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07 부활과 산 자의 하나님 (마 22,23-33)
테스형!! 가이사에게 바치는게 맞나? 와 가룟유다 (마 22,15-22)
마태복음 2018 2020. 10. 18. 10:37
18-106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마 22,15-22)
(마태복음 22:23-33, 신약성경 38 쪽, 찬송가 16장 내 주는 살아 계시고)
23,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에 예수께 와서 물어 가로되』
24,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들어 형을 위하여 후사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25,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 장가 들었다가 죽어 후사가 없으므로 그의 아내를 그 동생에게 끼쳐두고』
26, 『그 둘째와 셋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27,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28, 『그런즉 저희가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에 뉘 아내가 되리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31, 『죽은 자의 부활을 의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33, 『무리가 듣고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더라』
(마 22:23, 새번역) 『같은 날 ㉠사두개파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예수께 말하였다.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파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마 22:24, 새번역) 『"선생님, 모세가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형수에게 장가들어서, 그 후사를 세워 주어야 한다' 하였습니다.』
(마 22:25, 새번역) 『그런데 우리 이웃에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장가를 들었다가, 자식이 없이 죽으므로, 아내를 그의 동생에게 남겨 놓았습니다.』
(마 22:26, 새번역) 『둘째도 셋째도 그렇게 해서, 일곱이 다 그렇게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마 22:27, 새번역) 『맨 나중에는, 그 여자도 죽었습니다.』
(마 22:28, 새번역) 『그러니 부활 때에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모두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마 22:29, 새번역)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기 때문에, 잘못 생각하고 있다.』
(마 22:30, 새번역) 『부활 때에는 사람들은 장가도 가지 않고, 시집도 가지 않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다.』
(마 22:31, 새번역) 『죽은 사람들의 부활을 두고 말하면서, 너희는 아직도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마 22:32, 새번역) 『하나님께서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죽은 사람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의 하나님이시다." / ㉡출 3:6』
(마 22:33, 새번역) 『무리는 이 말씀을 듣고, 예수의 가르침에 놀랐다.』
부활이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겁니다.
안 죽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은 부활이 아니라
승천 이라고 올라갈 승, 천 하늘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했다 라고 하잖아요
즉 안죽었고 죽음을 격지 않고 하늘로 올라갔다 라고 말이죠
그것 역시 부활이 아니지요
(창 5:24, 개역)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히 11:5, 개역)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또 안죽고 승천한 자가 있습니다 바로 엘리야죠
이것 또한 부활이 아닙니다
(왕하 2:11, 개역) 『두 사람이 행하며 말하더니 홀연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격하고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더라』
자 그럼 부활이 뭐냐
이렇게 미리 전제를 깔고 이야기 하는 이유는
인간이 이미 전제로 한 부활 개념
즉 모든 종교가 외치는 부활은 일단 아니다 라는 거죠
뭐뭐뭐 아니요 라고 부활은 증거한다는 겁니다.
부활 자체가 말이죠
그러니 모든 종교에서 말하는 인간의 소원이 담겨진 원하는 바가 담겨진
부활개념은 다 피해 가시는 겁니다.
그러니 인간이 말하는 구원이란 없는 겁니다.
성경에서 인간의 구원은 헛되다 라고 했습니다.
캬 어떤 종교에서도 이런 말 하는 종교는 없어요
종교란 짐승이거든요
반드시 돈과 연관이 되어 있어요
인간의 구원과 부활은 곧 돈과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그런 종교 장사와는 무관하다는 겁니다.
하나님께 바쳐서 받는 구원 부활 따위는 없다 말이죠
하나님은 주시는 분이지 받는 분이 아닙니다.
결국 주시는 부활 주시는 구원은
기존의 이미 인간 세계에 깔려 있는 부활과 구원을 갈아엎어가면서 주시는 부활이다는 겁니다.
이것을 믿음 이라고 믿음이라는 선물이라고 합니다.
선물
선물은 선물을 주는 자가 살아있기에 받을수 있지
안 살아 있으면 받을 수가 없어요
자 그런 의미에서 종교는 이미 죽은 자들의 세계입니다.
그들끼리 만들어낸 조작된 선물이 있어요
바로 바치며 주신다 받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이 자꾸 만들어내어요
믿음도 만들어내고 행함도 만들어 냅니다.
인간의 것 안 받습니다
다시 한번더 강조하지만
인간이 바치는 것 안 받아요
성화할 생각 조차도 할 생각 말아라 말이죠
그것은 바로 지난 주 녹음에도 언급했듯이
가정부의 특징입니다.
사랑하는 아내는 그런 파출부의 사고방식이 없어요
가정부가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밖에 없어요
가정부가 못하는 것을 합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어라 그런데 그 사랑의 열매가 두 언약으로 나옵니다.
하나는 이삭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나온 자녀이고
하나는 계집종 하갈에서 나온 자녀 이스마엘입니다.
누가 기업을 잇게 될까요?
일부러 믿음이 뭔가를 말하기 위함입니다.
또 다음 글 새 이름과 연관 됩니다.
믿음이란 내 쪽에서 이름을 갈아엎는게 아니라
주님 쪽에서 이름을 갈아엎어서 주시는 이름이 이 믿음과 연관이 됩니다.
믿음이 이름을 갈아엎어요
이름이란 그 사람의 운명이거든요
이름이게 뭐라꼬 그저 단어 문자 기호일 뿐인데 왜 사람들은 이름을 의식하냐 말이죠
자기 운명 곧 미래를 염두해서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이름을 개명하는 이유는
나의 미래가 이대로 가다가는 엉망이 될 것 같아서
이름을 갈아서 어떻게 해서든 잘 살아보겠다라고 이름을 개명한다 말이죠
아니 누가 나는 저주 받아야해 라고 이름을 김저주 라고 바꾸겠냐 말이죠
이런 사고방식이 종교에서 그대로 나옵니다.
아니 누가 교회 다니면서 나는 죄인입니다 라고 나오는 자는 단 한명도 없어요
어떤 조직에 들어가든 거기서 잘난 인간이 되고자 할테니 말이죠
행동 하나 하나가 다 이름과 연관되어서 나온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자꾸 자기 이름에 맞게 행동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정 안되면 이름을 개명하고 말이죠
자기가 자기 이름을 말이죠
누가 이미 결정난 이름을 외부에서 갈아서 개명해 주지 않습니다.
내 운명은 내가 개척하는 거죠
연예인들이 왜 이름을 갈까요?
처음부터 본명을 놔두고 무당이나 타로 등등 점치는 자들로 인해서
예명을 가지고서 활동하는 이유가 뭐냐 말이죠
영화 촬영 처음 시작 할 때
드라마 처음 시작 할 때
돼지 머리에 돈을 코에 찔러 넣어서 절 하는 이유가 뭡니까
설마 요즘도 이렇게 하나요?
적어도 10년? 15년 전만해도 이런거 여전했는데
얼마나 인간이 무식한지
수천년이 지나도 그런 사고방식은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다니는 사고방식 자체가 이런 식이거든요
이스라엘 외부가 아닌
이방나라가 아닌
이스라엘 내부에서
지난주 에스겔서에서도 언급했듯이
자녀를 제물로 바쳐서
이스라엘 망하지 않게 해 달라고 성전에 모여 기도한다고 했잖아요
녹슨 가마 솥 비유에서 말이죠
자기들이 욕한 이방나라의 제사 방식을
이스라엘이 하고 있다 말이죠
그것이 이름 속에 다 담겨져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새 이름으로 갈겠다 라고 하시는 이유 이다는 거죠
그 이전에 너희 하나님을 갈아 엎겠다 라고 말이죠
사실은 하나님은 이름이 아니니까
여호와 라는 이름을 또 자기 쪽으로 끌어오니까
전능자 여호와의 의미를 너희들이 엉터리로 만들었지만
오냐 제대로 보여주마 라고
하나님을 갈아엎어요 글쎄
우리 하나님이 달라졌어요
니 하나님과 내 하나님이 다르다 라는 겁니다.
그 달라진 하나님의 새 이름 임마누엘에 맞게
이스라엘 또한 새 이름으로 갈아엎는다는 겁니다.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주어진 선물로써
믿음이 갈아엎은 이름
즉 이 말은 그 이전의 이름과 대비한 겁니다.
두 언약
두 자녀
자유하는 여자와 계집종 이 두 여자의 대조로 인해서
이전 것과 이후로 갈라지는 겁니다. 영원히 말이죠
그러면 영원한 약속에 맞는 자녀는 누구냐 라는 겁니다.
파출부 가정부가 도저히 못하는게 있다고 했지요
모든 것을 다 따라해도 이것만은 못해요
어떤 무식한 이단과 사이비 종교는 이것 마저도 따라해요
집단 자살을 시도해요 왜?
인간 쪽에서 희망을 걸고 베팅을 한 거죠
그 인간 쪽의 믿음이 뭡니까 부활 할 것을 걸고 베팅하는 겁니다 올 인
모두다 걸어요
과연 믿음일까요?
선물이 얼마나 주어지지 않으면
지가 지 스스로 믿음을 만들어내냐 말이죠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외부에서 까닭이 없이 주어지는 것인데
자꾸 까닭을 만들고
이유를 자꾸 만들어내어요
부활이란 내 쪽에서 하고 싶다고 하는게 아닙니다.
그럴 마음조차도 없는데 외부에서 주어지는 겁니다 외부
내부에서 하는 것 다 엉터리입니다.
교회가 이런 짖을 하고 있더라 말이죠
이방제사를 들여와요 글쎄
강도의 소굴인 거죠
누가 부활 바라고 교회에 오지
누가 구원을 바라고 교회에 오지
그런 것을 바라지 않고 교회에 가는 자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가짜요
그러니까 배 배 배신자들이다 라는 겁니다.
다들 교회에 모여서 저희는 배신자가 안되겠습니다
끝까지 다 따라가겠습니다 라고 하는데
꼭 한놈이 저는 배신자 맞습니다 맞고요 라고 나온다 말이죠
그 놈들이 바로 참선지자 이다는 겁니다.
안 그런 놈은 거짓선지자 이다는 거죠
거짓선지자가 우리의 마음을 대변해 줍니다.
절대로 이스라엘 망할 리가 없다
우리의 부활신앙 우리의 믿음 우리의 구원
절대로 가짜 일리가 없다 라고 말이죠
바로 이것이 죽은 자의 하나님이다 라는 겁니다.
산자의 하나님은 그럼 뭐냐
너희는 창조주를 믿은적이 없다 라고 하시면서
창조주 여호와가 누구인지 이제 알려주마 라고 나오신다 말이죠
즉 그 이전에는 안 알려줬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나는 압니다 라고 나오는 놈들이
가짜 하나님을
죽은 자의 하나님을 그 동안 퍼트려 놓으니까
이들이 하나님이 누구인줄도 모르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제사를 드렸던 거죠
이거 신약이 아닌 구약의 에스겔 때, 이사야 때, 포로 전 후, 그때
아직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도 이랬다 라는 겁니다.
복음서에서 유대사회가 마귀에게 다 장악당했다 라고 증거하기 이전의
신약 이전의 구약 때 말이죠
이미 거짓선지자가 이스라엘을 다 장악했던 겁니다.
그러니 죽은 자의 하나님을 그들은 믿고서
산 자의 하나님이 누구인지 오냐 제대로 보여주마 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다윗 개인 운명이 아니라
이제 이스라엘 전체 운명으로 다윗의 운명을 확대 시키는 겁니다.
확대 시킨다 라고 해서
개개인이 구원 얻게 되는 기회를 얻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개인이라는 것이 없어요
개인 구원 개인 부활 따위는 없다 말이죠
이스라엘은 전체적인 집단적인 운명입니다.
그 이름대로 가도록 되어 있지
따로 따로 따로국밥처럼 개개인을 하나 하나 떼어낼수가 없다 말이죠
교회도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아니 개 개인을 하나 하나 떼어내는 짓을 해요 글쎄
말로만 하나이다 한 몸이다 라고 해 놓고서는 말이죠
개인의 스타가 왜 교회에서 발생하느냐 말이죠
사도바울이 그래서 내가 너희를 위해서 십자가를 졌더냐 라고 나오잖아요
어딜 감히 바울파 베드로파 아볼로파가 왜 생기냐 말이죠
그거 이미 전제로 깔려 있는
자기 유익에 따라 확증편향으로 믿음을 억지로 만들기 때문이거든요
선물이 아니다 라는 증거죠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까닭없는 용서요
이유 없는 대신 못박혀 죽으심 인데
그 속에서 또 내 쪽에 유리한 사람을 또 가려내더라 말이죠
이게 우상이다 말이죠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냐 말이죠
어떤 선배가
물론 저에게는 처음에는 전도사였고
그 다음 신학교 선배였고
나중에는 다른 교회의 목사가 되었지만
장로교 합동측에서 신앙생활 하게 된 것을 너무나 감사하다고 하더라 말이죠
안그랬드면 모든 파가 다 거짓이였음을 공부해 보니 알겠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장 덜 더럽더라 라고 말이죠
그러니 너도 합동측에서 시작한 것 고마운줄 알아라 라는 식으로 말이죠
저는 딱 한달? 처음에 아마 감리교 였던가? 감리교 쪽에 또 수많은 당파로 갈라지잖아요
아무튼 정확히도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교회 예배당 없이 떠돌아 다니는 그런 교회의 목사에게 영향을 받은 학교 음악선생님으로부터 전도 받았으니까
아무튼 열정적인 것만 쫏는 선생님이라 본인도 장로교 합동측인데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갈증을 해결해 달라고 여기 저기 접했나 보더라구요
나중에는 대구에 순복음에 대 히트를 쳤는적 있었는데 결국은 그 쪽으로 빠졌더라 말이죠
소문에 장로교 합동측의 교인이 80% 이상 이동을 했다 라고
아니 왜? 졸기 바빴던 설교와 예배가
눈이 번쩍 열정적이였다 라고 ㅋㅋㅋㅋ
잠자는 사람이 없다 라고 ㅋㅋㅋ
그러든 말든 지금은 보세요
그렇게 교단 교파 따지고 당파 따졌던 그 모든 것들이 어디로 집결 됩니까?
결국 돈 이지요
돈 이기는 종교 없어요
돈에 짐승에 올라타고야 마는 것이 종교 곧 음녀 이다 말이죠
안그러면 돈으로부터 힘없다 라고 핍박 받거든요
서러움을 당하다 보니
그 결핍을 결국은 돈으로 채워서 돈 위에 올라타겠다 라고 나오는 겁니다.
에스겔서에서 자녀를 제물로 바치는 것 또한 과거의 이삭 바치는 것이나
입다의 딸을 인신제사로 바치는 것들을 다 끌어와서 정당화 할꺼 아니겠냐 말이죠
정작 껍데기를 그렇게 성경적으로 가져와도
내용은 결국 이방나라 제사이거든요
수 많은 교단은 다 돈입니다 돈
요즘은 돈 빼고 설교할 자신이 있는 목사들이 없어요
코로나 덕분에 전도사들 짤린 것을 감사하세요
목사도 입에 풀칠하기 힘든 판국에 전도사에게 줄 돈이 어디 있냐 말이죠
또 노조를 결성해서 똑같은 놈 되지 말고 말이죠
모두다 죽은 자의 하나님이다는 겁니다.
산자의 하나님은 오히려 역설적에게도 죽음 속에서만 만나는 하나님이다는 겁니다.
그러니 부활 또는 믿음이란
나를 도리어 어떻게 한다?
네 맞아요
죽여요 자꾸 죽일려고 달려드는 부활이요 믿음이다는 겁니다.
그래야 이름을 갈꺼 아니겠습니까
외부에서 말이죠
산자가
살아있으니까 가는 겁니다.
외부에서 그 어떤 작용이 없다 라는 것은
죽었다 라는 것이고
그 죽음이라는 결핍을
내부에서 메꾸어 채워 넣을려고 할꺼다 말이죠
그게 짐승 곧 종교 이다는 겁니다.
그 내부에서 하는 짓이 뭘까요?
네 바로 저겁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들 다 따라하겠지요
선물로 주어진 것 조차도 다 내부에서 따라해요
외부는 그럼 뭐가 되냐 말이죠?
죽은 자의 하나님이 되는 거죠
외부에서 살리시는 자를 무시하니까 산 자의 하나님이 아니니까
내부에서 다 따라하는 겁니다.
에녹이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나라고 간 것 조차도 따라할꺼다 말이죠
그런데 이것은 믿음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즉 외부에서 누가 이런 일들을 벌렸다 라는 겁니다.
산 자의 하나님이 그것도 죽은 자 속에서 말이죠
그러니 에녹은 창 4장 후반부의 가인의 살았더라 족보에서
아벨 대신에 준 다른 씨의 족보로 인해
죽었더라 족보 속에서 나타난 에녹의 승천이다는 거죠
마치 새이름을 갈게 하신 외부의 작용으로 인해 벌어졌다 라는 겁니다.
아벨 대신에
그것도 그냥 아벨이 아니지요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주어진 다른 씨로 인한 족보
어 그런데 죽었더라 족보입니다.
반면에 가인은 자기는 때려 죽어도 안 죽어야 하니까 살았더라 족보이고요
정작 죽은자의 하나님을 믿는 자는 살았더라 족보를 형성하고 즉 선물이 없으니까
자기가 자신을 선물로 믿음으로 부활로 도배를 한 거죠
반면에 산 자의 하나님은 아벨 대신에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주신 다른씨로 인한 죽었더라 족보는
죽음 속에서 에녹의 승천을 보여주고 있다 라는 겁니다.
즉 여기서도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은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 라는 겁니다.
율법 외에 한 의가 말이죠 거룩이 말이죠
인간이 만들어내는 거룩은 곧 사랑은 이게 없어요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는
산자의 하나님이 없어요
다들 납득이 되는 죽은 자의 하나님을 믿어요 글쎄
그러니 파출부죠 가정부죠
아내가 아닌 거죠
사랑을 못 하니까
사랑은 파출부가 다른 것은 다 해도
이 사랑은 못해요
죽음 보다 더 강한 사랑 말이죠
가이사라는 현실(공백, 죽은 자의 하나님) 보다 더 더 더 심한 십자가 라는 현실이 있기에
가이사의 현실에 처해 있는 상황이 심각한 것이 아니다 말이죠
아무리 이세벨이 모든 이스라엘 선지자를 다 죽이고
딸랑 엘리야 혼자 딸랑 남아도
아무리 내 열심히 특심이라는 나 혼자 하나님 나라 독립운동 하고 있는 이 처참한 현실일지라도
더 더 더 죽음 보다 더 심한 사랑의 현실이 따로 7천명이 있기에
하나도 심각한 것이 아니다 말이죠
그러니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유일한 산 자가 말씀하시는 부활은
기존의 부활이 왜 엉터리인가를
왜 죽은 자의 하나님인가를
하나님을 갈면서 다가오는 겁니다.
이것을 앞의 글 에스겔에서 주의 이름이다 했습니다.
너 내 이름 모르지
나 이대 나온 아니 나 여호와 하나님이야
산 자의 하나님이야
너 창조주 이름 모르지 내가 알려줄게 기다려봐 ~~
그래서 주의 이름은 내 이름을 갈면서 다가오는 이름이다는 겁니다.
내 이름 속에는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과 같이 된
그런 선악의 법을 담은 이름이 내 이름이기에
이 이름을 갈겠데요 글쎄
아내는 남자가 생기면 이름이 갈게 됩니다.
나라 마다 다 틀리겠지만
남편의 성으로 갈게 된다 말이죠
성을 간다 내 성을 갈어 라고 하잖아요
내 이름을 간다 즉 내 족보를 간다 라는 의미이거든요
그래서 더 이상 아내는 자기 이름에 책임을 질 필요가 없는
남편이 다 알아서 책임진다 라고 지난 주에 언급했습니다.
그럼 남자는 누가 책임 집니까
남자의 머리 곧 예수님입니다.
아무튼 아내는 남자가 생기면 이름을 간다 라고
나오미와 며느리 룻 이야기를 할려고 끄집어 낸 겁니다.
남편의 이름을 따라 나오미는 자신의 운명이 정해져 버렸다 말이죠
남편 이름 뭡니까?
엘리멜렉
하나님은 왕이시다 라는 뜻이거든요
가룟 유다의 뜻은 뭘까요
하나님을 찬양하라 라는 뜻이다 말이죠
가룟은 케리옷 이라는 지방이름 말이죠 그리욧
그리욧 사람 유다 라는 거죠 그리욧은 모인다 라는 뜻이고요
그런데 그 지명 대로 그 지역이 실제로 있었는지 확인할 수가 없다고 하네요
후대에 붙인 다른 이름이 그대로 쓰여졌다고
거짓의 아들이라는 뜻도 있고
열심당원 이라는 의미의
이스카리옷을 sicarii(시카리, 단도의)란 말에서 유래한 단어로 따져보면
소위 독립운동가 라는 거죠 열심당원 이라는 의미를 저는 그 동안 써 왔는데요
하여튼 좋은 의미를 다 담고 있지 설마 나쁜의미로 이름을 짖겠냐 말이죠
시드기야와 여고냐를 대조로 해서 보면
사울왕과 다윗
가인과 아벨
에서와 야곱
이런 두 언약이 대조로 보면
가룟 유다와 베드로로 보시면 되죠
믿음이 개입하게 되니까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는 사건이 벌어지잖아요
태어날 수가 없는 아이가 태어나더라 말이죠
이삭
분명히 비웃었는데 어떻게 웃음이 되냐 말이죠
웃음이 될 수 있었던 근거가 인간 쪽에 있다면 이것은 부활이 아닙니다 믿음이 아니라
행함이 되는 거죠
한 쪽은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내 믿음은 내 구원은 내 부활은
내가 지킨다 내가 이룬다 라는 의미이고
부자청년처럼 말이죠
그런데 상대적으로 어린아이(죽은 자)는 무시 당한다 말이죠
잃어버렸으나 되찾는
주님의 믿음이 개입해서 나온 새이름이 바로 교회 라는 새신부이다는 겁니다.
(마 19:13, 개역) 『때에 사람들이 예수의 안수하고 기도하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마 19:14,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하시고』
(마 19:15, 개역)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거기서 떠나시니라』
(마 19:16, 개역)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마 19:17,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마 19:18, 개역) 『가로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살인하지말라, 간음하지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말라,』
(마 19:19, 개역)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마 19:20, 개역) 『그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또 대조를 이루는 인물이 있지요
밤에 몰래 찾아온 바리새인 니고데모 요한복음 3장
(요 3:1, 개역)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요 3:2, 개역)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상대적으로 예수님이 직접 금지구역인 사마리아 구역에 들어가서 만난
우물가의 여인 곧 사마리아 과부 요한복음 4장
(요 4:14, 개역)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왜 이런 대조를 이룰까요?
한 쪽은 자기 이름에 걸맞는 구원받을 만한 조건을 갖추거나 갖출려고 하거나 갖추고자
예수님을 찾는 식이고
그래서 자꾸 구원문제 숙제를 풀려고 다가와요
어떻게 하면 이 숙제를 풀수 있지요 라고 말이죠
아예 이 문제 못 풀지 라고 뒤짚어 씌워요
어떻게 다윗이 자손인데 어떻게 자손에게 주여 라고 했니?
어떻게 세례요한의 권세가 사람에게서 온거니 하늘에서 온거니?
어떻게 늙었는데 다시 날수 있겠니?
(요 3:3,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 3:4, 개역)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반대로 다른 한 쪽은 예수님을 찾는게 아니라 예수님이 찾아가는 방식으로써
자기 이름 자체가 삭제당해서 자기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수 조차도 없는
이미 죽은자와 방불한 자들이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숙제 풀이를 할 필요가 없어요
주님이 대신 숙제를 다 해버리니까 말이죠
자기 숙제 자체가 없어요
이름 조차도 갈아엎어버림을 당했다 말이죠
이런 반칙
숙제를 대신 다 해버리는 반칙만이 믿음이라고 하는 겁니다.
지난 주 녹음에서
한 쪽은 법 법 법 법을 자꾸 따지고
다른 한쪽은 예수님께서 그저 사랑 그저 용서 그저 긍휼히 여겨주심 밖에 없다 말이죠
하나는 파출부 가정부 이고 법 법 법 행함 노동을 따지고
다른 하나는 아내 곧 사랑만 따지는 겁니다.
베드로야 너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말이죠
네 네 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더 잘 아십니다
진정한 의미의 이스라엘은 바로 이런 주의 이름을 담고 있다 말이죠
주의 이름을 담은 그릇이 이스라엘 이니까 말이죠
이 주의 이름이 담겨져 있지 않는 자는 이스라엘이 아닐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원수 이다는 겁니다.
그러니 주의 이름은 이 원수에 대한 전쟁이다 말이죠
주님은 오로지 마귀만을 상대로 하신다 말이죠
인간 상대 안해요
어라 그런데 인간이 자꾸 마귀의 편에 서더라 말이죠
니가 거기서 왜 나오냐 말이죠
근데! 니가!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사랑을 믿었었는데
발등을 찍혔네
그래 너 그래 너 야 너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자꾸 자꾸 죽은 자의 하나님 편에 서요
사탄아 썩 물러가라 너는 사람의 일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는다 말이죠
더 기가막힌 것은 하나님을 안다 라는 이스라엘 조차도
주의 이름을 담는 그릇의 기능이 아닌
자기 이름을 위하여 하나님을 끌어당기는
자기 이름을 하나님이라는 그릇에 담을려고 해요
하나님의 원수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내가 주의 이름을 담는 그릇으로써 내가 죽고 주님께서 사시는게 아니라
그 반대로 하나님을 그릇으로 삼아서 내 이름을 담고자 하니 하나님이 죽고 내가 사는 식이더라 말이죠
거짓선지자가 이런 식으로 유대사회를 다 장악한 겁니다.
포로 전에 이런 거짓선지자의 활동을 괜히 보여준게 아니다 말이죠
포로 후에는 그 일송정 푸른 솔이 선구자가 다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악한 영이 들어간 자가 이스라엘을 포기 할까요?
절대로 포기 안해요
그 사라진 거짓선지자의 역할을 바리새인이 함으로써
여전히 마귀가 유대사회를 다 장악한 겁니다.
그래서 마귀의 세가지 시험을 받아요
유대인이 원하는 메시아 상을 까발리는 거죠
바로 이런 원수
그 원수를 겨냥한 전쟁을 펼치시는 분이 주의 이름이다는 거죠
주의 이름이 바로 예수 이거든요
임마누엘 이다 말이죠 니 하나님과 내 하나님이 다르다 라고
하나님을 갈아엎을려고 오신 겁니다.
주의 이름은 적군이 먼저 있고 그 적군 원수를 겨냥해서 싸우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적군 중심에서 이제 전쟁을 통해서
승리를 이동 시키느냐 마느냐의 문제이지만
새 일이란 그게 아니다 말이죠
즉 역사적인 시공간 순서가 아니라
주의 이름이 먼저 떳고
이미 먼저 떳고
후차적인 승리의 증상물로써 원수를 뒤에 들추어내시는 방식이다 말이죠
그래서 가룟유다 보고 어허 유다가 너가 맡은 일을 어서 하지 않고 뭐하냐 라고 하시는 이유입니다.
인간은 시간을 순서상으로 세고 있지만
주의 이름은 종말로부터 시작한다 말이죠
그래야 아 이래서 우리는 망해야 함이 마땅하다 라는
우리 또한 하나님의 원수된 자리에서
주의 이름의 승리를 외치도록 되어 있다 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편에 서서는 승리를 외치는 자가 아니다 말이죠
유대인들이 다 이랬잖아요
어라 그 하나님이 알고보니 자기 이름을 위하여 끌어들인 우상이였던 거죠
도리어 자기 이름을 삭제 시키는 주의 이름인데 말이죠
주의 이름이 아닌 자기 이름을 여전히 고수 할테니까 말이죠
주의 이름만이 하나님의 원수가 드디어 숨어있다가 그 내막이 드러나도록 하시는 겁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원수를 이긴 이 주의 이름의 승리를 외치는 자가 바로
주님과 한 몸을 이루는 겁니다.
정작 나는 하나님의 원수가 아니다 라고 하는 자는 한 몸을 이루지 못하고
여전히 자신의 몸 구원을 외치는 겁니다.
도리어 자신은 하나님의 원수 맞다 라고
자신의 몸 구원은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라고
주님의 몸만 구원해 달라고 외치는 자입니다.
나는 죽어야 하고 당신은 살아야 하기에 말이죠
그는 흥하고 나는 패해야 한다 쫄딱 망해야 한다 라고
이스라엘의 기능이 비로소
한 몸의 기능이 비로소 나타나는 겁니다.
그러니 사도의 터 위에 세워진 교회는 예수님을 머릿돌로 했기에
자기가 죽어야 남이 사는
죽이시기로 작정된 세상의 미말에 찌끼가 된 선지자처럼
한 몸을 부활하시는 겁니다.
산자는 예수님 뿐입니다.
처음 아담은 다 죽은 자입니다
(창 2:7, 개역)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 2:7, 새번역) 『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 ㉡히, '아다마' ㉢히, '아담'』
(고전 15:45, 개역)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고전 15:45, 새번역) 『성경에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고 기록한 바와 같이, 마지막 아담은 생명을 주시는 영이 되셨습니다. / ㉭창 2:7(칠십인역)』
(고전 15:45, 공동) 『성서에 기록된 대로 ㉠첫 사람 아담은 생명 있는 존재가 되었지만 나중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적 존재가 되셨습니다. / ㉠창세 2:7.』
(고전 15:45, 쉬운) 『성경에 “첫 사람 아담이 살아 있는 존재가 되었다” 고 기록된 것처럼 마지막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이 되었습니다.』
(고전 15:45, 킹흠정) 『그러므로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살아 있는 혼이 되었더라,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셨느니라.』
(고전 15:45, 한글킹) 『따라서 이와 같이 기록되었으니 "첫 사람 아담은 살아 있는 혼이 되었고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느니라."고 하였노라.』
(고전 15:45, 현대인) 『성경에 `첫 사람 아담은 산 존재가 되었다.' 라고 쓰여 있으나 마지막 아담인 그리스도는 생명을 주시는 영이 되셨습니다.』
(고전 15:45, 현대어) 『성경에 기록된 대로 첫사람 아담은 인간의 몸을 받아 났지만 마지막 아담인 그리스도께서는 생명을 주는 영적인 분이십니다.』
첫아담은 산 영 이다 라고 했을때에
번역 조차도 무슨 말인지 헷갈릴수가 있는데
그냥 육체이다 물질이다
오호 존재 이다 라고 이 번역이 제대로 되었네요
즉 기능이 아니다 라는 겁니다.
상대적으로 존재와 기능이듯이
존재 이전의 것이 기능이거든요 당위
육체 흙 이라는 물질 이전에 영이 있었다 말이죠
존재는 살아 있다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죽은자로 봅니다
그러니 죽은 자의 하나님이다 말이죠
살아있다면 외부에서 선물을 줘요 글쎄
살아있으니까 말이죠
그러나 존재에게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선물이 없어요
왜? 죽어있으니까 줄수가 없지요
그래서 존재는 자기 스스로 내부에서 숙제를 하든 문제를 풀든
자기 내부에서 해결을 해야 한다 말이죠
그래서 존재 라는 죽은자의 하나님을 따르는 자가 바로
사두개인으로써 나타나는 겁니다.
외부에서 주어지는 선물이 없기에
자기 쪽에서 해결하는 방식이 바로
부활이 없다 라는 거죠
그러니 사랑이 아니라
번제와 제사만을 지키면 된다 라는 겁니다.
졸지에 사랑
곧 부활 곧 한 몸이 생겨 버리면
모세 5경과 충돌이 되는 모순이 발생한다는 거죠
사랑은 금기를 깨뜨리면서
그 법을 깨뜨리면서 다가오는 겁니다.
그러니 법을 쥐고 있는 이상은
이 사랑이 이해가 될 수가 없다 말이죠
말이 안되거든요
자꾸 말이 안되는 것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다고 하니까
진짜로 말이 안되는 비논리적이고 비이성적인
무논리 그런 것만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성경은 법이 아니라 사랑만 기록되어 있다는 겁니다
하라 하지말라가 하나도 기록이 되어 있지 않고
오직 사랑만 기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분절
기존의 하나님을 뜯어내기
하나님 자신이 심판하시고 하나님 자신이 심판 당하시는
우리 하나님이 달라졌어요
이탈리아 천재 화가의 명작 마르시아노 전투를 조루즈 바사리 라는 화가가 그린 그림 벽화인데
더 유명한 천재 다빈치가 그 같은 벽 뒤에다가 자신의 그림을 그렸다 말이죠
앙기아리 전투 라는 제목의 미완성 그림을 말이죠
blog.daum.net/uwarri5/445
blog.daum.net/tumblerkim/7774
imnews.imbc.com/replay/2012/nwdesk/article/3035003_30413.html
서프라이즈는 못 봤고
책에 나와서 검색을 해 보니 이런 내용이더라 말이죠
구하라 찾을 것이다 라는 문구를 적었는데 500년 만에 발견한 거죠
즉 이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인간들이 금기시 해버린 성역 거룩화해버린 성역
즉 법화 되고 이데올로기화 된 그 법을 깨뜨리지 않으면
그 법에 가려진 진짜 실체
그림자 위에 있는 실체
오히려 그 실체로 인해 그림자가 드려진
결국 인간은 무조건 이유 없이 그림자처럼 어두운 눈이다 말이죠
그림자 치고 빛나는게 없어요
왜? 실체가 아니니까
사라진 반사된 빛인냥 사라질 영광도 얼마나 영광되냐 라고 죽어도 안 벗는
그 그림자 어두움을
주님은 벗기셨다 말이죠
그러니 하나님이라는 금기를 예수님이 깨뜨리지 않으면
빛은 없어요
가짜 하나님으로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것을
그것도 가짜 인간이 말이죠
진짜 인간 진짜 이스라엘 딱 한 사람 남겨둔 한 씨 덕분ㄷ에
진짜 이스라엘이자 진짜 하나님이
그 금기시 된 이스라엘을 깨뜨리시고(거짓선지자는 절대로 이스라엘 망할 리가 없다
참선지자 어서 빨리 망했뿌라 진짜 현실이 떳는데
무슨 놈의 가이사 형 세상이 왜 이래 따져본들
그럼 제대로 만들면 달라질 것 같냐 말이죠
창조주란 기존의 창조를 허물거든요
그런 창조주를 이스라엘은 믿어본적이 없다 말이죠)하나님 조차도 깨뜨려요
죽은자의 하나님 말이죠
금기를 깨뜨림으로 인해서
사랑이
인애와 자비가 나오니까 말이죠
율법의 완성은 남을 사랑하는 거니까
즉 의문의 증서를 다 찢었다 라는 겁니다.
그 바이사의 그림도 명작이다 그런데 그 틈 뒤에 더 유명한 다빈치의 걸작이 있다 말이죠
기존의 바이사의 명작을 뜯어내지 못하면
새로운 걸작을 못 누린다 말이죠
그래서 2012년? 유럽이 발칵 뒤집어 지면서
기존의 바이사의 명작을 사수할 것인가
다빈치만 명작이냐? 바이사도 명작이다 라고 개그콘서트의 남성인권보장 위원회처럼
사수해야 한다
아니다 뜯어서 금기를 뜯어서 더 나은 걸작을 봐야 한다 라고 논쟁이 벌어졌다 말이죠
아마 아직도 해결이 안되었겠죠
인간이란 어떻게 해서든 둘 다 양다리 걸치는 방식으로 해야
평화가 된다 라고 하지만
주의 이름의 승리는 반드시 주의 몸 이 한 몸에 의한
하나님의 원수를 들추어내시면서
자신의 오른손 구원의 손
승리의 손을 나타내시는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발등상에 놓여지는 원수가 드러나지 않는 이상 구원의 손은 없는 거죠
부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이 부활을 얼마나 엉터리로 믿는지를
이 사두개인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말이죠
바리새인의 부활이 있다 라는 것 역시
사두개인의 사고방식과 매 마찬가지입니다.
맹 같아요 안동 사투리 맹
시형제 결혼법이 모세 5경 안에 있어요
그 안에서도 서로 부딧힌다 말이죠
심지어 시아버지 유다와 며느리 다말 사건 조차도
모세 오경 바깥이 아니라
모세 오경 안에 있어요
결국 사두개인은 스스로 모순 됨을 나타내고 있는 겁니다.
어떻게 남자 여자가 한 몸으로써
형수와 시동생이 한 몸이 되느냐
더럽다
그러니 부활도 없고
천국도 없다
심지어 사두개인의 신학은 천사도 없다 라는 식이지요
문자 고대로 믿는 세대주의 라는 이단 보다 더한 이단인 정통이라고 우기는 자들이다 말이죠
바리새인 보다 자신들이 더더더 정통이다 라고 자꾸 정통을 우려 먹어요
그만큼 멋들어진 고상하고 품격있는 그런 구원을 추구한다 라는 겁니다.
설마 하나님의 저주인 더 더러운 십자가에 하나님이 달리실 이유가
그들에게는 눈꼽만큼도 있을수가 없는 거죠
그런데 하나님 자신이 바로 그런 금기를 깨뜨려요
법을 깨뜨리십니다.
그리고 그 심판을
하나님의 심판주로써 하나님 자신이 심판 당하시는 겁니다
바이사의 그림을 찢어야 그 뒤에 있는 다빈치의 명작을 만날수가 있어요
그럼 우리는 이 바이사 그림과 함께
율법과 함께 죽어야 합니다.
율법이라는 언약은
곧 모세언약이지요
율법 언약은
영으로 새롭게 다가온 영원한 새언약으로 인해 폐지 되었다 말이죠
그러니 율법은 바로 영의 반대인 이 육체와 함께 십자가로 인해 영원한 새언약으로 인해
찢겨지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의 육도 함께 죽는 겁니다.
그리고 주의 몸만 다시 사는 거다 말이죠
이것이 이런 내용이 담겨진 것이
시형제 결혼법 이다 말이죠
법은 법인데 법을 찢지 못하면
무슨 소리인줄 내용은 모른채
앙꼬는 다 버리고
껍데기만 취할 수밖에 없다 라는 겁니다.
그 껍데기를 예수님이 와야
그냥 예수님이 아니지요
인간의 하나님을 찢는
예수님의 하나님
곧 그가 하나님이시지요
그 금기를 깨뜨려야 실상
믿음을 비로소 보게 됩니다
산 소망을 육이 아니라 성령으로 인해 가진다 말이죠
즉 이 말은 그 이전에는 죽은 소망
죽은 자의 하나님만 믿었다는 거죠
그러니 산 자의 하나님
곧 예수님의 하나님이
껍데기를 찢어줘야 비로소 알맹이
시형제 결혼법에 나타난 사랑 긍휼 인애와 자비를 비로소 보게 되지
예수님이 오시지 않으면
십자가라는 영원한 언약으로 율법을 찢지 아니하면
또 사랑은 냅따 버리고 껍데기만 먹는
어두운 그림자만 대따 배터지게 먹는
번제와 제사만 지키는 겁니다.
율법사가 예수님에게 다가와서
참으로 잘 다가와요 얼마나 적극적이냐 말이죠
구원을 얻을수 있다면야 무슨 짖이든 못하겠냐 말이죠
그럼에도 진정한 목마른 자가 아닙니다
배불러 터진 멋들어진 구원
고상한 믿음
거룩하고 깨끗한 부활을 바라고 있지
예수님의 족보처럼 더러운 여자가 있으면 안된다 라고 배불러터진 부활을 바라면서
율법사가 큰 계명 두 계명을 지켰다 라고 날 좀 인정해 달라
구원해 달라고 합니다.
우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한 것일까요?
주의 이름 앞에 자기 이름을 내세우는 겁니다.
그래서 오냐 그럼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은 누구냐 라고 묻습니다.
제사장도 더럽다고 지나가고
레위인도 시체를 만지면 안된다고 지나갔다 말이죠
그런데 더러운 개같은 이방인 사마리아인이 그 강도만난자를 살려내더라 말이죠
누가 이웃 사랑하는 자 이냐 말이죠
누가 고아 과부 나그네를 신원하는 자 인가?
형수에게 장가들어서 기업을 물려주는 겁니다
어라 그런데 어차피 내 기업이 안 될 것
말라꼬 아이를 낳아주냐
여자가 아이를 낳음으로 인해 구원 얻는다
사랑 받는 아내가 된다 라고 했는데
어차피 내 아이가 되지도 못하고
결국은 기업 재산 돈이지요
내 재산도 내 아이도 못 될껀데
말라꼬 아이를 낳아주냐 라고
바로 시동생 오난 시아버지 유다의 둘째 아들
오난 이름 맞나 싶어서 검색해 보니
아 오나니즘이 여기서 나왔다 라고
자위행위이다 말이죠
그래서 하나님이 오난을 죽여버리니까
또 시아버지 유다는 너 때문이야 너 때문이야 간 때문이야 간 때문이야 라고
며느리에게 독박을 씌운다 말이죠
즉 주의 이름을 위한게 아니라
시형제 결혼법의 정신인 약자보호법의 정신인 사랑이 아니라
자기 이름을 위하여
미쳤다고 남 좋은 일 하냐 라고 나온다는 거죠
자기만의 만족만을 위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원수이다는 겁니다.
마치 모세에게 이혼 증서를 써 달라는 것과 같다 말이죠
강도 만난 자를 시체 만지면 안된다 라고 율법 지켜야 한다고 하는 모습
알고보니 아예 처음부터 율법 지키고자
말씀 지키고자 한다는 자체가 자기만족
자기 이름을 위한 것이지
주의 이름을 위한 것이 아니였다 말이죠
이 주의 이름이 펼치시는 전쟁의 승리를 거부하는
하나님의 원수 노릇을 하더라 말이죠
그래서 시아버지 유다가 다말 보고
그가 나 보다 옳았다 라고
너의 하나님이 진짜요
나는 가짜 엉터리 하나님을 믿었다 라고
이 시아버지 라는 금기의 영역을 깨뜨리는 겁니다.
시아버지의 하나님을 깨뜨려요
그 정도로 며느리 다말은 부정한 창녀의 노릇을 하면서까지
하나님을 깨뜨리지 않으면
부활은 없다 라고 나오는 믿음이다 말이죠
뭘 믿고 저렇게 하냐 말이죠
다른 사람 같으면 벌써 포기하고
아예 시도 조차
아니 아예 생각 자체가 없잖아요
우리가 금식에 대해서 살펴봤죠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은 막먹고 막마시고 막춤추는 것이 금식이라고
왜? 죄인과 함께 잡수심이라는 사랑이거든요
죽은 자를 살리는 산 자의 하나님이거든요
그런데 인간의 금식은 법입니다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 라는 종교오락 게임이다 말이죠
그카다가 진짜 전쟁의 신 여호와의 이름을 만나면 우짤래요
시아버지 유다가 그 오락게임이 된 믿음을 비로소 손 놓아요
사도바울이 비로소 율법지키기 라는 종교오락게임을
누가 누가 이기냐
제자들의 누가 크냐 라는 싸움을
진짜 전쟁인 십자가의 전쟁에 의해서 이름을 삭제 당함으로써
비로소 그 종교오락게임을 손 놓게 됩니다.
바로 앞의 글 암몬의 멸망은
이스라엘 멸망을 보고 아이고 꼬시다 야호 신났다 이런 기쁜소식일수 있나
정작 이스라엘은 나쁜소식이고
암몬에게는 기쁜소식이다 말이죠
이스라엘 멸망이 말이죠
그런데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죽음으로 인해서 남을 살리는 겁니다.
내 죽을께 너 살아라 라꼬
며느리 다말 내가 죽어 주마
시아버지 유다 너가 살아라 라고
세가지 물증을 줍니다
도장 도장끈 지팡이
창녀와 한 몸이 된 증거물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원수로 들통나지 않으면
나를 뜯어내지 않으면
그 뒤에 숨겨진 사랑의 의미
부활의 의미를 모른다는 겁니다.
이 전쟁
이상한 전쟁이지요 총도 칼도 쓰지 않는 희한한 비유의 비밀의 전쟁
그가 나보다 옳았도다 즉 그가 나를 이겨서 승리했다는 겁니다.
두 그림의 제목의 공통점이 전투입니다.
마르시아노 전투 앙기아리 전투
아무리 내가 일만 군사를 가지고 있어도
저쪽이 이만군사 이다면 어서 어서 항복 하고서
화친을 청해야 안 죽는다 말이죠
즉 저쪽이 산 자이고
나는 죽은자입니다 라고 나와야 한다 말이죠
성전에서 두 사람이 기도하는데
세리의 기도는 나는 죽은자입니다 라고
산자를 비로소 만났다
주의 이름을 만났다
그 이름 앞에 나의 이름은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구나 망했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왜? 사망의 몸이냐
새 언약이 몰고온 산자의 하나님에 의해서 나는 죽은자로 판명이 났다
지옥갈 자로 판명이 났다는 겁니다.
시아버지 유다는 어딜 감히 이 약속의 가문에
개같은 이방인 여자가 와서
우리 약속의 가문을 다 망치느냐
저 여자 때문에 우리 아들이 죽어나가겠구나 라고
그런데 오히려 약속에 충실했던 충성 봉사했던 자는 며느리 다말이였다 말이죠
약속의 가문을 이어야 한다 라고 자꾸 자꾸 막내를 달라고 했다 말이죠
그 모습이 얼마나 더러운 창녀처럼 보였겠냐 말이죠
누가 진짜 창녀인데?
누가 하나님의 원수인데?
오난이 왜 죽었는지 모르니 말이죠
저 년 때문에 죽었다 라고
비로소 물증을 잡았다고 좋아라 했는데
도리어 물증을 잡혀 버렸다 말이죠
그 물증이 바로 자기가 임신 시킨 배불러옴이 아니냐 말이죠
이렇게 수치스러운 방식으로
이 어리석고 미련한 불의한 십자가의 방식으로만 주님은 일하십니다
주의 이름의 전쟁 이다는 겁니다
안 그러면 그 고상하고 숭고스럽게 거룩하고 성화되고
멋들어진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그런 큰자의 모습의 부활
그런 구원
그 금기를 못 깨뜨린다 말이죠
오히려 쪽팔리는 구원을 손사래 치는 박땡선 목사 말처럼
성화 되어야 한다고 해야 사람들이 몰릴꺼 아니겠냐 말이죠
거봐 거봐 박땡선은 수준낮은 성화야
우리는 수준 높은 고차원적인 성화이다 라고 이광땡 목사는
사람들이 많이 모일까봐 소수로 작은 수로 하겠다 라고
또 사기를 쳐요
사기치는 박목사 위에 날라다니는 사기꾼 이목사가 있더라 말이죠
둘다 멋들어진 고상한 구원, 부활, 믿음을 추구해요
모욕적인 십자가 곧 영원한 새언약에는 관심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여전히 시아버지 유다처럼 배불러 터져 있다 말이죠
부활이란 바로 이런 하나님과 원수된 가짜 부활의 바닥을 뜯어내면서
자기 몸을 부활 시키고자 하는 온갖 방법들을 다 들추어내시면서
십자가의 죽음으로 향하시는 겁니다.
내가 죽을께 너 살아라 라꼬
이 섬기심이라는 인애와 자비가 오지 않으면
우리는 의문의 반복으로써 부활을 의문으로 자꾸 만들어요
죽은나사로 사건에서 사랑한다메? 사랑한다면서 이리 늦게 왔냐 라고
마치 그렇게 되길 바랬다는냥
암몬처럼 아하 아하 야호 야호 비아냥 거리더라 말이죠
그래놓고 자신들이 어떻게 나사로를 사랑했는지를 보여주는데 있어서
정작 사랑은 안하고 죽은 자를 살리지는 않고
제사 비용 장례 비용을 아까주는 두레박 정신을 펼치는 번제와 제사를 드리더라 말이죠
그래야 비웃음 당하지 않는다 라고 법을 자꾸 지켜요 지켜 법을
예수님이 저들의 울음을 보시고 우시는 겁니다.
장례식에서 울음꾼들이 대신 울어줌으로써 돈을 받는데
그 비용을 꼴에 이웃이라고 그 비용을 아껴준다고 대신 울음꾼 노릇을 하더라 말이죠
이런 상부상조 그래야 나도 그 혜택을 입으니까 말이죠
사랑은 다 날라가고 껍데기만 남은
하나님의 원수된 몸만 마구 마구 과시함에 있어서
어딜 감히 이스라엘과 나를 나눌려고 하느냐 라고
예수님께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시는 겁니다.
이게 부활 맞습니까? 아닙니다.
또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일 뿐입니다
요나의 표적은 뭡니까
바로 예수님을 비웃는 그 모습
그 원수의 모습이 들통당하는 겁니다.
이것이 진짜 부활이다 말이죠
안 그러면 또 임금삼고자 기적으로 보고 쫏아다닐 뿐이다 말이죠
진짜 부활은 뭡니까
그토록 부활 되고 싶어하는 나의 몸
나의 육체
나의 마음
나의 믿음을
지옥으로 보내지 못하는 부활은 가짜이다는 겁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구나 지옥에 마땅히 가야 하는구나
나를 회개 시키지 못하는 부활은 가짜다 말이죠
내가 알아서 하는 회개인 내 반성이 아니라
외부에서 나의 법 지킨다 라는 사실은 부조리 이거든요
나는 선함을 추구하겠다 라는 그 거짓을 까발리는
더 나은 더더더한 거짓으로
불의함으로
창녀로 온
시아버지의 권위에 달려드는
감히 며느리 주제에
감히 개같은 이방인 여자 주제에
나의 아이를 갖겠다고 창녀로 다가온 모습의 부활이 아니면
내가 음녀로 내가 하나님의 원수로 들통당하지 못하는 부활이다면
우리는 생명이 없는 겁니다.
그저 또 처음 아담처럼
존재만 반복
육체만 반복 할 뿐이지
마지막 아담의 살려주는 영
영을 못 만나요
이스라엘은 유일한 영적인 민족입니다.
지금은 신약시대에는 아닙니다 이스라엘 조차도 육체로 변했다 말이죠
지금 이스라엘 나가 가보세요 이스라엘 사람 영적인 모습 단 하나도 없어요
육체일 뿐입니다
차이성이 단 하나도 없어요
그런다고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포기 하셨을까요?
세대를 다 갈아엎어서라도 새 이름을 줘서 다 이루셨다 말이죠
그럼 지금 이스라엘은 뭡니까?
부활을 담은 그릇은 뭡니까?
교회입니다.
이제 교회 조차도 육체로 변했다고 합니다 아닙니다 처음부터 육체였습니다
오히려 잘 된 겁니다 주님의 뜻대로 기록된 말씀대로 되어 갑니다.
눈에 보이는 교회는 처음부터 아니였으니까 말이죠
그럼 진짜 이스라엘 곧 예수님과 한 몸은 누굽니까
바로 성령의 전인 주님이 직접 죽였다가 다시 살린 자입니다
죽은 자 같으나 산 자 말이죠
우리가 백날 이 교회가 되겠다고 나서도 소용없습니다.
내가 내 스스로 새 이름으로 갈겠다
그럼 외부의 작용을 무시하는 모습이니 그것도 소용없지요
그저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하나님의 원수인 자신을 십자가의 피 용서로 인해 죄를 씻어주신 자 만이
교회입니다
아무리 교회의 탈을 쓰고
심지어 유대인처럼 이스라엘의 탈을 쓰고 있어도
주님은 그런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으로써
이 십자가라는 영원한 언약으로써
새 신부로 만드시는 겁니다.
더 이상 임시적으로 주어진 그림자로써의 언약인 율법에 저촉이 되지 않는
새신부를 자기 피로 값 주고 산 자가 교회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입니다.
이 섬기심의 부활이
사랑의 부활이
죽은 자를 살리시는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는
하나님의 의
율법 외에 한 의가 덮쳐진
내가 죽으마 너는 살아라 라고
더러운 원수인 나를 신부 만드시는 신랑
끝까지 책임 지시는 새신랑이 몰고온 진짜 현실은
십자가 언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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