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 두로 족속 심판 (겔 26, 1-21, 겔 27, 1-36)

에돔 족속과 블레셋 족속 심판 (겔 25,12-17)
에스겔 2019 2020. 11. 7. 16:50
19-70 에돔 족속과 블레셋 족속 심판 (겔 25,12-17)

(에스겔 26: 1-21 겔 27: 1-36, 구약성경 1190 쪽,  찬송가 439장 만세반석 열린 곳에 
                                                찬송가 544장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

1, 『제십일년 어느달 초 일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2, 『인자야 두로가 예루살렘을 쳐서 이르기를 아하 좋다 만민의 문이 깨어져서 내게로 돌아왔도다 그가 황무하였으니 내가 충만함을 얻으리라 하였도다』

3,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두로야 내가 너를 대적하여 바다가 그 파도로 흉용케 함 같이 열국으로 와서 너를 치게 하리니』

4, 『그들이 두로의 성벽을 훼파하며 그 망대를 헐 것이요 나도 티끌을 그 위에서 쓸어 버려서 말간 반석이 되게 하며』

5, 『바다 가운데 그물 치는 곳이 되게 하리니 내가 말하였음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가 이방의 노략거리가 될 것이요』

6, 『들에 있는 그의 딸들은 칼에 죽으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겔 26:21, 겔 27: 1-36 까지 생략 

(겔 26:1, 현대어) 『[두로에 대하여] 우리가 포로로 잡혀 간 지 11년째 되던 해 어느 달 초하루에 여호와께서 내게 또 말씀하셨다.』
(겔 26:2, 현대어) 『`너 사람아, 두로 사람들이 예루살렘이 멸망한 것을 보고 기뻐 환호성을 지르며 이렇게 외쳐 대고 있다. `세계 만민의 관문이라고 불리던 예루살렘 도성이 무너져 버렸다! 이제 그곳의 재산은 다 우리들 차지가되었다! 예루살렘은 이제 쓰레기더미에 지나지 않는다.'』
(겔 26:3, 현대어)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한다. 두로야, 너는 이제 내가 내리는 벌을 피할 수 없다. 바다가 끝없이 파도를 쳐서 언덕을 때리듯이 나도 세계 만민을 불러다가 끝없이 너를 치겠다.』
(겔 26:4, 현대어) 『그들은 네 성벽들과 망대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허물어뜨릴 것이다. 나는 그곳을 말끔히 씻어 내 마침내 앙상한 바윗돌만이 남아 ㄱ) 바다 위로 솟아오르게 하겠다. (ㄱ. 두로는 원래 섬이었는데 알렉산더가 둑을 쌓아 육지와 연결시켰다)』
(겔 26:5, 현대어) 『그곳에는 어부들이나 찾아와서 그물을 펼쳐 놓고 말릴 것이다. 나 여호와가 하는 말이니 그대로 다 이루어질 것이다. 그때에는 이방인들이 몰려와서 네 재물을 약탈하고』
(겔 26:6, 현대어) 『육지에 흩어져 있는 네 위성도시들도 멸망시킬 것이다. 그러면 그제서야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깨닫게 될 것이다.』

겔 26:21, 겔 27: 1-36 까지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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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제목이 있는 번역을 올려보겠습니다
물론 소제목은 쉬운성경 번역과 현대어 번역 밖에 없는데요

(겔 26:1, 쉬운) 『<두로에 대한 예언> 십일 년 어느 달 초하루에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겔 26:7, 쉬운) 『<느부갓네살이 두로를 공격하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한다. 내가 북쪽에서 왕들의 왕인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을 데려와 두로를 칠 것이다. 그가 말과 전차와 기병과 큰 군대를 이끌고 올 것이다.』
(겔 27:1, 쉬운) 『<두로에 대한 탄식의 노래>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겔 26:1, 현대어) 『[두로에 대하여] 우리가 포로로 잡혀 간 지 11년째 되던 해 어느 달 초하루에 여호와께서 내게 또 말씀하셨다.』
(겔 26:15, 현대어) 『[죽음의 나라로 내려간 두로] 주 여호와께서 두로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천둥 치는 소리를 내면서 무너질 때에 바닷가에 있는 모든 나라들이 무서워서 떨 것이다. 살인자들이 광분하면서 외치는 소리와 칼에 찔려 죽는 자들의 비명을 듣고 바닷가에 사는 모든 주민들이 벌벌 떨 것이다.』
(겔 27:1, 현대어) 『[두로를 위한 조가]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소제목만 봐도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입니다
조가 란 弔歌 죽음을 애도하는 노래 그래서 탄식의 노래 라고 합니다.

지난 주 마태복음을 (다윗의 자손이냐? 다윗의 주냐? 어떻게 자손이 주가 되냐?) 통해서

아들은(후손, 자손) 아버지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거꾸로 아들을 위해서 아버지가 태어났어야만 했다 라고
사람의 뜻과(이스마엘 언약) 하나님께로 난 자(이삭 언약)로 이 두 언약(갈라디아서 4장)의 충돌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 곧 여호와가 누군지 알리시는 겁니다

(갈 4:21, 개역)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갈 4:22, 개역) 『기록된 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갈 4:23, 개역)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갈 4:24, 개역)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갈 4:25, 개역)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 노릇 하고』
(갈 4:26, 개역)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 4:27, 개역) 『기록된 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갈 4:28, 개역)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갈 4:29, 개역)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고로 조상(아버지) 다윗은 이 다윗의 자손인 다윗의 주를 말하기 위해
메시아를 말하기 위해
구원자를 말하기 위해
의사를 말하기 위해

잃어버린 자
원수(죄인)
환자 로 태어났어야만 한다는 겁니다

사람에게서 난, 사람의 일, 사람의 뜻이 
왜 원수가 되는지를 다윗이 몸소 보여주도록 말이죠
아들을 위해서 아버지가 태어나야 하는 것이
바로 산 자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다는 거죠

반드시 죽은 자의 하나님 이라는 비언약과 한 세트를 이루면서 그 차이로써 말이죠
(죽은 아브라함을 살리는 산자의 하나님, 죽은 이삭을, 죽은 야곱을 ...
왜? 죽었나? 산 자의 하나님 세계로 올 자가 아무도 없기에그래서 죽은 자를 살리시고자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자에게 믿음이라는 선물(전쟁을 통한)을 주심)

마치 며느리 다말을 말하기 위해서
그것도 개같은 이방인 여자를 말하기 위해서

정통 우려먹고 (육이 사수하는)
약속 우려먹는 (육체가 지키는 말씀)
이스라엘 권위있는 귀족, 순수한 혈통, 루이 윌리암스 세바스찬 주니어 3세, 이스라엘의 선생 랍비 라고 우려먹는 (육신이 선민이라고 자랑하는) 
시아버지 유다가 태어났어야만 했듯이 말이죠(갈 5:17, 개역)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것도 모르고 시아버지 라는 육의 계급장
조상 이라는 육체의 계급을 따지다가 도리어 꼬꾸라지게 되는 겁니다
다윗이 왕이 되는 이유가 꼬꾸라지라고 왕이 되어야만 했듯이 말이죠
누구로부터?
꺾으신 뼈, 이름 없는 아들로부터 말이죠
그냥 아들도 아닌 이름도 없는 아들

자 그 내용이 오늘 본문 그대로 나타납니다
두로에 대한 심판이 어떻게 26장 7, 8장 까지 길게 언급이 되는 것일까요?
이렇게 꼼꼼하게 길게 언급하시는 것은 당연히 뭔가 이유가 있겠지요
지난주 글 블레셋 심판은 몇절 밖에 안되요

잠깐 더 언급해 보면
블레셋은 이스라엘이 미웠다 말이죠
이유 없이 미운 거죠
원인이 없어요

자 그럼 그들이 미워하고 싶어서 미워한게 아니다 라는 겁니다
바로 약속을 말하기 위해서 블레셋은 그렇게 배치 되어야만 했다는 거죠

두 언약으로써 한 세트를 구성해야 하니까 말이죠

애굽왕 바로와 애굽 군사를 통해서 여호와께서 영광을 받으셨듯이
블레셋이라는 사람의 뜻에서 난 자들 또한 그렇게 배치되는 겁니다
이 세상에 무슨 사람의 뜻이 통하겠냐 말이죠
모조리 다 주님의 손 바닥 인데

자 그럼 왜 이스라엘이 심판 받아야만 하는가
특급 와인 포도주 짜기인 거죠 (혼인 잔치 이거든요 – 이사야 버전, 에스겔 버전은 인자(새성전)의 등장)

그카이 들포도 주제에 그 약속의 시선을 무시하고
도리어 사람의 뜻들이 마구 마구 숨어있다가 기다렸다는 냥 다 드러나는 겁니다
(갈라디아서 4장 두 언약에서 핍박 한다는 표현이 나왔잖아요)
(갈 4:29, 개역)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특급상품 포도주(이스라엘) 꼴 좋다
우리가 그렇게 미워했던 놈이 드디어 그 미움을 그대로 보여주는 구나

자 그런데 주님께서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18명이 죽게 되자
저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저주 받아서 그렇지요? 라고 예수님까지 끌여들어서
축복과 저주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드러냈지만
정작 그 다음 차례는 너 다 우짜노??????

결국은 인간은 약속을 해석 못한다 라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못해서 매 맞고 있는데
똑같이 해석 못하는 주제에 이스라엘이 매 맞으니까 꼬시다 라고 
속마음이 그대로 다 노출이 되어버리더라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 두로에 대한 심판도 그러합니다
세 장, 26,27,28장 에 걸쳐서 나오는 이유는
이스라엘의 멸망으로 인해 가장 큰혜택을 보게 되니
그 혜택을 본 내용 하나 하나를 다 따지면서 저주를 퍼붓는 식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혜택이 아닌 거죠 도리어 저주가 되는 겁니다.

마치 언약 곧 약속의 내용 하나 하나 그 깊이를 안다는 것은
동시에 비언약 곧 육의 소욕 하나 하나의 내용과 그 깊이를 알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아들을 말하기 위해서
아버지가 태어나야만 하듯이

이스라엘의 멸망을 말하기 위해서
두로의 심판이 나타나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진짜 현실인 묵시 곧 약속(하나님의 뜻)이다 말이죠
그런데 이 진짜 현실을 못 보고
자신들의 현실만 현실로 보는 겁니다

어라 이스라엘이 망하니까 갑자기 부요해 지는 겁니다

(겔 26:2, 개역) 『인자야 두로가 예루살렘을 쳐서 이르기를 아하 좋다 만민의 문이 깨어져서 내게로 돌아왔도다 그가 황무하였으니 내가 충만함을 얻으리라 하였도다』

무역이 늘어나고
그로인해 수수료 곧 커미션을 챙기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일하지도 않고 돈을 벌어 부자가 되더라 말이죠
여기서 멈추지 않죠
다음 주에도 언급하겠지만

바로 이런 현실을 두로 왕은 자신을 신이라고 칭하게 됩니다

지난 주 에돔의 심판에서도 언급했듯이
축복과 저주가 인간에게서 좌우 되지 않고
축복과 저주가 이미 먼저 있었기에
인간의 숙제에 의해서 나타나지 않는다 말이죠 

서로의 소욕이 정반대 이니까
이스라엘이 저주를 받으니까
당연히 자신들은 축복이다고 보는 거죠
이런 사고방식 곧 선악이라는 죄에서
우상에서 
육체의 소욕은 벗어날 수가 없어요

아무리 자신의 상황이 엉망이여도
이스라엘이 심판을 봐버린 이상
적어도 저 놈들 보다는 낫다 라고 희망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가난한 자들이 자신 보다 더 가난한 자들을 보고 안도함을 가지는 선악성 악마성처럼 말이죠
늘 부자를 여전히 꿈꾸고 있다는 거죠
아무리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 보다 더 어렵다 라고 해도 말이죠 불가능하다 라고 단절 시켜도 말이죠

자 이렇게 지난 주 에돔이 곧 에서죠
아무리 형제지간이여도
이스라엘(야곱) 덕분에 많은 혜택을 받아도

(신 2:4, 개역) 『너는 또 백성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세일에 거하는 너희 동족 에서의 자손의 지경으로 지날진대 그들이 너희를 두려워하리니 너희는 깊이 스스로 삼가고』
(신 2:5, 개역) 『그들과 다투지 말라 그들의 땅은 한 발자국도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세일 산을 에서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로라』
(신 2:6, 개역) 『너희는 돈으로 그들에게서 양식을 사서 먹으며 돈으로 그들에게서 물을 사서 마시라』

다른 가나안 민족 무조건 다 멸망인데
에돔은 봐 주라 라고 하십니다
그냥 지나쳐라 라고 말이죠

그런데 그들은 눈에 보이는 야곱 곧 이스라엘만 보일 뿐이지
주가 안 보입니다 축복과 저주는 저 분에게 달렸는데도 불구하고 
도리어 이유 없이 미운 거죠

(옵 1:10, 개역) 『네가 네 형제 야곱에게 행한 포학을 인하여 수욕을 입고 영원히 멸절되리라』
(옵 1:11, 개역) 『네가 멀리 섰던 날 곧 이방인이 그의 재물을 늑탈하며 외국인이 그의 성문에 들어가서 예루살렘을 얻기 위하여 제비뽑던 날에 너도 그들 중 한 사람 같았었느니라』
(옵 1:12, 개역) 『네가 형제의 날 곧 그 재앙의 날에 방관할 것이 아니며 유다 자손의 패망하는 날에 기뻐할 것이 아니며 그 고난의 날에 네가 입을 크게 벌릴 것이 아니라』
(옵 1:13, 개역) 『내 백성이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성문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고난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재물에 손을 대지 않을 것이며』
(옵 1:14, 개역) 『사거리에 서서 그 도망하는 자를 막지 않을 것이며 고난의 날에 그 남은 자를 대적에게 붙이지 않을 것이니라』

그래서 이스라엘이 멸망하도록 바벨론을 도리어 돕게 되는 거죠

결국 축복과 저주에 대한 결핍성을 에돔 곧 에서는 해결할 길이 없다 말이죠
여전히 장자권을 빼앗겼다 라고 보는 거죠
사실은 처음부터 축복이 소유권을 쥐고 있는데
그 축복과 저주의 대상물이 되어야 하는데
거꾸로 인간이 축복과 저주를 대상화 한다는 거죠
그런 사고방식에 동원이 되는 것이 선악의 사고방식인 거죠
내가 곧 하나님과 같이 된 자이다 높다
축복과 저주 권은 내가 쥐고 있어야 한다

어 저 이스라엘 봐라 저주 받았지
내가 바라는대로 되었구나 라고 
그 동안의 결핍을 비로소 표출 시키는 겁니다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18명이 죽게 되니까
저 죽은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저주 받아서 그렇죠?
아니 그 다음 니 차례인데????

(눅 13:4, 개역)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옵 1:11, 현대어) 『네가 서서 구경하던 날, 이방 군인들이 야곱의 군인들을 포로로 잡아 끌고 가던 날, 이방인들이 예루살렘의 성문으로 들어와 제비를 뽑아 도성을 나누어 가지던 그날에, 너도 그 원수들 중의 한 사람과 꼭 같았다.』

자 이것이 모두 내 축복은 내 구원은 내가 따낸다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내 몸은 내가 구원시키겠다 라고
가룟유다와 다를바 없어요
나중에는 거꾸로 이스라엘이 역시나 예수님에게 이런 짓을 하더라 말이죠
모든 인간은 안 됩니다
안 돼 ~~~~~~~~~~~~~~~~~~~~~~~~

자 이런 혜택들이 실제적으로 에돔은 과거에 그랬지만
정작 이스라엘 멸망으로 인해 가장 직접적인 혜택들이 마구 쏟아지는 자들이
바로 두로 였다 말이죠

자 분명 이스라엘을 주님은 이스라엘만 다루시는게 아니라
반드시 주변 나라 이방나라와 함께 한 세트로 다루십니다 두 언약처럼
서로의 소욕을 유감없이 다 드러내도록 말이죠

두로는 어떤 혜택인가
쉽게 설명해 한국이 6.25 전쟁으로 인해서
군수물자를 찍어내는 공장을 가동시켜서
태평양 전쟁으로 핵무기에 폐허가 된 일본이
다시 일어설수 있게 된 나라가 바로 일본이였다 말이죠

바로 그런 혜택을 두로가 입게 되는 겁니다
얼마나 많은 무역이 왔다 갔다 라는 그 중간지점에서
커미션을 챙기는 무역중심국으로 자리잡게 되었으니
공짜로 가만히 있어도 나라가 부요하게 되었냐 말이죠
그런데 그 부요함이 도리어 독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 부요함이 독이 되는 진짜 현실을 못 보고
부요함 이라는 허구를 현실로 봐 버렸으니 말이죠

왜 독이 될 수 밖에 없으냐
이스라엘의 멸망을 주님이 직접 펼치시는
이 현실을 남의 일 쳐다 보듯이 한 겁니다

아니 남의 일 맞잖아요
남의 나라 일인데 자기 나라 일로 어떻게 여기냐 말이죠

그런데 항상 배신자가 있다고 했잖아요
여호와의 이름이 진짜 현실 맞습니다 맞고요
기생 라합이 거짓말 한 것이 도리어 참 말한 것이다 라고
야고보서에서 세가지 예 중에 하나로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도됨의 증거
성도 됨의 증거가 역설적이게도 매맞음이래요 글쎄
죽임 당하는 거래요 글쎄

(고후 6:8, 개역)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고후 6:9, 개역)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고후 6:10, 개역)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그래서 속이는 자 같으나 기생 라합이지요
이것이 참 되다 라고
무명한 자 같으나 산적 두목 이름 뭐죠 입다
이 입다의 딸 이름이 없어요
그런데 인신제사로 유명하게 성화론자들이 자꾸 언급해요
그래 따지면 꺽으신 뼈 라는 무명의 솔로몬의 형 아기
이것이 바로 십자가에 달려 죽는 예수님 아닙니까
인간들의 이름으로부터 삭제 당한 이름
무명

영화 곡성이 생각나넹 ㅋㅋㅋㅋ

죽은 자 같으나 산 자
아브라함 이지요 한 몸인 불임여성 죽은 태 사라

수태치 못한 자여 기뻐하라 하늘에 자식이 많다 라고
갈라디아서 4장 두 언약에 갑자기 튀어나옵니다

아까 언급된 그 구절 바로 뒤에

 (갈 4:29, 개역)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갈 4:30, 개역)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갈 4:31, 개역)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왜? 핍박 당하도록 되어 있는 성령의 소욕이니까 말이죠

자 그럼 오늘 본문 에돔이 왜 유업을 받지 못하냐
이스라엘을 멸망시켜서 포도원 틀에 넣어서 즙을 짜는
이 혼인잔치에
살벌한 거룩의 전쟁이라는 현실을 그들은 못 보고
오히려 부어라 마셔라 술에 취한 모습으로 

아하 아하 성전을 삼일 만에 짖는 자여
왜 너 자신을 못 구원하냐 라는 이 육체의 소욕을 드러내니까 말이죠

어느 손으로 때렸게
옷을 찢고 제비뽑기 하고

(시 35:21, 개역) 『또 저희가 나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고 하하 우리가 목도하였다 하나이다』

(시 35:20, 개역) 『대저 저희는 화평을 말하지 아니하고 평안히 땅에 거하는 자를 거짓말로 모해하며』
(시 35:21, 개역) 『또 저희가 나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고 하하 우리가 목도하였다 하나이다』
(시 35:22, 개역) 『여호와여 주께서 이를 보셨사오니 잠잠하지 마옵소서 주여 나를 멀리하지 마옵소서』
(시 35:23, 개역) 『나의 하나님 나의 주여 떨치고 깨셔서 나를 공판하시며 나의 송사를 다스리소서』
(시 35:24, 개역)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공의대로 나를 판단하사 저희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소서』
(시 35:25, 개역) 『저희로 그 마음에 이르기를 아하 소원 성취하였다 하지 못하게 하시며 우리가 저를 삼켰다 하지 못하게 하소서』
(시 35:26, 개역) 『나의 해를 기뻐하는 자들로 부끄러워 낭패하게 하시며 나를 향하여 자긍하는 자로 수치와 욕을 당케 하소서』
(시 35:27, 개역) 『나의 의를 즐거워하는 자로 기꺼이 부르고 즐겁게 하시며 그 종의 형통을 기뻐하시는 여호와는 광대하시다 하는 말을 저희로 항상 하게 하소서』
(시 35:28, 개역) 『나의 혀가 주의 의를 말하며 종일토록 주를 찬송하리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렸을때에
우리 모든 인간은 아주 아주 기뻐했다 말이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라
축복과 저주를 우리 기준으로
그것도 하나님까지 끌어와서 하나님의 저주인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라
오죽하면 24장로(계시록)까지도 그랬냐 말이죠
그 정도로 우리는 어두운 눈이였다 말이죠

시편 35편은 다윗의 고백인데
알고 보니 그건 그림자 였고 다윗은 근처도 못 간 거죠
실상은 예수님이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할 정도로
핍박

원수들로부터의 핍박

그 정도로 모든 육체의 소욕이 다 들통낼 정도로

자기들이 알아서 스스로 유감없이 숨겨놓은 본심을 속말을 마구 마구 끄집어 낸 것이

삽자가였다 말이죠
그러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걸림돌의 지혜인거죠

같은 형제
혜택 받음
이런 모든 것이 은혜로 긍휼로 인애와 자비로 본 것이 아니라
손가락 계산하여서
너가 7번 용서 했으면 나는 도리어 이제 너를 앞서서 8번 용서하게 되었다 라고
종교 게임을 했던 겁니다.

자기 백성에게 오면 뭐합니까 도리어 죽이는데

두로가 다윗때에 엄청난 혜택으로 인해 약속의 땅에 거하게 됩니다
그들 두로의 땅을 약속의 땅 속에 집어넣었다 말이죠

(삼하 5:10, 개역)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삼하 5:11, 개역) 『두로 왕 히람이 다윗에게 사자들과 백향목과 목수와 석수를 보내매 저희가 다윗을 위하여 집을 지으니』
(삼하 5:12, 개역)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 왕을 삼으신 것과 그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아니라』

만군의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다 라는 겁니다
그것을 누가 봤다? 두로 왕 하람이 봤다 말이죠
현실을 제대로 본 겁니다

그렇게 축복을 동행으로써 봤다 말이죠

그런데 지금은 이스라엘이 저주 받으니까
주님 또한 그 저주에 동참하고 있는데
이제는 못 보게 되니까
약속의 땅에 속했던 두로가 이제는 작살이 나는 겁니다

동행을 못 보는 거죠
같은 운명
사실은 이스라엘의 멸망은
에스겔 서의 새성전인 인자의 운명과 함께 동행해야 하기 때문에
먼저 나타날 뿐이지

사실은 누가 먼저 있었다?

새 일
새 언약 바로 새성전인 인자

그 인자의 증상물로써의 이스라엘 멸망이 있는 겁니다

아니 두로가 다윗과 동행 하는 하나님을 그때는 봐 놓고서는
이제는 왜 못 보냐 말이죠

그래 너도 멸망을 당함으로 인해서 못 보는 것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봐서라도 왜 나 두로 족속 조차도 이 멸망에 동참 되어야 하는지를 봐야 한다는 겁니다
이스라엘은 그저 미끼였고
진짜 현실은 새성전 곧 인자의 죽으심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는 거죠
인간의 멸망 인간의 죽음은 죽음 축에도 못 드니까

진짜 현실은 보라 라고

한 쪽 강도가 주여 당신의 나라에 저를 기억해 달라고
자기 죽음이 지금 십자가 처형 속에서 닥치는 것 더 이상 의미가 없고
오로지 주님이 몰고온 당신의 나라가 진짜 현실임을 봤듯이 말이죠

원래 애초부터 인간은 살 자격 조차도 없으니까 말이죠
율법은 단 하나를 어겨도 사형이거든요

자 이렇게 두로 왕이 다윗때는 은혜를 봐 놓고서는
이제는 은혜를 못 보니까
은혜의 끈이 떨어지게 되니

선악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인애와 자비 라는 긍휼을 불쌍히 여겨주심을 바라는게 아니라
도리어 번제와 제사를 따지는 선악을 따지더라 말이죠
저놈은 저놈 이스라엘은 멸망 당해도 싸다
즉 이 말은 나는 축복 받아야 한다 라고 본 거죠

이런 인간을 인간 취급도 안하시는
진짜 현실인 여호와의 이름을 무시하기는 매 마찬가지 이니까 말이죠

주님의 동행을 
곧 같은 운명을 못 보니까 말이죠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로운 왕이 애굽에서 나타나니까
그들은 여호와가 누군지 몰라서
이스라엘과 동행하시는 여호와 로부터 멸망 당하게 됩니다
인간 취급 못 받더라 라는 거죠

그들 애굽 또한 7년 흉년으로 인해 요셉으로인해
다들 흉년 속에 다 죽어나갈때에 도리어 강국 부요한 나라가 되었다 말이죠
그 은혜를 모르고
그 요셉을 모르니까
하루 아침에 쫄딱 망해 버렸잖아요

왜? 이스라엘을 십자가 피 속에 집어넣겠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 속에 집어넣겠다 라는
동행
같은 운명 만들기
한 몸 만들기 라는 예배 세례 함께하심을 그들이 거부했거든요
그들은 다른 현실을 가지고 있었다 말이죠

진짜 현실을 못 보니까
요셉을 모르는 새 왕의 등장으로 인해 괜히 쫄딱 망하는 겁니다.
그들의 후사 곧 부활은 은혜는
즉 장자 죠
다 죽게 되는 겁니다
장자를 위한 방어막이 바로 10개가 넘는 신들이였죠 보디가드
그것이 10가지 재앙입니다
자신들의 보호신이 도리어 재앙이 될 줄 ~~~~~~

바벨탑 건설때에 언어로 소통하는 것 즉 집결이지요 그게 국가죠
언어를 톡 건드리니까 저절로 흩어지듯이

자기들의 자랑이 도리어 자기들의 올무가 된 겁니다
율법을 지킴으로 인해서 멋들어진 대우를 받던 것이
예수님으로 인해 도리어 독사의 자식이라고 취급 받는 것처럼 말이죠

자 이렇게 이들 두로처럼 이방나라가 중요시 여기는
울리는 꽹과리 즉 수 많은 무기가 달그닥 거리는 소리
그리고 부요함
권력
힘들이
다 주님의 은혜의 전쟁
질투의 사랑 앞에서는 무용지물입니다
사랑이 아니면 울리는 꽹과리 이다 말이죠

그런것들에 의해서 망하는 이스라엘은 도대체 뭘 봤냐 라는 거죠
아이고 저런 허구 허깨비에 놀아나다니
차라리 망하는게 맞구나 맞습니다 맞고요

또 이방민족은 허구인줄도 모르고 
이스라엘을 허구의 권력으로 뭉개뜨렸다 라고 좋아라 라꼬 자랑하는 것 조차도
허구로 드러날때에 그 허구에 자기가 자기 꾀에 자기가 망하게 되는
이 진짜 현실을 못 보고 말이죠

양쪽 다 깨뜨리시는 겁니다.
돈이 없어서 망하는게 아닙니다 그럼 돈 있는 놈은 왜 망하냐 말이죠

망하는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으로 모든 것을 판단했기에

마치 이방나라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좋아라 하고 바벨론을 돕는 이유가
선악과를 따먹듯이 하나님과 같이 되는 기분을 느꼈다 말이죠
그게 괜히 먹어서 망하는 겁니다

생명나무를 먹었던 두로 왕 히람이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약속의 땅에 들어오게 됨으로써 혜택을 누렸듯이
이방인에게는 있을 수 없다 말이죠
다윗이 그 중간다리 역할을 한 거죠

그런 중보자의 기능의 이스라엘을 도리어 잡아먹고
예수님을 잡아먹는 이스라엘처럼

짐승으로 돌변하는 겁니다

짐승에게 소통 되고 매매 되는 것은
선악 뿐입니다

누가 더 높은 자가 되느냐

남자들의 정신병이지요
뱀의 후손이니까 말이죠

누가 큰 자냐
그 쓸데 없는 싸움을 멈출 길이 없어요 의문의 반복입니다
바람쥐 챗바퀴 돌 듯이

여자는 희숙대리 인 거죠
날 생각 안 해준다는 거지? 그럼 꺼져 나 집에 갈꼬야

바닥 없는 무저갱과 같아요 만족함이 없다 말이죠
그 오홀리바 무녀의 텐트 안에 하나님의 텐트로써
바닥 치게 하시는 겁니다

아이고 그것도 죄가? 문둥병이가? 고아 됨이가? 과부 됨이가? 나그네 됨 이가?
그것도 죽음이가?
바닥을 쳐 버리는
죽음 보다 더 강한 질투의 사랑이다는 겁니다.

은혜의 왕 노릇은 사망의 왕 노릇을 빵구멍을 뻥뻥 내 버리는 겁니다
그것도 공백이가? 라고 더 더 더 건널수 없는 공백을 더 크게 빵구멍 내 버린다 말이죠

다윗은 왕으로써 엉터리 하나님
지난 주 마태복음에서는 죽은 자의 하나님을 우기고 있더라 말이죠
그런 사망이 왕 노릇하는 다윗에게 빵꾸멍을 뻥뻥 내어버리니까

왕 자리가 빵빵했던 풍선이 펑 하고 터지면서
원수로 드러나니까
이 구원의 뿔이
이 은혜의 전쟁이 곧 붙이시는 전쟁이, 은혜의 왕 노릇이 옳았다 라고
원수로 드러난 자리에서 인애와 자비를 바라게 되는 겁니다
안 그러면 또 번제와 제사
율법 4배나 갚으라 라꼬 또 선악을 주장해요 글쎄
원수 노릇을 해요

지난 주 이사야 서에서
주님은 홀로 전쟁을 하신다 구원의 전쟁을 펼치신다 라고 했습니다
그 전쟁을 보라꼬 졸졸졸 뒤 따르던 이스라엘이 오히려 원수 노릇을 하고 있는데
차라리 다 죽여서 이 구원전쟁인 붙이시는 전쟁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그 허구를 좋아라 했다가 허구에게 망해서
그 허구를 다시 멸망시키는 주님의 전쟁을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아 그럼 안 멸망 하도록 해야 겠네 라고 해석하는 것은 성화론자들의 또 또 인간숙제이고요
주님의 숙제로 인해
내가 도리어 원수로 밝혀진다는 것

다윗이 그랬듯이 말이죠 원수로 드러나는 것
이것이 은혜가 나에게 질투의 사랑을 펼쳤다는 증상 증거이다는 겁니다

이 십자가로 인해 매일 매일 구멍이 뚫히는 이 현실만이 진짜 현실이고
나머지는 허구이다 라고
이 진짜 현실을 말하기 위해서 주변 나라 주변인물 세상이 모두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시면서

이 새 일로 인해서
저런 허구를 부러워 할게 아니라(이스라엘이 주변나라의 우상을 부러워한 이유)
도리어 자식에게 매를 대시는 그 아버지의 함께하심을
도리어 사생자 이방나라가 부러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머니 하나님이
어머니를 죽도록 괴롭히시는 하나님이 내 하나님입니다 라고
이것이 진짜 현실임을
도리어 이방나라가 이방여자 며느리 룻이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면서

매일 매일 새롭게 십자가의 피 용서를 보여주시는 주님과 함께 동행하고 있음을
그 주님과 한 몸 이다는 사실에
같은 운명 같은 길을 매일 매일 걷고 있음을 기뻐하시면 됩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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