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 독수리 수수께끼와 비유 (겔 17, 1-10)
(겔 17:1, 개역)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겔 17:2, 개역) 『인자야 너는 수수께끼와 비유를 이스라엘 족속에게 베풀어』
(겔 17:3, 개역)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채색이 구비하고 날개가 크고 깃이 길고 털이 숱한 큰 독수리가 레바논에 이르러 백향목 높은 가지를 취하되』
(겔 17:4, 개역) 『그 연한 가지 끝을 꺾어 가지고 장사하는 땅에 이르러 상고의 성읍에 두고』
(겔 17:5, 개역) 『또 그 땅의 종자를 취하여 옥토에 심되 수양버들 가지처럼 큰 물가에 심더니』
(겔 17:6, 개역) 『그것이 자라며 퍼져서 높지 아니한 포도나무 곧 굵은 가지와 가는 가지가 난 포도나무가 되어 그 가지는 독수리를 향하였고 그 뿌리는 독수리의 아래 있었더라』
(겔 17:7, 개역) 『또 날개가 크고 털이 많은 큰 독수리에게 물을 받으려고 그 심긴 두둑에서 그를 향하여 뿌리가 발하고 가지가 퍼졌도다』
(겔 17:8, 개역) 『그 포도나무를 큰 물 가 옥토에 심은 것은 가지를 내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포도나무를 이루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겔 17:9, 개역) 『너는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그 나무가 능히 번성하겠느냐 이 독수리가 어찌 그 뿌리를 빼고 실과를 따며 그 나무로 시들게 하지 아니하겠으며 그 연한 잎사귀로 마르게 하지 아니하겠느냐 많은 백성이나 강한 팔이 아니라도 그 뿌리를 뽑으리라』
(겔 17:10, 개역) 『볼지어다 그것이 심겼으나 번성하겠느냐 동풍이 부딪힐 때에 아주 마르지 아니하겠느냐 그 자라던 두둑에서 마르리라 하셨다 하라』
(겔 17:1, 현대어) 『[포도나무와 독수리 두 마리] 여호와께서 또 내게 말씀하셨다.』
(겔 17:2, 현대어) 『`너 사람아, 이스라엘 백성에게 수수께끼를 하나 내놓아라. 비유를 들어 이렇게 이야기해 주어라.』
(겔 17:3, 현대어) 『`크고 힘찬 두 날개에 다채로운 빛깔의 깃털이 온 몸을 빽빽하게 뒤덮은 큰독수리 한마리가 레바논산으로 날아와서 ㄱ) 가장 높은 송백의 우듬지를 부러뜨린 뒤 (ㄱ. BC 597년에 유다 왕 여호야긴을 포로로 잡아간 사건을 가리킨다)』
(겔 17:4, 현대어) 『그 연한 가지를 물어다가 상업국가 장사꾼들의 도시에 두었다.』
(겔 17:5, 현대어) 『그런 다음 그 독수리는 이스라엘 땅으로 와서 꺾꽂이할 ㄴ)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다가 물이 많은 시냇가의 기름진 땅에 심어 놓았다. (ㄴ. 시드기야왕을 뜻한다)』
(겔 17:6, 현대어) 『과연 그 가지에서는 새순이 돋고 줄기들이 솟아 나와 무성한 포도나무가 되었다. 그러면 그 독수리가 바란 것이 무엇이었겠느냐? 그것은 바로 그 나뭇가지가 무성하게 자라긴 하되 여전히 키가 낮은 포도나무로 자라기를 바란 것이 아니겠느냐? 뿌리는 언제나 독수리의 날개 밑에서만 뻗어 나가고 가지와 덩굴손들도 그 독수리를 향해서만 자라 오르기를 바란 것이 아니겠느냐?』
(겔 17:7, 현대어) 『그런데 크고 힘찬 두 날개에 깃털이 온몸을 뒤덮은 또 다른 독수리 한 마리가 나타났다. 그러자 그 포도나무는 이 다른 독수리를 향하여 가지들을 돌려 뻗고 뿌리도 모조리 그를 향하여 내뻗으면서 물을 대달라고 청하였다. 그 물이 넉넉한 시냇가의 옥토에서 너무도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그 독수리에게 물을 대달라고 호소를 하였다.』
(겔 17:8, 현대어) 『그 포도나무는 이미 물이 많은 시냇가의 기름진 땅에 심어져 있었고 가지를 뻗고 열매를 맺어 무성한 포도나무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건만 그렇게 하였다.'』
(겔 17:9, 현대어) 『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수수께끼로 된 비유를 말하고 나 여호와의 이름으로 물어 보아라.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포도나무가 여전히 무성할 수 있겠느냐? 첫번째 독수리가 그 포도 송이를 모조리 흩어 내고 뿌리를 뽑아내어 잎사귀가 모두 말라죽게 하지 않을 성싶으냐? 그 포도나무를 땅에서 뽑아 내는 데에는 막강한 군대나 많은 백성을 불러올 필요도 없을 것이다.』
(겔 17:10, 현대어) 『그 포도나무는 틀림없이 죽을 것이다. 뜨거운 동풍이 이글거리며 불어오면 새싹이 자라 오르던 그 자리에서 그대로 말라 죽게 될 것이다.'』
(겔 17:1, 쉬운) 『<독수리와 포도나무>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공동번역도 현대어번역처럼 설명이 붙어있네요
뭐 하긴 공동번역의 현대버전이니까
그래서 함 올려 보겠습니다.
(겔 17:1, 공동) 『야훼께서 나에게 말씀을 내리셨다.』
(겔 17:2, 공동) 『"너 사람아, 이스라엘 족속에게 수수께끼를 내놓아라. 비유를 들어 말해 주어라.』
(겔 17:3, 공동) 『'주 야훼가 말한다. 큰 독수리 한 마리 알록달록한 깃털을 가득 쓰고 긴 깃, 큰 날개를 치며 레바논에 가서 송백 끝에 돋은 ㉠순을 땄다. / ㉠여호야긴을 말한다.』
(겔 17:4, 공동) 『그 연한 가지 끝에 돋은 햇순을 따서 무역 국가로 가져다가 상업 도시에 내놓고는』
(겔 17:5, 공동) 『그 지방에서 난 ㉠종자를 찾아 버드나무 심듯 물이 콸콸 흐르는 강가, 갈아놓은 밭에 심었다. / ㉠시드키야를 말한다.』
(겔 17:6, 공동) 『움이 돋고 보니, 그것은 포도나무였다. 뿌리를 땅에 박고 낮게 옆으로 퍼지며 덩굴은 그 독수리에게로 뻗었다. 포도덩굴이 되어 가지가 뻗으며 움이 돋았다.』
(겔 17:7, 공동) 『깃털이 많은 큰 날개를 치는 다른 큰 독수리 한 마리가 나타나자 이번에는 그 포도덩굴이 가는 넌출을 그리로 뻗고 뿌리도 그리로 뻗어 물을 빨아들이려고 하였다.』
(겔 17:8, 공동) 『물기 넉넉한 좋은 밭에 심어, 햇가지가 나서 열매를 맺는 훌륭한 포도나무가 되리라 여겼더니, 그 모양이었다.'』
(겔 17:9, 공동) 『주 야훼의 말이라 하고 일러라. '그러고도 잘될 것 같으냐! 그러고도 뿌리가 뽑히지 않을 듯싶으냐? 열매를 훑어가지 않을 듯싶으냐? 새 잎은 돋아나자마자 마를 것이다. 그 뿌리를 뽑는 데는 힘들 것도 없다. 대군을 출동시킬 것까지도 없다.』
(겔 17:10, 공동) 『옮겨 심었다고는 하지만 잘되기는 이미 틀렸다. 동쪽에서 열풍이 불어오면 바싹 마르리라. 자라던 터전에서 그대로 시들리라.'"』
지지난주에 그 어미에 그 딸 이라는 속담을 언급했는데
(겔 16:44, 개역) 『무릇 속담하는 자가 네게 대하여 속담하기를 어미가 어떠하면 딸도 그렇다 하리라』
속담을 원인 없는 결과 이다 라고 했습니다.
즉 오늘 나오는 표현 수수께끼와 비유 또한 원인 없는 결과이다는 거죠
답은 이미 있는데 그 답을 말하기 위해서 문제를 만들어내는 겁니다.
우리는 흔히 문제가 생기고 그 문제에 따른 답을 만들어 내는 겁니다.
왜냐하면 답을 모르기에 즉 답이 없기에
답을 만들어 내는 식인 거죠
마치 지난 주에 여호와의 팔이 먼저 떴다 말이죠
즉 답이죠
그런데 이 답이 왜 답인지를 말하기 위해서
문제가 그 뒤에 발생 하는 겁니다.
그러니 이 여호와의 팔이 뉘게 누구에게 나타났는가
그 사람에게만 답으로 보이고
나머지 다른 사람에게는 답이 안되는 겁니다.
즉 다른 사람은 답을 못보도록 문제만을 남긴 셈이고
(죄의 소원을 넘어 보라는 식
(창 4:7, 개역)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문제 풀어봐 풀어봐, 죄를 다스려 봐! 마귀를 이겨봐! 라는 식으로
못 풀게끔 하는 식이고)
여호와의 팔이 나타난 자에게만 그 답을 말하기 위한 문제였기에
이미 반칙인 거죠
답을 줘 놓고서 문제를 주는 식이니까
마치 저들은 율법이 없어서 망하고 (사생아)
이들은 율법이 있어서 안 망하는 식이다는 겁니다, (징계받는 자녀)그러니 율법이라는 답으로 인해
여호와의 팔이 나타난 자에게는
찢으셨으나 다시 낫게하시는 이 간극이
이 문제가 주어지는 겁니다.
왜? 이미 답이 떳기에
불뱀에게 물려 죽게 되는 찢으심이 즉 문제가 주어지고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게 하심 즉 의로움(십자가 반칙)(아침에 주의 인자하심)
죽였다가 다시 삼일 만에 살리심이라는 의가 덮쳐짐으로써 이 답에 의한 문제를 통해
뭐든지 감사가 되게 하심을 보게 되는 겁니다.
왜 삼일인고 하니
확실한 단절 곧 죽음입니다.
땅땅땅 확정적인 죽음인 거죠
그렇게 죽었는데 어떻게 다시 사냐? 말이죠
이것이 과연 내부의 작업으로 가능하냐 말이죠
그러니 불가능인 외부에서 의가 나타나는 겁니다.
결국 내부에서는 율법이 나를 죽이는 역할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외부에서는 율법 외에 한 의가 나를 그것도 이미 죽은 확정적인 죽음인
삼일동안이거든요
나사로가 죽은지 삼일이 되니까 가잖아요
이것은 인간의 모든 부활을 다 막아버리는
왜냐하면 모든 종교는 인간의 부활을 심기 때문이거든요
현대 유대인들이 아무리 외국에 살았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예루살렘 땅에 묻어 달라고 하는 이유이거든요
그럼 모든 인간의 부활을 차단하는
가짜 부활을 가로막는 것이 첫 번째 부활이고
곧 누구든지 주를 사랑치 않는 자는 저주를 받았다 말이죠
두 번째 부활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데
누가 과연 주의 이름을 부를까요?
주여 깨소서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깨소서 라고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을까요?
벌써 주체가 이동했죠
왜? 죽었으니까
율법에 의해 찢겨졌으니까
이제 구원받을 주체는 없어요
모든 종교에서 말하는 부활 받은 주체는 없어요
왜? 다 죽였으니까
이제 문제는 없어요
답만 있어요
답이 주체가 되어서
문제를 이제 새롭게 만들어 냅니다.
그러니 우리는 문제아가 되어야 해요
아 저 놈의 문제아 문재인 문재앙이 되어야 해요 ㅋㅋㅋ
왜? 의사는 이미 떳따 말이죠
답은 이미 떴어요
그럼 이제 문제만 새로 생기면 됩니다.
그 문제가 바로 해석불가의 사람입니다.
그게 바로 답을 말하는 문제아가 됩니다.
의사를 말하기 위한 환자가 되는 겁니다.
구원자를 말하기 위한 죄인이 되는 겁니다.
아 되는 겁니다가 아니라 죄인입니다.
자꾸 자기 스스로 죄인이 될려는 멍청한 자가 있어서리 ㅋㅋㅋㅋ
주체가 의사에게로 넘어갔는데 환자가 지 혼자 지 스스로 환자가 되니까
아따 이놈이 동시에 의사 짓을 해요 글쎄
의사가 만들어낸
의사가 자신의 솜씨를 자랑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환자는
해석불가가 되는 환자 이다 말이죠
그것을 오늘 본문에 수수께끼 또는 비유
이것을 속담처럼 바로 원인 없는 결과 이다 라고 하는 겁니다.
분명 그 어미에 그 딸 이라고 속담인데
그 속담을 다시 지난 주에
어렸을때에 영원한 언약을 맺어버리는 겁니다.
누가? 어렸을때의 아이가? 아이는 주체가 없는데?
그럼 주체는 부모가?
실로암 소경의 죄는 부모 죄입니까
자기 죄 입니까?
도중에 소경이 된 자는 주체를 알수가 있다 말이죠
부모가 아이를 잘 못 먹여서 라든가
부모가 자신의 건강치 못한 몸에서 아이를 태어나게 했던가
또는 자라는 중에 사고로 소경이 되었다든가 등등
원인이 있다 말이죠 원인
그런데 날 때부터 소경은 마치 원인 없는 결과물이다 라는 겁니다.
이것을 바리새인이
성경박사가
이스라엘의 선생이 해석을 못해요
해석 불가 이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막아버렸거든요 해석 못하도록
답이 와야 한다 말이죠
답을 말하기 위해서 문제가 되었는데 그래 이 수수께끼를 지들이 뭔데 푸냐 말이죠
손마른 자를 일부러 안식일날만 골라서 고치시고자 손마르게 했는데
안식의 주인을 말하기 위해서 말이죠
그런데 안식일 지키는 자들은 다른 답을 다른 복음을 가지고서
안식의 주인을 쫏아내는 겁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말이죠
안식교는 더 하구요
소위 요즘으로 치면 정통이면 정통이라고 우길수록 말이죠
사람을 위해 안식일이 있는데
이놈의 주일성수 안식일성수 자들은
부활절 이라는 절기를 지키는 놈들은
절기를 위해 사람이 있어야 하는
주객이 뒤바뀐 놈들이다 말이죠
교회를 위해 사람이 있나요?
사람을 위해 교회가 있나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말이죠
이 말을 또 곡해해서 인권존중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래 되면 문제만 있고 답이 없는 자들이다 말이죠
이미 답이 있기에 문제를 찾는 겁니다.
다시 말할께요
교회를 위해 죄인이 있어야 할까요
죄인을 위해 교회가 있어야 할까요?
캬 이래 말하면 인권존중 외치는 놈들은 또 죄인 이라고 인간을 모욕하지 말라고 한다 말이죠
교회는 또 죄 죄 죄 죄인 이라 카지 말라 또 이래 말하구요
자 이 말은 교회 자체가 수수께끼 이거든요
해석불가이다 말이죠
이스라엘이 특급상품인데 자꾸 들포도가 될려고 처음사랑을 발로 차 버리듯이
자꾸 인간 무시하지 말라고 양쪽놈들이 다 외치는데
수수께끼 특급상품이야를 무시해서 그래요
자기 무시하는 것만 예민하지
주님 무시하는 것은 신경도 안 쓴다 말이죠
십자가가 누구에게 나타났냐 말이죠
지혜를 쫏는 헬라인에게? 소위 무신론자가 다 여기에 해당되요
철학자들
이사야 478 곧 바벨론 여자들이 왜 자식 교육을 강남학군에서 하냐 말이죠
고아 될까봐
이게 다 헬라인
그들에게서 십자가는 어리석고 미련한
상대적인 반대를 위한 반대이다 말이죠
지혜의 반대의 길로 가니까
그 다음 유대인에게는 이 십자가가 거리끼는 걸림돌이다 말이죠
기적을 바라는데 요나의 표적 외에는 안 보여주고
지금 제사장 나라가 되어야 하는데 거룩한 나라 말이죠
그래서 금식하고 십일조 내고 회개 눈물 금식 기도를 해야 하는데
아 그런데 더럽기 짝이 없는 반대를 위한 반대
금식 하고 있는 그 옆에서 술판을 벌려서
먹기를 탐하고 금식에 대한 반대죠
부정의 부정
포도주를 즐기며 회개에 대한 반대죠 즐거움을 끊고 있는데 오히려 거뻐하고 있어요 글쎄
세리와 강도와 죄인의 친구이다 라는 별명을 붙이더라 말이죠
거 보세요 해석 불가 이다는 겁니다.
인자는 그 행한 일로 의롭다 말이죠
(마 11:19, 개역)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아무리 더럽기 짝이 없는 별명을 붙여도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니까
졸지에 아무리 깨끗한 짖만 골라서 해도
병자를 고칠 생각을 하지 않으니
그냥 막무가내로 귀신들렸다 라고 해 버리면 된다 말이죠
오죽 해석이 안되었으면 말이죠
바알세불 걸린 대 마왕 말이죠
문제는 대중의 눈치를 본다는 겁니다.
즉 정치적인 발언이다는 거죠
결국 자신들 조차도 대중의 사랑을 갈구하는 집단이다는 거죠
딴나라당 놈들이 정치를 넘어서 종교집단 사이비 집단이 된것처럼 말이죠
완전 빨갱이들이다 말이죠
정치에 대해서 전혀 모르다가 최근 공부해 보니
오늘 본문과 똑같아요
자신들이 바알세불 걸린 마귀 자식이라는 것을
주님께서 거울 비춰주듯이 보여줘야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그렇게 몰아넣잖아요
이게 요나의 표적 이다 말이죠
반사 ~~~
우리 어릴적에 애들끼리 막 싸우면서 욕하다 보면
씩씩 거리면서 억수로 많은 말을 쏟아부으면서 욕하면
상대방은 딱 한마디 반사 라고 하면 얄밉짢아요
요나의 표적이 이래요
반사 ~~~~
얼마나 거리끼는 걸림돌로써 뽑아버리고 싶어 환장하겠냐 말이죠
세상이 견디질 못해서 격동할 정도로 말이죠 (잠언 30장)
새가빠지게 46년 동안 짖고 있는 성전을 그래
확 마 허물어 버리고
삼일만에 짖는다? 지금 장난하나 ~~~~~~
반사 ~~~~~
얼마나 얄밉냐 말이죠
이 삼일을 무슨 수로 해석 하냐 말이죠
46년 동안 이라는 주체가 이미 박혀 있는데
삼일 이라는 주체가 박힌 돌을 뽑아서
주체가 이동이 되어야 하는데
죽음이 아니면 과연 이동 되겠냐 말이죠
그러니 헬라인은 어리석다 라고 하는 겁니다.
왜 죽냐 말이죠 바보 같이
그러나 죽음 보다 강한 사랑이 아니면
즉 누구든지 주를 사랑치 않는 자는 저주를 이미 받은자 이다 말이죠
주체가 이동이 안된다 말이죠
주객이 뒤바뀐
선악이라는 우상이 이미 인간을 장악한 판국인데 말이죠
그러니 환자를 부르시러 온 겁니다.
주체를 바꿀 자를 부르는 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 겁니다.
에스겔은 바로 이 새성전을 말하기 위한
죄인 만들기
원수 만들기 이다 말이죠
원수 안될려고 하는 자들이 오히려
이 거리끼는 걸림돌에 걸려 넘어져 실족하게 되는 거죠
나로 인하여 실족치 않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 말이죠
(마 11:6, 개역)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복 개념이 달라져요
복과 저주가 달라진다 말이죠
선악이 깨어지면
우상이 깨어지면
주체가 깨어지면
그 동안 뒤 바뀌었다는 알게 되는 거죠
우는 자가 복 되고 어떻게 슬픔과 탄식 속에 있음을 아는 자가 복 되냐 말이죠
누구 말따나 무 는 무 인데 없음은 없음인데 어떻게 없음이 있음이 되냐
부정이 긍정이 되냐
슬픔이 변하여 희락이 되며
재 대신 화관이 되며
근심 대신 찬송이 되냐 말이죠
어떻게 우는 자가 복되고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되고
애통하는 자가 복되고
의에 주리고 목 마른 자가 복 되고
(마 5:3, 개역)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 5:4, 개역)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 5:5, 개역)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마 5:6, 개역)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마 5:7, 개역)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 5:8, 개역)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 5:9, 개역)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 5:10, 개역)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마 5:11, 개역)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마 5:12, 개역)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현대인이나 그때의 사람이나 선악적이기에 즉 우상적이기에
부정적인 단어 빼고
화평케
온유한자
마음이 청결한자 가 부정적인 의미 보다 긍정적인 의미라고 생각하는데 아니다 말이죠
모세의 온유를 생각해 보라 말이죠
제일 못 난이 구스 여인과 결혼하는 그 온유함
주변에서 다들 반발하는 나 그 결혼 반댈세를 반드시 받아내고야 마는 자
시아버지 시어머니 장인 장모 모두가 반대하는 그 결혼을 성사시키는 것이 온유 아닙니까
이게 무슨 긍정적인거냐 말이죠 부정의 부정이지
화평케? 둘이 원수 된 지간을 화평케 하고자 희생제물이 되는 이삭을 보세요
그것이 긍정적인 겁니까?
팔복을 얼마나 엉터리로 해석했으면
팔저주입니다 팔부정이다 말이죠
한 마디로 욕먹고 미움받고 저주 받으라 라는 겁니다
율법과 선지자도 욕먹고 핍박받고 저주받아 죽었으니까
이스라엘이 율법을 발로 차버렸잖아요
남들에게는 없는
사생아에게 없는 이 아버지의 사랑의 매 곧 징계를 발로찾다 말이죠
이 이스라엘이라는 특급상품이 졸지에 들포도가 되고 땔깜으로 변해버린
수수께끼가 없는
해석불가가 없는 그저 다들 해석할 줄 아는 그런 땔감으로 그 어미에 그 딸로 변했냐 말이죠
그럼 아까 말한 대로
반사 하면 됩니다.
그 어미에 그 딸 이라는 속담 곧 원인 없는 결과를
그 딸이 이제 문제가 아니라
그 어미 만 갈면 된다 말이죠
그 어미를 갈아버린 어릴적에 맺은 언약
우리가 다 까먹어 버린 언약
처음사랑이 있다 말이죠
그 자리로 가면 된다 말이죠
아니 답이 이미 덮쳐진자
주의 팔이 이미 나타난 자는
그 자리로 몰아가십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임마누엘을 구하지 않겠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 라는 아하스 왕은 남유다 12대 왕입니다.
그 아들 히스기야는 13대 왕 그리고 16대 왕은 요시야 인데 이 두 왕이 종교개혁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히스기야 아들 므낫세(14대)는 이사야를 찢어죽인 자 라고 보시면 되고
(왕하 21:3, 쉬운) 『므낫세는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없앤 산당들을 다시 짓고 바알을 위해 제단들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의 아합 왕처럼 아세라 우상을 만들었으며 하늘의 온갖 별들을 예배하고 섬겼습니다.』
(왕하 21:13, 현대어) 『내가 사마리아를 멸망시킨 것과 같이 예루살렘도 멸망시키고 아합의 왕가를 벌한 것처럼 므낫세의 왕가도 벌하겠다. 사람이 더러운 그릇을 씻어 행구듯이 내가 예루살렘 도성을 깨끗이 씻어 내어 단 한사람도 남기지 않겠다.』
남유다 므낫세 과 북이스라엘 아합 왕때 멸망시킬 것을 확정 하시죠
14대 므낫세 아들 아몬 15대를 거쳐서
이제 요시야 16대 왕이 오늘 나오는 이 독수리와 연관되는 인물로써 나옵니다.
15대 아몬 때 북이스라엘을 멸망 시킨 앗수르가 약화 되면서 신흥 바벨론이 생기죠
자 이 바벨론이 바로 독수리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해서 요시야가 아닌 요시야의 네 아들들과 바벨론과의 관계입니다.
세 아들? 첫째 빼고 ㅋㅋㅋ
요시야의 첫째 아들 요하난 (더 이상 언급이 안되고 있기에)
둘째 여호야김
셋째 시드기야
넷째 살룸 (여호아하스)
(대상 3:13, 개역) 『그 아들은 아하스요 그 아들은 히스기야요 그 아들은 므낫세요』
(대상 3:14, 개역) 『그 아들은 아몬이요 그 아들은 요시야며』
(대상 3:15, 개역) 『요시야의 아들들은 맏아들 요하난과 둘째 여호야김과 셋째 시드기야와 넷째 살룸이요』
(대상 3:16, 개역) 『여호야김의 아들들은 그 아들 여고냐, 그 아들 시드기야요』
(대상 3:15, 새번역) 『요시야의 아들은, 맏아들이 요하난이요, 둘째가 여호야김이요, 셋째가 시드기야요, 넷째가 살룸이다.』
(렘 22:11, 새번역) 『부왕 요시야의 대를 이어서, 유다 왕이 되어 다스리다가, 이 곳에서 포로가 되어 잡혀 간,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살룸을 두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는 영영 이 곳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 ㉠일명 '여호아하스'(왕하 23:30; 대상 3:15에서도)』
먼저 요시야 16대 왕 다음의 17대 왕이 넷째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이 됩니다.
딱 3개월 동안만 말이죠
그리고 18대 왕은 여호야김 곧 요시야의 둘째 아들이 왕이 됩니다.
11년간 말이죠
그리고 19대 왕은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이 왕이 됩니다 요시야의 손자이지요
이 왕도 딱 3개월 동안만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20대 왕은 시드기야 가 왕이 됩니다 요시야의 셋째 아들이자
19대 왕 여호야긴(여고냐)의 삼촌 곧 숙부입니다.
11년간 하다가
그리고 남유다도 멸망 합니다.
먼저 오늘 본문에 수수께끼가 언급이 되는데
(겔 17:3, 개역)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채색이 구비하고 날개가 크고 깃이 길고 털이 숱한 큰 독수리가 레바논에 이르러 백향목 높은 가지를 취하되』
(겔 17:4, 개역) 『그 연한 가지 끝을 꺾어 가지고 장사하는 땅에 이르러 상고의 성읍에 두고』
(겔 17:5, 개역) 『또 그 땅의 종자를 취하여 옥토에 심되 수양버들 가지처럼 큰 물가에 심더니』
곧 비유로 큰 독수리, 레바논의 백향목, 그 연한가지 끝, 그리고 땅의 종자 나오는데
큰 독수리는 바벨론이고
레바논의 백향목은 여호야김 18대 왕입니다.(번역서는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으로 봤네요, 백향목과 백향목의 가지로 구분해서인듯)
그 연한 가지는 19대 왕 여호야긴(여고냐) 이고
그리고 종자는 시드기야 로 나옵니다.
(겔 17:3, 현대어) 『`크고 힘찬 두 날개에 다채로운 빛깔의 깃털이 온 몸을 빽빽하게 뒤덮은 큰독수리 한마리가 레바논산으로 날아와서 ㄱ) 가장 높은 송백의 우듬지를 부러뜨린 뒤 (ㄱ. BC 597년에 유다 왕 여호야긴을 포로로 잡아간 사건을 가리킨다)』
즉위 3개월 만에 끌려갑니다
(대하 36:10, 새번역) 『그 해 봄에, 느부갓네살 왕이 사람을 시켜서 여호야긴을 바빌로니아로 잡아가고, 주님의 성전에 있는 값비싼 온갖 기구도 함께 가져 갔으며, 여호야긴의 ㉡삼촌 시드기야를 세워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왕으로 삼았다. / ㉡히, '형제'(왕하 24:17)』
(대하 36:9, 현대어) 『[여호야긴의 등극과 통치] 여호야긴은 18세에 왕이 되어 석 달 열흘 동안 예루살렘에서 다스렸다. 그도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일만 골라서 하였다.』
(대하 36:10, 현대어) 『ㄱ) 다음해 이른 봄이 되자, 느부갓네살왕이 그를 바벨론으로 잡아가고 성전의 귀중품들도 대량으로 약탈해 갔다. 그는 요시야의 셋째 아들 시드기야를 유다의 왕으로 세웠다. (ㄱ. BC 597년)』
여호야김(18대) 왕은 악한 왕이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하 36:4, 개역) 『애굽 왕 느고가 또 그 형제 엘리아김을 세워 유다와 예루살렘 왕을 삼고 그 이름을 고쳐 여호야김이라 하고 그 형제 여호아하스를 애굽으로 잡아갔더라』
(대하 36:5, 개역) 『여호야김이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을 치리하며 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왜냐하면 예레미야에게 계시한 두루마리를 불살라 버렸거든요
(렘 36:28, 개역) 『너는 다시 다른 두루마리를 가지고 유다 왕 여호야김의 불사른 첫 두루마리의 모든 말을 기록하고』
(렘 36:29, 개역) 『또 유다 왕 여호야김에 대하여 이같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그가 이 두루마리를 불사르며 말하기를 네가 어찌하여 바벨론 왕이 정녕히 와서 이 땅을 멸하고 사람과 짐승을 이 땅에서 없어지게 하리라 하는 말을 이 두루마리에 기록하였느뇨 하도다』
(렘 36:30, 개역)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유다 왕 여호야김에 대하여 이같이 말하노라 그에게 다윗의 위에 앉을 자가 없게 될 것이요 그 시체는 버림을 입어서 낮에는 더위, 밤에는 추위를 당하리라』
(렘 36:32, 개역) 『이에 예레미야가 다른 두루마리를 취하여 네리야의 아들 서기관 바룩에게 주매 그가 유다 왕 여호야김의 불사른 책의 모든 말을 예레미야의 구전대로 기록하고 그 외에도 그 같은 말을 많이 더 하였더라』
바벨론에 대해 반대했기에 애굽을 의지했거든요
자기 조상 아하스 왕이 임마누엘 구하지 않겠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 라는 사고방식과 똑같습니다. 결국 이 사고방식은 바리새인에게도 나타나고
오늘날 성화론자들을 통해서도 나타납니다.
그에 반해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여고냐)은 즉위 3개월 10일 만에 포로잡혀 가지만
도리어 바벨론 왕이 돌봐주는 삶을 살게 됩니다.
(왕하 25:27, 개역)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지 삼십칠년 곧 바벨론 왕 에윌므로닥의 즉위한 원년 십이월 이십칠일에 유다 왕 여호야긴을 옥에서 내어놓아 그 머리를 들게 하고』
(왕하 25:28, 개역) 『선히 말하고 그 위를 바벨론에 저와 함께 있는 모든 왕의 위보다 높이고』
(왕하 25:29, 개역) 『그 죄수의 의복을 바꾸게 하고 그 일평생에 항상 왕의 앞에서 먹게 하였고』
(왕하 25:30, 개역) 『저의 쓸 것은 날마다 왕에게서 받는 정수가 있어서 종신토록 끊이지 아니하였더라』
그리고 그의 삼촌 시드기야는 여고냐와 완전 정반대인 처참한 대우를 받는그의 아들을 시드기야 보는 앞에서 죽이고 시드기야의 눈을 빼고 사슬로 결박해서 옥에 평생 가두었다 라고 합니다.
(왕하 25:7, 개역)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저의 목전에서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어갔더라』
(렘 39:7, 개역) 『왕이 또 시드기야의 눈을 빼게 하고 바벨론으로 옮기려 하여 사슬로 결박하였더라』
(렘 52:11, 개역)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어다가 그 죽는 날까지 옥에 두었더라』
자 여기서 수수께끼의 목적이 나타납니다.
바로 이런 유다의 멸망이 여호와의 팔 곧 구원의 필수코스로써의
원수 만들기로써의 목이 곧은 백성의 목을 꺽는 심판이다는 겁니다.
다른 민족에게 없는 징계 말이죠
우리가 앞에서 살펴 봤듯이
아버지의 매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뻔하잖아요
개같은 이방인 보다 더 했으면 더했지
소돔과 고모라 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우상에서 손 땔 리가 없다 말이죠
왜? 그 어미에 그 딸이니까
바리새인이 아무리 율법을 지켜도
그 아비에 그 자식이라고
너희 아비는 마귀 라고 이 독사의 자식들아 라고 하시잖아요
왜냐하면 자기 의를 쌓았지
하나님을 사랑해서가 아니거든요
그래서 많이 탕감 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기에
원수 만들기를 하시는 겁니다.
자 이것이 수수께끼 이다 말이죠
이 부분을 오늘날 한국교회는 이상하게 거부를 해요
뭐 천재고 나발이고 아무리 똑똑한 자들도 이상하게 여기서 탁 막혀서
걸림돌에 넘어져 실족을 하더라 말이죠
베드로를 원수 만들어서 용서하실까요?
원수 만들지 않고서 구원하실까요?
베드로나 저나 여러분이나 모든 인간은 선악을 아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자의 후손입니다.
그래서 다들 설마 내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 할 리가 있겠는가 라고 생각한다 말이죠
자 그렇기에 반대되는 행동만 합니다.
세 번 부인 할 리가 없기에
반대 되는 행동
예수님을 절대로 버리지 않겠노라
장지지겠노라
아니면 십자가의 죽음에 끝까지 따라 가겠노라 라고 말이죠
이 얼마나 의인 답냐 말이죠
악인이 아니다 말이죠
얼마나 건강한 자 답냐 말이죠
누가 죄인 환자 병든자가 될려고 하겠냐 말이죠
절대로 웬수가 되고자 하는 자는 없습니다.
어떤 멍청한 장로는 이 웬수를 자기 스스로가 될수 있는냥 할수 있다고 나오던데
그것이 도리어 선함이 되는 여전히 선악을 못 버리는 겁니다.
선악을 인간이 버릴수 있다면 말라꼬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냐 말이죠
지난 주에 제가 처음 예수님을 알게 되었을 때 잠깐 언급했는데
고2때 고3 올라갈 봄방학 전에 음악선생으로부터 진로상담하다가
갑자기 복음으로 빠져 버리는 바람에 회개하게 되었는데
그때 저는 아무리 봐도 그 어떤 죄도 못 고칠 놈이다 인간말쫑 이라고 했는데
그거 고칠 생각 말고
주님이 너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 라는 말만 하더라 말이죠
아니 나는 죄를 고칠수 없는 자 인데도 말입니까?
고치든 못 고치든 무관하게
주님이 너를 위해 십자가 지셨다 거기에 제가 무너졌다 말이죠
그렇게 복음을 전했던 셈이 자기가 순복음에 빠지는 바람에
얼마나 많은 제자들이 선생님 돌이키세요 라고 아무리 붙잡아도 안되더라 말이죠
그저 자기 열정을 쏟아내는 곳만 찾다 보니 말이죠
저는 그것을 지켜보면서 아무리 저에게 복음을 전해줬던 셈이라고 해도
사람을 의지할 필요가 없다 라는 것을 보고 가르쳐 주셨다 라고 생각이 되더라 말이죠
자 이것은 착하고 선하고 이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라는 겁니다.
아무리 요시야 왕이 종교개혁을 해서 올바른 신앙을 해도
주님의 거룩은 이런 인간의 거룩과 무관해서
무조건 이유 없이 찢으시는 율법으로 죄 아래 가두고
다시 예루살렘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다시 싸매어 주시는
이 간극
이 공백으로써
바로 십자가죠
이 십자가라는 선물로써만 구원하신다는 겁니다.
어무이께서 녹음에서 나왔듯이 얼마나 외치고 싶었으면
주님의 찢겨지신 십자가를 보게 하실려고 우리를 찢는다 라고 기뻐서 외치셨듯이
이것이 세례이거든요
연합 이다 말이죠
그래서 무조건 이유 없는 우는 자리에
애통하는 자리에
말로는 복인데 우리 인간의 시선 곧 선악의 시선에서는 아무리 봐도
저주의 자리에 무조건 이유 없이 넣으시는 이유는
이것이 바로 여호와의 팔이라는 구원의 코스이기 때문이다는 겁니다.
그러니 인간이 바라는 구원 곧 착하고 선하고 랑 아무 상관이 없다 말이죠
그건 도리어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이고
주님이 보여줄 표적인 십자가 뿐이다 말이죠 요나의 표적
죽었다가 제 삼 일에 다시 사는
이 공백만을 이 간극만을 선물 하사겠다는 겁니다.
여기에서 나오는 믿음만이 믿음이지
다른 것은 신념 모든 종교에서의 믿음은 신념 똥고집이다 말이죠
이 똥고집에 대해서 성경에서 이렇게 나옵니다.
인간의 종교성 곧 신념은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고자 했던
하나님 나라 운동을 한 독립투사였던 가룟유다에게서도 나타나는데요
물론 방금 언급한 예수님을 절대로 부인하지 않겠다 라는 베드로에게도 나타나지만요
바로 주님의 창세전 부터의 계획인 전체에 대해 반대를 하고
자꾸 부분만 볼줄 아는 그것으로 고집을 피우는데 있어서
우리는 이 독수리를 거부할 수 밖에 없다 말이죠
그러나 독수리가 아니면
이 수수께끼를 못 본다 말이죠
수수께끼를 푸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래되면 또 선악이지요 나는 풀줄 아는데 왜 너는 못 푸냐 라는 식으로 선악이 또 생깁니다.
그게 아니라
수수께끼를 못 푸는 죄인 만드시는 주님의 전체 계획 속에 놓여졌다는 겁니다.
그러니 독수리의 등장 곧 바벨론의 등장 자체는
이스라엘의 멸망이 됩니다.
독수리가 쪼아 먹는 현실 이 혹독한 현실이라는 이 심판 속에서
코로나 라는 이 죽음 속에서
우리는 아까 언급한 왕 18대 왕 여호야김처럼 얼마나 반대하겠냐 말이죠
자기 조산 아하스 왕처럼 임마누엘을 구하지 않겠노라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노라 한다 말이죠
자 이것이 바로 배불러 터진 구원이다는 겁니다.
아직 덜 배고프구나 반드시 모욕적인 구원으로 몰아 넣으시겠다 라는 겁니다.
우리는 이런 심판 이런 죽음 속에서 예수님을 보지 않으면
또 예수님을 자기 배를 위하여 임금 삼고자 쫏아다니는
도리어 예수님은 도망치시는
그런 우상이 되지 않겠노라 라고 말이죠
이 인간의 본성을 끄집어 내시는 겁니다.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노라 라고 말이죠
얼마나 많은 자들이 예수님에게 나와서 어떻게 하면 구원 얻냐 라고
그 비법을 알려 달라고 했냐 말이죠
그런데 다들 어떤 반응으로 만들어 버리시는고 하니
아니 그럼 누가 구원 얻겠습니까? 아무도 없잖아요
라고 단절만을 외치신다 말이죠
구원의 조건을 갖출 생각을 하덜덜 말아라 라는 겁니다.
이놈의 교회들을 가면 자꾸 조건을 갖추래요 글쎄
악마들입니다.
그래서 독수리를 준비 하셨습니다
왜? 바로 그 배불러 터진 구원을 쪼아먹는
모욕적인 구원을 펼치시고자
창세전에 이미 말이죠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는 모욕적인 구원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말이죠
자신이 설마 사탄아 물러가라 라는 욕을 얻어먹을 줄 말이죠
그래서 준비하신 것이 독수리 곧 마귀 보란 듯이입니다.
그 잘난 배불러 터진 구원을
모욕적인 구원으로 바꾸고자 말이죠
꼬추 짤라 버리는 겁니다.
우상을 목을 짤라서
여자로 만들어서
예루살렘 딸로
이스라엘 아들에서 예루살렘 딸로
그것도 패역한 예루살렘 딸
창녀로 만들어서
많이 탕감 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게끔 말이죠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도록 말이죠
바로 그 독수리를 준비하심이 신명기에 나옵니다.
그 유명한 신명기 28장의 축복과 저주 인데
축복은 너무 짧고 저주는 왜그리도 긴지 ㅋㅋㅋ
(신 28:49, 개역) 『곧 여호와께서 원방에서 땅 끝에서 한 민족을 독수리의 날음 같이 너를 치러 오게 하시리니 이는 네가 그 언어를 알지 못하는 민족이요』
(신 28:50, 개역) 『그 용모가 흉악한 민족이라 노인을 돌아보지 아니하며 유치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며』
신명기 자체가 새로운 계명 이거든요
이미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를 통해서 실패 했으니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다 말이죠
기대는커녕 죄 아래 가두고자 했으니까 말이죠
이 독수리를 준비하심으로써 주님께서 구원을 펼치신다는 겁니다.
어떤 구원? 배불러 터진 멋들어진 구원? 아니면 모욕적인 구원 ? ~~~~~~
(신 28:53, 개역) 『네가 대적에게 에워싸이고 맹렬히 쳐서 곤란케 함을 당하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자녀 곧 네 몸의 소생의 고기를 먹을 것이라』
(신 28:54, 개역) 『너희 중에 유순하고 연약한 남자라도 그 형제와 그 품의 아내와 그 남은 자녀를 질시하여』
(신 28:55, 개역) 『자기의 먹는 그 자녀의 고기를 그 중 누구에게든지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 대적이 네 모든 성읍을 에워싸고 맹렬히 너를 쳐서 곤란케 하므로 아무 것도 그에게 남음이 없는 연고일 것이며』
(신 28:56, 개역) 『또 너희 중에 유순하고 연약한 부녀 곧 유순하고 연약하여 그 발바닥으로 땅을 밟아 보지도 아니하던 자라도 그 품의 남편과 그 자녀를 질시하여』
(신 28:57, 개역) 『그 다리 사이에서 나온 태와 자기의 낳은 어린 자식을 가만히 먹으리니 이는 네 대적이 네 생명을 에워싸고 맹렬히 쳐서 곤란케 하므로 아무 것도 얻지 못함이리라』
(신 28:58, 개역) 『네가 만일 이 책에 기록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라 하는 영화롭고 두려운 이름을 경외하지 아니하면』
(신 28:59, 개역) 『여호와께서 너의 재앙과 네 자손의 재앙을 극렬하게 하시리니 그 재앙이 크고 오래고 질병이 중하고 오랠 것이라』
54절에 질시하여 라는 말은 외면해 버린다 못 본척한다 라고 나온다 말이죠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 되어야 할 제사장들 레위인들이 못 본척 하잖아요
(신 28:54, 개역) 『너희 중에 유순하고 연약한 남자라도 그 형제와 그 품의 아내와 그 남은 자녀를 질시하여』
(신 28:54, 새번역) 『당신들 가운데 아무리 온순하고 고귀한 남자라 하여도, 굶게 되면 그 형제와 그 품의 아내와 남아 있는 자식까지 외면할 것이며,』
아무튼 아무리 사랑이 넘치는 아빠
성품이 온화한 남편이라도 배고프면 아내도 자식도 형제도 다 버린다 라는 겁니다.
어디 남자만 그러냐?
여자도 그렇다 라고 나옵니다.
(신 28:56, 쉬운) 『가장 점잖고 온순한 여자, 너무나 온순하고 점잖아서 발에 흙을 묻히지 않고 살던 여자도 잔인한 사람으로 변할 것이오. 그는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과 딸에게도 먹을 것을 나누어 주려 하지 않을 것이오.』
심지어 몰래 몰래 숨어서 자식까지 잡아먹는다 라고 나온다 말이죠
못땐 센 여자? 걸 크러쉬가? 아닙니다 지극히 온순한 마음이 너무 너무 착한 여자 마저도 그렇다 라고 말이죠
(신 28:57, 공동) 『궁한 나머지 제 다리 사이에서 나온 자식을 태째 몰래 먹어치울 것이다. 원수가 너희 모든 성을 포위하고 몰아치면 마침내 이런 지경에 이를 것이다.』
(신 28:57, 쉬운) 『아기를 낳으면 그 아기를 잡아먹으려 할 것이오. 이는 여러분의 원수가 여러분을 에워싸서 먹을 것이 다 떨어져 굶주리게 되었기 때문이오.』
남의 자식이 아닌 자기가 낳은 자식 마저도 잡아먹는다 라고 말이죠
책을 읽어드립니다 라는 프로그램에서 징비록 조선 임진왜란을 다룬 내용인데
사람을 잡아 먹었다 라는 처참한 내용을 다루기도 했는데 말이죠
심지어 얼마 되지도 않았다 말이죠
25년 전에 북한에서 대기근으로 인해 고난의 행군이 시작 되었는데
300만명이 죽었다고 하던데
아이들을 잡아먹는 일이 비일비재 했다 말이죠
배고프면 다 그래요
불과 25년 전에 말이죠 최근입니다 최근
이게 실상 이다 말이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병으로 죽나 배고파 죽나 어차피 죽을꺼면
자식들 굶기지 않도록 공장 문을 열어라 라고 미국에서 자동차 시위를 한다 말이죠
아무리 의사들이 차를 막아서도
이것이 지난 주에도 언급했던
슬픔과 탄식 이라는 현실 이다는 겁니다.
배고파 봐요 어무이 말 마따나 휴지 하나로 총 쏘고 칼부림이 벌어지듯이
처음 아담에 속한 자는 다 그래요
안 그러는 자 없어요
주님은 개개인으로 보는게 아니기에
이스라엘을 집단적으로 독수리 속에 집어 넣습니다.
독수리 수수께끼를 풀어서 대비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원인 없는 결과인데 이게 무슨 대비할 가능성을 주는 겁니까?
도리어 불가능성이지요
이렇게 인간의 죄악상을 낱낱이 들추어내심은
바로 예수님께서 그래서 매 맞으셨다 라는 겁니다.
너의 죽음이
너의 모욕 수치를 당함이 큰지
주님의 긍휼이 큰지를 제대로 보라꼬 말이죠
이 예수님의 죽음이 먼저 떴기에
그 증상으로써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
심판 속에서 긍휼을 바라는 겁니다.
바랄수 없는 중에 바라는 아브라함과 사라를 생각하라고 하셨듯이
왜 광야에서 반드시 원망을 받아서 그 증거를 증거궤 속에 담아서
뚜껑 왕뚜껑 치맛자락으로 덮어서 왜 그 위에 시은좌 위에 피를 뿌리시는지를 말이죠
저들 총 칼을 들고 있는 자들에게
이 십자가의 사랑만을 용서만을 외치면서 여리고성을 뺑뺭이 도는
믿음의 전쟁을 왜 펼치시는지를
혈육의 싸움이 아닌
예수님이 왜 이 싸움 곧 평화의 전쟁을 하셨는지를
독수리에게 아무리 반바벨론 정책을 펼친다고 해서
독수리가 자기 밥을 미워 할 리가 있겠냐 말이죠
사랑하지
자기 밥 인데
떼려야 뗄수 없는 관계 인데
이 독수리가 건디지 못하고 격동하는 것은
자기 세간 자기 밥을 훔치는 도둑이 나타나 주심 외에는 없습니다.
그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는고 하니
슬픔 대신 희락을
재 대신 화관을
근심 대신 찬송의 옷을 입혀 주시는
지난주 녹음에서 언급했듯이
바로 심판 속에서 구원을 펼치시는
여호와의 영원한 기쁨과 즐거움을
바로 슬픔과 탄식 속에서 주실때에
(사 51:11, 개역) 『여호와께 구속된 자들이 돌아와서 노래하며 시온으로 들어와서 그 머리 위에 영영한 기쁨을 쓰고 즐거움과 기쁨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이다』
세상이 견디질 못하고 격동한다 말이죠
죽은 자가 다시 살 듯이
천한 계집 종이 왕비가 되었을때에 견디질 못하고 격동케 하는 것이
이것이 지혜 라는 인물 이다 말이죠
그래서 베드로를 천하의 배신자로 만드셨다가
웬수 만드셨다가
그 웬수를 사랑한
이웃사랑의 완성
율법의 완성자이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인해
마귀는 견디질 못하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신부로 만드시는
이 주님의 구원 계획
오로지 이 십자가만 예정 되었다 라는 이 현실로
이스라엘을 몰아가는 겁니다.
이 모욕적인 구원이 아니면
다 가짜요 배불러 터진 멋들어진 구원을 바라는 탐심에서 못 벗어나기에
주님은 끝까지 사랑하시고자
이스라엘을 멸망 속으로 집어 몰아넣으시는 겁니다.
죽은 자 같으나 산 자로 만드시는
주님의 믿음 덕분에
주님이 믿음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해 주심 덕분에
이 의사는 환자를 부르러 오신 겁니다.
'에스겔 2019'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높은 나무를 낮추고 낮은 나무를 높이며 (겔 17,22-24) (0) | 2020.05.09 |
---|---|
독수리 비유 해석 (겔 17,11-21) (0) | 2020.05.03 |
어렸을 때에 맺은 영원한 언약 (겔 16:59-63) (0) | 2020.04.19 |
“그 어미에 그 딸” 이라는 비꼬는 속담 (겔 16,44-58) (0) | 2020.04.11 |
너 창녀 예루살렘아 여호와의 심판을 들으라 (겔 16,35-41) (0) | 2020.04.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