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 아비가 신 포도를 먹음으로 아들 이가 시다는 이 속담을 다시는 쓰지 못하리라 (겔 18, 1- 4)

(겔 18:1, 개역)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겔 18:2, 개역) 『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찜이뇨』
(겔 18:3, 개역)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이스라엘 가운데서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
(겔 18:4, 개역)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

(겔 18:1, 현대어) 『[조상 탓으로 망하지 않는다] 여호와께서 또 내게 말씀하셨다.』
(겔 18:2, 현대어) 『어찌하여 지금 이스라엘에 `조상이 신포도를 먹어서 자손들의 이가 시다'라는 속담이 퍼져 있느냐?』
(겔 18:3, 현대어) 『나 여호와가 확실히 살아 있음을 걸고 맹세하지만 너희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다시는 이스라엘에서 그런 말을 입에 담지 못할 것이다.』
(겔 18:4, 현대어) 『모든 사람의 생명은 내 손안에 쥐어져 있다. 아비의 생명이건 아들의 생명이건 다 내 손안에 쥐어져 있다. 그 둘이 다 내 소유물이다. 그러니 누구든지 죄를 짓는 사람만 죽게 된다.』


이스라엘이 왜 심판받아 멸망하는고 하니
바로 율법이 없어서 망한다 라고 했습니다.

그럼 안 망하게 할려며는 이 율법을 있게 하면 되겠지요?

그래서 생겨난 집단이 바로 바리새인 집단입니다.
율법이 없어서 망한 것을 알고 이제부터는 율법을 지키겠다 라고 생겨난 집단 파벌이였던 거죠

율법을 이제부터 있도록, 있게 만들면 되잖아 라고 말이죠

그런데 율법의 있고 없고의 존재성 유무가 아니라
인간이 율법을 있도록 존재하도록 만들면 되잖아 라고 사고하는 방식 자체가
율법의 취지를 모른다는 겁니다.

그러니 껍데기만 지킬려고 달려들 뿐이지
그렇게 지키는 것이 도리어 우상숭배인줄 모르는 겁니다.

성화론자들(개혁주의자들) 다 이래요

전에는 예수님을 모르고 살다가 이제 예수님을 알게 되었으니
율법을 지키겠다
말씀을 지키면서 살겠다 라고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그러면 그럴수록 더더욱 율법을 어기게 되는 줄 몰라요
자기 개인의 숙제로 볼게 아니라
그렇게 마음 먹었던 자들
바리새인들을 보자 말이죠
과연 율법을 지킨게 맞는지
도리어 어긴 것인지
모든 인간의 대표성으로 바리새인을 세웠으니
그들과 나는 다르다 라고 나오면 안된다 말이죠
말씀을 무시하는 것과 같다 말이죠
괜히 바리새인을 언급 하는게 아니다 말이죠

오늘 본문도 바로 그런 취지입니다.
우리가 앞의 에스겔을 살펴보면서
주님은 자꾸 이스라엘이 왜 멸망했지는지에 대한 과거를 지적 하시는 겁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는데 왜 지적해서 뭐 하냐 말이죠
맞아요 이미 지나갔어요

아 그런데 그 과거가 지금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과거의 문제로 끝내는 입장에서 지적하는게 아니라
지금 현재의 문제로써 지적 하시는 겁니다.

네 맞아요 바로 우상숭배 문제입니다.
인간의 죄는 딱 하나 이다 라고 했습니다.

선악을 아는 것 곧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과 같이 되었기에
그 증상이 바로 우상숭배 곧 자기를 위한 하나님을 믿고 율법을 지키고 
자기 구원을 위해서 행동하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이게 바리새인 곧 유대인이요 오늘날 교회사람들이 다 이렇다 라는 겁니다.

자 그렇기 때문에 눈치를 채신 분이 있겠죠
율법을 주님께서 지금 운운하시고
과거의 우상숭배를 지금 운운하신다는 것은

율법 자체가 지키냐 못 지키냐의 유무를 따지고자 함이 아니라
이 우상문제라는 과거의 문제가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현재의 문제
또 미래의 문제로 자리잡고 있는 이상
인간은 곧 이스라엘은 이 이스라엘을 심판 하시는 그 이유로써
율법이 없어서 망한다 라는 취지를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율법이 없다 라는 말은
지키냐 못 지키냐가 아니라
율법이 없기에
우상숭배에서 못 벗어난다 그래서 망한다 라는 겁니다.

그럼 율법이 주어지게 되면
지키냐 못 지키냐가 아니라
율법이 누구를 곧 누구 라는 인물
그것도 그냥 인물이 아닌
누구 누구의 아들

이 인자를 율법이 소개하는 자로써 언급하는데 있어서
그 인자로 인해서 이 우상문제가 해결된다는 차원에서
율법을 언급하는 거지
율법 지키라는 소리가 아니다 라는 거죠

그럼 왜 그 인자 곧 누구 누구의 아들이 중요하냐
그 분이 이 우상문제를 끊어버린다 라는 겁니다.

오늘 속담이 나오는데 
이스라엘의 속담에 아비가 신 포도를 먹어 쓴 맛을 보게 되면
그 아비의 자식인 아들의 이가 포도를 먹지 않고서도 쓴 맛으로 인해 이가 시리다 라는 겁니다.

속담이란 원인 없는 결과 이다 라고 했지요

이유 없는 심판 곧 미움을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에서 곧 선악의 자리에서 퍼붓는 것이
바로 인간의 신념인 믿음이요 행동 행위 이듯이 노동 이듯이

그래서 인간은 이유 없이 권력을 가지고자
이유 없이 높아져야 한다 말이죠

지난 주 마태복음에서 천국에서 누가 큰 자 입니까 라고 제자들이 묻듯이 말이죠
나는 이유 없이 큰 자가 되어야 한다
곧 나는 이유 없이 구원 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
나는 이유 없이 천국에 가야 한다 라는
이 원인 없는 결과 때문에

인간은 비로소 행동에 나서게 됩니다. 믿고자 해요
믿고픈 것만 믿는 보고픈 것만 보는 확증편향처럼 말이죠

자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구원 될수 있는 방법들을 끌어모을 겁니다.
마치 바리새인이 율법을 지킬수 있는 방법들을 끌어 모으듯이
요즘 같으면 그런 책을 사서 읽는다든지 그리고 실천하고
또 유튜브에 그런 방법을 알려주는 내용을 검색해 찾아서 보고 실천에 옮긴다든지
그것이 모아져서 인간의 역사를 구성한다 말이죠

마치 외국에서 한국의 k 방역을 따라할려고 하듯이 말이죠
미국의 트럼프는 자꾸 한국을 수십번이나 인용하는 이유는
지금까지는 국민을 살리는 방법을 제일 잘 하고 있으니
우리 미국도 잘하고 있다 라고 한국과 자꾸 비교를 하는 겁니다.

왜? 구원 받는 방법이니까

그래서 주관 주관이 모여서 객관이 되고 그 객관이 다시 속담이 되는
방법을 알아챘다는 거죠

바리새인이 아 율법이 없어서 망했구나 라는 방법론을 찾아낸 것이지
율법의 취지를 모르는 겁니다.
그래 놓고 속담화 시키는 겁니다.
하나님을 흉내내듯이 말이죠

율법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이제 안 망하게 된다
아니 안 망하게 할 것이다 라고
율법을 건드리는 예수님을 의도적으로 죽이게 되는 거죠

속담을 지킬려고 말이죠
율법이 아닌 율법을 지켜서
율법이 없어서 망한 자가 아닌 율법이 있어서 안 망하는 자로 말이죠
그런 식으로 율법을 끌어 모았듯이

오늘날도 똑같이 이런 속담이 퍼져 있습니다.
웃껴요 역사는 반복 되니까 말이죠 왜냐하면 마침이 없거든요
한번 나간 주님의 의로움은 다시는 되돌아 옴이 없다고 했는데
인간들의 속담은 자꾸 되돌아 와요
왜? 이루어지는 법이 없으니까
안 이루어 지니까 말이죠

그게 바로

(출 20:5, 개역)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출 20:6, 개역)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이 본문을 만약 바리새인이 십계명을 지키는 이유로써
이 속담을 5절 아비로부터 아들까지 삼사 대까지 미치게 할 것이다 로
주님이 적용하시는게 아니라
정작 주님은 철회 하시는데
인간은 그 철회하시는 예수님을 향해서 도리어 적용하고 있는 겁니다.

오늘날도 똑같다고 했는데
목사를 건드리면 삼 사 대가 망한다 라고 말이죠

이 속담이 대중에게 안 먹혀 들면 해프닝으로 끝날텐데
도리어 더 잘먹힌다 라고 하면
그것도 성경에까지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말이죠
이 속담 깨뜨려야 할까요 말까요?

율법 곧 십계명을 자기를 위하여 곧 우상을 위하여 도리어 사용하고 있잖아요

(출 20:6, 개역)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5절 바로 밑에 6절은 이 첫계명의 취지 또한 
주님의 사랑
곧 너희들 강도 만난 자들인 다 죽어가는 너희들을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이웃이 되어주어서

(출 20:2, 개역)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어 주었다 라는
남을 사랑하는 것이 율법의 완성
곧 십계명의 완성
첫 계명 나 외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왜? 너를 등쳐 먹는 놈이니까 말이죠

아 그런데

우상을 섬겨서 망한 이스라엘이
곧 율법이 없어서 망한 것이거든요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없어서 망했다 말이죠
자꾸 우상을 쫓고 있었지
주님을 안 섬겼다 말이죠 이웃을 사랑하시는 이웃인 주님을 배격했다 말이죠
이런 취지를 모르니까 
아 그래 이제 율법을 섬기자 라고
율법을 우상화 해요 글쎄

그러니 이 속담이 주님으로부터 깨어진다 라고 하셨는데
지금까지 목사 건드리면 삼 사 대가 망한다 라고
저주를 속담화 해서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말이죠
앞으로도 미래에까지도 그래요

냅뚜세요 어차피 망한 자들이니까 말이죠

미국 트럼프가 미국보다 앞서나가면 삼 사 대가 망하게 하겠다 라는 이데올로기를 형성하는 것과 같다 말이죠

그러니 종교는 곧 국가주의는 반드시 권력화 해야 한다 말이죠
정치는 이 국가를 권력화 하는데 있어서 종교를 이용하는 거죠
종교는 이 국가를 올라타기 위해서 돈을 뿌려야 하고요

아무튼 트럼프는 한국을 자꾸 언급하면서

당분간 새로운 방법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 방법이 지금 현재 당장은 유일한 구원의 방법으로써 권력화 되어서
즉 속담이 되어서
이데올로기가 되는 거죠
무조건 저 방법을 따라하면 된다 라고 말이죠

자 이렇게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나타나서 역사화 곧 객관화 되어가는 과정을 거치게 되면
그게 하나의 역사가 되는 거죠
속담처럼 원인 없는 결과가 되는 거죠

이게 정상이다 말이죠 어떤 누구도 이의를 걸지 않아요
다 동의한 것이 속담이니까

그런 역사를 깨뜨리고자 등장하는 것이 바로 묵시 곧 말씀이다는 겁니다.

지난 주 까지만 해도
이유 없는
원인 없는 결과 로써 너희는 그 어미에 그 딸로써
창녀로 이미 태어났기에 무조건 심판 받도록 되어 있다 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율법이 가입된 이유 이다고도 했지요

아 그런데 이 율법에 의해 무조건 죄 아래 갇혀서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율법을 쥐고서
심판 받는게 아니라 심판하는 자리에서 정죄를 남발하고 있으니

자신의 처음자리 처음사랑을 스스로 짤라 버리고 있더라 말이죠
누워서 침 뱉기 하듯이 말이죠
이스라엘의 특이성 곧 처음사랑을 발로 차요
자신들의 처음자리가 바로 고아 과부 나그네 였는데
이제 고아 과부 나그네를 압제하는
신원치 않고
강도 만난 자를 지나쳐 가는
대제사장 레위인 곧 거룩을 지키는 자들이다는 겁니다. 율법 지키는 자 말이죠

왜? 삼 사대가 망하면 안되니까
그래서 사랑 없이 율법을 껍데기로 지키는 겁니다.
아니 주님 보시기에 그래 고맙다 율법을 지켜줘서 참으로 고맙다 하실까요?

이 원인 없는 결과인 속담을 깨뜨리는
더 나은 원인 없는 결과인 율법의 완성인 남을 사랑하는 이웃사랑
즉 까닭없이 값없이 팔렸다가 다시 까닭없이 값없이 속량하시는 주님의 의(거룩) 완성

곧 율법의 완성을 주님께서 모순 되게 펼치셨을때에
누가 과연 반발 하겠느냐 말이죠

당연히 이유 없이 나는 구원 받아야 한다 라고 그래서 율법을 지켜왔던 자들이 반발할꺼 아니냐 말이죠

율법 안 지켰으면 반발할 이유가 전혀 없어요
괜히 지키는 바람에
더더욱 반발해요

탕자가 돌아왔다 라고 살진소 금가락지 새신발 새망토를 입혀 주며 잔치를 벌리니까

맏아들이 왜 반발하는고 하니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이 없기에
율법을 지키고
말씀을 지켰기에 반발한다 말이죠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이 있다면
따로 자신을 위한 잔치를 원하지도 않았을텐데 말이죠

탕자처럼 말씀을 어겨서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이였다면
막살았던 탕자였다면
맏아들이 반발할 이유가 전혀 없지요
도리어 적극 참여하게 되지요

어디에 적극 참여합니까
잔치에 말이죠 잔치에

지금 맏아들은 탕자를 맞이하는 그 잔치를 싫고 (율법의 완성인 주님의 참사랑은 안 보이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이 의의 잔치는 싫고 (그저 저 때려죽을 원수 탕자를 위한 잔치로 보이니 내 잔치 돌려도 라꼬 반발하는 겁니다.)

그런데 탕자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기에 탕자라는 개인이 없어요
이스라엘 곧 그리스도의 몸 뿐이예요
같은 이스라엘 집단 곧 몸이면 완전 기쁨 핵기쁨이 될텐데
자신을 잃어버렸다가 되 찾음이 없으니까
자아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몸이 되겠냐 말이죠
몸이 아닌 개별자 이지요
뚝 떨어져 나온 손이 더러운 발을 정죄할 뿐이지
한 몸에 붙어 있는 몸으로써 더러운 발을 손이 씻겨주는 같은 한 몸 됨이 없는 겁니다.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이 없기에 베푸는 잔치를 따로 해 달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 잔치는 없어요
그런 천국은 없어요

나를 위한 천국도 없고
탕자를 위한 천국도 없어요
오로지 예수님을 위한 천국 뿐이예요
어딜 개인으로 보냐 말이죠
자기가 자신을 하나의 따로 국밥으로 보니까
탕자도 하나의 개인으로 보고서 시기 질투를 하는 겁니다.

그러니 한나를 괴롭히니까 한나가 아 이게 무슨 이스라엘 이냐 라고
마리아를 돌로 율법대로 쳐 죽일려고 하니까 이게 무슨 이스라엘이냐 애굽이지 라고
하늘의 전쟁을 이 땅에 퍼 부어 달라고
심판을 품고서 아름다운 기도를 하는 겁니다.

이게 평화 이다 라고 지난주 녹음에서 언급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 나라는 없다 라는 취지에서 오늘 본문을 보시면 답이 나온다 말이죠
지지난주 녹음에서 언급했듯이
땅의 예루살렘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그런 예루살렘은 없다
그런 이스라엘은 없다
도리어 이미 벌써 완성된 채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예루살렘
하늘에서 내려오는 이스라엘 밖에 없다 라고 보시면 된다 말이죠

속담에 아비가 천국 가면 자식도 천국 가고
아비가 지옥 가면 자식도 지옥 간다 라는
그런 천국
그런 묵시
그런 복음은 없다 라는 취지가 되는 겁니다.

꼭 목사 건드리면 삼 사 대 이것도 모잘라서 칠 대가 망한다 라고 사기를 치는데
꼭 그런 놈이 아들에게 목사직을 세습을 해요 글쎄

아들이 복음을 너무 제대로 증거하면다 허물어져가는 깡통 판자촌 교회를 물려줘도 상관이 없는데

그게 아니라 교회가 하나의 거대한 부동산 돈덩어리 라서
아들에게 물려주고자
저런 속담에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더라 말이죠
그거 말리지 말고
교인들은 다른 교회로 떠나면 되지 말라고 반대표를 던지냐 말이죠
어차피 이미 망했기에 나온 증상일 뿐인데
자기 꾀에 자기가 누워서 침뱉기 하도록 냅뚜면 되는데
뭔가 자신들도 교회에 바친 것이 있다 보니
떠나지를 못 하는 겁니다.
그 동안 수고한 댓가를 바라는 거죠
떠나는 것이 기쁜소식인데
말라꼬 뒤 돌아 보고 또 돌아보냐 말이죠
소금기둥된 롯의 아내처럼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속담화 되었다는 말은
결국 속담으로 만들었다 라는 이 이데올로기에 못 덤비도록 만들었다 라는 것은

인간들 특히 이스라엘 속에서 엉터리 해석이 난무를 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엉터리 해석이 뒤 덮어 버려서
다른 해석이 나올 수가 없을 정도이다는 겁니다.

모태신앙 이라는 종교 용어도 그런 사기술 아니냐 말이죠
오늘 나온 속담과 같은 원리 예요그게 세상에 어디 있냐 말이죠.

이것을 우상 곧 선악이라고 한다 말이죠
그러면 율법은 지키라고 유무를 따지고자 나오는게 아니라

이 우상을 겨냥해서 나오는 것이 율법이 되는거다 말이죠

율법이 시온에서 나오잖아요
왜 시온에서 나와야 합니까

시온이 하나님의 약속한 땅이기에

이런 식의 지식은 백날 해 본들 소용이 없는 이유가

그래놓고 우상으로 뒤덮더라 말이죠
시온에 산당을 도배해 버려요 저런 해석이 말이죠
올바른 해석을 했으니까 나를 시온에 도배하는 식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우상으로 다 뒤덮어요 글쎄

가증한 물건이 서거든 어서 도망치라 말이죠

도망치기는커녕 더더욱 강도의 소굴로 만들고 있잖아요

벗어 날 길이 없어요
떠날 마음이 추호도 없어요
그 속에 나의 찬양 나의 기도 나의 믿음이 다 도배가 되어 있는데
어떻게 쌓아 올린 공든탑을 버리고 도망치냐 말이죠

그래서 참으로 고맙게도 가입이 된 것이 율법입니다.
이 율법이 우상문제
내가 도저히 해결 할수 없는 나를 우상으로 섬기고 있는
나를 투사해서 나를 하나님으로 섬기고 있는 그 우상숭배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율법이 가입해서 철저하게 죄인으로 만들어 버리시는 겁니다.

율법이 아니였으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같았을 것이다 말이죠

그러니 율법을 지키니 마니 하는 나의 대상물이 아닌
율법이 나를 대상물로 삼아서
기쁘고 아름답기 짝이 없는 심판을 퍼부어서
이 심판의 주를 품어서 증거하는 증인으로써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주님의 증인으로 삼으시는 겁니다.

(행 1:8, 개역)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은 심판의 장소를 두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심판이 시작된다 말이죠

(렘 25:29, 개역) 『보라 내가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성에서부터 재앙 내리기를 시작하였은즉 너희가 어찌 능히 형벌을 면할 수 있느냐 면치 못하리니 이는 내가 칼을 불러 세상의 모든 거민을 칠 것임이니라 하셨다 하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벧전 4:17, 개역)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그렇게 율법은 우리를 이유 없이 죽이시는 겁니다.
왜? 우리는 이유 없이 구원받아야 한다고 하는 우상을
시온에서 나온 율법이 다 깨뜨리시니까 말이죠

이 심판이 옳았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지난 주 높은 자 낮추고 낮은자 높이시는 것이
바로 율법이거든요

율법이 아니면 이 삼일의 간극인 모순을 곧 공백을 만들수가 없어요 그러면 선물도 없는 거죠

이유 없이 팔렸으나 이유 없이 도로 값없이 속량하시는
이 율법의 완성을 모르는 겁니다.

그러니 율법을 지켜가지고 자꾸 이미와 아직의 미완료만 운운하고 있다 말이죠
심판을 미리 앞당기지 못해요 (비싼 향유를 부은 여인이 예수님의 죽음 곧 장사를 미리 앞당기잖아요 이게 복음 이것이 기쁜소식이다 말이죠 종말 심판을 품은 아름다운 발길이다 말이죠)

그 어미에 그 딸 이라는 의미를 주님이 우리에게 적용하고 있는데
무조건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 곧 창녀라고 말이죠
그런데 지가 말씀을 지키게 되니까 도리어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퍼붓고 있더라 말이죠

아니 누가 자기 자신에게 그 말씀을 퍼부을 리가 있겠냐 말이죠

절대로 없잖아요

바리새인이 맏아들처럼
부자청년처럼
또 선한 사마리아 비유를 언급해 주셨듯이 큰 계명 지킨다는 율법사처럼

다들 자기자신을 심판 받아야 하는
이유 없이 말이죠

주여 저는 이유 없이 심판 받아야 하는 자로써 주님 앞에 나옵니까 (세리처럼)
아니면 반대로 저런 놈은 심판 받아야 한다고 정죄하는 주님의 자리에서 나오던 가요?

저 세리와 같지 아니함을 하나님께 감사하다 라고 그 하나님이 누굴까요?
자기 자신 아닙니까 자기를 투사 시켜서
자기를 하나님으로 섬기고 있는 겁니다.(개인과 하나님 둘 뿐이지 사실은 자기투사한 자기 하나 밖에 없지 그리스도의 몸 곧 하나 된 몸은 없어요, 집단 이스라엘은 없고 개인 뿐)

그러니 정죄 할 리가 있겠냐 말이죠
자기가 선악을 아는데

자기가 우상인데

여전히 율법을 모르는 겁니다.

그런데 율법에 의해서 쫄딱 이유 없이 심판받는 그 자리에
오히려 그리스도의 몸이 그 속에 탕자들이 빠끌 빠끌하게 있을 줄 누가 알았겠냐 말이죠
예수님의 족보에 세상에 더럽기 짝이 없는 여인네 다섯이 빠글 빠글 있을 줄 ㅋㅋㅋ

율법은 남을 사랑하라 라고 했는데

바로 그렇게 정죄 하기 바쁜 그 매국노 세리를
무슨 수로 사랑할 수가 있겠냐 말이죠

도리어 지금 속담 적용하기 바빠요

율법을 지키는 것이 종교의 세계에서는 권력을 쥐는것과 같아요
마치 세상사람들이 돈을 쥐는 것이 권력을 쥐는것처럼 말이죠

권력을 쥐어야 하고
높아져야만 큰 자가 되어서 천국 갈 수 있으니까 말이죠

인간이 도 닦고
말씀 실천하고
율법 지키고 이 모든 것이 높아지고 하는 권력 잡기입니다.

누가 무시 받고자
저주 받아 마땅하다고 말씀 지키는 자가 세상에 어디 있냐 말이죠

까닭없이 값없이 팔리는 것도 없는데 어떻게 값없이 속량하시는
이 은혜를 어떻게 알겠냐 말이죠

잃어버림이 없는데 어떻게 되찾음이 있냐 말이죠
선지자는 이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 에게로만 보내심을 받는데

(마 10:6, 개역)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마 15:24,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그러니 하나님을 아는 지식 곧 사랑이 없어서 망하는 겁니다.
남을 사랑하는 이웃이 없어서 망한다 말이죠

그냥 사랑이 아니지요
원수 사랑입니다.
원수 사랑
그러니 율법의 완성은 남을 사랑하는 것이다 라고

그것도
남 이래요
생판 모른다는 겁니다.
그 어떤 관련성이 없는
조건이 없다 말이죠
종교는 반대로 조건을 온갖 만들어내어서 지키라 라고 교리화 하는데
조건화 하는데 이게 짐승이지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무관 하던 자 인데
원인 없는 결과로써 사랑한데요

이게 말이 되는 사랑입니까
말도 안되는 사랑 입니까

그러니 원인 없는 결과로써의 사랑이라면
이유 없는 미움 심판 저주 속에 놓여져야지만 
그 심판 속에서 이 주님의 의를 알거 아니겠냐 말이죠
주님의 긍휼을 바랄거 아니겠냐 말이죠
과부의 기도 곧 부르짖음 아니냐 말이죠

아무도 원한 곧 원수가 없기에
부르짖음이 없는 겁니다.

그저 이방인의 기도 밖에 중언부언 밖에 없어요
주문하듯이 말을 반복하는 것만 중언부언이 아니라
어제 한 기도 오늘 또 해요
왜? 할게 없으니까

그런데 부르짖음은 원수한테 당하는게 많다 보니
오늘은 여기 고쳐 달라
어제는 저기 고쳐달라
내일은 요기 고쳐달라
날로 날로 새로워요
물론 날로 날로 육은 후패하지만
그 용서를 매일 매일 받으니까
내용이 매일 매일 다른데

이방인의 기도는 그저 딱 하나
잘 먹고 잘 사는 저주 안 받게 해 달라 복 달라 이고
유대인의 중언부언은
어떻게 하면 구원 얻냐

뭐 할게 없어요

어린아이는 아빠 엄마 에게 오늘 무슨 일 있었다 라고
시시콜콜 다 이야기 해요
왜? 새로운 것들이니까 사건이다 말이죠
그 정도로 감사해서 나오는 것이다 말이죠
아내인 여자들이 남편이 오면 2만 단어를 쏟아 부어야 해요
왜? 남자 보다 2배나 부정하기에 더 사랑받거든요

베드로 너는 이 창녀 마리아처럼
나에게 입 맞추고 비싼 향유를 부은적 있니?

얼마나 사랑받았으면
많이 탕감 받았으면 많이 사랑하냐 말이죠
이게 이스라엘 이거든요 처음자리 곧 고아 과부 나그네의 자리에서
이웃사랑하시는 분이 나타났다 이것이 희년 곧 기쁜소식 아니냐 말이죠
입을 다물수가 없어요
찬양이 안 나오고는 못 배겨요

동네사람들 나 이 우물가의 여인 사마리아 여인의 죄를 아는 선지자가 나타났어요
나의 죄를 씻어주는 나의 낭군이 나타났어요
두레박 던져 버리고 동네사람들 다 초청하여 잔치를 벌리더라 말이죠

누가 자기 스스로 그런 저주 속에 들어가겠냐 말이죠
아무리 잃어버림을 자기 스스로 설정해서 잃어버림을 인위적으로 이루었다 칩시다

그 다음에는 더더욱 자기가 자기를 되찾고자
자기를 자기가 스스로 구원하고자
부자청년처럼 예수님을 이용할려다가 도리어 당하게 되는
더더욱 이를 갈게 되는 적개심으로 변해요

그러니 손떼라 말이죠
구원은 주님 소관이지 우리의 소관이 아니다 말이죠

절대로 남을 구원하시고자
즉 원수죠
즉 탕자죠
그 생판 모르는 남을 원수를 탕자를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알 길이 없게 됩니다.

도리어 왜 나의 구원잔치를 따로 마련해 주지 않느냐 라고 맏아들처럼 아버지의 사랑에 반발하게 되지

가룟유다처럼 예수님에 대한 적개심 살인의지를 더더욱 펼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그것이 유대인 이였다 라는 거죠

서로가 서로에게 그 아비의 신 포도에 그 아들의 시린 이 가 되도록 퍼붓고자 하는
불안과 공포가 율법을 지키고자 하는 동기부여가 되는
조건 갖추기 이지
사랑이 아니다 말이죠
사랑은 두려움이 없다고 했는데
두려움이 도리어 율법을 지켜요

이게 유대인이고 (십자가에 다 걸려 넘어져요)
헬라인은 이 십자가의 지혜가 어리석다 라고 보는 거죠

인간의 무기를 기껏 이것 밖에 없어요
선악
우상 이게 무기예요
죽음 이다 말이죠

나만 살면 장땡이고
나만 구원 받으면 장땡이다 말이죠

그것이 우상이기에 오늘 나온 속담이기에 그거 깨뜨리시는 겁니다.

자기가 평화 로울려면 남을 이유 없이 전쟁으로 몰아가야 하거든요

칼과 창 이라는 무기가 멈출 새가 없어요

그 칼과 창을 보습으로 만드는 것은
율법 밖에 없어요

율법에 이유 없이 당하는 겁니다.
그런데 도리어 남에게 율법을 퍼붓고 있넹 ㅋㅋㅋ

남이 아닌 내가 이유 없이 무조건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임을
죄인됨을 내가 만들어 내는게 아니라
죄인 설정을 자기가 하는게 아니라
주님이 직접 하시는 것이 바로

속담을 끊어내는 더 나은 원인 없는 결괴
값없이 팔렸음을 끊어내는 더 나은 값없이 속량하심이다는 겁니다.

이 간극을 만들어 내시는 것이 바로 의 
곧 율법 이다는 겁니다.

율법을 정죄하기 위함이 아닌
주님의 의로 입혀주기 위해서
나의 엉터리 의를 율법이 깨뜨려주는 겁니다.

그러니 율법은 한 인물을 주목하도록
내가 나를 보는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 선악에 이 우상에 이 죄악에 벗어날 수 없는
목을 꺽어서
장대 높이 달린 저 분을 쳐다보도록 하시고자
목을 꺽는 것이 율법 이다는 겁니다.

이 율법이 없었다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되었다 말이죠

이런 율법의 취지를 모르고

종교라는 오락게임에서 율법을 쥐락 펴락 만지작 거리니까
율법을 지키면 지킬수록 율법 지킨 나에게서 시선을 더더욱 벗어날 수가 없는 겁니다.
율법 지킨 내가 이렇게 대견한데
말씀을 지킨 내가 이렇게 대견한데
어릴적부터 율법 다 지켰다 라는 부자청년
큰 계명 지켰다고 이웃사랑실천했다는 율법사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 없다는 맏아들

그들에게 부정한자를 대조 시키니까
도리어 쫄딱 망하는 겁니다.

인간의 믿음이나
행함에서는
지옥에서 벗어날 인간 아무도 없어요

서로가 서로에게 속담 퍼붓기 바빠요
소돔과 고모라 이다 라고 서로 서로 정죄해요

말씀을 지키면 지킬수록 더 해요
불안해서 말씀 지키고
두려워서 말씀 지키지
사랑해서 말씀 지키는 자는 없어요

그래서 율법은 한 인물을 제시하는 겁니다.

바로 시온에서 나온 율법이
예루살렘에서 나온 말씀이라는 인물을

누구한데만 제시하는고 하니

창세전에 택한 자
그래서 예루살렘처럼 쫄딱 망해야 함을 아는 자에게
바로 죽은 자에게 
죽었다가 다시 산 분을 
율법은 시온에서 나온 율법은 한 인물을 소개하고자
직접 우리를 불도져로 밀어서
이유 없이 까닭없이 값없이 팔리게 해서
잃어버려서

다시 되찾는 값없이 속량하시는 겁니다.

그러니 오늘 본문처럼 선지자는
이 주님의 의를 선물 하고자
자꾸 앞 뒤가 모순 되는
주님의 일하심을 증거하고 있는 겁니다.
너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신다 라고

앞에서는 언제는 그 어미에 그 딸이다 라고 태생 부터가 창녀라고
무조건 이유 없이 무조건 창녀라고 취급하실때는 언제고

다시는 그 속담 쓰지 못하도록 하겠다 라고 (주님이 쓰셔야 하는데 인간이 더 많이 쓰는)
다시 싸매어 주시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새 옷으로
값없이 속량하시는 구원을 베푸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이 히스테리 간극 속애서
이스라엘은 태어나는 겁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다 이루어 놓았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라고 말이죠

새 일 곧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
만군의 여호와와 새 이스라엘의 관계는

출애굽기 20장 5절 십계명 첫 계명을
이 우상문제를

(출 20:5, 개역)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인간 쪽에서 해결해서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 쪽에서 율법 곧 십계명을 다 이루셔서 이루어지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이다는 겁니다.
곧 출 20장 5절은
우리는 왜 못 지키는 가를 알라고 주어진 것이고 (값 없이 팔리고)
누가 다 이루신다
바로 십자가에 달려 죽는 예수님이 다 이루셔서
값 없이 속량하심으로써

이 우상문제가 해결 되었음을
이 주님의 피 흘리신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서 알게 하시는 겁니다.

한 씨를 남겨 두시기 않았다면
우리는 소돔과 고모라 같았을 것입니다.
가버나움처럼
예수님이 베푸신 기적이 당연한 줄 알고 있는 그 마음이
바로 지옥의 마음인줄 몰랐던 것처럼 말이죠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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