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양에 속한자와 짐승에 속한 자의 차이 (14: 6-20)

 

요나의 표적이냐?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이냐?


 

(14:6, 개역)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14:7, 개역)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14:8, 개역)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14:9, 개역)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14:10, 개역)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14:11, 개역)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14:12, 개역)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14:13, 개역)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14:14, 개역)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앉았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이한 낫을 가졌더라

(14:15, 개역)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네 낫을 휘둘러 거두라 거둘 때가 이르러 땅에 곡식이 다 익었음이로다 하니

(14:16, 개역)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14:17, 개역)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또한 이한 낫을 가졌더라

(14:18, 개역)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이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가로되 네 이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14:19, 개역)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14:20, 개역)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까지 닿았고 일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예수님께서 복음을 증거하실때에 항상 두 패거리를 대조 시키시는 방식을 나타내십니다
.

한 쪽은 긍휼의 그릇과

다른 한 쪽은 진노의 그릇으로 말이죠.

 

비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벌리시는 사건 속에서도 항상 그런 두 패로 갈라지는 사람들의 배치가 일어나는 식입니다.

 

예를 들어 비유 속에서는 천국 갈자는 이러하다는 식으로 탕자비유에서 탕자를 언급하고

상대적인 지옥 갈자는 맏아들이 배치되는 식입니다.

마치 동생 야곱은 사랑하기로 작정이 되었고

형 에서는 미음 받기로 태어나기도 전에, 창세전에 작정된 것처럼 말이죠.

 

그리고 비유가 아닌 실제적으로 벌어진 사건에서는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천국 갈자가 이러하다 라는 식이고

상대적으로 배치된 인물들은 그 여인을 현장에서 잡아서 예수님은 과연 어떤 해석을 하는가를 테스트 시험 하고자 했던 율법 지키는 자들을 지옥 갈자로 배치했던 겁니다.

 

비유가 진짜로 실제화 되면서

맏아들처럼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이 없는 자가

실제에서도 율법 지킨자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달려드는 식이다는 겁니다.

 

괜히 그들 세계에서 예수님이 괜히 별명이 붙여진게 아닙니다.

먹보에 술꾼 그리고 세리와 죄인의 친구 라는 별명 말이죠.

(마 11:19, 개역)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눅 7:34, 개역)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마 11:11, 개역)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침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마 11:12, 개역) 『침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마 11:13, 개역)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마 11:14, 개역)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마 11:15, 개역)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마 11:16, 개역)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마 11:17, 개역)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마 11:18, 개역)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저희가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마 11:19, 개역)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이런 별명을 붙이는 이유는

내가 보장하마 마음껏 공격하라 라는 뜻입니다.

무언의 암시죠

결국 적어도 율법을 지키는 자들은 예수님을 마음껏 공격할수 있다는 것을

보장해 주는 별명인 셈입니다.

 

그러니 율법 좀 지킨다 싶으면 마음껏 예수 너의 해석은 어떤가 라고 시험하게 되는 겁니다.

 

이게 종교예요 종교

뭐 이웃을 사랑하라를 실천해야 한다굽쇼?

이웃을 사랑하면 골치 아파지는게

물론 이웃 자체가 자기 마음대로 설정한 것이지

원수를 이웃으로 설정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이 불가능한 말씀을 지켰다고 나서게 되면

이게 졸지에 나 보다 더 잘 지키는 놈 나타날까봐 전전긍긍하게 되는 겁니다.

이게 종교 곧 666이라는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의 특징이다 말이죠.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기적 이라고 하는 겁니다.

기적

종교의 필수 요소는 기적입니다.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것이 기적이다 말이죠.

 

이것이 바로 상대적으로 계시록 13장에서 짐승의 수를 세어보아라 라고 하시는 이유입니다.

 

(13:12, 개역)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13:13, 개역)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13:14, 개역)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13:15, 개역)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13:16, 개역)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13:17, 개역)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13:18, 개역)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육십육이니라

 

 

왜냐하면 짐승이 행하는 이적이 어떤 수인지를 간파 하라고

지혜와 총명함으로 수를 세어보라고 하신다 말이죠.

세어보니 666입니다.

사람의 수가 666이다 말이죠.

666은 바코드가 아니라 사람 자체가 666이다 말이죠.

이것으로 매매하는 겁니다. 소통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말이죠.

그러니 저울에 달아보면 항상 모잘라고 미흡하고 부족하고 의문의 반복 뿐이다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지옥간 부자가 요구하는 사항이였습니다.

지옥에 가서도 왜 지옥에 왔는지 조차도 모르기에 지옥인 겁니다.

그래서 거지나사로 곧 아브라함 품에 있는 거지나사로를 부려먹을려고 한다 말이죠.

 

간극을 무시하더라 말이죠.

그래서 아브라함이 알려줍니다. 야야 소통 안된단다.
부자 너와 거지나사로 사이에 건널수 없는 강이 있고 큰 구덩이가 있단다.

어딜 되도 않는 666으로 여기를 왔다리 갔다리 소통할려고 하니???

(눅 16:24, 새번역)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기를 '아브라함 조상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나사로를 보내서,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서 내 혀를 시원하게 하도록 하여 주십시오. 나는 이 불 속에서 몹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하였다.』

(눅 16:25, 새번역) 『그러나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되돌아보아라. 네가 살아 있을 동안에 너는 온갖 호사를 다 누렸지만, 나사로는 온갖 괴로움을 다 겪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통을 받는다.』

(눅 16:26, 새번역) 『그뿐만 아니라,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가로 놓여 있어서, 여기에서 너희에게로 건너가고자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에게로 건너올 수도 없다.'』


 

그러나 거지나사로는 입도 띠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다 알아서 처리하는 하이카 와 같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완벽했으면 함량미달이 아닌 꽉꽉찬 풍요로움에 섬김을 받았으면

그냥 품에 안기여 쉬고 있습니다. 안식 그 자체 이다 말이죠.

 

 

(14:11, 개역)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짐승의 표를 받은 자는

쉼이 없어요

아침이 오지 않아요

새벽을 맞이할 수가 없어요. 잠을 못 자니까

물 한 방울이 없어서 지옥이다 말이죠.

 

(59:14, 개역) 저희로 저물게 돌아와서 개처럼 울며 성으로 두루 다니게 하소서

(59:15, 개역) 저희는 식물을 위하여 유리하다가 배부름을 얻지 못하면 밤을 새우려니와

(59:16, 개역)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주는 나의 산성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심이니이다

(59:17, 개역) 나의 힘이시여 내가 주께 찬송하오리니 하나님은 나의 산성이시며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

 

밤을 새우는 굶주린 악인, vs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찬양하는 의인 (시편 59)

 

http://crosslamb.tistory.com/1667

 

 

그럼 계시록 14장은 짐승의 이적과 상대적인 모습으로써

어린양에 속한 자들이 이적을 누리는게 아니라

이적의 상대적인 표적은 요나의 표적임을 누리는데 있어서

그것이 바로 144000명이고 그들이 노래하는 새노래를

그 어떤 누구도 따라할수도 없고 배울려고 해도 배울수가 없는 새노래를 부르더라 말이죠.

 

그 노래는 앞의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시편 139편과 같은 다윗의 노래입니다.

또 요나의 노래처럼

 

(2:1, 개역)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2:2, 개역) 가로되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이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2:3, 개역)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2:4, 개역)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2:5, 개역) 물이 나를 둘렀으되 영혼까지 하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웠고 바다 풀이 내 머리를 쌌나이다

(2:6, 개역)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2:7, 개역)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삽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2:8, 개역) 무릇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2:9, 개역)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 하니라

(2:10, 개역) 여호와께서 물고기에게 명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하박국의 노래처럼

 

(3:1, 개역) 시기오놋에 맞춘바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라

(3:2, 개역)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3:3, 개역) 하나님이 데만에서부터 오시며 거룩한 자가 바란 산에서부터 오시도다 (셀라) 그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그 찬송이 세계에 가득하도다

(3:4, 개역) 그 광명이 햇빛 같고 광선이 그 손에서 나오니 그 권능이 그 속에 감취었도다

(3:5, 개역) 온역이 그 앞에서 행하며 불덩이가 그 발밑에서 나오도다

(3:6, 개역) 그가 서신즉 땅이 진동하며 그가 보신즉 열국이 전률하며 영원한 산이 무너지며 무궁한 작은 산이 엎드러지나니 그 행하심이 예로부터 그러하시도다

(3:7, 개역) 내가 본즉 구산의 장막이 환난을 당하고 미디안 땅의 휘장이 흔들리도다

(3:8, 개역) 여호와여 주께서 말을 타시며 구원의 병거를 모시오니 하수를 분히 여기심이니이까 강을 노여워하심이니이까 바다를 대하여 성내심이니이까

(3:9, 개역) 주께서 활을 꺼내시고 살을 바로 발하셨나이다 (셀라) 주께서 하수들로 땅을 쪼개셨나이다

(3:10, 개역) 산들이 주를 보고 흔들리며 창수가 넘치고 바다가 소리를 지르며 손을 높이 들었나이다

(3:11, 개역) 주의 날으는 살의 빛과 주의 번쩍이는 창의 광채로 인하여 해와 달이 그 처소에 멈추었나이다

(3:12, 개역) 주께서 노를 발하사 땅에 돌리셨으며 분을 내사 열국을 밟으셨나이다

(3:13, 개역) 주께서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기름 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나오사 악인의 집머리를 치시며 그 기초를 끝까지 드러내셨나이다 (셀라)

(3:14, 개역) 그들이 회리바람처럼 이르러 나를 흩으려 하며 가만히 가난한 자 삼키기를 즐거워하나 오직 주께서 그들의 전사의 머리를 그들의 창으로 찌르셨나이다

(3:15, 개역) 주께서 말을 타시고 바다 곧 큰 물의 파도를 밟으셨나이다

(3:16, 개역)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3:17, 개역)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3:18, 개역)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3:19, 개역)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영장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요나의 노래처럼

하박국의 노래처럼

이상한 노래를 불러요.

무화과 나무 잎이 마르고 포도 열매가 없으며

난 여호와로 즐거워 하리

이런 노래를 불러요

다윗이 이 노래를 불렀다 말이죠.

랩으로 하면 난 아이를 못 살려내

회개 금식 기도 눈물 그 어떤 것으로도 소용이 없네

그런 죽은 나를 아이가 다시 살려내네

~~ 원 여디디야 투 꼬끼오 쓰리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더 잘아십니다 오 예

 

라고 마치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서 혼자서 쇼미더머니 배틀 벌리고 있더라 말이죠.

너 나에게 돈을 보여줘? 넌 나에게 얼마나 이득이 되는데? 라는 쇼미더머니의 뜻은

결국 너 나에게 어떤 기적을 보여줄래 라는 겁니다. 돈은 잉여고 그 잉여는 기적이다 말이죠.

 

그런데 도저히 어떤 누구도 따라 부를수 없는 새노래 랩을 부르는데

짐승이 부르는 이적을 보여주는게 아니라, 이것이 짐승 나라의 매매 곧 소통입니다. 이익.

다들 싫어하는 요나의 표적 십자가를 노래 부르더라 말이죠.

 

다 도망칩니다.

아니 왜? 하나도 이익 되는게 없어요.

오히려 이익은커녕 손해 실패 완전 쫄딱 망하게 됩니다.

요나의 노래 보세요 하박국 노래 보세요

기여이 실성한 사람처럼 랩가삿말이 인간세계와는 절대로 맞지 않는다 말이죠.

 

나의 살과 피를 먹지 않는 자는 나와 상관이 없고 오옙

첫소절 가사부터 다 도망치더라 말이죠.

그 노래를 요나가 큰물로기 뱃속에서

하박국은 심판(수년 내에 부흥케 하소서=삼년반 동안 비오지 않게 기도하는 엘리야처럼) 속에서 말이죠.

다니엘의 세친구는 불 속에서 누구랑 막 댄스 막 춤추면서 신나게 부르고

 

불 바깥에서는 근처에 오지를 못하는 겁니다.

 

심판 속에서 구원을 노래하더라 말이죠.

 

이 차이가 대조적으로 계 13장과의 차이로

14장에서는 심판 속에서의 노래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더라 말이죠.

그 상대적인 표적은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인데

그것이 계13장에서 짐승의 표 짐승의 수 이다는 겁니다.

모든 사람들이 거기서 못 빠져나오더라 말이죠. 666에서 못 벗어나요

 

주님이 그 속에서 빼내시고자 직접 십자가에 죽고 3일만에 다시 사는 그 길 외에는

이 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더라 말이죠.

 

그러니 다윗은 이 주의 인자하심을 반복하고자

우리를 주의 눈물을 흘리게 해서 주의 병에 담고자

물에 확 빠뜨려 죽이듯이

오늘 등장하는 천사들이 성도를 물에 확 등떠밀어 빠뜨리는 식으로 심판을 펼치는 겁니다.

그것이 앞에서는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이다 말이죠.

 

화로다 화로다 나여 하나님의 얼굴을 봐 버렸넹

샬롬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도대체 앞뒤가 안 맞아요

안 맞는 정도가 아니라 정반대입니다. 모순 그 자체 모순덩어리이다 말이죠.

 

분명 심판 인데 구원이래

 

오늘 등장하는 천사도 또 인자 되신 예수님이 낫을 들고 타작 한다 말이죠.

포도틀에 성도라는 포도열매를 집어넣어서 쭈우욱 짠다 말이죠

심판이다 말이죠.

그런데 그것이 7 이라는 겁니다.

칠 은 안식의 주인되신 예수님을 말한다 말이죠

다 이루었다 라는 완료를 말한다 말이죠.

부족함이 없고 또렷하고 흠 없고 미흡함이 없고 또렷하고 명료하고 완벽하다는 겁니다.

 

그러니 770번 용서함을 도리어 받아야 할 판국이 바로

심판이 도리어 제단 숯불에 부정한 입술을 지져버리는 것이

부정함이 제거되는 정결케 되는

주님 쪽에서 준비하신 십자가 라는 심판이다 말이죠.

그 심판 속에서 부르는 노래가 새노래 이다 말이죠.

유대인들은 듣끼 싫어서 귀를 막아요 글쎄

 

정작 유대인들이 그 속에서 부를 줄 알아야 하는데

본인들이 새노래를 부르기 싫어서

도망쳐 버리고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쫏아간거다 말이죠.

 

정작 다윗은 시편 전체에서 십자가를 노래하고 있는데

요나도 하박국도 방금 화로다 화로다 외친 이사야도

모두가 새노래를 부르는데

이 노래를 부르게 할려고 주님이 선택했는데

선택받았다는 유대인에게서는 전혀 이 노래가 안 나오는 겁니다.

 

오히려 듣끼 싫어서 귀를 막고 안 볼란다 ~~~ 안 들을란다 ~~~
요나의 표적 안 볼란다 요나의 표적 안 들을란다

 

이미 종교라는 짐승의 이적이 이마표에 새겨져 있기 때문에

싫어할 수 밖에 없다 말이죠.

 

누가 이 짐승의 기적에서 빼낼수가 있겠습니까?

저도 여러분도 뭐 집사 권사 장로 목사 전도사 모조리 다 짐승의 표를 받은자 이다 말이죠.

세상 사람들도 물론이고요.

 

그래서 역사가 아닌 묵시에서 곧 환상에서 일을 벌리시는 겁니다.

천사들이 동원이 되는 겁니다.

심판의 자리를 만드는 거다 말이죠.

포도주 틀을 만드는 겁니다.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에 붙는 이 일곱이라는 의미는

숫자의 묵시화 곧 사건화 곧 기능이요 인물인

예수님을 말하는데

예수님 아니면 너희들 무조건 이유 없이 모잘라 부족해 함량미달이다는 겁니다.

그럼 왜 예수님은 무조건 합격인가?

합격 불합격이 예수님에게 붙이는게 아니라

심판의 주이시기에 합격 불합격을 도리어 행사하시는 심판관 검열관

합격 불합격을 통보하시는 분이시다 말이죠.

 

그럼 당연히 모든 인간은 불합격입니다.

짐승의 수를 받아서 모든 인간은 666이라서 모자르는 함량미달이다는 겁니다.

 

그런데 주님이 반칙을 하신다 말이죠.

그 반칙이 합격의 문을 만드신 겁니다.

곧 자기자신입니다.

이 문을 통과하면 합격입니다.

그 문이 바로 십자가 곧 요나의 표적이요

짐승의 수 666의 상대적인 의미인 일곱 일곱 일곱이라는 삼일의 간극이다 말이죠.

 

이게 바로 행함이 있는 믿음인데

기생 라합이 이 거짓말 이 반칙을 통해서 구원받았다 말이죠.

 

율법이 가입된 것은 죄아래 가두기 위함이지

합격 줄려고 시험칠 기회를 주는게 아니다 말이죠

율법을 알았다 무조건 땡 탈락 마이너스 백점이다 말이죠.

율법을 알았다는 이유로 무조건 탈락이다 말이죠.

그럼 나 율법 모를래

아 그래요?

그럼 양심 가졌다!! 무조건 땡 탈락 마이너스 백점

양심을 가졌다는 이유로 무조건 탈락이다 말이죠.

 

에이 그럼 양심도 안 가질래

 

그런데 양심은 가지니 마니가 문제가 아니라

처음부터 심겨져서 태어났다 말이죠.

 

에이 그럼 뭐야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된다는 말이네

딩동뎅 ~!~~~~~

 

무조건 지옥이네

 

딩동뎅 ~~~

뭐가 딩동뎅이야 화나 죽겠는데

지금 장난 하냐 ~~~~

 

딩동뎅 ~~~

 

결국 인간의 장난이 드디어 들통나는 순간이다 말이죠.

이적을 짐승으로부터 받은 그 증거가 나타나는 겁니다.

나는 이적 구원 기적의 존재가 되어야 하는데

 

뭐야 예수라는 자는 그것을 지금 깽판 놓는다는 말 아냐????

딩동뎅 ~~~

 

결국 율법도 양심도 모조리 다 죄인 만들기 위해서

그래서 의사 쳐다보라는 취지인데

다들 기적이나 찾고 있더라 말이죠.

 

죽음에 이르는 병을 어떻게서든 고쳐볼려고 돌파리 찾고

박수무당 찾고

모조리 기적을 찾아헤매더라 말이죠.

 

복음이 누구에게 나타났는고 하니

누가복음에서 많은 이스라엘 사람 아니요

많은 이스라엘 문둥병자 아니요

많은 이방인 아니요

많은 이방인 문둥병자도 아닌

오로지 단 한 사람 이방인 문둥병자 나아만 장군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심을 받았다 말이죠.

 

그리고 똥물에 7번 담구어라 라고 한다 말이죠.

이게 복음입니다. 똥물 곧 너는 심판을 저주를 완벽하게 받은 자임을

지금 당장 죽이셔도 할 말 없는 죄인임을 알아라 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 일곱 번 심판의 똥물 속에 예수님이 있을 줄??????

 

우물가의 여인에게 많은 남편이 있었지만

정작 목마르지 않는 사랑을 준 남편은 예수님 밖에 없더라 말이죠.

여자라는 기능은 남편의 사랑만 먹고 살도록 되어 있거든요

안그러면 의미 없는 여자라는 존재일 뿐이다 말이죠.

그러니 바닥을 치는 겁니다.

심판 속에서 바닥을 뜯어내는 겁니다.

 

율법이라는 전 남편은 사랑 주겠다고 하고 이용해 먹고 사기치고 결국 이혼요구하고 도망치는 겁니다.

그래놓고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은 여자라꼬 예수님에게 까지 시험하더라 말이죠.

정작 율법을 안다면

양심을 가졌다면 우리는 이유 없이 무조건 심판 받아야만 하는 죄인이다 말이죠.

이 심판을 누가 기뻐하겠습니까?

정의가 실현되기를 기뻐 소망한다면서 저를 심판해 주세요 라고 하는 자 없다 말이죠.

 

그런데 그 심판을 대신 받겠다고 나타나신 예수님을 껴안고 발에 볼에 뽀뽀하는 그 여인

그래서 미리 장사까지 치르고자 전재산인 비싼 향유를 발에다 뿌리니

 

쇼미더머니 배틀이 벌어지는 겁니다.

가룟유다가 아이고 아까버라 그것을 판 돈으로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줬어야지?

예수님 왈 가난한 자는 항상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없단다

이 여인이 한 일이 복음이 증거되는 곳마다 기념이 되도록 하리라 요 ~~~~

 

누가 더 잉여적이냐 말이죠.

짐승의 기적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입니까?

 

모든 인간은 기적을 바라고 있다 말이죠. 이게 짐승의 표를 받은 증거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보여줄 표적은 요나의 표적 뿐입니다.

곧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이 십자가라는 심판이 우리는 666에서 벗어나게 해서

144천이라는 새노래를 부르는 어린양에게 속한 자 속에 집어넣는 겁니다.

? 함량미달이 아니라 꽉꽉 찼거든요.

동서남북 3333 우주에까지 이 새노래가 울려퍼지거든요.

양사방으로 꽉꽉 빽빽하게 찼다 말이죠.

주의 이름이 안 외쳐지는 곳이 없을 정도로 말이죠.

 

바로 이 십자가가 무한 영광으로 만개하는 겁니다.

그러니 이 십자가를 오늘 포도주 틀로 표현되어 있는 겁니다.

 

(5:24, 개역)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지근 지근 밟아서 한때 두때 반때 밟아서 짜는 겁니다.

짜면 죽겠지요 뭐

죽으면 끝날줄 알죠?

천만의 말씀

우리 성도는 성도 자신을 위함이 아닌

예수님 때문에 다시 3일만에 살아나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겁니다.

 

그러니 양심 율법 이 모든 것이 바로 예수님을 말하기 위해서 모조리 다 동원이 되는 겁니다.

심지어 짐승이 맡은 기능 역할도 말이죠.

 

그러니 나의 삶이란 없어요

예수님을 위한 기능 들 빡에 없는 겁니다.

존재는 없다 말이죠

 

그러니 육체가 다 썩어져 해체가 되어본들

우리는 주님을 찬양하기 위해서라도 다시 무덤에서 일어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이것이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즉 이 말을 모든 목사들이 사기를 치는데

행함이 있는 믿음이란 결국 죽었다가 다시 3일만에 다시 살아나는

간극을 보여주는

주의 인자하심을 보여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탕자가 보여줍니까?

맏아들이 보여줍니까?

그럼 탕자가 독자적으로 보여주던가요? 아니지요

 

결국 예수님과 짜고치는 고스톱입니다.

 

짐승이 주는 기적은 역시나 모잘라요 ~~~ 함량 미달입니다. 저울에 달아보니 택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보여주신 요나의 표적인 십자가는 다들 싫어하고

다들 고개를 돌려 버리고 아무도 흠모할 모양이 없다고 싫어버린바 되었던 그 십자가가

유일하게 무게를 꽉꽉 채우는

주의 인자하심이다는 겁니다.

주님은 제사와 번제를 원치 않는다 말이죠.

인애와 자비를 원하신다 말이죠.

상한심령을 원하신다 말이죠.

우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겁니다.

슬픔으로 씨를 뿌리는 자 기쁨으로 단을 거두시는 겁니다.

 

그러니 포도주 틀에 넣어서 짜는 겁니다.

한때 두때 반때에서

반때는 예수님이 성도를 밀어서 이쪽세계에서 저쪽 세계로 밀어붙이는 기간이다 말이죠.

날짜 숫자 날 개념이 아니라 사건 개념으로써

목욕탕 욕조에 물 받은 것 아래 마개를 빼면 물이 욕조에서 하수구로 이동하듯이

이동시킬려고 밀어붙이는 그래서 죽임을 막 죽어나가는 겁니다.

 

(14:18, 새번역) 또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왔습니다. 그는 불을 지배하는 권세를 가진 천사였습니다. 날이 선 낫을 들고 있는 천사에게 큰 소리로 말하였습니다. "날이 선 그 낫을 대어, 땅에 있는 포도나무에서 포도송이를 거두십시오. 포도가 다 익었습니다."

(14:19, 새번역) 그래서 그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서,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를 만드는 술틀에다가 던졌습니다.

(14:20, 새번역) 술틀은 성 밖에 있었는데, 그것을 밟아 누르니 거기에서 피가 흘러 나왔습니다. 그 피가 말 굴레의 높이까지 닿고, 거의 천육백 스타디온이나 퍼져 나갔습니다. / 300킬로미터

 

그러니 그야말로 기쁜소식 복음입니다.

이 심판 곧 하나님의 진노를 기뻐해야 합니다.

물론 기뻐할 인간이 아무도 없겠지요.

그런데 보세요 위에서 짐승의 수를 받았기에 내 구원을 바란다고 했지요?

위의 HWP 7페이지 정도의 글 다시 복사해서 붙여볼께요

 

짜잔

 

[결국 인간의 장난이 드디어 들통나는 순간이다 말이죠.

이적을 짐승으로부터 받은 그 증거가 나타나는 겁니다.

나는 이적 구원 기적의 존재가 되어야 하는데

 

뭐야 예수라는 자는 그것을 지금 깽판 놓는다는 말 아냐????

딩동뎅 ~~~]

 

이 깽판 놓으시는 것을 기뻐해야 한다 말이죠.

안 그러면 무슨 수로 짐승에게서 벗어나겠습니까?

 

계시록은 그야말로 기쁨의 절정입니다. 마지막 하이라이트 이다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벗어나는 겁니다. 짐승으로부터 말이죠.

나의 구원으로부터 말이죠. 이게 구원입니다.

종교라는 국가라는 짐승으로부터 말이죠.

 

이 매가 아니면 자녀가 아니라 사생아겠지요.

 

(히 12:6, 개역)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이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히 12:7, 개역)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히 12:8, 개역)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주님 이렇게 나를 사랑하십니까?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주님의 자녀를 사랑하심이 지극히 크심이니이다.

주의 선하시고 인자하심이 영원하리로다 아멘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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