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 선지자의 죄악과 그에게 묻는 자의 죄악이 같다 (겔 14, 9-11) 

(겔 14:9, 개역) 『만일 선지자가 유혹을 받고 말을 하면 나 여호와가 그 선지자로 유혹을 받게 하였음이어니와 내가 손을 펴서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서 그를 멸할 것이라』
(겔 14:10, 개역) 『선지자의 죄악과 그에게 묻는 자의 죄악이 같은즉 각각 자기의 죄악을 담당하리니』
(겔 14:11, 개역) 『이는 이스라엘 족속으로 다시는 미혹하여 나를 떠나지 않게 하며 다시는 모든 범죄함으로 스스로 더럽히지 않게 하여 그들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려 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겔 14:9, 현대어) 『만약 예언자 중에서도 그릇된 길에 빠져 제멋대로 내 이름을 걸고 엉뚱한 소리를 하는 자가 있으면 나는 아주 그를 그릇된 길로 데려가 버리겠다. 내가 직접 손을 들어 그를 쳐서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서 내쫓아 죽여 버리겠다.』
(겔 14:10, 현대어) 『우상숭배에 마음을 빼앗긴 채 내게 물어 보는 자나 내게서 계시를 받지 않고서 제멋대로 지껄이는 예언자나 그 죄가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그들은 각각 자신의 허물에 응당한 벌을 받게 될 것이다.』
(겔 14:11, 현대어)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는 내게서 떠나 멀리 달아나지 않고, 온갖 과오에 빠져 더럽게 되지도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나 주 여호와가 하는 말이다.'』

(겔 14:9, 새번역) 『그런데 예언자가 만약 꾀임에 빠져 어떤 말을 선포하면, 나 주가 친히 그 예언자를 꾀임에 빠지도록 버려 둘 것이다. 내가 내 손을 그에게 뻗쳐, 그를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서 멸망시키겠다.』
(겔 14:10, 새번역) 『물어 보는 사람의 죄나 예언자의 죄가 같기 때문에, 그들이 저마다 자기의 죄값을 치를 것이다.』
(겔 14:11, 새번역) 『그래서 이스라엘 족속이 다시는 나를 떠나서 길을 잃지도 않고, 다시는 온갖 죄악으로 더러워지지도 않게 하여,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겔 14:10, 공동) 『그러나 죄는 예언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물어보러 가는 사람에게도 있기 때문에 쌍방에 같은 벌을 내리리라.』
(겔 14:10, 쉬운) 『예언자에게 묻는 사람이나 예언자나 모두 죄가 같으므로 둘 다 자기 죄값을 받을 것이다.』
(겔 14:10, 킹흠정) 『그들이 자기들의 불법의 형벌을 담당하리니 그 대언자의 형벌이 그에게 묻는 자의 형벌과 같으리라.』
(겔 14:10, 한글킹) 『그들은 그들의 죄악의 형벌을 담당하리라. 선지자의 형벌은 그에게 구하는 자의 형벌과 같으니라.』
(겔 14:10, 현대인) 『그 예언자와 그에게 묻는 자가 다 같이 자기들의 죄에 대하여 형벌을 받을 것이다.』


국어가 딸려서 무슨 말인가 싶어서 새번역을 더 살펴 봤습니다.
10절을 제목으로 뽑아서 다른 번역까지 봤습니다.

선지자가 유혹에 빠져 범죄를 했고
그 유혹에 빠진 선지자를 유혹한 백성들 또한 모두 같은 벌을 받는다 라는 겁니다.

오늘날 신땡지를 보면 딱 맞습니다.
신땡지만 그럴까요?
코로나19를 숨기기에 바빴다 말이죠
그 와중에 돈에 미쳐서 말이죠

땡교활도 마찬가지로 한국기독교중심의 딴나라당과
천주교중심의 민주당도 마찬가지인 거죠
그럼 다른 당은? 역시나 종교적이기는 마찬가지인 거죠
안 그런 인간이 없는 
모든 인간은 자기를 위한 우상에 빠져 삽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내용이 왜 있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저들 어차피 멸망 당할꺼
어차피 서로 유혹하고 서로 유혹당하는거 지들끼리 하도록 냅뚜고
우리는 우리 끼리 여호와를 섬기면 되는데
왜 이 내용을 구지 구지 꼭 꼭 집어넣어서 반드시 기록하시고 말씀하시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이것이 지난 주에 마태복음에서 언급 된 이 시대의 징조입니다.
땅의 징조 말이죠 곧 상대적인 하늘의 징조에 한 세트를 구성하는 이 시대의 징조 말입니다.)

그 이유는 11절이 먼저 떳다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새언약이 먼저 떳다 말이죠

(겔 14:11, 개역) 『이는 이스라엘 족속으로 다시는 미혹하여 나를 떠나지 않게 하며 다시는 모든 범죄함으로 스스로 더럽히지 않게 하여 그들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려 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즉 내 백성을 삼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된다 라는 이 약속이 먼저 떳기에
반드시 한세트가 되는 [선지자의 죄악]이 한세트로써 구성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마치 참선지자를 알려면 반드시 거짓선지자 또한 한 세트로 알아야 하듯이 말이죠

동생 야곱이 나올려면, 형 에서가 그 차이로써 언급이 되어야 하듯이 말이죠

자 그렇다면 선지자를 유혹하는 백성들의 사고방식과
그 유혹에 빠진 선지자의 죄악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지난주에 바리새인의 누룩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이 누룩이 우리가 언뜻 생각하기에 나쁜 것들이다
바이러스 이니까 세균이라서 안좋은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데
그 반대 이다 라고 했습니다.

십의 일조 하고 이레에 두 번 금식하고 - 성전에서 기도하는 바리새인
어릴적부터 율법 다 지켰고 혹 부족한 것 말씀하시면 당장 지키겠다 라는 부자청년
그리고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이 없다 라는 맏아들 오늘날로 치면 성화론자 아닙니까
이것들이 누룩이다 라는 겁니다.

에~~엥 (일본사람이 놀랐을 때 하는 감탄사) 말도 안된다 말이죠
이게 무슨 누룩이냐 말이죠
오히려 장려하고 다들 좋아라 하는 것 아닙니까
오히려 그런것들을 해야 하나님의 백성 다운거 아니냐 말이죠

바로 그겁니다 다들 좋아라 하는 것이다 말이죠

즉 선지자의 유혹을 왜 언급해야 하느냐 하면
이들을 참선지자로 여기는 백성들의 마음을 대변해 주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다들 좋아라 하는 누룩이다는 거죠

부자청년 보세요 바리새인의 교훈(누룩)에 빠졌기에
어떻게 하면 구원 얻느냐 라고 대 놓고서 구원의 탐심을 곧 우상숭배를 예수님에게 까지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의 이스라엘 장로들이 하나님께 묻고자 참선지자에게 찾아오듯이 말이죠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여호와께 나오는 이스라엘 장로들 (겔 14, 1- 8)

오늘은 거짓선지자이다 말이죠.

이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쫏도록 되어 있습니다.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처럼 말이죠
그러나
마태복음 6장에서 언급했듯이
과연 이것을 누가 안 보이도록 왼손 하는일 오른손 모르게 하듯이
안보이도록 하겠냐 말이죠
다들 권장하고 나타나 보이도록 할 거 아니냐 말이죠
자랑을 하고 과시를 해야 그것을 보고 따라하는 타의 모범이 되는데
그런데 반대는커녕 아예 누룩으로 취급을 해 버리니 말이죠

안식일 지키는 것이 도리어 안식의 주인을 죽이는 더러움이였다는 것이 과연 
우리의 어두운 눈이 바로 눈치를 챌수가 있겠냐 라는 겁니다.

소위 선하다 라고 선으로 위장 포장된 것들이
그 포장된 껍질을 벗겨보면 다들 더럽기 짝이 없으니
그 보이는 선함을 보는게 아니라
안 보이는 악함을 과연 볼수가 있겠냐 라는 겁니다.

안 보이는데

그런 의미에서 선지자의 미혹이 들어가 주어야 하는 겁니다.
그래야 보이는 것들이 대한 허망함과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펼쳐지는 사건을 격어야 한다는 거죠

(겔 14:11, 개역) 『이는 이스라엘 족속으로 다시는 미혹하여 나를 떠나지 않게 하며 다시는 모든 범죄함으로 스스로 더럽히지 않게 하여 그들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려 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분명히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는다 라는 것은
주님 자신의 숙제로써 언급하고 있습니다

즉 인간 쪽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은 없다 라는 겁니다.
오로지 주님 자신의 숙제로써
자신의 피를 흘리심으로만 되는 일
곧 하나님의 일입니다.
베드로는 자꾸 사람의 일로써 이 새언약을 달성할려고 했다 말이죠

바로 한 세트가 되는 그 반대의 차이로써 말이죠
스스로 하나님이 백성이 되겠다 라고
인간의 숙제를 펼치는 육의 소욕을 배경으로 깔겠다 라는 겁니다.
여기에 선지자의 죄악이 동원이 되어야 합니다.
대중들 대부분 다수들이 이 선지자의 죄악과 함께 동조가 되겠지요
그래야 유행하고 그 다수가 권력이 되니까 말이죠

소수는 안 보입니다 무시 꺼리이니까 
다들 멸망의 길을 찾습니다.
멸망의 길은 넓고 큰 길 대로가 되는 거죠
대세를 이루니까 무시할 수가 없는 거죠

그러나 좁은 길은 아예 안 보여요 없는 거나 마찬가지이니까
찾는 사람이 없다는 거죠

그러니 그 대중이 인간의 숙제로써 하나님의 백성 되기를 펼칠 것이고
그 흐름에 대중들은 선지자를 유혹하게 되는 겁니다.
대중들이 듣고 싶은 말
평강이다 평강이다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 라는 말을 해 달라고
그러면 보상해 주겠다 라고 말이죠

우리가 앞에서 살펴봤듯이
바벨론 여자들이 왜 우상을 섬기는지, 이사야 사칠팔, 고아 과부 나그네 안될려고(바벨론 멸망 (나 뿐이다!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는 자여!) (사 47; 1-11))
또 이스라엘 부녀자들이 어떤 내용으로 행동하는지(참선지자를 투입 하시는 이유 (점치는 부녀자들을 쳐라) (겔 13,17-23))(겔 13:18, 개역)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사람의 영혼을 사냥하고자 하여 방석을 모든 팔뚝에 꿰어 매고 수건을 키가 큰 자나 작은 자의 머리를 위하여 만드는 부녀들에게 화 있을진저 너희가 어찌하여 내 백성의 영혼을 사냥하면서 자기를 위하여 영혼을 살리려 하느냐』
(겔 13:19, 개역) 『너희가 두어 웅큼 보리와 두어 조각 떡을 위하여 나를 내 백성 가운데서 욕되게 하여 거짓말을 지어서 죽지 아니할 영혼을 죽이고 살지 못할 영혼을 살리는도다』

(단순히 자기와 자기 자식 잘 되게 해 달라고 따로국밥처럼 단독자로 끝나는게 아니라
반드시 그런 이유로 미워 죽겠는 자를 죽을 수밖에 없는
그래서 갈라디아서에서 땅에 속한 계집종 여자의 아들이 있다면
그 이스마엘로부터 미움을 당하는 하늘에 속한 자유하는 여자와 아들이 있다는 겁니다.
이 두 언약이 반드시 있다 말이죠그래서 자신은 살리고자 남을 사냥하는죽어 마땅한 자는 살리고, 반드시 살아야 할 자는 죽이는 이스라엘 점치는 부녀자들)
또 이스라엘 장로들이 무슨 일들을 펼치는지, 바로 지난주 였죠(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여호와께 나오는 이스라엘 장로들 (겔 14, 1- 8))
(겔 14:7, 개역) 『이스라엘 족속과 이스라엘 가운데 우거하는 외인 중에 무릇 나를 떠나고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거치는 것을 자기 앞에 두고 자기를 위하여 내게 묻고자 하여 선지자에게 나아오는 자에게는 나 여호와가 친히 응답하여』
(겔 14:8, 개역) 『그 사람을 대적하여 그들로 놀라움과 감계와 속담거리가 되게 하여 내 백성 가운데서 끊으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자기를 위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것 자체가 우상인 우상과 하나님을 섞은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즉 이런 자기 배를 위하여 여호와께 나아오는 자는 반드시 속담꺼리 비웃음꺼리가 되도록 하시겠다 말이죠
그러니 우는 자가 복 되도다 라는 말은
눈물로 씨앗을 뿌리는자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그의 눈물을 씻겨주는
지금 우는 자이고
울지 않는 자는 반드시 울도록 만들겠다 라고
성전의 두 사람의 기도
하나는 바리새인 완악하고 딱딱한 것들을 자랑하고
세리의 기도는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겁니다. 정직한 영이 없다 라고
부드러운 마음을 달라 라고)
그리고 또 하나 빠뜨린 것이 더 앞의 순서에 했어야 하는데 
바로 이스라엘의 거짓선지자들이 무엇을 외치는지를 살펴 봤습니다.
(본 것 없이 예언하는 회칠한 거짓선지자와 예루살렘 성전 무너짐 (겔 13, 1-16))

오늘 본문과 또 연결아 됩니다.
바로 대중들이 듣기 좋아라 하는 말
평강이다 평강이다
회칠한 무덤 아름답게 포장된 무덤 말이죠
그리고 광명한 천사 노릇을 한다 말이죠
절대로 삐딱한 소리
듣기 싫어하는 소리를 하지 않죠

자 이런 내용들이 새언약에 맞물려서 한 세트로 구성이 되는 가짜예언으로써
실제로 지금까지도 이들의 내용들이 교회에서도 마저 소통이 되고 매매가 됩니다.
이거 없으면 교회도 못 나갈정도이니까 이거 없으면 쫓겨난다 말이죠
물론 가짜이다를 것을 절대로 알수 없죠
도리어 철통같이 옳은 것이다 라는 것을 믿을 수 밖에 없도록
미혹하는 영들을 깔아 버리시는 겁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 자신의 숙제로써의 백성삼기에 반드시 한 세트로 구성이 되는
거짓백성 거짓선지자의 미혹이 동원이 되는 겁니다.

바로 종교 짐승의 수 사람의 수 사람의 일 666 이라는 육체의 사고방식이
통용이 되고 흐름을 타고 대세를 이루도록 말이죠

그 속에서 십사만사천명을 주님이 직접 만드시는 겁니다.

성화론자들 보세요
하나님 백성이 되자 운동을 펼치잖아요
목사들이 여기에 다 동조하고 있고요
그래야 눈에 보이는 교회 곧 성전이 활성화 된다 라고 말이죠

누구더라? 왜 십사만사천명 되자 운동 펼치는 이단들
마치 피라미드 다단계(교황조직도)처럼 VIP 되고자 전도하는
아 맞다 갑자기 생각이 안나더니 이제야 나네요 여호와증인

자 이런식으로 인간의 숙제로써 백성 되기가 아닌
주님의 숙제로써 하나님 백성 삼기는
정작 교회를 부수는 식입니다.
움직이지 못하는 성전을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김없이 부수는 것이다 말이죠

감히 얼마나 주님의 약속을 무시했으면
나는 장로교단에서 몸 담게 된 것을 하나님께 너무 너무 감사하고
저 이단 교단에 몸 담지 않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다 라고

출생 자체가
시작 자체가
장로교단이라서 다행 이다 ~~~~
저 감리교도 또 뭐있더라 침례교도
이단은 더더욱 아니고
순복음도 아닌 
장로교단에서 시작 했다는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지
저 침례교 감리교 순복음 여기서 시작했으면 어쩔뻔했냐 라고
아 고신도 있다 참 ㅋㅋㅋ

아니 심판의 불 앞에서 정통 교단이 과연 정금같이 나올까요?
여호와의 불을 얼마나 무시했으면
눈에 보이는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

제가 이렇게 말하니가 초교파?
이것도 한참 유행했죠
돈 앞에서는 그 거짓도 다 벗겨집니다.

오늘 본문 보세요
반드시 멸망시키겠다 라는 겁니다.
무엇을? 눈에 보이는 것들을
그런것들을 쫓고 있는 자들을 다 멸망 시키겠다고 말이죠

이스라엘의 우상문제를 반드시 심판하시겠다 라는 것이 바로
주님의 숙제이거든요
그러니 심판 만이 우리를 구원하는 수치를 물러가게 하는 수치를 가려줌
눈물을 씻겨줌이다 말이죠

계시록에서의 구원은 더 잘 되는 의미가 아니라
눈물을 흘린 그 회개에
응답해 긍휼히 여겨주시는
그 심판 속에서의 구원인
눈물을 씻겨줌의 의미가 구원이다 말이죠

그런데 울지 않는데
눈물을 흘리지 않는데
우는 자가 없는데
회개치 않는데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이 아닌데
어떻게 눈물을 씻겨주냐 말이죠

잃어버림을 당하지 않는데 어떻게 되찾는 것이 있냐 말이죠
교회란 곧 신부란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음인데
누락의 총화(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인데

(마 15:24,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눅 15:7, 개역)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수치를 가려줌인데
죽였다가 다시 살려주심인데

그러니 전적으로 주님의 숙제로써만 백성 됨인데
이것이 죄인을 부르러 오심인데

인간의 숙제는 의인이 되어서 백성이 되겠다 밖에 모르니

이 숙제와 맞물려 있는 것이
나는 절대로 망하면 안된다 라는 것이다 말이죠
죄인 되면 안된다
막살면 안된다
반드시 잘 살아야 한다

잘 
잘 

아니 그렇게 되면 누가 주님의 숙제 곧 이스라엘 심판을 기쁜소식 곧 복음으로 여기겠냐 말이죠

하나님의 저주인 십자가를 영광으로 여기겠냐 말이죠
우리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인데

이사야가 발가벗고 3년동안 돌아다님으로써
벌거벗은 애굽을 의지하지 말라 애굽으로 수치를 가리지 말라 라고
거울 비추듯이 보여주심인
십자가가 아니였다면 발가벗은 우리의 모습을 못 봤을텐데
비로소 발가벗은 모습
심판 받아 마땅한 자임을 보고
주여 저 발가벗었습니다 주님의 피로 가려주세요 라고
의사를 부를꺼 아니겠냐 말이죠
저 환자입니다 고쳐주세요 라고 말이죠
(과연 거짓선지자의 죄악은 이런 십자가를 밝히 보여줄수 있을까요?
백성들의 죄악을 거울 비춰주듯이 할까요?
자나 깨나 돈 밖에 몰라요
이땡희 교주가 이번 코로나 사태가 신땡지를 교세 확장을 저지하려는 마귀의 짓 이라고 했는데
결국 돈 놀이 포기 못 하겠다 라는 겁니다.)

누가 고아 과부 나그네가 되겠냐 말이죠
하나님의 백성이 바로 고아 과부 나그네 이거든요

그런데 다들 자기 스스로 백성 되기라는 숙제를 할려고 하니까
고아 과부 나그네 안 될려고 안되고자
계집종 하갈과 이스마엘이 이삭을 괴롭히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반드시 맞 물려서 한 세트 곧 두 언약을 구성하도록 되어 있다 말이죠

(갈 4:24, 개역)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갈 4:19, 개역)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갈 4:20, 개역)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음성을 변하려 함은 너희를 대하여 의심이 있음이라』
(갈 4:21, 개역)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갈 4:22, 개역) 『기록된 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갈 4:23, 개역)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갈 4:24, 개역)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갈 4:25, 개역)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 노릇 하고』
(갈 4:26, 개역)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 4:27, 개역) 『기록된 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갈 4:28, 개역)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갈 4:29, 개역)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갈 4:30, 개역)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갈 4:31, 개역)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라 라고 했듯이

즉 주님이 누구인지 여전히 모른다는 겁니다.
자기가 조작한 예수를 만들어 내는 자기투사 투영 투시로써
자기를 닮은 예수인거죠

예수님을 닮은 자가 아닌

닮은 구석이 없어요 오히려 더 환자
더 죄인일 뿐인

이 단절을 실감하게 되는데 말이죠
이 단절의 간극을 벌리시는 분이 바로
새 마음 새 신을 부어주신다고 하는
그 성령이다는 겁니다.
단절을 실감 실감 실감하기에

화로다 화로다 나여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라고 외칠 수밖에 없는
상한심령이 되니 말이죠

이 잃어버림이 주님의 숙제로써 펼쳐지는데

(갈 4:19, 개역)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하나님 백성은
그리스도의 형상은 예수님이 직접 창조하시는 예수님의 작업인데

인간의 숙제는
자기 스스로 하나님 백성이 되고자 하기 때문에
때려죽어도 잃어버림
곧 고아 과부 나그네가 안 되는 방향
무시 받지 않는 방향으로 가다 보니
반드시 저 미혹하는 영을 받은 거짓선지자와 만나도록 되어 있다 라는 겁니다.

이로써 주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야곱만 창세전에 사랑 받기로 작정됨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형 에서 또한 창세전에 미움 받기로 작정된 그 작정하심이 이루어지는 것이

십자가에 다 이루심이다는 거죠

그러니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너희를 꾀냐 라는

(갈 3:1, 개역)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꾀는 속이는 자들 곧 선지자의 꾀 까지 언급이 되는 것이
새언약의 완성입니다.

이것을 모르면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말이죠
베드로는 예수님의 질문인
너희는 나를 누구라 고 생각하느냐 라는 질문에

주는 그리스도 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십니다 라고
정답을 외쳤다 말이죠
그런데 이것은 성령이 알려줘서 성령으로 대답을 했다 말이죠
즉 베드로가 정답을 외치도록 하신 것은
예수님의 베드로를 교회만들기였지
베드로가 자기 스스로 교회 되기 신부되기가 아니였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성령의 전 곧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 만드신 예수님의 선포가 먼저 떳시에
반대로 베드로는 사람의 일 사단의 일이 뭔가를 겪기 위해서
단절 차단을 격어야 하는 겁니다.
이것이 거룩이다 말이죠

성화론자들이 말하는 거룩과 정반대죠 그들의 거룩은 오히려 누룩인데
연합 동질성 합일성 막살면 안된다 이건데

예수님의 거룩 입히심은 단절 구별 구분 차단인 간극벌리기 이다 말이죠
즉 니 쪽에서 베드로 쪽에서 하는 숙제를 차단 시키는 겁니다.
그러니 방금 정답을 외쳐놓고
손에 지우개를 쥐고서도
지우개 어디 있냐 라고 알려줘도 손에 쥔거 이거 지우개 아니다 라고
이거 구원 아니다 라고 냅따 버리듯이
방금 정답 외쳐놓고
정답의 의미를 몰라서 누락을 격어야
즉 방금 출애굽 해 놓고서 
애굽으로부터 구원 받고서도
그 유월절 어린양의 피 의미를 다시 알리고자
광야교회 곧 목이 곧은 백성을 꺽는
주님의 숙제를 무시하다 보니
광야에서 잃어버림 속에서의 구원을 몰라서

절대로 그런 일 곧 예수님께서 많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로부터 고난 받아야 한다 라고
방금 베드로의 고백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져야 한다고 했는데
그런 일이 벌어지면 안된다 라고
아니 그럼 그 고백은 뭐냐 말이죠

그러니 이것이 뭔지 모르는 겁니다.
그래서 광야에서 다 걸러내듯이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받은 자는 적듯이
바로 다음글 마태복음 16장과 그 다음 글인 이사야 
슬프다 네가 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였도다 (사 48,16-22)에서처럼
남은자만 돌아온다 라고 그 나머지는 안 돌아올려고 완악한 모습을 펼치더라 라는 겁니다.
하나님 께서 심지 않은 것은 다 뽑히듯이

(마 16:13, 개역)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마 16:14, 개역) 『가로되 더러는 침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마 16:15, 개역)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 16:16, 개역)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 16:17,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마 16:18, 개역)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 16:19, 개역)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마 16:20, 개역) 『이에 제자들을 경계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마 16:21, 개역)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마 16:22, 개역)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마 16:23, 개역)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마 16:24, 개역)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 16:25, 개역)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마 16:26, 개역)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마 16:27, 개역)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마 16:28, 개역)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약속을 믿지 못하고
광야에서 샘이 넘친다는 새언약을 믿지 못하고
왜 바벨론을 애굽탈출하듯이 바벨론 탈출을 해서
왜 저 광야가 되어버린 예루살렘에 왜 다시 들어가느냐
남은자만 돌아가면 됐지
왜 나 이스라엘이 돌아가야 하냐 라고

1차 포로 귀환때 5만명
2차 포로 귀환 5천 (장정만 한 2천명 더 구체적으로 1775 천칠백칠십오명)
3차는 기록 없음


마치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하실때에 아브라함이
의인 50에서 출발해서 5 부족하면 45 다시 40 다시 30 다시 20 다시 10

(창 18:22, 개역)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창 18:23, 개역) 『가까이 나아가 가로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창 18:24, 개역) 『그 성중에 의인 오십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치 아니하시리이까』
(창 18:25, 개역)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불가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하심도 불가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창 18:26, 개역)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만일 소돔 성중에서 의인 오십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경을 용서하리라』

나중에는 단 한명도 없다 라는 것을 아브라함이 알고 더 이상 안 묻잖아요
즉 이 말은 인간 쪽에서 의인이 될 방법
하나님의 백성이 될 방법이 없다 라는 겁니다.

오로지 주님 쪽에서의 숙제
곧 아브라함 너를 믿음의 조상 만들고자
진짜 죽음 곧 젊은이가 환상을 보고 늙은이가 꿈을 꾸는
백세 넘어서 얻은 아들을 이 젊은이를 죽이심으로써
늙은이가 광야가 샘이 쏫아나는

이스라엘의 의미
참생명의 의미를
참 하나님의 백성의 의미를
주님 쪽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시고자 수고 하시겠다 라고
그것을 믿도록 만들어 버리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여기에 이스마엘은 왜 안되는 것 까지
아브라함이 믿어야 할 판국에 놓여지는
하나님 자신을 유업으로 주시고자
자신의 생명을 직접 주시고자
자기 아들 독생자를 아끼지 않고 내어주심을 보여주시고자
이삭이 희생제물이 되는
그 눈물을 흘리심을 격도록 하심으로써
눈물을 씻겨주심이다 말이죠

그러니 지금 이스라엘이 자기 개인 구원 챙기기라는 우상숭배에 빠지는 와중에도
주님의 약속은
아브라함에게 펼치셨던 믿음의 조상 만들기라는 주님의 숙제처럼
아브라함 개인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이스라엘 집단 속에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써 출발했듯이
그 작업을 지금 또 출애굽 하시듯
출바벨론 하시면서

이 우상 문제
이 죽음 문제
이 죄악 곧 선지자의 죄악문제
백성들의 우상문제와 우상을 쫓는 선지자의 문제까지
다 염두를 하시면서
자신의 새언약을 반드시 이루시고자 이런 일들을 펼치심에 있어서
거짓선지자가 소환이 되어서
왜 멸망 당하는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시는 겁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말이죠
코로나 19 바이러스 사태를 통해서도 마찬가지로 가르치시는
이 끝까지 섬기심

반드시 여호와 하나님이 직접 내 백성을 자기 손으로
인간의 손에 맡기지 않고 직접 만드심으로써
너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겠다 라고 이 새언약을 이루시는 겁니다.

내가 하나님을 대상물로 삼는 믿음이 아니라
내가 믿는게 믿음이 아니고

도리어 하나님의 믿음의 대상물이 되어버린 것이 믿음의 주가 펼치시는 새 일입니다.
이미 다 이루어 놓았다 라고 말이죠

(겔 14:11, 개역) 『이는 이스라엘 족속으로 다시는 미혹하여 나를 떠나지 않게 하며 다시는 모든 범죄함으로 스스로 더럽히지 않게 하여 그들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려 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어떻게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는지를 우리를 목격하고 격게 되는
이 끝까지 섬기심 의 대상물이 된 겁니다.
이것이 기쁜소식입니다.
아들에게만 있는 징계로써
사생아로 내어버려 두시지 않는
십자가의 피 용서 말이죠

반드시 우리의 곧은 목을 꺽으시면서 말이죠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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