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의 파괴

자유게시판 2013. 8. 19. 10:07

어제 이종성 장로님 부인이 복숭아 가지고 가라고 해서

아니 괜찮습니다 라고 했다.

그러더니 바로 남편되신 이종성 장로님이 직접 손에 가득 복숭아를 두 손으로 받쳐서
너무 더워 못 오신 어머니께 갖다드리라고 했다.

그 모습이 아니 괜찮습니다 라고 말을 못하도록 만들어버렸다.
계속 복숭아를 받쳐 있으시길래

얼른 비닐 봉다리 찾아서 그것을 담았다
아이고 이러시지 않아도 되는데 너무 감사합니다.

아직도 그 장면이 잊어지지 않는다
얼마나 부담스러운지 두 손으로 가득 담아서 받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단순히 예의가 아니라, 안받으면 정말 안될것 같아서 얼른 얼른 받아 챙겼다. ㅋㅋㅋ

얼른 받지 않으면 안될것 같이, 팔이 떨어져나갈까 괜히 염려가 될 정도로 환상 비스무리하게 보였다.

왜 이렇게 꼬박 꼬박 배려를 해주시는지 이해가 안된다.
정말 정말 비정상이다.

다들 정상적으로 행동하는데 말이다.

아무튼 어머니께 드리니 얼굴이 함박꽃이다. ㅋㅋㅋ

예배 중간에 집으로 가버릴까? 왜 갑자기 몸이 안좋지!!
발이 시려워서 도저히 견디지를 못해
나가버릴까 했는데
잠시 방에서 의자에 앉아 있으니 좀 견딜만 했다.

여름에는 냉방병 겨울에는 공기탁함 때문인지
코가 맛이 갔다. 목이 늘 아파 가래가 끓는다. 주여 빨랑 죽여주옵소서
더 이상 제가 남아있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 말입니다.

아침에 메일이 와서 몇자 적어 보냈다.
지난 번에 좀 듣기 싫은 내용을 적었는데
다시는 안 올줄 알았는데
뭐가 아쉬웠는지 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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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이 될 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런 식의 공부를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수많은 목사들이 자료만을 원하면서

그 자료를 가지고 자신에게 맞게 응용을 하면서 자기가 원하는 목회의 방식대로 할수 있고

복음도 제대로 증거할수 있으니

목회 성공 할수 있을런지는 모르겠으나

일단은 자기 마음에 맞고, 사람들도 좋아할 것이고

금상첨화이다 싶어서

많이들 그렇게 하곤 했습니다.


놀랍게도 그렇게 한 사람들 다 떨어져 나가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의 정신적인 뿌리를 한번 찾아보겠다 라고 나서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못 봤습니다.

그저 겉의 먹음직스러운 결과만을 탐스러워 할 뿐이더군요.


그러니 제가 건방지게 말하는 것이지만

젊은 목사님 께서 그 시간에 딱 맞는 공부는

오히려 이런 설교자료 신학자료가 아니라

차라리 철학을 좀 공부하셨으면 합니다.


그래서 공부의 속도를 좀 높여서

그 뒤에 성경공부를 따라서 하시면 되지 않겠나 싶습니다.


왜냐하면 정작 철학자들은 진리를 위해서 죽을 각오들을

자신들의 철학에서 많이들 발현을 합니다.


그런데 신학자나 목사들은 진리를 위해서 죽을 각오를 하지 않습니다.

진리를 위해 죽을 각오를 하는 말만 번드리하게 잘 하면 속아주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먹혀드는 겁니다.


그러나 철학자들은 그런 속임수를 하고싶어도 듣는 대중이 아예 없기에

아마 시도 자체도 하지 않는 겁니다.

자신과의 싸움이 오히려 더 철두철미하게 하는 기회가 되는 셈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도바울을 그들은 실제적으로 좋아들 하는 겁니다.


오늘날 목사들은 오히려 사도바울을 목회에 이용하고 속아넘어가는 자들이 많기에

차용을 하는 것이지 사도바울 보다 부담스러운자가 어디있겠습니까? 그래서 다들 싫어합니다.


교회에 도움 될 때만 이용해 먹을 뿐인 겁니다.


그래서 철학 공부를 즉 사도바울로 치면 예수님을 알기전 그 이전의 세계의 모든 사상을 다 꿰뚤어 보는

공부를 해야


두 세계를 다 알수 있을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쪼록 복음을 위해 젊은 목숨 기꺼이 내어놓는 목사님이 되시길 바랍니다.


자료는 이미 사이트에 다 올려진 겁니다.

거기에 없다면 없는 겁니다.

제가 맡고 있을 때에 자료란 자료는 다 찾아서 올렸습니다.

몇몇 빠진 것은 원래 컴작업을 하지 않은 것이고

또 어떤 분에게 있기는 했으나 달라고 부탁을 하니

이목사님이랑 헤어진 상태라서 마치 자기것인냥 볼모로 잡는

별 희한한 짖을 하길래 그만두라고 빠진것 뿐

그 외에는 다 있습니다.


이런 사건들이 오히려 성경지식 쌓는 것 보다 몇배나 낫습니다.

사고방식이 확 트이거든요.


목사님이 말한 자료는 사이트 메인화면에(가로)

성경자료란이 있습니다.

거기에 왼쪽 세로 메뉴에 구약, 신약, 신학강의 1 2 3  등에 클릭하시면 다시 가로메뉴에서 원하는 란을 클릭하셔서

게시물이 나오면 클릭하면 내용물들이 나옵니다.


시디 24장도 다 사이트에 올려 놓은 겁니다.


그런데도 에러가 나서 다운이 안되는 것은

서버를 옮겨서 주소가 안 맞아서 수정이 덜 된 것이라 보여집니다.

그것이 제가 관할을 하지 못하니 현재의 관리자에게 부탁하시면 됩니다.


왠만한 자료는 다 올렸으니 사이트 구석 구석을 찾아보시면 됩니다.



그럼 열공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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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님.

무더운 날씨에 잘 지내시나요? 



지난번 보내주신 파일에서 '박사교회 설교요약'이 있던데, 

그 내용에는 창세기~열왕기하 까지 아주 짧게 요약식으로 정리된 것을 보았습니다.

그 때가 1989년 11월로 기록이 되어 있더군요.


집사님. 괜찮으면, 박사교회에서 설교하신 이근호 목사님 설교를 '요약'된 것 말고

원고로 정리된 것을 좀 봤으면 합니다. 요약도 깊지만, 더 풍성히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2000년 전까지 정리된 자료들(원고 및 mp3 등)이 있으면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파일 첨부해드리는 것은 제가 지난번에 집사님으로부터 받은 파일안에 들어있던 것입니다.

목록의 내용을 받고 싶으면 어떻게 받을 수 있는것인지 궁금해서 연락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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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가상의 파괴라 적었다.

진리가 진리로 통용이 되면 그 진리는 더 이상 진리가 되지 않는다

미학오딧세이에 나오는 내용이다.


오이디푸스를 거부하는 앙티오이디푸스
아름다움이라는 가상을 거부하는 추상화

그래서 획일적인 권력의 세계에 대항하는 현대예술의 추상성은 과연 권력이 아닐까?

과연 앙티 오이디푸스는 오이디푸스가 아닐까? 맨 역시나 오이디푸스다.

들뢰즈 영향 아래에서 쓴 이 책을 보면 가상을 파괴하는 현대예술가의 추상성 즉 몸부림이
권력에 대항하는 것 같지만 정작 그 자체도 권력일 뿐이다.

합리성을 추구하는 사회의 비합리성?

그렇다고 추상성 자체는 과연 비합리적이지 않을까?

법도 외설적이지만, 사랑도 외설적이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 사랑이 더 더 더 외설적이기에
법 보다 나은 것이다.


순종이 제사 보다 나은 이유이다.

(삼상 15:7, 개역) 『사울이 하윌라에서부터 애굽 앞 술에 이르기까지 아말렉 사람을 치고』

(삼상 15:8, 개역)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사로잡고 칼날로 그 모든 백성을 진멸하였으되』

(삼상 15:9, 개역)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키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낮은 것은 진멸하니라』

(삼상 15:10, 개역) 『여호와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삼상 15:11, 개역)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이루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

(삼상 15:12, 개역) 『사무엘이 사울을 만나려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더니 혹이 사무엘에게 고하여 가로되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돌이켜 행하여 길갈로 내려 갔다 하는지라』

(삼상 15:13, 개역)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른즉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원컨대 당신은 여호와께 복을 받으소서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

(삼상 15:14, 개역) 『사무엘이 가로되 그러면 내 귀에 들어오는 이 양의 소리와 내게 들리는 소의 소리는 어찜이니이까』

(삼상 15:15, 개역) 『사울이 가로되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

(삼상 15:16, 개역)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가만히 계시옵소서 간 밤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신 것을 왕에게 말하리이다 가로되 말씀하소서』

(삼상 15:17, 개역) 『사무엘이 가로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

(삼상 15:18, 개역) 『또 왕을 길로 보내시며 이르시기를 가서 죄인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되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 하셨거늘』

(삼상 15:19, 개역)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의 악하게 여기시는 것을 행하였나이까』

(삼상 15:20, 개역)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왔고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였으나』

(삼상 15:21, 개역)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취하였나이다』

(삼상 15:22, 개역)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삼상 15:23, 개역)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호 6:6, 개역)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마 23:23, 개역)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마 23:24, 개역)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

(히 10:8, 개역) 『위에 말씀하시기를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히 10:9, 개역)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히 10:10, 개역)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히 10:11, 개역)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히 10:12, 개역)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히 10:13, 개역)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히 10:14, 개역)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히 10:15, 개역)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거하시되』

(히 10:16, 개역)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히 10:17, 개역)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히 10:18, 개역)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히 10:19, 개역)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히 10:20, 개역)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히 10:21, 개역)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히 10:22, 개역)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히 10:23, 개역)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않고 굳게 잡아』

(히 10:24, 개역)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히 10:25, 개역)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 10:26, 개역)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히 10:27, 개역)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히 10:28, 개역)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히 10:29, 개역)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히 10:30, 개역)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히 10:31, 개역)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히 10:32, 개역)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시아버지 유다 보다 며느리 다말이 낫다.
이유는 없다. 오로지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간 자는
유다가 아닌 며느리 다말이기에 ....


이런 더(도장;욕심잉태) 더(도장끈;죄낳고 죄장성한즉) 더(지팡이;사망) 외설적이지 못하면
외설적인 법의 세계에서 빠져나올길이 없다.

백날 가상을 파괴해 봐라? 빠져나올수 있는가?

그 가상을 파괴하겠다는 그 몸은 그럼 누가 파괴해 줄 것인가?
죽음만이 살길이다? 무자아?
이런 니체적인 불교사상이 오늘날 기독교의 성화론이 아닌가?

거짓은 가라? 껍데기는 가라? 라고 외치는 그 외침은 거짓 아닌가?
정의사회구현 사제들의 한결같은 외침 !!!


차라리 마귀가 되자. 아니 이미 마귀인데 뭘!!
차라리 악마가 되자. 아니 이미 악마이니까? 

제발 막 살자!!
이거 제가 할께요~~ 느낌 아니까!!
어제 해봐서 잘 살릴수 있어요 ㅋㅋㅋ


십자가가 밝히 보인다. 모든 속임수 꾀임은 십자가에서 밝혀진다.

(갈 3:1, 개역)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이 속임수의 세계를 알아야 겠다.  열~ 공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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