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 예루살렘에 내린 재앙과 여호와의 위로하심 (겔 14,21-23)

(겔 14:21, 개역)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네 가지 중한 벌 곧 칼과 기근과 사나운 짐승과 온역을 예루살렘에 함께 내려 사람과 짐승을 그 중에서 끊으리니 그 해가 더욱 심하지 않겠느냐』
(겔 14:22, 개역) 『그러나 그 가운데 면하는 자가 남아 있어 끌려 나오리니 곧 자녀들이라 그들이 너희에게로 나아오리니 너희가 그 행동과 소위를 보면 내가 예루살렘에 내린 재앙 곧 그 내린 모든 일에 대하여 너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라』
(겔 14:23, 개역) 『너희가 그 행동과 소위를 볼 때에 그들로 인하여 위로를 받고 내가 예루살렘에서 행한 모든 일이 무고히 한 것이 아닌 줄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 14:21, 현대어)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내가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과 짐승을 모조리 쓸어 없애려고 그 네 가지 재앙들, 곧 흉년과 흉악한 짐승들과 전쟁과 전염병을 한꺼번에 보내어 그 도성을 치겠다. 그때 과연 그 누가 목숨을 건져 살아 나올 수 있겠느냐?』
(겔 14:22, 현대어) 『그러나 나는 그 가운데 몇 사람을 죽이지 않고 남겨 놓겠다. 그러면 그들은 예루살렘 도성에서 끌려 나와 너희에게로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며, 또 그들의 생활과 행동이 얼마나 가증스러운가를 너희가 보고 내가 왜 예루살렘을 멸망시켰는지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예루살렘을 심판한 것이 정당하다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보고 위로를 받을 것이다. 나 주 여호와가 하는 말이다'』

인간이 생각하는 기쁨은 어디까지나 자기 개인적인 기쁨인
자기 육체 기준입니다.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습니까 라고 부자청년이 예수님에게 다가와서 묻는 질문에
주님은 개인 구원이 아니라
집단 구원
곧 이스라엘 전체 사회에 어떻게 고아 과부 나그네가 있을수 있냐 라고
집단 구원을 얻급하니까

거부하고 근심하고 돌아섭니다.
이 다음 글의 마태복음 사단의 반응과 똑같습니다.
대제사장과 사두개인 바리새인 이스라엘 장로들로부터
고난 받고 죽임을 당해

제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야 한다 라는

이 인애와 자비를 거부하더라 말이죠

인애와 자비는 마치 새는 장독대에 물 붓기와 같은 붕뜨는 이야기입니다.
마치 가난한 자에게 전 재산을 나누어 주라 라는 말처럼 말이죠

그래서 인간은 자기 개인 신체를 몸을 중심으로 한
구체적인 구원을 기쁨을 추구합니다
곧 오늘 나오는 위로를 그런 식으로 추구 합니다.

바로 그런 번제와 제사는 손가락으로 셀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으로 남을 7번 8번 손가락 세어서 용서 할 수 있는
자기자신의 보람을 또렷한 행동을 자랑을 할 수 있다 말이죠

아니 저 붕뜨는 나랏님도 해결 못하는
가난한 자를 무슨 수로 해결 할 수 있냐 말이죠
나의 전재산을 아무리 퍼 부어 보라 말이죠

그러나 주님의 말씀의 취지는 그게 아닙니다.
바로 너가 그 가난한 자이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전 재산인
자기 목숨을 버리시면서 까지 건져주지 않으면
인애와 자비를 퍼붓지 아니하면
7에 70번 용서를 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너는 고아 과부 나그네 이다 라는 겁니다.

이런 의미에서 바로 위로 이다는 거죠

아니 생각해 보세요
자기 스스로 자기 숙제를 펼치면서
노아 과부
아니 노아 다니엘 욥을 뒤 따라 가는 자들이
주님의 이런 위로를 베푸시겠다 라고 할 때
안 됩니다
절대로 십자가 지시면 안됩니다 라고 나온다 말이죠

그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그들은 자기 자신 하나만 구원 할 뿐이지
자기 자녀들은 못 구원한다 라는 겁니다.

캬 여기서 모든 인간의 구원에 대한 탐심이 다 무너지는 겁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우상적인 탐심이 들통난 겁니다.

바벨론 여자들이 왜 우상을 쫒느냐
남자가 아니라 여자를 언급한 이유는
여성은 자기 혼자 구원 받은 것이 의미 없다 라는 것을 압니다.

여성은 아이를 낳음으로써 구원을 얻듯이
여성은 반드시 자녀와 연관이 된 연결된 몸입니다.
단독적인 몸이 아니다 말이죠.

이것이 두 언약에서 나옵니다. 갈라디아서 말이죠

두 언약 곧

자유하는 하늘에 속한 여자인 사라와 그 아들 이삭과
땅에 속한 계집종인 하갈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 이다 말이죠

여기에 누구에게 위로가 있을까요?
이스마엘이 누구를 괴롭히고
하갈이 누구를 괴롭힐까요?

권력을 쥐자 마자 아이를 못 낳는 여자 라고 괴롭히잖아요

그럼 아들은 그냥 아들이 아니라
이 괴롭힘
이 미워함
이 살인으로부터 위로인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는
제 삼 일의 간극이 바로 위로 곧 하나님의 의가 덮쳐진 겁니다.

죽었으나 산 자요

이것이 바로 나는 너를 잊지 않았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반드시 자녀는 비웃음 속에서 위로가 되는 웃음이어야 하는 겁니다.
이것이 주님이 잊지 않은 자입니다.

그러니 위로 라는 개념이 이렇게 언급이 됩니다.

(갈 4:27, 개역) 『기록된 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갈 4:21, 개역)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갈 4:22, 개역) 『기록된 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갈 4:23, 개역)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갈 4:24, 개역)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갈 4:25, 개역)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 노릇 하고』
(갈 4:26, 개역)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 4:27, 개역) 『기록된 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갈 4:28, 개역)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갈 4:29, 개역)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갈 4:30, 개역)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갈 4:31, 개역)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사 54:1, 개역) 『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구로치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사 54:1, 새번역) 『임신하지 못하고 아기를 낳지 못한 너는 노래하여라. 해산의 고통을 겪어 본 적이 없는 너는 환성을 올리며 소리를 높여라. 아이를 못 낳아 버림받은 여인이 남편과 함께 사는 여인보다 더 많은 자녀를 볼 것이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눅 23:29, 개역)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수태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눅 1:36, 개역)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히 11:11, 개역)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
(히 11:11, 새번역) 『믿음으로 ㉩사라는, 나이가 지나서 수태할 수 없는 몸이었는데도, 임신할 능력을 얻었습니다. 그가 약속하신 분을 신실하신 분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비록 그는 늙고, 그의 아내 사라 역시 단산하였지만, 믿음으로 그는 생식의 능력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그(아브라함)가,……'』


그러니 기쁨이란 구원이란 위로란
앞에
고난 핍박 심판 진노 저주 미움 죽은자 같은 
여자로써는 가장 치욕인 수태치 못한
죽은 태 같았는데

죽었다가 다시 사는 삼일 만에 다시 사는 
단절 삼일의 간극으로써의
3년 6개월 동안 비 오지 않는
이 죽음 이 징벌 이 심판 속에서 태어난 자가 바로 이스라엘
곧 자유하는 여자 곧 하늘에 속한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삭이다 말이죠

바로 모욕적인 구원입니다.

그러나 땅에 속한 계집종의 아들은
멋들어진 구원
바로 노아 과부 
아니 노아 다니엘 욥의 뒤를 따라가면
구원 받을 수 있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정작 지 혼자 구원 받으면 뭐합니까
자기 자녀는 우짜고 말이죠?

그냥 아들도 아닙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이 간극을 보여주는
이삭의 희생제물 된 화목제물된 이 사랑으로 받는 구원
모욕적인 구원이 없이
그저 자기 딸랑 혼자 구원 받는 멋들어진 구원은 
받아 본들 소용이 없습니다.
자녀가 구원 받지 못 받는 판국에 말이죠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메고 지고 가실때에
아낙네 들이 졸졸졸 따라 오면서 시끄럽게 웁니다.
정작 예수님은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와 너 자식을 위해서 울라 라고 하십니다.

주 예수를 믿어라 그러면 너와 너 가족이 구원을 얻는다 라고

(행 16:31, 개역)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행 11:14, 개역) 『그가 너와 네 온 집의 구원 얻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 함을 보았다 하거늘』

온 집의 구원 이라고 온 집 이라고 하니까 요셉이 생각 나네요
개인 구원을 바란게 아니거든요
그런데 편애 받는다고 땅에 파 묻어 은 20냥에 팔려 죽였잖아요
그러나 주님께서 삼일 만에 다시 살렸다 말이죠
착고에 상했다 말이죠
애굽 온 집의 주가 되게 했다 말이죠

(시 105:17, 개역)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시 105:18, 개역) 『그 발이 착고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시 105:19, 개역)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
(시 105:20, 개역) 『왕이 사람을 보내어 저를 방석함이여 열방의 통치자가 저로 자유케 하였도다』
(시 105:21, 개역) 『저로 그 집의 주관자를 삼아 그 모든 소유를 관리케 하고』
(시 105:22, 개역) 『임의로 백관을 제어하며 지혜로 장로들을 교훈하게 하였도다』
(시 105:23, 개역) 『이에 이스라엘이 애굽에 들어감이여 야곱이 함 땅에 객이 되었도다』

(창 45:8, 개역)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앗 실수

(행 11:14, 개역) 『그가 너와 네 온 집의 구원 얻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 함을 보았다 하거늘』

은 베드로가 복음을 증거하니 그가 증거한 복음을 들어라 라는 의미이고

아 실수 아니네 맹 같은 의미이네요
바울과 실라가 간수에게 복음을 전하는

(행 16:31, 개역)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행 16:27, 개역)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검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행 16:28, 개역) 『바울이 크게 소리질러 가로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행 16:29, 개역)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하고』
(행 16:30, 개역)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행 16:31, 개역)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행 16:32, 개역)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행 16:33, 개역) 『밤 그 시에 간수가 저희를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기고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침례를 받은 후』
(행 16:34, 개역) 『저희를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아무튼 이 부분을 들을 때 마다 기생라합이 생각 납니다.

너와 네 가정이 구원을 얻는

(수 6:25, 개역) 『여호수아가 기생 라합과 그 아비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날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탐지하려고 보낸 사자를 숨겼음이었더라』

심지어 아까 말한 야고보서의 행함이 있는 믿음의 예 3가지 중에 아까 한 가지
엘리야의 비 오지 않기를 기도하는 3년 6개월 동안 말이죠
이 간극을 벌리는 겁니다
참선지자는 어서 심판해 달라는 겁니다.
그 속에서 이스라엘이 태어나거든요

그 다음 3가지 예 중에 하나가 바로 기생라합의 거짓말입니다.
둘다 부정적이지요
즉 상대적으로 그 반대에 해당되는 자는 긍정적인 소위 멋들어진 구원을 추구했다가 되는 겁니다.

마지막 예는 첫 번째로 나오는데 바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겁니다.
누가 이 화목제물로 자기 아들을 바치겠냐 말이죠
이것이 과연 구원 
곧 어떻게 하면 구원 얻을수 있습니까
네 아들을 바쳐라 라고 했을때에
졸지에 내 구원 나의 개인 구원이 소용이 없는 겁니다.

그 아들의 죽음에 대신 죽는 예수님의 죽음의 때를 본 겁니다.

이것이 행함이 있는 믿음
그 행함이 바로 부조리로 향하는
십자가라는 죽음 곧 스캔들 불륜 불의함으로 향하는 행함이지
소위 성화론자들이 말하는 행함은 거짓입니다.
멋들어진
지난 주에 언급한
네 가지 징벌을 피하고자
노아 다니엘 욥을 따라하는
자기가 하나님 백성 되고자 하는 열심히
행함이 없는 믿음
허탄한 거짓된 예언을 보고
본 것이 없이 예언하는 
거짓 선지자의 평강이 평강이다 라는 입 바른 소리의 껍데기를 추구하는 믿음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무슨 위로가 필요하겠습니까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런 모습이
저 세리와 같지 않게 해 주시고
도리어 노아 다니엘 욥 같게 해 주심을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그 사고방식이
도리어 고아 과부 나그네가 없어야 할 이스라엘이
도리어 더 많이 양산이 되는
도대체 약자보호법 이웃환대법(나그네, 이방인 환대법) 시형제결혼법을 말라꼬 세웠겠냐 말이죠
도리어 이들을 등쳐 먹는 겁니다.
왜? 더더욱 구원 받아야 하는 구원집착 때문에 말이죠
그게 부자청년이고 그런 배경이 바로 바리새인에게서 나온게 아닙니까

때려죽어도 전 재산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줄 수가 없는 겁니다.
인애와 자비를 원하심을 거부하고
번제와 제사의 달인이 되어버렸으니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 될 수 없는
그렇게 되면 율법을 어긴 부정한 시체를 만진 셈이 되니까 말이죠
율법을 지킨 것이 도리어 율법을 어긴 것이 된 겁니다.

뭘 해도 죄 라는 것을 모르는 겁니다.
율법이 가입 된 것이 죄를 더 더 더 
어서 부세요 음주측정 할때에 더더더
더 하게 함이다 말이죠

몽학선생은 니 숙제 손 떼로
주님 숙제 보라고 안내하는데 말이죠
때려 죽어도 완악한 수건을 못 벗는 겁니다.

그런 자에게 무슨 놈의 위로가 있겠습니까
땅에서 이미 보상을 다 받는
자기가 자기에게 상장을 주고 있으니
하늘에서는 줄 게 없는 겁니다.

(마 5:46, 킹흠정)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들을 사랑하면 무슨 보상을 받겠느냐? 세리들도 그와 같이 하지 아니하느냐?』
(마 6:1, 킹흠정)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구제하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보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마 6:2, 킹흠정) 『그러므로 너는 구제할 때에 위선자들이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처럼 네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보상을 받았느니라.』
(마 6:5, 킹흠정) 『또 너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과 같이 되지 말라. 그들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거리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보상을 받았느니라.』
(마 6:16, 킹흠정) 『또한 너희는 금식할 때에 위선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자기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보상을 받았느니라.』

킹제임스번역 별로 안 좋아하지만 바로 검색이 되길래 그냥 올립니다.

결국 구원 개념은 위로 해주심이지
수치를 당치 않게 해주심이지
눈물 씻겨 주심이지

눈물 흘리지 않는 상태에서 더 좋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 구원 개념이 여기서 다 깨어지는 겁니다.

오늘 본문 지난 주부터의 내용으로 인해
소위 개혁주의자와 성화론자들의 구원 개념이
다 깨어지는 겁니다.

사랑은 여기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게 아니요
분명 아니다 라고 했습니다,
뭐뭐뭐 아니요 뭐뭐뭐 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신
독생자 예수를 아끼지 않고 내어주사
화목제물 되게 하심이다 말이죠

이것이 지혜입니다. 총명, 곧 성령을 구한 겁니다.
솔로몬이 지혜를 받은 이유는

자신의 무능함을 고백한 겁니다.
무능함을 극복하고자
부요함과 큰 수와 원수 갚는 것을 구하지 않았다고 편파해석을 해서
총명함을 주시겠다 곧 선악을 분별을 말이죠
이것이 잠언 30장의 아굴의 지혜와 같습니다.
아굴이 무능한 자 임을 고백하거든요 

(왕상 3:5, 개역)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왕상 3:6, 개역) 『솔로몬이 가로되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의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저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저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예비하시고 오늘날과 같이 저의 위에 앉을 아들을 저에게 주셨나이다』
(왕상 3:7, 개역)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비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왕상 3:8, 개역) 『주의 빼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저희는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왕상 3:9, 개역)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왕상 3:10, 개역)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
(왕상 3:11, 개역) 『이에 하나님이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수도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원수의 생명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은즉』
(왕상 3:12, 개역)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너의 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왕상 3:13, 개역) 『내가 또 너의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열왕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잠 30:1, 개역) 『이 말씀은 야게의 아들 아굴의 잠언이니 그가 이디엘과 우갈에게 이른 것이니라』
(잠 30:2, 개역) 『나는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 내게는 사람의 총명이 있지 아니하니라』
(잠 30:3, 개역) 『나는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 또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이 없거니와』

자 그럼 이런 성령을 구하면
총명을 받은 자는 결국 무엇이 되는고 하니
미끼가 됩니다.
아굴의 잠언이 바로 그런 취지입니다.
단단한 음식을 먹음으로써
고난 쓴잔 말이죠
도리어 누가 악인으로 드러나는지
악인을 들추는 지혜를 보게 됩니다.

세상이 견디지 못하고 격동케 하는 지혜 총명 말이죠

바로 종이 임금이 되고 미련한 자가 배부르고
천한 계집이 시집을 가고 계집 종이 상속자가 되는 안주인이 되고

이 부조리가 세상이 견디질 못해요 그 정도로 미끼가 된다는 거죠

(잠 30:21, 개역) 『세상을 진동시키며 세상으로 견딜 수 없게 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잠 30:22, 개역) 『곧 종이 임금된 것과 미련한 자가 배부른 것과』
(잠 30:23, 개역) 『꺼림을 받는 계집이 시집간 것과 계집 종이 주모를 이은 것이니라』

(잠 30:23, 쉬운) 『사랑받지 못한 여인이 시집간 일과 여주인을 대신한 여종이다.』
(잠 30:23, 킹흠정) 『미운 여자가 시집간 것과 여종이 여주인의 상속자가 된 것이니라.』
(잠 30:23, 한글킹) 『불결한 여자가 혼인한 것과, 몸종이 안주인의 상속자인 것이니라.』
(잠 30:23, 현대인) 『사랑받지 못하는 여자가 시집가는 것과 계집 종이 자기 여주인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잠 30:23, 현대어) 『부끄러워할 줄도 모르는 막 돼먹은 여자가 신랑을 맞아들이고, 계집종이 안주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또 상대적인 악인도 이러하다 라고 나온다 말이죠

독수리의 날개짓으로 날라 다니는 그 흔적 그 자취
또 바위 위로 기어가는 뱀의 자취
바다의 배 자취
남녀가 함께한 자취
음녀의 자취

(잠 30:19, 개역) 『곧 공중에 날아 다니는 독수리의 자취와 반석 위로 기어 다니는 뱀의 자취와 바다로 지나다니는 배의 자취와 남자가 여자와 함께 한 자취며』
(잠 30:20, 개역) 『음녀의 자취도 그러하니라 그가 먹고 그 입을 씻음 같이 말하기를 내가 악을 행치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왜냐하면 자취가 남지 않고 사라지는
숨어있는 
안 보이는 것을 무슨 수로 보겠냐 말이죠
결국 이들은

(잠 30:20, 개역) 『 ~~ 그가 먹고 그 입을 씻음 같이 말하기를 내가 악을 행치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악을 행하지 않았다 라는 말은
광명한 천사로써만 나타내 보인다 라는 겁니다.
뒤에는 악을 감춘채로 말이죠

그러니 무슨 수로 선악을 구분하냐 말이죠

모른다 라고
성령을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할 것 아니냐 말이죠
안 그러면 이들에게 휩쓸려 갈 것 아니겠냐 말이죠
같이 허탄한 것을 예언하고 거짓을 예언하는

거짓선지자를 찾고
거짓선지자는 그런 백성을 찾고
유유상종 이다 말이죠
이것이 선지자의 죄악 이라고

2020.02.23 선지자의 죄악과 그에게 묻는 자의 죄악이 같다 (겔 14, 9-11)

여기서 언급했습니다.

자 그럼 왜 예루살렘에 재앙을 내리실까요?
왜 그 이후에 바벨론 포로가 되어야 할까요?
물론 우상숭배 때문이고
율법을 지키지 않아서입니다.

그러나 더 큰 의미는
불뱀에게 물려서 죽는게 아니라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 보지 않아서 지옥 가듯이

장대 높이 달린 인자가 먼저 떳다 말이죠
그 증상으로 불뱀에게 물려야 했으니까 말이죠

자 그럼 예루살렘에 멸망 곧 재앙을 당하는 이유는 뭡니까

캬 맞습니다 기가막히게 맞추셨네요

오늘 제목입니다.

여호와의 위로가 먼저 떳기 때문에
예루살렘을 망해야 합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집
하나님의 집이 먼저 망하는 심판을 받음으로써
구원이 열방에게 퍼지는 겁니다.

(벧전 4:16, 개역)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벧전 4:17, 개역)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벧전 4:18, 개역)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
(벧전 4:19, 개역)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지어다』

곧 심판 속에서 고난 속에서
영혼을 조물주에게 부탁 하라고
위로를 쳐다보라꼬

예루살렘을 멸망시켜서
하나님의 집에서 먼저 심판 하심으로써
열방 전체를 심판 속에 집어 넣어서

주의 위로를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 보게 하심이다는 겁니다.

이것이 기쁜소식인데
도리어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걸림돌이 되고
본인들의 처음자리를 스스로 발로 차 버리고
그 처음자리에서 열방이 구원을 얻으니 말이죠

또 헬라인에게는 어리석고 미련한 지혜이다 말이죠
즉 성령으로 인한 총명함이 없으니까
짐승의 수를 못 세니까

악인의 발 자취를 모르니 다 속아서
허탄한 것에
거짓된 것에 빠지니까

어떻게 심판 속에서 구원 받냐
어떻게 네 가지 징벌 칼 기근 사나운 짐승 질병 속에서 구원 얻냐

같은 인간인 이스라엘처럼 노아 다니엘 욥처럼
이미 구원 받은 자의 발 자취를 따라야 하지 않냐
노아 다니엘 욥을 따라하는 이스라엘이 옳구만
뭔 놈의 십자가의 죽음이 옳냐 라고

같은 인간 편을 드는 것이
헬라인의 지혜
지혜를 추구하는 철학자 라는 초등학문을 쫓는 자들의 사고방식이다 말이죠

마침 지난 주에 칼과 기근 사나운 짐승 온역을 언급한 가운데
지난 주에 이사야의 본문은
정작 칼과 칼 집
화살과 화살통으로써의 관계성을 언급했는데

(사 49:1, 개역) 『섬들아 나를 들으라 원방 백성들아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내가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가 어미 복중에서 나옴으로부터 내 이름을 말씀하셨으며』
(사 49:2, 개역) 『내 입을 날카로운 칼 같이 만드시고 나를 그 손 그늘에 숨기시며 나로 마광한 살을 만드사 그 전통에 감추시고』
(사 49:3, 개역)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이라 하셨느니라』

(사 49:2, 새번역) 『내 입을 날카로운 칼처럼 만드셔서, 나를 주님의 손 그늘에 숨기셨다. 나를 날카로운 화살로 만드셔서, 주님의 화살통에 감추셨다.』
(사 49:2, 공동) 『내 입을 칼처럼 날세우셨고 당신의 손 그늘에 나를 숨겨주셨다. 날카로운 화살처럼 나를 벼리시어 당신의 화살통에 꽂아두시고』
(사 49:2, 쉬운) 『주께서 내 혀를 날카로운 칼처럼 만드셨고, 나를 주의 손 그늘에 숨기셨다. 주께서 나를 날카로운 화살처럼 만드셔서 주의 화살통 속에 감추셨다.』
(사 49:2, 킹흠정) 『또 그분께서 내 입을 예리한 칼같이 만드시고 나를 자신의 손 그늘에 숨기시며 나를 갈아 빛나는 화살로 만드사 자신의 화살 통에 숨기시고』
(사 49:2, 한글킹) 『주께서는 내 입을 예리한 칼같이 만드셨으며 그의 손 그늘에 나를 숨기시고 나를 갈아서 번쩍이는 화살로 만드사 그의 화살통에 감추시고』
(사 49:2, 현대인) 『그가 내 입을 예리한 칼처럼 만드시고 그 손으로 나를 보호하시며 나를 곧 사용할 날카로운 화살처럼 만드시고』
(사 49:2, 현대어) 『주께서 내 머리 위로 손을 펴서 항상 나를 보호해 주신다. 그리고 항상 필요할 때마다 주께서 내 입에 칼처럼 날카로운 말씀을 넣어 주시고 또 나를 먼 곳의 표적에까지 명중시키는 화살로 만들어 주의 화살통에 숨겨 놓으셨다.』

어 지금 보니 제가 잘못 봤네요 ㅋㅋㅋ
주님이 칼집처럼 그늘이 되고
주님이 화살통이 된다는 말이네요

우와 제가 안면인식장애가 있고
난독증이 있어서
한줄 건너 뛰고 읽듯이
또 몇 글자를 빼먹고 읽다 보니
성질 급하게 잘못 봤네요
며칠 동안 계속해서 이 칼과 칼집의 관계만을 계속 생각했었는데
막상 본문을 보니 지난 주에 못 봤던 부분이 보여서
우와 잘못 봤구나

그래서 칼과 칼 집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했는고 하니
유일하게 칼에게 심판 받지 않는 자는
도리어 미리 심판 받은 자인 칼 집이라고 생각 했는데
안 그러면 모두다 칼에 의해서 배임을 당한다 말이죠
유일하게 나 이미 망한 자입니다 라고 미리 항복 하는 자가 칼집인데
거꾸로 봤네요
주님이 칼 집이 되듯이 주의 손의 그늘에 숨기시고
화살을 숨기는 주님이 화살통이 된다는 관계이네요

어쨌든 오히려 더 생각하게 된 것이
주님의 무기가 바로 이스라엘이 되는데
곧 하나님의 군대 말이죠
문제는 애굽처럼 바벨론처럼 가장 강한 살인무기가 아니라
도리어 가장 미약한 군대가 되는
사실상 무기가 아닌 거죠
저들은 무기가 있음 이고
주님은 무기가 없음인
무기 아닌 무기없음 
무기 꼬라지 하고는 아무것도 아닌 것
이 아무것도 아닌 것에 주님이 목숨을 걸었으니까 말이죠

이런 관계성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엡 6:10, 쉬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십시오> 끝으로 주님의 크신 능력 안에서 강해지십시오.』
(엡 6:13, 쉬운) 『하나님의 전신갑주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것은 악한 날에 쓰러지지 않고 싸움이 끝난 후에도 굳건히 서기 위해서입니다.』
(엡 6:11, 킹흠정) 『너희가 마귀의 간계들을 능히 대적하며 서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롬 13:12, 개역)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벧전 4:1, 개역)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에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즉 상대적인 저 마귀와의 차이인 거죠
결국 총명함(성령=전신갑주)이란 마귀의 간계와의 차이인 셈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어리석은 지혜인 십자가가 왜 가장 미약한 이스라엘을 

(신 7:7, 개역)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자신의 칼로
자신의 화살로 삼냐 말이죠
이상하잖아요
가장 강대국 애굽을 바벨론을 왜 자기백성으로 삼지 않고서 말이죠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화살에 화살통으로써의 짝꿍 관계
그 칼에 주의 손 그늘에 감추인 짝꿍관계
입술 혀를 칼로 만드셨음은 부정한 입술의 부정함을 제거해서
본대로
계시를 받은대로 증거하는 성령으로 인한 선포인 겁니다.

(사 49:2, 개역) 『내 입을 날카로운 칼 같이 만드시고 나를 그 손 그늘에 숨기시며 나로 마광한 살을 만드사 그 전통에 감추시고』
(사 49:2, 새번역) 『내 입을 날카로운 칼처럼 만드셔서, 나를 주님의 손 그늘에 숨기셨다. 나를 날카로운 화살로 만드셔서, 주님의 화살통에 감추셨다.』
(사 49:2, 공동) 『내 입을 칼처럼 날세우셨고 당신의 손 그늘에 나를 숨겨주셨다. 날카로운 화살처럼 나를 벼리시어 당신의 화살통에 꽂아두시고』

그러니
이 네 가지 징벌 

기근
사나운 짐승 (네 짐승 속에서 이스라엘을 집어넣잖아요)
질병

이 속에서

너는 너의 하나님을 바라라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낙망하느냐
이 심판 속에서
이 십자가의 죽음 속에서

주님의 위로만을 바라는 자가
바로 주님의 자녀입니다.

(시 42:6, 개역)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망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시 42:7, 개역)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파도와 물결이 나를 엄몰하도소이다』
(시 42:8, 개역)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 인자함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시 42:9, 개역)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리로다』
(시 42:10, 개역) 『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시 42:11, 개역)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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