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9. 잃어버림(죽음) 속에서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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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잡는 십자가 (요나의 표적)

교재 p48-49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셨어요 (누가복음 5장 1-11절)

어린이 매일성경 2008년 1-2월 (고학년 4-6학년)
성서유니온 http://www.su.or.kr 1월 15일 날짜 화요일 QT

죄인(병자) 베드로와 구원자(의사) 예수님과의 만남
 
지난 시간에 인간을 구원(치료)하는 것이 예수님의 목적이 아니라, 천국에 이런 것이 일체 있을 수 없다 라는 분리 구별 차단(거룩)의 의미로써 병든자와 귀신들린자를 고치시는 치료라고 했습니다. 즉 영의 세계와 육의 세계를 두 패로 나누는 차이성을 드러내는 것이 천국의 불도져가 지나간 두 세계로 갈라놓는 표적이다.

기적이라는 치료는 인간의 유익을 주기 위함이 일체 아니라. 오히려 그런 기적은 악한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입니다. 마치 마귀가 3가지 시험을 통해서 임금삼기를 할려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나 기적은 그 반대로 요나의 표적 외에는 아무것도 보여줄 것이 없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무능하고 어리석고 미련한 십자가를 보여주는 기적입니다. 유일한 치료입니다.

(마 12:24) 『바리새인들은 듣고 가로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마 12:25) 『예수께서 저희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마 12:26) 『사단이 만일 사단을 쫓아 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저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마 12:27) 『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 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 내느냐 그러므로 저희가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마 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 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마 12:29)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
(마 12:30)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마 12:3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마 12: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마 12:33) 『나무도 좋고 실과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실과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실과로 나무를 아느니라』
(마 12: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마 12:35)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마 12: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마 12:37) 『네 말로 의롭다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마 12:38)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마 12:3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마 12:40)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
(마 12:41)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마 12:42)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마 12:43)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마 12:44)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마 12:45)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자 오늘 공부내용은 바로 예수님과 베드로의 만남과 사명입니다.
베드로를 부르시는 이유는 죄인이기 부르시는 겁니다.

그럼 죄인 베드로는 무슨 사명을 받게 되나요?

위의 치료(기적) 개념과 마 12장 내용을 통해서 볼때에
죄인 베드로의 사명은 바로 세상을 악하다 라는 예수님이 밝혀놓은 진위를 십자가라는 요나의 표적을 통해서 아는 것이 베드로의 사명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뽑혔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과 베드로의 만남 자체도 십자가를 기준으로한 만남입니다. 즉 죽음입니다.

예수님과 만나는 자는 죽음 속에서 심판 속에서 저주 속에서의 만남입니다. 곧 십자가입니다.

마치 하박국이 여호와의 구원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고 하니
무화과 나뭇잎이 마르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고 감람나무 열매 그치고 논밭에 식물이 없고 우리에 양떼가 없고 외양간 송아지 없는

그야말로 저주 속에서의 만남이, 죽음과 죽음 속에서의 만남이 여호와의 구원이라고 하박국 선지자도 그렇게 외쳤고

놀랍게도 요나도 그렇게 외쳤습니다.

이것이 요나의 기적입니다.

죽음 속에서의 만남

죽음 속에서 라면 죽음이기에 더 이상의 만남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는 그 죽음 속에서 무(無) 속에서 만남이 있었다면
그 동안의 유(있음) 속에서의 만남은 모조리 다 거짓임이 밝혀집니다.

결국 사람들이 원하는 기적은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이요 [있음] 속에서의 만남을 요구하는 종교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겁니다. 그것이 마귀의 3가지 시험이기도 했구요

자 그럼 오늘 죄인을 졸지에 만들어서 베드로는 죄인이 되어 심판받아 마땅한 심판주를 만나서 그 심판 속에서의 만남으로 예수님이 다가 옵니다.

그물이 찢어지는 기적을 왜 악한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으로 해석하지 못하고
베드로는 정작 요나의 기적으로 해석을 하고 비로소 구원자를 만났다고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도다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다고

비로소 자신이 죽어 마땅한 자임을 알게 됩니다.(이것이 참 이스라엘의 고백입니다. 죽음 속에서 태어난 자 = 샬롬 = 없음에서 있음, (롬 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히 11:12) )

(사 6: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사 6:6)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사 6:7)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비로소 베드로는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이것이 바로 창조주 예수님이 새로 창조한 피조물인 새이스라엘 입니다.

이제 이 새이스라엘이 맡은 사명은 이 세상을 악하다 라고 결정내리신 예수님의 기준을
이 땅에서 밀어붙이는 십자가의 어리석은 지혜를 목격하는 증인입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의 의미입니다. 있음을 없음으로 보고
없음을 있음으로 보는 두 세계가 교체당한 것을 회개 라고 합니다.

이사야의 6장에서의 고백이나
하박국의 (합 3:17) 의 고백이나.
요나의 고백 (욘 2장)인 요나의 표적 곧 스올의 뱃속에서의 주의 음성의 찾아오심
또 사도바울의 고백인 오호라 곤고한 자로다 롬7장과 8장의 전환으로 에수 안에는 결코 정죄함 없다

이 모든 의미가 바로 십자가 라는 예수님의 피 흘리심으로 인해서
두 세계가 교체 당하는 것입니다.

이제 베드로 또한 육과 영을 쪼개고 뚫어버려서 두 패로 나누는 희년 곧 십자가의 지혜의 완성을 베드로는 외치고 다니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겁니다.

이것을 바로 종말의 선포라고 하며 이 종말의 단체가 바로 교회이며
교회는 어떤 운동을 하는 자들이 아니라 (이런 교회는 다 가짜입니다.)
세상은 끝났습니다 라고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이 외친 영의 일만을 외치는 겁니다.

사람 낚는 어부 라는 의미는
우리보고 사람을 구원하라 라는 구원을 목적으로 일하라 라는 뜻이 아니라
(주님은 인간 구원할려는 목적으로 인간을 낚는 분이 아니라 그 반대로 자신의 의를 낚을려고 하시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마치 이사야의 고백과 하박국의 고백과 요나의 고백과 사도바울의 고백과 오늘 베드로의 고백이 다 동일한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도다 라는 죄인으로써 주님의 십자가의 피가 곧 율법 외에 한 다른 의(십자가의 피)가 와서 부정한 나의 입술을 제단 숯불로 지져 버렸다 라고

죄인과 피(예수님의 義) 와의 만남 으로 자신의 피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그 피의 대상이 되는 피와 정반대가 되는 죄인에게서 발라서 피의 의미를 낚으시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이 심은 피의 의로움을 낚고자, 소모품으로써 동원된 소품이 바로 이사야, 하박국, 요나, 사도바울, 그리고 베드로이다 라는 겁니다.

즉 여기서 베드로처럼 12 제자를 부르시는 이유는 천국의 확장을 위한 것이 아니다. 천국운동을 펼치기 위함이 아니다. 바로 위의 내용처럼 죄인으로써 뽑혀서 피의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앞으로도 죄인의 실상을 낱낱이 대표적으로 들추임 당하기 위해서 뽑혔다는 겁니다.

즉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삼는 이유는

사람 속에 있는 모든 죄의 실상들을 낚이는 자로써

모든 육의 사고방식의 실체를 대표적으로 지적받고 매 맞기 위해서 정작 자신들부터 낚여야 하는 겁니다.

여호와의 영광을 낚기 위해서 이사야에게 남이 못 보는 영광으로 인해
이제 눈에 보이는 이스라엘의 국가체제를 부정해 버리는 일이 바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는 선지자의 일이고 성령의 일이다 라는 겁니다. 즉 육과 영의 두 패로 쪼개는 일 곧 종말을 외치는 것이 바로 사람 낚는 일입니다.

자꾸 내가 전도를 하거나 선교를 해야 하거나 하나님나라를 확장하거나 천국운동을 펼치거나 새생명의 삶 운동 등등으로 구원을 외치는게 아니라

정반대의 심판을 외치는 것이 육의 실체를 들추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외칠 자격이 되지 못하고
구약의 참선지자처럼 그 외침이 정작 그 반대의 상황으로 외쳐지는 겁니다.

어떻게? 심판을 몸에 지닌 모습으로써 저들의 심판을 미리 앞당겨서 당하는 모습입니다. 이것이 곧 죽음입니다.

결국 위에서 언급한 이사야 하박국 요나 사도바울 그리고 베드로는

자신의 죽음을 앞장세우면서 예수님의 의에 낚였다 라는 것을 외치는 종말의 선포를 하는 겁니다. (우물가의 여인)

자 이렇게 되면 자기의 잘난 모습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이렇게 못난이 아무리 봐도 구원받을 자격이 없는 죄인 중의 괴수인데
주님이 날 위해 피를 흘렸습니다 라고 이 피를 외칠때에

피 발린자는 너도 못난이냐 나도 못난이다 라고 이 아니면 우짤뻔 했노 라고 이 피의 의미를 부각하는데

피 발리지 않는 자는 반드시 이 피의 공로를 인간쪽의 행위와 구원의 자랑으로 인간의 의를 곧 육의 자랑을 내세우는데 있어서 반드시 충동하는

서로의 소욕을 못하도록 서로가 서로에게 악취가 되는 미움받는 근거와 미움을 유발케 하시는 겁니다.

그럼으로 인해서 그 미움으로 인한 살인을 유도하게 되니 결국 십자가의 사건을 재현하게끔 하시는 것이 바로 사람 낚는 일이다 라는 겁니다.

결국 사람 낚는다 라는 표현은 사람 잡는다 라는 의미입니다.

아이고 사람 잡네 사람 잡어  사람 잡네 사람 잡어

사람 잡는 유일한 종말의 사건은 십자가 뿐입니다. 요나의 표적 뿐입니다.

그 외의 모든 종교적인 행위는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입니다. 이보세요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이다 라고 단정 짖는 이 자체가 사람 잡는 일이지요

그 이유는 여전히 예수님 자신의 의를 낚고자 함입니다.

(요 7:7)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못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행사를 악하다 증거함이라』

지금 구원 구원을 운운해야 할 판국에 반대로 미움 질투 시기를 유발케 하는 것이 바로
천국되신 예수님의 일이다 라고 증거한다면 누가 이해가 되고 누가 납득이 되겠습니까?

정말로 사람 잡는 일 아닙니까?

이 죽음과 같은 사람 잡는 일이(십자가) 바로 사도들에게는 기쁨이요 복음이라고 합니다.

(롬 8: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롬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즉 죽음과 같은 사람 잡는 일이 유일한 사랑입니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기 때문이여

지옥과 같은 저주 속에서의 원수에게 들려오는 음성 곧 나를 따르라 이제부터 사람낚는 어부 되게 하리라 라는 음성은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음부같이 잔혹한 곤고한 지옥의 마음 곧 사망의 몸인 육을 불로써 태워버리고 소멸하시는 것은

너 그 사망의 세계에 왜 있어 라고 다가오시는 질투의 불륜의 십자가입니다.

너가 당해야 할 저주 내가 대신 받으마 라고 다가오시는 예수님의 죽으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의 죽음과 예수님의 죽음과의 만남을 통해서
이 십자가의 비밀을 가지고 이 세상을 두 패로 나누는 종말의 선포를 위해
우리는 베드로처럼 죄인이로소이다 라는 고백으로써 주님의 피의 공로를 낚고자
소품으로써 뽑혔습니다.

이 베드로와 예수님의 만남은 베드로의 고백처럼
있을 수 없는 가당치도 않은 일입니다.

죄인과 피와의 만남이 바로 십자가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예수님의 지혜입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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