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 내가 잠간 그들에게 성소가 되리라 (겔 11,14-18).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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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3 원수의 목전에서 다시는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하리라 (겔 39,25-29).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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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0 내가 잠간 그들에게 성소가 되리라 (겔 11,14-18)

이스라엘아 너희가 여호와의 칼에 엎드러질 것이라 (겔 11, 5-13)
에스겔 2019 2021. 10. 31. 11:10
21-029 이스라엘아 너희가 여호와의 칼에 엎드러질 것이라 (겔 11, 5-13)

〈겔 11,14-18 개역한글, 구약성경 1163 쪽, 찬송가 246장 내 주의 나라와, 193장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써〉

〈찬송가 246장 내 주의 나라와〉

1. 내 주의 나라와 주 계신 성전과 
   피 흘려 사신 교회를 늘 사랑합니다

2. 내 주의 교회는 천성과 같아서 
   눈동자 같이 아끼사 늘 보호하시네

3. 이 교회 위하여 눈물과 기도로 
   내 생명 다하기까지 늘 봉사합니다

4. 성도의 교제와 교회의 생활과 
   구주와 맺은 언약을 늘 좋아합니다

5. 하늘의 영광과 베푸신 축복이 
   진리와 함께 영원히 시온에 넘치네 아멘


〈찬송가 193장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써〉

〈찬송가 193장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써〉

1.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써 그대는 씻기어 있는가 
   더러운 죄 희게 하는 능력을 그대는 참의지 하는가
   예수의 보혈로 그대는 씻기어 있는가 
   마음속의 여러 가지 죄악이 깨끗이 씻기어 있는가

2. 주예수와 밤낮으로 늘 함께 그대는 행동을 하는가 
   아무때나 어디든지 그대는 십자가 붙들고 있는가
   예수의 보혈로 그대는 씻기어 있는가 
   마음속의 여러 가지 죄악이 깨끗이 씻기어 있는가

3. 주님 예수 다시올 때 그대는 영접할 예복이 있는가 
   그대 몸은 거룩한 곳 성전에 들어갈 준비가 됐는가
   예수의 보혈로 그대는 씻기어 있는가 
   마음속의 여러 가지 죄악이 깨끗이 씻기어 있는가

4. 모든 죄에 더러워진 예복을 주앞에 지금 다 벗어서 
   샘물같이 솟아나는 보혈로 눈보다 더희게 씻으라
   예수의 보혈로 그대는 씻기어 있는가 
   마음속의 여러 가지 죄악이 깨끗이 씻기어 있는가


〈마태복음 27,62-66 개역한글, 신약성경 51쪽〉

(62) 그 이튿날은 예비일 다음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가로되
(63) 주여 저 유혹하던 자가 살았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64) 그러므로 분부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적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유혹이 전보다 더 될까 하나이다 하니
(65)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에게 파수꾼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하라 하거늘
(66) 저희가 파수꾼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하니라”

〈겔 11,14-18 개역한글, 구약성경 1163 쪽〉

(14)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15) 인자야 예루살렘 거민이 너의 형제 곧 너의 형제와 친속과 이스라엘 온 족속을 향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여호와에게서 멀리 떠나라 이 땅은 우리에게 주어 기업이 되게 하신 것이라 하였나니
(16) 그런즉 너는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비록 그들을 멀리 이방인 가운데로 쫓고 열방에 흩었으나 그들이 이른 열방에서 내가 잠간 그들에게 성소가 되리라 하셨다 하고
(17) 너는 또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만민 가운데 모으며 너희를 흩은 열방 가운데서 모아 내고 이스라엘 땅으로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다 하라
(18) 그들이 그리로 가서 그 가운데 모든 미운 물건과 가증한 것을 제하여 버릴지라

(겔 11:14, 새번역) 그 때에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겔 11:15, 새번역) "사람아, 예루살렘의 주민이 네 모든 친척, ㉡네 혈육, 이스라엘 족속 전체를 두고 하는 말이 '그들은 주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다. 이 땅은 이제 우리의 소유가 되었다' 한다. / ㉡칠십인역과 시리아어역에는 '포로가 된 네 동포'
(겔 11:16, 새번역)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일러라. '나 주 하나님이 이렇게 말한다. 비록 내가 그들을 멀리 이방 사람들 가운데로 쫓아 버렸고, 여러 나라에 흩어 놓았어도, 그들이 가 있는 여러 나라에서 내가 잠시 그들의 성소가 되어 주겠다' 하여라.
(겔 11:17, 새번역) 그러므로 너는 포로가 된 동포들에게 이르기를 '나 주 하나님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여러 민족 속에서 너희를 모아 들이고, 너희가 흩어져 살고 있는 그 여러 나라에서 너희를 모아, 이스라엘 땅을 너희에게 주겠다' 하여라.
(겔 11:18, 새번역) 그들이 그 곳으로 가서, 그 땅의 보기 싫고 역겨운 우상들을 그 땅에서 다 없애 버릴 것이다.

(겔 11:14, 쉬운)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시다>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겔 11:22, 쉬운) <환상에서 깨어난 에스겔> 그 때에 두 날개 달린 생물인 그룹들이 날개를 들었고 바퀴들은 그 곁에 있었다.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그 위에 있었다.

(벧전 2:4, 개역)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벧전 2:5, 개역)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벧전 2:6, 개역)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벧전 2:7, 개역)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벧전 2:8, 개역)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벧전 2:9, 개역)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10, 개역)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겔 11:14, 현대어) [포로민들에게 주는 위로] 그때 주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겔 11:22, 현대어) [영광이 예루살렘을 떠나다]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아직 그룹들 위에서 빛을 환하게 내고 계시는데 그룹들이 날개를 펼치고 땅에서 떠올랐다. 바퀴들도 그들과 함께 떠올랐다.


소제목이 달린 번역의 소제목이 잘못 되어서 올려봤습니다
포로민에게 주는 위로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할 내용이 영광이 예루살렘을 떠나다 라고 제목을 붙이면 오해하기가 쉬운데
위로라고 해 놓고서는 떠나버리면 앞뒤 안 맞잖아요
이것은 쉬운성경번역대로 환상에서 깨어나다 라는 뜻이다 말이죠

그런데 쉬운번역은 14절을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셨다 라고 했는데
이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을 위한 이스라엘 회복이 되는 것이겠죠
마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군대가 된 것은 이스라엘 자신들을 위한 군대가 아닌 뜻이듯이
군대란 적군이 있는데 그 적군인 하나님의 원수가 이스라엘 자기들의 원수가 아니듯이 말이죠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원수이지 이스라엘의 원수가 아닙니다

아니 그럼 이스라엘이 남을 위해서 싸우는 겁니까

네 맞습니다
문제는 남을 위해서 싸울려면 자신이 살아있어야 하는데 자신이 죽어서 싸우니까
남을 위해서 싸우는 것도 아니지요

정작 그 하나님의 원수 속에 자기자신들 이스라엘도 포함이 된 입장이다 보니

바벨로 포로 이전의 이스라엘이 전쟁에서의 승리는
자신들의 승리가 아니라 주님의 승리이다는 거죠
오히려 이스라엘 자신들의 승리가 될까봐

처음부터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자체에서 나올수 있는 승리의 조건들을 다 없애는 겁니다
총과 칼 같은 무기로부터 승리를 했다 라는 조건이 성립이 될까봐
아예 무기를 들지도 않은 전쟁을
또 할례를 행함으로 인해서 아예 절뚝 절뚝 지팡이를 의지함 밖에 없음을

또 기드온의 칼이여 라고 외침으로써 뒷걸음질로
항아리 깨뜨리고
승리의 나팔을 전쟁 전에 아예 불어버림으로써 승리를
또 모세는 지팡이를 든 팔이 내려가면 지고 올라가면 이기는
여호수아의 칼과 대비된 모습으로써 승리를

아예 승리의 조건이 될수 없는 것들만 모아 모아서 승리했고

반대로 누구든지 이런 무기를 지녀야 가지고 있어야 소유해야 이길수 있다 라는 조건이 성립이 되면 도리어 지는 전쟁일 수 밖에 없도록 하신 전쟁을

이스라엘은 목격하고 증인이 되어야 했다 말이죠
자기들의 전쟁하지를 아예 하지 않았다 라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스라엘이다 하나님의 군대이다 라는 겁니다
처음부터 이스라엘은 군대였던 겁니다

그런데 군대 라는 의미가 오히려 이스라엘은 아예 붙일수가 없었던 마른뼈와 같았던 거죠
전쟁을 어떻게 하면 안할려고 내빼는 모습만을 이스라엘이 나타내었으니까 말이죠

오죽하면 기드온 맞나요? 겁쟁이 천하의 둘도 없는 겁쟁이다 말이죠
그런데 군대 곧 용사래요 글쎄

이 말은 용사 되신 여호와가 가시떨기(천하의 겁쟁이)에게 붙었다는 말이지
기드온 자체가 용사라는 말이 아니다는 겁니다

바로 이런 히스테리를 긍휼을 보여주시지

기드온 농사꾼이 해병대훈련캠프에서 훈련 한 번 한 적 없잖아요
물론 인간은 이런 기드온 천하의 겁쟁이도 귀신 잡는 해병대로 만들 수 있어요

그래서 필요한 것이 시간과 공간입니다
특정 시간 곧 훈련시간과 특정공간 해별대 훈련 시설이 필요해요

고등학교 독일어 선생님의 이 말 한 마디만 생각이 납니다
독일어 속담인지 몰라도 독일어에 이런 말이 있다고

그 어떤 누구도 만번의 연습이 대가를 만든다 라고 말이죠

앞의 글 마태복음 무덤을 지키는 자에서
예수님의 부활은 한 번이라서 만번까지 필요치 않아요

그리고 바로 저런 독일어 속담처럼 

수 많은 이단들을 보와왔던 유대인들이라서
물론 자기들 내부의 모습들이라서 많이 속아왔다 말이죠

그래서 일체의 시간도 공간도 허용치 않겠다 라고
절대 발 디디지 못하도록 발짜르겠다 라고
 
시간도 삼일 뒤에 절대 못 부활하도록 그런 사기를 못 치도록 말이죠
그리고 공간도 무덤도 아예 지키는 겁니다

시간도 없애고 공간도 없애 버렸는데 무슨 놈의 대가가 될 수 있겠냐 라고
부활의 할배가 나타나도 끄덕없이 막아버리겠다 라고
공격과 수비의 숨막히는 대결로 몰아가는 겁니다

아니 그런다고 인간이 예수님의 부활을 막을 재간이 있을까요?
그럼 옆으로 하지 뭐

마치 바벨탑 세울때에 언어만 톡 건드려도 저거들끼리 무슨 말 하는지 몰라서
저절로 자기들끼리 흩어지듯이 말이죠
분명히 역청과 벽돌로 발전 발달한 기술을 서로 공유했다 말이죠

(창 11:3, 개역)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이렇듯 오늘날 최첨단 기술 누가 주었나요?
왜? 왜 나는 망해야 마땅한 죄인인가를 알게 하기 위해서 줬다 말이죠
울게 할려고 울게 하소서 라샤 ~~~~~~ 꼬 삐앙까 ~~~~~~ 라 두라 소르떼~~~~~~~~

그것이 말로 되었거든요 말 언어

왜 자본주의를 허락하셨는가 어떤 목사의 동생처럼 신학교 때려치우고 직장생활하니까
돈에 굶주린 사람들과 자기자신도 그런 모습에 회의를 느끼면서 질문한 ~~~

왜 하나님은 악을 허용하시는가? 너가 악이다 하나님의 원수이다를 알게 하실려고 말이죠

모두다 언어로 말로 나온 것이다 말이죠

자 이렇게 되면 쌓고 쌓기가 된다 말이죠
높이가 되고 그 높이가 계급이 된다 말이죠

금신상 밑에 은신상 은신상 밑에 동신상 동신상 밑에 철과 놋 진흙 피라미드 구조입니다 애굽

그런데 마른뼈 군대는 아무리 높일려고 해도 
아이고 이놈아 너 마른뼈 잖아 라고
처음자리가 처음사랑이 마른뼈 곧 쥐뿔도 아무것도 아니잖아 라는 겁니다
계급 자체가 형성이 안되요

그런데 종교는 바벨탑 교 는 어떻게 해서든 계급이 되어서 
제일 높은 놈이 나타나서
저 예수의 다 이루심을 부활을 십자가를 어떻게 해서든 막아라 라는 것이

이들이 눈에 보이는 교회에 들어가서 기도하는 내용들이다 말이죠

바벨론 포로 속에 있으면서도 그것을 몰라요
마른뼈로 평준화 시킨 것인데

그 속에서도 나는 이런 잃어버림 속에 있지만
신앙 잘 지켜서 주님이 보상해 주시겠지 라고 말이죠

그래서 저런 소제목이 틀린 이유가
여전히 자기숙제로써 보상심리로써
참으면 이 고난을 참고 참으면 그 참은 댓가로써 
회복과 약속이 주어질 것이다 라고 믿은 겁니다

아니 자기의 잃어버림을 보고자 
광야 꼬끼오 광야 삼일길 꼬끼오 광야삼일길 어린양의 죽음 속에 들어가는 겁니까 
아니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 볼려고
절대저주라는 하나님의 저주인 십자가의 죽음을 볼려고 포로 잡혀 가는 겁니까?

무식하게 말살기를 실천하고 죽은자가 자기가 되어야 한다 라고 하는 놈이 두 번째 부류다 말이죠
역시나 구원의 조건을 자기 쪽에서 갖출려는
은혜를 더하고자 죄를 짖겠다 라는 놈들 말이죠

(롬 6:1, 개역)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롬 6:2, 개역)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롬 6:3, 개역)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롬 6:4, 개역)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6:5, 개역)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이런 놈들은 한 몸 보다

또 자기 쪽에서 성전을 성전 답게
교회를 교회 답게 만들겠다 라는 운동을 펼치는 가룟유다와 같은 하나님나라 운동 하는 놈들이다 말이죠
차라리 태어나지나 말았어야 했다 는 겁니다

바로 이런 가짜를 깨뜨리시고자 포로 되게 하신 것인데
여전히 우상숭배에 빠져서 자기 숙제를 계속 하겠다는 식으로
소위 인간의 신앙은 오기 객기 부리는 것 밖에 안되는 것이거든요
고집불통이다 말이죠 이것을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는 강퍅한 애굽왕이다는 겁니다

마치 예수님 당시의 로마 포로 속에 있던 유대인들
그 대표성인 바리새인이 성전에서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저 세리와 같지 않음을 하나님께 감사하다 라꼬
십일조내고요 이레에 두 번 금식 했고요 라꼬 ~~~

예루살렘 거주민과 다르다 라고 하지만 역시나 우상숭배이기는 마찬가지 이다 말이죠
예루살렘 거주민은 우상제거할 마음이 없어서 다른민족에게 그 땅을 주시겠다 라고하니
이 약속을 그들은 거부하기는 매 마찬가지 이다는 겁니다

자 이렇듯 오늘 본문에 세 부류의 등장인물이 나옵니다

하나는 예루살렘 거주민
또 하나는 바벨론 포로 잡혀간 포로민
나머지 하나는 인자 에스겔입니다 하나님의 시선을 대변해 주는 마치 예수님의 기능입니다

포로 잡혀가지 않은 예루살렘 거주민은 여전히
이 약속의 땅 눈에 보이는 이 예루살렘 땅으로써 약속이 설명 가능하다 라는 식입니다
그러니 이 땅에서 나가라 라고 하실 하나님이 아니다 라는 겁니다
그렇다고 우상을 제거할 마음은 있는가 역시나 없어요
우상과 하나님을 썩어 버렸으니
복 받을려면 여전히 우상을 숭배해야 하거든요
마치 홉니와 비느하스처럼 여호와의 불을 다른 불로 불을 붙여놓고서는
법궤 뒤에 숨어서 법궤만 앞 장 세우면 승리한다 구원된다 라는 식의
그 조건만을 채우는 것만 따오는 겁니다

하나님 본인이 약속을 했으니까 그 약속을 하나님 본인이 깨드릴 이유가 없다 라는 겁니다
법궤가 블레셋 군사들아 홉니와 비느하스가 내 뒤에 숨었단다 라고 큰소리 치면서 고자질 할 리가 없다 라는 식으로
하나님 본인이 약속을 해 놓고서는 하나님 본인이 그 약속을 깰 리가 없다
배신 때릴 리가 없다 라는 식입니다

마치 눈에 보이는 성전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이 설명 가능하다는 식으로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이다 것을 까발리시는 거죠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 라는 신학의 주장이 우리 때에 한창이였죠
그런데 자본 곧 IMF가 한번 휩쓸어 버리니까 깨개갱

교회 밖이고 안이고 뭐고 다 소용없고 
돈이면 구원이 된다 라는 식이 오늘날 신학인 거죠
겉으로는 점잖은척 하면서 속으로는 다 돈 밖에 모르는 교회 이다는 거죠

교회 밖에는 구원 없고 교회 안에는 구원 있다 라는 이런 멋들어진 신학논쟁이
돈 앞에서는 깨갱

돈 없으면 신학교가 문 닫고 교회가 문 닫을 판국인데
그 위에서 신학논쟁이 가능하지
신학자와 목사가 무슨 수로 양성이 되겠냐 라는 식입니다
교회가 돈이 없는데 무슨 수로 운영이 되냐 라는 장로와 목사의 주장과 똑같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라고 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교회 눈에 보이는 예루살렘 땅을 유지하기 위해서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가 동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말하기 위해서 교회가 동원이 되어야 하는데
주객이 거꾸로 된 거죠

그러니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포로 잡혀가는 가는 사건을 눈에 보고서도
저 사람들은 하나님께 잘못 해서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서 깔려 죽었다 라고 하는 식이다 말이죠

주님은 정작 그들에게 그 다음 니 차례인데 우짜노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님을 졸졸졸 따라다니면서 우짜노 우짜노
젊은 청년 목숨 아깝게 죽게 되었구나 우짜노 라고 울때에

못땟께 싹 뒤돌아 보시면서 냉소적인 발언을 하시는 겁니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와 너 자식을 위해서 울라 라고 말이죠
그 다음 니 차례이다는 식이죠

(눅 23:27, 개역)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 오는지라
(눅 23:28, 개역)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눅 23:29, 개역)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수태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눅 23:30, 개역)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눅 23:31, 개역)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종말 앞에서 부자의 전재산이 무슨 소용이 있나요

부자야 돈주고 값없이 심판에 불 붙지 않는 옷을 사라 말이죠

왜 부자가 되게 하셨냐 말이죠
전재산을 다 나누어 주어도 생명 하나 살릴수 없는 이 의문의 반복 해서 뭐하게요
남의 생명은커녕 자기자신도 못 살린다 말이죠

도리어 주님의 섬기시러 오신 모습 앞에서
참생명을 주세요 라고 해야 할 판국이다 말이죠
그 새 생명은 아무리 부자여도 정작 새생명하나 없는 거지같은 나에게 
새생명 구해야 할 판국인 종말을 증거해야 할 것 아니겠냐 말이죠

그의 나라와 그 의를 말이죠

나의 구원 나의 부자됨을 위해서 그의 나라와 그의 의가 동원이 되지 않듯이
그런데 예루살렘 거주민은 포로민을 보고서 자신들은 안 잡혀가니까
부자청년 
저 세리와 같지 않다고
탕자처럼 되지 않았다 라고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 없다 라는 맏아들처럼

그런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겁니다 역시나
참성전의 의미를 모르는 
하나님의 의
곧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시는 의미를 모르는 겁니다


자 이제 두 번째 부류인 바로 그런 돈 앞에서 포로 잡혀간
바벨론 포로민들의 하나님에 대한 생각은 그럼 옳냐

그들 또한 저들 예루살렘거주민의 하나님과 다르다 라고 우기면서
자기들의 하나님이 옳았다 라고 합니다만
역시나 마찬가지 이다 말이죠

언젠가는 주님 께서 이 잃어버린 자를
막살게 된 포로잡혀가게 되니 어쩔수 없이 막살게 된 죽은 자를 다시 살려줄 것이다 라고
열심히 신앙생활 하겠다 라고 나오겠지요

마치 부자청년이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습니까
로마포로 로부터 해방을 얻게 되겠습니까
자기가 해야할 숙제를 묻듯이 말이죠

바리새인은 정작 삥둘러가는 사마리아 구역처럼
사마리아 신학은 야곱의 우물이 있는 산에서 예배 드리는 것이 맞습니까
아니면 유대인 신악의 예루살렘 산에서 예배 드리는 것이 맞냐 라고 장소를 묻더라 말이죠

(요 4:20, 개역)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요 4:17, 개역)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요 4:18, 개역)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요 4:19, 개역)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요 4:20, 개역)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요 4:21,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요 4:22, 개역)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요 4:23, 개역)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 4:24, 개역)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요 4:25, 개역)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요 4:26, 개역)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요 4:27, 개역) 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저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이가 없더라
(요 4:28, 개역)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요 4:29, 개역)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요 4:30, 개역) 저희가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이것이 다음 내용인 한 마음인데
아니 아무리 장소가 맞다고 해 본들
마음이 안 맞는데 번제와 제사 
그 수 많은 번제의 양과 재물리 무슨 소용이 있냐 말이죠

주님은 가정부를 한 몸으로 맞이할려고 약속했겠냐 말이죠

사마리아 신학도 틀린 겁니다

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라고
제가 성화론자들과 음악선교단 때문에 알게된 여러교회와 선교단체 등등에서 하는 말
다 같더라 말이죠
그저 자기 숙제를 정성으로 드려서 제대로 알고 제대로 진정으로 드리는

(요 4:21,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그거 가인의 제사이다 말이죠 
더 나은 아벨의 제사를 학생회 수 많은 교회의 학생회에서 중고등부 표어로 삼는 그 내용을 다 들어봐도 역시나 가인의 제사이다 말이죠

왜 이 산 야곱의 우물이 있는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예배하는 장소가 못 되는 이유는
우상으로 도배를 해 놓고서는 뭘 하긴 뭘 해요

아무도 주의 산에 오를자 없어요
손 더럽거든요
손 깨끗한 자 없어요

도리어 바로 그런 야곱의 우물이 있는 산
예루살렘
이 두 장소가 다 찢겨지고 불태움 당함을 거쳐서
나오는 새로운 장소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장소가 아니더라 말이죠 

한 인물이다 말이죠

그 인물과 하나가 되는
그렇게 하나게 되게 하시고자

왜 저런 것들은 예배 장소가 못 되는 이유와
새로운 장소인 새 인물
그리고 그 새 인물과 왜 하나가 될 수가 없는지 라는 그 단절을 거쳐서

말도 안되게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 것으로써
하나게 되게 하시고자 섬기시는 그 섬기신 인자를 봐야

왜 장소와 시간이 나중에는 계급이 되고 권력이 되고 우상이 되는지를 보여주시는 겁니다

우물가의 여인은 동네사람들 동네사람들 우물 깃는 바가지 냅따 던지고
나의 죄를 용서하신 참성전이 떳어요

그가 나의 죄를 용서하시는 새남편이 되어주시겠데요 라고 

왕이란 죄문제를 해결하시는 분이시다 말이죠

이것을 로마에게 포로 잡혀있는 유대인들 들으랍시고
평준화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니가 잘낫니 내가 잘낫니 라고
마른 뼈 주제에 사마리아를 삥 둘러가고 있는 유대인 보란 듯이

이 우물가의 여인에게 한 몸 되심을 주님이 선언해 버리시는 겁니다
정작 이 여인은 자꾸 자꾸 뒤로 뺄려고 해요

와이라노 이 양반 유대인이면서 삥 둘러 안가고 와이라노
왜 자꾸 나 한테 물 달라 카노 와카노

참성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참성전의 기능을
이 예수님이 직접 이 여인에게 펼쳐버리시는 겁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주실려고 말이죠
아이고 평생 다시는 물 길러 오지 않게 해 준다 카이
그렇게 해 주이소 마 라고
얼떨결에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한 것으로 일방적으로 취급해 버리시고
죄를 제거해 버리시는 겁니다
그렇게 한 몸 되시는 겁니다

그 여인이야 말로 단 하나도 조건을 갖춘게 단 하나도 없이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용서 받았다 말이죠

과부의 헌금 전재산의 하루살이의 헌금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증거하는 교회 유지를 위해서
비록 과부가 되어 힘들게 살고 가난하게 살아도
헌금을 해 주셔야지만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증거할 수 있다 라고
눈에 보이는 교회를 의식하게 만든다면 이 과부의 종말의 헌금에 딱 걸려드는 겁니다

(막 12:41, 현대어) [과부의 헌금;눅21:1-4] 예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 헌금궤 맞은편에 앉아서 사람들이 거기에 돈 넣는 것을 지켜 보고 계셨다. 부자들 여럿이 와서 많은 돈을 넣었다.
(눅 21:1, 현대어) [과부의 헌금;막12:41-44] 예수께서 성전에 서서 부자들이 헌금궤에 돈 넣는 것을 지켜 보고 계셨다.

(막 12:41, 개역) 예수께서 연보 궤를 대하여 앉으사 무리의 연보 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막 12:42, 개역)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막 12:43, 개역)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 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막 12:44, 개역)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
(막 13:1, 개역)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막 13:2, 개역)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

마가복음은 13장 1절 2절까지 이어서 봐야 합니다

(눅 21:1, 개역)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연보궤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눅 21:2, 개역) 또 어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눅 21:3, 개역) 가라사대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눅 21:4, 개역)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 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눅 21:5, 개역)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미석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매 예수께서 가라사대
(눅 21:6, 개역)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눅 21:7, 개역) 저희가 물어 가로되 선생님이여 그러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런 일이 이루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저렇게 아름다운 꽃 장식과 아름다운 제주도에서 공수해온 성전벽돌을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김 없이 무너뜨리는 종말의 헌금이 된다 말이죠

왜 불에 타는 교회를 왜 의지하냐 말이죠
불에 타지 않는 참성전 되신 예수님을 
참성전을
왜 7에 70번의 용서를 왜 인애와 자비를 종말의 마음을 왜 구하지 않냐 말이죠
왜 눈에 보이는 교회를 구하고
왜 남을 7번 용서를 왜 구나햐
이전 것은 지나가는 것을 왜 구하냐 말이죠

자 이제 마지막 세 번째 등장인물인
인자 에스겔이 보여주는 하나님의 약속은

성소 잠시 성소가 되어 준다 라는 표현으로써 나옵니다

첫 번째 부류인 예루살렘 거주민의 약속의 땅 개념도 아니요
두 번째 부류인 바벨론 포로된 자들의 언젠가는 돌아간다 라는 보상개념도 아니요

진짜 참된 새언약
보라 내가 새 일을 다 이루어 놓았다 라는 새 언약의 말씀은

잠시 성소가 되어주는 하나님께서 함께 동행해 주심은
참성전의 기능으로써

너희 쪽에서 가지고 오는 그 엉터리 하나님 그 엉터리 약속을 다 깨뜨리시고
주님 쪽에서 주시는 새언약과 새성전의 의미는

잠시 성소가 되심으로써
참성전의 기능을 보여주시겠다 라는 겁니다

둘째 부류인 바벨론 포로잡힌 포로민들이
로마 포로민들이

언젠가는 이 모든 잃어버린 것들을 주님께서 다 보상해 주실거라는
화려한 미래를 꿈꾸는데 있어서 여전히 잔칫집을 추구하기는 매 마찬가지입니다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는 가룟유다나
시드기야 왕
이 이스라엘 나라는 이스라엘 나라 답게 되기 위해서
나 이스라엘 왕 사울왕은 이 이스라엘 나라는 이스라엘 답게 하겠노라

이 율법 어긴 놈 다윗을 죽여라 어쭈 아히멜렉 제사장 니가 다윗을 도와줘??
제사장이 율법 어긴 놈을 도와줘? 너도 율법 어긴 놈이구나 에라이 죽어라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라 라고

이것이 첫 번째 부류이고

악한 무화과 나무 이고

두 번째 부류는 포로 잡혀간 여고냐가 포로 잡혀간 것이 그럼 의가 되는 겁니까?

좋은 무화과 나무라고 해서 이들이 옳았습니까?

여고냐의 악행을 아십니까?
다윗의 악행을 아십니까?
베드로의 세 번 부인 이라는 악행을 아십니까?
탕자가 착한 일로 아버지 재산을 거들낸겁니까 악한 놈입니다

뭐 하나 내세울 꺼리 없도록 하신 겁니다
구원 될 조건을 아예 없애버렸어요
첫 번째 부류는 그 반대였지만 자꾸 조건을 갖추었지만
두 번째 부류는 없어요

그래서 자기 숙제를 한다는 것이 역시나 첫 번째 부류 식으로 하게 됩니다

이것은 자기 죄로 우는 자가 아닙니다

아들 덜 배고프고 아직 배불러서 여전히 멋들어진 구원을 바라는 식입니다
지금은 비록 천민이나 나중에는 내 반드시 금의환양 하리라 라는 무도의 유재석이가
관상특집 코너에서 종호 어머님께 계란 얻어먹으면서 하는 말이다 말이죠

youtu.be/djzePiAXwgQ

어머니께서 우리 큰 아버지께 인사나 드려야 한다 라고 하는 정형돈의 말이 너무 너무 웃끼다 라고 해서
자주 보고 싶다 라고 자주 보여드리면서 자주 저도 보다 보니 외우다 싶이 했는데

결국 인간의 믿음은 곧 행함은 무도의 관상특집처럼
계급 따먹기 땅따먹기입니다 남의 눈을 의식하니까 천민에서 왕으로 어떻게 옮겨가냐 라는 거죠

마른뼈 로 평준화 시켰다니깐요

이것을 외치는 것이 하나님의 군대 이스라엘입니다

그래서 거룩한 나라 곧 그의 나라 그의 의는 어떻게 이 잠시 성소가 되심이 이루는지
수천년 수만년의 시간을 줘도 못하는 인간에 비해

잠깐의 3년 만에 3일 만에 단번에 즉각적으로 순식간에
어떻게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 삼으시는지

(벧전 2:9, 개역)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사 66:7, 개역) 시온은 구로하기 전에 생산하며 고통을 당하기 전에 남자를 낳았으니
(사 66:8, 개역) 이러한 일을 들은 자가 누구이며 이러한 일을 본 자가 누구이뇨 나라가 어찌 하루에 생기겠으며 민족이 어찌 순식간에 나겠느냐 그러나 시온은 구로하는 즉시에 그 자민을 순산하였도다
(사 66:9, 개역)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임산케 하였은즉 해산케 아니하겠느냐 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해산케 하는 자인즉 어찌 태를 닫겠느냐 하시니라
(사 66:10, 개역)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여 다 그와 함께 기뻐하라 다 그와 함께 즐거워하라 그를 위하여 슬퍼하는 자여 다 그의 기쁨을 인하여 그와 함께 기뻐하라
(사 66:11, 개역) 너희가 젖을 빠는 것 같이 그 위로하는 품에서 만족하겠고 젖을 넉넉히 빤 것 같이 그 영광의 풍성함을 인하여 즐거워하리라

어떻게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입히시는지
우물가의 여인처럼 말이죠
단 하루 만에 말이죠
참성전의 기능을 펼치신다 말이죠

사마리아 구역을 삥 둘러가는 유대인들 코 앞에서 말이죠
유대인들은 천년 만년 해도 안 되는 것을 말이죠


바로 이 잠깐의 성소의 기능

절대저주 속에서 어떻게 이 잠시의 성소 기능을 말이죠

자의적으로 자기가 알아서 가는 초상집이 아니라
정작 유월절 어린양의 희생을 보라는 거지
자기가 알아서 가는 잃어버림 속 조차도 역시나 잔칫집이다 말이죠
좁은길로 가고 싶어도 없어요 없는 길입니다
안 보여요 안 보여
뭘 해도 우리는 넓은 길로 멸망의 길 밖에 없다는 겁니다

(겔 11:16, 개역) 그런즉 너는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비록 그들을 멀리 이방인 가운데로 쫓고 열방에 흩었으나 그들이 이른 열방에서 내가 잠간 그들에게 성소가 되리라 하셨다 하고


욥은 따졌습니다 나 이렇게 옳았는데
주님 시키는대로 했는데 왜 저주를 퍼붓고 잃어버림을 당했냐 라고

그런데 정작 주님의 버림받은 모습을 보니
자기 의로움은 뻔데기 앞에서 주름이였다 말이죠

남 7번 용서하는 욥이
욥을 7에 70번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버림 받으심 앞에서

비로소 머리를 쳐 박고 새카만 재를 머리에 뿌리고
생일을 저주 하면서 다시는 아토피 낫게 해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절대죽음을 봐버렸거든요

광야
광야 삼일길
유월절 어린양의 희생 피를 보고서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보고서 말이죠

 
하나님의 일이란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겁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자란
참성전의 기능을 제대로 보여줌으로써

그가 버림 받음으로써 우리가 낫는 방식 외에는 없다 라는 겁니다

그 버림을 보라고 포로 잡혀 간 것을
언젠가는 보상해 줄것이니까 참자 고난을 참자 미래는 좋을 것이다 라는 것은
유대인이 낳은 무신론사상으로 이어집니다

참아도 못 하네 ~~~~~~~~ 눈 물 많이 흘려도 ~~~~~

내 버림이 아니라 예수님의 버림을 보라 라꼬
욥에게 애매한 고난 사탄의 가시를 준 거다 말이죠

왜 버림 받으셔야만 했냐 라는 거죠

그것은 인간이 순 엉터리 하나님과 엉터리 성전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주의 전을 사모하면 할수록
율법을 지키면 지킬수록 예수님을 죽이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 당사자가 율법에 달인인 사도바울 아니냐 말이죠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당사자 베드로 아니냐 말이죠

진정한 성소는

인간들의 우상숭배인 번제와 제사를 제거하기 위해서
인애와 자비로써 오심에 있어서

(벧전 2:4, 개역)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벧전 2:5, 개역)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사람에게 버림 받음 바가 된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께는 택하심이 되는 보배로운 산 돌이다 말이죠

네 맞아요 종말의 과부의 헌금이 된다 말이죠

그 산 돌이 뜨인 돌이 돌 위에 돌을 하나도 남김 없이
번제와 제사를 다 무너뜨리는 겁니다

첫 번째 부류의 예루살렘 거주민  사울왕계열
두 번째 부류인 바벨론 포로민    세가지 죄악을 안 담길려고 발버둥치는 다윗왕계열
마치 임마누엘 구하지 않겠다 라는
세 번 부인 절대로 하지 않겠다 라는 베드로처럼

정작 세 번째 등장인물인 인자 라는 새성전의 박스는
우리의 죄악을 담는 겁니다

죄악을 담으니 우는 겁니다
꼬끼오 꼬끼오 꼬끼오 ~~~~~~~~~

지지난 주에 이 앞구절을 에스겔이 아니 그럼 다 죽이실랍니까 라고
모세처럼 광야에서 다 죽이시면 말라꼬 애굽에서 빼내셨습니까 라고

우는 자로써 인자가 동원이 된다 말이죠

그 버림받는 모세
버림받는 에스겔
버림받는 인자

이 인자의 모습이 누구 누구의 아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인자가 우리의 죄악음 담아서
버림 받음으로써

성소를 이루시는 겁니다

아니 버림받음으로써 성소를 이루시다니요?

하나님의 일은
그가 상함을 받는 것을 원하셨고
질고를 당하는 것을 원하신
속건제물 되심을 원하셨다 말이죠

(사 53:10, 개역)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이것만이 인간들의 무수한 번제와 제사를 거부하는
인애와 자비를 원하심이다는 겁니다

네 맞아요 첫 번째 부류 예루살렘 거주민도 두 번째 바벨론 포로민들도
늘 마음에는 번제와 제사 라는 인간 쪽에서 바치는 것만 생각했지
나 옳았습니다 라는 욥의 주장만 하고 있지

주님의 일은 새 언약은 아예 안 본다는 겁니다

그가 버림 받음으로서 우리가 낫게 된다는 기쁜소식 곧 화목제물만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이다 라는 겁니다
인애 와 자비

안그러면 자꾸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려고 수 많은 피를 흘린다 말이죠
손에 피가 가득해요

교회 사수 할려고 얼마나 수많은 피를 흘렸겠냐 말이죠
참선지자를 얼마나 많이 죽였냐 말이죠
거짓선지자 거짓 목사를 사수 할려고 말이죠

(벧전 2:6, 개역)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벧전 2:7, 개역)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벧전 2:8, 개역)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오직 예수님처럼 버림받는 돌이 머릿돌이 되게 하는 
모퉁이 돌이 모든 나머지 성전을 규정해 버리는 머릿돌이 된다 말이죠

인간에게 성전을 맡겨본들 이스라엘을 맡겨본들 이스라엘이 12지파가 다 모아지는게 아니라
도리어 떨어져 나가 버리니까 나만 남았나이다 라고 우기는 겁니다

정작 유대인으로 오신 예수님은 버림받는 돌로써 나머지 10 지파를 형성하시는데
떨어져 나간 지파를 다 모아서 12지파로 형성하시는데

이것이 거룩한 제사장 나라 인데

인간들이 율법을 지키니까 계급이 되니까 평준화가 아니라 말이죠
그 계급이 부합되지 못하는 자들은 자꾸 떨어져 나가는 겁니다
첫 번째 부류의 예루살렘 거주민의 시선이고
두 번째 부류의 바벨론 포로민의 울지 않는 자의 시선이다 말이죠

이들이 합쳐서 로마와 유대인이 합쳐서 예수님의 부활을 막는 겁니다
새언약
잠시의 성소를 막을려는

은밀한 처소의 기능을
주의 이름을 막고자 하는 자들이다 말이죠

자기 하나님은 가짜 남편 6명은 정작 우상인데
책임도 못 지면서 이용해 먹고 버리는 남편 전남편인데
이혼을 할 생각을 안한다 말이죠

죄 문제를 해결해 주기는커녕
죄 짖게 해서 밥풀떼기로 삼는 앵벌이로 삼는다 말이죠

(벧전 2:9, 개역)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절대로 거룩한 제사장 나라로 안 만들어 줘요 글쎄

나를 대신 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는 예수님만이 나를 거룩한 제사장 나라로 삼으시는 겁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운명이 나의 운명입니다

사람들에게 버림 받는 모퉁이 돌 말이죠

이것이 단번에 세우시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 입니다

이 예수님의 참사랑이신 십자가의 피 용서를 전하는 것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입니다

다른 사람은 나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린 적이 없으니까 말이죠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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