다는 것은 십자가의 죽음을 즐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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