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만 예정 하심 (인간 구원 예정한 적 없음)

날짜, 보낸사람, 받는사람, 내용

2008-11-07 15:21:05,

자신들은 주님의 자녀들이기에 주님이 자신들에겐 당신의 일을 계시한다는것이죠 그래서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것 또는 말씀을 파고 열어 가고 있기에 그것이 주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하고 길을 가고 있다는것이죠

답변 :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못 밖으라 라고 남녀노소 다 외칩니다. 제사장도 서기관도 율법사도 바리새인도 또 예수님으로부터 기적을 받아 고침 받은 자도 예외 없이 긍휼을 입은자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즉 그들이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예수님의 목적 때문에 자기들의 목적이 드러나는 겁니다.

만약 못 밖으라 라고 외치지 않으면 그 뒤의 현상유지에 위협이 됩니다.
그래서 마음 푹 놓고 못 밖으라 라고 외치도록 주님이 배려해 주신 겁니다.
너희들의 그런 미완료가 예수님의 안심 푹 놓고 다가오는 완료로 인해서 그 차이가 드러날 수 밖에 없도록 하시는 겁니다.

베드로가 아무리 자기가 예수님을 끝까지 따라갈려고 무진장 애를 써도
주님은 마음 푹 놓고 배반하도록 하시는 겁니다.
가룟 유다와 다른 인간으로 될려는 베드로의 열심때문에가 아니라.
가룟 유다와 똑같은 자 이지만
주님 쪽의 열심은 새로 창조해버린다는 입장에서
베드로는 철저하게 정죄받는 길을 피할수 없도록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 안에서만 결코 정죄함이 없는 겁니다.
베드로 안에서 결코 정죄함을 이루면 안되도록 하시는 그 배려 ㅋ ㅋ ㅋ

그래서 성화론자들이 가룟 유다와 다른 자아를 추구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가룟 유다와 똑같은 길만 골라서 가는 겁니다.

내가 나를 창조해 본들 제자리 뛰기입니다.

새 피조물은 예수님 손에만 의한 겁니다.

 
2008-11-07 15:25:26,

이것 또한 주님이 배치한일이니 주님이 알아서 진행하시겠죠

다 각자가 관계성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진리라고 믿고 있으니 그저 이끄시는데로 겪는수 밖에 없는것 같습니다 다 각자가 가는 길이 길이고 생명이고 진리이고 기준이 되고 싶은것이겠죠

답변 :

인간이 예정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나 이제 인간 아니요 개입니다 라는 자기부인의 성령님이 임할 때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자기부인한 것 마저도 또 그단새 소유하고프고 기념비화 하고픈 것이 인간입니다. 베드로를 통해서 우리는 지적받았습니다.

즉 예정을 받아들이는 기특한 나이기에 현상유지(하나님과 같이 됨)를 인정해 달라고 우기는 겁니다.

그래서 예정이란 바로 그런 사고방식 마저도 유발케 함으로써
남김없이 박살내시는 겁니다.

정작 모든 것이 빼앗기고 난 다음에서야

자아란 없는데 왜 자꾸 그 주머니에 이유없이 하나님 됨을 추구했는가를
전쟁을 통해서 비로소 알게 되겠지요

전쟁은 오로지 나를 겨냥한 것임을 말이죠.
(자 그래서 없는 자아에 대해서 이 허상에 대해서 제대로 눈 뜰 때 까지
늘 자기에게 속아 넘어가도록 하시겠죠 얼마나 사기 당했는지를 말이죠)

세상에나 그림자에게 사기 당하는 것 보다 더 웃끼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현실을 현상유지 할려고 예수든 뭐든 붙잡고 있는 거죠.
그래서 현상유지를 날려 버려야
허상에서 눈이 띄여지겠지요.
자아에서 눈이 띄여지니

비로소 최초로 나를 벗어난 언어가 튀어 나옵니다.

주여 뉘 시오니까?

니가 핍박하는 예수다

최초로 이웃과 타인을 보게 된 겁니다.

그 이웃이 바로 고아 과부 나그네인 예수님입니다.

즉 내가 갇히게 만들었고 내가 포로되게 만들었고 내가 눌러버린 유일한 이웃인 거죠.


2008-11-07 15:33:29,

다들 위대한 착각속에 살고 있으니 이것도 다 주님이 벌어신 일이니 정리도 주님이 하시겠죠

다들 신이 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으니 왜 주님이 그 반대의 모습으로 왔는지 알것 같네요

답변 :

그 착각은 자기들에 의한 것이 아니라
막으신 분에 의한 겁니다.

그래서 선악과를 심은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의미인지 참 제대로 일을 진짜 멋들어지게 하셨군요 라고 나오는 겁니다.

우리는 늘 투덜 거렸죠 저 선악과만 아니였으면 난 괜찮았을텐데 라고 말이죠.

그런데 그게 아니였습니다.

나는 틀렸고 선악과를 심으신 주님이 옳았습니다.

뭐든지 다 옳았고

뭐든지 나는 다 틀렸다는 것이 왜 이렇게 기쁜지

내가 틀렸다는 것이 자존심(법) 상하는게 아니라 천부당백부당 당연하다는 겁니다.
왜 내가 완료가 될 필요가 없었다는 겁니다.

완료가 덮치고 보니
주님만 완료 이시면 내가 하등 완료일 필요가 없기에 든든한 겁니다.

이것이 성화론자들에게는 반대로 불안하기 때문에 오늘도 완료를 향하여 미완료를 억지로 참아내는 겁니다.

Posted by 김 대식
,