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 받음의 의미를 모르기에
부자청년이 되고픈 것임


날짜, 보낸사람, 받는사람, 내용

2009-01-15 13:21:40,

세상은 심판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되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사랑과 구원과 돌보심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된다 하나님을 아는 차원이 다르다 하나님의 심판이 나타나기전에 우리는 힘써서 하나님을 아는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자들 하나님과 관계성을 맺는자들에겐 이 날이 구원의 날이 되겠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비로소 심판을 통해 알게 되는 사람들은 그날이 죽음의 날이고 심판의 날이고 하나님을 알게 됨으로 멸망하게 된다

2009-01-15 13:24:07,

그래서 교만하게 되면 안 된다 하나님을 알되 온전히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 만큼 인격을 가지고 살아가는게 중요하다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것이다 그것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살아가는 증거이다 영광은 삶에서 나오는것이다 생활 언어 행동을 통해서 나타날때에 하나님이 기뻐받으시는 것이 된다

답변 :

인격 놀이를 여전히 멈출 생각이 없다는 뜻입니다.

종교놀이란 바로 이런 공갈 협박만이 자기들의 종교직을 이을 수 있다는 취지를 그 가치성 부여로 인해 생산력을 발휘하는 겁니다. 생산력이 없는 종교란 죽어 있기에 서비스 정신에 위배 되겠지요.

심판이란 피할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심판 자체가 구원이 되는 겁니다.
그렇기에 심판을 피해서 구원 되는 것이 아니라 심판 속에서 구원이 되는 겁니다.
불 속에 들어가서 비로소 구원의 세계를 보는 것이지
불 밖에서 불을 피했다고 구원되었다는 것은 여전히 불 속에 있는 예수님을 볼 생각이 없고 자기 구원만 챙겨먹는데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취지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심판 속에서 불 속에 있는 예수님을 보고 기뻐 찬양하고 춤을 췄습니다.

인간의 언어와 행동과 영광을 돌리는 삶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불 속에 뛰어드신 예수님의 심판 속에 뛰어드신 그 긍휼만이 구원이 되는 겁니다.

결국 저런 종교놀이를 멈출 생각이 없다는 뜻은 예수님이 도저히 믿겨지지 않기에 기어코 자기들의 믿음을 이 땅에 펼치겠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그 믿음이 자기도 천국 가기 싫고 남도 천국 못 들어가도록 그 역할을 톡톡히 한다는 점입니다.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조건을 갖추고서(거룩한 삶으로 장성한 분량 갖추기)
자기도 천국 들어가고 싶지 않고 남도 못들어가도록 하는 법을 갖추는 겁니다.

즉 사랑이 없다는 뜻입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는데
두려움 때문에 갖추기를 하여서 법으로써 천국을 뚫겠다고
그런 자들이 천국에 가봐야 어차피 법을 갖춘 자기를 자랑하기에
반드시 제거해야 하기에 그 탈락된 모습을 미리 이 땅에서 보여주도록 되어 있습니다.
미래(완료)에 짤린 모습을 미리 선취된 모습으로써 보여주게 된 모습이 바로 자기 쪽에서 믿음을 갖추자 라는 취지인 겁니다.

도리어 법을 갖춘 모습이 사랑이다 라고 사명감에 불타서 반드시 악령(광명한 천사)을 받은 모습을 발휘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긍휼의 대상이란 자기 쪽에서 아무것도 나올 것이 없는 모습입니다.
그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만 바라볼 뿐입니다.
그 외부의 모습이 광명한 천사가 아니라 바로 심판의 모습인 불뱀의 모습으로 오신
인자의 나무에 달리심입니다.

이 인자가 나무에 높이 달리는 모습과
위의 질문 속에 나오는 인간의 종교성과 정 반대입니다.

인자는 바로 그런 인간의 종교의 실체를 들추어 내고자 이 땅에 오신 겁니다.
인자의 불뱀의 모습으로써 인간의 가장 거룩 뒤에 감추어진 불뱀의 모습을 비취이는 겁니다.

인간이 가장 거룩한 모습을 갖추면 갖출수록
그 가면 뒤의 악마성은 더더욱 그 진가를 드러내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자본주의 원리와 같습니다.
부자 됨을 갖추면 갖출수록 타인의 가난을 더욱더 유발케 되는 겁니다.
그만큼 타인의 희생을 착취를 많이 했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화죠

같은 원리로 인간이 거룩한 삶 거룩한 행동 언어 거룩한 인격을 갖추면 갖출수록
그만큼 타인의 인격을 짖누르고 타인의 삶을 거짓으로 정죄하였기에
그 상대적인 모습으로써 외부의 자극으로 갖추었다는 뜻입니다.

결국 자기자신에게서 선이 나온 것이 아니라
외부의 자극이 자신을 그렇게 만든 결과 라는 거죠.

그게 무슨 거룩입니까? 두려움 때문에 상대적인 선 갖추기 이지

쉽게 예를 들면 실지로 이런 경우를 주변에서 많이 들었는데요
매 맞기 싫어서 공부를 열심히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유명 대학에 들어갔는데
매가 없으니 공부를 하지 않게 되더라 라는 거죠.

인간의 행동이란 항상 상대적인 겁니다.

그래서 질문에서 언급된 심판은 바로 매 맞기 전에 공부 잘 하자 라는
이것은 공부 자체에 대한 선물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매 때문에 어쩔수 없이 공부했다 라는 취지입니다.
막상 매 없는 대학에 들어가니까 공부 안하겠다는 모습과 같기에
이것이 진짜 교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교만하지 말자 라고 교만 안하는 행동을 갖추는 성화론자들이야 말로 가장 교만한 인간들로만 구성된 이유가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사랑은 없고 매 맞기 싫어서 상대적으로 갖추는 이런 인간의 한계를
만민이 기도하는 기도의 집 하나님의 집에서 고백해야 할 입장을
반대로 인간의 교만을 갖추기 위해서 교회에서 반대로 교만하지 말자를 갖추자 라고 인간의 한계를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교만하지 말자 라는 법을 또 갖출려고 하니까
교회야 말로 가장 악마의 집단이 되는 겁니다. 마귀본부가 되는 거죠.

이런 원리가 바로 옛언약인 비언약을 통해서 이미 다 밝혀진 바입니다.

그래서 법만 가득 갖춘 인간들에게 교회사람들 앞에
사랑이신 예수님이 나타남으로써 비로소 반드시 교만하지 않는 인간들인 교회 사람에게
죽임을 당하는 방식으로만 오신 겁니다.

바로 그것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법이 아니기에 법의 무화과 옷을 다 벗겨버리는 겁니다.
위선적인 옷을 다 벗겨버리는 겁니다. 그렇기에 반드시 가장 위선적인 인간들의 손에서 죽으셔야만 하기에 십자가에 반드시 달리시는 겁니다.

심판 받기 싫어서 버림받기 싫어서 구원챙기기 위해 갖추는 법 지키기란
사랑이 아니라 악마의 모습을 골라서 갖추겠다 라는 그 이기적인 모습에
바로 그런 원수의 실체를 들추어내기 위해서 가면을 벗기실려고
버림받는 모습 심판 받는 모습으로 오신 겁니다.

인간의 종교야 말로 십자가의 사랑을 거부하는 악마성만 골라서 갖춘 겁니다.
그것이 오늘날 교회이기도 하고 기독교이기도 합니다.

가톨릭의 그 똥고집을 공격하던 개신교 조차도 이제는 똥고집으로만 똘똘 뭉쳐진 악마집단인 거죠.

버림 받음의 의미를 모르기에
심판 받음의 의미를 모르기에
잃어버림의 의미를 모르기에

고아 과부 나그네의 의미인 처음자리 첫사랑을 모르기에 (희년,성령의 일,잉여,남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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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holysuksoo/100060118953  광야 = 빼앗김 = 천국 침노

광야의 의미를 모르기에
빼앗김의 의미를 모르기에

가짜 하나님 (유대교 = 가장 인간 자체가 신화가 되는 옛언약인 유대인의 메시야 = 마귀의 3가지 시험 )만 제시하는 겁니다.

온갖 구원될만한 것들을 끌어 끌어 모아서 그런 헛된 허망한 것들을 모아 놓고 구원해 달라고 멱살 잡고 협박 공갈을 하는 겁니다.

바로 그런 자들 앞에 십자가의 버림받음이야 말로
인간의 모든 입을 다물게 하는
잠잠케 하는 지혜인 겁니다.

질문을 다시 읽어 봤습니다.

성전에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심판 받기 전에 거룩한 삶을 갖추었다 라고 저 세리와 같지 않음을 감사 했습니다.

그러나 세리는 자기야 말로 심판을 당연히 받아 마땅한 자 임을 고개를 들지 못하고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 합니다.

두 사람의 기도 가 바로 하나님의 집의 취지를 그 진가를 드러냅니다.
두 사람이 기도 하러 성전에 들어오는 성전을 택한게 아니라
성전의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서 하나님의 집이 두 사람을 불러들인 겁니다.

예수님의 비유가 바로 그런 취지인 겁니다.

인간의 행동 여부가 천국이냐 아니냐로 가르는 것이 아니라
천국이 직접 자기 백성인지 아닌지를 가려내기 위해서
이 땅에서 부지런히 가려내시는 골라잡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겁니다.
바로 잃어버림의 원리인 버림받는 원리인 심판 받는 원리인
새언약(십자가) 기준에 의해서 말입니다.
(불의함을 앞장세워 의롭다 하는 자들의 그 의를 불의케 만드는 방식이 누가복음 18장 성령의 일의 원리임 이것이 마태복음 25장 3가지 천국 비유는 바로 종말의 상황임)

약속이란 바로 이런 두 부류의 사람으로 세상을 두 패로 나누시는 겁니다. (누가복음 18장)

(눅 18:9, 개역)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눅 18:10, 개역)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눅 18:11, 개역)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눅 18:12, 개역)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눅 18:13, 개역)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눅 18:14, 개역)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 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낮추임 이란 광야의 목적인데 교만하지 않는 겸손한 마음이 아니라
도리어 교만할 수밖에 없는 그 뻣뻣한 목을(질문내용이 바로 거룩을 갖추겠다는 뻣뻣한 목)
그런 뻣뻣한 목일 수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꺽어버리겠다 라는 꺽이움을 당하는 그 자체를 낮추임 빼앗김 이라고 한다.

그 빼앗김의 자리에 놓여진 것이 바로 어린아이와 같이 되는 것임 )

(눅 18:15, 개역)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
(눅 18:16, 개역)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눅 18:17, 개역)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이 어린아이의 모습과 반대인 모습이 또 그 다음 내용임 (부자청년)

(눅 18:18, 개역) 『어떤 관원이 물어 가로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눅 18:19, 개역)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눅 18:20, 개역)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눅 18:21, 개역) 『여짜오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눅 18:22, 개역)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눅 18:23, 개역) 『그 사람이 큰 부자인고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눅 18:24, 개역) 『예수께서 저를 보시고 가라사대 재산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눅 18:25, 개역)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눅 18:26, 개역) 『듣는 자들이 가로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눅 18:27, 개역) 『가라사대 무릇 사람의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또 부자청년이 행하지 못한 것을 자기는 행했다고 상대적인 행함을 갖추었다고 제자가 자랑함

그러나 예수님은 비로소 행함이 아닌 긍휼을 이루기 위해서
법이 아닌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비로소 자신의 죽음을(감추어진 비밀) 이야기 하시는 것임

(눅 18:28, 개역) 『베드로가 여짜오되 보옵소서 우리가 우리의 것을 다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눅 18:29, 개역)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눅 18:30, 개역) 『금세에 있어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눅 18:31, 개역)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로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눅 18:32, 개역)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기워 희롱을 받고 능욕을 받고 침 뱉음을 받겠으며』
(눅 18:33, 개역) 『저희는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눅 18:34, 개역)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저희가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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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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