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4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세 사람이 그 가운데 있을지라도 별 수 없으리라 (겔 14,12-20) 

(겔 14:20, 새번역) 『비록 노아와 ㉡다니엘과 욥이 그 가운데 있을지라도,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건대, 그들은 아들이나 딸도 건지지 못할 것이다. 그들마저도 자신의 의로 말미암아 그들의 목숨만 겨우 건질 것이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 ㉡히, '다넬'. 히브리어의 자음 표기가 예언자 다니엘과는 다르므로, 서로 다른 인물일 수도 있음』
(겔 14:20, 공동) 『거기에 노아나 다넬이나 욥이 있다고 해도 별 수 없으리라. 옳게 산 덕분에 제 목숨이나 겨우 건질 수 있을 뿐 아들딸 하나 건지지 못하리라. 반드시 그렇게 되고야 만다. 주 야훼가 하는 말이다.』

(겔 14:12, 개역)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겔 14:13, 개역) 『인자야 가령 어느 나라가 불법하여 내게 범죄하므로 내가 손을 그 위에 펴서 그 의뢰하는 양식을 끊어 기근을 내려서 사람과 짐승을 그 나라에서 끊는다 하자』
(겔 14:14, 개역)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 14:15, 개역) 『가령 내가 사나운 짐승으로 그 땅에 통행하여 적막케 하며 황무케 하여 사람으로 그 짐승을 인하여 능히 통행하지 못하게 한다 하자』
(겔 14:16, 개역) 『비록 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만 건지겠고 그 땅은 황무하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 14:17, 개역) 『가령 내가 칼로 그 땅에 임하게 하고 명하기를 칼아 이 땅에 통행하라 하여 사람과 짐승을 거기서 끊는다 하자』
(겔 14:18, 개역) 『비록 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 14:19, 개역) 『가령 내가 그 땅에 온역을 내려 죽임으로 내 분을 그 위에 쏟아 사람과 짐승을 거기서 끊는다 하자』
(겔 14:20, 개역)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거기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오니 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겔 14:12, 현대어) 『[막을 수 없는 형벌]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겔 14:13, 현대어) 『`너 사람아, 만약 어떤 민족이 내게 반항하고 나와 맺었던 의리도 깨어 버렸기 때문에 내가 그 나라에 벌을 내려 기근이 들게 하고 사람과 짐승도 다 굶어 죽게 한다고 치자.』
(겔 14:14, 현대어) 『그러면 비록 그 나라에 노아와 다니엘과 욥같이 위대한 세 사람이 있을지라도 그들 자신은 의로운 생활을 한 보상으로 겨우 자기 목숨이나 건지게 될 것이다. 나 주 여호와가 하는 말이다.』
(겔 14:15, 현대어) 『또 내가 만약 어떤 나라에 흉악한 짐승들을 보내 백성들을 다 잡아먹게 하여 그 나라에는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 아무도 들어가려 하지 않아서 온 나라가 폐허처럼 인적이 끊어진다고 치자.』
(겔 14:16, 현대어) 『그러면 그 나라에 비록 그 위대한 세 사람이 살고 있다하더라도 그들은 자기들의 아들과 딸조차 건져낼 수가 없을 것이다. 나 여호와가 확실히 살아 있음을 걸고 맹세하지만 그들마저도 자기 목숨이나 겨우 건져낼 것이다. 그리고 온 나라는 무인지경으로 바뀔 것이다.』
(겔 14:17, 현대어) 『또 내가 만약 어떤 나라에 외적을 끌어들여 그 땅에서 사람과 짐승을 모조리 때려 죽이는 벌을 내린다고 치자.』
(겔 14:18, 현대어) 『그러면 그 나라에 비록 그 세 사람이 살고 있다하더라도 그들은 자기들의 아들과 딸조차 건져낼 수 없을 것이다. 나 여호와가 확실히 살아 있음을 걸고 맹세하지만 그들마저도 자기 목숨이나 겨우 건져낼 것이다!』
(겔 14:19, 현대어) 『또 내가 만약 어떤 나라에 전염병을 형벌로 보내며 그 땅에서 사람과 짐승을 모두 멸절시키고자 활활 타오르는 내 분노를 쏟아 부어 온 나라를 피바다로 바꾸어 놓는다고 치자.』
(겔 14:20, 현대어) 『그러면 그 나라에 비록 노아와 다니엘과 욥같이 위대한 세 사람이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들의 아들과 딸조차 건져낼 수 없을 것이다. 나 여호와가 확실히 살아 있음을 걸고 맹세하지만 그들마저도 의로운 생활을 한 보상으로 겨우 자기 목숨이나 건지게 될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와 맹세를 맺었던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곧 이 시대에 대한 징조로써 (하늘의 징조는 잘도 풀면서 이 시대에 대한 징조는 전혀 모르는)

(마 16:1, 개역)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마 16:2,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마 16:3, 개역)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마 16:4, 개역)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시다』

(눅 12:56, 개역)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변할 줄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변치 못하느냐』
(눅 12:56, 새번역)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왜, 이 때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눅 12:56, 공동) 『이 위선자들아, 너희는 하늘과 땅의 징조는 알면서도 이 시대의 뜻은 왜 알지 못하느냐?"』


마치 거짓선지자들이 절대로 이스라엘 망하지 않는다
평강이다 평강이다 라고 한 것처럼
이 시대를 분간하지 못하는
이 심판을 전혀 모르는 겁니다.

아니 주님의 약속의 땅
시온 산을 온갖 우상숭배의 산당으로 도배를 해 놓고서도
절대로 망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하니

그래서 바벨론 포로로 잡혀 갔잖아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또 여전히 이 시대를 분간 못하는 겁니다.

마땅히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임을 모르기에
그 죄인을 부르러 오신 하나님을 모르기에
나 여호와가 누구인지 너 모르지

그래서 내가 누구인지 알려주마 바로 심판주 이시다 라고

어떤 심판을 펼치시느냐
이 땅에 
먹을 양식을 의지하기에 그 양식을 끊고
또 그 다음 기근을 내려서 사람과 짐승을 끊는, 아니면 사나운 짐승을 풀어버려 통행치 못하게 하고
그 다음은

(겔 14:13, 개역) 『인자야 가령 어느 나라가 불법하여 내게 범죄하므로 내가 손을 그 위에 펴서 그 의뢰하는 양식을 끊어 기근을 내려서 사람과 짐승을 그 나라에서 끊는다 하자』
(겔 14:13, 새번역) 『"사람아, 만약 어떤 나라가 가장 불성실하여 나에게 죄를 지으므로, 내가 그 나라 위에 손을 펴서 그들이 의지하는 양식을 끊어 버리고, 그 나라에 기근을 보내며, 그 나라에서 사람과 짐승을 사라지게 한다고 하자.』

(겔 14:15, 새번역) 『가령 내가 그 나라에 사나운 짐승들이 돌아다니게 하여, 아이들까지 없애 버리고, 또 그 짐승들이 무서워서 그 땅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 땅이 황무지가 된다고 하자.』

(겔 14:17, 새번역) 『가령 내가 그 나라에 전쟁의 칼이 들이닥치게 하고, 명령을 내려 '칼아, 이 땅을 돌아다니며 휘둘러라' 하여, 내가 그 땅에서 사람과 짐승을 사라지게 한다고 하자.』

전쟁의 칼이 막 돌아다니면서 막 휘두르게 하여 막 찔러 죽게 만들고

그 다음은 전염병 코로나 19 바이러스를 퍼트려서 사람과 짐승(가축,식량)을 없애버리겠다고 하십니다.

(겔 14:19, 새번역) 『가령 내가 그 땅에 전염병을 퍼뜨리고, 내 분노를 그 땅에 쏟아 부어, 거기에서 사람과 짐승이 피투성이가 되어 사라진다고 하자.』

자 다시 정리하면
13절 양식 끊기
15절 사나운 짐승 풀기
17절 칼이 돌아다니면서 막 휘두도록 하기
19절 전염병 퍼트리기

결국 목적은 사람과 짐승(양식)을 사라지게 없애버리기 위함이다는 거죠

그럼 13절과 15절 사이에
곧 14절
그리고 16절
18절 
이 사이 사이 구절에
누가 언급이 되는고 하니
세 사람 노아 다니엘 욥이 언급이 됩니다.

왜 언급이 될까요?

이 세 사람이 심판 속에서도 구원을 받은 신앙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기 때문에
이 신앙인을 본받아서 이 심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신앙의 위인
신앙의 모범생으로 따라하겠다 라는 발상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 발상 자체가 통하지 않는
여전히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임을 모른다는 거죠

마치 지난 주의 선지자의 죄악 곧 유혹과 그런 선지자를 찾는 백성의 유혹이 똑같은

바로 하나님의 백성 되기를 자기 스스로가 달성 할수 있다는 기대 가능성을 추구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그들의 죄악이다 말이죠

그럼 왜 인자가 왜 이 땅에 왔냐 말이죠
여전히 이 시대의 징조를 모르는 겁니다.

천지는 분간 할 줄 알면서
하늘과 땅을 분별하면서

왜 이 시대에 펼쳐지는 징조를 왜 모르느냐

곧 왜 심판 받아 마땅한 지를 왜 모르냐 라는 겁니다.
장대 높이 달린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왜 모르냐
이 거리끼는 걸림돌을 빼버리는 것이
이 시대의 모습 곧 그때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도 계속해서 이 땅의 반복적인 모습이다는 거죠.

즉 주님께서 직접 자신이 하나님 백성 곧 교회, 신부를 만드심을 왜 모르고
그런 직접 백성 만드심에 있어서 그들만의 하나님이 되시겠다 라는 그 취지로써

새 언약 속 십자가의 피 흘리심을 왜 모르느냐

장대 높이 달리시는 인자를 왜 모르느냐 라는 겁니다.

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정보가 아니 야다-남녀간의 사랑인 에로스)이 없어서 망하는 줄 모르는 겁니다.
오히려 자기 의를 쌓고자 성경 지식만 가득 채웠다는 거죠

그러니 하늘의 징조 땅의 징조 다 맞추면서
정작 이 시대에 왜 저 네 짐승(다니엘서에서의 네 짐승)이 나타나야 하고
왜 그 네 짐승이 나타나는 가운데
이스라엘은 왜 포로 잡혀 가야 하는지를 전혀 모르는 겁니다.

마치 이스라엘은 예수님의 운명처럼
잡혀가서 이스라엘 장로와 대제사장으로부터 죽임을 당하는
이 십자가라는 요나의 표적을 전혀 모른다는 거죠

오늘 나오는 세 사람 중 다니엘이 지금 에스겔이 말하고 있는 그 시대에 맞물려 있잖아요
곧 이스라엘 본인들이 바벨론과 곧 네 짐승과 맞물려 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르는 겁니다.

그러니 이 이스라엘이 진짜 인지 가짜인지를 알려면
심판 속에 집어 넣어 보면 압니다.

마치 지난주의 마태복음 16장처럼
진짜 교회인지 가짜 교회인지 알려면
음부의 권세 속에 집어 넣어 보면 안다 말이죠

의인인지 아닌지를 알려면
죽여 보면 알 듯이 말이죠

의인은 믿음으로 다시 사니까 말이죠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는
이스라엘 장로와 대제사장으로부터 많은 고난과 죽임을 당해야 한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것을 베드로는 안됩니다 라고 막더라 말이죠

이 말은 마귀와의 차이로써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보여주시는 유일한 방법인 십자가의 지혜인데
참으로 어리석고 미련한 지혜이지요

오죽하면 헬라인 지혜 지식을 추구하는 이방인들 지식인들 철학자들은
미련하다 라고 무시해 버리고

정작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그 속에서 태어난
처음자리가 바로 십자가인데
그 처음사랑을 버리니까
십자가가 거리끼는 걸림돌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절대로 십자가 지시면 안된다 라고 베드로가 막는 겁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우리는 다들 우와 대단한 베드로의 믿음이다
역쉬 예수님의 수제자 답다 라고 칭찬할 정도로 모범으로 보겠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너는 나를 괴롭히는 자 이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존재가 아닌 사명이 먼저 이거든요
너가 방금한 그 고백 곧 하나님 아버지께서 알려주신 그 고백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죽겠다 라고 하는데
베드로는 이 사명 보다 존재가 먼저 되어버리니까
주님을 넘어뜨릴려고 하더라 말이죠

괴롭게 하는 자와 보라 내가 새 일을 밀어 붙이겠다(사 43,14-28)
이사야 2017 2019. 12. 1

작년 12월 1일에 살펴본 말씀이네요 석달이나 지났는데

곧 이스라엘이라는 종말의 단체인 교회는
예수님이라는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과 같은 운명인데
그래서 죽어도 살겠고 라는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닌
산 자의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자 인데

어라 안 따르는 겁니다.
각기 제 길로 가는 양 같은 자 이다는 거죠

안 따른다 라고 포기할 주님이 아니십니다.

따르든 말든
듣든지 아니 듣는지 상관 없이

자기 백성을 직접 자신의 숙제로 완성하시는
하나님 백성 만들기를 하시는
이미 다 이루었도다 라는 완료로써 펼치시는 겁니다.

여기에 인간은 보탬이 되어 보겠다고
세 사람 노아 다니엘 욥을 멘토로 삼아서 아무리 따라해 본들
이 심판에서 벗어 날수가 없다 라는 겁니다.

오히려 이 심판 속에서
무화과 나무 잎이 마르고 포도 열매가 없고
감람나무 열매 그치고 논밭에 식물이 없어도
우리에 양떼가 없으며(짐승을 다 사라지게 하니까 말이죠)
외양간 송아지 없어도(양식 끊어지고 기근들고 칼이 난무해서 죽은 거나 마찬가지 이다 말이죠)

어 그런데 어떻게 난 여호와로 즐거워 하리 라는
남은자가 돌아오는
어떻게 찬양자가 나오느냐 라는 겁니다.

단절 되었고
이미 죽었는데
그 죽음 속에서 어떻게 생명이 튀어나오냐 라는 거죠

앞 뒤가 안 맞아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무화과 나무 잎이 없는 기근 죽음 심판 속에서
어떻게 구원이 있냐 난 여호와로 즐거워 하리가 있겠냐 말이죠

로마서 7장 끝 구절과
8장 1절 처음구절이

앞 뒤가 안 맞는
이 사이의 간극이 모순이 된다 말이죠

이것을 부조리 부조화 곧 십자가 라는 스캔들 불의함이다는 겁니다.

음부의 권세 보다 더 불의한 것이 십자가 라는 부조리 이다는 거죠

사랑은 죽음 이라는 부조리 보다 더 한 부조리 더 나은 부조리
아 더 낫다 라고 하면 안되겠갔구나(김정은)
더 나쁜 부조리가 바로
죽음 보다 더 강한 사랑이다는 겁니다.
사랑이 부정의 부정이다는 거죠

죽음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사랑은 거짓 사랑이다는 거죠
그러니 인간의 사랑은 거짓입니다.

(요일 4:10, 개역)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결국 화목제물이 되어서 죽음문제, 사망권세, 죄문제 곧 음부의 권세를 해결하지 못하면
그거 가짜요 가짜 거룩인 누룩인 거다 말이죠

거룩 곧 의로움은
이사야 258

(사 25:8, 개역)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사망을 멸하시고자 의의 간극 곧 죽으시는 하나님이
화목제물 되심이 진짜 의 로움이고 나머지는 아닙니다.
곧 인자 죠 인자의 기능 말이죠
그리고 주가 되심이 기능입니다.
곧 주인이란 의사로써 환자의 병을 고치고
죄인의 죄 문제를 해결하는 구원자 이고
이사야 이오팔 에서는
구원 개념을 눈물을 씻겨주는
계시록에서의 구원은 수치를 당치 않게 하는
이것이 거룩입니다.

오늘날 성화론자의 거룩 곧 성화나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의 거룩과는
완전 정반대입니다.

죽은자를 살릴줄 모르는 거죠
모르면 가짜입니다 라고 하면 고쳐주실텐데
진짜 라고 하니까

자꾸 세 사람을 따라하는 겁니다.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이 바로
주님의 화목제물 되심 곧 심판 받으심 속에 같이 동참이 되는 자들입니다.

주와 함께 죽고 주와 함께 다시 산 자입니다.

그런데 세 사람을 따라하겠다는 것은
나는 절대로 망하면 안된다 라는
딱딱한 마음이지 부드러운 마음이 아니다는 거죠
주여 나는 마땅히 망해야 할 죄인입니다 라고 
이 세사람은 고백했는데
오히려 의인이 되고자
나는 심판 절대로 받으면 안된다 라는
평강이다 평강이다 하나님이 보호하시니까 절대로 망할 리가 없다고 외치는
거짓선지자의 외침과 같은 사고방식으로써 이 세사람을 마치
산당처럼 우상의 방을 만들어서 담무스 신 곡식 신 태양신처럼
신앙 영웅 노아 님 다니엘 님 욥 님을 우상섬기듯이
왜? 나는 절대로 고아 과부 나그네가 되면 안되니까
바벨론 여자처럼 말이죠
그런 취지로 노아 다니엘 욥을 따르겠다 라고 하니까

마치 예수님 당시에는
세례요한이 속으로 아브라함 자손이라고 하지 말라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 자손 만들겠다 라는 내용이
오늘 본문과 딱 맞아 떨어지는 겁니다.

(마 3:9, 개역)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눅 3:8, 개역)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괜히 아브라함 이라는 믿음의 조상을 사람들이 운운하는 것이 아니다 말이죠
어떻게 해서든 나는 이유 없이 심판 받으면 안된다는 거죠

그러나 노아 보세요 심판 속에 홍수 속에 직접 놓여집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 보세요 불 속에 놓여집니다.
안 놓여지는게 아니다 말이죠
심판 밖아 
홍수 심판 바깥이 아닙니다.
심판 속에 놓여지도록
주님이 그 속에 집어 넣었다 말이죠

이런 취지와 반대로 노아 다니엘 욥을 운운하고 있으니
성경말씀을 거꾸로 본 거죠

그러니 자꾸 이 세사람을 유대인 곧 이스라엘 사람들이 멘토로 삼은 것은
믿음의 영웅이라는 이유로
그것도 약빨이 가장 높다는 인물로써 말이죠
여자나 이름 없는 솔로몬 형인 꺾으신 뼈나
저 이름도 없고 여자인 입다의 딸은
절대로 운운하지 않습니까 그저 대중적으로 높다고 여겨지는 자를 운운하는
우상적인 발상이니 말이죠
자신들 또한 믿음의 영웅이 되고자 하는 탐심 때문에 따라한다는 거죠

그러니 주님께서 이 세사람 따라해서 믿음의 영웅이 된다고 구원되는 줄 아느냐 라고 
택도 없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이 세사람이 자발적으로 주님의 고난에 참여한게 아닙니다.
이들 또한 목이 곧은 백성이나 마찬가지 이다 말이죠
욥은 엘로힘 하나님만 알았지 여호와 곧 전능자가 누구인줄 몰랐다말이죠
나오미가 나를 나오미라 하지 말라 마라라 전능자 께서 나를 괴롭게 하셨다 라는
이 괴롭게 하시는 전능자 여호와를 비로소 알고
그 심판 속에서 주님의 이름을 비로소 부르게 되는 것이다 말이죠

그들 세사람을 낮추시고자 심판 속에서
주님께서 부드럽게 만드신 결과물 증상물
곧 하나님이 직접 백성 만드심이지

자기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자 했던 자들이 아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 스스로가 고난 속에 들어간 자들이 아닙니다.
주님이 등 떠밀어서 들어간 거지
자발적으로 들어갈 권리가 이들에게는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오기요 고집이요 신념이지
믿음의 주가 주신 선물이 아니다는 거죠
또 탐심이라는 우상숭배가 되는 겁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그 짖을 해요
우상을 마음에 품고서 하나님 앞에 나와 묻는
이스라엘 장로들처럼 말이죠
백성의 대표자들이 이러니
백성들이 다 이런 식입니다.

그런데 이 세사람을 멘토로 삼았다는 것은
인간 쪽에서 하나님의 백성 되고자 하는 열심히
하나님에게 먹혀들줄 알았다는 겁니다.

오히려 주님의 응답은 바로

바로 ~~~~~~~ 

(겔 14:20, 개역)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거기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오니 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겔 14:21, 개역)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네 가지 중한 벌 곧 칼과 기근과 사나운 짐승과 온역을 예루살렘에 함께 내려 사람과 짐승을 그 중에서 끊으리니 그 해가 더욱 심하지 않겠느냐』

바로 ~~~~~~~

네 가지 중한 벌이였습니다.
이 속에서 주님이 계십니다.

곧 칼
기근
사나운 짐승
온역(질병, 코로나 19)입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하나님의 집에서
만민의 주가 되시는
만민의 백성이 어떻게 주에게 돌아와서
모든 입으로 주를 시인하고
모든 무릎을 꿇게 되는고 하니

두 사람이 성전에서 기도하는데
하나는 곧 바리새인은 십의일조 내었다 
이레에 두 번 금식했다
저 세리처럼 토색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기도했다 말이죠

그런데 다른 하나는 곧 세리는
그저 불쌍히 여겨 달라고 가슴을 치면서
우는 겁니다.

네가지 징벌을 몰고 오신 주님을 봤기 때문입니다.
곧 심판의 주 이거든요
나를 제대로 심판 하시는 분은 주님 밖에 없다 라고 말이죠

그 네가지 징벌인 칼 곧 죽음인 전쟁이지요
평강의 왕은 전쟁을 벌리시는 분입니다. (임마누엘)
전쟁이 없는데 어떻게 마침이 되냐 말이죠
샬롬 샬롬 이라는 그리스도인의 인사말은
간밤에 주님의 얼굴을 보고 안 타 죽고 남았다 라고
남은자 개념에서 나온거다 말이죠

그러니 전쟁이 심판이 단절이 있어야 하는데
거짓선지자는
평강이다 평강이다 라고 하나 평강이 없는 겁니다.
죽음 아래에서 죽음을 여전히 놔두고서
평화를 외치니
죽음과 싸우지 않고서 어떻게 평화가 오냐 말이죠

그 다음 두 번째 징벌이 뭡니까
칼 다음에 기근
황무지로 만들어 버리는 겁니다.
지금 이사야와 에스겔을 통해서 보는 것이
이스라엘이 그 속에 들어가서
보라 내가 새 일을 다 이루어 놓았다 라는 말씀을 직접 격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안 돌아갈란다 라고
아니 고레스 왕을 메시아로 삼아서
새성전 곧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 보라고
남은자는 돌아온다고 했는데
아무도 안 돌아오는 겁니다.

1차 귀환은 고레스 왕을 메시아로 삼아서 등 떠밀었고
그 황무지가 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겁니다.
(단순히 예루살렘만 심판한게 아닙니다노아 때 처럼 전지구를 심판하시겠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먼저 심판이 이루어지는 이유입니다.
(벧전 4:17, 개역)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벧전 4:12, 개역)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벧전 4:13, 개역)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벧전 4:14, 개역)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벧전 4:15, 개역)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벧전 4:16, 개역)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벧전 4:17, 개역)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벧전 4:18, 개역)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
(벧전 4:19, 개역)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지어다』
)

2차 귀환은 그로부터 약 100년 정확히는 78년 뒤에
그것도 안 돌아갈려고 한 것을
에스더 사건 부림절 사건을 통해서
이스라엘 말살 날짜가 도리어 구원의 날이 된
이 부조리
이 앞뒤 모순
심판의 날로 주사위를 던져서 정해진 날이
도리어 구원의 날이 된
그래서 되돌아 갔지
그것도 처음 1차 포로귀환이 5만명인데
2차때는 남자 장정만 1774명 지난주에 1775명아라고 했는데
끝자리 수 하나 틀렸네요
물론 또 25명인가? 250명인가? 숫자의 차이가 나는
에스라 서와 
느헤미야 서의 차이도 있습니다만
중요치 않고요
어쨌던 남녀노소 합치면 약 5천명
5만에서 5천으로 10분의 1로 확 줄어든
이미 많이 갔으니까 그럴수도 있겠습니다만
저의 의도는 그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돌아갈려고 하는 자들이 없었다 라는 겁니다.

남은자만
그야 말로 말 그대로 남은자만 돌아오리라가 성취된 겁니다.

출바벨론을 해서
출애굽때처럼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받은자는 적은
그야말로 불뱀에게 물린 상황 아닙니까네 짐승 나라 곧 바벨론, 메데 파사, 헬라, 로마와 열국
주변 강국에 의해 나라 빼앗겨 포로 되었다 말이죠
불뱀에게 물렸어요
그런데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 보면
새언약을 쳐다 보면 낫거든요
고레스를 메시아로 삼아서
새성전을 지으면 낫거든요
움직이지 못하는 성전
곧 황금성전이 아니라
움직이는 성전자꾸 자꾸 우리 마음을 찔러서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우리를 생각게 하는(비록 패역한 족속이라도 혹 생각이 있으리라)

(겔 12:3, 개역) 『인자야 너는 행구를 준비하고 낮에 그들의 목전에서 이사하라 네가 네 처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을 그들이 보면 비록 패역한 족속이라도 혹 생각이 있으리라』

(행 2:37, 개역)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행 7:54, 개역)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히 4:12, 개역)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싫어버린 바 된 성전
다들 고개를 돌려 버리는 성전
아름다운 풍채도 고운 모양도 없는 성전을
태양 빛에 그을려서 질고를 지는 성전
초라하기 짝이 없는 성전

이 장대 높이 달린 예수님을 쳐다보라고
돌아오라 라고 했는데
안 돌아오는 겁니다.

결국 하나님의 백성은 주님 혼자 외로이 직접 만드시는 겁니다.

인간 쪽에서 하나님의 백성
곧 남은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라는 겁니다.

아무리 법궤를 앞장세운 홉니와 비느하스처럼 여호와의 증거궤를 앞장세워
그 뒤에 숨어도

노아 다니엘 욥을 앞장세워 그들 뒤에 숨어도
도리어 법궤가 블레셋 군사들아
홉니와 비느하스가 내 뒤에 숨었단다 얼릉 잡아가라 라고 하듯이

노아 과부
아이구 자꾸 노아 과부 나그네레 ㅋㅋㅋ
노아 다니엘 욥 을 앞장세워서 그 뒤에 숨어도
도리어 노아 다니엘 욥이
네가지 징벌들아 이스라엘 백성들이 내 뒤에 숨었단다
어서 잡아가라 라고 할 것이다 말이죠

변화산에 천삼백년 만에 모세가 느닷없이 나타났고
엘리야가 구백년 만에 느닷없이 나타나서 하는말
주여 별세해 주소서
죽어주소서
십자가에 달려 주소서 라고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 보게 해 주소서 라고 하지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넘어뜨리고자
주여 절대로 주님 버리지 않고 십자가의 죽음까지 끝까지 따라가겠습니다
장지지겠습니다 라고 하지 않았다 말이죠

즉 이 말은 모세와 엘리야도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임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주여 저 환자입니다 고쳐주소서 라고
천삼백년만에 느닷없이 나타나서 외쳤고
구백년만에 느닷없이 나타나서 외쳤다 말이죠
엘리야야 뭐 불마차를 타고 죽음도 격지 않고 올라갔으니까
왜 이런 소리를 하는지 앞 뒤가 안 맞잖아요
모세는 약속의 땅 들어가지도 못하고 탈락 당했으니까 그럴만 하다 말이죠
서로의 입장이 다르잖아요
아 그런데 예수님을 보는 시선은 똑같습니다.
화목제물이 되어 달라

즉 사랑

죽음 보다 더 강한 사람
음부의 권세 보다 더 강한 사랑으로 태어나는 교회 만들어 주세요
하나님의 백성 만들기를 직접 하소서 라고 하는 겁니다.

심지어 창녀 마리아가 그 비싼 향유를 깨뜨리면서
주님을 미리 장사를 치르는 겁니다.
아니 아직 안 죽고 멀쩡히 살아 있는 양반을 미리
미이라 만들 듯이 향유를 바르듯
장사치르고 있으니

도저히 엽기적이여서 다들 모르니까 그 비싼거 가난한자 나누어 주어야지 하겠지만
이거 알았다면 베드로가 말고의 귀를 짜르듯이
다들 죽일려고 달려들었을 것이다 말이죠

그 정도로 단절이 되었습니다.
임의로 부는 성령의 뜻을 알길이 포착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니 빈공백을 인간은 뭐든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빈틈을 매꾸어 넣을려고
온갖 거룩하다는 것
의롭다 라는 것
깨끗하다는 것
정의롭다 라는 것으로
그 공백을 매울려고 해도
채워지지 않는 겁니다

아무리 노아 다니엘 욥을 델꼬 와서 매꾸어 넣어도 말이죠
택도 없습니다.
함량미달 666 사람의 수 일 뿐입니다.

도리어 주님 쪽에서 이 새는 바가지인 우리를 매꾸어 주시고자
찢으셨다가 다시 싸매어주시는 이 간극을 도리어 벌리심으로써
공백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더더욱 간극을 벌림으로써 생명의 잔이 넘치도록 말이죠죽으면 죽으리라 말이죠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 보라 라고 하시는 겁니다.

죽음 보다 더 강한 사랑
음부의 권세 보다 더 강한 사랑의 열매 결실인 교회로 신부로 삼겠다 라고 말이죠

꼬추 짤라 버리겠다 라고
인간 쪽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겠다 라는 사고방식을 짤라버리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도리어 이 심판 속이 구원이 되고

저들의 구원이 도리어 심판이 되는

이 이스라엘의 의미를 주님 쪽에서 이미 다 이루어 놓았다 라고
이런 사건들을 터트리시는 겁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에 합한
동참한
마음판에 할례로
고난에 참여하게 된
신부입니다.

이 신부된 교회
곧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간
기생 라합이

자기 백성 자기 민족 자기 나라 자기의 신을 심판하시는
마땅히 저주를 퍼부으심이 마땅함을 알고서
구원을 두렵고 떨림으로
간담이 녹아서 어서 어서 이 심판주가 오기를 기다렸듯이
이 심판의 주를 영접하는 자가 바로
새이스라엘 로써
주님은 십자가의 죽음에서 이 새이스라엘을 태어나게 하시는 겁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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