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 이근호

피/피 2008. 12. 2. 15:31




이근호 저 | 대장간 | 2008년 11월 19일




http://www.lifebook.co.kr/final/bookjumun.asp?gs_product=aa01070070599&detail=yes


주일에 책을 받고

월요일에 책을 깨작 깨작 거리면서 50 페이지 정도 읽다가
어 이근호 스타일이 아니네
너무 부드럽잖아 강구만 장로님이 너무 간섭했는가?

그러다가 나중에 읽어야지 라고 구석에 처박아 놓았다.

수요일 교회에서 목사님이 읽어 봤냐 라고 물어보길래
또 안 읽으면 귀찮아 지겠구나 라고 주 중에 다 읽어야 겠군 하다가
이래저래 미루다가 녹음도 다 끝내고 토요일만 남겨두고

오후 3시부터 처음부터 읽어나가기 시작 했다.


이 책을 읽다가 죽는 줄 알았다.

숨이 턱 하니 막혀서 도저히 그 다음 내용을 읽어내려 갈수가 없어서
심호흡을 하면서 숨을 고른 뒤에 다시 읽어 나갔다.

몇번을 그런 식으로 반복 했을까?

아무튼 정신없이 빨리 끝내야 겠다는 심정에 하루만에 잠도 못 이룬채 다 읽었다.

한 숨이 저절로 난다.

물 위를 걷고 있던 신비로운 경험을 하던 베드로를
갑자기 풍랑을 일으켜 빠뜨리시더니

아예 머리를 눌러 버려서 못 빠져 나오도록 푹 잠궈 버리는듯

빨리 빨리 물 위로 올라가야 살텐데

갑자기 숨을 쉴 수가 없어서
뭐든지 붙잡고 씨름을 하는 얍복강가의 야곱처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숨 쉬어야 한다는 마음에 뭐든지 끌어모아서
빨리 빨리 수면 위로 올라가지 않으면 죽지 싶어서

정신없이 온 몸을 떨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이근호 멱살을 잡고
그만 목 좀 조르라고 목 조르는 손을 뿌리치고 싶었다.

그래야 그 다음 내용을 읽어 나갈 수 있지 않느냐 라고 하소연 하고 싶었다.

그런데 깜짝 놀랬다. 이근호목사가 바닥에 바짝 엎드려져 피를 흘리듯이 
누구한테 얻어터져서 거의 죽어있듯이 피를 바닥에 흘려서 납짝 누워있는것이였다.

너무 너무 기가막혀서 그럼 누구한테 살려달라고 이 조여오는 숨막힘을 해결하나?
이근호목사가 저렇게 되니 기가막히고 너무 너무 황당해서 말문이 막혀버렸다.







턱 

막혀버리는

숨을 조여 오는 순간에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살아보겠다고 겨우 겨우 끝내버렸다. 새벽 6시

살아났다는 기쁨은 전혀 없다.

뭔가 순식간에 지나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순식간에 뭐가 지나간 것이
무슨 짖을 했는지 몰라도

뭔가 기분이 찝찝했다.

얼마전에 강이아빠랑 건희아빠랑 농으로
부분 기억상실증에 걸린 신혼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뇌에서 친밀성을 담당하는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아무튼 다른 것은 다 기억하는데 자기 아내와의 기억만은 다 지워진 것이다.

그저 신기한 일이라서 이야깃 꺼리로 대화를 나누었는데

꼭 그 짝이 난 모양으로

내가 그동안 고이 고이 쌓아둔
성경에 대한 지식을 삭제 당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 피 앞에서
이런 블로그 내용과 홈피 내용
내가 알고 있던 그런 내용은
아무것도 아닌 것 처럼
삭제 당해야 할 판국에 놓여진 입장처럼

다 삭제하고 블로그 폐쇄 홈피 폐쇄 하고픈 충동이 들 정도로

너무 너무 부끄러웠다.

모든 사람들 앞에서 완전히 발가벗겨진 수치심이 밀려 와서

모두다 삭제 하고픈 아니 삭제 당한 인간처럼

정말 나 라는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구나 라는 생각에

허탈감이 몰려 왔다.


죽다 살아난 느낌?

전혀 안 기뻣다.


도리어 이제 부터 시작이다.

이 피 앞에서 지근 지근 밟혀야만 하는 일만 남은 것 처럼
숨이 턱 하고 막힌다.

그것이 유일한 소망처럼 자리 잡고자
푸우욱 깊이 가시를 박아버리는 모습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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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본 소감 ? 이라고 해야 하나?

서평이나 쓸까 하고 (물론 되도 않는 서평이기에 해 봤자 쪽팔릴 뿐이겠지만 그래도 한 번 써보자 라고)
깨작 깨작 하다가

이근호 목사 어디 갔남? 전혀 이근호 스타일이 아니라서
그렇다면 좀 느긋하게 보류 하면서 읽어야지 하다가

다시 읽다 보니

이근호 과격함? 괴팍함?은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였다.

피는 목소리 전혀 높이지도 않으면서 이렇게 과격하게 다가왔다.

저 구석 한 쪽 모퉁이에 누가 꿈질 거려 가만히 보니
이근호 또한 피 앞에서 작살이 나서
바짝 엎드린 채로 모기 만한 소리로 뭐라 뭐라 하는 듯 느껴졌다.

도대체 믄 내용 이길래 저 성질더러운 인간을 저렇게 반죽였는가 하고 보니

전에 읽었던
성경과 한국교회(뒤에서 본 한국교회) 와 지옥의 하나님 (내가 붙인 별명 일명 성경과 한국교회 투 2 )
의 내용은

참성전 되신 예수님과 한국교회라는 교회라고 우기는 교회와
둘을 충돌 시켜서 과연 누가 다시 일어나는 교회인가

라는 식으로 첫번째 책도 그리도 두번째 책도
과연 그런가 하여 진짜 교회인지 아닌지를
성경과 대비 시켜서 충돌시키고자

고함 고함 지르면서 남들은 가만히 있는데 혼자 핏대를 내세우는 내용으로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 책은 이제 교회라는 범주를 넘어서서

이 세상과 피와 맞짱뜨게 충돌 시킨다.

전 기독교 역사와 피 라고 저자가 나에게 힌트를 좀 주긴 했지만

나는 기독교 역사 자체를 모르니 알수가 없었고

전 세상 과 피와 대립 시키는듯이 느껴졌다.

과연 누가 진짜인지를 건방지게 전쟁을 붙이다니?

손담비 노래 처럼 미쳤군 미쳤어 완전히 미친 인간이군

그런데 그 저자가 책 속에서 전에 쓴 책의 내용처럼 저자가 있어야 하는데
저자도 아예 안 보일 정도로

전혀 딴판의 색깔로써
도리어 피 자체가 저자 마저도 짖밟고서

외쳐지는듯이 느껴졌다. 

저자 가 주체가 되지 않는 책이 가능할까?

책 내용이 주체가 되어버리는 주객이 뒤바뀐것이 가능할까?

그런 생각도 잠시 뿐

이 책 내용을 읽다가 죽을수도 있다 싶어서

온갖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유언장을 써 볼까?

만약 어떤 이유로 죽었는지? 과학수사대에서 검시를 해 본다면

아무도 내가 죽은 이유를 모르지 싶을 것 같았다.

책 내용 자체를 이해 할 인간이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주일 예배전
목사님에게 물었다

혹시 책 읽다가 죽은 사람도 있냐 싶어서

이거 뭐 도저히 쪽팔려서 나올 말이 아니라
알고보면 무지 쪽팔리는 말이지만

그런 쪽팔림 보다

정말 진지하게 물었다.

그런 사람이 있냐고?

답이 가관이다.

어차피 죽은 인간이 믄 짖을 해서 죽든 이미 죽었는데요 뭘?

도대체 말이 안 통하는 인간이다. 

무슨 말을 하든 다 그런식이다.

뭐든지 두 나무의 상황으로 만든다.

그런 괴팍함이 사람들이 싫어하는 이유겠지

그러나 책 내용은 이근호는 저리 가라 이다.

피 자체가 에누리 없이 군더더기 하나 없이
확실하게 파 묻어 버리는 

증거 하나 남기지 않고
죽일려고 달려드는

아 도저히 말을 이을 수가 없다.

아무튼 지금까지의 책은 성질 부린 것도 아닌것 같다.

저자의 평소 성깔도 안 보인다.

전면으로 피를 앞세우면서 저자도 이미 작살난채로
그 토네이도에 이미 나가 떨어진 상태로 보이니까

다 읽어버린 책, 읽었다고 안도감이 생길지 몰라도
적어도 5번 이상은 더 읽을려고 한다.

혹시 또 죽을 수도 있지 않을까?

모르겠다 죽든 말든

읽어야 겠다.


그동안 막혔던 의미들이 엄청나게 들어 있기에 ...


죄인의 옷을 입고 의(사랑)를 증거한다는 십자가마을이 두 패로 나누어진 그 내용이 122 p, 123 p 쭈욱 나오고

인자의 개념 또한 짧고 간단하게 나왔는데 오히려 그것이 아 이거구나 하고 쉽게 이해 되었다.

94 p

7 이레 + 62 이레 + 한 이레 = 70 이레

세가지 색깔의 시간층 이라는 표현도

7 이레 = 성전 재건 기간
62 이레 = 재건한 그 성전을 다시 허물어 버리는 기간

그리고 마지막 한 이레 = 이게 무지 어려운데 아무도 손 못대도록 하는 의미이기에

성전도 없고 제사도 없이 세워지는 언약으로 인한 구원완성 이것이 한 이레의 의미

결국 이 십자가는 이런 3가지 내용을 담고서 증거 되기에

이레 자체가 십자가를 드러내는 목적이다는 것

그리고 그 이전의 페이지는 왜 돈과 인간이 결합을 하는가 에 대한 인간의 지혜의 모든 목적들

한마디로 선악과 나무의 상황을 언급하고 (이 부분이 기존의 철학이나 경제 종교 정치 라는 분야를 다루다 보니 좀 어렵게 느껴지겠지만) 주욱 읽어나가다 보면 뒤에 나타나는 모든 의미들이 생명나무를 말하기 위해서
인간들의 생명이다 라고 부여 잡는 특히 돈으로 모든 것이 모아지는 가치관을 드러낸다.
(얼마전에 언급한 고리대업의 달인인 요셉의 내용도 나온다, 결국 주님의 자작극에 다 걸려든 것이다.)

그리고 정작 돈의 정체를 말한 뒤에 생명나무를 증거하는데 있어서 온통 죽음 곧 피로만 덮어서 뒤의 내용을 다룬다.

피를 어깨에 매고 전진하면서 이 피와 충돌 되는 것들이 왜 박살이 나야 하는 가를
쭈욱 두 갈래로 갈라버리듯이 나타난다.

성화론도 이 피 앞에서 왜 거짓인지도 나오고 
형상론도 이 피와 대립 시키고 있고
성령의 내주 이거 이거 많은 목사들과 헤어지게 된 계기가 된 논쟁주제였듯이 이 내용도 시원하게 나오고
또 그렇게 탈도 많고 말이 많은 율법에 대한 의미도 피의 의미 앞에서 어떻게 설명되는지도 나오고

이 조그마한 책에 너무 너무 많은 것들이 들어 있는듯 하다.

표현은 쉽게 느껴졌기에 이제 정작 내용을 하나 하나 따지는 지역강의에서 얼마나 어려운 내용들을 다루었는지
그 설명들이 기대가 된다.

또 뭐랄까? 그 동안 저자의 표현에서 듣지 못했던 표현들이 나오기도 해서
오히려 그런 표현들이 좀 쉽게 다가온다.

말은 내가 쉽다 쉽다 라고 하지만
한 번에 읽어내려가지 않는다면 오히려 어려울것 같다.

하루만에 읽어서 그런지 몰라도 기존의 그 어려움의 표현들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듯한 느낌이다.

지루한 부분인 앞부분에 조금 그럴 뿐

아무튼 이 책이 왠지 가장 수작이 될 것 같은

앞으로도 이런 내용은 안 나오지 싶지 않나 라는 생각도 해 볼 정도로

정말 정말 낯설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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