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 주세요 주님, 제발 불쌍히 여겨주소서 (시편 5)

 

(5:1, 개역) [다윗의 시, 영장으로 관악에 맞춘 노래]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사를 통촉하소서

(5:2, 개역)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5:3, 개역)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5:4, 개역)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유하지 못하며

(5:5, 개역) 오만한 자가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5:6, 개역) 거짓말하는 자를 멸하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고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

(5:7, 개역)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인자를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경배하리이다

(5:8, 개역) 여호와여 나의 원수들을 인하여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

(5:9, 개역) 저희 입에 신실함이 없고 저희 심중이 심히 악하며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저희 혀로는 아첨하나이다

(5:10, 개역) 하나님이여 저희를 정죄하사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고 그 많은 허물로 인하여 저희를 쫓아 내소서 저희가 주를 배역함이니이다

(5:11, 개역) 오직 주에게 피하는 자는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인하여 영영히 기뻐 외치며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5:12, 개역)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 같이 은혜로 저를 호위하시리이다

 

 

(5:1, 공동) 야훼여! 아뢰옵나니 귀를 기울이소서. 내 한숨짓는 까닭을 알아주소서.

(5:2, 공동) 나의 왕, 나의 하느님이여! 살려달라 애원하는 이 소리 모르는 체 마소서. 당신께 기도 드립니다.

(5:3, 공동) 야훼여, 당신은 아침 기도를 들어주시기에 이른 아침부터 제물 차려놓고 당신의 처분만을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5:4, 공동) 당신께서 사악을 좋아하실 리 없사오니, 악인을 반기실 리 또한 없으십니다.

(5:5, 공동) 거만한 자를 당신께서는 참고 보지 못하시고 악한 짓 하는 자 모두 미워하십니다.

(5:6, 공동) 거짓말쟁이를 멸하시며 피에 주린 자, 사기치는 자를 역겨워하십니다.

(5:7, 공동) 당신의 크신 사랑만을 믿고 나는 당신 집에 왔사옵니다. 주님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당신의 거룩한 성전을 향하여 엎드립니다.

(5:8, 공동) 야훼여! 원수들이 지켜보고 있사오니 이 몸에서 죄를 벗겨주시고 당신 길을 내 앞에 터주소서.

(5:9, 공동) 저들의 말은 하나도 믿을 것이 없사옵니다. 속에는 악한 생각뿐이며 혀는 그럴듯하게 놀리지만 목구멍은 열린 무덤입니다.

(5:10, 공동) 하느님이여, 그들을 벌하소서. 제 꾀에 걸려 넘어지게 하소서. 수없이 범죄하는 자들, 주께 반역하는 무리들, 이들을 쫓아내소서.

(5:11, 공동) 당신께 피신하는 자 모두모두 기뻐하고 길이길이 즐겁게 노래하게 하소서. 당신 이름 받드는 자 모두 지켜주시고 당신 품에서 흥겹게 하소서.

(5:12, 공동) 야훼여! 당신은 의인에게 복을 내리시며 사랑으로 방패삼아 그를 지켜주십니다.

 

 

(5:1, 현대어) [괴로움 속에서 드리는 기도; 다윗의 노래. 지휘자의 지휘에 따라 관악기에 맞추어서 부르는 노래] 여호와여, 내 말에 귀기울여 주소서. 애타는 이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5:2, 현대어) 살려 달라 부르짖는 이 소리를 굽어 살피소서. 나의 왕, 나의 하나님 이렇게 주께 두 손 모읍니다.

(5:3, 현대어) 여호와께서는 아침에 내 음성을 들으시오니 아침에 내 답답한 심정을 다 말씀드리고 주께서 대답해 주시기를 기다리겠습니다.

(5:4, 현대어) 그렇지요, 주님은 못된 짓 결코 기뻐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시지요. 나쁜 일 일삼는 것들을 반겨 맞으시는 분이 아니시지요.

(5:5, 현대어) 주께서 두 눈 뜨고 쳐다보시는데 남 우습게 여기고 제 잘난체나 하는 것들 몸들 곳이나 있을까요? 하는 짓이라고는 사람들 서로 다투게나 하는 것들을 주께서는 증오하시지요.

(5:6, 현대어) 하는 말이라고는 다 거짓이요 사람 피 흘리는 일밖에 모르고 등쳐 먹는 일밖에 할 줄 모르는 것들을 주께서 그냥 두실 리 없으시지요. 정말 지긋지긋해 하시지요.

(5:7, 현대어) 주님의 사랑 한없으신 줄 아는 이 몸 이렇듯 주님 집에 찾아와 두려운 마음으로 주님 거룩한 성전에 꿇어 엎드립니다.

(5:8, 현대어) 여호와여, 틈만 보이면 나를 덮치려는 것들을 보소서. 주께서 바른 분인 줄 내가 잘 아오니 주께서 나를 이끌어 주신다는 사실을 저들도 알게 하소서. 내가 갈 수 있도록 주님의 길 닦아 주소서.

(5:9, 현대어) 저것들이 뇌까리는 말 한마디인들 어찌 믿을 수 있나요. 생각하는 것마다 못된 것뿐이고 목구멍은 열려 있는 무덤이라 혀에 발린 말밖에 할 줄 모릅니다.

(5:10, 현대어) 하나님, 저것들을 그냥 두지 마소서. 제 꾀에 넘어지게 하소서. 저토록 엄청나게 저지르는 죄를 보시고 저들을 몰아내소서. 무서운 줄도 모르고 주께 대드는 것들 아니옵니까?

(5:11, 현대어) 주께 몸 피하는 이마다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노랫소리 항상 끊이지 않게 하소서. 주님 받들어 섬기는 이, 주님만 생각해도 가슴 벅차게 하소서.

(5:12, 현대어) 여호와여, 바르게 사는 이에게 복을 내리소서. 주님 드넓은 사랑으로 감싸주소서. 방패같이 보살펴 주소서.

 

 

제목을 통해서 뭔가 다급하게 느끼지는 마음입니다.

시편 5편 전체가 마치 죽음 앞에 놓여진 상황에서 제발 살려달라고 요청하는 모습처럼

그야말로 절박합니다.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가장 끝 밑바닥의 벼랑 끝에 몰려서 나오는 소리입니다.

 

아바 아버지여 제발 하실 수 만 있다면 이 잔을 옮겨주옵소서

 

 

이런 모습은 다윗의 인생에 있어서 사울왕이 자신을 죽일려고 할때에도 나타나지 않았던 모습입니다.

 

오히려 미쁘게 든든하게 그 상황을 잘 피하고

지혜롭게 대처했기에 여유로움과 든든함이 있었습니다.

젊어서 그런 것일까요?

 

그런데 지금 다윗의 모습은 그렇게 대처했던 상황과 정반대입니다.

사울왕도 죽고 없는 상황이지 싶은데 말입니다.

젊었을때와 반대되는 늙고 힘없는 상황인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습니다만,

젊었을때의 시 인지? 늙고 나이가 들어서 적은 시기 인지를?

 

그럼에도 의아한 것은

사울왕이 그렇게 죽일려고 모든 것을 걸고 달려들었을때에도

다윗은 전혀 요동함 없이 앞만 바라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처했는데

 

이제는 더 극심한 상황이 닥쳐서 인지

마치 막다른 최종적인 순간을 맞이한 모습과 같다 라는 겁니다.

그 어떤 지혜도, 기지도, 역량도 안 통하는 순간을 맞이한

 

마치 최후의 모습에 막다뜨린 그런 모습처럼 말입니다.

 

누가 생각나는고 하니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형 에서와 맞딱뜨린 모습이 생각 납니다.

 

(32:1, 개역) 야곱이 그 길을 진행하더니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32:2, 개역)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32:3, 개역) 야곱이 세일 땅 에돔 들에 있는 형 에서에게로 사자들을 자기보다 앞서 보내며

(32:4, 개역) 그들에게 부탁하여 가로되 너희는 이같이 내 주 에서에게 고하라 주의 종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라반에게 붙여서 지금까지 있었사오며

(32:5, 개역) 내게 소와 나귀와 양떼와 노비가 있사오므로 사람을 보내어 내 주께 고하고 내 주께 은혜 받기를 원하나이다 하더라 하라 하였더니

(32:6, 개역)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가로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인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32:7, 개역)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 한 종자와 양과 소와 약대를 두 떼로 나누고

(32:8, 개역) 가로되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 하고

(32:9, 개역) 야곱이 또 가로되 나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32:10, 개역)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리를 조금이라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32:11, 개역)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 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하옴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냄이니이다

(32:12, 개역)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정녕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32:13, 개역) 야곱이 거기서 경야하고 그 소유 중에서 형 에서를 위하여 예물을 택하니

(32:14, 개역) 암염소가 이백이요 수염소가 이십이요 암양이 이백이요 수양이 이십이요

(32:15, 개역) 젖나는 약대 삼십과 그 새끼요 암소가 사십이요 황소가 열이요 암나귀가 이십이요 그 새끼나귀가 열이라

(32:16, 개역) 그것을 각각 떼로 나눠 종들의 손에 맡기고 그 종들에게 이르되 나보다 앞서 건너가서 각 떼로 상거가 뜨게 하라 하고

(32:17, 개역) 그가 또 앞선 자에게 부탁하여 가로되 내 형 에서가 너를 만나 묻기를 네가 뉘 사람이며 어디로 가느냐 네 앞엣 것은 뉘 것이냐 하거든

(32:18, 개역) 대답하기를 주의 종 야곱의 것이요 자기 주 에서에게로 보내는 예물이오며 야곱도 우리 뒤에 있나이다 하라 하고

(32:19, 개역) 그 둘째와 셋째와 각 떼를 따라가는 자에게 부탁하여 가로되 너희도 에서를 만나거든 곧 이같이 그에게 고하고

(32:20, 개역) 또 너희는 말하기를 주의 종 야곱이 우리 뒤에 있다 하라 하니 이는 야곱의 생각에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으리라 함이었더라

(32:21, 개역) 그 예물은 그의 앞서 행하고 그는 무리 가운데서 경야하다가

(32:22, 개역)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32:23, 개역)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네며 그 소유도 건네고

(32:24, 개역)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32:25, 개역)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

(32:26, 개역)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32:27, 개역)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32:28, 개역)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32:29, 개역) 야곱이 청하여 가로되 당신의 이름을 고하소서 그 사람이 가로되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32:30, 개역)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32:31, 개역)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 환도뼈로 인하여 절었더라

(32:32, 개역) 그 사람이 야곱의 환도뼈 큰 힘줄을 친고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환도뼈 큰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

 

 

원수에게 양사방으로 철저하게 갇혀 버려서 이제는 더 이상 피할 곳이 없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 원수가 다름 아닌 자기자식입니다.

곧 자기자신의 분신이기에 결국은 자신인 겁니다.

 

악의 보편성, 원수의 보편성 앞에서 한치도 벗어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겁니다.

철저하게 갇혀버린 증거인 겁니다. 그래서 비참함을 외치는 겁니다.

그것도 아침에

눈물이 마실 음료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심각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축복 달라고, 건져달라고, 저주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밤새도록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겁니다.

얍복강가에서 뭐든지 붙잡고 제발 살려달라고 합니다.

죽게 되었으니 이 벼랑끝으로 몰린 삶

이 불쌍하기 짝이 없는 자를 돌아봐달라고 애걸복걸 하는 겁니다.

 

그래서 건지는 방법이 환도뼈를 부러뜨리는 겁니다.

할례, 마음판의 할례. 자기부인 즉 성령입니다.

단절이라는 환도뼈 부러뜨리기입니다.

육의 차단입니다.

 

재원씨가 질문을 하나 했습니다.

 

Q) 예수님을 기쁘시게 할수있나요?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이란 뭐죠?

 

A) 우리는 예수님을 기쁘시게 못합니다.

다만 주님이 마련한 완료된 기쁨을 누리면 됩니다.

 

주의 이름으로 사탄을 물리치니

사탄이 떨어지는 것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또 자신도 기쁘게 할 줄 알았는데

나는 너를 도무지 모른다 라고 하십니다.

 

그런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의 이름이 생명책이 기록된 것으로 기뻐 하라 고 하십니다.

 

기쁨이란 공유적인 의미 입니다.

혼자만의 기쁨은 쾌락 욕망이지만

함께 기뻐하는 것은 주이상스(더 나은 욕망)인 거죠.

그렇기에 더 나은 기쁨을 함께 공유하는 기쁨이어야 합니다.

즉 함께 공유한다는 것은 관계성입니다.

 

주님의 기쁨은 결국 함께 공유하는 관계성이기에

혼자만의 기쁨인 사탄을 주의 이름으로 물리치는 것으로 기뻐함이 아니라

그런 원인 있는 결과가 아니라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죄사함 받은 (4)

창세전에 나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원인 없는 결과로써의 기쁨이

더 나은 기쁨이다는 겁니다.

 

Yun Jin Park, 최일규님과 전용열님이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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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

 

전쟁의 상태 상황에서 적을 물리치는 기쁨 보다 가장 기쁜 것이 없다.

 

그런데 적이 무너지는 기쁨 보다 더한 기쁨이 있다고 예수님이 주장하신다.

 

바로 예수님이 친히 마련하신 용서

곧 적군을 물리침 보다 더한 기쁨은

적이 아닌 나의 죄문제, 원수됨의 속성을

이미 창세전에 용서하시고자 작정하셨다는 생명책에 기록하심이다.

 

그래서 빌라도를 물리쳐달라는 요청을 거부하시고

나도 빌라도 손에 죽으러 왔다고 하신다.

 

주님의 관심사는 유대인의 원수 빌라도가 아닌 나의 원수됨을 용서하시겠다는

 

더 이상 미흡(미완료)하지 않은 또렷한 용서를 준비하시고 다 이루심이다.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나를 꾀더냐?

 

고로 신앙생활 종교생활 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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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 할 필요가 없다고 하니까 또 오해할까봐 보충하면

신앙생활 안 할 위인이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모조리 다 신앙생활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자본주의는 돈을 사랑해야만 하듯이 말이죠.

 

신앙생활을 포기하는 신앙생활을 하라는 거죠.

즉 신앙생활 실패를 하라는 겁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신앙의 대상물이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신앙생활을 누리시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믿음이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신앙생활은 마귀를 끌어들일수 있지만
인간의 신앙생활은 마귀를 끌어들일수가 없습니다. 안 보이기 때문입니다.
즉 사건을 만들어 낼수 없다는 겁니다. 종말의 사건 말입니다.)

 

즉 인간의 믿음은 다 거짓이다 라는 뜻입니다.

 

모세가 갑자기 뜬금없이 나타나서 제발 예수님 죽어 주시옵소서 라고 합니다.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합니다.

살려 달라고 합니다.

 

아니 죽은 자가 천년 만에 변화산에 나타나서 기껏 하는 소리가 제발 살려주세요 라고 합니다.
천년 만에 나타나서 하는 소리 딱 한마디가 그렇다 라는 겁니다.

 

모세 조차 실패한 자 이라는 겁니다.

유대인은 그것도 모르고 실로암소경 사건에서
자신들의 신앙이 거짓으로 판명이 나니까

인정하기 싫어서

너는 예수 제자가 되어서 그렇지?

나는 예수 보다 더 큰 모세 제자야 라고 합니다.

모세 조차도 실패한 줄도 모르고 말입니다.

 

모세 조차도 예수님께 제발 살려주세요 라고 하는 줄 모르고서 말입니다.


모세 보다 더 큰 이가 나타난 줄도 모르는 겁니다.
 

실패해야 예수 안에서 이미 승리한 자인 겁니다.

그래서 모세는 변화산에 뜬금없이 나타나서 제발 예수님 죽어주시옵소서 라고 제발 살려주세요 라고 한 겁니다.

 

그 정도로 최종적인 심판 곧 종말과 맞딱뜨린 겁니다.

 

죽음과 맞딱뜨린 다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요?

인간의 삶에서 죽음이란 끝입니다.

 

심지어 죽었던 모세 조차도 변화산에서 나타나서 그 끝의 생생함을 증거합니다.

인간의 끝 보다 더한 끝인 종말의 종말, 죽음의 죽음이 바로 예수님의 죽음을 말입니다.

 

그런데 인간 인생의 그 끝이 전혀 예상치 못하는 순간에 찾아와 버리면

죽음 보다, 죽음이 주는 파장으로 인해 먼저 미쳐버릴 것이다는 겁니다.

즉 증상이, 죽음의 증상이 내 몸에 나타난다는 겁니다.

 

두려움 공포 불안 그리고 마음의 병 정신의 병

육체의 병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몸이라는 보호막인 집은 와르르 무너지는 겁니다.

 

늙어서? 다들 예상하는 순간에?

 

아니지요 전혀 무너지는 건물이라고 예상치도 못했는데

 

인간 자신의 몸 신체가 영생불멸을 꿈꾸듯이 든든한 벽돌집이,
절대 무너질 리가 없는 하나님의 집인 성전이 무너지는 겁니다.

 

애굽의 성전 피라미드가 10가지의 전혀 예상치 못한 것에 의해서 말입니다.

마치 예루살렘 성전이 헐어버리는 것처럼 맓입니다.

마치 베드로 자신이 전혀 예상 못한 닭의 울음에 의해서 와르르 무너지는 겁니다.

 

그 실패가 베드로를 살리는 겁니다.

 

누가 일으킨 사건일까요

 

모든 육체를 헐어버리는 자가 누구인가 말입니다.

모든 육체를 못 박는 자가 누구냐 말이죠?
 

죽음 보다 더한 죽음

 

곧 개인의 죽음이 아닌 모든 인간. 모든 아담의 죽음을 구체화 하는

모든 육체를 헐어버리는 십자가 라는 걸림돌 껄끄러운 지헤 불편하고 불쾌한 복음인 십자가가

제대로 된 할례, 마음 판의 할레, 곧 단절로써

성령으로 돌아가게 한다는 겁니다.

 

인간이 허물고자 달려들었을 때 곧 사울왕이지요. 다윗은 전혀 요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랬던 다윗이 벌벌 떱니다.

제발 살려달라고 합니다.

 

여유로운 아침을 보내는 것이 인생인데

아침을 확기차게 보내고자 운동을 하고

하루의 호흡을 상쾌하게 마시는 때가 아침인데

 

아침부터 초상집처럼 제발 살려달라고 합니다.

하루의 일과 처음을 눈물로 말입니다.

탄식으로 시작합니다.

 

시작자체를 상실해 버린 시작이 없는

종말이 시작이 되어 버리는 겁니다.

 

평상시의 아침이 아니다는 겁니다.

아침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라는 식인 겁니다.

지금 나에게 죽음과 심판과 저주가 닥쳐 버린 이상

아침이 뭐가 새로우냐 라는 겁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이상

아침은 더 이상 아침이 아닌 새로움이 아닌

죽음의 연장이다는 겁니다.

그 정도로 심각함이 덮쳤다는 겁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이스라엘이라는 안전빵에서 그 안전이 전혀 소용이 없는

심판이 나에게 이유없이 덮쳤구나

 

제발 살려주세요 주님 낭떠러지에 몰려 이제 죽임 당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잠에서 눈을 뜨자 마자 제발 살려달라고 할 정도의 상황은

완벽한 인생의 끝 마무리에서만 일어날 일이다는 겁니다.

그 종착역에서 지금 눈뜨자 마자 외치는 겁니다.

아침이 더 이상 아침이 아니다는 겁니다.

죽음의 시작이요 저주의 시작이요 심판의 시작이다는 겁니다.

 

남이 아닌 여호와가 나를 죽이러 왔다는 겁니다.

간밤에 주의 얼굴을 보고도 안 죽었다고 안심하던 샬롬을 외쳐야 할 그 아침에

샬롬 도 통하지 않는 심판이 임했다는 겁니다.

 

이유도 원인도 없이 그냥 그 심판 아래에 놓여져서 죽어야만 하는 결과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어서

 

제발 살려달라고 합니다.

 

이번에 불이 났는데 새벽도 아니요 아침입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시간이였다는 겁니다.

 

마른 하늘에 날 벼락입니다.

 

그래서 제발 살려달라고 합니다. 아침에

불 속에서 우리는 살려달라고 외쳐야 합니다.
주의 인자하심을 베풀어 달라고 외쳐야 합니다.

아무도 아침에 불 속에 있어야 함이 마땅함을 느끼지 못하는 그 상황 속에서 말입니다.

 

찬양은 갈급한 상태를 표현하는 겁니다.

부르짖음은 어떤 사태에 의해서 무능함을 표헌하는 겁니다.

 

주께서 이스라엘을 부르짖게 만들려고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고자

 

애굽왕을 강퍅케 하시는 겁니다.

 

단지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듣고자 말입니다.

 

아기엄마는 아기가 밥달라고 울 때 너무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그때를 우리는 다 잊어버렸기에

주께서 부르짖게 만드시는 겁니다.

 

그래서 모세는 변화산에 나타나서 단지 이 말 한마디만 외치고서 사라집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예수님. 제발 죽어주셔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라고 말입니다.

 

아침에 말입니다. 남들에게는 시작의 때이지만

성도에게는 마지막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놀랍게도 아침에 인자하심을 베풀어 달라고 합니다.

 

인자가 아니면, 법대로 해버리면 다 죽어야 하는 상황이다는 겁니다.

누가 아침부터 이런 상황임을 직시하고 기도하겠습니까?

 

그 유명한 아침에 인자하심은 밤에는 성실하심을 이라는 내용이

지금 보니 정말 정말 살벌하기 짝이 없는 내용이였습니다.

 

(59:16, 개역)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주는 나의 산성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심이니이다

(90:14, 개역)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92:1, 개역) [안식일의 찬송 시] 지존자여 십현금과 비파와 수금의 정숙한 소리로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나타내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

(92:2, 개역) 지존자여 십현금과 비파와 수금의 정숙한 소리로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나타내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

(92:3, 개역) 지존자여 십현금과 비파와 수금의 정숙한 소리로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나타내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

(143:8, 개역) 아침에 나로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나의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받듦이니이다

 

아침에 인자하심을 베풀지 않으면 저 죽어요 주님! 뭐하세요 저를 빨리 구해주세요 저 죽는다니깐요? 저는 철저하게 갇혔어요!! 이라고 합니다.


성실함이란 나의 행함, 나의 열심을 다 삭제해달라는 뜻입니다.

나의 죄악을 도말해 주소서 라는 겁니다.

뭘 해도 다 죄 뿐이다는 겁니다.

7번 용서 하겠다는 그 죄악도 도말해 주시고

율법을 4배나 갚으라 도 도말해 달라는 겁니다.

그것이 보통 심각한 죄임을
세번씩이나 반복합니다. 시편 92편 1, 2, 3
제발 이 아침에 살려달라고 세번씩이나 반복 합니다. 단절 단절 단절

그것도 안식일날 쉼이 있는 날인데

쉼이 있는 평안의 날을 심판의 날 속에서 누리는 겁니다.
내가 지키는 안식일이 아닌 안식의 주인이 몰고온 안식을 누리기 위해
심판의 불 속에서 급히 아들에게 입맞추고자 진노 속에서 안식을 비로소 누리는 겁니다.
 

아기가 아침부터 배고프다고 웁니다.

엄마 밥 주세요

젖 주세요

 

엄마가 젖을 물려주지 않으면 저는 죽어요 라고 합니다.

 

그것도 아침부터 말입니다.

뻔뻔스럽기 짝이 없지요? 지가 뭐 한게 있다고 밥 달라고 우냐 말이죠.
그런데 예수님이 그 소리 듣고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겁니다.

 

다윗은 지금 그런 상황이다는 겁니다.

사울왕이 죽일려고 달려들었을때에도 전혀 요동 없이 당당했던 다윗이

 

얼마나 지금 이 시편 5편에서는 초라하기 짝이 없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아침부터 인자하심을 베풀어 달라는 겁니다. 우는 자 입니다.
아침 부터 울부짖고 있습니다. 다급하게 부르짖고 있습니다.
얼마나 다급하면 이렇게 부르짖게 되느냐 말이죠?

 

저마다 그런 다윗을 보고 비아냥 거리고 놀려먹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소리 보다 더 기쁜 소리가 없다고 하십니다.

 

그래 그래 인자함을 베풀어 주마

그것 때문에 내가 있자나 자나 자나 있잖아 라고 하십니다.

 

진짜 원수는 사울왕이 아닌

다윗 속에서 낳은 자식을 통해서

원수는 나 자신 이였음을 보고 외치는 겁니다.

아침에 제발 살려주세요

제발 인자하심을 베풀어 주옵소서 라고 ~~~~~

 

이것이 전능자 예수님의 믿음의 대상물이 외치는 아침에 부르짖는 내용입니다.


(시 92:1, 개역) 『[안식일의 찬송 시] 지존자여 십현금과 비파와 수금의 정숙한 소리로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나타내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

(시 92:2, 개역) 『지존자여 십현금과 비파와 수금의 정숙한 소리로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나타내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

(시 92:3, 개역) 『지존자여 십현금과 비파와 수금의 정숙한 소리로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나타내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

(시 92:4, 개역) 『여호와여 주의 행사로 나를 기쁘게 하셨으니 주의 손의 행사를 인하여 내가 높이 부르리이다』

(시 92:5, 개역) 『여호와여 주의 행사가 어찌 그리 크신지요 주의 생각이 심히 깊으시니이다』

(시 92:6, 개역) 『우준한 자는 알지 못하며 무지한 자도 이를 깨닫지 못하나이다』

(시 92:7, 개역) 『악인은 풀 같이 생장하고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흥왕할지라도 영원히 멸망하리이다』

(시 92:8, 개역) 『여호와여 주는 영원토록 지존하시니이다』

(시 92:9, 개역) 『여호와여 주의 원수 곧 주의 원수가 패망하리니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흩어지리이다』

(시 92:10, 개역) 『그러나 주께서 내 뿔을 들소의 뿔 같이 높이셨으며 내게 신선한 기름으로 부으셨나이다』

(시 92:11, 개역) 『내 원수의 보응 받는 것을 내 눈으로 보며 일어나 나를 치는 행악자에게 보응하심을 내 귀로 들었도다』

(시 92:12, 개역)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발육하리로다』

(시 92:13, 개역)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하리로다』

(시 92:14, 개역)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여』

(시 92:15, 개역) 『여호와의 정직하심을 나타내리로다 여호와는 나의 바위시라 그에게는 불의가 없도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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