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로 알리라 (잉여에 대해서)

(마 7:20, 개역)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창조란 반드시 잉여성을 드러냅니다.
관계라는 것도 잉여적입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는 잉여적입니다.

부모와 자식의 창조적인 관계 또한 잉여이기에 모두 선물의 의미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 잉여를 통해서 관계를 파악할 수 있고 그 관계를 이룬 창조자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열매를 통해서 나무를 보듯이
자식을 통해서 아비를 아는 겁니다.

너희 아비가 마귀다 라고 했을때에
너희가 마귀를 생산해 내는 마귀를 창조하는 창조자가 아니라.
역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마귀에 의해서 너희가 창조되었다 라는
마귀의 생산물이 바로 너희들이다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려면은 그 잉여품을 찔러 보면 압니다.
마치 도금인지 순금인지 분리(거룩,분별)하듯이 말이죠.

그래서 이삭을 제물로 바쳐보라고 과연 잉여적인지 아닌지를 선물인지를 아닌지를 말이죠.

이삭을 통해서 아비가 가려지는 겁니다. 과연 믿음의 조상인지를 말이죠.

그래서 찔러 보면 아는 겁니다.

결국 잉여의 하이라이트는 죽음이라는 어리석음 지혜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심판을 통해서 구원자인지 아닌지를 가려내고
저주를 통해서 복의 근원인지 아닌지를 가려내고
죽음을 통해서 생명인지 아닌지를 가려낸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진짜 구원자인지 의인인지

의인은 믿음으로 살기에

의인 조차도 잉여요
그 믿음도 잉여요
산다는 것도 잉여이기에

의인인지 아닌지 찔러 보면 알고
그 믿음도 잉여인지 아닌지 찔러 보면 알고
산다는 것도 잉여인지 아닌지 찔러 보면 아는 겁니다.

그래서 잉여가 도출이 되면 모든 것이 인간의 공로로 돌아갈수 없는 주님께 영광이 돌아갑니다. 그것이 과거에는 연기요 냄새 였습니다.

얼마나 영광 다우냐 하면 연기로써 냄새로써 사라지기에 더더욱 잉여 다운 겁니다.(3초 2초?)

포착할려면 할수록 더 허탈할 수밖에 없고
그러나 본인 조차도 잉여품이라면 그 연기처럼 사라지고 그 냄새처럼 흠향되면 그것으로 족한 겁니다.

임의로 부는 잉여를 누가 붙잡을 수가 있단 말입니까?

만나의 방식 또한 그러합니다. 만나를 나를 위하면 그 때부터 만나가 쩍쩍 달라붙는 괴롭히는 양식이 되는 겁니다. 척박한 식물이지요. 비록 척박한 식물 조차도 감사함(잉여)로 다가온다면 그 척박한 식물 조차도 허락하신 주님의 사랑을 보게 되는 겁니다.

또 창조란 잉여이기에
비창조를 통해서 이 잉여성을 부각 시키는 겁니다.

은혜가 은혜다운 것을 드러내기 위해사
은혜의 반대인 공짜의 반대인

철저한 법적인 의미를 지킴으로써 그 원인의 결과로써의 세계 안에 가두는 겁니다.
율법이 그래서 가입된 겁니다.

또 첫사랑이 잉여이기에 그 첫사랑의 대상과 첫사랑의 주체자와의 관계를
원인과 결과로써의 관계가 아니라 여전히 잉여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이 바로
출애굽 이 후 (구원 이 후)에 철저하게 딸랑 한명 남겨두고 다 탈락 시키는 방식인 겁니다.

돌들을 통해서 이 주체자를 찬양하게 하시는 것이지
대상을 목적으로 하는 구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청함을 받은자는 많지만 택함을 받은 자는 적은 겁니다.

이 적다 라는 잉여성이 많다 라는 잉여성 보다 극과 극의 차이성을 두게 하는 겁니다.
이것이 히 11장 믿음의 선배들을 나열하면서

죽은자와 방불했던 자들이 도리어 산자보다 더 많은 더 나은 제사로서의 잉여성을 부각하는 겁니다.

태가 없는 여자가 태가 있는 여자 보다 자식이 더 많다는 이상한 논리를 펼치는 겁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의 전적 활동 자체도 희년(전쟁을 통한 잉여)완성이
도리어 죽은자와 방불한 불의함을 앞세워서 더 나은 잉여성을 부각 시키는 겁니다.
불의한 청지기, 불의한 재판관, 창녀 세리 강도, 고아 과부 나그네, 또 잃어버림을 아는 자,등등의 부정한, 불의한 바로 그런 자들에게 어리석은 지혜인 십자가가 교체작업으로써
빛의 아들들은 그냥 제사일 뿐이고
불의한 자는 빛의 아들들 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린다는 점에서

정작 잉여성은 불의한 자들이 잉여성을 쳐다 봤다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빛의 아들들은 자기의 생산물을 쳐다봄 지킨 것 행한것들)

누가 더 지혜로우냐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누가 더 나은 잉여

즉 죽음으로써 많은 자식을 낳은 것에
살아있어서 낳은 여자의 자식 보다 더 많다는 것입니다.

(갈 4:27, 개역) 『기록된 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임마누엘 전쟁 또한 잉태 싸움이다. 열매 싸움이다. 잉여 싸움이다.

너희 하나님의 잉여와
우리 하나님의 잉여와의 차이성을 드러내는 싸움이 임마누엘이다. 열매싸움이다.

죄사함의 피 값에 대비된 것이 바로 가룟유다의 은 40냥의 잉여값이다.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우리에게 부어버렸다.
우리에게서 이제 나올 것은 우리의 생산물이 아닌 예수님의 피가 들추어내는 잉여물이다.

그것이 바로 선물(잉여)로써 받은 은사이다.

은사를 감당할 자는 아무도 없다. (해봤자 미완료 정죄함 뿐이며 또 남에게까지 정죄 실족케 하는 소경이 소경을 낳는 방식 뿐이다.)

그러나 은사가 우리를 감당하기에 걱정할 이유가 없는 것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은사가 우리를 감당함으로 이미 완료이기에 미완료가 없다.

왜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창조(은혜)를 알기 위해서
철저하게 비창조의 내막을 다 격게 되는 것이고 그 차이로써
그 사랑의 내막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와 길이가 어떠함을 보게 된다.
철저하게 잉여 즉 은혜 공짜였음을 말이다.

이 은혜에 흠을 내고자 하는 것이 바로 비언약이기에 약속은 이 비언약과의 전쟁(창3:15)의 구조로써 진행되는 것이다.

모두 다 열매싸움 곧 잉여 전쟁인 이유다.

(참고로 마 7장의 산상수훈을 통해서 열매주의 열매론을 주장하는 성화론자들은 이 열매주의에 목숨을 걸 정도로 열심이다. 그래서 그들의 열매는 잉여의 의미가 없고 결국은 인간의 행함 여부로 열매를 도출해 내는 철저한 잉여성을 배격하는 해석인 정반대의 해석만 골라서 하고 있다. 이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엉터리 해석을 하기에 맞구나 천국은 아무나 가는게 아님을 저런 개수작을 통해서도 알수 있는 것이다. 잉여로써 말이다.)

(마 7:6, 개역)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마 7:7, 개역)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 7:8, 개역)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마 7:9, 개역)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마 7:10, 개역)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마 7:11, 개역)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마 7:12, 개역)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 7:13, 개역)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마 7:14, 개역)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 7:15, 개역)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마 7:16, 개역)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마 7:17, 개역)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마 7:18, 개역)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마 7:19, 개역)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마 7:20, 개역)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 7:21, 개역)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2, 개역)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 7:23, 개역)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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