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05 자기 아들을 위해 혼인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은 천국비유 (마 22, 1-14)
주로 말미암은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머릿돌 된 사건 (마 21,42-46)
마태복음 2018 2020. 10. 4. 10:17
18-104 주로 말미암아 된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 기이함 (마 21,42-46)
(마 22: 1-14, 개역)
1,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가라사대』
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3,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4,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가로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5, 『저희가 돌아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차로 가고』
6,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니』
7,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8,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9,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
10,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
11,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12,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마 22:1, 새번역) 『예수께서 다시 여러 가지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마 22:2, 새번역) 『"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마 22:3, 새번역) 『임금이 자기 종들을 보내서, 초대받은 사람들을 잔치에 불러오게 하였는데,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
(마 22:4, 새번역) 『그래서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렇게 말하였다. '초대받은 사람들에게로 가서, 음식을 다 차리고, 황소와 살진 짐승을 잡아서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 어서 잔치에 오시라고 하여라.'』
(마 22:5, 새번역) 『그런데 초대받은 사람들은, 그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저마다 제 갈 곳으로 떠나갔다.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가고, 한 사람은 장사하러 갔다.』
(마 22:6, 새번역)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의 종들을 붙잡아서, 모욕하고 죽였다.』
(마 22:7, 새번역) 『임금은 노해서, 자기 군대를 보내서 그 살인자들을 죽이고, 그들의 도시를 불살라 버렸다.』
(마 22:8, 새번역) 『그리고 자기 종들에게 말하였다.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사람들은 이것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
(마 22:9, 새번역) 『그러니 너희는 네 거리로 나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청해 오너라.'』
(마 22:10, 새번역) 『종들은 큰길로 나가서,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이나, 만나는 대로 다 데려왔다. 그래서 혼인 잔치 자리는 손님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마 22:11, 새번역) 『임금이 손님들을 만나러 들어갔다가, 거기에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한 명 있는 것을 보고 그에게 묻기를,』
(마 22:12, 새번역) 『'이 사람아, 그대는 혼인 예복을 입지 않았는데, 어떻게 여기에 들어왔는가?' 하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마 22:13, 새번역) 『그 때에 임금이 종들에게 분부하였다. '이 사람의 손발을 묶어서, 바깥 어두운 데로 내던져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이다.'』
(마 22:14, 새번역) 『부름받은 사람은 많으나, 뽑힌 사람은 적다."』
앞의 글 에스겔의 녹슨 가마솥 비유에서도 언급했듯이
다시 강조해서 반복해 보면
너희가 어두움 뿐인 이유는 하나님을 배반하였기 때문 (사 59, 9-18)
이사야 2017 2020. 9. 6. 09:36
18-102 너희가 어두움 뿐인 이유는 하나님을 배반하였기 때문 (사 59, 9-18)
배 배 배 배~~~ 배신이야 배신 배 반 ~~~~~
절대로 배신 하지 않겠다 라는 내가 졸지에 그 순간 귀해져 버리기에
주님은 바로 그것을 깨뜨리시고자 귀히 여김을 받지 못하는
즉 베드로에게서도 거부시 당하는
거봐 나는 너가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여 라고 했는데
아닙니다 나는 절대로 세 번 배신 안 할 겁니다 라고
분명 너가 나를 세 번 부인한다는 그 말을 거부하잖아
귀히 여기지 않잖아 라고 하시는 겁니다.
아니 누가 나를 부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그것을 허용하고 받아들이고 귀히 여기겠냐 말이죠
아닙니다 라고 반박을 하도록 되어 있잖아요
그 정도로 우리는 선악의 소원이라는 배후세력에 의해 움직이는
졸지에 내가 귀하디 귀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말이죠
그래서 주님은 그 배후세력을 교체 하실려고 오신 겁니다.
무엇이 중헌디?
과연 중헌 것이 무엇인지 함 까 볼까 라고 말이죠
우리는 그 동안 똥덩어리를 귀하디 귀한 것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렇게 똥덩어리를 귀하게 여기는 인간의 손에 버림 받는 모습으로 오셨다 말이죠
그것을 보고 그 버림 받는 모습을 보고 이방인이 주님께 나아오는
이 새 일을 펼치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이방인도 웃껴요
버림 받는 인자를 보고 어떻게 주님 앞에 나아올까요?
우상 숭배를 그들 이방인이 알려줘 놓고서는 ㅋㅋㅋ
물론 다윗으로 인해 알고보니 우리는 태중에서부터
죄 중에 태어났기에
첫 아담의 범죄로 인해서
우리는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과 같이 되어버렸기에
선악의 소원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말이죠
이방인 핑계 대지만 정작 우리 속에 이미 장착이 된 채로 태어난 것이다 말이죠
그러니 이방인이 버림 받는 인자를 보고 주님 앞에 나아오는 것은
그들이 숙제를 해서가 아닌
역시나 주님의 숙제로 인한 성령을 받아서 그런 것이다 말이죠
이방인이 저럴 정도로면
유대인을 시기케 해서라도 돌아오게 하심이 아니냐 말이죠
문제는 유대인들이 과연 하나님이 교체 되기를 원하겠느냐 라는 겁니다.
사도 바울 보세요
그 인간이 과연 교체될 인간 입디까?
아니잖아요
결국 주님의 숙제였던 거죠
이 주님의 숙제를 은혜 라고 하고
인간의 숙제를 행함 이라고 하니
오직 은혜로만 구원 얻는 것이 복음이다 말이죠
예수님의 숙제, 예수님 마음대로 이다는 겁니다.
누가 이 예수님의 숙제를 귀하게 여기겠습니까?
인간에게는 이미 절대화가 되어버린 인간의 육체 몸 이 있다 말이죠
이 몸이 귀해져 버린 이상
예수님의 숙제는 시시하게 보일 뿐이다 말이죠
그래서 또 비유
비밀 곧 예수님의 숙제
인간은 무조건 시시하게 보는 이 비밀을 또 언급하십니다.
절대로 귀하게 여기지 않는 비유 비밀을 말이죠
어떤 임금이 자기 아들의 혼인잔치에 백성들을 혼인잔치에 초대합니다.
천국 비유입니다 천국 비밀입니다.
기존의 천국과는 안 맞습니다.
인간들이 생각하는 천국이 아닙니다.
모든 종교에서 언급하는 천국이 아니예요
그런 멍청한 천국은 인간이 오길 기다리는 멍청한 천국이고
인간의 숙제로 달성하는
인간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천국이 아니라
직접 인간에게 찾아와서 인간을 하나 하나 깨부스는
돌 위에 돌이 하나도 남지 않도록 가루로 만드는 천국입니다.
진짜 천국은 이 땅에 내려와서 그런 가짜 천국을 하나 하나 깨부수는 천국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의 기능이 그랬거든요 우상 나라 하나 하나 깨뜨리는
그러니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죠
인간은 곧 자기가 곧 진리이다 자기가 곧 천국이다를 교회에서도
앞의 글 성전을 언급했듯이 녹슨 가마 솥 비유를 언급했듯이
곧 내 자신이 하나님이다를 깨뜨리는 진리이다는 겁니다.
진리가 인간아 나 진리인 예수를 믿어다오 라고 구걸하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일방적으로 혼인잔치를 벌려 버리십니다.
하필이면 내 결혼식날에 임금님은 혼인잔치를 의도적으로 벌리셨다 말이죠
마치 의도적으로 말이죠
무엇이 중하냐 라고 도발하는 식으로 말이죠
마치 사울 왕이 아무리 기다려도 사무엘 선지자가 안 오니까
자기가 직접 제사를 드렸듯이
사무엘은 일부러 그것을 숨어서 지켜봤다 말이죠
이 의도적인 속임수처럼 말이죠
왜 그럴까요?
그냥 그럴 필요가 없이 그냥 나는 나 자신 만을 귀하게 여기지
임금님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죄인입니다 라고
규정해 버리시고 심판하시면 되거든요
그런데 꼭 알리바이를 잡아요
물증을 잡아요
증거를 잡고서
두 말 할 수 없도록 잠잠케 만들어요
배신 안하도록 하시는게 아니라
반드시 배신 하도록 만들어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도록 만드시는 물증을 잡아요
이것이 안 잡히고 그냥 심판 하시면 될 것 아니냐 라고 하는 것은
마치 선생님에게 반항 하고자 바리깡으로 머리 중간에 고속도로 내면서
됐죠 어차피 망할 것 내 손으로 내가 밀겠습니다 라고 반항하는 거나 마찬가지 이다 말이죠
우리는 앞의 글처럼 이방인에게 복음을 증거할 사명이 있습니다
내 숙제로써의 사명이 아니라
주님의 숙제로써 일방적으로 편파적으로 덮쳐졌어요
요나가 그 숙제 안할려고 자기 숙제 따로 있다고 우겨도
그 반항심을 표출 안하는게 아니라 표출 당해서라도
무엇이 중헌디를 알도록 하시는 그 섬기심 때문에
우리는 이 성령으로 다 하신 것을 누리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자 그래서 일부러 기다리고 기다린 나의 결혼식날에 맞도록
혼인잔치를 벌려놓고서
니 결혼식 보다 내 혼인잔치에 오라 라고 했을때에
백이면 백 자기 결혼식이 중요하지 남의 결혼식이 먼저가 아니다 임을 나타내도록 되어 있다 라는 겁니다.
아니
꼭 일부러 안식일날만 골라서 손마른 자를 고치냐 말이죠
앞의 글 에스겔서 녹슨 가마 솥 비유에서도 언급했듯이
주님은 권세 배후세력 출처 출생지 발생지
인간이 말하고 사고하는 그 생각의 발생지를 갈아 엎어버리시고자
의도적으로 일부러 그날에 혼인잔치를 벌리신다 라는 겁니다.
백이면 안 가죠
왜? 더 중요한 나의 결혼식이 있는데 미쳤다고 남의 결혼식에 왜 가냐 말이죠
문제는 혼인잔치에 안 갔다 라고
병사들을 보내서 다 잡아 죽이더라 라는 겁니다.
(마 22:7, 개역)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물론 하도 하도 귀찮게 해서
(마 22:4, 개역)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가로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마 22:5, 개역) 『저희가 돌아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차로 가고』
(마 22:6, 개역)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니』
자꾸 종들을 보내어서 다시 혼인잔치에 오라 라고 청해서
너무 너무 성질을 건드리니까
즉 그 정도로 귀한 것이 따로 있었다 라는 거죠
그 귀한 것을 건드리니까 사람은 참지 못하니까 말이죠
그래서 종들을 잡아 죽이다 보니
임금이 화를 내어서 그 살인자를 죽이고 동네를 불살라 버렸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아무나 다 참여케 하도록 해서
혼인잔치의 손님 자리를 다 채웠다
어 그런데 여기서 끝나는게 아니라
예복을 입지 않은 자를 끌어내어서 바깥 어두움에 던져버리니
슬피 울며 이를 갈더라
그러니 이 천국 비유인 혼인잔치의 비유는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받은 자는 적다 라고 결론을 내리더라 말이죠
자 우리가 이 순서대로 쭈욱 살펴보니 기가막힙니다
이게 무슨 천국 비유일까요?
우리가 생각한 천국과는 완전 딴판 아닙니까
이야기 구성도 이상해요
갑자기 청함을 받은 자는 많지만 택함을 받은 자는 적다 로 끝나요
이것과 혼인잔치는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이해가 되는 소리를 성경은 한 적이 없어요
다 말이 안되는 소리입니다.
어쩌면 이야기 구성을 이렇게 하면 조금이라도 이해가 될 겁니다
제일 먼저 청함을 받은 자는 많지만 택함을 받은 자는 적다 라고 먼저 언급해 놓고서
이것이 천국 비유가 될려면
그 다음에 이러 이러해서 청함을 받은 자는 많지만 택함을 받은 자는 적다 라고 나와야 한다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삔떼가 안 맞는 것은 어쩌면 혼인잔치 라는 겁니다.
어떻게 잔치 날이 잔치의 속성인 기쁨은 전혀 없고
살벌하기 짝이 없는 살인만 난무 하냐 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 살인으로 인해 드디어 혼인잔치 답게 되었다 라는 식이다 말이죠
혼인 잔치가 혼인 잔치 다움을 그렇게 역설적으로 표현하더라 말이죠
천국이 천국 답다 라고 말이죠
그런데 인간 속에 있는 천국
인간 속에 있는 혼인은 그런게 아니잖아요
바로 이겁니다
이것을 시비걸고 태클 걸고 들어오는 천국이다 라는 겁니다.
천국은 바로 이런 살육 진멸 심판을 이해하지 못하고서 천국에 간다는 것은
그런 천국 엉터리 이다
인간의 머리 속에서 상상해서 지어낸 천국이다
진짜 천국이 뭔지 보여줘봐 라고
인간 속에 이미 있는 천국을 깨뜨리면서 다가오는 천국이다 라는 겁니다.
네 네 맞아요 이미 전제를 했다 라는 거죠
너의 천국을 안 깨뜨리지 않는 이상 천국 모를줄 알어 라는 식으로 말이죠
천국이란 인간에게서 귀한 것으로 자리잡았거든요
그 귀한 것 안 깨뜨려지면
예수님이 몰고온 천국은 무슨 소리인줄 모르게 될 것이다
왜? 무시하니까?
누구처럼
이 비유 속에서 나오는 인물들처럼
어디 이것 뿐이냐
아무나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 다 혼인잔치에 참여시키니까
정작 예복을 입지 않은 자가 있으니
이들 까지도 혼인잔치에 참여할 마음이 추호도 없음을 알고
내어 쫓아내는 방식의 천국이다 라는 겁니다.
아마 교회를 이런 식으로 운영하면
아무도 교회에 나오지 않을려고 할 겁니다.
교회 이름이 쫓아내는 교회 라고 ㅋㅋㅋ
다들 교회 이름을 안 쫓아내는 교회라는 의미를 담아서 만들지
누가 쫓아내는 교회로 이름을 짖냐 말이죠
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이 갈 마음만 있다면 언제든지 들어갈수 있는 천국으로 선전하지
인간을 쫓아내는 천국은 아마 교회 아무리 다녀본들 없을거다 말이죠
그런 천국을 증거하는 교회는 없어요
그러니 엉터리 하나님인 거죠
하나님이 달라요 달라
서로 달라요
자 다시 이야기 구성을 보자구요
제일 끝 내용의 결말을 제일 앞에 내세우고
그리고 그 예로써 혼인잔치를 언급하면 뭔가 이해라도 될까 말까인데
아예 무슨 결말인줄 전혀 눈치도 못채도록 제일 나중에 있고
혼인잔치라는 왠지 기쁨을 유발해 놓고서는 전혀 안기쁜내용들인
살인과 진멸 심판의 내용으로 꽉꽉 채워서
혼인잔치에 또 미끼를 물어버린 자가 예복을 안 입었다는 이유로 쫓겨남으로써
자 이제 결론은 청함을 받은자는 많되 택함을 받은 자는 적다 라고 천국을 이야기 하더라 말이죠
왜 자꾸 이야기 구성 이라고 제가 이런 표현을 쓰냐 하면
이미 인간의 뇌는 스토리를 미리 예상을 하고 있다 말이죠
그런데 그 예상을 다 빗나가게 되면
스토리 자체가 안된다 라는 겁니다.
스토리 텔링이 없어요
인간은 이 스토리 텔링이 없으면 누구 말 마따나 죽는다 라고 하더군요
일당백의 정박씨가 그런 말을 하던데
그 정도로 인간은 끝까지 자기가 귀하지
남이 안 귀해요
아무리 하나님이라 해도
임금이라도 해도
임금 니는 니고
나는 나 다 라는 것인 그때나 지금이나 말이죠
이것이 바로 인간의 역사예요 역사
역사는 다 이해가 되어요
이해가 안되는 것이 없어요
그런데 문제는 오늘 나온 혼인잔치 비유는
이스라엘의 구약 역사입니다
역사란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역사 만큼은 이스라엘 본인들도 이해를 못하는
계시의 역사 이다는 겁니다.
악한 농부 비유도 이스라엘 역사였죠
오늘 혼인잔치도 이스라엘 역사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슨 소리인줄 모르는
역사가 아닌 비역사로써의 계시 곧 비유 비밀이다는 겁니다.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수 없어요
지금도 이스라엘 랍비들은 코로나를 퍼트리는 주범으로 몰리는 한이 있어라도
이 신약도 아닌 구약을 해석하고 그것을 실천하는데 여념이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소리인줄 몰라요
모르기 때문에 기껏 내세우는 것이
실천했다를 외칠 뿐이다 말이죠
부자청년처럼 말이죠
구약 조차도 모조리 다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는데
답은 거부한 채로
문제지만 붙잡고 있으니 자신들은 특별한 존재이다 라고 우기는 겁니다.
아니 답이 귀합니까?
아니면 답도 없이 의문의 반복
문제의 반복
숙제의 반복인 문제지가 중요합니까?
네 맞아요 그들은 다른 민족에게는 없는 문제지를 잡고 있어요
그런데 답은 몰라요
그 문제지를 잡고 있다고 너는 없지 나는 있어 라고
이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는다 말이죠
물론 그들은 답을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해요
그런데 구약에 너희 이스라엘은 단 한번도 여호와 하나님을 안 적이 없다 라고 하셨다 말이죠
신약도 아닌 구약에 적혀 있어요
아마 무지 무지 섭섭해 할 것이지만 그렇게 적혀 있는데
스스로가 그 증거를 거부해요
결국 그들은 신약을 거부하고 구약만 인정한다 라고 하지만
아닙니다
구약도 거부하고 있는 겁니다.
아니다면 정답을 내어 보라 말이죠
세레요한의 권세가 하늘에서 왔는지
사람에게서 왔는지
아 신약 인물이라구요? 그럼 구약에만 나오는 구약 인물로 할께요
다윗이 어떻게 자손에게 주여 라고
다윗의 자손에게 주여 라고 주께서 내 주께 라고 표현했는가
이스라엘에게 특히 랍비들 성경박사들에게
지금 현재 2020년으로부터 수천년 수만년을 연구시간을 줘도 풀수 있을까요?
줘도 어차피 못 풀어요
그것은 신약에 그렇게 규정을 해 버렸기에 말이죠
마치 안식일에 안식일 날만 골라서 손마른 자를 고치시는 방식처럼
안식일 이라는 시간은
나에게 주어지는 일곱째 날이 아닙니다
시간이 아니예요
인물이다 말이죠
그 인물 앞에서는 무조건 나 라는 인물은 가짜로 드러나야 이 인물이 비로소 귀하게 보여요
안 그러면
나 라는 인물은 반드시 이 안식일 이라는 시간을 내가 귀하게 여기는 것으로 채울려고 할 것이다 말이죠
이것이 인간이 이해가 되는 시공간인 역사 이다 말이죠
그런데 천국은 그 시공간을 깨뜨리고
시간도 예수라는 인물로 채우고
공간도 예수라는 인물로 채우더라 말이죠
앞의 글 에스겔서 녹슨 가마솥 비유에서
성전 자체를 갈아 엎어요
공간 자체를
역사 자체가 갈아 엎어요
그리고 예수 라는 인물로 갈아 엎어서 교체 시켜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얼마든지 믿을수 있고
내가 얼마든지 동일시 할수 있는 그런 선악의 하나님을 넘어설수가 없어서
이 죄의 소원을 다스릴려고 달려들꺼다 말이죠
하나님은 자기자신을 버렸다 말이죠
이스라엘이 버림 받은게 아닙니다
앞의 글 에스겔서 녹슨 가마솥 비유에서 이스라엘이 심판 당한게 아니예요
하나님이 심판주이시고 하나님이 심판 당하시는 이 의를 나타내신 거니다.
여기에 이스라엘은 마치 다윗이 하나님의 의를 입었듯이
개인적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다윗의 운명 속에 이스라엘 전체를 다 집어넣기 위해서
포로 잡혀가도록
마치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해서 마귀에게 잡혀가듯이 말이죠
그 속에서 은혜가 왕노릇하는 것을
사망의 왕노릇 하는 그 가운데서 그 한 복판에서
하나님의 의를 곧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는
이 거룩을 입히시고자 하심이다는 겁니다.
왜 내 귀한 내가 가마 솥에 심판 당하는 것만 심각하냐 말이죠
정작 주님이 대신 매 맞음을 그 속에서 보라고 하심인데
왜 우리는 그것을 못 보고 나의 아픔만 귀하냐 말이죠
그 정도로 우리는 어두운 눈이다 라는 겁니다.
자 그러면 오늘 본문이 이렇게 부정적으로 나오지 않으면
우리는 천국을 알까요 모를까요?
유대인처럼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고자 할 꺼다 말이죠
왜? 그것이 인간의 숙제이니까
그런데 예수님의 숙제가 덮쳐진 자는
이 심판하는 혼인잔치가 아니였다면 우리는 천국을 몰랐을 겁니다 라고 나올꺼다 말이죠
그 정도로 나는 귀하지 않고
이 혼인잔치
그것도 살벌하기 짝이 없이 내어쫓아내고 진멸하는 이 천국이 귀한 줄 모르고
도리어 천국을 얼마나 죽여왔냐 말이죠
혼인잔치를 얼마나 죽여왔냐 말이죠
선지자를 얼마나 많이 죽여왔냐 말이죠
왜? 내가 귀하다 라는 이유로
천국이 하나도 귀하지 않다 라는 이유로
이것이 서로 맞물려서 서로의 소욕을 못하게 하는 방식으로 나타나는 천국인데
이 천국을 좋아할 리가 있겠냐 말이죠
다들 싫어할 것을 뻔히 알고서도
더 싫어하고
더 더 더 미워하고
더 더 더 살인해 보라 라는 식으로
일부러 나의 결혼식 때에 임금의 자기 아들을 위한 혼인잔치를 벌리시겠다 라고 나오시는 겁니다.
안 살인 할란다가 아니라
살인할 수 밖에 없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더 더 살인해 보라
아이구 그것도 살인이가 라고
천국의 살인을 보여주겠다 라고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천국을
제발 아무도 제발 믿지 말아라 라고 당당하게
나 천국이가 믿음 주시는 자만 믿도록 하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천국이 직접 믿음 주시는 자만 말이죠
아무리 청함을 받은자가 많아도
택함을 받은 자는 적다 아니 없다
광야에서 다 탈락 당하고 딸랑 1명 갈렙 뿐이다 말이죠
그것도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이
유다 지파로 편입이 되어서 말이죠
여호수아는 갈렙 바지자락 붙잡아서 들어온 거지
제대로 들어온 것도 아니구요
그 나머지는 다 죽이고 새로운 세대로 교체해서 다 채웠다 말이죠
그런데 가나안 땅에서 예복을 입지 않고
여전히 우상숭배로 인해 다 탈락시키시더라 말이죠
그것이 지금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이사야서와 에스겔서 아닙니까
즉 인간은 안 된다는 겁니다.
백날 숙제 해 본들 숙제한 자신이 귀하게 되어버리지
차라리 숙제를 안하면 또 몰라
숙제 안 할 인간이 없어요
저 마다 자신의 귀한 것을 들이내밀거든요
그것이 로마서에서
자기 의를 쌓을 줄만 알았지
하나님의 의에는 복종 아니하더라
이 하나님의 의가 바로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음이거든요
앞의 글 지금 에스겔 본문에서 이스라엘 다 심판해서 죽이시잖아요
지난 주 이사야 서에서 너는 나의 구원이요 너는 나의 찬송이라 라고
진멸이 난무하는 그 속에서
그 슬픔 속에서 희락을
근심 속에서 찬송을
재 대신 화관을
이라고
잃어버림 속에서 되찾음을
심판 속에서 긍휼을 펼치시는 이 의에 복종하지 않더라 라는 겁니다.
그리고 다시 로마서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없고
그저 하나님에 대한 열심만 있다 라고
아니 이 뒤의 것 하나님에 대한 열심히 더 좋은거 아니냐 말이죠
하나님이 다른 하나님인데 엉뚱한 하나님에 대해서 열심인들 무슨 소용이 있냐 말이죠
딴 하나님 한테 열심히면 뭐 하냐 말이죠
그리고 정작 진짜 하나님은 그런 열심을 안 받아요
도리어 주님의 열심으로인해 그 엉터리 열심 손 땍지 하면 손 떼게 하지
니 숙제 말고 주님 숙제 보라꼬
(롬 10:1, 개역)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롬 10:2, 개역)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롬 10:3, 개역)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그런데 또 역시나 이 말씀 조차도 말이 안되요
이스라엘을 위함이다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라는 말이 왠지 약올리는 말 같지 않나요?
저만 그런가요?
왜냐하면 절대로 이스라엘은 그럴 턱이 없거든요
도리어 자신들이 믿는 하나님을 모욕한다 라고 저렇게 말하는 사도바울을 어떻게 해서든 죽일려고 할꺼다 말이죠
그런데 놀랍게도 그 당사자가 바로 사도바울 아닙니까
본인이 증거물이다 라고 나오는 겁니다.
나도 해 봤다 하나님께 열심히 있었다 라고
자기 의를 쌓아 봤다 라고
본인에게 저렇게 증거한 스데반 집사까지 죽인 그 당사자가 바로 나 사도바울이다 라고
이 살인사건이 벌어지는 한이 있어라도
이 천국이 벌리는 잔치를 우리는 막을 수 없다 라고 증거하고 있는 겁니다.
본인이 직접 그 당사자가 되어 봤기에 말이죠
어차피 은혜가 왕 노릇해서 이기지
사망이라는 의문의 노동은 어차피 진단다
죽음 마저도 시기하는 사랑인데
무슨 수로 이길래
바로 천국이 이렇게 지옥 보다 더 지옥같은 사랑으로 쳐들어 오겠다는데
이 죽음 보다 더 강한 사랑 앞에서 어서 빨리 항복 하렴 이라고
놀리는 듯
아니면 염려하는 듯
아니면 어차피 게임 끝났다 라고 결과를 미리 통보하는
자신은 잃어버림도 당해 봤고
되찾음도 당해 봤으니
이 하나님의 의가 너무 너무 귀해서 앞뒤 안가리고
이 혼인잔치를 증거하고 있는 겁니다.
오로지 예수님 본인만이 귀히 여기는 천국을 혼인잔치를 말이죠
그 어떤 인간도 귀히 여기지 않는 무시하는 천국
무시하는 임금의 혼인잔치를 말이죠
자꾸 노랫말이 귓가에 맴도는데 정작 뒤에 부분은 처음듣네요
앞에 구절만 자꾸 돌고 다시 돌고 돌고 ~~~~~~~~~~ 어 ~~~~ 이
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정말 잔치에 갈 수 없소 장가가야 하고 소도 사야 하고
논과 밭에 나가서 할 일은 많아 내 어이하리 죄송해요
한 어느 마을의 멋진 집에 살던 사람이 큰 잔치를 벌여놓고 손님 청했네
그가 널리 이웃더러 오라 했더니 그때 모든 사람들이 대답하는 말
죄송해요 죄송해요 정말 잔치에 갈 수 없소 장가가야 하고 소도 사야 하고
논과 밭에 나가서 할 일은 많아 내 어이하리 죄송해요
갈 수 없소 갈 수 없소 정말 잔치에 갈 수 없소 장가들었는데 소도 사 왔는데
논과 밭에 나가서 할 일도 많아 내 어이하리 죄송해요
이때에 주인이 화가 나서 일어나더니 모든 종을 불러 세워 명령하기를
눈먼 사람 절름발이 가릴 것 없이 모두 불러 이 자리를 가득 채워라
갈 수 없소 갈 수 없소 정말 잔치에 갈 수 없소 장가들었는데 소도 사 왔는데
논과 밭에 나가서 할 일도 많아 내 어이하리 죄송해요
가겠어요 가겠어요 정말 잔치에 가겠어요 장가들었지만 소도 사 왔지만
논과 밭에 나가서 할 일 많아도 주 오라시면 가겠어요
이 얘기 모두가 우리 위해 쓰여졌구나 주님께서 영광스런 잔치 베풀고
내게 오라 명령할 때 주저한다면 너도나도 밀려나고 후회하리라
가겠어요 가겠어요 정말 잔치에 가겠어요 장가들었지만 소도 사 왔지만
논과 밭에 나가서 할 일 많아도 주 오라시면 가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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