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 창녀 예루살렘의 자기를 위한 우상과 행음 (겔 16,15-34)
(겔 16:15, 개역) 『그러나 네가 네 화려함을 믿고 네 명성을 인하여 행음하되 무릇 지나가는 자면 더불어 음란을 많이 행하므로 네 몸이 그들의 것이 되도다』
(겔 16:16, 개역) 『네가 네 의복을 취하여 색스러운 산당을 너를 위하여 만들고 거기서 행음하였나니 이런 일은 전무후무하니라』
(겔 16:17, 개역) 『네가 또 나의 준 금, 은 장식품으로 너를 위하여 남자 우상을 만들어 행음하며』
(겔 16:18, 개역) 『또 네 수 놓은 옷으로 그 우상에게 입히고 나의 기름과 향으로 그 앞에 베풀며』
(겔 16:19, 개역) 『또 내가 네게 주어 먹게 한 내 식물 곧 고운 밀가루와 기름과 꿀을 네가 그 앞에 베풀어 향기를 삼았나니 과연 그렇게 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 16:20, 개역) 『또 네가 나를 위하여 낳은 네 자녀를 가져 그들에게 드려 제물을 삼아 불살랐느니라 네가 너의 음행을 작은 일로 여겨서』
(겔 16:21, 개역) 『나의 자녀들을 죽여 우상에게 붙여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였느냐』
(겔 16:22, 개역) 『네 어렸을 때에 벌거벗어 적신이었으며 피투성이가 되어서 발짓하던 것을 기억지 아니하고 네가 모든 가증한 일과 음란을 행하였느니라』
(겔 16:23, 개역)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는 화 있을진저 화 있을진저 네가 모든 악을 행한 후에』
(겔 16:24, 개역) 『너를 위하여 누를 건축하며 모든 거리에 높은 대를 쌓았도다』
(겔 16:25, 개역) 『네가 높은 대를 모든 길 머리에 쌓고 네 아름다움을 가증하게 하여 모든 지나가는 자에게 다리를 벌려 심히 행음하고』
(겔 16:26, 개역) 『하체가 큰 네 이웃나라 애굽 사람과도 행음하되 심히 음란히 하여 내 노를 격동하였도다』
(겔 16:27, 개역) 『그러므로 내가 내 손을 네 위에 펴서 네 일용 양식을 감하고 너를 미워하는 블레셋 여자 곧 네 더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하는 자에게 너를 붙여 임의로 하게 하였거늘』
(겔 16:28, 개역) 『네가 음욕이 차지 아니하여 또 앗수르 사람과 행음하고 그들과 행음하고도 오히려 부족히 여겨』
(겔 16:29, 개역) 『장사하는 땅 갈대아에까지 심히 행음하되 오히려 족한 줄을 알지 못하였느니라』
(겔 16:30, 개역)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가 이 모든 일을 행하니 이는 방자한 음부의 행위라 네 마음이 어찌 그리 약한지』
(겔 16:31, 개역) 『네가 누를 모든 길 머리에 건축하며 높은 대를 모든 거리에 쌓고도 값을 싫어하니 창기 같지도 않도다』
(겔 16:32, 개역) 『그 지아비 대신에 외인과 사통하여 간음하는 아내로다』
(겔 16:33, 개역) 『사람들은 모든 창기에게 선물을 주거늘 오직 너는 네 모든 정든 자에게 선물을 주며 값을 주어서 사방에서 와서 너와 행음하게 하니』
(겔 16:34, 개역) 『너의 음란함이 다른 여인과 같지 아니함은 행음하려고 너를 따르는 자가 없음이며 또 네가 값을 받지 아니하고 도리어 줌이라 그런즉 다른 여인과 같지 아니하니라』
(겔 16:15, 현대어) 『그런데도 너는 내가 도와준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네 아름다움과 명성만을 뽐냈다. 이제 너는 기고만장하게 되어 지나가는 사람 누구에게나 네 아름다움을 가지고 유혹하였다. 너는 아무에게나 네 몸을 내맡기고 음행을 저질렀다.』
(겔 16:16, 현대어) 『너는 내가 만들어 준 색동옷을 꺼내다가 우상들을 섬기는 곳에 펼쳐 놓고 그 위에서 음란한 짓을 벌였다. 너는 그렇게 다른 남자에게로 가서 음란한 여인이 되었다.』
(겔 16:17, 현대어) 『너는 내가 선물로 준 금과 은도 가져다가 사내의 형상들을 만들어 놓고 그것들과 음란한 짓을 하였다.』
(겔 16:18, 현대어) 『너는 내게서 선물로 받은 색동옷들도 가져다가 그 사내의 형상들에게 입혀 주었고 또 나의 기름과 향도 가져다가 그것들 앞에 제물로 바쳤다.』
(겔 16:19, 현대어) 『또 내가 별미로 준 음식, 곧 고운 밀가루와 기름과 꿀로 구운 떡도 가져다가 그것들 앞에 차려 놓고 기쁘게 해주었다. 네 행위가 그런 지경에 이르렀다. 나 주 여호와가 하는 말이다.』
(겔 16:20, 현대어) 『그뿐이 아니다. 너는 훨씬 더 흉악한 짓을 하였다! 너는 우상들과 음행을 저질렀을 뿐만 아니라 네가 낳은 내 아들들도 그 우상들에게 제물로 바쳐 잡아먹히게 하였다.』
(겔 16:21, 현대어) 『너는 네가 지은 죄만으로도 부족하여 내 자녀들을 짐승처럼 잡아서 그 우상들에게 불살라 제물로 바쳤다.』
(겔 16:22, 현대어) 『너는 이제 그런 짓을 서슴없이 저지르게 되었다. 네가 피투성이 알몸으로 허허벌판에서 버둥거릴 때에 내가 해준 일이며 오늘날까지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워 주고 입혀 주었는가를 너는 모두 잊어버렸다.』
(겔 16:23, 현대어) 『[연합 정책] 나 주 여호와가 말한다. 네가 그렇게 많은 못된 짓을 벌이고도 모자라 점점 더 무서운 죄를 지었으니 이제는 네게 만가를 불러 주리라.』
(겔 16:24, 현대어) 『`너는 거리마다 넓은 요정을 짓고 골목마다 네 몸을 파는 사창가를 만들어 놓았다. 너는 찾아 드는 아무 사내에게나 두 다리를 벌려 네 아름다움을 더럽혀 놓았다.』
(겔 16:25, 현대어) 『(24절과 같음)』
(겔 16:26, 현대어) 『네 이웃 나라의 사내들 가운데서도 물건이 큰 애굽 사람들과 특별히 더 음행을 벌였다. 내 분노를 폭발시켜 놓으려고 네가 그들과 음란한 짓을 점점 더 벌였다.』
(겔 16:27, 현대어) 『그러므로 내가 그 벌로 네게 선물로 주고자 마련한 몫을 줄여 놓았다. 네 영토를 줄이고 너를 미워하는 블레셋 여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들마저도 이제는 네 모든 추행을 비웃게 하였다.』
(겔 16:28, 현대어) 『그런데도 너는 여전히 부족해서 또 앗수르의 사내들을 찾아가서 음행을 저질렀다. 그러나 거기서도 네 음욕을 채울 수 없자』
(겔 16:29, 현대어) 『너는 저 장사하는 백성 갈대아 사람들과 조차도 수없이 음행을 벌였다. 그러고도 너는 만족할 줄을 몰랐다.』
(겔 16:30, 현대어) 『나 주 여호와가 말한다. 네 마음이 얼마나 허하고 환장하였으면 정신 나간 창녀처럼 수치를 모르고 음행을 저지르느냐? 누가 너보다 더 지각 없는 음행을 저지르겠느냐?』
(겔 16:31, 현대어) 『네가 거리마다 넓은 요정을 지어 놓고 골목마다 몸을 파는 사창가를 만들어 놓았을 때에도 너는 보통 창녀처럼 돈을 벌고자 네 몸을 벌려 준 것이 아니었다.』
(겔 16:32, 현대어) 『남편을 속이며 간통을 하는 유부녀도 여러 가지 선물을 받으며 제 몸을 내준다.』
(겔 16:33, 현대어) 『내놓고 창녀 노릇을 하는 여자들도 당연히 몸값을 받는다. 그러나 너만은 네 정부들에게 온갖 선물을 줄뿐더러 함께 음행을 벌이자고 사방으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뇌물까지 바친다.』
(겔 16:34, 현대어) 『어느 면으로 보나 너는 여느 여인들과는 반대로 음행을 하였다. 사람들이 여자를 찾아 다니며 돈을 주고 음행을 벌이건만 너는 오히려 돈을 주어 가면서 네 몸을 내주었다. 네가 그토록 뒤바뀐 행동을 하고 있었다.』
(겔 16:1, 쉬운) 『<타락한 예루살렘> 여호와께서 내게』
(겔 16:35, 쉬운) 『<창녀에 대한 심판> “그러므로 너 창녀야,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라.』
(겔 16:59, 쉬운)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 “나 주 여호와가 말한다. 너는 내 맹세를 무시하고 언약을 깨뜨렸으므로, 네가 행한 대로 내가 너에게 갚아 주겠다.』
(겔 16:1, 현대어) 『[정조 없는 여인 예루살렘]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겔 16:23, 현대어) 『[연합 정책] 나 주 여호와가 말한다. 네가 그렇게 많은 못된 짓을 벌이고도 모자라 점점 더 무서운 죄를 지었으니 이제는 네게 만가를 불러 주리라.』
(겔 16:35, 현대어) 『[예루살렘에 내린 형벌] 그러므로 너 창녀 예루살렘아, 너는 이제 나 여호와의 심판 선고를 들어라. 네가 정부들 앞에서 부끄러운 곳을 드러내고 네 가증스런 우상들 앞에 벗은 몸을 제물로 바쳐 음행을 저지르며 네 자식들까지 죽여서 우상들에게 바치는 살인죄를 저질렀으니 내가 너를 가만두지 않겠다.』
(겔 16:44, 현대어) 『[사마리아나 소돔보다 더하다] 예루살렘아, 사람들마다 너를 비웃으며 그 어미에 그 딸이라고 빈정댈 것이다.』
(겔 16:53, 현대어) 『[소돔을 회복시키리라] 그때에는 내가 멸망한 소돔과 사마리아도 회복시켜 놓겠다. 또 너 예루살렘의 운명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바꾸어 놓겠다.』
(겔 16:59, 현대어) 『[영원히 유효한 언약] 네가 맹세를 무시하고 나의 언약을 깨뜨렸으니 나도 네가 행한 대로 갚아 주겠다.』
소제목이 달린 번역들을 참고하시라고 올려봤습니다.
먼저 우상이라는 개념이 나올때는 항상 자기를 위하여 ~~~ 위하여가 항상 나옵니다.
그러니 지난 주에도 언급을 했듯이 인간의 죄란 딱 하나입니다.
여러 가지가 아니라 모든 처음아담의 죄는 바로 선악입니다.
그러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하나님과 같이 되었기에
그 하나님과 같이 된 우상이 된 자리를 위하여 평생 살도록 되어 있는
이 사망이 왕노릇함에 있어서 죽기를 무서워 종노릇하는 자를 놓아주시고자
약속이 곧 신약으로 치면 천국이 침략 침투한 겁니다.
천국이란 우상적인 즉 선악적인 시선에서는 시간과 공간
죽어서 가는 곳이 되지만 (곧 모든 종교에서 말하는 극락, 또는 내 마음이 천국이요 이런 명상적인 종교적인 발언 용어 문자들 말이죠, 자기 마음이라는 공간인 거죠)
그러나 약속의 측면에서는 천국은 바로 인물이 됩니다.
곧 타인은 지옥이기 때문에 이 예수 하나 죽이려 들려고 다들 열심일 수밖에 없는
진짜 본색이 드러나는 거죠 곧 천국 가고 싶기 때문에
예수에 대한 적개심으로 모아진다는 겁니다.
참으로 역설적이지 않습니까?
바르게 살고
착하게 살고
정의롭게 살고픈데
이상하게 예수님을 죽이고 싶다 라는 것이다는 거죠
왜 그런 선한 마음이 곧 선악이지요
예수님 살인이라는 것으로 귀결 될까요?
모든 인간의 행함은 곧 어차피 인간의 믿음도 행함이니까 말이죠
모든 인간의 활동은 예수님 살인으로 나오게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문제가 아니라 (사실 우리 문제죠 평생의 이 죄 문제에 시달리니까)
바로 예수님께서 그렇게 판을 짜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예수님 탓 하라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 곧 약속은 누구만 겨냥을 한다? 네 맞습니다 마귀입니다
현대인들에게 마귀를 언급한다는 소리는 붕뜨는 소리 이다 말이죠
가장 극도의 비현실적인 이야기인 거죠
그야 인간이 곧 마귀 이기 때문입니다.
마귀를 잡을려고 선악을 깔아 놓은 것을 괜히 먹어서 말이죠
마귀 잡는데 있어서 인간 까지 딸려 들어가는 겁니다.
문제는 그 어떤 인간도 빠져나올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사망이 왕 노릇 하게 되었으니까 말이죠
그래서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과 같이 되었는데
문제는 영생을 못해요
사망이 왕 노릇 해 버렸으니까 말이죠
이 죽음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생명나무를 먹을려고 하니
차단을 당하는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죽이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복수심으로
모든 인간의 행함이 집결이 되는 겁니다.
더더욱 마귀가 된 거죠
마귀 잡을려고 한 것인데
괜히 먹어서리
마귀 잡는 일에 인간들이 잡히는 겁니다.
그런데 불쌍히 여겨 달라고
은혜 긍휼 자비 인애를 바라는게 아니라
은혜가 왕 노릇 하기를 바라는게 아니라
도리어 마귀 보다 더한 마귀가 되어서
어떻게 해서근 이 은혜가 왕 노릇하는 것을 방해하는데
모든 역량을 쏟아 붓고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의 역사가 되어버린 겁니다.
아베 보세요 얼마나 멍청하면
문재인 하나 잡을려고
자신의 모든 역량을 거기에다가 집중하니까
자기 백성 하나 못 돌보는 겁니다.
미움이 이유 없이 박혀 버렸다 말이죠
그런 아베와 같은 놈이 황교활입니다.
문재인 하나 잡을려고 말이죠
요셉 총리가 자기이다 나 황교활이다 라고 주장을 했는데
요셉 근처도 못가고 총리 껍데기 짓 하나 했는 것으로 우려먹고 사기를 치는데 있어서
정작 요셉 총리의 모습을 문재인 대통령이 하게 되니까
이유 없이 미워 죽는 겁니다.
전세계가 지금 코로나 사태로 문재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더라 말이죠
그러니 황교활은 미치는 거죠
딴나라당 놈들는 어떻게 해서든 꼬투리를 잡고자
일부러 사건을 조작까지 할 정도로 말이죠
그것이 바로 사랑 받고 있다는 증거로써
마귀 보란 듯이 펼쳐지는 주님의 인애와 자비이다는 겁니다.
은혜가 왕 노릇 하고 있다는 증거이니까
마귀가 발악을 하는 거다 말이죠
그러니 마귀가 발악하지 않는다면 그거 가짜 사랑이다는 거죠
사랑은 죽음 보다 강하기 때문에
죽음이라는 사망의 권세가 견디지 못하고 격동 하면서 달려드는 겁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자 했던 모든 인간들의 모습이 바로
견디질 못하고 격동 하는 모습이였으니까 말이죠
바로 그런 내막을 까발리는 십자가이기에
인간의 꾀 속임수는 그 앞에서 낱낱이 드러나는 겁니다.
바로 그런 취지로 인해서
오늘 본문 창녀 예루살렘의 우상숭배의 모습과 행음의 모습들이 낱낱이 드러나는 겁니다.
아니 지난 주에는 나의 헵시바야 나의 쁄라야 라고 했잖아요
그래놓고 왜 배신때리냐 말이죠
(겔 16:14, 개역) 『네 화려함을 인하여 네 명성이 이방인 중에 퍼졌음은 내가 네게 입힌 영화로 네 화려함이 온전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 배신은 사실은 이스라엘의 배신인 겁니다.
배신 했음 조차도 모를 정도로 자기를 위한 우상에 빠져 있기에
자기를 건드리는 (자기를 위하여 우상이 되어버렸기에) 배신으로 거꾸로 본다는 거죠
(겔 16:15, 개역) 『그러나 네가 네 화려함을 믿고 네 명성을 인하여 행음하되 무릇 지나가는 자면 더불어 음란을 많이 행하므로 네 몸이 그들의 것이 되도다』
보세요 이방인도 부러워 할 정도로 거룩한 신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도리어 이용을 해서 자기를 위한 우상으로 엿 바꿔 먹어버리니까
그 정도로 구제불능의 상태이니다는 겁니다.
거룩한 신부가 되었다면 신부 수업 등등 뭐 그런거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입에 담기도 역겨워 질 정도로
길에 나가서 행음을 하는 겁니다.
오늘 본문을 위에 올렸는데 거의 포르노 야동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이건 좀비 바이러스에 걸렸나? 보통 미친 모습이 아닙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얼마나 인간이 풀과 같았으면
모든 악들이 다 들어나는 겁니다.
갑자기 길에 가다가 황인종 이라고 호주 여성이 주먹을 마구 날린다 말이죠
바이러스가 고맙게도 우리가 평상시에 숨어 있는 감추어진 악마성을
마구 마구 유감없이 드러내 주고 있는 겁니다.
아무 이유 없어요 그저 황인종이라고 주먹을 날린다 말이죠
누가 겁을 먹고 공포와 불안에 휩싸인 자 입니까? 맞은 사람입니까? 때린 자 입니까?
권력을 쥔 자 이다는 거죠
그러니 불안하면 불안할수록 더더욱 권력을 쥐는 거죠
하나님과 같이 되었는데 하나님처럼 권력을 휘둘러야 하는데
졸지에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하나님처럼 권력을 행사 못하게 될까봐
두려워서 겁이나서 말이죠
자 왜 이런 소리를 서두로 먼저 언급을 하는고 하니
분명 지난 주에 나의 헵시바야 나의 쁄라야 라고 해 놓고서는
완전 반대의 방향으로 오늘 본문이 흐른다 말이죠
이 앞뒤 모순된 간극은 도대체 뭐냐 말이죠
이게 바로 제가 자주 언급한 형수가 잠어 30장 아굴의 잠언을 오해했듯이
부요케도 마시고 가난케도 마시고 중간치 해 달라는 것에 대한 오독을
정독으로 바꾸기 위한 주님의 섬기심처럼
중간치가 아니라 도리어 빵꾸멍을 뻥 하고 구멍을 뚫어서 공백으로 만들어야
비로소 생각한다 말이죠 생각
앞뒤가 모순된 부분이 나오면 빵구멍을 뚫어 구멍이 생겨 공백으로 인해 생각하라 라고 보시면 됩니다.
(겔 12:3, 개역) 『인자야 너는 행구를 준비하고 낮에 그들의 목전에서 이사하라 네가 네 처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을 그들이 보면 비록 패역한 족속이라도 혹 생각이 있으리라』
결국 생각하라 라는 말은 인간이 생각해서 생각하는게 아니라
생각이 생각을 하게 만드는 식입니다.
자 그러니 생각 조차도 부드러운 마음에서 오는 것과
딱딱한 마음에서 오는 것이 있다 말이죠
(겔 23:19, 개역) 『그가 그 음행을 더하여 그 젊었을 때 곧 애굽 땅에서 음행하던 때를 생각하고』
(겔 23:19, 새번역) 『그런데도 그는 음행을 더하여, 이집트 땅에서 음란하게 살던 자신의 젊은 시절을 늘 회상하였다.』
(겔 23:19, 공동) 『오홀리바는 이렇듯이 놀아나면 놀아날수록 이집트에서 소녀의 몸으로 놀아났던 그 시절이 그리워졌다.』
(겔 23:19, 쉬운) 『그런데도 그녀는 젊었을 때, 이집트에서 음란하게 살던 일을 생각하면서 더욱더 음란한 짓을 하였다.』
(겔 23:21, 개역) 『네가 젊었을 때에 행음하여 애굽 사람에게 네 가슴과 유방이 어루만진바 되었던 것을 오히려 생각하도다』
(겔 23:21, 새번역) 『"너는 젊은 시절의 음란한 생활을 그리워한다. 너의 처녀 시절에 이집트의 사내들이 ㉡너의 유방을 만지고 너의 젖가슴을 어루만지던 것을, 너는 그리워한다. / ㉡시리아어역을 따름. 히, '네 가슴이 젊다고 하여 네 유방을 만지던 것을'』
(겔 23:21, 공동) 『이집트에서 소녀의 몸으로 젖가슴을 짓눌리고 가슴이 으스러지게 안기던 그 젊은 시절을 못 잊어 애태웠다.』
이 생각은 과거의 경험에 남겨진 추억이다 말이죠
한마디로 말해서 그때가 자신이 우상으로써 가장 좋았었던 그때였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 생각이 아니라
(겔 12:3, 개역) 『인자야 너는 행구를 준비하고 낮에 그들의 목전에서 이사하라 네가 네 처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을 그들이 보면 비록 패역한 족속이라도 혹 생각이 있으리라』
이 생각은 졸지에 누가 홈을 파버려서 졸지에 그 홈패임의 흔적으로 인해 졸지에 생각을 하게 되는 겁니다.
우리가 앞에서 에스겔 12장에서 살펴봤듯이 말이죠
좋았던 과거의 추억이 아니라
지금 당장 현재에 벌어진 앞 뒤가 모순된 홈패임으로 인해 공백이 생겨서
비로소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너무 너무 놀래서 말이죠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이룬다는 말은
앞뒤가 모순된 상황이 동시에 벌어졌기에 허걱 거리면서 놀라는 겁니다.
행구를 준비해서 낮에 이사하는 모습들을 저들에게 보여주라 라고 말이죠
아 맞다 지금 이 자리에서 떠나야 하는 구나
라고 말이죠
또 급히 먹어라 깜짝 깜짝 놀라면서 음식을 먹으래요 글쎄
바벨론 탈출을 출애굽 했을 때처럼 벌리시겠다 라는 겁니다.
아무도 전혀 기대를 하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가고픈 마음이 추호도 없이
이미 사망이 왕노릇하고 있는 바벨론 포로에 적응이 된 몸에게
종노릇 하고 있는 육체에게 졸지에 바벨론 탈출을 실행하시겠다 라고 하니
누가 과연 생각을 할까요? 즉 약속의 말씀을 떠 올릴까요?
그때는 그렇다 칩시다
녹음한 내용을 다시 들어보니
이때는 그래 우상을 돌조각 나무조각이라고 칩시다
바리새인 때는 우상을 섬기지 않고
도리어 말씀만을 지켰다 말이죠
오로지 약속의 말씀만 떠 올렸다 말이죠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해서 말이죠
그런데 예수님이 느닷없이 나타나서
야들이 출예루살렘 하자 출 교회 하자
출세상하자
출 육체 하자
이스라엘 탈출 하자
이 세상 탈출 하자
예루살렘 탈출하자
교회 탈출 하자
강도의 소굴 탈출 하자 라고 하시니까
과연 그때는 생각을 할까요? 약속의 말씀을 생각할까요?
도리어 내가 지킨 말씀만 생각하게 될테니
예수님이 성취하시는 말씀은 도리어
살인의지를 불러 일으키는 겁니다.
역시나 우상조각 안 섬겼다 라고 우길 뿐이지
진짜 속셈은 여전히 우상적이였음이 드러났다는 겁니다.
어디까지나 예수님은 내가 아니라 타인이니까 말이죠
뭘 믿고 맡길수가 있나요
즉 나를 포기 할 수 있겠나요?
주님은 저돌적으로 나를 겨냥해서 나를 무너뜨리고자 왔는데
오로지 나 를 향한 파괴 곧 우상파괴이어야 하니까
이런 약속의 말씀을 떠 올릴수
생각할 수가 있겠냐 말이죠
그러니 에스겔 인자가 행구를 낮에 준비해서 이사하듯 떠난다는 것은
예수님 이라는 인물의 시대에서는 곧 나를 떠나서
나 를 탈출해서 예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약속의 말씀을 생각해야 할 판국이다는 거죠
(겔 12:3, 개역) 『인자야 너는 행구를 준비하고 낮에 그들의 목전에서 이사하라 네가 네 처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을 그들이 보면 비록 패역한 족속이라도 혹 생각이 있으리라』
아무리 패역한 족속이라도 생각 혹 혹
혹시나 생각이 있을 것이다 라고 말이죠
한마디로 말해서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러니 그 부드러운 생각은
우리는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만드신다는 거죠
곧 인애와 자비는 우리의 마음을 빵꾸멍을 뻥뻥 뚫어서
우리를 공백으로 만드시는 겁니다.
과거의 화려했던 자아의 경험을 다시 소환해서
주님의 영화로움을 입혀서 거룩한 신부로 삼으신 것과 섞어서
혼합시켜서 역쉬 내가 잘 나서 다시 회복 시켜주시는 구나 라고
과거와 현재를 합채 시킬려는 여전히 자기를 위한 우상으로 만들어 버리는 그 버릇을
주님은 역시나 약속 이기 때문에 까발리시는 겁니다.
분명 앞 뒤가 안 맞는 모순이다 라고 했잖아요
자주 언급했던 로마서 7장 마지막 부분과
8장으로 넘어가는 부분에서
앞 뒤 모순 되요
즉 공백이 생긴 겁니다.
원인 없는 결과 이다 말이죠
역시나 오늘 본문도 그러합니다.
우리가 이사야와 (포로 되기 전) 아직까지는 기대치가 있는
그리고 에스겔을 하면서 (포로 된 후) 모든 소망이 사라져 단절이 된 절망 뿐인 상황
앞 뒤 구절 그리고 장 들이 얼마나 많은 지를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나의 헵시바야 나의 쁄라야 라고 거룩한 신부로 삼아버리겠다 라고 하시고서는
도리어 우리의 죄악을 다 보여주시는 겁니다.
아니 수치를 이유 없이 가려주고
벌거벗은 모습을 가려준다고 그래서 주의 영화로움으로 입히셨다 라고 선언을 해 놓고서는
그 반대로 우리의 모든 수치를 왜 이렇게 낱낱이 구석 구석 발가벗기듯이 다 들통내시냐 라는 겁니다.
물론 우리가 배신해 놓고서는 하나님이 배신 때렷다 라고 또 핑계를 다 주님에게 퍼붓는
그런 우상에 빠진 모습이기는 하지만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 말이죠
이것은 마치 사도바울을 통해서 율법으로가 아닌 은혜로 구원 받았다 라고 해 놓고서는
율법이 뭔지를 알려주시는 것과 같습니다.
아니 율법을 모르는 자에게 왜 율법을 알려주냐 라고
사도바울 본인이 베드로였던가요? 그렇게 책망했었잖아요
자기도 못지키는 유대인도 못 지키는 그 올무를
왜 이방인에게 짐 지우게 하냐 라고 말이죠
그것 조차도 결국 인간은 율법으로 빠지게 되었다는 것을 염두하시고서
의도적으로 충돌 시켰듯이
그랬던 사도바울이 율법이 뭔가 라고 자기고백의 형식으로써 역시나 알려준다 말이죠
이것을 또 오독해서 거봐 사도바울도 처음에는 율법이 아니라 은혜이다 라고 했지만
나중에는 하라 하지 말라 로 역시나 율법을 강조 하지 않았냐 라고
한국 교회 백프로가 심지어 이단까지 다 그렇게 해석한다 말이죠
이단까지 그러는 이유는 눈에 보이는 조직은 결국 그렇게 유지가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거든요
갑자기 14만 4천명을 넘어서버리니까 이 조직을 무슨수로 유지하냐 말이죠
내 돈 빠져나가는 것은 죽어도 못 보겠고 말이죠
그러니 이만희가 평화운동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거죠
사실상 한국교회의 증상물인거죠
한국교회의 탐심 곧 우상숭배를 이만희 신천지가 그 증상물로 보여주는 겁니다.
아무튼 다시 돌아와서 이렇게 사도바울은 이방인에게 까지 율법의 원리를 알려주면서
아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셔야만 했다 라는 것을 알려주는
은혜의 왕노릇을 말하기 위함인데
그 예수라는 인물이 아니라
또 자아 라는 자기라는 인물 곧 나에게 관심을 돌려 버리니까
또 하라 하지 말라 라는 율법으로 빠지더라 말이죠
율법을 알 필요가 없는 이방인에게 왜 율법을 알려주시느냐
유대인의 실패를 알려주는 거죠
유대인의 실패는 곧 우리 모든 인간 모든 이방인의 실패이기도 합니다.
그 실패를 통해서 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만 했느냐를 말하기 위함인데
성령이 오면 다시 기회가 주어졌으니까
다시 도전 패자부활전 으로 대부분의 성화론자들이 주장하거든요
저들 유대인들은 성령을 못 받아서 그렇지
이제 우리들은 성령을 받으면 다시 기회가 주어졌기에 성공할수 있다
믿음이 적어서 그렇지 믿음을 크게 키우면 할 수 있다 또 요래 나온다 말이죠
그거 거짓말입니다 알고보니 눈에 보이는 교회 조직을 위한 희생을 강요하는
역시나 유대인들처럼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겠다는 딱딱한 마음이다는 거죠
교회 충성 봉사 안한다고 사기를 치는 집단에서 탈출 하라 말이죠
오늘 본문에서 이 창녀 예루살렘의 행음은
이미 주님께서 용서를 했기에
그 용서의 가치가 어떤지에 대해서 보여주시고자
졸지에 행음하게 되는 겁니다.
즉 행음을 해서 그 다음에 용서가 주어지는게 아니라
그 반대로 용서가 이미 주어지고
그 다음 행음케 됨으로써
왜 용서를 했는지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라 라는 거지요
마치 장대 높이 달린 인자가 먼저 떳고
그 다음에 불뱀에게 물려 죽게 되듯이 말이죠
이게 왜 중요하냐 하면
인간의 우상 개념 곧 자기가 먼저 있고 그 다음 예수님이 있어서
그 예수님을 믿느냐 못 믿느냐 로 따지는게 아니라
그 반대로 예수님이 먼저 계시고
그 이후에 내가 죄인으로 불림 당하는지
아니면 의인으로 불림 받는 지옥가는자 인지
그것을 보여준다는 겁니다.
인간의 사고방식 즉 모든 사고방식은 선악적이기에
내가 먼저 인식이 되고
그 다음 예수님을 어떻게 인식하느냐
받아들여 믿어줄까 아니면 거부해서 안 믿을까 라는 것이
인간의 사고방식이다 말이죠
그런 원리에 성경이 말려들어야 할까요? 아니잖아요
결국 예수님은 어디까지나 대상물이 되는 것이고
나는 그 대상물을 판단하는 입장에 선 주체가 되는 거죠
그게 말도 안되는 겁니다.
이 문제에서 유대인들은 넘어서질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도 그들의 대상물일 뿐이지 주체는 그들 자신인 거죠
이것이 이스라엘의 특이성이 상실된 포도나무 특급상품이
졸지에 들포도와 다를바 없는 이방인의 중언부언과 똑같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주님께서 내가 창조주 이다 라고 자꾸 말해도
무슨 소리인줄 모르는 겁니다.
주도권을 다 넘기지 못한다 라는 거죠
그러니 빵꾸멍을 내기 위해서
공백의 자리 곧 원인 없는 결과를 뻥뻥뻥 구멍 내시는 겁니다.
이 간극을 매워 보라 말이죠
논리든 합리든 지식이든 과학이든 종교든 믿음이든 행함이든
무엇을 사용하든지 간에 이 간극을 매워 보라 말이죠
상처 라는 구멍을 매워 보라 말이죠
상처는 낸 창만이 칼만이 그 상처를 매우는
상처는 그 찌른 창에 의해서만 치료된다 라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 영화로움으로 거룩한 신부로 만들겠다 라고 하니까
(겔 16:14, 개역) 『네 화려함을 인하여 네 명성이 이방인 중에 퍼졌음은 내가 네게 입힌 영화로 네 화려함이 온전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 16:14, 공동) 『내가 너에게 입혀준 영화는 한점 티없이 아름다웠으므로 네 명성은 만방에 떨쳤다. 주 야훼가 하는 말이다.』
(겔 16:14, 쉬운) 『너무 아름다워 온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되었으니, 이는 내가 너를 화려하게 만들었으므로 네 아름다움이 완전해진 것이다.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다.』
공동 번역에서 내가 너에게 입혀준 영화는 한점 티없이 아름다운 것이다 라고 했다 말이죠
그런데 이것을 이 특급상품이라는 이스라엘의 특이성을
또 역시나 인간은 들포도로 땔깜으로 만들어 버린다 말이죠
그러니 인간이 감당할 길이 없다는 거죠
그래도 주님은 계속해서 밀어 붙이시겠다 라는 겁니다.
이 주님의 은혜를 과거의 화려했던 그때의 나와 결합을 해야 할까요?
마치 성화론자들처럼 과거의 죄 없었던 하나님의 형상 회복으로 연결시켜야 할까요?
아니면 하나님의 형상은 예수님 당신 뿐입니다 저를 지워 주세요 싹 다 갈아엎어주세요 라고 상하고 통회하는 상한심령인 울어야 하는 자가 되어야 할까요?
이미 다윗을 창세전에 택하셨기 때문에
그 택하심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게 하시기 위해서
동산 중앙에 일부러 벌거벗은 우리아의 장군 아내 밧세바를 목욕시켰다 말이죠
왜?
인간의 모든 종교성 우상성 즉 죄는 딱 하나 선악이다 라고 했잖아요
그럼 인간은 택하심이라는 구원을
어떻게 하면 구원 얻습니까 라고 부자청년이 예수님에게까지 다가와서 그 질문을 할 정도이면
자신을 의인 만들고자 함 일까요? 아니면 죄인 만들고자 함 일까요?
백프로 의인 아닙니까
누가 죄인이 구원 받는다고 하겠냐 말이죠
의인이 구원 받는다 라고 하지요
제가 공장에서 일할때에
여러 연령층의 직원들 모두가 하나 같이 하는 말이
천국은 가는 길은 달라서 그렇지 결국 하나 이다 라고
뭐냐? 착하게 살면 천국 못때게 살면 지옥 이다는 거죠
결국 가는 길은 달라고 천국으로 모으는 사고방식은
불교를 택하고 기독교를 택하는 것은
착하게 살고자 수련하는 학원을 태권도 학원이든 주산 학원이든
그 어떤 학원이든 상관 없이 바르게 살면 천국이다 라고 하더라 말이죠
그러니까 예수님에게까지 다가와서 질문하는 모든 모습은
어떻게 하면 구원 얻냐 라고
의인의 삶을 살았고 살며 살아가겠다 라고 하는데 있어서
주님은 자꾸 죄인을 언급하십니다
그들이 거리껴 하는 인물
부자청년에게는 가난한자
가난한자가 왜 가난했겠냐 말이죠 게을러 터져서 아닙니까
이웃사랑 실천을 과시하는 율법사에게는
천하의 원수 중에 철천지 원수인 사마리아 개같은 이방인을
선한사마리아인으로 대조를 시킨다 말이죠
자신들의 선악을 추구함에 있어서
더 나은 선악을 아시는 예수님이
도저히 용납 못하는 악인을 대조 시키다 말이죠
불의한 청지기
불의한 재판관
불의한
불의한
불의한
불의한 하나님의 저주인 십자가 말이죠
그들의 우상을 건드리시는 겁니다.
죄악을
선악을
마구 마구 건드려요
일부러 반대되는 인간
성전에 기도하러 두 사람이 왔는데
기도 내용이 서로가 극과 극이다 말이죠
너무 너무 반대되는 대조성을 이루는 겁니다.
저 세리와 같지 않음을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기도하는 바리새인
그런 선악의 사고방식
우상의 사고방식에
딱 정반대의 사람은 매국노 친일파 세리 밖에 없거든요
자 그럼 오늘 본문에 나오는 행음자는
바리새인 일까요?
세리 일까요?
(눅 18:11, 개역)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분명 토색 나오지요
불의 나오지요
간음하는 자 라고 나오지요
이 말은 바리새인은 이거 안했다 라고 나오잖아요
불의는 세리가 했는거 맞아요 팩트체크 하면 백프로 이다 말이죠
바리새인이 자신만만하지 않으면 이런 말 안한다 말이죠
불의 뿐만 이겠습니까?
간음 이라고 나온다 말이죠
오늘 본문의 행음이다 말이죠
이건 뭐 너무 너무 명확하다 보니
아예 단정을 지을 수밖에 없어요
바리새인은 게임오버 끝났다 라고 본 겁니다.
세리를 자신있게 대조 비교 대척점에 세운거다 말이죠
솔직히 알고보면 치사한 거죠
자신을 가장 극적으로 극대화 시키고자 한다면
도리어 가장 반대되는 인물을 내세워야 대조가 뚜렷하게 나니까 말이죠
문제는 예수님께서 그 다음 니 차례인데 우짤래 라고 나오신다 라는 겁니다.
그렇게 자신 만만하는 빼도 박도 못하는 인물을 내세우는데 있어서
주님은 더 자신만만하게
니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베드로에게 물었을때에
비로소 그 딱딱한 우상적인 마음이 눈 녹듯이 녹는다 말이죠
그러나 바리새인은 더 격동하고 더 격분해서 견디지 못하게 될 것 아니겠냐 말이죠
누구를 내세우면 내세울수록
바리새인이 자기 자신을 자신감 있게 내세울수록
그 반대 되는 세리 매국노 창녀 강도 문둥병자 실로암소경
눈먼자 앉은뱅이 문둥병자 귀신들린 청년 고아 과부 나그네 이방인 사마리아인
등등을 내세우면 누가 격동하여 견디질 못하게 될까요?
아까 말한 공장의 직원들 모두다 차카케 살면 천국가지 라고 했던 말이
창녀 세리 강도가 먼저 천국 간다는 복음에 의해서 모두다 깨어지는 겁니다.
세상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성경 밖에 없어요
창녀 세리 강도가 먼저 천국 간다 라꼬
(마 21:31, 개역) 『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 가로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불의한 청지기의 지혜를 배우라꼬
(눅 16:8, 개역) 『주인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다른 어떤 종교에서도 또는 국가의 교육기관도 윤리 도덕 유교 어디에서도
이런 말 하는 것은 성경 밖에 없어요
즉 이 말은 이 말씀 때문에 교리를 세울 수가 없게 된다는 겁니다.
거리끼는 걸림돌이 되거든요
그러니 유대인은 이 십자가를 이 불의한 지혜를 빼 버리지요
그렇다면 오늘 본문이 그 정도로 중요한 겁니다.
사실 성경 전체가 다 이래요
결국 그 동안 거꾸로 해석해 왔던 겁니다.
거꾸로 배우고 거꾸로 가르치고 말이죠
이스라엘을 창기 라고 합니다.
아니 모든 이방나라를 창기 라고 하는데 있어서
그런 창기들 보다 더 한 창기 라고 하신다 말이죠
(겔 16:31, 개역) 『네가 누를 모든 길 머리에 건축하며 높은 대를 모든 거리에 쌓고도 값을 싫어하니 창기 같지도 않도다』
(겔 16:33, 개역) 『사람들은 모든 창기에게 선물을 주거늘 오직 너는 네 모든 정든 자에게 선물을 주며 값을 주어서 사방에서 와서 너와 행음하게 하니』
모든 창기는 돈을 받거나
아니면 창기에게 사람들이 선물을 주는데
그 반대로 돈을 도리어 주고
선물을 도리어 주고서 행음을 하더라 라고
이스라엘의 창녀됨이 더 심하다 라고 하신다 말이죠
결국 이스라엘과 이방인이 별반 다를바 없이 창녀 라고 규정되는 몸이다 라는 거죠
문제는 이런 창기 그것도 이방인이라는 창기 보다 더 더러운 창기를
주님은 어떻게 거룩한 신부로 만드시느냐 라는 겁니다.
거룩한 신부로 만들어 놓으니까 또 행음을 할 정도로
구제불능인 자인데 말이죠
여기서 이스라엘의 기능 곧 특이성이 밝혀 지는 겁니다.
마치 다윗이라는 한 명의 인물이 단 하나의 인물로 끝나는게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의 운명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럼 이 다윗은 어떻게 구원을 받았습니까?
거룩한 신부가 되어서 곧 의인 곧 건강한 자가 되어서 일까요? 아니면
죄인 곧 환자가 되어서 일까요?
결국 선지자의 임무는 이 다윗이라는 운명 속에 이스라엘 전체를 몰아넣는 겁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는 자로 만들기 위해서 말이죠
이것이 베드로를 새 언약 속에 집어넣기 위함이듯이
에스겔은 이스라엘을 다윗언약 속에 집어넣는 겁니다.
즉 이방인과 다를바 없는 육체
곧 욕망을 곧 우상숭배죠 선악과를 따먹과 하나님과 같이 된 성깔을 나타내는
그 욕망을 인간은 감당해 낼 길이 없는 감당이 불감당인 육체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발가벗은 존재이다는 거죠
그 대표성이 바로 다윗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
욕심 죄 사망이 한꺼번에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는 육체를
다윗 또한 가지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나라 왕들 또한 다 이래요
그런 이유로 왕 제도를 가지고 오지 말아라
왜 너희 딸을 왕이 빼앗아 간다 라꼬
(삼상 8:13, 개역) 『그가 또 너희 딸들을 취하여 향료 만드는 자와 요리하는 자와 뗘굽는 자를 삼을 것이며』
(삼상 8:1, 개역) 『사무엘이 늙으매 그 아들들로 이스라엘 사사를 삼으니』
(삼상 8:2, 개역) 『장자의 이름은 요엘이요 차자의 이름은 아비야라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사사가 되니라』
(삼상 8:3, 개역) 『그 아들들이 그 아비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를 따라서 뇌물을 취하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삼상 8:4, 개역)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가서』
(삼상 8:5, 개역)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열방과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삼상 8:6, 개역) 『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라 한 그것을 사무엘이 기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매』
(삼상 8:7, 개역)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삼상 8:8, 개역)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낸 날부터 오늘날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
(삼상 8:9, 개역)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듣되 너는 그들에게 엄히 경계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를 알게 하라』
(삼상 8:10, 개역) 『사무엘이 왕을 구하는 백성에게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일러』
(삼상 8:11, 개역) 『가로되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가 이러하니라 그가 너희 아들들을 취하여 그 병거와 말을 어거케 하리니 그들이 그 병거 앞에서 달릴 것이며』
(삼상 8:12, 개역) 『그가 또 너희 아들들로 천부장과 오십부장을 삼을 것이며 자기 밭을 갈게 하고 자기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자기 병거와 병거의 제구를 만들게 할 것이며』
(삼상 8:13, 개역) 『그가 또 너희 딸들을 취하여 향료 만드는 자와 요리하는 자와 뗘굽는 자를 삼을 것이며』
(삼상 8:14, 개역) 『그가 또 너희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의 제일 좋은 것을 취하여 자기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삼상 8:15, 개역) 『그가 또 너희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취하여 자기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삼상 8:16, 개역) 『그가 또 너희 노비와 가장 아름다운 소년과 나귀들을 취하여 자기 일을 시킬 것이며』
(삼상 8:17, 개역) 『너희 양떼의 십분 일을 취하리니 너희가 그 종이 될 것이라』
(삼상 8:18, 개역) 『그 날에 너희가 너희 택한 왕을 인하여 부르짖되 그 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지 아니하시리라』
(삼상 8:19, 개역) 『백성이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가로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
(삼상 8:20, 개역) 『우리도 열방과 같이 되어 우리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
(삼상 8:21, 개역) 『사무엘이 백성의 모든 말을 듣고 여호와께 고하매』
(삼상 8:22, 개역)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들의 말을 들어 왕을 세우라 하시니 사무엘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성읍으로 돌아가라 하니라』
사무엘 선지자가 늙었다 라고 합니다.
그러니 그 틈을 노리고 집요하게 요구 한다 말이죠 그야말로 약자를 괴롭히는 겁니다.
이미 왕 제도를 구한다는 자체가
약자를 괴롭히는 방식입니다.
율법의 취지와 정반대인 거죠 약자 보호법 이웃환대법 시형제결혼법 말이죠
저번에 암논과 다말 이야기를 잠깐 언급했거든요
사무엘하 13장 내용이다 말이죠
왕제도는 마치 왕이 백성들을 딸을 갈취해서
하룻밤 욕망을 채우듯이
암논이 다말을 너무 사랑해서 상사병까지 걸렸는데
막상 잠자리를 하자
더러운 여자가 되었다고 버리는 겁니다.
왕 뿐만 아니라 왕족 귀족 권력을 쥐면 다 그런 갑질을 하거든요
누가 섬기는 자가 있겠냐 말이죠
다윗 또한 마찬가지 이다 말이죠
어디 여자 뿐이겠습니까
(삼상 8:11, 개역) 『가로되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가 이러하니라 그가 너희 아들들을 취하여 그 병거와 말을 어거케 하리니 그들이 그 병거 앞에서 달릴 것이며』
왕 제도는 아들 또한 갈취해서 노예로 삼듯이
우리아 장군을 몰래 죽여서 빼앗잖아요
누구든 똑같아요 나는 다윗처럼 안 그럴 거야?
나는 베드로처럼 세 번 부인하지 않을 거야
안 통합니다.
같은 육체이기에 욕망을 이길수가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특이성은 바로
나는 창기가 아닙니다 라고 말할 수 없다 라는 겁니다.
나 또한 개같은 이방인처럼 창기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 왕은 다르겠지? 천만의 말씀 오히려 왕이니까 더 더러운
이방나라의 더럽기 짝이 없는 그 모습을
권력이 높으면 높을수록 더 그렇다 라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창기 라고 이스라엘을 규정하시는데 있어서
어떤 이스라엘 사람도 빠져나갈수 없다는 거죠
죄인 이다는 겁니다.
죄인 중의 괴수 말이죠
자 성화론자들은 완전히 반대로 본거다 말이죠
자 이렇게 말하니까 그럼 죄 마음껏 지어도 되겠네 라고
자꾸 주님의 행하심을 보는 자리에 갈려고 하지 않고
여전히 우상적인 선악으로 자신을 선에 둘려다가
주님께서 악에 두시고자 창녀의 자리에 두시고자 하는 취지에 발끈하는 겁니다.
행한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말씀을 지킨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말이죠
그런 개인적인 자질이 아니라
다윗의 운명 속에 집어넣는다니깐요
왜 마귀 보란 듯이
인간 상대 안한다고 했는데
자꾸 인간 상대 해 달래요
인격을 무시하지 말래요 자꾸
그럼 그 인격 곧 인간다움의 품격이 마귀를 이겨 보라 말이죠
욕망을 이겨 보라 말이죠
왕의 자리에서 말이죠
그것도 개같은 이방인의 왕 자리 말고
이스라엘의 왕 다윗처럼
교회의 왕 목사의 자리에서 말이죠
언제 노예가 되고
언제 딸이 겁탈 당할지 모르거든요
코로나 때문에 교회에 안 모일까봐 투덜 거리는 목사들이 많아요
왜 겁탈을 해야 하고
여전히 노예로 삼아야 하니까 말이죠
돈 뜯어 먹을려면 동영상 예배로는 돈이 안 들어온다 말이죠
겁탈하는 버릇이 있기 때문에 손 못 떼는 겁니다.
음행이다 말이죠
자기들은 가장 거룩한 짖인 거죠
그러나 주님은 자식을 제물로 바쳐서 불에 태우고 있다 라고 하신다 말이죠
(겔 16:20, 개역) 『또 네가 나를 위하여 낳은 네 자녀를 가져 그들에게 드려 제물을 삼아 불살랐느니라 네가 너의 음행을 작은 일로 여겨서』
(겔 16:21, 개역) 『나의 자녀들을 죽여 우상에게 붙여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였느냐』
이거 너무 지나친 해석 아닙니까 편파해석이다 말이죠
그런적이 없어요 이스라엘이 말이죠
더군다나 바벨론 포로 된 입장에서 말이죠
그런데 만약 단 한 사람이 그랬다면 다 그랬다 라고 취급해 버리시는
이스라엘 전체를 한 몸으로 간주 하신다 라는 겁니다.
그 단 한 사람이 그랬다면 다 그랬다 가 바로 다윗 아닙니까
그러니 다윗이 이 편파해석을 막고자
안됩니다 저는 절대로 예수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딴 사람은 주를 버려도 저는 절대로 버리지 않겠습니까
지구 끝까지 예수님을 따라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겠습니다 장 지지 겠습니다 라고 하듯이
베드로처럼
다윗은 절대로 이름 없는 아이가 죽지 않도록
회개 눈물 금식 기도로 이 4종 세트 가장 거룩한 것을 바쳐서 아이를 살려보겠다 라고 합니다.
그러나 노아 다니엘 욥이 있어도 자식을 구원할수 있다 없다? 없다 말이죠
만약 구원해버리면
구지 예수님이 오실 이유가 뭐가 있겠냐 말이죠
그 정도로 죄인 중의 괴수 됨을
어떻게 해서든 막아 볼려는 수작이 되는 거죠
그건 자기를 위한 예수이니까 또 하나의 우상이 되는 거죠
여전히 선악을 자기가 판단 하겠다는 심뽀입니다.
그 권리를 들통당하면서 빼앗기는 것이 바로
다윗언약 곧 새언약입니다.
이 우상문제 내 쪽에서 해결 할수 없다 라는 거죠
다윗은 그런 의미에서 우상과 하나님의 차이를 말하는 증인으로써 세워진 겁니다.
마치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곧
창녀가 된 예루살렘이 아무리 하나님을 우상과 썩어서
하나님인지 우상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방식으로
오늘날 교회가 돈인지 하나님인지 도대체 누구를 섬기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아무리 썩어 버려도
베드로는 자기의 의로움인지 예수님의 십자가인지 도대체 무엇을 추구하는지 모를 정도로
아무리 썩어 버려도
주님은 이 십자가가 밝히 보이게 하심으로써
다윗의 꾀
베드로의 꾀
창녀 예루살렘의 꾀
이스라엘의 속임수를 아무리 우유와 물을 썩어버려서 분리 못하게 만들어도
물과 기름처럼 서로 섞이지 않도록 분리시키시는
이 거룩을 펼치시겠다 라고 하신다 말이죠
인간의 거룩은 가짜 거룩이면서도 하나님의 거룩인냥 디리 디리 섞어 버렸어도
그 가짜 거룩은 배설물을 철두철미하게 가려내어서
분리 시키시는 거룩을 입히시겠다 라고 하실때에
비로소 다윗은 주께만 범죄 했다고 나오게 되어 있는 겁니다.
우상숭배를 안해서 단 한번도 안해서 주 앞에 나아오게 하는게 아니라
그건 더 큰 우상이 하나 나타난 거죠
또 하나의 불사신 신천지 이만희가 되는 거죠
오히려 주님께서 입혀주신 용서로 인해서
자신이 쌓아 올린 의가 아닌
그것은 오히려 부도가 난 수표로 만들어 버리시고(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듯, 회개 눈물 금식 기도로는 아이를 살릴수 없음을그래서 주님 쪽에서 해결해 주십사 라고 모든 것을 맡기는)
오로지 주께만 범죄했다 라는 고백을
바로 이런 죄인을 예수님께서 부르시러 왔다 라는
이스라엘의 특이성을 펼치시는 겁니다.
(시 51:4, 개역)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시 51:1, 개역)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저에게 온 때에]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시 51:2, 개역)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시 51:3, 개역)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시 51:4, 개역)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사람과 사람 간의 범죄는 죄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주님께만 범죄 했다 라는 그 죄인만을 부르러 오셨다 말이죠
즉 뭐 행하고 뭐 바치고 뭐 실천하고 라는 번제와 제사가 아닌
인애와 자비만을 원하신다 라고
주님의 입혀주시는 사랑만을 바라는 것이 이스라엘의 특이성이다는 겁니다.
이것을 다윗이 놀랍게도 고백하는 겁니다.
이것을 베드로가 놀랍게도 고백합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더 잘 아신다 라고
우상 곧 선악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내가 범죄 했으니 당신께 용서를 구합니다 이 사과를 받아주세요 라는 식입니다.
그래서 법이 만들어지고요
그러나 이런 이방인 곧 우상숭배자와 다르게
이스라엘의 특이성은
오로지 주님에게만 범죄 했다 라는 고백을 하는 자입니다.
이 말은 주님과 나 사이에 인간을 개입시키지 않는다 라는 고백이다 말이죠
결국 인간과 인간 사이의 경쟁
내 잘났니 니 못났니 라는 이런 선악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라는 겁니다.
저 세리 보다 낫게 해 주심을 감사하다는 것이
도리어 이방인의 기도와 다를바 없음이 된다는 거죠
바로 이 [주께만 범죄 했다]는 고백을 마귀는 못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는 거죠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더 잘 아십니다 라는 고백을 못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예수님을 세 번 부인케 만들어서 까지도
베드로를 저 마귀의 손에서 건지시고자
이 죄악의 뿌리를
근원을 보여주시고자
의도적으로 물에 빠뜨렸다가 건지시듯이
마귀에게 팔렸다가 도로 다시 그 용사에게서 빼내시는 겁니다.
이스라엘의 특이성을
곧 약속을 붙이셔서 이 약속의 기능을 보여주신다는 거죠
그러니 이스라엘은 다른 나라 이방인처럼
인간과 인간 끼리의 법 또는 범죄 또는 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경쟁
이것을 한마디로 번제와 제사 이거든요
이런 장난꺼리들을
주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끼어들을 수가 없는 겁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래서 독사의 자식들이고
오늘날 성화론자 개혁주의자 등등이 그런 장난꺼리들을 자꾸 끼어넣어서
경쟁을 시키는데 있어서
어딜 감히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그런 속임수를 펼치냐 말이죠
저들 주장대로 하게 되면
나를 위한 하나님이 되는 거다 말이죠 이것 또한 우상입니다.
나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그러면 오늘 본문은 아예 이해가 안되는 거죠
막살면 안된다 라고 이래 나온다 말이죠
성경말씀은 이미 뭘 해도 발가벗은 인간이기에
육체의 욕망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을 위해 하나님이 오셨다가 아니라
그래서 욕망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다 가 아니라
(이래 되면 원인 있는 결과, 말이 되는, 다 이해가 되는 것이지
도저히 말도 안되는, 사랑이 아니다 말이죠 그건 행함이다 말이죠
그래서 저들 교리는 딱 하나입니다. 선악 곧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자 그런 운동을 펼치고
자기 스스로 수치를 가리고자 이런 옷 저런 옷 무화과 나뭇잎을 아무리 잎혀도
다윗처럼 한 방에 훅 가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 말이죠)
그 반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화과 나뭇잎으로 가린 것을 벗겨서
가죽 옷을 입히시고자 예수님 께서 직접 가죽옷이 되셨다 라는 것
매일 매일 우리들을 입히시고 있다는 그 사랑을 외치는 자가 바로
이스라엘의 특이성이다는 겁니다.
우상 숭배 안하고 행음을 안해서 천국가는게 아니라 (이유 있는 구원이 되게 해서가 아니라)
중간에 멈추고, 우상을 담배 끊듯이 끊고 다시는 범죄치 않아서 천국가는게 아니라
그 반대로 제가 주께만 범죄 했다고
비로소 죄악의 원천을 알고 (총명한 자는 짐승의 수를 세듯이)
마귀 보란 듯이 펼쳐지시는 복음임을 알고
이 십자가의 피 용서만 쳐다 보는 자가 바로 성도임을
그 성도를 만드시고자 주님이 지금도 쉬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바벨론 포로 속에서도
부지런히 일하시는 그 끝까지 섬기심을 지금 보여주고 계시는 겁니다.
이 예수님을 나타내기 위해
이유 없는 무조건적인 용서 바로 십자가의 지혜를 나타내기 위해서
이스라엘은 죄로 인해 벌거벗은 창녀로 만드셔서
바벨론이 이 미끼를 물도록 하시는 겁니다.
바벨론의 근본
모든 죄악의 근원을
마귀 보란 듯이 펼치시는 겁니다.
마귀는 이 사랑을 못 보게 하는 겁니다.
(호 6:1, 개역)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호 6:2, 개역)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호 6:3, 개역)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호 6:4, 개역)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호 6:5, 개역)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저희를 치고 내 입의 말로 저희를 죽였노니 내 심판은 발하는 빛과 같으니라』
(호 6:6, 개역)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사 11:9, 개역)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 것은지식 곧 사랑
사랑을 알지 못하기에
바로 사랑을 받지 못해서
이스라엘이 아니기에 망하는 겁니다,
(고후 4:3, 개역)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고후 4:3, 공동)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가려졌다면 그것은 멸망하는 자들에게나 가려졌을 것입니다.』
(호 4:6, 개역)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호 4:1, 개역)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거민과 쟁변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호 4:2, 개역) 『오직 저주와 사위와 살인과 투절과 간음뿐이요 강포하여 피가 피를 뒤대임이라』
(호 4:3, 개역) 『그러므로 이 땅이 슬퍼하며 무릇 거기 거하는 자와 들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가 다 쇠잔할 것이요 바다의 고기도 없어지리라』
(호 4:4, 개역) 『그러나 아무 사람이든지 다투지도 말며 책망하지도 말라 네 백성들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 같이 되었음이니라』
(호 4:5, 개역) 『너는 낮에 거치겠고 너와 함께 있는 선지자는 밤에 거치리라 내가 네 어미를 멸하리라』
(호 4:6, 개역)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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