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5 새 성전 완성의 목적 (겔 40, 5-49)

삼줄과 척량 장대로 측량한 새성전 알려라 (겔 40, 1- 4)
에스겔 2019 2021. 11. 20. 12:15
19-114 삼줄과 척량 장대로 측량한 새성전 알려라  (겔 40, 1- 4)

〈에스겔 40, 5-49 개역한글, 구약성경 1215쪽,  찬송가 4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5) 내가 본즉 집 바깥 사면으로 담이 있더라 그 사람의 손에 척량하는 장대를 잡았는데 그 장이 팔꿈치에서 손가락에 이르고 한 손바닥 넓이가 더한 자로 육 척이라 그 담을 척량하니 두께가 한 장대요 고도 한 장대며
(6) 그가 동향한 문에 이르러 층계에 올라 그 문통을 척량하니 장이 한 장대요 그 문 안통의 장도 한 장대며
(7) 그 문간에 문지기 방들이 있는데 각기 장이 한 장대요 광이 한 장대요 매방 사이 벽이 오 척이며 안 문통의 장이 한 장대요 그 앞에 현관이 있고 그 앞에 안 문이 있으며
(8) 그가 또 안 문의 현관을 척량하니 한 장대며
(9) 안 문의 현관을 또 척량하니 팔 척이요 그 문 벽은 이 척이라 그 문의 현관이 안으로 향하였으며
(10) 그 동문간의 문지기 방은 좌편에 셋이 있고 우편에 셋이 있으니 그 셋이 각각 한 척수요 그 좌우편 벽도 다 한 척수며
(11) 또 그 문통을 척량하니 광이 십 척이요 장이 십삼 척이며
(12) 방 앞에 퇴가 있는데 이편 퇴도 일 척이요 저편 퇴도 일 척이며 그 방은 이편도 육 척이요 저편도 육 척이며
(13) 그가 그 문간을 척량하니 이 방 지붕 가에서 저 방 지붕 가까지 광이 이십오 척인데 방 문은 서로 반대되었으며
(14) 그가 또 현관을 척량하니 광이 이십 척이요 현관 사면에 뜰이 있으며
(15) 바깥 문통에서부터 안 문 현관 앞까지 오십 척이며
(16) 문지기 방에는 각각 닫힌 창이 있고 문안 좌우편에 있는 벽 사이에도 창이 있고 그 현관도 그러하고 그 창은 안 좌우편으로 벌여 있으며 각 문 벽 위에는 종려나무를 새겼더라
(17) 그가 나를 데리고 바깥 뜰에 들어가니 뜰 삼면에 박석 깔린 땅이 있고 그 박석 깔린 땅 위에 여러 방이 있는데 모두 삼십이며
(18) 그 박석 깔린 땅의 위치는 각 문간의 좌우편인데 그 광이 문간 길이와 같으니 이는 아래 박석 땅이며
(19) 그가 아래 문간 앞에서부터 안 뜰 바깥 문간 앞까지 척량하니 그 광이 일백 척이며 동편과 북편이 일반이더라
(20) 그가 바깥 뜰 북향한 문간의 장광을 척량하니
(21) 장이 오십 척이요 광이 이십오 척이며 문지기 방이 이편에도 셋이요 저편에도 셋이요 그 벽과 그 현관도 먼저 척량한 문간과 같으며
(22) 그 창과 현관의 장, 광과 종려나무가 다 동향한 문간과 같으며 그 문간으로 올라가는 일곱 층계가 있고 그 안에 현관이 있으며
(23) 안 뜰에도 북편 문간과 동편 문간과 마주 대한 문간들이 있는데 그가 이 문간에서 맞은편 문간까지 척량하니 일백 척이더라
(24) 그가 또 나를 이끌고 남으로 간즉 남향한 문간이 있는데 그 벽과 현관을 척량하니 먼저 척량한 것과 같고
(25) 그 문간과 현관 좌우에 있는 창도 먼저 말한 창과 같더라 그 문간의 장이 오십 척이요 광이 이십오 척이며
(26) 또 그리로 올라가는 일곱 층계가 있고 그 안에 현관이 있으며 또 이편, 저편 문 벽 위에 종려나무를 새겼으며
(27) 안 뜰에도 남향한 문간이 있는데 그가 남향한 그 문간에서 맞은편 문간까지 척량하니 일백 척이더라
(28) 그가 나를 데리고 그 남문으로 말미암아 안 뜰에 들어가서 그 남문간을 척량하니 척수는
(29) 장이 오십 척이요 광이 이십오 척이며 그 문지기 방과 벽과 현관도 먼저 척량한 것과 같고 그 문간과 그 현관 좌우에도 창이 있으며
(30) 그 사면 현관의 장은 이십오 척이요 광은 오 척이며
(31) 현관이 바깥 뜰로 향하였고 그 문 벽 위에도 종려나무를 새겼으며 그 문간으로 올라가는 여덟 층계가 있더라
(32) 그가 나를 데리고 안 뜰 동편으로 가서 그 문간을 척량하니 척수는
(33) 장이 오십 척이요 광이 이십오 척이며 그 문지기 방과 벽과 현관이 먼저 척량한 것과 같고 그 문간과 그 현관 좌우에도 창이 있으며
(34) 그 현관이 바깥 뜰로 향하였고 그 이편, 저편 문 벽 위에도 종려나무를 새겼으며 그 문간으로 올라가는 여덟 층계가 있더라
(35)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에 이르러 척량하니 척수는
(36) 장이 오십 척이요 광이 이십오 척이며 그 문지기 방과 벽과 현관이 다 그러하여 그 좌우에도 창이 있으며
(37) 그 현관이 바깥 뜰로 향하였고 그 이편, 저편 문 벽 위에도 종려나무를 새겼으며 그 문간으로 올라가는 여덟 층계가 있더라
(38) 그 문 벽 곁에 문이 있는 방이 있는데 그것은 번제물을 씻는 방이며
(39) 그 문의 현관 이편에 상 둘이 있고 저편에 상 둘이 있으니 그 위에서 번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희생을 잡게 한 것이며
(40) 그 북문 바깥 곧 입구로 올라가는 곳 이편에 상 둘이 있고 문의 현관 저편에 상 둘이 있으니
(41) 문 곁 이편에 상이 넷이 있고 저편에 상이 넷이 있어 합이 여덟 상이라 그 위에서 희생을 잡는 소용이며
(42) 또 다듬은 돌로 만들어서 번제에 쓰는 상 넷이 있는데 각 장이 일 척 반이요 광이 일 척 반이요 고가 일 척이라 번제의 희생을 잡을 때에 쓰는 기구가 그 위에 놓였으며
(43) 현관 안에는 길이가 손바닥 넒이 만한 갈고리가 사면에 박혔으며 상들에는 희생의 고기가 있더라
(44) 안 문안 안 뜰에는 방 둘이 있는데 북문 곁에 있는 방은 남으로 향하였고 남문 곁에 있는 방은 북으로 향하였더라
(45) 그가 내게 이르되 남향한 이 방은 성전을 수직하는 제사장들의 쓸 것이요
(46) 북향한 방은 제단을 수직하는 제사장들의 쓸 것이라 이들은 레위의 후손 중 사독의 자손으로서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가 수종드는 자니라 하고
(47) 그가 또 그 뜰을 척량하니 장이 일백 척이요 광이 일백 척이라 네모 반듯하며 제단은 전 앞에 있더라
(48) 그가 나를 데리고 전문 현관에 이르러 그 문의 좌우 벽을 척량하니 광이 이편도 오 척이요 저편도 오 척이며 두께가 문 이편도 삼 척이요 문 저편도 삼 척이며
(49) 그 현관의 광은 이십 척이요 장은 십일 척이며 문간으로 올라가는 층계가 있고 문 벽 곁에는 기둥이 있는데 하나는 이편에 있고 하나는 저편에 있더라

(겔 40:5, 현대어) [네모진 성전 구역의 바깥 담] 성전 구역 전체에는 사방으로 담이 둘러 쳐져 있었다. 그 사람이 손에 들고 있는 6자짜리 그 측량하는 장대로 담을 재었는데 그 높이와 두께가 다 같이 한 장대 곧 ㄱ) 6자였다. (ㄱ. 여기서 한 자는 큰 자로서 52.5센티미터를 가리킨다. 이 성전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50이라는 기본수가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미터법으로 환산하지 않는다;레25:10, 참조)
(겔 40:6, 현대어) [동문] 그런 다음에 그 사람이 동쪽 대문으로 통하는 여러 개의 계단을 올라가서 대문의 높이를 재어 보니 한 장대였다.
(겔 40:7, 현대어) 대문간에는 양쪽으로 각각 골방이 세 개씩 있었고 세 방은 모두 벽기둥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그 사람이 그 골방들을 재어 보니 길이와 폭이 모두 한 장대였다. 골방들 사이에 있는 그 벽기둥들의 두께는 5자였다. 이 대문의 뒤쪽에 있는 문의 높이도 앞쪽의 문과 마찬가지로 한 장대였다. 그 뒤로는 안쪽으로 향한 현관이 있었는데 이 현관의 길이는 8자였고, 이 현관 끝에 있는 대문의 높이는 2자였다.
(겔 40:8, 현대어) (7절과 같음)
(겔 40:9, 현대어) (7절과 같음)
(겔 40:10, 현대어) (7절과 같음)
(겔 40:11, 현대어) 골방들 앞에는 1자 높이의 울타리가 있었다. 대문 통로의 양편에 있는 이 울타리가 통로와 골방들을 서로 분리시켰다. 그 다음에 그 사람이 대문의 폭을 재어 보니 13자였고 대문에 달린 경첩 부분이 차지한 공간을 재어 보니 10자였다.
(겔 40:12, 현대어) (11절과 같음)
(겔 40:13, 현대어) 또 왼쪽에 있는 골방의 뒷벽에서 그와 마주 보는 오른쪽 골방의 뒷벽까지는 그 길이가 25자였다.
(겔 40:14, 현대어) 현관은 안으로 쑥 들어가 바깥 마당과 연결되었다. 이 현관의 길이는 대문의 벽기둥까지 합하여 20자였다.
(겔 40:15, 현대어) 이 문으로 들어서는 맨 앞쪽에서 현관 끝에 있는 바깥 마당으로 들어가는 대문에 이르기까지 이 동문 전체의 넓이와 길이는 50자였다.
(겔 40:16, 현대어) 골방의 바깥벽에는 모두 붙박이창이 달려 있어서 그 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대문의 통로를 밝게 하였다. 현관에도 창이 있었다. 벽기둥들에는 모두 종려나무가 새겨져 있었다.
(겔 40:17, 현대어) [성전의 바깥뜰] 그런 다음에 그 사람이 나를 데리고 성전의 바깥 뜰로 들어갔다. 이 뜰의 사방에는 30개의 방이 옆으로 이어져 있었고 이 방들 앞에는 돌을 깔아놓은 좁다란 뜰이 길을 이루고 있었다.
(겔 40:18, 현대어) 이 돌길은 대문이 바깥뜰 안으로 나온 부분과 나란히 옆으로 깔려 있었는데 이런 돌길은 바깥 마당과 마찬가지로 안마당보다 낮은 위치에 있었다.
(겔 40:19, 현대어) 나를 안내하는 사람이 우리가 들어왔던 대문에서 좀더 높은 위치에 건축된 안마당의 대문에 이르기까지의 거리를 재어 보니 100자가 되었다. 이 길이는 동쪽과 북쪽이 똑같았다.
(겔 40:20, 현대어) [북문] 또 그 사람이 바깥 마당으로 들어가는 북쪽 대문을 재었다.
(겔 40:21, 현대어) 북문도 동문과 똑같아서 대문의 전체 길이가 50자, 폭이 25자였다.
(겔 40:22, 현대어) 현관과 창문들과 종려나무의 장식도 모두 똑같았으며 대문의 입구로 들어오는 곳에는 여기에도 일곱 계단이 있었다.
(겔 40:23, 현대어) 동문과 마찬가지로 북문도 좀더 높은 곳에 위치한 안마당의 북문을 마주보고 있었다. 그 사람이 바깥 대문과 안대문의 거리를 재어보니 100자였다.
(겔 40:24, 현대어) [남문] 그 사람이 다시 나를 남쪽으로 데리고 가서 그곳에 있는 남문을 재어 보았다. 모든 길이와 모양이 다른 두 대문과 똑같았다. 대문의 입구로 들어가는 곳에는 여기에도 일곱 계단이 있었다. 양쪽의 벽기둥에는 기둥마다 종려나무가 한 그루씩 새겨져 있었다.
(겔 40:25, 현대어) (24절과 같음)
(겔 40:26, 현대어) (24절과 같음)
(겔 40:27, 현대어) 여기에서도 좀더 높은 곳에 위치한 안마당의 남문이 마주 서 있었다. 그 두 대문의 거리도 100자였다.
(겔 40:28, 현대어) [안마당의 남문] 그 다음에 그 사람이 나를 데리고 남문을 지나 안뜰로 들어갔다. 이 대문의 구조도 다른 대문들의 구조와 같아서 골방과 벽기둥과 현관과 창문이 모두 다른 대문의 것들과 같았다. 그 사람이 이 대문을 재어 보니 그 크기도 다른 대문들과 똑같아서 대문간의 길이가 50자요 폭은 25자였다.
(겔 40:29, 현대어) (28절과 같음)
(겔 40:30, 현대어) (28절과 같음)
(겔 40:31, 현대어) 그런데 이 대문의 현관만은 안마당을 향하지 않고 바깥 마당을 향하고 있었다. 벽기둥에는 종려나무가 한 그루씩 새겨져 있었고 대문의 입구로 올라가는 곳에는 여덟 계단이 놓여 있었다.
(겔 40:32, 현대어) [안마당의 동문과 북문] 그 다음에 그 사람이 나를 데리고 동문으로 가서 재어 보고 또 북문으로 가서 재어보았다. 이 두 대문의 구조와 크기가 모두 남문과 똑같았다. 여기서도 현관이 바깥 마당을 향해 있었고 대문의 입구로 오르는 곳에는 여덟 계단이 있었다.
(겔 40:33, 현대어) (32절과 같음)
(겔 40:34, 현대어) (32절과 같음)
(겔 40:35, 현대어) (32절과 같음)
(겔 40:36, 현대어) (32절과 같음)
(겔 40:37, 현대어) (32절과 같음)
(겔 40:38, 현대어) [안마당 북문의 시설들] 북문 곁에는 현관에서 동쪽으로 방이 하나 붙어 있었는데 그 사이에는 문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번제물로 바칠 짐승의 오물을 씻는 곳이었다.
(겔 40:39, 현대어) 북문의 현관 안에는 양편으로 책상이 두 개씩 놓여 있었다. 그 위에서는 번제와 속건제와 화목제에 쓸 짐승들을 잡도록 되어 있었다.
(겔 40:40, 현대어) 북문에는 현관 밖에도 양쪽 귀퉁이 벽에 상이 두 개씩 놓여 있었다.
(겔 40:41, 현대어) 여기서는 친교의 제물로 바쳤다가 함께 나누어 먹을 짐승을 잡도록 되어 있었다. 그래서 짐승을 잡는 데에 사용할 책상은 모두 여덟 개였다. 넷은 대문의 현관 오른편에, 넷은 왼편에 있었다.
(겔 40:42, 현대어) 번제와 속건제와 화목제에 쓸 짐승의 고기를 놓는 상 넷은 돌을 깎아서 만든 것이었다. 각 상의 길이와 폭은 한 자 반이요 높이는 한 자였다.
(겔 40:43, 현대어) 이 현관의 내부에는 너비가 손바닥만한 선반이 부착되어 있었는데 그 위에는 제물에 쓸 짐승을 잡는 데에 필요한 연장들을 올려놓았다. 그러나 모든 상 위에는 제물로 바치는 짐승의 고기만을 올려놓았다.
(겔 40:44, 현대어) [제사장의 두 준비실] 북문과 남문 곁에는 방이 하나씩 있었는데 각각 안마당으로 통하게 되어 있었고 북문의 방은 남쪽을 바라보고 남문의 방은 북쪽을 바라보았다.
(겔 40:45, 현대어) 나를 안내하던 사람이 설명해 주었다. '남쪽을 향해 있는 방은 성전에서 일꾼 노릇을 하는 제사장들이 쓰는 것이다.
(겔 40:46, 현대어) 그리고 북쪽을 향한 방은 제단을 맡아서 섬기는 제사장들이 쓰는 방인데, 이 두번째 제사장들은 레위 자손들 가운데에서도 여호와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 섬길 수 있는 사독의 자손들이다.'
(겔 40:47, 현대어) [안마당] 이제까지 내게 성소를 보여주던 그 사람이 이번에는 안마당을 재어 보니 그 길이와 폭이 다 같이 100자였다. 이 정사각형의 한가운데에는 성전을 향한 제단이 있었다.
(겔 40:48, 현대어) [성전의 현관] 그 다음에 그 사람이 나를 데리고 성전의 현관으로 들어가서 재어 보니 현관으로 들어가는 대문의 폭은 14자였고 대문 좌우의 벽 길이는 3자씩이었다. 또 벽의 두께는 5자였으며
(겔 40:49, 현대어) 현관의 폭은 20자였고, 길이는 12자였다. 이 현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열 계단이 있었고 현관의 벽기둥 앞에는 좌우로 기둥이 하나씩 서 있었다.


소제목을 단 번역을 참고해서 보니 새성전에 대한 철저하고 완벽한 치수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제목만 올려 봤습니다.

(겔 40:1, 현대어) [새 성전의 환상] 
(겔 40:5, 현대어) [네모진 성전 구역의 바깥 담] 
(겔 40:6, 현대어) [동문] 
(겔 40:17, 현대어) [성전의 바깥뜰] 
(겔 40:20, 현대어) [북문] 
(겔 40:24, 현대어) [남문] 
(겔 40:28, 현대어) [안마당의 남문] 
(겔 40:32, 현대어) [안마당의 동문과 북문] 
(겔 40:38, 현대어) [안마당 북문의 시설들] 
(겔 40:44, 현대어) [제사장의 두 준비실] 
(겔 40:48, 현대어) [성전의 현관] 

(겔 40:1, 쉬운) <새 성전> 
(겔 40:5, 쉬운) <동쪽 문> 
(겔 40:17, 쉬운) <바깥뜰> 
(겔 40:20, 쉬운) <북쪽 문> 
(겔 40:24, 쉬운) <남쪽 문> 
(겔 40:28, 쉬운) <안뜰> 
(겔 40:38, 쉬운) <제물을 준비하는 방> 
(겔 40:44, 쉬운) <제사장들의 방> 
(겔 40:48, 쉬운) <성소의 현관> 


건축물 설계도처럼 공개가 된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환상입니다
환상의 내용을 역사의 언어로 공간의 언어로 번역한 것처럼 말이죠

이렇게 세세한 설계도면의 새성전 건축물이 나중에 역사속에서 나타날때에
건축물이 아니라 한 인물로써 나타나는 겁니다

아니 인물에 무슨놈의 치수가 필요하냐 라는 겁니다
치수 자체가 의미 없는 환상의 세계에서
역사의 언어로 번역해서 공개해 본들 연관성이 없지 않냐 말이죠

바로 그겁니다

마침 어머니랑 모세가 나오는 십계를 또 보고싶다고 하셔서 같이 봤는데

요즘 살펴보고 있는 에스겔을 보는 듯 합니다

그때 모세 때의 죄악과 상대적인 은혜가 한 세트를 이루어서 대비되어 나타났듯이
에스겔서도 마찬가지 이다 말이죠 

환상이 나타났다 묵시 계시 복음이 나타났다
그렇게 되면 상대적인 역사와 비언약 우상들의 내막이 모세때와 다르게 더 깊어져서 상대적으로 그 깊이 만큼 나타나는 것이겠지요

그러니 모세 때에 벌어진 홍해사건과 동시에 벌어지는 애굽의 멸망이나 
또 십계명 받는 사건과 상대적으로 대비되는 금송아지 만들어 섬기는 우상숭배의 사건도
서로의 소욕을 못하는 식으로

환상의 소욕은 역사의 소욕을 방해하고
역사의 소욕은 환상의 소욕을 방해하듯이 서로 대비가 되어 나타나는 겁니다

그런 취지에서 새성전의 취지는 
이렇게 역사의 언어로 번역된냥 수치로 정확하게 숫자로 나열이 되는 그 이유는

네 맞아요 바로 인간의 성전을 다 무너뜨리겠다 라는 취지가 되는 겁니다
그래야 새성전의 취지에 맞다 라는 겁니다
이 거룩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인간은 또 번제와 제사를 무한반복으로써 의문의 반복을 할것이고
인애와 자비를 거부하는
우상과 하나님을 썩은 짖은 반복하게 되닌 마침이 없게 되는 것이겠죠

인간의 성전이 곧 인간의 신체 몸 이거든요
지금 바벨론 포로 속에서 환상이 주어지는 이유는

그들의 원조 애굽의 멸망을 보여주시겠다 라는 취지이고
상대적으로 이스라엘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구원받는 모욕적인 구원을 이루시는 것이
새성전의 취지이다 라는 겁니다

이것을 막을려고 이스라엘은 자기 쪽에서 거룩을 바쳤고
주님은 은밀한 처소의 기능을 막고자 하는 이스라엘의 개수작에 속지 않겠다 라고
이방나라를 통해서 예루살렘 성전을 불태워 버리시는 겁니다

막상 포로 잡혀가니
바벨론의 우상이 이질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이스라엘이 우상과 하나님을 썩은
요즘으로 치면 돈이라는 재물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긴 오늘날의 교회 모습이
바벨론 포로 속에서도 우상이 거부감이 들기는커녕 오히려
친근감이 들고 여기서도 살만하고
다 먹고 살려고 우상 섬기는 거 아니냐 라고
자기 생존을 위해서 하나님이든 바벨론 우상이든 다 끌어당기는 겁니다

그러니 역사적으로 와 본들
포로 잡혀 가본들 회개는커녕
내 열심히 특심이오니 나만 남았으니까

이 신앙에 대한 보상을 또 노리게 되더라 라는 거죠

아무도 없다
뭐가?

신앙인이 없어요
성도가 없어요

그래서 새로 만들어야 해요
새성전이 떳기 때문에
그 새성전에 맞는
의사에 맞는 환자를 새로 맹글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마른뼈 였듯이

환상 속에서만 나온 새성전의 증상물을 새로 만드는 것이
이 새성전의 기능을 온전히 누리고 섬김을 받을 자를 새로 만드시는 거다 말이죠

그러니 예루살렘 거주민도 아니요
포로잡혀간 바벨론 포로민도 아닌

(요 4:20, 개역)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요 4:21,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요 4:22, 개역)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요 4:23, 개역)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 4:24, 개역)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요 4:25, 개역)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요 4:26, 개역)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야곱의 우물리 있는 이 세겜 산도 아니요
예루살렘도 아닌

예루살렘이 되어버리면 저 이슬람교의 황금동 사원이 맞게 된다 말이죠
역사의 건물들을 다 무너뜨릴려고 하는데 맞게 되면 안되죠

내가 바로 새성전이요
그 증상물인 너희가 바로 예루살렘 딸이 되어야 한다 라는 겁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시고자 이 새성전의 치수를 재시면서 등장하시는 분이 와야
모든 성전을 허물어 버림으로써 우상을 모든 신체를 십자가에 못 박으심으로 인해서
마른뼈 하나님의 군대 즉 

군대란 왕이 인솔하는 왕이라는 머리가 있는 몸이다 라는 거죠

그 왕이 평화 평강 정의를 세우시겠다 라는 겁니다
전쟁 종식입니다

지난 주에 성전을 허락했다 라는 것은
전쟁의 끝마침이다는 거죠

그 인물이 옴으로써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지난 주의 새 마음 새 몸 새신 새 부드러운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가 곧 거룩이 완성이 되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 지어다 라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이 말씀을 지켜야 한다 그러니 거룩을 지켜야 한다는 자들의
완악한 모습
딱딱한 모습
이런 번제와 제사를 지키는 자들은
또 그 속에서 또 계급이 생기고
또 니가 잘 낫니 내가 잘 낫니 라는 것으로
이 평준화 시키는 성령 새 마음을 또 무시하는 우상의 모습을 드러내더라 말이죠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는 사탄의 회 유대인처럼 말이죠 계시록에 나오는 음녀처럼 말이죠

이렇게 저들은 우상을 1300년 동안(예수님 당시 유대인) 단 한번도 애굽의 우상을 끊은 적이 없고
지금 현재까지도 2021, 2년 후 총 3322년까지도 단 한번도 우상을 끊은 적이 없습니다
저들 유대인이 모든 인간의 대표성이니(왜 대표성이냐? 누구 마음대로? 예수님 마음대로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이다는 겁니다
단 한번도 인간은 자아 라는 우상에서 벗어날수가 없어요

고맙게도 주님이 모든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으심으로써 평준화
화평 평화를 다 이루시는

전쟁의 마침을 두 막대기가 하나가 되는
왕으로써 전쟁을 종식시켜 버렸고
목자로써 대신 자기 백성의 허물을 대신 감당하신 겁니다

거기서 나오는 증상물이 바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 신부로써
때려죽어도 유대인들이 도저히 이룰수 없는 12지파
오늘날에는 바리새인과 같은 성화론자들이 도저히 이룰수 없는 거룩한 나라
12지파를 증상물로 새이스라엘을 새로 창조하시는 겁니다

인간들의 거룩은 거꾸로 반대로 자기가 거룩을 이루고자
더러운 것을 짤라 낼려고 하니

이 십자가 라는 지혜를 거리끼는 걸림돌로 건축자들이 쓸모없다 라고 버리는 겁니다
왜? 하나님의 저주 이거든요

새해 저주 많이 받아라 라는 이 말은
새해 첫출발 시작 태어난 날 생일 자체가 저주로 태어났다 라는

평준화 이다는 겁니다 
새해 저주를 모르게 되면 또 지 잘낫니 내 잘낫니 라는
또 첩경을 이루어서 또 부자와 가난한 자로 가르고 축복받은자 저주받은자로 나누고
그 속에서 중간치 하겠다는 또 인간의 자기 의로움이 또 나오는 거죠
그 자체가 이미 선악으로써 우상숭배인 겁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는 선하면 바보처럼 당하기만 하고 악하면 맨날 깜빵에 들어가게 되니
중간치 해야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살수가 있다 라고

그게 바로 이미 인간들의 생각을 탈탈탈 털어버려서 나온 발상이
광야 속에서의 목이 곧은 마음이 딱딱한 모습을 들추어내었고
에스겔 지난 주에서 마음이 딱딱함을 제거하시겠다 라고 하심은
1300년이 지나도 에스겔 당시로는 1000년 이겠지요 천년 조금 못 되는 970년 쯤인가???

므두셀라 969살에 죽듯이 묵시라는 천년 넘기 전에 다 탈탈탈 털어버리시는 겁니다
그 증거물로 인해서 함구 그 입 다물라
하나님은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잠잠하라 라고 빼도박도 못하도록
부끄 부끄 머리에 숯불 얹은 것처럼 반박을 못하도록 증거물로 세가지 도장 도장끈 지팡이를 잡아버리는 겁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지혜 곧 거리끼는 걸림돌이다 말이죠
자기 손으로 온 갖 저주를 하면서 죽였는데
도리어 죽은 나를 바로 그런 우상숭배자인 나를 도리어 내 손에 죽은 자가 살려주심이다는 거죠

모든 인간은 시아버지 유다로 만들어서
주님이 참성전의 의미 새성전의 의미를 며느리 다말 개같은 이방인 여자의 모습으로
예수님이 오셔서 이 하나님의 지혜를 펼치시겠다 라는 겁니다

이 지혜 이 김지혜 박지혜 이지혜 말고
이 새성전이 이미 떳는데
쓸데없이 인간 쪽에서 성전에다가 자꾸 바치겠데요 글쎄
거룩이랍시고 아이구 더럽다 똥내 난다 썩은네 난다 다 우상숭배의 버릇이거든요 습관

(롬 10:1, 개역)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롬 10:2, 개역)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롬 10:3, 개역)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롬 10:4, 개역)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주님은 받는 분이 아니라 주시는 분
무엇을? 평화를

(엡 2:11, 개역)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엡 2:12, 개역)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엡 2:13, 개역)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엡 2:14, 개역)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엡 2:15, 개역)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엡 2:16, 개역)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엡 2:17, 개역)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엡 2:18, 개역)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화평을 주실려면 얼마나 목이 곧은 백성이다 라는 것이 들통나야 할 것 아니냐 말이죠
그래서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시고 불을 지르러 와서
자기집안 식구가 얼마나 원수인가 라는 것을 들통내시는 겁니다

에스겔 보세요 포로 잡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 에스겔 못 죽여서 안달이 나 버릴 정도로
원수 짖만 골라서 하니 이 이스라엘에게서는 철천지 원수가 되는 겁니다
딱딱한 마음을 들추어내니까 말이죠

막힌 담을 헐어서 원수 된 것을 하나로 한 몸으로 만드시는 분 왜? 인간의 거룩은 도로 원수만들거든요 하나를 쪼개어서 둘로 만들어요 12지파를 다 쪼개어 버려요 글쎄 그 정도로 불가능하기에 인간은 안된다는 겁니다
받는 분이 아니라 주시는 분 왜? 불가능한 단절이니까 성령은 단절입니다 연합이 아니라
새 마음 새 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겠다 꼬기오 꼬끼오 꼬끼오를 주시겠다
빼도박도 못하는 주님의 사랑 곧 인애와 자비를 주시는 분이시다 라는 겁니다세 번 부인케 만들어야 딱딱한 마음 뿐임을 알고 우는 자가 되고
부드러운 마음이 없음을 정직한 영이 없을 알고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써
인애와 자비 제발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하는 겁니다
이렇게 죄인 만들지 않으면 여전히 다윗은 왕의 자리에서 율법 네 배나 갚으라 라는
그 평준화 되지 못하는 짖만 골라서 한다 말이죠

(눅 11:10, 개역)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눅 11:11, 개역) 너희 중에 아비 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눅 11:12, 개역)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눅 11:13, 개역)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아무것도 내 세울 것이 없는 가장 거룩한 자리 왕의 자리에서 목사의 자리
장 자리 장로의 자리에서 쭐꾸덕 미끄러져서
율법 네 배나 갚으라 라는 재판관의 자리에서
죄인의 자리 평준화가 된 자리로 목이 꺽여져서
비로소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자리에서
성령을 새 마음을 구하도록 만드시는 겁니다

이것을 구하는 자도 없고 찾는 자도 없고 두드리는 자도 없다 말이죠
성령을 아무도 안 구해요
아무도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고
그저 자기 의로움 쌓기에 열심에 내 열심히 특심이오니 라는
자기 쪽에서의 성전에 바침 밖에 몰라요
주님의 은밀한 처소의 기능을 주의 이름이 담겨진 법궤의 기능
나의 죄악을 세가지를 담는 꼬끼오 꼬끼오 꼬끼오를 못 하도록 막고자 말이죠

(롬 10:3, 개역)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하나님께 열심인 바리새인이나 유대인들이 저 사도바울 못 죽이면 잠도 안자고 밥도 안 먹겠다 라는 겁니다 왜 그래야 거룩의 제사를 바치게 되니까
순종이 제사 보다 낫다 라고 했는데 이 제사에 미쳐버린 겁니다
우리가 다 이래요
순종 자체가 없음을 몰라요

그저 순복음 버릇대로 비닐 김장 김치 용 하나 들고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높은 산도 아니다 말이죠 저거들이 말하는 산에 올라가서 우뚝 쏟은 봉우리 위에 올라가서 비닐로 온 몸을 덮어 그 속에 들어가서 기도하겠다 라고 말이죠

우와 그 사진을 보고 얼마나 엽기적이던지
완전히 정신병자들 아니냐 말이죠

그 사진 오래전 일이라 지금은 다들 눈치챘죠 보통 미친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을
지금은 캠핑문화가 유행하다 보니 텐트치고 여러명이 하겠지만
우와 그때 그 사진은 딸랑 혼자서 일부러 우뚝 쏟은 봉우리를 혼자 올라갈 정도로 만든 것마냥 김장용 비닐 딸랑 하나로 그 속에서 기도하는 모습의 사진이 엽기적이라서 기억에 남았다 말이죠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 사제들이 신으로부터 신탁을 받고자 마약을 먹고
환각 속에서 둥둥 떠 있는 신으로부터 뭔가를 받는 그런 영화 장면처럼 말이죠

아마 기독교 인터넷 언론매체(뉴스땡조이,당땡뉴스 등등)에서 봤지 싶은데


자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바로 이런 내막들 곧 딱딱한 마음으로 바치는 가짜성전을 불태우고 난 뒤에
새성전이 등장하기 때문에

마치 새성전은 불을 통과할 줄 알고 즉 죽었다가 다시 삼일 만에 짖는 성전이고
연단된 정금같이 나온 예수님처럼 말이죠
그 예수님의 손에 지어진 성도라는 성령의 전인 우리도 정금같이 나오고
이것이 마른뼈이고

죽음을 통과하지 못하는 성전 즉 불에 타 버리는 성전은
우상에 불과하다 라는 겁니다

이 서로 대비가 되는 성령의 소욕에 의한 두 성전의 최종결과적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불타는 성전과 불에 타지 않는 새성전을 보여줌으로써

모든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는 새성전이신 예수님이 나 보다 옳았습니다 라고
예수님의 마음을 구해야 할 판국이다 말이죠

그저 인간들은 멋들어진 구원을 바라고 있으니
이 모욕적인 구원을 누가 구하고 찾고 두드리겠냐 말이죠
성령 곧 새 마음을 구한다 라는 것은
기존의 내 마음은 뭘 해도 가짜요 거짓이요 더럽기 짝이 없다 라는 겁니다

아니 성화론자들 치고 자신들의 거룩한 말씀 지킨 것을 깨끗하다고 여기니까 계속하지
더러운 냄새가 난다고 여기면 벌써 손떼고 냄새지울려고 어떻게 해서든 몸을 씻고자 할꺼 아니냐 말이죠 거룩한 행실을 하겠다 라는 자체가 더러운 똥을 온 몸에 쳐바라는 겁니다

제발 나 한테 오지 말아라 똥내난다 내 마당 밟지 말라 라고 말이죠

(사 1:9, 개역)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
(사 1:10, 개역)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사 1:11, 개역)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사 1:12, 개역)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사 1:13, 개역)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사 1:14, 개역)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사 1:15, 개역)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아니 이사야서 출발부터 이렇다 말이죠
조금 남겨둔 씨로 인해서 비로소 들통나는 겁니다

이사야 본인도 이사야 6장에서 성전에서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영광을 만나게 되니까 더럽기 짝이 없음을 비로소 알게 되는
새 마음이 들추어내신 딱딱한 마음임을 들통당하는 거죠

이런 새성전에 의해서 들추임 당함으로써
족히 비교도 할 수 없는
함량 미달의 666 짐승들의 거룩으로는 근처도 못가는
완벽한 심판과 완벽한 거룩의 절대거룩의 치수를 재는 겁니다
성전측량이 어느 정도인가

계시록에서는 거룩을 측량하니 인간들의 거룩은
존재의 거룩을 주장하기 때문에 대제사장이 가장 거룩하다 라고
성전에 제일 가까이 있는데

정작 거룩 자체는 존재거룩이 아니라 기능의 거룩으로써
성전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자를 거룩으로 도배해서 거룩을 입혀 버리니까
가장 많이 탕감 받은 자가 가장 많이 사랑하는

인간의 손으로 짖는 성전에 반대로
반대를 위한 반대로써
존재거룩의 반대로 기능거룩을 펼치시더라 말이죠

이 거룩을 두성전의 차이처럼 인간의 몸과 예수님의 몸의 차이로써
두 거룩의 차이로써
계시록에 성전측량이 거룩측량으로써 단 번에 다 이루시더라 말이죠
인간의 거룩은 46년 동안 지어도 아직도 미완료
그렇다고 근처에 가느냐 거꾸로 더더더 완악해지는 딱딱한 성전을 짖기 바쁘다 말이죠

그런 불타 없어져야 할 성전과 멀어진다는 자체가 얼마나 행복하냐 말이죠
그런 딱딱한 마음 뿐인 나의 신체와 멀어진 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냐 말이죠

그야 말로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예수님이 만드신 부드러운 새성전에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그야 말로 대박이다 말이죠

그러니 존재가 들어갈 수가 없는 겁니다
존재를 아까 불타는 성전처럼 불타야 하고

기능으로써 새성전에 들어가는
그야말로 하나님의 군대로써 마른뼈로써 평준화 된 새 마음 새 신 부드러운 마음의
성령의 전이다 말이죠

내가 이 성령의 전이 안 되면 소용이 없다 말이죠
내가 무슨 수로 될수 있겠습니까? 전적으로 맡기셔야 합니다 라는
성령 쓰앵님의 숙제이다는 거죠
내 숙제 없어요
도리어 성령 쓰앵님의 숙제로

왜 이 완벽한 치수에 왜 미달하느냐 라는 것만이 들통당함으로써
7에 70번 용서만을 받아야 하는 탕자로 만드시는 겁니다
세 번 부인케 만드는 베드로 라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로 말이죠

안그러면 남을 7번 용서하겠다 라는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는 유대인처럼
사탄의 회 밖에 없어요 회칠한 무덤이다 말이죠

제가 지금껏 경험한 교회는 다 회칠한 무덤이예요 사탄의 회 이다 말이죠
단 하나도 없어요 그러니 아예 기대하지 말고
또 그렇다고 만들어 보겠다 라고도 하지 말고
그렇게 알게하신 것 자체가 감사이다는 겁니다
안그러면 또 교회에 미친 인간이 될테니까 말이죠

주님의 숙제로 만드시는 성령의 전 되심을 누리면 되는 겁니다

어딜 감히 사람을 기쁘게 하냐 말이죠 우상을 왜 기쁘게 하냐 말이죠

하나님 자신의 숙제가 염연히 또렷하게 있는데 어딜 속이냐 말이죠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

새성전이 하나님의 손에서 단번에 마련이 된 잠간성소 단번에 성소
삼일만에 짖는 성전으로써 마련 되었다 라는 자체가

인간의 모든 성전은 불타버려야 한다는 겁니다 즉 인간은 무조건 뭘해도 실패로 규정 된 거다 말이죠
안그러면 마귀가 시체 만드는 것에 또 놀아나겠지요
주님이 규정한 시체 만들기 당해야 함은 이미 새성전이 다 이루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다 이루었다 라는 겁니다

그럼 우리는 이 새 일 때문에 새 성전 때문에
우리 쪽에서 마련한 헌 일 헌 몸 가짜 몸 딱딱한 마음 헌성전 기존의 몸 기존의 성전 헌성전 등등이 왜 불타야 하고 실패해야 하고 사라지고 이전 것으로 없어져야 하는지

정답에 의한 질문지가 왜 되어야 하는지 가 정답에 의해서 새성전에 의해서 나타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인간의 질문은 그저 정답을 찾고자 부자청년처럼 무엇을 해야 구원을 얻습니까 라는 질문입니다
질문할 자격 조차도 없는 줄도 모르고 말을 씨부리쌓노 가 되는 거죠

그러나 정답이 찾아내는 질문은 입을 함구 당하는 겁니다
그저 울 뿐입니다 화로다 화로다 나여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내가 내 구원을 내 첫사랑을 내 마른 뼈 처음자리를 발로 차 버렸구나 라고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 밖에 ~~~~~~~~~~~~~~~~~~~~~

처음사랑을 자꾸 순수했던 내가 처음 주를 만났을때의 나를 자꾸 떠올리시는데
그게 아니라 순수한게 아니라 그 반대로 순수함 자체도 없었던
아무것도 없었던 마른뼈 곧 죽음 속 
요나처럼 큰 물고기 뱃속 그 깊은 바다 캄캄한 어두움 뿐인
무저갱 스올 지옥 속이다 말이죠
음부의 권세 속이다 말이죠

순수했을때가 되어버리면 그 순수함이 있었으니 또 기대하고 또 소망이라도 가지겠지요
바로 그것을 기대하니까 자꾸 순수했을때로 돌아갔으면 이라고 과거기억을 조작하는데

아닙니다 아예 아무것도 없는 더럽기 짝이 없는
사망의 몸 그 자체로 돌려버리시는 처음자리 마른뼈 이다는 겁니다
애굽의 종 노예
노예란 자유가 없거든요
막살기가 없어요

강퍅한 애굽의 왕과의 관계로 포장이 된 노예이다는 겁니다 순수함도 그들과의 관계속에서 말이죠

독자적인 순수란 없어요 새 마음 부르더운 마음 자체도 머리와의 관계성이지 
독자성이면 또 딱딱한 것이니 
유대인들이 이 완악한 수건을 벗는다는 자체가 불가능하듯이 말이죠
오늘날 교회다니는 사람들이 성령을 받는다는 자체가 불가능 하듯이 말이죠

누가 자기 손으로 숙제한 것을 손 놓고 배설물이다 라고 냅따 버리겠습니까
도리어 트로피 상장 기념비로써 모셔다 살겠다 라고 완악함을 자랑하고 있지

의인은 없나니 아무도
이토록 사람의 구원은 이토록 이토록 헛되고 헛된 안개 사라질 안개이다는 겁니다

자 이렇게 새성전에 의해서
인간은 실패자로 확정 되었다 라는 것이 기쁜소식이다 말이죠
내 쪽으로 끌어오면 성공이 되기는커녕 더더욱 완악한 마음 뿐이다는 거죠
이 완악한 마음을 주님의 섬김 주님의 숙제 땜에 알지
평생 모르고 가게 될테니 지적해주시는 자 없으면 우리는 처음부터 지옥이였듯이
다 지옥이였던 거죠 그것도 모르고 잔칫집에 들어왔다고 하니
그것도 그냥 잔칫집이겠습니까? 고아 과부 나그네를 신원하지 않아서
세워진 잔칫집 아니냐 말이죠

아니 예수님을 죽인 세상에서 무슨 놈의 잔칫집이냐 말이죠
무슨 놈의 에덴동산과 같은 애굽 잔칫집이냐 말이죠

새성전은 광야 --> 광야삼일길 --> 어린양의 희생죽음에만 있는데
한번도 아닌 세 번이라는 절대저주 절대심판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 세 가지 죄악을 저당잡히고자 가는 자 없어요
오로지 주님의 숙제로 만들어낸 문제아 탕자이다는 겁니다

지 스스로 좁은길 가겠다 지가 지 스스로 세가지 죄악을 잡겠다?
그런 원맨쇼 안 통합니다 그렇게 되면 또 자아가 자랑꺼리가 되는데
다른 몸이지 예수님의 몸이 아니잖아요
예수님의 몸은 예수님 본인이 직접 만드시는 몸이니까
예수님의 숙제를 인간은 할 수가 없어요

자기 하나 감당 못하는 인간이 무슨 수로 예수님의 숙제를 하냐 말이죠

도리어 어떻게 하면 이 세가지 죄악을 그것도 대표성이지
10가지 재앙 애굽의 10개의 우상과 대비해서 10번의 원망을 받아내시는 겁니다
그야말로 사막 속에서 죽음 그 자체가 된 거죠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는 소리가
사도바울 개인이 아니라
자기 백성 전체로 확대
다윗 개인의 고백이 아닌
자기 백성 전체로 확대 시키는 것이나
아예 손 떼라 말이죠

성화론자들을 보면 참으로 가관이다 말이죠
새로운 소설을 자꾸 써요
이미 확정된 말씀으로 인해서
확정된 운명이 있고 그 길이 이미 정해졌는데
소꿉놀리 장난으로 새로운 소설로 종교오락을 자꾸 만들어내요
마치 무릎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처럼
무릎으로 계단위를 올라가는 매조키즘 환자 오락 장난을 자꾸 만들어내요

무슨 수녀원 집단 같아

그 누구였죠 한때 유행했던 신부 사제
대천덕 신부
예수땡 만들어서 손에 더러움을 안 묻히겠다 라고 만든 공동체
이것 비슷한 짖을 하는 애들이 마치 예땡마을처럼 이름 지어서 또 만들잖아요

이것이 다 완악한 마음이다는 겁니다

처음자리 첫사랑을 거부하는 거죠

새성전의 취지를 거부하는 겁니다
기여이 함량미달의 치수로 인간 쪽에서 들이내밀겠다 라는 겁니다

왜 이런 짖에 인간이 집착하는고 하니
성경이 규정한 인간을 거부하니까 여전히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 라고 나서는 겁니다

아니 자기자신도 제대로 모르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하냐 말이죠
기껏 자기자신에 대해서 안다는 것이 얕은 식으로 수박에 겉햘기 식으로 알고서
어떻게 하나님의 깊은 것을 아냐 말이죠
유대인들의 전철을 밟기 라는 의문의 반복 뿐이다 말이죠

그럼 인간은 자기자신에 대해서 뭘 모르냐
주님이 자신의 하나님의 일을 이미 다 완료했다 라는 겁니다
새성전의 치수가 바로 이겁니다

이 완료됨을 모르기 때문에 인간의 사적이든 공적이든 인간의 모든 일도 이미 끝났다 라는 거죠

자 그럼 이 정답은 이제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 찾기 밖에 없어요
이미 다 이루었기에

양 찾기 일에 또 보탬이 되겠다 라고 또 나설려고 하는데
증상물로써 알아서 다 튀어나오니까 나대지 말라 말이죠

인간은 자기 하나 관수도 못하고 생계 뿐만 아니라 감정도 조절못해서 난리인 주제에
무슨 놈의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 라고 하냐 말이죠

주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다 완성했다 라는 것은
인간의 모든 일도 이 하나님의 다 이루었다 속에서 가담이 되어버렸다 라는 겁니다
뭘 또 반석을 두 번 치고 해 본들 의미 없다 라는 거죠

마치 필리핀 요즘도 하는지 모르겠는데 예수님 십자가에 달리는 일을 재현하겠다 라고
사람이 못 박히는 그런 종교 쇼 오락을 재현하는데
다 장난치는 겁니다
심심해서 할 짓이 없으니까 말이죠

인간이 교회 다니는 이유는 다 할짖이 없어서 심심해서 하는 겁니다
혹시나 그 속에서 장 자리 하나 차지할려면 정성을 바쳐야 하니까 말이죠

다들 이 코로나 시국에서 먹고사는 문제에 정신이 없는데
무슨 놈의 교회 다닐 여유가 있겠냐 말이죠
다 배불러 터진 자들만이 갈 여유가 있지

자기 배를 위하여 우상을 위하여 교회 다닐 뿐이지

그러니 교회 다닐 생각 말고 교회가 되세요
에스겔 인자처럼 새성전의 취지를 그 종교조직에게 증거하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김없이 불태우고 무너뜨리실 겁니다

신땡지이단이든 순복땡이단이든 장땡교정통이든
이 새성전 앞에서는 다 불타 무너져야할 함량미달의 짐승 666밖에 안되니까 말이죠

교회 안 다닌다고 해서 자기가 있는 그 장소 그럼 안 무너집니까 불 안타냐 말이죠
최종적인 인간의 성전은 자기신체이거든요
마지막 애굽재앙이 장자재앙 곧 자아의 부활 육신의 되물림 장자죽음이거든요
아니 주님이라는 하나님의 독생자를 죽인 인간이 무슨놈의 부활을 꿈꾸냐 말이죠
장자부활을 꿈꾸냐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새성전 앞에서 왜 불타야 하는지에 대한 취지가
정확한 완벽한 심판이자 절대거룩으로써 등장하니
이미 다 완료 빨래 끝이다 라는 겁니다

교회다녀서 성화하는 인간들은 자기 의로움 쌓기 바쁘지
누가 고아 과부 나그네 라는 마른뼈를 신원할 수 있겠냐 말이죠

그러니 교회 열실히 열심히 다니면서 아 나는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에 감사하시면 됩니다
여건이 안되는 자도 마찬가지이구요

따로 성령의 전이 있기에 연연하지 말구요
보채는 놈들은 돈 필요하다는 것 뿐이니까 말이죠

저도 컴 고장이 나니까 보챗을 뿐이지 정당한 것 없어요
뭘 해도 가짜요 죄 뿐이니까요
보탬을 줬다고 해서 신원한 것도 아니구요
주님이 인정해야 하지 인간이 인정한 것 아무 의미 없어요
오로지 주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심으로 이미 다 끝난 겁니다

텔레비 광고에 심심하면 나오는 고아들 지원해 주는 재단에 한 달에 만원 기부하는
그 캠페인에 참여하면 그게 신원하는 겁니까?

즉은자를 살리지 못할빠에는 도리어 이 죽은 자를 살려주세요 해야 할 판국이다 말이죠

새성전 곧 새언약 밖에 없어요

오로지 모든 죽은자 마른뼈들을 신원하시는 분은 예수님 본인 뿐이예요
그 증상물이 우리이고요

그러니 뭘 해도 다 가짜이니까 막살아왔듯이 막사세요
막살기를 지키는 놈도 지켜본들 하나님의 일하심에 보탬이 되는 것도 아니니까

이미 다 이루심에 의해서 인간의 그 어떤 것도 다 이미 종결이 되었다 라고 규정이 된 겁니다
그러니 그 증상물로써 저절로 튀어나오는 것이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 이다는 거죠
마른뼈 이다는 겁니다

그러든 말든 인간은 또 그럼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고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 라고 나오지만

그것 조차도 이미 규정이 되어버렸기에
증상물로써 지옥이 땡기는 자와 천국이 작살 꽃아서 땡기는 자로써
이 땅에 증상물로 나타나는 겁니다
다른 제 3의 지역은 없어요

지옥이 주체가 되고
천국이 주체가 되는

새성전이 주체냐
사람의 손으로 짖는 우상성전이 주체냐

이것으로 규정이 된 것이 하나님의 일로 마무리 된 겁니다

태어나기도 전에 사랑 받기로 작정이 된 사기꾼 야곱과
태어나기도 전에 미움 받기로 작정이 된 순수 단순한 에서로

긍휼의 그릇과 진노의 그릇으로 말이죠
토기장이에게 힐문 따질수 없어요 질문 할 수가 없어요
도리어 함구해야 할 판국이다 말이죠

뜨악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다 이루었다 그 선언으로 인해
우리는 으악 이라고
감히 내 아토피 피부병 죽음의 병을 욥이 들이내밀수가 없을 정도로
다 이루어버렸다 말이죠

낫게하심도 주님의 일 때문이고
안낫게하심도 주님의 일 때문이지

내 영광은 없어요

지금 당장 죽이셔도 할 말이 없는 힐문 질문 따질 판국이 못되는
저 죽음이 또렸한데 어딜 사기를 치냐 말이죠
입다물고 그저 알아서 다 처리했음을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말이죠
모든 일이 마 ~~~~ 무리 되었다 라는 겁니다

이 마무리를 누리고 즐기는 것 뿐이니까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밖에 없다 라는 겁니다
저절로 튀어나오는 증상물이니까

(살전 5:16, 개역) 항상 기뻐하라
(살전 5:17, 개역) 쉬지 말고 기도하라
(살전 5:18, 개역)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9, 개역) 성령을 소멸치 말며
(살전 5:20, 개역) 예언을 멸시치 말고
(살전 5:21, 개역)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살전 5:22, 개역)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살전 5:23, 개역)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살전 5:24, 개역)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미쁘신 믿음직 스러운 다 이루심이라는 결과물의 증상으로써 튀어나오는 겁니다

감사해야지 기뻐할꼬야 주야로 기도해야지 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말이죠

어 나는 때려죽어도 감사를 안하는 인간인데 누가 나를 감사케 만들었지
당신 도대체 누구요 누구시길래 나를 항상 기쁘고 쉬지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케 만든 것이요 도대체 당신 나에게 무슨 짖을 한 것이요 라고

본인도 의아해 하는 것이지

아 그래 나는 이 이질적인 새 마음이 새 신이 부르더운 마음이 당연하게 나타나야해 라고
여기지 않는 겁니다 여기는 순간 다 날라가 버리죠
왜? 임의로 부는 바람이니까~~~

술먹고 떨어져 지하철 도로에 넘어진 사람이 있는데
나도 모르게 뛰어들어서 그 사람을 건졌을때에

사람들은 박수를 치지만 정작 본인은 화가 나서 입에 욕을 하는 겁니다

야 씨발 누가 날 등떠밀었어 누구야 언놈이야 라고 화를 내는 것이 진짜각본인데
진짜 역겨울 정도로 심한 욕을 해야 진짜 죽을뻔 했으니 욕 안튀어나오면 그것도 가짜죠

어라 남들이 박수치니까 그것을 받게 되면 소설을 쓰세요 소설을 써
장난하는 겁니다 종교가 이걸로 먹고살아요 성화론자들은 장사꾼이다 말이죠

돈 없으면 교회 운영이 안된다 라고 돈을 내도록 하기 위한 수담으로 삼는 것이
성화되기 라는 종교장난 오락이다 말이죠
즐거움을 줘야 돈을 낼 테니 말이죠

포로잡혀간 거민이 자기가 잃어버림 당하고자 의도적으로 간게 아니거든요
그러니 그들 또한 완악한 마음을 들통당하기 위한

새마음을 새성전의 기능이 어떻다 라고 목격자로써 동원이 될 뿐이지

인간 지 스스로 초상집 포로잡혀가 본들 어라 거기도 친근한 우상이 또 있네
또 번제와 제사를 또 드려야지 라는 버릇은 여전히다는 겁니다

인간 숙제 안 멈추고 의문의 반복 뿐이고
주님은 아예 끝내버렸고 마침이 이미 다 되었다 라는 겁니다

저도 이런 글 올리고 녹음 올리고 하는 것 할게 없어서 하는 거지
복음 증거하시는 주님에게 보탬이 되고자 하는 것 아니다 말이죠
이미 다 끝났는데 뭘 해요
그러니 이런거 다 가짜입니다
진짜가 이미 떳기에 가짜로써 들통당하기 위해서 나타날 뿐이지
이런 배불러 터진 짖을 왜 하냐 말이죠

지금 당장이라도 멈추고 지금 당장 죽어도 시원찮을 판국인데
사라져야 하는데 왜 안 사라지냐 말이죠
주님은 이미 다 사라졌다 라고 선언해 버렸으니까
그러니 안달해 할 필요도 없어요

이전 것은 이미 다 지나갔는데 뭐
이전 것으로 왈가왈부해본들 또 의문의 반복이니
답 없다 말이죠

이미 정답이 와 버렸으니
이제 문제지만 보는 생만 남았을 뿐입니다

아 이래서 나는 실패해야만 하고
아 이래서 나는 죽어야만 하는 구나

이것을 죄인 중의 괴수라고 사도바울이 고백했듯이

의인 중의 건강한 자가 남은 생으로 남아있는게 아니라

죄인 중의 괴수 괴물로써 남은 생이기에
왜 7에 70번의 완벽한 치수가 있는지를 보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새성전의 치수를 재는 취지이다는 거죠

인간은 단번에 성전을 삼일만에 못 지으면서
반대로 자기 의로움을 7번 8번 높이를 세울려고 하니
이것이 갑질이 되는 높은자리 상좌가 되어서 
인사받기를 대접받기를 바라는 겁니다

바리새인때에 우상숭배라는 돌조각 나뭇조각의 우상을 없애버려서 눈에 보이지 않게 했다고 사라진게 아니라
거꾸로 자기신체 속으로 들어와 버렸으니까 돌조각 우상숭배자를 욕하면서도
그런 자기자신을 높이는 마음 자체는 새마음과 관련 없기는 매 마찬가지인 우상숭배자인 역시나 이다는 겁니다

그 정도로 죄악이 깊어진 것이다 말이죠
은혜가 깊어진 새성전이신 예수님이 왔으니까
상대적인 죄악이 깊은 것으로 바리새인은 독사의 자식으로 대표성으로 띄여져야 하니까 말이죠

오늘날은 감사하게도 목사들이 그 짖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얼마나 예수님과 반대로 행동하는지를 너무 너무 잘 보여주고
심지어 세상사람들 조차도 개독교 라고 욕할 정도로
돈먹사 목사가 아니라 돈을 먹고 사는 돈먹사로 표현할 정도로
개도 다 아는 사실을
본인들만 몰라요

오히려 정치계까지 확산 시켜서
지도 천국 안가고
남도 천국 못가도록 막는 일을 충분 충분하게 넉넉하게 해 주고 계시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 말이죠

예수님과 너무 너무 다른 모습을 보여주니 어린아이도 다 알아먹을 정도로 
또렷하게 갈라지게 해주니 다 알아먹는 겁니다

그러니 이것 조차도 주님의 완료로써 나타난 증상이기에
우리는 공부하기 싫어도 공부하게 되닌
남은 시간 이것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아 이래서 인간은 망해야 함이 마땅함을 말이죠
질문할 필요가 없어요

이미 정답이 떳기에
다 이루었기에
그 다 이루심 앞에서

왜 나는 심판받아 마땅한 죄인임을 매일 매일 들추임 당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이것 때문에 완벽한 7에 70번의 용서가 뜬 겁니다

철저한 수치로써 완벽한 새성전의 수치를 재는 천사들이 활동하는 이유 입니다

이 완성항 새성전이라는 하나님의 일에 모든 인간은 가담이 되는 겁니다
십자가에 못 박으라 라고 외치는 것도 말이죠
그랬던 자들 24 장로들이 계시록에서 면류관을 반납하는 것도 말이죠

이 모순의 간극을 점점점 벌리시는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시는 하나님의 거룩을 다 이루심 앞에서
우리는 증상물로써 문제아로써 나타나는 겁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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