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강 사가랴 벙어리 만들기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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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 벙어리 사가랴 만들기 프로젝트(부모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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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 공부 참고용
마태복음 6 사가랴 제사장에게 나타난 새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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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사가랴 제사장 이야기는 누가복음에만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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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의심하는 사가랴 (눅 1: 18-25)

누가 복음 2공부. p18-19
교재 : 어린이 매일성경 2008년 1-2월 (고학년 4-6학년) 성서유니온 www.su.or.kr

지난 시간에 교재를 놓고 공부를 했습니다. 교재를 보면 3단락이 나오는데
먼저 살펴볼 말씀 내용이 나오고 3단락인
1 관찰하기 - 이것은 문제를 내고 맞추는 것인데 성경 구절을 보고 단어를 넣는 것이고
2 생각하기 - 교훈 즉 이 말씀의 취지를 생각하자 라는 것이고
3 결심하기 - 우리가 어떻게 말씀을 받아들일까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3번째 [결심하기]가 아니라 우리는 앞으로 맛보기 또는 누리기 로 하기로 했죠

그 이유는 결심하기를 통해서 자꾸 지키고 행할려고 합니다.
성경에는 명령어가 없습니다. 그러니 지킬것이나 행할 것은 단 한 개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밥먹을 때처럼 맛보기만 하면 됩니다.
종교꾼이라는 위선자들은 밥 먹는 것도 지키고 행하는 것이라고 우깁니다만

밥 먹고 싶도록 배를 고프게 하시는 분도 주님이지 인간이 아닙니다.

그러니 우리는 누리고 맛보는 것 밖에 없습니다.
엄마와 아빠가 이 밥을 어떻게 짖고 반찬을 맛있게 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셨는지 좋은 반찬 먹이기 위해서 아빠는 열심히 일하시고
엄마는 그 아빠의 일로 좋은 먹을거리를 사서 맛있게 요리하시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됩니다.

참고로 지난 시간에 약간 언급했는데
지난 공부 교재에 생각하기 교훈에서 세례요한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이렇다 라고 하고서
결심하기에서 너에게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뭐냐고
세례요한과 나를 연결 시킬려는 교재의 의도는 자꾸 종교영웅 만들려는
이런 책들의 잘못된 점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세례요한과 같아야 되는게 아니라 세례요한이 우리를 물에 빠뜨리는 일에
당해야 하고 순응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어떤 교인도 어떤 교회도
이런 세례요한이 행하는 일에 순응하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할수도 없습니다.

그 증거가 우리는 직접 경험으로써 격었습니다.
물에 빠져 보니 다들 아주 기분이 나쁘고 화가 났고 분하고 억울했습니다.

즉 그만큼 물에 빠뜨려짐을 당하는 것이 얼마나 억울하고 자존심 상하는 것임을
우리는 편애의 사건을 통해서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주인공이 되어버리면 우리는 더 심한 모습으로 자존심 상하게 된다는 것을
미리 앞당겨 맛베기로 조금 체험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물에 다 빠져있다 라는 것이 증명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욕심에 푹 빠져 있습니다. 이것을 인정하나요?
우리는 사랑이 추호도 없는 그런 마음 상태에 빠져 있다 라는 것을 인정하시나요?

이것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 세례요한이 세례로 물에 빠뜨리는 겁니다.

자 오늘 배울 세례요한의 아버지인 사가랴 제사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시간까지의 공부에서 자주했던 표현은 빠뜨렸다 또는 참수 물에 풍덩 이라는 의미였고

사가랴에 대해서 공부를 할때는 입을 막다. 차단하다. 벙어리로 입을 가두다 등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 사가랴의 내용을 보게 되면 누가 생각이 나는가 하면 아브라함이 생각이 납니다.

나이가 늙었고 어찌 아기 세례요한을 낳을 수 있는가 라는 등등의 표현은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자식을 주시겠다는 그 장면과 같습니다.

자 그렇다면 여러분 눈치 채셨겠지만 사가랴는 그것을 믿어야만 할까요
아니면 반드시 믿지 않아야 될까요?

그렇죠 믿지 않아야 됩니다. 그래서 믿지 못하는 방식으로만 일하신다는 증거로
입을 막아 버립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구절이 바로 교재 1단락 문제에도 나올 천사 가브리엘이 기쁜소식을 전해주는데 있어서 믿지 않았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서 반대로 생각할려고 합니다.
유대인은 우리 이방인과 달라서 환상이나 기적이나 신기한 것이 나타나면 더 잘믿는 것이 특징입니다.
기적만 보여 달라 환상만 보여 달라 보여주기만 하면 믿어주마 라는 늘 그런 자세입니다.
그런데 환상을 봤고 더군다나 천사까지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이 그것도 제사장 목사 인 사가랴가 믿지 않았다는 말은
그 어떤 믿음의 대가 라도 반드시 못 믿는 방식으로만 일한다는 뜻입니다.
왜죠? 막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쁜 소식입니다.
기쁜 소식이란 모든 사람들이 그 소식을 듣고 누구든지 기뻐할만한 소식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 기쁜소식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치 그런게 어디있어 라고
반드시 무시하는 소식이고 아무도 어떤 누구도 기뻐하는 자가 단 한 사람도 없는
모두다 기쁜 소식을 듣고도 외면 하는 그런 기쁜 소식으로만 온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소식이 기쁜 소식입니다.

그래서 아예 입을 막아 버립니다. 이 말은 주님의 기쁜 소식에 영들만이 분주히 움직이지
인간의 어떤 개입도 다 거부한다는 뜻입니다.
또 인간은 이 기쁜 소식의 일에 전혀 개입불가 라는 뜻입니다.
인간거부죠

이게 바로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 만들기 위해서
일부러 인간 쪽의 믿음이 잘 드러나는 우상을 조각하는 자였고
가장 엉터리 어설픈 믿음을 자기 쪽에서 모든 열심을 보이는 자를 세워 놓고
그런 믿음을 일일이 다 거부하시고 참 믿음이 벌리는 일에 일체 하등 도움준적도 없는
철저하게 막혀 버린 자를
믿음의 조상으로 만들었다면 누구의 공로입니까? 아브라함이 잘 믿어서 일까요?
이것을 분명히 하고자 사가랴도 아브라함 이야기와 동일하게 의도적으로 100세를 넘기우고
아내는 불임여성이고 늙었고 그 증거로 비웃었고 등등이 바로 막혔다는 증거입니다.
똑같이 사가랴에게도 막혔다는 증거로써 믿지 아니하더라 라는 표현을 쓴 겁니다.
믿음의 대가인 유대인이 설마 안 믿었겠습니까? 문제는 자기 믿고픈 대로 믿는 것이 막혀버렸고 주님이 주신 믿음은 거부하고 자기믿음만을 발산하는 것을
안 믿는다 라고 표현한 겁니다.

아무튼 사가랴는 벙어리가 됩니다. 막는 이유는 개입을 못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모든 것이 영으로만 일을 다 처리하고
사가랴는 그 일을 목격하고 그저 누리기 맛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 자기가 나설 이유 없죠
오히려 나서면 자기도 기쁜소식의 일에 보탬이 되었다고 자기자랑만 늘어 놓을 것 뻔하기에
미리 입을 막아버리는 겁니다.
엄마 아빠가 차려준 밥만 맛있게 먹기만 하고 그 은혜를 공짜로 누리기만 하면 되지
자신이 직접 밥을 만든다고 고민하고 끙끙대고 또 나중에 그런 자신을 자랑할 필요는 없는 겁니다.
주인공은 사가랴가 되면 안되기에 막아 버리고 오로지 예수님만이 주인공이기에
천사는 주인공이 되고파 안달이 난 사가랴의 입을 막아버리는 겁니다.

자 그럼 제목을 우리 갈아 치워버립시다. 말씀을 의심한게 아니라 도리어 믿고파 안달이 나 있는 상태입니다. 그럼 제목은 이렇게 하면 반대의 의미 일겁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고 싶나요 저는 이렇게 고치고 싶네요 [말씀을 이용하고픈 사가랴] 그러나 도리어 이용을 철저하게 당합니다.
육의 차단된 모습으로써 죄인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철저하게 벙어리가 되어야 합니다.
아브라함도 늘 이런 짓만 했습니다.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본능입니다. 본능
내가 주인공이기에 선악과를 따먹어서 어쩔수 없는 겁니다.
자 그럼 진짜 사랑이라면 이용하도록 내버리 두면 안되지요 그래서 막습니다. 이제 막는 이유 차단하는 이유 벙어리로 만드는 이유
또 지난 시간에 물에 빠뜨리는 이유 이제 아시겠나요?

교재를 보면 순 엉터리입니다. 믿자 안 믿겨지겠지만 이해 안되지만 믿자 라고 믿는 것을 지키고 행하자 라고 합니다. 아닙니다. 틀렸습니다. 맛을 볼려면 맛있게 차려주는 부모님만 생겨버리면 게임 끝입니다. 즉 사랑과 믿음은 내 숙제가 아니라 예수님 숙제이기에
내 외부에서 사랑과 믿음을 주시기만 하면 끝나는 겁니다. 그것을 편애 라고 하는 겁니다.
이 편애는 오직 예수님이 어린양의 피로써 십자가에 찢겨 죽으심으로만 다가오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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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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