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어라 ^^ 이삭아 !! (울어라 동해야)

2011년 3월 27일 일요일 오후 9:46:18  김대식


오늘 저녁 시간에
저녁먹지요? 어무이 !

그런데 어머니는 예배 중이다. 무슨 예배? 웃어라 동해야 볼 시간이다.

우스께 소리로 어머니가 매일 예배드리는 시간이 [웃어라 동해야] 볼 시간을
내가 장난 삼아 부르는 표현이다.

그런데 일요일인데도 보십니까?
야야 감기 때문에 이제까지 누워 잠들다 이제사 본다. 좀 보자.
보세요 보세요 아니 일요일인데도 합디까?

가만히 보니 케이블 재방송이다. 어 이거 금요일 껀데? 또 봅니까?

여자는 드라마를 봐도 봐도 계속 계속 본다.

예배 시간도 칼이다.
어제 날씨 춥다꼬 목욕하지 말라고 말려도 기여이 하더니만 감기걸렸다.
감기 땜에 오늘 못 갔는데도 불구하고 이거는 재방송이라도 또 본다.
 
우연히 채널 돌리다가 나오니까 본 것이지 방송시간을 아실리는 없었다.

아무튼 어머니가 하도 이 드라마를 좋아해서 나도 몇 주 전부터 보게 되었는데
재미가 솔솔하다.

어 그런데 대화를 하다 보니

어머니 이거 성경에 나오는 [웃어라 이삭아] 내용과 성경 여러 이야기가 짬뽕된 겁니다.

(갈 4:22, 개역) 『기록된 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갈 4:23, 개역)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갈 4:24, 개역)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갈 4:25, 개역)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 노릇 하고』
(갈 4:26, 개역)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 4:27, 개역) 『기록된 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두 언약 두 여자 싸움이 나오는 것과
이스마엘과 이삭의 싸움 (계집종 하갈 과 자유하는 하늘의 어머니 싸움)

안나 라는 잃어버렸다가 되 찾는 과정
(잃어버린 자 외에는 보냄을 받지 않음, 죽은 자식 되찾는)

회사를 위해 단 한번도 한눈 판적 없이 헌신한 맏이와(정애리)
외국에서 굴러들어온 돌 이방인 장애인 안나 라는 탕자
(후계자 기업을 누가 인수 받느냐?)

내가 눈치 챈 것 만 해도 몇 개나 되는데 찾아낸다면 얼마나 많은 것들이 있겠는가?

어머니도 웃는다. 어 그러고 보니 다 그거네?

과거에 판관 포청천 이라는 중국드라마를 보면 이것은 완전히 잠언과 전도서 욥기 시편 아가서 지혜문서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수두룩 하게 나온다.

구약은 그래서 율법이라는 구조이다.
구약이라는 율법 아래에 가두어야 그 차이로써
그 배경을 깔고 신약이라는 새언약의 피가 증거된다.

갇혀 보지도 않았는데 해방 구원이라는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남의 자유란 있을 수 없다.
(옛언약에서 새언약으로 못넘어온다. 뚫는 소통인 희년이 덮쳐야 한다. 헌술은 헌술 새술은 새술에만)

참 그러고 보니 웃어라 동해야 이야기 나오기 전에
말씀을 나누었는데

바로 전쟁은 증여 없이는 벌어질 수가 없다고 했다.
결국 전쟁은 소통을 틔여주는 역할이다.( 막힌 담을 헌다 )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함이 없다.
성령은 막힌 것을 뚫는 소통과 연관 된다.
(그런데 꼭 이 성령의 일이란 훼방꾼을 동원해서 차이성을 증거하시는 사건을 발생시킨다.
훼방꾼 없이는 성령의 일이 뭔지 모르고, 훼방꾼이 없이는 왜 사함이 없는지도 알 수 없다.)

즉 죄를 뚫는다. 그래서 죄 없다고 우긴다면 단절로써 다가오는 것이다.
(의인에게는,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없다.)

성령을 훼방하는 자가 누구인가?
(믿음 좋다는 의인? 건강하다는 자? 울지 않는자? 상한심령이 아닌자?
오늘 설교처럼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라고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못 만나는 자? 기타등등.
남이 아닌 우리가 아닌가? 왜 울어야 하는지 조차 몰라서 예수님을 귀찮게
졸졸 따라다니며 안됐다 청년? 쯧쯧쯧 입을 차는 아낙네들 모습 뿐인 우리!!)

바로 소통 되지도(뚫지도) 않았는데 저거들끼리 소통 단결 화평을 이루었다고 하니
단절로써 다가오고

모든 막힌 담을 헐어버렸는데 단절 되었다고 하니 직접 눈 앞에서 허물어 뜨려도
그들은 외면한다. 이미 따로 챙겨놓은 사적인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가버나움이 그랬다)

이것이 바로 종말의 상황의 종말의 영인 성령의 활동과 그 훼방을 다룬 비유들 속에서 나타난다.

그런데 이 소통과 단절의 주체가 되는 성령이 벌리는 십자가 전쟁은

결국 증여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다. 막을 것은 막고 뚫을 것은 뚫기 때문이다.

이 증여는 적으로부터 빼앗는 전리품이요 이 전리품이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이다.

이 증여가 바로 교회다. 신부다. 여자다.

레비스트로스 라는 학자는 모든 전쟁은 여자 때문에 벌어진다고 했다.
여자가 유일한 증여물 이기에 여자 없이는 소통 자체가 불가능 하단다.

그런데 [여자는 없다] 라고 또 어떤 학자는 말했다.

결국 여성성 이라는 것은 증여다. 선물이다. 잉여다. 해석불가다. 감당이 불감당이다.

이 잉여를 차지하기 위한 것이 바로 전쟁의 발발 요인이다.

주님은 마귀로부터 빼앗을 것이 있다.
적으로부터 빼앗은 것이야말로 전쟁승리의 하이라이트 이다.

이것이 증여물 때문에 벌어지는 전쟁이다.

아기를 수태치 못하는 여자가 많은 자식이 생기고
아이가 많은 여자는 졸지에 아들이 단 하나도 남지 않게 된다.

(눅 23:28, 개역)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눅 23:29, 개역)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수태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눅 23:30, 개역)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눅 23:31, 개역)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이것이 약속 전쟁이다. 그래서 울어라 이다. 울어
웃어라 이삭아 라는 말은 울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 울음을 웃음으로 바꾸는 사건이
사건 자체가 주체가 되는 언약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는 자가 웃게 되고
웃는 자는 울게 된다. 팔어긋맞게 하는 전복사건이 바로 십자가이다.

(눅 6:20, 개역)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가라사대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눅 6:21, 개역) 『이제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이제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눅 6:22, 개역) 『인자를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눅 6:23, 개역)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저희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눅 6:24, 개역)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눅 6:25, 개역)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눅 6:26, 개역)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눅 6:27, 개역)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눅 6:28, 개역)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눅 6:29, 개역) 『네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 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금하지 말라』
(눅 6:30, 개역) 『무릇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
(눅 6:31, 개역)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눅 6:32, 개역)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느니라』
(눅 6:33, 개역)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를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눅 6:34, 개역)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빌리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의수히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빌리느니라』
(눅 6:35, 개역)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빌리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
(눅 6:36, 개역)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

이렇게 말씀을 나누니

어머니께서 한수 훈수를 드신다.

그래서 아브라함(제임스) 아내 사래(안나)가 애굽족장의 여자들을 졸지에 다 아기못낳도록 만드는 특이점이 되니까

졸지에 증여물이 아무것도 한 것이 아브라함에게 쏟아지며

여기를 떠나 주세요. 당신들은 복의 기준입니다 라고 타인의 입에서 고백케 만든다. 라고

참희한한 말씀이다 라고 웃으신다.


맞습니다 어무이! 울어야 합니다 울어

그러자 어무이가 지금까지 지나온 모든 경험들이 아무것도 아니었고
오직 주님만 있으면 되는데
과거는 아무 쓰잘데기가 없더구나
이렇게 크나큰 죄 뿐인 나는 아무 쓰잘데기가 없구
오직 주님만 계시면 그것으로 족한데 말이지!! 라고 우신다.

그래서 내가 그카이 그러니까 울어야 한다꼬 안캅니까 어무이

그것이 오늘 설교에도 나왔습니다.

욥이 자기 생일을 저주 했어요 저주!
울었습니다.

다윗이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났음을 외쳤어요 비로소 말이죠,
울었어요 울었어 상한심령이 되었어요,

웃어라 동해야? 웃음이라는 종착점이 이미 정해졌기에 얼마나 울어야 할 것 아닙니까?
작가가 일부러 애간장 녹이게끔 속 다 타들어가게 상한심령 만들더구만
꼭 아쉬울 때 끝나고 말야. 그러니 예배시간을 그렇게 설레임으로 기다리지?

이삭이 웃음이라는 뜻인데
다들 비웃습니다. 심지어 아브라함 사래 두 부모도 비웃었지요.

그 비웃음을 뚫어버린 것이

울어야 하는 아브라함의 속이 다 타버리는 마음인 상한심령에서
울음이 변하여 웃음이 됐네 예수님의 사랑 신기하고 놀라워
물이 변하여 포도주 됐네 새롭게 새롭게 변화시켜 주소서

이것이 십자가가, 십자가의 영인 성령의 소통이지
다른 것으로는 뚫힐 수가 없습니다. 늑탈 아니고서는 소통은 있을 수 없지요,

누가 저 비웃음 덩어리 이삭을
뚫어버려서 웃음으로

재 대신 화관을
슬픔 대신 희락을
근심 대신 찬송을

누가 이 희년을 이루겠습니까?

이 십자가의 전쟁은 오로지 증여싸움입니다.
선물 싸움입니다.
은혜 싸움입니다.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말이죠.

마귀와 예수님만의 싸움에서 전리품으로 획득한 증여입니다.

가구물건(세간)인 우리는 증여 일 뿐입니다. 빼앗겨야, 울어야 삽니다.

도둑놈 예수님이 늑탈해야 합니다. 그래서 울어야 합니다. 왜 ! 웃음이기에 ~~~

(마 24:36, 개역)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마 24:37, 개역)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마 24:38, 개역)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마 24:39, 개역)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마 24:40, 개역)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마 24:41, 개역)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마 24:42, 개역)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마 24:43, 개역)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마 24:44, 개역)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눅 12:39, 개역) 『너희도 아는 바니 집 주인이 만일 도적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마 12:22, 개역) 『그 때에 귀신들려 눈 멀고 벙어리 된 자를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벙어리가 말하며 보게 된지라』
(마 12:23, 개역) 『무리가 다 놀라 가로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니』
(마 12:24, 개역) 『바리새인들은 듣고 가로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마 12:25, 개역) 『예수께서 저희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마 12:26, 개역) 『사단이 만일 사단을 쫓아 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저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마 12:27, 개역) 『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 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 내느냐 그러므로 저희가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마 12:28, 개역)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 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마 12:29, 개역)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
(마 12:30, 개역)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마 12:31, 개역)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마 12:32, 개역)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막 3:23, 개역) 『예수께서 저희를 불러다가 비유로 말씀하시되 사단이 어찌 사단을 쫓아낼 수 있느냐』
(막 3:24, 개역) 『또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
(막 3:25, 개역)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고』
(막 3:26, 개역) 『만일 사단이 자기를 거스려 일어나 분쟁하면 설 수 없고 이에 망하느니라』

(막 3:27, 개역)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늑탈치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
(막 3:28, 개역)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무릇 훼방하는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막 3:29, 개역)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느니라 하시니』

(예수님은 모든 인간이 귀신들린 바알세불 걸린자임을 규정하심을
역으로 바알세불 걸린 예수님으로 취급당하는 모습으로써 증거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그 주인 물건을 늑탈하는 도둑으로 비유하셨습니다.
도둑으로부터 늑탈당하지 않는, 울지않는자는
저좀 보쌈해 가세요 라고 울지 않고 간구하지 않고
울부짖지 않고 상한심령이 되지 않는자는 성령훼방자입니다.
 
늑탈 당해야할 곧 전리품인 주제에! 가구물건으로써 자신을 못보고,

도리어 건방지게
[예수님을 해석하겠다!]
[뭐~ 성령 받았는지 못받았는지 검사해 보겠다?
어딜 감히 여자가(증여물이)? 판단하겠다?]
는 심뽀인 우리의 악마성을 드러내는 비유말씀입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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