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9 우상 찾듯 여호와께 묻는 이스라엘 장로들 (겔 14, 1- 8).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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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9 우상 찾듯 여호와께 묻는 이스라엘 장로들 (겔 14, 1- 8)

죽지 아니할 영혼을 죽이고, 살지 못할 영혼을 살리는, 점치는 부녀들 (겔 13,17-23)
에스겔 2019 2022. 3. 12. 21:30
21-038 죽지 아니할 영혼을 죽이고, 살지 못할 영혼을 살리는, 점치는 부녀들 (겔 13,17-23)

〈에스겔 14, 1- 8 개역한글, 구약성경 1167 쪽, 찬송가 378장 이전에 주님을 내가 몰라, 324장 주님 찾아 오셨네〉

〈찬송가 378장 이전에 주님을 내가 몰라〉

1. 이전에 주님을 내가 몰라 영광의 주님을 비방했다 
   지극한 그 은혜 내게 넘쳐 날 불러 주시니 고마워라

2. 나 받은 달란트 얼마런가 나 힘써 그것을 남기어서 
   갑절로 주님께 바치오면 충성된 종이라 상주시리

3. 천하고 무능한 나에게도 귀중한 직분을 맡기셨다 
   그 은혜 고맙고 고마와라 이 생명 바쳐서 충성하리

4. 내 하는 일들이 하도 적어 큰 열매 눈앞에 안 뵈어도 
   주님께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 얻으리라


〈에스겔 14, 1- 8 개역한글, 구약성경 1167 쪽〉

(1) 이스라엘 장로 두어 사람이 나아와 내 앞에 앉으니
(2)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3) 인자야 이 사람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거치는 것을 자기 앞에 두었으니 그들이 내게 묻기를 내가 조금인들 용납하랴
(4) 그런즉 너는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 중에 무릇 그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거치는 것을 자기 앞에 두고 선지자에게 나아오는 자에게는 나 여호와가 그 우상의 많은 대로 응답하리니
(5) 이는 이스라엘 족속이 다 그 우상으로 인하여 나를 배반하였으므로 내가 그들의 마음에 먹은 대로 그들을 잡으려 함이니라
(6) 그런즉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마음을 돌이켜 우상을 떠나고 얼굴을 돌이켜 모든 가증한 것을 떠나라
(7) 이스라엘 족속과 이스라엘 가운데 우거하는 외인 중에 무릇 나를 떠나고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거치는 것을 자기 앞에 두고 자기를 위하여 내게 묻고자 하여 선지자에게 나아오는 자에게는 나 여호와가 친히 응답하여
(8) 그 사람을 대적하여 그들로 놀라움과 감계와 속담거리가 되게 하여 내 백성 가운데서 끊으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마 23:16, 개역) 화 있을진저 소경된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마 23:17, 개역) 우맹이요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금이냐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마 23:18, 개역) 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마 23:19, 개역)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예물이냐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마 23:20, 개역) 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
(마 23:21, 개역) 또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이요
(마 23:22, 개역) 또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니라
(마 23:23, 개역)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찬송가 324장 주님 찾아 오셨네〉

1. 주님 찾아 오셨네 모시어 들이세 
   가시관을 쓰셨네 모시어 들이세 
   우리 죄를 속하려 십자가를 지셨네 
   받은 고난 크셔라 모시어 들이세

2. 보라 성자 오셨네 모시어 들이세 
   인자높이 들렸네 모시어 들이세 
   헛된 교만 버리세 우리 구주 모시고 
   영원 복락 누리세 모시어 들이세

3. 겸손한 자 찾도다 모시어 들이세 
   하늘에서 부르네 모시어 들이세 
   좋은 자리 드리고 주실 은혜 구하세 
   하늘 나라 세우세 모시어 들이세

4. 주여 내가 믿으니 오소서 오소서 
   주여 환영 하오니 오소서 오소서 
   생명 길로 이끄사 슬픔 위로하시고 
   진리 알게 하소서 오소서 오소서



(겔 14:1, 새번역) 이스라엘의 장로들 가운데서 몇 사람이 내게로 와서, 내 앞에 앉았다.
(겔 14:2, 새번역) 그 때에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겔 14:3, 새번역) "사람아, 이들은 여러 우상을 마음으로 떠받드는 사람들이며, 걸려 넘어져서 죄를 짓게 하는 올가미를 자기들 앞에 둔 사람들인데, 내가 과연 이런 사람들에게 질문을 받을 수가 있겠느냐?
(겔 14:4, 새번역) 그러므로 네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일러주어라.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이스라엘 족속 가운데서 누구든지, 우상들을 마음으로 떠받들고, 걸려 넘어져서 죄를 짓게 하는 그 올가미를 자기들 앞에 두고, 예언자에게 오면, 나 주가 직접, 그 많은 우상에 걸맞게 그에게 답변하겠다.
(겔 14:5, 새번역) 이스라엘 족속이 모두 우상 때문에 나에게서 떠났으니, 이제는 내가 직접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겠다' 하여라.
(겔 14:6, 새번역)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여라.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너희는 회개하여라. 너희의 우상들에게서 돌아서라. 너희의 모든 역겨운 것에서 얼굴을 돌려라.'
(겔 14:7, 새번역) 이스라엘 족속 가운데서나 이스라엘에 머무는 외국 사람들 가운데서 누구든지, 나를 떠나서 우상들을 마음으로 떠받들며, 걸려 넘어져서 죄를 짓게 하는 올가미를 자기들 앞에 두고, 예언자를 찾아와 나에게 물어 본다면, 나 주가 직접 그에게 답변하겠다.
(겔 14:8, 새번역) 내가 이 사람을 정면으로 보고, 그를 징표와 속담거리로 만들며, 마침내 나는 그를 내 백성 가운데서 끊어 버릴 것이다. 그 때에야 비로소 너희는, 내가 주인 줄 알 것이다.


인간은 그 어떤 누구도 우상을 섬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모든 종교에서 신을 저마다 믿고있지
이교도 적인 신을 믿지 않는 우상숭배를 하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

바로 그것이 우상숭배인 거죠
저마다의 종교에서의 교리를 스스로 어기고 있는 셈이다 말이죠
그러나 그 누구도 자신이 우상숭배로 여기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말이죠

즉 우상숭배는 하지 않아도 자기자신은 그런 우상숭배하지 않음을 믿는다 라는 겁니다
우상은 안 믿어도 자기는 믿는다 고 말이죠

마치 뫼비우스의 띠 같지 않습니까

그래서 마치 솔로몬 재판처럼 위에까지 최고의 중앙까지 갑니다
변두리의 두 기생의 천한 싸움이 저 최고의 권력에 까지 말이죠

그래서 뫼비우스의 띠를 가위를 짜르듯이
자아를 끊어주니까 바로 답이 나와버립니다

자아가 끊어지지 않으면
자기가 옳았다 라고 나오고
자아가 끊어지면 비로소 울게 됩니다

자아가 끊어지지 않으면 그 자아를 끝까지 책임지고자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어깨에 얹고 가는 겁니다
마치 선악을 알아서 하나님과 같이 된 우상을 어깨에 매고
그 우상을 끝까지 책임 질려고 하듯이 말이죠

자기 것이 없고
자아란 없고
자기 영역이 없는데
경계선을 긋고 자기 영역이 생기니까
그것을 책임질려고 지키고자 온갖 무거운 짐을 지더라 말이죠

약속의 땅에 우상이 가득하게 되니까
졸지에 척박한 땅으로 변모하여서
활과 화살이 없으면 살수가 없더라 말이죠

아니 심지도 거두지도 않고서도 지냈던 땅이 말이죠

그렇다고 주님이 약속의 땅을 인간이 더럽혔다 라고 해서
포기 하시느냐
택도 없지요
약속의 땅이라는 공간을 해체해서라도
그 약속의 기능은 영원히 세우시는 겁니다

도리어 특정공간이 해체되고 공중분해가 되어버리니까
전 지구가 이 약속의 의미를 담은 기능을 펼치는
십자가의 전쟁 대상이 되는 겁니다
우상과의 싸움에서 말이죠

시간 곧 역사도 해체가 되어버렸으니
이 십자가의 사건은 어떤 공간이든 어떤 시간이든 수시로 벌어지는
사건이 불쑥 불쑥 활화산 폭파하듯이 화산 터지듯이
불쑥 불쑥 튀어나오는 겁니다

자 이렇게
자기의 영역이 없는 세상에서
구지 자기의 영역이라는 우상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서
자아라는 우상을 책임 질려고 하니까

뫼비우스의 띠처럼 의문의 허구를 반복하는 겁니다 무한반복 말이죠

자 분명 거룩한 하나님께 오늘 본문에 이스라엘 장로들이 하나님께 물으러 왔습니다
그 하나님은 분명 진짜 하나님 맞습니다

가짜 하나님이 아닌 것 분명 합니다

그런데 정작 그 진짜 하나님이 왜 우상을 찾듯이 왜 나에게 물으라 왔냐 라고 묻습니다

이 말은 자기 뜻을 가지고 와서 그 자기의 뜻대로 하나님이 움직여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찾아 왔고 물으러 왔다 라는 것입니다

당연히 진짜 하나님이라면 그것을 거부해야 겠지요

물론 남의 일이면 다 그 하나님이 바르게 조치를 했다 라고 동의를 합니다

문제는 자신의 일이 되었을때에 비로소 본색이 드러나는 겁니다

왜 나의 뜻을 안 받아 주시는 겁니까 라고 반발하도록 되어 있다 라는 거죠


아니 인간이 하나님께 찾아오고 물으러 올때에
건방진 태도를 가지고 오겠습니까 아니지요
최대의 겸손한 마음과
최고의 정결한 마음
모든 것을 최고치를 갖추어서 옵니다

왜 내 뜻을 들어달라고 말이죠

바로 그겁니다

왜 우상 찾듯이 왔느냐 라는 거죠

아니 우상에게 온게 아니라
하나님께 왔다니깐요

서로 대화가 됩니까

말귀가 안 통한다 라고 보겠지요

제가 말귀를 알아먹는다 못 알아먹는다 라고 지난 주에
어머니께 물었는데

못 알아먹는다 라고 답을 하시더라 말이죠

네 맞아요
그런데 저는 아니다 라고 했습니다
말귀를 알아먹는데
못 알아먹는척 끝까지 자기의 것을 우겨야 한다 라고
마귀가 응원하고 있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방인이기 때문에 어머니 말씀이 맞아요
그런데 유대인은 다릅니다
적어도 다 알아먹는 말만 주님이 하셨다 말이죠
핑계치 못하도록 말이죠

(롬 1:18, 개역)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롬 1:19, 개역)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롬 1:20, 개역)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그런 유대인처럼 이제 로마에 있는 자들 또한 핑계치 못할 십자가의 사건이
로마인들의 손에서 벌어졌었걸랑요

그리고 그 속에 사도바울 본인도 그 사건에 동원이 되었구요
그런데 이제 행함이 아닌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남으로써
그 복음의 결과물로써

이제 사도바울 본인 자체가 증거물이 되어서 보여주게 되었으니
이제 핑계치 못하는 빼도박도 못하는 증거가 되었다 라는 겁니다

마치 사도바울 본인이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처럼
남자 유대인에게 율법으로 돌삐쳐 죽임을 당해야 하는데

예수님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는 하나님의 의로
다 용서하심으로써

돌삐 놓고서 다 도망쳤다 말이죠

이제 예수님이 그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자처럼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시고
다시 삼일 만에 살아나심의 증거가 되었고

그 돌삐 쳐 죽일려고 했던 자 중에 로마인도 다 동원이 되었고
사도바울 본인도 마치 계시록의 24장로처럼
모든 유대인들이 돌삐 쳐 죽여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라 라고 다 그 일에 증인으로
다 동원이 되어버렸기에 빼도 박도 못하는 겁니다

그런데 다시 삼일 만에 살아나심으로써
하나님이 예수님을 주가 되게 하셨다 말이죠

주가 되게 하셨다 라는 말은
이제 모든 무릎과 모든 입이 주님을 경배하고자
무릎 꿇어 주인이여 용서하옵소서 라고 시인하게 되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

즉 드디어 자기의 이름을 삭제 시키시는 심판의 주를 맞이하는 것이다 라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비로소 우상
구약 이스라엘이 때려죽어도 우상을 제거하지 못하고
1000년 동안이나 애굽의 10가지 우상을 단 한 번도 끊어낸적이 없고
이방인과의 전쟁 또한 하지 않고자 했던 그 모든 문제
그 수고하고 무거운 짐 드디어 다 비로소 쉬게 되는

자아라는 우상을 파괴시키는 이름을 그 주의 이름을 비로소 부르게 되는 것이다 라는 겁니다

영토따먹기 시간 채우기 라는 의문의 반복 조차도

이 또렸한 십자가 앞에서 속임수 꾀는 통하지 않는 겁니다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냐 말이죠
사망아 누구를 쏠래 ~~~~

의문의 반복아 누구를 쏘아 죽일래 ~~~~~~

사망의 권세를 멸하는 이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는데
찢으셨다가 다시 싸매어 주시는
수치를 가려주시는 긍휼이 또렷하게 밝히 보였는데

누굴 쏘냐 말이죠

(롬 1:21, 개역)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롬 1:22, 개역)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롬 1:23, 개역)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롬 1:24, 개역)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롬 1:25, 개역)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그래서 지 마음대로 하도록 내어버려두시는 겁니다

지마음대로 즉 자아라는 우상을 책임지도록 ~~~~~~~~

그 허구 허상을 왜 책임지냐 말이죠

그래서 하나님을 알지만은
그 하나님을 자기 뜻대로 조정하고픈 우상 찾듯이 찾는 겁니다

아니 언제 우리가 우상 찾았습니까
하나님을 찾았으니까 우상찾는다 라고 잔소리 하시고 그 잔소리 듣잖습니까
잔소리 듣는 자아를 여전히 옳다 라고 보니까

두 하나님을 동시에 우찌 섬기냐 말이죠

아니 재물이라는 돈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긴다 라고 했을때에
인간 바보 아닙니다

돈이 무슨 놈의 신입니까

하나의 물질이고 종이 돈이면 불로 태워 버리면 다 사라지고
금은동 같은 물질원소라고 해도 언젠가는 깍여서 다 사라지는데
누가 그 사라지는 것을 믿습니까

네 바로 그겁니다
그렇게 믿고 있기 때문에
돈을 안 믿는 자기자신을 믿는 것이 우상이다 말이죠
자기자신은 바보가 아니다 라는 것을 믿는

돈이 신이 아님을 인간은 알아요 난 알아요 그 밤이 흐르고

문제는 알지만은 나만 그런게 아니라 남들도 다 아는데
인간이 은연중에 마치 마귀가 쥐금상을 몰래 숨겨놓듯이
인간은 은연중에 돈에다가 믿음을 심어버린다 라는 겁니다
자기도 모르게

돈은 신도 아니요 뭐도 아니다 라는 것을 인간은 다 알아요
그런데 돈에다가 믿음을 심어버림으로써
인간의 입장에서는 믿음이지만
성경에서는 우리가 하고 있는 로마서 입장에서는 행함으로 행함에 이르는 것이
인간의 종교심 아닙니까 믿음이라고 하면 또 같은 용어라고 헷갈릴테니
종교심을 심어버림으로 인해서 졸지에 신이 하나님이 종교가 (믿음)이 되어버렸어요

또 믿음이라는 단어를 또 썻넹 ㅋㅋㅋ () 괄호를 쳐야 겠군요
그 정도로 헷갈리게 우리 자신이 우리를 속이니까 말이죠

결국 결과적으로 보면 압니다

최고의 종 으로써의 돈이
최고의 주인으로써의 돈 즉 신이 되었고 (믿음)이 종교가 되어버렸어요
이것을 우상 곧 행함이라고 합니다
인간을 가정부로 말이죠

자유하는 여자가
졸지에 최고의 노예가 되어버린 셈이다 라는 겁니다

거기서 끝납니까
아니지요
행함은 계속 행해야 하기에
즉 인간의 행함은 곧 인간의 믿음은 복수심이다 라고 했습니다 반작용
나 한테 복 안주면 당신 가만히 두지 않겠어
나를 인정 안해주면 당신 죽여버릴 것이야 라고
모든 인간의 행동은 반작용이다 라고 했습니다

즉 한 풀이입니다

자아라는 우상은 딱 하나 밖에 없어요
한풀이
살풀이

그래서 인간은 번제와 제사에 열중인 겁니다
평생을 우상숭배 곧 의문의 제사만 반복할 뿐이다 말이죠

최근에 댓글을 신나게 몇 개 적었는데
사실은 이 말 할려고 앞에것 배경으로 깔았거든요
아직은 안 적었는데
조금 더 정리하고 말이죠
뭐 정리할 뭐 대단한 것도 아니라
뭐 이 글로 대신하죠 뭐 ~~ ㅋㅋㅋ

나쁜남자 사드와 함께 칸트  를 인데
칸트의 진리로써의 사드 이다 라고

부정의 부정이다는 겁니다

소위 인간이 깨끗하다 거룩하다 라고 가지고 오는 것들을
다 부정해 버리는 부정이 오지 않으면
진리를 알수 없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가 아니면 하나님의 의를 거룩을 알길이 없다 말이죠

즉 우상을 가지고서 하나님께 물으러 오는 칸트 입장에서
이스라엘 장로 입장에서

왜 우상 찾듯이 나 하나님께 물으러 왔느냐 라고 부정하고 죽이고 불태워 버리지 않으면
하나님이 누군지 알 길이 없다 라는 겁니다

이스라엘장로들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은 
내가 여호와인줄 때려죽어도 모르게 하겠다 라고
방금 다 알려주셨거든요
우상 찾듯이 하나님을 찾는다 라고
그런데 그 완악한 마음을 
마음판의 할례 끊어주시는 게 아니라
지가 지 손으로 할례하도록 하는 무거운 짐을
없는 자아를 없는 우상을 끝까지 책임 질려고
손으로 할례 할려고 하는 그 빈자리를 어떻게 해서든 채워넣을려는
밑빠진 장독대에 물 채우기 라는 무거운 짐을 스스로 지게 하는 징벌을 하심으로써
내어버려 두시는 겁니다

자기가 자기한테 무거운 짐이 되도록 하는 징벌이 이미 저절로 된 겁니다
새삼스럽게 징벌을 내릴 필요도 없이 말이죠
내버려두심 보다 더 한 징벌이 어디있습니까?

그러니까 그 빈공백을 뭐라도 꽉꽉 채울려고 한다 말이죠
kbs 다큐 순례 재방을 보니까 오래전에 했던 건데 또 나오네요
아마 티벳 불교를 다룬 내용이지 싶은데
한 소녀가 출가를 해서 고행의 길로 간다 말이죠
니체는 불교를 그래서 좋다 라고 위생학 위상학 우생학 뭐 그렇게도 부르는데
출가함으로써 떠남으로써 그 자리가 썩지 않는다 라고 깨끗하다 라고 말이죠
고인 물은 자꾸 썩으니까 말이죠
인간의 믿음은 고인 썩은 물과 같기 때문에
일종의 한풀이 라꼬
살인의지로써 원한풀이가 반작용으로 나타난 것이 인간의 믿음 곧 행함인 종교성이라꼬
그런데 그 다큐를 보니 떠남으로써 무자아 무아론으로써 삼보일배 라는 고행을 하던데
무아 라고 해 놓고서는 그 교리를 실천해야 하기 때문에
또 그 빈공간을 꽉꽉 채우더라 말이죠
왜 산으로 가서 속세를 떠난다고 해 놓고서는 산을 더럽히고
그 흰눈빨 날리는 티벳고원의 그 높은 산을 눈밭을 고행의 삼보일배 한다 라고
흰눈에 온 갖 더러운 발자국 자기흔적을 왜 남기느냐 말이죠
꽉꽉 채우기 바빠요
지젝 말 마따나 디카페인 커피처럼 뭐 무알콜 술 무설탕 다이어트콜라 이런것들이 오히려
공백을 더 꽉꽉채우는 (오히려 몸에 더 안좋은데 건강할려고 찾는 것이 말이죠)
오염된 도시를 떠나 자연의 농촌으로 귀화가 유행해서 자연으로 돌아가겠다 라고 하지만
정작 도리어 그 자연을 더 더럽히는 꼴이니
가장 덜 요염시키는 방법은 그냥 그 도시에 사는 것이라 라꼬
니체 시대랑 지젝 시대랑 다르니까요
이렇게 쓰레기가 땅을 넘어서 바다까지 다 썩어버리게 만들줄 몰랐던 거죠
그렇게 출가하는 속세를 떠난다고 해서 
그 깨끗한 곳을 역시나 더럽히기는 매 마찬가지이다 말이죠
(이미 유럽에서 유행해서 다 지나간 것이 뒤늦게 욜로 한번뿐인 인생 즐기다 가자 라고
다 헛짓이였는데 그걸 또 몇 년전에 한국에서 유행시키더라 말이죠
그러니 그 공백을 채울 길이 없는 겁니다
그러니 무자아 라는 불교처럼 디카페인커피를 추구할려고 하지 마시고
막사세요 막사는 것이 가장 오염을 덜 하게 하는 겁니다 ㅋㅋㅋ
새삼스럽게 막 살라는 말이 아니라 지금까지 막살아왔듯이 그냥 사시라 라는 겁니다
무자아 라는 처음자리 처음사랑의 숙제는 주님의 숙제입니다
어떻게 나 라는 자아 곧 우상을 부수시는지를 말이죠 곧 용서입니다
이 인애와 자비를 주님이 원하시는 겁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사랑해서 
화목제물로 독생자를 아끼지 않고 내어주셨다 라는 겁니다 이것이 주의 주 되심입니다
나도 십자가 안다 라고 나 라는 우상을 십자가를 아는 우상을 주장할게 아니라
이런 나를 부수시는 것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주의 주 되심입니다
나를 어떻게 정복하시는지를 보는 겁니다 처음자리로 어떻게 빈털터리 되돌려 놓느니 말이죠)
신체 일부를 태우듯이 머리를 삭발해서 속세를 떠나 출가해 놓고서는 말이죠(눈이 범죄 하거든 눈 뽑고 팔이 범죄하거든 팔 짤라라 ~~~~~~
바리새인은 진짜로 실천할려고 한다 말이죠 
그런다고 다른 신체기관들은 범죄에서 벗어나냐 말이죠
다 붙어있는데 ~~~~~ 이제와서 각각 단절시키겠다 라꼬 ~~~
불가능하다는 말인데 회개하라는 말인데 회개는 안하고 죄 없는 옷만 찢어요 옷만)

이런 불교의 교리 플러스 실천이 일종의 인도의 성화론 계급론 가정부론과 똑같이
누가 누가 더 높은 계급의 가정부인가 수준높은 노예 인가 종인가
자유가 아닌 계집종 언약
한국교회의 100% 가 성화론 아닙니까 개혁주의 아니냐 말이죠
개혁이 뭡니까 떠난다 늘 끊임없이 앞만 보고 뒤도 안 돌아보고 앞으로만
갈바를 알지 못하고 간다 아닙니까
늘 나를 깨뜨리고 혁신을 하면서 말이죠
그래놓고 그 빈자리인 처음자리를 성화된 자기자신으로 꽉꽉 채우기로
육을 자랑하는 집단이 되었다 말이죠 강도의 소굴 교회주의가 된 겁니다
그냥 나는 안 됩니다 라고 하면 될 것을
수고하고 무거운 짐 내려 놓으면 될 것을
모조리 다 자기방어기제입니다 한 풀이
원한풀이의 반작용이다 말이죠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는
다 알려줘도 모르는 척
오로지 자아에게만 중독 되도록
재물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기는 그 무거운 짐을 자기 스스로 지도록 내어버려두심이고

반대로 주님의 자녀는 사생아로 내어버려두시는게 아니라
끝까지 때려서라도 주님 자신이 누구신가를 알리시겠다 라는 겁니다
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 곧 사랑 이 없어서 망하지 않게 하실려고
이 사랑이 언약의 최종 목적지 아닙니까
더 이상 이룰 율법이 없는 율법의 완성이 남을 사랑하는 것이니까 말이죠
이것이 성전의 참기능이요 성전 안에 언약궤 언약궤 안에 하나님의 이름이다 라는 겁니다
너 이 이름 알려 해 주시겠다 라고 말이죠

아무리 자기 쪽에서 좋은 것으로
금으로 성전에 기도하고 바치러 와도

성전에서 나오는 것을 받지 못하면 소용없다 라는 겁니다
주의 주 되심의 이름을 받지 못하면
자기 이름으로 승부 걸려고 말이죠

주여 주여 주의 이름으로 사탄도 물리쳤나이다 
나 너 누군지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
사탄이 떨어지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니 이름이 생명책에 곧 예수 이름에 너의 이름이 삭제 당하는 것으로 기뻐하라
즉 기쁨은 눈물을 흘리는 자에게만 해당 된다 말이죠
눈물은 회개 곧 이 사랑 앞에서 이 십자가의 피 흘리심 앞에서
성전의 참 기능 앞에서
사망의 몸 지옥의 몸을 왜 낫게 하셨는가
그가 찔리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 라는 겁니다

이 걸어다니는 성전의 기능으로써

성전에서 나오는 것은 막힌 담을 헐고서 나오는
즉 경계선을 허물어 버림으로써
자기영역이 삭제 당했거든요
예수님이 말이죠

예수님은 자기 뜻대로 마옵시고 라고 자기 영역이 삭제 당했거든요
욥이 당신 시키는대로 했으니까 나 옳았지 않았습니까 라고 했다 말이죠
그런데 예수님의 피 흘리심을 보고서
밤새도록 빡빡 끍어대는 그 아토피 피부병도 나을 자격이 없다 라고
머리에 검은 불에 다 타서 남은 찌끄래기 새까만 탄재를 뿌리고
생일을 저주하고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났기에)
머리를 쳐 박고 우는 겁니다
기쁜소식 곧 복음 곧 사랑을 보고서
비로소 자기자신의 옳았음을 내 열심히 특심이오니 나만 남았다 라는 그 우상을
그 자아를 그 무거운 짐을 그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비로소 내려놓고서 마음껏 울수가 있었던 겁니다

비로소 자기 것이 없어진 처음사랑 처음자리로 되돌려짐을 당하는
주님의 빈터만들기로써 말이죠

그런데 그 앞에서 내 영역 나의 것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금을 바치고 
빈 공백을 꽉꽉 채우기 바쁜 자기 영역 채워본들
내 쪽에서의 모든 정성 최고의 재물을 아무리 바쳐본들
그거 장난치는 것 밖에 안된다 라는 겁니다
의문의 반복
1초 지나자마자 바로 썩어버리는

정작 주님은 절대저주를 받고 있는데 말이죠 우리 대신에 말이죠

그래서 지난 주에 언급한
사무엘하 18장 이였던가요

(삼하 18:10, 개역) 한 사람이 보고 요압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보니 압살롬이 상수리나무에 달렸더이다
(삼하 18:11, 개역) 요압이 그 고한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보고 어찌하여 당장에 쳐서 땅에 떨어뜨리지 아니하였느뇨 내가 네게 은 열 개와 띠 하나를 주었으리라
(삼하 18:12, 개역) 그 사람이 요압에게 대답하되 내가 내 손에 은 천 개를 받는다 할지라도 나는 왕의 아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우리가 들었거니와 왕이 당신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명하여 이르시기를 삼가 누구든지 소년 압살롬을 해하지 말라 하셨나이다
(삼하 18:13, 개역) 아무 일도 왕 앞에는 숨길 수 없나니 내가 만일 거역하여 그 생명을 해하였다면 당신도 나를 대적하였으리이다
(삼하 18:14, 개역) 요압이 가로되 나는 너와 같이 지체할 수 없다 하고 손에 작은 창 셋을 가지고 가서 상수리나무 가운데서 아직 살아 있는 압살롬의 심장을 찌르니
(삼하 18:15, 개역) 요압의 병기를 맡은 소년 열이 압살롬을 에워싸고 쳐 죽이니라

압살롬 자기가 상수리나무에 아름다운 머리카락이라고 자랑하던 그 자랑이
도리어 올무가 되어서 걸려 넘어지는 실족케 되었을때에
아직 살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응급조치를 하지 않고

저 마다 자기의 뜻이 옳은대로 행동하는 모습들이 나옵니다
요압은 왜 안 죽이냐 라고
다윗왕을 아버지를 죽일려는 패륜아인데 왜 안 죽이냐
부하는 또 다윗왕이 죽이지 말라 라고 했는데
다윗왕 보다 높지 않은 요압 당신말 들었다가는
나중에 당신이 다윗왕의 명대로 나를 죽일수 있는데 왜 죽이냐 라고

앗 들켰넹
그럼 아무도 요압 자기 말 들을 자가 없겠다 싶어서
직접 죽인다 말이죠

왜?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주를 삼키듯이

다윗왕을 죽일려는 아들 압샬롬을 죽이는 것이 다윗에게 충성하는 길이다 라고 말이죠

입으로는 충성하나 속으로는 때려죽어도 말 든는 거죠
입술로는 찬송하나 속으로는 저주하는 겁니다

후계자 누구 누구의 아들을 죽이는 것은 결국 저주하는 거다 말이죠
자 이렇게 인자는 올무처럼 저들의 모든 죄악을 다 담는 그릇이어야 하는 겁니다

반드시 종처럼 땅의 계집종처럼 노예처럼
솔로몬 왕이시여 참으로 옳으신 판결 이십니다 라고
박수를 치고
왕에게 충성하고 굽신굽신하고 있는 듯 찬송하나
속으로는 저주하고 있다 라는 거죠

그래 그래 아이를 둘로 가르는 그 어리석고 미련한 지혜가
나의 꾀에 놀아나는 꼴 밖에 안되다니
솔로몬 너도 별수 없네 라고 말이죠

그리고서는 박수 솔로몬 왕 최고 최고 짱 하트 뿅뿅 날리고 한다 말이죠

그런데 다른 한 쪽 어미는 우는 겁니다


다윗은 지금 사무엘하 18장에서 울고 있습니다

내 아들 압살롬은 어찌되었냐 라고 다윗은 울면서 묻게 되는 겁니다

(삼하 18:15, 현대어) 그러자 요압의 무기를 들고 다니던 젊은이 10명이 압살롬을 둘러싸고 그를 때려 완전히 죽여 버렸다.
(삼하 18:16, 현대어) 압살롬을 따라 전선에 나왔던 이스라엘 군대는 모조리 도주하고 다윗의 군대는 계속 그들을 추격하고 있었으나 이제 요압이 나팔을 불자 일시에 싸움이 중단되었다. 다윗의 군대는 모두 요압에게로 돌아오고 이스라엘 군대는 해체되어 저마다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이제 요압의 군인들은 압살롬의 시체를 떼어다가 숲 속의 깊은 구덩이에 던져 넣고 그 위로 수많은 돌을 쌓아 커다란 돌무더기를 만들었다.
(삼하 18:17, 현대어) (16절과 같음)
(삼하 18:18, 현대어) 그런데 압살롬은 살아 생전에 이미 예루살렘 근처에 있는 왕의 골짜기에 자기의 기념비를 세워 둔 게 있었다. 그는 세 아들을 두었으나 그들이 거듭 죽자 `이제는 내 이름을 전해 줄 아들이 이 세상에 없다.'고 탄식하다가 자신의 슬프고 외로운 인생을 달래기 위하여 스스로 기념비를 세웠던 것이다. 그는 그 비석이 자기 아들을 대신하여 자신의 이름을 이 세상에 전해 주도록 자기 이름을 따서 그 돌기둥에 이름 붙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늘날까지도 그것을 `압살롬의 돌기둥'이라고 부른다.
(삼하 18:19, 현대어) [전령으로 달려온 두 사람] 이미 전령으로 이름을 떨쳤던 사독의 아들  가 철없게도 요압에게 이런 자청을 하고 나섰다. `제가 지금 당장 임금님께로 달려가서 이 기쁜 소식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오늘 임금님을 의롭게 판결하시고, 그 원수들을 물리쳐 주셨다.'고 전하겠습니다'
(삼하 18:20, 현대어) 그러나 요압은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 심부름인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아히마아스를 죽음의 위험에 빠뜨리지 않으려고 이렇게 타일렀다. `다른 때같으면 당연히 네게 심부름을 시키겠지만 오늘만은 안 된다! 임금님께 좋은 소식을 전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임금님의 아들이 죽었다는데, 무슨 좋은 소식이 될 수 있겠느냐?'
(삼하 18:21, 현대어) 그리고 요압은 구스의 흑인 용병 한 사람을 불러 이렇게 명령하였다. `네가 임금님께 달려가서 본 대로 말씀을 드려라' 그러자 그 구스 사람은 요압에게 엎드려 절을 한 다음에 즉시 달려갔다.
(삼하 18:22, 현대어) 그런데도 웬일인지 제사장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또 요압을 조르기 시작하였다. `무슨 일을 당해도 좋으니, 저 구스 사람을 뒤쫓아가게 허락해주십시오.' 그러나 요압은 또 이렇게 타일렀다. `아히마아스야, 도대체 네가 무엇 때문에 그토록 나서고 싶어하느냐? 이번 일은 아무리 잘 전해도 좋은 소식이 될 수 없을 뿐더러 무슨 상받을 전갈도 못된다'
(삼하 18:23, 현대어) 그런데도 아히마아스가 또 자청하였다. `아무러면 어떻습니까? 그냥 보내만 주십시오.' 요압이 하는 수 없이 허락해 주자 아히마아스는 요단 골짜기의 좋은 길로 달려서 구스 사람을 앞질러 갔다.
(삼하 18:24, 현대어) 이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다윗은 마하나임의 바깥 성문과 안 성문 사이에 앉아 있었다. 그곳에서는 성벽 위의 파수꾼을 바라볼 수가 있었는데, 파수꾼은 성문의 지붕 위에 설치한 관망대에서 먼 곳까지 내다보고 있었다. 그는 어떤 사람이 성문을 향하여 급히 달려오는 것을 보자
(삼하 18:25, 현대어) 곧 왕에게 큰소리로 보고하였다. 다윗은 `꼭 한사람만 달려온다면 좋은 소식을 전하는 전령이다.' 하고 말하였다. 적진에게 패하여 달려오는 경우에는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몰려오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이 성문에 거의 다다랐을 때에,
(삼하 18:26, 현대어) 파수꾼은 멀리 뒤따라서 달려오는 또 한 사람을 보고 문지기에게 큰소리로 보고하였다. 왕은 이 보고를 받고서도 똑같이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으로 판단하였다.
(삼하 18:27, 현대어) 파수꾼이 이제는 먼저 달려오는 사람을 알아보고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달려옵니다! 그는 달음질하는 모양만 보아도 알 수가 있습니다.' 왕이 안심하고 대답하였다. `그는 좋은 사람이니 틀림없이 좋은 소식을 가져올 것이다.' 흉한 소식이라면 요압이 아히마아스에게 시킬 리가 없기 때문이다.
(삼하 18:28, 현대어) 아히마아스는 달려오면서 이미 `이겼습니다.' 라고 승전 소식을 전하였다. 마침내 그는 왕 앞으로 달려와 엎드려 큰 절을 올린 다음 이렇게 아뢰었다. `임금님의 하나님 여호와께 찬양과 감사를 돌립니다. 그분이 임금님을 대항하여 일어선 모든 원수를 왕의 손에 넘겨 주셨습니다.'
(삼하 18:29, 현대어) 그러나 다윗의 기쁨과 평안은 그의 아들 압살롬의 생존과 평안에 달려 있었다. 그래서 왕이 이렇게 물었다. `나의 어린 자식 압살롬은 어떻게 되었느냐? 그가 다치지는 않았느냐?' 눈치 빠른 아히마아스는 여기서 재치 있게 상황 판단을 하고 그럴듯하게 둘러댔다. `요압 장군이 이 종을 보낼 때에 압살롬이 있는 곳에서 큰 소동이 난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삼하 18:30, 현대어) 왕이 `물러나 내 곁에 서 있어라.' 하고 말하였다.
(삼하 18:31, 현대어) 마침 이때에 그 구스 사람 흑인이 도착해서 왕에게 곧이곧대로 아뢰었다. `임금님 제가 기쁜 소식을 가지고 달려왔습니다. 여호와께서 오늘 임금님께 의로운 판결을 내리시고, 임금님을 대항하여 일어선 모든 원수들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이제는 임금님을 해칠 원수가 모조리 사라졌습니다.'
(삼하 18:32, 현대어) 다윗은 여전히 아들 걱정을 하면서 물었다. `나의 어린 자식 압살롬은 어떻게 되었느냐? 그가 무슨 상처라도 입지 않았느냐?' 구스 사람이 사실 그대로 대답하였다. `임금님을 대항하여 일어서는 모든 원수들은 압살롬과 똑같은 일을 당해야 옳을 것입니다.'
(삼하 18:33, 현대어) [냉철한 요압 장군의 조언] 다윗왕은 아들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떨면서 성문 위의 다락방으로 올라가 통곡하였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너 대신에 차라리 내가 죽었으면 좋았겠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아!'


다른번역과 달리 현대어번역에서는 아히마아스가 철없이 행동 한다고 했습니다만

(삼하 18:19, 현대어) [전령으로 달려온 두 사람] 이미 전령으로 이름을 떨쳤던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철없게도 요압에게 이런 자청을 하고 나섰다. `제가 지금 당장 임금님께로 달려가서 이 기쁜 소식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오늘 임금님을 의롭게 판결하시고, 그 원수들을 물리쳐 주셨다.'고 전하겠습니다'


일부러 그렇게 보이도록 한 것 같습니다
즉 도리어 다윗왕이시여
당신의 아들 압살롬을 죽인 자는 요압 장군입니다 라고 눈치 채라고
구스 사람 보다 더 빨리 전해야 한다 라고
지름길로 가서 소식을 알려주고자 말이죠

여기서 지난 주에 녹음 파일에서 언급한 대로
두 번째로 소식을 알려주고 있은 구스 사람과 요압 등등은

(삼하 18:21, 현대어) 그리고 요압은 구스의 흑인 용병 한 사람을 불러 이렇게 명령하였다. `네가 임금님께 달려가서 본 대로 말씀을 드려라' 그러자 그 구스 사람은 요압에게 엎드려 절을 한 다음에 즉시 달려갔다.

자신들의 뜻대로 되었고
그로 인해 다윗 왕에게 충성하는 자신들의 의로움을 어서 어서 알리고자
기쁜마음으로 인정받고자 달려가는 모습이다는 거죠

이것을 주님은 번제와 제사를 원치 않고
인애와 자비 곧 상한심령을 원한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아무도 다윗의 슬픈 눈물을 보는 자는 없다 말이져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저 독생자 예수를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었다 라고

다들 지금 서로 서로가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으로
똘똘똘 뭉쳐 있다 말이죠

주여 주여 주여 제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도 물리쳤나이다
사탄이 하늘에서 떨이지나이다

정작 자기 이름이 삭제 되지 않은 자
곧 생명책에 기록이 되지 못하는 자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자는

자기의 뜻을 펼치도록 되어 있더라 말이죠

아직 쫄딱 덩 망해봐서 그래요
화로다 화로다 나는 쫄딱 망했구나

이 사망의 몸을 이 우상의 몸을
왜 책임 질려고 했을꼬 ~~~~~~~~
책임 질려고
자기 영역을 더더웃 또렷하게 선을 그으면 그을수록
더더욱 무거운 짐으로 남게 되니
이 사망의 몸을

누가 책임지랴 ~~~~~~~~~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예수 안
자기 것이 없는
자기 것이 삭제 된
우상이 삭제된
자아가 삭제된
예수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도록 무거운 짐이 없도다

주를 위해 충성하겠다 라고 자기 의를 쎄우고자
쌓고자
압샬롬을 죽인 것이 도리어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는
십자가에 복종하지 않는

자기의로움 쌓기로써
내 열심히 특심이다 라고
나만 남았다 라고

7천명 남겨 놨음을 거부하는 모습이였더라 말이죠

이 십자가가 또렷히 밝히 보이는데
그 흐릿한 의문의 자기열심 모호한 의문의 반복
허구의 반복
허상의 우상 반복으로 왜 꾀느냐 누가 속일려고 달려드느냐
또 누구를 총 쏘아 죽일려고
사망아
우상아
자아야

누구를 또 죽일려고 ~~~~~~~~~~

그 사망이라는 무기 
소용없게 만들어 놨는데
또 총 집어 즐고 돌삐 집어들고
저번에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자 앞에서
돌삐 놓고 도망쳤잖아
그래놓고 또 핑계꺼리 찾아서
꼬투리 잡아서
또 돌삐 잡을려고? 또 누굴 속일려고
언제까지 그 꾀에 넘어가기를 바라느냐 ~~~~~~~~~


자 이렇게 우리는 저 우상을 쫓으면서도 하나님에게 까지 와서
물으면서 자기의 뜻을 관철 시킬려는 이 모습을 보면서
우리 또한 마찬가지인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할 자 이구나
이미 결과적으로 뭘 해도 죄 이다 라는 겁니다

뭐 이스라엘 백성만 천년동안 이것은 에스겔 기준이고
예수님 당시로 따지면 1300년 동안
지금 현재까지 따지면 2000년 더하면
3300년 동안 이스라엘은 단 한번도 애굽의 10가지 우상을 단 한번도
안 믿은 적이 없는
늘 우상을 쫓는 모습이 우리 또한 역시나 마찬가지 이다는 겁니다

이미 우리 마음 속에 우상이 자리 잡았고
더 깊어졌어요

자아가 곧 우상이니까
누가 자아를 자기 스스로 제거할수 있겠습니까
가룟유다처럼 고 잘못된 부분만 오려내겠다 라고 자살한다 라고 해서 해결될 문제 입니까
둘째 사망은 또 우짜고요 ~~~~~~~

영과 혼을 소멸하시는 주님을 두려워 하는게 아니라

또 내 죄는 내가 책임지고 내가 내 스스로 심판하겠다 라고
육체를 죽여본들 영혼 문제는 해결되냐 말이죠
어딜 건방지게 자살하냐 말이죠

심판주가 엄연히 살아계심에도 불구하고
심판주에게 맡길 생각도 안할 정도로

자기 마음대로 말이죠

왜 심판 주를 죽은자 취급하냐 말이죠
끝까지 자기가 살아있다를 주장하는 셈이다 말이죠

끝까지 자기 영역을 자기 것을
내것은 내 것이다 라고 주장하는 이 우상 문제

주님이 해결하시고자 오셨다 말이죠
이 보다 더 기쁜 소식이 어디있냐 말이죠

비록 우리가 각기 제 길로 가는 양 같아도

(사 53:6, 개역)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자기 아들을 내어주시기로 원하셨다 라는 이 기쁜소식
네 맞아야 제대로 된 슬픈소식이다 말이죠

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는 겁니다
이 눈물이 변하여 희락 은혜의 기쁜날이 되는 겁니다

이 언약 완성은 우상도 해결 못하는 우리가 아닌
주님 홀로 다 이루시는 겁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 또한 한치도 벗어날 길이 없는
이스라엘 장로와 별 다를바 없는 우상숭배자임을 지적 받음으로써

이 하나님의 징계 이 하나님의 진노가 바로
사생아가 아닌
아들에게만 있는 사랑이다 말이죠

그러니 회개 아니하고는 못 배기는
이 아버지의 눈물에 동참하는 동행입니다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하나님 앞에서 충성했다
아이고 하나님 지혜가 높고도 놀랐습니다
맞습니다 저도 가지지 말고 이도 가지지 말도록
두 조각 내어버리십시오
박수 박수 이스라엘 왕을 찬양 합니다 라고 박수를 치고 찬양하지만
그거 저주임을

주님은 나 한테 안 속는다 라는 사실

그래서 너의 의로움 가지고 오지 말고
반대로 너의 더러움 가지고 오라 라고

성전의 기능을
다윗언약의 기능으로써
이스라엘 전체를
다윗 개인의 운명이 아닌
이스라엘 전체의 운명으로써 확대 확장 시킴으로써

이스라엘을 포로 잡혀가게 함으로써
자기 의로움으로 충성했다 라는 아비아달 제사장 계열이 아닌
하나님에게 인정 받고자 압샬롬 죽였다 라고 다윗이 기뻐할꺼다 라고
번제와 제사를 드릴때에

정작 주님은 숨겨놓은 하나님의 기념이름 아껴둔 이름
하나님의 의에 복종케 하고자
다윗의 눈물에 집어넣고자
인애와 자비를 보여주는
사독 제사장 로써

주의 주 되심 즉 여호와가 누구인지 알리라 라고 
주님의 숙제로써 이루신다 라는 겁니다

나는 뭘 해도 죄 이니까
이렇게 고백한 나는 맞잖아 라고 해도 소용없는 이유가
주님이 어떻게 다루시느냐에 따라
진노의 그릇
긍휼의 그릇으로써
토기장이 마음대로 이니까
인간의 속임수는 안 먹혀 드는 겁니다

즉 인간은 아무리 해 본들 역시나 우상 금송아지에다가 여호와의 이름을 새긴
역시나 주의 이름과 우상을 썩은
자기자신이라는 자아라는 우상과 하나님을 썩은 모습 밖에 없으니

이런 우상숭배자인 나를 어떻게 다루시는가 외에는 볼 것이 없습니다
그것만이 실상이고 참현실이고
나머지는 다 허상 뿐이니까 비현실이요 망상이요 환각 환상 마약 종교오락 뿐이니까

하나님의 진노가 아니였으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였다 말이죠

돈 과 재물을 하나님과 동시에 섬길 정도로 인간은 그야말로 만만치 않은 자들입니다

어떻게 나무조각과 같은 아무것도 아닌 종이에다가
믿음을 집어넣고 신을 우상을 심어넣어서
돈을 섬길까요

대단하잖아요
가장 천하기 짝이 없는 노예를 
가장 건드릴수도 없는 신의 자리로 올려놓는 인간의 이 놀라운 능력

이제 너무 올려놓아서리 아무도 건드릴수 없도록
지가 올려놓고서는 지도 어찌할수 없도록 만들어 버린

화폐 4중주 라는 책에서
인간의 믿음 곧 행함이 이 정도로
종이 쪼가리 조차도 신의 자리에 놓을 정도이니

즉 결국 자기자신을 선악을 아는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놓았다 라는 거죠
그 증거가 돈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기는 것이니까 요

돈 속에 자기의 뜻이
자기의 영역이
자기의 것이
곧 자기가 들어가 있으니까
자기를 높일 수 밖에요

그렇다고 속세를 떠나서 돈 만지지 않는 곳에 가겠다
돈 더 밝히도록 되어 있습니다
통행료 내라 라고 삥 뜯잖아요

차라리 불의한 돈에 충성하라 말이죠

(눅 16:9, 쉬운)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어라. 그러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곳으로 맞아들일 것이다.
(눅 16:11, 쉬운) 그러므로 너희가 불의한 재물에도 충실하지 못하면, 누가 참된 것을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그러니 나쁜 재물 사드가 속세를 떠난 칸트의 진리가 되는 겁니다

뭐 십자가에 같이 달려 죽겠다 굽쇼

도리어 십자가 반대편에 서서 용서받아야 할 입장인
비언약으로써 들통당하는
그래서 언약이 성사가 되는

우리는 주님의 원수로써
십자가의 사랑에 대상물이 되는
원수를 사랑하는 율법의 완성인 사랑의 대상물이다 말이죠

어딜 감히 십자가에 나도 같이 죽겠습니다
끝까지 인간은 다윗 왕 앞에서 다윗왕의 원수 압샬롬을 죽였다 라고
충성과 의를 인정 받을려고 다가가지만
정작 다윗 왕의 눈물을
그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고자

자기 의를 쌓고 세우고자
자기 열심을 나타낼 뿐이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 아버지의 사랑을 쳐다볼 생각이 없는 겁니다
즉 남의 문제일 뿐이지
내 아들 내 자식의 문제는 아니다 라는 거죠

그래 그래 욥 다니엘 노아 또 누구 있습니까 모세도 나는 모세제자이다 그래 그래
엘리야도 옆에 있다 치자 말이죠

너 구원 받았다 치자
그런다 라고 니 아들은 아무리 욥 다니엘 노아가 옆에 있어도
구원이 못 되면 그거 다 허구
뜬 구름

아니냐 말이죠

그래서 사람의 구원은 헛 되다 라는 겁니다

충성 봉사 자기 의로움 쌓기

아들 죽은 아비 앞에서 백날 해 봐라 말이죠

그 어떤 것도 위로가 되는지 ~~~~~~~~~~~~


도리어 위로 받아야 할 판국인


그가 상함으로써 우리가 나음을 입는

의사 앞에 환자로 놓이는 겁니다
어딜 감히 건강한 자로
의인으로 
구원 그 이후 라는 멋들어진 구원을 논하는
배불러 터진 소리를 하냐 말이죠


모욕적인 구원도 감지 덕지해야 할 판국인

그가 상함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는
이 소식 외에는 기쁜 소식이 없는데 말이죠

마치 오늘 이스라엘 장로의 모습인
우리의 모습은

지금 예수님이 십자가에 찔려 죽는 그 앞에서
우리 아들 합격 시켜달라 라고 하는 소리와 같다 말이죠
끝까지 번제와 제사를 바치겠다 라고 우기는 이 우상이 자리 잡은 것을

주님은 이런 우상 제거하시고자
이 암덩어리를 제거하시고자
인애와 자비로써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시는
이 아버지의 눈물 덕분에 우리가 나음을 입는
저 우상 문제
죄문제
사망문제

이 사망권세 문제를 해결하셨다 라는
율법의 완성인 사랑으로 다 이루신 겁니다

우리가 달음박질 함도 아님으로써 말이죠

(롬 9:16, 개역)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이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는 하나님의 의인 사랑이 아니였으면
우리의 어두운 눈은 아무도 고치질 못했을 것입니다

무억을 봅니까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이스라엘 장로들과 우리는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라는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추호도 귀에 담아 볼려고 하지 않고

오로지 나의 뜻을 이루어 달라고 하는 이 우상 찾듯
점쟁이 찾듯 하나님을 찾고 있다 라는 이 우상이 자리잡은 곳에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 실상이 아니면 다 허상 이요 우상입니다

살아 본들 산 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옆을 봐도 좀비들 뿐입니다
먹방 보세요 인간입니까?
돈에 미친 인간들 뿐입니다
나발처럼 죽었뿌라 하지 않아도 이미 죽은 자들 뿐입니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건져 내겠습니까

선지자는 외칩니다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라꼬
다른 현실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 남겨둔 한 씨 아니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일 뿐입니다

진짜 참 현실을 볼 수 있도록
이 어두움 속에서 건져내 달라고 우는 자에게

하나님의 눈물은 이 독생자를 말이죠
내어주시기로 작정 하신
이 하나님의 뜻 외에는

(사 53:10, 개역)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다른 뜻은
인간의 뜻은 다 거짓이요 허구 일 뿐입니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

예수님이 세 번 씩이나 피와 눈물로 겟세마네의 기도를 하신 이유입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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