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로 간 아브라함의 조카 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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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30 08:05:26, 미래

소돔과 고모라에서 롯을 피신시킬때 산으로 가라 했지만
롯은 동굴로 가서 모압과 암몬 자손을 낳았습니다
산은 여기서 주님을 말하는 것이고 동굴은 그 반대의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도 육에서 벗어나 주님에게로 가야지
어리석게 다른길로 가면 안 된다고 하고
결국 롯은 자기 의식수준데로 간거라 합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롯을 의도적으로 동굴로 가게 만든것인데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것인가요


답변 22:50

산과 동굴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자발적으로 주님의 길을 갈수 있거나 육의 길을 벗어나는 길을 갈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롯은 그 길로 가는 겁니다. 주님이 등 떠밀어서 말이지요
그래서 주님은 롯을 의도적으로 동굴로 가게 만들어서
모압과 암몬 자손을 퍼트리도록 저주 받을 자들을 풍성하게 만드시는 겁니다.
그래야 그 반대인 긍휼하심의 풍성함이 빛이 나는 겁니다.
그럼으로 인해 롯은 구원받는 거죠

(벧후 2:6)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벧후 2:7)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벧후 2:8)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

여기서 그 성화론자는 벧후 2:7 말씀의 의로운 롯이라는 표현을 해석을 못합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롯처럼 된다고 협박을 했는데 롯처럼 되는 것이 구원의 길이라는 것을
그들을 꿈에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롯을 의롭다 라고 말한 것에 해석을 못하고
예를들어서 언급한 인물로 롯을 든것이 오히려 자기들이 말해 놓고 모순이 되기에
급하게 핑개대는 것이 부끄러운 구원이라고 사기를 칩니다. 구원에 무슨 부끄러운 구원이 있나요?
그런 구원이라도 받으면 대박 입니다. 자기들의 위신이 떨어질까봐 성경해석을 조작해 내는 겁니다.

일방적인 편애는 바로 그런 악의 풍성함 속에서 편애의 풍성함이 증명이 되는 겁니다.
전에 질문했던 호세아 자녀들의 부정한 이름을 짖는 것과 같은 식입니다.


2008-01-30 08:22:01, 미래

세종이란 역사 드라마에서 세종에겐 왕의 교육을 시키지만
다른 왕자들에겐 겨우 무식만 면하는 교육을 시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여서 주님을 알고 주님의 뜻데로 살아갈려면
말씀을 알아야 하니 말씀공부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들이 말씀을 알려준다고 해도 주님이 깨닫게 해 주셔야 할게 되는것이니
진정한 주님의 말씀은 주님이 성도들에게 알려주시는것인데
그걸 들은 사람은 주님이 미시면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가서 외치게 되는것 아닌가요


답변 23:02

(딤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성경 말씀은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여기서 의란 십자가 사랑 뿐입니다.
즉 교회교육이 제일 못하고 적극적으로 거부는 것이 바로 십자가 증거 입니다.

과거의 왕들은 왕 하나 빛나면 나머지는 그 왕 하나의 지혜로 혜택을 보는 겁니다.
구지 다른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없기에 한 사람에게 집중 투자가 됩니다.
왕 보다 더 지혜로우면 언제 그 왕자리에 도전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미리 싹을 짤라버리죠

서양의 왕 제도는 더 심각하다고 하더군요. 왕이 병들면 쥐도새도 모르게 암살해 버립니다.
가장 불쌍한 자 입니다. 곧 백성의 대표라는 것은 단순한 정치적인 자리가 아니라
그야 말로 백성의 대리자요 신의 대리자인 중보자로써
조금이라도 흠이 있으면 갈아치워버리는 철저한 소모품인 셈입니다.

자 그런 의미에서 말씀이라는 지혜를 습득하는 것은 주님의 뜻을 알고자 하는 마음이겠지요
그런데 이 마음이 주님의 뜻을 알고서는(십자가의 사랑) 자기유익이 되면 계속 습득을 하지만
정작 주님의 뜻이 바로 십자가의 원수가 될수 밖에 없는 습득이라면 인간들은 당장 그만 둡니다.
마치 교회 비리를 다 알아버리면 다 알아버렸다는 이유로 그 교회에 출석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말씀을 통해서 그 교회의 비리를 알려준 이유는 그 교회에서 죽어라 라는 소리 입니다.
님의 말대로 등떠밀리는 것과 주님께서 깨닫게 해 주셨다면
이사야를 예로 들면 괜히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준게 아닙니다. 보여주니까 이스라엘에게 외칠수 밖에 없고
그 임마누엘을 외치는 이사야는 자기의 운명이 그들의 손에 죽을수 밖에 없음을 알고도 넉넉하게 전합니다.
다름아닌 이스라엘의 손에 죽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지요.
이것은 이사야 개인의 문제로 끝나는게 아니라 바로 예수님의 운명을 미리 앞당겨 보여주는
성령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자 저쪽에서 주님 뜻대로 살려면 말씀을 알아야 하고 말씀공부를 해야한다 라고
그들이 말씀을 핑개로 정치를 할려고 할때에 (마치 이스라엘처럼 말이죠)

님은 오히려 말씀을 이미 알았기에 그들의 그런 취지에 말려들지 않고자
그들처럼 말씀을 핑개로 또 그런 자들의 그런 잘못된 취지다 라는 핑개로
말씀을 외면 할것이 아니라

차라리 그들의 말씀공부에 참여해서 조목조목 그들의 해석이 왜 틀렸는지
따져야 합니다. 그러면 오히려 왜 말씀 공부에 참여 했냐 라고 짜증을 내고 거부를 합니다.
님은 이렇게 말할겁니다. 말씀 공부 하자매?(사투리) 말씀 공부 하자며?
그들의 공부 내용이 얼마나 엉터리 인가를 알려주는 사랑을 나누어 줘 보세요
기겁을 하고 외면하고 다시는 참여 제발 하지 말아달라고 싹싹 빌겁니다.

(위에서 나쁜 롯으로 님을 나쁜 롯으로 협박 공갈했는데 알고보니 의로운 롯이였습니다. 즉 님을 말씀공부로써 한 수 가르쳐서 너는 나 한테 배워야해 라고 길들여 놓겠다는 수작인데 정작 나쁜 롯을 예를 들어서 님이 얼마나 나쁜짓을 하는 가를 훈계할려는 작태가 도리어 자신들이 순 거짓말쟁이라는 것이 의로운 롯 때문에 들통이 나는 식입니다. 이런 예는 성경 전체의 이야기 사건에 다 나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스캔들이라는 불륜의 지혜죠)

즉 성경공부 운운 하지만 그들이 말씀공부를 때려죽어도 하기 싫어 한다는 것을
속내를 들추어 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 못하기에 이런 취지에서 주님이 등떠미실때가 있을 겁니다.
그때가 올때까지 부지런히 말씀을 가까이 하세요. 자동적으로 외치도록 가만히 못있도록 주님이
발등에 불을 붙일 겁니다. 아무리 입다물고 싶어도 불이야 불이야 외칠수 밖에 없도록 하십니다. 앗뜨거워 앗뜨거워 주님의 사랑 태양 보다 더 뜨거워


2008-01-30 08:31:13, 미래

우리는 그 외치는 자의 소릴 듣게 되는것이고 그들이 참이든 거짓이든 상관없이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데로 겪을만큼 겪게 되는것이고 그 속에서
진정한 참빛을 보게 만드시는 그래서 나 외에는 없다로 깨닫게 하시는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왔다로 이끄시는 그런 역사를 만들어 가시는군요

님에게 쪽지 보내면서 새삼 정리하게 하시며 깨닫게 만드시는군요
오늘도 주님께 영광 돌립니다
샬롬~^^

참!! 좀전에 보낸 롯에 대해서 언급해 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답변 23:20

님의 마지막 쪽지 속에 제가 방금했던 답변의 결론으로 나왔네요
이런 우연의 일치가 있다니 참 신비롭습니다.

즉 인간의 역사는 아니요 밖에 나올수 밖에 없도록 성령님은 역사를 하시고
오로지 성령의 역사는 예수님만 옳았습니다 라고만 이미 결정해 버리고서 역사 하십니다.

아무리 성화론자들이 성경적으로 또는 거룩한 의미를 잔뜩 끌어와서 하나님의 일 이라고 운운하지만
결국 그 모든 영광은 인간들이 늘 가로채기를 해 왔음을 이미 구약에서 다 밝혔습니다.

그러니 그런 일에 속는 분이 아닙니다. 그리고 지금 신약 시대는 그런일의 출발자체도 일체 허용하지 않습니다.
모든 일을 단절 차단 분리 구분이라는 지우개 성령님의 일로써 이미 다 완성되었기에
그 완성됨만 누리고 맛보기만 할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뢰 밟는 재미만 솔솔 누릴 뿐입니다.
남들이 죽을까봐 겁이나서 못 밟고 피해가는 길을
우리도 마찬가지이지만 성령님은 우리를 질질 끌고 다니면서
그 지뢰를 밟아도 죽지 않는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와 효과만을 알도록 하십니다.
피의 의미만 남기기 위해서 우리를 매일 지뢰밭으로 인도하십니다.
나의 구원 챙기기 할려는 저런 성화론자들의 술책 따위는 헛된 맹세일 뿐이고
성령님은 내 구원에 관심 없고 오로지 예수님의 피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기 위해
지뢰밭이라는 광야 속으로 집어 넣고 물속으로 집어넣고 고난 속으로 집어 넣습니다.
넉넉히 이기는 것은 피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 피만 부각하기 위해서 십자가의 피의 용서의 풍성함을 알게 하기 위해
저주의 풍성함 속에 집어 넣습니다.

과연 그 사랑에서 끊을자 있는지 보라는 겁니다.

이것이 우리와 타협하지 않는 예수님의 일 입니다. 사람의 일과 완전 반대 입니다.

(롬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칼이랴』
(롬 8: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롬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 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롬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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