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 인자야! 자기만 돌보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 쳐서 예언하라 (겔 34, 1- 9)

기억하라! 한 선지자가 너희 가운데 있었던 줄을 (겔 33,30-33)
에스겔 2019 2021. 3. 21. 10:32
19-87 기억하라! 한 선지자가 너희 가운데 있었던 줄을 (겔 33,30-33)

〈에스겔 34: 1- 9, 개역한글, 구약성경 1204 쪽,  찬송가 209장 주의 말씀 받은 그날〉

(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2)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을 쳐서 예언하라 그들 곧 목자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자기만 먹이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 목자들이 양의 무리를 먹이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냐
(3)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의 무리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4)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어 주지 아니하며 쫓긴 자를 돌아오게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강포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5) 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며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도다
(6) 내 양의 무리가 모든 산과 높은 멧부리에마다 유리되었고 내 양의 무리가 온 지면에 흩어졌으되 찾고 찾는 자가 없었도다
(7) 그러므로 목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8)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내 양의 무리가 노략거리가 되고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된 것은 목자가 없음이라 내 목자들이 양을 찾지 아니하고 자기만 먹이고 내 양의 무리를 먹이지 아니하였도다
(9) 그러므로 너희 목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겔 34:1, 현대어) 『[이스라엘의 악한 목자들]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겔 34:2, 현대어) 『'너 사람아, 이스라엘의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 목자들이라고 하는 것들에게 이렇게 예언의 말을 전하여라. '나 주 여호와가 하는 말이다. 너희는 내 백성을 돌보는 목자들이다. 그런데도 너희는 양 떼를 돌보기보다는 너희 자신만을 먼저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이제 그 책임을 물어 내가 벌을 내리겠다! 양 떼를 돌보아야 할 목자가 그 직책을 다하지 않았으니 너희에게 조가를 불러 주겠다!』
(겔 34:3, 현대어) 『너희는 양 떼의 젖을 짜서 마시고 양털로 옷을 해입고 양 떼 가운데에서도 가장 좋은 양들만 골라 잡아먹으면서도 양 떼를 잘 먹이려고 애쓴 흔적은 하나도 없다.』
(겔 34:4, 현대어) 『너희는 양 떼가 굶주리고 허약해져도 잘 먹이지 않고 병이 들어도 고쳐 주지 않았다. 다리가 부러지고 피를 흘리는 양이 있어도 싸매어 주지 않았다. 양 떼가 뿔뿔이 흩어져도 다시 모아놓지 않고 잃어버린 양이 있어도 찾지를 않았다. 오히려 너희는 튼튼하고 좋은 양을 굶기고 천대하고 잡아먹었다.』
(겔 34:5, 현대어) 『내 양 떼는 돌보는 목자가 없어서 제각기 흩어져 돌아다니다가 온갖 맹수들에게 잡혀 죽었다.』
(겔 34:6, 현대어) 『내 양 떼들은 세계 각처의 산과 언덕을 헤매고 심지어는 수많은 민족들 사이에 뒤섞여 살게까지 되었다. 그런데도 그들을 찾는 목자도, 돌보아주는 사람도 하나 없었다.』
(겔 34:7, 현대어)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목자들아, 내 말을 똑똑히 들어라.』
(겔 34:8, 현대어) 『나 여호와가 확실히 살아 있음을 걸고 맹세하지만 내가 더 이상 바라보고만 있지는 않겠다. 내 양 떼가 원수들에게 약탈을 당하고 온갖 들짐승들에게 잡혀 죽은 것은 목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 목자라는 것들이 자기 살 걱정만 하고 내 양 떼를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겔 34:9, 현대어) 『그러므로 너희 목자들아, 내 말을 똑똑히 들어라!』


(마 23:13, 개역)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마 23:15, 개역)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마 23:16, 개역) 『화 있을진저 소경된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마 23:23, 개역)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마 23:25, 개역)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마 23:27, 개역)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마 23:29, 개역)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가로되』
(눅 6:24, 개역)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눅 6:25, 개역)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눅 10:13, 개역)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눅 11:42, 개역)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아니하여야 할지니라』
(눅 11:43, 개역)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기뻐하는도다』
(눅 11:44, 개역) 『화 있을진저 너희여 너희는 평토장한 무덤 같아서 그 위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하느니라』
(눅 11:46, 개역) 『가라사대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눅 11:47, 개역) 『화 있을진저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는도다 저희를 죽인 자도 너희 조상들이로다』
(눅 11:52, 개역)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 가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화 있을] 이라는 단어로 신약을 검색하니
누가복음 11장과 마태복음 23장이 검색이 되더군요
미치 종말의 3종 세트 비유 마태복음 25장과
잃어버림의 3종 세트 비유 누가복음 15장처럼 말이죠

(겔 34:1, 현대어) 『[이스라엘의 악한 목자들]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의 목자들 곧 지도자들을 치신다 라는 것은
대표성이기에 그들의 백성 또한 해당 된다는 겁니다

결국 목자와 백성은 한 세트로 묶여진 입장에서
주님은 자신의 백성을 따로 분리 시키겠다는 취지도 해당 된다는 것이지요

즉 양의 탈을 쓴 목자와 그의 백성들과

인자 라는 종말을 몰고온 예수님과
종말때에만 나타나는 예수님의 자녀로 철저하게 구분 시키는
이 하나님의 의(종말)을 펼치시겠다는 취지에서

자기유익만 챙기는 목자들을 동원시키시는 겁니다
마치 1300년 만에 강퍅한 애굽왕 바로왕을 쓰레기 통에서 소환하듯이
지난 주에 이들의 패역함은 결국
초상집에 못 가도록 
지혜자를 못 만나도록
노아의 때처럼
인자의 때와 같이
십자가의 죽음을 못 쳐다 보도록
광야에서 3일 길을 지나 유월절 어린양의 죽음을 못 쳐다보도록 하는 

[사흘] [광야] 검색

(출 3:18, 개역)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려 하오니 사흘 길쯤 광야로 가기를 허락하소서 하라』
(출 5:3, 개역) 『그들이 가로되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은즉 우리가 사흘길쯤 광야에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려하오니 가기를 허락하소서 여호와께서 온역이나 칼로 우리를 치실까 두려워하나이다』
(출 8:27, 개역) 『우리가 사흘길쯤 광야로 들어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되 우리에게 명하시는 대로 하려하나이다』

(출 5:2, 개역) 『바로가 가로되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도 보내지 아니하리라』

(출 3:19, 개역) 『내가 아노니 강한 손으로 치기 전에는 애굽 왕이 너희의 가기를 허락지 아니하다가』
(출 3:20, 개역) 『내가 내 손을 들어 애굽 중에 여러가지 이적으로 그 나라를 친 후에야 그가 너희를 보내리라』

(출 8:32, 개역) 『그러나 바로가 이 때에도 마음을 완강케 하여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였더라』

애굽왕의 강퍅함과 패역함을
들추어내도록 하시겠다 라는 겁니다

치니까 비로소 백성을 보내더라 말이죠

즉 구원은 심판 속에서의 구원이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깊은 뜻 이라는 구원이다 말이죠

그러니 이 사단의 깊을 것을 들추어지지 않는 이상 (곧 에덴동산과 같았더라 라는 가짜천국의 허구 허상이 무너지지 않는 이상 참구원 참성전은 나타나지 않는 겁니다)

고로 인자는 바로 종말을 몰고온 초상집, 죽음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인물이다는 거죠
누구 누구의 아들 임마누엘 이시다 라는 겁니다
이 임마누엘을 구하라 
종말의 인물을 구하라
보라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구하라 라고 말이죠
이 지혜자를 만나라 라는 겁니다

그러나 이미 세상은 죽은 세상이기에
그 죽은 시체 곧 주검을 감추기 위해서
천국으로 위장을 하고 있습니다
잔칫집으로 말이죠
세상에 즐거움이 있는냥
구원이 있는냥 행세를 하더라 말이죠

그러니 누가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겠으며
누가 노아의 때처럼 비도 안오는데 방주 안으로 들어가라 라는
한 선지자의 말을 듣겠느냐 말이죠

이렇게 즐거움이 가득한 잔칫날의 세상에 누가 초상집에 갈려고 하겠냐 말이죠

오늘 특별히 목자 라는 한 특정인들을 지목해서 지적하시는 이유는
바로 오실 메시아가 곧 인자죠
그 자리에 앉으셔서 목자의 기능을 펼치시기 위함이다는 거죠

네 맞아요 그래서 예수님 당시에 천삼백년 만에 애굽왕을 소환 시켰으니
에스겔 시대는 천년 묵은 애굽왕을 소환 하신다 말이죠
그 당시의 애굽이 아니라
출애굽 당시의 애굽왕 말이죠
강팍케 하심으로써
애굽왕과 애굽군사를 통해서 영광받으셨듯이

에스겔 때나
인자의 때 곧 예수님 당시의 애굽왕은 누굽니까
네 맞아요 지도자들

왕과 선지자 그리고 제사장들
그러니 예수님 또한 왕으로써 활동을 해야 그들이 의식을 늘 하게 됨으로써
어떻게 해서든 자신들의 기능을 대충 띄엄 띄엄함에 있어서
제대로 일하심에 대한 반발심 적개심 살인의지가 튀어나오도록 하시는 겁니다

고로 예수님은 초라하기 짝이 없는 왕으로써 선지자로써 선생으로써 활동하시게 되는 겁니다

그런 거짓목자와 대비가 되는 참목자로써
또한 거짓백성과 대비가 되는 잃어버린 양을 찾으시는 겁니다

바로 초상집에 지혜자를 만나기 위해서 간 잃어버린 자의 메시아 곧 목자로써 말이죠
목자가 떳기에 새로 발생하는 잃어버린 백성이다는 거죠

자 그럼 여고냐 왕처럼 포로잡혀서 잃어버림 속에 놓였을때에
이 메시지를 에스겔을 통해서 증거하십니다

이 여고냐처럼 백성은 포로잡혀 왔다 말이죠 바벨론에 말이죠

그러나 시드기야 왕 삼촌은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고 해서
악한 무화과 나무가 되어서 죽임을 당합니다

그런 불과 몇십년 전의 일이 이미 벌어졌는데

왜 그때는 이런 경고의 메시지를 하지 않았고
왜 지금에 와서야 너무 늦게 이미
그 못된 거짓된 목자들은 다 죽었는데
일송정 푸른 솔은 그들 선구자들은 거짓선지자들은 다 죽었는데
왜 이제 와서야 이런 메시지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 라는 겁니다

물론 그때 경고 했습니다
포로 전에는 포로전의 선지자가 있었거든요
참선지자들 이사야 예레미야 등등

그런데 에스겔은 새로 포로 이후에 새롭게 세워진 자로써
왜 이런 메시지를 증거하시는 거죠
이미 거짓선지자들도 다 죽고 없는데
거짓목자들 말이죠

아 거짓 백성은 남았겠군요
그들에게 생각하라 라고??????

그럴수도 있겠네요
지난 주에 패역한 백성을 언급했듯이
그들의 정신을 지배해 버린
세뇌시켜 버린 거짓목자들을 오늘 언급하시는 이유는
물론 다 죽고 없어도 말이죠
여전히 그 자리에 그 목자의 자리
곧 왕 제사장 선지자의 자리에
예수님이 오신다 라는 것을 염두해 두고서

새로운 백성인 잃어버린 자를 찾으시는 이유이겠지만
과연 기존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런 말들이
씨알이나 먹히겠느냐 라는 점입니다

사람에게 한번 빠진자들은 끝까지 눈에 보이는 사람을 의지하지
끝까지 자기유익을 쫓은 거짓목자를 의지하지
우상을 쫓도록 되어 있지
사람은 안 바뀌거든요

오로지 죽음 만이 새롭게 할 뿐이다 말이죠
그래서 초상집에 가라 라는 겁니다
지혜자가 거기에 있으니 말이죠

목자가 말이죠

자 그런데 이 말 자체가 이미 모순이지요
사람은 즐거움을 쫓고
자기가 살아 있음을 주장하도록 되어 있는데
아무리 참된 목자가 초상집이라는 죽음의 자리에 있다고 해도
갈려고 하지 않는다 즉 않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아무리 참된 목자가 거기에 혼자 있어도 말이죠

알아요 아무리 거짓목자여도 일단 자기의 살아있음 때문에 라도
거짓목자라는 것을 알아도 잔칫집에 가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오늘 본문의 메시지는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씨알도 안 먹혀드는 소리인 거죠

네 맞아요 다들 안 먹혀드는데
딸랑 혼자 늘 배신자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 배신자를 기준으로 해서 멸망 심판 하는 겁니다

왜? 그 배신자가
맞습니다 맞고요 우리는 심판 받아 마땅한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라고

다들 아니요 우리는 원수 아닙니다 라고 할 때
딸랑 혼자 네 맞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원수 맞습니다 심판하심이 마땅합니다 라고 나오거든요

이 우는 자가 복되도다 라고
꼭 한 명의 배신자 때문에
심판을 퍼붓는 겁니다

그것이 참선지자요 인자요
우리의 죄악을 몸에
신체라는 박스 그릇에 담은 인자이다는 겁니다

이 인자가 선지자의 기능 곧 종말이라는 심판을 앞땅겨 버리고
그야말로 배신자요 파수꾼
그리고 제사장 기능으로써 죄악을 담아서 거룩으로 바꾸는 기능인
참성전의 기능을 하고요
왕의 기능으로써 섬기는 일을 하시는 겁니다
죽기까지 복종 말이죠
저들의 죄악을 우리의 죄악을 끝까지 책임지시고자
이것이 사망권세를 이기시는 넉넉히 이기시는 기능이다는 겁니다

왕 따로 했던 인간
선지자 따로 했던 인간
제사장 따로 했던 인간

다 따로 따로 했던 인간과 다르게
세가지 동시에 다 하시는 겁니다

포로 속에서 왕도 제사장도 없어요
선지자도 다 죽었어요 일송정 푸른 솔이 
선구자 말이죠

이제 새로 세우시는 겁니다
갑자기 차출 됩니다
에스겔이 말이죠
이제 개인적인 삶은 없어요
이스라엘 전체의 운명만을 제시할 뿐입니다
개개인의 운명은 점쟁이 찾는 거짓선지자에 해당되지만 이미 다 제거가 되었어요

자 이 포로 됨 속에서
이 음부의 권세 라는 바벨론 입속에서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속에서
이 요나처럼 큰 물고기 뱃속 이라는 어두운 스올 바다 깊은 무저갱 속에서

인자는 과거의 목자들과 차이나게
자기유익을 쫓는 목자가 아닌
바로 이런 이스라엘의 죄악을 친히 감당하시는 분으로써
너희 잃어버린 자를 찾으러 왔다 라고

보라 새 일이 내가 다 이루었다 라고 선언하시면서 이 일들을 벌리시는 겁니다
그러니 이 새 일의 증상물로써
잃어버린 자가 새롭게 등장하는 거죠
포로 된 자
갇힌 자
억눌린 자

문제는 이런 답을 받은 입장에서
이스라엘은 포로된 바벨론 포로 잡혀간 이 이스라엘은
이 새 일
곧 구원의 일을
이 심판 속에서
포로 속에서
볼려고 하느냐 라는 점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로마 포로 속의 식민지 속에 있었다 말이죠
아무도 안 봐요
하나님이 직접 내려오셔도 말이죠

즉 이 말은 여전히 다른 하나님
꿈꾸왔던 하나님
잔칫집의 하나님 이라는
개인의 사적인 유익을 위한 하나님을 쫓다 보니
가짜 목자들이 그 당시 바리새인으로써
이들에게 세뇌 당한 백성들이라는 거죠

그들은 말로만 구원이라고 외쳤지만
독립운동을 외쳤지만
예수님 나라와 전혀 다른 따로 따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고자 했다는 거죠

오늘 본문도 바로 그런 배경이 깔린 입장에서
에스겔이 외치는 겁니다

마치 세례요한처럼
지도자들을 향해서 독사의 자식들아 라고 하듯이 말이죠
패역한 백성들아 라고 말이죠

요즘 간따나 교회가 코로나 덕분에 장사도 못하고 있는 판국에
이런 소리를 해 보세요
더더욱 장사 안되는데 더 안되는
사람들이 더 안올꺼다 말이죠

그런데 이런 소리를 해야 한다면 어떻 겠느냐 말이죠

정인이 사건이나
세월호 사건을 통해서
이 사회의 증상물로 등장한 것이거든요

갑자기 20대 여성의 자살률이 세계 1위이다 라고
불과 얼마전 까지만 해도 일본이 1위 였는데
그래서 일본에게 어떻게 처신하는지를 공무원들이 묻는다 라고 할 정도인데

이 와 중에 너튜버는 외국 20대 여성의 한국살이로 도배가 되어 있다 말이죠

천국 이라고

다른 곳은 다 지옥인데

전세계 청소년 자살률 1위 나라가 말이죠

다 감추는 거죠 
어두운 부분을 말이죠

젊은 여성과 청소년 어린아이 하나 보살펴줄 여력이 없는
지도자들은 자기유익만 쫓는 겁니다
정의를 외치는 놈들이 다 그래요

닭그네를 대항하고자 메시아 라는 소리까지 들었던 노철수가
도리어 닭그네와 손잡고 있더라 말이죠
이런 거짓메시아가 세상에 대 놓고 활동해도
다 넘어가는 겁니다
서로 서로의 유익이 걸려 있으니 서로를 이용하고자 말이죠

이미 죽은 세상에서 믄 새 정치를 하겠다 라고
사기를 치는지
뻔히 알면서도
다 그렇기 때문에 어쩔수가 없데요 글쎄

맞아요 이민을 가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마귀가 장악한 세상에서
가짜 메시아가 되어다오 라고
경제 문제 해결하는 메시아 돌을 떡덩이
종교 문제 해결하는 천국에 들어갈수 있도록 구원을 펼쳐다오
그리고 정치 문제 신처럼 높은 수준의 사람이 되게 해 다오
죄인처럼 저 매국노 자리에 앉은
흑암의 백성 사망의 그늘에 폭삭 주저 앉은
그런 잃어버린 자가 되게 하지 말고

그런 메시아가 되어다오
자기 유익에 딱 맞는

이것을 포로가 되어도 더했으면 더했지
절대로 포기 못하거든요
자기를 누가 포기 하겠습니까
자기는 무조건 살아야 하는데 말이죠

누가 죽음의 자리에 가냐 말이죠

그 죽음의 자리에서만
내 대신 죽는 분이 있거든요

있어도 안 가요

왜 남의 죽음을 보냐 말이죠

내가 잘못한 것은 내가 벌 받아야지
왜 내 잘못을 남이 받냐 말이죠
끝까지 선악을 포기 못하겠다 라는 겁니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거짓된 목자라는 것을 알아도
잔칫집에 가지 초상집에 안 가는 이유는
자신이 잔칫집에 있는 나 또한 거짓된 목자와 한 통속이기에
끝까지 거짓된 목자를 감싸돌아야
자기 또한 거짓이 안 드러나는 백성이다는 겁니다

그러니 잃어버린 백성의 자리에 절대로 갈수가 없는 거죠

그런 자들에게
인자야 이런 메시지를 전하라 라고 하시는 겁니다

참된 목자의 등장으로 인해서 비로써 잃어버린 백성이 새롭게 등장하게 된다는 것을 말이죠
자 이럴때에 성전에 두 사람이 기도하러 왔는데
하나는 바리새인이고
하나는 세리이다 말이죠
누가 참된 목자에게 맞는 기도를 하는 자 입니까

자신은 바른 생활 했다 라고 기도하는 자 입니까
아니면 뭘 해도 엉터리 죄악 뿐이라서 권고하심 굽어 보살펴 달라고 긍휼을 바라고 기도하는 자 입니까

거짓 목자에게 딱 맞는 거짓백성은 자기의 죄악을 감추고 자신의 의로움을 나타내는 방면
참된 목자에게 딱 맞는 잃어버린 백성은
뭘 해도 죄 뿐이다 라고 고백함으로써
죄 용서 해 달라고
이 포로됨에서 자유케 해 달라고
하나님의 원수의 자리에서
그 원수 마저도 사랑하신 십자가의 피 흘리심을 바라고 있더라 말이죠

광야에서
흑암의 백성이
사망의 그늘에 폭삭 주저 앉아서
개같은 이방나라 사람 더러운 죄인으로써
고쳐 달라고 말이죠

환자로써 의사를 구하고 있는데

나는 건강한 자이다 라고
의사 앞에서 자기의 건강함을 자랑하고 있으니 말이죠

자 그렇게 되면 의사가 들고온 인자 라는 기능
십자가라는 기능은
건강한 자에게 필요가 없으니 냅따 버려야 할꺼 아니냐 말이죠

온갖 수술실에 들어갈 차비를 다 했는데
메스 수술칼도 들고
피를 흡입하는 장치도 들고
심장 박동 맥박 체크하는 기계 온갖 기계 장치
보조 간호사 마치 네 생물 네 천사들
화염검을 들고 온 천사들 등등
이런 장치들이 무슨 소용이 있냐 말이죠

인간들이 다 알아서 숙제를 하고 있는데 말이죠
그 거짓목자들이 대충 대충 고치니까
대충 대충 심상히
복음을 대충 때울려고 하더라 말이죠

섬기는 자와 자기유익을 쫓는 자와의 대비에
그 섬기심을 받는 잃어버린 자와, 자기유익을 위하여 거짓목자를 감싸도는 백성

자 이런 구도로써 주님은 말씀을 증거하시는 겁니다

고로 인자 되신 예수님은 애가 애곡 재앙이 기록된 말씀을 먹어야 할까요 안먹어야 할까요
대신 죽고자 말이죠

그러나 자기유익을 쫓고
나 살아 있다를 주장하는 거짓목자들은
애가 애곡 재앙이 기록된 말씀을 먹을 리가 없겠죠

어떻게 해서든 강퍅함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신 인자를
섬기시는 왕을 못 쳐다보도록 하고자
애굽 땅을 더더욱 잔칫집으로 만들고자 할꺼 아니겠냐 말이죠

에스겔이 바로 머리채 잡혀서 6년 전으로 돌아가
성전에 예루살렘에 갔을때에
그 성전 벽 구멍안에 온갖 우상을 섬기면서
굿판을 벌리는 그 현장처럼
오늘날 교회는 돈 잔치를 벌린다 말이죠

돈이 현대인에게는 유일한 구원이거든요
몇 년 전에 강석 유해영을 싱글벙글쇼를 우연히 지나가다 듣는데
한 멘트가 귀에 꽃혔어요

돈은 죽은 자도 살린다 라고 말이죠

이상하다 돈은 잔칫집에 가지
초상집에 안 가거든요

그런 돈이 메시아의 자리에 앉아버렸어요
인간의 주인은 이제 돈이 되었다는 거죠

모든 인간을 조종하고 있더라 말이죠

최고의 노예였던 돈이 이제는
최고의 주인이 되어버린 겁니다

그러니 그 거짓목자 라는 돈의 백성 답게
모든 인간들의 모든 사고방식은 돈을 빼버리면 이야기 자체가 안되는
소통 불가의 단절 속에 놓여지게 되는 겁니다

이런 상태를 아모스 8장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암 8:11, 개역)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암 8:1, 개역) 『주 여호와께서 또 내게 여름 실과 한 광주리를 보이시며』
(암 8:2, 개역) 『가라사대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가로되 여름 실과 한 광주리니이다 하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 백성 이스라엘의 끝이 이르렀은즉 내가 다시는 저를 용서치 아니하리니』
(암 8:3, 개역) 『그 날에 궁전의 노래가 애곡으로 변할 것이며 시체가 많아서 사람이 잠잠히 처처에 내어버리리라 이는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암 8:4, 개역) 『궁핍한 자를 삼키며 땅의 가난한 자를 망케 하려는 자들아 이 말을 들으라』
(암 8:5, 개역) 『너희가 이르기를 월삭이 언제나 지나서 우리로 곡식을 팔게 하며 안식일이 언제나 지나서 우리로 밀을 내게 할꼬 에바를 작게하여 세겔을 크게 하며 거짓 저울로 속이며』
(암 8:6, 개역) 『은으로 가난한 자를 사며 신 한 켤레로 궁핍한 자를 사며 잿밀을 팔자 하는도다』
(암 8:7, 개역) 『여호와께서 야곱의 영광을 가리켜 맹세하시되 내가 저희의 모든 소위를 영영 잊지 아니하리라 하셨나니』
(암 8:8, 개역) 『이로 인하여 땅이 떨지 않겠으며 그 가운데 모든 거민이 애통하지 않겠느냐 온 땅이 하수의 넘침 같이 솟아오르며 애굽 강 같이 뛰놀다가 낮아지리라』
(암 8:9, 개역)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 날에 내가 해로 대낮에 지게 하여 백주에 땅을 캄캄케 하며』
(암 8:10, 개역) 『너희 절기를 애통으로, 너희 모든 노래를 애곡으로 변하며 모든 사람으로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게 하며 모든 머리를 대머리 되게 하며 독자의 죽음을 인하여 애통하듯 하게 하며 그 결국으로 곤고한 날과 같게 하리라』
(암 8:11, 개역)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암 8:12, 개역)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암 8:13, 개역)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
(암 8:14, 개역) 『무릇 사마리아의 죄된 우상을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기를 단아 네 신의 생존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하거나 브엘세바의 위하는 것의 생존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하는 사람은 엎드러지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

마치 얼마전에 살펴본 마태복음의 무화과 비유를 배우라 라고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마 24:32, 개역)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막 13:28, 개역)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암 8:11, 개역)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돈이 없어서 망하는게 아니라
굶어 죽는 식량이 없어서 기근이 발생해서 망하는게 아니라
굶주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망하고
물이 없어서가 아닌 물이 넘쳐남에도 왜 망하느냐

바로 말씀이 없어서
인자의 살과 피를 먹지 않아서 주님과 상관이 없게 됨으로써 망한다 라고

마치 인자의 때는 종말의 때는 마지막 때에 말씀을 듣고파도 말씀을 알려주는 곳이 없어서 망하듯이
이것이 열처녀 비유에서도 나오죠
똑똑하다고 자부하던 슬기로운 다섯처녀가 신랑이 올 때 그때 가서 기름과 등을 준비하면 된다 라고 했는데 막상 신랑이 느닷없이 닥치다 보니 준비를 할 수가 없게 되더라 말이죠
즉 말씀을 알려주는 곳이 없게 되는 상황과 같아요
노아 방주가 막상 비가 올때는 문을 닫아 버리는 것과 같듯이 말이죠

마찬가지로 거짓목자나 거짓백성은 평상시에도 말씀을 듣지 않았었고
그 말씀을 도리어 자기 유익을 챙기는 수단으로 사용했듯이
백성들 또한 자기 생존을 위해서 성전에 바친 금으로 맹세하고 기도하라 라는 뻔한 거짓말
뻔한 미신을 믿고 거짓지도자들과 함께 사적인 유익으로 말씀을 이용하도록 되어 있다는 거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현대 2021년도 말이죠
앞으로도 그래요
기독교가
교회가 미신을 현대판 미신을 샤머니즘의 온상이 되듯이 말이죠

지도자는 더 해요
황교활을 보세요 이건 뭐 미신을 아예 퍼트리는데 대 놓고서 말해요
조용땡이나 이런 자들은 기본이고요
더 기가막힌 것은 이들을 비판하는 성화론자의 대가들 
개혁주의의 대가들도
미신을 퍼트리는데 귀신들입니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면 뭐해요 결과는 미신인데

참된 잃어버린 양은 참된 목자가 등장할때만 등장하듯이
참된 목자의 시선에서만 참된 잃어버린 양이 결정 됩니다

이들은 아모스 8장처럼
또 오늘 본문 겔 34장처럼

(암 8:11, 개역)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겔 34:3, 개역)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의 무리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양식이나 물을 구하는 자가 아닙니다
살진 양이나 그 양의 털을 구하는 자가 아닙니다

비록 무화과 나무 잎이 마르고 포도 열매가 없어도
난 여호와로 즐거워 한다 라고

(합 3:17, 개역)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합 3:18, 개역)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합 3:19, 개역)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영장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합 3:16, 개역)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비록 애가와 애곡과 재앙이 기록된 말씀을 먹더라도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는다면 생명이 없다 라는 겁니다

(요 6:53, 개역)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사람은 떡으로 사는게 아니라 말씀으로 살 듯이 말이죠

요나의 표적 외에는 곧 생존의 세계에 
살아있다 라고 우기는 잔칫집에 생명이 있는게 아니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부활이시다 라고 하시는 
말씀은 그 자체는

바로 초상집과 같은 하나님의 애가 애곡 재앙이라는 심판 속에
곧 십자가의 죽음 이라는 피 흘리심 속에
어린양의 희생 속에 있다 라는 겁니다

이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못 쳐다보게 할려고
애굽왕 바로왕이 잔치를 베풀며
마귀는 어떻게 해서든 십자가의 지혜와 못 만나게끔 하고자
세상 즐거움으로
물과 양식
양의 살코기와 양의 털로
자기만의 유익을 구하자 라고 했을때에

참된 목자는 자꾸 우리를
광야로
그 광야라는 죽음의 사막에서 다시 삼일 길로
그 삼일 길로 가서 다시 또 어린양의 희생 제사로

곧 긍휼만을 바라는
주님의 살과 피 만을 먹고 마시게 하시는
그 7에 70번의 용서를 쳐다보도록 하시겠다 라고
참된 목자는 참된 잃어버린 양을 만드시는 겁니다
죄인을 부르러 오셨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듯
끝까지 섬기시는 인자는 우리에게 말씀을 먹이시고자
애가와 애곡과 재앙이 기록된 말씀을 먹이시고자
그 심판을 대신 누가 받으셨다 라는
초상집에 있는 지혜자를 만나도록 하시고자
자꾸 몰아가시는 겁니다

왜? 마지막 때에는 말씀을 먹고자 해도 말씀이 없게 되니까 말이죠
말씀을 구하고자 해도 못 구하거든요

계시록에 부자야 안약를 사라
부자야 불에 타지 않는 옷을 돈 주고 사라

(계 3:17, 개역)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계 3:18, 개역)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돈이 없어서 못 사는게 아니라
부자 되었다는 자체가
불에 타지 않는 옷이
잃어버린 자에게만 해당 되는 옷이라서

돈이 아무리 많아도 살수도 없고
불에 타지 않는 기능 자체를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존재로써의 옷을 구매했다손 치더라도
본인 자체를 부자 자체를 옷만 놔두고
심판의 불이 부자를 태워버리니까 말이죠

즉 부요한 자 같으나 가난한 자요
산 자 같으나 죽은자요
있는 자 같으나 없는 자 이다는 겁니다
부자 자체가
존재로써 아무리 부자가 되어도
잃어버림 이라는 기능
곧 참된 목자가 새삼스럽게 창조한 새창조해서 등장한 잃어버린 양 이라는 기능이 없기에 말이죠

오히려 가난한 자 같으나 부요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산 자요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자가 바로
잃어버린 양 이다는 겁니다

(고후 6:8, 개역)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고후 6:9, 개역)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고후 6:10, 개역)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전 7:2, 개역)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전 7:3, 개역)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
(전 7:4, 개역)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


자 그렇다고 스스로 잃어버린 양이 되고자 자진해서 가난하고
없는 자 같이 되고
죽은 자 같이 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참된 목자의 숙제로 인해서 비로소 등장하지

며칠 해 본들 나중에는 결국 존재로써 바닥이 납니다
거짓목자가 되지 않겠노라 라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실상은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에서 다 드러나지
예수님의 십자가가 나타나지도 않았는데
인간이 알아서 눈치채서 대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비 해 본들
존재로 구성하지
기능은 못 만들어 냅니다
임의로 부는 성령만이 만들어내시는 겁니다

고로 기능이 나타나면 도리어 존재로써 이 기능을 핍박하는
또 너희 조상과 같이 선지자를 죽이는 꼴을 반복하는 셈이 되는 거다 말이죠
네 맞아요 내 쪽에서 말씀을 다룰수 있는 입장이 못 됩니다
전적으로 말씀이 운동력이 있어서
우리를 다루시는 겁니다

그 앞에서 우리는 그저 죽어 마땅한 심판 받아 마땅한
화로다 화로다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택도 안되는 남 7번 용서로
7에 70번의 더 큰 용서를 거부하는 또 자기의 의를 세우는
자기유익으로 끌어당기는
이 육이라는 사망의 몸에서 벗어날 수가 없구나 라고
고백해야 할 입장 뿐입니다
그저 용서 만을 바라는
말씀만을 먹여 달라는
이 애가와 애곡과 재앙이 기록된 말씀만을 먹여달라고
주님의 살과 피를 먹여 달라고
불쌍히 여겨 달라고 

이 죄인을 구해 달라고 해야 할 판국 뿐입니다
그 정도로
우리는 이 자기유익에서 벗어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내막을 오늘 본문의 에스겔이라는 인자가 외치고 있는 겁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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