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13 저주받아야 할 소경된 인도자의 내용없는 맹세 (마 23,16-22)

겉치레(외식, 위선)하는 자여 화 있을진저 (마 23,13-15)
마태복음 2018 2020. 11. 29. 11:01
18-112 겉치레(외식, 위선)하는 자여 화 있을진저 (마 23,13-15)

〈마태복음 23:16-22, 개역한글, 신약성경 39 쪽, 찬송가 528장 주여 나의 병든 몸을〉

(16) 화 있을진저 소경된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17) 우맹이요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금이냐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18) 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19)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예물이냐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20) 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

(21) 또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이요

(22) 또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니라


(마 23:16, 새번역) 『"눈 먼 인도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말하기를 '누구든지 성전을 두고 맹세하면 아무래도 좋으나, 누구든지 성전의 금을 두고 맹세하면 지켜야 한다'고 한다.』
(마 23:17, 새번역) 『어리석고 눈 먼 자들아! 어느 것이 더 중하냐? 금이냐? 그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마 23:18, 새번역) 『또 너희는 말하기를 '누구든지 제단을 두고 맹세하면 아무래도 좋으나, 누구든지 그 제단 위에 놓여 있는 제물을 두고 맹세하면 지켜야 한다'고 한다.』
(마 23:19, 새번역) 『눈 먼 자들아! 어느 것이 더 중하냐? 제물이냐? 그 제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마 23:20, 새번역) 『제단을 두고 맹세하는 사람은,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요,』
(마 23:21, 새번역) 『성전을 두고 맹세하는 사람은, 성전과 그 안에 계신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다.』
(마 23:22, 새번역) 『또 하늘을 두고 맹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보좌와 그 보좌에 앉아 계신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다."』


계속해서 예수님은 껍데기를 추구하는 자들 
곧 지옥의 대표자들의 주장들을 나열하시고 계십니다
여기에 대해 저들이 반박을 못하는 이유가 뭘까요?
너무 정확하게 찍어서 증거하시니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는 유구무언의 상태가 되는 겁니다.

과연 이들만 그럴까요?
이들은 대중들이 원하는 것을 주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대중이 원하는 것을 주었기에
그들은 대중들로부터 인사 받기를 즐기고 있고
랍비라 칭함을 받기를 좋아라 하고 있는 겁니다
이들이 이렇게 된 것은 대중들 또한
또 우리들 또한 같은 사고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거짓선지자의 주장들과 백성들의 사고방식은 같다 라는 겁니다
여기에 참선지자의 주장은 백성들이 싫어하는 소리만 한다는 겁니다.
늘 삐딱한 소리만 한다는 거죠

그런데 항상 이 삐딱한 소리에 반박할 구실이 없을 정도로
그 지적에 유구무언인 식이 되는 겁니다.

오늘도 동일합니다
지난 주 지옥에서 보낸 대표자로써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그 분위기에
예수님은 이런 말씀의 실천 대가들을 도리어
지옥 자식으로 백배나 만들고자
자기도 안 들어가고 남도 못 들어가도록
두루 두루 전도하고 있다 라고
최초로 그 동안 아무도 지적 못하던
그 껍데기의 달인에게

왜? 껍데기만 완벽하게 갖추다 보니
아무도 지적을 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 정도로 제대로 된 속임수로 속였다 라는 거죠

그런데 예수님이 몰고오신 천국과 안 맞는 대표자로써
이들을 지적하시니까

이 얼마나 당황스럽기 짝이 없는
불편한 상황이 되어버린 겁니다

지적 받는 서기관과 바리새인 같은 지도자들 뿐만 아니라
그들을 존경하는 백성도 마찬가지입니다.

맞어 맞어 가만히 보니 겉치레 즉 껍데기 뿐이고 말만 그럴싸 할 뿐이지
정작 죽은자를 살리지는 못하는 
성화론이요
말씀실천이요
교리요
가르침이 아니냐 라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접을 받고 있으니
섬기시러 오신 예수님과 완전 정반대가 되더라 라는 겁니다.

인자는 섬기러 왔다 말이죠
다른 말로 죽으러 왔다 라는 겁니다.
죽은 자를 살리러 왔다 라는 겁니다
고아 과부 나그네에게 희년 기쁜소식을 전하러 왔다
이 이사야 글이 너희에게 응해 버렸다 라고 아예 선언을 해 버려요 글쎄

자 이렇게 되면 말만 하던
껍데기만 주장하던 서기관 바리새인 뭐 됩니까
똥 되 잖 아 요 똥 덩 어 리

실제적인 알맹이는 어차피 아무도 못하니까
저런 껍데기 말이라도 해 주는 자가 그 동안 고맙게 여겨져서
대접을 해 줬다 말이죠
그럼 이제 실상이 나타나버렸다면
그림자는 이제 물러가야할 꺼 아니겠냐 말이죠

네 맞습니다 맞고요 우리는 실상이 오기전 까지 그림자만 증거할 수 밖에 없습니다 라고 해야할 판국인데
우리는 왜 그림자만 증거하고 실상을 못 증거하는 진노의 그릇이냐 라꼬
비로소 처음으로 따지게 된다면

마치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이 없다가
탕자를 받아주시는 아버지의 사랑
금가락지에다가 살진소를 잡고 새옷을 입혀 잔치를 벌리시는 그 모습에
비로소 처음으로 힐문하고 따지게 되면
나는 왜 그런 긍휼을 안 베풀어주시냐 라고
비로소 진노의 그릇 다움을 나타내더라 라는 겁니다.

그런 주의 발등상에 원수로 나타남에 있어서
맞습니다 맞고요
그 동안 그림자만 쫓았군요
정작 실상이 오니 못 알아보고 힐문하고 따지고 반발했군요 라고

율법의 알맹이는 전혀 몰랐고
율법의 껍데기의 대가 달인이 되었다 라고 그 동안 좋아라 했으니
이것 보다 더 악할 수가 어디있겠냐 말이죠

그래서 정작 참선지자는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비로소 이 잃어버림을
완벽한 거룩인 영광 앞에서 

자신의 구원될 연결고리가 다 끊어졌음을
함량미달임을 보게 되는데

정작 실상이 왔어도
여전히 껍데기를 주장하고
그림자를 주장하게 된다면
구원자 곧 죄인을 구원할 유일한 원수를 사랑하시는 자
환자를 고치실 유일한 의사를
도리어 자기 손으로 죽이게 되는 줄도 모르는
그 정도로 소경이다 라는 겁니다.
이 저주 받아 마땅한 죄인임을 모른다 라는 자체가 소경이다 라는 겁니다.

말씀을 지키면 의인 되는 줄로 알고 말이죠

정작 예수님께서 제대로 된 의미를 알려주게 되면
우리는 말씀을 지킨적도 없으면서 지켰다 라고
남으로부터 의롭다 라는 소리를 듣고자 하는 의식을 가진
저 애굽왕 바로왕처럼
강퍅함으로 가득차 있음을 보게 하시는 것이 바로
예수님이 알려주시는 말씀의 취지 이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제발 물에 빠져라
제발 세 번 부인해라
제발 죽어라 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 죽음이라는 잃어버림 속에서
더 이상 아무런 구원의 연결고리를 내세울수 없는
무화과 나무 잎이 마르고
포도 열매 없고
다 쫄딱 망한
그 광야같은 지옥 속에서
바다의 큰 물고기 뱃속 그 어두운 스올 무저갱 지옥 속에서
생명의 주 되신 예수님이 비로소 길이라는 것을 보여주실때에

이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다 라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인해
우리가 추구하는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는 유대인이 원하는 구원을
다 끊어버리시고
그 어떤 연결 고리를 다 차단 단절시키심으로써
오로지 이 실상
오로지 이 믿음
예수님의 믿음으로만 가는 천국을 증거하심에 있어서
인간 쪽에서 마련한 숙제들은 다 오물덩어리임을 들추어내시는 겁니다.

오늘 역시 내용 없는 맹세
곧 맹세란 이름을 걸고 하잖아요

이 이름을 자기 이름을 위해 부르는 겁니까
아니면 자기 이름이 도리어 삭제 당하는
나의 이름을 삭제해 주시는 이름을 부르는 겁니까

이 차이를 예수님은 이렇게 언급하시는 겁니다

너희들이 말하기를 성전을 두고 맹세하면 아무 일도 없고
성전의 금을 두고 맹세했다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 라고

목사들 대부분의 주장이
성령은 단절이 아니라 개방이요 연결이다 라고 주장합니다
우리가 연결할수 없는 것을 도우사
연결 되도록 도와 주신다 라고 성령론을 그렇게 펼쳐요

그런 의미에서 인간들이 주장하는 신학의 성령론은 대부분
종교오락 게임의 도우미 일 뿐인 성령이 되는 셈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사적인 가정부인 셈이죠 누가? 성령이

만약 진짜 성령이라면 그 게임기 박살 내는 성령이시다 라는 겁니다.

인간은 여전히 교회에 와서까지
절대로 종교오락게임을 손 놓지 않는 겁니다.

성전의 금을 두고 맹세한다는 그런 분위기 자체가
이미 사적인 구원을 추구하고 있다는 겁니다
게임이요 오락인 거죠
마치 금식을 종교오락하듯이 점수 많이 딸려고 오락게임기의 점수 올리듯이 말이죠
맹세가 그렇게 되어버린 겁니다.

인간은 이것 외에 다른 할 것이 없어요

바로 이런식으로 인간은 [~~~하지 말라] 와 [~~~하라]를 
오락하듯이 해 왔다는 것을 까발리고 있는 겁니다

그래 점수 많이 나왔 었었었 어요??? 쭈쭈쭈쭈 
좀더 해보시지요? 그래 그래 일등 먹었 었었었 어요
내일 되면 또 치고 올라오는 오락의 달인들이 수두룩 한데 우짤래요? 라고
주님은 지금 종교라는 마약중독을 비꼬고 있는 겁니다.

예수님이 의도적으로 자신이 몰고온 천국의 원리를
저 바리새인과의 충돌을 통해서 왜 다른지를 보여주시는 식으로 

이것 뿐이겠습니까
저들은 아예 손 씻고 먹는 것을 율법화 했다 말이죠
그런데 보란 듯이 손 씻지 않고 먹어요
왜 충돌할려고
그래야 이 충돌을 통해서 저들이 배후세력이 누구인지
지옥 백성으로 배나 만드는 그 지옥이 보낸 대표자를 소환하듯이
충돌하실때에
저들은 반드시 거룩이라는 껍데기로 포장해야만 하고 그러니까 지켜야 하고
반대로 예수님은 지킬 필요가 없이 원인 없는 결과로
완성된 맹세 그 자체로 그냥 거룩 그 자체로써 나타나시는
그 차이를 저들과의 반대된 모습으로 증거하시는 겁니다.

그러니 어이구 게임 오락 재미있었었어용
그래 몇점 나왔니
반드시 일등 하렴 이라고
성전의 금을 두고 맹세한 것을 지키라 라고 니가 말했으니 지켜보라 말이죠

백날 해 봐라 죽은자를 살릴수 있는지
과연 산 자의 하나님인지
아니면 죽은 자의 하나님인지

성전으로만 맹세한 것은 오락 게임 축에도 못드니 아무일 없다 라고 저들은 보고 있는 겁니다
말씀 지키는 것 자체가 오락화 되지 않는 것은 지킬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겁니다.

오로지 오락화 되는 것만
즉 신학화 되고 교리화 되고 실천화 되는 것만이 오락기로써
반드시 지켜야 하는 선악이 되어버린 거죠
과연 이 쓰잘데기 없는 것에 의미를 두어야 할 까요?

그래 그래 너희들이 의미 있다고 의미를 둔 게임은 반드시 점수 많이 올려야 한다 라고
파이팅 이라고 서로 서로 부추기고 있구나 라고 놀려먹으시고

아이고 그것도 부르짖음이가 더 크게 부르짖어야 듣기지 모기소리 해서 듣끼겠냐 라고
엘리야가 바알선지자와 아세라 선지자를 비꼬듯이 했고

반대로 자신의 제단에는 불을 붙일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물을 뿌려서 단절
제발 제발 불이 붙지 않도록 하듯이
그런데 어라 불이 붙었뿟네
라고 의도적으로 원인 없는 결과

원인을 아무리 제거해도 결과를 바꿀수가 없다 말이죠
종말적인 행동이거든요

성전으로만 맹세하는 것은 아무일이 없다고 그들이 스스로 포기해 버리고
자체적으로 자발적으로 알아서 본인들이 단절시켜 버리는 겁니다
괜히 아무런 효과 없는 것 붙잡고 있어본들
의미있다고 여기는 게임을 놓치게 되고
그 오락을 귀하게 가치있게 여기는데 바쁠테니 말이죠
알아서 성전으로 맹세한 것과는 연결성을 다 끊어버리는 겁니다.

자 예수님은 마치 엘리야처럼
바알 선지자야 아세라 선지자야 너희들 신을 더 더 더 크게 불러 보라
아이구 그렇게 불러가 듣끼겠냐 라고
어서 어서 지켜 보시지
반드시 지켜 보라니깐 이라고 나오시는 겁니다.

이 얼마나 도발적이고
이 얼마나 바리새인의 속을 빡빡 끍어대시는 겁니까

의미 없다고 버린 것을 의미 있다고 가치성을 크다 라는 것을 강조하시고
반대로 의미 있다고 여기는 종교오락을 크기는커녕 그것도 큰 거냐 라고 작다 라고 폄하 하시더라 말이죠

그리고 대 놓고서 약올리십니다
너희는 성전의 의미와 기능 보다는
성전에 놓여진 돈 금을 놓고 맹세하는 놈이지

그것 때문에 이런 제도를 만들고 규칙을 만들고 하지 라고 

아예 대놓고서 너희는 마귀다
지옥에서 보낸 지옥 사자 답구나 라고 말이죠

그것을 또 말귀를 알아먹고 이들이 예수님을 이제는 거꾸로 마귀로 몰아갈려고 
하도록 하시는 겁니다.

야 이 알짤 없는 전쟁

일체 양보 없는 팽팽한 충돌

딸랑 한 명 이신 예수님과
바알 아세라 850명처럼
유대인 전체가 예수님 단 한분과 전쟁을 하는 판국이다 라는 겁니다.
오늘날로 치면 한국 교회 전부 
곧 목사 장로 교역자들 교인들 모두와 한 판의 전쟁을 벌리듯 말이죠

유대인들은 그야말로 종교오락게임의 달인들이니까 말이죠

철학 공부를 하다가 느끼는 점이 그야말로 천재들이다 말이죠 천재
예도 라는 너튜버가 그리스도의 기괴성
책은 괴물성이라고 했는데
지젝의 책 “예수는 괴물이다”
그 내용을 들어보니

자기들 오락 게임에 예수님까지 끌어들일려고 하더라 말이죠
예수님은 오히려 로마 라는 제국을 무너뜨리러 오신 것이 아니라
이미 무너졌는데 말라꼬 말이죠
오히려 철학자들이 바라는 제국주의에 도전이 아니라
제국주의에 도전하는 약자들인 유대인을
어떻게 해서든 로마로부터 나라를 독립시키고자 독립운동을 하는
하나님 나라 운동을 펼치고 있는 그 약자인 유대인들을
애굽이라고 규정하러 왔다 라는 것을
그들 천재 철학자들 중에는 아무도 말을 못하더라 말이죠

오늘 본문처럼 소경된 인도자들처럼
거꾸로 보고 있어요 글쎄

가룟유다처럼 하나님 나라 운동하고 있어요 
이들 거짓선지자인 철학자들이 말이죠
시드기야처럼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고 말이죠

오히려 예수님은 여고냐처럼
마귀에게 죽임을 당해 버리고 미끄러져서 하늘로 올라가버렸뿠다 말이죠
예도TV 말 마따나 그 어떤 접촉점이 없다 라고 해 놓고서는
성경을 끌어와서
또 게임을 해요
종교오락 게임을 해요
자기들이 그거 방금 비판해 놓고서는
비판한 그것을 끌어와서 자기들도 게임을 해요

어딜 감히 사기를 칠려고 말이죠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성전이 왜 나오느냐
성전의 기능이 바로 돈을 거룩하게 하는 겁니다
금을 거룩하게 하는 겁니다.

왜 ?

더럽거든요
너희들의 죄악을 깨끗하게 씻기는 거룩작업을 하는 것이
성전의 기능 곧 더러움을 거룩으로 이동 시키는 겁니다

그럼 성전의 기능
구약때에 성전에 있는 제사장은 
사람들이 들고온 죄악을 제물인 소 양 등등에 죄를 이동 변이 전이 옮겨서
그 죄를 거룩으로 바꾸는 기능을 했다 말이죠

주의 이름이 그런 거룩한 전쟁을 하는 이유도 동일해요

즉 에스겔 앞의 글 에스겔서에서 십계명 첫계명을 언급한 이유도
우상을 나 외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라고
우상은 언급했던 이유도 그러합니다

결국 우상 문제예요
돌삐 우상
조각 나무 우상
그런 수준이 아닙니다

탐심이 곧 우상숭배 라는 자아 자체가 우상덩어리인
나를 겨냥하고 있는 말씀이다 라는 겁니다 예수님이다 라는 겁니다
그 나를 십자가에 못 박고자 오셨다 라는 거죠

그러니 우리는 뭘 해도 사형깜입니다
뭘해도 죄인이요 뭘해도 가짜요 뭘해도 죽어 마땅한 자 이다는 겁니다.

그런 자에게만 이 말씀의 취지가 제대로 들리고
그렇지 않은 자에게는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라고
비유 비밀만 외쳐요 글쎄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수 없는 소리만 한다 말이죠

금을 거룩하게 만드는 것이 큽니까
금이 큽니까

솔로몬이 입은 황금 옷
곧 솔로몬의 모든 영광이 큽니까
아니면 들에 핀 백합화가 큽니까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말이죠

(마 6:26, 개역)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마 6:27, 개역)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마 6:28, 개역)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마 6:29, 개역)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마 6:30, 개역)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마 6:31, 개역)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마 6:32, 개역)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마 6:33, 개역)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4, 개역)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눅 12:27, 개역)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아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눅 12:26, 개역) 『그런즉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능치 못하거든 어찌 그 다른 것을 염려하느냐』
(눅 12:27, 개역)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아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눅 12:28, 개역)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눅 12:29, 개역)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눅 12:30, 개역)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눅 12:31, 개역)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눅 12:32, 개역)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눅 12:33, 개역)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눅 12:34, 개역)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뭐가 크냐 말이죠

아니 주님이 도리어 큰 것을 구하라 라는 식으로 욕망을 부추기고 있네요 글쎄 ㅋㅋㅋ

썩을 것을 구하는 놈이 세상에 어디 있냐 말이죠
썩지 않을 것을 구해야 할 것 아니냐 말이죠

너거 너거 큰거 좋아라 하잖아
그럼 큰 거 구해야지
와 작은거 자꾸 구하노 라고
대놓고서 우리를 우상숭배자 라고 비꼬시는 겁니다.

줘도 못 먹냐 라고 말이죠

아니 금이 큽니까 아니면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 큽니까
왜 성전의 기능을 무시하고
알맹이는 무시하고

왜 자꾸 무식하게 껍데기 성전에 둔 금에게 의미를 두느냐
그거 탐심 이라는 종교오락게임에 빠진
우리의 속내를 정확하게 꼬집어서 들추어내시고 있다 라는 겁니다

율법의 껍데기를 지키는데는 도사들이고 달인이지만
알맹이 곧 율법의 완성인 사랑을 = 하나님을 아는 지식(사랑)을
율법을 지켰다 라는 그 작디 작은 것 때문에
큰 것을 냅따 버리는 자들이다 라는 겁니다.

아무리 봐도 우리는 눈 앞에 보이는 금만이 가치를 둡니다
이것은 곧 내 탐심 결국 탐심도 아닌 나 만 귀하다 라는 겁니다
최종적인 나 라는 우상 만이 귀하다 라고 여기기에 말이죠
자아란 없는데 허구인데
사라질 것이고 삭제될 것이고
이전 것으로써 지나갈 것인데 말이죠

그런데 주님은 아냐 너는 하나도 귀하지 않아
성전의 기능 곧 십자가만 귀해
지난 주에 성전을 불태워 버렸잖아요
그 성전의 기능이 신약에서는
죄를 거룩으로 바꾸는 십자가가 또렷하게 다 이루어졌다 라고
십자가라는 의미로 바뀌었다 말이죠 

어딜 감히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너를 꾀고 속이고 사기를 치냐 말이죠
오늘날 목사들 아닙니까 목사와 아이돌
그의 똘마니들
밥풀떼기들

이제 그 건물 성전이라는 그림자에서 실상으로 바뀌었다 말이죠
깨작 깨작 장난치면서 46년 동안 짖는 성전을 헐라 말이죠
삼일 만에 짖겠다
이 진짜배기 성전을 제대로 성전의 기능을 보여주겠다 라고 말이죠

이 눈에 아무것도 아니 보이는 것으로 말이죠
눈에 보이지 않는 성전으로 말이죠

그런데 자꾸 눈에 보이는 것만 쫓고만 있지
왜? 나도 아무리 봐도 나는 안 보이지가 않아요
늘 보여요
반드시 나 라는 성전
하나님과 같이 된 몸은 늘 보이고 의식이 되고 귀하게 여기다 보니
다른 것을 귀하게 볼 수가 없도록 되어 있어요
그래서 너무 너무 나 자신만을 귀하게 보는 것을 좀더 넓혀보자
조금 주변에 시선을 돌리자 라는 식으로
법과 규칙을 만들어서 지키자
그래야 사회가 운영이 되고
국가가 발전을 하고
그래야 교회도 먹고 산다는 식처럼

이들은 성전에 둔 금으로 맹세한 것을 지키자 라는 그 규칙만이
유일하게 살 길이다 라는 원리와 같은 식으로 규칙을 제도를 만드는 겁니다.

그 늘 보이는 나만이 나를 의식하는 그 세계를 염두하고서 말이죠

주님은 그거는 그림자요 허구요 허상이요 우상이요
지나가는 것이고
이전 것이고
삭제될 것으로

실상 곧 종말을 끌어당기는 이 성전의 기능을 보라 라꼬
더 큰 것을 줘도 못 보냐 라고 대 놓고 지적하시는데 있어서

종교오락에 빠진 놈들은
곧 우리들은
모든 인간들은
마약 먹은 듯이 비틀 비틀 거리면서 
내 마약 빼앗지 말라고 예수님을 죽이더라 라는 겁니다.

아니 예수님도 이상해요
아니 죽인다 라고 또 죽임 당할꺼는 뭡니까
도망 치시지 않고 말이죠

테스형 제자들 말대로 도망치라 말이죠

아닙니다 죽임을 당해야
저들의 구원을 저들 스스로가 발로 차버리는 식으로
거리끼는 걸림돌로 만드시는 겁니다.

줘도 안 먹겠다는데 우짭니까
예복을 입으라고 해도 안 입어요 글쎄
혼인 잔치에 와서까지도
개인적인
사적인 세계를 펼치겠다
그 오락게임
우상게임을
절대로 자진 철거 하지 않겠다 라고 뻐티는 겁니다.
자기를 위한 구원을 펼치겠다 라고 절대로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아요

어쩔수 없죠 더 큰 것을 거부하니
그 작은 것으로 인해 지옥 갔뿌라 라고
주님이 자극을 하시는 겁니다.

아이고 그것도 용서가 겨우 남 7번 용서
좀 큰 거를 추구해야 할꺼 아니가 라고 7에 70번의 용서를 왜 무시하냐
성전으로만 맹세하는 것은 왜 아무 일도 없다 라고 무시하냐 라고 말이죠

도대체 어느 것이 큰 것인지 분간도 못하냐 말이죠

백합화 보다 못한 저 솔로몬의 옷을 추구하는 놈들아 라고 말이죠
누가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려고 하지
뱀과 전갈 독이 있는 것을 주는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냐 말이죠
성령을 주시겠다 라는데 왜 거부하냐 말이죠

더 좋다고 여기는 마약중독 종교오락 게임기가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거든요

주님은 이런 충돌을 통해서라도
저들 지옥의 대변인과의 차이로써
여호와가 누구인가를 알려 주시고자
의도적으로 저들을 배치 시키시는 겁니다.

이 섬기심을 우리는 알 턱이 없습니다
성령이 외부에서 주어져야지만 알게 되니
비로소 우리가 어두운 눈이여서
어찌할고 어찌할고 가슴을 치면서 우는 거죠

자 우는 자가 복 되도다 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알고 보니 우는 자는 예수님 혼자 뿐이였다 말이죠
우는 성령이 오셔야 우리는 비로소 우는 겁니다
곧 성령의 놀라운 탄식이 덮쳐져야 말이죠
이것이 하나님의 의가 덮쳐진 자
곧 잃어버렸다가 다시 삼일만에 다시살게 하시는
이 간극을 벌리시는 이 거룩이 덮쳐진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는 자에게 말이죠 (이사야 25: 8)

우는 자 만이
잃어버림 당한 자 만이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고아 과부 나그네 곧 죽은자에게만 희년이 기쁜소식이 되는 겁니다

죽지 않은 자가 어떻게 자기 스스로 자기가 쌓아올린 
성전에 둔 금으로 맹세한 것들을 철거하겠습니까?

더 큰 것을 보여주시지 않는 이상
십자가의 피 용서 라는 큰 것을 보여주시지 않는 이상
인간은 그게 전부인줄 알고
그 작은 것에 매달려
니가 옳니 내가 옳니
누가 크냐 니가 크냐 내가 크냐 라는
도토리 키 재기 하듯이 종교게임에 빠져 있는 겁니다

(마 6:27, 개역)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마 6:28, 개역)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이 선악의 법에서 못 벗어나는
의문의 반복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마약에
죽은자의 하나님 이라는 속임수에서 누가 우리를 건져주겠냐 말이죠
선악을 아는 하나님과 같이 된 그 의문만 챗바퀴 돌 듯이
맴 돌 뿐이다 말이죠

저는 그 예도 티비 라는 너튜버의 주장을 듣고
사실은 오늘날 목사들의 주장이 다 이래요

제가 만나본 한국 최고의 성화론자 목사도 속내는 다 이렇다 라는 것을 발견하고
헤어졌다 말이죠

복음이란 구원을 어떻게 하면 받습니까 라고 자꾸 쌓는게 아니라
성화론자들처럼 자꾸 쌓는게 아니라
그 반대로 자꾸 헤어지는 겁니다

음 그래 너도 아니고 그래 그래 너도 아니야 라고
결국 나 자신도 아니야 가 될 때까지 말이죠

그래야 귀한 것이 비로소 보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작은 것을 버려야 큰 것
곧 성전이 금을 거룩하게 만드는 것을 보게 된다 말이죠

바로 이런 작은 것에 충성치 않는데 어떻게 큰 것에게 충성하겠냐 말이죠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작은 것 금을 먼저 찾기에 바쁜 크게 멋들어진 구원을 추구하는
오락에 빠져 있다 말이죠
왜? 내가 가치 있으니까
내가 귀하니까

즉 성전의 기능은 하나도 안 귀하니까
성전 조차도 껍데기만 보니까
지난주처럼 그 어떤 연결고리 다 없애버리고자
성전도 불태워 버리더라 말이죠
성전의 기능이 더 이상 작동을 하지 않으니 말이죠
우상숭배로 도배를 했으니 원

오늘날 성전으로 돈 버는 목사놈들이 이런 소리 들으면 난리 칠 겁니다
그런 작은 놈들 그냥 버리시고요
큰 것을 추구하세요
왜 더러운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 귀한지
이 성전도 주님께서 뿌써뜨려서
더 이상 성전의 기능도 못하는 사람들의 손으로 세우는 성전 쫓지 말고
그 성전의 취지를 제대로 발휘하는 
더 이상 그림자가 아닌
실상으로써 나타난 십자가의 피 용서를 쫓으시길 바랍니다

유대인에게는 얼마나 무가치 했으면 거리끼는 걸림돌이라고 무시꺼리요
헬라인 지식을 쫓는 지혜를 추구하는 철학자들에게는
이 십자가가 어리석고 미련한
아무리 봐도 그 어떤 가치성이 없어요
예도 말 마따나 니체처럼 대속으로 사기를 치는 것 밖에 안 보여요
어떻게 한 인간이 인류의 모든 죄악을 대신해서 화목제물이 되냐 말이죠
말도 안된다 라고 말이죠
바울도 여기서부터 출발했는데
그들이 외치는 바울은 제국주의을 전복 시켰다 라는
또 또 또 가룟유다의 사상을 따르고 있어요
아무도 가룟유다가 옳았다 라고 주장도 못하는 철학자 주제에
바울을 앞장세워서 가룟유다의 사상을 추구해요 글쎄

당연히 그들에게서는 이 십자가가 말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저런데 저런 되도 않는 작은 것을 붙잡고
큰 것을 무시하고 있으니 말이죠
하나님의 저주인 십자가를 말이죠

즉 여전히 자기가 왜 저주 받아야 할 죄인인줄을 모르는
의인에게 출발하기 때문에
무슨 소리인줄 모르는 겁니다

결국 니체 이 놈도 고만 죄 죄 죄 고만 캐라 라고
박목사 라는 놈이 속내를 비로소 드러냈듯이
니체의 주장을 다 따라하는 겁니다.

그래야 니체처럼 지혜자 라는 소리 듣게 될테니

아이고 이놈들아 초등학문 이란다
왜 작은 것 붙잡냐
큰 것 좀 붙잡아라 라고
주님은 그렇게 작게 불러서 듣끼겠냐 라고
그들의 우상을 비꼬는 겁니다.

알맹이를 추구하지 않고
여전히 껍데기만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주님은 화끈하게 도전하십니다

자신이 왜 저 애굽왕 바로왕과 차이가 나는
토기장이 인지를
최초로 토기장이라고 우겼던 이미 죽은 자를 끄집어 내시면서 까지
기쁜소식을 증거하시는 겁니다.

www.youtube.com/watch?v=NAdA5WQy73w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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