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마 21, 6-11)
겸손한 주께서 나귀새끼를 쓰시겠다 하라 (마 21, 1- 5)
마태복음 2018 2020. 8. 15. 08:11
18-97 겸손한 주께서 나귀새끼를 쓰시겠다 하라 (마 21, 1- 5)
(마 21:6, 개역) 『제자들이 가서 예수의 명하신대로 하여』
(마 21:7, 개역)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마 21:8, 개역) 『무리의 대부분은 그 겉옷을 길에 펴며 다른 이는 나무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마 21:9, 개역)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질러 가로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마 21:10, 개역)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가로되 이는 누구뇨 하거늘』
(마 21:11, 개역) 『무리가 가로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마 21:6, 새번역) 『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대로,』
(마 21:7, 새번역) 『어미 나귀와 새끼 나귀를 끌어다가, 그 위에 겉옷을 얹으니, 예수께서 올라타셨다.』
(마 21:8, 새번역) 『큰 무리가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다가 폈으며, 다른 사람들은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길에 깔았다.』
(마 21:9, 새번역) 『그리고 앞에 서서 가는 무리와 뒤따라오는 무리가 외쳤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께! 복되시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더없이 높은 곳에서 호산나!" / ㉣시 118:26 ㉤'구하여 주십시오!'를 뜻하는 히브리어였으나 찬양의 감탄으로 사용됨』
(마 21:10, 새번역)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을 때에, 온 도시가 들떠서 물었다. "이 사람이 누구냐?"』
(마 21:11, 새번역) 『사람들은 그가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신 예언자 예수라고 말하였다.』
(시 118:26, 개역)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
(시 118:26, 새번역) 『주님의 이름으로 오는 이에게는 복이 있다. 주님의 집에서 우리가 너희를 축복하였다.』
(마 21:9, 새번역) 『그리고 앞에 서서 가는 무리와 뒤따라오는 무리가 외쳤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께! 복되시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더없이 높은 곳에서 호산나!" / ㉣시 118:26 ㉤'구하여 주십시오!'를 뜻하는 히브리어였으나 찬양의 감탄으로 사용됨』
(마 23:39, 새번역)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다!' 하고 말할 그 때까지, 너희는 나를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다." / ㉧시 118:26』
(눅 13:35, 새번역) 『보아라, 너희의 집은 버림을 받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말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다' 할 그 때가 오기까지, 너희는 나를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다." / ㉢시 118:26』
(눅 19:38, 새번역) 『㉡"복되시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임금님! 하늘에는 평화, 지극히 높은 곳에는 영광!" / ㉡시 118:26』
(막 11:9, 새번역) 『그리고 앞에 서서 가는 사람들과 뒤따르는 사람들이 외쳤다. ㉠"㉡호산나!" "복되시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 ㉠시 118:25; 26 ㉡'구하여 주십시오!'라는 뜻을 지닌 히브리어. 여기에는 찬양의 감탄으로 사용됨』
(요 12:13, 새번역)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들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서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에게 복이 있기를! 이스라엘의 왕에게 복이 있기를!" 하고 외쳤다. / ㉢'구원하여 주십시오!' 라는 뜻을 지닌 말로서 찬양에서 쓰임 ㉣시 118:25; 26』
(마 21:9, 공동) 『그리고 앞뒤에서 따르는 사람들이 모두 환성을 올렸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받으소서. 지극히 높은 하늘에서도 호산나!" / ㉠시편 118:25-26.』
(시 118:25, 개역)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케 하소서』
(시 118:25, 새번역) 『주님, 간구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여 주십시오. 주님, 간구합니다. 우리를 형통하게 해주십시오.』
호산나 가 무슨 말인가? 무슨 뜻인가? 싶어서 구절을 살펴 봤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제발 살려주세요 라는 외침입니다.
간구 구하옵나니 구원해 주소서 라고 말이죠
제발 불쌍히 여겨주소서 나는 죄인 이로소이다 라는 뜻입니다.
즉 의사 앞에서 자신은 환자로써 외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제발 의사 선생님 저의 병을 고쳐주소서 라고 말이죠
그런데 사실은 바로 이 외침을 들으시고자
애굽왕 바로왕을 강퍅케 하셨듯이
주님은 우리를 의도적으로 죄인 만드시고자
광야에서 물 없는 곳 양식 없는 곳으롱 인도하시는 겁니다.
왜? 원망 안 하고는 못 배기는 죄인 만드시고자 말이죠
이 인간의 본성인 밑바닥이 들추어지지 않으면
또 엉터리 해석을 합니다.
인간은 해석할 권한이 없는데 선악을 알다 보니
선 아니면 악으로 강박증에서 못 벗어나다 보니
늘 선택의 갈림길에 놓여졌다 말이죠
그냥 포기 하면 되는데 말이죠
포기 조차도 선택으로 보니까 말이죠
제가 고3때 딱 1년만 주일학교 교사 반사에게 성경을 학생회때 배웠는데
자꾸 원망하지 말래요 하나님께
아니 원망하도록 만들어서 그 본성을 드러냄으로써 구원사건을 펼치신다니깐요
중고등부 선생이 목이 곧은 백성이다 보니 원망을 한다 라고 하는데
정작 성경을 보세요
원망 안하고 배기나?
마치 이것은 베드로에게 세 번 부인하지 말아라 라고 하는 것과 같다 말이죠
그런데 오히려 예수님께서 베드로 넌 닭 울기전에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다 라고 하신다 말이죠
그런데 베드로는 오히려 목이 곧은 백성이라서
원망 안할려고
세 번 부인 안할려고 한다 말이죠
다들 거꾸로 가르쳐 주더라 말이죠
당연히 목사들은 두말할 것도 없겠죠
목이 부드러운 백성은
오늘 나오는 호산나를 안 외쳐요
호산나 자체가 비유 비밀이거든요
그런데 이 비밀의 기능이 빠져 버리면
상대방이 화를 내지 않는다 말이죠
왜? 다들 알아 먹으니까
왜 화를 내겠냐 말이죠
아이구 우리 어린이들 호산나 외쳤 ~~쪘~~쪗~~어용
그래 예수님이 나귀새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 하셔서 이렇게 호산나 찬양하는 군요 라고
아무도 반발을 하지 않아요
비유 알아먹지 못하는 말과 행동이 아니니까 말이죠
성경은 모든 것이 비밀이다 말이죠 비유입니다.
왜 나귀 새끼를 타십니까? 이것이 과연 겸손 맞기는 맞나요
동물학대 아닙니까
동물단체들 고발하고 난리 날 껍니다
나귀 새끼 타는 것과 겸손은 안 맞아요
다 큰 성인 남자가 어떻게 새끼 나귀를 타나요?
전혀 이해가 아니 되어야 합니다.
비밀이니까 도저히 풀 수가 없어야 하거든요
누가 정상일까요?
이 평화스러운 예루살렘이라는 도시에
졸지에 갑자기 길가던 사람이
플래시몹 하듯이 갑자기 자신들의 겉옷을 깔고
종려나무를 베어서 바닥에 펼치고
크게 외쳐라 아끼지 말고 나팔소리 같이 외쳐라 호산나 라고 죄를 고하더라 말이죠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라고 외치더라 말이죠
플래시몹은 유튜브에 검색하면
이들은 의도적으로 배치가 되었어요
그러나 아무도 화를 안 내어요
즉 비밀도 아니고
새것(예수님의 죽음)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나오는 이 호산나 사건은 비밀입니다
갑자기 주님께서 직접 마련하신 이벤트 이다 말이죠
나귀새끼를 주께서 쓰시겠다 하라 라고 하면
여기에 해석이나 토를 다는 자들이 없을 정도로
즉흥적이다 라는 겁니다.
왜 이런 즉각적이고 급하디 급한 호산나 라는 비밀 사건이 벌어져야만 할까요?
주의 이름이 펼치는 구원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구원사건에 있어서
애굽의 역할을 하는 자들이 강퍅함을 드러내는
인간의 본성이 드러나야 하고
호산나 라는 비밀의 찬양은
바로 예수님의 죽음
앞의 글 선지자가 피 흘려 죽는
성전의 기능을 통해서
죄를 씻겨짐을 당하는 이 구원사건에
주여 구원해 주소서
제발 죽어주소서
우리를 이 죄악의 도성에서 건져주소서
우리의 죄악을 이 붉은 죄를 흰 눈과 같이 희개 해 주소서 라고
갑자기 찬양자들이 새롭게 형성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 본인이 성전의 기능을 함으로써
친히 제물이 되시어서
새이스라엘을 구성하는 겁니다
어떤 새이스라엘?
우리는 예수님을 죽일 정도로 어두운 눈인 소경이요 죄인의 괴수인 원수이지만
고로 심판받아 마땅한 죄인이지만
이런 원수마저도 용서하시고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이 주님의 희생만 곧
이 피 흘리심만으로 거룩하게 되었다는 것에
크게 소리 안 외치고는 못 배기는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양받으소서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라고 외치는 겁니다.
이 십자가의 피 흘리심으로만 인해 새롭게 형성이 된 이스라엘 말이죠
그러니 이들은 죽은자 인 겁니다.
죽은 자 에게만 산 자를 찬양할 수 있거든요
누가 자신을 죽은자로 여겨서
산 자를 크게 크게 외치겠냐 말이죠
주여 저 살인자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제발 고쳐주소서
당신 만이 산 자요
당신 만이 나의 의사입니다 라고 외치겠냐 말이죠
바로 이것이 호산나의 의미이거든요
시편 그대로 나옵니다.
(시 118:25, 개역)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케 하소서』
(시 118:26, 개역)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
(시 118:27, 개역)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라 우리에게 비취셨으니 줄로 희생을 제단 뿔에 맬지어다』
(시 118:28, 개역)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리이다』
(시 118:29, 개역)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속된 말로 물에 빠진 놈이 구해 달라고 하지
물에 빠지지 않은 자의 입에서 나오는 구원은 그저 종교오락일 뿐입니다
예수님을 절대로 세 번 부인하지 않겠다
오히려 십자가에 끝까지 따라가서 죽겠다 라는
배불러 터진 멋들어진 구원을 다짐하는 자들에게는 구원은 종교오락 마약일 뿐이다 말이죠
세 번 부인하게 되니까 비로소 이 십자가가 현실이 되는 겁니다.
안그러면 그저 선악이라는 죄로만 판단하는
그 속임수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겁니다.
이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냐 말이죠
이 십자가의 피 흘리심이라는 현실을 보게 하실려고
우리를 물 없는 곳 양식 없는 곳 원망할 만한 곳으로
원망 안하고는 못배기는
세 번 부인 안하고는 못배기는 곳으로 인도하시는 겁니다.
예루살렘 도성이 그래서 살인자의 도성이 되어야만 하고
그 속에 살면서 왜 예수님이 이 예루살렘 성에서 죽으셔야만 하셨고
왜 예루살렘성전을 허물어 지고
삼일 만에 다시 지은 새성전이 세워져야만 하는가 라는
이 비밀 속에 집어 넣는지를
우리는 사건을 통해서
성전의 기능을 보게 되는 겁니다.
사건은 예수님의 죽음 사건 만을 말합니다 곧 십자가의 피 흘리심 뿐입니다
다른 사건은 사건이 아닙니다
바로 이 묵시(말씀)만을 주님은 현실로 보여주시는 겁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 중심이라서 자기가 우선시 되는
자기와 자기 주변의 일상만 현실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갑자기 역사를 찢고
시공간을 찢고 우발적으로 발생된 이 호산나 사건이
얼마나 해석할수 없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기에
어서 어서 조용히 시켜라 라고 반발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누가 저를 구해주소서 라고 나오겠냐 말이죠
환자만이
원수만이
죄인만이 다윗의 자손이라고 외치지
그렇지 않은 자는 이 상황을 자기들의 일상을 깨뜨리는 짜증나게 할 뿐이다 말이죠
다윗의 자손은 이들에게 있어서
다윗 왕이 원수가 아닌 왕으로써 외친 이름이다 라고 보기에
왕 같지도 않은 비천하게 시리
나귀새끼나 타고서
이렇게 소란을 피우는 자가 무슨 다윗의 자손이냐 라고 보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즉 호산나 라고 외치는 자들도 우발적으로 생겨나야만 하듯이(준비가 된 것이 아닌 갑자기 소성 해야 하듯)
역시나 반발하는 자들도 우방적으로 나타나서 이런 짜증나는
왕 행차 꼬라지 하고는
다들 무시하고 소란피우지 말라 라고 나온다 말이죠
이런 사건이 또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바로 생명이요 길이요 부활이다 라고
생명도 비유요
길도 비유요
부활도 비유 인 비밀이거든요
여기서 비밀은 도플갱어로 쌍둥이로써 옹고집전의 한 인물이어야 합니다.
부활은 어떤 상황이 아닙니다
그런 부활은 사람들이 말귀를 알아먹어요
소통이 되어요
그러나 한 인물 자체가 부활 이라고 해 버리면
무슨 소리인줄 모르는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수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인물 자체가 못 듣도록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거든요
그래서 마르다 마리아에게 자신을 그렇게 말하니까
다들 부활 교리
생명 교리
길(진리) 교리로만 생각하지
이게 소통이 되지
한 인물 자체가 부활 진리 생명 길이 되어버리면
무슨 소리인줄 모르는 겁니다.
그래서 일부러 오빠 나사로가 죽고 난 뒤에 가는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활 교리는 다들 믿지만
한 인물 자체가 부활이다 라는 것에 반발하는 자들이 새롭게 형성이 됩니다.
나는 부활이요 라고 부활과 나를 동일시 하는 것에 대한 반발은
마르다 마리아 뿐만 아니라
동네 사람들 모두가 다 해당된다 말이죠
아무리 부활 교리로 자신을 도배해도 소용이 없을 정도이다 말이죠
즉 부활을 거부하는 자로 새롭게 만들어 버린다는 겁니다 누가? 한 인물이!
왜? 부활 이니까
이런 비밀로써의 부활은 다들 거부해요
모든 종교가 부활이 있다 말이죠
그런 부활은 말귀를 다 알아먹어요
무슨 말인지~~!! 말이죠
즉 이 말은 여기서 중요한 것이 뭔고 하니
내가 부활이다 라고 말하는 한 인물이 동시에 너는 부활이 아니야 라고 규정을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부활이다 라는 것이 성립이 된다 말이죠
예를 들어서 한 인물 자체가 본다 못본다
즉 소경 아니다 와 소경 맞다를 한 인물에 의해서 새롭게 규정이 되어버리는 사건 곧 비유가 나타나는 겁니다.
누가 봐도 날 때부터 소경된 실로암 소경은 아예 눈을 뜨도록 만들어 버리고
여기까지는 다들 성경을 봐서 안다 말이죠
문제는 본다고 하는 자들을 졸지에 새롭게 소경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면 그들이 진짜로 소경이 되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안그래요 우리들처럼 잘 보고 있어요
소경 안되었거든요
그런데 예수님은 본다는 너희들을 소경으로 새롭게 만들어 버렸다 라고 선언해 버리는 겁니다.
이런 억지가 어디 있습니까?
마치 나귀 새끼 타는 거랑 겸손이랑 무슨 상관이 있는지
그런데 문제는 또 있습니다 실로암 소경에게서 만큼은 예수님이 졸지에 기준이 되었다 말이죠
왜 보니까
안 그러면 누군가 자신의 못 봄을 해결했어야지요
오늘날로 눈을 기증 받아서 그것도 확률이 100% 완벽할 수 없거든요
가만 갈수록 높아는 지겠죠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이 눈을 만드는 자로 선언해 버려요
그것 뿐이면 참좋겠는데
눈을 만드시니까 눈을 없애는 것도 주님이시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둘다 믿어야 하는데 (여기서 믿어야 한다는 것은 종교적인 용어 보다
사건으로써 침략 안 믿어지는 말도 안되는 것을 인정함에 있어서 그것을 찢는 사건으로써 말이죠)
우리는 자꾸 선별을 해요
눈을 뜨게 하는 것은 믿어도
눈 뜬 자를 못 보도록 하는 것은 안 믿어요
자기를 우선시 하다 보니
자꾸 선별 해요
분리한 것 손해 보는 것은 뒤로 하고
자기에게 유익하다 싶으면 얼른 선택하니까 말이죠
이것이 어쩌면 인간의 믿음입니다 살인의지 인 거죠
믿음 조차도 비밀입니다.
인간의 믿음은 유리한 것만 골라요
그러니 애초부터 가짜 믿음입니다.
주님이 주시지 않은 거다 말이죠
선물로써 주어진 낯선 것만이 믿음입니다.
내가 믿는 것은 내 위주일 뿐이다는 거죠
아무튼 그렇게 오빠 나사로 살려내라 라고
멱살 잡고 모든 사람들이 따질때에
그래서 일부러 3일 뒤에 왔거든요
원망 안 하고는 못배기도록 해야
자신의 본성들이 마구 마귀 쏟아져 나오는 겁니다.
인간의 본성으로써 비꼬고 비아냥으로써
아이구 참으로 일찍도 납시었네
아니 사랑했다메? 사랑을 했다
사랑을 했다 우리가 만나 지우지 못할 추억이 됐다
추억을 개뿔 이렇게 늦게 오는 놈이 무슨 사랑을 했다 라고 개뻥을 치고 다녔냐
주님은 여기서 분하고 억울하게 여기시는게 아니라
민망히 여기시는 겁니다
아이고 불쌍해라
불쌍해
나사로가 죽은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 동네 사람들 다 죽은 겁니다.
죽은 티를 팍팍 내고 있다 말이죠
그 정도로 내가 곧 생명이다 라는 이 비밀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이
예수님이 생명 그 자체인 한 인물이기에
나머지 인간은 생명도 아니면서 생명이라고 우기면서
죽은 나사로를 변호하는냥 대충 심상히 대충 변호하더라 말이죠
그러니 불쌍하게 보시는 겁니다.
아이고 민망해라
내가 쪽팔린다 쪽팔려
그래 너희들 다 죽은 좀비처럼 달려드는 구나
그래 그래 제발 제발 죽지 말고
누구처럼 또 바위에 올라가 죽지말고
제발 살아라 라고
살려내버리니까
부활교리고 뭐고 다 깨지는 겁니다.
(요 11:25,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 11:33, 개역) 『예수께서 그의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의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사』
(요 11:34, 개역) 『가라사대 그를 어디 두었느냐 가로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요 11:35, 개역)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요 11:36, 개역)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어떻게 사랑하였는가 하며』
(요 11:37, 개역)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비꼬죠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나는(예수님) 부활이다 라는 것을 거부하는 겁니다.
부활 꼬라지 참 좋네
나는 부활이다 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
그런 단절된 소리 하지 말고
그냥 말이 되는 부활교리나 믿어 라고 나오는 겁니다.
생명나무를 제시하시는 예수님 앞에서
선악나무로 거부하는 겁니다. 생명나무를 못 쳐다보도록 말이죠
(요 11:40,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요 11:41, 개역)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요 11:42, 개역)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 11:43, 개역)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요 11:44, 개역)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요 11:45, 개역)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의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저를 믿었으나』
(요 11:46, 개역) 『그 중에 어떤 자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의 하신 일을 고하니라』
(요 11:47, 개역)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가로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요 11:48, 개역) 『만일 저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저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졸지에 바리새인에게 위기가 닥쳐 버리는 겁니다.
부활이 차단 되어버릴까봐
이 예루살렘 땅을 로마에게 빼앗길까봐
졸지에 새롭게 주어지는 믿음이 믿겨지게 될까봐 말이죠
예루살렘 땅 빼앗기면 구원 못 받거든요
바로 이 상황까지
한 인물로써의 나는 부활이다 라는 비밀 비유로써의 부활이 새롭게 만드러 내어야 하는 겁니다
선악으로만 따지는 자를
부활이 차단 되어서 부활교리만을 우선시 하는 자들을 새롭게 만들어 내는 것도 부활이 하는 기능입니다.
자 그러면 오늘 본문 호산나의 기능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유이니까 말이죠
못 알아먹도록 함으로써
호산나 곧 주여 구원해 주소서 라고 구한다 안구한다
평소에 아무리 기도 잘해도 소용이 없어요
비유로써의 기도인데
이방인의 중언부언과 다를바 없는 기도였기에
악에서 구하소서를 모르는 겁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온통 주변이 악인줄 모르고
선악으로 세팅 구조를 했던 겁니다
유대 사회를 보세요
모든 시설물
모든 정신
학문 모두다 종교적으로 도배를 했다 말이죠
온통 다 구원의 장치물로 말이죠
그런데 이것이 우상숭배나 마찬가지 이더라 말이죠
구원은커녕 그것이 도리어 높은자 낮은자로 구분짖는 깡패 갑질로 나오지
죽은자를 살리는 기능은 하나도 없더라 말이죠
그게 바로 예루살렘 성전인 강도의 소굴
살인자의 도성이다 라고
오히려 거룩으로 도배된 곳을
주님 혼자만은 살인자의 도성으로 보시는 겁니다.
그럼 호산나 라는 비유 조차도
우리를 하나님의 원수로 까발리는 기능이지
나 이렇게 찬양 잘 하니까 건강한 의인 맞지요 라는 사고방식이
도리어 호산나를 거부하는 모습으로 나올줄
입술로는 찬양하나 속으로는 저주하는 자 로
새롭게 만들어 들추어낼줄 누가 알았겠냐 말이죠
이 얼마나 창작적입니까?
나는 부활이다 라는 비밀이
졸지에 로마로부터 예루살렘 땅을 빼앗길 것이다 라는 결과로 나올 것이다 라는 발상이
이 얼마나 똑똑하기 짝이 없는 계산이냐 말이죠
그 동안 자신들은 단절이 아닌
비밀이 아닌
비유가 아닌
우상으로 소통해 왔는데
졸지에 예수님의 등장으로
와르르 무너지다 못해(이미 무너진 거죠 성전은 허물어 진 겁니다.)
예루살렘 땅을 로마에게 빼앗길 것이다 라는 사고방식은
로마와 똑같은 사고방식이 아니고 뭐냐 말이죠
로마가 그런 생각을 하지 누가 그런 생각을 하겠습니까
결국 누가 로마 입니까?
바리새인 본인들이 로마 로써 그 동안 예루살렘을 빼앗아 강도의 노릇
살인자로써 피 흘리게끔 했다는 증거가 밝혀지는 겁니다.
이것이 호산나가 들추어내는 비유인 겁니다.
단순히 새것(하나님의 죽음인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이 아니라
기존의 모든 것을 새 것의 등장으로 인해
졸지에 모조리 다 헌 것
그래서 심판 받아 마땅한 사라지고 삭제되고
없어져야 할 것으로 규정이 된다는 점을
바리새인 본인들이 드러내고 있더라 말이죠
로마의 생각을 미리 앞당겨서 본인들이 로마처럼 그 동안 군림했던 겁니다.
그래놓고 로마 앞잡이 라고 세리를 공격하고 있으니
누워서 침 뱉기 한 거죠
그 정도로 우리는 어두운 눈 맞습니다
졸지에 예수님에 의해서 우리가 본다고 한 모든 것이
소경으로 새롭게 들추어지는 겁니다.
주의 이름의 등장은 곧 전쟁입니다.
이 전쟁에 의해서 우리는 죽어야 함이 드러나는 겁니다.
그렇게 죽고 잃어버린 자에게만 보이는 주의 이름입니다.
그 동안 인간의 이름
자기의 이름으로만 살아왔꼬 판단했던 것 자체가
다 죽음이였다 말이죠
예수님 본인이 자신을 나는 생명이다 라고 했을때에
우리는 그럼 나는 죽음입니다 라고 해야 할 판국에 놓여진 겁니다.
그래서 고쳐달라고 외친 자들에게서 나오는
큰소리
크게 외쳐라 아끼지 말고 나팔 같이 외쳐라 죄를 고하라
다윗의 자손이여 제발 고쳐주소서 나는 죽음일 뿐이고
에수님은 생명일 뿐이고
나는 소경이고
주님은 소경을 눈 뜨게도 하시고
본다는 자를 소경으로 만드시는
심판주 이십니다 라고 말이죠
나의 죄악을 심판하시는 심판 주를 찬양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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