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왕(죽은자, 과부, 죄인)의 기능(저분만이 옳은 의사입니다) (마 1: 6-11)
죽은 자로 만들어 다시 살리는 의의 족보
(마 1:6, 개역)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마 1:7, 개역)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사를 낳고』
(마 1:8, 개역) 『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마 1:9, 개역) 『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고』
(마 1:10, 개역)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고 므낫세는 아몬을 낳고 아몬은 요시야를 낳고』
(마 1:11, 개역)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를 낳으니라』
(마 1:6, 새번역) 『이새는 다윗 왕을 낳았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였던 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마 1:7, 새번역)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삽을 낳고,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아사'』
(마 1:8, 새번역) 『㉣아삽은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아사'』
(마 1:9, 새번역) 『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고,』
(마 1:10, 새번역)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고, 므낫세는 ㉤아모스를 낳고, 아모스는 요시야를 낳고,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아몬'』
(마 1:11, 새번역) 『예루살렘 주민이 바빌론으로 끌려갈 무렵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들을 낳았다.』
(마 1:17, 새번역) 『그러므로 그 모든 대 수는 아브라함으로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으로부터 바빌론에 끌려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빌론으로 끌려간 때로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이다. / ㉧또는 '메시아'. 그리스도는 그리스어이고 메시아는 히브리어임. 둘 다 '기름부음 받은 사람'을 뜻함』
(마 1:18, 새번역) 『예수 그리스도의 태어나심은 이러하다.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나서,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마 1:19, 새번역)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서 약혼자에게 부끄러움을 주지 않으려고, 가만히 파혼하려 하였다.』
(마 1:20, 새번역) 『요셉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주님의 천사가 꿈에 그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네 아내로 맞아 들여라. 그 태중에 있는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 1:21, 새번역)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것이니, 너는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 ㉨예수는 '주님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을 지닌 히브리어 이름 여호수아의 그리스어 형태』
(마 1:22, 새번역)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은, 주님께서 예언자를 시켜서 이르시기를,』
(마 1:23, 새번역)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이다" 하신 말씀을 이루려고 하신 것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 ㉩사 7:14(칠십인역)』
지난 시간에 누가 복음 20장을 통해서
과부와 부활을 언급했습니다.
즉 과부는 남편이 없는 자이다는 거죠
죽은자 라는 겁니다.
책임져줄 남편이 없기에 죽은자와 방불하다는 겁니다.
이런 고아 과부 나그네에게 기쁨을 행복을 안겨주는 자가 바로 공적인 자유를 이루는 공의 정의가 되겠지요
공무원은 바로 이런 공적인 자유를 담당하는 자입니다.
선지자도 마찬가지이구요
왕은 특히 그러합니다.
다른 나라 왕은 갈취자입니다.
(삼상 8:10, 쉬운) 『사무엘은 왕을 달라고 한 사람들에게 대답했습니다. 사무엘은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모두 전해 주었습니다.』
(삼상 8:11, 쉬운) 『사무엘이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을 다스릴 왕을 달라고 하는데, 그 왕은 이런 일을 할 것이오. 왕은 여러분의 아들을 빼앗아 갈 것이고, 그 아들을 데려다가 자기 전차와 말을 몰게 할 것이오. 여러분의 아들은 왕의 전차 앞에서 달리게 될 것이오.』
(삼상 12:17, 쉬운) 『지금은 밀을 거두어들이는 때요. 내가 여호와께 기도드려 천둥과 비를 보내 달라고 하겠소. 이제 여러분은 왕을 달라고 요구한 것이 여호와께 얼마나 나쁜 일이었나를 알게 될 것이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방나라의 왕제도를 가지고 와서 결국은 왕을 세우게 되는 거죠
그럼 선지자는 이 왕을 고발하는 자로써
왕이 섬기는 직분 곧 의의 직분으로써 섬기는 공적인 자유를 외치는 자이어야만 하지만
절대로 그럴 리가 없기 때문에
반드시 이 왕을 죄인의 괴수로 만들어 버리는 겁니다.
나단 선지자가 다윗에게 그 놈이 바로 너다 라고 해 놓고서는
주님은 이미 벌써 당신을 용서했다고 합니다.
즉 용서 했다는 말은 너는 이제 이스라엘 왕이 아니다를 외쳐야 하는 죄인이고
그런 죄인을
죽은자를 다시 살리는 의의 왕이 저분이시다 라고 외쳐야 하는 죄인 중의 괴수가 되었다는 겁니다.
아무리 다른 나라와 다른 왕이어야만 하지만
왕 자체가 아무리 율법으로 온 몸에 도배를 해도
결국 다른 나라의 왕처럼 과부를 등쳐먹기는 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왕 자체도 결국 애굽처럼 우상화 되는 겁니다.
성전도 우상화 되고
그 성전을 차지하고자 하는 왕들도 모조리 다 우상화
곧 울리는 꽹과리인 애굽을 마음에 품게 되는 겁니다.
이스라엘 마저도 다른 개같은 이방 나라의 왕들과 다를바 없는 등쳐먹는 삯꾼인데
이것을 해결할 방법이 뭘까요?
어차피 율법 지켜서 의를 공의를 자유를 얻을 방법은 이제 없습니다.
단절 되어 게임 오바 되었다 말이죠
다윗도 안되는 판국인데 말이죠
그 방법이 바로 부조리입니다.
주님 쪽에서 율법을 거스리는 겁니다.
즉 예외를 만드시는 거죠(내부숙제 없고 외부 바깥에서 숙제를 다 해버린 결과물을 선물로 주셔야 함 그것이 바로 믿음)
율법 외에 한 의가 오면 된다 말이죠
이제부터 언약이 바뀌게 됩니다.
모세언약이라는 율법에서
다윗언약이라는 새언약으로 말이죠
그럼 다윗언약은 뭐냐?
로마서 4장에서
율법이 가입 되기전에 아브라함이 불법을 행하고도 사함을 입은 그 의를
율법 외에 한 의를 땡겨오는 겁니다.
그 의를 그 한 의를 믿음이라고 합니다.
즉 아브라함은 율법인 모세시대를 뛰어넘어서 예수님의 때를 봤다 말이죠
그 예수님이라는 의, 한 의 때문에
아브라함은 졸지에 죄인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즉 죽은자가 되더라 말이죠
그 죽은 자가 된
마치 고아 과부 나그네와 같이 된 자가
누구를 쳐다 본다?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그 믿음을 쳐다보더라 말이죠
물론 대신 이삭의 죽음으로 인해 어두운 눈이 뜬 것이지
눈 뜨도록 죽는 이삭의 희생제물이 아니였다면
무슨 수로 예수님을 보겠냐 말이죠
그래서 믿음의 조상이 된 겁니다.
이삭의 죽음으로 말이죠
그 이삭의 죽음이라는 맛배기(샘플, 그림자))가 ( [맛보기]가 바른말)
원본이 바로 예수님의 죽음인 십자가 라는 의(사랑, 실상)이였다는 겁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울리는 꽹과리만을 잔뜩 모을수 밖에요
그러니 행함이 있는 믿음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행동을
이삭 죽음 따로 있고
아브라함 자기는 죽이는 칼 쥔 자로 따로 각자가 있는게 아니라
그 반대로 이삭의 죽음이야 말로 죽은 자신 아브라함을 살리는 길이라는
믿음을 본 것이다 말이죠
자꾸 믿음을 종교성에서 말하는 신념을 말하는데 아닙니다.
그런 신념 또한 종교요 우상이요 666(함량미달, 무게가 모잘라)이지
예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종교적인 것이다 말이죠 역시나 울리는 꽹과리
대로에서 큰소리로 기도하는 식이다 말이죠
믿음이란 의를 보여주는 겁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다시 살거든요
그래서 의인은 죽은자가 되는 겁니다.
자기 믿음을 보여주고자 함이 아닌 (종교에서의 믿음이란 마약인 속임수이다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느냐)
그건 종교요 666이고
그 반대인 예수님이라는 의 곧 사랑을 말하고자
죽었다가 다시 사는 3일이라는 간극을 외치는 것이 믿음이다는 겁니다.
그야 말로 예수님은 종교의 달인인 최고의 종교꾼들에게
이 십자가 라는 어리석고 미련한 지혜인 이 십자가를
하나님의 저주를
대신 매 맞음을 의 라고 저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이 십자가가 저들에게 목에 걸린 까시처럼 (도저히 흉내조차 낼수 없기에 실상이기에 그림자로 사기친 것이 다 들통남)
거리끼는 걸림돌이 되어버린 겁니다. (이 가시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기에 곧 율법에 두면 율법을 지켜도 이 올무에 다 걸려드는 겁니다 미리 심판받아 우는 자는 복 되는 거죠)
(롬 9:33, 개역)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그러니 의를 쌓을때마다
십의 일조를 낼때마다
이레에 두 번 금식할 때 마다
안식일을 지킬때마다
졸지에 십자가가 떼굴 떼굴 굴러와서
그것을 자기가 쌓은 자기 의를 박살을 내서 모조리 다 무효화 시켜버리니까
의를 쌓을수가 없으니
이 십자가가 미워 죽을 수 밖에 없도록 하는 것이 바로 믿음이다 말이죠
종교에서 말하는 신앙과 전혀 딴판이지요???? 신념은 자기를 투사해서 자기가 자기를 믿는 겁니다
그 자아 우상숭배종교가 자아에서 가정 가정에서 사회 사회에서 국가종교로 모조리 종교에 미쳐 있는 겁니다 마약
그러니 아브라함 본인이 이 십자가의 믿음 즉 십자가가 주체가 되어 십자가가 믿음을 발산함에 있어서
졸지에 아브라함은 죽은자가 될 수 밖에 없는
과부가 되어버리는 겁니다.
마치 불임여성처럼 단절된 과부처럼
죽은자 말이죠
이 죽은 자를 아브라함 본인이 본인 믿음으로
본인이 믿음의 조상이 되어서 살리는게 아니라
그 반대로 아브라함이 졸지에 죽은자가 되어서
이런 아브라함을 누가 다시 살리는지를 보여주도록 되어 있는
이 십자가의 사랑이 하시는 일에 목격자가 될 뿐이다는 겁니다.
그래서 믿음에 의해서 살려냄을 당한 처음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이다는 겁니다.
잃어버렸다가 되 찾는
그러니 노아는 믿음의 조상이 아니지요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는 의 가 덮쳐지는 이 과정이 필요가 없이
처음부터 은혜를 입은 자이기 때문에
죽은자가 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믿음의 적군을 들통내는 설계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노아 언약입니다.
은혜에 대한 무시를 거룩한 전쟁의 대상으로 삼고
믿음의 군사 처음 타자로써 그 대상을 공격하는 겁니다.
그럼 믿음의 무기는 뭐냐?
바로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는 의를 무기로
곧 회개죠
이 회개로 전쟁을 치르는 것이 이스라엘 군사입니다.
다른 나라는 창과 칼을 의지해야지만 되는데
이스라엘은 그 반대로 그런 힘과 권세가 되는 울리는 꽹과리가 아닌
이런 나 같은 죄인도 용서하시는 사랑입니까 라는 이 의(사랑)
이 주님의 인애와 자비만을 전쟁 무기로 삼게 되니
이건 뭐 죽으라는 소리와 마찬가지이다 말이죠
네 맞습니다. 죽으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미 벌써 죽어있었다 말이죠
살아있었다고 착각마라 말이죠
그럼 죽었었지만 주님의 의의 목격자로서 그 동안 살려주심으로써 산 것이기에
의만 외치면 되는 겁니다.
그러니 이건 철저하게 관계 개념입니다.
나를 죽이시는 분은 주님 밖에 없었고 죽은자로 만드시는
잃어버림 말이죠
그리고 다시 나를 살리시는 분도 주님 밖에 없었다는
되 찾음
그러니 다른 나라 사람들은 이게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겁니다.
마치 십자가 상에 두 강도처럼 둘로 갈라지는 겁니다.
주여 당신의 나라에 저를 기억하소서 라고
말하기 위해서 한 쪽 강도는 평생을 강도로 살아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고 다시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살고자
오냐 오늘밤 너와 내가 낙원에 있으리라 라고 한 쪽 강도가 말한다 말이죠
옆에서 듣고 있는 다른 강도는 기가막힙니다.
이 무슨 놈의 귀신 시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냐 말이죠
혹시나 예를 들어 그 사람이 유대인이였다 해도
종교 꾼 중의 종교의 달인이였다 해도
죽는 마당에 무슨 놈의 신앙이든 믿음이든 무슨 소용이 있냐 말이죠
더군다나 하나님도 아닌
이단 예수에게 당신의 나라에 저를 기억해 달라니
거기에 또 맞짱구를 쳐주면서 오냐 오늘밤 너와 내가 낙원에 있다니
참 이단들의 소리는 죽는 순간 까지도 들어야하니 얼마나 싫겠냐 말이죠
구원자라메? 구원해봐 구원해 보라니깐 ~~
(눅 23:39, 개역)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눅 23:40, 개역)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눅 23:41, 개역)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눅 23:42, 개역)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눅 23:43, 개역)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지금 봐도 누가복음에서 언급하시는 이유는 그야말로 유대인을 애굽으로 취급해서
이 애굽으로 부터의 탈출로 이방인에게 구원이 출애굽 출유대를 보여주고 있으니
그야말로 이 이방인이 아브라함처럼 죽은자가 되어
잃어버린 자가 되어
반드시 다시 되찾겠다는 이스라엘의 기능을 보여주고 있지 않냐 말이죠
이것이 의의 이름인 예수님 이름의 열심으로 섬기심이다 말이죠
자 그럼 오늘 언급 되는 이스라엘 왕 즉 남유다 왕들이지요
물론 북이스라엘 왕들에게도 선지자가 딸려 있습니다.
그리고 이 왕들 이후에 더 이상 왕 족보는 없어요
바벨론 포로 이후에 말이죠
그러니 왕제도는 처음부터 무대뒤로 누락 되기 위해서 있었다는 겁니다.
교회도 마찬가지 이다 말이죠
그럼 이스라엘 왕의 기능은 누구를 외치기 위해서
죽은자
죄인
잃어버린 자가 되는
과부처럼 되어서
반드시 우상과 역여져서 부활을 외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흔히 종교에서 말하는 부활 말고요
예수님을 외치도록 되어 있습니다.
자 그러니 이스라엘 왕들에게 선지자가 따라 붙습니다.
이 선지자가 이 이스라엘 왕들 하나 하나를 죽은자로 만드는 겁니다.
죄인 만드는 겁니다.
주님은 죄인을 부르러 왔지 의인을 부르러 온게 아니거든요
그러니 죄인으로써 이스라엘 왕들이 나 아니요 저 분이 이스라엘 왕이십니다를 외치도록 되어 있습니다.
시아버지 유다처럼 찬양자가 된다 말이죠
위의 그림을 참고하시고 제가 인터넷 검색해서 어설프게 찾은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다윗 – 나단 선지자, 그리고 3희생 번트 밧세바, 우리야 장군, 이름없는 아기 솔로몬 형
2 솔로몬 - 선지자 아히야
3 르호보암 – 스마야 선지자 (왕상 12:22)
4 아비야 – 3년 동안 왕. 짧음
5 아사 - 선지자 아사랴, 선지자 하나니
6 여호사밧 - 미가야 선지자 (엘리야 엘리사)
7 요람 - 선지자 엘리사
8 웃시야 – 스가랴(스가랴 서의 저자 스가랴와 다른 인물), 아모스 선지자, 이사야 선지자
9 요담 – 이사야 선지자
10 아하스 – 이사야 선지자
11 히스기야 – 이사야 선지자
12 므낫세 – 왕 중에 가장 악한 왕 이사야를 톱으로 죽였다는 설이 많음
13 아몬 - 부전자전
14 요시야 – 스바냐, 예레미야 선지자
15 여고냐 – 예레미야 선지자
또 찾은 도표
(마 1:7, 개역)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사를 낳고』
(마 1:8, 개역) 『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마 1:9, 개역) 『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고』
(마 1:10, 개역)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고 므낫세는 아몬을 낳고 아몬은 요시야를 낳고』
(마 1:11, 개역)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를 낳으니라』
(마 1:17, 개역) 『그런즉 모든 대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러라』
그래서 17절로 인해서 다윗부터 바벨론 이거 라고 했기에
다윗을 집어넣으면
즉 왕으로써의 출발이고 바벨론에 함락 당하면 아무리 왕이어여도
왕은 끝난 거죠
그러니 정작 중요한 것은
어차피 왕제도는 누락되고 사라질 직분으로써
정작 누구를 외치도록 되어 있는 기능이냐 말이죠
진짜 왕은 저분이요 저는 가짜 왕입니다 라고 해야 할 것 아니냐 말이죠
왜 사라지니까
그리고 자신들은 도리어 죄인으로써
죄인을 부르러 온 구원자를 외치고 있는 환자이지
건강한 자로서는 절대로 의사를 못 외치는
이스라엘 왕 다움을 갖추어서 하나님을 못 외친다 말이죠
의를 못 외쳐요
십일조 내고 이레에 두 번 금식해서 거룩한 하나님을 못 외쳐요
그 반대죠
저 세리와 같지 않게 해주셔서 하나님께 감사합니다가 아니다
도리어 매국노 세리가 되어서 심판의 주를 외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자 그럼 이스라엘 왕들 하나 하나에게 선지자가 따라 붙는다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죄인을 부르러 오신 구원자를 말하기 위한 징계의 관계를 외치는 겁니다.
곧 세리처럼 심판 주 이지요
그런데 건강한 자에게는 더 이상 아버지의 간섭이 없는 사생아처럼
의인을 부르러 온게 아니다 말이죠
자 선지자가 하나 하나에게 붙었다는 것은
심판주로써 죽은자로 만들겠다는 겁니다.
잃어버린자로 만든다는 겁니다
징계로서 심판으로써 이미 벌써 죽은 겁니다;.
그 죽은자를 어떻게 살리시는지
그 의를 보라는 겁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왕들은 이스라엘 왕 답게 행동하는
율법 4배나 갚으라 라는 소리를 외치는 자가 아니라
그 반대로 이 죽은 자 죄인을 과부를 어떻게 다시 살리시는 저 분의 숙제를 보라 라고
저 분이 내 죄를 씻으셨어요 라고 우물가의 여인처럼 찬양하는 자가 바로
이스라엘 왕이다는 겁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결국 선지자는 이스라엘 왕을 자꾸 광야로 사막으로 몰고가는 자이다는 겁니다.
회개하라고
목이 곧은 것을 부르뜨릴려고 말이죠
반대로 거짓선지자는 이스라엘 왕을 죽음으로 광야로 사막으로 몰고가지 않습니다.
평강이다 평강이다 절대로 심판 없다고 합니다.
사생아로 만들어 버린다 말이죠 매가 없는 징계가 없는
죽였다가 다시 살리는 믿음이 없는
의가 없는
그래놓고 반대로 우상을 울리는 꽹과리를 잔뜩 모으더라 라는 겁니다.
결국 여호와께서 왕 되심을 원치 않아서
왕제도가 이방나라로부터 들어온 울리는 꽹과리였지만
율엉 외의 한 왕, 의의 왕이 오심으로써
인간들이 엉터리로 만들어 버린 [주의 주] 되심을
의의 왕
[주께서 내 주께] 라는 의의 간극으로 인해
인간들이 실패한 왕(의) 개념을
예수님이 다 이루심 때문에
선지자는 이 예수님이 떳다는 이유로
이스라엘 왕을 죽은 자로 몰아가서
죄인의 자리에서 이 의를 쳐다 보라는
율법 지킬 생각 말고 율법 외에 한 의의 왕을 쳐다보라고
투입 되고
개입이 되어서 간섭 징계하는
사생아로 만들지 않고
내어버려두지 않고
한 쪽 남 유다 왕들에게 남은씨를 증거하는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죄인으로 만드시더라 말이죠
왕을 말이죠
그러니 베드로 수제자 자리를 뻥 차가지고
제일 끄트머리에 두듯이
왕들을 뻥 발로 차가지고
성전측량 거룩측량할 때
제일 끄트머리 죄인의 자리에서 예수님을 보도록 하는 겁니다.
아브라함에서 믿음이 출발하듯이 믿음을 쳐다본
예수님의 때를 쳐다본
마찬가지로 죽은자의 자리에서
다윗이 예수님을 쳐다보도록
왕의 자리에서 나 아니오를 외치는 처음 왕이 되는 겁니다.
왕이 의를 정의를 하수와 같이 흐르게 할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의를 쳐다보는
왕이 남을 7번 용서할 생각하지 않고
율법의 4배나 갚으라 라는 정의를 달성할 생각하지 않고
본인 왕 본인 자체가 의로부터 7에 70번 용서 받아야 할 판국인
죽은 자의 자리
죄인의 자리에서
의의 왕이 오시길 고대하고 고대하는
자신이 다스릴 이스라엘을 볼 생각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교회를 신경 쓸 생각하지 않고
먼저 당신의 나라와 당신의 의를 구하는
주여 당신의 나라에 저를 기억해 달라는 고백이
다윗왕이 마치 나는 한 쪽 강도와 같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죄인의 자리
회개해야할 판국인 죄인 중의 괴수의 자리에서 의의 외치는 겁니다.
왜? 이미 떳기에
눈에 보이는 것들은 이 실상 앞에서 신기루 허구로 밝혀질게 뻔하기에 말이죠
그러니 이 왕들 하나 하나에 붙은 선지자의 기능은
마치 오늘날 성도들에게 주어진 선물인 성령처럼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듯이
선지자는 성령을 받은 자로써
이 왕들을 숙제 잘 하도록 도와주는게 아니라(성화론자들의 성령론의 엉터리 해석)
그 반대로 죽은자로 만들어서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게 하시는
이 의를
이 의가 떳다는 이유로
죽어 마땅한 죄인이로소이다 주여 불쌍히 여겨달라고 외치는
세리
바리새인처럼 자칭 빛의 아들들이라고 하는 공적자유를 외쳐야 하는 공무원이 아니라
실상은 공적인 복종을 외치면서 사적으로는 자유를 꼬불쳐 놓는 가짜 공무원이지만
이들이 욕하고 있는 매국노 공무원
곧 세리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불쌍히 여겨주소서 라고 외치는 매국노 공무원이
불의한 청지기가 바로
이스라엘 왕들이 선지자에 의해서 의가 떳다는 이유로
세리의 자리에서 외치는
주여 불쌍히 여겨주소서 어서 공적인 자유의 자리를 이루소서
의를 펼치소서 라고 외치는 겁니다.
이 이스라엘 왕이
마치 예수님의 족보에 머슴아들이 특히 시아버지 유다처럼
공적인 자유를 사적으로 횡령한 자를 그것도 모르고 있는 시아버지를
며느리 다말이 공적인 자유를 외치는 공무원으로써
의의 자리를 새로 만들어서
그 자리에 시아버지 유다를 접붙여서 죽은 가지를 살려내듯이
원래의 자리 처음자리 처음사랑의 자리인 의의 자리에
의 되신 예수님 족보에 근본되신 원가지에 접붙이는 겁니다.
이 선지자 하나 하나가
순 엉터리 이스라엘 왕들을 시아버지 유다처럼 죽은 가지를
원가지에 접붙이더라 말이죠
참선지자들이 마치 다섯 명의 여자들 에게서처럼
이런 의가 아니면 벌써 소돔과 고모라가 되었음이 불보듯 뻔한데
남은 씨로 인해 이 죽은 자들을 살리시는 겁니다.
이 부활의 족보
부활 종교에서 말하는 부활이 아니라
그런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부활이 아니라
요나의 표적으로써의 부활
곧 죽였다가 다시 살리는 의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 찾는 인애와 자비를
인간의 숙제가 아닌
주님의 숙제로써 보여주시는 것이
예수님의 족보인 의의 족보
부활의 족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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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을 부어주심
성령(예수의 영, 십자가의 영)의 족보인
예수님의 족보는
자녀가 예언
젊은이는 환상
늙은이는 꿈
남종 여종 예언
(욜 2:27, 개역)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영히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욜 2:28, 개역)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욜 2:29, 개역)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욜 2:30, 개역)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행 2:17, 새번역)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마지막 날에 나는 내 영을 모든 사람에게 부어 주겠다. 너희의 아들들과 너희의 딸들은 예언을 하고,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꿀 것이다. / ㉣욜 2:28-32(칠십인역)』
(행 2:18, 새번역) 『그 날에 나는 내 영을 내 남종들과 내 여종들에게도 부어 주겠으니, 그들도 예언을 할 것이다.』
즉 육과 대비되는 울리는 꽹과리라는 무기의 중첩과 대비되는
성령의 겹겹층의 장치로 되어 있는 족보로 되어 있다.
젊은 사자새끼인 유다지파의 유다 왕들은 젊은이 청년으로써 막 죽어나가는 환상 곧 계시가 덮쳐진다.
아무리 므낫세 가장 악한 왕 므낫세가 이사야를 톱으로 켜 죽여도 그의 아들 아몬도 회개치 않는 죄인이어도(다윗도 그랬다 우리야 장군을 철저하게 계획아래 죽인 1급 살인자이다.24 장로 또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 라고 외쳤고베드로 또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다그렇다고 이들처럼 살인자가 되어라는 말인가? 아니다이미 먼저 남은씨 곧 의의 왕이 떳기에 나타나는 증상이다는 것이다.)
즉 어차피 막 죽어나가는 죄인의 자리에 놓여지게 된다
역시나 예레미야 선지자 때의 손자 요시아는 또 회개를 한다
겹겹이 성령의 장치들이 준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또 자녀가 예언 즉 어린아이가 막힌 담을 헌다 이삭처럼 화목제물 어린양처럼 우리야의 아이
또 늙은이의 백발은 지혜의 상징 곧 성령(지혜의)의 상징으로써 꿈을 꾼다 곧 선지자라는 지혜가 따라 붙는다 어떤 지혜? 잃어버렸다가 다시 살리는 죽었다가 다시 사는 의를 보여주는 증거하는 정의라는 자유
또 남종 여종에게 영을 부어주심은 이들이 다말처럼 희생번트 또 스데반처럼 희생번트로
이런 성령의 장치들이 겹겹의 층으로써
의의 족보를 형성한다
어떻게 저런 므낫세와 같은 자들이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가야만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자들의 허물 또한 덮으시는
이 의를 쳐다보라는 것이다.
어차피 사라지는 육의 왕들의 족보 속에서 의의 왕의 족보는 또렷하고 밝히 모호함 없이
완료로써 다 이루었다 로써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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