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 애굽 왕 바로에 대한 심판 (겔 29, 1-12)

교만한 두로 왕에 대한 심판 (겔 28, 1-26)
에스겔 2019 2020. 11. 22. 09:45
19-72 두로 왕의 교만에 대한 심판 (겔 28, 1-26)

〈에스겔 29: 1-12, 개역한글, 구약성경 1195 쪽,  찬송가 384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

(1) 제십년 시월 십이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2) 인자야 너는 애굽 왕 바로와 온 애굽으로 낯을 향하고 쳐서 예언하라

(3) 너는 말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애굽 왕 바로야 내가 너를 대적하노라 너는 자기의 강들 중에 누운 큰 악어라 스스로 이르기를 내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 하는도다

(4) 내가 갈고리로 네 아가미를 꿰고 네 강의 고기로 네 비늘에 붙게 하고 네 비늘에 붙은 강의 모든 고기와 함께 너를 네 강들 중에서 끌어내고

(5) 너와 네 강의 모든 고기를 들에 던지리니 네가 지면에 떨어지고 다시는 거두거나 모음을 입지 못할 것은 내가 너를 들짐승과 공중의 새의 식물로 주었음이라

(6) 애굽의 모든 거민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애굽은 본래 이스라엘 족속에게 갈대 지팡이라

(7) 그들이 너를 손으로 잡은즉 네가 부러져서 그들의 모든 어깨를 찢었고 그들이 너를 의지한즉 네가 부러져서 그들의 모든 허리로 흔들리게 하였느니라

(8)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칼로 네게 임하게 하여 네게서 사람과 짐승을 끊은즉

(9) 애굽 땅이 사막과 황무지가 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네가 스스로 이르기를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만들었다 하도다

(10) 그러므로 내가 너와 네 강들을 쳐서 애굽 땅 믹돌에서부터 수에네 곧 구스 지경까지 황무한 황무지 곧 사막이 되게 하리니

(11) 그 가운데로 사람의 발도 지나가지 아니하며 짐승의 발도 지나가지 아니하고 거접하는 사람이 없이 사십 년이 지날지라

(12) 내가 애굽 땅으로 황무한 열국 같이 황무하게 하며 애굽 성읍도 사막이 된 열국의 성읍 같이 사십 년 동안 황무하게 하고 애굽 사람들은 각국 가운데로 흩으며 열방 가운데로 헤치리라

(겔 29:1, 현대어) 『[창조주를 자처한 죄] 우리가 포로로 끌려간 지 ㄱ) 제 10년 10월 12일에 여호와께서 내게 또 말씀하셨다. (ㄱ. BC 587년 1월)』
(겔 29:2, 현대어) 『'너 사람아, 애굽 왕 바로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바로와 애굽 땅에 내릴 내 심판을 선고하여라.』
(겔 29:3, 현대어) 『너는 이렇게 전하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다. 너는 이제 내 벌을 받게 되었다! 네가 교만에 가득 차서 삼각주의 모든 강은 네 것이고 그것을 창조한 자가 바로 너라고 떵떵거리며 못하는 말이 없다마는 너야말로 나일강의 지류들 속을 기어 다니는 한 마리 덩치 큰 악어에 불과하다!』
(겔 29:4, 현대어) 『그러니 내가 갈고리에 미끼를 달아 네 아가미를 꿰어 붙잡고 강에 사는 모든 물고기들이 네 비늘에 달라붙게 만들겠다. 그런 다음 너를 네 물고기들과 함께 나일강의 한복판에서 공중으로 높이 들어 올려서』
(겔 29:5, 현대어) 『뜨거운 모래 벌판으로 내던지겠다. 그러면 그들과 함께 시체조차 거두어 묻어 줄 사람 하나 없는 허허벌판에 쓰러져 죽을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사막의 들짐승들과 공중의 새들에게 너를 먹이로 넘겨 주면』
(겔 29:6, 현대어) 『그제서야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애굽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깨닫게 될 것이다. 애굽아, 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제까지 허망한 희망을 품게 하였다! 그들은 갈대 지팡이 같은 네게 속아만 살아왔다.』
(겔 29:7, 현대어) 『너는 그들이 손으로 붙잡자 갑자기 부러져 오히려 그들의 온 팔을 찢어 놓았고 단단하다 여기고 의지하자 부러져 허리까지 다치게 하였다.』
(겔 29:8, 현대어)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분명히 말한다. 보라, 내가 너를 원수들에게 넘겨 주어 애굽 천지에서 사람과 짐승을 모조리 죽여 없앨 것이다.』
(겔 29:9, 현대어) 『그들이 이렇게 애굽의 모든 성읍을 파괴하여 쓰레기더미로 만들고 애굽의 온 땅을 폐허로 만들면 그제서야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애굽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피부로 느껴서 깨닫게 될 것이다. 바로야, 네가 이르기를 이 삼각주의 강들은 모두 네 것이고 그것을 만든 자도 바로 너라고 하였으니』
(겔 29:10, 현대어) 『보라, 내가 이제 너만이 아니라 네가 좋아하는 나일강과 애굽의 온 땅을 쑥밭으로 만들겠다. 애굽 최북단의 요새 성읍 믹돌에서부터 나일강 상류로 거슬러 가 아스완 댐이 있는 수에네까지 망치고 거기서도 더 나아가 구스의 국경선에 이르기까지 애굽 전역을 망쳐 놓겠다.』
(겔 29:11, 현대어) 『그러면 애굽 땅에는 사람의 발길이 끊어지고 짐승도 살지 않게 될 것이다. 애굽 땅이 이렇게 40년 동안 황폐하게 될 것이다.』
(겔 29:12, 현대어) 『내가 멸망시킨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애굽도 40년 동안 이처럼 허허벌판이 되고 그 화려한 도성들도 모조리 쓰레기더미가 되어 버릴 것이다. 애굽의 주민들을 모조리 세계 각처로 흩어 놓아 다른 민족들 속에 혼합시켜 버릴 것이다.』


십계 라는 영화를 보면서
한 가지 재미있는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당연한 것이겠지만 보면서도 새삼스럽게 신기했습니다

어떻게 한 쪽에는 먹고 마시는 잔치가 벌어지는데 있어서
다른 한 쪽은 어떻게 장자의 죽음이 펼쳐지는가 하는 점입니다

물론 잔치다운 잔치라기는보다
밤 사이에 어두움을 통과하기 위한 든든한 배채움 같아 보였다 말이죠

우리 어릴적 국민학교때에 소풍을 간다 라고 하니
머릿맡에 신발 그리고 옷을 두고서 
잠을 잘려고 하니 잠이 안와서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설레고 긴장도 하고 그런 마음처럼 말이죠

장자의 죽음이 뭡니까
결국 모든 종교는 부활종교라고 했잖아요
애굽 또한 피라미드 짖는 이유가
바벨탑처럼 구원을 받기 위한 것이다 말이죠
그런데 장자가 죽으면
구원이고 나발이고 다 없는 겁니다
네 부활이 없는 거죠

산자의 하나님이냐 아니냐 라는 것은 결국 부활에 달린 겁니다 곧 구원입니다

자 그럼 이스라엘은 그럼 괜찮으냐
아닙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면 통과 안 바르면 장자가 죽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즉 구원은 그냥 구원이 아니라
죽음 속에서의 구원이다는 거죠

마치 부활은 십자가 속에서만 있듯이 말이죠

그런데 오늘날까지도 어떤 무식한 목사는 
십자가 십자가
죄 죄 죄 그만좀 캐라
마이무따 아이가
이제는 부활을 믿으면 되는데 왜 자꾸 죄 죄 죄 그러고 십자가 십자가 그러느냐 라고 말이죠

결국 그 교회는 교회로 장사를 하고팠던 겁니다
우상숭배로 빠지는 거죠
그 동안 각설이 예수를 흉내내면서 거지목사였던 과거를 청산하고
그 결핍을 이제는 마구 채우고파서 보상 받고파서
이제 부활을 믿어야지
십자가는 그때 한 번으로 끝났다고 하더라 말이죠

문제는 한 쪽은 장자의 죽음이 퍼부어지고
다른 한 쪽은 먹고 마시는 잔치가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단지 육적인 기쁨의 잔치가 아닌

네 맞아요 어떤 임금이 자기 아들을 위해서 혼인잔치를 벌린 임금비유가 생각났다 말이죠
한 쪽은 잔치인데 다른 한 쪽은 다 개죽음입니다
살벌한 혼인잔치다 말이죠
또 청함을 받아서 혼인잔치에 들어간 자도 예복을 입지 않아서 탈락이다 말이죠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받은 자는 적도다 라고 말이죠

즉 단순히 육적인 기쁨의 잔치로 빠진다 라면
왜? 예복을 입지 않냐 라고 추궁하는 임금의 질문에 유구무언이 된다 말이죠

저는 그 영화를 보면서
우와 아브라함의 이삭바치는 제사가
산 자의 하나님을 보여주시고자
이삭이라는 아들 때문에 아브라함이 태어나야만 했듯이
이스라엘은 유월절 어린양을 말하기 위해서
창조되고 생성이 되어야 하기에

이 유월절 어린양 잔치에 동원이 되더라 말이죠

그럼 나머지 곧 애굽은 유월절 어린양의 피 흘림이 없기에
사함이 없게 되는 거죠

모세와 애굽 때였으니까 성전이 있기 전이다 말이죠

그러니 막연하게 유월절 어린양의 피 에 대한 제사 곧 인애와 자비에 대한 제사를 말히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상을 섬기는 애굽이 동원이 되어야 한다 말이죠
한 쪽이 구원을 말하기 위해서 곧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말하기 위해서 나타나야 한다면
반드시 다른 한쪽은 심판을 말하기 위해서 반드시 장자의 죽음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모르는
산자의 하나님을 모르는
약속을 모르는

여호와가 누구관데 내가 그 말을 따를수 있겠냐 라는
애굽의 바로왕이 모세와 대비 되어서 나타나줘야 

이 약속(두 언약, 갈 4장)이 설명이 된다 말이죠 구원이 설명이 되요

왜냐하면 이것이 종말의 증상물로써
한 쪽은 천국의 증상물로써
다른 한 쪽은 지옥의 증상물로써

나타나 주도록 되어 있으니 말이죠


자 그럼 오늘 본문에서
정말 말도 안되는 것이 또 나옵니다

바로 애굽 왕에 대한 저주입니다
지금 현재 2020년대의 애굽도 아닙니다
그럼 에스겔 때 지금 본문의 에스겔 때의 애굽도 아니다 말이죠
네 맞아요 과거 애굽왕 파라오 왕 모세때의 애굽입니다

아니 모세 때의 애굽왕은 BC 1400년대의 사람이다 말이죠
죽었어도 한 참 전에 죽었습니다
에스겔 때는 BC 500년대 사람이다 말이죠 거의 천년 차이가 나는데
900년 전에 죽은 사람을 
또 오늘 본문에서 애굽왕을 끄집어 와서 심판을 퍼붓는 겁니다

이상하지 않나요?

늘 주님께서 성경에 이렇게 기록하셨다 말이죠
다시는 저 애굽을 못 볼 것이다 라고

(출 14:13, 개역)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그런데 정작 이스라엘이 과거의 옛일을 다 까먹고 잊어버렸을 진정
정작 주님은 늘 잊을만 하면 애굽을 들먹이면서 운운하시는 것은
주님이 도리어 상기 시키신다 말이죠
네 맞아요 이스라엘의 상대적인 개념이다는 겁니다
그러니 안 끄집어낼수가 없는 거죠

구원의 의미를 말할때에 반드시 애굽이 동원이 되어야 합니다
그 애굽을 거쳐서 이스라엘을 운운하듯이 한 세트가 되어야 하거든요

야곱을 운운할때에 반드시 형 에서를 운운해야지만
야곱 쪽에서 하나님을 사랑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님을
형 에서에 대한 태어나기도 전에 미움 받기로 작정이 되었음을 운운해야
구원이 설명이 되니까 말이죠

자 모세 때의 애굽왕은 주전 BC 1400년전 사람인데
그것을 다시 에스겔 때 주전 BC 500년전 이니까 
900년 전에 죽은 사람을 심판 하시는 겁니다

그것을 다시 지금 현재 우리에게 지금 알려주고 있습니다 주후 AD 2020년에 말이죠

자 그럼 지금 현재 주후 2020년 시점에서
모세때의 애굽왕 심판을 지금 다시 운운 하신다면
3400년 전에 죽은 사람을 심판 하시겠다 라고 하십니다

이 계시의 말씀이 우리에게 과연 와 닿기나 할까요?
바로 그겁니다
에스겔 때에도 그랬을 것이다 말이죠
그 애굽왕 심판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겠냐 라고 여길 것 아니겠습니까?

코로나 바이러스가 애굽왕 심판과 무슨 상관이 있겠냐 말이죠
지금 현재의 코로나 19 곧 2019년에 벌어졌다 라고 해서 19 아닙니까
그것이 애굽왕 3400년 전에 죽은 자를 다시 새삼 심판하시겠다 라는 것과 
무슨 상관이냐 말이죠

강퍅케 하심으로써 애굽왕과 애굽군사를 통해서 영광 받겠다 라는 구원과 연관 되기 때문입니다.
즉 상대적으로 한 세트가 되는 이스라엘은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는 거죠

이 둘을 한 세트로 해서
야곱은 태어나기도 전에 즉 인간의 숙제가 없이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원인 없는 결과로써의 구원을 펼치시겠다 이고

또 형 에서는 태어나기도 전에 즉 여기는 반대로 왜 니 숙제 안했노
장자권을 왜 무시했냐 라고 인간 숙제 안했다 라고 뒤집어 씌워서
아무리 원인을 갖추어도
이유 없이 저주를 펼치시겠다 라는 의미에서
형 에서에게 했듯이
애굽이 여기에 한 세트로서 이스라엘과 상대적인 의미로 나와줘야만

주의 구원이 설명이 되는 겁니다
이 둘의 차이로써 설명하시니까 말이죠
이것이 토기장이의 권한 이다는 겁니다.

그러니 바로 다음글 마태복음에서 언급하겠지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악날하고 인간말종이고
극악무도한 악인이라서 주님께서 저주를 퍼붓는 것이 아니라
오늘 본문의 저주처럼 말이죠

그 반대입니다
누가 봐도 모든 사람들이 아 저 사람은 저주 받아야 해 라고 해서
하나님까지도 그런 인간들의 다수에 동의를 해서 심판 내리시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기준 곧 인애와 자비 라는 십자가의 저주를 기준으로 해서
구원과 심판이 갈라진다 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구원받는 자의 대표성으로써의 오늘 본문에 이스라엘과
심판받는 자의 대표성으로써의 오늘 본문에 애굽왕에 대한 심판이다는 겁니다

다음글 마태복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지옥 갈 자의 대표성으로써 예수님이 언급을 하시듯이 말이죠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모든 사람들이 이런 예수님의 심판과 구원의 기준에 동의를 못한다
아니 할 수 없다
즉 모든 인간은 나 그 구원의 기준 난 반댈세 라고 나올 수밖에 없도록 하시겠다 라는 겁니다

도저히 이해와 납득이 되지 않는다 라는 점입니다.

헬라인 곧 지혜를 추구하는 인문학자들과 같은 이방인에게서는 십자가는 어리석고 미련함이요
유대인에게서는 거리끼는 걸림돌이다 말이죠 처음자리 곧 자신들이 태어난 자리를 스스로 발로 차버릴 정도로 만들어버릴 정도이니

이 얼마나 비밀 이냐 말이죠 단절이냐 말이죠
그 어떤 인간의 사고로서는 연합 합일 일치 동일시 되는 구석이 단 하나도 없다 라는 겁니다.

접근 자체가 차단 당해 버렸다 라는 거죠 배제 소외 된 겁니다

오로지 주님 홀로만의 숙제로 달성하신 것이 십자가 라는 약속성취 이니까 말이죠

바로 여기 주님 홀로 다 이루심이라는 구원에
상대적인 애굽왕이 심판으로서
한 세트를 구성하시는 겁니다

그래야 토기장이의 권한처럼
천히 쓸 그릇과 
귀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토기장이 마음에 달렸으니
여기에 대해서 힐문할 자는 그 어디에도 없어야 하는데 있어서

힐문하겠다 라는 자의 대표성으로써 애굽왕이 나오는 겁니다

즉 한 마디로 말해서 창조주의 자리에 앉은 겁니다.
토기장이의 권한에 도전하는 것은 창조주 토기장이로써 나서는 자 밖에 누가 있겠습니까?

지난 주 교만한 두로 왕이 신의 자리에 앉아버렸다 라고 했잖아요
그 연장선상에 그 배후에 즉 선배로써 그 뿌리를 족치는 겁니다
애굽 왕이였다 라는 거죠
이미 죽은 놈 끌어와서 니 땜에 임마 어
니 후배들 임마 어
다 니를 따라 하잖아 임마 어
그러니 니를 다시 쓰레기 통에서 소환해서 너를 심판해야겠니 안해야겠니 임마 어
라고 오늘 본문에서 언급 하시는 겁니다

두로 왕이 높은 자리에 앉아서 자기가 신이다 라고 우겼듯이

(겔 28:2, 개역) 『인자야 너는 두로 왕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말하기를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중심에 앉았다 하도다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 할지라도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어늘』

그 선배 였던 애굽왕도

(겔 29:3, 개역) 『너는 말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애굽 왕 바로야 내가 너를 대적하노라 너는 자기의 강들 중에 누운 큰 악어라 스스로 이르기를 내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 하는도다』

똑같이 우겨요
우기는 것 이상으로 스스로 사탄이다 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내 인생은 나의 것 이라고 부르는 거죠
그러니 스스로 대적자로 나서는 겁니다 사탄 말이죠
항상 사탄을 언급할때에 애굽을 운운하는 것과 같습니다 특히 계시록에서 말이죠

이 강은 내 것이다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 라고 창조주와 그 소유성을 외치고 있습니다
강은 한마디로 말해서 길과 같은 의미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마치 예수님이 하셨던 말을 마귀가 먼저 외치고 있는 거죠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를
애굽이 먼저 외친 셈입니다.

(요 14:6,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나 와 아버지로 이중분절이 된 주께서 내 주께입니다 즉 다윗의 주 이다는 거죠
원수를 드러내지 않는, 사망권세를 해결하지 못하는 주는 가짜 이다는 거죠
선악을 따 먹고 하나님과 같이 된 죽은자의 하나님이다는 겁니다.)
길 이라는 의미는 방향성입니다.

(겔 29:3, 개역) 『너는 말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애굽 왕 바로야 내가 너를 대적하노라 너는 자기의 강들 중에 누운 큰 악어라 스스로 이르기를 내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 하는도다』

오늘 본문에서는 강으로 표현이 되었는데
강에 뭔가가 다들 모여요
그 뒤에 구절에서 나옵니다.

(겔 29:4, 새번역) 『내가 갈고리로 네 아가미를 꿰고, 네 강의 물고기들이 네 비늘에 달라붙게 해서, 네 비늘 속에 달라붙은 강의 모든 물고기와 함께 너를 강 한복판에서 끌어내서,』
(겔 29:5, 새번역) 『너와 물고기를 다 함께 멀리 사막에다 던져 버릴 것이니, 너는 허허벌판에 나둥그러질 것이다. 내가 너를 들짐승과 공중의 새에게 먹이로 주었으니, 다시는 너를 주워 오거나 거두어 오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마치 타작마당을 토기장이가 곧 포도 농사꾼이 포도즙틀에 포도알갱이를 모으듯이
강의 모든 물고기들을 모아서 그물로 잡듯이 해야 하는데
그 창조주의 심판 권한을 이 놈들이 하고 있더라 말이죠

예수님 당시의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이 그렇게 하고 있어요
자기도 들어가지 않고 남도 못 들어가게 말이죠
자신들이 높은 자의 자리에 앉은 것 뿐만 아니라(모세의 자리)
섬기기는커녕 말이죠
거기서 끝나지 않고
백배나 지옥 자식 만들려고 두루 두루 돌아다니는 전도를 하고 있더라 라고
화있을진저 외식하는 자 라고 심판하시는 겁니다.

오늘날도 똑같습니다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임을 모르는 자는
어떻게 해서든 의인됨을 추구하고자
자기 의를 쌓기에 분주한데 있어서
백배나 지옥자식 만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은 마귀에게 장악당한 자들입니다
그러니 그들에게서 나오는 의로움은 한마디로 사람의 일입니다
뭘 해도 다 죄 밖에 안나오는데 있어서

도리어 심판하고 돌아다니더라 말이죠
백배나 지옥 자식 만들고자
두루 두루 돌아다니면서 전도를 하더라 말이죠

그 속에서 누구 하나 주여 저는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자가 없잖아요

심판 받을 정도로의 죄인은 아니다
내가 조금이라고 맘 먹고 수정하면 언제든지 의인이 될 수 있다 라는 사고방식에서
그것을 부추기는 자들이 바로 서기관과 바리새인
곧 실천가 들이다는 겁니다.
자기 숙제를 열심히 하는 자들 말이죠 말씀실천가

바로 이 놈들이 지옥갈 자들의 대표성으로써 예수님이 언급했듯이
애굽왕의 사고방식
내가 토기장이로써 사람들의 길을 인도하겠다
그 방향성에 후배 두로 왕도 거봐 거봐 
나도 신이다 신의 자리에 앉겠다 라고
자기 운명 자기 인생을 자기가 개척해 나가는 모습이
저 마다
애굽왕 바로왕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를 따라해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선배를 소환해서 심판하시는 겁니다.

너희들의 사고방식의 뿌리가 누구다?
그 원천을 끄집어 내어서 심판 하시는 겁니다

그러니 진짜 심판주가 누구냐 말이죠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심판주 노릇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길을 제시할때에
방향성을 제시할때에
그 길로 가지 않으면 심판과 저주를 퍼부을때에

누가 진짜 심판주로써 저들을 심판하시러 왔느냐 하는 겁니다

애굽은 썩은 동앗줄이요 상한 갈대이다 말이죠

(사 7:4, 개역)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삼가며 종용하라 아람 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연기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 말며 낙심치 말라』
(사 36:6, 개역) 『보라 네가 애굽을 의뢰하도다 그것은 상한 갈대 지팡이와 일반이라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손에 찔려들어가리니 애굽 왕 바로는 그 의뢰하는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

아하스왕이 꺼져가는 심지인 두 부지깽이 아람왕과 북이스라엘의 연합공격으로 인해
앗수르와 손 잡듯이
때려죽어도 임마누엘을 구한다 안 구한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 라고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고 했듯이

아들 히스기야 왕도 애굽과 손 잡을려고 하더라 말이죠

이런 종말의 상황에서 더 더 더 더한 종말인 임마누엘을 구하라?
말이 되냐 말이죠

누가 골리앗과 싸워야 하는 전쟁터에서
누가 아기를 구하냐 말이죠

정말로 정말로 이스라엘은 신기한 전쟁을 해야 하는 겁니다
혈과 육체를 죽이는 자는 두려워 말고
영과 혼을 죽이는 자는 더 두려워 하라 라고 하시니

(마 10:28, 개역)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다윗의 자손인 다윗의 주를 구하는 전쟁을
주의 이름의 전쟁을 하도록 되어 있다 말이죠
그 이름을 부르라꼬
바벨론 포로 속에 잡혀 온 겁니다.
포로 된 것 자체가 저들에게만 의미 있지
이스라엘에게는 아무리 이스라엘이 해체가 되어도
이름은(아무것도 아닌 그저 기호 단어 문자) 이 거룩한 전쟁을 보여주는
구원자의 이름을 말하거든요
임마누엘

임마누엘 전쟁인 거죠
동행하시는 자
함께 하시는 자
이 함께 의 의미를 이스라엘 조차도 몰라서
이스라엘 해체를 통해서 보여주시는 겁니다
보배를 담을 그릇을 깨뜨리니가
비로서 보배를 보게 되니
이 보배의 전쟁을 보고 목격하는 증인이 되는 거죠

자 여기에 상대적인 애굽왕은
바로 이런 주의 이름의 활동에 반대되는 모습으로서
모든 인간을 장악한 입장에서
사람들을 지옥으로 몰고 가고 있다 라는 겁니다.

자기도 안 들어가고 남도 못 들어가도록 막아서서
백배나 지옥 자식을 만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사고방식이
모든 유대인들을 장악했듯이
지금 현대까지의 모든 인간 앞으로 태어나는 인간들까지 다 장악하고 있는 겁니다.

서기관이란 오늘날로 치면 재판관이자 율법학자 신학자요
법을 만드는 자들이다 말이죠
아니 이런 자들을 아무나 뽑겠냐 말이죠
엄청난 경쟁률과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자를 뽑을꺼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백배나 지옥 만드는 자 라고 하십니다
상식적으로 예수님이 보시는 것과
우리의 시선은 완전 정반대입니다.

위선자 라고 외식을 다른번역에서 표현했는데
위 위장하다 선 선할선
선함으로 위장하다 라는 거죠

겉만 착한척 선한척 한다 라는 거죠

이런 자들이 길이다 진리이다 생명이다 라고 외치는 것은
그야말로
마귀가 모든 인간들이 갈 수 밖에 없는 길로 인도하고
그것을 진리인냥 서로 매매 하고 소통하고
그것을 귀한 생명이라고 여기게 만들기 때문에

이 애굽왕이 그런 사고방식을 퍼트린 뿌리로써 
바벨탑의 정상에 오른 첫 번째 주자로써
얻어터지는 겁니다.

이 애굽왕이 죽은지가 언제인데
쓰레기 통에서 다시 끄집어 와서 심판하시겠다 라는 것은
지금 지난 주 두로왕처럼
다들 이 애굽의 멸망을 보고서도
또 역시나 넓은 길로 가더라 말이죠

생명은커녕 죽음의 길로 가요 글쎄
멸망으로 죽음으로 인도하는 길은 크고 넓다 말이죠
다들 자기가 자기 것을 기준으로 인해서
나일강을 자기 것이래요 글쎄
서울을 하나님께 바치면서 서울이 자기 것이래요 글쎄
미친놈을 뽑아놓고서 아직까지 설쳐대요
그 잔당들이 여전히 권력을 잡을려고 말이죠
(위 위장하다 라는 한자말도 있지만
허위 즉 가짜 권세 여기서 위는 자리 위 권세 위죠
그 가짜 허구의 권력을 잡을려고 용을 쓰고 있어요
이런 애굽과 같은 상한 갈대 꺽지 않습니다
이미 꺽여졌음을 보라꼬 여전히 상한갈대 짖만 골라서 하고
거기에 빠져 속아 넘어갈 놈을 위해서 계속 유보 시키는 겁니다
이미 꺾여진 줄도 모르고 애굽을 의지하도록 말이죠)
심판을 보고서도 역시나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기독교는 사탄숭배자들이다 말이죠

이들의 사고방식이 뭡니까
나는 이유 없이 멸망 받아 마땅한 죄인이 아니다
나는 선하고 의로운 일을 했다면 심판 받을 이유가 없다
고로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이것이 내가 가야 할 길이다 인생이다 라고 여긴다 말이죠

모세 때의 애굽왕 바로왕이 그래요
마침 십계 라는 영화를 보면서도 느꼈는데

저는 바로왕을 볼 때 마다 박땡희가 생각난다 말이죠
자나깨나 자립국가건설 이다 말이죠

얼마나 기특합니까
그야말로 메시야다 말이죠
돌을 떡 덩이 되게 하고
거룩한 곳에서 떨어져도 두손으로 탁 받쳐주고
온 천하 만국을 얻게 된다는 것을 몸소 실천해 보여주는

박땡희 교 인가? 구미에 있지 않나요?

모든 종교는 한마디로 말해서 애굽교 이다 말이죠
몸소 실천해서 보여준 바로왕교
며칠전에 죽은 마라도나 종교도 있었듯이
뭔가 유익이 된다 싶으면 다 종교로 삼아요
그 뿌리가 국가 라는 종교입니다 짐승 666이다 말이죠
국가의 국가 됨을 제대로 보여준 첫 번째 국가가 애굽이니까 말이죠
그 이후의 모든 국가 곧 현대까지도 애굽의 재탕이거든요
에덴동산 같았더라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가 있어
아아 우리 대한민국 아아 우리조국 아아 영원토록 사랑하리라

아무튼 그 영화를 보면서
아무리 봐도 애굽왕도 정상이고
다 정상이다 말이죠

딱 한 사람 모세만이 말도 안되는 것만 골라서 해요
사람들에게 거리끼는 걸림돌 기능만 해요
애굽의 왕자 였을때만 해도 멀쩡하던 인간이
갑자기 변하니까
전혀 딴 세상 사람
우주인처럼 굴어요 글쎄

선지자란 그 시대의 메시아 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반드시 거짓선지자로서의 가짜 메시아가 반드시 등장해야죠
바로 애굽의 바로왕입니다
안 말려들수가 없어서 이 놈도 완전히 미쳐가요 글쎄

에스겔 당시의 메시아 기능은 바로 인자로써 동원이 된 에스겔입니다
이 애굽 이야기를 왜 끄집어 내는지
네 맞아요
임마누엘을 구하라 라고
종말의
다윗의 주를 구하라
다윗의 자손이 아닌 주 말이죠

이 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세계가 말이죠
모세 중심으로 돌아갔듯이
자 그렇게 될려면
또 애굽왕과 같은 창조주 라고 설쳐대는 놈이 나타나야만 해요
그런놈 나타나면 아 가짜 창조주에 상대적인 진짜 창조주가

마치 포도원 농부처럼 포도즙틀에 포도알갱이를 넣어서 즙을 짜서
혼인잔치의 기쁨의 잔치를 벌려야 하듯이
이 중심으로 인해

가짜들도 가짜들만의 잔치를 벌리도록
그래야 벨사살처럼
오늘밤 내 영혼아 편히 쉬자 라고
성전의 물건을 빼앗았다 라고 잔치를 벌릴때에
그때에 하이라이트로
자기 꾀에 자기가 스스로 독을 타서 마셔 죽는
이 애굽왕의 뒤를 따라가도록 만드신다는 겁니다.

정말 말도 안되죠

오죽 하면 그 십계라는 영화에서
백성들은 이 애굽왕이냐 모세냐 그 중간에 낑겨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왔다 갔다 하면서 막 죽어나가도
또 애굽왕의 사고방식이 얼마나 강하게 자리잡았으면
뻔히 알고서도 다 속아넘어갈 정도로 믿음이 가고
모세는 전혀 믿음이 안 가는 소리만을 하더라 말이죠
세상에 없는 일이 새로 나타나야만 하는 소리를 하니까 말이죠
기존의 있던 이야기들은 애굽왕이 다 하거든요

서기관과 바리새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백배나 지옥 자식 만든다는 것을 
지금 현대인들도 뻔히 다 알아도
지금 현재까지도 다 속아 넘어가요 글쎄

괜히 그들을 세운 것이 아니다 말이죠
여전히 십자가의 복음을 외치는 자는
기존의 없던 이야기를 새로 하기 때문에
전혀 믿음이 가질 않는 겁니다.

누가 큰 지진 큰 파도 번대 허리케인에 두려워 떨지
누가 세미한 듣길랑 말랑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수 없는 그 세밀한 음성에 두려워 떠는자 있겠습니까?

누가 전쟁 중에 무기 강력한 힘과 권세를 더 얻고자 할려고 하지
누가 어린아이의 젖 달라는 울부짖음을 구하는 자가 세상에 어디있습니까?
누가 임마누엘을 구하겠냐 말이죠
십자가의 저주가 옳았습니다 라고 구하는자 어디 있겠냐 말이죠

자기는 이유 없이 까닭없이 살아야 함을 구하지
나는 구원 되면 안됩니다 심판 받아야 합니다 라고 구하는 자는 없다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애굽 왕의 말로가 죽음이요 심판이요 저주 
곧 지옥이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은

우리 또한 애굽 왕의 길로 가고 있기에
그 저주의 길을 심판하시는 구원을 펼치시겠다 라는 겁니다.
이 구원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가 아무리 모래와 같이 많았어도
택함을 받은 자는 적었듯이

이건 뭐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그 정도로 사람의 뜻으로나 혈과 육정으로 나지 않는
하나님의 뜻에서 나는 구원을
또렷하고 명료하고 밝히 보이시겠다 라는 겁니다

마귀 보란 듯이
애굽왕 보란 듯이
오늘날 우리 보란 듯이 말이죠

이 주님의 믿음대로만 펼쳐지는 세상을
저 딴 세상에서 따로 펼치시는게 아니라
이제는 공간 시간을 초월해서
그때 애굽 나라 한 복판에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 곧 이스라엘을 세웠듯이 약속을 세웠듯이

이제는 그 애굽이라는 공간이 지구 전체로 확대되었듯이
시공간을 찢고서
역사를 찢고서
침략 침노하는 복음에 의해서
택함을 받은 적은자들이
남은자 들이
불구덩이 속에서 다 타버려서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남은자들이
주님 앞에 나아오는 이 새 일을 펼치시겠다 라고
임마누엘이라는 자기 언약을 완성하셨음을 선언해 버리시는 겁니다
이 창조주라는 토기장이의 권한만을 펼치시면서 말이죠

달음박질 함도 아니요

(롬 9:16, 개역)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오로지 주님이 불쌍히 여겨주시는 그 긍휼을
심판 속에서
해체 속에서 보는 겁니다.

이미 벌써 죽은 1000년 천년 전에 죽은 애굽 왕까지 소환하시면서 까지
이 심판을 똑똑히 또렷하게 보여주시는 이유입니다
정말 말도 안되는 것만이 말이 되게 하시는 종말의 주가 하시는 일입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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