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32 대낮에는 이삿짐 꾸려 놓고 저녁에는 포로잡혀 가듯 떠나라 탈출 (겔 12, 1- 7)
일치한 마음, 새 신, 부드러운 마음을 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겔 11,19-25)
에스겔 2019 2021. 11. 20. 12:18
21-031 일치한 마음, 새 신, 부드러운 마음을 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겔 11,19-25)
〈에스겔 12, 1- 7 개역한글, 구약성경 1164 쪽, 찬송가 4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179장 이 기쁜 소식을〉
〈찬송가 4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1.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 지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잘아는 주님
늘 돌보아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2. 왜 내게 굳센 믿음과 또 복음 주셔서
내 맘이 항상 편한지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잘아는 주님
늘 돌보아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3. 왜 내게 성령 주셔서 내 맘을 감동해
주 예수 믿게 하는지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잘아는 주님
늘 돌보아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4. 주 언제 강림 하실지 혹 밤에 혹 낮에
또 주님 만날 그곳도 난 알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잘아는 주님
늘 돌보아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찬송가 179장 이 기쁜 소식을〉
1. 이 기쁜 소식을 온 세상 전하세 큰 환난 고통을 당하는 자에게
주 믿는 성도들 다 전할 소식은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내 주의 보내신 성령이 오셨네
이 기쁜 소식을 온 세상 전하세 성령이 오셨네
2. 만 왕의 왕께서 저 사로잡힌 자 다 구원하시고 참 자유 주셨네
승리의 노래가 온 성에 들리니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내 주의 보내신 성령이 오셨네
이 기쁜 소식을 온 세상 전하세 성령이 오셨네
3. 한없는 사랑과 그 크신 은혜를 늘 의심하면서 안 믿는 자에게
내 작은 입으로 곧 증거 하리니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내 주의 보내신 성령이 오셨네
이 기쁜 소식을 온 세상 전하세 성령이 오셨네 아멘
〈마태복음 28, 7-15 개역한글, 신약성경 52쪽〉
(7)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8)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새
(9)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10)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에스겔 12, 1- 7 개역한글, 구약성경 1164 쪽〉
(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2) 인자야 네가 패역한 족속 중에 거하도다 그들은 볼 눈이 있어도 보지 아니하고 들을 귀가 있어도 듣지 아니하나니 그들은 패역한 족속임이니라
(3) 인자야 너는 행구를 준비하고 낮에 그들의 목전에서 이사하라 네가 네 처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을 그들이 보면 비록 패역한 족속이라도 혹 생각이 있으리라
(4) 너는 낮에 그 목전에서 네 행구를 밖으로 내기를 이사하는 행구 같이 하고 저물 때에 너는 그 목전에서 밖으로 나가기를 포로되어 가는 자 같이 하라
(5) 너는 그 목전에서 성벽을 뚫고 그리로 좇아 옮기되
(6) 캄캄할 때에 그 목전에서 어깨에 메고 나가며 얼굴을 가리우고 땅을 보지 말지어다 이는 내가 너를 세워 이스라엘 족속에게 징조가 되게 함이니라 하시기로
(7) 내가 그 명대로 행하여 낮에 나의 행구를 이사하는 행구 같이 내어 놓고 저물 때에 내 손으로 성벽을 뚫고 캄캄할 때에 행구를 내어다가 그 목전에서 어깨에 메고 나가니라
(겔 12:1, 새번역)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겔 12:2, 새번역) "사람아, 너는 반역하는 백성 가운데 살고 있다. 그들은 볼 눈이 있어도 보려고 하지 않고, 들을 귀가 있어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반역하는 족속이기 때문이다.
(겔 12:3, 새번역) 그러므로 너 사람아, 그들이 보는 앞에서 포로로 끌려가는 사람처럼, 대낮에 짐을 싸 가지고 길을 떠나거라. 그들이 보는 앞에서, 포로로 끌려가는 것처럼, 네가 살고 있는 그 곳에서 다른 곳으로 떠나가거라. 그들이 반역하는 백성이기는 하지만, 혹시 그것을 보고서 깨달을 수도 있을 것이다.
(겔 12:4, 새번역) 또 너는, 그들이 보는 앞에서, 네 짐은 포로로 끌려가는 사람의 짐처럼 대낮에 내다 놓고, 너는 저녁때에 그들이 보는 앞에서 포로로 끌려가듯 나가거라.
(겔 12:5, 새번역) 너는, 그들이 보는 앞에서 성벽에 구멍을 뚫고, 네 짐을 그 곳으로 내다 놓아라.
(겔 12:6, 새번역) 너는 그들이 보는 앞에서 어깨에 짐을 메고, 어두울 때에 나가거라. 너는 얼굴을 가리고, 다시는 더 그 땅을 보지 말아라. 내가 너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는 징조로 삼았기 때문이다."
(겔 12:7, 새번역) 그래서 나는 명을 받은 그대로 하였다. 내 짐을, 포로로 끌려가는 사람의 짐처럼, 대낮에 내다 놓았다. 그리고 저녁때에 손으로 성벽에 구멍을 뚫고, 어두울 때에 나가서 그들이 보는 앞에서 어깨에 짐을 메었다.
행구 이삿짐 보따리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에스겔이 이스라엘에게 보여주라 라는 하나님의 시선은
인간을 보는 하나님의 시선이다는 겁니다
지극히 부정적입니다
에스겔이 보여주는 원맨쇼처럼 보이는 모습이 포로 잡혀서 끌려가야만 한다 라는 겁니다
아니 이미 포로 잡혀 왔잖아요 그런데 또 보여주다니
도대체 뭘 보라는 겁니까?
하나님이 보여주는 현실인데
사실은 이런 하나님의 시선과는 달리 이스라엘은 전혀 다른 현실을 추구하고 있고
그 마음에 늘 품고있는 현실이 하나님의 시선으로 보여주는 현실과 이렇게도 다르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그 갭을 더더욱 크게 크게 벌리는 식으로써 에스겔은 이 이질감을 보여주어야 하는 거죠
마치 남유다 아하스 왕이 강대국 애굽과 손잡고자 하는 시선을
주님은 반대로 발가벗은 애굽과 손 잡지 말라는 겁니다
아하스 개인만의 시선입니까 아니면 남유다 전체의 시선이 모여진 시선입니까
그러니 이사야가 발가벗고 3년 동안 맨발로 돌아다니는 모습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시선으로 보여주는 현실과
인간의 시선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현실의 갭이 이 간극 너무 너무 크다 라는 거죠
크면 클수록 그 공백의 원 동그라미 둘레가 크기가 점점점 크기에
더더더 참선지자의 모습은 보통 보통 미친놈으로 보이는게 아니게 되는
도통 이해가 안되는 이해불가의 단절성 차단성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모습으로써 거울로 비춰주는 겁니다
바벨론 포로 잡혀 와 본들
이미 친근하게 이스라엘 땅에서도 우상을 섬겼던 그 우상이 여전히 있으니까
하나님의 법이라는 율법이
저 율법이 없어서 망하는 자 이방인과 다를바 없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현실을 에스겔의 이 이상한 행동을 통해서 보여주시는 겁니다
그러니 도리어 이스라엘에게서는 이 부정적인 행동에 반발성을 나타내고
도리어 이스라엘이 추구하는 현실은 이런 부정성이 제거된 모습을 추구하는 현실을
사수하고자 한다는 것에서
또 두 소욕의 충돌이 벌어지도록 하신다 라는 거죠
결국 인간이 추구하는 현실은 뭡니까
그 원조가 바로 애굽 에덴동산 같았더라 라는 천국과 같은 잔칫집이다 말이죠
애굽을 불바다로 만들어 버린 것을 보고도 나 돌아갈래 라고 했듯이
그 잔상이 광야 속에서도 늘 원망으로써 데모하였듯이
바벨론 포로 속에서도 대놓고서 원망하며 데모를 하지 않아도
이렇게 이상하게 미친놈처럼 보여주는 에스겔의 행동에는
아무도 옳습니다 라고 수긍이 못하도록 하는 행동만 골라 골라서
마치 안식일날만 골라 골라서 병든자를 고쳐서
인간들이 안식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악하다 라는 것을 들추어내시는 겁니다
저들이 알아서 덤비도록 왜 당신의 제자는 손 씻지 않고 먹느냐 라고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것에 시비를 알아서 걸 수밖에 없도록 행동하시는 겁니다
그래 너도 그렇게 부정적으로 보이지?
맞아 나도 너를 그렇게 더러운 인간으로 보고 있단다
어딜 우상숭배라는 자기를 위한 우상을 추구하면서
더러운 자를 정죄하고자 율법을 도용하는 그 속임수가 과연 맞는지 틀리는지 함 해 볼까 라는 식으로
예수님이라는 인자가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행동과 말씀처럼
그 예수님이 모습을 인자 에스겔이 미리 앞당겨서 보여주는 겁니다
예루살렘 거주민과 바벨론 포로민과 둘 다 엉터리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예루살렘 거주민은 하나님이 약속의 땅을 버릴 리가 없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 본인이 약속을 어기는 것이다
안식일 언약은 영원한 언약인데 대놓고 어길 리가 없다 라고 말이죠
그래서 그 단어를 자기 쪽으로 끌어와서 지키는 자들이 안식교 아닙니까
주일을 지키는 정통교단과 날과 절기를 지키는 놈들과 똑같은 이단인데
자기들은 다르다 라고 하니
역시나 주님이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시선을 여전히 반발하고 거부하기는 매 마찬가지인
율법이 없어서 망하는 개같은 이방인과 이단과 안식교와 신천지와 다를바 없지요
신천지당과 손잡는 한국기독교가 이단 아니고 뭐겠냐 말이죠
정치 앞에서 권력과 돈 앞에서 다 더러운 놈이다 라고 규정하시는 하나님의 시선을 외면하면서
기여이 자기 배를 위한 시선을 추구하니까 말이죠
자 이렇게 주님의 시선은 이스라엘은 목이 곧은 백성이다는 겁니다
남들은 목이 다 곧아서 예수님을 버려도 나는 절대로 예수님을 버리지 않겠다 라고 하는
베드로의 목 조차도 굳은 딱딱한 목이 곧은 백성이기는 마찬가지인 이유는
개인적인 사적인 다짐이 아니라
앞의 글 에스겔 40장에서도 언급했듯이
새성전의 측량 취지 곧 새성전의 건설 목적 자체가
다 이루었다 라는 하나님의 일의 완성 이다는 겁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다 이루어놓았다 라고는 완료형입니다 과거완료형 이룰것이다도 아니요
이루다 라는 현재형도 아닌 과거완료형 이미 다 지어버렸다 라는 겁니다
그럼 그 앞에서는 이제 그 어떤 인간의 일이 심지어 사적인 일 조차도
모조리 다 실패로 망해야 하는 화로다 화로다 로 몰아가버리는 다 이루심이다는 겁니다
이 하나님의 일을 모르기 때문에
인간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자기 자신도 모르면서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나서거나
이제는 아예 하나님의 일은 아예 쳐다볼 필요도 없다 라고
자기일을 하겠다 라고
하나님은 하나님이 하시고 내 일은 내가 하겠다 라고 나설 정도로
자기의 일을 따로 하겠다 라고 하는 겁니다
즉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자기의 시선으로 만드는 현실관을 추구한다는 거죠
그런데 아뿔사 그 현실추구에 잔칫집 추구에 거리끼는 걸림돌 이라는 초상집 만들기
실패자 만들기 죄인 만들기 환자 만들기 라는 하나님의 일과 시선이 또 다른 현실로써
걸림돌로써 작용이 되는
이 이상한 행동
대낮에 이사하는 행구 짐보따리를 꾸려놓고
저녁에는 포로잡혀 끌려가는 행동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라꼬 연극을 하라는 겁니다
적어도 그것이 각인이 되는 행동일 될려면
도저히 이해가 안되어서 반발심 적개심이 나는
자신들의 현실관을 무너뜨리고 돌 위에 돌이 하나도 남지 않는
종말의 행동
부정적인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써 나타내라 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러니 각인이 외부에서 쳐들어와서 홈이 파이게 되면
잊고 싶어도 못 잊는
애굽왕이 여호와가 누구관데 나 모른다 라고 해도
그래 기다려봐 내가 누군지알려줄게 라고 해서
장자를 죽여버리니까
바로 앞의 글 마태복음 28장 부활에 대해서 언급했듯이
인간들의 부활을 찢어버리는 기쁜소식 큰 기쁨의 복음이 적어도 되어야
잊고 싶어도 못 잊는
내 부활이 찢어지지 않으면 누가 예수님의 부활을 보겠냐 말이죠
나와 상관이 있을려면 예수님이 보여준 진짜 현실인 부활 땜에
나의 부활 나의 구원이 찢어지고서
주님이 만든 현실에 들어가게 될테니까 말이죠
그러니 베드로의 다짐을 찢어버리니까
비로소 예수님이 만드신 현실을 보게 되는 겁니다
죄책감이고 뭐고 아무리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천하의 악행을 저질러도
주님이 몰고오신 현실 앞에서는 그딴 허구의 현실 선악의 현실 우상의 현실은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죽음 축에도 못드는
실패 축에도 못드는
저주 축에도 못드는
심판 축에도 못 드는 절대심판으로써 찢으시고 절대거룩으로써 다시 싸매어 주시니
이 앞뒤 모순된 간극을 누리도록
하나님의 일을 다 이루신 겁니다
그래 모순된다 우짤래 모순의 간극이 크면 클수록
갭이 작으면 인간은 그 사태를 자신의 손으로 충분히 갭을 좁히겠다 라고 나서겠지만
아예 손을 못 댈 정도의 갭이 큰 사태에서는 손 떼도록 하시는 겁니다
그래야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다 이루심을 완성한
하나님의 일에 빨려들어가 버리게 되는 거죠
아니 책임 질게 없는데 자꾸 책임지라고 나서는 그 마귀의 송사 고소가
씨알도 안 먹혀 드는 하나님의 지혜인 십자가의 7에 70번의 피 용서가
진짜 현실로써 마련해 놨는데
언 놈이 이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냐 사기치냐 말이죠
이 미래까정 다 완료가 된 복음이라는 십자가라는 현실 앞에서
인간들이 추구하는 따로국밥처럼 만든 현실이 왜 찢어져야만 하는지를
그 새성전이 떳다는 이유로서 찢겨짐을 당하는
실패와 망함을 격도록 하시는 겁니다
그렇게 포로 잡혀 왔음에도 불구하고
저 예루살렘 거주민과 다르다 우리는 잃어버림을 격었으니 언젠가는 그 고통에 대한 보상
이 고난에 대한 보상을 받을 것이다 라고 포로민의 하나님과
거주민의 하나님과 다르다 라고 우기지만 역시나 틀린 것은 둘다 똑같다 말이죠
아예 새언약 새성전 자체는 아예 쳐다볼 생각 조차도 없기
주님 쪽에서 넘어오시는 성전의 기능을 바로 이런 사고방식 때문에 거부하게 되니
두 마음이 되고
한마음은 되지 못하는 따로 따로 믿음을 추구하겠다 라고 나섬에 있어서
인간은 신앙은 곧 예수님에 대한 살인의지로써 살인이라는 결과만 나올 뿐이다는 겁니다
원인 없는 결과로써의 잉여를 누리는게 아니라
자꾸 원인을 갖추니까 예수님을 살인하는 결과로써 무한반복 다람쥐 챗바퀴
의문의 반복에 빠지는 겁니다
우리는 그때 조상들처럼 선지자를 안 죽이겠다 라고 나서지만
그 말은 하나마나 한 말이다 말이죠]
아니 이미 그 결과 답안지를 봤기 때문에
그때로 돌아가면 선지자를 안죽이겠다 라고 나오겠지요
그러나 정작 돌아거게 되면 여러분 미래에서 왔습니다
지금 이 이사야 선지자를 죽이면 예레미야 에스겔 선지자를 죽이면
자손들이 선지자를 죽인 조상이라고 어린아이에게 교육시키면서 여러분의 행동에 반대할 겁니다
이래도 죽이겠습니까 라고 나오면 그럼 너가 죽을래? 아뇨 라고
역시나 같이 함께 살해하기는 마찬가지인 이미 결정된 구조이다는 거죠
즉 사적인 일이 아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일로써 다 완성이 되어버린 것인데
우리는 그러지 말자 라고 아이들에게 가리켜 본들
가르치는 선생도 역시나 예수님을 죽이는데 맹 똑같은 선지자 죽이기 이고
그 선생에 그 제자로써 아이들도 역시나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 라고 외치는
그 아비에 그 자식으로 행동하는 그 모습에 하나님의 일로써 규정이 되어버렸다 라는 겁니다
문제는 예수님을 죽인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인자를 훼방한 것이 죄가 아니라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것이 죄가 아니라
원망을 해서 불뱀에게 물려 죽게 되는 것이 지옥가는 원리가 아니라
성령을 훼방한 새마음 다 이루었다 라는 하나님의 일의 다 이루심을 훼방하는
새마음을 훼방하는 것이 도저히 사함을 받지 못하는 죄이다 라는 겁니다
불뱀에게 물려 죽는 것이 지옥이 아니라 사망이 아니라]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지 않는 것이 지옥이다 라는 거죠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 라는 하나님의 일을 다 완성한 그 현실을 주시겠다는데
따로 자기들이 책임지겠다 라고 나서는 외부의 숙제의 신앙이 아니라
내부의 숙제인 완악함을 자기 의로움을 세우겠다 라는 것이
하나님의 일의 완성에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는
자기 의를 쌓고 하나님께 대한 열심을 추구하는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잔칫집 현실이다는 겁니다
(롬 10:2, 개역)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롬 10:3, 개역)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롬 10:4, 개역)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 곧 십자가의 사랑 피 용서
7에 70번을 쫓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의를 세우고자 남을 7번 용서를 하는
다 이루심을 거부하고서 따로 자기의 현실관을
가룟유다로 치면 로마로 부터의 해방 독립이겠지요
이 독립운동을 하나님나라 운동으로써 따로 현실이다 라고 주장함에 있어서
아니 이미 예수님 나라 다 이루어졌는데
왜 내가 로마로부터 독립해야 한다고 그 운동을 해야하느냐 라고
손절 해 버리시는 겁니다
가룟유다와 손절 즉 친구끊기 라는 SNS 대화 차단이다 라는 거죠
니 하고는 안 놀겠다 라는 겁니다
교회 믿으라 라고 세뇌 시키는 목사놈들의 내 믿음은 내가 지킨다 라는 그 운동에
손절
참여하지 않겠다 라고 말이죠
그 독립해서 뭐하게?
가룟유다 왈 이스라엘이 구원되지 않습니까
사람의 구원이 헛된데 이스라엘이 구원이 되어서 뭐하게?
또 포로잡혀 가면 또 의문의 반복이고
또 독립하면 또 포로 잡혀 가면 또 구원되는 그런 의문의 반복 운동 해서 뭐하게?
계속해서 천년 만년 그 짖만 반복할래????
아예 포로 속에
음부의 권세 속에서 마 새살림 차리뿌자 너는 신부 나는 신랑
잔칫집을 주님이 부서뜨렸는데
인간은 또 애굽을 짖자
에덴동산과 같은 애굽으로써 독립운동을 하여 애굽건설하자 라는 헛짖을 반복하더라 말이죠
교회가 졸지에 바벨탑이요 애굽이 되어버린 거죠
주님은 그래서 탈출
오늘 본문처럼 이삿짐 보따리 싸고
밤에는 포로 잡혀가 끌려가는 자 되자
그 포로됨 그 사망 그 죽음 그 광야 속에서도
율법만 있으면 살고
율법만 없으면 죽는다 라는
하나님의 거룩인 어린양의 피 흘리심의 원리
곧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멀쩡한 애굽 잔칫집에서 가르치지 않으시고
그런 목이 곧은 백성의 목을 꺽는 광야 속에서 가르치시고자
의도적으로 죄인 만드시는 원망할 만한 곳으로 물없고 양식없는 곳으로 골라 골라 다니시는 겁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이 갭을 도저히 좁힐수가 없는
주님의 뜻을 도저히 이해 할수 없는
이 에스겔의 미친행동을 보듯이
이해불가로써의 간극의 크고 크고 도저히 손을 댈수가 없는
나의 죄악들을 낱낱이 다 들추어내심으로써
그 죄악 세가지를 담아서 피 흘려서 사하시는 겁니다
그러니 목이 곧은 것을 안 들키고자
원망 안하겠다 라는 것이 기적이 아니라
원망 안할려고 안할려고 아무리 참고 참아도 기여이 튀어나옴으로써
이 요나의 표적이라는 십자가의 피와 비로소 상관이 있게 되는 기적 큰 기쁨을 주시겠다 라는
은혜로 창조한 창조주 여호와임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그러니 이 창조주 여호와는 끊임없이
인간이 만들어내는 선악으로 하나님과 같이 된 현실관을 부서뜨리시는 전쟁을 늘 수시로 벌리시는 겁니다
이미 새성전이 새언약으로써 떳고
이 하나님의 일이 다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만의 일을 따로 하겠다 라고 나서는 모습을
그 현실관을
새성전의 기능이 떳기에 무너져야 하는 가짜현실로써 실패하도록 하시고자
다 이루었다의 증상물로써 튀어나오게 하시는 기적을 베푸시는 겁니다
세 번 부인하는 것이 얼마나 기적인줄 베드로는 모르는 겁니다
실패가 말이죠
도리어 세 번 부인하지 않는 것이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겠다 라는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을
인간이 만드는 현실을 따로 챙길려고 하는 구나
선은 취하고 악을 버리겠다 라는 너의 일
이미 다 완료된 새성전 앞에서 그거 튀어나오도록 하심으로써 실패하는 기적
망하는 기적인 요나의 표적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새해 저주 많이 받는 기적 말이죠
안그러면 또 불안해요 불안은 영혼까지 잠식한다 말이죠
첫 번째 사망은 누구나 다 격는 일이지만
육체는 죽여도 영혼은 못 죽이는 것에 잠식당할껍니까?
사기 당할꺼예요?
한번 사기 당해서 죽는 육체의 죽음도 모잘라서 영혼까지 빼앗길 꺼냐 말이죠
그래서 어리석은 남편 나발과 총명한 아내 아비가일이 기록이 된 겁니다
총명한 자는 짐승의 수 666을 셀 줄 알아요
즉 사람의 일이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훼방하는 지를 알기 때문에
다 이루었다 라는 종말 원인 없는 결과가 덮쳐짐 앞에서
의문의 반복에 사기를 안 당한다는 겁니다
성화론자들에게 사기 당하는 자들이 다 나발처럼
내 돈은 내가 지킨다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내 구원은 내가 달성한다
외부의 숙제는 없다 오로지 내 숙제 이다 라고 나서는
악한 무화과 나무이다 말이죠 예레미야 24장
하나님의 의가 이미 다 완료가 되었는데
따로 자기 의를 쌓겠다 라고
의에 대해서 심판하시고
죄에 대해서
하나님이 들추어내시는 원망 세가지 꼬기오 고끼오 꼬끼오가 따로 있는데
엉뚱한 것을 죄라고 불뱀 물려 죽는 것이 죄의 결과가 아니라
물려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안 쳐다보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그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는
자기 의로움을 벗지 않는 이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죄에 대해서 심판하시고
율법대로 네 배나 갚으라 라는 판결 심판 이라는
그 엉터리 심판을 심판하시는 겁니다
지옥이라는 드라마가 지옥과 정의 라는 주제로 선과 악으로 악과 선으로 규정해서 나오는데
그 선이라는 정의가 엉터리 이고
그 악이라는 죄가 엉터리 죄이기에
인간은 쉴새 없이 자기 일을 마련하고 자기가 만든 현실을 추구하는 겁니다
그 속에서는 불이 타 버린 성전으로 들추어내시는
완성된 새성전이라는 참된 현실이 없기에
마침이 없이 무한반복으로써 의문의 반복을 하는 거죠
의문
곧 모른다는 겁니다
모르니 갈때까지 가보자 라는 겁니다
그런데 불타고 없어요
모든 육체
모든 인간이 세운 성전
인간 몸 자체가 성전은
이미 불 타 버렸고 이전 것은 다 사라진
이 실패와 이 멸망이
바로 기쁜소식이다는 겁니다
상대적으로 불타지 않은
천사가 측량한 완벽한 치수의 완벽한 성전이 세워졌음을
빈무덤이 되었다 라고 알려주는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천사로부터 들은 자는
불타지 않은 성전으로 인해서
나는 불 타야 하고 그는 불타지 않는다 라고
큰 무서움과 큰 기쁨이 동시에 덮쳐지는 기적을
복음을 기쁜소식을 누리게 되는 겁니다
나 라는 우상의 터전이 불탄다 라는 이 기적 자체가
이미 다 이루신 불타지 않는 새성전이 떳고
성전의 기능 조차도 할 줄 모르는 가짜성전 가짜몸은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김없이 무너지는 기적을 누리도록 되어 있다는 거죠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를 아는 기적
왜? 불타지 않은 성전이 드디어 완성이 되었기에
광야 라는 죽음 속에
그 죽음 속에서도 절대저주 절대죽음인 광야삼일길에
그 광야라는 죽음 속 삼일길에 말도 안되는
어린양의 희생죽음이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나의 죄악을 세가지 담은 이 인자라는 박스를 만났다는 자체가
말도 안되는 기적이 아니고 뭐냐 말이죠
나의 불탐 속에서 만나는 불 속에서 함께 춤추는 예수님을 말이죠
그러니 다니엘과 세 친구는 포로 잡혀 가야 하고
포로 속에서 세가지 죄악으로 불태움을 당해야 하고
그 불태움 속에서 어린양의 희생 피를 만나도록 되어 있는
하나 하나가 기적이요 감사요 기도요 항상 기쁘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기쁜소식이다 말이죠
나는 나는 나는 너의 기쁨이요 ~~~~~~~~~~~~~~~~~~~~~~~
이 꺽으신 뼈로만 기뻐하겠끔 하시겠다 라고
지금 에스겔이 광야 속에 들어가자
포로 잡혀 들어가자
이것이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요
진짜 현실이다 라고 보여주는 겁니다
아니 지난 주에는 일치된 하나의 마음, 새 신, 부드러운 마음을 주겠다 라고 해 놓고서는
이제는 또 포로 잡혀 가라 라고 생각하라 라고 이사하는 행구를 보여주더라 말이죠
떠나라 어디로? 광야속으로
초상집으로
아니 포로 잡혀왔잖아요
와보니 우상집 잔칫집이라
다시 떠나자
가자 가자 어서가자 꿈에본 섬으로 ~~~~~~~~~~~~~ 초상집으로 말이죠
예수님의 죽음이 있는 어린양의 희생 피 흘리심 속으로 말이죠
오늘 본문 딱 보자 마자
우리가 시편 할 때 후반부 140편 쯤에서
계속해서 앞뒤 모순이 되는 것이 반복된다 라고 했잖아요
예를 들어 지금 제 마음대로 예로 예로 든 겁니다
예로 140편이면 심판하시겠다 라고 해 놓고서는
141편에서는 다시 축복하시겠다 라고 해 놓고서
또 다시 2편에서는 저주하겠다 하시고선
또 다시 3편에서는 축복하겠다
이것을 자꾸 반복하듯이
지금 에스겔 앞장을 보세요 같은 흐름이다 말이죠
이것을 제가 앞뒤 모순이 된다 라고 했잖아요
이 간극을 벌리면 벌릴수록 이것이 하나님의 의 이다 라고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시는 하나님의 거룩입히기 이다 라고 말이죠
바로 앞의 장 에스겔 11장에서는 일치된 마음 새신 부드러운 마음을 줘서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너는 나의 백성이 된다 라고 해 놓고서는
그러니까 초상집으로 가자 라고 또 나오는 겁니다
그 앞에 11장 초반부에는 여호와의 칼을 날리겠다 라고 심판하시겠다 라고 해 놓고서는
후반부에는 새마음을 주겠다 라고 말이죠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 갔다
이 모순의 간극을 벌려야
마치 탈탈탈 털러면 오른쪽으로 흔들었다가
다시 반대편인 왼쪽으로 흔듬으로 인해서
그 간극의 갭을 크게 하면 할수록 뭔가 그 간극 그 공백 사이에서
자꾸 뭔가 바닥에 자꾸 떨어지는 것들이 생겨나요 글쎄
그것이 꼬끼오 꼬기오 꼬기오 세가지 증거물이다 말이죠
이래도 안 내놓을 거야
뭔데요 왜 카기는데요?
어쭈 막어
새성전이 떳기에 탈탈 털어서 죄악을 끄집어 내심으로써
피 바르시겠다 하는 하나님의 일이 다 이루어졌는데
이 하나님의 일인 피 바르심을 거부하고자
아무리 털어도 먼지 하나 나오지 않는 자기만의 현실을 추구하니
그럼 말라꼬 주님이 새성전 짖고
말라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러 오셨고
말라꼬 지옥에서 마귀를 풀어놓았고
말라꼬 죽은 애굽왕 바로왕을 지옥에서 끄집어내어서 1300년 만에 다시 살려놨겠냐 말이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 사랑을 바를려고 했는데
그래서 17대 1로 싸워서 이기는 멋진 남자 강남을 보여주고자 짜고치는 고스톱으로써
마귀를 부정적인 도구로 강도로 풀어놓았는데
이 여자 이스라엘이 지가 알아서 강도를 다 물리치는 태권도를 펼쳐버리면
돈주고 연기자를 불러서 연출 계획 하나님의 일 완성을 보여주시고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이 뭐가 되냐 말이죠
약하디 약한
어무것도 한 것이 없는
무능한 자 만들려고 광야 속에 광야 삼일길 속에 어린양의 희생피 속에 집어넣을려고 하는데
자기가 다 알아서 마귀 물리치고
자기가 다 알아서 광야에서 원망하지 않고 잔칫집 만들어 버리고
자기가 다 알아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지 않도록
최고의 보디가드로 성공해 버리면
하나님의 일 완성인 새성전의 기능은 뭐가 되냐 말이죠
인간이 꿈꾸는 것이 이거거든요
베드로가 그래서 그 본색이 다 탈탈탈 털리도록
뭐가 들어있는지
왼쪽으로 비비고 아니 흔들고
오른쪽으로 흔들고
그래서 마구 마구 튀어나오는
하나님에 대한 열심은 있지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없는
자기 의를 쌓는데 정신 팔리다 보니 하나님의 의에는 복종치 않는
이 모순을 입으로는 찬송하나 마음으로는 저주하는
이 모순을 더한 모순 앞뒤의 간극을 더 더 더 크게 해서 마구 마구 온갖 쓰레기
배설물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요
스카이 중에 스카이
그 똥내나는 가짜현실을 탈탈탈 털려고 그 갭을 크게해서 흔들어 버리는 겁니다
아무리 딱딱한 얼음도 믹서기에 갈려서
평평한 물처럼 칼도 들어가지 않던 딱딱한 얼음이
빈무덤처럼 물이 되어서 아무리 칼로 찔러도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도 타 죽지 않는
불타지 않는 성전을 비로소 만나게 되는 겁니다
사망 속에서
음부의 권세 속에서
큰 물고기 뱃속 깊은 바다 어두 캄캄한 스올 무저갱 지옥 속에서 만난 예수님의 죽음이라면
음부의 권세도 이기지 못하는 빈무덤이 아니고 뭐냐 말이죠
지금 에스겔의 행동은 죽음을 바닥 장판 뜯어내듯이 뜯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이런 기능이다는 거죠
죽음 그까짖꺼 뭔데
뭐길래 하나님의 일의 다 이루심은 안 쳐다보고
자기 일을 따로 마련해서
임금님이 자기 아들이 혼인 잔치를 베풀어도
저 마다 자기 일이 있어서
시집 가야 하고 장가 가야 하고
소도 사야 하고 밭도 갈아야 하고
이게 무슨 놈의 한 마음 일치된 마음이고 새 신이고 부드러운 마음이냐
그래 부드러운 마음을 붓겠다 라는 하나님의 새성전이 떳기에
이제 딱딱한 마음을 골라 골라서 들추어내서 꺽어버리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앞의 여호와의 칼이 날려서 칼에 맞아야 하는 것도 기적이요
기쁜소식이요
징계는 아무도 받나 징계는 아무나 받냐 사생아에게는 때려죽어도 없는 징계 말이죠
그야 말로 말도 안되는 물밀 듯이 쏟아지는 큰 기쁨이요
새 마음을 부으시겠다 라는 것도 큰 기쁨인 기쁜소식 복음이다 말이죠
이것이 산 자의 하나님 곧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닌
사생아의 하나님이 아닌
자녀의 하나님이시?? 라는 겁니다
그래서 인자의 죽음을 쳐다보게 하실려고
이삿짐 꾸리고
포로 잡혀 가서
세 번부인한 베드로를 마귀가 잡았는데
도장 찍으라 라는 마귀의 고소에
마귀 보란 듯이
새 옷을 입히시는
이 하나님의 지혜를 펼치심으로써
세상이 견디지 못하고 격동하는 의를 거룩을 입히시겠다 라는 겁니다
이런 하나님의 계획에
다 이루신 하나님의 일에
이 십자가의 7의 70번의 용서에
인간은 따로 자기의 현실인 남 7번 용서해서 천당하기 라는 개수작을 펼치고 있기에
그거 탈탈탈 털어버리겠끔
야 어서 짐 꾸려라 이삿짐 싸라 이제 떠나자
포로 잡혀 가자
초상집에 가자
거기에 뭐가 있는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 사랑이
7의 70번의 용서가 있어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용서 받는 어린양의 피 흘리심이 있어
장대 높이 달린 인자가 있어 라고
에스겔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떠나자 라고 하는 겁니다
어서 너희들은 그 가짜현실을 탈탈탈 털어버리고
아이들 소꿉놀이로 모래성 쌓은 것 탈탈 털고
대식아 밥 무라
주님의 살과 피를 묵으라
안 그러면 예수님과 상관이 없단다 라고
부르시는 그 음성을 듣고
자기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시는 목자의 음성을 듣고자
자기 양은 그 피 흘리심 속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 사랑 속에
들어가는
진짜 참 현실을 에스겔은 탈탈 털어서 떠나자 라고 하는 겁니다
언제까지 교회에 살겁니까? 교회에서도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 자기를 위하여 만들 가짜현실인 교회에서 떠나서
이미 다 이루어놓으신 새성전으로 들어가자 라고 말이죠
나의 죄를 위해서 피 흘린 자는 아무리 교회 속에서 찾아본들 없어요
어처피 불타 없어질 뿐인 성전들 뿐입니다
붙 타지 않는 새성전으로 들어가자 라고 떠나자 라고 하는 겁니다
탕자는 비로소 탈탈탈 털려서
행구를 싸서
아버지께로 갑니다
아무리 아버지 곁에 있던 마귀는 아버지의 이 맨발로 탕자를 죽은자를 맞이하는 이 사랑에
도저히 이해할수 없는 저 더러운 놈을 받아주는 사랑에
도리어 반발하듯이
반발 하라고 일부러 금가락지 새신발 새 옷
심지어 소를 잡아서 잔치를 벌리시니
하나님의 일로 다 이루심을 그 의를 아예 입혀버리시는 겁니다
금가락지 ~~~~~~~
(슥 3:1, 개역)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슥 3:2, 개역)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슥 3:3, 개역)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는지라
(슥 3:4, 개역)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슥 3:5, 개역) 내가 말하되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사자는 곁에 섰더라
(슥 3:6, 개역) 여호와의 사자가 여호수아에게 증거하여 가로되
(슥 3:7, 개역)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만일 내 도를 준행하며 내 율례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뜰을 지킬 것이며 내가 또 너로 여기 섰는 자들 중에 왕래케 하리라
(슥 3:8, 개역)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이들은 예표의 사람이라 내가 내 종 순을 나게 하리라
(슥 3:9, 개역)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리라
(슥 3:10, 개역)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 하셨느니라
이 탕자의 부활 보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이 빈무덤이 된 한마음을 부으심 보다
약오르고 견디지 못하고 격동케 되는 것이 어디있냐 말이죠
(잠 30:21, 개역) 세상을 진동시키며 세상으로 견딜 수 없게 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잠 30:22, 개역) 곧 종이 임금된 것과 미련한 자가 배부른 것과
(잠 30:23, 개역) 꺼림을 받는 계집이 시집간 것과 계집 종이 주모를 이은 것이니라
이 사랑과 하나가 되지 못해서 망하는 겁니다
오로지 주님의 숙제로 다 이루심으로써 완성 된 겁니다
이 큰 기쁨을 부으시니 아니 기쁘고 못 배기는 겁니다
나를 슬픔으로 만들어서 희락을 부으심 말이죠
마른 뼈로 만들어서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군대 이스라엘로 부으시는
하나님의 일이 다 이루어 졌다 라고
이제 사람의 일을 탈탈탈 털리는 기쁨 밖에 없습니다
====================
네 쌍둥이 이야기로 어머니께서 웃음보가 터지셨는데
이거 보시고 한 내용입니다
https://youtu.be/xpzHtGcsyq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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