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4 삼줄과 척량 장대로 측량한 새성전 알려라  (겔 40, 1- 4)

원수의 목전에서 다시는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하리라 (겔 39,25-29)
에스겔 2019 2021. 11. 7. 11:18
19-113 원수의 목전에서 다시는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하리라 (겔 39,25-29)

〈에스겔 40, 1- 4, 개역한글, 구약성경 1214쪽,  찬송가 223장 세상 모든 수고 끝나〉

〈찬송가 223장 세상 모든 수고 끝나〉

1. 세상 모든 수고 끝나 우리 장막 벗고서 모든 근심 걱정 사라진 뒤에 
   주를 뵙고 성도 함께 면류관을 쓰리라 새 예루살렘에서 
   성도들이 함께 올 때 기뻐 노래하리라 새 예루살렘 새 예루살렘 
   호산나를 높이 불러 왕의 왕을 맞으리 새 예루살렘에서

2. 가는 길이 외로와도 주 날 붙드시리니 시험 환난 근심 걱정 없으며 
   주를 믿고 따라가면 주의 뜻을 알리라 새 예루살렘에서 
   성도들이 함께 올 때 기뻐 노래하리라 새 예루살렘 새 예루살렘 
   호산나를 높이 불러 왕의 왕을 맞으리 새 예루살렘에서

3. 내가 세상 작별하고 눈물 흔적 거둔  뒤 주의 찬란하신 영광 비칠 때 
   나를 구속하신 주를 기쁨으로 뵈오리 새 예루살렘에서 
   성도들이 함께 올 때 기뻐 노래하리라 새 예루살렘 새 예루살렘 
   호산나를 높이 불러 왕의 왕을 맞으리 새 예루살렘에서

4. 아름다운 그 곳에서 구속받은 성도와 사랑하는 주를 만나 뵈올 때 
   주의 영광 노래하며 영원토록 살리라 새 예루살렘에서 
   성도들이 함께 올 때 기뻐 노래하리라 새 예루살렘 새 예루살렘 
   호산나를 높이 불러 왕의 왕을 맞으리 새 예루살렘에서


〈에스겔 40, 1- 4, 개역한글, 구약성경 1214쪽〉

(1) 우리가 사로잡힌지 이십오년이요 성이 함락된 후 십사년 정월 십일 곧 그 날에 여호와의 권능이 내게 임하여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시되
(2) 하나님의 이상 중에 나를 데리고 그 땅에 이르러 나를 극히 높은 산 위에 내려 놓으시는데 거기서 남으로 향하여 성읍 형상 같은 것이 있더라
(3) 나를 데리시고 거기 이르시니 모양이 놋 같이 빛난 사람 하나가 손에 삼줄과 척량하는 장대를 가지고 문에 서서 있더니
(4) 그 사람이 내게 이르되 인자야 내가 네게 보이는 그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네 마음으로 생각할지어다 내가 이것을 네게 보이려고 이리로 데리고 왔나니 너는 본 것을 다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할지어다 하더라

(겔 40:1, 현대어) [새 성전의 환상] 우리가 포로로 잡혀 온 지 25년이 되고 예루살렘 도성이 멸망한 지 14년째가 되는 해 1월 10일에 여호와의 손이 나를 붙잡아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가셨다.
(겔 40:2, 현대어) 온갖 신비한 환상들 속에서 주님은 나를 데려다가 이스라엘 땅의 아주 높은 산 위에 내려놓으셨다. 그 산의 남쪽에는 성처럼 생긴 건물이 있었다.
(겔 40:3, 현대어) 주께서 나를 그곳으로 데리고 가셨을 때 보니 구리로 만든 사람처럼 빛이 나는 한 사람이 손에 삼으로 꼰 줄과 측량하는 장대를 들고 대문에 서 있었다.
(겔 40:4, 현대어) 이때에 그가 내게 말하였다. '너 사람아, 너는 이제 두 눈과 두 귀를 열고 내가 보여주는 것을 똑똑히 보아라. 네게 이것을 보이고자 주께서 너를 이곳으로 데려오신 것이다. 그러니 너는 여기서 본 것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도 빠짐없이 알려 주어라.‘

(겔 40:5, 쉬운) <동쪽 문> 나는 성전 지역을 완전히 둘러싸고 있는 담 하나를 보았다. 그 사람의 손에 있는 측량 막대기의 길이는 3.2미터였고, 그가 담을 재었더니, 두께가 측량 막대기 하나 정도의 두께였고, 높이도 측량 막대기 하나의 높이였다.
(겔 40:17, 쉬운) <바깥뜰> 그 뒤, 그가 나를 바깥뜰로 데려갔다. 거기서 나는 여러 개의 방과 성전 뜰을 따라 만들어진 포장된 길을 보았다. 포장된 길을 따라서 방이 삼십 개가 있었다.
(겔 40:20, 쉬운) <북쪽 문> 그 사람이 북쪽을 향하면서 바깥뜰로 이어지는 문의 길이와 너비를 재보았다.
(겔 40:24, 쉬운) <남쪽 문> 그 사람이 나를 데리고 남쪽으로 갔다. 거기에도 남쪽으로 난 문이 있었다. 그가 그 안벽과 현관을 재니 크기가 다른 두 문과 똑같았다.
(겔 40:28, 쉬운) <안뜰> 그 사람이 나를 데리고 남쪽 문을 지나 안뜰로 들어가더니 남쪽 문을 재었다. 그 크기가 다른 문들과 똑같았다.
(겔 40:38, 쉬운) <제물을 준비하는 방> 북쪽 문 곁에는 문이 달린 방이 하나 있었는데, 제사장들이 태워서 드리는 번제물을 씻는 방이었다.
(겔 40:44, 쉬운) <제사장들의 방> 안뜰에는 방이 두 개 있었는데 하나는 북쪽 문 곁에 위치하여 남쪽을 향하고 있었고, 다른 방은 남쪽 문 곁에 위치하여 북쪽을 향하고 있었다.
(겔 40:48, 쉬운) <성소의 현관> 그 사람이 나를 데리고 성전 현관으로 들어가서 현관의 각 벽을 재니, 두께가 2.5미터였다. 문의 너비는 7미터였고, 문의 양 옆에 있는 벽은 두께가 150센티미터였다.

(겔 40:1, 현대어) [새 성전의 환상] 우리가 포로로 잡혀 온 지 25년이 되고 예루살렘 도성이 멸망한 지 14년째가 되는 해 1월 10일에 여호와의 손이 나를 붙잡아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가셨다.
(겔 40:5, 현대어) [네모진 성전 구역의 바깥 담] 성전 구역 전체에는 사방으로 담이 둘러 쳐져 있었다. 그 사람이 손에 들고 있는 6자짜리 그 측량하는 장대로 담을 재었는데 그 높이와 두께가 다 같이 한 장대 곧 ㄱ) 6자였다. (ㄱ. 여기서 한 자는 큰 자로서 52.5센티미터를 가리킨다. 이 성전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50이라는 기본수가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미터법으로 환산하지 않는다;레25:10, 참조)
(겔 40:6, 현대어) [동문] 그런 다음에 그 사람이 동쪽 대문으로 통하는 여러 개의 계단을 올라가서 대문의 높이를 재어 보니 한 장대였다.
(겔 40:17, 현대어) [성전의 바깥뜰] 그런 다음에 그 사람이 나를 데리고 성전의 바깥 뜰로 들어갔다. 이 뜰의 사방에는 30개의 방이 옆으로 이어져 있었고 이 방들 앞에는 돌을 깔아놓은 좁다란 뜰이 길을 이루고 있었다.
(겔 40:20, 현대어) [북문] 또 그 사람이 바깥 마당으로 들어가는 북쪽 대문을 재었다.
(겔 40:24, 현대어) [남문] 그 사람이 다시 나를 남쪽으로 데리고 가서 그곳에 있는 남문을 재어 보았다. 모든 길이와 모양이 다른 두 대문과 똑같았다. 대문의 입구로 들어가는 곳에는 여기에도 일곱 계단이 있었다. 양쪽의 벽기둥에는 기둥마다 종려나무가 한 그루씩 새겨져 있었다.
(겔 40:28, 현대어) [안마당의 남문] 그 다음에 그 사람이 나를 데리고 남문을 지나 안뜰로 들어갔다. 이 대문의 구조도 다른 대문들의 구조와 같아서 골방과 벽기둥과 현관과 창문이 모두 다른 대문의 것들과 같았다. 그 사람이 이 대문을 재어 보니 그 크기도 다른 대문들과 똑같아서 대문간의 길이가 50자요 폭은 25자였다.
(겔 40:32, 현대어) [안마당의 동문과 북문] 그 다음에 그 사람이 나를 데리고 동문으로 가서 재어 보고 또 북문으로 가서 재어보았다. 이 두 대문의 구조와 크기가 모두 남문과 똑같았다. 여기서도 현관이 바깥 마당을 향해 있었고 대문의 입구로 오르는 곳에는 여덟 계단이 있었다.
(겔 40:38, 현대어) [안마당 북문의 시설들] 북문 곁에는 현관에서 동쪽으로 방이 하나 붙어 있었는데 그 사이에는 문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번제물로 바칠 짐승의 오물을 씻는 곳이었다.
(겔 40:44, 현대어) [제사장의 두 준비실] 북문과 남문 곁에는 방이 하나씩 있었는데 각각 안마당으로 통하게 되어 있었고 북문의 방은 남쪽을 바라보고 남문의 방은 북쪽을 바라보았다.
(겔 40:47, 현대어) [안마당] 이제까지 내게 성소를 보여주던 그 사람이 이번에는 안마당을 재어 보니 그 길이와 폭이 다 같이 100자였다. 이 정사각형의 한가운데에는 성전을 향한 제단이 있었다.
(겔 40:48, 현대어) [성전의 현관] 그 다음에 그 사람이 나를 데리고 성전의 현관으로 들어가서 재어 보니 현관으로 들어가는 대문의 폭은 14자였고 대문 좌우의 벽 길이는 3자씩이었다. 또 벽의 두께는 5자였으며


소제목이 달린 번역을 에스겔 40장에서 나열해 봤습니다
소제목을 보니 새성전에 대한 측량의 내용임을 보게 됩니다

측량 하면 반드시 숫자가 나열이 되겠지요 길이 높이 넓이 깊이 ~~~

네 맞습니다

(엡 3:18, 개역)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엡 3:19, 개역)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엡 3:18, 새번역) 모든 성도와 함께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를 깨달을 수 있게 되고,
(엡 3:19, 새번역)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기를 빕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여러분이 충만하여지기를 바랍니다.
(엡 3:18, 현대인) 모든 성도들과 함께 헤아릴 수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폭과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깨달아 알고 하나님의 모든 풍성하신 은혜가 여러분에게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엡 3:19, 현대인) (18절과 같음)
(계 21:16, 현대어) 그 천사가 성을 재어 보니 사방 길이와 높이가 똑같은 입방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길이는 각각 2400킬로미터나 되었습니다.

그 사랑의 높이아 깊이 넓이 길이를 알아라 라고 말이죠

어~~~~ 계시록에도 오늘 본문처럼 성전 측량에 대해서 나오는데
정작 성전은 없다 라고 합니다 어린양만이 그 성전이다 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말이죠

(계 21:22, 개역)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계 21:9, 개역)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계 21:10, 개역)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계 21:11, 개역)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계 21:12, 개역)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계 21:13, 개역) 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
(계 21:14, 개역) 그 성에 성곽은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 양의 십이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계 21:15, 개역)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척량하려고 금 갈대를 가졌더라
(계 21:16, 개역)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척량하니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
(계 21:17, 개역) 그 성곽을 척량하매 일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척량 곧 천사의 척량이라
(계 21:18, 개역)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계 21:19, 개역)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계 21:20, 개역)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정이라
(계 21:21, 개역)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계 21:22, 개역)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계 21:23, 개역)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맞습니다 모든 성경에 나오는 숫자의 의미는 모조리 한 인물 곧 어린양 되신 예수님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율법의 완성이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이 없는 자는 율법의 완성 근처도 못가는 함량 미달의 사람의 수 짐승의 수 밖에 못 보여준다 말이죠 666
이 짐승의 수를 깔고서 그 위에 나타나는 것이 충만한 14만 4천이다는 겁니다

그 이단 이름 뭐죠? 안식교 아니고 뭐였더라 갑자기 까먹었네
아 여호와 증인
이 여호와증인이 이 14만 4천 속에 들어갈려고 무지 전도를 한다 말이죠
이걸 또 신천지가 흉내내요 좋다 싶으면 다 끌어오는 거죠 확증편향이다 말이죠

율법의 완성이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이 없으면 다 울리는 꽹과리입니다
이 율법이 십계명 아닙니까

이 십이라는 숫자가 왜 생겼습니까 

무식한 안티들은
안티고네 라는 이름에서 안티가 나오는데 무조건 기존의 법에 대항 항거 저항한다 라는 의미에서 안티가 나왔다 라고 하는데 페미니즘도 그런 의미이다 라고 하죠

youtu.be/h7ax-Q77ikI

문제는 그 안티가 법에 저항해서 액션 행동을 취하게 되면
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더한 일곱 귀신의 법을 사수하더라 라는 겁니다

(마 12:45, 개역)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자기들이 부정한 법 위에 더한 갑질을 하는 법을 세우더라 말이죠
남성에 저항하는 여성이 오히려 남자 보다 폭력성을 더 가지듯이 말이죠
여자의 원수는 여자 라꼬 ~~~~

왜냐하면 이 세상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인 구원을 달성할려고 여성해방 말이죠 그러니 더한 일곱 귀신이 더 들어오는 악한세대륵 구성하는 겁니다

그러니 안티들은 이 십계명이 함무라비 법전을 베꼈다 라고 하는데
문제는 이 성경에 나오는 모든 수의 개념은 예수님의 기준에서 좌우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 역사적으로 존재성을 아무리 따져본들 
기능적으로 앞선 역사 이전에 있었던 기능이 역사 속으로 침투할때에 그 기능에 맞도록 침투하게 되니 반드시 함무라비 법전 뒤에 나타나서 그 법을 깨뜨리는 식이 되는 거죠

자 그러니 그 함무라비의 원조가 뭡니까 네 맞아요 항상 성경에서는 짐승의 기원을 애굽으로 둡니다 

그러니 십계명 이라고 10이 나오면
이미 인간들은 자기 보디가드로 10가지의 우상을 자기 신체에 장착했다 말이죠

그럼 십계명은 바로 이 우상 10가지를 겨냥한 겁니다

그러니 안티들의 주장은 자기신체에 이미 장착한 자기 쪽으로 끌어들인 숫자와
전혀 다른 인물을 말하고자 한 숫자와는 아예 물과 기름처럼 서로의 출발점 자체가 틀린 겁니다

또 한 예를 들면 저것은 이단이나 물론 정통이라고 우기는 놈들또한 마찬가지이듯
안티들은 저렇다 치더라도
유대교 유대인들을 보면 안식일 이라는 숫자 7일 자기 쪽으로 끌어옵니다

바로 그런 사람의 수 사람의 일을 배경으로 깔고 마치 애굽왕을 배경 카페트로 깔고서
그 위에 하나님의 일을 곧 기능을 나타내듯이 안식일의 주인이 안식을 완성해 버리면
안식일 지키는 놈들이 역시나 안티와 같이 반항을 하게 됩니다

출발 자체가 틀리니까 말이죠

자 그러니 성전측량을 할때에 인간은 반드시 그 수를 선악으로 계산을 해서
유리하면 끌어오고 불리하면 거부하는 식입니다

행운의 수 7은 끌어오고 불운의 수 저주의 수 13일의 금요일이나 동양의 죽을 사
발음이 똑같다 라고 4 라는 숫자를 거부하듯이 말이죠
무당들이 이런 것을 다 주도하지요

결국 인간의 수 개념은 자기중심이 되는 겁니다
그것을 알고서 주님은 성경에 나오는 모든 수 개념을 자신을 나타내시는데 사용하는
존재적인 숫자가 아니라 기능적인 숫자로 제시하시는 겁니다

그러니 측량에서 나오는 모든 수는 예수님 이라는 한 인물을 말하고 있고
이 예수님은 반드시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숫자 구원이라는 숫자에 대비되는
상대적인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다 라는 숫자로써 자신을 제시하시는 겁니다

이것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 바로
계시록에서도 나옵니다만 성전측량할때에

거룩 측량할 때에 거룩을 가장 많이 지킨
성전에 가장 가까이 있는 대제사장 그리고 그 다음 제사장 레위인
그 다음 이스라엘 남자 그 다음 성전마당뜰 이스라엘 여자
그 다음 성전 바깥뜰에 이방인 그 다음 제일 끄트머리 문둥병자 창녀 거지 강도 등등

거룩을 측량하니까 이렇더라 말이죠
어 그런데 성전의 존재가 아니라 성 안에 성전이 안 보였더라 라고 했잖아요

정작 은밀한 처소의 기능이 뭡니까 더러움을 거룩으로 옮기는 기능 아니야 말이죠
자 이렇게 되니 가장 더럽기 때문에 거룩에서 가장 먼 문둥병자 앉은뱅이 소경
이방인 고아 과부 나그네 등등 가장 먼 자들이 이 성전의 존재가 아니라 기능에 의해서
가장 거룩해 지는 많이 탕감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는

이 율법의 완성을 이루더라 말이죠

(마 21:31, 개역) 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 가로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거룩한 나라에 누가 먼저 들어간다 창기 세리 매국노 나라 팔아먹은
국민을 배신한 민족을 동포를 이웃을 배신한 놈이 먼저 천국간다 말이죠
불의한 청지기 비유와 딱 맞죠

그렇다 라고 방종 하라고 부추기라는 말이냐

이 방종을 주장하는 놈들을 보면요
눈에 보이는 것은 예수님 뿐이다 라고 
예수님만 선악을 알면 된다 라고 보면 되는데

자기도 눈에 보이지요
그런 눈에 보이는 자기가 무엇을 사수하고파 하냐 하면
눈에 보이는 교회를 사수하고파 합니다

눈에 보이는 교리와 신학도 말이죠

율법의 완성이라는 사랑이라는 기능은 결국 안쳐다 보고
울리는 꽹과리
즉 아무것도 아닌 우상을 사수하고파서
방종으로 몰아가는거다 말이죠

즉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는 가룟유다의 사고방식이다는 겁니다

과연 이스라엘을 이스라엘 답게 하겠다 라는 자들의 결말을
아무리 성경이 기록해 줘도 안 봅니다
선악으로 해석하고
하라 하지말라 로 해석할 뿐이다 말이죠

그래야 눈에 보이는 교회와 자기 신체를 사수할 수가 있어요
바로 그것을 배경으로 카페트로 깔고서 예수님이라는 신체가 개입이 되어
충돌 사건이 벌어지는 겁니다

그들의 성전 해석이 왜 엉터리인지를 오늘 본문이 제시하는 겁니다
측량을 누가 하냐 하면 인간이 안합니다

지금 인자 에스겔 환상 속에서의 새성전 측량입니다
누가 하는가? 천사들이 다 합니다
마치 사도행전의 성령행전처럼
정작 사도들은 갈바를 알지 못해요
천사들이 다 일일이 인도할 뿐입니다
배치되는 장기알처럼 천사들에 의해서 배치 될 뿐이다 말이죠

마치 예수님이 천사의 도움으로 겟세마네의 최후의 기도를 마무리 하셨듯이 말이죠

(눅 22:42, 개역)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눅 22:43, 개역)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눅 22:43, 새번역) [그 때에 천사가 하늘로부터 그에게 나타나서, 힘을 북돋우어 드렸다.
(눅 22:43, 공동) ㉠(없음) / ㉠어떤 사본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이 때에 하늘에서 내려온 한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 힘을 북돋아 드렸다."
(눅 22:43, 쉬운) 그러자 하늘로부터 천사가 나타나 예수님께 힘을 북돋워 주었습니다.
(눅 22:43, 현대인) 그러자 한 천사가 하늘에서 나타나 예수님께 힘을 북돋아 주었다.
(눅 22:43, 현대어) 예수께서 번민하시며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자 핏방울 같은 땀이 땅에 떨어졌다. 그때 천사가 하늘에서 나타나 예수께 힘을 돋우어 드렸다.


오늘 본문의 천사의 성전측량이나 에스겔 1장부터 네 생물 즉 네 천사의 활동
계시록의 천사들의 활동 등등은

이미 천사가 개입하고 있다는 말은 인간의 성전건설은 끝났다 라는 겁니다

손떼라 인간숙제 안 받겠다 라는 겁니다

그럼 인간은 뭐하냐 라고 자꾸 물으시는데 존재의 활동을 무로 취급해 버리는 것이

기능이요
천사의 활동이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그럼 뭐 합니까? 뭐하기는요 막사는 것만 튀어나와요
무식한 어떤 장로가 막살기를 지켜요 글쎄

아니 가만히 있어도 튀어나오는 막살기가 언제 [지키기]로 둔갑을 해 버려요

막살기는 기능이지 존재가 아니거든요
그러니 존재인 자신을 자랑할 수 밖에요
자랑 안 하고는 몸이 건지러워서 못 견뎌요

기능을 얼마나 무시했으면
천사를 얼마나 무시했으면 말이죠

가만히 튀어나오는 것을 아무리 막아도 막아도 튀어나오겠끔 하시는
천사의 활동을 봐야 한다 말이죠

오늘 본문이 그런 취지입니다

성전이란 다윗이 성전을 지어드리겠다 라는 그 엉터리 취지를 아예 싹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안 받겠다 라고 하시면서 또 허락을 하시는 이유는
성전의 의미가 다윗이 생각하는 떠돌이를 정착민의 하나님으로 입주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의미로써 사용하시는 겁니다
성전의 세워짐은 쉽게 말해서 평화가 이루어졌다 라는 선언이 되는 겁니다

마치 다 이루었다 라는 선포죠

그런데 아무리 보세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
죽으셨다 라는 자체가 

악이 지는게 아니라
도리어 주님의 죽으심 때문에
십자가의 죽음 때문에 도리어 악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고
악의 승리로 선언이 된거 아니냐 말이죠

마치 다윗이 접었다 펴고 접었다 펴는 성막 텐트 생활에서
이제 정착이 된 건물성전에 입주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서
약속의 성취를 다윗이 선포할려고 하듯이 말이죠

은근히 다윗 또한 이스라엘을 이스라엘 왕 답게 이스라엘답게
나를 나 답게 하겠다 라는 자신의 숙제로 본 거죠

그거 끌어와서 뒤바꿔치기를 주님은 하시는 겁니다

아니 약속의 땅에 들어가고 거기에 성전이 세워짐을
마치 평화가 다 이루어졌다 라는 선언으로써

전쟁의 마침으로 주님은 다윗과 다른 의도로써 성전을 세우시는 겁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약을 자기숙제로 오해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야 열국의 아버지가 될려고 겨우 딸랑 한 명 이스마엘을 100살 되기 전에 계집종 하갈을 통해서 낳게 됩니다 이렇게 되어야 두 언약이 성립이 된다 말이죠
그냥 예수님이 옳았다가 아니라 틀린 아브라함과 대비해서 옳았다를 말이죠 그래야 마침이 되지
안그러면 또 무한반복의 의문의 반복을 인간은 하게 되니까 말이죠 
그럼 미리 안하겠다 라고 할게 아니라
해보시고 왜 택도 없는 함량미달인지
도리어 예수님을 죽이는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주를 삼키는지
그 사단의 깊이를 거쳐보라 말이죠
나 아니오 예수님이 옳도록 말이죠)

그러니 손에 피가 가득한 다윗에게서는 성전완공을 허락지 않고

솔로몬 때에 완공하시는 겁니다

(삼하 7:1, 쉬운) <다윗이 성전을 지으려 하다> 다윗 왕은 자기 왕궁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주변의 모든 원수를 막아 주셔서 다윗에게 평화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왕상 8장에서 솔로몬에 와서 완공합니다

그 사이에 절대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지 않겠다는 그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다 라고 하시면서

삼하 7장과 왕상 8장 사이에 다윗이 간음죄 살인죄 인구조사죄
간음죄 성욕이 고픈 겁니다
마귀의 첫 번째 시험 경제 문제 배고픔 이다 말이죠
하나님과 같이 된 존재가 배가 고파 죽는다는 것이 말이 되냐 말이죠

그래서 배가 고픈 것이 곧 죄로 사망으로 태어난 죄인임을 모르고
이 배고픔만 해결하면 언제든지 나는 선악을 아는 하나님과 같이 될 수가 있다 라고 보니
나를 나 되게 하기 위해서는 누구든지 육적강간이든 영적강간이든 마음껏 휘두르는 겁니다

그래야 나를 더더욱 나 답게 만드니까 말이죠

그다음 성욕이 해결이 되면 이제 저주 받은 놈들을 재판하는 신으로부터 사랑받았다는 티를 팍팍 내기 시작합니다 종교적인 욕망추구 인거죠

거룩한 성전에서 뛰어내려라 천사가 두손으로 받쳐줄 것이다 시편 91편 12절 911 112 로 외우니까 어 되넹 ㅋㅋ 911 구급차 이옹이옹이옹 

(시 91:12, 개역)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눅 4:11, 공동) 또 '㉠너의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손으로 너를 받들게 하시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소?" 하고 말하였다. / ㉠시편 91:12.


거룩한 의를 손에 쥐겠다 라는 거죠

마치 게임할 때 애들이 가장 고급의 칼을 게임머니로 사잖아요
아이템 그것땜에 실제로 사람 죽이고 말이죠 2천만원이 왔다 갔다 하다가 말이죠
이것도 20년 전에 뉴스에 난 사건이였으니까 지금은 더 심해졌죠 뭐

자 그럼 가장 최고급의 아이템 거룩한 칼을 거룩한 얼굴 마스크를 쓰게 되었으니
이제 뭐 합니까?

이방나라 다 조져야지요 세 번째 마귀 시험은 정치입니다
찬상천하 유아독존으로 천하를 통일 시키는 겁니다

네 맞아요 평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성전을 세우는 이유 다 이루었다 무엇을? 평화를

전쟁을 마치는 겁니다

다윗에 의해서 예루살렘에서 성전이 세워진 것은
전쟁의 마침에 대한 다윗의 선언이 아니라

예수님의 선언입니다

도리어 다윗은 그 주동자가 아니라 혜택자
섬기시는 인자로부터 섬김을 받는

창기 세리 강도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 혜택을 누리는 자가 되기 위해서

세 번 부인
살인죄 간음죄 인구조사죄를 통해서
성전의 존재를 세우는게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짖는게 아니라
도리어 받는 분이 아니라 도리어 주시는 분으로써
주시는 분으로부터 섬김을 받는
성전의 기능으로 인해 세가지 물증 도장 도장끈 지팡이 라는 10번 원망한 죄를 담아서
시은좌 법궤 뚜겅을 덮어서 다시는 허물치 않겠다 라고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뿌리는데

이 피를 뿌림으로써 완벽한 거룩을 이루는 성전의 기능을 보여주심으로써
거룩한 나라 의의 나라를 이루시는 겁니다 평화를 말이죠

자 그럼 두가지 기능입니다
외부적으로는 이방나라 우상의 나라를 모조리 다 진멸해서 약속의 땅에 성전세우기와

또 하나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담아서 흠없게 피로 덮어서 거룩한 나라 만드시는 제사장나라 만드심입니다

이 두 가지 기능을 다윗도 못하고 있는 판국에
주님께서 일방적으로 다 이루었다 라고 선언해 버리시는 겁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때에 로마로부터 해방 했나요?
아니 가룟유다의 요구가 그거 아닙니까
해방은커녕 이방나라 다 부서뜨렸나요? 

도리어 지금 포로 잡힌 로마식민지 상황 아니냐 말이죠

그런데도 다 이루었데요 글쎄

그리고 아까 올린 계시록 21장에서 12 보석이 나오잖아요
예수님 당시에 12지파 이스라엘 다 있던가요? 없어요
유전자 DNA 검사를 해도 걸러내기 힘든 수백년 걸릴일을
단 하루 만에 이스라엘 다 이루었다 라고 선언해 버리니

더러운 자들을 걸러내고 자기들 유다지파만 거룩하게 유지했다 라고 나오는
그 유대인들 앞에서 12지파 다 이루었다 라고 선언해 버리면
그 얼마나 미워죽겠냐 말이죠 자기들 숙제를
이 예수한테 빼앗겼고 마치 장자권 빼앗긴것처럼 소홀히 여겼다 라고 취급당할 것 아니냐 말이죠

그러니 그냥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서 예수를 그냥 미친놈으로 취급해 버리고
구약에 있는 이사야 53장 마저도 금지장으로 취급해 버리면 된다 말이죠

그렇게 정치적인 제사장 나라를 자기들 유대인들이 다 이루어야 하는데
예수님의 십자가가 다 이루었다 라고 선언해 버리니까

죽여놓고서는 믄 일 있었니 라고 아무일도 없었는냥 안그런척 하고 지금까지 지내고 있는 겁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다 이런식이다 말이죠
기독교로 세상을 지배해야 한다 라고 정치슬로건을 들고 나오는 미친놈들이 나온다 말이죠
그들끼리 또 싸워요
요셉총리가 자기 라꼬

마치 마지막 때에 자기를 예수 라고 하는 놈이 나타난다 라고 하더니
다 이런 놈이다 말이죠 자기를 요셉이래요 다윗이래요 솔로몬 이래요

아까 서두에서 말한 안티고네를 라캉도 니체도 무지 좋아라 하는데
기존의 법이 새로움 앞에서는 썩은 우상이기에
우상을 파기하고서 물이 썩지않도록 흐르도록 하기 위해서 물꼬를 트는

그렇게 안티그리스도를 외쳤던 니체 또한 자기가 예수 라고 설쳤듯이

안티 해 본들 자기가 그 안티의 대상이 된다 말이죠 더한 일곱 귀신이 씌인
자기 숙제 하지 말라는 겁니다

다 배불러 터진 멋들어진 구원을 바래서 그렇다 말이죠

내 열심이 특심, 멋들어진 열심이다는 겁니다.
자기가 하니까 멋들어졌지 남이 하면 진짜 멋들어져보여도 자기가 한 것에 비하면 안멋지다 말이죠
무조건 자기는 먹고 들어가는 것이 인간이다 말이죠

이런 자아 문제 죄문제를 무슨 수로 해결합니까 외부에서 해결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 외부가 하늘 일이 오늘 본문에서

성전을 측량하는데 천사가 하고 한치 오차 없이 완벽하게 한다 라는 것은

완벽한 심판과 완벽한 거룩인 피 흘림만으로 성사가 된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인간의 손으로 짖는 성전은 피 흘림이 없어요
도리어 남의 피를 흘리는 살인죄 밖에 못해요
자기 피를 담아서 남을 못 사랑하는 율법의 완성 못 한다 말이죠

율법을 완성할려면 피를 흘리는 율법을 어겨야 하거든요

안식일 날만 골라서 안식일에 손 마른 자 등등 병자를 고치시는 이유입니다

이 성전의 거룩 개념이 있는데 그것도 완벽한 거룩이 있는데
인간들이 성전 개념이 예수님의 안식일날만 골라서 병고침을 인정할까요?
인정하면 자기가 그 동안 쌓아온 모든 거룩한 행동들을 무로
불교처럼 무 정도가 아니라

아예 더럽고 냄새나고 똥 취급해서
머리를 쳐박고 생일을 저주해야 할 판국이다 말이죠

누가 인정하고 누가 자기자신을 똥 취급해서
문둥병 피부병인데 똥물에 누가 자진해서 자진납세를 하겠냐 말이죠
나 그 정도로 안 더럽다 라고 우기는
자기 옳다를 평생 평생 주장하는 허구만을 추구할 뿐인데 말이죠

그것을 깨뜨리는 것이 오늘 본문이다는 겁니다

성전측량해서 수치를 내는 것이 오늘 본문이 아니예요
그럴 것 같으면 성경 덮고 건축현장에 가서 수치 계산 나오는 것 보면 되지 말라꼬 이런 내용까지 다 나열했겠습니까

인간으로도 충분히 건축물을 건설한다 말이죠

문제는 번제와 제사의 달인 건축달인은 될 수가 있어도
인애와 자비의 새성전의 달인은 그 어떤 누구도 못하기에

천사가 직접 하는데 있어서 완벽한 치수

즉 완벽한 심판과 완벽한 거룩을 재는 겁니다
왜? 마무리를 머릿돌이 직접 피 흘려야 그 규격이 딱딱 맞은 것으로 치지
마무리 머릿돌이 없으면 소용 없어요

어떤 피

쓸모 없다 라고 건축자 다윗이 버린 돌
절대로 세 번 부인하지 않겠다 라는 것은 인간쪽의 성전건축 거룩성취이고 백날해도 소용없어요 마무리 마침이 없어요

이 잠간의 성소가 하루만에 짖는 성소가
그것도 예루살렘 땅이 아닌

예루살렘 불태워 버리고
바벨론 포로 속에서

음부의 권세 속에서 음부의 권세 지옥 사망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를 세우시는 겁니다

이 새신랑과의 관계성에 의해서 베드로는 신부 교회가 된다 말이죠

자 그럼 세 번 부인해서 신부교회가 되는 겁니까?
막살아서 신부교회가 되는 겁니까
인간이 막살기를 해서 되는 겁니까? 

그럼 그 이전에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가 아니였다 라는 겁니까?


세 번 부인 그 후와 그 이전으로 인간은 나누고

구원 그 이후 구원 그 이전으로 나누지만

주님은 시간과 공간
시간에 저촉받는 그 공간인 몸 자체를 해체 시킴으로써

창세전에 이미 사랑 받기로 작정된 베드로 라는 신부 교회를 작정 하셨다 말이죠

때가 차니까 주님의 다 이루심 때문에 증상으로 나타났던 거지

콧물이 나오니까 감기가 걸린 겁니까
이미 감기가 걸려서 콧물이 나온 겁니까

시공간을 초월하라는 겁니다
자아를 없이 보라 라는 겁니다
예수 안에서 보라 라는 겁니다

자아가 없는 차원에서 무슨 수로 생각하냐 말이죠

그래서 이 측량하는 것을 인자야! 에스겔아!! ~~~ 
보고 듣고한 것을 마음에 새겨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알려라 라고 합니다

(겔 40:4, 새번역) 그 때에 그 사람이 내게 말하였다. "사람아, 내가 네게 보여 주는 모든 것을 네 눈으로 잘 보고, 네 귀로 잘 듣고, 네 마음에 새겨 두어라. 이것을 네게 보여 주려고, 너를 이 곳으로 데려 왔다. 네가 보는 모든 것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알려 주어라."


이것이 예수님의 활동에서는 아까 올린 창기와 세리가 먼저 천국에 간다 라는
새성전 되신 예수님의 활동에서 나타나는 겁니다

정작 이스라엘이 거부하지요

거부하든 말든 듣든지 아니듣든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예언하고 예언하라 


듣고 안듣는 저들에 의해서 좌우가 되는게 아니라 그렇게 되면 존재이고
존재맺기의 관계가 아니다는 겁니다

일방적으로 쳐들어가는 천국 침노하는 천국이다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무슨 수로 이 완벽한 거룩의 성전을
무슨수로 막겠냐 말이죠

자신들의 손으로 세운 아직도 못 짖는 아직도 미완성인 46년 동안 짖는 성전으로
과연 이 피 성전 완벽한 거룩의 성전
완벽한 심판이자 완벽한 용서의 성전을 무슨 수로 막을 수가 있겠습니까?

지난주의 마태복음처럼 파수꾼과 사람들 여럿이 예수님의 무덤을
딱 3일동안 지킨다 라고 해서 거룩한 말씀을 막을 수가 있겠냐 말이죠

그 영과 혼과 육체를 찔러 쪼개는데

(히 4:12, 개역)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예수님의 부활을 막아야 자기들의 피라미드 부활 바벨탑 부활
자기 신체의 부활을 사람의 손으로 짖는 성전 피라미드 바벨탑이 부활할테니 말이죠

그 성전을 헐라 라고 하시는 겁니다

허무는 것에 안 끝나요

완벽한 심판이자 완벽한 거룩의 성전인 의의 성전을 세우시는 겁니다

율법 외에 한 의 가 오시는 겁니다

율법은 이 의를 가리키는 화살표 몽학선생일 뿐이다 말이죠

정작 율법이 외치는 것은 이 분이 나 보다 옳았다 나는 틀렸다 만을 외치라고 준 거다 말이죠
어딜 예수님 숙제를 인간인 주제에 더러운 인간이 왜 하냐 말이죠

아 그럼 깨끗한 인간은 하겠네요?
의인은 없나니 ~~~~~

나 그럼 안해

율법이 없어서 망하는 이방인과 함께 패는 겁니다

왜 외 이방나라에서 새성전을 측량하시는 겁니까?
음부의 권세인 바벨론 속에서 말이죠

천년 만년이 주어져도 이스라엘은 내부 싸움 땜에
외부의 이방나라 우상 언제 다 부수고 언제 다 제사장 나라 되냐 말이죠
자기 코가 석자인 판국이라서 우상 하나 단 하나도 제거 못하고 있는 판국에
무슨 남의 나라 우상까지 그 뼛속까지 심겨져 있는 우상을 무슨 수로 제거를 하냐 말이죠
솔로몬도 안되는 것을 말이죠

심지어 오늘날 교회를 보세요 목사 우상화는 기본이고
교회를 우상화 하잖아요
예수 라는 용어를 그저 주문 거는 부적일 뿐일 정도로 말이죠
자아 라는 우상의 시다바리로 사용할 뿐이다는 겁니다

이런 판국에 무슨 수로 ~~~~~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이스라엘 답게 그 기능을
포로 속에 집어넣어서 다 한꺼번에 다 이루시는 겁니다

그러니 포로 잡혀가서 주가 하시는 일을 가만히 서서 보라 라는 겁니다
자 이것 때문에 바벨론은 졸지에 모든 영광을 다 손아귀에 쥐는 과거의 애굽처럼
그 원조 애굽의 뒤를 따르고자 모든 영광을 쥐게 되고
그 노예 가운데 이스라엘이라는 미끼에 아주 예민하게 집착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이스라엘 손에 맞기게 되면 언제 전쟁하고 언제 전쟁이 끝나서 언제 평화가 오냐 말이죠
단 하루 만에 일사천리로 대가리 하나 치면 다 끝나는 겁니다

그렇게 금신상 바벨론 은신상 메대 파사 동신상 헬라 철신상 로마가
줄줄이 망하기 위해서 줄서야 하는 겁니다

이것이 성전이 세워짐으로써 전쟁을 안하는게 아니라 해서 전쟁의 마침이 되는 평화가 다 이루어졌다는 의미에서 성전이 세워지는 겁니다

누가 교회를 돈 벌기 위한 기업으로 생각해서 세우지
이런 주님의 새성전의 의미를 알고서 교회 세우고자 하는 놈들을 단 한놈도 못 봤어요

그저 열린교회에 반대해서 닫힌교회를 추구하는 것이 개혁주의 이다 라는 
항상 남들 눈에서 반듯한 이미지를 구축할려고 의식할 뿐이지
종말의 마음으로써의 새성전과는 아무런 상관 없는 종교집단 짐승을 세우기 바쁘더라 말이죠

한 쪽 강도가 그런 의미에서 말도 안되는 종말의 언어를 발설합니다

당신의 나라 우와 의의 나라 거룩한 나라에 저를 기억해 달라고
새성전을 제대로 본 겁니다

정작 성전 종사자는 때려죽어도 못보기 때문에
예수님을 죽이기 바빴는데 말이죠
오늘날 교회사람들이 말이죠

그런데 새성전이 바로 당신이군요 당신의 나라에 저를 기억해 달라고 합니다

(눅 23:42, 개역)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당신 사랑하는 내 당신 여보 당신 사랑해요 라는 노래가 생각날 정도인데
종교꾼들은 자꾸 종교적인 용어를 거룩하게 포장합니다

하나님 나라 라고
그래서 하나님 나라 운동을 하고
렘넌트 남은자 운동을 하고 말이죠

즉 이 말은 나의 대상물 숙제물이다는 겁니다 내가 안 믿어주면 소용이 없다는 식입니다

당신의 나라 라는 표현은 당신 만이 나를 제대로 죽이시는 분이시다 심판하시는 분이시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지금 이들이 나를 선악으로 강도로 십자가처형을 한다는 자체가
주님의 심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겁니다

정작 내가 두려워 떨어야 할 분은 당신 뿐이다 라는 겁니다

즉 당신의 숙제로 나는 구원 안 받고는 못 배기는
당신의 나라에 저를 떠밀어 넣으신 분이 당신이지요 라는 표현입니다

베드로의 고백이 바로 이겁니다
세 번 부인해 놓고서 뻔뻔스럽게 3초도 안되어서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더 잘 아십니다 라고

지가 안다고 안해요 주께서 더 잘 아십니다 라고 합니다
주님 당신 저 한테 무슨 짖을 했길래
저 마귀가 소송하다 말고 
왜 음부의 권세가 누가 봐도 이미 진 나를 왜 못 이기도록 하셨는지요
도대체 무슨 짖을 하셨나요

바로 이것이 새성전이라는 완벽한 치수로써 피를 덮었기 때문에 
마귀가 이 십자가의 피로 인해 물러가 버리는 겁니다

그러니 마귀의 모든 활동은 이 새성전 되신 예수님이라는 어린양의 피 흘리심만
어떻게 해서든 방해하는 것이 마귀가 맡은 일이다 말이죠
지 마음대로 못해요
자유의지 없어요 마귀도 피조물인데 무슨 놈의 자유의지

자 그럼 누가 봐도 자유롭게 보이는 바벨론 부자 강국은 철저하게
주의 이름을 말하기 위해서 동원이 되는 부정적인 도구
짐승 노릇을 해야하구요 거짓선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그 속에서 주의 이름을 부르짖는 피흘리심만을 바라보도록 되어 있는
늘 세가지 원망을 마귀 보다 예수님이 먼저 잡힘으로써

그가 나 보다 옳았음을 외치는 찬양자로 삼으시는 겁니다

음치에 박치에 콩나물 볼줄도 모르고
심지어 소경
아예 말도 못하는 벙어리 
또 노래를 할려면 따라 할수 있도록 귀로 들어야 할 판국인데
귀머거리 날 때부터 귀머거리 인데

그 조차도 너끈히 이기시는 이 새 성전의 평화를 다 이루심
막힌 담을 헐어서 둘이 서로 원수가 된 것을 어떻게 하나가 되게 하시는지에 대한

주님의 숙제를 봐야 노래 안하고는 못 배길 것 아니냐 말이죠
벙어리 조차도 노래 너끈히 하는 뭐든지 예가 되고 아니오 함이 없는

이 새노래꾼으로 삼으시고자

이 새성전을 어떻게 지으시는지를 우리는 목격해야 하고
그 목격한 바를 증거하는 증인이 되어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 저 지옥까지 증거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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