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의 소동 vs 별의 자작극 (마 2:1-12)
헤롯왕 당신의 적인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그를 경배하러 왔노라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마 2:1, 개역)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마 2:2, 개역)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마 2:3, 개역)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마 2:4, 개역)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물으니』
(마 2:5, 개역) 『가로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마 2:6, 개역)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마 2:7, 개역)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마 2:8, 개역)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마 2:9, 개역)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섰는지라』
(마 2:10, 개역)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마 2:11, 개역)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마 2:12, 개역)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마 2:1, 새번역)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셨다. 그런데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 ㉠또는 '점성가들'. 그, '마고스'』
(마 2:2, 새번역) 『말하였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습니다."』
(마 2:3, 새번역) 『헤롯 왕은 이 말을 듣고 당황하였고, 온 예루살렘 사람들도 그와 함께 당황하였다.』
(마 2:4, 새번역) 『왕은 백성의 대제사장들과 율법 교사들을 다 모아 놓고서, ㉡그리스도가 어디에서 태어나실지를 그들에게 물어 보았다. / ㉡또는 '메시아'. 그리스도는 그리스어이고 메시아는 히브리어임. 둘 다 '기름부음 받은 사람'을 뜻함』
(마 2:5, 새번역) 『그들이 왕에게 말하였다. "유대 베들레헴입니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하여 놓았습니다.』
(마 2:6, 새번역) 『㉢'너 유대 땅에 있는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가운데서 아주 작지가 않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올 것이니, 그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릴 것이다.'" / ㉢미 5:2 ㉣또는 '먹일'』
(마 2:7, 새번역) 『그 때에 헤롯은 그 ㉤박사들을 가만히 불러서, 별이 나타난 때를 캐어묻고, / ㉤또는 '점성가들'. 그, '마고스'』
(마 2:8, 새번역)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말하였다. "가서, 그 아기를 샅샅이 찾아보시오.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할 생각이오."』
(마 2:9, 새번역) 『그들은 왕의 말을 듣고 떠났다. 그런데 동방에서 본 그 별이 그들 앞에 나타나서 그들을 인도해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에 이르러서, 그 위에 멈추었다.』
(마 2:10, 새번역)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무척이나 크게 기뻐하였다. / ㉥또는 '그 별이 멈춘 것을 보고'』
(마 2:11, 새번역) 『그들은 그 집에 들어가서, 아기가 그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서 그에게 경배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보물 상자를 열어서,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마 2:12, 새번역) 『그리고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아, 다른 길로 자기 나라에 돌아갔다.』
지난 주에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을 통해서
모든 첫 아담에 속한 이름들이 다 삭제 당해야 하는 증상에 놓여집니다
이것을 도리어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기뻐해야 하는데
도리어 가장 반발하는 자들로써 동원이 됩니다.
이미 메시아 사상을 마귀로 인해 세뇌 당한 상태인데
새로운 메시아가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으로 왔을때에
콧 방귀도 안 낀다고 했지요
자신들도 이 이름을 안다 라고 교리화 시켰거든요
그리고 믿습니다 라고 실천도 하고요
교리 플러스 실천을 자신들의 신체에 박아 넣었다 말이죠
그러니 이 임마누엘에 전혀 시큰둥 합니다.
바로 이런 이스라엘로부터 공격받는 마리아가
이 이름의 의미인 고아 과부 나그네를 신원하는
신원자 변호자 구원자가 일어나 주시길 간구할때에
이 과부와 부활의 공명으로 인해
의가 펼쳐지는 겁니다.
평화가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말이죠
드디어 칼이 보습, 쟁기로 변하고
창이 낫으로 변하는
첩경을 평평하게 평탄케 다림질 하는
구체적 보편적 진리인 평화를 이루실
평화의 왕이다는 겁니다.
(마 3:3, 개역)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
(마 3:3, 새번역) 『이 사람을 두고 예언자 이사야는 이렇게 말하였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그의 길을 곧게 하여라.'" / ㉡사 40:3(칠십인역)』
(막 1:3, 개역)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막 1:3, 새번역)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그의 길을 곧게 하여라'" 한 것과 같이, / ㉦사 40:3(칠십인역)』
(눅 3:4, 개역)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눅 3:4, 새번역) 『그것은 이사야의 예언서에 적혀 있는 대로였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그 길을 곧게 하여라. / ㉤사 40:3-5(칠십인역)』
(요 1:23, 개역) 『가로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요 1:23, 새번역) 『요한이 대답하였다. "예언자 이사야가 말한 대로,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요.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하여라' 하고 말이오." / ㉧사 40:3(칠십인역)』
(사 40:3, 개역)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사 26:7, 개역)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케 하시도다』
그런데 평화의 왕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울리는 꽹과리인 무기 곧 칼과 창이 필요하게 된다면
그것은 평화가 아니겠지요 거짓 평강이겠지요
그렇게 고대하고 고대하던 평화의 왕이 드디어 왔습니다.
이제 칼과 창을 손에서 내려 놓을까요? 아니면 더더욱 쥐게 될까요?
더군다나 메시아 사상으로 무장이 된
온 몸에 도배를 하듯이 칭칭 감아온 유대인은 이제 칼과 창을 손에서 내려놓을까요?
십일조 이레에 두 번 금식했다(성전의 두 사람의 기도 바리새인과 vs 세리)를 내려놓을까요?
어릴적부터 율법 다 지켰다(부자청년)
아버지 말씀 단 한번도 어긴적 없다(탕자 vs 맏아들)
이웃 사랑을 실천했다(한 율법사 vs 선한 사마리아 비유)
안식일 지켰다 등등 과연 내려놓을까요?
오히려 절대로 못 내려놓지요? 이게 울리는 꽹과리인데 이들은 오히려 사랑이라고
자기 쪽에서 하나님을 사랑한 증거들인데 절대로 못 내려놓죠
이게 바로 음녀이다는 겁니다.
오늘날 성화론자들, 개혁주의자들 다 이래요
저 세리와 같지 않음을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여전히 울리는 꽹과리를 몸에 칭칭 감아서
이레에 두 번 금식과 십의 일조를 한다고
부자청년은 어릴적부터 율법 다 지켰다고를 내세우는 겁니다.
사랑은커녕 울리는 꽹과리를 잔뜩 지켰다고 소유했다고 자랑하더라 말이죠
칼과 창을 손에 쥐게된 육을 오히려 더더욱 자랑한다 말이죠 대로에서 큰 소리로 기도하듯이
아무튼 이런 메시아 사상으로 가득한 유대인이 마귀에게 장악당한 티가 팍팍 나듯이
헤롯왕만 소동하는게 아니라
온 예루살렘 곧 평화의 도시가 소동이 일어납니다.
난리가 나요
메시아를 기다렸다면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창과 칼을 손 놓게 되는
드디어 안식을 누리는게 아니라
오히려 본격적으로 바짝 긴장하게 되는
본격적인 소동 소란 흔들림이 시작이 되는 겁니다.
진짜 경쟁자가 나타났다는 것이
헤롯왕 뿐만 아니라
온 예루살렘이 헤롯왕과 똑같은 긴장감에 휩싸이게 된다 말이죠
그래서 두 살 밑으로 다 죽이는 살인들이 벌어지듯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결핍을 채울 길이 없거든요
모세 때의 그 출애굽이 벌어지는 겁니다.
그건 예고 편이고 드디어 본 편 실상이
출 세상 입 십자가가 벌어지는 진짜 희년이 벌어지는 거죠.
출이스라엘 출 유대, 출 교회 곧 출 사단의 회 로 부터의 구원사건 말이죠.
자 그렇다면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사도바울이 지금 새로 온다거나
만약 예수님이 재림이 아닌 초림처럼 지금 현시점에 오게 되면
기존의 왕들 정치가 뿐만 아니라
타 종교지도자 뿐 아니라
아마 교회들이 가장 싫어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거짓들이 다 들통날꺼 뻔하니까 말이죠
거짓 평안들 말이죠.
아니 그럼 거짓됨이 아니였었었었 었 다는 겁니까
뭘 해도 다 거짓이였으니 오히려 손 놓게 될 정도로 안식을 누리면 되는데
드디어 울리는 꽹과리를 손 놓고 냄새나는 배설물을 손 놓게 될 것인데
오히려 그 배설물을 손 놓게 될까봐 이 예수님이 온다는 것이 싫게 되는 겁니다.
예수님이 온다는 것을 오히려 1999년도에는 종교장사의 한 몫을 챙기기도 했었지만
그거 이미 다 들통나서 재판 받고 감옥에 잡혀갔으니
구지 그 방식은 이제 안 통한다는 것을 아니까 그것을 바라지도 않지만
그렇지만 그런다고 예수님이 온다는 것을 좋아하는 자는 없다는 거죠
얼마전에 북한 핵 전쟁으로 인해 남한이 불바다 되고 지구핵전쟁까지 확대된다고
미친 여전도사가 종말을 외쳐서 거기에 속아 넘어가는 자들이 얼마나 많았나 말이죠
그래서 필리핀 저 시골에 피신가서 농사짖고 종말을 기다린다고 ㅋㅋㅋ
자 그런식으로
울리는 꽹과리를 손에 놓으라고
탐욕을 버리라고
재산을 전부 교회에 바쳐라는 식으로
울리는 꽹과리를 그럼 손 놓으면 저절로 평화를 입은게 아니라
기뻐하심을 입은게 아니라
(눅 2:14, 개역)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눅 2:14, 새번역) 『"더없이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
(눅 2:14, 공동)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억지로 억지로 손 놓게 만들려고 하니까 억지로 손 놓게 되니까
도리어 그 울리는 꽹과리를 그 배설물들을 도리어 더욱더 갈취하는 자들이 생기더라 말이죠
항상 언어는 상대적이기에 즉 선악적이기에 상대적인 배후를 늘 염두해야 한다 말이죠
언어 밖의 세력 말이죠
어떤 장로가 차라리 속으십시오 속일려고 하지 말고 라는 말을 하고서는
자기가 그 말로 속이려 드는데
그 말이
얼마나 웃끼던지
참 기가 차더라 말이죠
자기가 그런 짖 잘하는데 도사다 라고 자랑하면서 웃고 돌아다니던데
살기가 넘치더라 말이죠
본인만 몰라요 남들은 다 아는데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더라는 겁니다.
어딜 감히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꾀냐 말이죠
자 그러니 헤롯왕처럼 온 예루살렘 또한 평화를 원치 않았다는 거죠
오늘날 교회는 이 평화의 왕, 의의 왕을 원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 이유는 기능보다 즉 공적인 자유를 외치는 공무원 기능 보다
사적인 존재로 빠져버렸기에
자기를 위한 예수를, 메시아를 꿈꾸는 우상숭배자이기에
그거 마귀가 놓칠 리가 있겠습니까?
강도의 소굴로써
그들은 울리는 꽹과리만을 모아서
율법을 어릴적부터 지켜왔다고 주장하는 부자청년처럼
이 진짜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등장으로 인해 등돌리고 근심하고 돌아서는 자와 같게 되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 참 재미있는 것은
분명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라고 한다 말이죠
(마 2:12, 개역)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자 그럼 처음부터 헤롯왕을 만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노골적으로 복음은 만나게 하고 오히려 헤롯왕에게 노골적으로 묻도록 합니다.
동방박사가 헤롯왕에게 유대인의 왕이 태어나신다고 하던데
당신 헤롯왕은 유대인의 왕이 어디서 태어나시는지 아십니까 라고 묻습니다.
아예 대놓고서 호랑이 사자 맹수에게 가서, 당신들이 가장 맛있어 하는 양이
어디서 태어나는지 당신은 알 것 아니요? 라고 묻는 것과 같다 말이죠
참 참 참 얼마나 대범하고, 그리고 왠지 뻔뻔한 것 같기도 하고
이 말은 마치 예수님이 가룟유다에게
어서 너가 맡은 일을 어서 어서 해야되지 않니 라고 하는 것과 같다 말이죠
(요 13:27, 개역)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정작 동방박사는 외지인으로써 이 예루살렘의 의미를
도리어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셈입니다.
그런데 정작 예루살렘 사람들은 이 헤롯왕과 다를바 없는 반응이다는 거죠
그림자로 족하며 살고 싶지
실상은 싫다는 거죠
그 실상을 동방박사가 여기 유대인의 왕 태어나지 않았나요? 라고 묻는 겁니다.
즉 평화의 왕이 오시지 않았나요?
의의 왕이 오시지 않았나요? 라고 말이죠
헤롯도 예루살렘도 곧 오늘날 교회도 같은 반응입니다
소동이 벌어지는 거죠
우와 드디어 평화의 왕이 왔구나
독립운동이든 하나님나라 운동이든 뭐든 다 손 놓아야지요
그런데 오히려 평화의 왕에게 까지 가서
그 배설물 울리는 꽹과리를 도리어 내세울정도로
그 정도로 우리는 마귀에게 갇힌바 되었다는 거죠
바로 그런 내막을 동방박사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잔뜩 소란을 벌려놓고서는
호랑이야 사자야 저기 저 쪽에 맛있는 양이 태어났단다 라고 수셔놓고서는
벌집을 만들어 놓고서는
부랴 부랴 헤롯왕은 모든 영흠한 종교꾼들을 다 모아서
어디서 나는지 알려줍니다.
(마 2:4, 개역)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물으니』
(마 2:5, 개역) 『가로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마 2:6, 개역)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마 2:7, 개역)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마 2:8, 개역)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마치 이것은 반드시 빛과 어두움이 맞물리도록 하는 것과 같이
실로암 소경을 눈뜨게 하니까
누가 나를 눈뜨게 했지요 라고 물으니
바리새인이 예수가 눈 뜨게 했다고 알려주는 식과 같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은 모세의 제자이지 예수의 제자가 아니다 라고
1300년 묵은 정통을 우려먹지
신참 겨우 3년 짜리 이단 예수는 안 따른다고
아 예수님이요? 라고 도리어 알려주는 식이지요 도둑놈이 지발 저리듯이 말이죠
천삼백년 묵어 본들 눈뜨게 하더냐 말이죠
안식일 백날 지켜도 눈뜨게 하더냐 말이죠
안식의 주인이 없는데?
나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분은 예수님 뿐이다 말이죠
어딜 사기를 치냐 말이죠 목사말 말라꼬 듣냐 말이죠
바리새인들 다 종교지도자요 오늘날로 치면 다 목사들 아니냐 말이죠
자 그런 식으로 알려주는 꼴로
저들이 느닷없이 바짝 긴장하게 되는 겁니다.
어서 어서 너거들 맡은 바를 하라꼬
아니나 다를까 두 살 밑으로 다 죽이잖아요
아무튼 그렇게 알려주고
동방박사는 경배하고
꿈에 헤롯을 만나지 말라고 해서
벌집만 수셔놓고 가버리는 겁니다.
달팽이 나오는 광고에서
뭔가 지나간 것 같은데
순식간에 뭔가 휙 하고 지나갔다 말이죠
동방박사가 말이죠
왜 이들은 갑자기 남의 동네에 와서 소란만 일으키고
그리고 갑자기 경배만 하고 사라지느냐 말이죠
헤롯왕만이 아니라
저는 온 예루살렘이 소동했다는 것에 주목을 하고 싶습니다.
헤롯 왕이 그런 줄은 이미 우리가 다 알지만
온 예루살렘이 소동했다는 것에 그 동안 많은 목사들의 설교를 들어봐도 없거든요
자기자신을 가짜다 이단이다 마귀이다고 여기지 않고서
회개를 하지 않는 입장에서 설교자로써 가르쳐 들려고 하니까
나올수가 없는 거죠
온 예루살렘이 헤롯왕과 똑같았다고
오늘날 교회사람들이 다 마귀와 똑같았다고 말이죠
그것을 동방박사가 갑자기 나타나
사실 별을 따라왔지만
헤롯에게 별 따라 왔다고 했듯이
그리고 수수께끼 하나 달랑 풀어보라고 던져놓고 사라져 버리니까
이제 이 수수께끼를 못 풀면
왜? 모르니까!! 그래서 다들 소동하니까
온 예루살렘도 이 예루살렘을 치리하는 헤롯도
난리가 나는 거죠
기존의 왕이 있는데
새로운 왕이 와야 하니까
온 예루살렘도 골치가 아픈 거죠
새로운 왕을 따르자니 반역자가 되어야 하고
기존의 왕을 따르자니 그럼 말라꼬 예루살렘에 구지 사냐 말이죠
다른 지역에 살아도 되는데
이 예루살렘에 산다는 것이 갑자기 목에 걸리는 걸림돌이 되는 겁니다.
교회 다닌다는 자체가 걸림돌이 되더라 말이죠
실컷 교회 다녔는데
느닷없이 예수님이 나타나서 강도의 소굴이라고 하니
졸지에 같은 강도가 될 것인가?
아니면 저들 목사들을 쫏아내서 만민이 기도하는 집으로 만들 것인가?
갑자기 로마로부터 독립운동을 펼치다가 도리어 전쟁을 자기 민족에게 겨누어야 하니
자기 민족의 배신자로 남아야 하는가?
이 정도로 우리는 갇힌바 되었기에
마귀라는 이 꾀임을
십자가가 아닌 이상은 밝히 볼수 없을 정도로
우리는 어두운 눈이라는 것을
정작 다른 나라 동방박사가 툭 건드려 주고 빠져 버리는 겁니다.
실상이 뭐냐 라는 거죠
그 동안 허구 속에 살아왔다는 거죠
교회 다니는 것도 종교의 신앙도 다 허구요 가짜이다는 거죠
또 독립운동이나 하나님 나라 운동 자체고
정작 마귀는 못 보는 어두운 눈이면서 무슨 놈의 운동을 펼치고 독립하고
구원전쟁을 벌리느냐 말이죠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이 음부의 권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내가 사망인데 내가
뭘 해도 원인 없는 결과로써 우리는 죄 밖에 안나오는데
그러나 예수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세계가 판이 뒤집어 지는 겁니다.
동방박사를 불러들인 자가 누구냐 말이죠?
인간들의 묵시문학 운동 묵시운동과 차원이 달라요
인간들의 묵시운동 조차도 울리는 꽹과리로 결론이 나 버렸지만
이 별이 지금 동방박사를 불려들어서 벌집을 수셔놓고 가게 하듯이
이 별에 의해서 지금 새로운 새 판이 짜지게 되는 겁니다.
별의 자작극
십자가의 자작극인 거죠
그리고 진짜 실상은 바로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악한 권세인 마귀와의 대적이다는 거죠
그래서 동방박사는 마귀를 헤롯왕과 같은 악한 세력을 수셔놓고 빠져버리는 겁니다.
이제 이들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이 예수님의 탄생부터 죽는 그 순간까지
훼방을 놓고
심지어 십자가에 다 이루심으로써 성령을 선물 받은 성도에게까지
끝까지 훼방을 지금까지 앞으로도 계속 하도록 되어 있는 역할 기능을 맡았기에
반드시 그 기능을 다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의로움입니다.
아니 싸움 붙이는게 무슨 놈의 의냐?
예수님과 같은 운명이 되도록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는 의를 펼치심이지
인간의 일어섬이 다 허구 허상 우상이라는 것을
아 이게 바로 암덩어리였구나 라고 보여주시는
이 의가 아니였다면
죽였다가 다시 삼일만에 다시 살리심이 아니였다면
그런 일을 하시는 이새의 줄기에서 난 한 씨가 아니였다면
우리는 벌써 벌써 소돔과 에돔 같았다 말이죠
주님께서 어두운 우리 눈을 뜨게 하시고자
동방박사도 별의 인도로 예루살렘에 와서
수셔 놓고 갔고
헤롯왕도 건드려 벌집 수셔 놓아서
비록 두 살 밑으로 아이들이 죽는 대 참사를 격도록 하시지만
이것이 바로 무엇을 보여주시고자 하는 것인가를 보자 말이죠
지금도 이 세상은 그때와 별반 다를바 없다는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떠나고자 하는 자는 없다 말이죠
공중의 나를 새
들에 핀 백합화를 부러워 하는 자 없다 말이죠
곧 죽어도 솔로몬이 입은 영광을 누리고 싶어 할 정도로 우리는 어두운 눈
곧 허상만을 쫏도록 되어 있을 정도로 갇혀 버렸더라 말이죠
(눅 12:27, 현대인)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보아라. 그것은 수고도 하지 않고 옷감을 짜지도 않는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지만 솔로몬이 온갖 영광을 누렸으나 이 꽃만큼 아름다운 옷을 입어 보지 못하였다.』
아무리 보여줘도 말이죠
그 정도로 갇힌바 되었기에
오히려 예수님의 이런 일들을 벌리시는 것은
구체적 보편성으로써 아무도 원치 않은 바를 홀로 이루시는
(여기에 그 어떤 누구도 보탬이 된 적 없는,
그저 원수로써 원수 마저도 사랑하시는 이 십자가를 높이 밝히 보이시고자
이런 속임수 꾀들을 낱낱이 밝히 보여주시는 겁니다.)
자유케 하는 진리이기에
그 어떤 방해도 다 이루시도록 되어 있는
예수(임마누엘) 라는 이름이 떳기에 나타나는 증상들이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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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의 통곡,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마 2:12-23) (0) | 2018.11.16 |
그 이름을 임마누엘 이라 하리라 (마 1;18-25) (0) | 2018.11.01 |
이스라엘 왕(죽은자)의 기능 (마 1: 6-11) (0) | 2018.10.25 |
14대 15대 14대 족보의 비밀 (마 1:12-17) (1) | 2018.10.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