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17 내가 아버지인줄 알리라(아버지와 아들, 정답과 문제의 관계) (겔 6,11-14)
사생자에게는 없는 매를(미움받는,진노 심판) 대시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스스로 한탄하는 남은자 (겔 6, 8-10)
에스겔 2019 2021. 6. 13. 10:33
21-016 스스로 한탄하는 남아 있는 자들 (겔 6, 8-10)
〈에스겔 6:11-14, 개역한글, 구약성경 1157 쪽, 찬송가 334장 아버지여 이 죄인을, 202장 죄에서 자유를 얻게함은〉
〈찬송가 334장 아버지여 이 죄인을〉
1 아버지여 이 죄인을 용납하여 주시고
아드님의 이름으로 구원하여 주소서
아버지를 떠나간지 벌써 오래 되었고
길 험해서 곤한 몸이 이제 돌아 옵니다
2 전에 하던 헛된 일을 원통하게 여기고
겸손하게 엎드려서 용서하심 빕니다
은혜 감당못하오나 회개하는 영혼과
나의 약한 육신까지 감히 드리옵니다
3 나의 죄를 사하시려 주님 죽으셨으니
그 공로를 의지하여 주만 의지 합니다
아버지여 용납하사 나를 품어 주시고
주의 사랑 품안에서 길이 살게 하소서 아멘
〈찬송가 202장 죄에서 자유를 얻게함은〉
1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
시험을 이기는 승리되니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주의 보혈 능력있도다 주의 피 믿으오
주의 보혈 그 어린양의 매우 귀중한 피로다
2 육체의 정욕을 이길 힘은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
정결한 마음을 얻게 하니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주의 보혈 능력있도다 주의 피 믿으오
주의 보혈 그 어린양의 매우 귀중한 피로다
3 눈보다 더 희게 맑히는 것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
부정한 모든 것 맑히신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주의 보혈 능력있도다 주의 피 믿으오
주의 보혈 그 어린양의 매우 귀중한 피로다
4 구주의 복음을 전할 제목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
날마다 나에게 찬송 주니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주의 보혈 능력있도다 주의 피 믿으오
주의 보혈 그 어린양의 매우 귀중한 피로다
〈에스겔 6:11-14, 개역한글, 구약성경 1157 쪽〉
(11)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말할지어다 오호라 이스라엘 족속이 모든 가증한 악을 행하므로 필경 칼과 기근과 온역에 망하되
(12) 먼데 있는 자는 온역에 죽고 가까운데 있는 자는 칼에 엎드러지고 남아 있어 에워싸인 자는 기근에 죽으리라 이같이 내 진노를 그들에게 이룬즉
(13) 그 살륙 당한 시체가 그 우상 사이에, 제단 사방에, 각 높은 고개에, 모든 산꼭대기에,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 무성한 상수리나무 아래 곧 그 우상에게 분향하던 곳에 있으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14) 내가 내 손을 그들의 위에 펴서 그 거하는 온 땅 곧 광야에서부터 디블라까지 처량하고 황무하게 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겔 6:11, 새번역) 『나 주 하나님이 이렇게 말한다. 너는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면서 외쳐라. 아, 이스라엘 족속이 온갖 흉악한 일을 저질렀으니, 모두 전쟁과 기근과 전염병 때문에 쓰러질 것이다.』
(겔 6:12, 새번역) 『먼 곳에 있는 사람은 전염병에 걸려서 죽고,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은 전쟁에서 쓰러지고, 아직도 살아 남아서 포위된 사람들은 굶어서 죽을 것이다. 내가 이와 같이 나의 분노를 그들에게 모두 쏟아 놓겠다.』
(겔 6:13, 새번역) 『그리하여 그들 가운데서 전쟁에서 죽은 시체들은 그들의 우상들 사이에서 뒹굴고, 그들의 제단들 둘레에서도 뒹굴고, 높은 언덕마다, 산 봉우리마다, 푸른 나무 밑에마다, 가지가 무성한 상수리나무 밑에마다, 자기들이 모든 우상에게 향기로운 제물을 바치던 곳에는, 어디에나 그 시체들이 뒹굴 것이다. 그 때에야 비로소 내가 주인 줄, 너희가 알게 될 것이다.』
(겔 6:14, 새번역) 『내가 그렇게 나의 손을 펴서 그들을 치고, 그 땅을 남쪽의 광야에서부터 북쪽의 ㉠디블라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거주하는 모든 곳을 황무지로 만들어 버리겠다. 그 때에야 비로소 내가 주인 줄 그들이 알게 될 것이다." / ㉠몇몇 히브리어 사본에는 '리블라'』
지난주에 남은자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네 맞아요 구원받은자이지요
그런데 남은자에 대한 개념을 얼마나 그동안 엉터리로 가르쳤으면
남은자운동 이라는 둥
실제로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이 다 이런식이였습니다
그 남은자가 멋들어진 구원 개념으로 말이죠
렘넌트 운동으로써 그런 운동가가 가룟유다 아닙니까
바리새인 또한 말할 것도 없구요
그러니 어떻게 하면 더더더 선을 취하고 악을 버리느냐에 매달리다 보니
손을 씻지 않고 먹는 것에 예민할수 밖에요
아무리 그렇게 겉으로 아름답게 무덤을 회칠해도
무덤은 무덤입니다 안에 속에
시체가 있으니까 말이죠
남은자 또한 선민사상 또한 다들 그런식으로 가르치다 보니
멋들어진 구원만 추구하는 겁니다
겉만 깨끗한 구원받은자로 말이죠
그러나 남은자란 악질 중에 악질로써
죄인 중의 괴수로써
미움받는
심판받는
진노 속에서 받는 구원이다는 겁니다
자기가 봐도 자기가 미울 정도로 말이죠
그런 원수 중에 원수를 사랑하다니
말이 안되거든요
말도 안되는 구원인데
자꾸 다들 말이 되는 구원론으로 성령론(단절인데 어느새 사람을 좋게하는 교리로 바뀌었다 말이죠 개방으로)으로
안그러는 교리가 없어요
그러니 교리는 실천만 하면 되거든요
그런데 실천을 안한다
손을 안 씻고 먹는다
이거 질서파괴하는 놈이다 라고 규정을 하는 겁니다
얼마전에 또 유대인을 다루는 다큐를 kbs에서 하더라 말이죠
과거에 찍은 것은데 한 10년 되었던 건데
너튜브에서 kbs다큐 검색해서 보면
1부가 미국을 움직이는 유대인 그런 내용이고
2부를 봤는데
여전히 아직도 안식일을 안 지키는 자들을 향하여 길거리에서 맹렬하게 비난하는 모습이 나오더라 말이죠
지금도 그런데 예수님 당시에 안식일날 손 마른자를 고쳤다 라고 얼마나 미워했겠냐 말이죠
개인적인 미움은 얼마 못가요
그런데 집단적으로 사회적으로 민족적으로 종교적으로 국가적으로 미움받게 되면
살기가 뭡니까 좀비처럼 달려들것인데 물어뜯어 살점들이 다 뜯겨질 판국이다 말이죠
호러 공포물이 되는 겁니다
남은자가 공포물이다 말이죠
저들 다수가 귀신이겠습니까
남은자를 귀신 취급하겠습니까
예수님이 귀신들린 무덤가에 사는 청년을 고쳐 돼지 떼 속에 집어 넣어서
물에 빠져 죽게 되니
집단 몰살하게 되니 사람들이 감사할까요 아니면
예수님을 귀신취급해서 쫓아내는 겁니까
자 그럼 누가 귀신 입니까
네 맞아요 남은자란 이렇게 귀신취급 받아서 저들의 귀신성
악마성을 들추어내어야 합니다
아니 누가 자신이 악마인 것을 들추임 당할려고 하겠냐 말이죠
적극적으로 반항하고 집단적으로 거시적으로 나올 것 아니겠냐 말이죠
딸랑 한 명의 남은자가 국가전체가 악마성을 들추어내기 위해서
거울로써 등장해야 하는 겁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이 얼마나 악마들인지를 들추어내고자
일부러 안식일날만 골라서 병을 고치는
얼마나 얼마나 미운짖만 골라서 하는 안식일을 어기는자로 등장하듯이 말이죠
개인구원 멋들어진 구원 따위를 생각하고 있으니 이것이 우상이지요
구원탐심이라는 우상만 생각하고 있으니
남은자 개념이 이렇게 모욕적인 구원사건 곧 십자가사건을 터트리는줄 모르는 겁니다
지난주에 삼분의 2가 죽임을 당하고
남은 찌끄래기 삼분의 1에서 막 죽어나가는 중에서
점점점 줄어드는 판국에서
이 심판과
이 죽음 속에서
깨달아 스스로 한탄하는 남은자가 생김으로써
왜 심판 받아야 하는 지를 아는 겁니다
왜 구원받아야 하는지가 아니라 말이죠
그 심판이 바로 우상숭배
곧 아버지가 다르다 였다는 거죠
아니 분명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는데
알고보니 우상을 마귀를 금송아지에 이름만 여호와라고 붙였던 거죠
지금도 똑같습니다
우상섬기는 것은 똑같은데 이름만 예수 성령 하나님 여호와 십자가 등등
온갖 좋은 것 다 붙였다 말이죠
이런 자기의 뜻을 제거함 당함으로써 미움받는 자리에서
남은자가 나온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의 특이성이 또 좁아져서
남은자의 특이성으로써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겁니다
또 또 또 좋은 의미로 남은자 개념을 인간들은 만들고 조작하겠지요
아니 이스라엘의 특이성도 모잘라서 왜 또 남은자 라는 특이성이 왜 또 나와야 하는가
이스라엘의 특이성도 엉터리로 인간들이 만드는 것을 뻔히 봤으면서도
남은자의 특이성 조차도 인간들이 엉터리로 뻔히 만드는 것을 아시면서도 말이죠
그것은 지난 주에 말했듯이
에스겔 36장에서
너희 이스라엘들이 더럽힌 성전과 더럽힌 하나님의 이름 중에서
물론 이스라엘은 지금까지도 때려죽어도 인정 안합니다
인정할 것 같으면 이런 소리 안하시죠
그 더럽힌 이름 중에서 더럽혀지지 않은 남겨둔 이름이 있다 라는 겁니다
이 남겨둔 이름 때문에 남은자가 나오는 겁니다
물론 이 남겨둔 하나님의 이름은 이제 아예 대 놓고 미워 하고
대 놓고 십자가라는 하나님의 저주에 못 박아 죽입니다
전체민족 전부다가 미친 듯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라 라고 외치면서 말이죠
집단 광기의 살인현장이다 말이죠 좀비떼가 우르르르
예수님의 살점을 그 날카로운 짐승의 이빨로 물어뜯을려고 말이죠
좀비에게 이유가 있던가요? 없어요
무조건 이유없이 달려드는 겁니다
바로 앞의 글 마태복음에서 주님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성을 새로 정립하시고자 하십니다
그런데 걸림돌이 있습니다
인간들은 바로 이런 주님의 일하심을 이런 주님의 이름을 또 더럽히고자
자기들의 뜻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노예로 취급해서
죄인들의 손에서 팔려야 한다는 것이지요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는 남을 아무리 스승과 제자의 관계 조차도
서로 서로가 종의 관계로써 취급하는 겁니다
자기 목숨이 걸린 문제가 닥치지 않은 상황에서는
껍데기를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자기목숨이 걸린 상황이 되면
아브라함 조차도 마누라 사래를 냅따 팔아넘기듯이
그 동안 너는 나의 아내가 아니라 나의 종이였으니까
내 살고 너 죽어라 라고 팔려야 하는 관계였음이 들통나 버리는 겁니다
과거에는 다 이랬다 말이죠
불과 100년 전에도 심지어 지금까지도 다 그래요
돈 앞에서는 장사 없다는 거죠
라떼는 말이야 ~~~~~~~~~~ 다 그랬다 말이죠 그래야 소를 키우니까 말이죠
안그러면 소는 누가 키우냐 라꼬
바로 이것이 종이 노예가 주변인과 맺는 관계성이다는 겁니다
항상 이 속에서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눈치를 본다는 거죠
남의 눈을 늘 의식하는
바로 이런 주종의 관계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바꾸시고자
사생자에서 자녀로 바꾸시고자
자유자로 만드시고자 말이죠
그러니 아버지가 있는 자녀
곧 양자의 입장에서는
과거의 우상의 눈치를 봤던
주님의 눈치를 봤던 그 종의 관계를 끊고자
이 미움의 미움받는 남은자의 자리에서
스스로 한탄하면서 스스로 자유롭게 미움의 자리에 놓여지는 겁니다
스스로
자유 롭게
막사는
막산다 라고 하니까 자유를 누구 말 마따 방종으로 아는데
그것을 또 의식하고 또 눈치보고서 비판하는 놈도 똑같은 우상숭배자들인데
어느 정도로 자유하냐
모든 결박을 끊어짐 당하다 보니 이 자유를
도리어 반납하는 자유를 누리는 겁니다
진짜 이쯤 되면 진짜 막 나가자는 것이 되는 거죠
자유를 반납하는 자유입니다
네 맞아요 예수님의 겟세마네의 기도가 그랬거든요
얼마나 막살면 자유를 반납하는 자유를 구하는 기도를 하고 있어요 글세
그것도 마음껏 자유하면 될 것을 마지막 기도로써
최후의 기도로써
모든 것을 다 걸고서 말이죠
자기 목숨을 왜 마음껏 자유롭게 누리지 못하고
자유롭게 ~~~ 저 하늘을 ~~~~ 날아가도 놀라지 말아요
우리앞에 펼쳐진 세상이 너무나 소중해 함께 라면
가만히 보니 이 마법의 성 가사가
모든 종교의 결정판이네요 글쎄
이 세상을 심판하지 말고 구원해 달라는
마귀의 두 번째 시험이다 말이죠
그런데 우짭니까 심판해야 한다는 겁니다
마법을 부려 달라 라는 마귀의 두 번째 시험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펼쳐달라
그런데 바로 그런 마법을
자유를 반납하는 마법
마법을 반납하는 마법을 달래요 글쎄
하나 마나 한 기도 아니냐 말이죠
하나 마나 한 기도에 왜 이렇게 땀을 뻘뻘
그것도 목숨 걸고
그것도 최후의 마지막 기도
마지막 유언
유서를 적듯이
그 마지막 유서가
자유를 반납하는 자유를 펼치소서
나의 자유가 아닌 아버지의 자유를 아버지가 이 세상을 창조하신 원래의 뜻을
펼치소서 라꼬 말이죠
이것이 눈치 보지 않고
아들로써
아버지가 있는 자녀가 할 기도이다는 겁니다
이 관계성을
인간들은 그 동안 우상섬기듯이
남들의 욕망
타인의 욕망대로
눈치 보면서
남들이 하는 기도를 따라서
중언부언 하듯이
눈치 보듯
종처럼
주인의 눈치를 보면서
전혀 자유롭지 않은
또 자유를 주니까 예수님의 자유가 미워 죽는
남을 미워하는 자가 무슨 놈의 자유자냐 말이죠
방종이라는 개념만 들고와서 공격하기 바쁘지
남 공격할 처지냐 말이죠
얼마나 배불러 터졌으면
자기 발등에 불이 떨어진 줄 모르고 말이죠
그러니 앞앞글 에스겔 36장에서
말도 안되게 사명감을 언급하는 겁니다
아니 쫄딱 망해서 이스라엘 멸망의 바벨론 포로 속인데도 불구하고
새 영 새 마음을 주시질 않나
이 자체가 말이 안되잖아요 (요엘 2장)
또 거기에다가
요엘 3장으로 넘어가면 심판을 외치래요 글쎄
아니 심판 받는 주제에 뭘 심판 외치냐 말이죠
오히려 이 사명감이 도리어
원수의 목전에서 삥 둘려 쌓여있을때에
자녀로서 사생자가 아닌 자녀로써 복음을 외치는 것
이것이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는 주님 곧 아버지이시고
그 아버지에 그 자녀 이다는 겁니다
그러니 도리어 이 진노의 심판이
이스라엘에게는 상이다는 거죠 매가
때리시는 매가
저들은 그 매가 싫어서 이방인이고 우상을 숭배하는데
그 차이로써 이 때리시는 매가 바로 아버지가 있다는 사랑이다는 증거로써
저들이 삥둘러 쌓여있는
그 우겨쌈을 당하는 그 상황에서
아버지가 주시는 아들에게 베푸시는 상을 자랑하라
심판의 주를 외치는 것이
자녀이다는 증거이다는 겁니다
그러니 사명이 이 심판이
우리는 사명자로 만드는 것이지
우리가 사명을 완수하는게 아니다 말이죠
이미 정답이 떳기에 그 정답에 맞는
아버지에 맞는 아들이 증상물로 나오니까 말이죠
우상이란 곧 자기자신 외에는 믿을 것이 못된다 라는 사고방식입니다
모든 인간이 다 우상숭배하는 이유입니다
여기에 도전장을 내신 분이 바로 여호와요 전능자 곧 시비걸고 괴롭히는 자입니다
여호와 자신이 정답이다 라고 말이죠
이 얼마나 겁을 상실한 자 입니까
이 분이 바로 예수님으로써
이 십자가가 정답이다 라고 외치시면서 이 땅에 오신 겁니다
그것도 얼마나 말도 안되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시면서 말이죠
어떤 말?
모든 인간 곧 모든 우상을 십자가에 못 박겠다 라고 말이죠
이스라엘도 못한 것을 무슨 수로 말이죠
그리고 정작 말도 안되게 자기 혼자
그렇게 말한 예수라는 그 사람 딸랑 혼자 달려놓고서는 다 이루었데요 글쎄
아니 모든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는다메???
모든 우상을 파괴 십자가로 파괴 한다메???
성령 곧 앞의 글 에스겔 36장에서
새 영 새 마음 곧 스스로 한탄하는 영을 받은 자만 이것을 믿고
사명감을 받아서 사명이 종말을 확 땡기는
부정적인 행함이 있는 믿음을 외치고 있지
다른 사람들은 멀쩡히 지금까지도 2천년 하고도 20년이 지다고
단 한 사람도 십자가에 달려 죽지를 않고 있다 말이죠
도리어 그렇게 말한 예수님처럼
그들의 제자 베드로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그의 사도들만 죽어나갔지
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냐 말이죠
이런 현실에서 다른 현실을 보는 자는 그야말로 미친놈 취급 받을수 밖에요
아니 모든 인간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다메요
그 정도로 미움을 받고
심판을 받고 저주를 받는 자리에는
정작 그렇게 말한 예수님의 제자와 그를 믿는 자들 뿐이다 말이죠
그 말 자체가 더 미움을 더 더 더 키우니까 말이죠
누가 그런 미움을 받을려고 인생을 사냐 말이죠
바로 이겁니다
아무도 미움 받고자
매를 맞고자 하지 않는다 말이죠
그런데 이 부정적인 행함이 있는 믿음을 받는 자가 있으니 말이죠
어찌되었던 간에
딸랑 한 명이라도 그 역사 속에 등장했다면
주님의 말씀이 맞는 진짜 현실 아니냐 말이죠
이런 눈에 보이는 가짜 현실 속에
혹시나 진짜로 눈에 보일까봐
어서 어서 감추어야 하는데
눈에 보이도록 들통날까봐
부랴 부랴 감추듯이 후다닥 펼치시고 가시는 겁니다
실제로 구약에
이스라엘도 안 믿는 판국에
기생 라합이 그랬구요
시아버지 유다도 안 믿는 판국에 이방여자 가나안여자 며느리 다말이 그랬구요
시어머니 나오미가 이스라엘 사람으로써도 안 믿는 판국에
며느리 룻이 그랬구요
없으면 또 몰라
시대에 꼭 한 명이 있다 라는 말은
감추어진 숨은 의미로써 이 비밀을 안 알려주겠다 라는 종말성이다 말이죠
그러니 성령을 받은 자들은 요엘 3장처럼 심판을 외치는 겁니다
왜? 사랑이 바로 이 매 이니까
이 눈에 보이는 현실을 심판하시겠다 라는 것이
바로 우상을 파괴하는 십자가에 못 박겠다 라는
진짜 현실이니까 말이죠
그러니 인간에게서의 정답 곧 우상 곧 자기자신을
주님은 도리어 쌍둥이 권법으로써
인간으로 와서
인간은 정답이 아니다 라고 도전장을 내시면서
그 자아 라는 정답에
이 십자가라는 우상을 못 박는 새로운 정답을 외치시면서
모든 인간을 십자가에 못 박는 정답을 다 이루시고
그 정답의 증상물인
문제아를
부정적인 행함이 있는 믿음이 이 사명이
바로 문제아
곧 탕자
곧 죄인을 부르러 오셔서
그 죄인이
이 남방여자가
이 니느웨 백성이
(마 12:38, 개역)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마 12:39,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마 12:40, 개역)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
(마 12:41, 개역)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마 12:42, 개역)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눅 11:29, 개역)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눅 11:30, 개역)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
(눅 11:31, 개역)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눅 11:32, 개역)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그러니 아무도 이 요나의 표적 이라는 십자가
바로 매를 심판을 구하는 자는 아무도 없다 라는 거죠
없으니까 성령을 부어서 이 십자가를 증거케 하시는 겁니다
모든 종말은 이 십자가를 말하니까 말이죠
왜? 네 맞아요 상대적인 우상을 겨냥하니까 말이죠
인간의 정답은 곧 자기자신 곧 우상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구하지 않는 이 십자가를 다 이루셔서
이 정답을 밀어붙이심으로 인해
십자가로 태어나는 자를 만드셔서 곧 자녀이지요
아버지의 뜻을 펼치시는 겁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최후의 기도 마지막 유언장은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라고
뭐뭐뭐 아니요 왜? 모든 인간의 기도가 우상으로 향하고 있기에
자기자신을 정답으로 규정을 해 놓고서 기도를 하기에
그거 아니요
그런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것이 아니요
이 사랑의 매 만이 정답이다 라고
이 정답을 이루심으로써
이 정답인 십자가로 다 이루심으로 말미암아 주시는
성령이라는 약속하신 성령이라는 선물로 인해서
이 종말을 이 심판을 외치도록 하시는 겁니다
안그러면 인간들은 자기 정답을 미리 설정해 놓고서는
그 신앙을 종교 라는 오락에
우상에 또 여전히 미쳐있고요
지금 이스라엘 보세요
유대인을 보게요
우리들의 모습 아니냐 말이죠
미친놈들이다 말이죠
오로지 자기 밖에 몰라요
자기 만이 정답이고 그들이 내세우는 여호와는 가짜다 말이죠
이들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모든 인간입니다
무신론자도 마찬가지이고요
그냥 솔직할 뿐 믿을 것은 오로지 자기 뿐이다 라고 한 것이
솔직할 뿐이지 진리는 아니니까 말이죠
그냥 나는 우상 그 자체
천상천하 유아독존 자기 밖에 없다는 거죠
그러니 종교 중에 최고의 종교는 불교 아닙니까
최고의 마약입니다
그걸 보고 또 배아파서 아냐 우리가 최고의 마약이다 라고 기독교가
어떻게 해서든 1위를 탈환 할려고 말이죠
방금 올린 구절에서
(마 12:40, 개역)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
여기 사흘이 나오거든요
왜 자꾸 꼬끼오도 세 번
왜 삼일의 간극
왜 자꾸 삼 삼 삼을 강조하나
저는 그 동안 법적인 확증판결을 말하는 줄 알았어요
마치 법원이 최종 판결을 내릴 때 탕탕탕 이라고 치듯이 말이죠
의사봉 의결봉 법봉 이라고 하던데
레위기에 율법을 지키면 복 안 지키면 저주 그런데 이 저주가 바로 세 배 이상이다 말이죠
신명기도 그렇구요
네 맞아요 바로 절대 저주입니다
자식을 잡아먹는다 라는 저주의 내용이 나왔길래 살펴봤는데
다들 말도 안된다 설마 자식을 잡아 먹는 부모가 어디있냐 라고 하지만
그 저주를 남이 하는게 아니라 자기자신 속에서 피어나는 최종적인 상황 자체가
어느 정도로 저주의 상황인가
자식을 잡아먹을 정도로 처참한
저주 중에 저주인 절대 저주 이다는 거죠
그러니 죽은 자의 하나님은 바로 이런 절대저주인 상황으로써
가짜 하나님을 믿는 상황이고
산 자의 하나님은 바로 아들의 죽음으로써
임마누엘을 구하라 라고 하시는 겁니다
아하스 왕이 임마누엘을 구하지 않겠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 라고 하고서는
우상과 손 잡잖아요
그리고 자식을 잡아먹는
임금이 백성을 잡아먹는 꼴이 되더라 말이죠
그럼 섬기는 임금은 바로 이 저주를
자식을 잡아먹는 저주를 염두하시고서
부정적인 행함이 있는 믿음을 펼치시는 겁니다
다윗에게서도 어느 정도로 죄를 사하시느냐
일만달란트 16만년을 일해도 못 갚을 정도로
7에 70번 용서를 받아야 할 정도로
무한대의 용서 이다 말이죠
아니 그 정도로 악하다는 말인가
네 악해요
악질 중에 악질인
죄인 중의 괴수 이다는 겁니다
그러니 자식을 잡아 먹을
자녀란 부활이거든요
자기자신의 부활을 염두한 것이 자녀이거든요
애굽의 10가지 재앙은
그 10가지의 우상들이 최종적으로 보디가드 하는 대상이 바로
장자 이거든요
부활이 없으면 모든 믿음은 헛되다 말이죠
모든 종교에 부활이 빠진 종교가 어디 있냐 말이죠
최종적인 우상인데
바로 그 우상 이라는 인간들의 정답 곧 자녀 장자를 겨냥한 것이 바로
십자가요
그 저주
아들을 잡아 먹는 율법의 네 배 세 배나 갚으라 라는 그 저주
최고의 저주
자식을 잡아먹는 그 저주
우상이 잔칫집인줄 알았는데 최고의 저주였다니
그것을 이 사탄의 깊은 것을 거쳐서 십자가 라는 정답을
저 가짜 정답에 눈치를 보고 사는 죄인들을 겨냥해서 왔다 라는 겁니다
그저 율법 지키면 복 안 지키면 저주 라는 그것도 세 배나 저주 (삼 사대가 망한다) 라는
그저 지키냐 안 지키냐 라는 나의 행함의 나의 숙제의 여부로 본 것이
사실은 우리가 빠뜨리고 있는 사망의 권세와 연결이 된 줄도 모르고 말이죠
다니엘 욥 노아가 겉에 있어본들 그래 너 하나는 구원 받았다 치자
니 자식은 구원 없다 라는 겁니다
그럼 아무리 나 개인이 구원 받아 본들 무슨 소용이 있냐 말이죠
사람의 구원은 그래서 헛되다 라는 겁니다
이 헛됨을 거치지도 않는데
어떻게 성령을
상한마음을
외칠수가 있느냐 말이죠
이 절대저주를 거치지도 않는데(마귀가 시체취급하기 전에
아니 이미 시체로 놓여진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주님이 우리를 시체 취급해서
이 절대저주를 거쳐서 이 십자가 라는
하나님의 아들을 잡아먹는)
어떻게 절대용서를 다 이루셨다 라는
요나의 표적을 구할수 있겠냐 말이죠
구한다는 자체가 이 사망의 권세에 결박되었고
포로 되었기에
부르짖는 것이거든요
빠져나올 방법이 없으니까 말이죠
뭐 성화론자는 이미 빠져나왔으니까 이제 성화 하겠다 라구요
그 성화하겠다 라는 발상 자체가
자기를 위한 개인 구원 아니냐 말이죠
그러니 선을 취하고 악을 버리니니까
얼마나 사람들로부터 존경 받고 모범이 되겠냐 말이죠
이것이 우상숭배이고
왜? 그들은 다른 정답이 없다 라고
수도 없이 들었다 말이죠
이 우상을 이 인간들의 정답을 깨뜨리시고자
아예 정조준을 하고서 나타나는
종말을 외치는 부정적인 행함이 있는 믿음
자식을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의 믿음
거짓말로 자기를 자기나라를 자기민족을 자기 신을 멸망시키러 온 여호와의 이름 군대를
영접함으로써 거짓말로 정탐군을 숨기는 기생라합의 믿음 (정작 이스라엘은 우상을 믿는데)비 오지 않도록 삼년 반 동안이나 비오지 않기를
심판해 달라는 여기서도 삼년 반 한 때 두때 반때 이다 말이죠
왜 이 간극이냐
우상을 겨냥한
인간의 정답인 자아라는 정답을 겨냥한
가짜 정답을 겨냥한
철저한 단절 단절 단절 꼬기오 꼬끼오 꼬끼오 이다 말이죠
그 정도로 배불러 터진 겁니다
자식을 잡아 먹는 줄도 모르고 그 와중에서도
개인 구원 따위나 운운하고 있으니
어느 정도로 저주인줄 함 보여줘?
그래 니가 니 자식을 잡아 먹는다 라는 겁니다
그럼 십자가 라는 정답은 뭔가
그 저주 내가 대신 맞으마
니 자식 멈춰라
내가 직접 아들로써
자식으로써
내가 제물이 되겠다 라는 정답이다는 겁니다
이 절대저주인 십자가를 철거하지 않겠다
그 대신 내가 달리겠다 라는 겁니다
미래의 아이들을 무슨 수로 살리느냐?
없어요
잡아먹기 바빠요
이제와서 아이들이 환경운동하면서
어른들에게 제발 살려달라고 해도 소용이 없어요
전 세계가 이미 한 통속 속에 놓여졌습니다
자식을 미래를 잡아먹어야 살 수가 있어요
이 생존이 우상이라는 인간들의 답입니다
다른 수가 있던가요?
다른 방법이 없어요
뭐 결혼을 안하고
자식을 안 놓으면 낳지 않으면 된다구요
그건 개인이 그러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미 세대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어요
무슨 수로 아이를 키웁니까
자기 입술에 풀칠하기도 힘든 판국인데
2,300년? 사이의 최고의 종교 곧 과학에 의해서(근대와 현대 죠)
마음껏 우상숭배 했으니
그 정답의 결과는 자식 잡아먹는 것 밖에 없어요
남이 자식을 죽이는 것도 아닙니다
지가 지 자식을 잡아먹는 겁니다
중세때는 종교가 자식을 잡아먹었고
우상이라는 정답의 결과이다 말이죠
원인 있는 결과의 그 결과는 자식먹기 밖에 없어요
그 결박을 끊고자
예수님이 세 번 식이나 여기도 세 번이지요
같은 말을 세 번 기도 해요
그럼 하나 아닙니까
왜? 구지 세 번 이라는 매듭을 짖냐 말이죠
그 정도로 단절 단절 단절
넘어올수가 없다 라는 겁니다
차단 되었기에
율법 외에 한 의가 불쌍히 여겨주지 않으면 안된다 라는 겁니다
이 남은자가 그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절대미움이라는 절대저주라는 그 자리
마땅히 저주 받아야 하는 우상숭배의 밑낱이 낱낱이 드러난 그 자리에서
그 원수의 목전에서 아버지께서 베푸시는
이 사랑의 매 곧 십자가라는 절대저주 만이
마귀가 잡아먹기 전에
주님이 우리를 시체로 취급해서 심판하시는 이 매가 아니였다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같았을 것이다 말이죠
그러니 우리는 뭘 해도 우상숭배 밖에 나오는 것이 없기에
이 죄를 기억하고 한탄하는
자식을 잡아먹을 수 밖에 없는
나는 결혼도 안했고
자녀도 없다 라고 우겨도
가족 중에 조카도 있고요
다 있어요
결혼 자체가 고립이 되지 않는
소통이요 연합인데
심지어 레비 스토로스 라는 구조주의 철학자는
결혼은 매매 라고 잉여의 서로 주고받는 것이다 했거든요
이 찌끄래기 속에서 진리가 나오니까 말이죠
그러니 종이라는 쇠사슬 결박을 푸시는 것도 모잘라서
20%로 더 초과잉적 사랑으로 아예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라고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너는 나의 아내 나의 신부이다 라고 확정까지
어느 속에서
저 악질 중에 악질인 죄인 중의 괴수의 자리에서 끄집어 낸 여호와이다 라고
내 목숨 걸어서 너를 저 사망의 종 노릇함에서 끄집어내어서
이 사랑의 종으로 삼았다
그 증거가 바로 신부삼기 이다는 겁니다
의인은 신부로 안 삼아요
자기 피의 영광
곧 십자가의 영광 이라는 정답이 없으니까 말이죠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 말이죠
십자가의 피로 정답이
찾아낸 문제아 이니까 말이죠
이 진짜 정답이 저 가짜정답 우상을 거쳐서 왔기에
더 이상 다른 확정
다른 또렷한 것이 없습니다
이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이 신랑의 사랑에서 누가 끊겠습니까
아버지가 죽은 아들 돌아왔다 라고
악질 중에 악질
죄인 중에 괴수인
탕자가 돌아왔다 라고
이미 벌써 맨발로 멀찍이 마중 나왔던 겁니다
안그러면 우리는 또 다른 정답을 찾아 헤맬 테니까요
이 의문의 반복이라는 종노릇
그 쇠사슬
이 결박을 제대로
단숨에 순식간에 1초도 망설임 없이
단번에 다 이루셨으니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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