낫을 휘둘러라! 포도송이를 거두라! 포도가 익었느니라! (14:12-20)

종말 잔치! (혼인잔치), 여기 붙어라, 머릴 비워라, 불을 지펴라 리리릴 라라라 ~~~~ 

 

(14:12, 개역)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14:13, 개역)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14:14, 개역)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앉았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이한 낫을 가졌더라

(14:15, 개역)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네 낫을 휘둘러 거두라 거둘 때가 이르러 땅에 곡식이 다 익었음이로다 하니

(14:16, 개역)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14:17, 개역)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또한 이한 낫을 가졌더라

(14:18, 개역)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이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가로되 네 이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14:19, 개역)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14:20, 개역)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까지 닿았고 일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찬송가 몇장이였죠? 익은 곡식 거둘 자가 없는 이때에 누가 가서 거둘까.

내가 어찌 게을러서 앉아 있을까. 어서 가자 밭으로-

보내주소서- 보내주소서-

제단 숯불 내 입술에 대니 어찌 주저할까.

주여 나를 보내주소서-

271장이였네요

 

어서 가자 포도농장으로

어서가자 포도주틀로

 

이사야선지자가 이스라엘 중에 거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드디어 죽게 됩니다.

아 그런데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도록

주님께서 제단 숯불로 부정한 입술의 부정함을 제거합니다.

그리고서는 누가 이스라엘을 확 등떠밀지? 라고 하니까

(사 6:1, 개역)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사 6:2, 개역)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사 6:3, 개역)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사 6:4, 개역) 『이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사 6:5, 개역)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사 6:6, 개역)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사 6:7, 개역)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사 6:8, 개역)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사 6:9, 개역)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사 6:10, 개역)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사 6:11, 개역) 『내가 가로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거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가 전폐하게 되며』

(사 6:12, 개역) 『사람들이 여호와께 멀리 옮기워서 이 땅 가운데 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사 6:13, 개역)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이사야 선지자가 맹구처럼 베트맨 손가락 뒤집어 가면서

선생님 저요 저요 라고 팔을 쭉쭉 쭉쭉 뻗는 겁니다.

감히 그 앞에서 다른 친구들은 이 맹구 앞에서 팔을 못 뻗는 겁니다.

맞습니다. 부정함이 제거된

완벽한 거룩함이 입혀지지 않는 자는 손을 들수가 없습니다.

 

그래 그래 너 너 너 맹구 너 너 너 이사야 너 그래 너 말이야

 

주께서 누굴 보낼까 라고 고민하는 연기를 하시더니

처음부터 이사야를 보내시기로 작정하셔놓고서 이런 사건을 벌리시는 겁니다.

그래 너 너 너 맹구 너 이사야 너 ~~~~

그 창세전에 기록된 바를 증상으로 나타내시는 사건입니다.

 

자 그럼 누가복음처럼 단 한 사람에게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에게? NO 아니요

이스라엘 많은 과부? NO 아니요

억수로 많은 이방인? NO 아니요

이방인 중 많은 과부? NO 아니요

이방인 중 많은 과부 중 단 한 사람 사렙다 과부? 예스 YES 예 맞습니다 맞고요

누가요? 엘리야 선지자가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눅 4:13, 개역)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

(눅 4:14, 개역) 『예수께서 성령의 권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눅 4:15, 개역)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

(눅 4:16, 개역)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눅 4:17, 개역)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눅 4:18, 개역)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눅 4:19, 개역)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눅 4:20, 개역)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눅 4:21, 개역)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눅 4:22, 개역) 『저희가 다 그를 증거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눅 4:23, 개역)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반드시 의원아 너를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증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의 들은 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

(눅 4:24, 개역) 『또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눅 4:25, 개역)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세 해 여섯 달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눅 4:26, 개역)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눅 4:27, 개역)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니라』

(눅 4:28, 개역)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분이 가득하여』

(눅 4:29, 개역)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내리치고자 하되』

(눅 4:30, 개역) 『예수께서 저희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


 

그리고 단 한 사람 문둥병자에게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에게? NO 아니요

이스라엘 많은 문둥병자? NO 아니요

억수로 많은 이방인? NO 아니요

이방인 중 많은 문둥병자? NO 아니요

이방인 중 많은 문둥병자 중 단 한 사람 문둥병자 나아만 장군? 예스 YES 예 맞습니다 맞고요

누가요? 엘리사 선지자가 보내심을 단 한 사람에게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즉 이 말은 이 단 한사람 빼고는 약속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왜 그럼 단 한 사람입니까?

오직 이스라엘에게만 보내심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아니 이스라엘 아니요? 라매?

네 이스라엘 아니지요

아니 오직 이스라엘게만 보내심을 받았다메?

네 다른 이에게는 보내심을 받지 않았습니다.

오직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예수님은 보내심을 받지 않았습니다.

 

결국 눈에 보이는 이스라엘은 다 가짜입니다.

잃어버린 양이 아닙니다.

오히려 잃어버린 양 외에는 보내심을 받지 않았기에

그들 겁떼기 이스라엘은 예수님을 거부했지요


(마 10:6, 개역)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마 15:24,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낫을 휘둘러라 포도송이를 거두라 포도가 익었느니라

오늘 제목을 보니 빅뱅의 판타스틱 베이비로 개사하면 되겠구나 싶더군요

참 시근 없지요

 

낫을 휘둘러라 여기 붙어라

포도송이를 거두라 머릴 비워라

포도주틀에 짜라 불을 지펴라 리리릴 라라라라

 

아주 신나는 판타스틱 환상 묵시 의 종말입니다.

그 심판 속에서 귀신들린 딸의 어미 개같은 이방인 여자가
맞습니다 주여 저 개 입니다.
그러나 개도 주의 밥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먹지 않습니까?

(마 15:21, 개역)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마 15:22, 개역)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하되』

(마 15:23, 개역)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마 15:24,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마 15:25, 개역)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마 15:26, 개역) 『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마 15:27, 개역)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마 15:28, 개역)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정작 육의 혈통의 이스라엘은 짐승이였고
저 짐승 맞습니다. 주여 불쌍히 여겨달라는
개같은 이방인에게서 잃어버린 양을 찾으시는 겁니다.

 

맹구 이사야가 외칩니다.

선생님 하늘에서 비가 아니 낫이 내려와요 ~~~

포도주틀이 내려와요

 

그러니 역사적인 존재는 이 말이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겁니다.

역사적 존재는 이 묵시적인 환상의 언어가 단절 되었거든요.

 

아침에 잠에서 눈뜨자 마자 이런 생각이 갑자기 막 막 드는 겁니다.

이상하다 왜 뜬금없이 이런 내용이 생각날까?

너무 낯설더라 말이죠.

 

솔로몬 재판에서 솔로몬 왕이 여봐라 개작두를 대령하라 ~~~

저 시골 촌구석에서 이 사건을 풀어낼자가 없어서

결국 하늘의 보좌에까지 올라가는 겁니다.

그래서 여차저차하여서 여봐라 개작두를 대령하라

그리고 이 아이를 두 조각내어서 이 어미에게 저 어미에게 주어라 라고 했을때에

한 쪽 어미 창녀는 박수를 치면서 옳습니다 왕이시여

당신은 참으로 지혜롭습니다 라고 박수를 치면서

저도 가지지 말고 이도 가지지 말도록 하소서 라고

그만 실소를 내뱉어버린 거지요 너무 좋아라 한 나머지 그만 ~~~~

 

그런데 왕의 지혜는 바로 우는 자를 찾는 겁니다.

우는 자가 진짜 어미입니다.

상한심령을 찾는 겁니다.

주의 인자하심은 바로 죄인을 찾으러 왔다 말이죠.

의인을 부르러 온게 아닙니다.

 

그러니 요즘 같은 과학시대에 저런 솔로몬 왕의 지혜가 무슨 놈의 지혜냐 라고 비웃겠지만

오늘까지도 이것이 참 지혜인 이유는

바로 과학도 할 수 없는

3일의 간극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다윗선지자처럼 솔로몬 또한 선지자로써

이 참 어미에게만 보내심을 받은 선지자로써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는 이 간극을 만들어내는 자가 바로 선지자이다 말이죠.

곧 성령이다는 겁니다.

율법과 선지자는

 

(22:40, 개역)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16:16, 개역)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24:44, 개역)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3:21, 개역)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3:31, 개역)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3:31, 새번역) 그러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율법을 폐합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웁니다.

 

결국 우리는 뭘 해도 가짜요 심판받아 마땅한 죄인

곧 불뱀에게 물린 자로써

뭘 해도 함량미달이기에

그저 불쌍히 여겨주소서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울도록 만드는

회개케 만드는

물에 등떠밀어 확 빠뜨리는 역할 기능을 하는 겁니다.

죄 아래 가두기 위함이다 말이죠.

 

그래야 율법의 완성인 사랑을 쳐다볼 것 아니겠습니까?

주의 인자하심을 쳐다볼 것 아니냐 말이죠.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그 십자가의 용서를 말이죠.

이 완벽하고 흠없고 미완료가 없는 또렷하고 밝히 보이는 십자가의 용서를 쳐다보라고

물에 등떠밀어 확 빠뜨리는 겁니다.

그래서 죄인에게만 보내심을 받은 거다 말이죠.

 

이 죄인을 찾고자

죽은 자를 찾고자

우는 자를 찾고자

작두를 대령하라 라고

포도주틀을 대령하라 라고 대령하는 겁니다.

상한 심령을 찾는 겁니다.

 

요셉이 형제들이 빠드린 구덩이에서 죽었다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났거든요

그래서 볼모작전으로 요셉이 형제들을 간첩으로 몰아서

뺑뺑이 세 번을 왔다리 갔다리 하는 겁니다.

어차피 다 받아줄게 뻔한데 왜 이런 의미 없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 목숨거는 것일까요?

유다가 갑자기 며느리 다말을 통해서 죽었다가 다시 삼일만에 살아난 자식을

담보로 맡기면서 이 요셉의 테스트 시험 곧 간첩 몰기작전

죄인으로 몰아가가기 작전에서 드디어 삼일만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자식을 바침으로써

이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게 됩니다.

십자가의 피 용서를

요나의 표적을 보게 된다 말이죠.

무시험 합격입니다.

 

그러니 이 낫을 들어라 포도주틀을 대령하라 리리릴 라라라라 라고 선지자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포도주틀에 집어넣어서 포도송이를 짜서 포도주로 만들때에

오히려 기뻐해야 합니다.

이 의문의 반복뿐인 세상에서 드디어 육체의 옷을 벗게 되는 구나 라고 말이죠.

드디어 제대다 말이죠.

뒤도 안돌아보고 오줌도 누지 않는다 말이죠.

다니엘 선지자가 다시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예배를 하지 않듯이 오줌도 안 눈다 말이죠.

그 의문의 반복을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으니 말이죠.

 

얼마나 신납니까?

제대할 때 마침 한 쪽 강도에게 예수님까지 오셨으니

이건 뭐 대박 비행기 탄 거죠

로또당첨 저리가라입니다.

주여 당신의 나라에 저를 기억하소서 라고 말이죠.

 

그러니 이사야 선지자가 맹구처럼 저요 저요 저를 보내주소서 라고

아름다운 선전을 전하는 신나는 발길 ~~~~

 

(벧전 2:9, 개역)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니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라메? 그래놓고 물에 확 빠뜨려

죄인 만들고

아니 왕같은 제사장들이라메? 거룩한 나라 라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메? 해놓고서는

물에 확 빠뜨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불쌍히 여겨주소서 라고 외치도록

울부짖게끔 만들어서

죽였다가 다시 3일만에 다시 살려내는 주의 인자하심이라는 간극 속에서 태어나게 하더라 말이죠.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천국에 못 간다 말이죠.

 

그래서 포도주틀을 준비해서 낫으로 배어서 익은 곡식을 거두는 겁니다.

한때 두때 반때 꼬끼오 꼬끼오 꼬끼오로

울음 속에서 태어나게

상한실령에서 태어나게

예수님의 눈물 속에서 태어나게 하는 겁니다.

이것이 함량미달의 666에서 빼내시는

완벽한 거룩

율법의 완성인 사랑으로 태어난 자입니다.

 

이것이 참이스라엘 곧 처음사랑에서 태어난 자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용서받은

그 용서의 자리

3일의 간극 속에 확 등떠밀어 빠뜨리고자

율법과 선지자는 활동하는 겁니다.

그러니 율법을 폐하러 온게 아니라 완성하러 온 거다 말이죠.

 

(3:31, 개역)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율법을 굳게 세움으로써 율법의 완성인 사랑을 나타내시는 겁니다.

 

그러니 인자되신 예수님께서 낫을 들고 익은곡식을 거두시는 겁니다.

포도송이를 거두어서 포도주틀에 짜는 겁니다.

 

이 역사 속에서 묵시의 세계로

어린양의 나라로

어린양에게 속한 십사만사천명이 노래하는 새노래를 부르는 세계로 옮기고자

날마나 날마다 죽이시는 겁니다.

싹뚝 싹뚝 낫으로 시원하게 배는 겁니다.

 

추수날이 되면 얼마나 기쁘냐 말이죠.

눈물로 씨앗을 뿌렸는데 드디어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되니

우는 자가 복이 있는 겁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얼마나 복되신 주님이신지

눈물로써 씨앗을 뿌렸던 예수님 드디어 기쁨으로 곡식을 거두시는 겁니다.

이 주님의 기쁨에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동참되었으니

그 완벽한 거룩의 흰옷을 신부에게 꽃단장으로 입혀버리시니

마귀는 멋도 모르고 미끼를 확 물어서 물개 박수를 치다가

도리어 개작두에 목이 짤리는 겁니다.

상한심령이 없어서 말이죠.

주의 눈물이 주의 피가 묻지 않아서 말이죠.

 

그것도 모르고 주의 피가 발린 자를

더럽다고 부정하다고 죄인이다고 좋아라 미끼를 확 물다가

도리어 당하는 겁니다.

 

그러니 솔로몬의 지혜는 그냥 지혜가 아니라

요나의 표적인 십자가의 지혜였던 겁니다.

 

유시민작가가 뇌과학자에게 묻어갈려고 할때에

그 뇌과학이 바로 헬라인이 찾는 지혜입니다

원인에 따른 결과죠

그런 헬라인이 찾는 지혜에서 보면

십자가는 어리석고 미련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고 유시민 작가는 국가라는 짐승에 자기목숨 바쳤기 때문에

이 종교라는 마약에 국가라는 마약에 쩔어사는 겁니다.

이 국가, 대한민국 짜짜~~짝 짝짝, 이 종교라는 마약에서 보면

십자가는 거리끼는 걸림돌입니다. 걸림돌은 남들을 실족케 하니까

불편한 것은 대중들을 위해서라도 빼버려야 한다 말이죠.

그런데 그것이 머릿돌입니다.

끝까지 거리끼는 지혜로 남는 것이 십자가 지혜입니다.

 

단순히 기독교를 욕하는게 아니라 성경 자체를 비판하는 것을 들었기에

저런 거짓선지자가 인기가 많구나 라는 것을 느꼈거든요.

그러니 맨날 평강이다 평강이다를 외칠수 밖에요.

모든 철학자들은 그들이 맡은 역할인 거짓선지자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아끼고 아끼는 대중을 위해서 목숨을 걸었으니 말이죠.

 

그러나 복음은 오로지 단 한 사람

이스라엘과 약속했습니다.

 

이 이스라엘이 누구인가? 존재가 아닌 기능이 뭔가?

바로 잃어버렸다가 다시 3일만에 되찾은바 된

그들에게만 보내심을 받았기에

 

나머지 이방인들은 약속을 하지 않았거든요.

상대적인 이스라엘이니

이 참이스라엘을 다 이루신 겁니다.

 

그러니 다윗선지자는 자신이 속해 있는 이스라엘 존재가 아닌

눈에 보이는 이스라엘 조차도 이스라엘 민족 또는 국가 조차도

거부해 버리는 겁니다.

오로지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은 잃어버린 양 외에는 보내심을 받지 않았기에

물에 죽음속에 다 빠뜨리는 3일의 간극을 보여주는 겁니다.

본인이 거기서 태어났거든요.

여디디야 여디디야 여디디야

눈물 눈물 눈물 말이죠.

 

이것이 역사 세계에서 묵시 세계로 옮겨진 자입니다.

그러니 이 묵시의 세계를 역사 세계 속에 침범시키는 겁니다.

상한심령을 찾고자 말이죠.

 

그래서 시온에 돌을 하나 두는 겁니다.

새노래를 부를 자를 모으기 위해서 말이죠.

 

(28:16, 개역)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28:16, 새번역) 그러므로 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시온에 주춧돌을 놓는다. 얼마나 견고한지 시험하여 본 돌이다. 이 귀한 돌을 모퉁이에 놓아서, 기초를 튼튼히 세울 것이니, 이것을 의지하는 사람은 불안하지 않을 것이다.

 

(9:33, 개역)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9:33, 새번역) 그것은 성경에 기록한 바와 같습니다. "보아라, 내가 시온에,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를 둔다. 그러나 그를 믿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 8:14; 28:16(칠십인역) 또는 '그것을 의지하는 사람은'

 

(11:26, 개역)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벧전 2:6, 개역)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벧전 2:6, 새번역)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보아라, 내가 골라낸 귀한 모퉁이 돌 하나를 시온에 둔다. 그를 믿는 사람은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 28:16(칠십인역)

 

그리고 주의 십자가의 지혜를 노래하는 겁니다.

아무도 배울수 없는 이 새노래

 

곧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잘 아십니다 라고

마귀 듣는 코앞에서 마귀 보란 듯이 말이죠.

이것이 바로 종말에만 나타나는 새노래를 부르기 위한 찬양자로 태어난 자들입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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