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 어렸을 때에 맺은 영원한 언약 (겔 16:59-63)
(겔 16:59, 개역)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가 맹세를 멸시하여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내가 네 행한 대로 네게 행하리라』
(겔 16:60, 개역) 『그러나 내가 너의 어렸을 때에 너와 세운 언약을 기억하고 너와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라』
(겔 16:61, 개역) 『네가 네 형과 아우를 접대할 때에 네 행위를 기억하고 부끄러워할 것이라 내가 그들을 네게 딸로 주려니와 네 언약으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겔 16:62, 개역) 『내가 네게 내 언약을 세워서 너로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니』
(겔 16:63, 개역) 『이는 내가 네 모든 행한 일을 용서한 후에 너로 기억하고 놀라고 부끄러워서 다시는 입을 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겔 16:59, 현대어) 『[영원히 유효한 언약] 네가 맹세를 무시하고 나의 언약을 깨뜨렸으니 나도 네가 행한 대로 갚아 주겠다.』
(겔 16:60, 현대어) 『그러나 나는 또 네가 처녀였을 때 맺었던 언약을 기억하고 그 약속을 바탕으로 너와 영원한 언약을 세우겠다.』
(겔 16:61, 현대어) 『또 내가 너와 언약을 맺을 때에 약속하였던 일이 아니더라도 네 언니들과 동생들을 모두 네 딸로 삼아주겠다. 그러면 지난날의 네 부끄러웠던 갖가지 행실을 기억하고 얼굴을 들지 못할 것이다.』
(겔 16:62, 현대어) 『그리고 내가 너와 다시 언약을 맺고 네 허물을 용서해 주는 것을 보고서야 내가 여호와라는 것을 네가 깨닫게 될 것이다.』
(겔 16:63, 현대어) 『네가 제 정신을 차리고 지난날이 부끄러워서 다시는 입도 열지 못하도록 내가 네 허물을 용서해 주겠다. 나 주 여호와가 하는 말이다.'』
어려번역에 보니 어렸을때를 젊었을 때 또는 처녀였을때로 번역했습니다.
즉 어린아이도 그렇고 처녀 또는 젊었을때에 부모에게 종속된 입장인 거죠
(겔 16:60, 새번역) 『그러나 나는 네 젊은 시절에 내가 너와 맺은 언약을 기억해서, 너와 영원한 언약을 세우겠다.』
(겔 16:60, 공동) 『그러나, 나는 네가 처녀였을 때 너와 약혼했던 것을 생각하고 너와 영원히 끊을 수 없는 계약을 맺으리라.』
(겔 16:60, 쉬운) 『그러나 나는 네 어린 시절에 너와 맺은 내 언약을 기억하고 너와 영원한 언약을 맺겠다.』
지난 주에 그 어미에 그 딸 이라는 원인 없는 결과로써
부모를 선택해서 그런게 아니다 라는 거죠
그런 입장에서 무능하게 종속된 입장이다는 겁니다.
처음 아담에 속하다 보니
이유 없이 원인 없는 결과로 우리는 그 어미에 그 딸처럼
그 아비에 그 자식처럼
마귀의 세간으로 종속이 된 무능한 입장에 처한 것을 어리다 라고 표현 한 겁니다.
문제는 그런 자력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모에 따라 내려온 죄악을
그럼 또 부모 라는 원인을 없애고자
부모로부터 의도적으로 관계를 끊으면 그러면 죄악이 없어지는가?
아니면 태생 자체가 우상숭배자로 되지 않을꺼 아닌가? 라는 점입니다.
원인 없는 결과 곧 이유가 없어요 무조건인데
자꾸 성화론자 라는 우상숭배자들은 원인을 바꾸면 자꾸 된데요 글쎄
원인을 바꾸면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이
인간의 지혜의 한계인 겁니다.
그들에게는 십자가가 어리석고 미련한 걸리적 거리는 걸림돌인 셈인거죠
그런 의미에서 오늘 어렸을 때 라는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난 오호라 나는 곤곤한 자 로구나
주의 목전에서 항상 죄 밖에 안 나온다 라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 쪽에서
그런 고아
고아가 뭡니까? 홀로된 아이 아닙니까
부모가 없는아니 부모 없이 태어난 아이가 어디있냐 말이죠
그런데 부모 없는
즉 버림받은 아이이다는 겁니다.
부모가 있어도 홀로된
과거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였던가요?
최근 얼마전에 종영한 방송
아이를 위한 나라는 있다 였던가요?
노인을 위한 나라도 없는 판국인데 (할아버지 할머니 없는 성인들)
어떻게 아이를 위한 나라가 있을까?
역시나 보니까 아이를 위한 나라가 없더라구요
후사를 위한 나라는 이 세상에 없어요
우리가 아브라함과 사라를 생각해 보라 라는 말씀을 통해서
후사는 곧 예수님이다 라고 했잖아요
예수님을 위한 나라는 없다 말이죠
이스라엘 조차도 말이죠
모두다 주객이 거꾸로 되어서
이스라엘을 위한 예수 곧 우상일 뿐이지
우상을 위한 나라 밖에 있을 뿐이다 말이죠
아무튼 그 두 프로그램을 보면서
아이가 자기 스스로 살아남아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을 정도로
아이들이 마치 사랑을 갈구하는 고아원 아이들 같더라 말이죠
교회도 마찬가지
다 큰 어른들이 마치 고아원 아이처럼 자꾸 애정을 달래요 글쎄
안 주면 복수를 마구 마구 해 데요
부자 청년도 그렇고
이스라엘 선생님 이라는 바리새인이라는 놈도 그렇고
무슨 앵벌이도 아니고
율법사 제사장 이라는 놈들은 더 심해요 글쎄
복수의 달인들 같아
고아원에 가보면 헤어질 때 자꾸 안아달라고
아이들이 안 떨어질려고 해요
그 정도로 부모로부터 버림 받은 그 증상들이 나타난 거죠
그런데 고아 된 적도 없고
사회에서 소위 성공했다고 하는 자들이
교회에 모이면 이거 뭐 완전 고아원 아이들 같아
앵벌이처럼 착 하고 철거머리처럼 달라붙어요
지난 주에 왜 이스라엘이 망했나요?
고아 과부 나그네를 압제해서 망했다 말이죠
즉 율법이 없어서 망한 겁니다.
그런다고 주님이 포기 하십니까?
율법으로 무조건 이유 없이 심판 하십니다.
언제 맺은 영원한 언약이기에?
바로 어릴적 너가 너 부모로부터 버림 받았을때에
이미 무능할때에 주님 쪽에서 일방적으로 맺었거든요바로 출애굽할때에 말이죠
어릴적이라 우리는 모릅니다.
육적 부모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났기에
부모와의 언약 조차도 일방적이듯이
부모를 선택한 것이 아니기에 말이죠
그렇게 어렸을때에 주님께서 일방적으로 찾아와서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우리 곧 고아 같은 피투성이에게
주님 쪽에서 맺어버린 언약
더 나은 일방적으로 맺어버린 언약이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 영원한 언약을 커가면서 다 잊어버린다 말이죠
커 간다 라는 말은 자아가 발달하는 겁니다.
요즘 아이는 자기 생존을 부모가 책임져 주지 않으니까
홀로 혼자 커 가야 하기 때문에
자존감이 얼마나 셉니까
커 가면서 아무것도 못하는 무능한 아이로 부모들은 만들지 않거든요
오히려 더더욱 자력으로 클 수 있는 아이로 만든다 말이죠
(부모가 어려워 지면 제일 큰 타격이 아이에게 닥칩니다. 곧 버림받아요그러나 성경은 오히려 그 종말을 더 미리 앞당겨 버려요그래서 임마누엘을 구하라아이를 최전방에 보내라아니 애굽과 손 잡고 연합군을 차려서 이기고자 힘쓰는 판국에젖먹이를 최전방에 보내라 굽쇼? 그 정도로 우리가 악하다 라는 겁니까?태생 자체가 창녀이다는 겁니까? 그 정도 까지는 아니지 않습니까?그러나 제일 먼저 아이를 치십니다 죄책감을 더더욱 뒤짚어 씌워요무슨 수로 빠져 나가겠냐 말이죠아하스 왕 말이 지극히 말이 되고 지극히 정상적이다 말이죠임마누엘 아기 구하지 않겠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절대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지 않겠다이 말은 나 그 정도로 태생 자체가 창녀가 아니다 라꼬 선악을 내세운다 말이죠그 선악 탈탈 털어서다윗을 생각해서예수님을 생각해서아브라함을 생각해서남겨둔 한 씨를 생각해서 봐 주시겠다 라고 긍휼히 여기시겠다 라고
(사 1:9, 개역)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
(롬 9:29, 개역)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시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그래서 미리 앞당겨 임마누엘 아기를 구하라 라고 하시는 겁니다.안 그러면 마귀를 이겨보던가? 죄의 소원을 넘어서 보던가? (창 4:7, 개역)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주여 난 못합니다 라고 자존심이고 뭐고 다 냅따 숙제를 예수님에게 임마누엘 아기에게 맡겨야 한다 말이죠)
부자청년을 보세요
자존감이 크기에 근심하면서 돌아섭니다.
자아의 세계를 어떻게 다 포기하냐 말이죠
자신의 손으로 이룬 율법 지키기를 하루 아침에 포기하라굽쇼
오히려 더 크게 확장 시켜 왔는데
내가 만약~~~~ 외~~~로울 때면 누가 위로해 주지?~~~~
바로 그겁니다.
부자는 돈으로 외로움을 달랬던 겁니다.
돈 보다 더 큰게 결국 외로움 이였던 거죠
그 빵구멍을 매울 길이 없어요
더 웃끼는 것이 마귀의 세가지 시험 중에
두 번째가 종교 아닙니까 곧 문화죠 이웃은 이 문화로 결정이 되요
세 번째가 정치인데
곧 첫 번째 경제는 같은 민족에서 형성이 되는게 아니라
시장경제는 같은 종교에서 형성이 됩니다.
그게 국가 이다 말이죠
국가는 매매가 없으면 죽어요
돈이 국가를 형성하는 겁니다. 곧 종교가 말이죠
같은 민족이라고 해도 한국 보세요 북한과 남한으로 국가를 형성했지요
거기에다가 남쪽은 좌파와 우파로 나누이는데
천주교냐 기독교냐의 정치입니다.
백날 다양성 외쳐도 소용없어요
연동형 비례대표제 웃끼는 소리죠
딴나라당 보다 제일 미운 놈들이 정의당이 놈들은 독재 보다 더한 놈들이다 말이죠
정의당 출신들 보세요
유땡민 진땡권 입만 살았잖아요
깐족 깐족
돕는다는 놈들이 더 방해하고 있다 말이죠
정의는 무슨
똑같이 성령을 개방이라고? 다양성이라고? 웃끼는 소리죠
육의 소욕이냐 성령의 소욕이냐 이거 뿐입니다.
오히려 성령은 철저한 단절이다 말이죠
양당 체제 뿐입니다.
천주교냐 아니면 기독교냐
과거 3.1 운동이나 그 전에 동학 그 전에 점점 더 들어가면
민중종교이다 말이죠
누가 더 대중적이냐 즉 이웃이냐 라는 겁니다.
그 민중에 동학이 그리고 천주교 제일 나중에 기독교가 불 붙인 것이지
종교에 따라 이웃이 설정이 되지
같은 민족으로 이웃이 설정이 되지 않아요
(사마리아 구역을 삥 둘러 가잖아요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누굽니까? 아직까지도 철수하지 않아 노철수 누굽니까 ~~~)
물론 제가 말하는 한국 기독교는 복음을 싫어하는 우상숭배 집단이구요
진짜 기독교는 한국에 없어요
한국에만 없으면 다행이게
세계에 없어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기능만 할 뿐입니다.
예수님을 위한 나라는 없어요
우상을 위한 나라 밖에 없다 말이죠
주님 께서 그때 그때 우발적으로 발생시켜서 사라지게 하십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요
또 움직이지 못하는 교리화된 것이 복음이 아닙니다.
움직이는 성전이 교회이거든요
산 자의 하나님이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다 말이죠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지 (복음)
안식일을 위해 사람이 있는게 아니거든요 (우상, 선악)우상과 복음의 차이 이다 말이죠
(마 12:10, 개역) 『한편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물어 가로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마 12:11,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마 12:12, 개역)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막 2:27, 개역)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그래서 일부러 안식일 날만 골라서 병을 고치시는 겁니다.
이 다음글 마태복음에서도 언급하겠지만사랑은 결국 원인을 없애는 겁니다.
결과 뿐이다 말이죠
원인 없는 결과
그러나 우상은 도리어 원인만 자꾸 갖출려고 해요
조건을 따진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안식일 날만 일부러 병을 고친다 말이죠
원인을 없애는 겁니다.
사랑은 무조건 무조건이야
즉 조건을 없애는, 깨뜨리는 겁니다.
그래서 어릴적에태어나기도 전에태생 자체가 창녀인 버림받은 우상숭배자였던 너를태생 전에어릴적에 이미 맺은 영원한 언약이 있다는 겁니다.니 부모 그 어미에 그 딸로 니 부모에게 선악에게 돌아갈래?아니면 나의 영원한 약속을 쳐다볼래?
움직이지 못하는 교리를 깨뜨리고자 말이죠
교리를 위해서
종교를 위해서 사람이 있다 라는 모든 종교 곧 기독교 포함해서 666을 박살 내시고자 말이죠
이런 너희 아비는 마귀니라
그 아비에 그 자식
그 어미에 그 딸인 날 때부터 태생 자체가 우상숭배자
곧 창녀인 이스라엘에게
주님은 따로 꼬불쳐 놓은 약속이 있다는 겁니다.
그것은 너희들이 무능할 때 곧 어렸을때에 젊었을때에 맺은 영원한 언약이 있다는 거죠
(이것 자체가 천국이 침노 즉 침략해서 시비를 거는 식입니다.천한 계집이 어떻게 왕비가 되냐 말이죠 말도 안되잖아요 그런데 지혜는 합니다.)
바로 고아 과부 나그네 때에 맺은 언약 영원한 언약
곧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맺은 언약 말이죠
곧 피투성이 핏덩이 일때에 말이죠
그 언약을 알기 위해서는 (유월절 어린양의 피 정신)
광야에서 10번 원망해야만 하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베드로를 닭 울기 전에 세 번 부인토록 만드셔야만 합니다.
그래야 탈탈탈 털리는 빈 공백이 되니까 말이죠
선악을 탈탈탈 우상을 터시는 겁니다.
우리는 그거 싫어합니다.
아니 원망 안하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게 낫지
왜 10번 이상 원망해서 그 증거물로 세가지 물증
원망한 증거물
깨어진 십계명 두 돌판 (종교문제, 봐라! 돌판에 약속을 새겼다. 약속의 민족 맞잖아를 잃어버리게 하심. 내 백성입니까 주님 백성입니까?)을 넘어서 마음판에 새기심
아론의 싹난 지팡이 (모세 니만 지도자인가? 민주주의로 지도자를 뽑자 모세 니를 뭘 믿고 가냐? 대통령제 투표제로 하자? 정치 문제) 를 넘어서 죽기까지 복종하는 섬기는 왕
만나를 담은 항아리 (경제 먹거리 문제) 를 넘어서 만나는 먹은자 다 죽었다
내 살과 피를 먹지 않는 자는 나와 상관 없다
을 왜 꼭 담아야 합니까우상 곧 선악을 넘어서
죄를 넘어서 사랑을
십자가의 피를 먹이시고자 말이죠다른 생명은 없어요
우리에게서 나온 것은 선악 선악 선악 빡에 없는 법 법 법을 따지는 우상적인 모습만
창녀인 모습만 드러내고 있다 라는 겁니다.
그것을 까발리시는 겁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즉 딱딱한 교만한 목이 곧은 백성이다 라는 겁니다.
이것을 꺽어야지요
그러니 그 이전에 어렸을 때에 이미 맺은 영원한 언약인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발렸기에
그 증상으로써
우리 속의 우상들이 다 들통당하는 겁니다.
다른 민족에게는 없는 징계요 심판입니다.
다른 민족에게는 광야교회가 없어요
목이 곧은 백성을 낮추심이 없어요
사랑하는 자녀에게만 있습니다.
사생아에게는 없다 말이죠
그렇게 음녀로 지적 받는 다는 자체가 바로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발린 증거로써
우리는 불뱀에게 물려 죽는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난 자임을 드러내도록 되어 있습니다.
왜? 장대 높이 달린 인자가 먼저 떴기에 그 증상물로써 말이죠
다른 민족은 이런 음녀라는 지적을 받지 않아요
다른 민족 또한 불뱀에게 물려 다 죽은 이미 죽은 자들입니다.
음녀 라고 지적 조차 받을 필요가 그들에게는 없어요
이미 내어버려둔 바 되었기에
사생자 에게는 징계가 필요가 없거든요
그러나 이스라엘 만큼은 자녀이기에 음녀 라는 지적을
다른 민족에게 없는 지적을 받음으로써
오로지 유월절 어린양의 피만 자랑하면서 천국 곧 약속 안에 들어가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이미 들어왔기에 말이죠
왜 광야 교회 라는 40년간의 공백이 왜 필요 할까요?
그거 없으면 우리가 태생 자체가 음녀라는 지적을 안 받게 된다 말이죠
결국 율법이 없어서 망하는 나라 되지 않게 하시고자 함입니다.
율법의 기능은 무조건 이유 없이 찢으시고
그리고 다시 의를 쳐다보라꼬
다시 삼일 만에 다시 살리시는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심인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 찾음입니다.
이 공백에 충실하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같았다 말이죠
그 공백에서 우리는 부드러운 마음을 보게 됩니다.
그 긍휼을 달라고 간구하는 기도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이
그 십자가의 흔적인 그 틈
그 간극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가 바로
처음자리인 이스라엘 곧 고아 과부 나그네였다 말이죠
그러니 성화론자들은 교회주의자들 아닙니까
그런데 교회가 아니다 말이죠
성령의 전은 너희 이다 라고 했듯이 인간 자체가 교회이어야 하는데
그들은 교회주의자 이면서 교회가 아닌
움직이지 못하는 부동산 교회
아니면 더 나아가서 조직 공동체 집단
그것도 개개인이 모인 집단 (개인의 성화됨을 보장해주는)
소위 동아리 단체가 졸지에 교회가 되어버렸기에
이거 완전 우상숭배 단체이다 말이죠
그러니 광야 교회 라는 40년 동안의 공백으로써 지적이 없어요
너희는 창녀이다 날 때부터 창녀이다 라는 지적이 없어요
지적이 없기에 안 튀어나와요
죄악이 튀어나오질 않아요
원망이 튀어나오질 않아요
더더욱 저 세리 매국노와 같지 않음을 하나님께 감사하다 라고
진짜로 버림받은 사생아이다 말이죠
부드러운 마음이 없어요
광명한 천사 같아요 사기꾼이다는 거죠
그러니 인간이 꿈꾸던 교회가 되는 겁니다.
원망 하나 하지 않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되는
캬 그야말로 우상으로 도배된 사생아 동아리를 꿈꾸고 있더라 말이죠
매일 매일 교회를 부수는 교회가 아니라
도리어 교회가 고아 과부 나그네를 착취해서
강도의 소굴로 만들고 있더라 말이죠
전복이 되지 않더라 말이죠
부서져도 상관이 없는
주님이 세우시는 교회가 아닌
기여이 사람의 손으로 짖는 교회가 되더라 말이죠
그것도 다들 납득이 되는 교회이지
고레스를 메시아로 삼아서
아무것도 없이 세워지는 교회를 누가 믿겠냐 말이죠
기여이 자기 손으로 세우는 교회를 세우겠다 라고
자기 손으로 자기 성화됨으로써 신앙을 세우겠다는 식이지
아무것도 없이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그저 원망만 했을 뿐이데 그 용서를 믿음
아브라함 사라를 생각지 않더라 말이죠
아브라함을 생각지 않고 어떻게
신앙을 세우는지
그게 바리새인처럼
오늘날 개혁주의자나 성화론자들
소위 이름이 거룩으로 도배된 자들이지
이름 자체가 더러우면 사람들을 속일 수 있겠냐 말이죠
(행함도 그런 식으로 속이는 겁니다.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였던 사도바울이 하나님께 열심은 있다고 했다 말이죠
그러나 의를 쫏은 것이 아니다 곧 율법 외에 한 의 즉 십자가의 피 용서를 믿은 것은 아니다 라는 겁니다.)그렇게 원망하지 않고 멋들어지게 광야의 공백 없이 천국에 들어갈려고 하는 자들에게
그렇게 거룩으로 도배하면서
금식하고 있는 그런 자들 옆에서
주님은 치킨 맥주를 시켜서
먹기를 탐하고 (마귀의 첫 번째 시험의 경제 먹거리 문제에 부정의 부정으로)
포도주를 즐기며 (즐긴다 라는 것은 문화, 종교 문제죠 이웃사랑 실천의 이웃설정에 부정의 부정으로)그리고 제일 마지막 누구의 친구?(친구란 결국 정치 문제입니다.
외로움 문제를 경제와 종교 문제의 배경 위에서 최종적인 정치문제로 나타난다 말이죠
인간의 사랑 조차도 소유욕이지만 친구 문제는 아내와 남편의 친구 동반자 동행자 문제는
정치적이다 말이죠
진리는 항상 정치적인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입니다.)그래서 정치가 될려면 진리가 될려면 인간은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세리 곧 매국노죠 그리고 죄인과 친구가 되면 정치 자체가 안 됩니다.
진리 자체가 안 되요
지금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에 날 때부터 태생 자체가 음녀인 우리와
어릴적부터 영원한 언약을 맺었다 라고 하면
우리 스스로가 예수님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은 사람들로부터 메시아 취급을 받지 못합니다.
아니 사마리아 구역 더러운 창녀들 음녀들 개같은 이방인
사망의 그늘에 폭삭 주저 않은 흑암의 백성 곧 지옥 백성 구역을 삥 둘러 가고 있는 유대인 백성인들인데
메시아 되신 예수님께서 더러운 죄인과 세리와 강도의 친구가 되시면
진리가 되지 못합니다.
정치가 안 됩니다.
사람들에게 먹혀 들지 않습니다.
라고 나온다 말이죠
즉 친구 라는 개념이 나오면 버린다 라는 개념과의 차이로써 생각하시면 됩니다.
바리새인 예수님을 버리기로 작정 했다는 겁니다.
지들이 뭔데 친구니 버리니 하냐 말이죠
삥 둘러 가는 이유가 정치적으로 하나도 도움이 안되니까
예수 또한 그렇다 라는 겁니다.
(벧전 2:4, 현대어) 『주께 오십시오. 그분은 산바위의 초석이며 하나님께서는 그 위에 집을 지으십니다. 인간들은 그리스도를 버렸으나 하나님께서는 다른 모든 인간들보다 더 귀한 존재로 그분을 택하셨습니다.』
이런 정치 보다 더 정치적인
진리를 깨뜨리는 진리로써(왜? 인간에게서의 진리를 딱 하나입니다 자기 자신입니다 그런 모든 육을 십자가에 못 박고자 오셨으니까 말이죠)
(갈 5:24, 개역)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인간의 종교 경제 정치 장치를 깨뜨리면서 더 나은 진리로써
모든 인간의 부활 곧 천국관이지요 구원관을 깨뜨리는 구원으로써
창녀 세리 강도의 친구로써 왜 오시느냐 말이죠
이것이 어릴적에 맺은 영원한 언약 이다는 겁니다.
아까 위에서 언급한 안식일이라는 영원한 언약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영원한 언약 이니까 인간들은 안식일을 지켰는데
그게 가짜라는 겁니다.
그것으로 오히려 고아 과부 나그네 라는 처음자리를 이스라엘 자리를 스스로 발로 차버렸다 말이죠
사랑을 말이죠
징계를 말이죠
스스로 사생아 자리에 가 버리더라 말이죠
안식일 지키는 것이 도리어 손마른자를 쫓아내잖아요
어딜 감히 거룩한 곳에 왜 오냐 말이죠
자기들이 못 고치는 것에 상한심령이 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에 쫓아내고 있으니
안식의 원래 취지
사람을 위해 안식일이 있지
안식일을 위해 사람이 있냐 말이죠
결국은 따지고 보면 안식일을 지키는 자기를 위해
안식일을 위해 사람이 있도록 만들어 버리는
정치가 되어버린
이것이 진리가 되어버린
교리 플러스 실천이 되어버렸다 말이죠
이 진리를 깨뜨리는 진리가 바로 안식의 주인이다는 겁니다.
움직이지 않는 고정된 진리에 졸지에 다른 진리 곧 인물 그 자체가 온 겁니다.
저들의 교리에 맞게 죽임을 당해야 해요
그래야 전복이 되면서 사라지는 매개자가 되는 거죠
이 단절이 바로 십자가의 지혜 곧
저들에게는 거리낌이 된다 말이죠
율법적으로 맞으니까 율법의 완성은 사랑이니까
저들의 율법 지키는 껍데기가 다 들통내버리는
거리끼는 걸림돌이 도로 도로 되어버리는 겁니다.
예수님을 찔렀는데 자기들을 찌른 셈이 된 거죠
예수님을 찌른 창이 도리어 수술칼이 되는 우리를 고치는 칼이 된 겁니다.
이 예수님의 운명에 같은 운명이 되어버린 셈이니까요
다윗의 운명 속에 지금 에스겔은 이스라엘을 다 집어 넣듯이 말이죠
그런 이유로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난
그 어미에 그 딸인
다윗과 같은 정직한 영이 아예 없는 자에게
처음부터 상한심령을 집어넣기로 어렸을 때에 영원한 약속을 주님께서 맺었다 말이죠
언제? 태어나기도 전에
창세전에 사랑받기도 작정이 되었다 말이죠
(겔 16:5, 개역) 『너를 돌아 보아 이 중에 한 가지라도 네게 행하여 너를 긍휼히 여긴 자가 없었으므로 네가 나던 날에 네 몸이 꺼린바 되어 네가 들에 버리웠었느니라』
(겔 16:6, 개역) 『내가 네 곁으로 지나 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하고』
피투성이 일지라도 살라 라고
피투성이 일 때 살리시겠다고 주님 본인이 약속하셨다 말이죠
(겔 16:13, 개역) 『이와 같이 네가 금, 은으로 장식하고 가는 베와 명주와 수놓은 것을 입으며 또 고운 밀가루와 꿀과 기름을 먹음으로 극히 곱고 형통하여 왕후의 지위에 나아갔느니라』
(겔 16:14, 개역) 『네 화려함을 인하여 네 명성이 이방인 중에 퍼졌음은 내가 네게 입힌 영화로 네 화려함이 온전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고 아내로 삼으니까 이방인 중에 그 화려함이 퍼졌다 말이죠
솔로몬의 아가서처럼 술람미 여인을 부러워 배아파 죽겠다 라고 동네처자들이 노래 합창을 하듯이 말이죠
그러니 사랑이 오지 않으면
진리가 인물로써 오지 않으면
진리를 교리화 시켜서 실천하는 그 가짜진리가 깨어질 리가 없을 정도로
속아 넘어가는
그 어미에 그 딸
버림받은 피투성이를 거두어 들여서
세상이 견디질 못하고 격동케 하는
아내로 삼는 것이 바로 지혜 라는 인물이다는 겁니다.(잠언 30장)
안식의 주인이 오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우리는 가짜 진리 속에 파 묻혀 있다 말이죠
그래서 깨뜨리시고자
너희 속의 우상성 모조리 다 드러내시고자
광야 40년 동안 나올수 있는 우상이란 우상은 다 토해내시는 겁니다
딱 세가지 꼬끼오 꼬끼오 꼬끼오로 줄여서누가 울어주지 않으면
누가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겠냐 말이죠
누구 누구의 아들 후사를 쳐다 보겠냐 말이죠
아무도 믿음을 쳐다보지 않고
자기 행함을 쳐다보고 있으니 그 곧은 목을 깨뜨리듯이
인간 종교의 부활
모조리 다 깨뜨리는 겁니다.
경제
종교,문화
그리고 정치 이다 말이죠
배 부르면 인간은 종교를 만들어요 부활을 꿈꾼다 말이죠
이 모든 것이 외로움
자기가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친구로써
진리도 정치도 그럴 듯 하게 솔로몬의 영광 지혜로써 만드는데 있어서
주님은 그 반대로 들에 핀 백합화로 인간들의 진리가 된 정치를 깨뜨리시는 겁니다.
선악은 결국 하나님과 같이 된 혼자 됨 이다 말이죠
동행하는 자가 없으니까 친구를 억지로 만들어요
친구가 되어주는 자가 없으니까
그러니 선악은 점점점 친구를 많이 만들면 만들수록 더더욱 외롭듯이
부자가 이래요
더더욱 외로워요
가슴 한 구석이 뻥 하니 빵구멍이 난 것처럼 허 하니
뭔가를 채울려고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가 않아
슬픔도 눈물도 죽음도 그 어떤 아무것도 함께 나누는 동행자가 없어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는 자가 없어요
부요함도 홀로 누리니 재미가 없어 즐겁지가 않아
지 혼자 성공하면 뭐해? 외로운데
먹보에 술꾼에 세리와 죄인의 친구가 오히려 더 부러운데
정치적으로 지가 외로우니까 도리어 그 외로움을 예수님에게 뒤짚어 씌워서 죽여서 외롭게
홀로 만들려고 해요 글쎄 이것이 인간의 진리이다 말이죠
그러나 이 예수님의 죽음에 함께 동행하고자 하는 자들이 왜그리 많은지
외롭게 만들기는커녕 더더욱 친구들이 넘쳐나요 넘쳐나
죽음 조차도 함께 하니까
그러니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는
이 공백을 통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망상적인 구원을
기존의 인간의 욕망으로 도배가 된 그런 구원
그런 부활
그런 우상성에서 선악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 본적이 없는
보편적 욕망으로써의 구원에서 못 벗어나는데 있어서
예수님은 더 나은 구체적 보편성으로써의 구원으로써
저들의 구원을 깨뜨리는 구원으로 십자가의 피 용서를 펼치십니다.
어떻게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써 오실까요?
인간의 정치(신과 같이 된)에서는 있을 수 없는 그저 홀로이기에
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진리로 만들 뿐이다 말이죠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 정치는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고 하십니다.
(요 14:1, 개역)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 14:2, 개역)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요 14:3, 개역)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 14:4, 개역)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요 14:5, 개역)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요 14:6,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7, 개역)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요 14:8, 개역)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요 14:9,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요 14:10, 개역)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요 14:11, 개역)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요 14:12, 개역)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요 14:13, 개역)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요 14:14, 개역)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요 14:15, 개역)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 14:16, 개역)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요 14:17, 개역)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 14:18, 개역)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요 14:19, 개역)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요 14:20, 개역)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고아처럼 내버려 두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너희 어미처럼
너희 아비처럼 버려두지 않고
그 피투성이를 거두어 들여서 영원한 약속을 이미 벌써 하셨다 라고 하십니다.
(시 27:10, 개역)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시 27:5, 개역)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 위에 높이 두시리로다』
(시 27:6, 개역)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두른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시 27:7, 개역) 『여호와여 내가 소리로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
(시 27:8, 개역)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 마음이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시 27:9, 개역)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말고 떠나지 마옵소서』
우리는 소돔 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이방인 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다를바가 없는 그 음녀의 자리에서
주님께서 왜 우리가 어렸을때에 피 투성이 였을때에
어미도 아비도 버린 자를 왜 거두어서
영원한 언약을 맺었는지를
그 십자가의 피 용서를 보라꼬
남들이 지적 받지 않는 그 지적을
사생아가 아니다 라는 이유로 심판하심으로써
영원한 언약
곧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시는 이 제 삼일의 간극 속에서
우리와 어릴적에 맺은 그 영원한 약속
애굽 속에서 맺었던 그 유월절 어린양의 피 약속을 기억하라꼬
징계하시는 겁니다.
이 용서 일만달란트 탕감이라는 이 용서가 이 사랑이 큰 것이지
내가 음녀가 된 것은 하등 중요하지 않습니다.
날 때부터 소경됨
화로다 나여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미 피투성이로 버림받았을때에 영원한 언약을 맺으신 분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피로써 맺은 약속 말이죠
이 장대 높이 달린 인자가 먼저 떳기에
그 증상으로써
불뱀에게 물려 죽는
그러나 정작 불뱀에게 물려 죽는 것은 하등 심각한게 아닙니다.
보라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는 것이 더 심각하기에
그 증상물로써 우리를 피투성이 자리에서 주의 십자가의 피 용서를 쳐다보는 겁니다.
마침 감기라는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는데
아이가 피투성이 인채로 비닐에 쌓여서 돼지를 땅에 파묻어 구제역때처럼
사람도 똑같이 땅에 파 묻어 불질러 태울려고 할때에
감염이 되지도 않은 한 남자가 이 피투성이를
불 속에서 끄집어 내신다 말이죠
도리어 음녀임에도 불구하고
날 때부터 태생 자체가 날 때부터 소경된 것이 부모죄냐 자기 죄냐는 하등 중요한게 아니라
아버지의 십자가의 피 용서를 외치기 위해서
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는
사생아가 아니다 라는 이유로
남들이 지적 받지 않는 징계를 받음으로써
아버지의 사랑을 저들 사생자들 보는 앞에서 외치라꼬
구경꺼리가 된 것입니다.
사생아는 아버지의 매가 없기에 이미 망한 것입니다.
내어버려 둠을 당한
아버지가 없어서 말이죠
그러니 우리는 징계를 받음으로써
아버지의 사랑을 저들에게 증거하는 증인이 된 겁니다.
세상이 견디지 못하고 격동케 하는 이 사랑을 외치는 증인으로써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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