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5 너희가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겔 36,22-23).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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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5 너희가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겔 36,22-23)
2026. 1. 18.

이스라엘이 더럽힌 여호와의 땅과 여호와의 이름 (겔 36,16-21)
에스겔 2019 2025. 12. 27. 15:37
21-104 이스라엘이 더럽힌 여호와의 땅과 여호와의 이름 (겔 36,16-21)

〈에스겔 36,22-23, 개역한글, 구약성경 1209쪽, 찬송가 214장 새 270 변찮는 주님의 사랑과, 찬송가 101장 새 80 천지에 있는 이름 중〉

〈가스펠; 아 ~ 눈 먼 사람이 소리쳤네〉

가스펠; 아 ~ 눈 먼 사람이 소리쳤네.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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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눈먼 사람이 소리쳤네 한 눈먼 사람이 소리쳤네
한 눈먼 사람이 소리쳤네 오
어디가 길이냐 어디가 길이냐
어디가 길이냐 말해다오

예수님 그에게 대답했네 예수님 그에게 대답했네
예수님 그에게 대답했네 오
내가 곧 길이요 내가 곧 진리요
내가 곧 생명이니 내게 오라 내게 오라


〈찬송가 214장 변찮는 주님의 사랑과, 새찬송가 270장〉

찬송가 214장 변찮는 주님의 사랑과, 새찬송가 270장.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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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214장 변찮는 주님의 사랑과, 새찬송가 270.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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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변찮는 주님의 사랑과 거룩한 보혈의 공로를 
   우리 다 찬양을 합시다 주님을 만나 볼 때까지
   예수는 우리를 깨끗게 하시는 주시니 
   그의 피 우리를 눈보다 더 희게 하셨네

2. 우리를 깨끗게 한 피는 무궁한 생명의 물일세 
   생명을 구원한 친구들 하나님 찬양을 합시다
   예수는 우리를 깨끗게 하시는 주시니 
   그의 피 우리를 눈보다 더 희게 하셨네

3. 주님의 깨끗한 보혈을 날마다 입으로 간증해 
   담대히 싸우며 나가세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예수는 우리를 깨끗게 하시는 주시니 
   그의 피 우리를 눈보다 더 희게 하셨네

4. 십자가 튼튼히 붙잡고 날마다 이기며 나가세 
   머리에 면류관 쓰고서 주 앞에 찬양할 때까지
   예수는 우리를 깨끗게 하시는 주시니 
   그의 피 우리를 눈보다 더 희게 하셨네


〈찬송가 101장 천지에 있는 이름 중, 새찬송가 80장〉

찬송가 101장 천지에 있는 이름 중, 새찬송가 80장.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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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천지에 있는 이름 중 귀하고 높은 이름 
   나시기 전에 지으신 구주의 이름 예수
   주 앞에 내가 엎드려 그 이름 찬송함은 
   내 귀에 들린 말씀 중 귀하신 이름 예수

2. 주 십자가에 달릴 때 명패에 쓰인 대로 
   저 유대인의 왕이요 곧 우리 왕이시라
   주 앞에 내가 엎드려 그 이름 찬송함은 
   내 귀에 들린 말씀 중 귀하신 이름 예수

3. 지금도 살아 계셔서 언제나 하시는 일 
   나 같은 죄인 부르사 참 소망 주시도다
   주 앞에 내가 엎드려 그 이름 찬송함은 
   내 귀에 들린 말씀 중 귀하신 이름 예수

4. 주 예수께서 영원히 어제나 오늘이나 
   그 이름으로 우리게 참 복을 내리신다
   주 앞에 내가 엎드려 그 이름 찬송함은 
   내 귀에 들린 말씀 중 귀하신 이름 예수 아멘


〈에스겔 36,22-23, 개역한글, 구약성경 1209쪽〉

(겔 36:22, 개역)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겔 36:23, 개역) 열국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은 이름 곧 너희가 그들 중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로 인하여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열국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 36:22, 새번역)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전하여라. '나 주 하나님이 이렇게 말한다.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하려고 하는 까닭은 너희들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너희가 여러 나라에 흩어져서, 가는 곳마다 더럽혀 놓은 내 거룩한 이름을 회복시키려고 해서다.
(겔 36:23, 새번역) 너희가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면서 내 이름을 더럽혀 놓았으므로, 거기에서 더럽혀진 내 큰 이름을 내가 다시 거룩하게 하겠다. 이방 사람들이 지켜 보는 앞에서, 너희에게 내가 내 거룩함을 밝히 드러 내면, 그 때에야 비로소 그들도, 내가 주인 줄 알 것이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오늘 본문의 앞 내용이 여호와의 땅을 더럽혔다고 쫓아내었다는 내용이였지요
이것이 소위 여호와가 누구신가를 알리시고자한 진노의 그릇 에돔과
긍휼의 그릇인 이스라엘과의 구별 차이로써
미움 받기로 작정이 된 에돔은 이유 없이 미움으로써 그 원인 없는 결과로써 여호와가 왜 심판주이신지 라고 원인을 이스라엘의 멸망을 기뻐했다 라고 그 이유를 뒤짚어 씌우는 식입니다
그렇게 여호와가 누구인지를 알리시겠다 라는 겁니다

마치 나 여호와 누군지 모르겠는데 라고 출애굽 당시의 애굽왕을 통해서
내가 여호와가 누구인지 제대로 보여주마 라고
여호와 자신을 알리시는데 있어서 애굽왕은 늘 지옥에 가 있어도 소환되는 식으로 동원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멸망하기로 작정된채로 태어났기에 다시 지옥으로 끌려가도록 하고지
지옥에서 소환 하시는 거죠 에스겔 당시로 치면 900년 만에 말이죠

그리고 또 사랑받기로 작정이 된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이스라엘이 자신들 숙제로 알아기는게 아니라
주님의 숙제로 알리심에 있어서 징계의 매로 자신을 알려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지난 번에 여호와의 땅을 더렵혔다고 여호와의 땅에서 쫓아내시는 것이지요
그런 여호와를 알리시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오늘은 땅과 함께 더럽힌 여호와의 이름을 더렵혔다 라고
징계의 매를 대시면서 이런 여호와를 알리시겠다 라고 하시는 것이지요
인간의 숙제로 아는 하나님이 아니라
여호와 자신이 이스라엘에게 그 마음판에 이게 다음 내용인데요
그 마음 판에 직접 새기시겠다 라는 이름이다는 것이지요

자 그럼 지난 번의 땅에서 왜 쫖아내었는지를 알수 있는 것이지요

주님은 인간을 다루시기 전에 먼저 땅을 먼저 언급하시는 겁니다
즉 인간 이전에 에덴동산이라는 장소가 있었듯이
그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그런 인간이기에
쫓겨난 것을 염두한 인간을 다루신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약속의 땅 심지도 거두지도 않는 땅이라고 해도
인간이 가만히 있느냐 아무리 작은 일인 소행이라고 해도
여성의 월경처럼 땅에 피를 흘리다 보니 더럽힐 수 밖에 없는 그 인간의 속성에
인간 보다 먼저 있었던 땅은 반드시 호소하듯이
이 더러움 이 죄악 이 죽음을 해결해 달라고 아벨의 피 흐림에 호소하듯이
하늘에 고자질을 한다 말이죠
그럼 약속의 땅 만큼은 그런 소행의 죄악이라도 해결해야 하는 것이
약속의 땅 다움 아닙니까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었듯이
여호와의 땅에서 쫓아내시는 그 사건을 반복하는 셈입니다
즉 여호와의 땅에서 살 가치가 없는 인간임을 직시케 만드신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여호와의 땅을 정결케 하시는 것이 하나님 본인의 피 흘리심으로
그것이 에스겔의 참성전 곧 걸어다니는 성전으로써
그 성전의 기능으로 정결케 하시는 겁니다

자 그럼 에스겔도 구약이라 그림자 이다 말이죠
이것이 신약에서는 그 여호와의 땅이 마치 성전청결처럼 작용이 되고자
쫓아내고 청소후에 70년 만에 돌아왔듯이

결국 참성전의 기능이 실행이 되면 그 한분의 거룩완성 덕분에 우리거 나음을 입는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성전의 세워짐이 곧 여호와의 이름이 동시에 안치가 된다 라는 겁니다
법궤에 여호와의 이름이 새겨졌다 라고 하잖아요

결국 이름 싸움 이름 전쟁이엿다 라는 것이지요

여호와가 누구관데 나 바로가 그의 말을 듣겠느냐 라고 했고
그 카이 나 여호와 누군지 모르니 그럼 알려줘야지 뭐 ! 기다려봐 라고 작살을 내시고

동시에 이스라엘은 주의 이름을 안 부르짖고는 못 배기도록

애굽왕 바로왕을 강퍅케 하신다 라는 겁니다

그로 핍박이 가해짐으로써 안 부르짖고는 못 배기도록 하시는 거죠
주여 살려주세요
뭐라고 안들리는데?

부르짖지 않던 곳에서 부르짖도록 즉 애굽 땅에서 말이죠
찾지도 않던 곳에서 찾으신 바 즉 쫓겨난 바벨론 땅 그발 강가에서 말이죠

그렇게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저절로 주님의 숙제로 복음이 증거되겠끔 하시는 겁니다
이미 완료로써 말이죠

그곳에서 증인 곧 여호와의 이름이 새겨진 자로 투입이 되는 거죠
이것이 신약에서의 장소가 되는 몸 개념이 되는 거죠
그 땅이 증인이 있는 땅이 거룩한 땅이 아니라
그 증인이 복음의 증인이 주의 이름이 새겨진 성령의 전으로써
주의 이름을 담은 담겨진 법궤처럼 이동하는 성전처럼 말이죠

그카이 지난 번의 여호와의 땅이 이스라엘 보다 먼저 언급이 되어야 하듯이
그 땅에 여호와의 이름 또한 담겨져야 안치되어야 하기에
오늘 여호와의 이름이 언급이 되는 겁니다

당연히 여호와의 이름 조차도 이스라엘은 더럽혔다 말이죠
마치 이방신을 부르듯이
점쟁이 찾듯이 찾는
자기를 먼저 세우기 위한 그런 가짜 하나님을 부르짖었던 것이죠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니까 예수님 따라가면 배고픔은 해결되겠구나 싶어서
임금 삼고자 따라갔듯이 말이죠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임금 되어주기 싫다 라고 도망치시는 겁니다

우상과 하나님을 썩는 혼합 믹싱은 이스라엘의 주 특기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화 되는 이유죠 마귀자식이 되는 이유입니다

돈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기는
이것은 인간의 본능이라서 성경에 괜히 언급이 된게 아니다 말이죠
모든 종교는 다 그렇다 말이죠
세속 속세를 떠난 우생학 위생학의 달인인 불교 조차도
돈에 미친 종교이기는 마찬가지 이다는 겁니다
돈 없어 보세요 그런 문화가 유지가 될는지 될 턱이 없잖아요

두 주인을 섬길수 없다 말이죠

이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본능을 거스리는 인간이 세상에 어디 있냐 말이죠
가능하다는 말이 아니라
주님의 숙제로써 이루어 진다는 말씀입니다
돈 하나도 없는 자 이겠네요? 아니지요
아무리 부자여도 주님의 숙제로 여호와의 이름이 새겨진 자가 된다는 겁니다
부자인데도 불구하고 돈에 마음이 빼앗기지 않는자가 발생한다는 거지요

또 이래 말하니까 아 그럼 가난한 자가 되면 안되겠구나가 아마 그 동안의 교회에서 유행하는 설교가 되었기도 했다 말이죠
그것 조차도 인간의 숙제이니 여호와의 이름을 더럽힌 것이지요

마침 사람들이 교회에서 떠난다 대형교회의 몰락을 다룬 컨텐츠가 의외로 많이 나오더라 말이죠 교회에서 다루면 안 봤을텐데 세상사람들이 다룬 것을 보고 도리어 세상사람보다 못한 교회들임을 보게 됩니다

한번은 미국의 최고의 대형교회를 다루었는데
그 교회 목사가 복음 보다 일단 세상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교회가 되고자
그 사람들을 교회에 나오도록 하기 위해서
그들이 원하는 조건들을 다 갖추어 주더라 말이죠
진입장벽이 너무 높다 심적 부담이 안가도록 입구 로비를 너무 종교적으로 하지 않도록
아이들이 쉽게 다가가는 공간으로 해 달라 해서 그렇게 해 버립니다
실제로 교회가 교회 건물이 아닌 대학 캠퍼스로 꾸며지 모양이니 종교 색채가 다 사라졌다 말이죠
그 다음은 설교 너무 길다 짧게 해 달라고 해서 40분을 넘기지 않도록 하는 겁니다
저 같으면 벌써 짤렸죠 뭐
그 다음은 접근성 편하게 티비와 인터넷 모바일 프로그램 활성화로
언제든지 종교 방송과 각종 기독교 프로그램으로 모바일 앱에 성경 검색 다되고 설교 듣고 성경공부 할수 있도록 자료 다 제공하고
그래도 부족한 것 있으면 알려달라고 하니
찬양 시스템 밴드 드럼 각종 악기 완전 음악카페처럼
그리고 여러 건물도 많다 보니 각종 성경 관련 굿즈 제품들
(이번 크리스마스에 예수님 굿즈 판매로 신선함과 욕을 동시에 먹고 있엇다고 CCC가 카페를 열었던데, 크랩에서? 나오덴데 말이죠 김준곤 맞나?? 박정희에게 했던 ㅋㅋㅋ)
거기서 자체 판매 비용으로도 교회가 수십개 운영이 되어도 남을 정도로 수입창출이 어마어마 했다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90년대 말에 정점을 찍고 20년대에 점점 그래프가 아래로 내리막길로 가더니
코로나 사태로 그만 완전 추락하게 되더라 말이죠

그 코로나 이전부터 내리막길을 보고 목사가 외부의 전문가에게 논문발표까지 하도록 하는
실태조사를 철저하게 부탁했는데
그 결과를 그 목사가 보고서 아 자신이 실패했음을 알았다 라고 하던데
아니 뻔한 실패인데 그것을 구지 학자들을 동원해 가면서까지 조사해서 그 뒤에 안 것인지

그저 사람들이 원하는대로 다 해주었는데 말이죠
그 영향으로 주변의 교회들 까지 다 따라했다 말이죠
그런데 시대의 흐름은 간과 한 채로 그저 사람들이 원하는대로 다 해주자 해서 한 것이니
불 보듯 뻔하죠
그 이후에 더 기가 막힌게 손 놓게 되다 보니
이제는 목회자들의 성추행까지 덮치고 코로나 덮치고

https://youtu.be/fHokgZ-_UHs

제가 본게 이건데 이거 한국도 똑같은 시기에 똑같이 벌어진 사태였다 말이죠
독재체제 라서 원하는대로 안해도 결과는 똑같다 말이죠

공산국가 독재체제 제외하고 무신론 국가 2위
1위는 이스라엘 무신론자 80프로 이상
2위 한국 50프로 넘어섬

이제 미국도 한국 따라 하고파서 난리죠 하나님 믿는다 80 프로 이상이였는데
이제는 반대로 40프로 넘어가고 있을 정도이니

젊은 세대가 아쉬운게 없는데 말라고 교회 가겠냐 말이죠
윤리도덕양심을 기성 세대가 다 부수는 위선을 다 보여주고 가르치는데 말이죠

유럽은 이제 K 한류 따라하겠다고 결혼도 안하고 아이도 안 낳겠다고 하고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적으로 이슬람은 완전 반대 현상이다 말이죠
그 수가 엄청 늘어난다 말이죠

이유는 간단해요
배가 부르면 반드시 교만해 지고 교만하면 반드시 하루 아침에 추락한다 라고 우리 호세아서 였던가에서 배웠잖아요
이슬람의 증가 속도는 가난해서 그렇다 말이죠
일본이 부요층에 뿌리가 내리니 확산이 안되었고
한국은 천민층에 뿌리가 내리니 확산이 되는 거죠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 찾잖아요
다윗의 자손이여 고래 고래 고뢔 소경 바디매오가 고함을 치 잖아요
불쌍히 여겨 달라고 말이죠

잃어버린 자를 찾으시니까 말이죠

아무튼 우리는 이렇게 실패의 경험을 통해서
여호와 본인이 자신의 이름을 우리에게 새기고자
자신의 숙제로써 이 땅을 이 몸을 용광로 속에 집어넣었다가 나오게 하시는

자기 의로움의 숙제인 간극 벌리기
공백 만들기 잃어버린 자 만들기 온 이스라엘 삼기를 하심으로써

자신이 여호와이심을 여호와의 이름 안치시기 숙제로써
우리를 여호와의 땅
성령의 전으로 삼기 하시겠다
그런 여호와를 알리시겠다 라고 하실때에

우리는 우리 인간의 숙제도 손 못 놓는 본능에 충실하는 판국에
더더욱 예수님 본인의 숙제로써 자신의 이름을
우리 마음 판에 새기겠다???

인간이 자기 이름을 포기 못하는 판국에
그 불가능한 일을 과연 허용해 줄수 있겠냐 말이죠

물론 당연하게 안된다 라는 것을 아시기에
반칙으로써 애굽왕을 강퍅케 하심으로써
안 부르짖고는 못 배기도록
진노의 그릇들을 몽둥이로 삼으시겠지만

자기 이름을 포기 할 인간 그런 위인이 세상에 어디 있겠냐 말이죠

그래서 하나님의 의 곧 거룩이 아니면
우리는 찢겨지지 않게 되고

또 모순 되게 찢겨짐을 통해서 여호와의 이름이 거룩이 새겨지는
바울이 말한 흔적이 몸에 새겨지는
십자가로 쯔윽 그을려서 홈패임을 당하는

쇠였던가요? 유리 거울에 쯔윽 그으면 그 소리가 아주 아주 기괴하죠

명태 라는 가곡에 쫙쫙 찢어지어 내몸이 없어질지라도 내 이름만 남아 있으리라
명태  어허허 ~~~~~~~~~~ 명 ~~~ 태  라고 흑흑흑
이 세상에 남아있으리라

예수님이 본 주틀이 되시고자 시범으로 먼저 쫙쫙 찢어지셨거든요 우리를 대신해서
이제 우리가 그 주틀에 붕어빵 찍혀 나오듯이
쫙쫙 찢어지는 겁니다

그 잃어버린 양만 온 이스라엘 온전한 이스라엘
곧 주님 자신의 이름을 새긴 도장을 박아버린 인치신 자만이
여호와가 누구신지를 아는 자로써
한 몸으로써 구원자를 높이도록 낮추심을 당하는 자 되는 겁니다

이것이 주님의 이름을 담은 자 이다
보배를 담은 그릇이다 말이죠



자 그렇기에 자기 구원을 챙기겠다 라는 발상 자체가

아까 말한 예수님을 임금 삼고자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말이죠
이개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 곧 개인구원이다 말이죠

이들의 특징이 나 혼자 산다입니다

연예인들의 특징이 바로 무당이다는 점입니다
무당은 나 혼자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자입니다

죽어야 할 무당이 안 죽고
반대로 무당은 살아야 할 성도는 도리어 죽이는 자들이거든요

도리도리 보세요 술 취한 듯이 여전히 지 혼잣말만 하잖아요
남이 하는 말 안 듣습니다
지가 통닭값 삭감해놓고서도
남에게 뒤짚워 씌우잖아요
안 듣습니다 지 혼자 사는 자들이 바로 무당과 똑같은 자들이다 말이죠

왜 그렇게 쓸데 없이 돈을 많이 모아서 탈세를 하냐 말이죠
공인들이 다 그래요
지 혼자 사니까 말이죠

성경에 대표적인 자가 바로 부자청년입니다

나 혼자 산다 이기 때문에
자기 구원을 기여이 챙길려고 해요
그래서 전재산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라 했을때에 근심하고 등돌려서 다시는 안 돌아오는 이유는
그 돈이 곧 자기구원을 보장해 주는데
개인 구원이 날라가 버리면 불안해지지
평온하지가 않는 겁니다
꼭 누구처럼 금고를 바로 옆에 두고서 잠자는 부자처럼 말이죠

그런데 이들이 무시하는 자가 있는데 바로 어린아이인데
완전 정반대입니다
어린아이는 무능해서 자기 혼자 못 삽니다
그리고 자아가 없기에
남이 우선시 되는 겁니다
엄마를 먼저 우선시 한다 말이죠
늘 엄마 뒤에만 졸졸졸 따라가는 거죠

이것이 잃어버린 자 곧 이스라엘입니다

이 이스라엘의 특이성이 곧 기능이 사라지면
곧 바로 무당이 됩니다
부자청년처럼 나 혼자 산다가 되는 겁니다
지 인생 지가 책임지고 자기 구원 자기 숙제로 따 낼려고 합니다

어린아이는 그런 질문 자체를 할 줄 몰라요

예수님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습니까

따로 국밥이니까 부자청년이 이런 질문 합니다

어린아이는 떨어져 지낸다는 것 자체가 없어요
저런 질문 따위 자체가 형성이 안되요
모조리 엄마 숙제 뿐이니까 말이죠

예수님과 함께 동행했던 제자들은 지갑이 필요가 없었다 말이죠
이제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갈 때 되니까
주님 쪽에서 지갑을 가지라 라고 했거든요
복음에 방해가 안되도록 말이죠
바울은 천막 텐트 수리사로 일했듯이 말이죠

(눅 22:36, 개역) 이르시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주머니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눅 22:36, 새번역)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제는 돈주머니가 있는 사람은 그것을 챙겨라, 또 자루도 그렇게 하여라. 그리고 칼이 없는 사람은, 옷을 팔아서 칼을 사라.

돈 담는 지갑을 가지라 라는 말이 돈을 채워 부자 되라는 말이 아니라
누가복음에만 있잖아요
이방인에게 증거하는 복음이니까 말이죠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 빚도지지 말아야 하기에
세상 국가에 세금도 내라 라는 겁니다
이것이 구약에 아브라함 요셉 막벨라 굴 사는 모습에서도 다 나옵니다
그 연장선 상에 다윗 때에 여부스 족속 아라우나(오르난)의 타작 마당을 정당한 값을 치르어서 값구조 샀듯이 말이죠

이 이방인의 삶 속에 들어가라 라는 겁니다
즉 이제 본격적으로 광야 속으로
잃어버린 자를 찾으라 라는 겁니다

너희를 보냄이 이리 가운데 보내는것과 같다 라고 했잖아요
나 혼자 산다가 아니다 라고 그들에게 증거하는 거죠

아까 그 대형 교회 목사처럼 교회오게 할려고
부담가는 종교적인 교회 시설 
접근성 편한 것 다 들어주고자
심적 부담 요소 다 제거하는 다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림 속에 있는 이방인의 삶속에 들어가 같이 동행하라 라는 겁니다
고난 속으로 들어간다는 의미인 거죠

마치 부자청넌에게 가난한 자에게 전재산을 팔아 주어라 라고 했듯이
나 혼자 산다가 아닌
저들과 더불어 산다 라는 의미이거든요

그런데 개인 구원 개인 숙제 라는 놈들은 꼭 반대로 들어요 빤스처럼

그런놈들끼리 또 모여요 유유상종인 거죠

누가 크냐 하는 제자들 싸움과
모세의 자리에 앉고자 하는 바리새인
결국 유대인들 전부
요즘으로 치면 교회 전체가
왜? 유대사회는 하나의 교회나 마찬가지 이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혼자 산다 라는 놈들만 끼리끼리 모여있는 겁니다
유사집단 유사교회 유사이스라엘 즉 가짜 이스라엘 인 거죠

한가족이다 라고 해 놓고서는
그 속에서 자기 가족 건드리지 말래요

경계선 그어놓고 오지 말라고 말이죠

그런 짓을 여호와의 땅에서 해 놓고서
쫓겨나서

새로 청소한 여호와의 땅에 모이는 겁니다
그 동안 경계선 그은 것 우리 초등학교때 옆에 같은 책상 앉은 짝꿍에게 칼로 책상을 후비파면서 넘어오지 말라고 경계선 그은 짓을 나이 60 넘어도 그 짓을 하더라 말이죠
그래서 새로 청소한 여호와의 땅에
그 경계선 다 지워 버리는 겁니다 칼로 후비판 것 다 없애버리고
오로지 남은 자만 돌아오는
잃어버린 양만 돌아오는 겁니다
여전히 마음에 그 경계선 있고
내 가족 건드리지 마 가 있고
누가 크냐 라는 마음이 있고
누가 더 남을 용서했느냐 가 있으면

여호와의 땅에 쫓겨났음에도 불구하고도 여전히 돌이킬수 없는 마음이 높아진 자들
그래서 율법의 행함을 쫓은 자는

이스라엘의 마음이 높아짐으로 뿌리의 진액을 먹지 않고
따로 떨어져서 열매 맺을려고 하기에
지금 우리 로마서 이 부분을 하고 있지요

접붙이시는 이 주의 이름을 거부하고 여전히 더럽히는
그래서 땅에서 쫓겨나도 여전히 더럽히는
자기 이름만 세울려는 자들인 교만한 자이기에

낮추심을 못 격은 자들은
돌아오지 못하는 겁니다
경계선이 없는 주의 몸으로 못 오고
여전히 경계선 그으면서 넘어오지 말라고
니꺼는 니꺼 내꺼는 내꺼 선 넘지마
나 혼자 산다 라고 우기는 겁니다

이러니 주님의 마음과 합할 수가 없는
주님이 직접 거룩한 이름을 새길수가 없기에
지 혼자 살도록 내버려 두시는 거죠

그들에게는 지옥의 애굽왕의 강퍅함이 계속 함께하겠지요


그카이 이들 가짜 이스라엘 곧 부자청년은
예수님의 구원도 개인구원으로
여호와의 거룩한 이름도 개인 구원으로
그저 나 혼자 산다에 집중이 되어 있지만

지갑을 가져서 이제 예수님 위로 올라가버리고 난 뒤의
제자들의 삶은 진짜로 나 혼자 살아가는게 아니라
그 반대인 여전히 주님이 제자들과 함께 동행했듯이

이제 이방인과 같은 잃어버린 양들과 함께 동행하고자
저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라 라는 의미로 지갑을 가지라 라는 겁니다

어떤 강의 였던가요? 어쩌다 어른 이였던가 어떤 강의자가
하나의 이야기를 하던데

한국의 선교사가 아프리카에 선교하러 갔는데
자꾸 자꾸 가전제품을 장만할려는 한국선교사들이 많았다 라고 하더라 말이죠
특히 냉장고 말이죠
그런데 그 나라 아프리카 인들에게는 그것이 너무 너무 욕심많은 자 같아 보였다고 하더라 말이죠
뭐 더위에 연관된 의미가 있기도 하겠구요 음식 상하거나 아니면 차가운 음료 등등

그런데 그럴꺼면 아프리카에 말라꼬 선교하냐 말이죠
특히 선교사 아내는 더 그런거 못 참거든요
도시생활 원하는게 여성이지 시골 목회도 안하고 반대하는 판국에
아프리카 요즘은 더 좋아진곳도 많지만 아직도 70년대 한국 상황인 곳도 많다 말이죠

아무튼 그들과 동행할려면 그들과의 문화차이를 좁혀서 그들처럼 살아야 하는데
그게 쉽냐 말이죠 

개인이 우연히 뚝 하고 떨어진 것이면 오래 걸려서라도 동행하겠지만
선교사 훈련과정 다 거쳐서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럴꺼면
처음부터 다른 목적이 아닌가 말이죠

아무튼 동행한다 라는 것은 내 쪽의 것이 다 사라진다는 겁니다
그 대형교회 목사처럼 상대방 말 다 들어주는게 아니라

그것은 오히려 상대방을 교인들은 나 혼자 살도록 방치한 것이니까
다 떨어져 나가죠

동행을 맛도 못보고 뭔지도 모르게 만드는 가로막기만 한 거죠
지도 천국 안들어가고 남도 천국 못 들어가도록 삥이나 뜯을려고
삥뜯을 필요 없이 돈이 넘치다 보니
쓸데 없는 실험을 한 것이겠죠

결핍 채워주는 나 혼자 살도록 해 주기가 아니라
오히려 그런 부자청년의 사고방식을 박살 내어야 하는 거죠
성화론자들이 다 그러 배불러 터진 놈들인 겁니다
이미 다 이룬 완료를 못 누리는 자는 잃어버린 양 아닌 거죠

더 빵구멍 내어야 하는데
깨진 장독대임을 알려주는게 아니라
밑빠진 장독대에 물 채워 주고 있었으니
배불러 터진 짓만 한 거죠

그 목사 웃기게도 뻔하 지옥의 길로 인도 했으니

지옥으로 가는 길은 천국으로 포장 되어 있다???

이 영국속담 맞나 싶어 검색하니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착한 의도)로 포장되어 있다

정확한 표현은 선의라고 되어 있네요 영국아닌 영어속담
프랑스에서 유래되어 영국 문학가가 인용을 해서 영국과 미국의 격언으로 자리 잡은

들뢰즈가 의미의 계열에서
좋은 의도가 큰 벌을 받는다처럼 필연적인 원인 있는 결과를 전복시켜
우연성의 사건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 말이죠


십자가만 알기로 했다 라는 바울 앞에
그런 대형교회 목사의 목회는 오히려 배설물을 온 몸에 바르고
남들에게 보이러 오는 눈도장 게임 오락장 밖에 안되는 겁니다

그럼 더 재미있는 것 생기면 다 우르르 빠져나가는 거죠

교회를 처음부터 잘못 본 겁니다
교회란 처음부터 누락 되어라고 있는 겁니다

그는 흥하고 곧 오늘 나오는 여호와의 이름만 남기고
나는 패하고 나 교회는 쇠해야 하는 겁니다

이것이 광야교회입니다
동행하는 교회입니다

가시떨기 나무에 여호와의 불이 붙어 함께 동행하는 광야교회 말이죠

진작에 불에 타 들어가 사라졌었었어야 할 교회인데
도대체 너 뭐야 라고 다들 해석을 못하는 땅 장소 공간 몸이 바로
이스라엘이라는 특이성의 여호와의 영토인 이스라엘입니다

종말때에만 나타나는 것이 여호와의 땅인 한몸인 이스라엘 곧 교회입니다

종말 인간의 시간 때 아닙니다
성령의 시간 주님의 시간입니다

땅끝에서 나온 자입니다

감추워둔 아껴둔 비밀의 이름이 담겨진
보배가 담겨진 그릇입니다

제가 이거 환상처럼 보여진게 있습니다

보배를 담은 그릇이라고 그릇은 일단 보배 보다 크고
보배는 그릇 보다 작다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아니면 성화론처럼 보배의 반짝거림을 보여주고자
우리는 나무 컵 잔이나 그릇에서 유리 투명한 유리 그릇으로 성화해야 한다
도 닦아야 한다 라고 하는데

그거 반대하고자 접시를 깨뜨리자 라고 성화론의 반대를 위한 반대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깨진놈 하나 못 봣다 말이죠

이미 깨어진 채로 엄청난 우주 혜성 같은 지구 보다 더 큰 행성의 전체 보물 보배에
그것도 일회용 종이컵 같은 그 작고 작은 컵들이 커다란 보배에 달칵 달칵 거머리처럼 다 붙어있더가 말이죠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줄줄이 사탕처럼 말이죠
접붙임 받는 마치 여러마리의 새끼를 낳은 어미 개에게 젖을 물고자 전부 다 달라붙어서
강아지들이 젖 빠는 모습처럼 말이죠

아 그게 바로 보배를 담은 질그릇이다 말이죠 접시 깰 필요가 없이 이미 깨진채로 말이죠
당연히 우리가 교만 하기에 어른이다 우기기에 잘개 잘개 깨뜨려 새끼강아지로 만들어서
다닥다닥 붙어있게 접붙임 만들려며는 또 당연히 깨어져야 하는 기경 밭갈이
큰 바위 잘개 잘개 말이죠
원래 원가지는 잘개 잘개 부서진 채로 있었는데 
점점 덩치커지니까 딱딱한 바위가 되니 지가 믄 힘이 있는 줄 알고 말이죠
그래서 접시를 깨뜨리는 잃어버림의 과정을 통해서
새로 이스라엘을 만드시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는 울리는 꽹과리 잉케

자기 이름을 자기 스스로가 거룩케 하심과 그 증거 그 증상물로
거룩한 이름을 담고자

우리를 밭갈이 잘개 잘개 깨 부셔서

그 우주 행성의 보배 덩어리에
젖빠는 새끼 강아지 마냥 다닥 다닥 젖빨도록
접붙이시고자

이 거룩한 보배의 이름만 남기시고자 우리에게 젖 물리시는 겁니다
그 거룩을 먹고 자라는 겁니다

나무에 떨어진 나 혼자 산다가 아니라

내 너에게 반드시 장가 들고야 말겠다 라고
반드시 동행 한 몸 되시겠다 라고
우리의 더러움을 용광로 속에 집어넣으심으로써

그 사랑을 확정 하시는 겁니다

내가 사랑한 것이 아닌 (나 혼자 산다를 이루고자 예수님을 임금삼고자 함이 아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아끼지 않고 내어주심으로 

모든 경계선이 사라지는 겁니다

거룩의 이름은
그만 흥하고
나는 쇠하도록 하심이기에 말이죠

이것이 동행하는 자의 고백입니다

나를 제대로 찢지 않는 이름은 거룩한 이름이 아닙니다

그 거룩한 이름만이 나를 제대로 싸매어 주시는 이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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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14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 (고전 2; 9-12)
2026. 1. 25.   ( 1월  7일, 녹음 )

세상 관원의 지혜와 감취었던 비밀 (고전 2; 6- 9)
고린도 전서 2025 2026. 1. 3. 22:37
25-013 세상 관원의 지혜와 감취었던 비밀 (고전 2; 6- 9)

〈고린도전서 2; 9-12, 개역한글 신약성경 265쪽, 찬송가 213장 새 423 먹보다도 더 검은, 찬송가 505장 새 452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찬송가 213장 먹보다도 더 검은, 새찬송가 423장〉



〈찬송가 505장 먹보다도 더 검은, 새찬송가 452장〉

〈고린도전서 2; 9-12, 개역한글 신약성경 265쪽〉 

(고전 2:9, 개역)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고전 2:10, 개역)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고전 2:11, 개역)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고전 2:12, 개역)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2:9, 현대어) 그것은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ㄴ) `'주님과 같으신 신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듣지도 못하였습니다. 구원해 달라고 기다리는 모든 사람에게 그토록 엄청난 일을 행하는 것을 눈으로 본 일도 없습니다.' (ㄴ. 사64:4(참조,52:15))
(고전 2:10, 현대어) 그러나 우리는 이 일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가장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여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고전 2:11, 현대어)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또 그 사람이 실제로 어떤 인간인가 하는 것은 그 사람 자신밖에는 알지 못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생각도 하나님의 영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므로
(고전 2:12, 현대어)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영이 아닌 하나님의 영을 우리에게 주셔서 하나님께서 값없이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은혜의 선물을 알게 하셨습니다

(사 64:4, 개역) 주 외에는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을 행한 신을 예로부터 들은 자도 없고 귀로 깨달은 자도 없고 눈으로 본 자도 없었나이다
(사 52:15, 개역) 후에는 그가 열방을 놀랠 것이며 열왕은 그를 인하여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전파되지 않은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 하시니라
(롬 15:21, 새번역) 성경에 이렇게 기록한 바, ㉨"그의 일을 알지 못하던 사람들이 보게 될 것이요, 듣지 못하던 사람들이 깨닫게 될 것이다" 한 것과 같습니다. / ㉨사 52:15(칠십인역)


지난 번의 세상의 관원의 지혜처럼 인간을 먼저 세우고자 나타나고 발전된 지식 속에서
그리고 또 그런 인간들이 세우고자 하는 지혜를 돕고자 신들까지 동원이 되는 입장에서
곧 우상들  이지요 모든 우상들 곧 모든 신들은 인간을 돕기 위한
인간을 먼저 세우기 위한 그래서 그런 인간들을 도운 신에게 겸손한 자세를 갖추기 위한
이 모든 것이 아우러 져서 지혜를 그것도 모두다 수용할수 있는 보편적 지혜를 추구하고 있는데

갑자기 생뚱맞게 느닷없이 나타나 후발 주자의 여호와라는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도대체 여호와가 누구관데 나 모르는데 모르는 자의 말을 왜 듣고 종들을 왜 풀어줘야 하느냐 말이죠

(출 5:2, 개역) 바로가 가로되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도 보내지 아니하리라


저도 고3 전까지 예수님이 누군지 몰랐어요 그저 신이라고 하지
그 어린 나이에 무슨 신 따위를 요즘 현대 사회에 믿냐 말이죠
미션 스쿨에 다녀도 가끔 선생 중에 상급자랑 싸워서 그런지 몰라도 화풀이로
학생들 대상으로 수업시간에 고1 이였지 싶은데 기독교의 모순에 대해서 자기 혼자 열받아서 쓸데 없이 시간을 낭비하더라 말이죠 구약은 사람 목숨 하나 파리 취급하면서 갑자기 신약에서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이 얼마나 모순이냐 라고 자신의 논리 전개에 자기가 뿌듯해 하면서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데 자기 얼굴이 동안인데 사실은 50대 중반이라고 그러니 대우 받아야 할 짠밥인데 무시당하니 그 따위를 소리를 하며 혼자 희죽 희죽 웃길래
예수님을 안 믿었을 때 임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이 왠지 괴물 같아 보여서 그의 말을 그냥 무시해 버렸다 말이죠 저 따위 동안 저 따위 논리가 오히려 더 말이 안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신뢰성 자체가 안 가더라 말이죠 그 당시 선생들은 거의 뭐 깡패죠
깡패 카니까 너거 아부지 뭐 하시노 그런 시대였으니 말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거의 소시오패쓰 수준이였거든요
이제는 반대가 되가 그 당시 학부모는 선생님 앞에서 무조건 싹싹 빌었지만
이제는 반대로 학부모들이 소시오 패쓰들이 되어가 자기 자식 건드리면
지구 끝까지 쫓아가 반드시 복수하겠다 라고 하니 자살 안하고 베기겠습니까

그렇게 세상의 흐름대로 신 자체를 믿는다 라는 자체에 관심이 없었다 말이죠
자기를 먼저 우선 순위로 세워주지 않는 신은 관심 바깥에 두는 겁니다

듣보잡 듣도 보도 못한 잡것
즉 세상의 관원의 지혜에서는 저 변두리 취급당하는 잡것이다 말이죠
유명세가 없어요 맹위를 떨친 것도 없어요 그런데 왜 그의 말을 왜 듣냐 라는 거죠
맞잖아요

설사 이름만 알아도 아는 척 하면 안되는 겁니다
노예들의 신을 인정하면 자신들의 위상이 깍이잖아요
자신들을 먼저 세우는 것이 역사이기에 그런 역사 곧 시공간에 노예를 끼워 줄수가 없는 겁니다
다 부려먹고 난 뒤에 자기들 공간 바깥에서 다 죽여 버려야 하거든요 더러운 것을 청소하는 거죠

자 이런 점에서 반드시 대조를 이루는 겁니다
후발주자로 인식이 되어서 모르도록 하는 겁니다
그래도 관심 두어서 알려고 해도 노예들의 신이기에 괜히 더 알고 싶어도
그 동안 자신들의 높이 세운 맹위에 보잘 것 없는 뜨인돌 밖에 안되는 겁니다

뜨인돌이 뭔가 싶어서 물어봤죠 굴러들어온 돌인줄 알았는데
손대지 않았다 이더군요 산에서 저절로 떨어서 나온 돌이다는 거죠

요즘 광물로 난리 낮죠 과거도 마친가지입니다 물에 의해서 인간들은 배치가 됩니다 그렇게 자연에 적응하는 겁니다 이것이 축적되어서 빅 데이터가 되는 결국 네 맞아요 우주까지 그런 지식 정보를 쌓고 가야 문제 부딧힐 때 하겠다 아닙니까
희토류 금 은 동 이것이 경제의 흐름을 좌우하는 지금이니까 말이죠
어제의 친구도 오늘은 원수로 변하는 겁니다 우방 따위는 없어요 그때 그때 달라요
그냥 서로 이용해 먹기 위한 상호인정 상호기만 상호위선이 현대의 도덕이지요

오랜 친구가 있을 수가 없는 거죠 점점 똑똑해져야만 고독 나 혼자 밥을 먹고 나 혼자 영화 보고 나 혼자 울고 불고 그 고독을 즐기는 자만이 살아남는 시대이니까 말이죠

사실은 그건 살아있는게 아니라 그냥 좀비일 뿐인거죠

아무튼 인간은 광물에 의해서 배치될 뿐입니다

우리 살펴봤었죠 이사야 였던가요
북이스라엘도 망하고
남유다 마지막 남은 4대 왕조 사자 네 마리야
그것도 모르고

https://crosslamb.tistory.com/2591

[사자의 애가] 비유(수수께끼) (겔 19, 1-14)
에스겔 2019 2023. 2. 11. 13:33

에스겔이였네요

여호아하스 (살룸): 요시야의 아들로 왕위에 올랐으나, 단 3개월 만에 애굽(이집트) 왕 느고에 의해 폐위되어 애굽으로 끌려가 그곳에서 죽었습니다.
여호야킴 (엘리아킴): 애굽에 의해 세워진 왕으로, 바벨론의 침공을 받았습니다. 친애굽 정책을 펼치다 바벨론과의 갈등 속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여호야긴 (고니야): 여호야킴의 아들로 왕이 된 지 3개월 만에 바벨론의 2차 침공으로 예루살렘이 함락되면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시드기야 (맛다니야): 남유다의 마지막 왕(제20대)입니다. 바벨론에 반기를 들었다가 예루살렘 성이 함락될 때 두 눈이 뽑히고 사슬에 묶여 바벨론으로 끌려갔으며, 이때 남유다는 완전히 멸망(BC 586년)했습니다.

이 네 마리 사자 중에 두 번째 곧 18대 왕 여호야김이
무슨 지지배도 아니고 자기 처소를 금으로 도배하는데에만 미쳐 있었다 말이죠

이것이 신을 숭배하는 원리와 같아요
그렇게 동일시 하는 겁니다 가장 가치 있는 금과 자신을 동일시 합니다

트럼프 보세요 동일시 하잖아요 자기가 이미 신인 거죠
결국 신은커녕 지옥벌레가 되어서 죽지만 말이죠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만
여기서 이런 세상의 지혜 세상의 영과 반대되는
하나님의 속 사정 하나님의 지혜에는
감추워둔 비밀성이라는 이유로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신다는 겁니다


저들 슬픈 애가의 사자 네 마리 중에
심판 속에서도 남겨두 이러다 다 죽어 라는 긍휼이라는 비밀을
아껴둔 감추워둔 여호와의 이름이 있는데
여고냐 속에 그때 8살 18살 그 당시는 모르겠지만 한국으로 치면 아동입니다

자립청년 바로 직전 까지 말이죠

열왕기하 24장 8절: 18세에 즉위했다고 기록.
역대하 36장 9절: 8세에 즉위했다고 기록
대부분의 성경 학자들과 주석가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18세를 더 정확한 즉위 연령으로 봅니다.
필사상의 오류: 고대 히브리어 숫자를 필사(옮겨 적기)하는 과정에서 10을 나타내는 기호가 생략되어 18이 8로 적혔을 가능성이 큽니다.
문맥적 근거: 8세 아이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거나, 포로로 잡혀갈 때 "그의 아내들"이 함께 있었다는 기록(열왕기하 24:15)을 볼 때, 18세가 훨씬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101(오녹음) 통치는 18살 여덟 살 둘 다 똑같나???
네, 맞습니다. 열왕기하(18세)와 역대하(8세) 두 기록 모두 그가 다스린 기간은 '석 달 열흘(100일~110일)'로 거의 동일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오류도 그 감추워둔 비밀의 기능으로써 작용이 되어야
해석 불가가 되는 것이겠죠

찝찝한 여운이 남아 물어본게

그 당시 18 살은 어른인가 아동인가???

성경 시대(고대 유대 사회)의 기준에서 18세는 명백한 '성인(어른)'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아동'이나 '청소년' 개념과는 매우 다릅니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성인 인정 연령 (13세)
유대 전통에서 남자는 만 13세가 되면 '바르 미츠바(Bar Mitzvah, 율법의 아들)'라는 성인식을 치릅니다. 이때부터는 율법을 지킬 의무가 있는 완전한 종교적·사회적 성인으로 대우받았습니다. 따라서 18세는 이미 성인으로서의 권리와 책임을 모두 갖춘 상태였습니다.
2. 혼인 가능 연령
당시 유대 사회에서 남자는 보통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결혼했습니다. 실제로 여호야긴(여고냐)이 18세에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갈 때, 성경은 "그의 아내들"이 함께 끌려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열왕기하 24:15). 이는 그가 이미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 성인이었음을 증명합니다.
3. 군사적·정치적 책임
구약 성경에서 인구 조사를 할 때 '전쟁에 나갈 만한 자'의 기준은 20세 이상이었습니다. 18세는 전쟁에 나갈 나이에 임박한 장성한 청년이었으며, 왕위 계승자로서 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판단력이 있다고 여겨지는 나이였습니다.
4. 8세(아동)와 18세(성인)의 차이
만약 역대하의 기록대로 8세였다면 스스로 정치를 할 수 없는 '어린아이(아동)'이므로 섭정(어머니나 신하가 대신 다스림)이 필요했겠지만, 18세라면 본인의 의지에 따라 국정을 운영할 수 있는 나이입니다.
요약하자면:
그 당시 18세는 오늘날의 고등학생 느낌이 아니라, 결혼을 하고 군 복무를 준비하며 왕으로서 직접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는 당당한 '어른'이었습니다. 대한성서공회 성경백과 등에서 당시의 생활사 정보를 더 자세히 확인해 보실 수 있습니다.

혹시 성인 인정 연령 (13세) 가 가인과 아벨 사건 때문인가? 성경 근거 구절은???

성인 인정 연령인 13세(바르 미츠바)는 가인과 아벨 사건에서 유래된 것은 아닙니다. 가인과 아벨 사건은 인류 초기의 형제간 비극을 다루며, 특정 연령을 성인으로 규정하는 성경적 근거를 제공하지는 않습니다.
유대 사회에서 13세를 성인으로 보는 근거와 관련 성경적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1. 13세 성인설의 주요 근거 (창세기 34장)
성경 학자들이 유대 전통의 13세 성인 기준의 근거로 가장 많이 인용하는 구절은 창세기 34장 25절입니다.
사건: 야곱의 아들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 사람들을 보복 공격하는 장면입니다.
구절: "제삼일에 아직 그들이 아파할 때에 야곱의 두 아들 디나의 오라버니 시므온과 레위가 각기 칼을 가지고 가서..."
해석: 당시 레위의 나이가 13세였다고 추정되는데, 성경이 그를 아이가 아닌 '남자(이쉬, Ish)'로 지칭하며 각기 칼을 들고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존재로 묘사했기 때문에 이를 성인의 기점으로 봅니다.
2. 율법적·전통적 배경 (미슈나)
사실 13세를 성인으로 명문화한 것은 성경(타나크) 구절 자체보다는 유대교의 구전 율법을 정리한 '미슈나(Mishnah)'의 영향이 큽니다.
아보트(Abot) 5:21: "5세에 성경을 배우고, 10세에 미슈나를 배우며, 13세에 계명(율법)의 의무를 지고, 15세에 탈무드를 배운다"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3. 가인과 아벨 사건과의 관계
가인과 아벨 사건에서 얻을 수 있는 연령 관련 교훈은 '책임'의 문제이지 특정 나이는 아닙니다.
가인이 하나님께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창세기 4:9)라고 반문했을 때, 하나님은 그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 독립적인 인격체(성인과 같은 상태)임을 전제로 대화하십니다. 하지만 여기서 13세라는 구체적인 나이가 도출되지는 않습니다.
4. 기타 성경 속 나이 기준
20세: 군대에 입대하거나 인구 조사에 포함되는 행정적 성인의 기준 (민수기 1:3).
30세: 제사장 직무를 시작하거나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는 나이 (예수님, 요셉, 다윗 등).
요약하자면:
13세 성인 기준은 가인과 아벨 사건이 아니라, 창세기 34장의 레위의 사례와 유대교 전통 율법서인 미슈나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대한성서공회에서 해당 구절들을 비교하며 읽어보시면 흐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아까 질문 다시 두 군데 18살 8살 100일 통치는 정확히 똑같나
성경의 두 기록을 정밀하게 대조해 보면, 통치 기간은 거의 일치하지만 '열흘'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구체적인 구절을 통해 비교해 드리겠습니다.
1. 나이는 다르지만 통치 기간은 거의 같다
열왕기하 24:8 (18세 기록): "예루살렘에서 석 달 동안 다스리니라"
역대하 36:9 (8세 기록): "예루살렘에서 석 달 열흘 동안 다스리며..."
2. '석 달' vs '석 달 열흘' (약 100일 vs 110일)
질문하신 '100일 통치' 관점에서 보면 두 기록은 사실상 같은 사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열왕기하는 큰 단위인 '달'까지만 기록하여 약 90일(3개월)로 표현한 것이고,
역대하는 좀 더 세밀하게 '열흘(10일)'을 더해 정확한 날짜를 기록한 것으로 봅니다.
3. 왜 이런 차이가 나나요?
성경 학자들은 이를 기록의 정밀도 차이로 해석합니다.
열왕기는 역사를 요약하여 기술하는 경향이 있어 우수리를 떼고 '3개월'이라 적었고,
역대기는 성전 중심의 족보와 통치 기간을 아주 상세히 기록하는 특징이 있어 '열흘'까지 정확히 명시한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두 군데 모두 "매우 짧은 기간(약 100일~110일) 동안 다스렸다"는 역사적 사실은 똑같습니다. 다만 문구상으로는 역대하에만 '열흘'이라는 구체적인 숫자가 더 붙어 있습니다.
직접 확인을 원하시면 대한성서공회 역대하 36장과 열왕기하 24장을 대조해 보시기 바랍니다.
AI 대답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자세히 알아보기



그 10일 차이의 이유를 정확히 모르나?

성경 기록에서 여호야긴의 통치 기간이 '석 달(열왕기)'과 '석 달 열흘(역대기)'로 10일 차이가 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 학설로 설명됩니다.

1. 기록의 정밀도 차이 (반올림 vs 상세 기록)
가장 보편적인 해석입니다. 열왕기는 역사의 핵심 위주로 기록하며 3개월이라는 '큰 단위'로 요약(반올림)한 것이고, 역대기는 족보와 성전 역사를 다루며 날짜 하나하나를 아주 '세밀하게' 기록하려는 성격이 강해 10일을 더 구체적으로 명시했다는 것입니다.
2. 왕의 '즉위'와 '항복' 사이의 시차
실제 통치 행위를 시작한 날과 바벨론 군대에 항복하여 왕위에서 물러난 날 사이의 계산 방식 차이일 수 있습니다.
석 달: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완전히 포위하기 전까지의 실질적인 통치 기간.
석 달 열흘: 항복 선언 이후 실제로 바벨론으로 끌려가기 전까지 성안에 머물렀던 잔여 기간까지 모두 포함한 수치.
3. 고대 역법 및 계산 방식의 특성
고대 근동에서는 달의 주기를 기준으로 날짜를 계산했는데, 한 달을 꽉 채우지 못한 며칠을 '한 달'로 칠 것인지, 아니면 정확히 일수를 셀 것인지에 따라 기록자마다 약간의 수치 차이가 발생하곤 합니다.
요약하자면
이 10일의 차이는 기록의 오류라기보다는 '기록 목적'의 차이로 봅니다. 열왕기는 "그가 아주 짧게 다스리고 끝났다"는 사실에 집중했고, 역대기는 "그가 정확히 며칠을 보좌에 앉아 있었는가"를 정밀하게 남기려 한 것입니다.


아무튼 이런 차이는 비밀 때문입니다 결국 보는 시선에 따라 차이가 나도록 하는 시차적관점으로 다르게 보이는 것이지요 그 대표성이 4 복음서 아닙니까
서로 안 맞는 구석 많잖아요

아무튼 이 비밀 때문에 길게 운운 했는데
다시 돌아와서

애굽왕이 나 여호와가 누구관대를 통해서
그 천민의 하나님을 안다는 것 자체가 수치가 되는 거죠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믿는 것은 수치 그 자체입니다
부활의 예수님만 믿자 제발 고만 죄죄죄 캐라 십자가 마이 무따 아이가
괜히 나온 목사들의 징징 거림이 아닌 거죠

그래서 바로 이런 애굽왕을 통해서 후발주자 변방의 북소리 변방의 신이 어떻게 주류가 되는지
이스라엘을 통해서 영광 받으시는게 아니라 애굽왕과 애굽군사를 통해서 영광받으시는 겁니다


보편적 지혜요 진리인 세상의 관원의 지혜를 거쳐서 구체적 보편적 진리요 지혜를 나타내시듯이 말이지요

그래야 딱 한 사람 과부 딱 한 사람 문둥병자 에게만 보내심을 받으셨듯이

가나안 여자 기생 라합에게만 이 여호와의 비밀 이름이 마음판에 새겨져
40년간 간담이 녹은 채로 느닷없이 찾아온 생뚱맞은 이름의 신에게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시는 겁니다
바로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갈 여성으로 말이지요

그러니 반드시 주님 쪽의 숙제로써 두 언약을 이루듯이

이스라엘과 애굽처럼 말이죠

오늘 본문 그 구약의 그림자 속에서 감추워진 해석 불가의 비밀 뜨인돌은 그대로 가져워서
오늘 본문의 실상으로 세상의 영과 하나님께로 온 영
세상의 관원의 지혜와 감추워진 비밀의 지혜로 대조를 이루시는 겁니다

바리새인들이 이것을 흉내내어서 인간들이 만들어낸 대조 사실상 선악구조죠
자기에게 이로운 인간은 선으로 두고 
자기에게 도움 안 되는 인간은 가룟유다처럼 은 30냥 받고 팔아버리는 악마로 취급해야
자신의 선함이 더더욱 돋 보이도록 되듯이
이런 인간들의 잔머리 지혜 유대인들의 율법을 이용한 구분짓기 구별짖기 차이두기 거리두기
사마리아 구역 삥 둘러서 가기

말이 그렇지 예수님만 비밀이라서 가능하지
그 당시 규율을 깨뜨리고 사마리아 구역 들어가 보세요
돌삐 맞아 죽고 남은 가족들 계속 시달릴꺼 아닙니까
바울도 디모데에게 트릭 융통성을 쓰라고 했지요
죽어라고 목숨 걸어서 무할례를 그렇게 주장했건만
정작 디모데에게 할례를 반드시 하라 하는 겁니다
바리새인들 강요로 인한 유대인 금욕주의에서 건강을 위해 포도주를 먹으라 라고 합니다
하필이면 꼭 논란이 될 것들 꼭 시비꺼리가 될 것들을 추천 하는 셈이지요
정작 시비 꺼리가 안 되고자 한 것인데
후대에 해석자들이 거봐라 라고 나올수 있는 여지로 말이죠
그러니 내 쪽으로 끌어와서 지킬수 있는 내용이 없습니다
명령어 하라 하지말라는 금지하면 할수록 더 하도록 되어 있으니
니 마음대로 하라 라는 겁니다 막상 멍썩 깔아주면 못하는 거죠
지금껏 마음대로 살아와 놓고서 마치 새로운 것인냥 보이니까
지킬수 있는냥 착각하는 겁니다
그래도 부모로써 아이들에게 그렇게 가르치면 안되잖아
도덕질 하지 말라 가르쳐야지 않나
그런데 그 가르친 본인이 배운 아이의 목숨을 도덕질을 하니 말이죠
그 간극을 메울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 끝입니다
그러니 내 숙제 없는 거죠

아니 내 숙제로 천국 갈꺼면 바리새인이 가야죠
그런데 예수님의 숙제 곧 풀수 없는 감추워둔 비밀에서는 그들은 독사의 자식이였습니다
기존의 인간에서 나올수 없는 시선입니다
에라이 그래 그래 나는 포기 할란다 내 같은 놈이 무슨 천국 그 배불러 터진 소리 이겠노 라고 자기 숙제로 지옥 가겠다 라고 독재자의 길을 간다고 해서
지 마음대로 가는게 아니다 말이죠

그래서 네 마리 사자의 슬픈 노래
막상 보세요 아무도 안 슬퍼해요 누구만 대신 울 뿐이죠
여고냐가 어린 아동이나 책임질 나이가 된 18 이어도
악하기 짝이 없는 놈이기는 맹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속 사정 하나님의 영
곧 세상의 관원들의 지혜와 차이나는
세상의 영과 차이나는
육의 소욕 육의 자랑과 차이나는

비밀을 그 속에 담아서
자기 이름에 걸맞게 자신의 이름을 자기 스스로 아끼는 겁니다

여기에 성화론자들처럼 그런 하나님에게 도움이 되고자 달려들어도 
오히려 더 방해 훼방 거리가 되는 겁니다
뭐 처음에는 순종이요 자발적인 자원하는 심령이요 뭐 겸손으로 한다 라고 쳐쳐쳐 쳐 줍시다
그러나 반드시 육의 자랑으로 또 계급 나누기로 또 누가 크냐로 빠지도록 되어 있는 것이
인간의 행함이고
예수님의 죽음으로 이룬 믿음은 동생 마리아처럼 싸가지 없이 그냥 목격할 뿐입니다
목격한 자만이 증인이 될거 아닙니까 일한다고 도운다고 바쁘다 보니
목격한 것 하나 없기에 무엇을 외칠지 모르는 겁니다
그러면 또 대세 세상의 관원의 지혜 사람들에게 먹혀드는 이야기로 땜빵하는 것이지요

그런 버릇임을 알고 그런 지옥의 몸임을 알고
아예 손 발 못 움직이도록 오로지 목격만 하도록 하시고자
탈탈탈 털어버리는 용광로 비밀 속에 감추워둔 비밀의 이름 속에
하나님의 속 사정 하나님의 영을 부으셔서 비로소 안 보이던 것읇
보이는 것과 대조 해서 알려주시는 겁니다
보이는 것들은 다 사라질 것들이고
안 보이던 비밀 비유 수수께끼는 영원하다 말이죠

용광로 비밀 속에서 나올 때예수님의 죽음 속에서 나올 때
하나님께로 나온 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부어질 때
비로소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보이던 것들이 자꾸 흐릇해져 가는 겁니다 어차피 안 보게될 것들이라는 거죠

그래서 아무리 악한 놈 여고냐를 딸랑 100일 또는 석달 이 둘다 단절로 표현된
절대심판인 용광로 속에 포로됨 속에 들어가는 겁니다
100 단위로 끊어서 한 묶음을 이루듯 석달은 절대 심판의 전형적인 거죠
그러니 보이는 것들 곧 유에서 무를 해석할수 없듯이
유를 가지고 보이는 유 유 끼리 곧 유와 유를 대조 해 본들 답이 안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이 대가리 피도 안 마른 놈이 온갖 악행을 저지르다가 포로잡혀가니
찍소리 못하는 거죠
그런데 이것을 개인을 두고 말하는게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아껴둔 자기 이름을 거룩케 하시고자
이 악한 여고냐를 통해서 자신의 이름의 기능 곧 더러움을 거룩으로 옮기는 작업을 보여주고자
원인 없이 여고냐를 포로 잡히게 하는 겁니다
여기에 상대적인 세상의 지혜 세상의 영은
끝까지 독립투쟁을 벌리는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멸공의 횃불로 목숨을 건다 라고
어른 다운 모습을 보여주는데 있어서

도리어 악한 무화과 나무라고 하고

여고냐는 좋은 무화과 나무 라고 하는 비유 비밀이 먼저 있어서 그렇게 뒤에 덧 붙이시는 겁니다

팔을 어긎맞게 하시는 거죠
아니 처음부터 편하게 미리 바꿔 앉혀놓고 팔만 올리면 될 것을
왜 꼭 굳이 보라꼬 굳이 각인이 되라고
차별화 방식으로 왜 저러지 라는 의문을 유발케 하는 
불편한 시선인 응시의 기능을 활용하시듯 말이죠

(창 48:14, 개역) 이스라엘이 우수를 펴서 차자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좌수를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어긋맞겨 얹었더라

(렘 24:1, 개역)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냐와 유다 방백들과 목공들과 철공들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옮긴 후에 여호와께서 여호와의 전 앞에 놓인 무화과 두 광주리로 내게 보이셨는데
(렘 24:2, 개역) 한 광주리에는 처음 익은 듯한 극히 좋은 무화과가 있고 한 광주리에는 악하여 먹을 수 없는 극히 악한 무화과가 있더라
(렘 24:3, 개역)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무화과이온데 그 좋은 무화과는 극히 좋고 그 악한 것은 극히 악하여 먹을 수 없게 악하니라


원인 있는 결과는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하는 모든 인과관계법칙입니다
그러나 원인 없는 결과이기에 보이지 않는 것의 느닷없이 생뚱맞은 변방의 이름이 일방적으로 쳐들어와서 뜨인돌이 말이죠 제일 높은 애굽의 권력을 단 하루만에 무너뜨리는 겁니다
그리고 주춧돌이 됩니다

보이지 않는 하늘에서 내려온 암행어사처럼 암행자로써 말이죠
그카이 무슨 수로 입맞출수 있겠습니까
산에 들어가 도를 딱는 산신령과 같은 수련을 몇 십년 정도 하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일까요?
실제로 그런 무당들은 남들이 보이지 않는 것들을 봅니다
그러나 그것도 세상의 영입니다
비밀이 단 하나도 없는 것을 보는 거지요
거니 보세요 무당이 날짜를 잡아줬잖아요 계엄날
그 날짜 무당을 통해서 주님이 잡아준 날입니다

우리 저번에 무당들의 점괴 마저도 뒤에서 주님이 다스린다 라고 했잖아요
죽은 사무엘도 무당을 통해 불러내는 사건도 있구요

https://crosslamb.tistory.com/2619

바벨론 왕의 점괘를 옳게 하심 (겔 21,18-23)
에스겔 2019 2023. 8. 19. 13:24

(삼상 28:5, 개역) 사울이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 그 마음이 크게 떨린지라
(삼상 28:6, 개역)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지 아니하시므로
(삼상 28:7, 개역) 사울이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그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나이다
(삼상 28:11, 개역) 여인이 가로되 내가 누구를 네게로 불러 올리랴 사울이 가로되 사무엘을 불러 올리라
(삼상 28:15, 개역)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불러 올려서 나로 분요케 하느냐 사울이 대답하되 나는 심히 군급하니이다 블레셋 사람은 나를 향하여 군대를 일으켰고 하나님은 나를 떠나서 다시는 선지자로도, 꿈으로도 내게 대답지 아니하시기로 나의 행할 일을 배우려고 당신을 불러 올렸나이다
(삼상 28:16, 개역)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를 떠나 네 대적이 되셨거늘 네가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삼상 28:17, 개역) 여호와께서 나로 말씀하신 대로 네게 행하사 나라를 네 손에서 떼어 네 이웃 다윗에게 주셨느니라


자 이런 판국이나
성경은 그 어떤 것 단 하나라도 말이 되는 것이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 자체를 본적이 없는 인간이 그런 보이지 않는
원인 없는 결과를 해석할수 있겠으며
남의 마음 속 사정도 모르는 판국에 요즘 누가 알려고 하기나 하냐 말이죠

자기 부모 마음도 알려는 자가 사라지는 판국에
누가 하나님의 속 마음을 알고자

하나님을 마음에 두고자 하겠느냐 말이죠
그카이 성경을 본다는 자체가 불덩이 속에 들어가는 셈인 겁니다
말도 안되는 온통 비밀
처음부터 끝까자 감추워둔 비밀입니다
하나님 본인이 하나님의 이름을 아껴두고 거룩케 하시고
즉 인간들 성화론자들은 결국 속임수 치는 자들인 거죠
본인이 직접 하나님의 마음인 성령을 통해서
저런 보이지 않는 세계를 건설함에 있어서 이미 완료가 다 되었습니다

구약 때에 그 하늘의 완성된 예루살렘을 그림자로 땅에 비추니까
온갖 짐승 마귀들이 다 달라 붙어버리는 겁니다

오히려 이제는 주님이 도리어 눈에 보이는 지상의 세계에서 이스라엘 하나님의 집을 먼저 치심으로써 졸지에 열국에 까지 심판의 근거를 삼으시는 겁니다
짐승의 나라 곧 세상의 영들은 이스라엘 껍데기 그림자를 붙잡고
예수님을 실패자로 규정해 버립니다
실제로 가룟유다와 같은 자들을 자신들의 성공 사례로 여깁니다
주님은 그 하나의 패를 버리고자 처음부터 가짜를 심으셨고
악한 무화과 나무들과 같은 짓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는 눈에 보이는 나라 국가 종교 교회 가정 개인
모조리 심판의 근거로 삼으신 겁니다

그렇게 빼돌리다가 유일하게 동일하게 붙잡힌 놈 베드로는
더 이상 자신의 손에서 나올 의가 없도록 하시는 겁니다
행함으로는 의에 이룰수 없는 새언약이니까요
결국 주님께서 믿음 떨어지지 않도록 그럴줄 알고 십자가에 달려
대신 죗값을 치르러 왔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내 마음 필요 없습니다 내 마음은 내 영은
그저 눈에 보이는 것만 쫓도록 되어 있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 관심 조차도 없는
말세에 과연 믿음을 보겠느냐 라는 시대입니다

어차피 사라지는데요 뭐 자기관리 할게 못 되는 겁니다
똥차 폐차 끌고 매일 매일 세차 해 본들 티도 안납니다
그냥 빨강 도색으로 귀찮은 매일 매일의 세차를
단번에 잔딱 십이지 ~~~~~~~~~

단 한번의 제사로 빨래 끝입니다 두 번 바위를 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자유를 만끽하라고 세상의 영과 하나님의 영을 대조 시켜 보여주시는 겁니다

그 동안 좋게 보이는 그 친절한 키다리 아저씨 독립군 자금 지원들이였던 자들이
독사의 자식인 바리새인이였고

아무도 근처에 가지 않던 소경 앉은뱅이 문둥병자에게 효율성 실용성 따지지 않고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심으로 땅의 소망이 아닌 하늘의 소망을 두게 하심으로써

이 땅에서 병이 나아서 보이는 세계 곧 유대인 문둥병자 9명처럼 보이는 성전 예루살렘 성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어차피 70만에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지는 거죠

아직도 그 잔상을 붙잡고 울면서 기도하는 자들이 있는데 마귀들입니다
실상 되시 3일만에 새로 지으신 예수님을 모독하는 겁니다

도리어 단 한 명의 사마리아 문둥병자는 아무리 예수님이 왜 저들따라 가지 왜?
가 가 가란 말이야 라고 
낙엽 이빠이 얼굴에 뿌려 모욕감을 줘도

우리는 훨씬 지식의 우위에 있는 자가 나을거다 싶지만
그러니까 실천력이 강한 자가 주님이 찾는 자 일 것이다 라고 그런 사기치는 설교
그런 속임수에 워낙 다 넘어가다 보니

어라 유대인이 그런자로써 돌아올줄 알았는데
일자 무식이던 이방인이 주님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라고 나오는
팔을 어긋맞게 되는 상황이 되는 겁니다
성경 전체가 이런 식입니다

두언약 곧 진노의 그릇과 긍휼의 그릇은 오로지 토기장이의 권한이지
인간이 따질 권리가 없습니다

이미 심판 받아야 할 자임을 알고 두렵고 떠는 위엄과 자비가 보이는 자는
떠나고 싶어도 못 떠나는 겁니다 하나님의 영이 보여주셨고 하나님의 영이 붙잡고 계시니까 말이죠

그러나 반대로 우리가 예상했던 오래 오래 믿고 오래 오래 성경 지식을 쌓던 자들은
잠깐 이용해 먹고 바로 떠나서 다시 그 사적인 집단인 예루살렘에서 그 동안 못 누렸던 결핍을 채우고자 성화운동에 매진 할 겁니다
그 성전 속 사람이 어 당신 그 문둥병 어떻게 나았소?
아무도 이야기를 못하고 딴 주제로 화제를 돌릴겁니다
예수님이라고 했다가는 문둥병으로 쌓지 못한 공든탑을 다시 세우는 기회를 놓칠것이며
또 그런 이단으로부터 고침받은 티를 내었다가는 가족들의 안위도 이제 날라가는 거죠

법이 이렇게 복잡합니다 삥둘러가듯이 말이죠
권력 힘 정치 경제 다 이런 식입니다
쿠팡 보세요 지눈을 지가 찌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직접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 자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겁니다


그 하나님의 속 사정 마음인 영을 부어주시니
그 동안 보이지 않던

십자가의 죽음
장대 높이 달린 인자

다들 비웃던 하나님의 영광이요 능력을 보고
비로소 감사합니다

당신의 나라에 저를 기억하소서 아멘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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