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고 전해라 ~~~~~~
화로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사 6:1, 개역)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사 6:2, 개역)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사 6:3, 개역)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사 6:4, 개역) 『이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사 6:5, 개역)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사 6:6, 개역)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사 6:7, 개역)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어제 어머니께서 이런 질문을 하신다.
이사야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돼지고기를 먹고 또 제삿상의 부정한 음식을 먹었다고
야단치고 있다고
(사 65:4, 개역) 『그들이 무덤 사이에 앉으며 은밀한 처소에서 지내며 돼지 고기를 먹으며 가증한 물건의 국을 그릇에 담으면서』
(사 66:3, 개역)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으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사 66:17, 개역) 『스스로 거룩히 구별하며 스스로 정결케 하고 동산에 들어가서 그 가운데 있는 자를 따라 돼지 고기와 가증한 물건과 쥐를 먹는 자가 다 함께 망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게 아니다 라고 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꼬투리 잡을려고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그런 것이다고
즉 시간적인 순서상에서(왜? 인간은 시간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갇혀있으니까!!)
돼지고기 또는 부정한 제사음식을 먹어서 그 다음에 이사야의 잔소리 그 다음에 이스라엘 멸망이 아니라
처음부터 이스라엘 멸망이 있고 그 다음 이사야가 이스라엘 멸망에 부합된 이스라엘백성의 행동을 꼬투리 잡는 식이다고
이것은 마치 지난시간에 언급한
왕 임금의 일만달란트 용서가 먼저 있고 그 다음 백데라니온(3개월치 삯 월급)이 있고 그 다음 빚진자가 있다는 것이다.
(농부비유도 그렇다! 제일 마지막 딸랑 한 시간 일한 자에게도 똑같은 임금을 줌으로써 주의 선하심을 증폭시킨다.)
(마 20:10, 개역)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저희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마 20:11, 개역)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가로되』
(마 20:12, 개역)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마 20:13, 개역)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마 20:14, 개역)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마 20:15, 개역)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마 20:16, 개역)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빚진자가 먼저 있고 그 다음 일만달란트 탕감이 있고 그 다음 벡데라니온 띠먹고 도망친 놈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말이다.
그렇기에 정작 용서 받은자는 없는 채로 용서는 오히려 더 초과잉적인 용서가 증폭되는 의미를 나타낸다.
용서의 왕 중의 왕 으로써 말이다.
결과가 먼저 있고 원인은 없다는 것이다.
(믿음에서 믿음으로, 결과에서 결과로, 미래완료에서 미래완료로)
모호한 의문은 아예 일체 없다는 것이다. 또렷함 뿐이다.
결국 이스라엘 멸망 자체가 구원이고
이사야 선지자는 이미 완성된 이스라엘을 봐 버렸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멸망의 꼬투리를 잡는 식인데
여기에 정작 거짓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은 절대 망할 리가 없다고 한다.
언약의 민족이 왜 망하겠느냐? 그렇게 되면 하나님 본인이 약속을 어기는 셈인데!!
아니다 마귀는 따진다. 마치 하나님의 편에 선냥!!! 그리고 인간 편에 서서 인간구원을 위하는냥 변호하듯이 말이다.
평강이다 평강이다 절대로 망할 리가 없다~~~~~~~
그러나 이사야 딸랑 홀로 이스라엘의 멸망을 외친다.
이미 이스라엘의 완성을 봐 버렸기 때문이다.
마치 이것은 시편에서 다윗 홀로 예수님을 외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사울왕 패거리 사실상 이스라엘 전체가 다윗 하나 죽일려고 들썩 들썩 거리듯이
아무리 다윗을 쫏아내고 죽일려고 창을 던지고 해도
정작 다윗은 이 예수님을 보고 기뻐하면서 룰루랄라 노래를 부르고
정작 온 이스라엘은 다윗 하나 죽일려고 들썩 들썩 해도
밤새도록 허기진 굶주린 배로 잠 한숨 못자고 불안해 한다.
이사야 딸랑 하나 죽일려고 이스라엘 전체가 들썩 들썩 거리고
백성들은 이 딸랑 한 명의 이사야 말보다
수 많은 거짓선지자의 말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바벨론 포로 때 부터 거짓선지자는 다 사라지고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마치 다윗 하나, 이사야 하나 죽일려고 전체가 들썩 들썩 거리듯이
아기 예수님 하나 죽일려고 온 세계가 들썩 들썩 한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도 이사야도
아기 예수님의 어린양 승리의 완성을 보고 기뻐하듯이
이스라엘 멸망 자체가 구원임을
그래서 죽어도 상관 없다고
멸망해도 괜찮다고
이미 넉넉히 이겼고 다 이루었다 라는
십자가의 노래를 들어버렸기 떄문에
봐버렸기 때문에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냐고 노래부른다.
그들은 미래완료를 현재 속에서 증거하기 때문에
멸망해도 괜찮다고 외치는 것이다.
오히려 용서가 취소 되거나 임금이 손해 보는 것이 아니라
취소는 커녕 손해는 커녕 더더욱 풍성해 지기에
무릇 있는 자는 더 받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는 식이다.
이것을 마귀들은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용서 받은 자도 없고, 용서하심도 하나마나 한 짓이다고
반발하는 이 숨어있는 악의 실체를 들추어 내시기 때문에
더더욱 풍성한 것이다.
멸망이 곧 구원이다.
그래서 죽어도 상관없는 것이다.
이미 십자가의 승리가 먼저 있었고
용서가 먼저 있었기 때문이다.
내 열심히 특심인데 나만 남았나이다 이게 뭡니까? 쫄딱 망했고 쫄딱 실패 뿐이니!!!!
남은자 7천명 있다고 전해라 ~~~~~~
겨우 여태껏 살아도 7명 밖에 용서 못했습니다.
남 용서 할 생각하지 말고
너나 용서 7에 70번 받아야 한다고 전해라 ~~~~~~~
이스라엘 절대 망할 리가 없습니다. 다른 선지자는 다들 절대로 망할 리가 없다고 하는데
왜 당신 이사야는 늘 삐딱하게 이스라엘 멸망을 외치십니까?
멸망해도 괜찮다고 전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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