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 선지자 있은 줄은 알지니라 (겔 2, 1- 7).mp3
9.94MB


21-004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 선지자 있은 줄은 알지니라 (겔 2, 1- 7)


(딤후 4:2, 개역)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사람의 모양같이 생긴 형상 (겔 1,15-28)
에스겔 2019 2021. 3. 13. 17:18
21-003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 곧 사람의 모양같이 생긴 형상 (겔 1,15-28)

〈에스겔 2: 1- 7, 개역한글, 구약성경 1152 쪽, 찬송가 257장 듣는 사람마다 복음 전하여, 260장 새벽부터 우리〉

찬송가 257장 듣는 사람마다 복음 전하여

1 듣는 사람마다 복음 전하여 복스러운 소식 두루 퍼치세 
  사람 있는 곳에 전할 소식은 어느 누구나 오라
  어느 누구나 주께 나오라 어서 와서 주의 말씀 들으라 
  하늘 아버지가 오라 하신다 어느 누구나 오라

2 오는 사람들은 지체 말고서 문 열었을 때에 들어오시오 
  우리 행할 길은 구주 예수니 어느 누구나 오라
  어느 누구나 주께 나오라 어서 와서 주의 말씀 들으라 
  하늘 아버지가 오라 하신다 어느 누구나 오라

3 언약 하신 대로 이룰 것이니 아무나 그 언약 받을 수 있네 
  받는 사람에게 생명이로다 어느 누구나 오라
  어느 누구나 주께 나오라 어서 와서 주의 말씀 들으라 
  하늘 아버지가 오라 하신다 어느 누구나 오라

찬송가 260장 새벽부터 우리

1 새벽부터 우리 사랑함으로써 저녁까지 씨를 뿌려 봅시다 
  열매 차차 익어 곡식 거둘 때에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2 비가 오는 것과 바람 부는 것을 겁을 내지 말고 뿌려 봅시다 
  일을 마쳐 놓고 곡식 거둘 때에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3 씨를 뿌릴 때에 나지 아니할까 슬퍼하며 심히 애탈지라도 
  나중 예수께서 칭찬하시리니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아멘

〈에스겔 2: 1- 7, 개역한글, 구약성경 1152 쪽〉

(1)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일어서라 내가 네게 말하리라 하시며
(2) 말씀하실 때에 그 신이 내게 임하사 나를 일으켜 세우시기로 내가 그 말씀하시는 자의 소리를 들으니
(3)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자손 곧 패역한 백성, 나를 배반하는 자에게 보내노라 그들과 그 열조가 내게 범죄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렀나니
(4) 이 자손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강퍅한 자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내노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5)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 선지자 있은 줄은 알지니라
(6) 인자야 너는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처하며 전갈 가운데 거할지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고 그 말을 두려워 말지어다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도 그 말을 두려워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 말지어다
(7)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

(겔 2:1, 새번역) 『그가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일어서라. 내가 너에게 할 말이 있다." / ㉠또는 '사람의 아들아'. 히, '벤 아담'. 에스겔서 전체에서 '벤 아담'은 '사람'으로 번역됨』
(겔 2:2, 새번역) 『그가 나에게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영이 내 속으로 들어와서, 나를 일으켜 세웠다. 나는 그가 나에게 하시는 말씀을 계속 듣고 있었다.』
(겔 2:3, 새번역) 『그가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내가 너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곧 나에게 반역만 해 온 한 반역 ㉡민족에게 보낸다. 그들은 그들의 조상처럼 이 날까지 나에게 죄만 지었다. / ㉡시리아어역을 따름. 히, '민족들'』
(겔 2:4, 새번역)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굳을 대로 굳어진 바로 그 자손에게, 내가 너를 보낸다. 너는 그들에게 '주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신다' 하고 말하여라.』
(겔 2:5, 새번역) 『그들은 반역하는 족속이다. 듣든지 말든지, 자기들 가운데 예언자가 있다는 것만은 알게 될 것이다.』
(겔 2:6, 새번역) 『너 사람아, 비록 네가 가시와 찔레 속에서 살고, 전갈 떼 가운데서 살고 있더라도, 너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이 하는 말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들이 하는 말을 너는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얼굴 앞에서 너는 떨지 말아라. 그들은 반역하는 족속이다.』
(겔 2:7, 새번역) 『그들이 듣든지 말든지 오직 너는 그들에게 나의 말을 전하여라. 그들은 반역하는 족속이다.』


2절에 하나님의 신이 임하게 되니까
죽었던 자가 일어나게 됩니다
즉 일어난다 라는 것은 비로소 하나님의 일이 시작이 된다 라는 거죠
어떤 시작? 

에스겔의 시작!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의 시작 곧 어린양의 죽음의 시작
곧 종말의 시작~~

네 맞아요
싹 다 갈아 엎어 주세요가 시작이 된다 라는 겁니다
곧 심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니
어디서 많이 봤던 장면 아닙니까

네 맞아요 모세를 일으켜 세워서
강퍅한 애굽왕 바로 앞에 모세를 보내는 장면 말이죠

(출 3:18, 개역)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려 하오니 사흘 길쯤 광야로 가기를 허락하소서 하라』
(출 3:19, 개역) 『내가 아노니 강한 손으로 치기 전에는 애굽 왕이 너희의 가기를 허락지 아니하다가』
(출 3:20, 개역) 『내가 내 손을 들어 애굽 중에 여러가지 이적으로 그 나라를 친 후에야 그가 너희를 보내리라』

(출 4:1, 개역) 『모세가 대답하여 가로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출 5:1, 개역) 『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가서 바로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출 5:2, 개역) 『바로가 가로되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도 보내지 아니하리라』
(출 5:3, 개역) 『그들이 가로되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은즉 우리가 사흘길쯤 광야에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려하오니 가기를 허락하소서 여호와께서 온역이나 칼로 우리를 치실까 두려워하나이다』

(출 4:21, 개역)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애굽으로 돌아가거든 내가 네 손에 준 이적을 바로 앞에서 다 행하라 그러나 내가 그의 마음을 강퍅케 한즉 그가 백성을 놓지 아니하리니』
(출 7:13, 개역)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강퍅하여 그들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출 7:22, 개역) 『애굽 술객들도 자기 술법으로 그와 같이 행하므로 바로의 마음이 강퍅하여 그들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출 8:19, 개역) 『술객이 바로에게 고하되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 하나 바로의 마음이 강퍅케 되어 그들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출 9:12, 개역) 『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므로 그들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심과 같더라』
(출 9:35, 개역) 『바로의 마음이 강퍅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심과 같더라』
(출 10:20, 개역) 『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을 보내지 아니하였더라』
(출 10:27, 개역)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므로 그들을 보내기를 즐겨 아니하고』
(출 11:10, 개역) 『모세와 아론이 이 모든 기사를 바로 앞에서 행하였으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을 그 나라에서 보내지 아니하였더라』
(출 13:15, 개역) 『그 때에 바로가 강퍅하여 우리를 보내지 아니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낳은 것을 사람의 장자로부터 생축의 처음 낳은 것까지 다 죽이신고로 초태생의 수컷은 다 여호와께 희생으로 드리고 우리 장자는 다 대속하나니』
(출 14:4, 개역) 『내가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 온 군대를 인하여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으로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하시매 무리가 그대로 행하니라』
(출 14:17, 개역) 『내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강퍅케 할 것인즉 그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갈 것이라 내가 바로와 그 모든 군대와 그 병거와 마병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리니』


성령이 임한 한 선지자가 떳다, 그들 가운데에 있었다 라는 것은
심판이 벌어졌다 라는 것이 됩니다

자 그럼 이 심판에서 벗어날 길은 뭡니까

네 맞아요 역설적이게도 이 심판 속에 들어가는 것이 심판을 벗어나는 구원의 길이 되는 겁니다

마치 바로 앞의 글 노아의 때에 방주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말이죠

그런데 누가 이 말을 듣겠냐 말이죠

아무도 안 듣는 귀신 시나락 까먹는 소리인 거죠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는 겁니다
들으면 바보가 되어요 바보
비정상 말이죠

누가 초상집에 가려고 하겠느냐 라는 겁니다

즉 이 말은 상대적으로 누구 말은 듣는다?
성령이 임하지 않는 자
곧 심판을 말하지 않는자
더더군다나 심판은커녕 잔치를 벌리는 자의 말은 듣는 겁니다
왜? 귀신 시나락 까먹는 소리가 아니니깐요

다들 그것이 소통이 됩니다
심판은 소통 자체가 불가능해요
뚝뚝 끊어진 단절이니까 누가 단절 될려고 심판 속으로 들어가겠습니까
심판이 없는
단절이 없는 소통이 잘 되는
와이파이가 빵빵 잘 터지는 곳만 찾아가야지

뚝뚝 끊어지는 곳에 왜 가냐 라는 겁니다

고로 한 선지자가 떳다 라는 것은
성령이 임한 자가 출현했다 라는 것은
심판 이라는 종말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고
이 철두철미한 완벽한 철거작업으로 인해
완벽한 거룩인 절대사랑의 새로운 세계인
구원이 용서가 펼쳐진다는 겁니다

고로 사랑은 이 철거작업이 아니면
올수가 없는 겁니다

사랑은 죽음 보다 강해서
죽음을 냅뚜지 않고 심판해서 소멸해서
새판을 짜는 
죽음이 없는 새로운 세계를 짜는 겁니다

그러니 어설프게 기존의 건축물들이 조금이라도 남겨질 리가 없이
싹 다 제거한 후에 새것으로 꽉꽉 채우는 식입니다

심판이 없는데 구원이 있을 수 없는 거죠

그 기준이 바로 한 선지자의 출현입니다

다른 자는 못한다 라는 겁니다

완벽한 심판인 일곱을 못 보여주고
동시에 완벽한 거룩인 일곱을 못 보여주니까

절대저주인 지옥 다운 지옥을 펼치시는 심판과
절대사랑인 천국 다운 천국을 보여주시는 구원을 7에 70번의 용서를 보여주시는 겁니다

고로 한 선지자가 떳다 라는 것은
동시에 천삼백년 묵은 애굽왕을 의도적으로 풀 듯이
그 애굽왕을 강퍅케 함으로써
애굽왕과 애굽군사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는 겁니다

네 맞아요 완벽한 십자가가 펼치는 자작극입니다

그런데 그 강퍅한 애굽이 오늘 본문에서는 누굽니까
네 맞습니다 패역한 백성 이스라엘이 졸지에 애굽이 된 겁니다

그럼 에스겔은 무슨 기능 입니까
애굽이 된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배신자요
또한 과거 애굽때에 이스라엘이 애굽을 잡는 미끼 기능이였듯이
이제 이스라엘을 잡는 미끼 역할을 하고 있는 겁니다

마치 모세를 강퍅한 애굽왕 앞에 보내어
듣든지 아니 듣든지 애굽왕 바로에게 외쳐야 하듯이

여호와과 누구관데 내가 그 신의 말을 들어야 하니
아니 내가 왜? 라고 했듯이

이스라엘 백성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에스겔은 여호와의 말씀을 이스라엘에게 전하는 겁니다
반드시 단서가 있지요
그냥 이스라엘이 아닌
패역한 백성 이스라엘에게 말이죠

즉 하나님의 신 곧 신약으로 치면 성령
예수님의 영이 임한 자의 시선으로 보면
모든 인간은 죽은 자 이다는 겁니다

마치 독수리가 주검에 몰려들 듯이 말이죠
시체 보듯이
독수리처럼
예수님도 
성령 곧 하나님의 신도
죽은자로 본다는 겁니다

모든 인간은 아니다 나는 살았다 라고 반작용으로 우기도록 되어 있다는 거죠 그렇게 되면 말이죠

그런데 다른 민족은 몰라도 이스라엘 만큼은 이 하나님의 신이 보는 시선을 담아서
모든 인간에게 보여주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뭐 실제로도 우상숭배로 망했구요
망해서 나라 잃고 포로잡혀 와서 죽은자처럼 시체가 되었구요
이런 심판은 당연합니다만
이스라엘은 그 심판 속에서도
죽음 속에서도

자기의 심판 보다
자신의 죽음 보다

심판주가 누구신가를 보여주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독수리가 시체에 달려들 듯이
마귀도 죽은 시체와 같은 인간에게 달려듭니다
늘 호시탐탐 노려요
밀까부듯이 까붑니다
그런 마귀에게 당하는게 낫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를 시체 보듯이 죽은자로 보시는
하나님의 신이 임한 자의 시선으로 죽은자 취급 당하는게 낫습니까

마귀에게 당하게 되면 나는 죽은자 구나 라고
최종적으로 실컷 지 마음대로 놀다가 살다가 자기 죽음만 보고 끝나지만

하나님의 신이 임하는 자는 제대로 된 진짜 종말이
내 죽음이 아닌
주님의 죽음을 비로소 보게 되는 자입니다

네 맞아요 마귀는 결국 누구의 죽음은 때려죽어도 못 보도록 하겠다 라는 겁니다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너희 이스라엘을 보내주겠냐 라고 나온다 말이죠

즉 때려죽어도 어린양의 희생을 못 보여주도록 하겠다
방주에 못 들어가도록 하겠냐

정 제사 드릴려면 여기 이 애굽땅
에덴동산 같았더라 라는 이 애굽땅에서
잔치집에서 드려라

왜 자꾸 광야 라는 사흘길
그 죽음의 땅에서 어린양의 희생을 드릴려고 하느냐
허락지 않겠노라

이 놈의 어린양 희생이 도대체 뭐길래
제발 비정상적으로 굴지 말고
정상적으로 놀아라 라고

어린양 희생 곧 십자가의 죽음 자체가 떳기에
애굽왕 바로왕은 강퍅케 되는 겁니다

십자가가 안 뜨면
어린양의 죽음이 안 떳다면
바로왕은 강퍅해 질 이유가 전혀 없어요

어떻게 해서든
장대 높이 달린 인자의 죽음을 못 보도록 하겠다 라는
정상인이 되어라 야들아 제발
비정상적인 미친놈 되지 말고

그 어떤 제사도
초상집과 같은 광야에서 안 드린다
축복을 바란다면
잔치집에서 벌려야 되지 않겠니

시집가고 장가가고 먹고 마시는
이 잔치집을 멀쩡히 내버려 두고
왜 초상집에 가서
우는 자리에 가서
슬픈 자리에 가서 예배를 드릴려고 가니

잔치집에 가야 하지 않겠니

이 말은 아무리 봐도 세상은 갈아 엎힘 당해야 할 이유가 없다 라는 겁니다
즉 살아있네 라고 산 것으로 보고 있다는 거죠
그 속에 살고 있는 그 땅에 발 딛고 있는 인간이라는 자아도 죽을 이유가 없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한 선지자의 시선은 다릅니다

바로 그렇기에 갈아엎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미 하나님의 계획이 떳는데
구원이 떳는데

아니 종 되었던 적이 없는데 무슨 자유케 하냐 라고
너 미친놈 아니냐 라고
요셉이 아들 주제에 믄 개소리냐

뭐 구원하겠노라 라꼬 ~~~~~~~~~~~~


예수님 당시에도 그랬듯이
오늘날도 그렇구요
또 에스겔 때도 마찬가지이구요
노아의 때와도 같다는 겁니다

다들 귀신 시나락 까먹는 소리로 들려서
더더욱 강퍅케 되는 겁니다
즉 비정상인이 될까봐
완강하게 거부하는

아니 누가 잔치집에 오라는 것을 거부하고
초상집에 가겠냐 라는 것이다 말이죠

나는 살아 있지

죽지 않았다 라고 말이죠


그런데 하나님의 신이 임한 자는 모든 인간은 죽은 시체로 보고 있다 라는 겁니다
다시 한번더 더 더 더 강조합니다
죽은 겁니다

아니 바벨론 포로 속에 집어 넣어도
여전히 인간은 자신을 죽은자로 안 봅니다
거기서 또 장사하면서 돈 벌어 먹고 살면 되거든요

다시 70년 지나서 다시 되돌아 가라 라고 했을때에
그 동안 돈 벌어서 가계점포 채려서
겨우 겨우 사장이 되었는데

이거 다 버리고 또 다시 예루살렘 그 허허 벌판 광야에 가서
다시 시작하라꼬?
젊은 시절 다 지나갔는데
이제 노후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다 버리고 뒤 따르라꼬 ~~~~~

미친 놈이나 할 짓이다 말이죠

네 맞아요 살아 있다고 주장하는 자에게는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한 자에게는

곧 잃어버린 자에게는
죽은 자 에게는

이 하나님의 신이 임한 자의 소리만이 유일한 자유케 하는 소리입니다
왜? 종 되었던 적이 없는게 아니라
종이 되었기에
포로 되었기에
갇힌바 되었기에
억눌린바 되었기에

이 종말의 영이 임한 자의 외침은 희년 곧 기쁜소식이 되는 겁니다

이 우는 자의 소리가 말이죠
슬피 우는 광야의 외침이 말이죠

유일한 복음이 되는 겁니다

주님의 바로 이런 시선이야 말로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소식인지 모르는 겁니다
나를 죽은자로 보신다는 자체가
그렇게 보고있는 선지자를 보내신다는 자체가

나를 제대로 고치실 의사이다는 것이거든요

세상을 갈아엎고 새 판을 짜듯이
나를 제대로 갈아 엎고서 새사람으로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라고

비로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슬피 우는 자로 보신다는 자체가
새 것이 떳기에
한 선지자가 떳기에
하나님의 신이 임한 인자가 떳기에 나타난 증상이다는 거죠

지난 주에 이 인자가 사람의 모양으로써

천둥도 아니요 큰 지진도 아니요 크나큰 강풍도 아닌
세미한 음성이라고 했습니다

어 나와 같은 한국말 하네

어 음냐 음냐 코쟁이 발음으로 오 디 셔 왔 숩 니 까 미쿡 쁘랑스 이탈~~리아~~
한쿡말 잘 하시네요 ~~~

같은 언어 같은 소리 같은 음성 발음이라서 해서 우리가 알아먹는 소리를 하시는게 아니다 말이죠
막 먹을 수 있는게 아닙니다 세미한 듣낄 듯 말듯한 소리 라고 해서 말이죠

크나큰 강풍 보다 센 것이 젖먹이듯이
내 열심히 특심이 나만 남은 것이 크나큰 것이 아니라

7천명을 절하지 않도록 남겨두었다
시체가 되지 않도록 살려둔
이 어린양의 희생이 크나큰 것이다

이 더 큰 것을 구하라 라고 했다 말이죠

계시록에서는 그 사람의 모양을 한 분 앞에서
완벽하게 꼬꾸라져서 머리를 팍 쳐박지 않고서는
타죽을까봐
안그러면 죽을 판국이다 말이죠
사도요한이 그야말로 죽을 판국이였다 라는 거죠

(계 1:17, 개역)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계 4:10, 개역)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계 5:8, 개역)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즉 예의상 경배라고자 머리를 숙여 엎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자동적으로 안 타죽을려고 죽은자와 같이 되어야 할 정도로 영광 스러웠다 라는 겁니다

화로다 화로다 나여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하나님의 영광을 봐 버렸구나 라고 말이죠

베드로는 살아생전에 봐 버렸어요
풍랑도 잠잠케 하심 앞에서
죽게 됨 앞에서
도대체 당신 누구시길래 풍랑도 잠잠케 되냐 라고

풍랑이라는 죽음 속에서 보게 되니
만만하게 막 먹을려고 예수님도 물 위 걷고 나도 물 위 3 걸음 걷는
마 우리 친구 아이가 우리가 남이가 라고 만만하게 봤다가
바로 꼬꾸러져서 물 위에서의 만남이 아닌
물 속에서의 만남
죽음 속에서의 만남이어야
나를 제대로 보시는 (죽은 시체로 보시는, 독수리가 주검에 예민하듯)
나도 주님을 제대로 본 (심판이라는 지옥 다운 지옥을 펼치시는 심판 주만이
죽음을 사망권세를 멸하시는 무시 무시한 심판주이심을 그 분이 나의 구세주 이심을)

이 종말의 시선이
세상이 왜 심판 받아야 함을
이스라엘을 통해서 보여주시는 겁니다

자 그럼 에스겔 또한 이 패역한 이스라엘에서 예외가 되는 사람일까요?
없어요
개인을 아무리 딱 떼어와서
아무리 특별한 사람이고
아무리 열심히 특심인 사람이라고 해도

개인은 안 따지시는 겁니다

패역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봤다 라고
이사야 선지자는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했구나 나는 시체이구나 라고 했다 말이죠
그리고 이 죽은자 이 패역한 자 이사야를 세워서
일으켜 세워서
부정함을 제거한 후에
성령을 집어넣어서

다시 패역한 백성 이스라엘 속에 집어넣어서
파수꾼 곧 배신자로 세우시는 겁니다

즉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이스라엘은 사람의 일
곧 나는 살아있다 라고 주장하는 자들 속에서

남들이 다 살아있음을 외칠때에 너희는 다 죽은자 라고
꼭 반대를 위한 반대를 외치는 배신자 파수꾼으로 세웠다 라는 겁니다

이것이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고 했지요
기생 라합
곧 죽였다가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의 의를 외치는 자입니다

이삭을 아브라함이 죽을려고 할때에
그 죽음이라는 지옥 다운 지옥을 온 몸으로 느끼면서
나는 죽은 자이구나 제발 살려주세요 라고

죽음인데 왜 살려달라고 하냐 말이죠
앞과 뒤가 모순이 되잖아요


자신을 시체인줄 아는 자만이 구원자를 바라듯이

종 되었던 적이 없는 아브라함 자손임을 우기게 된다면
자유케 하는 자는 의미가 없는

강퍅한 애굽왕 바로왕이 어떻게 해서든
어린양의 희생을 못 보도록
십자가의 죽음을 못 보도록 하는
하나님의 일을 거부하는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은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말이죠
즉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라는 겁니다

불뱀에게 물려 죽은자입니다 고쳐주세요 라고 하는 자만이 쳐다보게 되어 있지

나는 환자가 아니다
약만 주면 낫게 되는 것을 뭐 쳐다 본다고 낫겠냐
아이고 비정상적인 미친놈들아 제발 정상인으로 돌아와라

쳐다보고 나을꺼 같으면 지나개나 다 낫게
너무 너무 어리석고 미련한
무시꺼리로 왔기 때문에 거부한다 말이죠

누가 초상집에 간다고 지혜와 만나 겠냐 말이죠
차라리 잔치집에 가서 지혜로운 자가 되어버린 되거늘 말라꼬
제 3자의 개입을 바라냐 말이죠
본인이 지혜로운 자가 되면 될꺼 아니냐 말이죠

왜 자꾸 제 3자에게 자기의 운명을 맞기냐 말이죠
의사도 돈 주고 사면 될 것을
다른 의사도 새 빌었는데

문제는 대충 대충 심상히 고치거든요

오로지 나를 죽은 시체로 보는 자만이
제대로 달려들지
죽은 시체로 안 본다 라는 것은
결국 가짜의사로써 돈 뜯어낼려고 찔끔 찔끔 고쳐서
돈이나 뜯어내는 밥풀떼기로 삼아버리는 겁니다

목사들이 단번에 다 죄사함 받아 버리면
면죄부를 팔 듯이 계속해서 장사를 못해먹는다 말이죠
계속해서 빨 때 꽂아서 계속 쭉쭉 빨아먹을려면
대충 대충 고쳐야 그 전재산 다 자기 것이 된다 말이죠
그래서 더 이상 빨아먹을 것이 없는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부자라는 약대 낙타 벤츠는 삼키는 겁니다
아무리 교인이 많이 와도 목사는 짜증을 냅니다
아무도 안 와도 부자 단 한명만 있으면
좋아서 싱글벙글 좋아죽습니다

감사하게도 그런 목사든
부자든 가난한 하루살이든 모조리 다 시체로 보시는 성령 덕분에
우리는 제대로 된 새 몸으로 갈아타기 위해서
이전의 몸을 철저하게 죽이시는 철거작업을 동일하게 하신다는 것에서

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라고

이 새 성전 되신 인자의 등장 자체가 아니 기쁠수가 없는 겁니다

이전것으로써 지나가고 삭제 되고
철거 되어야 한다는 자체가 얼마나 감사하냐 말이죠

새 것이 떳기에

이 새 마음인 성령의 시선이
우리는 이전 것이고 헌 것이고 삭제되고 사라질 것이고
철거되어야 할 것이고
휴지통에 넣거서 삭제해야 할

시체로 보고 있다는 자체가

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떳도다
예수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패역한 백성 중의 한 사람으로써 에스겔 또한
우리 보다 먼저 앞서서 얻어터져서
성령이 임해서 비로소 자신도 우리도 시체로 보는
성령의 시선을 외치는 겁니다

미리 먼저 얻어터진 거죠
그러니 이제 개인 사적인 삶은 이제 에스겔에게서는 없는 겁니다
오로지 예수님의 운명만이 에스겔 속에서 나타나는 겁니다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어버린 운명 뿐이다는 겁니다

우리 또한 이제 사적인 인생은 없습니다
애초부터 그랬다 말이죠
종말을 보여주는 인생 뿐입니다

보라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라고 외치는 인생 뿐입니다

그는 흥하고 나는 쇠 해야 한다고 말이죠

(요 3:30, 개역)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주여 나는 죽은자입니다 저를 고쳐주소서
나는 죄인 이로소이다 긍휼을 베푸소서 라고 말이죠

〈시 126:1-6, 개역한글, 구약성경 897쪽, 찬송가 260장 새벽부터 우리〉

(1)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 하였도다
(3) 여호와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4)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리소서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 126:1, 현대어) 『[이제는 거두어 들이게 하소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부르는 노래] 여호와께서 우리를 예루살렘으로 데려오실 때 그땐 정말 꿈만 같았습니다.』
(시 126:2, 현대어) 『우리어 함박웃음 짓느라 입다물 줄 몰랐습니다. 얼마나 기뻤는지 노래 절로 나왔습니다. 그때 다른 나라 사람들이 말하더군요. 여호와께서 저들을 위해 정말 엄청난 일 하셨구나.』
(시 126:3, 현대어) 『그래요, 여호와께서는 우리 위해 엄청난 일 하셨습니다. 얼마나 기뻤는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습니다.』
(시 126:4, 현대어) 『여호와여, 단비 내려 메마른 강바닥에 다시 물 흐르듯 우리 땅 우리에게 다시 주소서.』
(시 126:5, 현대어) 『눈물 흘리며 씨뿌린 이들 한없이 기뻐하며 거두어들이게 하소서.』
(시 126:6, 현대어) 『울며 씨뿌리러 나가는 이는 한없이 기뻐하고 노래하며 돌아오리라. 곡식단 거두어 들고 돌아오리라.』



Posted by 김 대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