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14 십일조의 의미와 부자는 삼키고 가난한자는 걸러내는 교회지도자들 (마 23,23-24)

저주받아야 할 소경된 인도자의 내용없는 맹세 (마 23,16-22)
마태복음 2018 2020. 12. 5. 22:35
18-113 저주받아야 할 소경된 인도자의 내용없는 맹세 (마 23,16-22)

〈마태복음 23:23-24, 개역한글, 신약성경 40쪽, 찬송가 528장 주여 나의 병든 몸을〉


(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24)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


(마 23:23, 새번역)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면서, 정의와 자비와 신의와 같은 율법의 더 중요한 요소들은 버렸다. 그것들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했지만, 이것들도 마땅히 행해야 했다.』
(마 23:24, 새번역) 『눈 먼 인도자들아! 너희는 하루살이는 걸러내면서, 낙타는 삼키는구나!"』


그 당시 낙타는 요즘으로 치면 고급자동차 인 거죠
그 정도로 무지 무지 신경을 써야 돈을 뜯어 먹을 수 있다는 겁니다

하루살이는 어차피 며칠 지나면 다 죽는다 말이죠 
뭐 한달 세달 까지 수명이 하루살이 이니까
아무리 신경써 본들 어차피 죽으면 
무슨 의미를 창출해 낼 수가 있겠냐 말이죠
그러니 걸러낸다 즉 무시해 버리는 겁니다

지난 주 성전으로 맹세한 것은 아무것도 안 이루어 진다 와 같은 의미로 취급받듯이
무시해 버리는 거죠
성전으로 맹세한 것 말이죠
하늘 보좌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신 의미는 반드시 무시하도록 되어 있고(곧 십자가, 요나의 표적)

반대로 반드시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에만 
모든 인간들은 신경쓰고 의미를 두도록 되어 있다 말이죠 
부자청년이 어릴적부터 말씀 지켰다 라고 
이 정도면 구원 받을 만 하지 않습니까 라고 묻듯이 말이죠
부족하면 당장 지키겠다 라고 ~~

이 땅에서 자신이 땀을 흘려서 말씀을 지키고자 한 수고로움
곧 자기 의를 쌓고자 남을 7번 용서한 것은
마치 성전에 바친 금처럼 반드시 지키고야 말겠다 라는 가룟유다의 사고방식이
사람들에게 먹혀들고 있다 라는 겁니다
(악한 무화과 나무였던 시드기야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멸공의 ~~~)

그 정도로 종교란 오락 게임으로써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식으로 전락한 겁니다

그런데 주님이 누구십니까
너 나 모르지 그래 알려 주마 라고
앞의 글 에스겔서처럼 여호와가 누구신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이스라엘은 아무리 타락을 해도 여호와가 누구신가를 보여주는 그릇으로 작용합니다
네 맞아요 토기장이가 누구신가를 말이죠

어떤 이는 나를 진노의 그릇으로 만든 분이 이 분 이십니다 라고 외치도록 되어 있고
어떤 이는 나를 긍휼의 그릇으로 만든 토기장이가 이 분 이십니다 라고 외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즉 인간이 중간에 자신의 인생을 이끌고 갈수가 없어요

아 그럼 예정론이라는 말이네

땡 틀렸어요
종교에서 말하는 예정론은 결국 인간구원론으로 귀속이 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정론이 아니거든요
종말의 예정론이 아니예요
한 인물만 말하는 것이 예정론인데
어딜 감히 인간이 거기에 왜 언급이 되냐 말이죠
끼일 틈도 없는데
종말인데
모조리 다 죽음인데
예정은 믄 예정

그런 구원 성경에는 없고요 종교오락에만 있어요
오락 게임은 항상 주체가 주인공이 나 이잖아요
그런 나를 성경에서는 인정 안해 줍니다
배제해 버립니다
개인구원 없어요
또 신학에서 배운 유기라는 용어로 또 장난칠려고 입이 근질근질 할꺼다 말이죠
신학과 철학 곧 초등학문은 예수님의 죽음에서 출발하지 않아요
개인의 죽음은 죽음도 안 칩니다
누가 예수님의 죽음에서 종말에서 십자가의 영 예수님의 마음 성령에서 출발할 자 있겠냐 말이죠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구나 ~~~~~~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내 손으로 그 구원자를 신학이라는 이름으로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교리 하는 이름으로 죽였는데 ~~~~

그러니 예정론 조차도 예수님을 말하기 위함이지
개인이 구원 받았다를 말해주는 예정론은 처음부터 애초부터 없었어요
첫단추를 잘못 낀채로 결과를 도출할려고 하니
도출이 됩니까 안 됩니다

원인 없어야만 결과가 나오지
원인이 있으면 즉 내가 주인공이다 나 구원 받았다 가 있으면(로 도착, 귀결하게 되는데)
아무리 해도 도착하지 않은 것 같아 ~~~ 의문의 반복 뿐이더라 말이죠

결과는 또 오리무중
철학자들이 말하는 즉 이들은 성화론자들이거든요
헬라인 지혜자들에게는 십자가가 어리석고 미련하거든요
그러니 철학자들 주장처럼
‘이미와 아직’ 사이의 긴강상태 라고 무지 무지 귀 따갑게 들었다 말이죠
already but not yet 올레디 벗 낫 옡

그래서 늘 유예 유보 늘 뒤로 미루어 버립니다

그러니 진리는 없다 라고 하는 거죠
공백의 상태이다 왜? 이미와 아직의 중간 사이 이니까

한 인물이다 라고 말해 버리면
자신이 말한 이런 내용들이 다 날라가 버리거든요
그러니 마침이 있다 라고 하면 안돼요
그냥 빈 여지 빈공백으로 남겨두는 거죠
마침이 오면 골치 아프다 라는 겁니다

마침이 되신 예수님이 올까봐 그들은 무신론자 곧 공백론자가 되는 겁니다.
신이 없다가 아니라 공백상태다 라고
이 공백이 주인공이다 라고 말이죠 

들뢰즈 쪽은 장난하냐 그게 없는거지 
없으면 없다고 하지 애매 하게 말 하냐 라고 신은 죽었다 라고
법이 이제 없음으로써 모든 벽은 다 허물수가 있다 라고 한다 말이죠
아버지는 없다 아버지는 죽었다 라고

저들 라깡쪽은 마침이 없고
들뢰즈 쪽은 처음이 없다 말이죠 오로지 차이 만이 있을 뿐
무한의 분절이라는 자유 밖에 없다 라고

그럼 예수라는 인물이 말라꼬 왔냐 말이죠
처음과 나중 되시는 분이 말이죠

(롬 10:4, 개역)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계 21:6, 개역)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계 22:13, 개역)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이것이 철학자 신학자들 초등학문의 한계입니다
앞의 글 에스겔에서 
이스라엘이 멸망함으로써 이스라엘의 뿔이 그 죽음 속에서 나온다는 의미를 모르듯이 말이죠

안 죽고서 깨작 깨작 장난질 하는 철학을 신학도 따라하고 말이죠
그런 신학이 성화론을 만들어서
남 7번 용서 했니 8번 용서 했니
그것으로 교회에서 서열을 매겨요 무슨 카스트 제도인가?
이방의 우상교리를 끌어와서 계급을 매긴다 말이죠

어쩔수 없어요 장로들이 그 장난의 달인들 아닙니까
주님은 성전측량 거룩측량할 때 계시록에서 말이죠
이런 장로들의 장난질을 아시기 때문에
그런 교회의 우상짖을 깨뜨리시기 위해
거꾸로 측량 하십니다
대제사장 제사장 레위인 남자 여자 이제 성전 마당뜰 바깥의 이방인 제일 끝의 고아 과부 나그네 문둥병자 소경 강도 창녀

이들이 먼저 제일 끝에 선 자들이 먼저 천국에 가도록 말이죠

괜히 줄 잘 세워주는 바람에 고맙게 시리 말이죠

그 줄 세울려고
그 계급 따질려고 얼마나 장로들이 신경을 썼겠냐 말이죠
주님이 의도적으로 그들 보란 듯이 제일 끝에 선 자들을 아이고 고맙다
저기 다 있네 라고 먼저 천국에 들여보낸다 말이죠

인간들의 판단을 다 비켜가는 식으로 말이죠

맏물 곧 십일조도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까지는 이 의미를 인간은 모르도록 되어 있어요
그럼 그림자로써 지킬려고 하겠지요

오늘날도 똑같습니다 예수님이 와도 여전히 그림자 시대의 의미로 가르치고
장난치고 사기를 쳐요
일단 눈에 보이는 교회를 운영을 해야 할 것 아니냐 라고 핑계 대면서 말이죠
사실은 돈 벌려고 하는 장사 짖인데 말이죠

십일조는 10 중의 하나입니다
그 장자가 하나님께 바쳐진 하늘에 속한 자로써
레위인에게 줌으로써

왜? 이들은 기업이 없거든요
대신 돈 벌어서 이들을 먹여 살리는 식인데
사실은 먼저 의도적으로 돈 벌지 못하도록 해서

너희들의 소속이 어디에 있느냐
하늘이냐 땅이냐를 보여주는 의미이다 말이죠

네 맞아요 그래서 히브리서에

레위인은 아브라함의 반차 라는 소속
출처가 어디냐
그 출저에서 나왔다 라는 겁니다.

(히 5:6, 개역)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히 5:10, 개역)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히 6:20, 개역)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
(히 7:11, 개역)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뇨』
(히 7:17, 개역) 『증거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반차 라고 검색하니 이렇게 나옵니다

이제 허리 라고 히브리서를 검색하니 이렇게 나옵니다

(히 7:5, 개역)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는 자들이 율법을 좇아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가졌으나』
(히 7:10, 개역)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아직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니라』

5장 6장은 예수님을 말하니까
7장에서 살펴보면 되겠지요

(히 7:1, 개역)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임금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히 7:2, 개역) 『아브라함이 일체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눠 주니라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히 7:3, 개역)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히 7:4, 개역) 『이 사람의 어떻게 높은 것을 생각하라 조상 아브라함이 노략물 중 좋은 것으로 십분의 일을 저에게 주었느니라』

십일조 십분의 일은 단순히 첫소산물의 의미 보다
오히려 가장 좋은 것 이라는 의미로써 첫소산물이다 장자이다 라는 겁니다.

결국은 장자 라는 십 분의 일 개념은
장자가 희생함으로 인해서 나머지 아홉이 십 분의 구 가 축복 받는다 라는 겁니다
바쳐졌으니까 말이죠
그러니 이 복의 흐름 복의 계통이 어디서 출발했는지 그 출처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섬김 이다는 거죠
선악 법으로 창조한게 아니라
인애와 자비로 섬기심으로 창조했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돈의 많고 적음의 복 개념이 아닌

이 섬기심의 마음이 이 계통 복의 계통으로 온다 라는 겁니다

말라기에서 온전한 십일조를 강조하시는 이유도
온전한 이라는 단어로 또 십일조 내라꼬 사기를 대부분 거의 다 치는데
온전한 의미는 마치 하나님이 기뻐하는 종말의 의미로써

도리어 죽은 자를 살리는 금식처럼
씹꼬 뜯고 맛보고 즐기는 세리와 강도와 죄인의 친구로써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술꾼이요 죄인의 친구로써 금식
종말의 금식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처럼 온전한 금식처럼

십일조도 죽은 자를 살리는 섬김의 의미 인데

이것을 유대인의 금식을 반대한다고 반대를 위한 반대 또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꼬
웃끼게도 어떤 전도사 교회? 아직 목사인가? 김용땡 벙땡교회
반대를 위한 반대 또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다가 한 바퀴 돌다 보니
역시나 유대인의 금식처럼
먹보에 술꾼에 죄인의 친구를 흉내내요 글쎄 ㅋㅋㅋ
술 마시라는 말이 아닌데
술꾼을 교회에 나오도록 유도를 하기 위한 전도를 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 말씀을 정당화 해요

거봐 너도 방종을 하지 말하고 하는거네

그럼 방종 안하면 저절로 종말이 되냐 말이죠

모든 것이 인간을 정당화 하는 인간의 출발을 말하고 있지
사람을 기쁘게 하랴 말이죠

그래서 그 뒤의 내용이 있는 겁니다
왜 세례요한은 금식을 하던데
왜 너는 먹고 마시냐 라고 말이죠

죽은 자를 살리는 금식 곧 온전한 십일조 온전한 금식은
잔치날에 누가 하냐 말이죠 아니 잔칫날에 하는 것이 온전한 금식이다 말이죠
앗 실수 여기서 중요합니다 의도적으로 삭제하지 않고 그냥 기록합니다.
잔치날에 그것도 최고의 잔칫날 혼인잔치에 하는 것이 온전한 금식 온전한 십일조 이다 말이죠

세례요한이 금식하니까 귀신들렸다 라고 해 놓고서는
이제 인자가 먹고 마시니까 그런 별명을 붙이냐 이놈들아

선지자가 애곡 할때는 울지 않고
이제 인자가 와서 피리를 부니까 춤추지 않는데

(마 11:16, 개역)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마 11:17, 개역)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마 11:18, 개역)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저희가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마 11:19, 개역)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눅 7:31, 개역) 『또 가라사대 이 세대의 사람을 무엇으로 비유할꼬 무엇과 같은고』
(눅 7:32, 개역)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을 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눅 7:33, 개역) 『세례 요한이 와서 떡도 먹지 아니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매 너희 말이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눅 7:34, 개역)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눅 7:35, 개역)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눅 7:36, 개역)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눅 7:37, 개역)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으셨음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눅 7:38, 개역)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눅 7:39, 개역)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이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더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그게 무슨 온전한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이며 십일조 이냐 말이죠

그런데 예수님 당시에 이 말라기 내용을 또 저 독사의 자식들이 시비를 걸어서
십자가의 죄 몫 세가지 중의 하나 로 만들고야 만다 말이죠

어쩔수 없어요 그들은 이 질서 깨지면 구원 없다 라고 본 겁니다
어떻게 해서든 성전을 사수 해야 하거든요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고 하나님나라 독립운동을 가룟유다처럼 할 수 밖에 없는
악한 무화과 나무인 시드기야와 같다 말이죠

이방나라로부터 특히 로마로 부터도 사수한 성전인데
어딜 감히 예수 따까리 굴러들어온 돌이 감히 박힌돌 뽑냐 말이죠

이미 그렇게 의식한다는 자체가 아무리 박혀 있어도 뽑힌 상태인데 말이죠

저 한테서 교회 빼앗길까봐 전전긍긍 하던 목사들이 많던데 얼마나 웃끼든지
굴러온 돌 박힌 돌 뽑는다 라고 헛소리나 교인들에게 퍼트리질 않나 원
교회 줘도 못해요 할 줄도 모르고
관심도 없구요 줘도 안 먹어요
복음 증거할 생각이 없으니까 별 핑계를 다 대요 글쎄
자기 철 밥통이니 뭐 ~~~~~~

아무튼 다시 히브리서로 돌아와서
10장에

(히 10:1, 개역)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히 10:2, 개역)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히 10:3, 개역) 『그러나 이 제사들은 해마다 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온전함이 나옵니다
즉 온전케 못한다 라고 말이죠
바리새인들은 온전한 십일조라는 말라기 개념으로
예수님을 죽일려고 했어요
그런데 온전하기는커녕 도리어 예수님 자체가 온전한 십일조로써
그들의 손에 죽어 주시는 겁니다.
왜? 그런 법 지키는 깨작 깨작 장난질에 손 떼라꼬

(히 10:4, 개역)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히 10:5, 개역)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히 10:6, 개역)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히 10:7, 개역)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시니라』
(히 10:8, 개역) 『위에 말씀하시기를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히 10:9, 개역)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히 10:10, 개역)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히 10:11, 개역)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히 10:12, 개역)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히 10:13, 개역)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히 10:14, 개역)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히 10:15, 개역)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거하시되』
(히 10:16, 개역)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히 10:17, 개역)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히 10:18, 개역)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히 10:19, 개역)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히 10:20, 개역)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히 10:21, 개역)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히 10:22, 개역)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히 10:23, 개역)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않고 굳게 잡아』
(히 10:24, 개역)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히 10:25, 개역)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온전한 십일조 되심 이라는 섬김이라는 희생은
반드시 원수 개념을 들추어내십니다
13절에 나오지요

(히 10:13, 개역)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즉 하나님이 기뻐하는 십일조 곧 온전한 십일조 종말의 십일조는 죽은 자를 살리는
질투의 십일조여야 합니다

캬 질투의 십일조 라고 제목을 달아야 겠넹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이 바치는 십일조는 죽은 자를 살리지 못하는
섬김과 희생의 십일조가 아닌 장난질 하는 십일조

지난주 마태복음에서 성전에 바친 금으로 맹세하더라 말이죠
이 말을 처음 듣다 보니 목사에게 속았다 라는 기분이 들 것입니다
그렇게 속았기에 억울해 할 것이 아니라
과연 성전에 맹세한 것은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라는 그 말씀을 생각해 보자 말이죠

속아서 억울하든 안 속아서 괜찮든 무관하게 정작 성전에 맹세하는 것에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라는 거짓선지자의 말에 분개하는 자는 아무도 없어요
다행이다 싶지
그게 일어나 버리면 나는 그 정도로 악한 놈이가
심판 받아 마땅한 자 인가 라고 할꺼 아니겠냐 말이죠
7에 70번 이라는 어마 어마한 용서를 받아야 할 정도로 말이죠
또 속았다고 억울하다고 일만달란트 라는 십자가의 피 용서 라는 큰 거 냅뚜고
백데라니온 하루 일당 일 데나리온 하루치가 100일 이니 3개월 딸랑 일한 것이 큽니까
16만년 죽었다 깨어나기를 몇 번 해야 합니까 한 번도 불가능 한데

그 정도로 우리는 죽은 자 인데 그 죽은 자를 살리시는 용서가 종말의 용서 아니냐 말이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용서 아니냐 말이죠
겨우 7번 남 용서로 장난치는 것과 족히 비교도 안되는 용서 아닙니까

이 죽은 자를 살리는 십일조 이어야만
원수가 비로소 발등상에 나타나는 겁니다.

네 맞아요 7번 용서
말라기의 온전한 십일조 바치자 라고 해놓고서는
돈을 원하고 있지
성전에 바치는 금으로 맹세하는 것 지켜야 한다고 하고 있지

정작 성전으로 더러움을 거룩하게 만들고자 희생하시는
예수님 이라는 온전한 십일조 일만달란트를 얼마나 무시하냐 말이죠
말이 22조 이지
빌게이츠가 16만년 모은 돈이어야 그게 상황에 맞는 계산 아닙니까
전세계의 10명의 부자가 전 인구의 반의 재산을 차지하는
그 정도로 목숨줄을 다 쥐고 있다 말이죠

검색해 보니 128조 작년 기준 재산 1위 라고
그 사람 수명을 넉넉 잡아서 100년 이라고 치고
16만년을 대입하면

128조 : 100년 = x : 16만년
 x 100 = 128조 곱하기 16만년

2,04800000E+19

일 십 백 천 만 억 조 경 해 자 양 구 간 정 재 극(10의 48승)

아 극 이라는 말이 저기서 나오네요 

대충 계산 하면 20 해 ㅋㅋ 이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말이죠
e 라는 의미가 뭔지 몰라서 ㅋㅋㅋ

비교 자체가 안되는 거죠
그런데 무시해요 글쎄
깨작 깨작 장난질이 오히려 더 귀하다 라고
나만 남았나이다 딸랑 한 명 과 아닌데 7천명과 족히 비교 되냐 말이죠
일곱이 끼여 있다 라는 말은
인간 쪽에서 제시한 숫자를 심판함으로써
(계시록에서 일곱은 완벽한 심판이자 완벽한 거룩이다 라고 했다 말이죠)

그래서 원수 개념이 나오는 겁니다
그래야 의미가 있는 
완벽히 심판을 해야지만 그 뒤에 완벽한 거룩이 의미가 있어요
앞의 글 에스겔에서 완벽한 이스라엘의 멸망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의 의미를 비로소 여호와가 누구인줄 알 듯이 말이죠

그러니 깨작 깨작 장난 치는 원수가 나오도록
이 일곱(예수님)과 한 세트를 구성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1300년 전에 죽은 애굽왕 바로왕을 쓰레기 통에서 끄집어 내시는 겁니다.

바리새인은 어떻게 하면 예수를 안 죽이겠도록 노력도 해요
얼마나 신중에 신중을 가하고자 조심해야 한다고 외쳤다 말이죠
가말리엘 가문이 그랬잖아요 바울이 그 출신이다 말이죠

그런데 냅뚜면 결정적인 성전 중심의 질서를 무너뜨리니
아무리 유예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겁니다.

그 애굽왕이 바리새인 곧 높고자 하는 모세의 자리에 앉은 자들 속에
다 스며들어버렸으니
뭐가 큰 지도 모르는 놈이 되었다 말이죠

주님의 십일조 되심 곧 축복의 계통 이라는 섬기심 희생 하심은
끝까지 섬기심의 값어치는

우리가 에스겔을 통해서 창녀 무당에게 버려진 하룻만에
태어난지 하룻만에 길거리에 버려진 그 무당의 딸에게 약속을 하셨다 라고 했잖아요

그 버려진 젖먹이 값과
하나님의 목숨 값과
족히 비교 되냐 말이죠
그 어미 무당이 돈 될 것 같으면 버리겠냐 말이죠 한 두 푼이 아쉬운 판국에
돈 안되니 오히려 누구 말 마따나 청년들 교회 밥이나 먹고 먹튀 한다고
돈 안되는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돈 되는 약대는 삼킬려고 하듯이

그 하루 살이 버려진 핏덩이를 자기 목숨 값과 바꿔치기를 하시는
이것이 온전한 십일조 인데
또 역시나 돈 거두기 위한 목적으로 십일조를 운운하고 있으니

역시 우리는 안되는 인간입니다
그래놓고 구원해 달라고 하니
웃끼는 거죠

줘도 안 먹을려고 하는 판국인데 말이죠
뭐가 큰 지도 모르고요

우리는 감당이 안되어서 손 때지만
주님은 포기 안 하십니다

반드시 마귀를 거쳐서
원수를 거쳐서
이 의미를 이 온전한 십일조의 의미를 보여주시는 겁니다.

껍데기만 외치는 그 원수들을 의도적으로 한세트로 구성해서 말이죠

그래야 그 차이를 알수 있는 겁니다
온전한 십일조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써
이 질투의 사랑을
이 일만달란트의 용서를 완성하셨다 라는 의미이라는 것을

이 참성전을 말하기 위해서 정작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은 어서 어서 누락 되어야 한다는 것을
교회를 누락 시켜야 한다는 것을
안 그러면 또 그림자에 다 속고 말테니 말이죠

여전히 그림자를 주장하는 자들이 바로 원수이다 라는 것을

큰 것을 구하지 않는 놈들이라는 것을

뭐 남 핑계 댈꺼 뭐 있겠습니까
우리가 이런 판국이니

이 십자가가 아니였으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였을테니 말이죠

그래서 자꾸 자꾸 선지자와 사도들은 자꾸 죽이시기로 작정되었다 라고
진정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는
이 온전한 십일조 위에 세워진다 라고
또 돈으로 보시면 안됩니다

주님의 희생입니다
대신 매 맞아서 우리가 나음을 입는
십의 일이 맏물로써 대신 희생함으로써 나머지 아홉이 그 희생으로 죽음 속에서 건짐 받는
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영원한 제사장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히 10:19, 개역)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러니 우리는 예수의 피를 힘입어서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으니

(히 10:22, 개역)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나아가자
온전한 믿음으로 말이죠

그리고 더더욱 그러하자 라고 합니다

(히 10:25, 개역)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즉 서로의 죄악을 감당하자 라고 말이죠

죽는거 그거 큰 상이다 라꼬
내 죽을께 너 살아라 라고

(히 10:33, 개역) 『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 되었으니』
(히 10:34, 개역)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
(히 10:35, 개역)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히 10:36, 개역)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히 10:37, 개역) 『잠시 잠간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히 10:38, 개역)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히 10:39, 개역)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뒤로 물러나지 말고 더더욱 나아가자

이것이 온전함 이라는 종말의 사고방식입니다
자꾸 자신의 죽음을 땡겨요
그 죽음에서 출 ~~~~~~~~~ 발  명수
해요

하나님이 기뻐하는 곧 믿음 없이는 기쁘시게 못한다 라는 이 믿음이란
자기 죽음을 확 땡기는 그 종말에서
곧 내 죽음도 아닌 예수님의 죽음이 내 죽음입니다 라고 거기서 출발할때에

이 원수들의 본색들이 나타나는 겁니다

그래야 죽은 자를 살리는 희생이라는 섬김이라는 온전한 십일조 아니겠습니까

비록 구경꺼리가 될 지라도 말이죠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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