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31 일치한 마음, 새 신, 부드러운 마음을 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겔 11,19-25)
탕자의 하나님이 되리라, 죄인만을 부르러 온 구원자, 환자만을 부르러 온 의사가 되리라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금가락지를 끼우고, 맨발에 새 신을 신기리라,
어서 살진소를 잡아 잔치를 벌리자 잃었다가 다시 얻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빈무덤이 된 탕자를 영접하시는 하나님
내가 잠간 그들에게 성소가 되리라 (겔 11,14-18)
에스겔 2019 2021. 11. 13. 09:38
21-030 내가 잠간 그들에게 성소가 되리라 (겔 11,14-18)
〈에스겔 11,19-25 개역한글, 구약성경 1164 쪽, 찬송가 507장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150장 무덤에 머물러, 223장 세상 모든 수고 끝나〉
〈찬송가 507장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1.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그 맘에 평강이 찾아옴은
험악한 세상을 이길 힘이 하늘로부터 임함이로다
주님의 마음 본받아 살면서 그 거룩하심 나도 이루리
2. 주 모슴 내눈에 안보이며 그 음성 내 귀에 안들려도
내 영혼 날마다 주를 만나 신령한 말씀 늘 배우도다
주님의 마음 본받아 살면서 그 거룩하심 나도 이루리
3. 가는 길 거칠고 험하여도 내 맘에 불평이 없어짐은
십자가 고난을 이겨내신 주님의 마음 본받음이라
주님의 마음 본받아 살면서 그 거룩하심 나도 이루리
4. 주 예수 세상에 다시오실 그 날엔 뭇성도 변화하여
주님의 빛나는 그 형상을 다함께 보며 주 찬양하리
주님의 마음 본받아 살면서 그 거룩하심 나도 이루리
〈찬송가 223장 세상 모든 수고 끝나〉
1. 세상 모든 수고 끝나 우리 장막 벗고서 모든 근심 걱정 사라진 뒤에
주를 뵙고 성도 함께 면류관을 쓰리라 새 예루살렘에서
성도들이 함께 올 때 기뻐 노래하리라 새 예루살렘 새 예루살렘
호산나를 높이 불러 왕의 왕을 맞으리 새 예루살렘에서
2. 가는 길이 외로와도 주 날 붙드시리니 시험 환난 근심 걱정 없으며
주를 믿고 따라가면 주의 뜻을 알리라 새 예루살렘에서
성도들이 함께 올 때 기뻐 노래하리라 새 예루살렘 새 예루살렘
호산나를 높이 불러 왕의 왕을 맞으리 새 예루살렘에서
3. 내가 세상 작별하고 눈물 흔적 거둔 뒤 주의 찬란하신 영광 비칠 때
나를 구속하신 주를 기쁨으로 뵈오리 새 예루살렘에서
성도들이 함께 올 때 기뻐 노래하리라 새 예루살렘 새 예루살렘
호산나를 높이 불러 왕의 왕을 맞으리 새 예루살렘에서
4. 아름다운 그 곳에서 구속받은 성도와 사랑하는 주를 만나 뵈올 때
주의 영광 노래하며 영원토록 살리라 새 예루살렘에서
성도들이 함께 올 때 기뻐 노래하리라 새 예루살렘 새 예루살렘
호산나를 높이 불러 왕의 왕을 맞으리 새 예루살렘에서
〈찬송가 150장 무덤에 머물러〉
1. 무덤에 머물러 예수 내 구주 새벽 기다렸네 예수 내주
원수를 다 이기고 무덤에서 살아나셨네
어두움을 이기시고 나와서 성도 함께 길이 다스리시네
사셨네 사셨네 예수 다시 사셨네
2. 헛되이 지키네 예수 내 구주 헛되이 봉하네 예수 내주
원수를 다 이기고 무덤에서 살아나셨네
어두움을 이기시고 나와서 성도 함께 길이 다스리시네
사셨네 사셨네 예수 다시 사셨네
3. 거기 못 가두네 예수 내 구주 우리를 살리네 예수 내 주
원수를 다 이기고 무덤에서 살아나셨네
어두움을 이기시고 나와서 성도 함께 길이 다스리시네
사셨네 사셨네 예수 다시 사셨네
〈에스겔 40, 1- 4, 개역한글, 구약성경 1214쪽〉
(1) 우리가 사로잡힌지 이십오년이요 성이 함락된 후 십사년 정월 십일 곧 그 날에 여호와의 권능이 내게 임하여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시되
(2) 하나님의 이상 중에 나를 데리고 그 땅에 이르러 나를 극히 높은 산 위에 내려 놓으시는데 거기서 남으로 향하여 성읍 형상 같은 것이 있더라
(3) 나를 데리시고 거기 이르시니 모양이 놋 같이 빛난 사람 하나가 손에 삼줄과 척량하는 장대를 가지고 문에 서서 있더니
(4) 그 사람이 내게 이르되 인자야 내가 네게 보이는 그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네 마음으로 생각할지어다 내가 이것을 네게 보이려고 이리로 데리고 왔나니 너는 본 것을 다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할지어다 하더라
〈마태복음 28, 1- 6 개역한글, 신약성경 52쪽〉
(1) 안식일이 다하여 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2)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3)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4) 수직하던 자들이 저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5) 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에스겔 11,19-25 개역한글, 구약성경 1164 쪽〉
(19)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20)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21) 그러나 미운 것과 가증한 것을 마음으로 좇는 자는 내가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갚으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22) 때에 그룹들이 날개를 드는데 바퀴도 그 곁에 있고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도 그 위에 덮였더니
(23) 여호와의 영광이 성읍 중에서부터 올라가서 성읍 동편 산에 머물고
(24) 주의 신이 나를 들어 하나님의 신의 이상 중에 데리고 갈대아에 있는 사로잡힌 자 중에 이르시더니 내가 보는 이상이 나를 떠난지라
(25) 내가 사로잡힌 자들에게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신 모든 일로 고하니라
(겔 11:19, 새번역)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일치된 마음을 주고, 새로운 영을 그들 속에 넣어 주겠다. 내가 그들의 몸에서 돌같이 굳은 마음을 없애고, 살같이 부드러운 마음을 주겠다. / ㉢또는 '새 마음'
(겔 11:20, 새번역) 그래서 그들은 나의 율례대로 생활하고, 나의 규례를 지키고 그대로 실천하여,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겔 11:21, 새번역) 그러나 마음 속으로 보기 싫고 역겨운 우상을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그들의 행실대로 그들의 머리 위에 갚아 주겠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겔 11:22, 새번역) 그 때에 그룹들이 날개를 펼치고, 바퀴들은 그들 곁에 있었는데,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그들 위에 머물렀다.
(겔 11:23, 새번역) 그리고 주님의 영광이 그 성읍 가운데서 떠올라, 성읍 동쪽에 있는 산꼭대기에 머물렀다.
(겔 11:24, 새번역) 주님의 영이 나를 높이 들어 올려, 하나님의 영으로 환상 가운데 나를,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끌려온 사람들에게로 데리고 오셨다. 그런 다음에, 내가 본 환상이 내게서 떠나갔다. / ㉣또는 '갈대아'
(겔 11:25, 새번역) 그래서 나는, 주님께서 내게 보여 주신 모든 일을, 포로로 끌려온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였다.
모든 종교는 자기가 믿는 신과의 일치된 마음을 추구할려고 합니다
종교뿐이겠습니까? 짐승인 국가도
그 국가 속에 있는 국민도 한 마음 한 뜻으로 살아가길 바라고 있습니다
가정도 마찬가지 이구요
그 동일성 일치성의 마음을 추구한다는 자체가
자기 쪽에서 종교의 전에 바치는 신에 바치는 마음으로써 나타나겠지요
그런데 성경은 바로 그것을 짐승의 수 라고 치부해 버리는 겁니다
심지어 기독교 라고 하는 교회들도 이런 짐승의 짖을 하더라 말이죠
아니 유대교에서 그리고 천주교에서 그런 짐승과 독사의 자식들과 상종하지 않겠다 라고 나와놓고서는
다시 유대교로 천주교로 돌아가버리는 나 돌아갈래 라고 해버리니
사실은 애초부터 나온 적이 없었다 라는 거죠
수천년이 지나도 이스라엘이 애굽의 우상과 떨어진 적이 없었듯이 말이죠
희한하게도 우리는 압니다
여자들에게 얼굴을 가리우는
천 모자 스카프 등등을 따로 부르는 용어들이 있을 정도로 아무리 가리우고 가려도
그들이 거룩하다 라고 아무도 안 봅니다 오히려 더러우면 더러웠지 말이죠
그러나 그들 자신들은 신과의 일치성을 추구하는데 있어서
그것을 더더욱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 라는 겁니다
자 그럼 과연 그들만 그러냐 라는 거죠
안 걸리는 놈이 없을 정도로 인간은 날 때부터 악하다 라는 겁니다
이미 죽음으로 태어난 겁니다
죽어라 죽어 자살해 버려 라고 할 필요 조차 없을 정도로 이미 죽음 그 자체 이다는 겁니다
이것을 거부하기 때문에 인간에게서 소통되는 사기술이 바로 신과의 일치된 마음을 추구하는 겁니다
자 이렇게 되면 처음부터 죽음으로 태어난 것을 거부하는 식이다 라는 거죠
오늘 본문에서도 일치된 마음을 말씀하시는데 있어서
정작 저런 종교들과 인간국가들과 인간들의 사상과는 정반대로써
죽은자로 만들어서 일치된 마음을 추구하여서 너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시겠다 라고 하시는
인간의 숙제가 아닌 하나님 자신의 숙제를 펼치시겠다 라는 겁니다
자 이렇게 되면 인간의 숙제가 왜 엉터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죽음으로써 태어납니다 어두움으로 태어납니다 어두운 죽음으로 태어난 주제에
과연 의사만이 할 수 있는 환자 고치시는 숙제를 할수 있느냐 라는 거죠
지난 주에 잠간 성소가 되시겠다 라고 하셨는데
여기에 인간의 자기 나름대로의 성전에 맞는 일치성 추구의 행동들이 나오는데
일지된 마음이라고 우기는 모습들이 나오는데
한 부류는 예루살렘 거주민 이였죠 포로 당해 가지 않은 자들
이들은 이 예루살렘 땅이 약속의 땅으로서 이 약속의 땅에서 벗어나도록 하시는 하나님이란 있을 수 없다 라는 식입니다 그렇게 되어버리면 하나님 자신이 하나님 자신의 약속을 어기게 되는 것이기에 이 약속의 땅을 파기 시킬 이유가 없다 라고 보는 겁니다
마치 이것은 탕자의 비유에서 맏아들과 같이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 없다 라는 식입니다
또 한 부류는 바벨론으로 포로 잡혀간 자들입니다 이들은 우리가 주님을 배신하지 않는 이상
주님도 우리를 배신하지 않을테니까 우리 쪽에서 하나님에게 말씀을 잘 준수하여서 언젠가는 이 버림받음에 대한 보상으로써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어주시는 약속을 이루실 것이다 라고 말이죠
이것 또한 인간 쪽에서 바치는 식으로서의 성전을 생각해서 일치된 마음이다고
동일성 일치성을 추구하는 식입니다
문제는 인간 쪽에서 일치성 일치된 마음을 추구할 수 있는 거룩 자체가 없다 라는 겁니다
주의 산에 오를자 누구랴 손 깨끗한 자
손이 깨끗한 자가 없어요 없어
그저 없어도 자기 쪽에서 최선을 다한 것을 드리면 일치된 마음이라고 쳐 달라는 식입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주님의 배신이 더 크게 보인다 라는 겁니다
물론 주님이 배신하지 않았어요 인간 쪽에서 그런 기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거 다 탈탈탈 털어버리는 식으로써 다가 오심에 있어서
칼과 얼굴을 주시니까 배신이라고 안 생각하고는 못 배기는 식이 되는 겁니다
뭐 가룟유다만 자살 시위 한게 아닙니다
엘리야도 내 열심히 특심이오니 나만 남았나이다 라고 시위를 했고
모세도 시위 했고
요나도 당신 시키는대로 했는데 왜 니느웨 백성 안 멸망시키느냐 라고 삐쳐버렸고
욥 또한 당신 시키는 대로 했는데 왜 이렇게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냐 라고 케보이
도대체 당신 원하는게 뭐냐 라고 따졌다 말이죠
바로 이겁니다
주님은 인간의 죽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그런데 다들 살아있다 라고 우기니까 다들 비로소 당신 원하는게 뭐냐
얼마면 돼 얼마면 이라고 따지게 된다 라는 거죠
아무도 입 다물어서 잠잠하게 되는 자가 없습니다
오히려 손 소매 거두고서 본격적으로 따지는 겁니다
때리는 이방나라 우상숭배자들 보다
말리는 여호와 하나님이 더 밉다 라고
요나가 우리의 일치된마음 추구하는데 왜 안 받냐 라고 속 시원하게 하나님께 따지는 모습으로써
우리 속내를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속이 다 시원해요 말할라 카다가 카다가 카다가 미루었었는데
드디어 묵힌 언어를 내 뱉어 버리니 이 얼마나 속이 다 시원하냐 말이죠
욥의 아내가 얼마나 답답했으면 속병 화병이 날 정도로
아이고 이 인간아 차라리 하나님 욕하고 죽으라 라고 할 정도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자도 이런 판국인데
욥 당사자는 얼마나 답답했겠냐 말이죠
답답해 할 것 없이 그냥 니는 니 대로 일치된 마음이라고 드릿뿌고
하나님은 하나님 대로 일치된 마음 아니다 라고 거부해 버리면
각자의 길을 가면 될꺼 아니냐 라고 해 버려라 말이죠
말라꼬 답답하게 서로의 마음도 안 맞으면서 억지로라도 맞출려고 애쓸 필요가 뭐가 있냐 말이죠
바로 이겁니다 욥이든 엘리야든 요나든 모세든 다 이랬어요
문제는 우리는 다 이렇게 각기 제 길로 가는 양 같은 자들인데
문제는 주님이 놓아주지 않는다 라는 겁니다
주변에 이방인을 배치시킨 것도 그렇고
다 주님께서 자신의 일치된 마음을 부어 줄려고
의도적으로 바벨론 포로 잡히도록 했는데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내 쪽에서 일치된 마음을 추구할려고 하니 안 맞는 겁니다
안 맞으면 별수 없잖아요
그런데 주님 쪽에서 안 맞는다 라고 포기 할 양반이 아니고
집요하게 스토커처럼 자신의 일치된 마음을 부어버리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여기에 욥도 무너지도 엘리야도 무너지도 다 무너지는 겁니다
이 죽음을 통해서 주님은 일하시겠다 일치된 마음을 부으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자 그런 의미에서 바벨론 포로 잡혀간 자는 그야말로 탕자와 같은 자입니다
북이스라엘처럼 개판 되지 않겠노라 해 놓고서는
정작 자신들도 포로 잡혀가게 되니
더 했으면 더 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라고
오홀라 첫째 딸 보다 오홀리바 둘째 딸이
첫째를 욕했으면서도 불구하고 자신은 더 더 더 우상숭배에 다가
더 더 더 더 더 더더더더더 창녀 짖을 더 했다 라고 했습니다
(겔 23:4, 개역) 그 이름이 형은 오홀라요 아우는 오홀리바라 그들이 내게 속하여 자녀를 낳았나니 그 이름으로 말하면 오홀라는 사마리아요 오홀리바는 예루살렘이니라
(겔 23:11, 개역) 그 아우 오홀리바가 이것을 보고도 그 형보다 음욕을 더하며 그 형의 간음함보다 그 간음이 더 심하므로 그 형보다 더 부패하여졌느니라
북이스라엘 사마리아 보다
사마리아 구역을 삥 둘러가는 바리새인 유대인이 더 더럽다 라는 겁니다
지따나 깨끗하고 거룩을 지키겠다 라는 꼬라지가 오히려 더 더러운 짖을 골라 골라서 하는 창녀짖이다 라고
아예 주님은 그렇데 다들 존경하는 인물에다가 대 놓고서 독사의 자식들아 라고
너거 애비는 마귀다 라고 해 버리시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이 그동안 우상을 제거하고 율법을 지켜왔던 모든 행동들이 뭐가 되나요?
똥 떵 어 리 배설물 아이구 냄새야 냄새
요즘으로 치면 목사들을 독사의 자식
마귀 새끼로 보시더라 라는 겁니다
그들의 출발 자체가 바로 죽음이니까 말이죠
놀랍게도 이런 말을 일반교인들도 무지 듣기 싫어하는데
한다리 걸쳐서 다들 목사들이 친인척으로 다 있기 때문에
당연히 다들 싫어하더라 라는 거죠
그러니 주님의 일하심을 보는 자들이 없고
자기 쪽에서 일치된 마음을 추구할려고 나대는 인간들 밖에 없는
십의 일조 했고요 이레에 두 번 금식했고요
저 세리
저 탕자
저 창녀와 같지 않음을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그야 말로 더럽기 짝이 없는 인간들만 있을 뿐이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바리새인이 병자취급해서 거리두기 구벽 간극 두기를 하고 있는
저 세리
저 탕자
저 창녀와 같은 죄인들에게 주님의 마음을 새 마음 새 신을 부드러운 마음 곧 에수의 마음을 부어 주시겠다 라고
자신의 숙제로써 나는 세리 창기 탕자의 하나님이 되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은밀한 처소에 딱 맞거든요
주님이 흘리신 십자가의 피에 딱 맞거든요
즉 십자가의 피 흘리심이 먼저 있었고
그 다 이루심의 증상물로써 죄인이 탕자가 창기 세리가 되었었었었어야 했다 라는 겁니다
의사를 말하기 위한 환자
구원자를 말하기 위한 죄인
아버지의 사랑을 말하기 위한 탕자를 만드셨다 라는 거죠
이것이 일치된 마음이였?? 라는 겁니다
자 그럼 우리는 반문 합니다 아니 반문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선악을 아는 하나님과 같이 되었기에
그래서 죽음이 덮쳐져서 죽음으로 출발했기에 말이죠
아니 주님 그것은 일치된 마음이 아니라 거꾸로 된 것 아닙니까
선이 악이 되고 악이 선이 되는 것 아닙니까 라고 말이죠
바로 그겁니다
일치된 마음을 자기 쪽에서 추구했던
단 한번도 아버지 말씀을 어긴 적이 없던 맏아들이
이 일치된 마음을 주님 쪽에서 아버지 쪽에서 일방적으로 탕자에게 퍼붓는 것에
동의를 하거나 일치된 마음을 품거나 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을 했다 라고 비로소 반발심이 튀어나온다 말이죠
바로 이것이 마귀였던 겁니다
마귀 보란 듯이 마귀가 잡아온 베드로는 잘 잡아왔다 라고
안그래도 새 옷을 입힐려고 피 옷을 짜놓았는데 뜨깨질 해서 입히겠다 라고 하니까
비로소 마귀가 으아악 ~~~~~~~~~
내가 잡아온 강도랑 결혼해 버리면 나는 뭐가 되냐 라고 반발하더라 말이죠
이것이 세상이 견디지 못하는 지혜를 펼치심이다 말이죠
이 십자가의 지혜를 헬라인 곧 지식인 철학자들은 반대로 가고 있다 라고
어리석고 미련하다 라고 거부하고
왜? 자기들이 똑똑함을 추구함에 있어서 버려왔고 피해왔던 것을 오히려 추구하고 있으니까 말이죠
또 유대인들에게서는 탕자를 용서하시는 그 아버지의 사랑이
본인들이 처음사랑으로 받았던 그 모습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정작 첫사랑을 발로 차 버린 이상
그 처음자리에서 탕자를 용서하시는 그 사랑에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이 없다 라는 자기의 의로움 자기 옳았다를 놓기 싫어서
걸림돌에 툭 하고 다리 걸려 넘어지는
거리끼는 걸림돌로서의 십자가의 지혜에 반발하도록 되어 있다 라는 겁니다
자 그럼 탕자는 그럼 일치된 마음이냐?
잘했냐
자꾸 잘했냐 라고 따지는데
잘 한 것을 아예 내밀수 없도록 탈탈탈 털어버린 것이 주님이시다 말이죠
주님이 그렇게 하니까 이방인처럼 자기 백성을 치시는 자기 신이 어디있냐 라고 도리어 이스라엘 편들어 주는 자들이 있을 정도로
유대인들이 지금 탕자를 보는 시선이 그럼 잘했다 라는 말이냐 라고
탕자에게서 잘 한 것이 없는데 왜 아버지는 용서를 하시느냐 라고 따지는 겁니다
잘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을 말하기 위해서
의사의 기능을 말하기 위해서 탕자를 환자로 구제불능의 인간말쫑으로 만들어 놓았는데
이것을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 적 없는 맏아들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론적으로 생각적으로 이해를 할려고 해도
그 탕자만 보면 돌아버리는 겁니다
그 탕자에 대해서 잘 알거든요
아마 마귀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를 보면 미쳐버릴 것 같거든요
같기는커녕 원래 처음부터 미쳤는데 베드로 핑계대고 미쳐버릴 것 같다고 징징 짜는 거죠
그러니 사실상 베드로는 그저 도구일 뿐이다는 거죠
무슨 도구
마귀를 넘어뜨리기 위한 도구
아 그럼 칼? 멋진 아이템 무기
앞앞글에서 언급했던 그 아이템 무기가 20년 전? 15년 전? 쯤 에 리니지? 였던가요
칼 한 자루에 2천만원 그것 땜에 살인사건도 벌어졌다 라고 했는데
바로 그 다음날에 수협 직원이 30억원을 빼돌려서 컴퓨터 게임 아이템 구입을 위해 도둑질 했다 라고 뉴스에 나오더군요
베드로는 그런 삼십억짜리 무기가 아니구요
그렇게 되면 마귀도 30억 벌어서 등장하겠지요
더 숨어버릴 것이다 말이죠
생명 빼고 다 쳐도 된다 라고 이길 승산을 다 계산해서 나오니까
미끼가 자기 보다 능력있으면 그게 무슨 미끼겠습니까
아무런 능력이 없도록
도리어 능력이 생길까봐 세 번 부인토록 탈탈탈 다 털어버리는
삼 세 판
즉 완벽한 빈털터리로 만들어 버리시는 겁니다
그 어떤 신앙도 신념도 믿음도 내세울 꺼리 하나 없도록
이것이 주님이 일치된 마음을 주시고자 하시는 계획이다는 겁니다
그렇게 마귀를 잡고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 신부로 삼으시고
마귀가 아무리 송사 고소를 해도 믿음 떨어지지 않도록 주님께서 기도하셨다 라고
주님의 기도였고
주님의 믿음을 때려 부으니까
비로소 일치된 마음
베드로야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더 잘 아십니다 라고
세 번 씩이나 일치된 마음을 확인 확정 확증 한
한 마음
한 몸을 마귀 보란 듯이 나타내시더라 말이죠
이것이 바로 금가락지 새신발 제일 좋은 옷을 입혀 주시는 아버지의 사랑에
정작 아무것도 내세울 꺼리가 없는 자 탕자가
아버지의 사랑의 증상물로써 나타나더라 말이죠
정 그러면 맏아들이 이 사랑의 증상물로 나타나면 될꺼 아니냐 말이죠
그런데 아버지를 보면 참으로 훌륭하다 라고 외치는데
정작 탕자를 보면 부글 부글 끌어오르는 겁니다
탕자에게서 졸지에 탁 걸려 넘어지는 겁니다
이것이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 적이 없이 짖고 있는 46년 동안 성전 짖기의 미완성 성전이고
단 하루 만에 짖는 성전 곧 새성전의 기능인
일치된 마음 곧 금가락지죠
뭐 순서는 상관 없습니다 제일 좋은 옷도 되구요
둘이 원수 된 것을 막힌 담을 헐어서 원수된 것을 하나가 되게 했다
누가? 주님의 숙제 다 이루었다 가 말이죠
그리고 새 신 곧 성령 이고요 즉 주의 마음을 주지 않으시면
이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면하는 타 죽어도 상관 없을 정도로 말이죠
그러니 성령이 없으면, 부어주시지 않으면
담대함이 없기 때문에 성소에 들어갈 수가 없어요
나 같은 겁쟁이들은 택도 없다 말이죠
오직 성령으로만 담대하게 그 문에 들어가는 겁니다
주님의 운명과 같은 코스의 길로 말이죠
그리고 마지막 부드러운 마음을 부어 주시는 겁니다
내가 따로 내 숙제로 성질머리를 고쳐서 부드럽게 마음을 다듬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정반대로 예수님의 마음
생판 남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만드시겠다 라는 것은 내 마음을 없애고 지워버리시고
텅텅비워버리고 병에 담긴 물을 쏟아 버려버리고
주님의 자신의 마음을 부어버리게 되면
아 그럼 나는 아바타가 되는 거네 라고 자유의지가 없으면 노예의지요
로봇이 되는거 아니냐 라고 하는데
그것처럼 주님의 아바타 주님의 로봇이 되는 것이 얼마나 영광인줄 알아라 이것들아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난 반댈세 자아가 없으면 그게 무슨 자유냐 라고 합니다
자유는 무슨 놈의 자유
자유 천년 만년 줘 본들 자유 할 줄도 모르는 것이 인간인데
자기 육체 편한 것을 쫓는 것이 무슨 자유냐 말이죠
도리어 의문의 반복 뿐인데
마귀 보세요 자유의지라는 둥 로봇 반댈세 이 모든 것이
마귀들이 울부짖는 사생아가 아니냐 말이죠
아버지의 매 맞는 것 보다 더 한 사랑이 어디있냐 말이죠
사생아는 아무리 매 맞고 싶어도 매가 없으니까 사생아인데 말이죠
자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만들어내는 일치된 마음과 주님이 직접 만들어내시는 일치된 마음이
단 한 번도 일치 된 마음이 된 적이 없었다 라는 겁니다
이미 증거물을 제시했어요
바로 이스라엘의 구약 역사가 그 증거물입니다
빼도 박도 못하도록
마귀가 그 증거를 잡기 전에 이미 주님께서 다 잡아놨습니다
여기에 힐문해 본들 소용이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주님은 인간 상대하지 않습니다
마귀만을 상대하십니다
자 마귀만을 상대한 결과물이
어라 우리 모든 인간의 마음과 다를바가 없더라 말이죠
예수님이 독사의 자식 바리새인을 상대한 모습을 보세요
정작 독사의 자식인 바리새인이 우리의 마음과 별반 다를바 없는 생각들이였고
정작 예수님의 마음은 우리와 단 하나도 맞는게 없어요 없어
그 증거물로 기록이 되어 있어도 우리는 부인할 정도로
이 자체가 또 증거가 되는 겁니다
안 맞아요 ~~~~~~~~~~~~~ 개콘 유행어 였지 싶은데 무슨 코너였더라 ㅋㅋㅋ
아니 누가 일치된 마음, 새 신, 부드러운 마음을 구하는 자 있습니까
놀랍게도 있다면 저는 지금 없습니다 라고 지금 당장 제발 주시면 안됩니까 라고
없다 라고 우는 자 뿐이예요
아니 저 일치된 마음 나에게도 있는데 왜 주신다고 하지
새 신 성령도 나에게 있고
부드러운 마음은 바리새인들의 전문적인 마음이지
아 그런데 탕자를 만나니까 바로 다 뾰록 다 튀어나오는 겁니다
예수님을 만나니까다 뾰록 다 튀어나오는 겁니다
이것 다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우리가 겉모양으로는 완벽하게 도배를 했는데
죽음으로 출발한 그 무덤의 시체로 출발한 속내를 들추어내니까
똥 내 ~~~~~~~~ 스멀 스멀 ~~~~~~~~~~
자 이래놓고서도 일치된 마음이라굽쇼 ~~~~~~~~~~
오늘 본문에 일치된 마음의 기준이 나옵니다
(겔 11:20, 개역)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겔 11:20, 현대인) 그들이 내 법을 지키고 내 명령에 순종하도록 하겠다. 그러면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겔 11:20, 현대어) 그러면 그들이 내 지시에 따라 살고 내가 준 명령들을 존중하며 지켜 갈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는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즉 율법이 없어서 망하는 이방인과 같이 되지 말고
율법이 있어서 망하지 않는 자가 되라 라고 하셨거든요
(호 4:6, 개역)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그런데 인간은 자꾸 율법을 지켰다 라고 나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전혀 듣지도 않았다 말이죠
이상하잖아요 율법을 지켰는데 예수님은 거부한다
율법을 진짜로 지켰다면 예수님을 거부하는게 아니라 도리어 기뻐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도저히 안 돼요 ~~~~~ 안 맞는 모순이 생겨 버렸고
여기만 그런게 아닙니다
도리어 누가 봐도 창기 세리 강도 라는 자들은 율법과는 아예 무관한
율법 자체를 아예 무시하는 자들은데
어라 예수님을 영접하니까 이들은 단 한번도 율법 지킨 적도 없이 율법을 다 지킨냥 예수님이 그들을 취급하시더라 라는 겁니다
마치 내 살과 피를 먹지 않는 자는 나와 상관이 없다 라고 하니까
율법의 달인들은 누가 사람의 살과 피를 먹느냐 그 자체가 율법 어기는 것이다 라고 말이죠
그런데 비싼 향유를 부은 창녀 마리아는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 앞당겨서 장사를 치르는 겁니다
이런 말도 안되는 짖을 하는데
오히려 주님께서 복음이 증거되는 곳마다 이 여인이 한 행동을 기념한다 라고 했다 말이죠
자 그럼 지금 복음을 증거하겠다 라고 나서는 사람
지금 현재 저 이겠지요
이 여인의 행동을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 앞당겨서 장사치르는 것을
기쁘게 신나게 거리낌 없이 증거하게 되면
예수님의 말씀의 취지는 아는 것이고
지켰다 라는 의미 보다 이미 지켜버린 세계인 종말의 세계
성령의 세계 새마음의 세계 속에 들어와 버린 것이 되고
도저히 복음을 증거한다고 하면서도 이 여인의 행동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고
도리어 그 돈으로 가난한 자나
교회헌금이나 하나님을 위해서 써야 한다 라고
그 여인을 나무래면서 화를 내게 된다면
물론 감추겠지요 분명 화를 내어야 하는데
보는 눈들이 있고
그 아까운 돈을 바닥에 다 버리게 되는 낭비를 무슨 수로 화 안내고 참냐 말이죠
분명 불의한데
정의 롭지 못한데 말이죠
자 그럼 화를 내는 제자들과
비싼 향유를 땅에 허비하고 가난한 자에게 안 주고 낭비하고
예수님의 죽음까지 미리 장사 치르면
내 가까이 두고픈 예수님을 미리 화장시켜 버리면 누가 좋아라 할까요
그렇다고 가까이 두고파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에 까지 따라 가나요 아니면
냅따 버리고 내 몰라라 라고 도망치나요
누가 우리의 마음과 일치합니까
비싼 향유를 부은 여인??
헌금이나 사회기부는 뭔가 흔적이 남아서 자랑할 꺼리가 되지만
땅에 허비해서 다 사라졌어요 무슨 수로 기념 합니까
자랑 한다는 자체가 불가능한 아무것도 내세울 꺼리가 없는데
바로 이겁니다
이 비싼 향유를 부은 창녀 마리아가 한 행동은
새 신이 부어진 종말의 영이 부어진 종말의 행동입니다
그것도 아주 아주 부정적인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 이라는 용어를 하도 엉터리로 주장을 하고
종말의 개념이 아예 없이 이야기 하니까
부정적인 이라고 붙여서
반발심이 저절로 생기도록 하는 겁니다
부정적인 행함이 있는 믿음 만이 종말적이니까 말이죠
끝을 미리 확 땡겨 버리고
죽음을 미리 확 땡겨 버려요
그래서 주님께서 내가 원했던 것이 이거다 라고 일치된 마음이다 라고 기념하라 라고 하시는 겁니다
오히려 이런 종말의 행동을 화내고 야단치는 제자들의 모습이나 행동들은
예수님이 나랑 일치된 마음이 아니다 라고 전혀 동의를 하지 않으시면서
제자들에게 야단 맞는 이 여인을 옹호하고 나서시는 겁니다
안 맞다 라는 증거죠
율법을 지키고자 하는 제자들과
예수님이 율법이다 라고 예수님의 마음과 맞는 종말의 행동을 한 여인과의 차이를
우리는 분명하게 다름을 보면서도
이 여인의 행동을 우리가 따라 할 수 없다 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히려 우리가 늘 해 왔던 행동들은 저 제자들의 모습이니까 말이죠
즉 결과적으로 보시면 됩니다
원인에 따른 것으로 파악하게 되면 평생 의문의 반복 뿐이고
답만 보고 문제지를 찾으면
제자가 일치된 마음이 아니라
이 여인이 일치된 마음임을 너무 너무 쉽게 알게 됩니다
애들은 다 아는데
어른들은 때려죽어도 모르는 비밀이니까 말이죠
아이란 무능하다 말이죠
그러다 보니 평준화가 되어 있어요
그런데 어른들은 친구를 사겨도 평준화 자체가 못 됩니다
어른의 어른 다움을 갖출려고 하기 때문에
온갖 조건을 따지는 겁니다
어떤 미친 인간이 내 아파트에 다른동네 아파트 아이들이 놀러와서 놀이터에 논다 라고
아이들을 도둑 도적으로 취급했다 말이죠
바로 이런 미친 인간이 글쎄 모든 인간이다는 겁니다
완전 정신병자이지요
주님이 보시기에 모든 인간은 창녀요 창기요 죄인이요 소경이요 마른뼈입니다
특히 이스라엘은 처음자리가 바로 노예 애굽의 종 되었던 자들이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처음자리인 죽은 자 라는 것을 망각하고
왜 니가 뭔데 자꾸 우리들의 지도자가 될려고 하느냐 라고 고라자손들이
레위지파가 지도자 계열에 서는 것을 반대하고 나서는 겁니다
섬김을 받는 직분을 섬겨야 하는 권력자로 해석한 뭐 눈에 뭐만 보였지
율법의 취지를 몰랐던 겁니다
그러니 그 반발성이 바로 울리는 꽹과리처럼 소음으로 나불대고 있지
정작 온 천하는 잠잠 하라 라는 평준화는 무시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법궤에 담겨지게 되는 원망 한가지
세 번의 원망한 증거물로 잡히는 겁니다
즉 일치된 마음 이라는 새언약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는 도리어 전혀 일치할수 없는 우리의 속마음 사탄의 마음을 들통 당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제는 내 L H 아파트에 놀러온 아이들을 도둑놈에서 이제는 살인자로 몰아갈테니까 말이죠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어른의 속내를 들추어내는 증상물로 작용한 겁니다
진짜 도둑 앞에서는 찍소리도 못하는 주제에 말이죠
바로 이런 미친 인간들이 모든 인간이다는 겁니다
고라 자손 뿐이겠습니까
그렇게 당한 모세도 화가나서 바위를 두 번 치는 바람에 가나안당 입성에서 탈락 하는 겁니다
다윗도 마찬가지 이구요
그러니 일치된 마음을 추구하기 전에
얼마나 도저히 하나가 될 수 없는 마음이 들통 당해야 하는 겁니다
누구로부터? 역설적이게도 일치된 마음으로부터 말이죠
단 하나도 일치성이 없음을 들추어내시는 것이 일치된 마음이 벌리시는 기능이다는 겁니다
그러니 울 수 밖에요 내 속에 정직한 영이 없다 라고
상하고 썩어 문드러 지는 통회하는 마음이 되는
비로소 평준화 마른뼈
불도져로 니 잘났니 내 잘났니 라고 다 밀어버림을 당한
다리미질로 쭈우욱 평평하게 평탄케 만드심을 당하는
그래서 죄인을
환자를
탕자를 부르시러 오신 겁니다
이미 종말 곧 일치된 마음 새 신 부드러운 마음이 떳기에
그 증상물로써
이 세가지로 인해서 다리미질 당하도록 말이죠
자 이것이 잠간 성소가 되시겠다 라고 하시는 주님의 새성전의 기능입니다
포로 잡혀 와서도 어라 바벨론 우상이나 우리가 애굽의 10가지 우상을 떨어뜨리지 않고 지내온 거나 별반 다를바 없기에
오히려 친숙하게 포로 생활 하는 가운데에
이 일치된 마음과 새신과 부드러운 마음을 부어주신다 라는 것을
기쁜소식일까요 나쁜소식일까요?
거리끼는 걸림돌일까요?
디딤돌 일까요?
지혜롭게 똑똑한 것일까요?
미련하고 어리석은 부정적인 일일까요?
네 맞습니다 솔직하게 이야기 합시다
나랑 안 맞는 거부감이 드는 것들이다는 겁니다
고맙게도 그런 나의 마음과 역시나 안 맞게도
주님 자신의 숙제로써 이 세가지를 넣겠다 라고 부어버리시겠다 라고
자신의 숙제로써 대상물이 되었다 라고 아예 선언을 해 버리시는 겁니다
누가 도장 도장끈 지팡이를 볼모로 잡히고 싶어 할까요?
누가 깨어진 십계명 두돌판 아론의 싹난 지팡이 만나를 담은 항아리를 저당 잡히고 싶어 하겠습니까?
우리는 본능상 절대로 세 번 부인하지 않겠다 라고 나올겁니다
나는 세 번 부인해서 주님의 마음과 일치될랍니다 라고 나오는 것도 이상한 겁니다
자기 숙제 하겠다는 식입니다
나라도 초상집에 가지 않고 잔칫집에 가겠다 라는 것은
바로 이 처음사랑
평준화
이미 우리는 죽은자요 마른뼈 취급하시겠다 라는 것에 반발하는 모습이다는 겁니다
즉 율법을 원하는 자는 아무도 없다 라는 겁니다
아무리 율법을 지키는 바리새인 조차도 율법이 없어서 망하는 저 우상숭배자 개같은 이방인과 다를바 없는 더럽기 짝이 없는 자들이다 라는 것이
율법의 완성이신 예수님을 거부하고 죽이는 모습 속에 이미 다 들추어내셨습니다
아 그럼 그들은 다 지옥 가나요?
개인으로 또 따질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집단적으로 평준화 된 겁니다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 사도바울이 그 바리새인 속에 있던 자로써
많이 탕감 받은자가 많이 사랑하는
비로소 비싼 향유를 부은 창녀 마리아의 종말의 행동을
성령을 부음 받아서 이해가 되었지
사도바울이 무슨 수로 율법에 열심인데 알겠습니까?
율법 껍데기에 열심인 자기자신에게 미쳐있는 인간이
율법의 완성이신 예수님을 더더욱 죽이고자
스데반이 뭡니까 모조리 다 잡아 죽일려고 할 꺼 아니겠냐 말이죠
오죽 하면 주님이 직접 나서셔서 그를 짜빠뜨려서
입을 막고 눈을 막고 평준화 시켜서
마른 뼈로 만들어 놓으니까
비로소 잠잠해 진 겁니다
간단해요 눈만 톡 하고 건드리면
안 보이는데 지가 뭐 어쩌겠냐 말이죠
바벨탑에서 언어만 톡 건드리니까 별수 없이 와르르르 ~~~~~~~~~~~~~~
공든탑이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 와르르르 ~~~~~~~~~
이것이 율법이 우리에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율법을 지키는 일을 하는게 아니라 내 숙제가 아니라 율법의 숙제가
나를 평준화 만들어 버려요
그렇게 되면 안 일치하고 싶어도 일치된마음이 나를 다스립니다
일치된 마음 이라고 하니까 마치 소유할수 있는냥 착각 합니다
나도 마음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그런 마음 가짐을 가질수 있다 라고 말이죠
그런데 일치된 마음으로부터 눈 봉사 한번 당하는 평준화 당해 볼래요
어린아이를 도둑놈 취급했던 그 놈이 정작 어린아이 도둑이 되어버림을 당하게 되면
입이 쑥 들어가게 되는 함쭉이가 됩시다가 되는
평준화가 되는 겁니다
가는 곳 마다 도둑놈 취급 당할테니까 말이죠
오히려 도둑놈 취급 당하는 평준화가 되어야
신나게 마음껏 복음을 증거하게 되지
일치된 마음과 새신과 부드러운 마음을 증거케 되는
새성전 되신 예수님을 증거하게 되지
평준화가 되지 않은
마른뼈가 되지 않으면
탕자가 되지 않으면 아버지의 사랑을 절대로 증거 할 수가 없게 됩니다
죽은자가 된 환자 만이 평준화로 불도져에 깔려 평탄케 된 자만이 의사를 외치지
안그러면 의사를 이용해서 나일롱환자처럼 보험금 탈려는
또 또 또 자기 뒤통수에 자기가 총을 겨누는 누워서 침뱉는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는 겁니다
그래서 일치된 마음이신 예수님이
새 신 이신 예수님이
부드러운 마음이신 예수님이
의인이 아니라
건강한 자가 아니라
죄인을 환자를 부르러 오신 이유입니다
내가 죄인이나 환자가 될 수 없기에
예수님 자신이 직접 죄인만들고 환자만드는 자신의 숙제로써
자신의 피를 바르고자
자신의 십자가 피 흘리심의 증상물로 새로 창조하시고자 말이죠
이것만이 세상이 격동하고 견디지 못해서 발악하는
십자가의 지혜입니다
(잠 30:21, 개역) 세상을 진동시키며 세상으로 견딜 수 없게 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잠 30:22, 개역) 곧 종이 임금된 것과 미련한 자가 배부른 것과
(잠 30:23, 개역) 꺼림을 받는 계집이 시집간 것과 계집 종이 주모를 이은 것이니라
이런 의미에서 주님은 죽은자를 찾고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자를 찾으시는 겁니다
(마 10:6, 개역)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마 15:24,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눅 19:10, 개역)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마 18:11, 공동) ㉠(없음) / ㉠어떤 사본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사람의 아들은 잃어버린 사람을 찾아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
인간 쪽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수 없다는 뜻에서
자신의 숙제
일치된 마음이가 하는 숙제
새 신의 숙제
부드러운 마음이가 하는 숙제로써 말이죠
곧 새성전 되신 예수님의 숙제로써 다 이루었다
평화로써 성령의 전을 만드시는 겁니다
내 숙제 아니기에 손 떼세요 ~~~~~~~
(눅 15:22, 개역)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눅 15:23, 개역)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눅 15:24, 개역)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이것이 바로 마른 뼈로 만들어서 하나님의 군대로 만드신 죽은자 탕자와
죽는 하나님이 하나 가 된 일치된 마음이 된 새성전의 기능이요 의사요 구원자의 기능입니다
죽는 하나님 곧 십자가에 죽으시러 오신 낮아지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 말이죠
(빌 2:8, 개역)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사람의 손으로 짖는 성전에서는 완전히 거꾸로 된
도저히 나올수 없는 지혜요 의요 거룩입니다
마른뼈 이스라엘과 죽는 하나님이 합쳐진 것만이 율법의 완성인 사랑이요
한 몸이요 일치된 마음이요 새 신이요 부드러운 마음 곧 예수의 마음입니다
(빌 2:5, 개역)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6, 개역)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 2:7, 개역)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빌 2:8, 개역)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2:9, 개역)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빌 2:10, 개역)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빌 2:11, 개역)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 2:12, 개역)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자 이렇게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리라 라고 율법을 주시는 이유는
율법이 없어서 망하는 이방인이 되지 말라꼬 제발 지옥가지 말고 제발 죽을려고 하지 말아라
제발 좀 살아라 구원받으라 라고
너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는 한 몸이 되시고자
하나님의 일은 인간의 죽음을 통해서 일하시고
성도의 죽음으로써 죽는 하나님과 같은 운명이 되게 하시는 겁니다
(계 6:9, 개역)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계 6:10, 개역)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계 20:4, 개역)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이 목베인 영혼의 신원이 모세가 다 죽이실렵니까 라는 대신 울고 대신 부르짖는 상한심령이고 새 신이고 부드러운 마음인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입니다
번제와 제사를 원치 않고 인애와 자비를 원하시는 마음 입니다
에스겔 인자의 신원입니다
어머니 말 마따나 내 백성입니까? 여호와의 백성 아닙니까 ~~~~~
이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였기에 말이죠
남겨둔 한 씨가 아니였다면 말이죠
이 사랑이 아니면 그 외 모든 것은 다 울리는 꽹과리입니다.
시끄러운 곡소리 상엿소리 일 뿐입니다
(고전 13:1, 개역)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고전 13:1, 새번역) 내가 사람의 모든 말과 천사의 말을 할 수 있을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징이나 요란한 꽹과리가 될 뿐입니다.
(고전 13:1, 공동)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를 말하고 천사의 말까지 한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울리는 징과 요란한 꽹과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고전 13:1, 현대인)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놋쇠와 울리는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고전 13:1, 현대어) [사랑] 나 비록 지금까지 배운 일 없는 다른 나라의 언어로 말하고 또 하늘과 땅의 모든 언어를 다 말할 수 있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다면 소리 나는 시끄러운 꽹과리, 울리는 징일 뿐
울리는 꽹과리 상엿소리
(사 18:1, 현대어) [유다에 온 구스 사절단] 나일강 상류의 ㄴ) 구스는 군인들이 가득 찬 나라이지만 그 시끄러운 무기 소리는 그 나라에 들리는 상엿소리에 불과하다. (ㄴ. BC 701년에 유다를 반앗수르의 동맹에 가입시키기 위하여 구스 사절단이 예루살렘으로 왔다)
(사 17:12, 현대어) [세계 만민의 헛된 소동] ㄱ) 세계 만민이 파도치며 밀려오는 바닷물처럼 엄청나게 몰려왔지만 죽으려고 온 것들이다! 용솟음 치며 무섭게 흐르는 물결처럼 세계 만민의 군인들이 소동을 하지만 상엿소리가 벌써 들려 온다! (ㄱ. BC 701년에 앗수르의 대왕 산헤립이 세계 만방에서 군대를 모아 거느리고 예루살렘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치러 왔다)
(사 28:1, 현대어) [사마리아의 술취한 위정자들 ㄱ)] 에브라임의 술 취한 지도자들아, 너희에게 상엿소리가 들려 온다 에브라임의 수도 사마리아는 온통 너희의 자랑거리이다. 기름진 평원을 바라보며 언덕 위에 서있는 사마리아는 반짝이는 너희의 왕관과도 같고 머리에 쓴 너희의 화관과도 같이 화려한 도성이다. 그러나 그 도성은 시들어 떨어지는 꽃처럼 무너져 내릴 것이다. (ㄱ. BC 721년 북왕국이 멸망하기 직전의 예언이다)
(사 29:15, 현대어) 이스라엘의 어리석은 행동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앗수르에 대항하여 애굽과 동맹을 맺은 일이다. 이것을 주님 모르게 숨기려고 캄캄한 곳에서 비밀 회의를 하는 이들아, 너희에게 이미 상엿소리가 들려온다. `도대체 누가 우리를 볼 수 있느냐? 도대체 우리의 비밀을 알 사람이 누구냐?' 하고 떵떵거리면서 주님을 속일 수 있다고 착각하는 이들아, 너희가 망상을 하고 있다.
(사 30:1, 현대어) [애굽과 헛된 조약을 맺지 말아라] ㄱ)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유다의 지도자들아, 너희는 반역하는 자식들이니 너희에게 상엿소리가 들려 온다. 너희가 외교적인 계획들을 세워 놓지만 내가 시킨 일은 아니다. 너희가 앗수르를 배반하고 애굽과 군사 조약을 맺었지만 내 영을 받아서 한 일이 아니다. 너희는 죄에 죄를 쌓으려고 그렇게 할 뿐이다. (ㄱ. BC 705년 경에 앗수르의 침략 위험이 커지자 유다는 애굽과 동맹을 맺음으로써 그 위험에서 벗어나려고 하였다)
(사 31:1, 현대어) [인간을 의지하지 말아라] ㄴ) 애굽으로 원조를 구하러 가는 이들에게 상엿소리가 들려 온다. 그들이 의지하는 것은 애굽의 많은 군마와 전차들 뿐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에게는 그들이 무슨 기대를 두지도 않는다. 애굽의 도움을 받아야 옳은지 그들은 주께 여쭈어 보지도 않는다. (ㄴ. BC 705년 경 유다 왕 히스기야가 애굽에 군사 원조를 요청하려고 사절단을 보냈을 때에 선포된 예언이다)
(사 33:1, 현대어) [기도와 약속] ㄴ) 너 자신은 누구에게 침략을 당한 적이 없으면서도 항상 다른 나라를 침략하여 폐허로 만들고 너 자신은 누구에게 약탈 한 번 당한 일이 없으면서도 끊임없이 다른 민족을 약탈하는 나라여, 네게도 상엿소리가 들려 온다. 네가 더 이상 침략할 나라가 없게 되면 너 자신이 침략을 당하여 폐허가 될 것이다. 네가 더 이상 약탈할 나라가 없게 되면 너 자신이 약탈을 당할 것이다. 주께서 너를 파괴하고 약탈해 가실 것이다. (ㄴ. 앗수르나 바사 제국 시대에 선포된 말씀일 것이다)
(렘 22:13, 현대어) [여호야김에게 내릴 심판] 주께서 여호야김왕에게 말씀하셨다. '네게는 이제 상엿소리밖에 들려 올 것이 없다. 너는 더러운 돈으로 네 왕궁을 짓고 온갖 부정한 수단을 동원하여 그 왕궁을 가득 채워놓았다. 너는 불쌍한 백성을 부려먹고도 돈 한푼 주지 않았다.
(렘 48:1, 현대어) [모압의 멸망도 임박하였다] 온 세계의 주인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해 북단의 동쪽 해안에 느보산이 있고 그 산중에는 모압 족속의 느보 성읍이 있으나 그 성읍과 그 주민들이 다 함께 멸망할 것이다. 이미 그 성읍에서 상엿소리가 들려 온다. 모압의 중심지에 있는 아르는 강가의 성읍 기랴다임도 수치를 당하며 정복되었다. 난공불락의 모압, 천혜의 요새 국가 모압이 점령되어 그 튼튼하던 요새들이 모두 헐리고 철거되었다.
(렘 50:27, 현대어) 그 나라의 황소같이 살찌고 힘센 남자들을 모조리 잡아죽여라. 그들을 모조리 붙잡아 도살장으로 끌고 내려가거라. 그들에게는 이미 상엿소리가 들려 온다. 그들이 벌받아 죽을 날이 드디어 왔다.
(겔 24:6, 현대어)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의로운 사람들을 죽인 이 피 묻은 도성에 만가 소리가 들린다! 닦을 수 조차 없도록 녹이 슨 솥 위에 상엿소리가 들린다! 방금 예루살렘에서 터진 일과 마찬가지로 제비를 뽑을 것도 없이 그 솥에서 한덩이씩 모든 고기를 꺼내어 가져간다!
(느 4:10, 현대어) 그런데도 공사에 시달리던 유다인들은 이제 적의 기습이 두려워 사기를 잃고 다음과 같이 상엿소리처럼 처량한 노래까지 지어 불렀다. `져내고 져내도 끝도 없는 흙더미, 지치고 지쳐서 흙 한삽 못지겠네! 우리가 이렇게 지치고 피곤한데, 어느 세월에 이 성벽을 다 쌓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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